송연아는 송예걸 보고 더는 말하지 말라고 손을 저었다.그녀는 좀 진정해야 했다.송예걸은 송연아를 의자에 앉혔고 뒤늦게 물었다.“애한테 무슨 일 생긴 거야?”송연아의 드리운 속눈썹이 어느새 촉촉해졌다.그녀는 쉰 목소리로 말했다.“엄마한테 말하지 마.”송예걸이 말했다.“알았어, 알았으니까 말해줘. 아이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건지.”“누군가에게 안겨 간 것 같아.”이 경우는 송연아의 마음속에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다.안겨 갔다는 것은 아이가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그렇다면 이 세상에 살아 있는 한 언젠가는 반드시 찾을 수 있을 것이다.찾을 수만 있다면 꼭 만날 기회도 있을 것이다.송예걸은 잠자코 오랫동안 말을 잇지 못했고 송연아는 드디어 마음을 조금 가라앉힐 수 있었다.“내가 뭘 해줄까?”송예걸이 물었다.송연아는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그러고 보니 지금 정말 네가 해야 할 일이 있어.”“말만 해.”송예걸의 표정이 심각해졌다.예전의 건들건들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졌다.“장 비서가 원우 씨한테 해코지했어. 그녀가 매수했던 운전기사가 지금 뭐 하는지 확인해 줄 수 있어?”“죽었어.”송예걸이 말했다.“뭐라고?”송연아는 다소 충격이었지만 곧바로 생각이 섰다.“증거 인멸했네.”“교통사고 이후 경찰이 개입해서 차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는 감식 결과를 내렸어. 그래서 그 운전자는 더는 책임을 묻지 않고 곧바로 풀려났지. 내가 장 비서를 협박하려고 그 운전기사를 찾으려고 했는데, 이미 죽었을 줄은 누가 알았겠어.”송연아가 말했다.“장 비서가 손을 쓴 거라면 그녀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악랄한 사람이고 시시각각 그녀를 조심해야 한다는 것밖에 얘기가 안 돼.”“강세헌한테 그냥 해고하라고 하면 되지.”송예걸이 말했다.송연아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간단한 것이 어디 있겠느냐고 생각했다.장 비서를 해고하면, 그녀는 물귀신 작전으로 더 미친 짓을 할 수도 있었다.“장 비서가 왜 원우 씨를 해치려고 하는지 알아? 혹시 원우 씨가 그
사진이 땅에 떨어졌다.송연아는 고개를 숙여 그 사진을 보았다.사진 속의 사람은 그녀를 어리둥절하게 했고 오랫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했다.강세헌의 공책에 어떻게 그녀의 어린 시절의 사진이 있는 거지?송연아는 몸을 숙여 사진을 주웠고 보고 또 보았지만, 여전히 오리무중이였다.그녀는 사진을 재빨리 원래 자리에다가 놓았고 더는 보지 않았다.그리고 공책도 빠르게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송연아는 몸을 돌려 성큼성큼 서재에서 나왔다.그녀는 문 앞에 서 있는 한혜숙을 의식하지 못한 채 재빨리 걸어갔다.“연아야, 너 왜 그래? 뭐가 이렇게 급해?”“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송연아는 한혜숙을 보고는 즉시 마음을 가다듬었다.“누군가가 널 만나고 싶대.”한혜숙이 말했다.송연아가 누구냐고 묻자 거실에 서 있는 심재경이 눈에 들어왔다.“일찍 퇴근해서 먼저 왔어.”심재경이 말했다.송연아는 한혜숙과 오은화를 보고 찬이를 데리고 동네에서 잠시 놀다가 들어오라고 했다.“저 재경 선배랑 단둘이 할 말이 있어요.”“그래.”한혜숙은 찬이를 안고 오은화와 함께 나갔다.그들이 떠난 뒤 송연아는 거실 소파로 가서 앉았다.“앉아요.”심재경은 소파에 앉았다.두 사람은 눈을 마주쳤지만 침묵으로 일관했다.송연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원우 씨를 다른 곳으로 보내요. 아무도 모르게.”“왜? 지금 거기 좋지 않아?”“누군가가 원우 씨를 해칠까 봐 걱정돼서요. 암만 생각해봐도 다른 곳으로 보내는 게 좋겠어요, 만약 선배가 좋은 곳이 없으면 제가 주 교수님께 한번 부탁해볼게요. 비록 퇴직했지만, 교수님한테 비밀 병실을 마련해 달라고 부탁하는 건 문제가 없을 거예요...”“할 수 있어.”송연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심재경이 말을 끊었다. 그는 송연아를 매우 진지하게 바라보며 목소리를 낮추었다.“너랑 약속할게. 그리고 이슬이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은데...”“이슬 언니 찾았어요? 어디 있어요? 나 만나고 싶어요, 송예걸은 이슬 언니 찾기 위해 우리 송씨 집안
송예걸은 심재경을 노려보았고 노여움에 눈가의 살갗은 찢어질 듯 당겨졌고 두 개의 동그란 눈동자는 튀어나올 듯했다.그리고 그 순간, 송예걸은 달려들어 심재경의 멱살을 잡으며 번개같이 빠른 주먹으로 그의 얼굴을 내리쳤다.퍽!묵직한 소리가 났다.심재경은 입에서 피비린내가 느껴졌다.송예걸은 그를 잡아당겨 바닥에 쓰러뜨렸고 또 주먹을 두 방 날렸다.송연아는 즉시 송예걸을 떼어내었다.“진정해!”“내가 어떻게 진정해!”송예걸은 소리를 질렀다.“이 사람 때문에, 이 사람이 결혼하고도 이슬 누나한테 매달려서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된 거야. 다 이 사람 때문이라고!”이제 송예걸은 이성의 끈을 철저히 놓아버렸고 눈앞의 이 장본인을 죽이려고 했다!“비켜!”송예걸은 송연아를 한쪽으로 밀었다.송연아는 똑바로 서지 못하고 소파에 넘어져 복부의 상처를 건드렸고, 그녀는 아파서 얼굴을 찡그렸다.하지만 지금 송예걸은 전혀 그녀의 아픈 모습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아직도 끈질기게 심재경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다.심재경은 조금도 반항하지 않았다.그는 송예걸이 맞는 말을 했다고 생각했다.만약 결혼해서 안이슬을 멀리했다면 윤소민의 눈에 띄지 않았을 것이고, 지금의 비극또한 없었다.“네 말이 맞아, 내가 이슬이를 해쳤어.”심재경은 자신의 잘못임을 인정했다.“후회하는 모습을 보이면 가만둘 줄 알았어? 꿈도 꾸지 마!”송예걸은 그의 목을 조르며 소리쳤다.“참회하고 싶으면 저승에 가서 무릎 꿇고 용서 빌어!”송연아는 힘겹게 일어나 낮은 소리로 호통을 쳤다.“송예걸, 그만해! 선배가 죽었다고 해도 이미 일어난 일은 바꿀 수는 없어, 네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이슬 언니를 죽인 범인을 찾는 거야!”송예걸은 방망이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멍해졌다.송연아에게 욕을 먹고 정신을 차린 듯싶었다.“누나를 죽인 진짜 범인?”“그래.”송연아는 복통을 무릅쓰고 그의 곁으로 다가가 어깨를 가볍게 토닥거렸다.“심재경은 아무리 잘못해도 이슬 언니를 해치지 않았을 거야.”
송연아는 자신이 잘 숨겼다고 생각했지만 강세헌은 그녀의 울음 섞인 목소리를 단번에 알아챘다.“울었어?”저쪽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송연아는 애써 감추면서 인정하지 않았다.“아니요, 전 괜찮아요.”저쪽에서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그래, 안 울었으면 됐어.”송연아는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의 발끝을 바라보며 말했다.“보고 싶어요.”안이슬의 일을 알고 그녀는 크나큰 충격을 받았다.애써 극복하려고 했지만 강세헌을 마주할 때는 왠지 어깨에 기대 의지하면서 강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푹 쉬어.”송연아가 물었다.“일만 마무리하면 돌아올 수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피칠 못할 사정이 생겼어...”“알았어요.”송연아는 눈을 내리깔았고 속눈썹에는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당장 못 돌아온다고 전화한 거죠?”저쪽에서는 낮게 ‘응’하고 대답했다.송연아는 깊은숨을 들이쉬고는 이내 정신을 차렸다.“전 괜찮아요, 당신은 일하고 있어요, 무슨 소식이 있으면 제일 먼저 알려주고요.”“응.”송연아는 핸드폰을 꼭 쥐고 말했다.“일 없으면, 이만 끊을게요.”“응.”송연아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한참 동안 멍하니 어딘가를 바라보았다....늦은 밤.송연아는 이미 깊이 잠든 후였다.이때 현관문이 열렸다.강세헌은 지친 몸을 이끌고 밖에서 들어왔다.그는 팔에 양복 외투를 걸치고 있었고 셔츠 깃이 헐렁한 탓에 반쯤 열려 단단한 가슴이 보일 듯 말 듯했다. 턱에는 수염이 조금 나 있었고 피곤한 기색을 띠고 있어 평소에 의기양양하던 그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지금, 이 순간 그의 눈은 더 깊어졌다.강세헌은 아무도 놀라게 하지 않기 위해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안에 들어왔다.살며시 침실 문을 열자 은색 달빛이 온 방 안을 뒤덮었고, 문 앞에 서자 침대에 누워 있는 사람이 보였다. 송연아는 몸을 움츠리고 깊이 잠들어 있었고 강세헌은 그녀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조용히 방을 나갔다.그는 바깥 욕실에서 깨끗하게 샤워한 후 잠옷 차림으로 침실에 들어갔다.송연
송연아는 더는 자지 않았고 침대에서 일어났다.강세헌은 찬이를 보러 먼저 방에서 나갔다.나머지 식구들은 모두 밥을 먹었지만 송연아와 강세헌만 아직 먹지 않아 그들 둘만 식탁 앞에 앉았다.“좀 있다가 회사에 다녀올게.”강세헌이 말했다.송연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방금 돌아왔으니, 분명히 처리해야 할 일이 있을 것이다.“그...”송연아는 그때 그 사진을 떠올렸고 강세헌에게 묻고 싶었다.“뭐?”강세헌이 그녀를 바라보았다.송연아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아무것도 아니에요.”송연아는 만약 그녀에게 말해야 하는 일이 있다면 강세헌은 언젠가는 꼭 말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강세헌은 밥을 먹고 그녀에게 푹 쉬라고 당부하고는 곧바로 떠났다.오늘 송연아의 컨디션은 꽤 좋았다.찬이가 앉아 강아지를 만지작거리고 있었고 송연아가 다가와 손을 뻗어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그렇게 재밌어?”찬이는 그녀를 올려다보며 씩 웃었다.송연아는 찬이를 안고 볼에 뽀뽀했다.한혜숙이 와서 찬이를 안으면서 말했다.“넌 어서 방으로 돌아가.”송연아는 자신의 몸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산후조리도 안 끝났는데, 종일 아무 일 없는 사람처럼 돌아다니니 말이다.송연아는 한혜숙이 자신을 관심해서 하는 말인 것을 알아 얌전히 방으로 돌아갔다.침대에 누워도 잠이 오지 않아 그녀는 책을 한 권 찾아보았다.몇 장 읽지도 못했는데, 노크 소리가 다급하게 울렸다.쿵쿵.송연아는 일어나서 문을 열었다.한혜숙은 찬이를 안고 문 앞에 서 있었다.“이것 좀 봐, 찬이 몸에 이렇게 많은 붉은 뾰루지가 생겼어, 무슨 알레르기가 있는 거 아니야?”송연아가 다급히 살펴보니 팔뿐만 아니라 몸에도 있었다.알레르기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운전기사한테 차를 준비해 달라고 해요. 병원에 가야겠어요.”“아줌마랑 같이 갈게, 넌 집에 있어.”한혜숙은 아이를 낳은 지 한 달도 안 된 송연아가 자꾸 밖에 나가면 몸이 상할까 봐 걱정되었다.송연아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장 비서가 사 온 거라고요? 어떻게 그 여자가...?”송연아는 자신의 두 귀를 믿을 수 없었다.만약 장 비서가 샀다면, 이번 일은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어쨌든 장 비서는 악독한 인간이니까.오은화는 얼른 사실대로 말했다.“제가 운전기사한테 강아지를 사 오라고 했을 때, 장 비서님이 우연히 그 말을 들었고 자기가 사 오겠다고 했어요. 장 비서님은 동물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고, 전 그녀가 사 오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해서 맡겼던 거예요.”송연아는 정말 화가 났지만, 오은화는 줄곧 그녀를 돌봐주었고 이번 일도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송연아는 자신의 감정을 애써 억누르며 말했다.“얼른 강아지를 동물 병원에 데리고 가서 무슨 병이 있는지 검사 좀 해봐요.”오은화는 처음으로 이렇게 다급해하는 송연아의 모습을 보고는 물었다.“찬이 몸에 난 빨간 뾰루지들이 강아지랑 연관 있는 거예요?”송연아는 고개를 끄덕였다.“됐어요, 제가 운전기사님이랑 갈게요.”송연아는 중간에 또 다른 일이 생길까 봐 두려웠다.가기 전에 그녀는 한혜숙에게 말했다.“엄마는 나가지 마세요.”한혜숙이 대답했다.“알았어.”몸에 뾰루지가 나서 가려운지 평소에 얌전했던 찬이가 떼를 쓰기 시작했다....동물 병원.강아지의 몸 전체를 세밀하게 검사한 결과 몸에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송연아는 충격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바이러스요? 접촉하면 전염되나요?”그녀가 다급하게 물었다.찬이는 강아지를 안아본 적이 있었고 이 강아지도 며칠 동안 집에 있었다.어른들은 면역력이 높아서 괜찮았지만, 찬이는 아직 어리기에 붉은 뾰루지가 생겼고, 이는 감염 징후일 가능성이 컸다.동물 병원의 의사들도 이 분야에 대해 잘 몰랐다.“더 좋은 병원을 찾아 이 강아지의 혈액검사를 진행해서 이것이 어떤 바이러스인지, 전염성은 있는지, 그리고 전염될 여부가 강한지 확인해야 합니다.”송연아는 알았다고 했고 이 병원에서 바이러스의 전염성을 감별할 수 없
“원우한테는 왜 그랬어? 내가 알기로는 네가 내 비서가 될 수 있었던 건 원우가 추천해서로 기억하는데, 고마운 마음이 있어야 하지 않겠어?”강세헌이 일부러 물었다.그는 이미 비서의 실체를 알았기에 진원우의 일을 떠본 것이었다.진원우가 장 비서의 다른 비밀을 알았고 그녀가 그의 입을 다물게 하고 싶어서 해친 것인지 알고 싶었다.“송연아한테 주려고 한 다이아몬드 장신구가 마음에 들었어. 그래서 난 당신이 나한테 준 장신구라고 상상하면서 착용해 봤지. 그런데 진원우한테 들켰지 뭐야? 내가 당신을 향한 마음을 눈치챘다고, 진원우가 누설할까 봐 두려워서, 영원히 입을 다물게 하고 싶었어.”장 비서가 말을 마치고는 잠시 뜸을 들였다.“맞아, 진원우가 처음에 날 도와줘서 정말 고마웠어. 근데 진원우는 또한 내 걸림돌이기도 해. 앞뒤를 계속 생각하면서 망설이는 건 큰 금기야. 그래서 난 가만히 있지 않았고 그의 입을 영원히 다물게 할 수밖에 없었어. 근데 진원우가 그렇게 끈질기게 숨이 붙어있을 줄은 누가 알았겠어?”“네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다면서 이젠 왜 숨기지 않는 거지? 그렇게 자신이 있나? 내가 반드시 너의 제안을 받아들일 거라고?”강세헌의 몸은 뒤로 젖혀져 제멋대로인 듯 보였지만 신경 하나하나가 곤두서 있었다.“난 오랫동안 당신을 따라다녔기에 당신이 참 독한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어.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이번에 나도 충분한 준비를 했다는 거야.”그녀는 입술을 앙다물었다.“원래 내 계획대로면 이렇게 일찍 실행되지 않았는데, 송연아가 내 비밀을 발견했지 뭐야, 심재경한테 진원우를 숨겨달라고 한 건, 내가 계속해서 진원우를 해치려 들까 봐 그런 거겠지. 그런데 이건 나를 가장 두렵게 하는 건 아니야. 이렇게 빨리 계획을 실행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 건 송예걸이지, 몰래 나를 감시하고 나를 위협한 사람이니까, 일단 송예걸이 너한테 진원우는 내가 해친 거라고 말하면, 내가 을의 위치에 놓이게 될 거잖아. 그래서 내가 먼저 선수 쳐야 한다고 깨달았지,
송연아의 말에 강세헌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그녀는 오해하지 않았고 도리어 자신을 믿었다.이로써 강세헌은 장 비서를 죽여버려야겠다는 마음이 더 굳어졌다!그는 지금까지 이렇게 한 사람의 목숨을 미치도록 원한 적이 없었다!처음으로 그는 진지하게 사람을 죽이고 싶었다.뒷감당을 고려하지 않는 그런 살인을 말이다!송연아는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저도 치료법을 열심히 찾을게요.”강세헌은 나지막하게 말했다.“응.”분명 많은 교류가 없었는데도 그들은 서로의 생각을 잘 알고 있었다....송연아는 창문 밖을 내다보았고, 그녀의 팔은 천천히 미끄러져 허약하고 힘없이 다리에 떨어졌다.바깥 풍경이 빠르게 지나갔고 차가 평온하게 달리고 있었지만 그녀의 마음은 절대 평온하지 않았다.파도가 바위를 치는 듯 끊임없이 그녀의 심장을 때렸다.차가 멈췄다.송연아는 쓸데없는 생각은 접었고, 강인하고, 침착하고, 냉정하게 지금 일어나는 모든 일을 처리해야 했다.그녀는 장 비서 일은 강세헌이 처리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송연아는 단지 이 강아지의 몸 안에 있는 바이러스가 무엇인지 알아낼 방법을 찾기만 하면 되었다.이 바이러스를 검출할 수 있는 곳은 아마 유일하게 서원밖에 없을 것이다.국내 최고의 연구센터.그녀는 이 바이러스가 전염될지도 몰라, 운전기사를 차에서 기다리게 하고, 자신이 먼저 들어가 원장을 만나보려고 했다.“원장님을 만나고 싶은데, 연락처를 알려 주실 수 있을까요?”프런트 데스크의 직원은 송연아를 아래위로 쳐다보았고 그녀는 흉터 때문에 관심을 받지 않기 위해 꽁꽁 싸매고 있었다.게다가 그녀는 산후조리 중이어서 분장이 제대로 안되었다.데스크 직원이 말했다.“죄송합니다만, 저희 원장님은 아무나 만날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송연아는 미디브 연구센터의 사원증과 주치의 자격증을 제시하며 말했다.“저는 의사이자 연구원입니다. 원장님께 볼 일이 있습니다.”“죄송하지만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데스크 직원의 태도는 딱딱했고 사람을 무시하는 듯한 느낌
결혼식을 마친 후 방유정 아버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떠나기 전에 임지훈에게 회사를 완벽하게 인계하려고 회사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임지훈은 송연아와 강세헌 일행과 같이 먼저 프랑스로 돌아가서 그쪽 일을 마무리했다. 비록 임지훈이 회사에 있으면 강세헌은 보다 한가하게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가 떠난다고 해도 그냥 조금 더 바쁠 뿐이다. 어느 회사든 누가 떠나면 절대 안 되는 건 없다. 일주일의 시간 동안 임지훈은 프랑스에서의 일들을 모두 마치고 귀국해서 방씨 가문 회사에 들어갔다.임지훈도 국내에 집이 있었지만 방유정과 같이 방씨 가문에 들어갔다. 데릴사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유정 아버지의 병을 알고 방유정이 부모님과 많을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였다. 임지훈 역시 사위로서 그럴 의무가 있었다....반년 후, 방유정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방유정 어머니는 그 충격에 순식간에 많이 늙었다.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집안 분위기는 아주 저조했는데 방유정의 대부분 시간은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예전의 임 비서는 이제 임 대표가 되어 그의 능력으로 방씨 가문은 아주 관리가 잘 되었고 3개월 후 방유정 어머니의 상황도 많이 좋아졌다.방유정이 드디어 임신하게 되면서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간 일도 어느 정도 잊혀가고 있었다. 임지훈은 곧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기뻤고 방유정도 곧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방유정 어머니 역시 곧 외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정말로 모두 행복해할 만한 일이었다.방유정이 임신 6개월 때 그들은 프랑스로 갔는데 구애린은 남자아이를 낳았고 심재경의 딸은 이제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샛별이가 유일한 여자아이여서 모두가 예뻐했다. 샛별이는 아직 작고 어렸지만 찬이를 쫓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찬이는 샛별이 다리가 짧다고 계속 놀려줬으며 그게 재밌다고 샛별이는 키득키득 웃었다. 찬이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면 샛별이는 오빠라고 불렀는데 너무 귀여웠다.방유정이 말했다.“저도 딸을 낳고 싶어요.”구애린이 말했다.“그게
비록 손을 놓기 싫었지만, 방유정 아버지는 결국 방유정의 손을 임지훈에게 넘겨줬다.“앞으로 계속 사랑하며 살기를 바란다.”방유정도 아버지에게 말했다.“꼭 그렇게 할게요.”이어서 결혼식은 순서대로 일사천리로 피로연까지 모두 순리롭게 진행되었다.방유정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는데 딸이 그렇게도 바라던 결혼을 하니 너무 기뻤다. 그런데 결혼시키고 나니 또 잘 살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세상의 부모들은 다 그런가 보다.임지훈은 방유정을 데리고 강세헌이 있는 테이블로 가서는 비록 모두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소개했다. 모두 방유정을 다시 한번 소개받았는데 이번에는 심재경 친구의 사촌 동생이 아닌 임주훈의 아내로 말이다.구애린이 웃으며 말했다.“정말 너무너무 축하해요.”방유정도 웃으며 대답했다.“고마워요.”윤이도 어른들 따라 한마디 했다.“축하해요.”방유정은 윤이를 보며 말했다.“너무 귀여워요.”그녀가 손을 뻗어 윤이의 얼굴을 만지자, 윤이가 손을 내밀었다.“안아줘요.”송연아가 미간을 찌푸렸다.“윤이야, 안 돼.”방유정이 말했다.“괜찮아요.”그녀는 윤이를 안으며 말했다.“무겁지 않아요.”윤이는 그녀의 머리에 있는 금색 비녀를 보고 만지려고 했다. 방유정이 한복을 입고 있었기에 머리에 비녀를 하고 있었다. 방유정은 아주 시원하게 바로 비녀를 빼서 윤이에게 주었는데 송연아는 윤이를 제지하지 못해서 미안해했다.“이러면 안 돼요. 오늘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괜찮아요. 그냥 액세서리일 뿐이에요. 윤이가 좋아하니 놀게 해요.”방유정은 정말 성격이 좋았다. 역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만큼 성품이 좋았다. 가끔 조금 오만하긴 하지만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모두 그녀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송연아는 윤이를 안고 달래려고 했다.“윤이 착하지. 이건...”송연아는 윤이가 방유정을 어떻게 부르면 될지 생각했는데 방유정이 웃으며 말했다.“호칭일 뿐이니까 편
“지금 막 들었는데 유정 씨와 결혼한다면서요. 지금 방씨 가문에서 결혼식을 준비한다고 난리 났어요.”임지훈이 웃었다.“저 이래 봐도 능력 있는 남자예요. 여자들한테도 인기 많아요. 봐요, 결혼도 금방 하죠?”구애린이 말했다.“이제 우리 모두 짝이 있네요.”찬이도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지훈이 삼촌, 축하해요.”“고마워.”임지훈이 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심재경이 물었다.“그런데 데릴사위로 들어간다고 하던데요?”심재경의 말에 모두 놀라며 시선이 일제히 임지훈에게로 향했다. 확실히 놀랄만한 일이다. 임지훈의 조건에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돈도 있고 능력도 있어서 충분히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데 말이다.“하긴, 방씨 가문에 가장이 필요하긴 해요.”심재경이 그쪽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한마디 했다....임지훈의 결혼식으로 송연아와 강세헌도 프랑스로 돌아가는 일정을 늦췄다. 아무도 심재경의 결혼식을 보러 왔다가 임지의 결혼식까지 보게 될 줄을 생각을 못 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이건 임지훈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듯이 방유정과의 결혼은 정말로 찰나의 결정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그 역시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임지훈이 진원우에게 말했다.“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진원우가 말했다.“그런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방씨 가문은 돈도 많고 유정 씨도 예쁘고 그 정도면 만족해야지.”“만족해. 다만 너무 빠른 것 같아서 그래.”귀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싱글이었는데 이제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결혼식은 방씨 가문에서 모두 준비했는데 방유정 딸 하나이고 또 사위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결혼식은 아주 성대하게 치렀다. 방씨 가문의 친척들도 꽤 많이 참석해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비록 데릴사위라고 하지만, 임지훈 측은 심재경이 준비했는데 심재경 본인도 금방 결혼식을 치렀기 때문에 익숙한지라 아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었다....방유정은 정교한 메이크업을 하고 값진 웨딩드레스를 입었는
“잠도 잤는데 왜요? 모른 척하려고요?”방유정이 옷을 입더니 침대에서 꼼짝 안 하는 임지훈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왜요? 계속 그렇게 누워 있을 거예요?”임지훈이 말했다.“내 옷을 가져오지 않았잖아요. 나 입을 옷 없어요.”방유정은 그제야 임지훈이 옷이 없다는 걸 생각했다.“가져다 줄게요.”그녀는 곧바로 차에 가서 캐리어를 가지고 다시 올라갔다.“뭐 입을지는 알아서 찾아서 입고 내려와요. 아래층에서 기다릴게요.”방유정은 말을 마치고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임지훈은 침대에서 내려 결혼 얘기이니만큼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정장을 찾아서 입었다. 그가 정리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방유정은 부모님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의 부모는 그를 보자마자 더욱더 열정적이었다.임지훈이 건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저기...”“우리 딸 줄게요.”“아니에요. 지훈 씨가 저한테 시집 오는 거예요.”방유정이 정정했다.“...”“...”“...”방유정을 제외한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물었다.“유정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방유정은 자신이 여자이며 이 집안에 다른 후계자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아버지가 중병이고 자기는 회사를 관리할 능력도 없기에 어찌 보면 자기가 남편을 찾는다기보다는 방씨 가문의 회사를 경영할 사람을 찾는 거였다. 인제야 그녀는 부모가 조급해하는 의도를 이해했고 그녀 역시 가문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에 임지훈이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임지훈을 각별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그런 것들 때문이지 않겠는가.“유정 씨,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임지훈은 뼈대가 있는 남자로서 데릴사위 할 생각은 없었다.방유정이 말했다.“후회하면 안 돼요!”“왜 안 돼요? 유정 씨가 뭘 원하든지 저 모두 만족시켜 줄 수...”“제가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예요.”방유정이 외치자, 임지훈은 오히려 우스웠다. 한 여자가 나한테 시집오라고 하다니!“우리 유정이가 시집가는 거 맞아요
지금 그녀가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물으면 부모님은 더 속상해할 것 같았다.‘나 이제 어떻게 해야지? 어떻게 하면 좀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지? 결혼, 그래 결혼해야 해.’그녀는 자기가 결혼해야만 부모님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 상대도 지금 바로 방에 있지 않겠는가?‘남자 친구인 척을 해줬으니 이제 남편인 척해달라고 해야지. 진짜가 아니고 가짜라도 되니까 결혼하자고 해야겠어.’방유정은 진료 기록부를 다시 원래 위치에 넣고 비틀거리며 부모님 방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갔는데 임지훈이 아직 욕실에서 나오지 않아 침대 옆에 앉아서 기다렸다. 한참 지나자, 임지훈은 가운을 두르고 욕실에서 나왔는데 침대에 자기의 옷이 보이지 않아 방유정의 옆에 서서 물었다.“내 옷은요?”그는 방유정이 잊은 것 같아서 다시 말했다.“내 옷은 지금 당신 차 트렁크에 있어요.”방유정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지훈 씨, 우리 결혼해요.”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약을 잘못 먹었어요? 아니면 정신이 어떻게 됐어요?”“다 아니에요. 그냥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거칠었는데 임지훈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물었다.“울었어요? 누가 괴롭혔어요? 얘기해 봐요. 제가 가서 때려줄게...”임지훈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방유정이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임지훈은 갑작스러운 친밀감에 몸이 굳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게... 유정 씨...”그가 말하려고 할 때 방유정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의 손이 아래로 드리는 순간 몸에 걸친 유일한 가운마저 벗겨져서 흘러내렸다.“...”방유정은 워낙 임지훈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지금 행동이 충격에 의한 도발적인 행동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웃옷의 단추를 벗겨 가슴을 드러내고는 그의 가슴에 가까이하며 말했다.“저를 좀 봐봐요.”임지훈은 참을 수 없었는지 목젖을 굴렸는데 이름 모를 불길이 아랫배에서 솟아오르더니 순식간에 딱딱해졌다.“정말 후회하지 않겠어요?”임지훈도
방유정은 어머니가 자신의 어깨를 다독이자,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응원을 하시는 거였다.“화이팅!”방유정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지금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지?’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만 좋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갑자기 선 자리를 만들어주고 남자를 유혹하라고까지 하시다니?그녀는 어머니의 이마를 만지며 물었다.“엄마,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우리 이제 나가야 해.”방유정의 아버지는 기사가 이미 대기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집을 나갔고 방유정은 문 앞까지 그들을 배웅했다. 차가 떠나자, 그녀는 집으로 들어갔는데 어차피 임지훈이 자고 있었기에 지루할 것 같아서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그녀는 가만히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는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했다. 그런데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서 임지훈을 놀려주려고 그가 곤히 자는 방으로 올라가서는 화장대에서 화장품을 가져다가 침대 옆에 앉아 임지훈에게 예쁜 화장을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도 임지훈이 깨지 않자, 옆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눈이 아파 오니 옆에 기대서 잠이 들었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는 임지훈은 이미 깨어나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언, 언제 깼어요?”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방유정은 참을 수 없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훈의 얼굴은 정말로 오페라 가수 같았는데 어찌나 웃었는지 배가 아팠다. 임지훈은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물었다.“다 웃었어요?”방유정은 곧바로 웃음을 거두고 그의 손을 뿌리쳤다.“맘대로 제 몸에 손을 대지 말아요.”임지훈이 말했다.“유정 씨를 저에게 준다고 해도 거절이에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말했다.“뭐라고요? 저를 좋다고 하는 남자들이 줄을 서면 프랑스까지는 갈 거예요. 그런데 지훈 씨는 내가 싫다고요?”임지훈이 흠칫하자, 방유정이 그를 잡고 물었다.“지금 그
“방유정은 부모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알았어요. 하시고 싶은 대로 하세요.”“어서 지훈 씨 방으로 데려가.”방유정이 물었다.“어느 방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제야 깨달은 듯 말했다.“어머, 어떡해. 게스트룸은 아직 준비가 안 돼있어. 우선 네 방으로 데려가서 휴식하게 해.”방유정은 어머니의 말에 놀라며 말했다.“아빠, 엄마, 이 정도로 오픈 마인드였어요? 어떻게 제 방에 술 취한 남자를 데려가라고 하세요?”“네 말대로 취했는데 뭐 어때?”“술김에 어떤 짓도 한다는 말 몰라요?”방유정이 묻자, 그녀의 부모님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몰라.”방유정은 철저히 말문이 막혔다. 부모님과 임지훈이 정말로 모르는 사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임지훈이 그들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엄마 아빠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아무리 나를 결혼시키고 싶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만약 진짜로 무슨 일이 있으면 책임지라고 하고 바로 결혼시킬 거야.”임지훈은 그 말을 들으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바탕 뿜었다. 방유정의 부모님이 너무 열정적이어서 본인이 천당에 있는 것 같았는데 정말로 귀여운 부모님들이라고 생각했다.‘방유정은 전생에 은하계를 구했나 봐.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고 말이야.’방유정은 역겨워하며 말했다.“지훈 씨, 여기서 이러면 어떡해요. 화장실로 가야지.”“취했잖아.”방유정 어머니가 가정부를 불러 치우게 했다.“그만하고 불편해 보이는데 어서 방으로 데려다 쉬게 해.”방유정은 혼자서 임지훈을 옮길 수 없어서 가정부의 도움을 받아 함께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방에 도착하자, 그녀는 임지훈을 침대에 던졌는데 임지훈은 몸이 포근한 세계에 떨어진 듯 따뜻하고 향기로웠다.“무슨 향수를 써요?”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방유정이 말했다.“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잠이나 자요.”임지훈은 취한 건 사실이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말짱했다. 그는 눈을 감고 또 말했다
임지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요. 해명하지 않아도 화는 나지 않았을 건데, 굳이 해명하니 용서해 줄게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삐쭉거렸다.“그렇게 잘난 척하지 말아요. 그럼 좋은 말이 안 나가니까.”“...”임지훈이 할 말을 잃었다.그때 방유정의 어머니가 열정적으로 요리를 집어 그의 앞접시에 건넸다.“이건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요리인데 맛봐요.”임지훈이 집어서 입어 넣고 먹어보더니 말했다.“맛있습니다.”방유정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고 방유정 아버지는 그에게 술을 따랐다.“평소 주량이 어떻게 돼요?”임지훈이 웃으며 대답했다.“못합니다.”방유정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었다.“잘 마실 것 같은데 너무 겸손하시네요.”임지훈이 말했다.“아니에요. 아니에요.”방유정은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아빠, 지훈 씨는 일이 바빠서 내일 프랑스로 돌아가야 해요. 일을 망치면 안 되니까 술을 많이 주지 마세요.”방유정 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그래.”“네. 그러니까 한 잔씩만 해요.”말하면서 방유정은 술을 가져갔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너 정말 분위기를 깬다.”방유정이 말했다.“두 분의 건강을 생각해서예요.”방유정 어머니는 술병을 들고 임지훈에게 한 잔 따르고 또 남편에게도 한 잔 따랐다.“많이 마시게 되면 우리 집에 방이 많으니 그냥 휴식하면 돼요. 비행기는 내일 타면 되는데 급해 할 거 없잖아요.”방유정은 어머니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엄마, 이 사람을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집에서 잠을 자래요?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려고요?”“걱정하지 마. 조사해 봤는데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야.”“...”“...”방유정과 임지훈이 순간 놀랐다. 방유정은 평생 살면서 이렇게 굴욕적인 순간을 느낀 적이 없었다. 몇 년 동안 쌓아온 체면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만든 건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의 부모님이었다.방유정 아버지는 아내를 힐끗 쳐다
“지훈 씨는 취미가 뭐예요?”방유정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임지훈은 방유정의 물음에 잠시 당황하다가 자신의 생활을 떠올렸는데 일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휴가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에 심재경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계속 일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취미는 더구나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본인의 생활이 정말로 단조롭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옆에서 따뜻하게 말 한마디 건네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순간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내를 맞이해서 함께 서로 보살펴주며 지내고 싶었는데 그런 사람만 있다면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고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방유정을 바라봤는데 본인과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방유정은 아직도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라 다른 사람을 보살필 줄은 모를 것 같았다.“왜 그런 이상한 눈빛으로 봐요?”방유정의 물음에 임지훈이 되물었다.“어디가 이상한데요?”방유정은 좀 더 가까이 가서 그의 눈을 마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왜요? 설마 저를 사랑하게 된 건 아니죠?”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당신은 성격도 안 좋고 또 엄청 잘난체하는데 내가 왜요? 점심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제 들어가요.”시간을 보며 임지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굶었어요?”방유정이 그를 비웃었다.“식사 끝나면 저는 가도 되죠.”방유정은 순간 왠지 서운했다.“그렇게 가고 싶어요?”“여기는 제집이 아닌데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요.”방유정은 그를 향해 입을 삐쭉거리자, 임지훈은 의아해했다.“왜 그래요?”“내가 뭐요?”방유정은 짜증을 냈다.“유정 씨는 정말 변덕이 많네요. 그걸 고쳐요. 남자들은 변덕이 많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요.”방유정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집안으로 걸어들어갔다.임지훈은 고개를 돌려 못에 있는 물고기들을 한 번 더 보고는 뒤따라 들어갔다. 방유정이 집에 들어서자, 그녀의 어머니가 그들을 부르러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딸만 보였기에 그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