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게 서 있는 그 남자는 그녀의 길을 막았다.송연아는 그의 그림자에 감춰졌다.눈앞에 보이는 얼굴은 익숙했는데 바로--고훈이었다.그녀는 다급히 고개를 숙였다.“당신 누구예요?”고훈은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물었다.“나는 경매장에서 계속 당신을 주목하고 있었어요. 당신은 계속 강세헌을 훔쳐 보고 있던데, 강세헌이랑 무슨 사이예요? 왜 그를 훔쳐 보고 있었어요?”송연아는 고개를 숙이고 목소리를 가라앉히고 말했다.“잘못 보셨어요.”그렇게 말한 후 그녀는 떠나려고 했다.그러나 고훈은 그녀를 놓아주지 않고 길을 막았다.“당신은 수상해요. 자신의 모습을 숨기려 하는 걸 보아, 좋은 사람은 아니죠?”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송연아가 방심한 틈을 타 그녀의 마스크를 벗겼다.“아!”송연아는 너무 놀라 무의식적으로 얼굴을 가렸다.불빛 아래에서 그녀의 얼굴과 목의 흉터가 선명하게 드러났다.고훈도 깜짝 놀라며 외쳤다.“못생겼네!”그리고 그는 웃음을 터뜨렸다.“하하...”그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강세헌을 바라보며 말했다.“강세헌, 네 매력이 점점 더 커질 줄 몰랐어. 못생긴 괴물도 너에게 빠져들고 있어.”그렇게 말한 후 고훈의 시선은 다시 송연아에게 향했다.그제야 그는 그녀의 배가 부풀어 오른 것을 발견했다.“당신은 이렇게 못생겼는데 당신과 자는 남자가 있다고요?”고훈은 눈썹에 치켜올렸다.송연아는 자신의 흉터가 못생겼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못생겼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녀는 여전히 손을 움켜쥐었다.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옷깃을 잡아당겨 얼굴을 가리고 서둘러 도망치고 싶었다.하지만 고훈은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 물었다.“왜 그렇게 서둘러 도망쳐요? 훔쳐보고는 인정은 못 하겠어요?”강세헌은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왔다.그가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송연아는 점점 더 긴장했다.“이 못생긴 여자가 너를 훔쳐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 아니면 애초에 둘이 아는 사이였어? 저 여자 배 속에 있는 게 네 아이는 아니겠지? 하하...
진원우는 의아한 듯 물었다. “경매행사 CCTV 영상은 왜 필요해요?”강세헌은 차가운 눈빛으로 진원우를 힐끗 보더니 다시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강세헌의 눈빛 하나에 충분히 압박감이 느껴진다.진원우는 고개를 내렸고 더 이상 물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바로 대답했다. “지금 바로 다녀올게요.”송연아가 죽은 후, 강세헌은 다시 정신을 차렸지만, 모든 신경을 일하는 데만 쏟고 있었고 언제부턴가는 불면증에도 시달리고 있었다. 그래서 매일 밤 수면제 없이 잠을 이루지 못했다.강세헌은 예전에도 차갑고 이기적이었지만 지금은 더 말할 나위 없다.예전에는 외부 사람에게 차가웠지만 회사 사람들에게는 그나마 따뜻한 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비서로 있던 임지훈도 사직서를 내고 회사를 떠났다.강세헌이 무서워 나간 게 아니라 현재 그 누구도 강세헌에게 다가가기 어려워하고 있었고 이런 분위기에서 더 이상 회사에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떠났다. 회사에서 강세헌 옆을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냉랭한 기운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강세헌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주위 사람들에게 큰 압박감이 되고 직원들로 하여금 회사에 있는 내내 가시방석에 앉은 듯한 느낌을 받게 했다.그런 강세헌 옆에서 일하는 것은 학대나 다름없었다.진원우는 강세헌이 왜 영상을 갖고 오라고 하는지 궁금해 하지 않았다. 그저 지시에 따를 뿐이었다.진원우는 다시 경매장으로 갔고 구진학이 마침 뒷문으로 나가고 있었다.진원우가 구진학보다 한발 늦었다.구진학이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구진학은 송연아의 일을 덮어 주기 위해 미리 관리책임자에게 얘기해 혹시라도 누가 CCTV 영상을 달라고 하면 고장 났다고 말하라고 했다.구진학은 이곳의 단골이며 사장님과도 잘 아는 사이이다. 그래서 이런 일쯤은 쉽게 해결할 수 있다.진원우는 영상을 손에 넣지 못한 채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빈손으로 가고 있는 진원우의 얼굴은 울상이 되었고 돌아갈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그러나 호텔로 돌아오는 것 외에 딱히 도망갈 곳도 없었다.
몇 개 안 되는 글자가 강세헌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강세헌은 넋이 나간 채 한참 동안 휴대전화만 뚫어지게 봤다. 액정 화면이 어두워지면 다시 홈 버튼을 눌러 밝혔다. 그때마다 화면에 뜬 몇 글자가 더 똑똑히 보였다. 문자를 클릭하려는 손이 화면 가까이 갈수록 손가락은 더 심하게 떨렸다.강세헌은 크게 심호흡하면서 최대한 안정을 취하려고 했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떨리는 손으로 문자를 눌렀지만, 문자 수신함에는 방금 본 몇 글자 외에 다른 내용은 없었다.[송연아 살아있어.]강세헌은 눈살을 찌푸렸고 동공은 거침없이 흔들리고 있었다.윙-이때, 손에 쥐고 있던 휴대전화에서 또 진동이 울렸고 다시 한 통의 문자가 날라왔다.[송연아의 행방을 알고 싶으면 709호로 와.]강세헌은 누군가 자신을 709호로 유인하기 위해 일부러 보낸 문자라 생각했다.강세헌은 눈살을 찌푸렸다. 함정임을 분명히 알고 있지만 발걸음은 어느새 방을 나서고 있었다.송연아와 관련된 모든 일에서 강세헌은 냉정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극도의 불안정 상태에 이르고 있었다.송연아가 죽은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바보처럼 문자 한 통을 믿고 있었다. 강세헌은 방에서 나와 709호로 향했고 때마침 같은 층이어서 바로 도착할 수 있었다.“강세헌. 너 진짜 속네.” 고훈은 큰 소리로 웃었다.강세헌은 그 누구보다 똑똑하고 현명한 사람이다. 덫에 쉽게 걸릴 사람이 아니다.그러나 이 순간 강세헌은 바보처럼 문자만 믿고 여기로 왔다.“이렇게 멍청할 줄 몰랐어.” 고훈은 배를 꿇어앉고 웃었다.강세헌은 얼굴은 순식간에 얼음장처럼 차가워졌고 고훈을 보며 경고했다. “한 번만 더 송연아 일로 사람 놀리면 그때는 내가 너를 갈기갈기 찢어 죽일 거야.”말이 끝나자마자 강세헌은 뒤돌아섰다.고훈은 방문에 기댄 채 팔짱을 끼며 말했다. “송연아는 죽었어. 시간이 지나면 다 잊게 될 거야.”강세헌은 고훈의 말에 대꾸도 없이 성큼성큼 걸어서 방으로 들어갔다. 고훈은 혼잣말로 되뇌었다. “강세헌. 나와 내기
강세헌은 바닥에 기어다니는 개미를 보듯 시선을 아래로 내려보며 말했다. “내가 말했지? 죽는 것보다 더 못한 삶을 살게 될 거라고?”강세욱이 바닥에 엎드려 있는 모습은 궁지에 빠진 쥐처럼 초라해 보였으나 강세헌에 대한 증오는 온몸으로 내 뿜고 있었다.강세욱은 주먹을 꽉 쥔 채 손을 부들부들 떨었고 팔목 핏줄은 당장이라도 터질 듯 튀어나와 있었다.강세욱은 같은 강 씨인 강세헌의 잘난 모습이 자신을 더 초라하게 만들어 비참함을 느꼈다.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강세헌에게 또 졌다. 그것도 너무 확실하게 졌다. 바닥에서 일어난 강세욱은 흉악한 얼굴을 하며 강세헌에게 말했다. “강세헌. 너는 나를 못 죽일 거야. 그렇지? 넌 남자도 아니야. 능력이 있으면 한번 죽여 봐. 내가 널 함부로 무시 못 하게.”강세욱은 당장이라도 덮칠 것 같은 기세로 강세헌을 향해 뛰어가려 했다.그러나 한 발짝 떼기도 전에 옆 간호조무사들에 의해 제지당했다.병원장은 강세욱을 보며 말했다. “오늘 주사를 아직 안 맞았네요.”강세욱은 몸부림쳤다.그러나 혼자서는 역부족이었다.병원에 갇힌 이후 강세욱은 하루에 한 번 주사를 맞고 있었다.이 주사는 온몸의 근육을 축 늘어지게 함으로써 힘이 없어 자살 시도조차 못 하게 한다.주사를 맞자마자 강세욱은 바닥에 축 널브러졌다.도망갈 거라는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힘도 없거니와 몸에 위치추적기가 장착되어 있어 도망가려고 해도 갈 수가 없다.죽고 싶어도 못 죽는 이 상황은 강세욱이 삶이 죽음보다 못하다는 것을 그대로 느끼게 했다.강세욱이 고개를 들어 강세헌을 향해 비웃으며 말했다. “강세헌. 너도 나를 이기진 못했어. 안 그래? 송연아도 죽었고 너도 평생 힘들겠지? 하하...”강세욱은 미쳐버린 듯한 모습으로 계속 말했다. “나는 심지어 심재경 결혼식까지 가서 웨이터에게 쪽지를 전달하라고 부탁했어. 송연아를 어떻게든 옥상으로 유인해서 내가 잡고 있어야 했거든. 근데 역시 송연아! 쪽지에 안 속더라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애를
진원우는 강세헌쪽을 향해 곁눈질했다. 구애린이 사무실로 쳐들어온 것에 대해 강세헌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했다. 아버지는 다르지만 그래도 같은 엄마를 두고 있는 강세헌 동생이기 때문이다.그러나 강세헌은 덤덤했고 심지어 무관심으로 일관했다.진원우는 아무 말 없이 분위기만 살폈다.강세헌의 무정함에 진원우도 놀랐다. 사실 구애린을 여동생으로 받아들이면 적어도 강세헌에게 친척이 생겨 혼자가 아니기에 충분히 인정해도 된다고 진원우는 생각했다.“강세헌 씨죠? 제가 조사를 해 봤어요. 사진도 봤었고요. 임옥민 씨가 어머니 되시죠? 물론 저의 어머니이기도 하죠. 어머니 산소가 어디 있는지 알려주세요. 가서 절이라도 하려고요.” 구애린은 강세헌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말했다.기세가 등등했고 강세헌이 알려주지 않으면 쉽게 물러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강세헌은 고개를 들어 장 비서를 보며 말했다. “경호원 불러.”장 비서는 마음속으로 내심 기뻤지만,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네. 알겠습니다.”“뭐 하는 거예요?” 구애린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의아한 듯 물었다. “저는 임옥민 씨의 딸입니다!”구애린 말에 장 비서가 끼어들었다. “당신이 누구든 허락 없이 함부로 들어온 것은 잘 못 된 거예요.”이때 경호원들이 사무실에 도착했고 장 비서는 가차 없이 말했다. “끌고 나가세요.”송연아가 죽은 후, 장 비서는 강세헌 옆에 그 어떤 여자가 오는 것도 용납할 수 없었다. 장 비서는 자신이 송연아를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랐다. 그래서 일단 여자만 나타나면 경계하고 쫓아내고 싶어 했다. 구애린은 경호원들에게 제압됐다. “... 강세헌 씨!” 구애린이 아직도 할 말이 많은 듯 밖에서 소리쳤다. “엄마는 당신 혼자만의 소유물이 아니에요. 독점할 생각 하지 마세요!”경호원들이 구애린을 끌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나서야 주위가 조용해졌다. 갑자기 들이닥친 상황에 사무실도 쥐 죽은 듯했고 다들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강세헌은 불쾌한 티를
구진학은 구애린에게 반찬을 올려주며 말했다. “빨리 밥 먹어.”구진학은 송연아에 대해 구애린에게 얘기하지 않았다. 송연아는 너무 많은 사람이 본인을 아는 것을 달가워 않는다. 그래서 딸인 구애린에게도 숨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호기심이 많은 구애린은 계속 꼬치꼬치 캐물었다. “아빠. 알려주세요. 진짜 너무 궁금해서 그래요.”“너는 강세헌을 보고 어땠어? 어떤 사람 같아 보여?”구진학은 일부러 화제를 돌렸고 구애린의 주의를 끄는 데 성공했다. 구애린은 구진학의 물음에 한참 생각하고 나서 대답했다. “신은 강세헌에게 우수한 피지컬과 외모를 줬지만, 그에 반해 최악의 성질머리를 준 것 같아요. 그래서 신은 늘 공평하다고 하죠.” 구애린의 대답에 구진학은 그저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뭐가 그래서예요?” 구진학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구애린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구진학은 구애린이 강세헌을 만난 후, 혹시 다른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그러나 현재 구애린 표정으로도 알 수 있듯이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것 같다. 구애린은 오로지 임옥민의 산소를 찾는 것에 몰두하고 있었다.구애린의 모습에 구진학도 한시름 놓았다. 구애린은 친딸은 아니지만 그 누구보다도 효녀다. 구애린은 구진학의 말뜻을 바로 알아차리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아빠. 나와 강세헌은 혈연관계가 있는 오빠와 동생이에요. 강세헌이 아무리 잘 생겨도 좋아할 일은 없어요. 아빠. 정신 차려요!”구애린은 두 살 때쯤 입양됐다. 너무 어린 나이에 입양돼 그 전의 일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게다가 구진학과 임옥민은 구애린을 친자식으로 여기며 키웠다. 구진학은 한 번도 구애린 앞에서 입양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었다. 구애린도 자신이 구진학과 임옥민의 친딸로 생각하며 살고 있다. “내가 멍청했어. 내가 멍청했어.” 구진학은 얼버무리며 말했다. “점심에 마신 술이 저녁이 다 돼도 안 깨네.”“아빠. 엄마가 돌아가셔서 슬픈 것은 알아요. 하지만 꼭 몸조심하셔
송연아의 대답은 구진학의 기대와 달랐다. “저도 방법이 없어요.”실제로 별 방법이 없기도 하지만 있다고 해도 송연아는 절대 말하지 않을 것이다. 송연아는 강세헌의 모든 결정을 존중한다. 항상 강세헌 입장에서 생각하며 강세헌은 당연히 엄마 아빠가 본인 혼자만의 부모님이길 바랄 것이다. 입장을 바꿔 송연아 본인이 이런 상황에 부닥쳐 있어도 똑같이 했을 것이다. 이기적이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겠지만 이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지상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송연아는 강세헌이 이기적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임옥민이 구진학에 대해 좋은 감정이 생긴 이유는 구진학과 함께 보낸 시간이 길고 임옥민의 목숨을 살려 준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구진학에 대해 호감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구진학이 임옥민의 기억을 지우지 않고 데려가지 않았다면 구진학에게 호감이 생기지 않을 수도 있었다.구진학은 실망한 듯 말을 이었다.“연아 씨...”“연아 씨도 아시다시피 강세헌은 내가 본인 어머니를 해쳤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나에게 산소에 대한 정보를 숨겼죠. 강세헌은 강단있는 사람이에요. 물론 연아 씨도 잘 알겠죠. 이렇게 흠잡을 데 없는 사람에게서 답변을 바라기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에요.”구진학은 말을 마치고 그저 묵묵히 앉아 있었다. 강세헌은 확실히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강세헌이 말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입 밖으로 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휴...”구진학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이제 나이를 먹을 만큼 먹어서 죽기 전에 애린 엄마에게 인사하러 가야 하는데... 이것도 내 욕심이겠죠?” 구진학은 송연아가 조금이라도 얘기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계속 말했다.구진학은 강세헌에 대해 어디서부터 어떻게 얘기해야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고 진짜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나 송연아는 고개를 내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구진학은 미안한 듯 손짓하며 말했다. “제가 괜한 질문을 했네요.”“아니에요.” 송연아는 대답 했다. “휴... 계속 드세요.
이름: Jane(제인)나이: 30출생지: 한국송연아는 일부러 나이를 수정했다. 이름도 현지 생활을 위해 이곳에 와서 새로 지었고 실명도 감출 필요가 있었다.그 외에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강세헌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이게 다야?”왕호경은 다급한 듯 대답했다. “응. 정보가 없어. 내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 여자 정보를 찾을 수가 없어. 확인된 내용들은 자료에 있는 게 전부야. 하지만 네가 허락만 하면 내가 직접 미국에 가서 제인을 만나 볼 거야. 내가 봤을 때 이 사람이 애국심이 강한 사람이면 무조건 귀국하려고 할 거야.” 강세헌은 바로 거절했다. “관심 없어.”“장 비서. 손님 가신대.”강세헌이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관심 두고 싶지 않은 프로젝트에 대해 얘기를 추가로 해봤자 시간 낭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왕호경은 포기하지 않았다. “강 대표. 연아 씨가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강세헌의 얼굴이 순식간에 변했다. 동공이 심하게 흔들렸고 냉정한 모습을 유지하기위해 애쓰고 있었지만, 당장이라도 폭발할 화산처럼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왕호경은 말하자마자 후회했다. 송연아 이름을 쉽게 입에 올린다는 것은 강세헌의 화를 불러일으키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아니야. 못 들은 걸로 해. 나 이무 말 안 했어.” 말이 끝나자마자 왕호경은 바로 사무실을 나갔다. 왕호경은 얼굴의 식은땀을 닦으며 성큼성큼 밖으로 걸어갔다. 송연아는 의사다. 그래서 일부러 송연아를 언급해 강세헌의 관심을 끌고 싶었다. 그러나 오히려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린 격이 됐다. 왕호경이 사무실을 나간 후, 강세헌은 이미 송연아라는 세글자에 마음의 평정을 잃었다.오늘도 강세헌은 불면증에 시달렸고 수면제조차 소용이 없었다. 초기에는 수면제 한 알로도 충분했지만 지금은 여섯 알을 먹어도 효과가 없을 정도로 약에 대한 내성이 생겼다.강세헌은 수면제 한 움큼을 잡고 몇 알인지 정확히 세지도 않은채 입으로 넣고 물을 꿀꺽
결혼식을 마친 후 방유정 아버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떠나기 전에 임지훈에게 회사를 완벽하게 인계하려고 회사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임지훈은 송연아와 강세헌 일행과 같이 먼저 프랑스로 돌아가서 그쪽 일을 마무리했다. 비록 임지훈이 회사에 있으면 강세헌은 보다 한가하게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가 떠난다고 해도 그냥 조금 더 바쁠 뿐이다. 어느 회사든 누가 떠나면 절대 안 되는 건 없다. 일주일의 시간 동안 임지훈은 프랑스에서의 일들을 모두 마치고 귀국해서 방씨 가문 회사에 들어갔다.임지훈도 국내에 집이 있었지만 방유정과 같이 방씨 가문에 들어갔다. 데릴사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유정 아버지의 병을 알고 방유정이 부모님과 많을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였다. 임지훈 역시 사위로서 그럴 의무가 있었다....반년 후, 방유정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방유정 어머니는 그 충격에 순식간에 많이 늙었다.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집안 분위기는 아주 저조했는데 방유정의 대부분 시간은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예전의 임 비서는 이제 임 대표가 되어 그의 능력으로 방씨 가문은 아주 관리가 잘 되었고 3개월 후 방유정 어머니의 상황도 많이 좋아졌다.방유정이 드디어 임신하게 되면서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간 일도 어느 정도 잊혀가고 있었다. 임지훈은 곧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기뻤고 방유정도 곧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방유정 어머니 역시 곧 외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정말로 모두 행복해할 만한 일이었다.방유정이 임신 6개월 때 그들은 프랑스로 갔는데 구애린은 남자아이를 낳았고 심재경의 딸은 이제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샛별이가 유일한 여자아이여서 모두가 예뻐했다. 샛별이는 아직 작고 어렸지만 찬이를 쫓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찬이는 샛별이 다리가 짧다고 계속 놀려줬으며 그게 재밌다고 샛별이는 키득키득 웃었다. 찬이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면 샛별이는 오빠라고 불렀는데 너무 귀여웠다.방유정이 말했다.“저도 딸을 낳고 싶어요.”구애린이 말했다.“그게
비록 손을 놓기 싫었지만, 방유정 아버지는 결국 방유정의 손을 임지훈에게 넘겨줬다.“앞으로 계속 사랑하며 살기를 바란다.”방유정도 아버지에게 말했다.“꼭 그렇게 할게요.”이어서 결혼식은 순서대로 일사천리로 피로연까지 모두 순리롭게 진행되었다.방유정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는데 딸이 그렇게도 바라던 결혼을 하니 너무 기뻤다. 그런데 결혼시키고 나니 또 잘 살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세상의 부모들은 다 그런가 보다.임지훈은 방유정을 데리고 강세헌이 있는 테이블로 가서는 비록 모두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소개했다. 모두 방유정을 다시 한번 소개받았는데 이번에는 심재경 친구의 사촌 동생이 아닌 임주훈의 아내로 말이다.구애린이 웃으며 말했다.“정말 너무너무 축하해요.”방유정도 웃으며 대답했다.“고마워요.”윤이도 어른들 따라 한마디 했다.“축하해요.”방유정은 윤이를 보며 말했다.“너무 귀여워요.”그녀가 손을 뻗어 윤이의 얼굴을 만지자, 윤이가 손을 내밀었다.“안아줘요.”송연아가 미간을 찌푸렸다.“윤이야, 안 돼.”방유정이 말했다.“괜찮아요.”그녀는 윤이를 안으며 말했다.“무겁지 않아요.”윤이는 그녀의 머리에 있는 금색 비녀를 보고 만지려고 했다. 방유정이 한복을 입고 있었기에 머리에 비녀를 하고 있었다. 방유정은 아주 시원하게 바로 비녀를 빼서 윤이에게 주었는데 송연아는 윤이를 제지하지 못해서 미안해했다.“이러면 안 돼요. 오늘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괜찮아요. 그냥 액세서리일 뿐이에요. 윤이가 좋아하니 놀게 해요.”방유정은 정말 성격이 좋았다. 역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만큼 성품이 좋았다. 가끔 조금 오만하긴 하지만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모두 그녀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송연아는 윤이를 안고 달래려고 했다.“윤이 착하지. 이건...”송연아는 윤이가 방유정을 어떻게 부르면 될지 생각했는데 방유정이 웃으며 말했다.“호칭일 뿐이니까 편
“지금 막 들었는데 유정 씨와 결혼한다면서요. 지금 방씨 가문에서 결혼식을 준비한다고 난리 났어요.”임지훈이 웃었다.“저 이래 봐도 능력 있는 남자예요. 여자들한테도 인기 많아요. 봐요, 결혼도 금방 하죠?”구애린이 말했다.“이제 우리 모두 짝이 있네요.”찬이도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지훈이 삼촌, 축하해요.”“고마워.”임지훈이 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심재경이 물었다.“그런데 데릴사위로 들어간다고 하던데요?”심재경의 말에 모두 놀라며 시선이 일제히 임지훈에게로 향했다. 확실히 놀랄만한 일이다. 임지훈의 조건에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돈도 있고 능력도 있어서 충분히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데 말이다.“하긴, 방씨 가문에 가장이 필요하긴 해요.”심재경이 그쪽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한마디 했다....임지훈의 결혼식으로 송연아와 강세헌도 프랑스로 돌아가는 일정을 늦췄다. 아무도 심재경의 결혼식을 보러 왔다가 임지의 결혼식까지 보게 될 줄을 생각을 못 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이건 임지훈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듯이 방유정과의 결혼은 정말로 찰나의 결정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그 역시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임지훈이 진원우에게 말했다.“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진원우가 말했다.“그런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방씨 가문은 돈도 많고 유정 씨도 예쁘고 그 정도면 만족해야지.”“만족해. 다만 너무 빠른 것 같아서 그래.”귀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싱글이었는데 이제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결혼식은 방씨 가문에서 모두 준비했는데 방유정 딸 하나이고 또 사위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결혼식은 아주 성대하게 치렀다. 방씨 가문의 친척들도 꽤 많이 참석해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비록 데릴사위라고 하지만, 임지훈 측은 심재경이 준비했는데 심재경 본인도 금방 결혼식을 치렀기 때문에 익숙한지라 아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었다....방유정은 정교한 메이크업을 하고 값진 웨딩드레스를 입었는
“잠도 잤는데 왜요? 모른 척하려고요?”방유정이 옷을 입더니 침대에서 꼼짝 안 하는 임지훈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왜요? 계속 그렇게 누워 있을 거예요?”임지훈이 말했다.“내 옷을 가져오지 않았잖아요. 나 입을 옷 없어요.”방유정은 그제야 임지훈이 옷이 없다는 걸 생각했다.“가져다 줄게요.”그녀는 곧바로 차에 가서 캐리어를 가지고 다시 올라갔다.“뭐 입을지는 알아서 찾아서 입고 내려와요. 아래층에서 기다릴게요.”방유정은 말을 마치고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임지훈은 침대에서 내려 결혼 얘기이니만큼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정장을 찾아서 입었다. 그가 정리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방유정은 부모님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의 부모는 그를 보자마자 더욱더 열정적이었다.임지훈이 건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저기...”“우리 딸 줄게요.”“아니에요. 지훈 씨가 저한테 시집 오는 거예요.”방유정이 정정했다.“...”“...”“...”방유정을 제외한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물었다.“유정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방유정은 자신이 여자이며 이 집안에 다른 후계자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아버지가 중병이고 자기는 회사를 관리할 능력도 없기에 어찌 보면 자기가 남편을 찾는다기보다는 방씨 가문의 회사를 경영할 사람을 찾는 거였다. 인제야 그녀는 부모가 조급해하는 의도를 이해했고 그녀 역시 가문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에 임지훈이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임지훈을 각별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그런 것들 때문이지 않겠는가.“유정 씨,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임지훈은 뼈대가 있는 남자로서 데릴사위 할 생각은 없었다.방유정이 말했다.“후회하면 안 돼요!”“왜 안 돼요? 유정 씨가 뭘 원하든지 저 모두 만족시켜 줄 수...”“제가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예요.”방유정이 외치자, 임지훈은 오히려 우스웠다. 한 여자가 나한테 시집오라고 하다니!“우리 유정이가 시집가는 거 맞아요
지금 그녀가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물으면 부모님은 더 속상해할 것 같았다.‘나 이제 어떻게 해야지? 어떻게 하면 좀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지? 결혼, 그래 결혼해야 해.’그녀는 자기가 결혼해야만 부모님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 상대도 지금 바로 방에 있지 않겠는가?‘남자 친구인 척을 해줬으니 이제 남편인 척해달라고 해야지. 진짜가 아니고 가짜라도 되니까 결혼하자고 해야겠어.’방유정은 진료 기록부를 다시 원래 위치에 넣고 비틀거리며 부모님 방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갔는데 임지훈이 아직 욕실에서 나오지 않아 침대 옆에 앉아서 기다렸다. 한참 지나자, 임지훈은 가운을 두르고 욕실에서 나왔는데 침대에 자기의 옷이 보이지 않아 방유정의 옆에 서서 물었다.“내 옷은요?”그는 방유정이 잊은 것 같아서 다시 말했다.“내 옷은 지금 당신 차 트렁크에 있어요.”방유정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지훈 씨, 우리 결혼해요.”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약을 잘못 먹었어요? 아니면 정신이 어떻게 됐어요?”“다 아니에요. 그냥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거칠었는데 임지훈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물었다.“울었어요? 누가 괴롭혔어요? 얘기해 봐요. 제가 가서 때려줄게...”임지훈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방유정이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임지훈은 갑작스러운 친밀감에 몸이 굳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게... 유정 씨...”그가 말하려고 할 때 방유정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의 손이 아래로 드리는 순간 몸에 걸친 유일한 가운마저 벗겨져서 흘러내렸다.“...”방유정은 워낙 임지훈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지금 행동이 충격에 의한 도발적인 행동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웃옷의 단추를 벗겨 가슴을 드러내고는 그의 가슴에 가까이하며 말했다.“저를 좀 봐봐요.”임지훈은 참을 수 없었는지 목젖을 굴렸는데 이름 모를 불길이 아랫배에서 솟아오르더니 순식간에 딱딱해졌다.“정말 후회하지 않겠어요?”임지훈도
방유정은 어머니가 자신의 어깨를 다독이자,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응원을 하시는 거였다.“화이팅!”방유정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지금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지?’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만 좋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갑자기 선 자리를 만들어주고 남자를 유혹하라고까지 하시다니?그녀는 어머니의 이마를 만지며 물었다.“엄마,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우리 이제 나가야 해.”방유정의 아버지는 기사가 이미 대기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집을 나갔고 방유정은 문 앞까지 그들을 배웅했다. 차가 떠나자, 그녀는 집으로 들어갔는데 어차피 임지훈이 자고 있었기에 지루할 것 같아서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그녀는 가만히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는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했다. 그런데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서 임지훈을 놀려주려고 그가 곤히 자는 방으로 올라가서는 화장대에서 화장품을 가져다가 침대 옆에 앉아 임지훈에게 예쁜 화장을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도 임지훈이 깨지 않자, 옆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눈이 아파 오니 옆에 기대서 잠이 들었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는 임지훈은 이미 깨어나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언, 언제 깼어요?”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방유정은 참을 수 없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훈의 얼굴은 정말로 오페라 가수 같았는데 어찌나 웃었는지 배가 아팠다. 임지훈은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물었다.“다 웃었어요?”방유정은 곧바로 웃음을 거두고 그의 손을 뿌리쳤다.“맘대로 제 몸에 손을 대지 말아요.”임지훈이 말했다.“유정 씨를 저에게 준다고 해도 거절이에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말했다.“뭐라고요? 저를 좋다고 하는 남자들이 줄을 서면 프랑스까지는 갈 거예요. 그런데 지훈 씨는 내가 싫다고요?”임지훈이 흠칫하자, 방유정이 그를 잡고 물었다.“지금 그
“방유정은 부모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알았어요. 하시고 싶은 대로 하세요.”“어서 지훈 씨 방으로 데려가.”방유정이 물었다.“어느 방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제야 깨달은 듯 말했다.“어머, 어떡해. 게스트룸은 아직 준비가 안 돼있어. 우선 네 방으로 데려가서 휴식하게 해.”방유정은 어머니의 말에 놀라며 말했다.“아빠, 엄마, 이 정도로 오픈 마인드였어요? 어떻게 제 방에 술 취한 남자를 데려가라고 하세요?”“네 말대로 취했는데 뭐 어때?”“술김에 어떤 짓도 한다는 말 몰라요?”방유정이 묻자, 그녀의 부모님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몰라.”방유정은 철저히 말문이 막혔다. 부모님과 임지훈이 정말로 모르는 사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임지훈이 그들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엄마 아빠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아무리 나를 결혼시키고 싶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만약 진짜로 무슨 일이 있으면 책임지라고 하고 바로 결혼시킬 거야.”임지훈은 그 말을 들으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바탕 뿜었다. 방유정의 부모님이 너무 열정적이어서 본인이 천당에 있는 것 같았는데 정말로 귀여운 부모님들이라고 생각했다.‘방유정은 전생에 은하계를 구했나 봐.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고 말이야.’방유정은 역겨워하며 말했다.“지훈 씨, 여기서 이러면 어떡해요. 화장실로 가야지.”“취했잖아.”방유정 어머니가 가정부를 불러 치우게 했다.“그만하고 불편해 보이는데 어서 방으로 데려다 쉬게 해.”방유정은 혼자서 임지훈을 옮길 수 없어서 가정부의 도움을 받아 함께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방에 도착하자, 그녀는 임지훈을 침대에 던졌는데 임지훈은 몸이 포근한 세계에 떨어진 듯 따뜻하고 향기로웠다.“무슨 향수를 써요?”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방유정이 말했다.“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잠이나 자요.”임지훈은 취한 건 사실이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말짱했다. 그는 눈을 감고 또 말했다
임지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요. 해명하지 않아도 화는 나지 않았을 건데, 굳이 해명하니 용서해 줄게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삐쭉거렸다.“그렇게 잘난 척하지 말아요. 그럼 좋은 말이 안 나가니까.”“...”임지훈이 할 말을 잃었다.그때 방유정의 어머니가 열정적으로 요리를 집어 그의 앞접시에 건넸다.“이건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요리인데 맛봐요.”임지훈이 집어서 입어 넣고 먹어보더니 말했다.“맛있습니다.”방유정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고 방유정 아버지는 그에게 술을 따랐다.“평소 주량이 어떻게 돼요?”임지훈이 웃으며 대답했다.“못합니다.”방유정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었다.“잘 마실 것 같은데 너무 겸손하시네요.”임지훈이 말했다.“아니에요. 아니에요.”방유정은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아빠, 지훈 씨는 일이 바빠서 내일 프랑스로 돌아가야 해요. 일을 망치면 안 되니까 술을 많이 주지 마세요.”방유정 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그래.”“네. 그러니까 한 잔씩만 해요.”말하면서 방유정은 술을 가져갔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너 정말 분위기를 깬다.”방유정이 말했다.“두 분의 건강을 생각해서예요.”방유정 어머니는 술병을 들고 임지훈에게 한 잔 따르고 또 남편에게도 한 잔 따랐다.“많이 마시게 되면 우리 집에 방이 많으니 그냥 휴식하면 돼요. 비행기는 내일 타면 되는데 급해 할 거 없잖아요.”방유정은 어머니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엄마, 이 사람을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집에서 잠을 자래요?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려고요?”“걱정하지 마. 조사해 봤는데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야.”“...”“...”방유정과 임지훈이 순간 놀랐다. 방유정은 평생 살면서 이렇게 굴욕적인 순간을 느낀 적이 없었다. 몇 년 동안 쌓아온 체면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만든 건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의 부모님이었다.방유정 아버지는 아내를 힐끗 쳐다
“지훈 씨는 취미가 뭐예요?”방유정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임지훈은 방유정의 물음에 잠시 당황하다가 자신의 생활을 떠올렸는데 일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휴가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에 심재경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계속 일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취미는 더구나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본인의 생활이 정말로 단조롭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옆에서 따뜻하게 말 한마디 건네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순간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내를 맞이해서 함께 서로 보살펴주며 지내고 싶었는데 그런 사람만 있다면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고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방유정을 바라봤는데 본인과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방유정은 아직도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라 다른 사람을 보살필 줄은 모를 것 같았다.“왜 그런 이상한 눈빛으로 봐요?”방유정의 물음에 임지훈이 되물었다.“어디가 이상한데요?”방유정은 좀 더 가까이 가서 그의 눈을 마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왜요? 설마 저를 사랑하게 된 건 아니죠?”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당신은 성격도 안 좋고 또 엄청 잘난체하는데 내가 왜요? 점심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제 들어가요.”시간을 보며 임지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굶었어요?”방유정이 그를 비웃었다.“식사 끝나면 저는 가도 되죠.”방유정은 순간 왠지 서운했다.“그렇게 가고 싶어요?”“여기는 제집이 아닌데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요.”방유정은 그를 향해 입을 삐쭉거리자, 임지훈은 의아해했다.“왜 그래요?”“내가 뭐요?”방유정은 짜증을 냈다.“유정 씨는 정말 변덕이 많네요. 그걸 고쳐요. 남자들은 변덕이 많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요.”방유정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집안으로 걸어들어갔다.임지훈은 고개를 돌려 못에 있는 물고기들을 한 번 더 보고는 뒤따라 들어갔다. 방유정이 집에 들어서자, 그녀의 어머니가 그들을 부르러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딸만 보였기에 그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