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당황해서 고개를 돌렸다.발각될까 봐 두려웠다.구진학은 이를 알아차리고 몸으로 그녀를 막으며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무슨 일이에요?”송연아가 속삭였다.“한국에서 알던 지인을 봤어요.”말하면서 그녀는 자신이 착각하지 않았는지 확인하기 위해 다시 그쪽을 흘끗 쳐다보았다. 그 사람은 정말 고훈이었다.그녀는 그가 여기 올 줄은 몰랐다.구진학이 말했다.“마스크를 쓰고 있으면 장소가 어두워서 알아보지 못할 테니 걱정하지 마요.”송연아도 갑자기 고훈을 봐서 긴장했지만, 진정하고 생각해 보니 뒤쪽에 앉아 있기 때문에 고훈이 그녀를 알아보기는 어려울 것이다.게다가 지금 그녀의 모습으로는 알아볼 수 없을 것이다.서서히 그녀는 진정되었다.곧 경매가 시작되었다.주최자는 몇 마디 간략히 소개한 후 오늘의 주제를 소개했다.이번 경매에서는 문화 유물과 보석이 주요 주제였다.첫 번째 순서는 한 폭의 그림이었다.매우 정규적인 경매였지만 모든 골동품이 진품이라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에 경매사의 경험과 안목도 필요했다.구진학은 그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침착했다.송연아는 이런 것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구경할 겸 왔다.“보통 처음 몇 개는 분위기를 띄우는 목적으로 수집할 가치가 없는 물건들이 나오는데, 뒤에는 확실히 좋은 물건이 있을 거예요. 내 경험에 따르면 모든 경매에는 몇 가지 희귀한 진품이 있어요. 이번에는 오래된 성이 올라올 거라고 들었어요.”구진학이 말했다.송연아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속삭였다.“건물 같은 것도 경매가 돼요?”구진학은 웃으며 말했다.“당연하죠. 프랑스 귀족의 후손들이 재산을 탕진해서 조상들이 남긴 물건들을 전부 팔고 있다고 들었어요.”그들의 말소리가 앞사람들의 주의를 끌었는지 고훈은 뒤돌아보다가 이런 장소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는 사람을 보았다. 그는 자연스럽게 눈썹을 찡그렸다.왜 저렇게 신비스럽게 굴어?그는 오히려 호기심이 생겼다.송연아는 고개를 들어 고훈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다급히 눈을
곧게 서 있는 그 남자는 그녀의 길을 막았다.송연아는 그의 그림자에 감춰졌다.눈앞에 보이는 얼굴은 익숙했는데 바로--고훈이었다.그녀는 다급히 고개를 숙였다.“당신 누구예요?”고훈은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물었다.“나는 경매장에서 계속 당신을 주목하고 있었어요. 당신은 계속 강세헌을 훔쳐 보고 있던데, 강세헌이랑 무슨 사이예요? 왜 그를 훔쳐 보고 있었어요?”송연아는 고개를 숙이고 목소리를 가라앉히고 말했다.“잘못 보셨어요.”그렇게 말한 후 그녀는 떠나려고 했다.그러나 고훈은 그녀를 놓아주지 않고 길을 막았다.“당신은 수상해요. 자신의 모습을 숨기려 하는 걸 보아, 좋은 사람은 아니죠?”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송연아가 방심한 틈을 타 그녀의 마스크를 벗겼다.“아!”송연아는 너무 놀라 무의식적으로 얼굴을 가렸다.불빛 아래에서 그녀의 얼굴과 목의 흉터가 선명하게 드러났다.고훈도 깜짝 놀라며 외쳤다.“못생겼네!”그리고 그는 웃음을 터뜨렸다.“하하...”그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강세헌을 바라보며 말했다.“강세헌, 네 매력이 점점 더 커질 줄 몰랐어. 못생긴 괴물도 너에게 빠져들고 있어.”그렇게 말한 후 고훈의 시선은 다시 송연아에게 향했다.그제야 그는 그녀의 배가 부풀어 오른 것을 발견했다.“당신은 이렇게 못생겼는데 당신과 자는 남자가 있다고요?”고훈은 눈썹에 치켜올렸다.송연아는 자신의 흉터가 못생겼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못생겼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녀는 여전히 손을 움켜쥐었다.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옷깃을 잡아당겨 얼굴을 가리고 서둘러 도망치고 싶었다.하지만 고훈은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 물었다.“왜 그렇게 서둘러 도망쳐요? 훔쳐보고는 인정은 못 하겠어요?”강세헌은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왔다.그가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송연아는 점점 더 긴장했다.“이 못생긴 여자가 너를 훔쳐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 아니면 애초에 둘이 아는 사이였어? 저 여자 배 속에 있는 게 네 아이는 아니겠지? 하하...
진원우는 의아한 듯 물었다. “경매행사 CCTV 영상은 왜 필요해요?”강세헌은 차가운 눈빛으로 진원우를 힐끗 보더니 다시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강세헌의 눈빛 하나에 충분히 압박감이 느껴진다.진원우는 고개를 내렸고 더 이상 물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바로 대답했다. “지금 바로 다녀올게요.”송연아가 죽은 후, 강세헌은 다시 정신을 차렸지만, 모든 신경을 일하는 데만 쏟고 있었고 언제부턴가는 불면증에도 시달리고 있었다. 그래서 매일 밤 수면제 없이 잠을 이루지 못했다.강세헌은 예전에도 차갑고 이기적이었지만 지금은 더 말할 나위 없다.예전에는 외부 사람에게 차가웠지만 회사 사람들에게는 그나마 따뜻한 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비서로 있던 임지훈도 사직서를 내고 회사를 떠났다.강세헌이 무서워 나간 게 아니라 현재 그 누구도 강세헌에게 다가가기 어려워하고 있었고 이런 분위기에서 더 이상 회사에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떠났다. 회사에서 강세헌 옆을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냉랭한 기운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강세헌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주위 사람들에게 큰 압박감이 되고 직원들로 하여금 회사에 있는 내내 가시방석에 앉은 듯한 느낌을 받게 했다.그런 강세헌 옆에서 일하는 것은 학대나 다름없었다.진원우는 강세헌이 왜 영상을 갖고 오라고 하는지 궁금해 하지 않았다. 그저 지시에 따를 뿐이었다.진원우는 다시 경매장으로 갔고 구진학이 마침 뒷문으로 나가고 있었다.진원우가 구진학보다 한발 늦었다.구진학이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구진학은 송연아의 일을 덮어 주기 위해 미리 관리책임자에게 얘기해 혹시라도 누가 CCTV 영상을 달라고 하면 고장 났다고 말하라고 했다.구진학은 이곳의 단골이며 사장님과도 잘 아는 사이이다. 그래서 이런 일쯤은 쉽게 해결할 수 있다.진원우는 영상을 손에 넣지 못한 채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빈손으로 가고 있는 진원우의 얼굴은 울상이 되었고 돌아갈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그러나 호텔로 돌아오는 것 외에 딱히 도망갈 곳도 없었다.
몇 개 안 되는 글자가 강세헌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강세헌은 넋이 나간 채 한참 동안 휴대전화만 뚫어지게 봤다. 액정 화면이 어두워지면 다시 홈 버튼을 눌러 밝혔다. 그때마다 화면에 뜬 몇 글자가 더 똑똑히 보였다. 문자를 클릭하려는 손이 화면 가까이 갈수록 손가락은 더 심하게 떨렸다.강세헌은 크게 심호흡하면서 최대한 안정을 취하려고 했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떨리는 손으로 문자를 눌렀지만, 문자 수신함에는 방금 본 몇 글자 외에 다른 내용은 없었다.[송연아 살아있어.]강세헌은 눈살을 찌푸렸고 동공은 거침없이 흔들리고 있었다.윙-이때, 손에 쥐고 있던 휴대전화에서 또 진동이 울렸고 다시 한 통의 문자가 날라왔다.[송연아의 행방을 알고 싶으면 709호로 와.]강세헌은 누군가 자신을 709호로 유인하기 위해 일부러 보낸 문자라 생각했다.강세헌은 눈살을 찌푸렸다. 함정임을 분명히 알고 있지만 발걸음은 어느새 방을 나서고 있었다.송연아와 관련된 모든 일에서 강세헌은 냉정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극도의 불안정 상태에 이르고 있었다.송연아가 죽은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바보처럼 문자 한 통을 믿고 있었다. 강세헌은 방에서 나와 709호로 향했고 때마침 같은 층이어서 바로 도착할 수 있었다.“강세헌. 너 진짜 속네.” 고훈은 큰 소리로 웃었다.강세헌은 그 누구보다 똑똑하고 현명한 사람이다. 덫에 쉽게 걸릴 사람이 아니다.그러나 이 순간 강세헌은 바보처럼 문자만 믿고 여기로 왔다.“이렇게 멍청할 줄 몰랐어.” 고훈은 배를 꿇어앉고 웃었다.강세헌은 얼굴은 순식간에 얼음장처럼 차가워졌고 고훈을 보며 경고했다. “한 번만 더 송연아 일로 사람 놀리면 그때는 내가 너를 갈기갈기 찢어 죽일 거야.”말이 끝나자마자 강세헌은 뒤돌아섰다.고훈은 방문에 기댄 채 팔짱을 끼며 말했다. “송연아는 죽었어. 시간이 지나면 다 잊게 될 거야.”강세헌은 고훈의 말에 대꾸도 없이 성큼성큼 걸어서 방으로 들어갔다. 고훈은 혼잣말로 되뇌었다. “강세헌. 나와 내기
강세헌은 바닥에 기어다니는 개미를 보듯 시선을 아래로 내려보며 말했다. “내가 말했지? 죽는 것보다 더 못한 삶을 살게 될 거라고?”강세욱이 바닥에 엎드려 있는 모습은 궁지에 빠진 쥐처럼 초라해 보였으나 강세헌에 대한 증오는 온몸으로 내 뿜고 있었다.강세욱은 주먹을 꽉 쥔 채 손을 부들부들 떨었고 팔목 핏줄은 당장이라도 터질 듯 튀어나와 있었다.강세욱은 같은 강 씨인 강세헌의 잘난 모습이 자신을 더 초라하게 만들어 비참함을 느꼈다.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강세헌에게 또 졌다. 그것도 너무 확실하게 졌다. 바닥에서 일어난 강세욱은 흉악한 얼굴을 하며 강세헌에게 말했다. “강세헌. 너는 나를 못 죽일 거야. 그렇지? 넌 남자도 아니야. 능력이 있으면 한번 죽여 봐. 내가 널 함부로 무시 못 하게.”강세욱은 당장이라도 덮칠 것 같은 기세로 강세헌을 향해 뛰어가려 했다.그러나 한 발짝 떼기도 전에 옆 간호조무사들에 의해 제지당했다.병원장은 강세욱을 보며 말했다. “오늘 주사를 아직 안 맞았네요.”강세욱은 몸부림쳤다.그러나 혼자서는 역부족이었다.병원에 갇힌 이후 강세욱은 하루에 한 번 주사를 맞고 있었다.이 주사는 온몸의 근육을 축 늘어지게 함으로써 힘이 없어 자살 시도조차 못 하게 한다.주사를 맞자마자 강세욱은 바닥에 축 널브러졌다.도망갈 거라는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힘도 없거니와 몸에 위치추적기가 장착되어 있어 도망가려고 해도 갈 수가 없다.죽고 싶어도 못 죽는 이 상황은 강세욱이 삶이 죽음보다 못하다는 것을 그대로 느끼게 했다.강세욱이 고개를 들어 강세헌을 향해 비웃으며 말했다. “강세헌. 너도 나를 이기진 못했어. 안 그래? 송연아도 죽었고 너도 평생 힘들겠지? 하하...”강세욱은 미쳐버린 듯한 모습으로 계속 말했다. “나는 심지어 심재경 결혼식까지 가서 웨이터에게 쪽지를 전달하라고 부탁했어. 송연아를 어떻게든 옥상으로 유인해서 내가 잡고 있어야 했거든. 근데 역시 송연아! 쪽지에 안 속더라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애를
진원우는 강세헌쪽을 향해 곁눈질했다. 구애린이 사무실로 쳐들어온 것에 대해 강세헌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했다. 아버지는 다르지만 그래도 같은 엄마를 두고 있는 강세헌 동생이기 때문이다.그러나 강세헌은 덤덤했고 심지어 무관심으로 일관했다.진원우는 아무 말 없이 분위기만 살폈다.강세헌의 무정함에 진원우도 놀랐다. 사실 구애린을 여동생으로 받아들이면 적어도 강세헌에게 친척이 생겨 혼자가 아니기에 충분히 인정해도 된다고 진원우는 생각했다.“강세헌 씨죠? 제가 조사를 해 봤어요. 사진도 봤었고요. 임옥민 씨가 어머니 되시죠? 물론 저의 어머니이기도 하죠. 어머니 산소가 어디 있는지 알려주세요. 가서 절이라도 하려고요.” 구애린은 강세헌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말했다.기세가 등등했고 강세헌이 알려주지 않으면 쉽게 물러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강세헌은 고개를 들어 장 비서를 보며 말했다. “경호원 불러.”장 비서는 마음속으로 내심 기뻤지만,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네. 알겠습니다.”“뭐 하는 거예요?” 구애린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의아한 듯 물었다. “저는 임옥민 씨의 딸입니다!”구애린 말에 장 비서가 끼어들었다. “당신이 누구든 허락 없이 함부로 들어온 것은 잘 못 된 거예요.”이때 경호원들이 사무실에 도착했고 장 비서는 가차 없이 말했다. “끌고 나가세요.”송연아가 죽은 후, 장 비서는 강세헌 옆에 그 어떤 여자가 오는 것도 용납할 수 없었다. 장 비서는 자신이 송연아를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랐다. 그래서 일단 여자만 나타나면 경계하고 쫓아내고 싶어 했다. 구애린은 경호원들에게 제압됐다. “... 강세헌 씨!” 구애린이 아직도 할 말이 많은 듯 밖에서 소리쳤다. “엄마는 당신 혼자만의 소유물이 아니에요. 독점할 생각 하지 마세요!”경호원들이 구애린을 끌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나서야 주위가 조용해졌다. 갑자기 들이닥친 상황에 사무실도 쥐 죽은 듯했고 다들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강세헌은 불쾌한 티를
구진학은 구애린에게 반찬을 올려주며 말했다. “빨리 밥 먹어.”구진학은 송연아에 대해 구애린에게 얘기하지 않았다. 송연아는 너무 많은 사람이 본인을 아는 것을 달가워 않는다. 그래서 딸인 구애린에게도 숨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호기심이 많은 구애린은 계속 꼬치꼬치 캐물었다. “아빠. 알려주세요. 진짜 너무 궁금해서 그래요.”“너는 강세헌을 보고 어땠어? 어떤 사람 같아 보여?”구진학은 일부러 화제를 돌렸고 구애린의 주의를 끄는 데 성공했다. 구애린은 구진학의 물음에 한참 생각하고 나서 대답했다. “신은 강세헌에게 우수한 피지컬과 외모를 줬지만, 그에 반해 최악의 성질머리를 준 것 같아요. 그래서 신은 늘 공평하다고 하죠.” 구애린의 대답에 구진학은 그저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뭐가 그래서예요?” 구진학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구애린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구진학은 구애린이 강세헌을 만난 후, 혹시 다른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그러나 현재 구애린 표정으로도 알 수 있듯이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것 같다. 구애린은 오로지 임옥민의 산소를 찾는 것에 몰두하고 있었다.구애린의 모습에 구진학도 한시름 놓았다. 구애린은 친딸은 아니지만 그 누구보다도 효녀다. 구애린은 구진학의 말뜻을 바로 알아차리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아빠. 나와 강세헌은 혈연관계가 있는 오빠와 동생이에요. 강세헌이 아무리 잘 생겨도 좋아할 일은 없어요. 아빠. 정신 차려요!”구애린은 두 살 때쯤 입양됐다. 너무 어린 나이에 입양돼 그 전의 일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게다가 구진학과 임옥민은 구애린을 친자식으로 여기며 키웠다. 구진학은 한 번도 구애린 앞에서 입양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었다. 구애린도 자신이 구진학과 임옥민의 친딸로 생각하며 살고 있다. “내가 멍청했어. 내가 멍청했어.” 구진학은 얼버무리며 말했다. “점심에 마신 술이 저녁이 다 돼도 안 깨네.”“아빠. 엄마가 돌아가셔서 슬픈 것은 알아요. 하지만 꼭 몸조심하셔
송연아의 대답은 구진학의 기대와 달랐다. “저도 방법이 없어요.”실제로 별 방법이 없기도 하지만 있다고 해도 송연아는 절대 말하지 않을 것이다. 송연아는 강세헌의 모든 결정을 존중한다. 항상 강세헌 입장에서 생각하며 강세헌은 당연히 엄마 아빠가 본인 혼자만의 부모님이길 바랄 것이다. 입장을 바꿔 송연아 본인이 이런 상황에 부닥쳐 있어도 똑같이 했을 것이다. 이기적이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겠지만 이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지상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송연아는 강세헌이 이기적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임옥민이 구진학에 대해 좋은 감정이 생긴 이유는 구진학과 함께 보낸 시간이 길고 임옥민의 목숨을 살려 준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구진학에 대해 호감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구진학이 임옥민의 기억을 지우지 않고 데려가지 않았다면 구진학에게 호감이 생기지 않을 수도 있었다.구진학은 실망한 듯 말을 이었다.“연아 씨...”“연아 씨도 아시다시피 강세헌은 내가 본인 어머니를 해쳤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나에게 산소에 대한 정보를 숨겼죠. 강세헌은 강단있는 사람이에요. 물론 연아 씨도 잘 알겠죠. 이렇게 흠잡을 데 없는 사람에게서 답변을 바라기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에요.”구진학은 말을 마치고 그저 묵묵히 앉아 있었다. 강세헌은 확실히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강세헌이 말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입 밖으로 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휴...”구진학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이제 나이를 먹을 만큼 먹어서 죽기 전에 애린 엄마에게 인사하러 가야 하는데... 이것도 내 욕심이겠죠?” 구진학은 송연아가 조금이라도 얘기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계속 말했다.구진학은 강세헌에 대해 어디서부터 어떻게 얘기해야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고 진짜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나 송연아는 고개를 내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구진학은 미안한 듯 손짓하며 말했다. “제가 괜한 질문을 했네요.”“아니에요.” 송연아는 대답 했다. “휴... 계속 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