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세헌은 천천히 눈을 들었고 몇 초간 그를 응시하더니 이내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안 죽었다고?”진원우가 대답했다.“안 죽었답니다. 죽은 건 운전기사였습니다.”“깨끗하게 처리해. 돌아가신 운전기사 가족들한테는 보상 넉넉히 드리고.”진원우는 알겠다고 했다.이 일로 인해 진원우는 매우 큰 죄책감을 느꼈는데, 그의 목표는 원래 구진학이었으나 결국 무고한 사람을 죽게 했다.“회사 쪽에는 대표님이 한 번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진원우가 말했다.“알았어.”강세헌은 표정 하나 없이 담담하게 대꾸하였고 태도가 너무 냉랭하여 주위의 공기가 얼어붙을 것만 같았다. 그는 손을 들어 진원우에게 가도 좋다는 신호를 보냈다.요 며칠 동안 강세헌의 안색이 계속 어두웠기에 진원우는 예전처럼 말을 함부로 하지 않았다.그는 물러갔다.서재의 문을 닫은 그는 거실에 있는 송연아를 보고 말했다.“대표님에게 많이 신경 써주시면 안 돼요?”그와 같은 부하들에게 있어서 만약 계속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일하게 된다면, 언젠가는 억눌려 질식할 것만 같았다.임지훈마저 오기 싫어했는데, 예전에 회사 가기 싫다던 사람이 지금은 매일 회사에 붙어있고 돌아오지 않았다.송연아는 강세헌을 관심해 주고 싶었지만, 지금 그는 임옥민의 죽음을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했다.임옥민이 죽은 지 얼마나 되었는가?그를 종일 깔깔 웃게 하란 말인가?이것이 진정 가능하단 말인가?예전에도 강세헌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기에 지금은 더욱 불가능했다.송연아는 그가 지금 겪고 있는 이 고통을 잘 알고 있었다.“세헌 씨한테 시간을 좀 줘요.”그녀는 조용히 말했다.“그냥 대표님이 계속 이러실까 봐 걱정이에요.”이건 진원우의 속마음이기도 했는데, 강세헌이 너무 답답하다고 생각했다.마음이 안 좋으면 차라리 큰 소리로 욕을 해도 되는데, 이렇게 침묵만 하고 있으니 그와 함께 있을 때마다 공간이 남달리 좁은 느낌을 들게 하여 숨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진원우는 이런 상황이 오래 지속하면 강세헌이 병이 날까 봐
강세헌의 잔잔한 눈동자에는 감정 기복이 뚜렷했고 그녀가 할 말을 기대하는 것 같았다.송연아는 그녀와 상관없다는 얘기를 꺼내려는 순간, 임옥민이 편지에서 그녀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그녀는 또다시 딜레마에 빠졌고 입술을 심하게 떨었다.“... 미안해요.”그녀는 고개를 숙이고는 재빨리 말했다.“믿어줘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송연아는 도망치듯 서재를 뛰쳐나왔다.그녀는 화장실로 숨어들어 가슴을 부여잡고는 하고 싶은 말을 애써 꾹꾹 눌러 참았다.그런데 코가 너무 시큰거렸고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송연아는 황급히 입을 가렸고 아무에게도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그녀는 감정을 추스를 수 있었다.식사할 때, 그녀는 강세헌의 옆에 앉았고 고개를 숙여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른 채 허겁지겁 먹었다.강세헌은 스스로 입을 열지는 않았고 단지 오은화가 데워놓은 우유 한 잔을 그녀 앞에 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송연아는 우유를 바라보며 오랫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오은화는 정신이 다른 데로 팔린 송연아를 보고 소리 내 당부했다.“우유는 뜨거울 때 마셔야 더 좋아요.”송연아는 그제야 정신이 돌아왔고 고개를 숙이는 순간, 영롱한 물 한 방울이 컵에 떨어졌고 하얀 액체 속에 묻혀 사라졌다.그녀는 컵을 들고 우유를 다 마셨고 방으로 돌아올 때, 강세헌이 찬이 침실에 있는 것을 보았다.송연아는 입구에 서서 들어가지 않았고 묵묵히 몸을 돌렸다.샤워를 마친 그녀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넋을 놓고 있었고 조금도 졸리지 않았다.하지만 강세헌이 침실 문을 열자 그녀는 눈을 감고 자는 척했다.아마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서였을 것이다.어색할까 봐, 또 그의 냉정한 눈빛을 보고 마음이 아플까 봐 아예 잠든 척을 했다.그녀는 콸콸 흐르는 물소리를 들었고 그의 발걸음 소리를 들었으며 이내 옆자리에 인기척이 느껴지자 그가 침대에 누웠다는 것을 알았다.예전에는 침대에만 누우면 강세헌은 꼭
주석민은 깜짝 놀랐다.“몰랐어?”송연아는 담담하게 웃었다.“설마 세헌 씨가 무슨 일을 하는데 저와 상의할 거라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시죠?”주석민은 얼른 설명했다.“아니야.”그는 이어서 말했다.“진학이가 공항으로 가던 중 교통사고가 났고, 현장은 참혹했어. 운전기사는 그 자리에서 바로 사망했고 진학이도 심각한 부상을 입었지. 만약 진학이가 재빨리 구조되지 않았다면, 지금쯤 아마 황천길을 걷고 있을 거야... 이번 일은 너무 심상치 않아, 분명 강세헌이 한 일이겠지?”송연아는 입술을 앙다물고 대꾸하지 않았다.강세헌의 성격대로라면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었기에 송연아는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증거가 없으면 함부로 추측하지 마세요.”송연아는 은은한 말투로 말했다.“구진학 씨가 죽지 않았다니,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네요.”하지만 그녀는 마음속으로 이번 일의 배후가 강세헌이 틀림없다고 확신했다.송연아는 그에 대해 꽤 많이 알고 있었다.주석민이 생각해 보더니 그녀의 말이 일리가 있어 보였다. 임옥민이 죽고 나서 구진학은 폐인처럼 살았는데, 이렇게 처참한 교통사고에서도 목숨을 건진 걸 보면 정말로 아직 그가 죽을 때는 아닌 듯싶었다.“아이고, 진학이 위해서 나도 의리를 지킬 건 다 지켰어.”임옥민의 일이 있고 난 뒤부터 그는 자신의 모든 인맥을 거의 다 써버렸다.그녀의 사망 원인을 수술 도중의 실수에 의한 것이라고 말한 것 자체가 병원의 명예에 손상을 입혔고, 다행히 그는 원장 앞에서 어느 정도의 체면과 위신도 좀 있었기 때문에 원장이 그를 추궁하지 않았던 것이다.또한 의사의 실수로 인한 사망은 유족이 추궁한다면 실수한 의사는 법에 따라 징계를 받아야 한다.그러나 송연아는 강세헌의 아내였기 때문에 강세헌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그렇지 않으면 그녀는 다시는 출근할 수 없었을 것이다.“주 교수님.”고훈은 복도에서 성큼성큼 걸어와 송연아가 못 본 체하는 것을 보고는 주석민에게 말을 걸었다.“퇴원 처리하러 갔는데, 저쪽에서 무슨 동
“다음 말은 먹어버렸어요?”송연아는 처음에 바로 반응을 하지 못했고 잠시 후에야 비로소 그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를 깨닫고 웃었다.“누구나 당신처럼 유치하다고 생각해요?”고훈이 말했다.“내가 유치해요? 뭐가 유치한데요?”말하면서 그는 송연아에게 기대기도 했다.송연아는 옆으로 한 걸음 물러서 그에게서 떨어졌고 고훈 어머님께 말했다.“회복이 잘 되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마음의 부담도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많은 사람은 자신이 심장 수술을 했기 때문에 심장이 더 약해지고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 초조해한다.하지만 사실 심장은 인간의 몸에서 가장 강하고 끈질긴 기관이다.그것은 인간의 몸에서 형성된 순간부터 쉬지 않고 뛰기 때문이다.고훈은 입을 삐죽거렸다.“내가 당신을 잡아먹기라도 해요? 왜 이렇게 무서워해요?”송연아는 들은 척하지 않았고 그와 잡담을 하고 싶지 않았다.“퇴원하셔도 됩니다.”말을 마치고 그녀는 돌아서서 병실을 나갔다.고훈은 어머니께 말했다.“제 친구예요.”고훈의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방금 고훈이 적극적으로 한 여자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고는 그가 그녀를 좋아한다는 것을 고훈 어머니는 단번에 알아챘다.한숨이 절로 나왔다.“여보세요, 송연아 씨, 그렇게 차갑게 굴지 말아 줄래요?”고훈이 송연아를 따라 나왔다.송연아는 바로 못 들은 체했다.“난 아직 일해야 해서 방해하지 말아 주세요.”그녀는 발걸음도 멈추지 않았다.고훈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넌 무자비하고 의리도 없을 뿐만 아니라 냉랭해서 인간미가 없어.”송연아는 계속 그를 무시했다.“가지 마요.”고훈은 뒤쫓아와서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당신은 왜 나한테만 이렇게 차갑게 대하는데요?”송연아는 그가 자신의 몸을 터치하는 것을 싫어했고, 그녀는 너무 힘을 쓴 나머지 관성 때문에 연거푸 뒤걸음질 쳤다. 요 며칠 그녀는 입맛도 없고 잠을 잘 자지 못하였기에 몸이 허약했다.하마터면 똑바로 서지 못 할 뻔했다.고훈은 바로 손을 뻗어 그녀를
송연아가 고개를 돌리자 최지현이 눈에 들어왔는데, 그녀와 주혁은 나란히 걷고 있었고 그 뒤에는 경호원 두 명이 따랐다.고훈은 원래 화가 나 있었는데, 최지현이 또 듣기 싫게 말하니 바로 되받아쳤다.“싸우든 말든, 장난치든 말든, 네가 무슨 상관이야?”최지현의 안색은 순간 바뀌었다.“말 그따위로 할래?”“네가 먼저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했잖아.”고훈은 마침 화를 낼 구멍이 없었는데, 최지현이 먼저 시비를 걸자 그는 이때다 싶었다.“너...”최지현도 속에 화가 가득했다.지난번에 송연아의 함정에 걸려들었기 때문이었고, 주혁이 그녀가 고의로 아이를 뗀 것을 알아 그녀에게 매우 실망했다.그래서 그는 이젠 그녀에게 자유시간조차 주지 않았다.최지현이 어디를 가든지 뒤에는 꼭 이 두 명의 경호원이 따라다녔다.사실 주혁은 그녀의 외출조차 허락하지 않았는데, 거의 감금이나 마찬가지였다.주혁은 최지현이 임신해서 애를 낳으면 자유를 주겠다고 했다.그래서 그녀는 아이를 낳기 전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주혁은 이제 최지현이 아무 일도 못하게 할 것이고, 게다가 그녀를 도와서 그 어떤 일도 하지 않을 것이다.그녀가 아이를 지운 일은 정말 그를 속상하게 했다.자유가 없는 최지현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속으로 화가 치밀었기에 당연히 송연아를 보고 좋은 말이 나올 수가 없었다.이득을 못 볼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기분이 더욱 우울해졌다.“너를 보면 진짜 사랑에 미친 어리석은 사람 같아!”최지현은 눈을 부릅떴다.고훈은 냉소적으로 말했다.“내가 너한테 미쳤니?”최지현은 두 손을 꽉 움켜쥐었다.주혁은 그녀를 제지했다.“넌 건강검진을 받으러 온 것이지 다른 사람과 싸우러 온 것이 아니야.”그는 예전처럼 최지현을 고분고분 따르지 않았다.최지현도 감히 건드리지 못했다.성이 났지만, 그가 말리니 이쯤에서 그만두었다.“가자. 예약한 시간이 다 됐어.”주혁이 말했다.최지현은 병원에 오는 것을 싫어했다.“다음부터는 안 오면 안 돼?”주혁은 바로
송연아는 자신이 한 말을 재빨리 머릿속으로 되새겼다. 그녀가 틀린 말을 하지는 않은 것 같다.“엄마, 제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요?”“너 세헌이랑 싸웠지?”한혜숙이 날카롭게 물었다.송연아는 바로 정신을 차렸다.“아니에요. 우리 잘 지내요, 엄마는 제가 잘 안 되기를 바라세요?”“아니야, 당연히 네가 잘 되기를 바라지. 난 그냥...”“오해하셨어요. 우리 둘은 잘 지내고 있어요.”송연아는 먼저 대화의 주도권을 잡았다.“정말이지?”한혜숙은 여전히 걱정되었다.“정말이죠. 제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요. 우린 정말 잘 지내고 있어요. 쓸데없는 걱정 하지 않으셔도 돼요.”그녀가 이렇게까지 말하니, 한혜숙도 자신이 쓸데없는 생각을 한 것 같았다.“알았어.”한혜숙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너희들을 오랜만에 보는 건데, 그동안 많이 보고 싶었거든.”송연아가 말했다.“제가 찬이를 데리고 보러 가도 똑같아요.”“넌 지금 세헌이와 부부야. 그는 내 사위고, 내 아들과 다름이 없는데, 어떻게 똑같니.”송연아는 지금 자신과 강세헌의 관계를 생각하니 마음이 답답했고, 최대한 자신의 목소리가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들리게 하고 싶었다.“엄마, 저 아직 일이 있어서 퇴근 후에 찬이 데리고 갈게요. 장 좀 많이 보셔도 돼요. 저랑 찬이 밥 먹고 갈 거예요.”한혜숙이 말했다.“좋지.”송연아는 전화를 끊고 계속 책을 읽었다.퇴근 후, 그녀는 돌아가서 찬이를 데리고 송가네 집으로 갔다.한혜숙은 이미 음식을 다 준비해 놓고 있었는데, 그야말로 진수성찬이어서 다리 상이 부러질 것 같았다.딱 봐도 많은 시간을 들인 한 끼였다.찬이를 보니 한혜숙은 더욱 다정해졌다.“아이고, 우리 찬이 살 많이 올랐네. 키도 커지고 뽀얀 것이 세헌이와 똑 닮았어.”한혜숙은 찬이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송연아도 찬이를 보니 확실히 강세헌을 많이 닮았다.“아 맞다, 내가 저번에 너희한테 보여줬던 결혼 날짜 생각나? 이제 날씨도 선선해지고 날도 곧 다가오니까 슬슬 준비 시작해도
“이슬이가 한동안 여기서 지냈잖아? 아무래도 예걸이가 이슬이를 좋아하는 것 같아.”한혜숙도 약삭빨랐는데, 송예걸의 작은 속셈을 진작에 알아차렸다.송연아도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 있었지만, 확신하지는 않았다.지금 한혜숙의 말을 들어보니, 송연아는 송예걸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송예걸은 송연아와 한혜숙의 시선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전화를 걸고 있었다.곧 전화가 연결되었다.“이슬 누나, 저예요.”안이슬이 웃으면서 물었다.“집에는 잘 도착했어?”“네, 근데 누나한테 할 말이 있어요.”송예걸은 막 말하려다가 말을 돌렸다.“잠깐만요.”그는 핸드폰 스피커를 막고 송연아를 바라보며 물었다.“누나, 심재경은 언제 결혼하는데?”“모레.”송연아가 말했다.송예걸은 핸드폰 스피커에서 손을 떼고 안이슬에게 말했다.“모레 아침에 일찍 여기에 올 수 있어요?”안이슬이 말했다.“나 그때 시간이 없는데.”“급한 일이 있어서요. 부탁이에요. 이번 한 번만요, 앞으로 귀찮게 하지 않을게요.”“정말 시간이 없어...”“이슬 누나, 우리 좋은 누나, 약속해 줘요. 제가 누나를 보러 간 걸 봐서라도 날 불쌍히 여겨줘요.”송예걸은 비굴하기 짝이 없었다.안이슬은 정말 그를 참을 수 없었다.“약속할게, 하지만 너도 약속해, 앞으로 이렇게 아무 예고도 없이 제멋대로 행동하지 않기로.”“좋아요.”송예걸은 두말없이 승낙했다.그가 전화를 끊자 송연아가 물었다.“왜 굳이 오라고 했어?”“소식을 듣는 건 직접 보는 것보다는 덜 충격적이잖아, 심재경이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것을 두 눈으로 직접 봐야 체념할 것 같아서.”송예걸이 말했다.그는 정말로 주도면밀하게 생각했다.송연아는 몇 초 동안 송예걸을 쳐다보았다.“이렇게까지 신경 쓰는 거 보니까 너 이슬 언니 좋아하지?”그녀는 트집을 잡았다.“내가 이슬 누나 좋아한다고 해서 뭐? 누나는 아직 미혼이고, 나도 결혼하지 않았어. 내가 여자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누나가 남자친구 있는 것도 아니잖아.”
메시지를 보낸 후, 그녀는 줄곧 핸드폰을 주시했다.그의 답장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3분, 5분, 10분, 차가 집에 도착했어도 강세헌의 답장은 받지 못했다.송연아는 아마 이때 그가 바빠서 메시지를 못 봤을 것으로 생각했다.그녀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자신을 위로했다.사실은 그녀가 생각한 것이 맞았다.이때 강세헌은 확실히 바빴다.수십 명의 임원이 1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회의실에 모였다.밑에 있는 사람 중에는 서양인도 적지 않았는데, 지금 모두 옷깃을 여미고 앉아 있었다.브리언트는 설립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한때 천주 그룹에서 적지 않은 업무를 전이시켰고 강세헌이 시장 추세에 대한 파악과 예리한 비즈니스 기회의 포착, 정확한 투자와 예리한 판단으로 짧은 시간 내에 이미 성숙한 투자 회사가 되었기에 업계에서는 이미 유명했다.강세헌은 국내의 한 엔터테인먼트 회사에 투자했는데, 2년 동안 이미 수백만 명의 팔로워를 가진 인플루언서를 만들어냈고, 5천만 명이 넘는 팔로워를 가진 사람은 이미 3명이나 되었다.이 엔터테인먼트 회사는 국내에서 매우 유명했다. 다만 아무도 진정한 우두머리가 누구인지 모를 뿐이었다.이건 강세헌이 나설 가치가 없었기에 회사 책임자가 평소 업무를 관리하였고,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하거나 발전 방향을 판단할 때만 강세헌이 관여했다.이 외에도 브리언트가 주식을 소유하고 있는 만윤 실업이 있었는데 자동차제조회사였다. 이 회사는 강세헌이 천주 그룹을 운영할 때 투자한 것으로 수년간의 기다림 끝에 큰 성과를 거두었다. 강세헌은 이 산업을 중시했는데, 더욱 나아가 국산 프리미엄 전기차를 대표하여 글로벌 경쟁에 참여하는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로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었다.계열 제품으로는 KST5, KST6, KST7, WS1, WS2가 있다.지난해에는 뉴욕증권거래소에까지 출시되었다.브리언트가 의료 분야에서도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는데, 오늘 각 회사와 본사의 고위 관계자들이 모두 참석했다.회의와 각 부서의 책임자 면담도
결혼식을 마친 후 방유정 아버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떠나기 전에 임지훈에게 회사를 완벽하게 인계하려고 회사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임지훈은 송연아와 강세헌 일행과 같이 먼저 프랑스로 돌아가서 그쪽 일을 마무리했다. 비록 임지훈이 회사에 있으면 강세헌은 보다 한가하게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가 떠난다고 해도 그냥 조금 더 바쁠 뿐이다. 어느 회사든 누가 떠나면 절대 안 되는 건 없다. 일주일의 시간 동안 임지훈은 프랑스에서의 일들을 모두 마치고 귀국해서 방씨 가문 회사에 들어갔다.임지훈도 국내에 집이 있었지만 방유정과 같이 방씨 가문에 들어갔다. 데릴사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유정 아버지의 병을 알고 방유정이 부모님과 많을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였다. 임지훈 역시 사위로서 그럴 의무가 있었다....반년 후, 방유정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방유정 어머니는 그 충격에 순식간에 많이 늙었다.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집안 분위기는 아주 저조했는데 방유정의 대부분 시간은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예전의 임 비서는 이제 임 대표가 되어 그의 능력으로 방씨 가문은 아주 관리가 잘 되었고 3개월 후 방유정 어머니의 상황도 많이 좋아졌다.방유정이 드디어 임신하게 되면서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간 일도 어느 정도 잊혀가고 있었다. 임지훈은 곧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기뻤고 방유정도 곧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방유정 어머니 역시 곧 외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정말로 모두 행복해할 만한 일이었다.방유정이 임신 6개월 때 그들은 프랑스로 갔는데 구애린은 남자아이를 낳았고 심재경의 딸은 이제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샛별이가 유일한 여자아이여서 모두가 예뻐했다. 샛별이는 아직 작고 어렸지만 찬이를 쫓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찬이는 샛별이 다리가 짧다고 계속 놀려줬으며 그게 재밌다고 샛별이는 키득키득 웃었다. 찬이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면 샛별이는 오빠라고 불렀는데 너무 귀여웠다.방유정이 말했다.“저도 딸을 낳고 싶어요.”구애린이 말했다.“그게
비록 손을 놓기 싫었지만, 방유정 아버지는 결국 방유정의 손을 임지훈에게 넘겨줬다.“앞으로 계속 사랑하며 살기를 바란다.”방유정도 아버지에게 말했다.“꼭 그렇게 할게요.”이어서 결혼식은 순서대로 일사천리로 피로연까지 모두 순리롭게 진행되었다.방유정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는데 딸이 그렇게도 바라던 결혼을 하니 너무 기뻤다. 그런데 결혼시키고 나니 또 잘 살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세상의 부모들은 다 그런가 보다.임지훈은 방유정을 데리고 강세헌이 있는 테이블로 가서는 비록 모두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소개했다. 모두 방유정을 다시 한번 소개받았는데 이번에는 심재경 친구의 사촌 동생이 아닌 임주훈의 아내로 말이다.구애린이 웃으며 말했다.“정말 너무너무 축하해요.”방유정도 웃으며 대답했다.“고마워요.”윤이도 어른들 따라 한마디 했다.“축하해요.”방유정은 윤이를 보며 말했다.“너무 귀여워요.”그녀가 손을 뻗어 윤이의 얼굴을 만지자, 윤이가 손을 내밀었다.“안아줘요.”송연아가 미간을 찌푸렸다.“윤이야, 안 돼.”방유정이 말했다.“괜찮아요.”그녀는 윤이를 안으며 말했다.“무겁지 않아요.”윤이는 그녀의 머리에 있는 금색 비녀를 보고 만지려고 했다. 방유정이 한복을 입고 있었기에 머리에 비녀를 하고 있었다. 방유정은 아주 시원하게 바로 비녀를 빼서 윤이에게 주었는데 송연아는 윤이를 제지하지 못해서 미안해했다.“이러면 안 돼요. 오늘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괜찮아요. 그냥 액세서리일 뿐이에요. 윤이가 좋아하니 놀게 해요.”방유정은 정말 성격이 좋았다. 역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만큼 성품이 좋았다. 가끔 조금 오만하긴 하지만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모두 그녀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송연아는 윤이를 안고 달래려고 했다.“윤이 착하지. 이건...”송연아는 윤이가 방유정을 어떻게 부르면 될지 생각했는데 방유정이 웃으며 말했다.“호칭일 뿐이니까 편
“지금 막 들었는데 유정 씨와 결혼한다면서요. 지금 방씨 가문에서 결혼식을 준비한다고 난리 났어요.”임지훈이 웃었다.“저 이래 봐도 능력 있는 남자예요. 여자들한테도 인기 많아요. 봐요, 결혼도 금방 하죠?”구애린이 말했다.“이제 우리 모두 짝이 있네요.”찬이도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지훈이 삼촌, 축하해요.”“고마워.”임지훈이 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심재경이 물었다.“그런데 데릴사위로 들어간다고 하던데요?”심재경의 말에 모두 놀라며 시선이 일제히 임지훈에게로 향했다. 확실히 놀랄만한 일이다. 임지훈의 조건에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돈도 있고 능력도 있어서 충분히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데 말이다.“하긴, 방씨 가문에 가장이 필요하긴 해요.”심재경이 그쪽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한마디 했다....임지훈의 결혼식으로 송연아와 강세헌도 프랑스로 돌아가는 일정을 늦췄다. 아무도 심재경의 결혼식을 보러 왔다가 임지의 결혼식까지 보게 될 줄을 생각을 못 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이건 임지훈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듯이 방유정과의 결혼은 정말로 찰나의 결정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그 역시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임지훈이 진원우에게 말했다.“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진원우가 말했다.“그런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방씨 가문은 돈도 많고 유정 씨도 예쁘고 그 정도면 만족해야지.”“만족해. 다만 너무 빠른 것 같아서 그래.”귀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싱글이었는데 이제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결혼식은 방씨 가문에서 모두 준비했는데 방유정 딸 하나이고 또 사위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결혼식은 아주 성대하게 치렀다. 방씨 가문의 친척들도 꽤 많이 참석해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비록 데릴사위라고 하지만, 임지훈 측은 심재경이 준비했는데 심재경 본인도 금방 결혼식을 치렀기 때문에 익숙한지라 아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었다....방유정은 정교한 메이크업을 하고 값진 웨딩드레스를 입었는
“잠도 잤는데 왜요? 모른 척하려고요?”방유정이 옷을 입더니 침대에서 꼼짝 안 하는 임지훈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왜요? 계속 그렇게 누워 있을 거예요?”임지훈이 말했다.“내 옷을 가져오지 않았잖아요. 나 입을 옷 없어요.”방유정은 그제야 임지훈이 옷이 없다는 걸 생각했다.“가져다 줄게요.”그녀는 곧바로 차에 가서 캐리어를 가지고 다시 올라갔다.“뭐 입을지는 알아서 찾아서 입고 내려와요. 아래층에서 기다릴게요.”방유정은 말을 마치고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임지훈은 침대에서 내려 결혼 얘기이니만큼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정장을 찾아서 입었다. 그가 정리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방유정은 부모님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의 부모는 그를 보자마자 더욱더 열정적이었다.임지훈이 건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저기...”“우리 딸 줄게요.”“아니에요. 지훈 씨가 저한테 시집 오는 거예요.”방유정이 정정했다.“...”“...”“...”방유정을 제외한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물었다.“유정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방유정은 자신이 여자이며 이 집안에 다른 후계자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아버지가 중병이고 자기는 회사를 관리할 능력도 없기에 어찌 보면 자기가 남편을 찾는다기보다는 방씨 가문의 회사를 경영할 사람을 찾는 거였다. 인제야 그녀는 부모가 조급해하는 의도를 이해했고 그녀 역시 가문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에 임지훈이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임지훈을 각별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그런 것들 때문이지 않겠는가.“유정 씨,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임지훈은 뼈대가 있는 남자로서 데릴사위 할 생각은 없었다.방유정이 말했다.“후회하면 안 돼요!”“왜 안 돼요? 유정 씨가 뭘 원하든지 저 모두 만족시켜 줄 수...”“제가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예요.”방유정이 외치자, 임지훈은 오히려 우스웠다. 한 여자가 나한테 시집오라고 하다니!“우리 유정이가 시집가는 거 맞아요
지금 그녀가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물으면 부모님은 더 속상해할 것 같았다.‘나 이제 어떻게 해야지? 어떻게 하면 좀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지? 결혼, 그래 결혼해야 해.’그녀는 자기가 결혼해야만 부모님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 상대도 지금 바로 방에 있지 않겠는가?‘남자 친구인 척을 해줬으니 이제 남편인 척해달라고 해야지. 진짜가 아니고 가짜라도 되니까 결혼하자고 해야겠어.’방유정은 진료 기록부를 다시 원래 위치에 넣고 비틀거리며 부모님 방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갔는데 임지훈이 아직 욕실에서 나오지 않아 침대 옆에 앉아서 기다렸다. 한참 지나자, 임지훈은 가운을 두르고 욕실에서 나왔는데 침대에 자기의 옷이 보이지 않아 방유정의 옆에 서서 물었다.“내 옷은요?”그는 방유정이 잊은 것 같아서 다시 말했다.“내 옷은 지금 당신 차 트렁크에 있어요.”방유정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지훈 씨, 우리 결혼해요.”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약을 잘못 먹었어요? 아니면 정신이 어떻게 됐어요?”“다 아니에요. 그냥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거칠었는데 임지훈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물었다.“울었어요? 누가 괴롭혔어요? 얘기해 봐요. 제가 가서 때려줄게...”임지훈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방유정이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임지훈은 갑작스러운 친밀감에 몸이 굳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게... 유정 씨...”그가 말하려고 할 때 방유정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의 손이 아래로 드리는 순간 몸에 걸친 유일한 가운마저 벗겨져서 흘러내렸다.“...”방유정은 워낙 임지훈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지금 행동이 충격에 의한 도발적인 행동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웃옷의 단추를 벗겨 가슴을 드러내고는 그의 가슴에 가까이하며 말했다.“저를 좀 봐봐요.”임지훈은 참을 수 없었는지 목젖을 굴렸는데 이름 모를 불길이 아랫배에서 솟아오르더니 순식간에 딱딱해졌다.“정말 후회하지 않겠어요?”임지훈도
방유정은 어머니가 자신의 어깨를 다독이자,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응원을 하시는 거였다.“화이팅!”방유정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지금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지?’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만 좋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갑자기 선 자리를 만들어주고 남자를 유혹하라고까지 하시다니?그녀는 어머니의 이마를 만지며 물었다.“엄마,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우리 이제 나가야 해.”방유정의 아버지는 기사가 이미 대기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집을 나갔고 방유정은 문 앞까지 그들을 배웅했다. 차가 떠나자, 그녀는 집으로 들어갔는데 어차피 임지훈이 자고 있었기에 지루할 것 같아서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그녀는 가만히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는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했다. 그런데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서 임지훈을 놀려주려고 그가 곤히 자는 방으로 올라가서는 화장대에서 화장품을 가져다가 침대 옆에 앉아 임지훈에게 예쁜 화장을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도 임지훈이 깨지 않자, 옆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눈이 아파 오니 옆에 기대서 잠이 들었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는 임지훈은 이미 깨어나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언, 언제 깼어요?”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방유정은 참을 수 없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훈의 얼굴은 정말로 오페라 가수 같았는데 어찌나 웃었는지 배가 아팠다. 임지훈은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물었다.“다 웃었어요?”방유정은 곧바로 웃음을 거두고 그의 손을 뿌리쳤다.“맘대로 제 몸에 손을 대지 말아요.”임지훈이 말했다.“유정 씨를 저에게 준다고 해도 거절이에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말했다.“뭐라고요? 저를 좋다고 하는 남자들이 줄을 서면 프랑스까지는 갈 거예요. 그런데 지훈 씨는 내가 싫다고요?”임지훈이 흠칫하자, 방유정이 그를 잡고 물었다.“지금 그
“방유정은 부모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알았어요. 하시고 싶은 대로 하세요.”“어서 지훈 씨 방으로 데려가.”방유정이 물었다.“어느 방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제야 깨달은 듯 말했다.“어머, 어떡해. 게스트룸은 아직 준비가 안 돼있어. 우선 네 방으로 데려가서 휴식하게 해.”방유정은 어머니의 말에 놀라며 말했다.“아빠, 엄마, 이 정도로 오픈 마인드였어요? 어떻게 제 방에 술 취한 남자를 데려가라고 하세요?”“네 말대로 취했는데 뭐 어때?”“술김에 어떤 짓도 한다는 말 몰라요?”방유정이 묻자, 그녀의 부모님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몰라.”방유정은 철저히 말문이 막혔다. 부모님과 임지훈이 정말로 모르는 사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임지훈이 그들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엄마 아빠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아무리 나를 결혼시키고 싶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만약 진짜로 무슨 일이 있으면 책임지라고 하고 바로 결혼시킬 거야.”임지훈은 그 말을 들으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바탕 뿜었다. 방유정의 부모님이 너무 열정적이어서 본인이 천당에 있는 것 같았는데 정말로 귀여운 부모님들이라고 생각했다.‘방유정은 전생에 은하계를 구했나 봐.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고 말이야.’방유정은 역겨워하며 말했다.“지훈 씨, 여기서 이러면 어떡해요. 화장실로 가야지.”“취했잖아.”방유정 어머니가 가정부를 불러 치우게 했다.“그만하고 불편해 보이는데 어서 방으로 데려다 쉬게 해.”방유정은 혼자서 임지훈을 옮길 수 없어서 가정부의 도움을 받아 함께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방에 도착하자, 그녀는 임지훈을 침대에 던졌는데 임지훈은 몸이 포근한 세계에 떨어진 듯 따뜻하고 향기로웠다.“무슨 향수를 써요?”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방유정이 말했다.“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잠이나 자요.”임지훈은 취한 건 사실이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말짱했다. 그는 눈을 감고 또 말했다
임지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요. 해명하지 않아도 화는 나지 않았을 건데, 굳이 해명하니 용서해 줄게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삐쭉거렸다.“그렇게 잘난 척하지 말아요. 그럼 좋은 말이 안 나가니까.”“...”임지훈이 할 말을 잃었다.그때 방유정의 어머니가 열정적으로 요리를 집어 그의 앞접시에 건넸다.“이건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요리인데 맛봐요.”임지훈이 집어서 입어 넣고 먹어보더니 말했다.“맛있습니다.”방유정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고 방유정 아버지는 그에게 술을 따랐다.“평소 주량이 어떻게 돼요?”임지훈이 웃으며 대답했다.“못합니다.”방유정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었다.“잘 마실 것 같은데 너무 겸손하시네요.”임지훈이 말했다.“아니에요. 아니에요.”방유정은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아빠, 지훈 씨는 일이 바빠서 내일 프랑스로 돌아가야 해요. 일을 망치면 안 되니까 술을 많이 주지 마세요.”방유정 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그래.”“네. 그러니까 한 잔씩만 해요.”말하면서 방유정은 술을 가져갔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너 정말 분위기를 깬다.”방유정이 말했다.“두 분의 건강을 생각해서예요.”방유정 어머니는 술병을 들고 임지훈에게 한 잔 따르고 또 남편에게도 한 잔 따랐다.“많이 마시게 되면 우리 집에 방이 많으니 그냥 휴식하면 돼요. 비행기는 내일 타면 되는데 급해 할 거 없잖아요.”방유정은 어머니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엄마, 이 사람을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집에서 잠을 자래요?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려고요?”“걱정하지 마. 조사해 봤는데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야.”“...”“...”방유정과 임지훈이 순간 놀랐다. 방유정은 평생 살면서 이렇게 굴욕적인 순간을 느낀 적이 없었다. 몇 년 동안 쌓아온 체면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만든 건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의 부모님이었다.방유정 아버지는 아내를 힐끗 쳐다
“지훈 씨는 취미가 뭐예요?”방유정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임지훈은 방유정의 물음에 잠시 당황하다가 자신의 생활을 떠올렸는데 일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휴가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에 심재경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계속 일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취미는 더구나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본인의 생활이 정말로 단조롭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옆에서 따뜻하게 말 한마디 건네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순간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내를 맞이해서 함께 서로 보살펴주며 지내고 싶었는데 그런 사람만 있다면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고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방유정을 바라봤는데 본인과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방유정은 아직도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라 다른 사람을 보살필 줄은 모를 것 같았다.“왜 그런 이상한 눈빛으로 봐요?”방유정의 물음에 임지훈이 되물었다.“어디가 이상한데요?”방유정은 좀 더 가까이 가서 그의 눈을 마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왜요? 설마 저를 사랑하게 된 건 아니죠?”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당신은 성격도 안 좋고 또 엄청 잘난체하는데 내가 왜요? 점심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제 들어가요.”시간을 보며 임지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굶었어요?”방유정이 그를 비웃었다.“식사 끝나면 저는 가도 되죠.”방유정은 순간 왠지 서운했다.“그렇게 가고 싶어요?”“여기는 제집이 아닌데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요.”방유정은 그를 향해 입을 삐쭉거리자, 임지훈은 의아해했다.“왜 그래요?”“내가 뭐요?”방유정은 짜증을 냈다.“유정 씨는 정말 변덕이 많네요. 그걸 고쳐요. 남자들은 변덕이 많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요.”방유정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집안으로 걸어들어갔다.임지훈은 고개를 돌려 못에 있는 물고기들을 한 번 더 보고는 뒤따라 들어갔다. 방유정이 집에 들어서자, 그녀의 어머니가 그들을 부르러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딸만 보였기에 그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