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이 들지 않았어도 이 말에 놀라 정신이 들 것 같았다.그녀는 조심스럽게 그를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언제 돌아왔어요?”한 마디를 두 번이나 묻는 것을 보니, 십중팔구 아직 정신이 들지 않은 것 같다.“먼저 돌아가.”강세헌의 말투는 덤덤했다.“...”아직도 그녀에게 화가 난 건가?송연아는 힘껏 얼굴을 비볐다.“그게...”“술이 좀 깨고 난 후에 얘기하자.”강세헌이 그녀를 말을 끊었다.“...”송연아는 입을 앙다물었다.그래, 어쨌든 지금 송연아는 몸이 불편했고 정신이 좀 들었지만, 술 때문에 속이 좋지 않았다.그녀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고 차는 안정적으로 가고 있었다.송연아는 졸음이 쏟아졌고 눈꺼풀이 무거워 천천히 눈을 감았다.강세헌은 그녀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는데, 옷이 쭈글쭈글할 뿐만이 아니라 맨발이었다.그의 얼굴은 저절로 어두워졌고 잔소리를 하려고 했지만 피곤해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애써 참았다.이 시간대에 도로에 차가 많지 않아서 얼마 지나지 않아 집에 도착했지만, 송연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마치 잠자는 숲속의 공주가 된 것만 같았다.강세헌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화가 치밀어도 그녀를 외면할 수 없었기에 차 문을 열고 먼저 내려 그녀를 등에 업었다.송연아는 비록 그 과정에서 깨어났지만, 눈은 뜨지 않았고 그저 흐뭇했다.강세헌은 화가 났지만 그녀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아직도 그녀를 아낀다는 것이 아닌가?분명 그럴 것이다.그렇게 생각하니 송연아의 마음은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고 편안하게 그의 등에 기대어 꿈나라로 갔다.강세헌은 송연아를 방으로 데려왔고 그녀가 더럽다며 짜증을 냈지만, 몸은 성실하게 수건을 적셔 그녀를 닦아주고 있었다.송연아는 편안히 누워있었고 그녀가 세상 모르게 자고 있을 때, 누군가가 자신을 안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코끝에 은은한 바디워시 향기가 맴돌아 기분이 좋았다.송연아는 강세헌의 품에 더 비집고 들어갔다.희미하게 낮은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들려왔다.“나 보고 싶었어?
송연아는 원래 아무것도 모르는 척, 아무 일도 아닌 척 가볍게 이 일을 넘기려고 했다.그런데 강세헌의 태도를 보았을 때, 그녀가 이 일을 분명하게 말하지 않으면, 결코 쉽게 넘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그녀는 목청을 가다듬었다.“사정은 이래요... 재경 선배가 바람을 피운 탓에 이슬 언니랑 재경 선배 사이가 틀어졌잖아요. 그래서 언니가 마음이 너무 괴롭다고 같이 한잔하자고 했어요... 그래서 계속 마시다 보니까 만취한 거고요.”“근데 왜 고훈과 함께 있었을까.”이것이야말로 강세헌이 제일 관심하고 신경 쓰이는 부분이었다.송연아는 계속해서 설명했다.“이슬 언니가 술을 마시자고 했는데, 딱히 갈 곳이 없었어요. 근데 고훈이 좋은 곳이 있다고 해서...”뒤로 갈수록 그녀의 목소리는 작아졌다.“그래서 이슬 언니랑 함께 그의 사설 클럽으로 갔어요.”“그다음엔?”“고훈은 저희가 있는 룸 밖에 있었고 난 언니랑 둘이서만 룸에서 술을 마셨어요. 정말이에요, 못 믿겠으면 CCTV를 확인해봐요.”그녀는 어제 술을 많이 마셨지만, 취하기 전의 일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윙윙.책상 위에 놓인 강세헌의 핸드폰이 갑자기 진동했다.그가 손을 뻗어 핸드폰을 집어 들자, 고훈이 또 한 장의 사진을 보냈는데, CCTV 캡처 사진이었다.그것도 고훈이 송연아를 안고 있는 모습이다.당시 송연아는 화장실을 가려다가 테이블 모서리에 걸려 넘어지는 바람에 의도치 않게 품에 안긴 것이었다.고훈은 얍삽하게 앞,뒤를 다 자르고 제일 다정한 부분만 캡처해서 보냈다.각도 때문에 부축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고 둘이 포옹하는 것 같았다.강세헌의 안색이 어두워졌다.“...”송연아는 강세헌의 핸드폰 화면을 보려고 고개를 내밀었다...사진을 본 순간,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그녀의 얼굴도 점점 일그러졌다.“테이블 모서리에 걸려서 넘어질 뻔한 나를 그 사람이 잡아줬을 뿐이에요.”그녀는 서둘러 해명했고 마음속으로 고훈을 죽도록 욕했다.고훈은 왜 이런 쓸데없는 걸 강세헌에게 보낸
눈앞의 사람을 보자, 송연아의 원래부터 좋지 않았던 안색이 더 나빠졌다.“송연아, 너희 교수님이 어떻게 주혁의 아버지를 찾아냈고 또 어떻게 그에게 이 일을 추궁하지 말라고 설득했는지는 모르지만, 난 널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거야.”최지현의 눈이 험상궂다.송연아는 두 걸음 물러서 그녀와 거리를 두었다.“네 아이가 왜 없어졌는지, 내가 더 말하지 않아도 너 스스로 잘 알고 있잖아. 네가 이 일에 계속 이렇게 집착해서 얻는 건 아무것도 없어, 가장 손해 보는 건 너라고.”“네가 날 해친 거야, 너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된 거 아니야?”최지현은 자신의 처지가 이렇게 된 건 모두 송연아의 탓이라고 생각했다.송연아만 아니었다면, 강세헌과 충분히 함께할 수 있었다.다 그녀 때문에 자신이 강세헌의 미움을 받는 것이다.“다 너 때문이야!”그녀의 눈이 빨갛게 충혈되었다.송연아는 이미 이성을 잃은 그녀와 더는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끝없는 욕심과 집착은 악의 근원이야. 근데 넌 어떻게 그 두 가지에 다 해당하니?”송연아의 태도는 한없이 차가웠다.“네가 계속해서 정신 못 차리면, 지금 너를 사랑하는 주혁도 잃게 될 거야. 네가 잃어버린 건 주혁의 핏줄이라고.”송연아는 일부러 그렇게 말했는데, 멀지 않은 곳에서 걸어오는 주혁을 보았기 때문이었다.그러나 최지현은 등지고 있었기에 자신의 뒤에서 누가 다가오는지 몰랐고 눈에는 그저 송연아에 대한 분노로만 가득 차 있었다.“내가 없앴다고 해서 뭐? 지금 주혁은 네가 날 계단에서 밀어서 유산된 줄 알아. 그 사람은 널 미워하고 네가 그 사람 아이를 잃게 만든 거니까, 반드시 너한테 복수할 거야. 송연아, 이제 편히 지낼 생각은 하지 마!”최지현이 낮은 목소리로 협박했다.송연아는 웃으며 말했다.“그래, 난 널 어떻게 할 수 없어. 그저 내가 이해가 안 가는 건 어떻게 넌 네 아이한테 그런 짓을 할 수 있냐는 거야. 잊지마, 그 아이는 네 핏줄이야...”“내 핏줄이면 뭐? 난 애초부터 이 아이를 낳고 싶지
“강세헌은 당신한테 화 난 게 아니라 나한테 화났어요. 당신 지금 이러는 게 우리 사이를 이간질한다는 건 알고 있어요?”송연아가 말했다.“당신 이런 사람인 줄은 몰랐네요.”고훈은 정말 강세헌을 화나게 하려고 했을 뿐이었다.송연아에게 누를 끼친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고 했다.지금 송연아가 그에게 화를 내도 크게 나무랄 것이 없었다.고훈은 실실 쪼개며 말했다.“아이고, 이렇게 생각해요. 만약 강세헌이 이 일로 당신을 믿지 못해 화를 냈다면, 당신을 많이 사랑하지 않는다는 거예요.”“꺼져줄래요?”송연아는 참지 못하고 폭언을 날렸다.이건 사랑하는지 안 하는지, 믿는지 안 믿는지의 문제가 아니었다.마찬가지로 강세헌이 만취한 상태에서 다른 여자와 한 방에 있었다면, 똑같이 화가 났을 것이다.강세헌이 이것 때문에 감정이 상했다는 것을 그녀는 이해했다.신뢰의 부분에 있어서, 강세헌과 함께 한 시간이 길지 않아 신뢰가 두텁지 않은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리 큰 단점은 아니었다.송연아는 시간이 오래되면 그들은 무조건 서로를 믿어 줄 것으로 생각했다.“그날 밤의 모든 CCTV 영상을 세헌 씨한테 줘요.”송연아가 불쑥 입을 열었다.고훈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다.“왜, 싫어요? 잊지 말아요, 내가 당신 어머니를 구했어요. 지금 은인한테 이렇게 보답하겠다는 거예요?”고훈은 얼른 해명했다.“아니... 아니요...”“좀 빨리 말해요, 우물쭈물하지 말고.”송연아의 인내심이 바닥을 보였다.고훈은 사실을 토로했다.“클럽의 CCTV는 당신이 걸려 넘어질 때, 나한테 안긴 부분 빼고는 다 삭제했어요...”송연아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일부러 그런 거죠?”고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사실대로 말했다.“네, 일부러 그랬어요. 강세헌한테 보여주려고요.”“야, 넌 그냥 가서 죽는 게 낫겠어.”송연아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고훈은 송연아가 이렇게 예의가 없는 모습을 처음 보고는 일의 심각성을 느꼈다.“진짜로 화
송연아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들이 말하는 일에 전혀 관심이 없는 척했다.누구나 다 비밀 한 개씩은 가지고 있지 않은가?구진학은 별말이 없는 그녀를 보고는 꽤 믿을만 하다고 생각되었는지 입을 열었다.“알았어, 내일에 그 사람과 같이 올게.”“내가 미리 준비하고 있을게. 아마 아침에 처음으로 검사 받을 거야. 네가 걱정하는 거 알아. 그래서 너무 많은 사람과 접촉하지 않게 우리가 조심할게.”주석민이 말했다.“그래, 이번 일은 네가 신경 좀 많이 써줘.”구진학이 일어났고 주석민은 문 앞까지 배웅했다.잠시 후, 주석민이 돌아왔다.송연아는 시종일관 입을 열지 않았고 그는 만족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안 궁금해?”송연아가 말했다.“궁금하죠. 근데 다른 사람의 비밀에 대해서는 함부로 묻지 않는 게 맞는다고 생각해요.”주석민은 피식 웃었고 서랍을 열어 저번에 송연아가 정리했던 환자 파일을 꺼내 들었다.그녀는 파일 속 여자의 사진을 보고 두 눈을 의심했는데, 이 환자와 강세헌의 어머니는 너무 닮아있었다.방금 주석민과 구진학의 대화에 언급된 ‘그 사람'은 혹시 이분일까?저번에 송연아는 사람의 생김새만 주의했지, 어떤 문제가 있는지는 주의하지 하지 않았다.“이분은 어디가 아프신지...?”그녀가 물었다.주석민이 말했다.“몸에 아무런 문제는 없어.”“없... 없다고요?”송연아는 궁금했다. 아무런 병도 없으면서 회진은 왜 한단 말인가?비록 진단기록이 있지만 이 기록은 병원 컴퓨터에 보관되어 있지 않았고 오직 주석민만 파일로 가지고 있었다.주석민이 말했다.“이건 다른 사람의 개인적인 일이니 함부로 말하고 다니지 말고 여기저기 알아보고 다녀서도 안 되는 건 알지?”송연아는 고개를 끄덕였다.“네.”“너 CT실에 가서 내일 아침에 누가 출근하는지 좀 봐봐. 그리고 오후에 너 수술 하나 잡혔어.”송연아는 알았다고 했다.그녀는 의사 가운의 주머니에 손을 넣고는 CT실 쪽으로 갔는데, 강의건과 전 집사가 대화를 나누면서 입원실로 향하는 것을 보
강세헌의 책상에 놓인 사진과 그녀가 본 진료 기록 파일에 의하면, 겉으로는 아무 상관도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밀접한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그래서 내일에 내가 그 여자를 만난다고?’예전 같으면 다른 사람의 일은 묻지 않았을 텐데, 이건 강세헌에 관한 것이었다.송연아는 반드시 방법을 찾아서 이 진료 기록 파일 속의 여자가 강세헌의 어머니인지 아닌지 알아내야 했다.그리고 그 구진학이라는 남자는 또 어떤 사람이고 왜 그 여자와 함께 있는 것일까?그는 임옥민과 닮은 그 여자를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싶어 하지 않은 것 같았다.이 안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이다.생각이 선 그녀는 CT실에 갔고 주석민을 찾으러 돌아갔지만, 그는 자리에 없었다. 그녀는 책상 앞에 서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끝내는 그 파일을 집어 들었다.송연아는 살짝 빼내어 보았다.안 보면 모르지만, 보니까 깜짝 놀랐다.이 파일에는 주석민이 구민이라는 여자에게 개두수술을 해준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다.주석민은 심장에 관한 수술이 전문이지 않은가?어떻게 뇌수술을 할 수 있지?구민의 뇌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는 기록하지 않았고 수술 과정만 기록했는데, 그녀가 결정적인 것을 보려고 할 때, 문밖에 누군가가 인사하는 소리를 들었다.“교수님.”주석민이 돌아오자, 송연아는 서둘러 파일을 원위치에 갖다 놓았다.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고 주석민이 들어오자 웃으며 말했다.“교수님, 방금 어디 가셨어요? CT실에 다녀왔는데, 내일 아침은 이 선생님이 출근한답니다.”책상을 한 번 둘러본 주석민은 별다른 점을 눈치채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내일 아침 일찍 출근해. 이제 가서 일 봐.”송연아는 몸을 돌려 걸어 나갔다.주석민은 책상 앞에 앉아 서류 가방을 응시했고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그는 송연아가 본 것을 알고 있지만 일부러 말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그녀는 주석민의 사무실을 나서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 이런 일을 해서 아직도 간이 콩알만 해 있었는데, 갑자기 핸
심재경은 발걸음을 멈추었지만, 돌아보지는 않았다.“아무것도 묻지 마. 이슬이가 그러면 그런 거야. 아무튼 내가 이슬한테 미안할 짓을 했어.”그가 말을 이렇게도 확고하게 하니, 송연아도 더는 어떤 말을 하기가 어려웠다.“그럼 선배, 조심해서 가요.”심재경은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는 성큼성큼 걸어갔다.송연아는 다시 일하러 갔다....그 시각 송가네.안이슬은 인제 그만 떠나려고 짐을 싸고 있었다.한혜숙이 친절하게 도와줬다.“만약 연아가 보고 싶으면, 여기가 네 집이라고 생각하고 언제든지 놀러 와. 어쨌든 방이 많은데, 내가 방 하나를 남겨 두면 되지 뭐. 잘 곳은 언제나 있어.”안이슬을 버티게 할 수 있었던 강인함이 결국, 이 따뜻함 앞에서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눈물이 왈칵 쏟아졌고 그녀는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아주머니, 정말 감사합니다.”“감사하긴.”한혜숙이 그녀의 손을 꼭 잡고는 토닥거렸다.“너랑 연아는 자매처럼 정이 깊고 또 네가 연아한테 많은 도움을 줬으니까, 너도 연아와 같은 내 자식이야.”한혜숙이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안이슬은 도저히 말을 하지 못했는데, 입만 열면 목이 메었다.아무리 참아 보려고 해도 안 되었다.그녀는 짐을 다 정리했고 한혜숙이 문 앞까지 배웅했다.송예걸은 집에 두고 온 물건이 있어 가지러 왔다가 간단한 짐을 들고 나가는 안이슬을 보고는 눈이 번쩍 뜨였다.“어디 가려고요?”“청양시로 돌아가려고. 다음에 기회가 되면, 누나가 맛있는 거 사줄게.”송예걸이 말했다.“가지 말아요.”안이슬은 그를 바라보았다.“여기가 내 집도 아니고, 어떻게 계속 있겠어. 여기서 지내는 동안 챙겨줘서 고마워. 네가 나한테 잘해준 거 잊지 않을게, 나중에 기회가 되면 누나가 널 거두어 줄게.”그녀는 농담으로 말했다.“부디 네가 가출하지 말았으면 좋겠네.”송예걸이 말했다.“조금만 더 있으면 안 돼요?”안이슬이 대답했다.“난 여기에 충분히 오래 머물렀고, 아직 할 일도 남아 있어서 안 돼.”송예걸은
고훈의 이 말은 분명 적나라한 도발이었다.“그래?”강세헌은 입꼬리를 가볍게 치켜들었고, 낮고 발음이 똑똑한 목소리는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듯 묵직하고 날카로웠다.고훈은 경계하며 강세헌을 쳐다보았다.“그래, 네가 보면 분명히 화낼 거야... 사실 나와 송연아는 아무것도 없었어. 내가 CCTV를 지운 건 네가 오해를 할까 봐 두려워서야.”그는 차라리 해명하지 않는 것이 더 나았다. 그가 설명하면 할수록 마치 어젯밤에 정말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았다.“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대표님, 제가 보기에는 남한테 들킬까 봐 지운 것 같아요.”임지훈이 고훈을 꼴보기 싫어한 것은 하루 이틀이 아니었고 항상 그가 파렴치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훈은 원래 설명하려고 왔지만, 결과는 뜻대로 되지 않았고 도리어 그가 무슨 나쁜 일을 저질렀다고 인정한 것 같았다.강세헌의 안색은 더 안 좋아졌다.고훈은 계속 말할 수나 있을까?계속 말하거나, 그가 가지고 있는 두 개의 영상을 강세헌에게 보여준다면 그가 더 오해하지 않을까?그만두자.“어쨌든 난 아무것도 안 했어. 믿든지 말든지.”말을 마치고 고훈은 뒤돌아서 도망쳤다.그렇다, 뛰었다.그는 뛰지 않으면, 강세헌에게 잡힐까 봐 두려웠다.하지만 그의 행동은 다른 사람의 눈에는 진짜 도둑이 제 발 저린 것처럼 보였다.“고훈 이 비겁한 놈이 정말 아무 짓도 안 했는지 모르겠네요.”임지훈이 말했다.강세헌이 송연아의 몸을 닦아주었기에 그녀의 몸은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다는 것은 확인되었다.하지만 고훈의 태도가 너무 의심스러웠다.“저 새끼 컴퓨터를 해킹할 방법을 찾아야겠어.”고훈이 만약 CCTV 내용을 보류하고 있다면, 반드시 찾을 수 있을 것이다.“네, 최대한 빨리 처리하겠습니다.”임지훈은 최선을 다할 것이다.윙윙.강세헌의 핸드폰이 갑자기 울리기 시작했다.그는 전화를 받았다.진원우가 건 전화였다.“대표님.”강세헌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물었다.“감정 결과가 나왔다고?”“네.”“말해봐.”“그 구민이
결혼식을 마친 후 방유정 아버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떠나기 전에 임지훈에게 회사를 완벽하게 인계하려고 회사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임지훈은 송연아와 강세헌 일행과 같이 먼저 프랑스로 돌아가서 그쪽 일을 마무리했다. 비록 임지훈이 회사에 있으면 강세헌은 보다 한가하게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가 떠난다고 해도 그냥 조금 더 바쁠 뿐이다. 어느 회사든 누가 떠나면 절대 안 되는 건 없다. 일주일의 시간 동안 임지훈은 프랑스에서의 일들을 모두 마치고 귀국해서 방씨 가문 회사에 들어갔다.임지훈도 국내에 집이 있었지만 방유정과 같이 방씨 가문에 들어갔다. 데릴사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유정 아버지의 병을 알고 방유정이 부모님과 많을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였다. 임지훈 역시 사위로서 그럴 의무가 있었다....반년 후, 방유정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방유정 어머니는 그 충격에 순식간에 많이 늙었다.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집안 분위기는 아주 저조했는데 방유정의 대부분 시간은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예전의 임 비서는 이제 임 대표가 되어 그의 능력으로 방씨 가문은 아주 관리가 잘 되었고 3개월 후 방유정 어머니의 상황도 많이 좋아졌다.방유정이 드디어 임신하게 되면서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간 일도 어느 정도 잊혀가고 있었다. 임지훈은 곧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기뻤고 방유정도 곧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방유정 어머니 역시 곧 외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정말로 모두 행복해할 만한 일이었다.방유정이 임신 6개월 때 그들은 프랑스로 갔는데 구애린은 남자아이를 낳았고 심재경의 딸은 이제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샛별이가 유일한 여자아이여서 모두가 예뻐했다. 샛별이는 아직 작고 어렸지만 찬이를 쫓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찬이는 샛별이 다리가 짧다고 계속 놀려줬으며 그게 재밌다고 샛별이는 키득키득 웃었다. 찬이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면 샛별이는 오빠라고 불렀는데 너무 귀여웠다.방유정이 말했다.“저도 딸을 낳고 싶어요.”구애린이 말했다.“그게
비록 손을 놓기 싫었지만, 방유정 아버지는 결국 방유정의 손을 임지훈에게 넘겨줬다.“앞으로 계속 사랑하며 살기를 바란다.”방유정도 아버지에게 말했다.“꼭 그렇게 할게요.”이어서 결혼식은 순서대로 일사천리로 피로연까지 모두 순리롭게 진행되었다.방유정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는데 딸이 그렇게도 바라던 결혼을 하니 너무 기뻤다. 그런데 결혼시키고 나니 또 잘 살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세상의 부모들은 다 그런가 보다.임지훈은 방유정을 데리고 강세헌이 있는 테이블로 가서는 비록 모두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소개했다. 모두 방유정을 다시 한번 소개받았는데 이번에는 심재경 친구의 사촌 동생이 아닌 임주훈의 아내로 말이다.구애린이 웃으며 말했다.“정말 너무너무 축하해요.”방유정도 웃으며 대답했다.“고마워요.”윤이도 어른들 따라 한마디 했다.“축하해요.”방유정은 윤이를 보며 말했다.“너무 귀여워요.”그녀가 손을 뻗어 윤이의 얼굴을 만지자, 윤이가 손을 내밀었다.“안아줘요.”송연아가 미간을 찌푸렸다.“윤이야, 안 돼.”방유정이 말했다.“괜찮아요.”그녀는 윤이를 안으며 말했다.“무겁지 않아요.”윤이는 그녀의 머리에 있는 금색 비녀를 보고 만지려고 했다. 방유정이 한복을 입고 있었기에 머리에 비녀를 하고 있었다. 방유정은 아주 시원하게 바로 비녀를 빼서 윤이에게 주었는데 송연아는 윤이를 제지하지 못해서 미안해했다.“이러면 안 돼요. 오늘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괜찮아요. 그냥 액세서리일 뿐이에요. 윤이가 좋아하니 놀게 해요.”방유정은 정말 성격이 좋았다. 역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만큼 성품이 좋았다. 가끔 조금 오만하긴 하지만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모두 그녀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송연아는 윤이를 안고 달래려고 했다.“윤이 착하지. 이건...”송연아는 윤이가 방유정을 어떻게 부르면 될지 생각했는데 방유정이 웃으며 말했다.“호칭일 뿐이니까 편
“지금 막 들었는데 유정 씨와 결혼한다면서요. 지금 방씨 가문에서 결혼식을 준비한다고 난리 났어요.”임지훈이 웃었다.“저 이래 봐도 능력 있는 남자예요. 여자들한테도 인기 많아요. 봐요, 결혼도 금방 하죠?”구애린이 말했다.“이제 우리 모두 짝이 있네요.”찬이도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지훈이 삼촌, 축하해요.”“고마워.”임지훈이 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심재경이 물었다.“그런데 데릴사위로 들어간다고 하던데요?”심재경의 말에 모두 놀라며 시선이 일제히 임지훈에게로 향했다. 확실히 놀랄만한 일이다. 임지훈의 조건에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돈도 있고 능력도 있어서 충분히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데 말이다.“하긴, 방씨 가문에 가장이 필요하긴 해요.”심재경이 그쪽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한마디 했다....임지훈의 결혼식으로 송연아와 강세헌도 프랑스로 돌아가는 일정을 늦췄다. 아무도 심재경의 결혼식을 보러 왔다가 임지의 결혼식까지 보게 될 줄을 생각을 못 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이건 임지훈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듯이 방유정과의 결혼은 정말로 찰나의 결정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그 역시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임지훈이 진원우에게 말했다.“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진원우가 말했다.“그런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방씨 가문은 돈도 많고 유정 씨도 예쁘고 그 정도면 만족해야지.”“만족해. 다만 너무 빠른 것 같아서 그래.”귀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싱글이었는데 이제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결혼식은 방씨 가문에서 모두 준비했는데 방유정 딸 하나이고 또 사위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결혼식은 아주 성대하게 치렀다. 방씨 가문의 친척들도 꽤 많이 참석해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비록 데릴사위라고 하지만, 임지훈 측은 심재경이 준비했는데 심재경 본인도 금방 결혼식을 치렀기 때문에 익숙한지라 아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었다....방유정은 정교한 메이크업을 하고 값진 웨딩드레스를 입었는
“잠도 잤는데 왜요? 모른 척하려고요?”방유정이 옷을 입더니 침대에서 꼼짝 안 하는 임지훈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왜요? 계속 그렇게 누워 있을 거예요?”임지훈이 말했다.“내 옷을 가져오지 않았잖아요. 나 입을 옷 없어요.”방유정은 그제야 임지훈이 옷이 없다는 걸 생각했다.“가져다 줄게요.”그녀는 곧바로 차에 가서 캐리어를 가지고 다시 올라갔다.“뭐 입을지는 알아서 찾아서 입고 내려와요. 아래층에서 기다릴게요.”방유정은 말을 마치고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임지훈은 침대에서 내려 결혼 얘기이니만큼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정장을 찾아서 입었다. 그가 정리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방유정은 부모님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의 부모는 그를 보자마자 더욱더 열정적이었다.임지훈이 건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저기...”“우리 딸 줄게요.”“아니에요. 지훈 씨가 저한테 시집 오는 거예요.”방유정이 정정했다.“...”“...”“...”방유정을 제외한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물었다.“유정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방유정은 자신이 여자이며 이 집안에 다른 후계자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아버지가 중병이고 자기는 회사를 관리할 능력도 없기에 어찌 보면 자기가 남편을 찾는다기보다는 방씨 가문의 회사를 경영할 사람을 찾는 거였다. 인제야 그녀는 부모가 조급해하는 의도를 이해했고 그녀 역시 가문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에 임지훈이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임지훈을 각별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그런 것들 때문이지 않겠는가.“유정 씨,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임지훈은 뼈대가 있는 남자로서 데릴사위 할 생각은 없었다.방유정이 말했다.“후회하면 안 돼요!”“왜 안 돼요? 유정 씨가 뭘 원하든지 저 모두 만족시켜 줄 수...”“제가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예요.”방유정이 외치자, 임지훈은 오히려 우스웠다. 한 여자가 나한테 시집오라고 하다니!“우리 유정이가 시집가는 거 맞아요
지금 그녀가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물으면 부모님은 더 속상해할 것 같았다.‘나 이제 어떻게 해야지? 어떻게 하면 좀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지? 결혼, 그래 결혼해야 해.’그녀는 자기가 결혼해야만 부모님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 상대도 지금 바로 방에 있지 않겠는가?‘남자 친구인 척을 해줬으니 이제 남편인 척해달라고 해야지. 진짜가 아니고 가짜라도 되니까 결혼하자고 해야겠어.’방유정은 진료 기록부를 다시 원래 위치에 넣고 비틀거리며 부모님 방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갔는데 임지훈이 아직 욕실에서 나오지 않아 침대 옆에 앉아서 기다렸다. 한참 지나자, 임지훈은 가운을 두르고 욕실에서 나왔는데 침대에 자기의 옷이 보이지 않아 방유정의 옆에 서서 물었다.“내 옷은요?”그는 방유정이 잊은 것 같아서 다시 말했다.“내 옷은 지금 당신 차 트렁크에 있어요.”방유정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지훈 씨, 우리 결혼해요.”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약을 잘못 먹었어요? 아니면 정신이 어떻게 됐어요?”“다 아니에요. 그냥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거칠었는데 임지훈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물었다.“울었어요? 누가 괴롭혔어요? 얘기해 봐요. 제가 가서 때려줄게...”임지훈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방유정이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임지훈은 갑작스러운 친밀감에 몸이 굳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게... 유정 씨...”그가 말하려고 할 때 방유정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의 손이 아래로 드리는 순간 몸에 걸친 유일한 가운마저 벗겨져서 흘러내렸다.“...”방유정은 워낙 임지훈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지금 행동이 충격에 의한 도발적인 행동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웃옷의 단추를 벗겨 가슴을 드러내고는 그의 가슴에 가까이하며 말했다.“저를 좀 봐봐요.”임지훈은 참을 수 없었는지 목젖을 굴렸는데 이름 모를 불길이 아랫배에서 솟아오르더니 순식간에 딱딱해졌다.“정말 후회하지 않겠어요?”임지훈도
방유정은 어머니가 자신의 어깨를 다독이자,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응원을 하시는 거였다.“화이팅!”방유정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지금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지?’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만 좋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갑자기 선 자리를 만들어주고 남자를 유혹하라고까지 하시다니?그녀는 어머니의 이마를 만지며 물었다.“엄마,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우리 이제 나가야 해.”방유정의 아버지는 기사가 이미 대기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집을 나갔고 방유정은 문 앞까지 그들을 배웅했다. 차가 떠나자, 그녀는 집으로 들어갔는데 어차피 임지훈이 자고 있었기에 지루할 것 같아서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그녀는 가만히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는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했다. 그런데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서 임지훈을 놀려주려고 그가 곤히 자는 방으로 올라가서는 화장대에서 화장품을 가져다가 침대 옆에 앉아 임지훈에게 예쁜 화장을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도 임지훈이 깨지 않자, 옆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눈이 아파 오니 옆에 기대서 잠이 들었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는 임지훈은 이미 깨어나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언, 언제 깼어요?”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방유정은 참을 수 없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훈의 얼굴은 정말로 오페라 가수 같았는데 어찌나 웃었는지 배가 아팠다. 임지훈은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물었다.“다 웃었어요?”방유정은 곧바로 웃음을 거두고 그의 손을 뿌리쳤다.“맘대로 제 몸에 손을 대지 말아요.”임지훈이 말했다.“유정 씨를 저에게 준다고 해도 거절이에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말했다.“뭐라고요? 저를 좋다고 하는 남자들이 줄을 서면 프랑스까지는 갈 거예요. 그런데 지훈 씨는 내가 싫다고요?”임지훈이 흠칫하자, 방유정이 그를 잡고 물었다.“지금 그
“방유정은 부모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알았어요. 하시고 싶은 대로 하세요.”“어서 지훈 씨 방으로 데려가.”방유정이 물었다.“어느 방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제야 깨달은 듯 말했다.“어머, 어떡해. 게스트룸은 아직 준비가 안 돼있어. 우선 네 방으로 데려가서 휴식하게 해.”방유정은 어머니의 말에 놀라며 말했다.“아빠, 엄마, 이 정도로 오픈 마인드였어요? 어떻게 제 방에 술 취한 남자를 데려가라고 하세요?”“네 말대로 취했는데 뭐 어때?”“술김에 어떤 짓도 한다는 말 몰라요?”방유정이 묻자, 그녀의 부모님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몰라.”방유정은 철저히 말문이 막혔다. 부모님과 임지훈이 정말로 모르는 사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임지훈이 그들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엄마 아빠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아무리 나를 결혼시키고 싶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만약 진짜로 무슨 일이 있으면 책임지라고 하고 바로 결혼시킬 거야.”임지훈은 그 말을 들으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바탕 뿜었다. 방유정의 부모님이 너무 열정적이어서 본인이 천당에 있는 것 같았는데 정말로 귀여운 부모님들이라고 생각했다.‘방유정은 전생에 은하계를 구했나 봐.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고 말이야.’방유정은 역겨워하며 말했다.“지훈 씨, 여기서 이러면 어떡해요. 화장실로 가야지.”“취했잖아.”방유정 어머니가 가정부를 불러 치우게 했다.“그만하고 불편해 보이는데 어서 방으로 데려다 쉬게 해.”방유정은 혼자서 임지훈을 옮길 수 없어서 가정부의 도움을 받아 함께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방에 도착하자, 그녀는 임지훈을 침대에 던졌는데 임지훈은 몸이 포근한 세계에 떨어진 듯 따뜻하고 향기로웠다.“무슨 향수를 써요?”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방유정이 말했다.“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잠이나 자요.”임지훈은 취한 건 사실이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말짱했다. 그는 눈을 감고 또 말했다
임지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요. 해명하지 않아도 화는 나지 않았을 건데, 굳이 해명하니 용서해 줄게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삐쭉거렸다.“그렇게 잘난 척하지 말아요. 그럼 좋은 말이 안 나가니까.”“...”임지훈이 할 말을 잃었다.그때 방유정의 어머니가 열정적으로 요리를 집어 그의 앞접시에 건넸다.“이건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요리인데 맛봐요.”임지훈이 집어서 입어 넣고 먹어보더니 말했다.“맛있습니다.”방유정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고 방유정 아버지는 그에게 술을 따랐다.“평소 주량이 어떻게 돼요?”임지훈이 웃으며 대답했다.“못합니다.”방유정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었다.“잘 마실 것 같은데 너무 겸손하시네요.”임지훈이 말했다.“아니에요. 아니에요.”방유정은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아빠, 지훈 씨는 일이 바빠서 내일 프랑스로 돌아가야 해요. 일을 망치면 안 되니까 술을 많이 주지 마세요.”방유정 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그래.”“네. 그러니까 한 잔씩만 해요.”말하면서 방유정은 술을 가져갔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너 정말 분위기를 깬다.”방유정이 말했다.“두 분의 건강을 생각해서예요.”방유정 어머니는 술병을 들고 임지훈에게 한 잔 따르고 또 남편에게도 한 잔 따랐다.“많이 마시게 되면 우리 집에 방이 많으니 그냥 휴식하면 돼요. 비행기는 내일 타면 되는데 급해 할 거 없잖아요.”방유정은 어머니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엄마, 이 사람을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집에서 잠을 자래요?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려고요?”“걱정하지 마. 조사해 봤는데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야.”“...”“...”방유정과 임지훈이 순간 놀랐다. 방유정은 평생 살면서 이렇게 굴욕적인 순간을 느낀 적이 없었다. 몇 년 동안 쌓아온 체면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만든 건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의 부모님이었다.방유정 아버지는 아내를 힐끗 쳐다
“지훈 씨는 취미가 뭐예요?”방유정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임지훈은 방유정의 물음에 잠시 당황하다가 자신의 생활을 떠올렸는데 일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휴가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에 심재경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계속 일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취미는 더구나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본인의 생활이 정말로 단조롭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옆에서 따뜻하게 말 한마디 건네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순간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내를 맞이해서 함께 서로 보살펴주며 지내고 싶었는데 그런 사람만 있다면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고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방유정을 바라봤는데 본인과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방유정은 아직도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라 다른 사람을 보살필 줄은 모를 것 같았다.“왜 그런 이상한 눈빛으로 봐요?”방유정의 물음에 임지훈이 되물었다.“어디가 이상한데요?”방유정은 좀 더 가까이 가서 그의 눈을 마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왜요? 설마 저를 사랑하게 된 건 아니죠?”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당신은 성격도 안 좋고 또 엄청 잘난체하는데 내가 왜요? 점심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제 들어가요.”시간을 보며 임지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굶었어요?”방유정이 그를 비웃었다.“식사 끝나면 저는 가도 되죠.”방유정은 순간 왠지 서운했다.“그렇게 가고 싶어요?”“여기는 제집이 아닌데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요.”방유정은 그를 향해 입을 삐쭉거리자, 임지훈은 의아해했다.“왜 그래요?”“내가 뭐요?”방유정은 짜증을 냈다.“유정 씨는 정말 변덕이 많네요. 그걸 고쳐요. 남자들은 변덕이 많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요.”방유정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집안으로 걸어들어갔다.임지훈은 고개를 돌려 못에 있는 물고기들을 한 번 더 보고는 뒤따라 들어갔다. 방유정이 집에 들어서자, 그녀의 어머니가 그들을 부르러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딸만 보였기에 그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