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당연히 물 흐르듯 대답할 수 있었다.“하평은 흉부외과가 제일 유명해요. 이 병원 흉부외과 의사 중에 ‘구세주’라고 불리는 의사가 있어요. 뛰어난 의술로 수많은 난치성 심장 질환을 치료했거든요.”원장이 뒷짐을 지고 가볍게 웃었다.“그 ‘구세주’를 방금 만나본 기분이 어때?”“제가 그분을 만났다고요?”송연아는 잠시 고민하더니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었다.“설마 아까 그 ‘포커페이스’는 아니죠?”그녀는 이것보다 더 적합한 단어는 떠오르지 않았다.냉담한 그 얼굴은 전혀 인간미가 없었다.“맞아, 이름은 주석민이고 흉부외과 주임교수이자 ‘구세주’로 불리는 우리 병원 간판 의사야.”송연아는 속으로 생각했다.‘그 면접관이 바로 내가 숭배하던 의사였어?’“어느 과에 지원하고 싶어?”원장이 물었다.“흉부외과요. 저는 인턴부터 시작할 수 있어요.”송연아는 자신의 경력이 주치의 자격에 못 미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녀는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그럼 자기소개 시작해봐.”원장은 그녀가 자신을 구했다고 해서 바로 채용한 게 아니라 여전히 엄격하게 지켜보았다.송연아의 이력은 상대적으로 간단한 편이었다. 졸업 후 그녀는 주치의를 따라다니며 2년 동안 작은 공책에 노트했는데 딴사람들은 그 과정을 마치는 데 모두 3년이 걸렸다.그녀를 가르치던 의사는 송연아가 똑똑한 걸 보아 그 과정을 1년 줄여주었다.그 뒤로도 반년 동안 훈련 받고 주치의와 함께 수술실에 들어갔으며 그녀 홀로 집도한 지는 고작 1년 밖에 안 되었다.송연아와 같은 연령대의 수많은 의사들은 메스도 잡아보지 못했으니 그녀는 비교적 천부적 재능이 있는 편이다.예전의 원장도 그녀의 이 점을 매우 높이 샀다.고생을 달갑게 받아들이고 재능도 있으니 잘 키우면 미래에 꼭 이름을 남길 수 있는 의사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다만 그녀의 인생길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많은 일들이 발생했고 송연아는 중도에 자신의 직업을 한동안 내버려 뒀다.그녀는 솔직하게 자기소개를 했다.
송연아는 말문이 막혔다.‘내가 언제 인맥을 이용했어? 원장님은 분명 내 의학 실력에 탄복해서 기회를 준 거잖아!’주석민은 매우 바빠 다 말한 뒤 훅 가버렸다. 송연아는 홀로 제 자리에 서서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앞으로 이런 사람과 함께 일해야 한다는 생각에 속이 뒤집힐 것 같았지만 꿈을 위해 포기할 수는 없었다.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앞으로 바람 잘 날이 없다는 걸 예감했다.하지만 그녀 혼자 나설 수 있을 때까지 잘 버티면 더이상 주석민의 화를 받아줄 필요도 없다. 의술만 배울 수 있다면 그녀는 뭐든 참을 수 있다.송연아는 병원을 나서서 차에 올라타며 기사에게 말했다.“우리 마트로 가요.”기사가 알겠다고 답했다.그녀는 면접에 합격해 기분이 좋았다. 오늘은 식자재를 조금 사서 그녀 스스로 음식을 만들 생각이었다.송연아는 본인이 의사라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강세헌에게 어떤 음식을 해줘야 그의 상처 회복에 도움이 될지 다 아니까.신호등을 기다릴 때 그녀는 무심코 밖을 내다봤는데 강윤석이 이지안을 껴안고 쥬얼리 가게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강세헌의 계획이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모양이다. 이지안이 이렇게 빨리 강윤석의 품에 안겼으니!장진희가 알면 화가 나서 죽을 지경이겠지?쯧쯧...송연아는 다시 생각해봐도 강세헌이 참 교활하고 간사한 사람인 것 같았다.파란 불이 켜지고 차가 떠나자 송연아도 시선을 거두었다.그녀는 물건을 사고 바로 집에 돌아왔는데 강세헌은 밖에 나가고 없었다.음식을 다 만들었는데도 그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이대로 두면 다 식을까 봐 그녀는 오은화와 기사를 불러 함께 식사했다.송연아가 음식을 많이 해서 안 먹으면 낭비였다.식사를 마친 후 오은화가 테이블을 정리했고 그녀는 찬이를 목욕시켜주었다.찬이는 샤워를 하고 개운해졌는지 침대에 누워서 놀다가 스르륵 잠들었다.샤워를 마치고 나온 송연아는 깊게 잠든 아들을 보더니 그를 반듯하게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녀는 찬이의 얼굴에 가볍게 뽀뽀했다.아
안이슬은 침대 머리맡에 앉아 한참 동안 침묵했다.송연아도 더 다그치지 않고 조용히 기다려주었다.“나 재경이랑 싸웠어.”이때 안이슬이 불쑥 입을 열었다.송연아는 흠칫 놀라더니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물었다.“두 사람 싸우기도 해요? 무엇 때문인데요?”“재경의 엄마는 애초에 재경이가 돌아가서 재산을 쟁탈해오고 통제권도 장악한다면 우리 둘이 사귀는 걸 허락한다고 하셨거든! 재경이가 이젠 심씨 일가의 통제권을 장악했는데 걔네 엄마가 또 다른 요구를 제기하는 거야. 우리가 결혼하는 건 되지만 나보고 무조건 사직하고 전업주부가 돼서 전적으로 재경이를 보살피래. 하지만 난 내 일을 포기하고 싶지 않거든.”“선배는 뭐래요?”송연아가 물었다.심재경을 언급하자 안이슬의 표정이 더 일그러졌다.“자기는 날 위해 좋아하는 직업도 포기했는데 왜 난 조금이라도 희생할 수 없냐고 하더라. 아니 그럼 우리 둘은 뭐 반드시 서로를 위해 희생해야만 이뤄질 수 있는 거야?”심재경이 그녀를 위해 희생했으니 그녀도 그에게 보답해야 한다. 안이슬은 이 도리를 잘 알고 있다.“연아야, 난 다른 방면으로 보상해줄 수 있어. 하지만 일을 그만두면 내겐 아무것도 남지 않아. 만에 하나...”송연아는 그녀가 안정감이 없어서 이러는 걸 잘 알고 있다. 안이슬은 가정 형편도 안 좋은데 일자리까지 없으면 오직 심재경한테 의지하게 된다. 만약 심재경이 그녀를 배신하면 그땐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안이슬이 뭘 우려하는지 송연아는 바로 이해했다.그녀였어도 가정을 위해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포기하는 걸 원하지 않을 것이다.다행히 강세헌은 그녀를 응원했다.여기까지 생각한 송연아는 강세헌에게 더 잘해줘야겠다고 다짐했다.모두가 강세헌처럼 그녀를 이해하고 응원하는 건 아니니까.“하지만 언니 직장은 청양시에 있잖아요. 언니가 사직하지 않고 재경 선배 어머님도 결혼을 동의한다 해도 설마 두 사람 떨어져서 지내려고요?”송연아는 그녀를 사직하라고 부추기는 게 아니라 현재 상황을 분석할 뿐이었다.안
“이번에 정말 그 사람과 엄청 심하게 다퉜어. 내가 보기에도 그 사람 엄청 화가 나 보이더라. 내가 직장을 그만두는 일에 있어서, 그 사람은 그의 어머니의 편에 섰고 그때 난 알았지. 이 사람은 정말 내가 전업주부가 되기를 원하는구나...”안이슬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이건 어쩌면 나한테 주어진 선택지일지도 몰라. 만약 내가 그 사람을 선택한다면 직장을 그만둬야 할 거고, 직업을 선택한다면 그 사람을 포기해야겠지.”송연아는 그녀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한참이 지나고 송연아는 입을 열었다.“언니는 여기에 가족도 없고 지낼 곳도 없으니까, 당분간은 우리 집에서 지내고 내 방을 써요.”안이슬은 따스한 미소를 지었다.“그래도 친구가 있어서 다행이네.”송연아가 말했다.“나도 언니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안 그러면 그때 내가 한동안 청양시에 있었을 때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도 몰랐을 거예요.”송연아가 물었다.“술 한잔할래요? 잠이 오는 데 도움이 좀 될 텐데.”안이슬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오늘은 마시고 싶지 않아.”술은 일시적인 고민을 풀 수는 있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못한다.“연아야, 오늘은 먼저 돌아가. 넌 지금 가정이 있는 사람이고 남편과 아이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텐데, 밖에서 밤을 보내는 건 안 좋은 것 같아. 나 혼자서 도대체 어떻게 선택을 해야 하는지 잘 생각해 볼게.”송연아는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녀가 진정되면,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재경 선배가 영원히 언니한테 잘해줄지도 몰라요.”송연아는 심재경이 안이슬에게 그렇게 집착한 나머지 자신의 의사 직업까지 포기했는데, 분명히 뼛속까지 그녀를 좋아할 것으로 생각되었다.안이슬은 옅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송연아가 내려갔을 때, 한혜숙은 아직 잠에 들지 않았고 그녀가 내려오는 것을 보자 입을 열었다.“언제 시간이 있으면 찬이 데리고 놀러 와, 찬이가 보고 싶네.”“알았어요.”그
송연아는 강세헌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깜짝 놀랐지만, 그녀는 곧바로 그의 다리를 한쪽으로 밀어냈다.“뭐 하는 거예요? 빨리 일어나요. 안 그러면 이 면봉에 묻어있는 약을 다른 곳에 발라버릴 거예요.”강세헌은 손을 뻗어 그녀가 들고 있던 면봉을 빼앗아 테이블 위에 던졌고 그녀의 몸 위로 올라탔다.송연아는 몸을 비틀거렸는데, 몸부림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편안한 자세를 취하기 위해서였다.우당탕!갑자기 거실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무슨 소리지?”송연아의 신경이 곤두섰고 강세헌은 눈살을 찌푸렸다.갑자기 울리는 이 인기척이 매우 언짢은 듯했다.송연아는 그를 바라보았다.“거실에 누가 있나 봐요.”강세헌은 씁쓸하게 ‘응’이라고 대답했다.“설마 재경 선배?”그녀는 비록 그저 묻는 말이었지만 말투에는 확신이 가득 차 있었다.“심재경이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길바닥에 버리고 갈 수는 없어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데려온 것이었다.갑자기 책상다리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떨어졌고 곧이어 비명이 들려왔다.송연아는 외투를 걸치고는 강세헌을 앞으로 밀었다.“선배 지금 뭐 하는지 한번 가서 봐요.”강세헌은 한참을 뜸 들이다가 일어나서는 싸늘한 얼굴로 방을 나갔다.그가 거실 불을 켜자 소파에 누워 있어야 할 심재경은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강세헌이 눈살을 찌푸리며 다가갔다.“심재경, 일어나.”심재경은 이미 술에 취해 인사불성인 상태였고 도무지 상대할 수 없었다.송연아는 옷차림을 단정히 하고 나와 이 광경을 보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안이슬도 괴로워하고 있는데 심재경도 피차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이 무슨 서로 괴롭히는 것도 아니고!“꿀물 한 잔 타올게요.”그녀는 부엌 안에 있는 냉장고를 향해 걸어갔다.“웩...”심재경은 갑자기 토하고 싶어졌다.강세헌은 미간을 심하게 찌푸렸고 짜증을 내면서 말했다.“심재경, 너 토하면 집 밖으로 내쫓을 거야.”송연아는 꿀물을 들고 왔고 바닥에 있는 심재경을 일으켜 세우려다가 강세헌에게 끌려갔
오늘은 절대 평범하지 않은 하루가 될 운명이었나 보다.오늘은 천주그룹이 동진그룹에게 첫 자금을 투입하는 날이고 처음으로 1200억을 투자한다.다행히도 이 돈은 지금 천주그룹에서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었다.돈을 건넨 뒤 강세욱과 동진그룹의 대표 진원우는 서로 악수했다.“앞으로 잘 부탁드리고 우리 함께 눈부신 발전을 이룩합시다. 그리고 동진그룹이 이번에 개발하고 있는 부품이 잘 진행이 되어서 조금 더 빨리 이 세상에 나오기를 바랍니다!”진원우는 웃으며 말했다.“당연하죠. 우리가 개발한 부품이 출시되면 강 대표가 가장 큰 승자로 될 것입니다.”강세욱은 껄껄 웃었다.그렇다.동진그룹의 연구는 이미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고 돈을 가장 많이 쓸 때도 이미 지났기에 이렇게 좋은 시기에 합류하지 않으면 헛수고나 다름이 없었다.그는 확실히 이득을 보았다.진원우는 그의 앞에서 한숨을 내쉬었다.“강 대표를 선택하고 나니 예전의 좋은 친구들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모르겠네요.”강세욱은 얼굴에 미소를 띠었고 그는 진원우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앞으로 우리 좋은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네요.”“반드시 그럴 겁니다.”진원우는 그를 보며 심상치 않은 미소를 지었지만 강세욱은 지금 이런 것들을 관찰할 시간이 없었다.그는 지금 기쁨에 젖어 있다.어쨌든 그는 자신이 반드시 성공할 수 있고 곧 보상도 받는 믿음직하고 좋은 프로젝트에 투자했으니 말이다.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손에 일이 잠시 느긋해진 강세욱은 드디어 임설을 만나러 갈 수 있게 되었다.이렇게 며칠이나 지나서야 찾아왔으니, 임설은 당연히 그를 반갑게 맞이하지 않았다.“저를 잊은 줄 알았어요.”“너도 알잖아. 내가 방금 회사를 인수해서 손에 일이 많다는 걸... 화났어?”강세욱은 그녀를 껴안았다.“알았어, 네가 원하는 거 말해봐. 내가 다 사줄게.”“전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요. 당신과 함께라면 난 그 무엇이어도 좋다고요.”임설은 얌전하게 그의 품에 안겨 있었다.그녀는 강세욱을 진심
“아버지, 지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지금 강세욱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이 나이에 바람을 피운다고?장진희가 이 사실을 안다면 아마 하늘과 땅이 뒤집힐 것이다.그는 정말 화가 나서 죽을 것 같았다!“아버지, 당장 이 여자보고 꺼지라고 하세요!”강세욱이 애써 성질을 억누르고 있었기에 직접 사람을 끌어내지 않았던 것이다.이지안은 놀라서 강윤석의 품으로 파고들었다.옆에 있는 미인이 놀라서 얼굴이 붉어졌는데, 강윤석은 당연히 미인을 불쌍히 여겼고 자기 아들을 매섭게 노려보았다.“천주그룹의 실권을 얻었다고 나한테 함부로 소리 질러도 된다고 생각하지 마. 난 너의 아버지야. 너는 내 앞에서 영원히 말할 권리가 없다고.”말을 마치고 그는 운전 기사에게 출발하라고 했다.강세욱은 그 자리에서 버려졌다.그는 너무 화가 나서 몸을 떨었다.임설이 조심스럽게 다가와서 그를 위로했다.“보이는 게 다가 아닐 수 있잖아요...”“그러면 내가 그들이 침대에 뒤엉켜 있는 걸 봐야 불륜이라고 할 수 있단 말이야?”강세욱은 숨을 가쁘게 쉬었고 이제는 밥이고 뭐고 아무런 기분도 없었다.“설아, 먼저 돌아가. 오늘은 우리 집에 못 갈 것 같아.”강세욱이 말했다.임설이 대답했다.“...알았어요.”어렵게 부모님을 뵈러 갈 수 있었는데, 이런 일이 생기다니... 하지만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했다.강세욱은 집으로 달려갔지만, 장진희를 보고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그는 자기 어머니의 성질을 잘 알고 있어 이 일을 안다면 강윤석과 난리가 날 것이다.지금 회사가 아직 완전히 안정되지 않았기에 그는 집에 어떠한 일도 생기는 것을 원치 않았다.강세욱은 현재 회사를 가장 신경 써야 했다.하지만 신경 쓸수록 뭔가가 잘못되기 쉬운 법이다.아니나 다를까, 그가 진원우의 회사에 1200억을 투자한 지 보름도 지나지 않았는데, 진원우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마지막에 좀 문제가 생겼는데 자금이 더 필요할 것 같아요.”강윤석이 바람을 피운 것을 알고 나서부터
진원우가 말했다.“3000억.”강세욱의 입꼬리가 경련을 일으켰다. 그는 정말 진원우에게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하는 욕을 하고 싶었다.그렇게 많은 돈을!“천주그룹에 있어서는 적은 돈이라는 걸 압니다.”진원우가 한마디 덧붙였다.지금의 천주그룹은 정말 이렇게 많은 돈이 없는데, 지난번의 1200억 투자금은 회사의 자금을 거의 싹싹 끌어모은 것이었다.하지만 그는 체면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돈이 없다고 말할 수 없었고 아예 돈이 없다는 말을 입 밖에 꺼낼 수 없었다. 왜냐면 이 말이 이사들의 귀에 들어가게 되면, 번거로워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시간 좀 주세요.”그는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는데, 회사에 아직 몇 가지 실행 중인 프로젝트가 있어 그것들을 양도보낸다면 어느 정도의 자금은 확보할 수 있었다.강세욱은 여전히 동진그룹에 대한 투자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것이 그의 첫 번째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중간에 포기하고 싶지 않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미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이 돈은 반드시 투자해야만 했다.그래서 그는 몰래 업계의 사람들에게 연락해서 실행 중인 프로젝트를 팔기 시작했고 운이 좋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구매자를 찾을 수 있었다.한 해외 기업이 그가 양도한 프로젝트를 구매하고 싶다고 했는데, 전액을 지불할 수 있다고 했다.강세욱은 상대방이 혹시 유령회사 혹은 사기꾼일까 봐, 인터넷에서 그 회사에 대해 찾아보았다.이 회사는 프랑스에 등록되어 있었고 설립한 지는 3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해외에서는 이미 유명한 회사였다. 브리언트라고 하면 모두가 알다시피 브리언트 뒤에는 베일에 감춰진 지배인이 있는데, 그의 안목이 하도 출중하여 그가 투자한 프로젝트라면 손해 본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한다. 재작년에 그는 인터넷 프로젝트에 투자하여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들였고 그 프로젝트는 여전히 해마다 큰 이익을 창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계속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게다가 다른 투자 프로젝트에는 오락, 생활, 멀티미디어, 의약 등이 포
결혼식을 마친 후 방유정 아버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떠나기 전에 임지훈에게 회사를 완벽하게 인계하려고 회사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임지훈은 송연아와 강세헌 일행과 같이 먼저 프랑스로 돌아가서 그쪽 일을 마무리했다. 비록 임지훈이 회사에 있으면 강세헌은 보다 한가하게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가 떠난다고 해도 그냥 조금 더 바쁠 뿐이다. 어느 회사든 누가 떠나면 절대 안 되는 건 없다. 일주일의 시간 동안 임지훈은 프랑스에서의 일들을 모두 마치고 귀국해서 방씨 가문 회사에 들어갔다.임지훈도 국내에 집이 있었지만 방유정과 같이 방씨 가문에 들어갔다. 데릴사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유정 아버지의 병을 알고 방유정이 부모님과 많을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였다. 임지훈 역시 사위로서 그럴 의무가 있었다....반년 후, 방유정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방유정 어머니는 그 충격에 순식간에 많이 늙었다.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집안 분위기는 아주 저조했는데 방유정의 대부분 시간은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예전의 임 비서는 이제 임 대표가 되어 그의 능력으로 방씨 가문은 아주 관리가 잘 되었고 3개월 후 방유정 어머니의 상황도 많이 좋아졌다.방유정이 드디어 임신하게 되면서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간 일도 어느 정도 잊혀가고 있었다. 임지훈은 곧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기뻤고 방유정도 곧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방유정 어머니 역시 곧 외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정말로 모두 행복해할 만한 일이었다.방유정이 임신 6개월 때 그들은 프랑스로 갔는데 구애린은 남자아이를 낳았고 심재경의 딸은 이제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샛별이가 유일한 여자아이여서 모두가 예뻐했다. 샛별이는 아직 작고 어렸지만 찬이를 쫓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찬이는 샛별이 다리가 짧다고 계속 놀려줬으며 그게 재밌다고 샛별이는 키득키득 웃었다. 찬이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면 샛별이는 오빠라고 불렀는데 너무 귀여웠다.방유정이 말했다.“저도 딸을 낳고 싶어요.”구애린이 말했다.“그게
비록 손을 놓기 싫었지만, 방유정 아버지는 결국 방유정의 손을 임지훈에게 넘겨줬다.“앞으로 계속 사랑하며 살기를 바란다.”방유정도 아버지에게 말했다.“꼭 그렇게 할게요.”이어서 결혼식은 순서대로 일사천리로 피로연까지 모두 순리롭게 진행되었다.방유정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는데 딸이 그렇게도 바라던 결혼을 하니 너무 기뻤다. 그런데 결혼시키고 나니 또 잘 살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세상의 부모들은 다 그런가 보다.임지훈은 방유정을 데리고 강세헌이 있는 테이블로 가서는 비록 모두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소개했다. 모두 방유정을 다시 한번 소개받았는데 이번에는 심재경 친구의 사촌 동생이 아닌 임주훈의 아내로 말이다.구애린이 웃으며 말했다.“정말 너무너무 축하해요.”방유정도 웃으며 대답했다.“고마워요.”윤이도 어른들 따라 한마디 했다.“축하해요.”방유정은 윤이를 보며 말했다.“너무 귀여워요.”그녀가 손을 뻗어 윤이의 얼굴을 만지자, 윤이가 손을 내밀었다.“안아줘요.”송연아가 미간을 찌푸렸다.“윤이야, 안 돼.”방유정이 말했다.“괜찮아요.”그녀는 윤이를 안으며 말했다.“무겁지 않아요.”윤이는 그녀의 머리에 있는 금색 비녀를 보고 만지려고 했다. 방유정이 한복을 입고 있었기에 머리에 비녀를 하고 있었다. 방유정은 아주 시원하게 바로 비녀를 빼서 윤이에게 주었는데 송연아는 윤이를 제지하지 못해서 미안해했다.“이러면 안 돼요. 오늘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괜찮아요. 그냥 액세서리일 뿐이에요. 윤이가 좋아하니 놀게 해요.”방유정은 정말 성격이 좋았다. 역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만큼 성품이 좋았다. 가끔 조금 오만하긴 하지만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모두 그녀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송연아는 윤이를 안고 달래려고 했다.“윤이 착하지. 이건...”송연아는 윤이가 방유정을 어떻게 부르면 될지 생각했는데 방유정이 웃으며 말했다.“호칭일 뿐이니까 편
“지금 막 들었는데 유정 씨와 결혼한다면서요. 지금 방씨 가문에서 결혼식을 준비한다고 난리 났어요.”임지훈이 웃었다.“저 이래 봐도 능력 있는 남자예요. 여자들한테도 인기 많아요. 봐요, 결혼도 금방 하죠?”구애린이 말했다.“이제 우리 모두 짝이 있네요.”찬이도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지훈이 삼촌, 축하해요.”“고마워.”임지훈이 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심재경이 물었다.“그런데 데릴사위로 들어간다고 하던데요?”심재경의 말에 모두 놀라며 시선이 일제히 임지훈에게로 향했다. 확실히 놀랄만한 일이다. 임지훈의 조건에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돈도 있고 능력도 있어서 충분히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데 말이다.“하긴, 방씨 가문에 가장이 필요하긴 해요.”심재경이 그쪽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한마디 했다....임지훈의 결혼식으로 송연아와 강세헌도 프랑스로 돌아가는 일정을 늦췄다. 아무도 심재경의 결혼식을 보러 왔다가 임지의 결혼식까지 보게 될 줄을 생각을 못 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이건 임지훈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듯이 방유정과의 결혼은 정말로 찰나의 결정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그 역시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임지훈이 진원우에게 말했다.“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진원우가 말했다.“그런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방씨 가문은 돈도 많고 유정 씨도 예쁘고 그 정도면 만족해야지.”“만족해. 다만 너무 빠른 것 같아서 그래.”귀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싱글이었는데 이제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결혼식은 방씨 가문에서 모두 준비했는데 방유정 딸 하나이고 또 사위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결혼식은 아주 성대하게 치렀다. 방씨 가문의 친척들도 꽤 많이 참석해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비록 데릴사위라고 하지만, 임지훈 측은 심재경이 준비했는데 심재경 본인도 금방 결혼식을 치렀기 때문에 익숙한지라 아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었다....방유정은 정교한 메이크업을 하고 값진 웨딩드레스를 입었는
“잠도 잤는데 왜요? 모른 척하려고요?”방유정이 옷을 입더니 침대에서 꼼짝 안 하는 임지훈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왜요? 계속 그렇게 누워 있을 거예요?”임지훈이 말했다.“내 옷을 가져오지 않았잖아요. 나 입을 옷 없어요.”방유정은 그제야 임지훈이 옷이 없다는 걸 생각했다.“가져다 줄게요.”그녀는 곧바로 차에 가서 캐리어를 가지고 다시 올라갔다.“뭐 입을지는 알아서 찾아서 입고 내려와요. 아래층에서 기다릴게요.”방유정은 말을 마치고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임지훈은 침대에서 내려 결혼 얘기이니만큼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정장을 찾아서 입었다. 그가 정리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방유정은 부모님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의 부모는 그를 보자마자 더욱더 열정적이었다.임지훈이 건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저기...”“우리 딸 줄게요.”“아니에요. 지훈 씨가 저한테 시집 오는 거예요.”방유정이 정정했다.“...”“...”“...”방유정을 제외한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물었다.“유정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방유정은 자신이 여자이며 이 집안에 다른 후계자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아버지가 중병이고 자기는 회사를 관리할 능력도 없기에 어찌 보면 자기가 남편을 찾는다기보다는 방씨 가문의 회사를 경영할 사람을 찾는 거였다. 인제야 그녀는 부모가 조급해하는 의도를 이해했고 그녀 역시 가문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에 임지훈이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임지훈을 각별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그런 것들 때문이지 않겠는가.“유정 씨,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임지훈은 뼈대가 있는 남자로서 데릴사위 할 생각은 없었다.방유정이 말했다.“후회하면 안 돼요!”“왜 안 돼요? 유정 씨가 뭘 원하든지 저 모두 만족시켜 줄 수...”“제가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예요.”방유정이 외치자, 임지훈은 오히려 우스웠다. 한 여자가 나한테 시집오라고 하다니!“우리 유정이가 시집가는 거 맞아요
지금 그녀가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물으면 부모님은 더 속상해할 것 같았다.‘나 이제 어떻게 해야지? 어떻게 하면 좀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지? 결혼, 그래 결혼해야 해.’그녀는 자기가 결혼해야만 부모님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 상대도 지금 바로 방에 있지 않겠는가?‘남자 친구인 척을 해줬으니 이제 남편인 척해달라고 해야지. 진짜가 아니고 가짜라도 되니까 결혼하자고 해야겠어.’방유정은 진료 기록부를 다시 원래 위치에 넣고 비틀거리며 부모님 방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갔는데 임지훈이 아직 욕실에서 나오지 않아 침대 옆에 앉아서 기다렸다. 한참 지나자, 임지훈은 가운을 두르고 욕실에서 나왔는데 침대에 자기의 옷이 보이지 않아 방유정의 옆에 서서 물었다.“내 옷은요?”그는 방유정이 잊은 것 같아서 다시 말했다.“내 옷은 지금 당신 차 트렁크에 있어요.”방유정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지훈 씨, 우리 결혼해요.”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약을 잘못 먹었어요? 아니면 정신이 어떻게 됐어요?”“다 아니에요. 그냥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거칠었는데 임지훈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물었다.“울었어요? 누가 괴롭혔어요? 얘기해 봐요. 제가 가서 때려줄게...”임지훈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방유정이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임지훈은 갑작스러운 친밀감에 몸이 굳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게... 유정 씨...”그가 말하려고 할 때 방유정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의 손이 아래로 드리는 순간 몸에 걸친 유일한 가운마저 벗겨져서 흘러내렸다.“...”방유정은 워낙 임지훈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지금 행동이 충격에 의한 도발적인 행동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웃옷의 단추를 벗겨 가슴을 드러내고는 그의 가슴에 가까이하며 말했다.“저를 좀 봐봐요.”임지훈은 참을 수 없었는지 목젖을 굴렸는데 이름 모를 불길이 아랫배에서 솟아오르더니 순식간에 딱딱해졌다.“정말 후회하지 않겠어요?”임지훈도
방유정은 어머니가 자신의 어깨를 다독이자,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응원을 하시는 거였다.“화이팅!”방유정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지금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지?’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만 좋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갑자기 선 자리를 만들어주고 남자를 유혹하라고까지 하시다니?그녀는 어머니의 이마를 만지며 물었다.“엄마,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우리 이제 나가야 해.”방유정의 아버지는 기사가 이미 대기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집을 나갔고 방유정은 문 앞까지 그들을 배웅했다. 차가 떠나자, 그녀는 집으로 들어갔는데 어차피 임지훈이 자고 있었기에 지루할 것 같아서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그녀는 가만히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는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했다. 그런데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서 임지훈을 놀려주려고 그가 곤히 자는 방으로 올라가서는 화장대에서 화장품을 가져다가 침대 옆에 앉아 임지훈에게 예쁜 화장을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도 임지훈이 깨지 않자, 옆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눈이 아파 오니 옆에 기대서 잠이 들었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는 임지훈은 이미 깨어나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언, 언제 깼어요?”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방유정은 참을 수 없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훈의 얼굴은 정말로 오페라 가수 같았는데 어찌나 웃었는지 배가 아팠다. 임지훈은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물었다.“다 웃었어요?”방유정은 곧바로 웃음을 거두고 그의 손을 뿌리쳤다.“맘대로 제 몸에 손을 대지 말아요.”임지훈이 말했다.“유정 씨를 저에게 준다고 해도 거절이에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말했다.“뭐라고요? 저를 좋다고 하는 남자들이 줄을 서면 프랑스까지는 갈 거예요. 그런데 지훈 씨는 내가 싫다고요?”임지훈이 흠칫하자, 방유정이 그를 잡고 물었다.“지금 그
“방유정은 부모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알았어요. 하시고 싶은 대로 하세요.”“어서 지훈 씨 방으로 데려가.”방유정이 물었다.“어느 방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제야 깨달은 듯 말했다.“어머, 어떡해. 게스트룸은 아직 준비가 안 돼있어. 우선 네 방으로 데려가서 휴식하게 해.”방유정은 어머니의 말에 놀라며 말했다.“아빠, 엄마, 이 정도로 오픈 마인드였어요? 어떻게 제 방에 술 취한 남자를 데려가라고 하세요?”“네 말대로 취했는데 뭐 어때?”“술김에 어떤 짓도 한다는 말 몰라요?”방유정이 묻자, 그녀의 부모님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몰라.”방유정은 철저히 말문이 막혔다. 부모님과 임지훈이 정말로 모르는 사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임지훈이 그들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엄마 아빠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아무리 나를 결혼시키고 싶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만약 진짜로 무슨 일이 있으면 책임지라고 하고 바로 결혼시킬 거야.”임지훈은 그 말을 들으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바탕 뿜었다. 방유정의 부모님이 너무 열정적이어서 본인이 천당에 있는 것 같았는데 정말로 귀여운 부모님들이라고 생각했다.‘방유정은 전생에 은하계를 구했나 봐.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고 말이야.’방유정은 역겨워하며 말했다.“지훈 씨, 여기서 이러면 어떡해요. 화장실로 가야지.”“취했잖아.”방유정 어머니가 가정부를 불러 치우게 했다.“그만하고 불편해 보이는데 어서 방으로 데려다 쉬게 해.”방유정은 혼자서 임지훈을 옮길 수 없어서 가정부의 도움을 받아 함께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방에 도착하자, 그녀는 임지훈을 침대에 던졌는데 임지훈은 몸이 포근한 세계에 떨어진 듯 따뜻하고 향기로웠다.“무슨 향수를 써요?”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방유정이 말했다.“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잠이나 자요.”임지훈은 취한 건 사실이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말짱했다. 그는 눈을 감고 또 말했다
임지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요. 해명하지 않아도 화는 나지 않았을 건데, 굳이 해명하니 용서해 줄게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삐쭉거렸다.“그렇게 잘난 척하지 말아요. 그럼 좋은 말이 안 나가니까.”“...”임지훈이 할 말을 잃었다.그때 방유정의 어머니가 열정적으로 요리를 집어 그의 앞접시에 건넸다.“이건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요리인데 맛봐요.”임지훈이 집어서 입어 넣고 먹어보더니 말했다.“맛있습니다.”방유정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고 방유정 아버지는 그에게 술을 따랐다.“평소 주량이 어떻게 돼요?”임지훈이 웃으며 대답했다.“못합니다.”방유정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었다.“잘 마실 것 같은데 너무 겸손하시네요.”임지훈이 말했다.“아니에요. 아니에요.”방유정은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아빠, 지훈 씨는 일이 바빠서 내일 프랑스로 돌아가야 해요. 일을 망치면 안 되니까 술을 많이 주지 마세요.”방유정 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그래.”“네. 그러니까 한 잔씩만 해요.”말하면서 방유정은 술을 가져갔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너 정말 분위기를 깬다.”방유정이 말했다.“두 분의 건강을 생각해서예요.”방유정 어머니는 술병을 들고 임지훈에게 한 잔 따르고 또 남편에게도 한 잔 따랐다.“많이 마시게 되면 우리 집에 방이 많으니 그냥 휴식하면 돼요. 비행기는 내일 타면 되는데 급해 할 거 없잖아요.”방유정은 어머니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엄마, 이 사람을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집에서 잠을 자래요?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려고요?”“걱정하지 마. 조사해 봤는데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야.”“...”“...”방유정과 임지훈이 순간 놀랐다. 방유정은 평생 살면서 이렇게 굴욕적인 순간을 느낀 적이 없었다. 몇 년 동안 쌓아온 체면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만든 건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의 부모님이었다.방유정 아버지는 아내를 힐끗 쳐다
“지훈 씨는 취미가 뭐예요?”방유정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임지훈은 방유정의 물음에 잠시 당황하다가 자신의 생활을 떠올렸는데 일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휴가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에 심재경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계속 일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취미는 더구나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본인의 생활이 정말로 단조롭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옆에서 따뜻하게 말 한마디 건네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순간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내를 맞이해서 함께 서로 보살펴주며 지내고 싶었는데 그런 사람만 있다면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고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방유정을 바라봤는데 본인과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방유정은 아직도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라 다른 사람을 보살필 줄은 모를 것 같았다.“왜 그런 이상한 눈빛으로 봐요?”방유정의 물음에 임지훈이 되물었다.“어디가 이상한데요?”방유정은 좀 더 가까이 가서 그의 눈을 마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왜요? 설마 저를 사랑하게 된 건 아니죠?”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당신은 성격도 안 좋고 또 엄청 잘난체하는데 내가 왜요? 점심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제 들어가요.”시간을 보며 임지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굶었어요?”방유정이 그를 비웃었다.“식사 끝나면 저는 가도 되죠.”방유정은 순간 왠지 서운했다.“그렇게 가고 싶어요?”“여기는 제집이 아닌데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요.”방유정은 그를 향해 입을 삐쭉거리자, 임지훈은 의아해했다.“왜 그래요?”“내가 뭐요?”방유정은 짜증을 냈다.“유정 씨는 정말 변덕이 많네요. 그걸 고쳐요. 남자들은 변덕이 많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요.”방유정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집안으로 걸어들어갔다.임지훈은 고개를 돌려 못에 있는 물고기들을 한 번 더 보고는 뒤따라 들어갔다. 방유정이 집에 들어서자, 그녀의 어머니가 그들을 부르러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딸만 보였기에 그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