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연아는 목청을 가다듬었다. “아빠 무덤 옆에 있는 묘지 자리, 내가 샀어.”그녀는 당시에 백수연을 막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었다.어머니를 위해 아내로서의 지위를 지켜 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한혜숙은 이미 그 자리를 내려놓았으니까 말이다.그리고 그녀는 어머니가 아직 오래 살기를 바랐기 때문에 그렇게 일찍 묘지를 준비하지 않았다.언젠가 백수연이 그 자리를 차지할까 봐 그 땅을 샀다.송예걸은 바로 반응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잠시 후 그가 입을 열었다.“누나 어머니를 위해 그렇게 한 거야?”송연아가 말했다.“그런 셈이지.”“아이 참~” 송예걸은 한숨을 쉬었다. 그는 한 발짝 늦었다.자신이 송연아처럼 멀리 생각할 만큼 똑똑하지 않은 것 같았다.그는 백수연이 죽은 후에야 그것에 대해 생각했다.“누나, 역시 누나가 똑똑하네. 아빠가 회사를 누나한테 먼저 물려준 건 옳은 결정이었어.” 그가 말했다.이 순간 그는 질투하지 않았다.송연아의 사려 깊은 마음이 존경스러웠던 것은 사실이었다.예전에 회사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도 송연아가 먼저 아이디어를 내놓았었다.송태범의 선견지명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가 한혜숙과 이혼하지 않은 것은 한혜숙에 대한 감정이 분명히 남아 있었기 때문이며, 또 다른 이유는 아마도 딸 송연아를 인정했기 때문일 것이다.송연아가 말했다. “이제 회사가 네 것이 되었으니 빨리 나아서 회사를 경영해. 네 엄마는 항상 네가 송씨 가족의 재산을 물려받기를 원하셨잖아. 부동산과 돈은 그렇다 쳐도 회사를 잘 운영하면 더 큰 이익을 창출할 수 있어. 네 엄마도 네가 성공하기를 원할 거야. 아줌마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서라도 넌 정신 차려야 돼.” 그녀는 송예걸을 격려했다.송예걸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그는 마음속으로 백수연이 늘 그가 송 씨 가문의 사업을 맡기를 원한 것을 알고 있었다. 송연아의 말이 맞다. 회사는 송씨 가문의 생명줄이며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회사가 이제 그의 손
그래서 장진희는 아들을 강하게 밀어 주었고, 강의건 앞에서 듣기 좋은 말로 아부했기 때문에 오늘 강세욱이 주주 총회에 참석할 수 있었다!“세헌아 너는 어떠냐? 변호할 게 없느냐?” 강세헌의 약점을 잡자 그는 자신 있게 말했다.강세헌은 일부러 당황한 것처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마치 오늘의 일을 전혀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그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임지훈을 꾸짖었다.“도대체 일을 어떻게 처리한 거야, 어떻게 이런 문서가 유출될 수 있어?”“대표님, 죄송합니다. 문서가 어떻게 분실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됐어. 지금은 네가 부하 직원이 일을 잘 처리 못 한 것에 대해 질책 할 때가 아니야. 숨기려고 할 때부터 이 문제는 저절로 드러나게 돼 있었어.”강세욱은 코웃음을 쳤다.“난 항상 형이 유능하고 무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아무것도 아니었어.”임지훈은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무슨 소리예요?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대표님께서 수년 동안 회사를 위해 얼마나 많은 가치를 창출했습니까? 당신이 뭔데 그런 말을 해요? 당신은 무슨 자격이 있습니까?”“강 대표는 많은 가치를 창출했지만 회사가 수천억 원을 잃은 것도 사실이잖아요. 그런 사람은 더 이상 대표직에 적합하지 않아요. 그의 의사 결정을 더 이상 납득할 수 없습니다.”“맞아요, 같은 강씨 가족으로서 강세욱 씨가 천주 그룹의 미래 발전을 잘 이끌 잠재력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장진희에게 돈을 받은 한 주주는 즉시 강세욱의 편에 섰다.“저는 오랫동안 그룹을 책임져 왔고, 회사를 위해 많은 훌륭한 결과를 만들어 냈습니다...”“그건 다 지나간 일이니 언급하지 마세요.”누군가 강세헌의 말을 바로 끊었다.예전 같으면 아무도 강세헌에게 감히 이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현재 그들은 모두 강씨 가문이 그를 전복시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감히 큰 소리를 쳤다!강세헌은 바로 이런 효과를 원했다. 현재 상황을 전복 할 힘이 없는 그는
송연아가 대답했다.“오늘 예걸이와 같이 사건 종결 판결 들으러 갔을 때 한 여자를 만났어요... 사실 아무것도 아니에요.”살짝 닮은 사람들이 있기도 하고, 게다가 강세헌은 지금 너무 바쁠 것이다.그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강세헌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왜 말을 하다 말아?”송연아는 미소를 지었다.“중요하지 않은 일이에요. 내일 백수연의 장례가 끝나면 이 문제는 당분간 내려놓아도 돼요.”똑똑.그녀가 말을 마치자마자 방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송연아가 들어오라고 말하자 방 문이 열렸다.임지훈이었다.그는 박스를 들고 있었는데, 그 안에는 서류와 잡다한 물건들이 어지럽게 들어 있었다.그는 들어와서 테이블 위에 물건을 올려놓고는 말했다.“강세욱 씨가 대표직을 맡게 되었습니다.”강세헌은 그 대답에 놀라지 않았다.그는 알았다고 담담하게 대답했다.이 모든 것은 강세헌의 계획이었으며, 그가 회사를 떠나야 장진희는 경계를 풀 것이다.“주주 총회에서 이익에만 관심이 있는 주주들을 보고 정말 화가 났어요. 그동안 우리가 그들에게 얼마나 많은 이익을 창출했습니까? 그런데도 그들은 우리에게 돌을 던졌어요.” 임지훈은 마음이 불편했다.분명 이것이 계획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냉혈한 사람들을 보면 여전히 그들이 비인간적이라고 느껴져 마음이 불편했다.“그래도 괜찮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우리를 도와줬더라면 우리 계획을 방해할 테니까요. 저는 천주 그룹이 파산할 날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임지훈은 증오심이 가득 차 말했다.강세헌은 이지안을 통해 장진희에게 손실 관련 문서를 넘겼는데, 확실히 회사가 손실을 봤었다.하지만 그들이 몰랐던 것은 그 손실금이 모두 프랑스에 있는 ‘브리언트’라는 회사로 들어갔다는 사실이었다.그것은 또한 천주 그룹의 마지막 자금이었다.현재 천주 그룹은 거대한 빈 껍데기라고 할 수 있으며, 돈을 버는 프로젝트가 몇 개 밖에 없었고 모든 돈을 빨아들이는 사업은 이미 오래 전에 외국으로 이전되었다.강세
“가고 싶으면 보내줄게.”강세헌은 얼굴의 절반 이상을 베개에 파묻은 채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임지훈은 그것을 보고 눈치를 채고 입을 삐죽 내밀었다.그는 마음속으로 역시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고 생각했다. 강세헌도 잡혀 사는 날이 있다니. 그것도 아주 꽉 잡혀 있다!송연아는 강세헌에게 약을 바르는 데 집중하며 말했다.“잘 쉬고 있어요.”강세헌은 그녀의 손을 잡고 손바닥으로 주물렀다.“일찍 가서 일찍 돌아와. 지훈이랑 딱 붙어 있어.”송연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병실 밖으로 나갔다. 임지훈은 문 앞에 서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가요.”그녀가 말했다.임지훈은 재빨리 따라 갔고, 그는 차 키를 손에 들고 여러 번 무슨 말을 하려다가 말았다.송연아는 그가 말을 더듬는 것을 참을 수 없어 그에게 말했다.“할 말 있으면 해요.”“별거 아니에요. 그냥 사모님이 오해하시는 것 같아서 말씀드리고 싶어요. 장 비서와 저는 둘 다 강 대표님의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대표님께 충성하고 있는 거예요...” “내가 오해한 거 어떻게 알았어요?”송연아는 그의 말을 끊고 그에게 되물었다.임지훈은 대답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차에 도착하자 임지훈은 시동을 걸었고, 그 시간 동안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곧 장 비서가 사는 곳에 도착한 임지훈은 올라가서 문을 두드렸고 방 문이 열렸다. 장 비서는 임지훈을 보고 표정이 가라앉을 수밖에 없었다.“저는 외국에 가지 않을 거라고 했잖아요. 저는 비서고 대표님이 가지 않으셨는데 제가 가서 뭐하겠어요...”그녀는 말을 반쯤 하고 나서야 임지훈의 뒤에 있는 송연아를 보았다.그녀의 눈 밑에 갑자기 한 줄기 경계하는 빛이 숨어 들어왔다.“사, 사모님이 왜 여기에...?”임지훈은 송연아를 대신해 대답했다.“장 비서를 설득하러 왔어요.”“무슨 설득이요?”장 비서의 눈빛에는 회피하려는 기색이 역력했다.“외국으로 가라고 설득하려고요.” 송연아가 들어와서 임지훈에게 말했다.“밖에서 기다려요. 제가 얘
송연아는 그녀의 말에 전혀 놀라지 않고 담담하게 물었다.“그 물음이 장 비서님이 떠나지 않는 것과 관련이 있나요?”“저는 비서이지만 일반 비서처럼 그냥 전화를 받고 회의를 준비하기 위해 이것저것 짜잘한 일을 하지 않아요. 저는 언제든지 대표님의 지시에 따라 스케줄을 잡아드려야 하고 시시각각 각 부서에서 보내 온 문서를 받아서 정리해야 하며 대표님께 결재를 받아야 해요... 뭐가 중요하고 뭐가 중요하지 않은지도 알아야 하고...”장 비서의 생각은 명확했고 그녀는 말을 논리 맞았다.“저의 주된 임무는 상사를 위해 모든 준비를 해드리는 거예요. 대표님께서 지금 가지 않는데 제가 가서 뭐하나요?”송연아는 참을성 있게 그녀의 말을 다 들어주고 입을 열었다.“가서 할 일이 없을까 봐 걱정되는 거예요?”“대표님께서 가시지 않으면 확실히 저는 할 일이 없어요.”송연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비서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다른 자리를 주면 어떨까요?”장 비서의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었고, 그녀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곧바로 말했다.“저는 다른 직책으로 바꾸지 않을 거예요.”그녀의 반응에 송연아는 놀라지 않고 얼굴에 옅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왜 바꿀 수 없죠?”“저는 이 일을 하는 데 익숙하고, 다른 사람이 잘하지 못해서 대표님의 일에 폐를 끼칠까 봐 걱정돼요...”“그건 걱정할 필요 없어요. 제가 알아서 할 거예요.”송연아가 말했다.장 비서는 주먹을 꽉 쥐고 말했다.“대표님 생각인가요?”“내 생각이죠.”송연아가 솔직하게 말했다.그러자 장 비서가 말했다.“대표님께서 동의하시지 않을 거예요.”“세헌 씨는 이 일을 전적으로 나에게 맡길 거라고 말했어요.”송연아가 말했다.장 비서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그래서, 갈 거예요 말 거예요?”송연아가 물었다.장 비서는 머리를 숙이고 생각에 잠겼다.지금 떠난다면 그녀는 여전히 비서직에 있게 되지만, 계속 떠나기를 거부하고 송연아가 정말로 그녀를 다른 직책으로 옮긴다면 그
두 사람은 오늘 굳이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아도 서로 마음이 통하는 그런 대화를 나눴다!임지훈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그 여자를 대체 어떻게 설득했어요?”송연아는 대답할 기분이 안 나 담담한 어투로 말했다.“왜 그렇게 오지랖이 넓어요?”임지훈은 빙긋 웃었다.그는 몹시 궁금했지만 송연아가 대답하지 않는 걸 보니 말하기 싫은 눈치라 더 캐묻지도 않았다.곧이어 차가 병원에 도착했고 송연아는 차에서 내려 병원으로 들어갔다....“엄마, 이것들 좀 봐봐요.”천주그룹 대표직을 넘겨받은 강세욱은 줄지은 적자 서류를 보고 있자니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장진희도 안색이 어두웠다.“세헌의 능력은 내가 잘 아는데 손실이 왜 이렇게 많은 거지?”“걔 혹시 일부러 그런 거 아닐까요?”강세욱은 도저히 상상이 안 갔다. 겉보기에 화려한 천주그룹이지만 정작 내부는 이미 바닥난 상태였다.장진희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아닐 거야. 이사회 사람들이 알까 봐 세헌이가 일부러 숨겼을 수도 있어.”“우릴 완전히 속인 거네요? 우리가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데 고작 이런 결과라고요?”강세욱은 내키지 않았다.‘부의 왕국’이라고 여겼던 회사가 실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빌딩이었단 말인가? 이미 만신창이가 된 지 오래였단 말인가?“일단 진정해.”장진희는 아들을 위로했다. 그녀는 여전히 본인들이 실패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늘 바라던 일이 바로 천주그룹을 장악하는 것이었고 인제 드디어 소원을 이뤘는데 어찌 안 기쁠 수 있겠는가?“우리가 그 애 자리를 빼앗았으니 걔가 우리한테 골치 아픈 일을 넘겨준 것도 당연한 일이야. 세욱아, 고작 이런 일로 움츠러든다면 엄마는 너한테 크게 실망할 거야.”장진희도 그저 강세헌이 일부러 그들을 난처하게 하려고 난제를 남겨준 거로 여겼다.그녀는 강세헌이 여지를 남겼기 때문에 그렇게 빨리 가버렸다고 생각했다.이제 보니 이 문제들이 그가 남긴 여지인 듯싶었다.강세헌이 아무것도 안 했더라면 그녀는 오히려 더 이상하다고
새로 부임한 강세욱은 기세가 하늘을 찔렀다.부임 후 첫 회의에서 그는 당연히 기선제압에 나섰고 각 부서 매니저들은 똑바로 앉아 숨조차 제대로 고르지 못했다!전에 강세헌이 오너일 땐 다들 마음에서 우러나는 경외심을 갖고 있었다면, 강세욱 앞에서는 이해가 부족해서 생긴 어색함이 있었다.“재무팀부터 시작해서 최근 반년 동안의 실적과 업무 방향을 일일이 보고해요.”강세욱이 메인 석에 앉아 진지하고 거만하게 말했다.이제 막 부임한지라 자신감이 좀 생긴 것도 당연한 일이다.하지만 자신감이 지나치면 자만으로 되는 법.우선 재무팀 매니저가 일어나 최근 반년의 실적을 발표했는데, 장황하게 늘어놓았지만 결론은 수입은 하나도 없고 전부 투자였다.“이건 업무 동향 리스트입니다.”재무팀에서 지출 리스트를 올렸다.강세욱의 낯빛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엄청나게 두꺼운 서류는 전부 출납 기록이었다. 서류가 이렇게 많은 이유는 바로 청구서마다 예산이 2조 원을 초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산이 2조 원을 초과하면 이사회를 통과해야 한다. 이 청구서들은 전부 2조 원 이내의 프로젝트에 관한 것이라 이사회에서 전혀 몰랐다.최근 몇 년간 강세헌은 회사를 위해 엄청난 매출을 일궈냈고 다들 그의 대부분 선택을 굳건히 믿어주었다.그리하여 회사 프로젝트와 지출에 대해 그다지 조사하지 않았다!다만 이젠...강세욱은 극도로 차오른 분노를 애써 억누르며 뭇사람들 앞에서 화내지 않았다.이어진 각 부서의 회보도 별다른 건 없었다. 적자로 인한 프로젝트 중단, 또 일부는 계속 자금을 투입해야 했다...결과적으로 좋은 소식은 단 한 개도 없었다.회의를 마치기도 전에 강세욱이 미리 종료했다!사람들이 다 나간 후 그는 회의실 문을 잠그고 나서야 제 감정을 드러냈다.“강세헌 이 망할 자식!”장진희도 의자에 앉아 한동안 말을 꺼내지 못했다.일이 순탄치 못할 거라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엉망진창일 줄은 몰랐다.“세욱아, 이사회 사람들은 아무것도 몰라. 우리도 절대 저
송연아는 찬이를 안고 일부러 그녀를 못 본 척하며 아주머니와 함께 조용한 창가 쪽으로 가서 앉았다.한편 임설은 저번에 송연아에게 망신 주지 못할뿐더러 도리어 본인이 이틀 동안 스포츠센터를 청소하여 직장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했다.어떤 동료들은 이 일로 대놓고 그녀를 놀려대기까지 했다.그녀는 사직할 충동이 몇 번 생겼지만 강세욱을 못 보면 의지할 곳이 없을까 봐 마지못해 비난을 감수하며 계속 일했다.송연아는 분명 아무것도 안 했지만 임설은 왠지 그녀가 자신을 비웃는 것만 같았다.“송연아, 너 너무 우쭐대지 마. 딱 한 번 위기를 넘겼을 뿐인데, 그렇다고 평생 안일할 것 같아?”임설은 어느샌가 송연아의 테이블 앞에 다가갔다.송연아는 찬이와 한창 놀아주다가 앙칼진 목소리를 듣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잔뜩 약 오른 임설을 보며 그녀는 아주 차분하게 말했다.“나도 내가 평생 안일할 거라고 장담 못 해. 하지만 지금 네가 힘들게 살아간다는 건 충분히 알 것 같아. 잘 지내고 있다면 어떻게 이런 흉측한 얼굴을 하고 있겠어.”“뭐라고...”임설은 화가 나 얼굴이 벌게졌다.“넌 뭐가 그리 잘났는데? 듣기로 네 남편 천주그룹에서 쫓겨났다며? 너도 이젠 더 이상 강씨 일가의 사모님이 아니겠네...”“내 남편이 회사에서 물러난 건 맞지만 날 버린 건 아니야. 난 여전히 넉넉하게 살고 있고 외출할 때도 경호원과 기사, 그리고 도우미까지 한 무리 사람들이 따라다녀. 천주그룹 대표가 아니어도 내 남편은 여전히 날 호의호식하게 해줄 능력이 되지. 반면 넌 요즘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은데, 사는 게 순탄치가 않나 봐?”송연아는 신랄하고 까칠한 성격이 아니고 과시하기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하지만 지금은 임설을 자극하기 위해 이런 말을 내뱉었다.그녀는 임지훈과 강세헌의 대화에서 강세욱이 요즘 매우 바삐 돌아친다는 걸 알았다. 매일 회사에 틀어박혀 있다고 하는데, 이제 막 대표직에 부임한지라 성과를 내서 모두가 그에게 복종하도록 할 의도인 듯싶었다.게다가 임설의 안색
결혼식을 마친 후 방유정 아버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떠나기 전에 임지훈에게 회사를 완벽하게 인계하려고 회사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임지훈은 송연아와 강세헌 일행과 같이 먼저 프랑스로 돌아가서 그쪽 일을 마무리했다. 비록 임지훈이 회사에 있으면 강세헌은 보다 한가하게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가 떠난다고 해도 그냥 조금 더 바쁠 뿐이다. 어느 회사든 누가 떠나면 절대 안 되는 건 없다. 일주일의 시간 동안 임지훈은 프랑스에서의 일들을 모두 마치고 귀국해서 방씨 가문 회사에 들어갔다.임지훈도 국내에 집이 있었지만 방유정과 같이 방씨 가문에 들어갔다. 데릴사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유정 아버지의 병을 알고 방유정이 부모님과 많을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였다. 임지훈 역시 사위로서 그럴 의무가 있었다....반년 후, 방유정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방유정 어머니는 그 충격에 순식간에 많이 늙었다.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집안 분위기는 아주 저조했는데 방유정의 대부분 시간은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예전의 임 비서는 이제 임 대표가 되어 그의 능력으로 방씨 가문은 아주 관리가 잘 되었고 3개월 후 방유정 어머니의 상황도 많이 좋아졌다.방유정이 드디어 임신하게 되면서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간 일도 어느 정도 잊혀가고 있었다. 임지훈은 곧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기뻤고 방유정도 곧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방유정 어머니 역시 곧 외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정말로 모두 행복해할 만한 일이었다.방유정이 임신 6개월 때 그들은 프랑스로 갔는데 구애린은 남자아이를 낳았고 심재경의 딸은 이제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샛별이가 유일한 여자아이여서 모두가 예뻐했다. 샛별이는 아직 작고 어렸지만 찬이를 쫓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찬이는 샛별이 다리가 짧다고 계속 놀려줬으며 그게 재밌다고 샛별이는 키득키득 웃었다. 찬이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면 샛별이는 오빠라고 불렀는데 너무 귀여웠다.방유정이 말했다.“저도 딸을 낳고 싶어요.”구애린이 말했다.“그게
비록 손을 놓기 싫었지만, 방유정 아버지는 결국 방유정의 손을 임지훈에게 넘겨줬다.“앞으로 계속 사랑하며 살기를 바란다.”방유정도 아버지에게 말했다.“꼭 그렇게 할게요.”이어서 결혼식은 순서대로 일사천리로 피로연까지 모두 순리롭게 진행되었다.방유정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는데 딸이 그렇게도 바라던 결혼을 하니 너무 기뻤다. 그런데 결혼시키고 나니 또 잘 살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세상의 부모들은 다 그런가 보다.임지훈은 방유정을 데리고 강세헌이 있는 테이블로 가서는 비록 모두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소개했다. 모두 방유정을 다시 한번 소개받았는데 이번에는 심재경 친구의 사촌 동생이 아닌 임주훈의 아내로 말이다.구애린이 웃으며 말했다.“정말 너무너무 축하해요.”방유정도 웃으며 대답했다.“고마워요.”윤이도 어른들 따라 한마디 했다.“축하해요.”방유정은 윤이를 보며 말했다.“너무 귀여워요.”그녀가 손을 뻗어 윤이의 얼굴을 만지자, 윤이가 손을 내밀었다.“안아줘요.”송연아가 미간을 찌푸렸다.“윤이야, 안 돼.”방유정이 말했다.“괜찮아요.”그녀는 윤이를 안으며 말했다.“무겁지 않아요.”윤이는 그녀의 머리에 있는 금색 비녀를 보고 만지려고 했다. 방유정이 한복을 입고 있었기에 머리에 비녀를 하고 있었다. 방유정은 아주 시원하게 바로 비녀를 빼서 윤이에게 주었는데 송연아는 윤이를 제지하지 못해서 미안해했다.“이러면 안 돼요. 오늘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괜찮아요. 그냥 액세서리일 뿐이에요. 윤이가 좋아하니 놀게 해요.”방유정은 정말 성격이 좋았다. 역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만큼 성품이 좋았다. 가끔 조금 오만하긴 하지만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모두 그녀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송연아는 윤이를 안고 달래려고 했다.“윤이 착하지. 이건...”송연아는 윤이가 방유정을 어떻게 부르면 될지 생각했는데 방유정이 웃으며 말했다.“호칭일 뿐이니까 편
“지금 막 들었는데 유정 씨와 결혼한다면서요. 지금 방씨 가문에서 결혼식을 준비한다고 난리 났어요.”임지훈이 웃었다.“저 이래 봐도 능력 있는 남자예요. 여자들한테도 인기 많아요. 봐요, 결혼도 금방 하죠?”구애린이 말했다.“이제 우리 모두 짝이 있네요.”찬이도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지훈이 삼촌, 축하해요.”“고마워.”임지훈이 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심재경이 물었다.“그런데 데릴사위로 들어간다고 하던데요?”심재경의 말에 모두 놀라며 시선이 일제히 임지훈에게로 향했다. 확실히 놀랄만한 일이다. 임지훈의 조건에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돈도 있고 능력도 있어서 충분히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데 말이다.“하긴, 방씨 가문에 가장이 필요하긴 해요.”심재경이 그쪽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한마디 했다....임지훈의 결혼식으로 송연아와 강세헌도 프랑스로 돌아가는 일정을 늦췄다. 아무도 심재경의 결혼식을 보러 왔다가 임지의 결혼식까지 보게 될 줄을 생각을 못 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이건 임지훈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듯이 방유정과의 결혼은 정말로 찰나의 결정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그 역시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임지훈이 진원우에게 말했다.“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진원우가 말했다.“그런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방씨 가문은 돈도 많고 유정 씨도 예쁘고 그 정도면 만족해야지.”“만족해. 다만 너무 빠른 것 같아서 그래.”귀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싱글이었는데 이제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결혼식은 방씨 가문에서 모두 준비했는데 방유정 딸 하나이고 또 사위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결혼식은 아주 성대하게 치렀다. 방씨 가문의 친척들도 꽤 많이 참석해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비록 데릴사위라고 하지만, 임지훈 측은 심재경이 준비했는데 심재경 본인도 금방 결혼식을 치렀기 때문에 익숙한지라 아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었다....방유정은 정교한 메이크업을 하고 값진 웨딩드레스를 입었는
“잠도 잤는데 왜요? 모른 척하려고요?”방유정이 옷을 입더니 침대에서 꼼짝 안 하는 임지훈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왜요? 계속 그렇게 누워 있을 거예요?”임지훈이 말했다.“내 옷을 가져오지 않았잖아요. 나 입을 옷 없어요.”방유정은 그제야 임지훈이 옷이 없다는 걸 생각했다.“가져다 줄게요.”그녀는 곧바로 차에 가서 캐리어를 가지고 다시 올라갔다.“뭐 입을지는 알아서 찾아서 입고 내려와요. 아래층에서 기다릴게요.”방유정은 말을 마치고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임지훈은 침대에서 내려 결혼 얘기이니만큼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정장을 찾아서 입었다. 그가 정리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방유정은 부모님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의 부모는 그를 보자마자 더욱더 열정적이었다.임지훈이 건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저기...”“우리 딸 줄게요.”“아니에요. 지훈 씨가 저한테 시집 오는 거예요.”방유정이 정정했다.“...”“...”“...”방유정을 제외한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물었다.“유정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방유정은 자신이 여자이며 이 집안에 다른 후계자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아버지가 중병이고 자기는 회사를 관리할 능력도 없기에 어찌 보면 자기가 남편을 찾는다기보다는 방씨 가문의 회사를 경영할 사람을 찾는 거였다. 인제야 그녀는 부모가 조급해하는 의도를 이해했고 그녀 역시 가문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에 임지훈이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임지훈을 각별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그런 것들 때문이지 않겠는가.“유정 씨,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임지훈은 뼈대가 있는 남자로서 데릴사위 할 생각은 없었다.방유정이 말했다.“후회하면 안 돼요!”“왜 안 돼요? 유정 씨가 뭘 원하든지 저 모두 만족시켜 줄 수...”“제가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예요.”방유정이 외치자, 임지훈은 오히려 우스웠다. 한 여자가 나한테 시집오라고 하다니!“우리 유정이가 시집가는 거 맞아요
지금 그녀가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물으면 부모님은 더 속상해할 것 같았다.‘나 이제 어떻게 해야지? 어떻게 하면 좀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지? 결혼, 그래 결혼해야 해.’그녀는 자기가 결혼해야만 부모님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 상대도 지금 바로 방에 있지 않겠는가?‘남자 친구인 척을 해줬으니 이제 남편인 척해달라고 해야지. 진짜가 아니고 가짜라도 되니까 결혼하자고 해야겠어.’방유정은 진료 기록부를 다시 원래 위치에 넣고 비틀거리며 부모님 방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갔는데 임지훈이 아직 욕실에서 나오지 않아 침대 옆에 앉아서 기다렸다. 한참 지나자, 임지훈은 가운을 두르고 욕실에서 나왔는데 침대에 자기의 옷이 보이지 않아 방유정의 옆에 서서 물었다.“내 옷은요?”그는 방유정이 잊은 것 같아서 다시 말했다.“내 옷은 지금 당신 차 트렁크에 있어요.”방유정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지훈 씨, 우리 결혼해요.”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약을 잘못 먹었어요? 아니면 정신이 어떻게 됐어요?”“다 아니에요. 그냥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거칠었는데 임지훈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물었다.“울었어요? 누가 괴롭혔어요? 얘기해 봐요. 제가 가서 때려줄게...”임지훈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방유정이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임지훈은 갑작스러운 친밀감에 몸이 굳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게... 유정 씨...”그가 말하려고 할 때 방유정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의 손이 아래로 드리는 순간 몸에 걸친 유일한 가운마저 벗겨져서 흘러내렸다.“...”방유정은 워낙 임지훈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지금 행동이 충격에 의한 도발적인 행동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웃옷의 단추를 벗겨 가슴을 드러내고는 그의 가슴에 가까이하며 말했다.“저를 좀 봐봐요.”임지훈은 참을 수 없었는지 목젖을 굴렸는데 이름 모를 불길이 아랫배에서 솟아오르더니 순식간에 딱딱해졌다.“정말 후회하지 않겠어요?”임지훈도
방유정은 어머니가 자신의 어깨를 다독이자,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응원을 하시는 거였다.“화이팅!”방유정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지금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지?’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만 좋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갑자기 선 자리를 만들어주고 남자를 유혹하라고까지 하시다니?그녀는 어머니의 이마를 만지며 물었다.“엄마,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우리 이제 나가야 해.”방유정의 아버지는 기사가 이미 대기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집을 나갔고 방유정은 문 앞까지 그들을 배웅했다. 차가 떠나자, 그녀는 집으로 들어갔는데 어차피 임지훈이 자고 있었기에 지루할 것 같아서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그녀는 가만히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는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했다. 그런데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서 임지훈을 놀려주려고 그가 곤히 자는 방으로 올라가서는 화장대에서 화장품을 가져다가 침대 옆에 앉아 임지훈에게 예쁜 화장을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도 임지훈이 깨지 않자, 옆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눈이 아파 오니 옆에 기대서 잠이 들었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는 임지훈은 이미 깨어나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언, 언제 깼어요?”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방유정은 참을 수 없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훈의 얼굴은 정말로 오페라 가수 같았는데 어찌나 웃었는지 배가 아팠다. 임지훈은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물었다.“다 웃었어요?”방유정은 곧바로 웃음을 거두고 그의 손을 뿌리쳤다.“맘대로 제 몸에 손을 대지 말아요.”임지훈이 말했다.“유정 씨를 저에게 준다고 해도 거절이에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말했다.“뭐라고요? 저를 좋다고 하는 남자들이 줄을 서면 프랑스까지는 갈 거예요. 그런데 지훈 씨는 내가 싫다고요?”임지훈이 흠칫하자, 방유정이 그를 잡고 물었다.“지금 그
“방유정은 부모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알았어요. 하시고 싶은 대로 하세요.”“어서 지훈 씨 방으로 데려가.”방유정이 물었다.“어느 방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제야 깨달은 듯 말했다.“어머, 어떡해. 게스트룸은 아직 준비가 안 돼있어. 우선 네 방으로 데려가서 휴식하게 해.”방유정은 어머니의 말에 놀라며 말했다.“아빠, 엄마, 이 정도로 오픈 마인드였어요? 어떻게 제 방에 술 취한 남자를 데려가라고 하세요?”“네 말대로 취했는데 뭐 어때?”“술김에 어떤 짓도 한다는 말 몰라요?”방유정이 묻자, 그녀의 부모님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몰라.”방유정은 철저히 말문이 막혔다. 부모님과 임지훈이 정말로 모르는 사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임지훈이 그들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엄마 아빠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아무리 나를 결혼시키고 싶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만약 진짜로 무슨 일이 있으면 책임지라고 하고 바로 결혼시킬 거야.”임지훈은 그 말을 들으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바탕 뿜었다. 방유정의 부모님이 너무 열정적이어서 본인이 천당에 있는 것 같았는데 정말로 귀여운 부모님들이라고 생각했다.‘방유정은 전생에 은하계를 구했나 봐.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고 말이야.’방유정은 역겨워하며 말했다.“지훈 씨, 여기서 이러면 어떡해요. 화장실로 가야지.”“취했잖아.”방유정 어머니가 가정부를 불러 치우게 했다.“그만하고 불편해 보이는데 어서 방으로 데려다 쉬게 해.”방유정은 혼자서 임지훈을 옮길 수 없어서 가정부의 도움을 받아 함께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방에 도착하자, 그녀는 임지훈을 침대에 던졌는데 임지훈은 몸이 포근한 세계에 떨어진 듯 따뜻하고 향기로웠다.“무슨 향수를 써요?”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방유정이 말했다.“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잠이나 자요.”임지훈은 취한 건 사실이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말짱했다. 그는 눈을 감고 또 말했다
임지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요. 해명하지 않아도 화는 나지 않았을 건데, 굳이 해명하니 용서해 줄게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삐쭉거렸다.“그렇게 잘난 척하지 말아요. 그럼 좋은 말이 안 나가니까.”“...”임지훈이 할 말을 잃었다.그때 방유정의 어머니가 열정적으로 요리를 집어 그의 앞접시에 건넸다.“이건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요리인데 맛봐요.”임지훈이 집어서 입어 넣고 먹어보더니 말했다.“맛있습니다.”방유정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고 방유정 아버지는 그에게 술을 따랐다.“평소 주량이 어떻게 돼요?”임지훈이 웃으며 대답했다.“못합니다.”방유정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었다.“잘 마실 것 같은데 너무 겸손하시네요.”임지훈이 말했다.“아니에요. 아니에요.”방유정은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아빠, 지훈 씨는 일이 바빠서 내일 프랑스로 돌아가야 해요. 일을 망치면 안 되니까 술을 많이 주지 마세요.”방유정 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그래.”“네. 그러니까 한 잔씩만 해요.”말하면서 방유정은 술을 가져갔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너 정말 분위기를 깬다.”방유정이 말했다.“두 분의 건강을 생각해서예요.”방유정 어머니는 술병을 들고 임지훈에게 한 잔 따르고 또 남편에게도 한 잔 따랐다.“많이 마시게 되면 우리 집에 방이 많으니 그냥 휴식하면 돼요. 비행기는 내일 타면 되는데 급해 할 거 없잖아요.”방유정은 어머니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엄마, 이 사람을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집에서 잠을 자래요?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려고요?”“걱정하지 마. 조사해 봤는데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야.”“...”“...”방유정과 임지훈이 순간 놀랐다. 방유정은 평생 살면서 이렇게 굴욕적인 순간을 느낀 적이 없었다. 몇 년 동안 쌓아온 체면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만든 건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의 부모님이었다.방유정 아버지는 아내를 힐끗 쳐다
“지훈 씨는 취미가 뭐예요?”방유정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임지훈은 방유정의 물음에 잠시 당황하다가 자신의 생활을 떠올렸는데 일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휴가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에 심재경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계속 일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취미는 더구나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본인의 생활이 정말로 단조롭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옆에서 따뜻하게 말 한마디 건네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순간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내를 맞이해서 함께 서로 보살펴주며 지내고 싶었는데 그런 사람만 있다면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고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방유정을 바라봤는데 본인과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방유정은 아직도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라 다른 사람을 보살필 줄은 모를 것 같았다.“왜 그런 이상한 눈빛으로 봐요?”방유정의 물음에 임지훈이 되물었다.“어디가 이상한데요?”방유정은 좀 더 가까이 가서 그의 눈을 마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왜요? 설마 저를 사랑하게 된 건 아니죠?”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당신은 성격도 안 좋고 또 엄청 잘난체하는데 내가 왜요? 점심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제 들어가요.”시간을 보며 임지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굶었어요?”방유정이 그를 비웃었다.“식사 끝나면 저는 가도 되죠.”방유정은 순간 왠지 서운했다.“그렇게 가고 싶어요?”“여기는 제집이 아닌데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요.”방유정은 그를 향해 입을 삐쭉거리자, 임지훈은 의아해했다.“왜 그래요?”“내가 뭐요?”방유정은 짜증을 냈다.“유정 씨는 정말 변덕이 많네요. 그걸 고쳐요. 남자들은 변덕이 많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요.”방유정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집안으로 걸어들어갔다.임지훈은 고개를 돌려 못에 있는 물고기들을 한 번 더 보고는 뒤따라 들어갔다. 방유정이 집에 들어서자, 그녀의 어머니가 그들을 부르러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딸만 보였기에 그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