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이슬은 그제야 시간이 나서 눈앞의 검고 깡마른 여자를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안이슬의 시선을 느꼈는지 그녀는 고개를 더 푹 숙였다.금메달리스트 가정부 사이에서 그녀는 눈에 띄는 존재였다. 다른 의미로 고객의 관심을 끈 것은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온갖 메달을 목에 건 다른 가정부와는 달리 그녀의 목에는 아무것도 걸려있지 않았다.“이분 괜찮아 보이는데요. 강문희 씨는 어떻게 생각해요?”안이슬은 깡마른 여자의 이름을 보려고 했지만 비비안은 두 번째 가정부 앞에 서고는 쩌렁쩌렁 소리를 질렀다.비비안이 고른 가정부는 얼굴에 짙은 화장을 하고 있었는데 입술에는 그녀와 전혀 어울리지 않은 빨간색 립스틱을 바르고 있었다.최선을 다해 꾸몄지만 야박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에 대한 안이슬의 첫인상은 그렇게 좋지 않았다.집에 아이까지 있으니 그녀는 절대 이런 짙은 화장을 한 사람을 집에 들일 수 없었다.“글쎄요, 조금 더 지켜볼까요?”안이슬이 고민하지 않고 바로 거절했다.자신의 권위가 짓밟혔기에 비비안은 심기가 불편했다. 그녀는 고작 베이비시터인 안이슬이 그녀의 의견을 무시하고 결정 내리는 걸 용납할 수 없었다.“난 괜찮다고 생각하는데요? 여러모로 조건이 좋잖아요. 이분을 안 뽑으면 설마 저 촌년을 뽑으려는 거예요?”안이슬이 계속 깡마른 여자 앞에 서 있자 비비안은 일부러 그녀를 비꼬면서 말했다.두 번째 가정부는 마음이 다급했는지 손을 뻗어 비비안의 옷을 잡으려고 했는데 비비안이 눈짓을 한 번 하자 그 가정부는 꼼짝하지 않고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안이슬은 두 사람의 상황을 모두 지켜봤다.비비안은 작정하고 심재경 옆에 자기 사람을 두려는 생각인 것 같았다.소위 금메달리스트인 가정부도 비비안이 부정한 방법으로 끼워 넣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렇다면 여자의 촌스러운 옷차림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안이슬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깡마른 여자의 자료를 건네받고는 대충 상황을 파악한 후 그녀를 영입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바로
“알겠어요, 지금 바로 내쫓을게요. 죄송합니다, 비비안 씨.”방금까지 매니저는 비비안에게 굽신거리더니 곧바로 임수영을 내려다보고는 사람 시켜 그녀를 쫓아내게 했다.안이슬은 더는 가만히 보고 있을 수만은 없어 입을 열었다.“얘기 다 끝냈어요? 끝냈으면 제 의견을 말할게요.”비비안은 경멸이 깃든 눈빛으로 안이슬을 바라보더니 팔짱을 끼고는 기고만장한 표정을 보였다.“임수영 씨, 이 회사에서 일한 적이 없다고 하니 제가 따로 고용해도 될까요? 그러면 회사를 통해서 버는 돈보다 훨씬 더 많이 벌 수 있을 텐데요.”안이슬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 말을 들은 임수영은 두 눈을 반짝였다.자기에게 전혀 희망이 없을 줄 알았는데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안이슬의 제안이었다.“네, 할게요. 필요하시면 지금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임수영은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내가 동의하지 않아요. 강문희 씨, 당신은 베이비시터일 뿐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지 말아요. 당신 따위가 가정부를 고를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생각해요?”비비안은 바로 그녀의 제의를 거부했다.안이슬은 비비안의 지능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멍청하다고 생각했다.아무리 자기 사람을 뽑으려는 마음이 급해도 그렇지, 이렇게 티를 내서야.적어도 아이에 관한 일이라면 안이슬은 단 한 발짝도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안이슬이 되물었다.“내가 권한이 없으면 회사 비서인 당신에게 그 권한이 있을 것 같아요?”상황이 심각해지자 월계의 매니저가 끼어들었다.“강문희 씨, 혹시 조금 더 생각해 보시는 건 어떠세요? 이 사람이 신인인 건 사실이에요. 다른 분들보다 경험이 많이 부족하다고요. 그리고 우리 회사를 통하지 않고 계약을 체결한다면 혹시라도 저 사람이 계약금을 가지고 도망가면 어떡합니까?”월계에서는 결국 심씨 집안이라는 대어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무슨 문제가 있다면 직접 대표님에게 가서 말하세요. 저에게 사람을 뽑는 권한을 줬으니 저는 제 생각대로 하는 것뿐입니다.”안이슬의 말 한마디에 현장은 조용해
어둠이 찾아오고.심재경이 돌아왔을 때 안이슬은 이미 임수영이 해야 할 일을 모두 정리했다. 이제 계약서만 작성하면 되었다.“대표님, 이분은 오늘 가정부 센터에서 데리고 온 가정부입니다. 서류나 근무 경력은 모두 확인했는데 혹시 꼭 알아야 할 사항이나 분부가 있으세요?”안이슬은 임수영을 심재경 앞에 데리고 가서 소개를 시작하며 그의 의견을 물었다.하지만 이때, 비비안이 서재에서 걸어 나오더니 심재경이 볼 수 없는 곳에서 안이슬을 노려봤다.“대표님, 제가 이미 타일렀는데도 강문희 씨는 수많은 금메달리스트 가정부들 중에서 하필 경험도 없는 사람을 뽑았어요. 저도 대표님과 아이를 생각해서 최고의 가정부를 데려오고 싶었는데 강문희 씨가 워낙 강하게 나와서 저도 어쩔 수 없었어요.”비비안은 또 불쌍한 척 연기를 시작했다.안이슬은 그저 연기를 하는 비비안을 가만히 지켜볼 뿐, 그 어떤 반박도 하지 않았다.오히려 임수영은 안이슬이 자신에게 기회를 준 것에 대해 고마움을 느껴 안이슬의 편을 들어주려고 했는데 안이슬은 곧바로 그녀를 말렸다.“왜 아직도 여기에 있어요?”심재경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예상 밖의 질문에 비비안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원래 안이슬에게 왜 내 말을 듣지 않았는지 따져 묻는 게 정상 아니야? 왜 갑자기 나에게 질문을 하는 거지? 도통 속마음을 알 수 없네.’“오, 오늘 마침 휴가라서요. 왔던 김에 대표님 서재에 있는 책과 서류를 정리하고 싶었어요.”비비안이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했다.그녀는 줄곧 자신에게 자신감이 넘쳤다. 그래서 심재경의 별장도 함부로 드나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심재경의 비서였으니 말이다.심재경은 여전히 차가운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비비안 씨는 나의 비서이지, 가정부는 아니에요. 그런 일에 신경 쓸 것 없어요.”하지만 비비안은 심재경이 한 말은 그녀를 걱정하고 생각해서 한 말이라고 생각했다.그녀의 얼굴에는 화색이 돋더니 곧이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네, 알겠습니다, 대표님.”여자의
“괜찮아요. 여기 남아요.”심재경의 말에 비비안은 입을 떡 벌렸다.그는 바보가 아닌 이상 비비안의 말을 믿을 리가 없었다.그는 안이슬을 굳게 믿고 있었고, 그녀가 선택한 사람이라면 충분히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다.비비안은 더 말하지 않았다.고요한 정적이 흐르자 심재경은 안이슬더러 자기와 함께 아이를 보러 방으로 가자고 말했다.두 사람의 발소리가 멀어지자 거실에는 비비안과 임수영 두 사람만 남았다.비비안은 아직도 임수영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었다.임수영도 이런 상황이 불편한지 비비안의 노골적인 시선에 그녀는 어쩔 줄 몰라 했다.다행히 비비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씩씩거리며 별장을 나섰다.아이의 방에서.심재경은 아이를 안은 채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샛별아, 오늘 아빠 보고 싶었어?”큰 체구의 심재경과 비교하면 샛별은 작은 인형과도 같았다. 조심스럽고 부드러운 심재경의 모습에 안이슬은 입꼬리를 올렸다.샛별은 빨간 입술을 삐죽 내밀었는데 너무나도 귀여웠다.그리고 배고팠는지 이내 쩝쩝거렸다.“아무래도 배고픈 모양이에요. 지금 가서 분유를 타와요.”심재경이 말했다.안이슬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심재경은 고개를 들어 다시 한번 말했다.“강문희 씨?”안이슬은 그제야 반응하고서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재빠르게 분유를 탄 후 심재경에게 건넸다.“아이가 아직 어려서 너무 급하게 먹이면 안 돼요.”안이슬이 신신당부했다.심재경은 사실 어떻게 아이에게 분유를 먹여야 하는지도 잘 몰랐다.물론 아예 모르는 건 아니었다. 외국에 있을 때 그는 아이를 돌본 경험이 있었는데 회사에 일이 많은 게 아니라면 그는 그렇게 빨리 아이와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아이가 생겼으니 그는 사업을 더 크게 키워나가야 했다. 그래야 딸이 아무 걱정 없는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아이에게 무한한 사랑과 인내심을 보이는 심재경을 보면서 안이슬은 마음이 놓였다.아이를 자기 곁에 두고 정처 없는 생활을 할 바에는 역시 심재경의 옆에 있는 게
이후 3일 동안, 별장의 모든 것들이 질서정연하게 진행되었다. 특히 임수영의 손에 있던 일은 마치 가속 버튼을 누른 것처럼 신속하고 깔끔하게 처리되었다. 그녀는 가끔 안이슬을 도와 아이를 돌보고 요리도 할 수 있었다.“힘들지 않아요? 매일 이렇게 팽이 치듯 바쁜데 집에서도 수영 씨한테 의지하고 있고 매달 이틀밖에 안 쉬어도 월급은 그대로잖아요.”임수영이 거실에서 바쁘게 일하는 모습을 보고 안이슬이 물었다. 같은 여자끼리 측은지심이 들었다.그녀가 알기로 임수영은 입주 가사 도우미지만 매일 두 시간씩 자유시간을 달라고 요청하여 집에 돌아가서 남편을 보살펴야 했다.이 두 시간 안에 임수영은 남편을 위해 하루 동안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준비해주고 그가 전날에 남긴 대소변을 처리해줘야 했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남편을 데리고 병원으로 가서 검사해야 했다. 기계라도 이렇게 많은 일을 다 해내지 못할 것 같다.“괜찮아요, 저는 힘들지 않아요. 저한테 이렇게도 높은 월급을 주는데 받은 만큼 일을 해야죠. 제가 외출을 하는 걸 허락하는 것만 해도 정말 감지덕지하는데 제가 무엇을 더 바랄 수 있겠어요.”임수영은 무던하게 자신의 머리를 끄적이며 겸연쩍게 웃었다.“여기는 별일이 없어서 하루 이틀 쉬는 건 문제 없어요. 제가 다 처리할 수 있어요. 수영 씨 남편분도 보살필 사람이 필요하고 수영 씨도 쉬어야 하잖아요. 사람은 기계가 아니어서 너무 과로하면 큰일 나요. 휴식할 필요가 있어요.”안이슬이 말했다. 이건 임수영이 이 일을 하고 나서 누군가가 자신에게 편견을 가지지 않고 심지어 자신의 남편에게 존칭을 쓰는 게 처음이었다. 임수영은 마음속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결국, 안이슬은 강제적으로 임수영에게 한 주에 한 번 휴가를 주고 매일 외출하는 시간도 두 시간을 더 증가했다. 이건 그녀한테 대한 다른 방식의 배려라고 할 수 있다.가까스로 별 탈 없는 며칠을 보내고 모든 게 이렇게 질서 있게 진행되리라 생각했던 안이슬은 임수영한테서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새벽
비비안은 말하면서 친분을 과시하듯이 임수영의 팔짱을 끼려고 했는데 임수영의 손에 있는 거친 굳은살과 까무잡잡한 피부를 보고 망설이다가 손을 거두었다. 임수영은 대답이 없었는데 거절하는 뉘앙스도 아닌 이유는 비비안이 도대체 무슨 속셈인지 알고 싶어서였다. 이때까지 살아온 세월이 얼마인데 진심으로 자신한테 잘해주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보아내지 못할 리가 없다.비비안이 이끄는 대로 고급스러운 카페에 들어가서 아침을 먹으면서 임수영은 몰래 안이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비비안이 자신을 찾아서 사적인 대화를 나누려는데 무슨 목적인지는 모르겠고 더 얘기를 해봐야 알 것 같다고 했다.“요즘 집에서 일하는 건 어때요? 할 만해요?”비비안은 커피 한 잔과 작은 케이크를 임수영의 앞으로 밀어주면서 아주 다정한 말투로 그녀의 근황을 물었다.하지만 임수영은 아주 민감하게 비비안이 심 대표님 자택이라 칭하는 것이 아니라 ‘집’이라는 단어를 쓴다는 것을 캐치했다. 비비안은 심 대표님과 어떤 관계가 있는 사이도 아닌데 왜 이렇게 가까운 사이에 쓸 수 있는 사적인 말을 쓰는가, 이로 보아 그녀는 자신의 상사를 유혹해서 하룻밤으로 인생역전을 꿈꾸는 여자라는 걸 알수 있었다.예전이었다면 임수영은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자신의 부당한 생각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꼈을 것이지만 비비안이라면 말이 달라진다. 이 모든 게 모두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할 만해요.”임수영은 냉랭한 목소리로 대답했다.비비안은 임수영이 자신을 경계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일부러 낮은 자태로 말을 계속했다.“그때 일은 제가 잘못했어요. 제가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됐어요. 그때는 너무 걱정되는 마음에 그런 거예요. 예전에도 돈만 밝히는 가정부를 만난 적이 있어서 말을 가리지 않고 하게 되었어요.”임수영은 말을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그녀가 또 어떤 수를 쓸지 보고만 있었다.“이번에 수영 씨를 찾아온 것은 부탁할 게 있어서예요. 걱정하지 말아요. 일이 끝나면 반드시 돈을 두둑이 챙겨줄 거예요.”비비안은 임수영이
지금 앞에 있는 이 사람은 돈으로 자신을 매수하려고 한다는 말인가?임수영은 지금까지 늘 정직하게 가사 도우미 일을 해와서 이런 경우를 본 적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그래도 그녀는 한가지 도리를 잘 알고 있다.자신의 것이 아닌 것은 가지면 안 된다.설사 잠시 손에 넣었다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다시 되돌려야 할 것이다.어쩌면 되돌릴 때의 대가가 훨씬 더 클 수도 있다.이 때문에 자신은 절대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더구나 심 대표님이 주는 월급이 적지 않다. 이 모든 것은 강문희 덕분에 그녀가 누릴 수 있는 것들인데 어떻게 강문희한테 불리한 일을 할 수가 있겠는가. 그녀가 월계에 온 지도 시간이 많이 지나서 주인집에서 가사 도우미를 청할 때 주는 월급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보통 월급을 200만 원 정도 준다면 다 높은 급여로 쳐주었다. 하지만 심 대표는 그녀에게 월급을 240만 원씩 주고 있다.청소하는 것 외에도 그녀는 딱히 다른 일을 하는 게 없었다. 이만한 월급을 받는다고 월계에 있는 사람들한테 말하면 그들이 얼마나 질투를 할지 모른다..하여 그녀는 더욱 본분을 지켜야 했다.“저는 못 할 것 같습니다.”“저희 같은 시골뜨기들은 그저 설거지나 하고 바닥 닦는 일이나 할 줄 알지, 그쪽이 말한 것들은 정말 할 줄 모릅니다.”임수영은 일부러 사투리 억양으로 말하면서 세상 물정을 모른다는 모습을 보였다.비비안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완벽하게 알아듣지 못했는데 못하겠다는 거절의 뜻은 알아들었다.시골뜨기들은 정말 고지식하다.“임수영 씨,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당신이 월계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당신의 능력 덕분이라고 믿어요.”“내가 당신에게 부탁하는 일은 아주 간단해요. 이것만 하면 당신은 아주 쉽게 집안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 왜 거절하는 거예요? 왜 그렇게 힘들게 살려고 해요? 이러는 게 바보 같아 보이지 않아요?”비비안은 이렇게 좋은 일을 임수영이 왜 거절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만약 자신이
이번에 따내려 했던 프로젝트를 경쟁 업체와 단 200만 원 차이로 빼앗기게 되었다.이 사단을 보고 회사 내부에 산업스파이가 없다고 한다면 회사의 청소부 아줌마도 믿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이 사람이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른다.회사의 검사 부서에서는 이미 조사를 시작했지만, 아직 아무 단서도 찾지 못했다. 이런 경우는 한 가지밖에 없었다. 이 사람은 회사의 고위층 임원일 것이다. 아니면 회사의 핵심적인 경쟁 입찰 금액을 알 수가 없었다.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분위기 속에 한 남자가 걸어 들어왔다. 그는 캐주얼한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슈트를 차려입은 엘리트들과는 어울리지 않았다.“심 대표님, 이사회 쪽에서 벌써 주식을 팔겠다고 난리입니다.”단기문은 조심스레 심재경의 귓가에 이렇게 말했다. 심영의 주주 중 한 사람으로서 그 누구도 단기문이 너무 갑작스럽게 찾아왔다고 할 수 없었다.그는 개성이 넘치고 소탈하지만, 심재경의 편에 서 있는 사람이었다.심재경의 생각에 이 상황은 더 형편없게 될 것 같았다. 주주들의 지분 매각이 이뤄지기만 하면 심영의 주가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심영에서 이번 프로젝트를 빼앗긴 마당에 주가까지 흔들리면...앉아 있는 사람들은 순식간에 긴장하기 시작했다.“이번 실수에 대해서는 모두가 책임이 있습니다. 올해 연말 보너스는 전체가 다 절반으로 탕감할 것입니다.”“3일 후부터 전당으로 가서 폐쇄식 관리에 들어가겠습니다.”“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사람들은 마음속에 불만이 많았지만, 이 결과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심재경한테 바로 해고당하는 것보다는 연말 보너스를 절반 탕감하는 게 훨씬 좋은 결과였다.사람들이 떠난 후 심재경은 자신의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삼촌들은 정말 한시도 가만히 있지를 않네요!”아직 여기 내부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는데 이사회 쪽에서 또 문제를 일으켰다.“가서 통지하세요. 내일 열 시에 이사회 회의를 진행하겠습니다.”단기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통지를 내리러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