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안은 말하면서 친분을 과시하듯이 임수영의 팔짱을 끼려고 했는데 임수영의 손에 있는 거친 굳은살과 까무잡잡한 피부를 보고 망설이다가 손을 거두었다. 임수영은 대답이 없었는데 거절하는 뉘앙스도 아닌 이유는 비비안이 도대체 무슨 속셈인지 알고 싶어서였다. 이때까지 살아온 세월이 얼마인데 진심으로 자신한테 잘해주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보아내지 못할 리가 없다.비비안이 이끄는 대로 고급스러운 카페에 들어가서 아침을 먹으면서 임수영은 몰래 안이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비비안이 자신을 찾아서 사적인 대화를 나누려는데 무슨 목적인지는 모르겠고 더 얘기를 해봐야 알 것 같다고 했다.“요즘 집에서 일하는 건 어때요? 할 만해요?”비비안은 커피 한 잔과 작은 케이크를 임수영의 앞으로 밀어주면서 아주 다정한 말투로 그녀의 근황을 물었다.하지만 임수영은 아주 민감하게 비비안이 심 대표님 자택이라 칭하는 것이 아니라 ‘집’이라는 단어를 쓴다는 것을 캐치했다. 비비안은 심 대표님과 어떤 관계가 있는 사이도 아닌데 왜 이렇게 가까운 사이에 쓸 수 있는 사적인 말을 쓰는가, 이로 보아 그녀는 자신의 상사를 유혹해서 하룻밤으로 인생역전을 꿈꾸는 여자라는 걸 알수 있었다.예전이었다면 임수영은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자신의 부당한 생각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꼈을 것이지만 비비안이라면 말이 달라진다. 이 모든 게 모두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할 만해요.”임수영은 냉랭한 목소리로 대답했다.비비안은 임수영이 자신을 경계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일부러 낮은 자태로 말을 계속했다.“그때 일은 제가 잘못했어요. 제가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됐어요. 그때는 너무 걱정되는 마음에 그런 거예요. 예전에도 돈만 밝히는 가정부를 만난 적이 있어서 말을 가리지 않고 하게 되었어요.”임수영은 말을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그녀가 또 어떤 수를 쓸지 보고만 있었다.“이번에 수영 씨를 찾아온 것은 부탁할 게 있어서예요. 걱정하지 말아요. 일이 끝나면 반드시 돈을 두둑이 챙겨줄 거예요.”비비안은 임수영이
지금 앞에 있는 이 사람은 돈으로 자신을 매수하려고 한다는 말인가?임수영은 지금까지 늘 정직하게 가사 도우미 일을 해와서 이런 경우를 본 적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그래도 그녀는 한가지 도리를 잘 알고 있다.자신의 것이 아닌 것은 가지면 안 된다.설사 잠시 손에 넣었다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다시 되돌려야 할 것이다.어쩌면 되돌릴 때의 대가가 훨씬 더 클 수도 있다.이 때문에 자신은 절대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더구나 심 대표님이 주는 월급이 적지 않다. 이 모든 것은 강문희 덕분에 그녀가 누릴 수 있는 것들인데 어떻게 강문희한테 불리한 일을 할 수가 있겠는가. 그녀가 월계에 온 지도 시간이 많이 지나서 주인집에서 가사 도우미를 청할 때 주는 월급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보통 월급을 200만 원 정도 준다면 다 높은 급여로 쳐주었다. 하지만 심 대표는 그녀에게 월급을 240만 원씩 주고 있다.청소하는 것 외에도 그녀는 딱히 다른 일을 하는 게 없었다. 이만한 월급을 받는다고 월계에 있는 사람들한테 말하면 그들이 얼마나 질투를 할지 모른다..하여 그녀는 더욱 본분을 지켜야 했다.“저는 못 할 것 같습니다.”“저희 같은 시골뜨기들은 그저 설거지나 하고 바닥 닦는 일이나 할 줄 알지, 그쪽이 말한 것들은 정말 할 줄 모릅니다.”임수영은 일부러 사투리 억양으로 말하면서 세상 물정을 모른다는 모습을 보였다.비비안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완벽하게 알아듣지 못했는데 못하겠다는 거절의 뜻은 알아들었다.시골뜨기들은 정말 고지식하다.“임수영 씨,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당신이 월계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당신의 능력 덕분이라고 믿어요.”“내가 당신에게 부탁하는 일은 아주 간단해요. 이것만 하면 당신은 아주 쉽게 집안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 왜 거절하는 거예요? 왜 그렇게 힘들게 살려고 해요? 이러는 게 바보 같아 보이지 않아요?”비비안은 이렇게 좋은 일을 임수영이 왜 거절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만약 자신이
이번에 따내려 했던 프로젝트를 경쟁 업체와 단 200만 원 차이로 빼앗기게 되었다.이 사단을 보고 회사 내부에 산업스파이가 없다고 한다면 회사의 청소부 아줌마도 믿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이 사람이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른다.회사의 검사 부서에서는 이미 조사를 시작했지만, 아직 아무 단서도 찾지 못했다. 이런 경우는 한 가지밖에 없었다. 이 사람은 회사의 고위층 임원일 것이다. 아니면 회사의 핵심적인 경쟁 입찰 금액을 알 수가 없었다.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분위기 속에 한 남자가 걸어 들어왔다. 그는 캐주얼한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슈트를 차려입은 엘리트들과는 어울리지 않았다.“심 대표님, 이사회 쪽에서 벌써 주식을 팔겠다고 난리입니다.”단기문은 조심스레 심재경의 귓가에 이렇게 말했다. 심영의 주주 중 한 사람으로서 그 누구도 단기문이 너무 갑작스럽게 찾아왔다고 할 수 없었다.그는 개성이 넘치고 소탈하지만, 심재경의 편에 서 있는 사람이었다.심재경의 생각에 이 상황은 더 형편없게 될 것 같았다. 주주들의 지분 매각이 이뤄지기만 하면 심영의 주가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심영에서 이번 프로젝트를 빼앗긴 마당에 주가까지 흔들리면...앉아 있는 사람들은 순식간에 긴장하기 시작했다.“이번 실수에 대해서는 모두가 책임이 있습니다. 올해 연말 보너스는 전체가 다 절반으로 탕감할 것입니다.”“3일 후부터 전당으로 가서 폐쇄식 관리에 들어가겠습니다.”“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사람들은 마음속에 불만이 많았지만, 이 결과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심재경한테 바로 해고당하는 것보다는 연말 보너스를 절반 탕감하는 게 훨씬 좋은 결과였다.사람들이 떠난 후 심재경은 자신의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삼촌들은 정말 한시도 가만히 있지를 않네요!”아직 여기 내부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는데 이사회 쪽에서 또 문제를 일으켰다.“가서 통지하세요. 내일 열 시에 이사회 회의를 진행하겠습니다.”단기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통지를 내리러 갔다
순식간에 임수영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전화를 끊은 후 긴장한 모습으로 심재경을 보고 있었다.“무슨 급한 일이 있으면 가봐요. 제가 기사님한테 데려다주라고 할게요.”심재경은 한 손으로 샛별의 등을 토닥이며 한편으로는 임수영을 위로했다.그는 임수영의 집안 상황을 잘 알고 있으므로 급여에 대해서도 그녀에게 많은 배려를 해주었다. 그리고 그녀가 집안일을 처리할 충분한 시간도 주었다. 그가 임수영에게 바라는 것은 충성심뿐이다.“감사합니다, 대표님. 정말 좋은 분이세요!”소박한 임수영은 어떻게 사람을 칭찬해야 할지를 몰라 그저 제일 간단한 말로 심재경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였다. 임수영이 다급하게 문을 나서느라 하마터면 넘어질 뻔하여지자 안이슬이 말했다.“천천히 가요.”임수영이 고개를 끄덕였다.임수영이 떠난 후, 심재경이 물었다.“문희 씨, 임 아주머니가 어떻게 당신을 이 정도로 따를 수 있는지 궁금해요.”안이슬은 샛별이 심재경의 품 안에서 잠든 것을 보고 심재경한테서 샛별이를 받아 안았다. 갑자기 가까워진 두 사람의 거리에 심재경은 가슴이 두근거렸다.“저는 그저 제가 배운 그대로 실천에 옮길 뿐입니다. 아주머니가 말하는 것처럼 그 정도는 아니에요.”아이가 잠이 든 후, 안이슬은 심재경에게 나가서 말하자고 사인을 보냈다.강문희가 뒤돌아 나간 후 심재경도 문을 닫는 것을 잊지 않았다.“당신의 능력은 제가 잘 지켜보고 있어요. 오늘 샛별이가 보채지 않았나요?”전에 그 가정부는 샛별이 너무 보채서 진이 다 빠졌었는데, 사실 그가 진짜 묻고 싶은 말은 그녀가 아이를 돌보는 게 힘들지는 않은지 하는 물음이었다.“심 대표님, 걱정하지 마세요. 샛별이는 돌보기가 아주 수월해요. 제가 돌봤던 아이들 가운데서 제일 얌전한 아이라고 할 수 있어요.”심재경은 미간을 찌푸리며 속으로는 그녀가 정말 빈틈을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다.그는 아이가 얼마나 보채는지 모르는 게 아니었지만 그녀는 그다지 피곤해 보이지 않긴 했다.“대표님, 다른 일이
“저의 급여는 이미 충분하니 더 주실 필요가 없습니다.”더 많은 돈을 준다고 해도 안이슬은 더는 심재경의 돈을 받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돈이 궁하지 않았다. 정말 돈이 충분했다.다만 심재경의 집에서 일할 기회는 돈을 주어도 사지 못하는 소중한 기회이다. 한 달 동안 심재경이 집에 없다면 그녀는 샛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다.심재경이 말했다.“그럼 잘 부탁할게요.”안이슬이 일어서서 살짝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끄덕였다.“아닙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이에요.”“핸드폰은 계속 곁에 두고 있을 겁니다. 다른 일이 없다면 저는 먼저 돌아가서 갖고 올 물건들을 정리하겠습니다.”심재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강문희가 떠난 후에야 그는 고개를 소파에 파묻었다.팽팽하던 긴장의 끈이 드디어 탁 풀렸다.안이슬은 집에 도착한 후 약을 먹고 휴식을 취했다. 그녀의 몸은 아직 이렇게 무리하는 것을 버거워했다.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도 인터넷에서 본 이유식을 만드는 영상이 생각나서 시도해보고 싶은 마음에 침대에서 일어나려는데 핸드폰이 울렸다.“연아?”송연아한테서 온 전화였다. 이 시간이면 프랑스는 점심 때쯤 된다.선글라스를 쓰고 카페에 앉아있던 송연아는 선글라스를 벗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이슬 언니, 재경 선배 집에 들어간 지도 언제인데 왜 나한테 전화 한 통이 없어요.”송연아는 투정 부리듯 말했다.“참나, 아이를 돌보느라 바빠...”안이슬은 말하다가 본인도 더 얘기를 잇지 못했다. 아무리 바쁘다고 해도 전화를 할 시간조차 없겠는가?이제 금방 돌아왔는데 심재경의 집에 일도 많고 국내에 들어오니 안이슬이 적응해야 할 부분도 많았다. “무슨 필요한 게 있으면 나한테 얘기해요.”안이슬은 알겠다고 대답하면서 손은 바삐 움직였다. 그녀는 영양가가 더 높은 과일야채 주스를 만들 예정이었다. 맛도 다양하게 되면 샛별이가 더 좋아할 것 같았다.“이렇게 늦은 시간에 아직도 뭘 하는 거예요, 설마 아직 재경 선배 집에 있는 건 아니죠?”송연
송연아는 안이슬의 현재 모습을 생각하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녀조차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외모가 크게 변했다고 하더라도 사람의 성격은 어떻게 쉽게 변할 수 있겠는가? 심재경이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면, 그건 그가 안이슬을 사랑한 적이 없거나 바보거나 둘 중 하나였다. “어쨌든 조심하도록 해요. 재경 선배가 그렇게 쉽게 속지 않을 거예요.”송연아는 그녀에게 주의하라고 하였다. 안이슬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알아. 샛별을 위해서라도 조심할게.”심재경의 집에 계속 머물면서 샛별이가 커가는 것을 볼 수만 있다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안이슬은 기꺼이 할 것이다.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나고 안이슬은 또 편히 잠을 자지 못했다. 그 일을 겪은 이후로, 그 끔찍한 장면은 항상 그녀의 꿈속에 나타났다. 일찍 일어나서 심재경의 집에 있는 동안 필요할 몇 가지 물건을 챙겼다. 안이슬이 심재경의 집에 도착했을 때, 심재경은 아기방에서 막 나왔다.“오셨군요, 샛별이 어젯밤에 한 번 깨었어요.”“방금 기저귀를 갈아주고 잠들었어요.”안이슬은 서둘러 샛별의 상태를 확인하러 갔고, 모든 것이 무탈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안심했다. “심 대표님, 옷을 거꾸로 입으셨습니다.”안이슬은 손가락으로 심재경의 셔츠를 가리키고 있었는데 살짝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있었다. 아침 일찍 일어난 여파인지 심재경은 셔츠를 거꾸로 입고 있었다. 심재경은 거꾸로 입은 셔츠를 발견하고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신경을 미처 못 썼네요.”안이슬이 말했다.“그럴 수 있죠.”아마도 샛별이를 돌보느라 지쳤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 일도 바빴기 때문일 것이다. 안이슬은 몸을 굽혀서 아기 침대 옆에 있는 물건들을 치웠다. 심재경은 그녀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옷을 갈아입지 않으시겠어요?”안이슬은 빨래를 들고 빨래실 쪽으로 갔다. 심재경은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는 말했다.“갈아입어야죠. 이대로 회사에 갔다가는 웃음거리가 되겠죠.”그는 방으로 들어가려다
“그 돈, 제가 빌려드릴게요.”임수영은 눈물을 닦고 아들에게 여기서 기다리라고 하고 문제가 생기면 전화하라고 당부했다. 임수영이 도착했을 때, 안이슬은 그녀에게 큰 검은색 봉투를 건네주었다. “여기 8000만 원이 있어요. 우선 급한 데에 써요.”안이슬은 종이와 펜을 꺼내 임수영에게 건넸고 임수영은 별다른 말 없이 서명했다. 눈앞에서 자신의 남편이 죽어가는 걸 지켜보는 것은 그녀에게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 돈은 제가 꼭 갚을게요.” 안이슬은 임수영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누구에게나 어려운 시기가 있는 법이다. 임수영이 돈을 받아줄 수 있게 미리 채무증서를 작성했다. 안이슬은 임수영이 자존심이 센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얼른 가세요. 대표님께는 제가 말씀드릴게요.” 임수영은 감사의 의미로 안이슬한테 포옹을 하고는 서둘러 떠났다. 임수영이 떠난 후, 안이슬은 심재경이 준 카드로 8000만 원을 꺼냈다. 잠시 낮잠을 자고 있던 심재경은 갑자기 메시지를 받았고 이를 본 후 미간을 찌푸렸다. ‘강문희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아니면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가?’이런 생각이 들자 심재경은 회사에서 나와 차를 몰고 집으로 향했다. 오전의 이사회 회의가 끝난 후, 그의 삼촌들은 그에게 거의 불가능한 임무를 줬다. 아마 한 달 안에 해결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래서 그 전에 집안일을 잘 정리해야 했다. “대표님, 무슨 일이세요?”안이슬은 눈길을 피하는 듯했다. 그녀는 자신이 돈을 꺼낸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심재경이 돌아올 줄 몰랐다. ‘이건 자신을 신뢰하지 않는 건가, 아니면?’“문희 씨, 돈을 왜 빼냈어요?”심재경은 다급하게 물었는데 그의 눈은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안이슬은 두 걸음 물러서서 테이블 위에 있던 채무증서를 들었다. “아주머니 집안에 급한 일이 생겨서 제가 돈을 먼저 썼어요. 제가 대표님한테 빌린 거로 해주세요.” 채무증서를 본 후 심재경의 얼굴에 드러났던 걱정이 사라졌다. 그는
회사로 돌아간 심재경은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이 한 달 동안 무슨 일이 발생할지도 미지수였다.내일 그는 회사 동료들과 함께 전당으로 가야 했다. 전당은 폐쇄식으로 된 호텔이었는데 심재경과 같은 수요가 있는 사람들을 위해 전문적으로 제작된 것이다. 이번 이사회 회의에서 호기롭게 내기를 걸어서 심재경은 모든 희망을 이번 폐쇄식 관리에 걸 수밖에 없었다.이 시간에 비비안은 원래 자리에 있어야 하는데 지금 비비안의 자리는 공석이었다. 하지만 회사의 사람들은 뭐라고 얘기하지 못했다. 비비안은 지금 심재경의 최측근에 있는 사람이기에 회사 사람들도 그녀의 체면을 어느 정도 세워주었다.검은 옷차림의 비비안이 좁은 골목길에 도착했다. 그녀가 문을 두드리자, 문이 열리고 비비안은 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비비안이야?” 앞에 앉아 있는 남자는 몇 년 전 유행했던 볼륨 있는 뒷머리를 하고 있었으며 흔들의자에 누워서 비비안을 쳐다봤다. 옆에 있는 보조는 태블릿을 들고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심 대표님, 무슨 일로 저를 찾으셨나요?”비비안은 몸매가 정말 일품이어서 그녀 앞에 앉은 남자가 참지 못하고 입술을 핥을 정도였다. “내 조카랑 사귀는 것보다 나랑 함께하는 게 더 좋지 않겠어?”심인범은 심재경의 둘째 삼촌이자 회사에서 가장 큰 지분을 가진 주주다. 지난 몇 년 동안 그는 은밀한 방식으로 심재경의 사업에 훼방을 놓았는데 바로 자신이 대표이사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였다. “심 대표님, 제가 어떻게 감히 대표님의 여자가 될 수 있겠어요?”“저는 그저 밥벌이하는 사람일 뿐이에요. 제가 어떻게 감히 대표님과 같은 분들과 어울리겠어요.”쯧쯧쯧...심인범은 손뼉을 쳤다. 비비안을 그저 예쁜 장식품으로만 여겼었는데 그녀가 이렇게 속셈이 많은 여자인 줄은 생각 못 했다. 심재경의 곁에 남을 수 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심재경은 그녀에게 특별한 장점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는 업무 능력도 뛰어나지 않았는데 그저 일시적으로 와서 사소한 일을 도와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