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연아는 안이슬의 현재 모습을 생각하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녀조차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외모가 크게 변했다고 하더라도 사람의 성격은 어떻게 쉽게 변할 수 있겠는가? 심재경이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면, 그건 그가 안이슬을 사랑한 적이 없거나 바보거나 둘 중 하나였다. “어쨌든 조심하도록 해요. 재경 선배가 그렇게 쉽게 속지 않을 거예요.”송연아는 그녀에게 주의하라고 하였다. 안이슬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알아. 샛별을 위해서라도 조심할게.”심재경의 집에 계속 머물면서 샛별이가 커가는 것을 볼 수만 있다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안이슬은 기꺼이 할 것이다.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나고 안이슬은 또 편히 잠을 자지 못했다. 그 일을 겪은 이후로, 그 끔찍한 장면은 항상 그녀의 꿈속에 나타났다. 일찍 일어나서 심재경의 집에 있는 동안 필요할 몇 가지 물건을 챙겼다. 안이슬이 심재경의 집에 도착했을 때, 심재경은 아기방에서 막 나왔다.“오셨군요, 샛별이 어젯밤에 한 번 깨었어요.”“방금 기저귀를 갈아주고 잠들었어요.”안이슬은 서둘러 샛별의 상태를 확인하러 갔고, 모든 것이 무탈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안심했다. “심 대표님, 옷을 거꾸로 입으셨습니다.”안이슬은 손가락으로 심재경의 셔츠를 가리키고 있었는데 살짝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있었다. 아침 일찍 일어난 여파인지 심재경은 셔츠를 거꾸로 입고 있었다. 심재경은 거꾸로 입은 셔츠를 발견하고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신경을 미처 못 썼네요.”안이슬이 말했다.“그럴 수 있죠.”아마도 샛별이를 돌보느라 지쳤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 일도 바빴기 때문일 것이다. 안이슬은 몸을 굽혀서 아기 침대 옆에 있는 물건들을 치웠다. 심재경은 그녀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옷을 갈아입지 않으시겠어요?”안이슬은 빨래를 들고 빨래실 쪽으로 갔다. 심재경은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는 말했다.“갈아입어야죠. 이대로 회사에 갔다가는 웃음거리가 되겠죠.”그는 방으로 들어가려다
“그 돈, 제가 빌려드릴게요.”임수영은 눈물을 닦고 아들에게 여기서 기다리라고 하고 문제가 생기면 전화하라고 당부했다. 임수영이 도착했을 때, 안이슬은 그녀에게 큰 검은색 봉투를 건네주었다. “여기 8000만 원이 있어요. 우선 급한 데에 써요.”안이슬은 종이와 펜을 꺼내 임수영에게 건넸고 임수영은 별다른 말 없이 서명했다. 눈앞에서 자신의 남편이 죽어가는 걸 지켜보는 것은 그녀에게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 돈은 제가 꼭 갚을게요.” 안이슬은 임수영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누구에게나 어려운 시기가 있는 법이다. 임수영이 돈을 받아줄 수 있게 미리 채무증서를 작성했다. 안이슬은 임수영이 자존심이 센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얼른 가세요. 대표님께는 제가 말씀드릴게요.” 임수영은 감사의 의미로 안이슬한테 포옹을 하고는 서둘러 떠났다. 임수영이 떠난 후, 안이슬은 심재경이 준 카드로 8000만 원을 꺼냈다. 잠시 낮잠을 자고 있던 심재경은 갑자기 메시지를 받았고 이를 본 후 미간을 찌푸렸다. ‘강문희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아니면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가?’이런 생각이 들자 심재경은 회사에서 나와 차를 몰고 집으로 향했다. 오전의 이사회 회의가 끝난 후, 그의 삼촌들은 그에게 거의 불가능한 임무를 줬다. 아마 한 달 안에 해결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래서 그 전에 집안일을 잘 정리해야 했다. “대표님, 무슨 일이세요?”안이슬은 눈길을 피하는 듯했다. 그녀는 자신이 돈을 꺼낸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심재경이 돌아올 줄 몰랐다. ‘이건 자신을 신뢰하지 않는 건가, 아니면?’“문희 씨, 돈을 왜 빼냈어요?”심재경은 다급하게 물었는데 그의 눈은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안이슬은 두 걸음 물러서서 테이블 위에 있던 채무증서를 들었다. “아주머니 집안에 급한 일이 생겨서 제가 돈을 먼저 썼어요. 제가 대표님한테 빌린 거로 해주세요.” 채무증서를 본 후 심재경의 얼굴에 드러났던 걱정이 사라졌다. 그는
회사로 돌아간 심재경은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이 한 달 동안 무슨 일이 발생할지도 미지수였다.내일 그는 회사 동료들과 함께 전당으로 가야 했다. 전당은 폐쇄식으로 된 호텔이었는데 심재경과 같은 수요가 있는 사람들을 위해 전문적으로 제작된 것이다. 이번 이사회 회의에서 호기롭게 내기를 걸어서 심재경은 모든 희망을 이번 폐쇄식 관리에 걸 수밖에 없었다.이 시간에 비비안은 원래 자리에 있어야 하는데 지금 비비안의 자리는 공석이었다. 하지만 회사의 사람들은 뭐라고 얘기하지 못했다. 비비안은 지금 심재경의 최측근에 있는 사람이기에 회사 사람들도 그녀의 체면을 어느 정도 세워주었다.검은 옷차림의 비비안이 좁은 골목길에 도착했다. 그녀가 문을 두드리자, 문이 열리고 비비안은 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비비안이야?” 앞에 앉아 있는 남자는 몇 년 전 유행했던 볼륨 있는 뒷머리를 하고 있었으며 흔들의자에 누워서 비비안을 쳐다봤다. 옆에 있는 보조는 태블릿을 들고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심 대표님, 무슨 일로 저를 찾으셨나요?”비비안은 몸매가 정말 일품이어서 그녀 앞에 앉은 남자가 참지 못하고 입술을 핥을 정도였다. “내 조카랑 사귀는 것보다 나랑 함께하는 게 더 좋지 않겠어?”심인범은 심재경의 둘째 삼촌이자 회사에서 가장 큰 지분을 가진 주주다. 지난 몇 년 동안 그는 은밀한 방식으로 심재경의 사업에 훼방을 놓았는데 바로 자신이 대표이사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였다. “심 대표님, 제가 어떻게 감히 대표님의 여자가 될 수 있겠어요?”“저는 그저 밥벌이하는 사람일 뿐이에요. 제가 어떻게 감히 대표님과 같은 분들과 어울리겠어요.”쯧쯧쯧...심인범은 손뼉을 쳤다. 비비안을 그저 예쁜 장식품으로만 여겼었는데 그녀가 이렇게 속셈이 많은 여자인 줄은 생각 못 했다. 심재경의 곁에 남을 수 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심재경은 그녀에게 특별한 장점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는 업무 능력도 뛰어나지 않았는데 그저 일시적으로 와서 사소한 일을 도와주는
지금 강문희가 혼자 집에 있으므로 그녀가 하지 않으면 할 사람이 없었다.“괜찮아요. 힘들지 않습니다.”하지만 심재경은 낯빛이 좋지 않았다.“임수영 씨는 아직 한 주가 지나야 일하러 올 수 있는데 그동안 비비안 씨가 와서 일을 좀 도와달라고 할게요.”‘비비안?’안이슬은 살짝 불쾌했지만, 심재경이 이렇게 말한 마당에 그녀도 더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알겠어요. 대표님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샛별이와 잠시 놀아주고 나서 심재경은 내일 가지고 갈 물건들을 정리했다. 그가 아래층으로 내려왔을 때 안이슬이 샛별을 위해 야채 주스를 만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내가 뭐라도 도울 게 있나요?”심재경이 다가오면서 물었다. 샛별이는 아기 의자에 앉아서 큰 눈으로 두 사람을 보면서 자신의 손가락을 빨고 있었다.“대표님, 그럼 저를 도와서 이 채소를 좀 씻어주시겠어요?”심재경이 정말 할 일이 없는 것 같아서 안이슬은 거절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오늘 밤은 그가 샛별이랑 당분간 만날 수 없게 되는 마지막 밤이었다. 샛별이도 한 달 동안 아빠를 못 보면 보고 싶어 할 것이다.“좋아요.”심재경은 팔을 거두고 곁에 있는 당근과 오이를 씻기 시작했다. 안이슬은 그 모습을 보더니 손을 뻗어서 걸려있던 앞치마를 가져왔다.“대표님, 이걸 두르면 더 좋을 것 같아요.”심재경은 고개를 돌려서 안이슬의 손에 들린 앞치마를 보더니 자신의 손에 있던 물기를 털며 말했다.“지금 혼자서 두르기가 불편하니 좀 도와주세요.”심재경은 살짝 무릎을 굽히며 안이슬의 앞에 섰다. 안이슬은 당황했다.그녀는 심재경이 직접 둘러 달라고 할 줄 몰랐다.‘상관없어, 앞치마일 뿐인데.’심재경의 머리를 먼저 넣고 앞치마를 내리는데 안이슬은 방심한 사이에 심재경과 눈이 마주쳤다. 심재경이 무릎을 살짝 굽히고 있던 탓에 두 사람의 시선은 마침 한 개의 수평선에 놓이게 되었다.심재경의 눈동자는 특별하게 침착하고 냉정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는데 그가 예전에 수술대에 서 있을 때랑 똑같았다. 시간은 많
심재경도 자신이 이걸 다 마셔버릴 줄 생각지 못했다. 안이슬이 아이의 음식에 대해서 많이 신경 쓰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마음속으로 감탄하고 있었다.“제가 할게요. 대표님은 곧 떠나실 텐데 샛별이랑 더 많이 놀아주고 곁에 있어 주세요.”안이슬은 당근 사과 주스에 빨대를 꽂아서 심재경에게 주었다.심재경은 앞치마를 푸는 것도 까먹은 채 안이슬이 건넨 야채 주스를 받아들고 샛별의 앞으로 왔다.“샛별아, 아빠랑 맛있는 야채 주스를 마실까?”“응애~”아직 말을 못 하는 샛별은 심재경을 향해 손을 뻗으며 안아달라고 했다. 아기 의자에 오래 앉아 있더니 안기고 싶어 했다.“그래, 우리 예쁜 딸.”딸바보인 심재경은 샛별을 품에 안았는데 안이슬이 안는 것보다 더 여유로워 보였다. 샛별의 얼굴에 몇 번 뽀뽀하고 야채 주스를 샛별이한테 먹였다. 주방에 있는 안이슬은 이미 주스를 한잔 더 완성했는데 좀 늦은 시간에 다시 샛별이한테 주기로 했다. 딸이 아주 예뻐죽겠다는 듯한 심재경의 모습을 보면서 안이슬은 잠시 넋이 나갔다.샛별이를 심재경한테 보낸 선택은 옳은 결정이었다.“문희 씨, 여기 좀 와보세요!”안이슬은 심재경의 목소리에 생각하던 것을 멈추고 다급하게 심재경한테로 걸어갔다.“무슨 일이에요?”가까이 다가가는 순간 안이슬은 오줌 냄새를 맡게 되었다. 그리고 심재경을 보았는데 몸이 젖어 있었다.기저귀를 계속 차고 있으면 엉덩이가 답답할 수 있기에 안이슬은 샛별이 깨어있을 때는 기저귀를 채우지 않고 엉덩이를 시원하게 하였다. “아이가 한 번에 좀 많이 마신 것 같아요. 제가 데리고 가서 씻길게요.”“대표님도 가서 씻으세요.”샛별이가 친 사고 때문에 심재경의 전체 팔뚝과 몸에 둘렀던 앞치마까지 다 엉망이 되었다.안이슬이 심재경의 품에서 아이를 받아 안자 심재경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오줌에 옷이 다 엉망이 되었지만 더럽다는 생각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 자신의 아이는 오줌도 깨끗하다.심재경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 안이슬은 손을 들어서 그의 눈앞
안이슬이 고개를 숙인 채 심재경을 지나쳐 들어가려던 때, 그녀의 가방이 가운의 한쪽에 걸렸다...그러자 심재경이 입고 있던 가운이 벗겨졌다.“...” 안이슬이 뒤도는 순간, 보였다...“나는, 당신...” 심재경이 다급하게 해명했다.“당신의 가방 지퍼가 내 가운에 걸려서 이렇게 된 거예요...”그는 다시 가운을 두르고 있었다. 안이슬은 당황해서 앞으로 뛰어가 자신의 휴대폰을 잡고는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한 채 심재경의 저택에서 도망쳤다. 그렇다, 심재경에게는 도망친 것처럼 보였다. “내가 옷을 안 입은 것도 아닌데.”하지만 심재경의 살짝 붉어진 귀 끝에서 그의 감정이 드러났다. 한참 동안 달리고 나서 안이슬은 멈춰 섰다. "실수했어, 실수. 내일부터 심재경이 집에 없어서 다행이야.”사실 별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게 좋지 않다고 느꼈다. 이런 분위기는 좀 이상했다. 그녀는 단지 베이비시터였고, 아이들을 돌보는 사람이었다. 두 사람의 관계는 고용주와 고용인의 관계여야 했다. 안이슬은 잠시 마음을 가라앉혔다. ‘방금 반응이 좀 과격했던 건가?’안이슬은 컴퓨터를 켜서 오늘 받은 이메일을 확인했다. 프랑스의 영양학회에서 보낸 토론회에 관한 것인데 많은 베이비시터들이 공유한 경험을 담은 내용이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발표하는 내용을 보고 그것을 기록하기도 하고 가끔 그 안에서 말을 하기도 한다. 토론회가 끝날 때까지 오래 앉아 있으니 허리가 아팠다. 안이슬은 기지개를 켜고는 샤워하러 가려고 준비했다. “딩동~”문자 메시지 알림 소리가 울리자 안이슬은 휴대폰을 확인했다. “이슬 언니, 세헌 씨와 함께 국내에 한 번 다녀오려고 해요.” ‘연아가 세헌 씨와 함께 돌아오는 건가?’“좋아. 언제 도착해?”안이슬은 바로 답장을 보냈고, 비행기에 있던 송연아는 강세헌과 눈빛을 교환했다. 그녀는 짓궂게 웃으며 빠른 타이핑으로 답장을 보냈다. “아마 모레쯤일 거예요.” 안이슬은 별 의심 없이 대답했다. “알았어. 하지만 나는
안이슬이 대답했다.“회사에 처리할 일이 많나 봐.”그녀는 몸을 살짝 비키면 말했다.“얼른 들어와.”하지만 그녀는 또 망설였다.“내가 이렇게 너랑 세헌 씨를 들어오게 하면...”“그건 어렵지 않아요. 제가 막무가내로 들어왔다고 하면 되죠.”송연아가 장난스레 말했지만, 안이슬은 고개를 저었다.“밖에 공기가 좋아. 잠시만 기다려줘.”안이슬은 빠르게 샛별의 방으로 갔다. 그녀는 샛별을 내려놓고 기저귀에 뭘 쌌는지 살펴보았다. 불편한 곳이 없다면 이렇게 울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아무것도 싸지 않았고 배고파하지도 않았기에 안이슬은 품에 안아서 달래주었다. 안이슬의 품에서 샛별이는 점차 큰 소리로 울던 데로부터 훌쩍거리기 시작했다.샛별이는 서서히 울음을 멈추었다. 샛별이를 달래고 나서 안이슬은 웃으며 말했다.“앞에 있는 정원으로 가서 얘기하자.”안이슬은 울다가 지쳐서 어깨에 기대 잠든 샛별을 안고 정원으로 갔다. 송연아는 많이 큰 샛별의 얼굴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그녀는 딸을 좋아했지만 아쉽게도 그녀에게는 딸이 없었다.“이리 줘요. 제가 안아 볼래요.”“비행기에서 내려서 바로 온 거 아니야? 좀 쉬어.”안이슬은 송연아가 자신에게 메시지를 보냈던 시간으로 그때쯤 송연아가 비행기에 있었을 것으로 추측하였다.“안 힘들어요.”송연아가 말했다. 강세헌은 안이슬과 송연아가 단둘이 있게 자리를 비켜주려고 했다. 그가 일어서려는데 마침 전화가 와서 아주 자연스럽게 빠져줄 수 있었다.“내일 온다더니 어떻게 이렇게 빨리 왔어?”송연아는 완전히 가정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한혜숙과 오은화가 도와주니 사실 그녀도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하지만 안이슬을 보고 있으면 혼자서 아이를 돌보는 게 분명 힘들 것으로 생각했다.“세헌 씨 회사 일로 국내에서 처리할 일이 있어서 왔어요. 나는 그냥 동행한 거예요. 언니를 보러 왔죠.”제일 중요한 건 안이슬의 현재 상태를 확인하고 싶었다. 다행히도 송연아는 안이슬의 모습을 보고 많이 안심했다.
심재경의 주의력을 분산시킬 수 있었다. 그러면 그도 자신에게 그렇게 신경 쓸 시간이 없을 것이다.“연아야, 우리 가야 해.”강세헌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송연아가 일어서며 말했다.“이슬 언니, 우리 이제 가봐야 해요.”안이슬도 따라서 일어났다.“네가 왔는데 물 한잔 제대로 따라주지 못하고...”송연아가 웃었다.“언니는 그냥 언니 딸이나 잘 안고 있어요.”“우리 둘은 사돈이 될 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송연아의 말에 안이슬은 그녀를 쳐다보았다.“아들이 아직 어린데 벌써 며느리를 볼 생각을 하는 거야? 빨리 늙고 싶은 거지?”송연아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저는 이제 일을 안 해서 온종일 이런저런 생각만 하게 되더라고요.”송연아가 일을 하지 않으니 그녀에게서 생기가 빠져나간 듯한 느낌을 안이슬은 느꼈다.여자가 가정을 위해 희생하는 것은 대부분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제는 조선 시대도 아니니 여자들도 자신이 하는 일이 있어야만 활기찬 삶을 살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그녀와 송연아는 이미 예전의 자신을 잃고 오직 자식들을 위해 살고 있었다. ... 시간은 오후 4시쯤 되고 안이슬은 휴대폰을 확인했다. 심재경한테서 아직 전화가 오지 않는 걸 봐서 아마도 아직 바쁜 모양이다. 하여 안이슬은 샛별이를 아기 침대에 눕혔다. 샛별이의 곁에 서 있는 것만으로 그녀는 외롭지 않다고 느꼈다. 분유를 준비한 후, 안이슬은 샛별이에게 분유 병을 건넸다. 샛별이는 혼자서 분유 병을 입에 물었고 안이슬은 저도 모르게 샛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최근에 아이의 식욕이 좋아졌다고 느낀 안이슬은 하루에 두 번만 분유를 먹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나머지는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있어서 이렇게 되면 샛별이가 빨리 분유를 끊고 완전히 이유식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아이에게 먹일 것을 고민하고 있던 안이슬은 전화벨 소리에 놀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심재경한테서 영상통화가 온 것이다. “대표님.”안이슬은 바로 휴대폰을 들어서 카메라가 샛별이에게로 향하
결혼식을 마친 후 방유정 아버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떠나기 전에 임지훈에게 회사를 완벽하게 인계하려고 회사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임지훈은 송연아와 강세헌 일행과 같이 먼저 프랑스로 돌아가서 그쪽 일을 마무리했다. 비록 임지훈이 회사에 있으면 강세헌은 보다 한가하게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가 떠난다고 해도 그냥 조금 더 바쁠 뿐이다. 어느 회사든 누가 떠나면 절대 안 되는 건 없다. 일주일의 시간 동안 임지훈은 프랑스에서의 일들을 모두 마치고 귀국해서 방씨 가문 회사에 들어갔다.임지훈도 국내에 집이 있었지만 방유정과 같이 방씨 가문에 들어갔다. 데릴사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유정 아버지의 병을 알고 방유정이 부모님과 많을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였다. 임지훈 역시 사위로서 그럴 의무가 있었다....반년 후, 방유정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방유정 어머니는 그 충격에 순식간에 많이 늙었다.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집안 분위기는 아주 저조했는데 방유정의 대부분 시간은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예전의 임 비서는 이제 임 대표가 되어 그의 능력으로 방씨 가문은 아주 관리가 잘 되었고 3개월 후 방유정 어머니의 상황도 많이 좋아졌다.방유정이 드디어 임신하게 되면서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간 일도 어느 정도 잊혀가고 있었다. 임지훈은 곧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기뻤고 방유정도 곧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방유정 어머니 역시 곧 외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정말로 모두 행복해할 만한 일이었다.방유정이 임신 6개월 때 그들은 프랑스로 갔는데 구애린은 남자아이를 낳았고 심재경의 딸은 이제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샛별이가 유일한 여자아이여서 모두가 예뻐했다. 샛별이는 아직 작고 어렸지만 찬이를 쫓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찬이는 샛별이 다리가 짧다고 계속 놀려줬으며 그게 재밌다고 샛별이는 키득키득 웃었다. 찬이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면 샛별이는 오빠라고 불렀는데 너무 귀여웠다.방유정이 말했다.“저도 딸을 낳고 싶어요.”구애린이 말했다.“그게
비록 손을 놓기 싫었지만, 방유정 아버지는 결국 방유정의 손을 임지훈에게 넘겨줬다.“앞으로 계속 사랑하며 살기를 바란다.”방유정도 아버지에게 말했다.“꼭 그렇게 할게요.”이어서 결혼식은 순서대로 일사천리로 피로연까지 모두 순리롭게 진행되었다.방유정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는데 딸이 그렇게도 바라던 결혼을 하니 너무 기뻤다. 그런데 결혼시키고 나니 또 잘 살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세상의 부모들은 다 그런가 보다.임지훈은 방유정을 데리고 강세헌이 있는 테이블로 가서는 비록 모두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소개했다. 모두 방유정을 다시 한번 소개받았는데 이번에는 심재경 친구의 사촌 동생이 아닌 임주훈의 아내로 말이다.구애린이 웃으며 말했다.“정말 너무너무 축하해요.”방유정도 웃으며 대답했다.“고마워요.”윤이도 어른들 따라 한마디 했다.“축하해요.”방유정은 윤이를 보며 말했다.“너무 귀여워요.”그녀가 손을 뻗어 윤이의 얼굴을 만지자, 윤이가 손을 내밀었다.“안아줘요.”송연아가 미간을 찌푸렸다.“윤이야, 안 돼.”방유정이 말했다.“괜찮아요.”그녀는 윤이를 안으며 말했다.“무겁지 않아요.”윤이는 그녀의 머리에 있는 금색 비녀를 보고 만지려고 했다. 방유정이 한복을 입고 있었기에 머리에 비녀를 하고 있었다. 방유정은 아주 시원하게 바로 비녀를 빼서 윤이에게 주었는데 송연아는 윤이를 제지하지 못해서 미안해했다.“이러면 안 돼요. 오늘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괜찮아요. 그냥 액세서리일 뿐이에요. 윤이가 좋아하니 놀게 해요.”방유정은 정말 성격이 좋았다. 역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만큼 성품이 좋았다. 가끔 조금 오만하긴 하지만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모두 그녀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송연아는 윤이를 안고 달래려고 했다.“윤이 착하지. 이건...”송연아는 윤이가 방유정을 어떻게 부르면 될지 생각했는데 방유정이 웃으며 말했다.“호칭일 뿐이니까 편
“지금 막 들었는데 유정 씨와 결혼한다면서요. 지금 방씨 가문에서 결혼식을 준비한다고 난리 났어요.”임지훈이 웃었다.“저 이래 봐도 능력 있는 남자예요. 여자들한테도 인기 많아요. 봐요, 결혼도 금방 하죠?”구애린이 말했다.“이제 우리 모두 짝이 있네요.”찬이도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지훈이 삼촌, 축하해요.”“고마워.”임지훈이 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심재경이 물었다.“그런데 데릴사위로 들어간다고 하던데요?”심재경의 말에 모두 놀라며 시선이 일제히 임지훈에게로 향했다. 확실히 놀랄만한 일이다. 임지훈의 조건에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돈도 있고 능력도 있어서 충분히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데 말이다.“하긴, 방씨 가문에 가장이 필요하긴 해요.”심재경이 그쪽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한마디 했다....임지훈의 결혼식으로 송연아와 강세헌도 프랑스로 돌아가는 일정을 늦췄다. 아무도 심재경의 결혼식을 보러 왔다가 임지의 결혼식까지 보게 될 줄을 생각을 못 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이건 임지훈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듯이 방유정과의 결혼은 정말로 찰나의 결정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그 역시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임지훈이 진원우에게 말했다.“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진원우가 말했다.“그런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방씨 가문은 돈도 많고 유정 씨도 예쁘고 그 정도면 만족해야지.”“만족해. 다만 너무 빠른 것 같아서 그래.”귀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싱글이었는데 이제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결혼식은 방씨 가문에서 모두 준비했는데 방유정 딸 하나이고 또 사위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결혼식은 아주 성대하게 치렀다. 방씨 가문의 친척들도 꽤 많이 참석해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비록 데릴사위라고 하지만, 임지훈 측은 심재경이 준비했는데 심재경 본인도 금방 결혼식을 치렀기 때문에 익숙한지라 아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었다....방유정은 정교한 메이크업을 하고 값진 웨딩드레스를 입었는
“잠도 잤는데 왜요? 모른 척하려고요?”방유정이 옷을 입더니 침대에서 꼼짝 안 하는 임지훈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왜요? 계속 그렇게 누워 있을 거예요?”임지훈이 말했다.“내 옷을 가져오지 않았잖아요. 나 입을 옷 없어요.”방유정은 그제야 임지훈이 옷이 없다는 걸 생각했다.“가져다 줄게요.”그녀는 곧바로 차에 가서 캐리어를 가지고 다시 올라갔다.“뭐 입을지는 알아서 찾아서 입고 내려와요. 아래층에서 기다릴게요.”방유정은 말을 마치고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임지훈은 침대에서 내려 결혼 얘기이니만큼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정장을 찾아서 입었다. 그가 정리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방유정은 부모님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의 부모는 그를 보자마자 더욱더 열정적이었다.임지훈이 건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저기...”“우리 딸 줄게요.”“아니에요. 지훈 씨가 저한테 시집 오는 거예요.”방유정이 정정했다.“...”“...”“...”방유정을 제외한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물었다.“유정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방유정은 자신이 여자이며 이 집안에 다른 후계자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아버지가 중병이고 자기는 회사를 관리할 능력도 없기에 어찌 보면 자기가 남편을 찾는다기보다는 방씨 가문의 회사를 경영할 사람을 찾는 거였다. 인제야 그녀는 부모가 조급해하는 의도를 이해했고 그녀 역시 가문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에 임지훈이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임지훈을 각별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그런 것들 때문이지 않겠는가.“유정 씨,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임지훈은 뼈대가 있는 남자로서 데릴사위 할 생각은 없었다.방유정이 말했다.“후회하면 안 돼요!”“왜 안 돼요? 유정 씨가 뭘 원하든지 저 모두 만족시켜 줄 수...”“제가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예요.”방유정이 외치자, 임지훈은 오히려 우스웠다. 한 여자가 나한테 시집오라고 하다니!“우리 유정이가 시집가는 거 맞아요
지금 그녀가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물으면 부모님은 더 속상해할 것 같았다.‘나 이제 어떻게 해야지? 어떻게 하면 좀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지? 결혼, 그래 결혼해야 해.’그녀는 자기가 결혼해야만 부모님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 상대도 지금 바로 방에 있지 않겠는가?‘남자 친구인 척을 해줬으니 이제 남편인 척해달라고 해야지. 진짜가 아니고 가짜라도 되니까 결혼하자고 해야겠어.’방유정은 진료 기록부를 다시 원래 위치에 넣고 비틀거리며 부모님 방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갔는데 임지훈이 아직 욕실에서 나오지 않아 침대 옆에 앉아서 기다렸다. 한참 지나자, 임지훈은 가운을 두르고 욕실에서 나왔는데 침대에 자기의 옷이 보이지 않아 방유정의 옆에 서서 물었다.“내 옷은요?”그는 방유정이 잊은 것 같아서 다시 말했다.“내 옷은 지금 당신 차 트렁크에 있어요.”방유정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지훈 씨, 우리 결혼해요.”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약을 잘못 먹었어요? 아니면 정신이 어떻게 됐어요?”“다 아니에요. 그냥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거칠었는데 임지훈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물었다.“울었어요? 누가 괴롭혔어요? 얘기해 봐요. 제가 가서 때려줄게...”임지훈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방유정이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임지훈은 갑작스러운 친밀감에 몸이 굳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게... 유정 씨...”그가 말하려고 할 때 방유정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의 손이 아래로 드리는 순간 몸에 걸친 유일한 가운마저 벗겨져서 흘러내렸다.“...”방유정은 워낙 임지훈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지금 행동이 충격에 의한 도발적인 행동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웃옷의 단추를 벗겨 가슴을 드러내고는 그의 가슴에 가까이하며 말했다.“저를 좀 봐봐요.”임지훈은 참을 수 없었는지 목젖을 굴렸는데 이름 모를 불길이 아랫배에서 솟아오르더니 순식간에 딱딱해졌다.“정말 후회하지 않겠어요?”임지훈도
방유정은 어머니가 자신의 어깨를 다독이자,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응원을 하시는 거였다.“화이팅!”방유정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지금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지?’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만 좋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갑자기 선 자리를 만들어주고 남자를 유혹하라고까지 하시다니?그녀는 어머니의 이마를 만지며 물었다.“엄마,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우리 이제 나가야 해.”방유정의 아버지는 기사가 이미 대기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집을 나갔고 방유정은 문 앞까지 그들을 배웅했다. 차가 떠나자, 그녀는 집으로 들어갔는데 어차피 임지훈이 자고 있었기에 지루할 것 같아서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그녀는 가만히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는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했다. 그런데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서 임지훈을 놀려주려고 그가 곤히 자는 방으로 올라가서는 화장대에서 화장품을 가져다가 침대 옆에 앉아 임지훈에게 예쁜 화장을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도 임지훈이 깨지 않자, 옆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눈이 아파 오니 옆에 기대서 잠이 들었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는 임지훈은 이미 깨어나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언, 언제 깼어요?”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방유정은 참을 수 없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훈의 얼굴은 정말로 오페라 가수 같았는데 어찌나 웃었는지 배가 아팠다. 임지훈은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물었다.“다 웃었어요?”방유정은 곧바로 웃음을 거두고 그의 손을 뿌리쳤다.“맘대로 제 몸에 손을 대지 말아요.”임지훈이 말했다.“유정 씨를 저에게 준다고 해도 거절이에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말했다.“뭐라고요? 저를 좋다고 하는 남자들이 줄을 서면 프랑스까지는 갈 거예요. 그런데 지훈 씨는 내가 싫다고요?”임지훈이 흠칫하자, 방유정이 그를 잡고 물었다.“지금 그
“방유정은 부모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알았어요. 하시고 싶은 대로 하세요.”“어서 지훈 씨 방으로 데려가.”방유정이 물었다.“어느 방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제야 깨달은 듯 말했다.“어머, 어떡해. 게스트룸은 아직 준비가 안 돼있어. 우선 네 방으로 데려가서 휴식하게 해.”방유정은 어머니의 말에 놀라며 말했다.“아빠, 엄마, 이 정도로 오픈 마인드였어요? 어떻게 제 방에 술 취한 남자를 데려가라고 하세요?”“네 말대로 취했는데 뭐 어때?”“술김에 어떤 짓도 한다는 말 몰라요?”방유정이 묻자, 그녀의 부모님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몰라.”방유정은 철저히 말문이 막혔다. 부모님과 임지훈이 정말로 모르는 사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임지훈이 그들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엄마 아빠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아무리 나를 결혼시키고 싶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만약 진짜로 무슨 일이 있으면 책임지라고 하고 바로 결혼시킬 거야.”임지훈은 그 말을 들으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바탕 뿜었다. 방유정의 부모님이 너무 열정적이어서 본인이 천당에 있는 것 같았는데 정말로 귀여운 부모님들이라고 생각했다.‘방유정은 전생에 은하계를 구했나 봐.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고 말이야.’방유정은 역겨워하며 말했다.“지훈 씨, 여기서 이러면 어떡해요. 화장실로 가야지.”“취했잖아.”방유정 어머니가 가정부를 불러 치우게 했다.“그만하고 불편해 보이는데 어서 방으로 데려다 쉬게 해.”방유정은 혼자서 임지훈을 옮길 수 없어서 가정부의 도움을 받아 함께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방에 도착하자, 그녀는 임지훈을 침대에 던졌는데 임지훈은 몸이 포근한 세계에 떨어진 듯 따뜻하고 향기로웠다.“무슨 향수를 써요?”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방유정이 말했다.“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잠이나 자요.”임지훈은 취한 건 사실이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말짱했다. 그는 눈을 감고 또 말했다
임지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요. 해명하지 않아도 화는 나지 않았을 건데, 굳이 해명하니 용서해 줄게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삐쭉거렸다.“그렇게 잘난 척하지 말아요. 그럼 좋은 말이 안 나가니까.”“...”임지훈이 할 말을 잃었다.그때 방유정의 어머니가 열정적으로 요리를 집어 그의 앞접시에 건넸다.“이건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요리인데 맛봐요.”임지훈이 집어서 입어 넣고 먹어보더니 말했다.“맛있습니다.”방유정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고 방유정 아버지는 그에게 술을 따랐다.“평소 주량이 어떻게 돼요?”임지훈이 웃으며 대답했다.“못합니다.”방유정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었다.“잘 마실 것 같은데 너무 겸손하시네요.”임지훈이 말했다.“아니에요. 아니에요.”방유정은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아빠, 지훈 씨는 일이 바빠서 내일 프랑스로 돌아가야 해요. 일을 망치면 안 되니까 술을 많이 주지 마세요.”방유정 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그래.”“네. 그러니까 한 잔씩만 해요.”말하면서 방유정은 술을 가져갔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너 정말 분위기를 깬다.”방유정이 말했다.“두 분의 건강을 생각해서예요.”방유정 어머니는 술병을 들고 임지훈에게 한 잔 따르고 또 남편에게도 한 잔 따랐다.“많이 마시게 되면 우리 집에 방이 많으니 그냥 휴식하면 돼요. 비행기는 내일 타면 되는데 급해 할 거 없잖아요.”방유정은 어머니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엄마, 이 사람을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집에서 잠을 자래요?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려고요?”“걱정하지 마. 조사해 봤는데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야.”“...”“...”방유정과 임지훈이 순간 놀랐다. 방유정은 평생 살면서 이렇게 굴욕적인 순간을 느낀 적이 없었다. 몇 년 동안 쌓아온 체면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만든 건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의 부모님이었다.방유정 아버지는 아내를 힐끗 쳐다
“지훈 씨는 취미가 뭐예요?”방유정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임지훈은 방유정의 물음에 잠시 당황하다가 자신의 생활을 떠올렸는데 일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휴가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에 심재경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계속 일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취미는 더구나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본인의 생활이 정말로 단조롭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옆에서 따뜻하게 말 한마디 건네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순간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내를 맞이해서 함께 서로 보살펴주며 지내고 싶었는데 그런 사람만 있다면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고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방유정을 바라봤는데 본인과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방유정은 아직도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라 다른 사람을 보살필 줄은 모를 것 같았다.“왜 그런 이상한 눈빛으로 봐요?”방유정의 물음에 임지훈이 되물었다.“어디가 이상한데요?”방유정은 좀 더 가까이 가서 그의 눈을 마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왜요? 설마 저를 사랑하게 된 건 아니죠?”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당신은 성격도 안 좋고 또 엄청 잘난체하는데 내가 왜요? 점심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제 들어가요.”시간을 보며 임지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굶었어요?”방유정이 그를 비웃었다.“식사 끝나면 저는 가도 되죠.”방유정은 순간 왠지 서운했다.“그렇게 가고 싶어요?”“여기는 제집이 아닌데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요.”방유정은 그를 향해 입을 삐쭉거리자, 임지훈은 의아해했다.“왜 그래요?”“내가 뭐요?”방유정은 짜증을 냈다.“유정 씨는 정말 변덕이 많네요. 그걸 고쳐요. 남자들은 변덕이 많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요.”방유정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집안으로 걸어들어갔다.임지훈은 고개를 돌려 못에 있는 물고기들을 한 번 더 보고는 뒤따라 들어갔다. 방유정이 집에 들어서자, 그녀의 어머니가 그들을 부르러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딸만 보였기에 그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