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애린은 안이슬을 두 교시 동안 기다렸지만, 그녀는 여전히 오지 않았다. 점심에 구애린은 리조트로 갔다.예상한 대로 안이슬과 송연아는 긴 의자에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날씨가 딱 좋아서 나무 그늘에서 여유를 부리기 좋았다. 구애린은 웃으며 걸어왔다.“언니.”송연아는 구애린을 보더니 얼른 와서 앉으라고 했다.“앉아요.”안이슬은 구애린과 송연아의 관계를 보고 의아했다. 안이슬은 구애린과 서먹하므로 송연아가 소개해줬다.“세헌 씨의 동생이에요.”안이슬은 웃으며 말했다.“우리 진짜 인연이네요.”구애린은 예의를 갖춘 미소로 화답했다.“그러게요. 사실 저 어제부터 알았어요.”안이슬은 놀란 표정을 지었고 구애린이 계속 얘기했다.“당신이 사는 집은 원우 씨가 알아본 곳이에요.”송연아는 한마디 덧붙였다.“원우 씨는 애린 씨 남편이야.”안이슬은 이제야 모든 관계를 깨달았다. 송연아는 도우미를 불러서 주스를 가지고 오라고 했다.“우리는 차를 마실 테니 애린 씨는 주스를 마셔요.”임산부는 차를 마시는 게 적합하지 않기에 송연아는 구애린을 배려해주고 있었다.구애린은 당연히 이 호의를 받아들이고 말했다.“고마워요, 언니.”“고모.”찬이가 달려와서 구애린의 허리를 안았다.“오늘 여기서 밥 먹고 가는 거예요?”구애린이 물었다.“내가 남아서 밥 먹고 갔으면 좋겠어?”찬이는 힘있게 고개를 끄덕였다.“고모 이리로 와요. 고모한테 보여줄 게 있어요.”찬이는 구애린을 끌어당겼다. 구애린은 귀엽다는 듯 알겠다며 찬이가 하는 대로 따랐다. 송연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찬이를 말렸지만, 구애린은 괜찮다고 했다.“애린 씨가 너무 찬이가 하자는 대로 해주네요.”구애린이 웃었다. 찬이는 구애린을 끌고 연못으로 갔는데 안에는 국내에서 비행기를 타고 넘어온 희귀품종이 몇 마리 있었다. 찬이는 아주 좋아했다. 구애린은 재밌어 보여서 물고기 먹이를 가져와서 주기도 했다.“너희들 관계는 정말 화목한 것 같아.”안이슬은 그곳을 보면서 말했다.“그러게요.”송연
임지훈은 눈동자에 빛이 스쳤다.“제가 전화를 해서 물어볼까요, 아니면 연락처를 줘서 직접 연락해볼래요?”임지훈은 성급하게 말하지 않았다.심재경이 대답했다.“연락처를 주세요. 제가 직접 연락해서 적합한지 아닌지 알아볼 거에요.”“그래요.”임지훈은 핸드폰을 들어 연락처를 하나 심재경에게 보냈다. 심재경이 위에 올려놨던 핸드폰에 진동이 한번 울렸다.저녁에 심재경은 돌아온 임지훈을 위해 환영회를 해줬는데 다른 사람들은 부르지 않고 둘만 밥을 먹으러 갔다. 두 남자는 술을 많이 마셨다.“이번에 귀국해서 느낀 건데 심 선생님 이상한 것 같습니다.”술잔을 들고 임지훈은 무심한 듯 얘기했다.“많이 이상해요?”심재경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그런가 보죠!”그는 더 말하지 않고 고개 돌려 술잔을 들고는 앞에 있는 사람에게 축복을 건넸다.“바쁜 와중에 여유를 부릴 수 있게 한동안 귀국하게 된 것을 축하합니다!”임지훈도 동시에 술잔을 들었다. 술잔이 부딪치는 와중에 심재경은 또 갑자기 안이슬에 관해 물었다.“임지훈 씨 방금 그 친척은 어떻게 되는 분이에요?”이 말을 듣고 임지훈은 한동안 무슨 말인지 반응하지 못했다.“무슨 친척이요?”심재경이 말하기도 전에 그는 깨닫고 대답했다.“오늘 공항에 함께 있던 친척 얘기하는 거예요? 먼 친척분이신데 예전에는 계속 외국에 있다가 근년에 외국의 형세가 좋지 않아서 특별히 귀국한 거예요.”여기까지 말하고 그는 한마디 덧붙였다.“연락처를 줬잖아요? 직접 물어보세요!”심재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상대방이 오해라도 할까 봐 임지훈은 헛기침했다.“그... 나랑 그 아가씨는 먼 친척이기에 평소에 연락이 많지 않았어요. 이번에는 나더러 자신을 데리고 귀국해달라고 해서 특별히 나한테 연락한 거예요. 그리고 무슨 생각인지 저도 모르겠어요. 저 아가씨가 어떤 일을 하려고 하는지 만약 계속 베이비시터를 할 생각이 아닌데 내가 먼저 섣불리 승낙하는 것은 여러모로 안 좋은 것 같아서...”계속 얘기를 이어가려는데 심재
안이슬은 잠시 망설이다가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지문인식을 한 다음 익숙한 번호를 보면서 바로 받지 않고 핸드폰을 곁에 내려놓았다.모든 건 너무 조급하면 안 되고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놔둬야 한다. 그래야 진실하게 보일 것이다.지금 안이슬은 똑똑히 기억해야 한다. 그녀는 더는 예전의 안이슬이 아니고 한 명의 베이비시터이며 더욱이 외국에서 수년간의 경험이 있는 베이비시터이다.시침은 열 시를 가리켰고 심재경은 집에 도착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이의 울음소리가 귀청을 찢었다.“왜 아직도 울고 있지?”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면서 심재경은 방 안으로 들어갔다. 곁에서는 가정부가 최선을 다해서 아이를 달래고 있다. 가정부는 잠시 고용한 사람인데 전문적인 베이비시터가 아니었다. 심재경을 보자 가정부는 우는 얼굴로 말했다.“드디어 돌아오셨네요. 선생님 집 아이처럼 사람 품에서 떨어지지 않는 아이를 본 적이 없습니다. 온 오후를 울었는데 도저히 달랠 수가 없네요.”가정부는 낯빛이 초췌했다. 심재경의 차가운 모습을 보면서 가정부는 고개를 숙이고 계속 얘기했다.“심 선생님, 처음에 얘기를 다 했었잖아요. 저는 선생님 집에 와서 청소하는 것이지 아이를 돌보는 건 아니잖아요... 그리고 아이를 돌보는 일은 베이비시터가 하는 일이지 저희 같은 거친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일을 잘할 수 있겠어요?”가정부도 아이를 돌보기 싫어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아낼 수 있었다.“그만 해요!”방안이 난장판이 된 것을 보고 심재경도 순식간에 표정이 굳었다.“가세요!”심재경은 손을 뻗어 아이를 받아 안으려고 했는데 얼굴에는 창백한 기색이 어렸다.“심 선생님, 그럼 잘 부탁할게요!”가정부는 무거운 짐을 뿌리치듯 다급하게 아이를 곁에 있는 작은 침대에 눕히고 뒤돌아 도망치듯 떠났다. 몇 분 후 문이 쾅 닫히는 소리가 났다.방안에는 아이가 우는 소리만 남고 문 앞에는 냉랭한 표정을 한 심재경이 서 있었다...한편, 안이슬의 집에서.안이슬은 다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아마 이번에는 강세헌이 정말로 화를 낼 것이다!“그럼 안전을 조심하세요!”어쩔 수 없이 한숨을 내쉬고는 송연아는 더 말하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송연아는 자신의 방문을 오래 쳐다보았다. 언제부터인지 안이슬과 심재경의 관계는 두 개의 평행선으로 변해있었다. 다시 교차할 기회가 있을지 없을지도 모른다.하, 송연아는 또 한숨을 내쉬었다.전화가 끊기고 안이슬의 핸드폰에는 친구추가 소식이 하나 와 있었다. 심재경이었다. 아마도 전화가 통하지 않아서 카톡을 추가하려고 한 것 같았다. 카톡 번호가 바로 핸드폰 번호였다. 그녀가 친구추가를 승인하는 버튼을 누르는 순간 대화창에는 바로 메시지 하나가 떴다.“안녕하세요. 저는 임지훈 씨의 친구입니다. 선생님께서 베이비시터라고 들었는데 이 일을 계속하려는 건지 여쭙고 싶어서 연락드립니다.”“합니다.”안이슬은 거의 바로 답장을 보냈다.“그럼 베이비시터 자격증을 보여줄 수 있으세요?”심재경은 그래도 조심스러웠다. 아이에 관한 일은 큰일이기에 절대로 아이 일에는 차질이 생기면 안 됐다. 안이슬은 가슴이 철렁했다. 다행히도 전에 자격증 위의 사진을 바꿔놨었다. 만약 사진을 바꾸지 않았다면 자신이 이 상황을 정말 통제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가능합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지금 바로 가서 사진을 찍어서 보내드리겠습니다.”짧게 답장하고 안이슬은 자신의 자격증을 찍어서 보내주었다.사진 속에 찍힌 시간을 보면서 심재경은 잠시 침묵했다.“자격증을 취득한 지 오래되셨네요?”심재경은 보내온 사진을 보면서 기분이 좀 실망스러웠다. 그는 그녀를 안이슬이라고 의심했다. 만약 안이슬이라면 자격증 취득시간이 최근일 것이다. 자격증을 위조하지 않은 이상 말이다.“네, 맞아요.”안이슬이 대답했다.“저는 외국에서도 다년간 경험이 있기에 저에게 아이를 맡겨주신다면 저는 반드시 선생님의 아이를 잘 보살펴 줄 것입니다.”이렇게 문자를 작성하고 잠시 망설인 뒤 안이슬은 자신이 쓴 글을 전부 지웠다.“선생님, 이미 저의
주소를 확인하고 안이슬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에게 아주 익숙한 장소였는데 이 장소는 그녀가 예전에 심재경과 만났던 곳이었다.“알겠습니다.”잠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안이슬은 답장을 보냈다.프랑스. 송연아는 안이슬과 통화를 마치고, 약간의 걱정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안이슬은 여러 차례의 수술을 겪고 나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했기에 그녀의 몸이 감당할 수 없을까 봐 걱정이었다.“무슨 일이야?”송연아가 무슨 고민이 있는듯한 모습을 보이자, 강세헌은 얼굴을 찡그렸다. 송연아는 그를 보고 정신이 들었다.“오늘 왜 이렇게 일찍 들어왔어요?”강세헌은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바쁜 일을 다 마무리했어.'아내가 돌아와서 같이 더 시간을 보내기 위해 왔다고는 말 못 할 노릇이지 않은가?집사가 와서 말했다.“식사가 다 준비되었는데 지금 하시겠습니까?”“네.”강세헌은 송연아를 끌어안고 식탁으로 갔다. 송연아가 물었다.“당신 오늘 일찍 들어온 게 나 때문이에요?”강세헌은 튕기며 말했다.“오늘 업무가 미리 끝난 것뿐이야.”송연아가 웃었다.“진짜예요?”“거짓말을 할 이유가 있나?”강세헌은 먼 곳을 보고 있었다. 송연아는 입을 삐죽거렸다. 다 알고 있어도 굳이 말하지는 않겠다.식탁에 앉았다.“밥 먹자.”강세헌은 송연아에게 음식을 집어 주었고 송연아는 그가 집어 준 음식을 먹었다.“많이 먹어. 다 먹고 요즘 미국에 다녀오면서 굶어서 살이 빠졌는지 체크할 거야.”마지막 한 마디 말에 송연아는 얼굴이 달아올랐다.“굶어서 살이 빠진 게 아니거든요!”송연아는 작게 중얼거리고 계속 밥을 먹으면서 주위를 둘러봤다. 행여나 누가 들었을까 봐 말이다. 다행히 한혜숙이 두 아이를 데리고 나가서 집에 없었다. 국내.안이슬은 일찍이 단정하게 창가에 앉아있었다. 이건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자리였다.창밖에 오고 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안이슬은 아무것도 발생하지 않은 예전의 시간으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시침은 어느덧 12시를 가리켰고 바로
“좋아요.”심재경은 웃으면서 커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커피를 조심스레 내려놓고 나서야 그가 고개를 들었다.“임지훈 씨한테 듣기로 선생님께서 외국에 계실 때 많은 아이를 돌보셨다고 했어요. 아이를 돌본 경험을 얘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아이의 일은 절대 경솔해서는 안 된다. 딸이 밤마다 울어 심재경은 머리가 아팠기에 그 생각을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제가 평소에 일이 바쁜 데다가 며칠 전에 집에 아이가 계속 보채서 어쩔 수 없이 베이비시터를 청하려고 합니다...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저 같은 남자는 일을 처리하는 데 아무래도 거친 면이 있어서 아이를 보살피는 데도 세심하지 못할 때가 많았을 거예요.”심재경이 이렇게 얘기하는 것을 보고 안이슬의 마음은 조금 따뜻해졌다. 남자가 자신이 아이를 보살피는 데 있어서 세심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은 아마 최선을 다해서 보살펴 봤기에 느낄 수 있는 점일 것이다.“저는 외국에서 여러 가정의 아이들을 보살펴주었어요. 그 가정에서 저에 대한 평가를 선생님도 보실 수 있어요.”말하며 안이슬은 미리 준비해둔 자료들을 건넸다.“지금까지 외국에 계속 있었는데 이렇게 계속 있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니라 생각되어 친척 오빠한테 부탁해서 귀국하게 된 거예요.”자료는 아주 정식적인 자료였는데 위에 있는 내용도 아주 상세했다.“강문희 씨?”자신이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을 보며 심재경은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면접자료도 아주 전면적으로 준비했는데 아무런 빈틈도 보이지 않았다.“네!”안이슬은 얼굴에 표정 변화가 없었다. 귀국하고 나서 그녀는 더는 예전의 안이슬이 아니었다. 지금 그녀는 새로운 이름을 가졌고 그 새로운 이름은 그녀의 새로운 인생을 뜻하고 있다.“전에 외국에서 갓 태어난 신생아를 보살핀 경험도 있는데 그 가족들이 선생님에 대한 평가가 좋네요!”자료 안에 쓰인 내용을 자세히 읽어보면서 심재경은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좋아요. 외국의 아이들과 국내의 아이들은 보살피는 방법
“이 급여는 제가 외국에 있을 때보다도 많은 금액이에요. 제가 심재경 씨의 아이를 잘 보살 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웨이터에게 볼펜을 부탁해서 순조롭게 사인을 하고 나서 심재경은 주동적으로 손을 내밀었다.“잘 부탁드립니다!”이 손을 보며 안이슬은 망설이지 않고 맞잡았다! 아이를 만나는 일이 더는 멀지 않았다. 두 손이 서로 맞잡은 순간, 심재경의 마음은 다시 떨려왔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아 맞다!”계약서를 정리하면서 심재경은 무슨 일을 떠올라서 말했다.“제 딸이 전에 이름을 하나 지었었는데 저는 이 이름에 대해 만족하지 않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조예가 깊으신데 혹시 추천할만한 이름이 있을까요?”안이슬은 멈칫했다. 아이의 이름은 그녀와 양명섭이 지었었지만 지금 양명섭은 세상을 떠났고 그녀도 얼굴이 완전히 변해있었다. 심재경이 아이에게 다른 이름을 붙이려고 해도 그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었다.차라리 좋은 일이다. 아이는 아직 어려서 이름을 바꾼 후에 과거를 완전히 끊어낼 수 있을 것이다.“그건...”잠시 고민하는 척하고 안이슬은 고개를 저었다.“심재경 씨, 저는 그저 당신을 도와 아이를 보살필 뿐입니다. 아이에게 이름을 짓는 일은 심재경 씨께서 직접 결정해야 하는 일이죠. 그래도 저한테 제의하라고 한다면 좋은 이름이 있기는 하죠!”심재경은 눈빛이 덤덤했지만, 마음은 일렁이고 있었다.“편하게 얘기하세요.”“귀에 가득 찬 구슬처럼 빛나며, 마치 별처럼 빛을 발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아가씨에게 심수영이라는 이름을 짓는 게 어떠세요? 심 선생님도 자신의 아이가 대범하고 사소한 것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 되기를 바랄 거라 믿어요.”안이슬은 참지 못하고 몇 마디 더 말했다. 전에 이름도 좋지만, 심재경이 싫다고 해서 그녀가 이름을 짓는 데 관여할 수 있다면 엄마로서 그것도 뿌듯한 일이다.“심수영...”심재경은 반복하면서 음미하고 있었다. 그는 안이슬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이름이 괜찮네요. 선생님께서 이렇게 문필이 뛰어날 줄
두 사람은 얼른 방 안으로 들어갔다. 가정부는 아이를 안고 재우려고 하고 있었다. 가정부를 보자마자 안이슬의 얼굴이 바로 굳었다.“지금 뭐 하는 거예요?”안이슬은 화를 내면서 앞으로 다가가면서 책망하는 말투였다.“아이가 아직 이렇게 어린데 아이를 안는 자세가 왜 그렇게 엉망이에요? 당신들은 사전에 교육을 받지 않는가요?”말하면서 안이슬은 가정부의 손에서 아이를 받아 앉았다. 아이가 너무 오랫동안 운 탓에 목소리는 좀 쉬어 있었다. 아이를 보면서 안이슬은 울고 싶어졌다.이건 그녀의 아이였다. 그녀가 열 달을 고생해서 품고 낳은 아이, 낮이고 밤이고 항상 그리워했는데 오늘 드디어 만나게 된 것이다.“대표님...”가정부는 깜짝 놀랐다. 그녀는 평소에는 아이를 이렇게 안았는데 누구도 이 자세가 틀렸다고 얘기한 적이 없었다.“저는...”민망해진 분위기에 가정부도 무슨 말을 했으면 좋을지 몰랐다.“가서 청소하세요.”심재경은 손짓하며 가정부를 나가라고 했다. 그는 안이슬이 긴장한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녀가 하는 말은 베이비시터로서 손색이 없는 말들이었다. 하지만 왜 이렇게 긴장하는 거지?“아가야...아가야...”가정부가 나가고 심재경은 창가에 기대 있었다.밖에서는 빛이 비쳐서 마침 안이슬의 몸에 드리워졌다. 지금 시각, 안이슬은 가볍게 아이를 토닥여주고 있었다.“울지 마, 이제 자세가 편하지?”소리가 아주 작았지만, 심재경은 똑똑히 들었다. 앞에 있는 뒷모습을 보면서 심재경의 머릿속에는 다시 그 얼굴이 떠올랐지만... 아쉽게도...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은 그 사람이 아니었다.“심재경 씨!”심재경이 넋이 나가 있는 동안 안이슬이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아이의 이마가 좀 뜨거운데 유아용 체온계가 있어요?”이제 금방 돌아와서 자신의 아이와 더 친해질 겨를도 없이 안이슬은 아이의 이마가 조금 뜨겁다는 것을 느꼈다. 그 이유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우는 거라면 아이가 또 앓을까 걱정되었다.“이마가 조금 뜨거워요?”심재경은 놀라서 바로 고개를
결혼식을 마친 후 방유정 아버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떠나기 전에 임지훈에게 회사를 완벽하게 인계하려고 회사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임지훈은 송연아와 강세헌 일행과 같이 먼저 프랑스로 돌아가서 그쪽 일을 마무리했다. 비록 임지훈이 회사에 있으면 강세헌은 보다 한가하게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가 떠난다고 해도 그냥 조금 더 바쁠 뿐이다. 어느 회사든 누가 떠나면 절대 안 되는 건 없다. 일주일의 시간 동안 임지훈은 프랑스에서의 일들을 모두 마치고 귀국해서 방씨 가문 회사에 들어갔다.임지훈도 국내에 집이 있었지만 방유정과 같이 방씨 가문에 들어갔다. 데릴사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유정 아버지의 병을 알고 방유정이 부모님과 많을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였다. 임지훈 역시 사위로서 그럴 의무가 있었다....반년 후, 방유정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방유정 어머니는 그 충격에 순식간에 많이 늙었다.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집안 분위기는 아주 저조했는데 방유정의 대부분 시간은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예전의 임 비서는 이제 임 대표가 되어 그의 능력으로 방씨 가문은 아주 관리가 잘 되었고 3개월 후 방유정 어머니의 상황도 많이 좋아졌다.방유정이 드디어 임신하게 되면서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간 일도 어느 정도 잊혀가고 있었다. 임지훈은 곧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기뻤고 방유정도 곧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방유정 어머니 역시 곧 외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정말로 모두 행복해할 만한 일이었다.방유정이 임신 6개월 때 그들은 프랑스로 갔는데 구애린은 남자아이를 낳았고 심재경의 딸은 이제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샛별이가 유일한 여자아이여서 모두가 예뻐했다. 샛별이는 아직 작고 어렸지만 찬이를 쫓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찬이는 샛별이 다리가 짧다고 계속 놀려줬으며 그게 재밌다고 샛별이는 키득키득 웃었다. 찬이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면 샛별이는 오빠라고 불렀는데 너무 귀여웠다.방유정이 말했다.“저도 딸을 낳고 싶어요.”구애린이 말했다.“그게
비록 손을 놓기 싫었지만, 방유정 아버지는 결국 방유정의 손을 임지훈에게 넘겨줬다.“앞으로 계속 사랑하며 살기를 바란다.”방유정도 아버지에게 말했다.“꼭 그렇게 할게요.”이어서 결혼식은 순서대로 일사천리로 피로연까지 모두 순리롭게 진행되었다.방유정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는데 딸이 그렇게도 바라던 결혼을 하니 너무 기뻤다. 그런데 결혼시키고 나니 또 잘 살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세상의 부모들은 다 그런가 보다.임지훈은 방유정을 데리고 강세헌이 있는 테이블로 가서는 비록 모두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소개했다. 모두 방유정을 다시 한번 소개받았는데 이번에는 심재경 친구의 사촌 동생이 아닌 임주훈의 아내로 말이다.구애린이 웃으며 말했다.“정말 너무너무 축하해요.”방유정도 웃으며 대답했다.“고마워요.”윤이도 어른들 따라 한마디 했다.“축하해요.”방유정은 윤이를 보며 말했다.“너무 귀여워요.”그녀가 손을 뻗어 윤이의 얼굴을 만지자, 윤이가 손을 내밀었다.“안아줘요.”송연아가 미간을 찌푸렸다.“윤이야, 안 돼.”방유정이 말했다.“괜찮아요.”그녀는 윤이를 안으며 말했다.“무겁지 않아요.”윤이는 그녀의 머리에 있는 금색 비녀를 보고 만지려고 했다. 방유정이 한복을 입고 있었기에 머리에 비녀를 하고 있었다. 방유정은 아주 시원하게 바로 비녀를 빼서 윤이에게 주었는데 송연아는 윤이를 제지하지 못해서 미안해했다.“이러면 안 돼요. 오늘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괜찮아요. 그냥 액세서리일 뿐이에요. 윤이가 좋아하니 놀게 해요.”방유정은 정말 성격이 좋았다. 역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만큼 성품이 좋았다. 가끔 조금 오만하긴 하지만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모두 그녀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송연아는 윤이를 안고 달래려고 했다.“윤이 착하지. 이건...”송연아는 윤이가 방유정을 어떻게 부르면 될지 생각했는데 방유정이 웃으며 말했다.“호칭일 뿐이니까 편
“지금 막 들었는데 유정 씨와 결혼한다면서요. 지금 방씨 가문에서 결혼식을 준비한다고 난리 났어요.”임지훈이 웃었다.“저 이래 봐도 능력 있는 남자예요. 여자들한테도 인기 많아요. 봐요, 결혼도 금방 하죠?”구애린이 말했다.“이제 우리 모두 짝이 있네요.”찬이도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지훈이 삼촌, 축하해요.”“고마워.”임지훈이 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심재경이 물었다.“그런데 데릴사위로 들어간다고 하던데요?”심재경의 말에 모두 놀라며 시선이 일제히 임지훈에게로 향했다. 확실히 놀랄만한 일이다. 임지훈의 조건에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돈도 있고 능력도 있어서 충분히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데 말이다.“하긴, 방씨 가문에 가장이 필요하긴 해요.”심재경이 그쪽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한마디 했다....임지훈의 결혼식으로 송연아와 강세헌도 프랑스로 돌아가는 일정을 늦췄다. 아무도 심재경의 결혼식을 보러 왔다가 임지의 결혼식까지 보게 될 줄을 생각을 못 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이건 임지훈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듯이 방유정과의 결혼은 정말로 찰나의 결정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그 역시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임지훈이 진원우에게 말했다.“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진원우가 말했다.“그런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방씨 가문은 돈도 많고 유정 씨도 예쁘고 그 정도면 만족해야지.”“만족해. 다만 너무 빠른 것 같아서 그래.”귀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싱글이었는데 이제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결혼식은 방씨 가문에서 모두 준비했는데 방유정 딸 하나이고 또 사위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결혼식은 아주 성대하게 치렀다. 방씨 가문의 친척들도 꽤 많이 참석해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비록 데릴사위라고 하지만, 임지훈 측은 심재경이 준비했는데 심재경 본인도 금방 결혼식을 치렀기 때문에 익숙한지라 아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었다....방유정은 정교한 메이크업을 하고 값진 웨딩드레스를 입었는
“잠도 잤는데 왜요? 모른 척하려고요?”방유정이 옷을 입더니 침대에서 꼼짝 안 하는 임지훈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왜요? 계속 그렇게 누워 있을 거예요?”임지훈이 말했다.“내 옷을 가져오지 않았잖아요. 나 입을 옷 없어요.”방유정은 그제야 임지훈이 옷이 없다는 걸 생각했다.“가져다 줄게요.”그녀는 곧바로 차에 가서 캐리어를 가지고 다시 올라갔다.“뭐 입을지는 알아서 찾아서 입고 내려와요. 아래층에서 기다릴게요.”방유정은 말을 마치고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임지훈은 침대에서 내려 결혼 얘기이니만큼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정장을 찾아서 입었다. 그가 정리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방유정은 부모님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의 부모는 그를 보자마자 더욱더 열정적이었다.임지훈이 건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저기...”“우리 딸 줄게요.”“아니에요. 지훈 씨가 저한테 시집 오는 거예요.”방유정이 정정했다.“...”“...”“...”방유정을 제외한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물었다.“유정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방유정은 자신이 여자이며 이 집안에 다른 후계자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아버지가 중병이고 자기는 회사를 관리할 능력도 없기에 어찌 보면 자기가 남편을 찾는다기보다는 방씨 가문의 회사를 경영할 사람을 찾는 거였다. 인제야 그녀는 부모가 조급해하는 의도를 이해했고 그녀 역시 가문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에 임지훈이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임지훈을 각별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그런 것들 때문이지 않겠는가.“유정 씨,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임지훈은 뼈대가 있는 남자로서 데릴사위 할 생각은 없었다.방유정이 말했다.“후회하면 안 돼요!”“왜 안 돼요? 유정 씨가 뭘 원하든지 저 모두 만족시켜 줄 수...”“제가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예요.”방유정이 외치자, 임지훈은 오히려 우스웠다. 한 여자가 나한테 시집오라고 하다니!“우리 유정이가 시집가는 거 맞아요
지금 그녀가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물으면 부모님은 더 속상해할 것 같았다.‘나 이제 어떻게 해야지? 어떻게 하면 좀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지? 결혼, 그래 결혼해야 해.’그녀는 자기가 결혼해야만 부모님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 상대도 지금 바로 방에 있지 않겠는가?‘남자 친구인 척을 해줬으니 이제 남편인 척해달라고 해야지. 진짜가 아니고 가짜라도 되니까 결혼하자고 해야겠어.’방유정은 진료 기록부를 다시 원래 위치에 넣고 비틀거리며 부모님 방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갔는데 임지훈이 아직 욕실에서 나오지 않아 침대 옆에 앉아서 기다렸다. 한참 지나자, 임지훈은 가운을 두르고 욕실에서 나왔는데 침대에 자기의 옷이 보이지 않아 방유정의 옆에 서서 물었다.“내 옷은요?”그는 방유정이 잊은 것 같아서 다시 말했다.“내 옷은 지금 당신 차 트렁크에 있어요.”방유정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지훈 씨, 우리 결혼해요.”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약을 잘못 먹었어요? 아니면 정신이 어떻게 됐어요?”“다 아니에요. 그냥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거칠었는데 임지훈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물었다.“울었어요? 누가 괴롭혔어요? 얘기해 봐요. 제가 가서 때려줄게...”임지훈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방유정이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임지훈은 갑작스러운 친밀감에 몸이 굳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게... 유정 씨...”그가 말하려고 할 때 방유정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의 손이 아래로 드리는 순간 몸에 걸친 유일한 가운마저 벗겨져서 흘러내렸다.“...”방유정은 워낙 임지훈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지금 행동이 충격에 의한 도발적인 행동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웃옷의 단추를 벗겨 가슴을 드러내고는 그의 가슴에 가까이하며 말했다.“저를 좀 봐봐요.”임지훈은 참을 수 없었는지 목젖을 굴렸는데 이름 모를 불길이 아랫배에서 솟아오르더니 순식간에 딱딱해졌다.“정말 후회하지 않겠어요?”임지훈도
방유정은 어머니가 자신의 어깨를 다독이자,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응원을 하시는 거였다.“화이팅!”방유정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지금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지?’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만 좋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갑자기 선 자리를 만들어주고 남자를 유혹하라고까지 하시다니?그녀는 어머니의 이마를 만지며 물었다.“엄마,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우리 이제 나가야 해.”방유정의 아버지는 기사가 이미 대기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집을 나갔고 방유정은 문 앞까지 그들을 배웅했다. 차가 떠나자, 그녀는 집으로 들어갔는데 어차피 임지훈이 자고 있었기에 지루할 것 같아서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그녀는 가만히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는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했다. 그런데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서 임지훈을 놀려주려고 그가 곤히 자는 방으로 올라가서는 화장대에서 화장품을 가져다가 침대 옆에 앉아 임지훈에게 예쁜 화장을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도 임지훈이 깨지 않자, 옆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눈이 아파 오니 옆에 기대서 잠이 들었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는 임지훈은 이미 깨어나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언, 언제 깼어요?”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방유정은 참을 수 없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훈의 얼굴은 정말로 오페라 가수 같았는데 어찌나 웃었는지 배가 아팠다. 임지훈은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물었다.“다 웃었어요?”방유정은 곧바로 웃음을 거두고 그의 손을 뿌리쳤다.“맘대로 제 몸에 손을 대지 말아요.”임지훈이 말했다.“유정 씨를 저에게 준다고 해도 거절이에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말했다.“뭐라고요? 저를 좋다고 하는 남자들이 줄을 서면 프랑스까지는 갈 거예요. 그런데 지훈 씨는 내가 싫다고요?”임지훈이 흠칫하자, 방유정이 그를 잡고 물었다.“지금 그
“방유정은 부모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알았어요. 하시고 싶은 대로 하세요.”“어서 지훈 씨 방으로 데려가.”방유정이 물었다.“어느 방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제야 깨달은 듯 말했다.“어머, 어떡해. 게스트룸은 아직 준비가 안 돼있어. 우선 네 방으로 데려가서 휴식하게 해.”방유정은 어머니의 말에 놀라며 말했다.“아빠, 엄마, 이 정도로 오픈 마인드였어요? 어떻게 제 방에 술 취한 남자를 데려가라고 하세요?”“네 말대로 취했는데 뭐 어때?”“술김에 어떤 짓도 한다는 말 몰라요?”방유정이 묻자, 그녀의 부모님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몰라.”방유정은 철저히 말문이 막혔다. 부모님과 임지훈이 정말로 모르는 사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임지훈이 그들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엄마 아빠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아무리 나를 결혼시키고 싶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만약 진짜로 무슨 일이 있으면 책임지라고 하고 바로 결혼시킬 거야.”임지훈은 그 말을 들으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바탕 뿜었다. 방유정의 부모님이 너무 열정적이어서 본인이 천당에 있는 것 같았는데 정말로 귀여운 부모님들이라고 생각했다.‘방유정은 전생에 은하계를 구했나 봐.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고 말이야.’방유정은 역겨워하며 말했다.“지훈 씨, 여기서 이러면 어떡해요. 화장실로 가야지.”“취했잖아.”방유정 어머니가 가정부를 불러 치우게 했다.“그만하고 불편해 보이는데 어서 방으로 데려다 쉬게 해.”방유정은 혼자서 임지훈을 옮길 수 없어서 가정부의 도움을 받아 함께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방에 도착하자, 그녀는 임지훈을 침대에 던졌는데 임지훈은 몸이 포근한 세계에 떨어진 듯 따뜻하고 향기로웠다.“무슨 향수를 써요?”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방유정이 말했다.“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잠이나 자요.”임지훈은 취한 건 사실이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말짱했다. 그는 눈을 감고 또 말했다
임지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요. 해명하지 않아도 화는 나지 않았을 건데, 굳이 해명하니 용서해 줄게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삐쭉거렸다.“그렇게 잘난 척하지 말아요. 그럼 좋은 말이 안 나가니까.”“...”임지훈이 할 말을 잃었다.그때 방유정의 어머니가 열정적으로 요리를 집어 그의 앞접시에 건넸다.“이건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요리인데 맛봐요.”임지훈이 집어서 입어 넣고 먹어보더니 말했다.“맛있습니다.”방유정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고 방유정 아버지는 그에게 술을 따랐다.“평소 주량이 어떻게 돼요?”임지훈이 웃으며 대답했다.“못합니다.”방유정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었다.“잘 마실 것 같은데 너무 겸손하시네요.”임지훈이 말했다.“아니에요. 아니에요.”방유정은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아빠, 지훈 씨는 일이 바빠서 내일 프랑스로 돌아가야 해요. 일을 망치면 안 되니까 술을 많이 주지 마세요.”방유정 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그래.”“네. 그러니까 한 잔씩만 해요.”말하면서 방유정은 술을 가져갔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너 정말 분위기를 깬다.”방유정이 말했다.“두 분의 건강을 생각해서예요.”방유정 어머니는 술병을 들고 임지훈에게 한 잔 따르고 또 남편에게도 한 잔 따랐다.“많이 마시게 되면 우리 집에 방이 많으니 그냥 휴식하면 돼요. 비행기는 내일 타면 되는데 급해 할 거 없잖아요.”방유정은 어머니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엄마, 이 사람을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집에서 잠을 자래요?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려고요?”“걱정하지 마. 조사해 봤는데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야.”“...”“...”방유정과 임지훈이 순간 놀랐다. 방유정은 평생 살면서 이렇게 굴욕적인 순간을 느낀 적이 없었다. 몇 년 동안 쌓아온 체면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만든 건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의 부모님이었다.방유정 아버지는 아내를 힐끗 쳐다
“지훈 씨는 취미가 뭐예요?”방유정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임지훈은 방유정의 물음에 잠시 당황하다가 자신의 생활을 떠올렸는데 일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휴가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에 심재경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계속 일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취미는 더구나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본인의 생활이 정말로 단조롭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옆에서 따뜻하게 말 한마디 건네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순간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내를 맞이해서 함께 서로 보살펴주며 지내고 싶었는데 그런 사람만 있다면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고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방유정을 바라봤는데 본인과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방유정은 아직도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라 다른 사람을 보살필 줄은 모를 것 같았다.“왜 그런 이상한 눈빛으로 봐요?”방유정의 물음에 임지훈이 되물었다.“어디가 이상한데요?”방유정은 좀 더 가까이 가서 그의 눈을 마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왜요? 설마 저를 사랑하게 된 건 아니죠?”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당신은 성격도 안 좋고 또 엄청 잘난체하는데 내가 왜요? 점심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제 들어가요.”시간을 보며 임지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굶었어요?”방유정이 그를 비웃었다.“식사 끝나면 저는 가도 되죠.”방유정은 순간 왠지 서운했다.“그렇게 가고 싶어요?”“여기는 제집이 아닌데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요.”방유정은 그를 향해 입을 삐쭉거리자, 임지훈은 의아해했다.“왜 그래요?”“내가 뭐요?”방유정은 짜증을 냈다.“유정 씨는 정말 변덕이 많네요. 그걸 고쳐요. 남자들은 변덕이 많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요.”방유정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집안으로 걸어들어갔다.임지훈은 고개를 돌려 못에 있는 물고기들을 한 번 더 보고는 뒤따라 들어갔다. 방유정이 집에 들어서자, 그녀의 어머니가 그들을 부르러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딸만 보였기에 그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