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경은 머쓱해하지도 않고 그저 씩 웃었다.하지만 송연아는 기분이 언짢아 보였다.“왜 나 따라다녔어요?”“내가 언제 널 따라다녔어. 이 길이 다 네 거야. 네가 걸을 수 있으면 나도 걸을 수 있는 거지.”“딸이랑 같이 경치 구경하러 갔다면서요. 그런데 여기에 있을 시간이 어디 있어요? 그리고 선배가 운전했던 것 같은데.”심재경이 대답했다.“운전한 건 맞는데 너무 멀리 가진 않았어.”“...”송연아는 어이가 없었다.“도대체 뭘 하려는 거예요?”송연아는 그렇게 살갑지 않은 말투로 말했다.“나 뭘 하려고 하는 게 아니야. 그냥 산책이나 하려고.”송연아는 그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으면서 그와 거리를 두기 위해 성큼성큼 걸음을 내디뎠다.하지만 심재경은 눈치 없이 계속 그녀에게 달라붙었다.“혼자면 위험하잖아. 내가 같이 있어 줄게.”“괜찮아요.”송연아가 단호하게 거절했다.“계속 나 따라다니면 세헌 씨에게 이를 거예요.”심재경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아주 옛정은 하나도 생각하지 않는구나.”송연아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나 따라다녀서 내 기분 다 망쳐놓고, 그럼 내가 선배 고마워해야 해요?”“그런데 왜 너 혼자야? 세헌이는? 네가 돌아왔는데 세헌이가 출근했어? 돈이 중요해? 아니면 애인이 중요해?”심재경은 일부러 그녀를 도발했다.송연아는 그의 말 한마디로 절대 화가 날 사람은 아니었다.“일이 바빠도 저희 서로 사랑하는 건 변함이 없어요.”“...”심재경은 말문이 막혔다.‘됐어, 내가 괜한 걸 물어봤군.’“너 안 따라다닐게. 이제 가!”그가 돌아서서 다른 길로 걸어갔다.송연아는 그가 안이슬 때문에 자기를 따라온 걸 잘 알고 있었다.“설마 이슬 언니가 나랑 같이 돌아왔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심재경은 그 생각을 한 게 맞았다. 아니면 그는 송연아를 미행하지도 않았을 것이다.그가 일부러 딸을 데리고 나간다고 말한 건 사실 정말로 송연아와 강세헌 두 사람에게 단둘이 보낼 수 있는 시간을 주려는 이유였다. 하지만 그는
송연아는 갑자기 신경이 곤두섰다.그녀는 휴대폰을 꼭 쥐고 겉으로는 괜찮은 척 심재경에게 말했다.“방금 세헌 씨에게 전화가 왔어요, 회사로 찾아오라고요. 난 이만 가볼게요.”그녀는 길가에서 택시를 잡기 시작했다.심재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리를 떴다.그가 멀리 떠난 걸 확인하고서야 송연아가 물었다.“무슨 일이 생긴 거예요?”이영은 워낙 똑똑한 사람인지라 그녀에게 어떤 상황이 일어났는지 눈치채고는 더 물어보지도 않고 그녀의 물음에 대답했다.“네, 수술에 문제가 생겼어요.”송연아가 미간을 구겼다.“언니는 방금 수술했잖아요. 다음 수술까지 시간이 좀 남은 거 아니에요?”“안이슬 씨가 빨리 수술하고 싶다고 하셔서 수술 진행했습니다...”“의사가 동의했어요?”송연아가 물었다.이영이 대답했다.“너무 단호하셔서요. 저도 의사에게 물어봤는데 수술 진행 가능하다고 말씀하셨어요. 다만 수술 난이도가 높은데 주요하게 안이슬 씨의 상태 때문에 연속된 수술을 진행하면 안이슬 씨의 몸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하셨어요.”“그래서 수술을 진행했는데 문제가 생긴 거예요?”이영은 그녀가 화를 낼까 봐 두려운지 한참 주저하고는 겨우 한마디 뱉었다.“네.”송연아는 목소리를 높였다.“이슬 언니가 멍청한 짓을 하는 걸 막았어야죠.”이영은 반박하지도 않고 가만히 있었다.송연아도 이영은 안이슬을 말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그녀는 잠깐 감정을 추스르고는 진정하며 말했다.“제가 너무 급해서...”“괜찮아요. 저도 어차피 돈 받고 일하는 사람이잖아요. 사모님 화를 내시는 것도 충분히 이해해요.”이영이 공손하게 말했다.송연아는 그에게 화풀이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의사는 뭐라고 해요?”“최선을 다해 치료하고 있어요. 하지만 예상했던 결과가 안 나올 수도 있다고 하셨어요.”이영은 자책했는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송연아는 그의 탓을 하지 않았지만 그도 자신이 안이슬을 설득하지 못한 탓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했다.송연아
“왜 왔어?”강세헌은 넥타이를 풀어서 무심하게 테이블 위에 던졌다.송연아는 그에게 다가가더니 그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말했다.“세헌 씨 얼굴 보러 왔어요, 왜요, 안 돼요?”강세헌은 그녀의 턱을 치켜들며 물었다.“그냥 나 보러 왔다고?”‘왜 이렇게 믿음이 안 가지?’송연아는 안이슬의 일 때문에 회사로 온 건 맞다.그녀는 미국으로 가보려고 했지만 지금 상황으로써는...송연아는 조금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그녀는 강세헌을 믿고 있었다. 게다가 두 사람은 워낙 많은 일을 겪었으니 서로 굳게 믿고 있었다.다만... 송연아는 결과를 아랑곳하지 않은 채로 무조건적으로 그를 믿고 싶진 않았다.강세헌은 결국...송연아는 고개를 들어 눈앞의 남자를 살펴보기 시작했다.그는 사업을 성공시켰고, 잘생겼을 뿐만 아니라 키도 훤칠한, 모든 여자들의 환상에 맞는 남자였다.친구가 중요한 건 맞지만 가정을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송연아는 두 아이가 아빠를 잃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그녀는 강세헌을 더 꽉 끌어안더니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당연히 그냥 세헌 씨만 보러 온 건 아니죠.”그녀는 가냘픈 손가락으로 그의 옷깃 단추를 만지작거렸고, 무심한 듯 그의 목을 쓰다듬고는 매혹적인 목소리로 말했다.“보고 싶으니까 보러 온 거죠.”두 사람은 서로 워낙 오랫동안 알고 지내왔기에 서로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강세헌은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피식 웃으며 말했다.“네 마음은 잘 받을게... 하지만...”그리고 그녀의 귓가에 속삭이며 말을 이어갔다.“성의를 보여야 할 것 아니야. 나 진짜 보고 싶어서 왔다고, 다른 일 때문에 온 거 아니라고 증명해 봐.”부드러운 그의 입술은 그대로 송연아의 목에 포개졌다.뜨거운 숨결은 그녀를 삼킬 수도 있을 것 같았다.두 사람은 아이까지 낳은 부부 사이였지만 그런 강세헌의 도발에 송연아는 여전히 얼굴을 붉히면서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말했다.“증, 증명하라고요? 세헌 씨 보고 싶으니까 온 거죠. 그걸로 증명이 안
강세헌은 눈썹을 치켜들더니 자신의 멱살을 잡고 있던 송연아의 손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녀의 손을 자신의 심장에 갖다 대며 말했다.“네가 메스를 잘 다루는 건 알아. 하지만 정말 내 심장을 도려낼 수 있겠어?”송연아는 기세가 꺾이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계속 목소리를 높였다.“이미 나 배신한 마당에 못 할 게 뭐가 있겠어요?”“그럼 내 심장은 지금 바로 줄게.”그는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는 꽉 끌어안았다. 송연아의 몸은 그의 품에 착 달라붙었고 강세헌은 그녀의 귀에 속삭이면서 말했다.“내 몸도 줄 수 있어.”송연아는 귀가 빨개지더니 저도 모르게 몸이 뜨거워진 것 같았고 손바닥에서마저 열이 나는 것 같았다.그녀는 쑥스러운 듯 고개를 푹 숙이고는 말했다.“나 유혹하지 마요. 그런다고 내가 이대로 넘어갈 줄 알아요?”강세헌은 그녀의 귀에 입술을 가까이 대며 물었다.“그럼 나 가만 안 둘 거야?”“그 여자랑...”“우리가 잤다고 생각해?”강세헌이 그녀의 말을 끊어버렸다.“...”송연아는 무슨 말을 할지 몰라 잠깐 멈칫했다.“아니요.”강세헌과 그 여자가 선을 넘는 짓을 하지 않은 건 사실이고 송연아도 그저 미연에 방지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녀는 사실 누구보다 강세헌을 믿고 있었다. 두 사람은 워낙 많은 일들을 겪어왔으니 마음이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다만 남녀 사이의 일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어느 순간 사랑이 확 식어버릴 수도 있으니 조심하는 것도 나쁠 것 없었다.송연아는 절대 한혜숙처럼 결혼생활을 엉망으로 보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그녀는 강세헌의 목을 끌어안고는 가볍게 그의 입술에 입을 맞추면서 말했다.“나를 사랑하지 않게 되면 꼭 말해...”그녀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강세헌은 그녀에게 키스를 퍼부었다.그의 키스는 너무나도 강렬해 송연아는 숨을 쉴 수 없어 얼굴까지 빨개졌다.송연아는 본능적으로 그를 밀어내며 말했다.“살... 살살해요...”강세헌은 조금 힘을 풀었지만 그래도 그녀를 놓아
송연아가 실눈을 뜨며 말했다.“나 목말라요.”강세헌은 헝클어진 그녀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잠깐만 기다려, 내가 따라줄게.”“네.”송연아가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다.똑똑...갑자기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송연아는 원래 정신이 몽롱한 채 자리에 앉아있었는데 그 소리를 듣고는 순간 정신을 차리면서 경계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문 쪽을 바라봤다.강세헌은 긴장한 그녀의 마음을 다독여주며 말했다.“안 들어올 거야.”송연아는 그래도 잔뜩 긴장한 채 허둥지둥 옷매무시를 정리했다...그런 송연아의 모습을 본 강세헌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아까는 안 이랬잖아. 다 즐겼으면서 웁...”송연아는 그의 입을 막아버렸다.“소리 낮춰요. 밖에 있는 사람이 들으면 어떻게 해요?”그녀는 원래도 부끄러웠기에 강세헌의 말을 듣고는 더 안절부절못했다.강세헌이 문밖을 향해 말했다.“이따가 다시 들어와.”문밖에서 알겠다는 소리와 함께 곧이어 가벼운 발소리가 들려왔다.송연아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강세헌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그렇게 긴장할 것 없어. 조금 쉬어.”그는 벨트를 채우고 테이블 앞에 걸어가고는 그녀에게 물 한 잔을 따라 주었다.송연아는 이렇게 짜릿한 경험은 처음이라 얼굴이 새빨개졌고 다소 어색한 표정을 보였다.강세헌이 그녀를 보더니 웃으면서 말했다.“아이 둘 엄마면서 왜 소녀처럼 수줍어해?”송연아는 어이가 없어 남자를 째려봤다.‘다 끝났으니까 이제는 나 놀려도 된다는 거야?’“세헌 씨처럼 뻔뻔하지 않아서요.”송연아는 한참 고민하다가 겨우 이 말을 뱉어냈다.강세헌이 피식 웃음을 터뜨리더니 더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너처럼 수줍어했으면 네가 아이를 둘이나 낳았겠어?”“...”송연아는 말문이 막혔다.어차피 강세헌과 말싸움을 펼쳐봤자 그녀밖에 손해를 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그녀는 벌컥벌컥 물을 마시고는 소파에 누웠다.“나 좀 잘게요.”그녀는 너무나도 피곤했다.강세헌이 알겠다며
강세헌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알겠어.”차는 어느 근사한 레스토랑 앞에 세워졌다.강세헌은 차에서 내린 후 차 키를 직원에게 맡기고는 송연아를 끌어안은 채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이곳은 역사가 깊은 고급 프랑스 레스토랑이었고, 강세헌은 모두 프랑스 고급 요리를 주문했다. 소고기 리조또, 푸아그라, 달팽이 요리 등등 말이다.송연아는 한식을 좋아하는 편이라 외국에 있으면 항상 음식에 시달리곤 했다.강세헌은 썩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송연아를 보고는 말했다.“나중에 한식 레스토랑으로 가자.”송연아가 대답했다.“네, 나는 그래도 한식이 입맛에 맞는 것 같아요.”강세헌이 그녀에게 반찬을 집어주며 말했다.“우리 한식도 맛있지만 다른 나라 음식도 받아들일 준비는 해야지. 편식하면 안 되잖아.”“이게 편식인가요?”송연아가 물었다.“그렇지.”“...”송연아는 어이가 없었다.‘그냥 다른 나라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을 뿐인데 왜 편식하는 사람이 된 거지? 난 세상에서 한식이 제일 맛있다고. 다른 음식이 맛이 없는 걸 어떻게 해.’“이건 세헌 씨가 먹어요.”그녀는 자기 그릇에 있던 달팽이 요리를 강세헌의 접시에 넘겨주고는 말했다.“이건 꼭 세헌 씨가 먹어요, 거절하면 안 돼요, 아니면 세헌 씨는 편식하는 거예요.”강세헌이 웃음을 터뜨렸다.그는 자기 걸 먹기도 전에 송연아가 준 것부터 먹었다....송연아가 또 자리를 비운다는 소식을 듣고 한혜숙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푹 쉬었다.잔소리는 더 하지 않고 그저 그녀에게 신신당부했다.“될수록 일찍 돌아와. 너무 오래 있지 말고.”송연아가 대답했다.“네, 알겠어요.”강세헌은 그녀를 직접 공항까지 데려다줬다.가는 길에 그녀는 강세헌의 팔을 꼭 끌어안고는 말했다.“될수록 빨리 돌아올게요.”강세헌은 일부러 도도한 척하며 말했다.“알아서 해.”송연아가 웃었다.“왜요? 내가 없는 틈을 타서 젊고 예쁜 사업 파트너를 찾으려고 해요?”그는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말했다.“그거야 업무
송연아는 아쉬운 마음을 안고 탑승구를 향해 걸어갔다. 그녀는 돌아서 손을 흔들었는데 인파 속에 서 있는 강세헌은 몸매가 탄탄하고 키가 커서 한눈에 찾을 수 있었다. 어디서든 그는 주목을 받는 존재였다.“저 갈게요.”송연아의 말에 강세헌이 고개를 끄덕였다. 탑승 알림이 울리고 송연아는 비행기에 탑승할 준비를 했다.비행기 안에 올라탄 그녀는 자신의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녀가 예약한 것은 비즈니스석이었기 때문에 조용하고 넓었으며 편안한 잠자리가 제공되었다. 송연아는 비즈니스석에서 제공하는 안대를 착용하고 담요로 몸을 감쌌다.비행기에서 내리자 송연아를 맞이하러 온 이영이 보였다. 이영은 그녀를 만나자마자 자신이 안이슬을 잘 돌봐주지 못했다고 사죄했다.송연아는 이영에게 자책하지 말라고 했다. “이 일은 이영 씨 탓이 아니에요. 내가 여기 있었다고 해도 이슬 언니를 설득할 수 없었을 거예요. 이슬 언니가 고집 센 성격이어서 이영 씨랑 상관없어요. 지금 언니는 어떤 상황이에요?”“많이 좋아졌어요.”이영이 대답했다.“다행이에요.”송연아가 말하고 이영은 조심스럽게 송연아를 돌아다보며 말했다.“어디 아파요? 피곤해 보여요.”송연아는 얼굴을 문지르며 말했다.“아마 잘 못 자서 그런 것 같아요.”송연아가 대답했다. 그녀가 며칠 돌아가 있는 동안 강세헌은 그녀를 가만두지 않았다. 잠깐의 이별은 신혼보다 낫다는 말이 있는 데 겪어보니 그 말이 나온 이유가 있는 것 같다. 특히 강세헌처럼 정력이 넘치는 나이에는 더 그렇다.차는 병원 입구에서 멈췄고 차에서 내려서 이영은 송연아의 뒤를 따랐다. 이영은 송연아의 날씬한 등을 바라보더니 머리를 숙였다.병실로 들어가자, 송연아는 원래 누워있던 안이슬이 이제 침대 머리에 기대서 앉아있는 것을 보고 빠르게 걸어가서 물었다. “좀 괜찮아요?”안이슬이 말했다. “이영 씨가 불렀어요? 말했잖아요. 내 상태에 대해 알리지 말라고.”“이영 씨가 말하지 않아도 내가 왔을 거예요. 언니를 혼자 여기에 두
강세헌이 말했다.“내가 보냈어.”송연아가 웃었다.“당신 정말 빠르네요.”강세헌은 무안했지만, 그녀의 말에 웃음이 터졌다.“네가 부탁한 일인데 내가 어떻게 대충할 수가 있어?”송연아는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깨물며 강세헌에게 애교를 부렸다.“돌아가면 내가 당신한테 잘해줄게요.”눈 깜짝할 사이에 송연아가 미국에 온 지도 열흘이 넘었다. 강세헌은 확실히 송연아가 보고 싶었다. 하루가 일 년처럼 느껴졌지만 절제할 수밖에 없었는데 송연아의 유혹적인 말들을 듣고 있노라면 자신만 힘들 것 같아서 그는 바로 전화를 끊었다.“...”송연아는 핸드폰을 보면서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이 사람 왜 이러지? 화났나? 설마?’송연아는 그가 화났을까 봐 걱정되어서 메시지를 보내서 달래줬다.「여보.」답장이 없었다.「많이 보고 싶어요.」그리고 또 귀여운 하트 이모티콘을 보냈다. 여전히 답장이 없었다. 송연아는 또 귀여운 이모티콘을 하나 보냈지만 그래도 반응이 없었다. 송연아는 눈을 깜빡거렸다.「당신 계속 답장 안 하면 나 화낼 거에요?」이번에는 드디어 답장이 왔는데 딱 한 글자였다.「응.」강세헌은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서 한 손으로 턱을 받치고 시선을 깔고 다른 한 손으로 핸드폰 화면을 만지작거리며 한번 또 한 번 송연아가 보내온 메시지를 보고 있었다. 입꼬리에 미소가 걸려있었는데 사랑에 빠진 사람의 표정이었다. 이 표정을 진원우와 임지훈이 봤다면 무조건 놀렸을 것이다....미국.송연아는 입을 삐죽거리며 화면에 띄어진 한 글자를 보고 있었다.‘한마디라도 더 하면 어디 덧나나?’의사가 회진을 와서 송연아는 빠르게 메시지를 하나 보냈다.「지금 의사가 와서 좀 늦게 전화할게요.」송연아는 뒤돌아 병실에 들어갔다. 의사는 안이슬의 상황을 살펴보고 있었는데 다친 곳은 잘 회복하고 있었다. 여기의 의료기술과 수준이 아주 좋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게 안이슬의 상황이 호전되어 가고 있는 속도가 예상보다 빨랐다.송연아가 다가와서 의사한테 물었다.“
결혼식을 마친 후 방유정 아버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떠나기 전에 임지훈에게 회사를 완벽하게 인계하려고 회사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임지훈은 송연아와 강세헌 일행과 같이 먼저 프랑스로 돌아가서 그쪽 일을 마무리했다. 비록 임지훈이 회사에 있으면 강세헌은 보다 한가하게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가 떠난다고 해도 그냥 조금 더 바쁠 뿐이다. 어느 회사든 누가 떠나면 절대 안 되는 건 없다. 일주일의 시간 동안 임지훈은 프랑스에서의 일들을 모두 마치고 귀국해서 방씨 가문 회사에 들어갔다.임지훈도 국내에 집이 있었지만 방유정과 같이 방씨 가문에 들어갔다. 데릴사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유정 아버지의 병을 알고 방유정이 부모님과 많을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였다. 임지훈 역시 사위로서 그럴 의무가 있었다....반년 후, 방유정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방유정 어머니는 그 충격에 순식간에 많이 늙었다.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집안 분위기는 아주 저조했는데 방유정의 대부분 시간은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예전의 임 비서는 이제 임 대표가 되어 그의 능력으로 방씨 가문은 아주 관리가 잘 되었고 3개월 후 방유정 어머니의 상황도 많이 좋아졌다.방유정이 드디어 임신하게 되면서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간 일도 어느 정도 잊혀가고 있었다. 임지훈은 곧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기뻤고 방유정도 곧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방유정 어머니 역시 곧 외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정말로 모두 행복해할 만한 일이었다.방유정이 임신 6개월 때 그들은 프랑스로 갔는데 구애린은 남자아이를 낳았고 심재경의 딸은 이제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샛별이가 유일한 여자아이여서 모두가 예뻐했다. 샛별이는 아직 작고 어렸지만 찬이를 쫓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찬이는 샛별이 다리가 짧다고 계속 놀려줬으며 그게 재밌다고 샛별이는 키득키득 웃었다. 찬이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면 샛별이는 오빠라고 불렀는데 너무 귀여웠다.방유정이 말했다.“저도 딸을 낳고 싶어요.”구애린이 말했다.“그게
비록 손을 놓기 싫었지만, 방유정 아버지는 결국 방유정의 손을 임지훈에게 넘겨줬다.“앞으로 계속 사랑하며 살기를 바란다.”방유정도 아버지에게 말했다.“꼭 그렇게 할게요.”이어서 결혼식은 순서대로 일사천리로 피로연까지 모두 순리롭게 진행되었다.방유정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는데 딸이 그렇게도 바라던 결혼을 하니 너무 기뻤다. 그런데 결혼시키고 나니 또 잘 살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세상의 부모들은 다 그런가 보다.임지훈은 방유정을 데리고 강세헌이 있는 테이블로 가서는 비록 모두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소개했다. 모두 방유정을 다시 한번 소개받았는데 이번에는 심재경 친구의 사촌 동생이 아닌 임주훈의 아내로 말이다.구애린이 웃으며 말했다.“정말 너무너무 축하해요.”방유정도 웃으며 대답했다.“고마워요.”윤이도 어른들 따라 한마디 했다.“축하해요.”방유정은 윤이를 보며 말했다.“너무 귀여워요.”그녀가 손을 뻗어 윤이의 얼굴을 만지자, 윤이가 손을 내밀었다.“안아줘요.”송연아가 미간을 찌푸렸다.“윤이야, 안 돼.”방유정이 말했다.“괜찮아요.”그녀는 윤이를 안으며 말했다.“무겁지 않아요.”윤이는 그녀의 머리에 있는 금색 비녀를 보고 만지려고 했다. 방유정이 한복을 입고 있었기에 머리에 비녀를 하고 있었다. 방유정은 아주 시원하게 바로 비녀를 빼서 윤이에게 주었는데 송연아는 윤이를 제지하지 못해서 미안해했다.“이러면 안 돼요. 오늘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괜찮아요. 그냥 액세서리일 뿐이에요. 윤이가 좋아하니 놀게 해요.”방유정은 정말 성격이 좋았다. 역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만큼 성품이 좋았다. 가끔 조금 오만하긴 하지만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모두 그녀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송연아는 윤이를 안고 달래려고 했다.“윤이 착하지. 이건...”송연아는 윤이가 방유정을 어떻게 부르면 될지 생각했는데 방유정이 웃으며 말했다.“호칭일 뿐이니까 편
“지금 막 들었는데 유정 씨와 결혼한다면서요. 지금 방씨 가문에서 결혼식을 준비한다고 난리 났어요.”임지훈이 웃었다.“저 이래 봐도 능력 있는 남자예요. 여자들한테도 인기 많아요. 봐요, 결혼도 금방 하죠?”구애린이 말했다.“이제 우리 모두 짝이 있네요.”찬이도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지훈이 삼촌, 축하해요.”“고마워.”임지훈이 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심재경이 물었다.“그런데 데릴사위로 들어간다고 하던데요?”심재경의 말에 모두 놀라며 시선이 일제히 임지훈에게로 향했다. 확실히 놀랄만한 일이다. 임지훈의 조건에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돈도 있고 능력도 있어서 충분히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데 말이다.“하긴, 방씨 가문에 가장이 필요하긴 해요.”심재경이 그쪽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한마디 했다....임지훈의 결혼식으로 송연아와 강세헌도 프랑스로 돌아가는 일정을 늦췄다. 아무도 심재경의 결혼식을 보러 왔다가 임지의 결혼식까지 보게 될 줄을 생각을 못 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이건 임지훈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듯이 방유정과의 결혼은 정말로 찰나의 결정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그 역시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임지훈이 진원우에게 말했다.“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진원우가 말했다.“그런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방씨 가문은 돈도 많고 유정 씨도 예쁘고 그 정도면 만족해야지.”“만족해. 다만 너무 빠른 것 같아서 그래.”귀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싱글이었는데 이제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결혼식은 방씨 가문에서 모두 준비했는데 방유정 딸 하나이고 또 사위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결혼식은 아주 성대하게 치렀다. 방씨 가문의 친척들도 꽤 많이 참석해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비록 데릴사위라고 하지만, 임지훈 측은 심재경이 준비했는데 심재경 본인도 금방 결혼식을 치렀기 때문에 익숙한지라 아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었다....방유정은 정교한 메이크업을 하고 값진 웨딩드레스를 입었는
“잠도 잤는데 왜요? 모른 척하려고요?”방유정이 옷을 입더니 침대에서 꼼짝 안 하는 임지훈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왜요? 계속 그렇게 누워 있을 거예요?”임지훈이 말했다.“내 옷을 가져오지 않았잖아요. 나 입을 옷 없어요.”방유정은 그제야 임지훈이 옷이 없다는 걸 생각했다.“가져다 줄게요.”그녀는 곧바로 차에 가서 캐리어를 가지고 다시 올라갔다.“뭐 입을지는 알아서 찾아서 입고 내려와요. 아래층에서 기다릴게요.”방유정은 말을 마치고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임지훈은 침대에서 내려 결혼 얘기이니만큼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정장을 찾아서 입었다. 그가 정리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방유정은 부모님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의 부모는 그를 보자마자 더욱더 열정적이었다.임지훈이 건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저기...”“우리 딸 줄게요.”“아니에요. 지훈 씨가 저한테 시집 오는 거예요.”방유정이 정정했다.“...”“...”“...”방유정을 제외한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물었다.“유정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방유정은 자신이 여자이며 이 집안에 다른 후계자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아버지가 중병이고 자기는 회사를 관리할 능력도 없기에 어찌 보면 자기가 남편을 찾는다기보다는 방씨 가문의 회사를 경영할 사람을 찾는 거였다. 인제야 그녀는 부모가 조급해하는 의도를 이해했고 그녀 역시 가문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에 임지훈이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임지훈을 각별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그런 것들 때문이지 않겠는가.“유정 씨,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임지훈은 뼈대가 있는 남자로서 데릴사위 할 생각은 없었다.방유정이 말했다.“후회하면 안 돼요!”“왜 안 돼요? 유정 씨가 뭘 원하든지 저 모두 만족시켜 줄 수...”“제가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예요.”방유정이 외치자, 임지훈은 오히려 우스웠다. 한 여자가 나한테 시집오라고 하다니!“우리 유정이가 시집가는 거 맞아요
지금 그녀가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물으면 부모님은 더 속상해할 것 같았다.‘나 이제 어떻게 해야지? 어떻게 하면 좀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지? 결혼, 그래 결혼해야 해.’그녀는 자기가 결혼해야만 부모님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 상대도 지금 바로 방에 있지 않겠는가?‘남자 친구인 척을 해줬으니 이제 남편인 척해달라고 해야지. 진짜가 아니고 가짜라도 되니까 결혼하자고 해야겠어.’방유정은 진료 기록부를 다시 원래 위치에 넣고 비틀거리며 부모님 방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갔는데 임지훈이 아직 욕실에서 나오지 않아 침대 옆에 앉아서 기다렸다. 한참 지나자, 임지훈은 가운을 두르고 욕실에서 나왔는데 침대에 자기의 옷이 보이지 않아 방유정의 옆에 서서 물었다.“내 옷은요?”그는 방유정이 잊은 것 같아서 다시 말했다.“내 옷은 지금 당신 차 트렁크에 있어요.”방유정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지훈 씨, 우리 결혼해요.”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약을 잘못 먹었어요? 아니면 정신이 어떻게 됐어요?”“다 아니에요. 그냥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거칠었는데 임지훈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물었다.“울었어요? 누가 괴롭혔어요? 얘기해 봐요. 제가 가서 때려줄게...”임지훈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방유정이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임지훈은 갑작스러운 친밀감에 몸이 굳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게... 유정 씨...”그가 말하려고 할 때 방유정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의 손이 아래로 드리는 순간 몸에 걸친 유일한 가운마저 벗겨져서 흘러내렸다.“...”방유정은 워낙 임지훈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지금 행동이 충격에 의한 도발적인 행동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웃옷의 단추를 벗겨 가슴을 드러내고는 그의 가슴에 가까이하며 말했다.“저를 좀 봐봐요.”임지훈은 참을 수 없었는지 목젖을 굴렸는데 이름 모를 불길이 아랫배에서 솟아오르더니 순식간에 딱딱해졌다.“정말 후회하지 않겠어요?”임지훈도
방유정은 어머니가 자신의 어깨를 다독이자,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응원을 하시는 거였다.“화이팅!”방유정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지금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지?’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만 좋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갑자기 선 자리를 만들어주고 남자를 유혹하라고까지 하시다니?그녀는 어머니의 이마를 만지며 물었다.“엄마,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우리 이제 나가야 해.”방유정의 아버지는 기사가 이미 대기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집을 나갔고 방유정은 문 앞까지 그들을 배웅했다. 차가 떠나자, 그녀는 집으로 들어갔는데 어차피 임지훈이 자고 있었기에 지루할 것 같아서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그녀는 가만히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는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했다. 그런데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서 임지훈을 놀려주려고 그가 곤히 자는 방으로 올라가서는 화장대에서 화장품을 가져다가 침대 옆에 앉아 임지훈에게 예쁜 화장을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도 임지훈이 깨지 않자, 옆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눈이 아파 오니 옆에 기대서 잠이 들었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는 임지훈은 이미 깨어나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언, 언제 깼어요?”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방유정은 참을 수 없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훈의 얼굴은 정말로 오페라 가수 같았는데 어찌나 웃었는지 배가 아팠다. 임지훈은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물었다.“다 웃었어요?”방유정은 곧바로 웃음을 거두고 그의 손을 뿌리쳤다.“맘대로 제 몸에 손을 대지 말아요.”임지훈이 말했다.“유정 씨를 저에게 준다고 해도 거절이에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말했다.“뭐라고요? 저를 좋다고 하는 남자들이 줄을 서면 프랑스까지는 갈 거예요. 그런데 지훈 씨는 내가 싫다고요?”임지훈이 흠칫하자, 방유정이 그를 잡고 물었다.“지금 그
“방유정은 부모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알았어요. 하시고 싶은 대로 하세요.”“어서 지훈 씨 방으로 데려가.”방유정이 물었다.“어느 방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제야 깨달은 듯 말했다.“어머, 어떡해. 게스트룸은 아직 준비가 안 돼있어. 우선 네 방으로 데려가서 휴식하게 해.”방유정은 어머니의 말에 놀라며 말했다.“아빠, 엄마, 이 정도로 오픈 마인드였어요? 어떻게 제 방에 술 취한 남자를 데려가라고 하세요?”“네 말대로 취했는데 뭐 어때?”“술김에 어떤 짓도 한다는 말 몰라요?”방유정이 묻자, 그녀의 부모님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몰라.”방유정은 철저히 말문이 막혔다. 부모님과 임지훈이 정말로 모르는 사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임지훈이 그들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엄마 아빠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아무리 나를 결혼시키고 싶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만약 진짜로 무슨 일이 있으면 책임지라고 하고 바로 결혼시킬 거야.”임지훈은 그 말을 들으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바탕 뿜었다. 방유정의 부모님이 너무 열정적이어서 본인이 천당에 있는 것 같았는데 정말로 귀여운 부모님들이라고 생각했다.‘방유정은 전생에 은하계를 구했나 봐.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고 말이야.’방유정은 역겨워하며 말했다.“지훈 씨, 여기서 이러면 어떡해요. 화장실로 가야지.”“취했잖아.”방유정 어머니가 가정부를 불러 치우게 했다.“그만하고 불편해 보이는데 어서 방으로 데려다 쉬게 해.”방유정은 혼자서 임지훈을 옮길 수 없어서 가정부의 도움을 받아 함께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방에 도착하자, 그녀는 임지훈을 침대에 던졌는데 임지훈은 몸이 포근한 세계에 떨어진 듯 따뜻하고 향기로웠다.“무슨 향수를 써요?”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방유정이 말했다.“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잠이나 자요.”임지훈은 취한 건 사실이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말짱했다. 그는 눈을 감고 또 말했다
임지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요. 해명하지 않아도 화는 나지 않았을 건데, 굳이 해명하니 용서해 줄게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삐쭉거렸다.“그렇게 잘난 척하지 말아요. 그럼 좋은 말이 안 나가니까.”“...”임지훈이 할 말을 잃었다.그때 방유정의 어머니가 열정적으로 요리를 집어 그의 앞접시에 건넸다.“이건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요리인데 맛봐요.”임지훈이 집어서 입어 넣고 먹어보더니 말했다.“맛있습니다.”방유정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고 방유정 아버지는 그에게 술을 따랐다.“평소 주량이 어떻게 돼요?”임지훈이 웃으며 대답했다.“못합니다.”방유정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었다.“잘 마실 것 같은데 너무 겸손하시네요.”임지훈이 말했다.“아니에요. 아니에요.”방유정은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아빠, 지훈 씨는 일이 바빠서 내일 프랑스로 돌아가야 해요. 일을 망치면 안 되니까 술을 많이 주지 마세요.”방유정 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그래.”“네. 그러니까 한 잔씩만 해요.”말하면서 방유정은 술을 가져갔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너 정말 분위기를 깬다.”방유정이 말했다.“두 분의 건강을 생각해서예요.”방유정 어머니는 술병을 들고 임지훈에게 한 잔 따르고 또 남편에게도 한 잔 따랐다.“많이 마시게 되면 우리 집에 방이 많으니 그냥 휴식하면 돼요. 비행기는 내일 타면 되는데 급해 할 거 없잖아요.”방유정은 어머니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엄마, 이 사람을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집에서 잠을 자래요?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려고요?”“걱정하지 마. 조사해 봤는데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야.”“...”“...”방유정과 임지훈이 순간 놀랐다. 방유정은 평생 살면서 이렇게 굴욕적인 순간을 느낀 적이 없었다. 몇 년 동안 쌓아온 체면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만든 건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의 부모님이었다.방유정 아버지는 아내를 힐끗 쳐다
“지훈 씨는 취미가 뭐예요?”방유정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임지훈은 방유정의 물음에 잠시 당황하다가 자신의 생활을 떠올렸는데 일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휴가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에 심재경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계속 일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취미는 더구나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본인의 생활이 정말로 단조롭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옆에서 따뜻하게 말 한마디 건네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순간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내를 맞이해서 함께 서로 보살펴주며 지내고 싶었는데 그런 사람만 있다면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고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방유정을 바라봤는데 본인과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방유정은 아직도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라 다른 사람을 보살필 줄은 모를 것 같았다.“왜 그런 이상한 눈빛으로 봐요?”방유정의 물음에 임지훈이 되물었다.“어디가 이상한데요?”방유정은 좀 더 가까이 가서 그의 눈을 마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왜요? 설마 저를 사랑하게 된 건 아니죠?”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당신은 성격도 안 좋고 또 엄청 잘난체하는데 내가 왜요? 점심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제 들어가요.”시간을 보며 임지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굶었어요?”방유정이 그를 비웃었다.“식사 끝나면 저는 가도 되죠.”방유정은 순간 왠지 서운했다.“그렇게 가고 싶어요?”“여기는 제집이 아닌데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요.”방유정은 그를 향해 입을 삐쭉거리자, 임지훈은 의아해했다.“왜 그래요?”“내가 뭐요?”방유정은 짜증을 냈다.“유정 씨는 정말 변덕이 많네요. 그걸 고쳐요. 남자들은 변덕이 많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요.”방유정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집안으로 걸어들어갔다.임지훈은 고개를 돌려 못에 있는 물고기들을 한 번 더 보고는 뒤따라 들어갔다. 방유정이 집에 들어서자, 그녀의 어머니가 그들을 부르러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딸만 보였기에 그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