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여전히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그녀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휴대폰을 하염없이 바라봤다.‘설마 세헌 씨가 정말 나에게 화가 난 걸까? 준비한 서프라이즈도 수포가 되었네. 서프라이즈 주려고 기껏 왔더니 출장간 것도 모자라 전화까지 연결이 안 되잖아.’한혜숙은 딸을 보며 물었다.“왜? 전화가 연결이 안 돼?”송연아는 그저 웃으면서 대답했다.“아마 비행기에 오른 것 같아요. 그래서 전화가 연결이 안 돼요.”한혜숙은 바로 그녀의 마음속을 꿰뚫어 봤다.“표정 보니까 그게 아닌데? 아니면 집 전화로 다시 한번 해 봐.”송연아는 찬이를 안아 들며 말했다.“아이고, 분명 비행기에 올라탔을 거예요.”송연아는 절대 집 전화로 전화할 생각이 없었다. 만약 전화가 연결된다면 강세헌이 그녀의 전화를 받고 싶지 않다는 사실이 증명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한혜숙 앞에서 얼마나 체면이 서지 않겠는가.“오랫동안 집을 비웠으니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었어요. 엄마, 오늘은 푹 쉬세요. 제가 아이들을 돌볼게요.”한혜숙은 딸을 빤히 쳐다보더니 한숨을 푹 쉬었다.“네 일이니까 네가 알아서 해.”말을 마친 후 한혜숙은 자리를 떴다.송연아도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야 하는 건 맞았다.엄마라는 사람이 매일 집을 비우면서 한 개 회사를 책임지는 강세헌보다도 더 바삐 보냈으니 말이다.이래서 다들 사위 사랑은 장모라고 하는가 싶다.송연아는 두 아이들을 데리고 정원에서 놀고 있었다.정원은 워낙 크고 넓기에 아이들은 마음껏 뛰놀 수 있었다.그녀는 계단에 앉아 아이들을 바라봤는데 사실 매우 심란했다. 턱을 괸 채 거의 울상이었다.심재경은 소리 없이 그녀의 옆에 앉았다.그도 말을 하지 않고 그녀의 눈길을 따라 뛰놀고 있는 두 아이를 바라봤다.송연아가 고개를 돌렸다.“아이는 안 돌봐도 돼요?”“은화 아주머니가 도와서 봐주고 있어.”그가 덤덤하게 말했다.“나 귀국했었어.”송연아가 무심하게 물었다.“왜요?”“회사 일 처리하느라.”“아이를 국내로 데려가려는 거 아니었어
송연아는 그저 웃었다.심재경이 벌컥 역정을 내며 말했다.“너랑 말 안 할래. 다들 나만 괴롭혀.”심재경이 앞으로 몇 걸음 갔는데도 송연아가 자기를 잡지 않자 그는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나 안 달래줘? 내 친구 맞아?”송연아는 제자리에 앉은 채로 말했다.“선배를 달래줘요?”강세헌을 어떻게 달랠지도 모르는데 심재경까지 달랠 시간이 어디 있단 말인가?“선배 혼자 마음을 추슬러요. 나는 시간이 없어요.”송연아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심재경은 말문이 막혔다.“다들 양심이 없어. 나만 괴롭히지? 너희들이랑 안 놀 거야. 내 딸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갈 거라고.”송연아는 그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대답했다.“네, 그럼 천천히 가요.”심재경은 할 말을 잃었다.“나보고 가라고 그러니까 또 가기 싫네.”심재경은 다시 송연아의 맞은 편 자리에 앉았다.송연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두 아이들이 하는 게임에 참여했다. 심재경을 혼자 둔 채 말이다.하지만 심재경은 화도 안 내고 그저 조용히 그들을 바라보기만 했다.한참 후, 오은화가 그의 딸을 안고 나오자 그는 아이를 건네받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그의 딸은 아직 어리기에 밖에서 너무 오래 있으면 안 되었다. 잠깐 놀다가 바로 실내로 들어가야 했다.진원우와 구애린이 누구에게서 소식을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송연아가 돌아왔다는 걸 알고 저녁 먹으러 왔다.간만에 송연아가 집으로 돌아왔기에 집사는 셰프더러 많은 중식을 준비하라고 했다.심재경이 말했다.“연아가 오랫동안 집을 비우고 이제 드디어 돌아왔으니 다들 한잔합시다.”진원우가 제일 먼저 대답했다.“술은 마시지 말지?”“왜?”심재경이 물었다.“말해도 몰라. 결혼한 사람들만이 알 수 있어.”“...”심재경은 어이가 없었다.“다들 나 왕따시키는 거야? 결혼했으면 다야? 난 귀여운 딸도 있다고, 그런데 내가 언제 그런 걸 뽐냈어?”“딸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아내가 없잖아.”“...”심재경은 말문이 막혔다.구애린은 저도 모
심재경은 진원우를 바라보다가 말했다.“아내의 말에는 꼼짝 못 하네?”진원우는 전혀 타격이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넌 이렇게 말해줄 아내도 없잖아.”그의 말에 심재경은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또 나만 상처를 받아. 차라리 말을 안 하고 말지.’어차피 진원우의 심기를 건드려도 구애린은 진원우의 편이었기에 그는 혼자서 두 사람을 이길 수 없었다.심재경은 술병을 들고 송연아에게 잘 보이려는 듯이 그녀에게 술을 따르며 말했다.“연아야, 어차피 오늘 세헌이도 없으니까 내가 같이 술을 마셔줄게.”송연아가 미간을 구겼다.“그 사람 얘기 하지 말아요.”심재경은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누구 말하는데?”송연아가 자기를 째려보자 그는 웃음을 터뜨렸다.‘연아도 남편이 있다고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외로운 나랑 별다른 것 없네.’그 생각에 심재경은 덜 외로운 느낌이 들었다.‘내가 제일 불쌍한 사람은 아니네. 나랑 똑같은 사람이 옆에 있잖아.’“연아야, 너 술 잘 못 마시잖아. 이 잔만 마시고 그만하자.’심재경은 그녀가 술을 잘 못 마시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녀에게 술을 가득 따랐다.‘나 취하게 하려는 심보인 거야?’송연아가 희번덕거리자 심재경이 말했다.“내가 같이 마셔주잖아. 자자.”그는 송연아를 유혹하며 말했다.송연아가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건 사실이었다.한 모금을 마셨지만 맵고 짜릿한 기분이 들었고, 얼굴도 순식간에 빨개졌다.심재경은 그녀가 술을 잘 못 마시는 걸 알면서도 거들었다.“많이 마시면 이 맛에 익숙해질 거야.”송연아는 입 안에 음식을 마구 쑤셔 넣으면서 알코올 냄새를 억누르려고 했다.“술은 원래 이런 거야.”심재경이 계속 술을 따르자 송연아는 손을 저었다.“그만해요.”그녀는 더는 마실 수 없었다.하지만 심재경은 그녀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나 믿고 이 잔만 마셔. 그러면 그렇게 괴롭지 않을 거야.”“그래요?”송연아는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벌써 조금 취한 것처럼 보였다.“선배 말 안 믿
방에 들어오던 강세헌은 잠깐 멈칫하더니 계속 침대 쪽으로 걸어갔다.송연아는 술을 너무 많이 마신 건 아니었지만 강세헌은 여전히 그녀에게서 은은한 알코올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그는 미간을 구기며 물었다.“술 마셨어?”송연아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먼저 그의 허리를 끌어안고는 그 틈을 타 그의 복근에 얼굴을 묻히면서 말했다.“네, 조금요.”그녀는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실눈을 뜨며 몽롱한 목소리로 말했다.“나한테 화났어요?”강세헌은 처음에 기분이 나쁜 게 맞았다.송연아가 친구를 걱정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자기 가정은 걱정하지도 않는단 말인가? 가족은 그녀에게 있어서 전혀 중요하지 않단 말인가?하지만 공항에서 송연아가 돌아왔다는 집사의 전화를 받았을 때, 그는 조금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왜 갑자기 돌아온 거지?그런 의문에 그는 출장하려던 계획을 바꿨다. 하지만 바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회사로 갔고, 출장은 임지훈에게 맡겼다.그는 회사에서 일을 처리하고 있었는데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다.이대로 타협하는 게 싫은 듯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하지만 ‘보고 싶다’는 송연아의 문자를 받고 그의 모든 불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송연아는 아직 덜 깼는지 원망하면서도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세헌 씨에게 서프라이즈를 주려고 왔는데 이렇게 출장을 가면 어떻게 해요?”강세헌은 그녀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했다.“미리 말하지 않으면 네가 오는 걸 내가 어떻게 알아? 나 일 때문에 집에 없으면 서프라이즈는커녕 나에게는 부담이라고.”송연아가 말했다.“칫, 낭만 같은 거 하나도 모르네요. 너무 재미없어요...”강세헌은 그녀의 턱을 치켜들더니 물었다.“내가 재미없다고?”그녀는 눈을 희미하게 뜨고는 늘어진 목소리로 그렇다고 대답했다.“웁...”송연아는 그대로 침대에 눕혀졌다.강세헌의 무거운 몸이 그녀의 몸을 덮쳤고, 그는 또 뜨거운 숨결을 내뱉었다.송연아의 귓가에는 감미로우면서도 매혹적인 잠긴 목소리가 들려왔다.“나 보고 싶었어
강세헌이 웃으면서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어젯밤에는 안 이랬잖아.”송연아가 그를 밀면서 말했다.“장난치지 말고 얼른 일어나요.”그녀는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재경 선배가 분명 나 놀릴 거란 말이에요. 어제 나한테서 정보를 얻어내려고 술도 먹였어요. 재경 선배를 좀 조심해야겠어요. 혹시 오늘 또 다른 방법으로 나에게 매달릴지 모르잖아요.”“걔가 귀찮다면 내가 내보낼게.”강세헌이 말했다.송연아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진짜예요?”“가짜야.”그는 이불을 거두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옆에 있던 가운을 걸치고는 곧장 욕실로 향했다.송연아는 머리를 벅벅 긁고는 일어나서 옷을 입었다.욕실에서 찰랑거리는 물소리가 들려왔는데 강세헌은 샤워하고 있었다.욕실과 세면대가 분리되어 있었기에 그녀가 양치하고 세수를 하는 데 지장이 없었다.그녀는 먼저 정리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한혜숙은 아침 일찍 두 아이를 데리고 나갔다. 강세헌은 찬이를 위해 유치원에 갈 준비했고 이제 정상적으로 등교할 수 있었다.그리고 찬이는 외국어 학원도 하나 더 다녀야 했는데 매일 운전기사와 경호원들이 그들을 책임졌다.한혜숙은 윤이를 데리고 조기 교육 학원에 갔기에 점심이 되어야 돌아올 것이다.지금 오은화는 거의 심재경의 가정부나 다름없었다. 매일 그의 아이를 돌보고 있었으니 말이다.심재경이 혼자 아이를 돌보는 시간이 대부분이었지만 아이가 어리기 때문에 거의 24시간 동안 옆에서 챙겨주는 사람이 있어야 했다. 그래서 아이를 챙기는 사람은 적어도 둘이 필요했다.“사모님.”송연아가 아래층으로 내려가자마자 집사가 공손하게 물었다.“아침 준비할까요?”송연아가 대답을 하려던 그때, 심재경이 씩 웃으며 끼어들었다.“어제 배불리 먹은 거 아니었어?”송연아는 당장이라도 발로 그를 걷어차 버리고 싶었다.“선배 정말 미워요!”심재경은 그녀의 심기를 건드리는 데 성공했다 싶어 입꼬리를 씩 끌어올렸다.“나 오늘 집에 없을 거야. 내 딸을 데리고 이국적인 풍경을
강세헌은 그녀를 향해 씩 웃고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송연아는 젓가락을 내려놨다.“그럼 오늘 나가지 말아요.”지금 그녀와 강세헌의 관계는 아주 안정적이었지만 이런 상황이 있을 때면 어쩔 수 없이 타협해야 했다.눈앞의 남자는 한창나이에 부족한 곳 하나 없는 완벽한 남자였다.게다가 프랑스에는 미녀가 많았다. 게다가 큰 눈에 높은 콧대, 그리고 하얀 피부를 가진 미녀들 말이다.한혜숙의 불행한 결혼 생활을 목격했었기에 그녀는 식탁에서 일어나 강세헌의 자리 쪽으로 가서 그의 허벅지에 앉았다. 그리고 그의 목을 끌어안으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오늘 집에서 나랑 같이 있어요.”강세헌은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장난이야.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 당신이 같이 놀아달라고 해도 시간이 없어. 그런데 될수록 일찍 돌아올게.”송연아가 그를 보며 물었다.“정말 일하러 가는 거예요? 여자랑 데이트를 하는 거 아니고요?”강세헌은 웃으면서 그녀의 볼을 꼬집었다.“그렇게 자신이 없어?”송연아는 자신이 없는 게 아니라 강세헌의 기분을 풀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만약 그녀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강세헌은 또 그녀가 자신을 관심하지 않는다며 삐질 것이 당연했다.그래서 송연아는 강세헌에게 최소한의 관심을 보여야겠다고 생각했다.“네, 그럼 일찍 돌아와요. 상의할 일도 있으니까.”강세헌은 그녀더러 지금 말하라고 했지만 송연아는 주춤거렸다.방금 돌아왔는데 또 미국으로 돌아간다고 말하면 강세헌은 분명 기분이 언짢을 것이다.“이슬 언니 일 말이에요. 언니가...”그녀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강세헌은 자리에서 일어섰다.“참, 나 미팅이 하나 있어서.”분명 듣고 싶지 않은 게 분명했다. 아니면 마음속으로 이미 그녀가 무슨 말을 할지 짐작했기에 일부러 그녀의 말을 끊었을 것이다.송연아는 그의 손을 잡았다.이왕 말을 꺼냈던 김에 얘기를 다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언니가 많이 심각해요. 이대로 언니를 내버려둘 수는 없어요. 세헌 씨도 나 이해하죠?”
심재경은 머쓱해하지도 않고 그저 씩 웃었다.하지만 송연아는 기분이 언짢아 보였다.“왜 나 따라다녔어요?”“내가 언제 널 따라다녔어. 이 길이 다 네 거야. 네가 걸을 수 있으면 나도 걸을 수 있는 거지.”“딸이랑 같이 경치 구경하러 갔다면서요. 그런데 여기에 있을 시간이 어디 있어요? 그리고 선배가 운전했던 것 같은데.”심재경이 대답했다.“운전한 건 맞는데 너무 멀리 가진 않았어.”“...”송연아는 어이가 없었다.“도대체 뭘 하려는 거예요?”송연아는 그렇게 살갑지 않은 말투로 말했다.“나 뭘 하려고 하는 게 아니야. 그냥 산책이나 하려고.”송연아는 그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으면서 그와 거리를 두기 위해 성큼성큼 걸음을 내디뎠다.하지만 심재경은 눈치 없이 계속 그녀에게 달라붙었다.“혼자면 위험하잖아. 내가 같이 있어 줄게.”“괜찮아요.”송연아가 단호하게 거절했다.“계속 나 따라다니면 세헌 씨에게 이를 거예요.”심재경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아주 옛정은 하나도 생각하지 않는구나.”송연아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나 따라다녀서 내 기분 다 망쳐놓고, 그럼 내가 선배 고마워해야 해요?”“그런데 왜 너 혼자야? 세헌이는? 네가 돌아왔는데 세헌이가 출근했어? 돈이 중요해? 아니면 애인이 중요해?”심재경은 일부러 그녀를 도발했다.송연아는 그의 말 한마디로 절대 화가 날 사람은 아니었다.“일이 바빠도 저희 서로 사랑하는 건 변함이 없어요.”“...”심재경은 말문이 막혔다.‘됐어, 내가 괜한 걸 물어봤군.’“너 안 따라다닐게. 이제 가!”그가 돌아서서 다른 길로 걸어갔다.송연아는 그가 안이슬 때문에 자기를 따라온 걸 잘 알고 있었다.“설마 이슬 언니가 나랑 같이 돌아왔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심재경은 그 생각을 한 게 맞았다. 아니면 그는 송연아를 미행하지도 않았을 것이다.그가 일부러 딸을 데리고 나간다고 말한 건 사실 정말로 송연아와 강세헌 두 사람에게 단둘이 보낼 수 있는 시간을 주려는 이유였다. 하지만 그는
송연아는 갑자기 신경이 곤두섰다.그녀는 휴대폰을 꼭 쥐고 겉으로는 괜찮은 척 심재경에게 말했다.“방금 세헌 씨에게 전화가 왔어요, 회사로 찾아오라고요. 난 이만 가볼게요.”그녀는 길가에서 택시를 잡기 시작했다.심재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리를 떴다.그가 멀리 떠난 걸 확인하고서야 송연아가 물었다.“무슨 일이 생긴 거예요?”이영은 워낙 똑똑한 사람인지라 그녀에게 어떤 상황이 일어났는지 눈치채고는 더 물어보지도 않고 그녀의 물음에 대답했다.“네, 수술에 문제가 생겼어요.”송연아가 미간을 구겼다.“언니는 방금 수술했잖아요. 다음 수술까지 시간이 좀 남은 거 아니에요?”“안이슬 씨가 빨리 수술하고 싶다고 하셔서 수술 진행했습니다...”“의사가 동의했어요?”송연아가 물었다.이영이 대답했다.“너무 단호하셔서요. 저도 의사에게 물어봤는데 수술 진행 가능하다고 말씀하셨어요. 다만 수술 난이도가 높은데 주요하게 안이슬 씨의 상태 때문에 연속된 수술을 진행하면 안이슬 씨의 몸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하셨어요.”“그래서 수술을 진행했는데 문제가 생긴 거예요?”이영은 그녀가 화를 낼까 봐 두려운지 한참 주저하고는 겨우 한마디 뱉었다.“네.”송연아는 목소리를 높였다.“이슬 언니가 멍청한 짓을 하는 걸 막았어야죠.”이영은 반박하지도 않고 가만히 있었다.송연아도 이영은 안이슬을 말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그녀는 잠깐 감정을 추스르고는 진정하며 말했다.“제가 너무 급해서...”“괜찮아요. 저도 어차피 돈 받고 일하는 사람이잖아요. 사모님 화를 내시는 것도 충분히 이해해요.”이영이 공손하게 말했다.송연아는 그에게 화풀이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의사는 뭐라고 해요?”“최선을 다해 치료하고 있어요. 하지만 예상했던 결과가 안 나올 수도 있다고 하셨어요.”이영은 자책했는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송연아는 그의 탓을 하지 않았지만 그도 자신이 안이슬을 설득하지 못한 탓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했다.송연아
결혼식을 마친 후 방유정 아버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떠나기 전에 임지훈에게 회사를 완벽하게 인계하려고 회사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임지훈은 송연아와 강세헌 일행과 같이 먼저 프랑스로 돌아가서 그쪽 일을 마무리했다. 비록 임지훈이 회사에 있으면 강세헌은 보다 한가하게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가 떠난다고 해도 그냥 조금 더 바쁠 뿐이다. 어느 회사든 누가 떠나면 절대 안 되는 건 없다. 일주일의 시간 동안 임지훈은 프랑스에서의 일들을 모두 마치고 귀국해서 방씨 가문 회사에 들어갔다.임지훈도 국내에 집이 있었지만 방유정과 같이 방씨 가문에 들어갔다. 데릴사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유정 아버지의 병을 알고 방유정이 부모님과 많을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였다. 임지훈 역시 사위로서 그럴 의무가 있었다....반년 후, 방유정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방유정 어머니는 그 충격에 순식간에 많이 늙었다.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집안 분위기는 아주 저조했는데 방유정의 대부분 시간은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예전의 임 비서는 이제 임 대표가 되어 그의 능력으로 방씨 가문은 아주 관리가 잘 되었고 3개월 후 방유정 어머니의 상황도 많이 좋아졌다.방유정이 드디어 임신하게 되면서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간 일도 어느 정도 잊혀가고 있었다. 임지훈은 곧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기뻤고 방유정도 곧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방유정 어머니 역시 곧 외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정말로 모두 행복해할 만한 일이었다.방유정이 임신 6개월 때 그들은 프랑스로 갔는데 구애린은 남자아이를 낳았고 심재경의 딸은 이제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샛별이가 유일한 여자아이여서 모두가 예뻐했다. 샛별이는 아직 작고 어렸지만 찬이를 쫓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찬이는 샛별이 다리가 짧다고 계속 놀려줬으며 그게 재밌다고 샛별이는 키득키득 웃었다. 찬이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면 샛별이는 오빠라고 불렀는데 너무 귀여웠다.방유정이 말했다.“저도 딸을 낳고 싶어요.”구애린이 말했다.“그게
비록 손을 놓기 싫었지만, 방유정 아버지는 결국 방유정의 손을 임지훈에게 넘겨줬다.“앞으로 계속 사랑하며 살기를 바란다.”방유정도 아버지에게 말했다.“꼭 그렇게 할게요.”이어서 결혼식은 순서대로 일사천리로 피로연까지 모두 순리롭게 진행되었다.방유정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는데 딸이 그렇게도 바라던 결혼을 하니 너무 기뻤다. 그런데 결혼시키고 나니 또 잘 살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세상의 부모들은 다 그런가 보다.임지훈은 방유정을 데리고 강세헌이 있는 테이블로 가서는 비록 모두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소개했다. 모두 방유정을 다시 한번 소개받았는데 이번에는 심재경 친구의 사촌 동생이 아닌 임주훈의 아내로 말이다.구애린이 웃으며 말했다.“정말 너무너무 축하해요.”방유정도 웃으며 대답했다.“고마워요.”윤이도 어른들 따라 한마디 했다.“축하해요.”방유정은 윤이를 보며 말했다.“너무 귀여워요.”그녀가 손을 뻗어 윤이의 얼굴을 만지자, 윤이가 손을 내밀었다.“안아줘요.”송연아가 미간을 찌푸렸다.“윤이야, 안 돼.”방유정이 말했다.“괜찮아요.”그녀는 윤이를 안으며 말했다.“무겁지 않아요.”윤이는 그녀의 머리에 있는 금색 비녀를 보고 만지려고 했다. 방유정이 한복을 입고 있었기에 머리에 비녀를 하고 있었다. 방유정은 아주 시원하게 바로 비녀를 빼서 윤이에게 주었는데 송연아는 윤이를 제지하지 못해서 미안해했다.“이러면 안 돼요. 오늘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괜찮아요. 그냥 액세서리일 뿐이에요. 윤이가 좋아하니 놀게 해요.”방유정은 정말 성격이 좋았다. 역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만큼 성품이 좋았다. 가끔 조금 오만하긴 하지만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모두 그녀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송연아는 윤이를 안고 달래려고 했다.“윤이 착하지. 이건...”송연아는 윤이가 방유정을 어떻게 부르면 될지 생각했는데 방유정이 웃으며 말했다.“호칭일 뿐이니까 편
“지금 막 들었는데 유정 씨와 결혼한다면서요. 지금 방씨 가문에서 결혼식을 준비한다고 난리 났어요.”임지훈이 웃었다.“저 이래 봐도 능력 있는 남자예요. 여자들한테도 인기 많아요. 봐요, 결혼도 금방 하죠?”구애린이 말했다.“이제 우리 모두 짝이 있네요.”찬이도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지훈이 삼촌, 축하해요.”“고마워.”임지훈이 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심재경이 물었다.“그런데 데릴사위로 들어간다고 하던데요?”심재경의 말에 모두 놀라며 시선이 일제히 임지훈에게로 향했다. 확실히 놀랄만한 일이다. 임지훈의 조건에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돈도 있고 능력도 있어서 충분히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데 말이다.“하긴, 방씨 가문에 가장이 필요하긴 해요.”심재경이 그쪽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한마디 했다....임지훈의 결혼식으로 송연아와 강세헌도 프랑스로 돌아가는 일정을 늦췄다. 아무도 심재경의 결혼식을 보러 왔다가 임지의 결혼식까지 보게 될 줄을 생각을 못 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이건 임지훈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듯이 방유정과의 결혼은 정말로 찰나의 결정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그 역시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임지훈이 진원우에게 말했다.“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진원우가 말했다.“그런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방씨 가문은 돈도 많고 유정 씨도 예쁘고 그 정도면 만족해야지.”“만족해. 다만 너무 빠른 것 같아서 그래.”귀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싱글이었는데 이제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결혼식은 방씨 가문에서 모두 준비했는데 방유정 딸 하나이고 또 사위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결혼식은 아주 성대하게 치렀다. 방씨 가문의 친척들도 꽤 많이 참석해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비록 데릴사위라고 하지만, 임지훈 측은 심재경이 준비했는데 심재경 본인도 금방 결혼식을 치렀기 때문에 익숙한지라 아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었다....방유정은 정교한 메이크업을 하고 값진 웨딩드레스를 입었는
“잠도 잤는데 왜요? 모른 척하려고요?”방유정이 옷을 입더니 침대에서 꼼짝 안 하는 임지훈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왜요? 계속 그렇게 누워 있을 거예요?”임지훈이 말했다.“내 옷을 가져오지 않았잖아요. 나 입을 옷 없어요.”방유정은 그제야 임지훈이 옷이 없다는 걸 생각했다.“가져다 줄게요.”그녀는 곧바로 차에 가서 캐리어를 가지고 다시 올라갔다.“뭐 입을지는 알아서 찾아서 입고 내려와요. 아래층에서 기다릴게요.”방유정은 말을 마치고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임지훈은 침대에서 내려 결혼 얘기이니만큼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정장을 찾아서 입었다. 그가 정리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방유정은 부모님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의 부모는 그를 보자마자 더욱더 열정적이었다.임지훈이 건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저기...”“우리 딸 줄게요.”“아니에요. 지훈 씨가 저한테 시집 오는 거예요.”방유정이 정정했다.“...”“...”“...”방유정을 제외한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물었다.“유정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방유정은 자신이 여자이며 이 집안에 다른 후계자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아버지가 중병이고 자기는 회사를 관리할 능력도 없기에 어찌 보면 자기가 남편을 찾는다기보다는 방씨 가문의 회사를 경영할 사람을 찾는 거였다. 인제야 그녀는 부모가 조급해하는 의도를 이해했고 그녀 역시 가문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에 임지훈이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임지훈을 각별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그런 것들 때문이지 않겠는가.“유정 씨,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임지훈은 뼈대가 있는 남자로서 데릴사위 할 생각은 없었다.방유정이 말했다.“후회하면 안 돼요!”“왜 안 돼요? 유정 씨가 뭘 원하든지 저 모두 만족시켜 줄 수...”“제가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예요.”방유정이 외치자, 임지훈은 오히려 우스웠다. 한 여자가 나한테 시집오라고 하다니!“우리 유정이가 시집가는 거 맞아요
지금 그녀가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물으면 부모님은 더 속상해할 것 같았다.‘나 이제 어떻게 해야지? 어떻게 하면 좀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지? 결혼, 그래 결혼해야 해.’그녀는 자기가 결혼해야만 부모님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 상대도 지금 바로 방에 있지 않겠는가?‘남자 친구인 척을 해줬으니 이제 남편인 척해달라고 해야지. 진짜가 아니고 가짜라도 되니까 결혼하자고 해야겠어.’방유정은 진료 기록부를 다시 원래 위치에 넣고 비틀거리며 부모님 방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갔는데 임지훈이 아직 욕실에서 나오지 않아 침대 옆에 앉아서 기다렸다. 한참 지나자, 임지훈은 가운을 두르고 욕실에서 나왔는데 침대에 자기의 옷이 보이지 않아 방유정의 옆에 서서 물었다.“내 옷은요?”그는 방유정이 잊은 것 같아서 다시 말했다.“내 옷은 지금 당신 차 트렁크에 있어요.”방유정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지훈 씨, 우리 결혼해요.”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약을 잘못 먹었어요? 아니면 정신이 어떻게 됐어요?”“다 아니에요. 그냥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거칠었는데 임지훈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물었다.“울었어요? 누가 괴롭혔어요? 얘기해 봐요. 제가 가서 때려줄게...”임지훈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방유정이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임지훈은 갑작스러운 친밀감에 몸이 굳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게... 유정 씨...”그가 말하려고 할 때 방유정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의 손이 아래로 드리는 순간 몸에 걸친 유일한 가운마저 벗겨져서 흘러내렸다.“...”방유정은 워낙 임지훈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지금 행동이 충격에 의한 도발적인 행동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웃옷의 단추를 벗겨 가슴을 드러내고는 그의 가슴에 가까이하며 말했다.“저를 좀 봐봐요.”임지훈은 참을 수 없었는지 목젖을 굴렸는데 이름 모를 불길이 아랫배에서 솟아오르더니 순식간에 딱딱해졌다.“정말 후회하지 않겠어요?”임지훈도
방유정은 어머니가 자신의 어깨를 다독이자,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응원을 하시는 거였다.“화이팅!”방유정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지금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지?’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만 좋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갑자기 선 자리를 만들어주고 남자를 유혹하라고까지 하시다니?그녀는 어머니의 이마를 만지며 물었다.“엄마,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우리 이제 나가야 해.”방유정의 아버지는 기사가 이미 대기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집을 나갔고 방유정은 문 앞까지 그들을 배웅했다. 차가 떠나자, 그녀는 집으로 들어갔는데 어차피 임지훈이 자고 있었기에 지루할 것 같아서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그녀는 가만히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는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했다. 그런데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서 임지훈을 놀려주려고 그가 곤히 자는 방으로 올라가서는 화장대에서 화장품을 가져다가 침대 옆에 앉아 임지훈에게 예쁜 화장을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도 임지훈이 깨지 않자, 옆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눈이 아파 오니 옆에 기대서 잠이 들었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는 임지훈은 이미 깨어나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언, 언제 깼어요?”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방유정은 참을 수 없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훈의 얼굴은 정말로 오페라 가수 같았는데 어찌나 웃었는지 배가 아팠다. 임지훈은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물었다.“다 웃었어요?”방유정은 곧바로 웃음을 거두고 그의 손을 뿌리쳤다.“맘대로 제 몸에 손을 대지 말아요.”임지훈이 말했다.“유정 씨를 저에게 준다고 해도 거절이에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말했다.“뭐라고요? 저를 좋다고 하는 남자들이 줄을 서면 프랑스까지는 갈 거예요. 그런데 지훈 씨는 내가 싫다고요?”임지훈이 흠칫하자, 방유정이 그를 잡고 물었다.“지금 그
“방유정은 부모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알았어요. 하시고 싶은 대로 하세요.”“어서 지훈 씨 방으로 데려가.”방유정이 물었다.“어느 방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제야 깨달은 듯 말했다.“어머, 어떡해. 게스트룸은 아직 준비가 안 돼있어. 우선 네 방으로 데려가서 휴식하게 해.”방유정은 어머니의 말에 놀라며 말했다.“아빠, 엄마, 이 정도로 오픈 마인드였어요? 어떻게 제 방에 술 취한 남자를 데려가라고 하세요?”“네 말대로 취했는데 뭐 어때?”“술김에 어떤 짓도 한다는 말 몰라요?”방유정이 묻자, 그녀의 부모님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몰라.”방유정은 철저히 말문이 막혔다. 부모님과 임지훈이 정말로 모르는 사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임지훈이 그들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엄마 아빠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아무리 나를 결혼시키고 싶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만약 진짜로 무슨 일이 있으면 책임지라고 하고 바로 결혼시킬 거야.”임지훈은 그 말을 들으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바탕 뿜었다. 방유정의 부모님이 너무 열정적이어서 본인이 천당에 있는 것 같았는데 정말로 귀여운 부모님들이라고 생각했다.‘방유정은 전생에 은하계를 구했나 봐.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고 말이야.’방유정은 역겨워하며 말했다.“지훈 씨, 여기서 이러면 어떡해요. 화장실로 가야지.”“취했잖아.”방유정 어머니가 가정부를 불러 치우게 했다.“그만하고 불편해 보이는데 어서 방으로 데려다 쉬게 해.”방유정은 혼자서 임지훈을 옮길 수 없어서 가정부의 도움을 받아 함께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방에 도착하자, 그녀는 임지훈을 침대에 던졌는데 임지훈은 몸이 포근한 세계에 떨어진 듯 따뜻하고 향기로웠다.“무슨 향수를 써요?”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방유정이 말했다.“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잠이나 자요.”임지훈은 취한 건 사실이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말짱했다. 그는 눈을 감고 또 말했다
임지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요. 해명하지 않아도 화는 나지 않았을 건데, 굳이 해명하니 용서해 줄게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삐쭉거렸다.“그렇게 잘난 척하지 말아요. 그럼 좋은 말이 안 나가니까.”“...”임지훈이 할 말을 잃었다.그때 방유정의 어머니가 열정적으로 요리를 집어 그의 앞접시에 건넸다.“이건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요리인데 맛봐요.”임지훈이 집어서 입어 넣고 먹어보더니 말했다.“맛있습니다.”방유정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고 방유정 아버지는 그에게 술을 따랐다.“평소 주량이 어떻게 돼요?”임지훈이 웃으며 대답했다.“못합니다.”방유정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었다.“잘 마실 것 같은데 너무 겸손하시네요.”임지훈이 말했다.“아니에요. 아니에요.”방유정은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아빠, 지훈 씨는 일이 바빠서 내일 프랑스로 돌아가야 해요. 일을 망치면 안 되니까 술을 많이 주지 마세요.”방유정 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그래.”“네. 그러니까 한 잔씩만 해요.”말하면서 방유정은 술을 가져갔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너 정말 분위기를 깬다.”방유정이 말했다.“두 분의 건강을 생각해서예요.”방유정 어머니는 술병을 들고 임지훈에게 한 잔 따르고 또 남편에게도 한 잔 따랐다.“많이 마시게 되면 우리 집에 방이 많으니 그냥 휴식하면 돼요. 비행기는 내일 타면 되는데 급해 할 거 없잖아요.”방유정은 어머니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엄마, 이 사람을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집에서 잠을 자래요?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려고요?”“걱정하지 마. 조사해 봤는데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야.”“...”“...”방유정과 임지훈이 순간 놀랐다. 방유정은 평생 살면서 이렇게 굴욕적인 순간을 느낀 적이 없었다. 몇 년 동안 쌓아온 체면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만든 건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의 부모님이었다.방유정 아버지는 아내를 힐끗 쳐다
“지훈 씨는 취미가 뭐예요?”방유정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임지훈은 방유정의 물음에 잠시 당황하다가 자신의 생활을 떠올렸는데 일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휴가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에 심재경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계속 일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취미는 더구나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본인의 생활이 정말로 단조롭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옆에서 따뜻하게 말 한마디 건네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순간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내를 맞이해서 함께 서로 보살펴주며 지내고 싶었는데 그런 사람만 있다면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고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방유정을 바라봤는데 본인과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방유정은 아직도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라 다른 사람을 보살필 줄은 모를 것 같았다.“왜 그런 이상한 눈빛으로 봐요?”방유정의 물음에 임지훈이 되물었다.“어디가 이상한데요?”방유정은 좀 더 가까이 가서 그의 눈을 마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왜요? 설마 저를 사랑하게 된 건 아니죠?”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당신은 성격도 안 좋고 또 엄청 잘난체하는데 내가 왜요? 점심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제 들어가요.”시간을 보며 임지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굶었어요?”방유정이 그를 비웃었다.“식사 끝나면 저는 가도 되죠.”방유정은 순간 왠지 서운했다.“그렇게 가고 싶어요?”“여기는 제집이 아닌데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요.”방유정은 그를 향해 입을 삐쭉거리자, 임지훈은 의아해했다.“왜 그래요?”“내가 뭐요?”방유정은 짜증을 냈다.“유정 씨는 정말 변덕이 많네요. 그걸 고쳐요. 남자들은 변덕이 많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요.”방유정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집안으로 걸어들어갔다.임지훈은 고개를 돌려 못에 있는 물고기들을 한 번 더 보고는 뒤따라 들어갔다. 방유정이 집에 들어서자, 그녀의 어머니가 그들을 부르러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딸만 보였기에 그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