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을 생각하고 찬이가 말했다.“저 사격 배우고 싶어요.”“...”찬이가 계속 얘기했다.“저 텔레비전에서 봤어요. 거기서 사람들이 이렇게...”찬이는 사람들이 사격하던 자세를 따라 하며 송연아한테 말했다.“슈--과녁의 중심을 맞추는 게 너무 멋있어요!”찬이가 얘기할 때 동그란 두 눈은 빛이 났다.이로 보아 진심으로 좋아하는 듯했다. 남자아이니까!“찬이가 지금 배우려면 아직 어린 것 같은데 우리 1년 더 기다릴까?”찬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저는 작은 걸 들 수 있어요.”송연아가 말했다.“엄마가 알아봐 줄게. 너랑 비슷한 어린이가 배울 수 있는 수업이 있는지 찾아볼게.”말이 끝나고 송연아가 다시 얘기했다.“이리 와, 오늘 수업을 완성해야지.”찬이가 물었다.“사격은 안 배워요?”“엄마는 사격할 줄 몰라서 가르쳐줄 수가 없어. 좀 늦게 물어봐 줄게. 잘 알아보고 찬이가 다닐 수 있는데 찾을 게.”송연아는 침착하게 해석하면서 아들을 바라보았다.“찬이가 사격을 배운다고 해도 엄마가 가르쳐주는 걸 배우지 않아도 되는 건 아니야. 찬이가 노는 시간이 줄어들게 되는 거야.”찬이는 눈이 휘둥그레졌다.“나는 아직 이렇게 어린 나이인데 엄마는 내가 지쳐서 죽게 할 셈이에요?”송연아는 웃으며 말했다.“너는 윤이의 형이고 어엿한 어린이니까 당연히 어린이가 해야 할 일을 해야지.”“그렇지만 저는 아직 이만큼 밖에 자라지 않았는데요.”찬이는 자신과 송연아의 키를 대보고 있었다.송연아는 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찬이는 아직 어린이고 이제 다 크면 사나이가 되는 거야. 그때가 되면 엄마는 찬이가 보호해줘야 해.”송연아는 아들을 안아서 자신의 다리 위에 앉혔다.“찬이는 어른이 되고 싶어?”찬이는 바로 대답했다.“네.”송연아는 한숨을 쉬고는 그를 꼭 안았다.어렸을 때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지만, 어른이 되면 또 어린 시절의 천진난만함을 그리워하게 된다. 아는 게 적을수록 더 즐겁다. 어른이 되면 고민도 따라서 생기게 된다.“엄마
“사모님 저에요.”임지훈의 말에 송연아는 눈꼬리가 처지며 담담하게 대답했다.“위기가 잘 해결되어서 리조트로 돌아갈 수 있어요.”임지훈이 말했다. 민호준, 그 남몰래 나쁜 짓을 하는 놈은 이미 귀국시켜서 얼마 지나지 않으면 사형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의 손에 죽은 사람이 몇 명인데 틀림없이 사형을 받을 것이다.송연아는 알겠다고 하고는 강세헌의 상황을 물었다. “의사가 언제 치료가 끝날 수 있을지 얘기했어요?”그쪽에서는 잠시 침묵하더니 한참 지나 대답했다.“의사 말로는 빨리 끝난다고 했어요.”송연아는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임지훈이 잠시 말이 없었을 때는 강세헌한테 어떻게 대답할지 묻고 있었을 것이다.“임 비서님, 세헌 씨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절대 나한테 숨기면 안 돼요, 알겠죠?”송연아의 말투에는 은은한 위협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임지훈은 자신이 중간에 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정말 어렵다고 생각했다. 강세헌 앞에서는 함부로 얘기하지 못하고 심지어 한마디라도 더 말하지 못했다. 하지만 송연아가 묻는 말에는 또 잘 대답해야 했다. 만약 조금이라도 방심하여 말을 잘못하면 강세헌으로부터 오는 압박을 견뎌야 했다. 임지훈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럴 때는 진원우가 와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대신에 해줬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다.진원우의 부상이 그렇게 엄중한데 아마 한동안은 요양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강세헌한테는 임지훈 한 사람밖에 없게 되는데 생각만 해도 너무 부담스러웠다. 임지훈이 웃으며 말했다.“제가 감히 어떻게 사모님한테 뭘 숨기겠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강 대표님 상태 좋아요.”송연아가 물었다.“세헌 씨는요?”“검사받으러 갔어요.”이 점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방금 의사가 와서 강세헌을 데리고 진료실로 갔다.송연아가 한마디 당부했다.“잘 보살펴 주세요.”강세헌의 곁에는 임지훈 한 사람뿐이다. 송연아는 임지훈의 개인 능력이 진원우보다
여자 목소리?이 여자는 누구지?송연아는 떠보듯 말했다.“심재경 씨 찾아요.”“아, 지금 씻고 있어요...”“...”“알겠어요. 다 씻으면 저한테 전화 달라고 전해주세요.”송연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쪽에서는 말을 끊었다.“그것에 대해서는 제가 보기에 시간이 없을 것 같아요.”송연아는 미간이 세게 찌푸려졌다. ‘이건 나랑 재경 선배가 무슨 관계가 있다고 생각해서 주도권을 잡으려는 거잖아?’“저는 재경 선배의 여자친구가 아니고 그냥 단순한 친구예요. 재경 선배한테 볼 일이 있는 것뿐입니다.”송연아는 해명했다.“전화 달라고 해주세요.”말하고는 바로 전화를 끊었다. 송연아는 소파에 앉아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심재경이 상처에서 헤어나오는 방법이 밖에 나가서 방탕하게 노는 거였어?윤이가 송연아의 머리카락을 잡고 있어 송연아는 아들을 토닥이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윤이와 놀아주는 데 집중하였다.윤이는 이제 점점 더 안정하게 잘 걸었다. 처음에는 자주 넘어지고 하더니.“윤이 최고야.”송연아는 아들을 안고 그의 볼에 뽀뽀했다. 금방 밥을 다 먹은 찬이가 와서 이 광경을 보더니 눈을 깜빡이며 속으로 윤이가 지금이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처럼 이렇게 컸을 때는 공부를 해야 하는 운명을 벗어나지 못하니까 말이다.찬이는 털썩 소파에 앉았다. 송연아는 찬이를 보며 말했다.“밥 먹는데도 힘들어?”찬이가 말했다.“공부하는 게 힘들어요.”“다 잘 배웠어?”송연아가 묻자 찬이가 조금 자랑스러운 말투로 말했다.“어려워지고 아는데 못 배울 게 뭐가 있어요?”쯧쯧... 이 말투.송연아는 찬이를 테스트해 보려고 했다.“산울림 외울 수 있어?”찬이는 바로 외우기 시작했다.“까치가 울어서 산울림, 아무도 못들은 산울림. 까치가 들었다 산울림, 저 혼자 들었다 산울림.”송연아는 계속해서 물었다.“지구.”“지구는 하나의 꽃병. 꽃 한 송이 꽂으면 밝아오고 물 한 모금 뿌려주면 더욱 밝아오지만, 꽃 한 송이 시들면 금방 어두워진다. 지구는
문을 열자 심재경이 살금살금 방으로 들어가려는 게 보였다. 송연아가 그를 불러세웠다.“어디 갔다와요?”심재경은 몸을 펴면서 뒤돌아 웃었다.“아무것도 아니야.”송연아가 물었다.“제가 전화했었다고 얘기하지 않던가요?”심재경의 얼굴에는 얼핏 부자연스러운 표정이 비췄고 궁색한 것 같기도 했다.“나한테 전화했었어?”심재경이 물었다. 송연아는 아주 확신에 차게 대답했다.“네. 전화했었는데 어떤 여자가 받더라고요. 선배가 씻고 있다고 얘기해서 제가 씻고 나오면 저한테 전화를 주라고 전해달라고 했는데 얘기 안 하던가요?”심재경이 웃었다.“나한테 얘기 안 했어.”송연아가 물었다.“진심이에요?”심재경이 다가와서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뭘 말하는 거야?”“전화 받은 여자요.”송연아의 말에 심재경은 개의치 않는듯했다.“그냥 여자 하나일 뿐인데 진심이고 뭐고 할 게 뭐 있어. 그냥 육체적인 수요일뿐이야.”“...”송연아는 얼굴을 찌푸렸다.“자포자기하는 거예요?”심재경은 진지하게 말했다.“아니. 내가 무슨 속세를 초월한 신선도 아니고. 내가 여자를 찾아서 하룻밤을 보내는 게 그렇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인가?”송연아는 확실히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아무 여자나 찾아서 그냥 잔다고?’“남자들은 다 그래요?”송연아의 물음에 심재경이 말했다.“다 비슷해!”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너희 강세헌은 아닐 거야. 다른 남자들이랑 다르게 잘 참거든.”송연아는 콧방귀를 꼈다.“끝에 붙은 한마디는 선배가 세헌 씨를 위해 변명을 하거나 뭘 감춰주는 것 같네요.”심재경이 말했다.“너는 세헌이랑 함께한 시간이 짧지도 않은데 걔가 행실이 어떤지 모르겠어?”송연아는 이렇게 말할 뿐이지 마음속으로는 강세헌에 대해 믿음이 있었다.“선배도 본인이 알아서 하세요!”송연아는 말하고는 일어서서 방으로 가려고 했다. 시간이 늦었으니 송연아도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심재경이 그녀를 붙잡았다.“전화했다며 무슨 일인데?”송연아는 이마를 치며 이 일을 어떻게 잊
“찬이는 아직 어리니까 먼저 접촉해보도록 하는 게 좋습니다.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는 단번에 보아낼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아주 흥미가 있어 보입니다.”이영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송연아를 쳐다보지 못하는 것 같았고 시선을 마주치지도 못했다. 송연아는 아들을 보면서 웃으며 말했다.“사실 이영 씨가 무술 같은 걸 가르쳐줬으면 해요.”찬이가 싸울 때 쓰라고 하는 게 아니라 커서 호신용으로 쓰게 하고 싶었다. 송연아는 마음속으로 강세헌이 장차 회사를 찬이에게 물려주리라 생각하고 있다. 그녀는 강세헌이 이번에 사람한테 당해서 하마터면 큰 사고가 날 뻔했다는 것을 보고 이후에 아들도 이 길에 들어서게 될 때 찬이가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으면 했다.이영이 말했다.“그럴게요.”송연아는 웃으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마침 한혜숙한테서 윤이를 받아 안았을 때 핸드폰이 울려서 화면을 보니 안이슬한테서 온 전화였다. 송연아는 통화버튼을 눌렀다. 그쪽에서는 안이슬의 쉰 목소리가 들려왔다.“연아야.”송연아는 안이슬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아 미간을 찌푸렸다.“왜 그래요? 울었어요? 명섭 씨랑 싸웠어요?”“아니.”송연아가 물었다.“그럼...”심재경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송연아는 방으로 들어갔다. 심재경은 송연아의 행동을 보고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왜 그러는 거지?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지?’“어머님, 연아 왜 저래요?”“아닌데, 아무 일도 없어 보이는데?”한혜숙은 송연아가 수상해 보이는 점이 없다고 느꼈다. 심재경은 송연아가 자기를 피한다는 것을 선명하게 느꼈다. 하지만 심재경도 빠르게 알아차렸다. 송연아가 누구의 전화를 받으면 이렇게 자신을 피하겠는지, 당연히 안이슬의 전화였다. 사실 송연아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양명섭의 목에 있는 붉은 자국을 보는 순간, 심재경은 마음을 완전히 접었었다. 자신과 안이슬은 이번 생에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이다.만약 어느 날 안이슬이 돌아오는 날이 있더라도 심재경은 그녀를 받아주지 않
핸드폰을 놓고도 송연아의 마음은 뒤숭숭했다. 송연아는 빨리 가서 안이슬한테 자초지종을 들어야 했다. 양명섭이 설마 아닐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어떤 엄중한 일이 생기면 안이슬이 자신의 아이도 키울 수 없게 되겠는가.송연아가 문을 열자 심재경이 문 앞에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손을 들고 노크를 하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문이 갑자기 열려서 그도 놀랐다가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방금 이슬이랑 통화했어?”송연아가 대답하기도 전에 또 말했다.“앞으로 연락할 때 나 피하지 않아도 돼.”심재경은 어깨를 으쓱했다.“나는 상관없어졌어. 이 세상에 여자가 이슬이 하나뿐인 것도 아니고.”송연아는 입술을 깨물며 물었다.“다 놓아버려서 아무 여자나 다 선배 침대에 오를 수 있는 거예요?”“...”그는 송연아가 뭘 말하는지 알고 있다. 사실 부인하지는 않는다.“나는 이런 게 아주 좋다고 생각해. 몸은 힘을 써야 하지만 마음은 주지 않으니 상처받을 일도 없고, 얼마나 좋아?”송연아가 말했다.“그래도 선배 이미지 좀 신경 쓰세요. 아무래도 아빠가 되었다는 사람이, 선배 딸이 만약...”“그 얘기는 안 하면 안 돼?”송연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심재경이 말을 끊었다. 송연아는 미간을 찌푸렸다.“아이...”“안이슬의 아이야.”심재경은 또다시 송연아의 말을 끊었다.“...”송연아가 심재경을 보는 눈빛은 그를 뚫어버릴 듯했다.“제 얘기 다 듣고 얘기하면 안 돼요?”심재경이 말했다.“안이슬이랑 연관되는 일이라면 나한테 말하지 마.”“그래요. 선배가 얘기했어요. 절대 후회하지 말아요.”송연아는 성큼성큼 밖으로 걸어 나가며 이영을 불렀다.심재경도 따라왔다.“알겠어. 입 다물게. 무슨 일인데, 얘기해!”송연아는 그를 보지도 않고 걸음을 멈추지도 않았다.“이슬 언니가 얘기하길 명섭 씨한테 일이 생겼대요. 그래서 나더러 아이를 데리고 와서 선배한테 줘도 된다고 했어요.”심재경은 넋이 나갔다. 자신이 마치 환청이라도 들리는 것 같았다. 그는
송연아는 심재경과 제일 빠른 항공편을 타고 제일 이른 시간에 우신 시에 도착했다. 안이슬도 아이의 물건을 다 정리해서 그들이 도착하면 바로 데리고 갈 수 있도록 준비해두었다. 송연아와 심재경은 비행기를 11시간 타고 내려서 또 차를 타고 안이슬이 사는 곳으로 갔다. 안이슬이 마중 나왔다...그녀는 아이를 안고 있었는데 송연아는 단번에 그녀가 살이 빠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제가 안을게요.”송연아는 먼저 아이를 받아 안으려 하자 안이슬이 말했다.“너도 힘들 텐데 먼저 들어가자. 아이는 내가 안고 있으면 돼.”안이슬은 먼저 뒤돌았고 송연아는 고개를 돌려 심재경을 바라보았다. 심재경은 안이슬의 뒷모습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입을 꾹 다물었고 눈동자가 어두웠다. 송연아가 작은 소리로 물었다.“무슨 생각 해요?”심재경의 목젖이 아래위로 움직였다.“아무 생각도 안 해.”사실 아니다. 마음이 전혀 평온하지 못했다. 그는 마음을 접고 진심으로 그녀의 행복을 빌어주려고 했다. 왜 이 행복에 또 뜻밖의 일이 생겨서 이미 상처투성이인 이 여자가 다시 상처를 받게 하는지 모르겠다.“양명섭이 바람을 피웠어, 아니면 임무를 수행하다가 죽었어?”심재경이 물었다. 그는 양명섭한테 아주 큰 일이 생겼기에 안이슬이 이런 결정을 했다고 생각했다. 안이슬은 발걸음을 멈추고 몸도 따라서 휘청했지만 아무 대답 없이 다시 앞으로 걸어갔다. 송연아는 심재경의 팔을 잡아당기며 말하지 말라는 눈치를 줬다.심재경은 송연아의 말을 듣지 않았다.“만약 전자라면 내가 그 사람 죽여버릴 거야.”송연아는 미간이 찌푸려졌다.“재경 선배, 너무 흥분했어요.”“나 흥분하지 않았어.”지금 심재경의 마음속에는 정말 이렇게 생각했다. 양명섭은 안이슬을 잘 보살피겠다고 약속했었다.그런데 안이슬의 지금 모습을 보고 어떻게 화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안이슬은 여전히 대답 없이 그들을 데리고 그녀와 양명섭이 사는 단지로 들어섰다. 단지는 조금 낡았지만 잘 정리되어 있었다. 그래도 지금의
송연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목소리를 깔고 얘기했다.“이슬 언니가 말하지 않는 것은 다 이유가 있을 거예요...”“무슨 이유, 본인이 사람을 잘못 봐서 인정하기 싫고 말하기도 싫고 사람들이 본인이 남자 보는 눈이 잘못됐다는 것을 아는 게 싫어서 그러는 거.”심재경이 화가 난 이유는 안이슬이 아무 말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안이슬이 양명섭이 잘못했다고 한마디만 하면 바로 가서 사람을 칠 생각이었다. 안이슬을 위해 화풀이를 하는 거다. 연인이 될 수 없다면 가족이 되어 안이슬의 뒷배가 되어주는 이 점은 그래도 해줄 수 있다.송연아는 안이슬을 보러 갔는데 그녀는 아이를 안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송연아는 안이슬이 아이에 대한 애틋함을 느낄 수 있었다. 정말 어쩔 수 없지 않은 이상 절대 자신의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키워달라고 보내지 않을 것이다. 물론 심재경은 남이 아니지만 열 달을 품어서 하루아침에 낳은 사람은 안이슬이다. 그녀는 아이와 제일 가까운 사람이다. 송연아 본인도 엄마이기에 그 감정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송연아는 일어서며 말했다.“배고파요. 제가 나가서 먹을 것 좀 사 올게요.”송연아는 안이슬이 아이를 자신에게 준다는 말이 사실은 심재경한테 보낸다는 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저 직접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아마 그녀는 심재경에게 부탁할 말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송연아는 그들에게 자리를 비켜주었다. 송연아는 집을 나서고 문을 닫았다. 심재경은 예전이라면 안이슬과 둘만 있기를 바랄 것이지만 지금 그들 사이의 유일한 연결고리는 아이일 뿐이다. 아무리 깊은 관계라도 이미 다 소모돼버리고 말았다.송연아가 있을 때는 잘만 말하더니 송연아가 없고 심재경과 안이슬만 남으니까 그는 무슨 말을 더 해야 할지 몰랐다. 공기는 순식간에 조용해졌다.심재경은 앉아있지 못하고 베란다에 가 서서 더는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다. 안이슬도 여전히 입을 열지 않아 분위기는 그렇게 얼어붙었다. 보아가 울어서야 심재경은 안이슬의 곁으로 가서 고개를 숙여 아이를
결혼식을 마친 후 방유정 아버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떠나기 전에 임지훈에게 회사를 완벽하게 인계하려고 회사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임지훈은 송연아와 강세헌 일행과 같이 먼저 프랑스로 돌아가서 그쪽 일을 마무리했다. 비록 임지훈이 회사에 있으면 강세헌은 보다 한가하게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가 떠난다고 해도 그냥 조금 더 바쁠 뿐이다. 어느 회사든 누가 떠나면 절대 안 되는 건 없다. 일주일의 시간 동안 임지훈은 프랑스에서의 일들을 모두 마치고 귀국해서 방씨 가문 회사에 들어갔다.임지훈도 국내에 집이 있었지만 방유정과 같이 방씨 가문에 들어갔다. 데릴사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유정 아버지의 병을 알고 방유정이 부모님과 많을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였다. 임지훈 역시 사위로서 그럴 의무가 있었다....반년 후, 방유정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방유정 어머니는 그 충격에 순식간에 많이 늙었다.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집안 분위기는 아주 저조했는데 방유정의 대부분 시간은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예전의 임 비서는 이제 임 대표가 되어 그의 능력으로 방씨 가문은 아주 관리가 잘 되었고 3개월 후 방유정 어머니의 상황도 많이 좋아졌다.방유정이 드디어 임신하게 되면서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간 일도 어느 정도 잊혀가고 있었다. 임지훈은 곧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기뻤고 방유정도 곧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방유정 어머니 역시 곧 외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정말로 모두 행복해할 만한 일이었다.방유정이 임신 6개월 때 그들은 프랑스로 갔는데 구애린은 남자아이를 낳았고 심재경의 딸은 이제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샛별이가 유일한 여자아이여서 모두가 예뻐했다. 샛별이는 아직 작고 어렸지만 찬이를 쫓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찬이는 샛별이 다리가 짧다고 계속 놀려줬으며 그게 재밌다고 샛별이는 키득키득 웃었다. 찬이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면 샛별이는 오빠라고 불렀는데 너무 귀여웠다.방유정이 말했다.“저도 딸을 낳고 싶어요.”구애린이 말했다.“그게
비록 손을 놓기 싫었지만, 방유정 아버지는 결국 방유정의 손을 임지훈에게 넘겨줬다.“앞으로 계속 사랑하며 살기를 바란다.”방유정도 아버지에게 말했다.“꼭 그렇게 할게요.”이어서 결혼식은 순서대로 일사천리로 피로연까지 모두 순리롭게 진행되었다.방유정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는데 딸이 그렇게도 바라던 결혼을 하니 너무 기뻤다. 그런데 결혼시키고 나니 또 잘 살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세상의 부모들은 다 그런가 보다.임지훈은 방유정을 데리고 강세헌이 있는 테이블로 가서는 비록 모두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소개했다. 모두 방유정을 다시 한번 소개받았는데 이번에는 심재경 친구의 사촌 동생이 아닌 임주훈의 아내로 말이다.구애린이 웃으며 말했다.“정말 너무너무 축하해요.”방유정도 웃으며 대답했다.“고마워요.”윤이도 어른들 따라 한마디 했다.“축하해요.”방유정은 윤이를 보며 말했다.“너무 귀여워요.”그녀가 손을 뻗어 윤이의 얼굴을 만지자, 윤이가 손을 내밀었다.“안아줘요.”송연아가 미간을 찌푸렸다.“윤이야, 안 돼.”방유정이 말했다.“괜찮아요.”그녀는 윤이를 안으며 말했다.“무겁지 않아요.”윤이는 그녀의 머리에 있는 금색 비녀를 보고 만지려고 했다. 방유정이 한복을 입고 있었기에 머리에 비녀를 하고 있었다. 방유정은 아주 시원하게 바로 비녀를 빼서 윤이에게 주었는데 송연아는 윤이를 제지하지 못해서 미안해했다.“이러면 안 돼요. 오늘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괜찮아요. 그냥 액세서리일 뿐이에요. 윤이가 좋아하니 놀게 해요.”방유정은 정말 성격이 좋았다. 역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만큼 성품이 좋았다. 가끔 조금 오만하긴 하지만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모두 그녀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송연아는 윤이를 안고 달래려고 했다.“윤이 착하지. 이건...”송연아는 윤이가 방유정을 어떻게 부르면 될지 생각했는데 방유정이 웃으며 말했다.“호칭일 뿐이니까 편
“지금 막 들었는데 유정 씨와 결혼한다면서요. 지금 방씨 가문에서 결혼식을 준비한다고 난리 났어요.”임지훈이 웃었다.“저 이래 봐도 능력 있는 남자예요. 여자들한테도 인기 많아요. 봐요, 결혼도 금방 하죠?”구애린이 말했다.“이제 우리 모두 짝이 있네요.”찬이도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지훈이 삼촌, 축하해요.”“고마워.”임지훈이 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심재경이 물었다.“그런데 데릴사위로 들어간다고 하던데요?”심재경의 말에 모두 놀라며 시선이 일제히 임지훈에게로 향했다. 확실히 놀랄만한 일이다. 임지훈의 조건에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돈도 있고 능력도 있어서 충분히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데 말이다.“하긴, 방씨 가문에 가장이 필요하긴 해요.”심재경이 그쪽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한마디 했다....임지훈의 결혼식으로 송연아와 강세헌도 프랑스로 돌아가는 일정을 늦췄다. 아무도 심재경의 결혼식을 보러 왔다가 임지의 결혼식까지 보게 될 줄을 생각을 못 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이건 임지훈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듯이 방유정과의 결혼은 정말로 찰나의 결정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그 역시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임지훈이 진원우에게 말했다.“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진원우가 말했다.“그런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방씨 가문은 돈도 많고 유정 씨도 예쁘고 그 정도면 만족해야지.”“만족해. 다만 너무 빠른 것 같아서 그래.”귀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싱글이었는데 이제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결혼식은 방씨 가문에서 모두 준비했는데 방유정 딸 하나이고 또 사위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결혼식은 아주 성대하게 치렀다. 방씨 가문의 친척들도 꽤 많이 참석해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비록 데릴사위라고 하지만, 임지훈 측은 심재경이 준비했는데 심재경 본인도 금방 결혼식을 치렀기 때문에 익숙한지라 아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었다....방유정은 정교한 메이크업을 하고 값진 웨딩드레스를 입었는
“잠도 잤는데 왜요? 모른 척하려고요?”방유정이 옷을 입더니 침대에서 꼼짝 안 하는 임지훈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왜요? 계속 그렇게 누워 있을 거예요?”임지훈이 말했다.“내 옷을 가져오지 않았잖아요. 나 입을 옷 없어요.”방유정은 그제야 임지훈이 옷이 없다는 걸 생각했다.“가져다 줄게요.”그녀는 곧바로 차에 가서 캐리어를 가지고 다시 올라갔다.“뭐 입을지는 알아서 찾아서 입고 내려와요. 아래층에서 기다릴게요.”방유정은 말을 마치고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임지훈은 침대에서 내려 결혼 얘기이니만큼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정장을 찾아서 입었다. 그가 정리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방유정은 부모님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의 부모는 그를 보자마자 더욱더 열정적이었다.임지훈이 건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저기...”“우리 딸 줄게요.”“아니에요. 지훈 씨가 저한테 시집 오는 거예요.”방유정이 정정했다.“...”“...”“...”방유정을 제외한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물었다.“유정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방유정은 자신이 여자이며 이 집안에 다른 후계자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아버지가 중병이고 자기는 회사를 관리할 능력도 없기에 어찌 보면 자기가 남편을 찾는다기보다는 방씨 가문의 회사를 경영할 사람을 찾는 거였다. 인제야 그녀는 부모가 조급해하는 의도를 이해했고 그녀 역시 가문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에 임지훈이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임지훈을 각별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그런 것들 때문이지 않겠는가.“유정 씨,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임지훈은 뼈대가 있는 남자로서 데릴사위 할 생각은 없었다.방유정이 말했다.“후회하면 안 돼요!”“왜 안 돼요? 유정 씨가 뭘 원하든지 저 모두 만족시켜 줄 수...”“제가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예요.”방유정이 외치자, 임지훈은 오히려 우스웠다. 한 여자가 나한테 시집오라고 하다니!“우리 유정이가 시집가는 거 맞아요
지금 그녀가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물으면 부모님은 더 속상해할 것 같았다.‘나 이제 어떻게 해야지? 어떻게 하면 좀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지? 결혼, 그래 결혼해야 해.’그녀는 자기가 결혼해야만 부모님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 상대도 지금 바로 방에 있지 않겠는가?‘남자 친구인 척을 해줬으니 이제 남편인 척해달라고 해야지. 진짜가 아니고 가짜라도 되니까 결혼하자고 해야겠어.’방유정은 진료 기록부를 다시 원래 위치에 넣고 비틀거리며 부모님 방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갔는데 임지훈이 아직 욕실에서 나오지 않아 침대 옆에 앉아서 기다렸다. 한참 지나자, 임지훈은 가운을 두르고 욕실에서 나왔는데 침대에 자기의 옷이 보이지 않아 방유정의 옆에 서서 물었다.“내 옷은요?”그는 방유정이 잊은 것 같아서 다시 말했다.“내 옷은 지금 당신 차 트렁크에 있어요.”방유정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지훈 씨, 우리 결혼해요.”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약을 잘못 먹었어요? 아니면 정신이 어떻게 됐어요?”“다 아니에요. 그냥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거칠었는데 임지훈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물었다.“울었어요? 누가 괴롭혔어요? 얘기해 봐요. 제가 가서 때려줄게...”임지훈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방유정이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임지훈은 갑작스러운 친밀감에 몸이 굳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게... 유정 씨...”그가 말하려고 할 때 방유정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의 손이 아래로 드리는 순간 몸에 걸친 유일한 가운마저 벗겨져서 흘러내렸다.“...”방유정은 워낙 임지훈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지금 행동이 충격에 의한 도발적인 행동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웃옷의 단추를 벗겨 가슴을 드러내고는 그의 가슴에 가까이하며 말했다.“저를 좀 봐봐요.”임지훈은 참을 수 없었는지 목젖을 굴렸는데 이름 모를 불길이 아랫배에서 솟아오르더니 순식간에 딱딱해졌다.“정말 후회하지 않겠어요?”임지훈도
방유정은 어머니가 자신의 어깨를 다독이자,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응원을 하시는 거였다.“화이팅!”방유정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지금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지?’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만 좋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갑자기 선 자리를 만들어주고 남자를 유혹하라고까지 하시다니?그녀는 어머니의 이마를 만지며 물었다.“엄마,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우리 이제 나가야 해.”방유정의 아버지는 기사가 이미 대기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집을 나갔고 방유정은 문 앞까지 그들을 배웅했다. 차가 떠나자, 그녀는 집으로 들어갔는데 어차피 임지훈이 자고 있었기에 지루할 것 같아서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그녀는 가만히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는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했다. 그런데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서 임지훈을 놀려주려고 그가 곤히 자는 방으로 올라가서는 화장대에서 화장품을 가져다가 침대 옆에 앉아 임지훈에게 예쁜 화장을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도 임지훈이 깨지 않자, 옆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눈이 아파 오니 옆에 기대서 잠이 들었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는 임지훈은 이미 깨어나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언, 언제 깼어요?”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방유정은 참을 수 없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훈의 얼굴은 정말로 오페라 가수 같았는데 어찌나 웃었는지 배가 아팠다. 임지훈은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물었다.“다 웃었어요?”방유정은 곧바로 웃음을 거두고 그의 손을 뿌리쳤다.“맘대로 제 몸에 손을 대지 말아요.”임지훈이 말했다.“유정 씨를 저에게 준다고 해도 거절이에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말했다.“뭐라고요? 저를 좋다고 하는 남자들이 줄을 서면 프랑스까지는 갈 거예요. 그런데 지훈 씨는 내가 싫다고요?”임지훈이 흠칫하자, 방유정이 그를 잡고 물었다.“지금 그
“방유정은 부모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알았어요. 하시고 싶은 대로 하세요.”“어서 지훈 씨 방으로 데려가.”방유정이 물었다.“어느 방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제야 깨달은 듯 말했다.“어머, 어떡해. 게스트룸은 아직 준비가 안 돼있어. 우선 네 방으로 데려가서 휴식하게 해.”방유정은 어머니의 말에 놀라며 말했다.“아빠, 엄마, 이 정도로 오픈 마인드였어요? 어떻게 제 방에 술 취한 남자를 데려가라고 하세요?”“네 말대로 취했는데 뭐 어때?”“술김에 어떤 짓도 한다는 말 몰라요?”방유정이 묻자, 그녀의 부모님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몰라.”방유정은 철저히 말문이 막혔다. 부모님과 임지훈이 정말로 모르는 사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임지훈이 그들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엄마 아빠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아무리 나를 결혼시키고 싶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만약 진짜로 무슨 일이 있으면 책임지라고 하고 바로 결혼시킬 거야.”임지훈은 그 말을 들으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바탕 뿜었다. 방유정의 부모님이 너무 열정적이어서 본인이 천당에 있는 것 같았는데 정말로 귀여운 부모님들이라고 생각했다.‘방유정은 전생에 은하계를 구했나 봐.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고 말이야.’방유정은 역겨워하며 말했다.“지훈 씨, 여기서 이러면 어떡해요. 화장실로 가야지.”“취했잖아.”방유정 어머니가 가정부를 불러 치우게 했다.“그만하고 불편해 보이는데 어서 방으로 데려다 쉬게 해.”방유정은 혼자서 임지훈을 옮길 수 없어서 가정부의 도움을 받아 함께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방에 도착하자, 그녀는 임지훈을 침대에 던졌는데 임지훈은 몸이 포근한 세계에 떨어진 듯 따뜻하고 향기로웠다.“무슨 향수를 써요?”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방유정이 말했다.“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잠이나 자요.”임지훈은 취한 건 사실이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말짱했다. 그는 눈을 감고 또 말했다
임지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요. 해명하지 않아도 화는 나지 않았을 건데, 굳이 해명하니 용서해 줄게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삐쭉거렸다.“그렇게 잘난 척하지 말아요. 그럼 좋은 말이 안 나가니까.”“...”임지훈이 할 말을 잃었다.그때 방유정의 어머니가 열정적으로 요리를 집어 그의 앞접시에 건넸다.“이건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요리인데 맛봐요.”임지훈이 집어서 입어 넣고 먹어보더니 말했다.“맛있습니다.”방유정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고 방유정 아버지는 그에게 술을 따랐다.“평소 주량이 어떻게 돼요?”임지훈이 웃으며 대답했다.“못합니다.”방유정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었다.“잘 마실 것 같은데 너무 겸손하시네요.”임지훈이 말했다.“아니에요. 아니에요.”방유정은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아빠, 지훈 씨는 일이 바빠서 내일 프랑스로 돌아가야 해요. 일을 망치면 안 되니까 술을 많이 주지 마세요.”방유정 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그래.”“네. 그러니까 한 잔씩만 해요.”말하면서 방유정은 술을 가져갔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너 정말 분위기를 깬다.”방유정이 말했다.“두 분의 건강을 생각해서예요.”방유정 어머니는 술병을 들고 임지훈에게 한 잔 따르고 또 남편에게도 한 잔 따랐다.“많이 마시게 되면 우리 집에 방이 많으니 그냥 휴식하면 돼요. 비행기는 내일 타면 되는데 급해 할 거 없잖아요.”방유정은 어머니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엄마, 이 사람을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집에서 잠을 자래요?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려고요?”“걱정하지 마. 조사해 봤는데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야.”“...”“...”방유정과 임지훈이 순간 놀랐다. 방유정은 평생 살면서 이렇게 굴욕적인 순간을 느낀 적이 없었다. 몇 년 동안 쌓아온 체면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만든 건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의 부모님이었다.방유정 아버지는 아내를 힐끗 쳐다
“지훈 씨는 취미가 뭐예요?”방유정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임지훈은 방유정의 물음에 잠시 당황하다가 자신의 생활을 떠올렸는데 일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휴가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에 심재경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계속 일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취미는 더구나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본인의 생활이 정말로 단조롭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옆에서 따뜻하게 말 한마디 건네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순간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내를 맞이해서 함께 서로 보살펴주며 지내고 싶었는데 그런 사람만 있다면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고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방유정을 바라봤는데 본인과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방유정은 아직도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라 다른 사람을 보살필 줄은 모를 것 같았다.“왜 그런 이상한 눈빛으로 봐요?”방유정의 물음에 임지훈이 되물었다.“어디가 이상한데요?”방유정은 좀 더 가까이 가서 그의 눈을 마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왜요? 설마 저를 사랑하게 된 건 아니죠?”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당신은 성격도 안 좋고 또 엄청 잘난체하는데 내가 왜요? 점심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제 들어가요.”시간을 보며 임지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굶었어요?”방유정이 그를 비웃었다.“식사 끝나면 저는 가도 되죠.”방유정은 순간 왠지 서운했다.“그렇게 가고 싶어요?”“여기는 제집이 아닌데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요.”방유정은 그를 향해 입을 삐쭉거리자, 임지훈은 의아해했다.“왜 그래요?”“내가 뭐요?”방유정은 짜증을 냈다.“유정 씨는 정말 변덕이 많네요. 그걸 고쳐요. 남자들은 변덕이 많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요.”방유정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집안으로 걸어들어갔다.임지훈은 고개를 돌려 못에 있는 물고기들을 한 번 더 보고는 뒤따라 들어갔다. 방유정이 집에 들어서자, 그녀의 어머니가 그들을 부르러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딸만 보였기에 그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