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봉희가 웃으며 또 900만원을 내놓자 장소연은 즉시 히죽히죽 웃으며 감사를 표했다. "고마워요, 어머니!" 도범은 그들을 상대하기 귀찮아 박영호에게 다가갔다. "제가 아버지 다리 고쳐드릴 수 있습니다!" "네가 나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박영호은 당연히 다리가 낫기를 바랐다. 도범이가 다시 이 일을 꺼내자 그의 혼탁한 두 눈에 한 줄기 빛이 드러났다. "뻥치지 마! 우리 아빠 다리 정형외과 주임한테 보였었어. 전문가 선생님도 고칠 수 없다는데 너라고 치료할 수 있겠어?" 박영호는 앞으로 나아가서, "네가 예전에 배달을 하고 군대에 갔던 것 같은데… 5년 동안 군대에 있으면서 혹시 의무병이 되어 부상자들을 치료해 주었냐" "어쩐지, 5년 동안 전쟁터에 나가서 살아 돌아왔다더니, 전선에서 적들을 무찌르는 것이 아니라 후방에서 부상자를 치료하고 있었구나!" 장소연은 두 손을 가슴에 안고 "나는 또 전선에서 돌아온 영웅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계속 후방에 숨어서 치료나 해 줬구나!"라며 경멸 섞인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의 말에 도범은 그저 무시하고 박영호를 바라보며 "아버지, 걱정 마세요. 아버지는 시율의 아버지뿐만 아니라 제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저는 아버지를 해칠 수 없어요!"라고 말했다. 이렇게 간절한 말을 듣자 박영호은 잠시 설득되어 시도해 보려고 하였다. "그거야 어떻게 알겠니? 네가 우리 집을 5년 동안이나 해쳤잖아. 5년이란 시간이 무슨 장난이야?" 나봉희는 "괜히 네 아버지의 다리를 더 심각하게 하지 말고. 그러면 넌 정말 끝장이야!"라고 비아냥거리면서 귀띔했다. "그러면…" 박영호가 이 말을 듣자 망설였다, 만약 도범이가 자신의 다리를 못 고치는 망정 더 심하게 만들었다면, 그럼 끝장이 아닐까? "아빠, 난 도범을 믿어요. 한번 믿어보세요!" 박시율이 나서서 권했다. "그래, 그러마, 어차피 다리가 이렇게 됐으니 더 나빠져도 뭐 어떻겠니?" 박영호는 바로 옆에 있는 돌의자에
“킹덤 호텔? 중심 거리에 있는 그 유명한 킹덤 호텔이요? 무려 오성급에 최소 소비가격만 해도 2천만 원이 넘는다는 그 호텔 말씀이세요?”킹덤 호텔이라는 말에 장소연이 흥분하며 물었다.“당연하지. 거기 말고 또 어디 다른 킹덤 호텔이 있겠니?”나봉희가 우쭐거리더니 감개무량하다는 듯이 말했다.“드디어 어르신께서 우리를 받아들이시려는 거야. 우리 집안 식구들까지 모두 모여서 밥을 먹자고 하시는구나. 예전에는 아무리 경사스러운 일이 생겼어도 절대 우리를 청하지 않았었는데!”“정말 다행이에요. 이제 박 씨 어르신께서도 천천히 우리 식구들을 받아들이시고 계시나 봐요!”장소연이 흥분하며 웃다가 갑자기 쑥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저기 어머니, 저도 함께 가도 괜찮을까요?”어머니라는 말에 나봉희가 몹시 들떠서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그럼 당연히 되지. 너는 내 아들의 여자친구니까 미래의 며늘아기와 다름이 없지. 함께 가서 밥을 먹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니까 걱정 말거라!”“정말이죠? 너무 좋아요!”장소연이 잠시 고민하더니 말을 이었다.“참, 아직 시간 좀 남지 않았나요? 해일아 나 옷 사줘. 예쁘게 꾸미고 내가 우리 해일이 기 좀 살려줘야지!”“알았어. 가자 소연아, 우린 옷 사러 가자!”박해일 천만 원을 손에 쥐고 장소연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어머니, 장소연을 데리고 가는 건 좀 아니지 않아요?”두 사람이 나간 후 박시율은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말을 꺼냈다.“아직 두 사람은 그저 사귀는 사이일 뿐이지 결혼도 하지 않았잖아요. 벌써 우리 가족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나요?”“뭐가 아니야? 쟤들이 함께 있은 지가 이제 이삼 년은 다 되어가는데 결혼까지 너무 먼 일도 아니지.”하지만 나봉희는 당연하다는 듯이 답했다.“방금 소연이가 오성급 호텔로 간다는 소리에 얼마나 기뻐하던지 너도 보았잖니? 잘 보이려고 옷까지 사러 간다고 하잖아. 소연이는 얼굴도 예쁘게 생겼으니까 함께 가면 우리 가족 체면도 살려주는 거야. 그리고
“너 이 자식, 분명히 네 입으로 그렇게 말했어. 만약 그때가 되어서도 다 낫지 못하면 당장 이 집에서 나가야 할 거야!”나봉희가 도범의 멱살을 잡으며 말했다. 그녀 또한 흥분한 모습이었다.“어머님,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는 하루 이틀 정도만 지나면 곧바로 알 수 있을 겁니다!”도범이 씩 웃으며 말했다.“좋아. 내가 똑똑히 지켜보겠어!”나봉희는 도범에게 쏘아붙이고 현금이 담긴 마대자루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바로 자루를 들고 방으로 들어가 돈을 숨겼다.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박해일이 장소연을 데리고 돌아왔다. 그는 그녀에게 여러 벌의 옷을 사주었다. 옷을 잘 차려입은 그녀는 한눈에 보아도 예전보다 더욱 예뻐 보였다.서정도 어제 도범이 사준 옷으로 갈아입으니 더욱 고귀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물에 빠졌던 박시율의 옷은 어제 곧바로 씻어 말렸기에 오늘 다시 입을 수 있었다. 새로 산 드레스는 그녀의 몸에 착 달라붙어 아름다움을 더욱 극대화했다. 순간 곁에 있던 장소연이 볼품없이 느껴질 정도였다.“너무 예뻐요 언니, 정말 중주의 제일가는 미녀로서 손색이 없어요. 아이를 낳은 지 몇 년이 지났는데도 여태 이런 몸매를 유지하다니요. 절대 이미 결혼 한 여자로 보이지 않아요!”장소연이 앞으로 나서며 연신 박시율을 칭찬했다.“내가 어떻게 너희같이 어린 여자아이들과 비길 수 있겠니. 너희들이 훨씬 활력이 넘치지.”박시율은 그저 짧게 맞장구쳐줄 뿐이었다. 그녀는 장소연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자 너무 늦으면 안 되니까 이제 출발하자꾸나. 어르신을 기다리게 해서 심기를 건드리면 안 되지.”나봉희가 시간을 확인하고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면서 재촉했다.그들은 집을 나서서 바로 택시를 잡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호텔 앞에 멈춰 섰다.강렬한 햇빛을 받아 번쩍이는 호텔은 한눈에 보아도 남다른 기세를 내뿜으며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를 풍겼다.“여기서 밥을 먹는 사람들은 모두 엄청난 부자나 그 이상의 귀인들이야. 우리 박 씨 가문도
“어어어? 이게 무슨 짓입니까? 도련님, 그걸 그리 찢어 버리시면 어쩝니까? 분명히 오늘 저랑 계약하기로 하시지 않으셨습니까?”그 모습을 본 박이성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머리가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다. 박 씨 가문 사람들은 현재 자신이 계약서를 들고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설마 이렇게 엎어지는 건가?“사인은 뭔 사인!”왕호는 다시 소파에 털썩 주저앉더니 씩씩거리며 말했다.“어젯밤에 커피 한 잔도 마시지 못했어. 아무것도 못해보고 지금까지 쌓아온 이미지만 깎아내렸단 말이야. 내 가게도 지금 엉망진창이 되었는데 내가 지금 이 정도도 못하겠어?”“그럴 리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알겠습니다. 도범 그 자식이죠? 그 자식이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왔나, 감히 도련님 가게에서 행패를 부리다니!”“아니 이것도 말이 안 되는데? 도련님 밑에 사람들은요? 분명 엄청 많은 부하들을 거느리고 계셨잖습니까? 설마 도범 그 자식 하나 상대하지 못할 리가 없잖습니까?”박이성이 숨을 들이켰다. 어젯밤 일로 왕호와 박시율이 맺어졌을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는데 이런 결과를 가져올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그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박시율의 승낙마저 떨어진 상황에서 어떻게 이런 변고가 생길 수 있었단 말인가?왕호는 어젯밤의 일을 떠올리고는 불같이 화를 냈다.“도범 그 자식이 아니야. 그 자식이 무슨 담과, 무슨 능력이 있어서 그런 일을 벌였겠어? 용 씨 가문의 둘째 아가씨, 용신애 그 빌어먹을 계집이 벌인 짓이야!”“설마 그 용신애요? 왜 그녀가 거기에 나타난 겁니까?”용신애라는 이름을 듣자 박이성이 또다시 기겁을 했다. 용 씨 가문, 수많은 세력들이 그 이름에 빌붙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무려 그 용 씨 가문이라니.“그게 말이야, 아주 공교롭게도 용신애가 마침 우리 가게를 지나치게 되었는데 인테리어가 마음에 들어서 밥을 먹으러 들어온 거야. 그런데…”왕호가 설명을 마치고 체념한 듯이 말했다.“용신애 그년은 하루 종일 할 짓도
“그러게 말이에요. 샴페인도 다 준비되었어요. 이번에 어르신께서 무리 좀 하신 것 같은데요. 여기 한 테이블에 2억씩 들었다면서요? 엄청나게 화려하네요!”“박이성이 이번에야말로 자기 아버지 체면을 세워줬네요. 순 이윤만 6백억이라던데 이번 계약이 크긴 큰가 봐요!”박 씨 가문의 친척들이 의론이 분분했다. 곁에 있던 박준식 또한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그때 방 문이 열리더니 나봉회와 박영호가 박시율과 기타 가족들과 함께 안으로 들어섰다.“나봉희 담도 크네, 이 많은 사람들을 다 기다리게 하고 말이야!”들어서자마자 친척들 중 누군가가 비꼬는 말투로 일부러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나봉희가 곧바로 어색하게 웃으며 답했다.“어쩔 수 없었어요. 오는 길에 차가 좀 막혀서요.”박시연은 박시율이 어제 산 명품 브랜드 옷을 입고 온 것을 보고 비꼬며 말했다.“쯧쯧, 시율이 넌 정말 부끄러운 줄 모르는구나. 그 짝퉁을 정말로 입고 오다니. 나였으면 부끄러워서 입고 나올 생각조차도 못 했어. 쪽팔리지도 않아? 다른 사람이 알아보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니?”그 말을 들은 나봉희가 참지 못하고 앞으로 나서면서 반박했다.“시연이 너 말 막 하지 말거라. 이건 백 퍼센트 정품이야. 우리 집이 비록 조금 가난하긴 하지만 이 옷만큼은 틀림없는 정품이야!”“그래요? 조금 가난한 집에서 4천만 원씩 하는 옷을 마음대로 산다고요? 그걸 누가 믿어요? 그리고 그 옷은 한정판이라고요!”박시연이 바로 반박하며 말했다.“당신들 수준에서 그 가격의 옷을 사는 건 우리가 4억짜리 옷을 사 입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알겠어요?”“우리 수준에 살 수 없다니!”나봉희가 소리 질렀다.“이래봐도 도범이는 퇴역 군인이야. 국가를 위해 5년간 복무했고 이번에 오면서 상금도 두둑이 타왔어. 네가 뭘 모르나 본데 보통 일이 년 후에 돌아와도 몇천만은 탈 수 있어. 그런데 도범은 5년이나 복무했고 공까지 세웠으니까 상금 몇 억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도범이 진땀을 흘렸다. 오늘 현금을 많이 꺼내
박진천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가 도범을 향해 말했다.“도범이 자네 지금 내가 자네와 장난하는 거로 보이나?”“도범이 너 주작이 너무 심한 거 아니니? 감히 어르신의 물음에 거짓말로 답해?”“그러게 말이야. 너 지금 어르신을 만만하게 보고 그러는 거지? 잊지 마, 애초에 어르신이 너한테 2억 원을 빌려주지 않았더라면 지금 네 어머니는 살아서 네 곁에 있지도 않았어!”몇몇 친인척들이 곧장 맹렬한 기세로 도범에게 쏘아붙였다.“어르신, 제가 한 말에는 한치의 거짓도 없습니다. 참, 여러분들이 믿지 못한다고 하면 저로서도 어쩔 수 없죠.”도범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전했다.그는 단지 누가 박시율을 괴롭히는 것이 걱정되어 이 자리까지 함께 온 것이지 원래는 오고 싶지 않았다.“잠깐만, 이 계집애는 또 누구야?”박시연은 원래 박시율을 끝까지 걸고넘어질 생각이었다. 하지만 도범이 공을 세웠다고 하는 걸 보아 아마 그 드레스는 정품이 맞을 것이고 이로써 더 이상 해코지할 거리가 없었다.그리고 그녀는 곧바로 처음 보는 낯선 얼굴에 눈길을 돌렸다.“참 시연 누나, 내가 소개할게. 내 여자친구인 장소연이야. 만난 지는 꽤 되었고 이제 곧 결혼할 거야!”“마침 할아버지께서 가족들을 다 불러 식사 대접을 한다고 하니까 이번 기회에 인사드리러 같이 왔어!”박해일이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그의 모습이 어딘가 우물쭈물해 보였다.“해일아 이건 좀 아니지 않니? 오늘은 우리 박 씨 가문 사람들끼리만 모이는 자리인데 외간 사람을 부르는 건 좀…”“도범이는 그래도 정식으로 혼인신고를 한 입장이지만 네가 데리고 온 애는…”박시연이 속으로 기뻐하며 곧바로 빈정거리며 말했다.“소연이는 외간 사람이 아니야. 이 아이는 이미 나를 어머니라고 부르고 있는걸. 이제 곧 우리 해일이와 결혼하게 될 아이야!”박시연이 장소연을 괴롭히려고 하는 모습을 본 나봉희가 급히 나서서 두둔했다.“됐어 됐어. 저 아이가 뭐 이런 곳에 와본 적이나 있겠어? 이 기회
박시율이 미간을 찌푸리며 지켜보다 결국 나서서 물었다.“그러게 말이야. 아버지 오늘 무슨 큰 경사라도 있어요? 샴페인까지 준비하고!”박영호 역시 의아한 표정이었다. 그도 왜 점심부터 이렇게 성대한 만찬을 준비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당연히 몹시 경사스러운 일이 있지. 이성이가 지금 어마어마한 계약을 체결하고 있는 중이다. 이번 계약이 얼마나 큰지 이성이가 말하기를 순이익만 6백억이 된다고 하더구나. 6백억은 자그마치 회사의 1년 이윤과 맞먹는 액수야!”어르신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맞아. 우리 이성이가 드디어 이번에 빛을 본 거야. 이렇게 큰 계약을 다 따내다니!”박준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얼굴에 자랑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어디 회사와 계약한 거예요?”박시율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는 어딘가 미심쩍은 기분이었다.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기만 하는 그 자식이 갑자기 그렇게 큰 계약을 따냈다고?“왕 씨 가문이다. 지금 계약서에 사인받으러 갔다. 어젯밤 전화 통화로 이미 다 끝난 얘기라고 하더구나. 아마 이제 곧 도착할 거다!”어르신이 시간을 확인했다.“시율아, 사실 예전에 너도 꽤 잘 나갔었는데 아쉽게 되었구나. 만약 저 자만 아니었다면…”한 친척이 도범을 힐끗 바라보고 은근히 속내를 비췄다.“작은 아버지의 뜻은 알겠어요. 제가 선택한 길인걸요. 전 후회 없어요!”박시율이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바로 그때, 또 한 번 방문이 열리더니 드디어 박이성이 도착했다.“이성이 돌아왔어요. 자 다들 박수!”곧바로 박준식이 높은 목소리로 외쳤다.순간 친인척들의 박수소리로 룸 안이 북적거렸다.“잘 왔어 이성아, 모두들 너만을 기다리고 있었어!”“맞아요. 이성 도련님, 어서 도련님이 따온 계약을 공포하세요. 샴페인도 다 준비되었어요!”몇몇 친척 사람들이 곧장 다가가서 아부의 말을 전했다.도범과 박시율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들은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 자리에 그들 가족을 부른 건 그저 박이성의 공적을 자랑하려고 하기 위함
“왕호 그 자식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어젯밤에 했던 약속을 오늘에 와서 아무런 이유도 없이 손바닥 뒤집듯이 엎어버리다니!”“그러게 말이야. 정말 너무 한거 아니야? 이렇게 큰 계약을 장난으로 삼아?”박 씨 가문 사람들은 하나같이 성을 내며 모든 잘못을 왕호한테 돌리고 있었다.박이성은 자신을 탓하는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한숨을 돌렸다.곁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도범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이번 일이 박이성의 말만 믿고 단정 지을 일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나봉희는 모처럼 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앞장서며 말했다.“이성이 너도 참, 우리 모두 네가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오기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어. 네가 정말로 우리 박 씨 가문을 위해 6백억이나 되는 큰돈을 벌어올 거라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헛물만 켰구나!”그 말을 들은 박이성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원래 그는 나봉희 일가 사람들을 불러 그들 앞에서 자신의 공적을 마음껏 뽐낼 작정이었다. 하지만 결국은 비웃음거리만 제공하게 된 꼴이었다.순간 박이성의 눈에 도범이 띄었다. 그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이번 계약이 성사하지 못한 것은 저의 실수입니다. 그 정도 신분을 가진 왕 씨 가문 도련님이 그렇게 변덕스러운 사람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거든요.”박이성이 잠시 뜸을 들이다 은근히 도범을 겨냥하며 계속하여 말했다.“하지만 그래도 누구보다는 낫죠. 돌아와서 지금까지 제대로 된 직장도 못 찾았다죠? 사실 이런 사람은 직장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죠!”그 말에 박시연이 맞장구쳤다.“그러게 말이야. 군인들은 퇴역하고 나면 직업 찾기 쉽지 않다고 하던데. 아니면 다시 본업으로 돌아가서 배달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야?”그녀의 말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들의 눈에 비친 배달이라는 업종은 너무나 비천한 직업이었다.“참, 내가 아는 몇몇 퇴역 군인들은 돌아와서 적당한 직업을 못 찾으면 경비나 보디가드로 일한다고 하더라고. 하하 아니면 우리 회사에 경비원으로 들어오는 건
“풍린수의 가장 큰 약점은 지능이 낮다는 거야. 이들은 그렇게 많은 꾀를 부리지 않기 때문에 무사들이 조금만 머리를 쓰면, 버티기만 해도 풍린수를 처치할 수 있지.”삼각눈의 남자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혹시 구록종이 무슨 종문인지조차 모르는 건 아니겠지? 방금 구록종을 언급했을 때, 네 표정이 어찌나 비웃음이 깃든지 말이야. 중주에 어떤 강력한 종문들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거 아니야? 넌 정말 중주 출신이 맞긴 한 거냐?”이 일련의 의심에 삼각눈을 가진 남자는 점점 오수경을 변두리에서 나온 우물 안 개구리라 여겼다. 그렇지 않다면 그런 말을 할 리 없었다. 오수경은 무심코 입꼬리가 바들바들 떨렸다. 이제야 도범이 왜 침묵을 즐기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이들과 다투는 것은 시간 낭비일 뿐이었다. 애초에 오수경은 이들과 말다툼을 할 생각조차 없었지만, 이제는 이들이 오수경을 끝없이 몰아붙이고 있었다.오수경은 인상을 찌푸린채 말했다.“물론 구록종은 중주 7품 종문 중 하나로, 그중에서도 손꼽히는 강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그러자 삼각눈을 가진 남자는 오수경의 말을 듣고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그런데 왜 내가 구록종을 언급했을 때, 네 얼굴에는 비웃음이 서린 거냐?”오수경은 미간을 찌푸린채 되묻고 싶었다.‘네가 어떻게 내 얼굴 표정을 그렇게 자세히 본 거야? 난 내 얼굴에 어떤 표정이 있는지도 몰라.’이 삼각눈을 가진 남자는 모든 걸 알고 있는 듯했다.오수경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목소리를 높여 이들과 싸우려는 순간, 도범이 오수경을 막았다. 그러자 도범이 일부러 목소리를 낮추지 않고 말했다.“이 사람들과 싸워서 뭐하겠어? 저들과 싸우는 건 네 시간만 낭비하는 거야. 이들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야.”이 말에 주위는 순간 조용해졌다. 도범은 지금까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 사람들이 도범을 허세 부리지 않는 사람으로 생각했으나, 도범의 말은 그들의 예상과는 완전히 달랐다.오수경도 이미 충분히 오만했지만
“역시 숲이 크면 별의별 새가 다 있는 법이지. 거울이라도 보고,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아봐야 할 텐데, 감히 그런 말을 하다니.”그 중 한 명이 손가락으로 앞쪽에 서 있는 흰 옷을 입은 사람을 가리키며 말했다.“저기 흰옷 입은 사람 보이지? 저 사람은 구록종 출신으로 친전 제자야. 그런데도 30분이 되서야 겨우 수정구를 파란색으로 바꿨다구! 방금 그렇게 큰소리쳤으니, 네 옆에 있는 이 친구가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해서 보라색 수정구를 파란색으로 바꾸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 한 번 볼까?”다른 사람도 거들며 말했다.“그래, 말 좀해봐. 네가 그렇게 치켜세운 저 친구가 보라색에서 파란색으로 바꾸는 데 얼마나 걸릴 것 같아?”주변 사람들은 이 상황을 재미있어하며 오수경을 계속 몰아세웠다. 그들은 오수경에게 도범이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말하라고 강요하며,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까지 구체적으로 언급했다.이들 대부분은 6품 종문이나 자유 무사 출신으로,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하는 데 최소 4시간이 걸렸다. 출신이 뛰어난 천재들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처음에는 오수경이 이들과 대화할 생각이 전혀 없어서 입을 꾹 다물고 인상을 쓰며 침묵을 지켰다. 그러나 이들은 끈질기게 질문을 던지며 진실을 밝히지 않으면 물러서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오수경은 도범에게 도움을 구하는 눈빛을 보냈지만, 도범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만든 일이니 네가 해결해.”도범은 오수경이 이미 여러 번 경솔하게 발언해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기 때문에, 매번 오수경의 뒤처리를 해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오수경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고, 계속되는 질문에 결국 고개를 들어 크게 말했다.“저 사람들이 30분이 걸린다면, 도범 오빠는 15분이면 충분해!”오수경은 어차피 모든 것을 걸고 말하기로 했다. 이 사람들은 정말 짜증나는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오수경의 말이 끝나자마자, 주위 사람들은 오수경의 말에 반
두 마리의 풍린수를 처치하면 수정구는 파란색에서 청색으로 변하게 된다. 그때 무사는 몇 배나 강력해진 풍린수와 마주하게 되며, 이 마지막 풍린수를 처치해야만 4층을 통과하여 5층에 진입할 자격을 얻게 된다.도범의 설명을 들은 오수경은 미간을 찌푸린채 되물었다.“그러니까 4층은 사실 세 단계로 나뉜다는 말이지? 수정구의 색이 변할 때마다 단계를 하나씩 통과하는 거야. 총 세 가지 색이 있는 셈이니까, 5층으로 가려면 세 번을 모두 통과해야 하네.”도범은 고개를 끄덕였고, 오수경은 손가락을 꼽아가며 말했다.“즉, 네 마리의 풍린수를 상대해야 한다는 거지. 첫 번째 풍린수는 상대적으로 약하고, 두 번째와 세 번째 풍린수는 좀 더 강해지지만, 가장 강력한 풍린수는 마지막 한 마리라는 거군. 이 마지막 풍린수를 처치해야 비로소 통과가 완료되는 거네.”도범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오수경의 정리가 꽤나 명확했다. 오수경은 5층으로 순조롭게 진입하려면 이 절차를 그대로 따라야 한다. 네 마리의 풍린수를 모두 처치해야만 5층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오수경은 웃으며 말했다.“4층은 도범 오빠에게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겠네. 그 무슨 풍린수라는 것도 결국 선천 후기에 불과하니까 말이야.”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도범이 답하기도 전에 주위의 사람들이 참지 못하고 들고 일어섰다. 그들이 일부러 사람이 적은 곳을 선택하긴 했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오수경의 말이 크게 들리자 주변 사람들이 주의를 기울이게 된 것이다.이때, 눈이 삼각형 모양인 한 사내가 오수경의 말을 듣고 냉소를 터뜨렸다.“너는 저 녀석의 부속인이겠지? 어디서 그런 배짱을 얻었길래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냐? 마치 4층이 이 어린 녀석에게는 쉬운 일인 것처럼.”그러자 삼각눈 사내 옆에 서 있던 백색 옷을 입은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저 사람은 말이 너무 과장된 것 같아. 풍린수가 얼마나 상대하기 어려운 상대인지 전혀 모르는 것 같은데, 그냥 입만 뻐끔했
도범은 한숨을 내쉰 후 다시 입을 열었다.“네가 오양수와 대결할 때, 나는 곽치홍이 너희 두 사람의 싸움을 계속 지켜보는 것을 발견했어. 그래서 곽치홍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곽치홍도 내가 본인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지. 하지만 내가 너무 멀리 있어서 곽치홍의 표정을 자세히 볼 수 없었어. 그런데 곽치홍이 나를 쳐다볼 때, 마치 독사에게 주시당하는 느낌이 들었어. 네가 전에 말했던 게 맞아, 곽치홍은 분명 우리에게 적대감을 품고 있어.”도범은 고개를 끄덕였다. 곽치홍이 등장한 이후로, 온갖 의문들이 곽치홍의 마음속에 떠올랐다. 이전에 장로들이 했던 말은 전부 믿을 수 없었고, 이 안에 더 큰 비밀이 숨어 있을 게 틀림없었다.도범이 숨을 고르고 막 입을 열려던 순간, 오수경이 먼저 말했다.“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 나를 위로하려고 하지 마, 이제 다 이해했어. 내가 전에 했던 충동적인 행동들이 너에게 폐를 끼쳤다는 걸 알아. 앞으로는 항상 이 점을 명심하고, 더 이상 너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 거야.”오수경의 이 말을 듣고 나니 도범은 한결 마음이 놓였다. 오수경은 단순한 순진한 바보였고, 팔 다리는 튼튼하지만 머리는 물에 잠긴 것 같아 항상 충동에 휘둘렸다. 하지만 이번 일을 겪고 나서 오수경도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그렇게 말하고 나서 오수경은 마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편안해졌다. 두 사람은 함께 4층으로 발을 내디뎠다.그곳은 희미한 빛으로 덮인 광활한 초원이었다. 초원 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대부분은 풀밭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손에 든 수정구를 받쳐 들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을 감고 명상하는 것처럼 보였고, 소수의 사람들은 낮은 목소리로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분위기는 침묵과 압박감이 공존했다. 누군가가 이야기를 한다 해도 일부러 목소리를 낮췄다. 여기가 바로 천엽7현탑의 4층이었으며, 겉보기에는 환상 세계와도 같았다.오수경은 눈을 깜빡이며 도범의 손에 들린 보라색 수정구를 한 번
이 말을 들은 오수경은 고개를 저으며 완강히 거부했다.“나는 3층에 남고 싶지 않아. 도범 오빠가 4층을 돌파하면, 분명히 5층도 갈 거잖아. 천엽 7현대는 총 7층인데, 도범 오빠가 7층까지 돌파할 수도 있잖아? 그럼 도범 오빠는 다른 곳으로 바로 전송될지도 모르는데, 그러면 나 혼자 3층에 남게 되잖아. 그땐 난 어떻게 해야 하지?”도범은 오수경의 말을 듣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수경의 걱정도 일리가 있었다. 만약 도범이 정말 7층까지 한 번에 돌파한다면, 천엽 7현대는 자신을 완벽한 도전자로 간주할 가능성이 높았고, 보상을 주고 다른 곳으로 전송할 수도 있었다.그렇게 되면 오수경을 홀로 남겨두게 되는데, 도범과 다시 만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여러 가지로 생각한 끝에, 도범은 여전히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한편, 오수경은 도범이 망설이는 모습을 보고 조급해졌다. 오수경은 도범의 팔을 잡으며 간절히 말했다.“난 도범 오빠의 인맥으로 천엽성에 들어온 거야. 인맥으로 들어온 만큼, 나는 어떠한 도전도 직면하지 않을 거고, 그저 도범 오빠만 따라가면 계속 위로 올라갈 수 있어. 어떤 위험이 닥치더라도, 나는 절대 혼자서 떠나지 않을 거야. 정말 운 나쁘게 여기서 죽더라도, 제가 감수해야 할 일이니까.”오수경의 이 말은 진심이었다. 도범을 처음 만난 이후, 오수경은 자신의 인생이 위험과 맞물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건 자신이 바꿀 수 없는 일이었다.다른 것은 판단할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도범은 매우 신뢰할 만한 사람이었고, 그 뒤를 따라가야만 생존의 가능성을 얻을 수 있었다. 오수경은 이곳에서의 2년을 버텨내어 바라문 세계를 떠나, 자금단방으로 돌아가 다시는 나오지 않기를 바랐다.도범은 오수경의 결심을 확인하자,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함께 걸음을 옮겨 4층의 입구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모두가 다소 망설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미래의 운명을 예측할 수 없기에 그들
도범은 냉소를 띠며 말했다.“전 당신과 싸울 생각 없어요. 다만 한 가지 중요한 일을 잊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나게 해주러 왔을 뿐이죠.”도범의 말에 민경운은 순간 얼어붙었다. 민경운은 잠시 고민하며 무슨 의미인지 되새겼고, 이내 도범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깨달았다. 바로 얼마 전 자신과 도범 사이에 벌어진 내기 때문이었다.그 순간, 민경운의 가슴은 마치 여러 개의 큰 돌이 짓누르는 듯 답답해졌다. 그러나 민경운은 이를 갈며 분노를 삼켰다. 애초에 민경운은 도범이 절대로 이번 대결에서 이길 수 없을 것이라 확신하고 내기를 걸었던 것이다.민경운은 도범이 처참하게 패배할 것이라 생각했고, 자신의 손에 들어올 19만 영정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하게 결과는 정반대였다. 도범이 승리한 것이다.이때, 도범은 손을 내밀며 말했다.“빨리 돈을 내세요. 저도 할 일이 있거든요. 그러니 제 시간 뺏지 마세요. 원래 9만 개의 영정으로 내기를 시작했는데, 본인이 10만 개를 더 얹어 19만 개의 영정으로 만든 거잖아요. 그러니 빨리 결제해요.”도범의 이 말에 민경운은 가슴이 터질 듯했다. 상황은 정말로 도범이 말한 대로였다. 도범은 9만 개의 영정으로 내기를 제안했고, 민경운은 도범이 분명히 패배할 것이라 생각하여 곧바로 10만 개를 더해 19만 개로 올렸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발등을 찍고 말았다.지금 민경운은 자기 뺨을 세게 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9만 개의 영정은 민경운에게 꽤나 큰 금액이지만, 19만 개의 영정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미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민경운이 이를 되돌릴 방법은 없었다. 만약 민경운이 결제하지 않으면 계약이 곧바로 발동하여, 결국에는 영혼의 역반작용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이후의 일은 의외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오양수는 원건종의 제자들을 들것에 실어 나갔고, 도범은 마침내 세 번째 영패를 손에 넣었다. 이번 영패는 조금 특이하여 입탑 영패가 아닌 출성 영패로 바뀌어 있었다.이
관중석에는 각양각색의 무사들이 섞여 있었고, 불량배들도 많았다. 평소에 거리에서 욕을 퍼붓기 좋아하는 이들은 이제야 자신들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기회를 찾은 듯, 원건종의 제자들에게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일부 사람들은 진원을 목에 운용하여 의도적으로 목소리를 크게 했다.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할까 봐 걱정이라도 되는 듯, 그들은 더욱 큰 소리로 온갖 더러운 말을 쏟아냈다. 이로 인해 도범의 귀는 무척이나 시끄러웠고, 고통스러울 정도였다.도범은 자신과 원건종의 제자들 사이에 오간 몇 마디 대화가 이렇게 사람들을 폭발시키게 될 줄은 몰랐다. 또한, 도범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며 이런 싸움은 결국 아무런 결론도 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몸싸움을 할 수도 없고, 계속 말다툼만 이어질 뿐이었다.그래서 도범은 더 이상 들으려 하지 않고, 대련 무대의 한쪽 가장자리로 가서 조용히 서 있기로 했다. 도범은 아직 오양수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 오양수가 자신에게 했던 그 약속, 즉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그대로 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시간은 조금씩 흘러갔고, 싸움 소리는 계속해서 끊이지 않았다. 마침내 오양수의 몸부림이 점점 약해지고, 장벽이 완전히 해제되자 원건종의 제자들이 한꺼번에 몰려가서 오양수를 부축했다.한편, 진태산은 눈살을 찌푸린 채 오양수의 코에 손을 대 그의 호흡을 확인했다. 비록 오양수는 아직 숨을 쉬고 있었지만, 그 호흡은 매우 미약했다.민경운은 급하게 자신의 보관 반지에서 여러 개의 단약을 꺼내 오양수의 입에 넣었다. 그러나 이 단약들은 오양수의 현재 상태를 치료하기에는 전혀 효과가 없었다. 방금 도범이 사용한 참멸현공이 오양수의 영혼을 완전히 찢어놓았기 때문이다.영혼이 찢어진 상태에서 내상을 치료하는 단약이 효과가 있을 리 없었다. 따라서 민경운이 오양수에게 많은 단약을 먹였지만, 오양수의 상태는 전혀 나아지지 않은 것이다. 민경운은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만약 오양수가 정말로 이 사건으로 인해 죽는다면, 그들 모두 책임을
“맞아! 당장 우리 오양수 선배를 풀어줘! 양수 선배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너는 천번 만번 죽임을 당할 거야! 오양수 선배는 도민수 선배가 아니야. 네가 도민수 선배를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갔을 때는 우리도 나서서 협상할 여지가 있었어.그러나 네가 오양수 선배를 진짜로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간다면, 염라대왕이라도 너를 보호할 수 없을 거야! 바라문 세계를 벗어나는 순간, 너는 원건종의 끝없는 추격을 받게 될 거야!”바깥에서 들려오는 원건종 제자들의 고함과 욕설은 도범의 귀에 전부 들렸다. 이는 이미 예상된 일이었기에 도범은 일말의 두려움도 느끼지 않았다.원건종은 일반적인 자유 무사들에게 충분한 위압감을 줄 수 있지만, 도범에게는 그렇게 중요한 상대가 아니었다. 원건종이 무엇이건, 자신의 힘이 충분히 강하다면 더 강력한 종문에 가담할 수 있을 테니, 원건종이 손해를 본다고 해도 도범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게다가 이번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원건종이 문제를 일으킨 것이었다. 도범은 결코 선을 넘는 행동을 하지 않았고 원건종 쪽에서 여러 번 도발하지 않았다면, 도범 역시 이들과 싸울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잠시 후, 도범은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원건종의 제자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원건종 제자들, 잘 들어! 8품 종문 출신이라는 이유로 제멋대로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 처음부터 끝까지 문제를 일으킨 건 너희들이었잖아. 그런데 패배하고 나니 이제와서 나를 협박하는 거야?만약 너희들이 먼저 건드리지 않았다면, 나 역시 너희들과 엮일 생각이 전혀 없었을 거야. 즉, 너희들은 본인들의 강력한 종문을 배경을 믿고 제멋대로 행동해도 된다고 착각하는 거야. 하지만 나는 너희들의 그런 행태를 전혀 묵인할 생각 없어!”도범의 이 말은 관중석에서 큰 박수갈채를 일으켰다. 관중들은 도범이 그들 마음속에 담아둔 말을 대신 말해준 것 같아 고무되었다. 이들 고급 종문의 제자들은 항상 약한 무사들 앞에서만 무력을 과시하며, 이
“오양수는 원건종의 친전 제자 아닌가요?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약할 수 있죠?”“당신 바보 아니에요? 이건 오양수이 약한 게 아니라 도범이 너무 강한 거에요! 아까도 말했잖아요? 빙봉천리는 지급 상급 무기에요.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몇이나 지급 상등 무기를 수련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도범이 빙봉천리를 부순다는 건, 도범의 무기가 오양수의 무기보다 강하다는 걸 의미해요!”“설마 도범이 천급 무기를 수련한 건가요?”이 말이 나오자마자, 주변의 거의 모든 이들이 단번에 부정했다.“미쳤어요? 무슨 말이든 막하네요. 천급 무기가 어떤 개념인지 알고나 하는 소리에요? 수련 경지가 고신경에 도달했거나, 혹은 특별한 재능을 지닌 영천 경지 후기에 이르러야만 천급 무기를 수련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거에요.그리고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바라문 세계의 규칙을 지켜야만 이곳에 들어올 수 있고요. 나이도 60세를 넘지 않아야 하죠. 그렇다면 60세가 넘지 않은 사람이 천급 무기를 수련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그렇네요! 아마도 지급 상급 무기를 수련한 거겠죠. 도범이 오양수를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도범이 지급 하급 무기를 대원만 단계까지 수련했기 때문일 거에요.”“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도범의 재능은 정말 두려운 수준이네요. 8품 종문의 친전 제자조차 도범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거잖아요!”“이번에 바라문 세계에 온 보람은 있네요. 이렇게 많은 천재들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니.”오양수와 관련 없는 관중들은 이런 논의를 흥미롭게 이어갔다. 이전에 도범을 비하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도범을 칭찬하며, 도범을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라고 말하기 시작했다.8품 종문의 친전 제자들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원건종의 제자들은 차분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관중석에서 편안하게 앉아있던 그들은, 도범이 빙봉천리를 단칼에 베어내는 모습을 보고는 그만 입을 다물고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지금 오양수가 이렇게 극심한 고통을 겪는 걸 보니, 분명 도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