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율이 미간을 찌푸리며 지켜보다 결국 나서서 물었다.“그러게 말이야. 아버지 오늘 무슨 큰 경사라도 있어요? 샴페인까지 준비하고!”박영호 역시 의아한 표정이었다. 그도 왜 점심부터 이렇게 성대한 만찬을 준비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당연히 몹시 경사스러운 일이 있지. 이성이가 지금 어마어마한 계약을 체결하고 있는 중이다. 이번 계약이 얼마나 큰지 이성이가 말하기를 순이익만 6백억이 된다고 하더구나. 6백억은 자그마치 회사의 1년 이윤과 맞먹는 액수야!”어르신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맞아. 우리 이성이가 드디어 이번에 빛을 본 거야. 이렇게 큰 계약을 다 따내다니!”박준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얼굴에 자랑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어디 회사와 계약한 거예요?”박시율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는 어딘가 미심쩍은 기분이었다.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기만 하는 그 자식이 갑자기 그렇게 큰 계약을 따냈다고?“왕 씨 가문이다. 지금 계약서에 사인받으러 갔다. 어젯밤 전화 통화로 이미 다 끝난 얘기라고 하더구나. 아마 이제 곧 도착할 거다!”어르신이 시간을 확인했다.“시율아, 사실 예전에 너도 꽤 잘 나갔었는데 아쉽게 되었구나. 만약 저 자만 아니었다면…”한 친척이 도범을 힐끗 바라보고 은근히 속내를 비췄다.“작은 아버지의 뜻은 알겠어요. 제가 선택한 길인걸요. 전 후회 없어요!”박시율이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바로 그때, 또 한 번 방문이 열리더니 드디어 박이성이 도착했다.“이성이 돌아왔어요. 자 다들 박수!”곧바로 박준식이 높은 목소리로 외쳤다.순간 친인척들의 박수소리로 룸 안이 북적거렸다.“잘 왔어 이성아, 모두들 너만을 기다리고 있었어!”“맞아요. 이성 도련님, 어서 도련님이 따온 계약을 공포하세요. 샴페인도 다 준비되었어요!”몇몇 친척 사람들이 곧장 다가가서 아부의 말을 전했다.도범과 박시율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들은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 자리에 그들 가족을 부른 건 그저 박이성의 공적을 자랑하려고 하기 위함
“왕호 그 자식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어젯밤에 했던 약속을 오늘에 와서 아무런 이유도 없이 손바닥 뒤집듯이 엎어버리다니!”“그러게 말이야. 정말 너무 한거 아니야? 이렇게 큰 계약을 장난으로 삼아?”박 씨 가문 사람들은 하나같이 성을 내며 모든 잘못을 왕호한테 돌리고 있었다.박이성은 자신을 탓하는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한숨을 돌렸다.곁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도범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이번 일이 박이성의 말만 믿고 단정 지을 일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나봉희는 모처럼 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앞장서며 말했다.“이성이 너도 참, 우리 모두 네가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오기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어. 네가 정말로 우리 박 씨 가문을 위해 6백억이나 되는 큰돈을 벌어올 거라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헛물만 켰구나!”그 말을 들은 박이성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원래 그는 나봉희 일가 사람들을 불러 그들 앞에서 자신의 공적을 마음껏 뽐낼 작정이었다. 하지만 결국은 비웃음거리만 제공하게 된 꼴이었다.순간 박이성의 눈에 도범이 띄었다. 그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이번 계약이 성사하지 못한 것은 저의 실수입니다. 그 정도 신분을 가진 왕 씨 가문 도련님이 그렇게 변덕스러운 사람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거든요.”박이성이 잠시 뜸을 들이다 은근히 도범을 겨냥하며 계속하여 말했다.“하지만 그래도 누구보다는 낫죠. 돌아와서 지금까지 제대로 된 직장도 못 찾았다죠? 사실 이런 사람은 직장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죠!”그 말에 박시연이 맞장구쳤다.“그러게 말이야. 군인들은 퇴역하고 나면 직업 찾기 쉽지 않다고 하던데. 아니면 다시 본업으로 돌아가서 배달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야?”그녀의 말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들의 눈에 비친 배달이라는 업종은 너무나 비천한 직업이었다.“참, 내가 아는 몇몇 퇴역 군인들은 돌아와서 적당한 직업을 못 찾으면 경비나 보디가드로 일한다고 하더라고. 하하 아니면 우리 회사에 경비원으로 들어오는 건
도범이 담담하게 웃었다. 그가 퇴역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수많은 세력들이 암암리에 그에게 연락을 취해왔었다. 심지어 하나같이 어마어마한 액수를 제시하면서 그를 데려가려고 애를 썼지만 도범은 모든 제안을 거절했었다.때문에 박이성이 백만 원을 부르며 일자리를 제공해 주겠다고 그를 모욕한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그래 알았어 알았어. 네 말이 다 맞아. 넌 공까지 세웠으니까 국가에서 적지 않은 돈을 받았겠지. 하하 이제 보니 우리가 괜한 걱정을 했네!”박이성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도범은 그를 상대하기조차 귀찮았다. 그는 테이블에 놓인 샴페인을 보고 말했다.“어르신 연회를 계속 이어나가실 겁니까? 더 지체하면 음식이 다 식어버릴 겁니다.”박진천은 입술을 씰룩거렸다. 도범이가 눈치도 없이 건드리지 말아야 할 곳을 건드린 것이다. 비록 원래 축하하기 위해 모인 것이 맞지만 이렇게 대놓고 말하는 건 일부러 그들의 체면을 깎아내리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당신 지금 이렇게 고급스러운 요리를 마주해본 적이 없어서 빨리 먹고 싶어서 이러는 거죠?”박시연이 도범을 노려보며 쏘아붙였다.“음식도 다 나왔는데 먹자꾸나. 다들 평소와 같이 회식이라 생각하고 자리에 앉거라!”박진천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그리고 박이성을 향해 말했다.“이성이 넌 명심하거라. 앞으로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전까지는 그 어떤 구두 약속도 소용이 없다. 협력 업체는 언제든지 말을 바꿀 수 있어 알겠니? 다음에는 절대로 확실하다는 말 같은 건 내뱉지 말거라!”박이성은 얼굴이 파랗게 질려서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명심하겠습니다 할아버지. 어서 앉으세요!”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앉아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장소연은 행동 하나하나 조심하고 있었다. 그녀는 원래 자신의 미모에 꽤 자신이 있었다. 이곳에 오면 박 씨 가문 사람들이 무조건 자신을 반갑게 맞아 줄 것이라고 자만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은 웬 여자에게 무시만 당하고 심지어 지금은 아무도
첫 잔은 도범이 나라를 위해 싸워 온 것을 위하여, 두 번째 잔은 그와 박시율의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해서. 두 가지 모두 도범이 거절하기 어려운 말들이었다.또한 상대방은 연장자이기도 하니 도범이 이를 함부로 거절하기도 쉽지 않았다.결국 도범은 미소를 유지한 채 한 잔 또 한 잔 술잔을 비워낼 수밖에 없었다.그런데 도범도 예기치 못했던 건 세 잔 정도 함께 마시고 그 연장자가 자리를 떠난 지 채 일 분이 안 되어 또 다른 남자가 술잔을 들고 다가오는 것이었다.도범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눈치챘다.평소에는 자신을 보는 척도 하지 않던 사람들이 이제 와서 주동적으로 술을 권하러 다가오다니. 명백히 누군가가 자신을 취하게 만들려고 꾸며낸 속셈이 분명했다.하지만 이런 시답잖은 속셈으로는 도범을 당해낼 수 없었다.5년간 전쟁터에서 생활하면서 그의 신체는 이미 극한으로 단련되어 있었다. 우연한 기회로 남들과 다른 이색적인 경험을 갖고 있는 자신을 이곳 사람들이 술로 이기려 드는 것은 불가능한 일에 가까웠다.연속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다가와 술을 권했고 그때마다 도범은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상대했다. 그는 능청스럽게 인사말을 건네고는 주는 족족 통쾌하게 술잔을 비워나갔다.그가 와인을 여덟 잔 정도 연거푸 비워내자 곁에 있던 박시율은 몹시 당황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녀는 도범이 자리에 앉자마자 그의 옷자락을 살짝 잡아당기며 물었다.“적당히 마셔도 돼. 아니면 거절하지 그랬어. 그렇게 급하게 많이 마시다가 취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박시율이 낮은 목소리로 그를 일깨워주었다.순간 도범은 가슴 한편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박시율이 이토록 자신을 관심해 주고 걱정해 줄 거라고 생각지 못했었다.이렇게 좋은 와이프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의 체면을 위해 일부러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었기에 다른 사람은 아무도 그녀의 말을 듣지 못했다.“나 술 주량이 센 편이니니까 괜찮아 걱정하지 마. 그리고 당신도 보았다시피 술을 권하는 사
도범이 머리를 저으며 술을 마다하는 모습을 본 박이성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가 이제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 박이성은 서둘러 재촉했다.“괜찮아 괜찮아. 자 자 자, 오늘 분위기도 좋은데 세 잔 정도는 원샷 해야지!”“알았어.”도범은 곤란한 척 연기를 하며 천천히 술을 들이켰다.그는 이제까지 열잔은 족히 마셨다. 술을 권한 자들과 박이성 역시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른 상태였다.그들은 이제 곧 도범이 쓰러질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자 자 자, 이렇게 모인 것도 오랜만인데 다 같이 한잔하시죠!”박이성이 또다시 술잔을 들고 연회장 내부의 사람들을 향해 외쳤다.그는 속으로 비웃었다.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함께 잔을 든 상황에서 도범은 절대 피하지 못할 것이고 억지로라도 마셔야 했다.“그래 다들 잔을 들고 건배하자꾸나. 우리 하람 그룹이 승승장구해 나가기를 기원하며, 위하여!”박진천도 미소 지으며 거들었다.“위하여!”박이성이 쭉 잔을 비웠다.술잔을 내려놓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박이성은 또다시 몇몇 사람들에게 번갈아 가면서 도범에게 술을 권하라고 눈짓했다. 그는 도범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똑똑히 지켜볼 것이라고 다짐했다.그런데 이상하게도 거절하지 못하고 마지못해 상대하고 있는 도범은 이미 어느 정도 취해 보이기는 했지만 계속하여 한 잔 한 잔 쭉쭉 비워나가는 것이다.오히려 박이성의 지시대로 움직이던 연장자라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얼굴이 뻘겋게 달아오르며 말도 바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그중 두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화장실로 달려가 토하기까지 했다.화가 난 박이성이 직접 나서서 도범과 술을 겨뤘다. 하지만 도리어 자신만 취하고 도범은 아직까지도 멀쩡해 보였다.“젠장, 저건 괴물이야 뭐야? 무슨 술이 저렇게 쎄?”얼큰하게 취한 남자가 박이성 곁으로 다가와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전쟁터에서 살아 나온 사람들은 다들 신체도 좋고 술 주량이 세다고는 하던데 아무리 그래도 저건 너무한 거 아니야? 우리 몇 명이서 돌아가며 상
“외부인이요? 하하 그러면 제가 꺼져드려야죠!”박이성의 말에 싸늘하게 얼어붙은 용신애가 곧바로 픽 웃으며 몸을 돌려 나가려고 했다.단번에 용신애의 정체를 알아차린 박진천이 숨을 들이켰다.그녀는 중주에서 제일가는 부잣집 딸이었다. 이곳 중주에서 용 씨 가문의 세력은 어마어마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들과 자그마한 연이라도 맺으려고 안간힘을 썼던가. 하지만 아무나 선택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박 씨 가문과 같이 자그마한 중소기업은 기를 쓰고 엮이려고 해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었다.그 가문의 딸인 용신애가 바로 지금 그들 앞에 서있었다. 그런데 어리석은 손자 녀석이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그런 망언을 해버린 것이다.“용, 용 씨 가문 둘째 아가씨…”흥분한 박진천이 말까지 더듬으며 그녀를 불렀다.“이성이 너 이 자식 그게 무슨 헛소리야? 이분은 바로 그 용 씨 가문의 둘째 아가씨란 말이다. 어서 사과하지 못해?”놀란 박준식 다급하게 박이성에게 호통쳤다.취기 때문에 머리가 어지러웠던 박이성은 아버지의 말에 기겁하며 급히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그녀에게 달려가 손을 내밀었다.“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이것 참 당신이 바로 그 용 씨 가문의 둘째 아가씨군요. 너무나 갑작스럽게 만나게 되어 미처 아가씨 일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아가씨와 같이 귀한 분을 여기서 뵙게 될 줄은…”박이성은 도무지 어떻게 사과를 해야 할지 몰라 그저 무작정 손을 내밀고 악수를 청하고 있었다.하지만 용신애는 그저 뒷짐만 지고 박이성의 말 따위는 무시하며 박진천을 바라보았다.“어르신께서는 저를 환영해 주시나요?”“그럼 당연히 환영하죠!”박진천이 다급하게 웨이터를 불렀다.“웨이터, 이쪽에 그릇과 젓가락 좀 세팅해 주게. 이리 와서 앉으세요 아가씨!”용신애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그렇게까지 하실 필요 없어요. 방금 친구들과 바로 옆에서 밥을 먹었거든요. 나가려다 마침 반가운 지인의 얼굴이 보여서 인사나 할 겸 들렀을 뿐이에요.”“어머 아가씨, 이렇게 여기서 또
더욱 당황스러운 건 용신애가 깜짝 놀랐다는 듯이 입까지 막으며 덧붙이는 것이었다.“만약 정말로 와인 한 병을 원샷이라도 하면 제가 당신이 진심으로 뉘우친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죠.”박진천 역시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용 씨 가문의 둘재 아가씨가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그대로 넘어갈 수도 없었다.만약 이 일로 마음 상한 그녀가 앙심이라도 품으면 앞으로 박 씨 가문은 중주에서 살아가기 바쁠 것이다.“이성이 너 뭐하고 서 있어? 빨리 성의 표시를 하지 않고!”박이성이 갈팡질팡하며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을 본 박진천이 그를 재촉했다.“알겠습니다. 아까는 정말로 제가 실례를 범했습니다. 사죄의 의미로 제가 이 와인을 다 비워 보이겠습니다.”박이성이 와인 한 병을 들고 병나발로 꿀꺽꿀꺽 소리를 내며 들이켰다.절반쯤 마셨을 때 한계에 이른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이 주먹을 꽉 쥐고 억지로 다 마셨다.그는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빌어먹을 도범 그 자식이 헛소리만 하지 않았어도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었다. 더욱 어이없는 건 그 제안을 용신애 저 계집이 받아들였다는 것이다.여기서 더욱 기가 막힌 건 어젯밤 자신의 계획을 망친 사람이 바로 저 용신애였다. 만약 그녀만 아니었다면 오늘의 계획은 따낸 당상이었고 이 연회는 자신의 능력을 한껏 뽐낼 수 있는 무대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결국에는 결과가…와인 한 병을 다 비운 박이성은 머리가 핑 돌았다. 그리고 더 이상 버텨내지 못하고 팔자걸음으로 몇 걸음 앞으로 걸어가더니 바닥에 쓰러져 토하기 시작했다.그 장면을 목격한 박진천의 표정이 구겨졌다. 그는 속으로 박이성의 술 주량이 형편없다고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 토하더라도 용신애가 돌아 간 뒤에 토했어야지, 이 얼마나 추한 꼴을 보였는가. 이 일로 앞으로 두 집안의 협력 기회가 더욱 어려워질 수도 있었다.박이성은 미래에 박 씨 가문의 가주가 될 사람이기에 그의 이미지 실추에 대한 것도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참, 오늘 여기서 무슨 경사라도
“뭐야? 저 자식 미친 거 아니야? 지금 용 씨 가문의 둘째 아가씨를 협박하고 있는 거야?”“그러게 말이야. 저게 협박이 아니고 뭐야? 자기 와이프한테 직장을 마련해 주지 않으면 본인은 보디가드를 할 생각이 없다고? 어이가 없네. 누가 봤으면 보디가드가 되어달라고 빌기라도 하는 줄 알겠어!”“맙소사, 바보 아니야 저거? 국가를 위해 헌신한 공로를 높게 사서 아가씨가 직접 자기 집 보디가드로 스카우트 제의를 한 건데, 저렇게 오만방자한 말을 내뱉다니! 그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고 싶어도 못하는 직업인데!”“하하 여기서 관건은 심지어 아가씨가 도범 저 자식한테 직접 원하는 액수를 부르라고 했단 말이야. 그것만 해도 얼마나 저 자식을 우대해 주고 있는 건데!”적지 않은 박 씨 집안 친척들이 도범의 말에 놀라 수군거렸다.“젠장 만약 저 자식이 아가씨의 심기를 건드려서 용 씨 가문의 미움이라도 사면 어떡해? 나중에 그쪽에서 직접 우리 박 씨 가문을 책망하기라도 하면? 어쨌든 저 자식이 우리 박 씨 가문에 들어온 데릴사위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잖아!”친척들 중 누군가가 언성을 높이며 말했다.그 말을 들은 박진천이 화들짝 놀랐다. 그랬다. 그는 도범이 용 씨 가문과 척을 지든 말든 아무 상관이 없었다. 도범이 죽는다 해도 박 씨 가문 사람들은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그럼에도 그 자식이 박시율의 남자라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다른 이들의 눈에 그는 명백한 이 집안에서 들인 데릴사위였다. 만약 그때가 되어 이 자식이 저지른 잘못을 박 씨 가문에 뒤집어 씌우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그가 다급하게 앞으로 나서며 용신애를 향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아가씨, 저놈이 오늘 과음을 했어요. 방금 한 헛소리는 너무 마음에 두지 마세요. 아가씨의 마음은 고마워요. 그런데 저놈은 군에 있을 때도 그저 그럭저럭 나날만 보내는 부류였고 큰일을 해내지도 못해서 아마 아가씨 가문을 지키는 일은 어울리지 않을 거예요.”하지만 그들은 도범의 말에
도범은 냉소를 띠며 말했다.“전 당신과 싸울 생각 없어요. 다만 한 가지 중요한 일을 잊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나게 해주러 왔을 뿐이죠.”도범의 말에 민경운은 순간 얼어붙었다. 민경운은 잠시 고민하며 무슨 의미인지 되새겼고, 이내 도범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깨달았다. 바로 얼마 전 자신과 도범 사이에 벌어진 내기 때문이었다.그 순간, 민경운의 가슴은 마치 여러 개의 큰 돌이 짓누르는 듯 답답해졌다. 그러나 민경운은 이를 갈며 분노를 삼켰다. 애초에 민경운은 도범이 절대로 이번 대결에서 이길 수 없을 것이라 확신하고 내기를 걸었던 것이다.민경운은 도범이 처참하게 패배할 것이라 생각했고, 자신의 손에 들어올 19만 영정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하게 결과는 정반대였다. 도범이 승리한 것이다.이때, 도범은 손을 내밀며 말했다.“빨리 돈을 내세요. 저도 할 일이 있거든요. 그러니 제 시간 뺏지 마세요. 원래 9만 개의 영정으로 내기를 시작했는데, 본인이 10만 개를 더 얹어 19만 개의 영정으로 만든 거잖아요. 그러니 빨리 결제해요.”도범의 이 말에 민경운은 가슴이 터질 듯했다. 상황은 정말로 도범이 말한 대로였다. 도범은 9만 개의 영정으로 내기를 제안했고, 민경운은 도범이 분명히 패배할 것이라 생각하여 곧바로 10만 개를 더해 19만 개로 올렸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발등을 찍고 말았다.지금 민경운은 자기 뺨을 세게 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9만 개의 영정은 민경운에게 꽤나 큰 금액이지만, 19만 개의 영정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미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민경운이 이를 되돌릴 방법은 없었다. 만약 민경운이 결제하지 않으면 계약이 곧바로 발동하여, 결국에는 영혼의 역반작용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이후의 일은 의외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오양수는 원건종의 제자들을 들것에 실어 나갔고, 도범은 마침내 세 번째 영패를 손에 넣었다. 이번 영패는 조금 특이하여 입탑 영패가 아닌 출성 영패로 바뀌어 있었다.이
관중석에는 각양각색의 무사들이 섞여 있었고, 불량배들도 많았다. 평소에 거리에서 욕을 퍼붓기 좋아하는 이들은 이제야 자신들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기회를 찾은 듯, 원건종의 제자들에게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일부 사람들은 진원을 목에 운용하여 의도적으로 목소리를 크게 했다.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할까 봐 걱정이라도 되는 듯, 그들은 더욱 큰 소리로 온갖 더러운 말을 쏟아냈다. 이로 인해 도범의 귀는 무척이나 시끄러웠고, 고통스러울 정도였다.도범은 자신과 원건종의 제자들 사이에 오간 몇 마디 대화가 이렇게 사람들을 폭발시키게 될 줄은 몰랐다. 또한, 도범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며 이런 싸움은 결국 아무런 결론도 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몸싸움을 할 수도 없고, 계속 말다툼만 이어질 뿐이었다.그래서 도범은 더 이상 들으려 하지 않고, 대련 무대의 한쪽 가장자리로 가서 조용히 서 있기로 했다. 도범은 아직 오양수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 오양수가 자신에게 했던 그 약속, 즉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그대로 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시간은 조금씩 흘러갔고, 싸움 소리는 계속해서 끊이지 않았다. 마침내 오양수의 몸부림이 점점 약해지고, 장벽이 완전히 해제되자 원건종의 제자들이 한꺼번에 몰려가서 오양수를 부축했다.한편, 진태산은 눈살을 찌푸린 채 오양수의 코에 손을 대 그의 호흡을 확인했다. 비록 오양수는 아직 숨을 쉬고 있었지만, 그 호흡은 매우 미약했다.민경운은 급하게 자신의 보관 반지에서 여러 개의 단약을 꺼내 오양수의 입에 넣었다. 그러나 이 단약들은 오양수의 현재 상태를 치료하기에는 전혀 효과가 없었다. 방금 도범이 사용한 참멸현공이 오양수의 영혼을 완전히 찢어놓았기 때문이다.영혼이 찢어진 상태에서 내상을 치료하는 단약이 효과가 있을 리 없었다. 따라서 민경운이 오양수에게 많은 단약을 먹였지만, 오양수의 상태는 전혀 나아지지 않은 것이다. 민경운은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만약 오양수가 정말로 이 사건으로 인해 죽는다면, 그들 모두 책임을
“맞아! 당장 우리 오양수 선배를 풀어줘! 양수 선배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너는 천번 만번 죽임을 당할 거야! 오양수 선배는 도민수 선배가 아니야. 네가 도민수 선배를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갔을 때는 우리도 나서서 협상할 여지가 있었어.그러나 네가 오양수 선배를 진짜로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간다면, 염라대왕이라도 너를 보호할 수 없을 거야! 바라문 세계를 벗어나는 순간, 너는 원건종의 끝없는 추격을 받게 될 거야!”바깥에서 들려오는 원건종 제자들의 고함과 욕설은 도범의 귀에 전부 들렸다. 이는 이미 예상된 일이었기에 도범은 일말의 두려움도 느끼지 않았다.원건종은 일반적인 자유 무사들에게 충분한 위압감을 줄 수 있지만, 도범에게는 그렇게 중요한 상대가 아니었다. 원건종이 무엇이건, 자신의 힘이 충분히 강하다면 더 강력한 종문에 가담할 수 있을 테니, 원건종이 손해를 본다고 해도 도범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게다가 이번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원건종이 문제를 일으킨 것이었다. 도범은 결코 선을 넘는 행동을 하지 않았고 원건종 쪽에서 여러 번 도발하지 않았다면, 도범 역시 이들과 싸울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잠시 후, 도범은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원건종의 제자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원건종 제자들, 잘 들어! 8품 종문 출신이라는 이유로 제멋대로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 처음부터 끝까지 문제를 일으킨 건 너희들이었잖아. 그런데 패배하고 나니 이제와서 나를 협박하는 거야?만약 너희들이 먼저 건드리지 않았다면, 나 역시 너희들과 엮일 생각이 전혀 없었을 거야. 즉, 너희들은 본인들의 강력한 종문을 배경을 믿고 제멋대로 행동해도 된다고 착각하는 거야. 하지만 나는 너희들의 그런 행태를 전혀 묵인할 생각 없어!”도범의 이 말은 관중석에서 큰 박수갈채를 일으켰다. 관중들은 도범이 그들 마음속에 담아둔 말을 대신 말해준 것 같아 고무되었다. 이들 고급 종문의 제자들은 항상 약한 무사들 앞에서만 무력을 과시하며, 이
“오양수는 원건종의 친전 제자 아닌가요?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약할 수 있죠?”“당신 바보 아니에요? 이건 오양수이 약한 게 아니라 도범이 너무 강한 거에요! 아까도 말했잖아요? 빙봉천리는 지급 상급 무기에요.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몇이나 지급 상등 무기를 수련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도범이 빙봉천리를 부순다는 건, 도범의 무기가 오양수의 무기보다 강하다는 걸 의미해요!”“설마 도범이 천급 무기를 수련한 건가요?”이 말이 나오자마자, 주변의 거의 모든 이들이 단번에 부정했다.“미쳤어요? 무슨 말이든 막하네요. 천급 무기가 어떤 개념인지 알고나 하는 소리에요? 수련 경지가 고신경에 도달했거나, 혹은 특별한 재능을 지닌 영천 경지 후기에 이르러야만 천급 무기를 수련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거에요.그리고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바라문 세계의 규칙을 지켜야만 이곳에 들어올 수 있고요. 나이도 60세를 넘지 않아야 하죠. 그렇다면 60세가 넘지 않은 사람이 천급 무기를 수련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그렇네요! 아마도 지급 상급 무기를 수련한 거겠죠. 도범이 오양수를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도범이 지급 하급 무기를 대원만 단계까지 수련했기 때문일 거에요.”“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도범의 재능은 정말 두려운 수준이네요. 8품 종문의 친전 제자조차 도범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거잖아요!”“이번에 바라문 세계에 온 보람은 있네요. 이렇게 많은 천재들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니.”오양수와 관련 없는 관중들은 이런 논의를 흥미롭게 이어갔다. 이전에 도범을 비하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도범을 칭찬하며, 도범을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라고 말하기 시작했다.8품 종문의 친전 제자들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원건종의 제자들은 차분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관중석에서 편안하게 앉아있던 그들은, 도범이 빙봉천리를 단칼에 베어내는 모습을 보고는 그만 입을 다물고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지금 오양수가 이렇게 극심한 고통을 겪는 걸 보니, 분명 도범이
두 번째 방법은 고도의 신법을 필요로 하며, 일반적인 무사로서는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수준이다. 첫 번째 방법도 강력한 실력이 필요하기에, 주위 사람들이 도범을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빙봉천리의 감금 아래에서 도범은 결코 빠져나갈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따라서 모두가 도범이 반드시 패배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도범의 경맥이 감금되면 오양수가 도범을 결코 쉽게 놓아주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한편, 도범은 한 손에 장검을 쥐고, 다른 손으로는 연달아 법진을 만들어냈다. 이윽고 백 개의 영혼검이 하나로 융합되어, 거대한 영혼 검이 되어 회흑색 장검 속에 흡수되었다.도범이 전승 상태로 참멸현공을 펼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비록 빙봉천리가 지급 상급 무기일지라도, 도범의 눈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도범은 현재 참멸현공을 대원만 단계까지 수련한 상태였고, 영혼검과의 융합으로 생성된 힘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힘이다.도범은 분노에 차서 큰 소리로 포효하며 단칼에 검을 휘둘렀다. 이윽고 회흑색 장검에서 거대한 검기가 날아가면서 하늘을 뒤덮은 얼음망이 도범의 앞에 닥쳐왔다.모두는 쾅쾅하는 몇 번의 뚜렷한 소리를 들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단단해 보이던 빙봉천리가 도범의 한 줄기 검기에 의해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게다가 이 검기는 빙봉천리를 부순 뒤에도 힘이 전혀 소모되지 않은 채 여전히 앞으로 돌진했다. 이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고, 뒤따라오던 오양수조차 반응하지 못했다.현재 도범의 참멸현공은 대원만의 경지에 도달했다. 비록 빙봉천리가 지급 상급 무기라 할지라도, 참멸현공 앞에서는 종이장처럼 부서질 뿐이었다.모두가 도범이 빙봉천리에 온몸이 봉쇄되어, 도살당할 어린 양처럼 될 것을 기대했으나, 그들의 모든 환상은 산산이 부서졌다. 검날이 빙봉천리를 부순 후, 곧장 반응하지 못한 오양수를 향해 돌진했다. 검날이 오양수의 면전 3척 앞에 닿기 직전에야 오양수는 자신을 보호하려 했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린 상황이었다. 평상시라면 오양수는 공격과 동시에
각양각색의 논조, 그리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끝없는 토론. 그러나 도범은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상관하지 않았다. 도범은 그저 담담한 눈빛으로 오양수를 바라보았다.잠시 후, 오양수가 무기를 꺼내들자, 도범도 천천히 자신의 회흑색 장검을 꺼내 손에 쥐었다. 이 장검은 오랫동안 도범과 함께한 무기로,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었다.오양수는 청란골패를 가볍게 휘두르자, 뚜렷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한기가 청란골패에서 뿜어져 나오며 분위기를 한순간에 바꾸었다.현재 오양수의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만이 존재했다. 그건 바로 도범을 쓰러뜨린 뒤, 잔인하게 고통을 주어 그 대가가 얼마나 혹독한지 알게 하는 것이었다.오양수는 크게 포효하며 두 손을 뒤집어 법진을 만들어냈다. 그러자 오양수의 손바닥에 육각형 모양의 얼음 화살이 생겨났고, 4초 후, 수백 개의 육각형 얼음 화살이 오양수의 앞을 가득 메웠다.오양수는 다시 한번 포효하며 앞을 향해 힘껏 밀어붙였다. 그러자 수백 개의 육각형 얼음 화살이 도범을 향해 맹렬히 돌진했고, 이 화살들과 함께 엄청난 한기가 도범을 덮쳤다.도범은 눈살을 찌푸린 채, 두 손으로 장검을 단단히 쥐고 한 발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는 조용히 검을 휘둘렀다. 이윽고 수많은 육각형 얼음 화살은 단숨에 두 조각으로 나뉘었다.그때, 관중석에서 다시 한번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도범 저 녀석, 실력이 정말 보통이 아니네요!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면, 오양수가 수련한 무기는 지급 상급 무기, 빙봉천리에요! 그런데 도범이 단칼에 빙봉천리를 가르다니, 실력이 꽤 강한데요!”그 사람이 말을 끝내자마자 주변에서는 곧바로 반박이 나왔다.“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게 무슨 말이에요? 빙봉천리는 지급 상급 무기에요. 바라문 세계를 둘러봐도, 지급 상급 무기를 수련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 같아요? 방금 전의 공격은 단지 약간의 힘만 사용한 거에요. 오양수가 진심으로 도범을 죽이려 했다면, 반항할 틈조차 없었을 거에요!”오양수가 쏘
검은 옷의 대장부는 눈살을 찌푸린 채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내가 무슨 말을 하든 네가 뭔 상관이야! 이 건방진 놈, 죽고 싶어! 마침 상대가 필요했는데, 너의 입탑영패를 가지고 와. 우리 한 판 붙자!”그러자 오수경은 콧방귀를 뀌며 태연하게 말했다.“내 앞에서 강자 흉내 내지 마. 내 가슴에 6품 연단사 휘장이 붙어 있는 걸 못 봤어? 그런데 네가 연단사인 나와 실력을 겨루겠다고? 차라리 연단술을 겨뤄보는 게 어때?”이 말에 검은 옷의 대장부는 말문이 막혀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규칙이 없었다면 그는 당장이라도 오수경의 목을 조를 기세였다.오수경은 검은 옷의 대장부가 더 이상 말하지 않자, 더욱 신나서 비아냥거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순간 도범이 손을 뻗어 그를 막았다.“너는 왜 이렇게 매사에 신중하지 못해? 지금부터 내 말을 잘 들어. 무슨 일이 있어도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해. 알겠어?”도범의 꾸짖음에 오수경은 목을 움츠리며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전에 도범에게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었기에, 이번에는 더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이때, 검은 옷의 대장부는 냉소를 머금은 채 다시 도범을 바라보았다. 방금 그들의 대화를 일부 들었기에 도범에 대한 호기심은 더욱 커진 상태였다.“네가 정말 8품 종문의 친전 제자보다 강하다고 생각해?”도범은 눈살을 찌푸린 채 검은 옷의 대장부를 상대할 가치가 없다고 여겼다. 그러나 검은 옷의 대장부는 도범이 대답하지 않아도 화내지 않았다.이렇게 시간은 점점 흘러갔고, 아마도 내기 때문이거나 도범의 냉담한 태도 때문인지 상황은 이상할 정도로 고요해졌다. 도발적인 말이 다시 들리지 않았다. 제73회 대결이 곧 시작되려 할 때, 도범은 더 이상 쓸데없는 소리를 듣지 않게 되었다.잠시 후, 도범은 자리에서 일어나 숨을 내쉬고는 오수경을 향해 눈짓을 보냈다. 그리고는 나지막이 말했다.“누구를 보든, 어떤 말을 듣든, 이 자리에서 떠나지 마.”그 말을 마치고 도범은 큰 걸음으로 대결 무대를 향해 걸어갔다
“내기를 하려면 정식으로 해야 하지 않겠어? 누구도 뒤집을 수 없도록, 우리 계약 하나 체결하자. 네가 이기면 내가 19만 개의 영정을 주고, 내가 이기면 너는 같은 수량의 영정을 줘야 해.”그러자 민경운이 눈살을 찌푸린채 말했다.“너는 사람들과 계약을 맺는 걸 참 좋아하네.”칠현대에서 민경운은 도범이 검은 옷의 대장부와 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도범의 거래를 방해했었다. 그런데 도범과 내기를 할 때도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고 하니 어이없을 따름이었다. 도범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들고 진지한 표정으로 민경운을 바라보며 말했다.“계약을 맺고 싶지 않다면 솔직히 말해. 다른 핑계를 대지 말고, 계약을 맺는 것이 내기에서 가장 확실한 보증이라고 생각할 뿐이야.”이 말을 듣고 나서 민경운은 더 이상 도범과 쓸데없는 말을 나누고 싶지 않았다. 사실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민경운에게는 유리한 일이다.도범은 자신의 실력만 믿고 8품 종문의 친전 제자에게 도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도범이 이렇게 자발적으로 19만 개의 영정을 내놓으려 한다면, 민경운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야말로 어리석은 짓일 것이다. 그래서 민경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렇다면 어서 계약을 체결하자.”도범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평생 가장 빠른 속도로 계약 내용을 작성하고 자신의 정혈을 떨어뜨렸다. 그리고는 계약서 두루마리를 민경운에게 건네주었고, 민경운은 두말할 것도 없이 자신의 손가락을 그어 피를 떨어뜨렸다.계약서에 적힌 모든 문자가 즉시 뒤틀리며 두루마리의 속박을 벗어나 공중에 떠올랐다. 천지의 기운이 쏟아져 내려와 이 문자들과 얽히기 시작했고, 세 번의 호흡 후에 문자는 다시 두루마리에 합쳐졌다. 이것은 계약이 체결되었음을 의미했다.모든 절차가 끝난 후, 도범은 미소를 머금은 채 계약 두루마리를 회수했다. 계약이 체결되면 변경할 수 없고, 거짓말할 수도 없다.한편, 민경운은 도범의 흥미진진한 모습을 보고 얼굴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 민경운은 콧방귀를 뀌며
도범은 고개를 돌려 오양수를 한 번 쳐다보았다. 그 순간 오양수는 진지한 표정으로 도범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진실한 눈빛은 마치 자신이 말한 모든 것이 반드시 이루어질 일이라는 믿음을 주려고 하는 듯했다.도범은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 도범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오양수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강했다. 그러나 도범이 말하는 강함은 오양수가 다른 사람들보다 실력이 뛰어나다는 뜻이 아니었다. 오히려 오양수는 다른 사람들을 화나게 만드는 재주가 훨씬 더 뛰어났다.평소에는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도범이지만, 오양수의 몇 마디에 지금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으니 말이다. 도범은 냉소를 터뜨리며 말했다.“네가 한 말 잊지 마.”그러자 오양수는 눈살을 살짝 치켜올린 채 말했다.“당연히 내가 한 모든 말을 기억할 거야!”도범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대결 무대에 있는 실력이 비슷한 두 무사에게 시선을 돌렸다. 주위는 다시 적막에 휩싸였다. 오양수는 도범이 시선을 돌리는 모습을 보고 불쾌해났다.오양수가 방금 한 말은 물론 의도가 있었다. 오양수는 자신의 말이 끝나면 도범의 얼굴에 두려움과 걱정이 스며드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도범이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며 몸서리치는 모습을 기대했었다. 도범이 자신에게 자비를 구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도범은 냉소 외에 어떠한 감정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오양수는 자신이 방금 했던 말이 충분히 잔인하지 않았던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민경운의 얼굴도 역시 어두워졌다. 민경운은 오양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도범이 일어날 일을 미리 두려워하며 땅에 엎드려 용서를 구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했다. 그러나 도범의 반응은 너무나 작았다. 잠시 후, 민경운은 깊은 숨을 들이쉬고 오양수 옆에 털썩 앉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오양수 하나만이 자리하고 있었다.한편, 도범은 이들과 더 얽히고 싶지 않아 다시 대결 무대에 집중하며 말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이렇게 시간을 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