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태연은 수호가 떠나가는 뒷모습을 보며 얼굴을 붉혔다.그러면서 방금 수호에게 안겼던 느낌을 회상했다.수호의 넓은 품에 안겼을 때 힘 있는 팔과 탄탄한 근육이 고스란히 느껴졌다.그 상황을 회상하니 저도 모르게 호흡이 가빠졌고 저녁을 할 생각조차 사라졌다.태연은 수호의 침대에 앉아 수호가 누워 있던 곳을 손으로 문질렀다.침대에는 아직 수호의 온기가 느껴졌다.그렇게 한참 문질러대던 태연은 끝내 참지 못하고 그 자리에 누웠다.마침 수호의 품에 안겼을 때처럼.태연은 지금껏 남자의 품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른다.때문에 방금 전 느낌이 못내 그리웠다.곧이어 수호가 덮었던 이불을 덮자 이상한 느낌이 태연을 덮쳤다.그리고 잠시 뒤, 태연은 손을 제 옷 안에 넣으며 낮은 신음을 내기 시작했다....분명 형수를 잠깐 놀려주려고 한 것뿐인데, 오히려 내가 이렇게 도망치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역시 배짱이 부족한 게 틀림없다.하지만 형수를 희롱한다 해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다시금 뇌리를 스쳐 나는 앞으로 다시는 이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그렇지 않으면 고생하는 건 결국 나니까.계단을 내려오자마자 나는 곧장 마트로 가려고 했지만 아래가 너무 불편해 미칠 지경이었다.게다가 이렇게 밖에 나가면 최소 변태로 몰릴 게 분명했다.때문에 나는 동네 근처에 있는 공원에서 손으로 해결하고 나서 마트로 향했다.형수는 간장 심부름만 시켰지만 나는 간장 외에도 과일을 더 구매했다.그도 그럴 게, 매일 출근하는 것도 힘든데 애까지 만들어야 하는 동성 형이 안쓰러워서였다.게다가 매번 실패할수록 형의 부담이 더 커지고 괴로울 게 뻔했다.아직 일자리도 없고 돈도 못 버는 나로서는 형을 이렇게 도울 수밖에 없었다.과일 코너에서 과일을 이것저것 고르고 계산하려고 고개를 들었을 때, 내 눈에 익숙한 실루엣이 들어왔다.애교 누나.애교 누나도 과일 코너에서 과일을 고르고 있었는데, 마침 바나나를 고르고 있었다. 심지어 어느 게 더 큰지 비교하면서 말이다.그
애교 누나가 긴장해하는 모습을 보자 나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저도 알아요. 저는 그저 누나한테 인사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그런데 계속 저를 무시하니까 마음이 급해서 그만.”애교 누나는 어색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내가 수호 씨를 무시하든 말든 그게 중요한가요?”“당연히 중요하죠.”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그랬더니 애교 누나가 어색하면서도 수줍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그 모습은 너무 매혹적이었다.그러다 순간 형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여자를 꼬시려면 너무 양반처럼 굴면 안 돼요. 가끔 대답하게 행동할 필요가 있어요.’애교 누나는 지금 화나거나 분노한 것이 아니라 분명 부끄러워하고 있는 거다.그러니 오전의 일로 나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그저 낯선 사람이 그런 짓을 하는 걸 보고 쑥스러워하는 게 틀림없다.“애교 누나는 나한테 특별한 사람이거든요.”이 한마디를 내뱉고 나니 내 심장은 또 두근댔다.애교 누나한테 이런 수작이 먹힐지 몰라서 더 불안했다.“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우리 이제 한 번밖에 안 봤는데, 특별하다니요?”애교 누나는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새까만 눈동자에 호기심이 섞여 있었다.희망이 있다는 걸 인지한 순간 나는 웃음이 났다.“특별해요. 정확히 어디가 특별한지는 말할 수 없지만 달라요. 그러니까 저 무시하지 마요. 네?”“알았으니까 그만해요. 사람들도 많은데 듣기라도 하면 어쩌려고요.”애교 누나는 얼굴을 붉히며 마치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나는 너무 기뻐 다급히 말했다.“알았어요. 그만할게요. 그런데 저녁 준비하려고 장 보는 거예요?”“네.”“평소 혼자 밥해 먹어요?”“그렇죠.”“너무 외롭겠다. 왜 형수님 집에 놀러 오지 않아요?”“태연이가 맨날 남편과 애 만드느라 바쁜데, 어떻게 가요? 그러다가 난감한 장면이라도 마주치면 어떡하라고요.”하긴.형수는 개방적이라 남녀 사이의 일을 입에 달고 산다지만 애교 누나는 내성적인 데다 부끄럼도 많이 탄다
“애교 누나, 저... 하! 역시 이 입이 문제야. 누나, 저 때리세요.”설명할수록 점점 더 엉망이 되어버린다는 생각에 나는 차라리 설명하지 않기로 했다.‘형수님처럼 사람 마음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면서 뭐 여자를 꼬신다고 나대?’‘그러니까 일을 망쳤지.’나는 내 자신이 미워 죽을 지경이었다.그런데 애교 누나가 나를 보며 갑자기 피식 웃었다.하지만 마음이 놓이지는 않았다.애교 누나가 대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니까.나는 확신이 없어 어색함을 무릅쓰고 물었다.“왜 웃어요?”“아니에요, 그냥 수호 씨가 좀 귀여워서요. 수호 씨 형수는 어찌 보면 참 교활하고, 형도 엄청 능력자인데, 수호 씨는 참 올곧네요. 그런데 또 올곧다고 하자니 그런 짓을 벌였고.”애교 누나가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운 듯 말하자 나는 얼른 누나한테 바싹 다가가 속삭였다.“누나, 남자가 올곧은 거랑 그런 일을 하는 거랑 상관없어요. 욕구는 풀어야 하니까요. 그건 화장실 가는 거랑 똑같다고요. 안 그러면 불편하니까.”애교 누나는 나를 흘끗거렸다.“못 믿겠어요. 분명 변태면서.”나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낮게 속삭였다.“그건 누나가 남자를 몰라서 그렇겠죠. 형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던데.”“뭐라고요?”“네? 아무것도 아니에요. 물건은 다 샀어요? 다 샀으면 얼른 계산하러 가요.”나는 얼른 말을 돌렸다.그러자 애교 누나가 대답했다.“아직 못 샀어요. 수호 씨가 먼저 가서 계산해요.”“얼른 사요. 기다릴게요. 같이 계산해요.”그때, 애교 누나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나랑 붙어 있지 마. 여기 오는 사람들 다 동네 사람들이야. 내가 유부녀인 걸 아는데 너랑 같이 있는 걸 보면 뒤에서 수군댈 거야.”그 말에 순간 실망감이 몰려왔다.‘애교 누나는 너무 보수적이야. 같이 걷는 것도 싫어하다니.’이렇게 하다가 절대로 애교 누나를 공략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물건을 사 들고 풀이 죽어 집으로 돌아오니 형수가 마침
“형수님, 저는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요.”내가 다급히 내 의견을 밝히자 형수는 싱긋 웃었다.“알아요. 수호 씨는 그런 남자들과 달라요. 수호 씨가 성실하고 착해서 내 친구를 유혹하라고 한 거예요. 왕정민은 사람도 아니거든요. 밖에 내연녀가 있으니 비겁한 방법으로 애교와 이혼하려 하잖아요.”“그런데 만약 우리를 찾아온 게 아니라 밖에서 다른 사람을 찾아갔다고 생각해 봐요, 애교가 어떤 꼴 날지. 왕정민이 이러는 것도 이게 깔끔하게 이혼할 방법이라서 그래요. 그놈도 알고 있거든요, 본인 아내가 얼마나 남자에 목 말라 있는지.”형수의 말을 들으니 나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그러니까 그 말은 애교 누나가 저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평판과 성격 때문에 쉽게 저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뿐이라는 뜻이에요?”형수는 고개를 끄덕였다.“아니면 내가 왜 수호 씨더러 애교 마음을 열라고 하겠어요? 내가 확신하는데, 늦은 밤마다 애교도 수없이 혼자 해결했을 거예요. 믿기 힘들면 오늘 밤 베란다로 훔쳐보던가요.”그 말에 나는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여기 베란다에서 애교 누나네 집이 보여요?”내가 조심스럽게 묻자 형수는 눈웃음을 치며 대답했다.“당연하죠. 우리 집은 바로 이어져 있어 베란다도 붙어 있어요. 왕정민도 동성 씨한테 수호 씨 같은 동생이 있는 걸 알고 우리한테 그런 부탁한 거예요. 심지어 수호 씨가 이제 막 졸업한 젊고 팔팔한 청년이라는 것도 알아요.”“그래서 분명 수호 씨가 나서면 애교가 얼마 못 가 수호 씨한테 스며들 거라고 생각했을 거예요.”그 말을 들으니 내 심장은 또 요동쳤다.그때 형수가 말을 이었다.“지금 뭘 걱정하는지 알아요. 오늘 밤 내가 말한 대로 해요, 그러면 분명 그런 걱정도 사라질 거예요.”내가 한창 넋을 잃고 듣고 있을 때, 형수가 눈을 내리깔며 내 아래를 흘끗거렸다.“수호 씨는 어쩜 정력이 이렇게 좋아요? 어떻게 아무 때나 서지?”그 말에 놀라 고개를 숙여 확인했더니 아래가 불룩 튀어나와 있었다.나는 순
나를 도와주겠다고 했으면서 결국 이렇게 마무리 짓는 형수 때문에 나는 마음이 간질거렸다.전에 형수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될 리도 없었을 텐데 말이다.나는 형수를 보며 용기 내어 말했다.“형수님, 제가 씻는 거 도와줄래요?”“네? 내가요? 지금 무슨 생각 하는 거예요?”나는 솔직한 내 생각을 말했다.“나 대신 씻겨달라는 거 아니에요. 그냥 등만 밀어달라는 거지.”“그래도 안 돼요.”형수의 거절에 나는 너무 괴로웠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캐물었다.“왜요?”“다 큰 성인 남성이 나체로 내 앞에 서 있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내가 팬티만 입고 있었을 때도 다 봤으면서.”나는 이대로 포기하기 싫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무슨 일이 있어도 형수와 함께 들어가고 싶었으니까.그런데 형수는 내 이마를 손가락으로 튕겼다.“수호 씨 말대로 아까는 팬티를 입고 있었잖아요. 이따가 샤워하려면 나체로 있어야 하는데, 그게 어디 같아요?”“다를 건 또 뭔데요?”나는 포기하지 않고 중얼거렸다.‘고작 천 쪼가리 한 장일 뿐인데, 볼 것도 이미 다 봤으면서.’형수는 내 말을 들었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왜요? 기분 안 좋아요?”“아니요.”“아니긴. 표정에서 다 티 나거든요.”형수를 보니 내 마음은 또 요동쳤다.하지만 결국 용기 내어 말했다.“형수님, 혹시 저랑 장난하는 거예요?”“왜 그렇게 말해요?”“저를 자꾸만 무시하잖아요. 괴로워하는 거 뻔히 알면서 야릇한 말만 하다가 도와달라고 하면 안 된다고 하고.”형수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것 때문에 화난 거예요? 그럼 하나만 물을게요. 내가 잠옷을 입고 집에서 돌아다니는 거랑 아무것도 안 걸치고 돌아다니는 게 같아요?”나는 다급히 고개를 저으며 형수의 눈치를 살폈다.형수는 방금 샤워하고 나와 잠옷을 입고 있었다.그래서인지 가슴에 더욱 눈길이 갔다.‘원래부터 큰 건 알고 있었는데, 이 정도일 줄이야.’가뜩이나 터질 것 같던 아래가 점점 더 괴로웠다.그때 형
욕실에 들어오자마자 나는 웃옷과 바지를 벗었고, 형수는 그런 나를 빤히 바라봤다.솔직히 이러고 있으니 우리가 마치 뭐라도 할 것처럼 부끄러웠다.그런데 형수마저 얇은 슬립 한 장 걸치고 있으니 입이 마르고 목이 탔다.얼마 지나지 않아 내 몸에는 팬티 한 장만 남았다. 그것도 불룩 튀어나온 채로.너무 부끄러워 형수를 볼 수 없어 물을 틀었더니 차가운 물이 내 몸 위에 쏟아졌다. 하지만 마음속을 지핀 불은 좀처럼 꺼지지 않았다.그 사이 형수는 어느새 때 밀이 수건을 손에 낀 채 내 등을 밀기 시작했다.“조금만 더 숙여요. 너무 커서 안 닿잖아요.”형수가 말하면서 갑자기 내 엉덩이를 때리는 바람에 나는 몸을 흠칫 떨었다.곧이어 몸이 달아올라 불안해지기 시작했다.나는 속으로 뒤에 있는 사람은 동성 형의 여자라는 걸 자꾸만 되뇌면서 절대 형수한테 품지 말아야 할 마음을 품어서는 안 된다고 나 자신을 설득했다.‘형수님이 내 등을 밀어주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해야지.’이렇게 생각하면서 허리를 숙이자 형수는 얼른 내 옆으로 다가와 내 등을 밀어주기 시작했다.형수의 동작에 슬립 치마가 따라서 하늘거렸다.고작 슬립 치마일 뿐이었지만 형수의 나른한 몸이 느껴져 이상한 감각이 피어올랐다.게다가 형수가 내 등을 밀어줄 때마다 가슴이 등에 닿는 느낌이 선명하게 느껴졌다.그런 느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황홀했다.나는 등에 닿는 감각을 느끼면서 곁눈질로 형수의 다리를 훔쳐보았다.형수의 다리는 매끈하고 새하얬다. 게다가 슬립 끝자락이 물에 젖어 투명한 색을 띠며 다리에 딱 달라붙으며 다리 사이의 광경이 내 눈에 고스란히 들어왔다.순간 가슴이 더 빨리 뛰기 시작하며 눈까지 빨개졌고 아래가 더 뻐근했다.하지만 형수가 나가 버리는 걸 원하지 않았기에 애써 내 상태를 숨겼다.겨우 설득해서 얻은 기회인데 이대로 놓칠 수는 없었으니까.“수호 씨 등 정말 탄탄하네요.”등을 밀어주던 형수가 갑자기 내 등을 살살 쓰다듬으며 감탄했다.순간 괴로움이 배가 되어 당
하지만 말캉한 입술이 느껴지기는커녕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눈을 떠보니 형수는 어느새 욕실 문 앞에서 팔짱을 낀 채 나를 꿰뚫어 볼 것처럼 바라보고 있었다.“수호 씨, 방금 뭐한 거예요?”형수의 질문에 나는 가슴이 콕콕 찔렸다.나쁜 짓 좀 하려고 했더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덜미만 잡히다니.너무 쪽팔렸다.게다가 더욱 중요한 건 어렵게 용기를 냈는데 형수가 그걸 망쳐버렸다는 거였다.나는 말을 더듬으며 황급히 형수의 눈을 피했다.“형수님, 잘못했어요. 앞으로 다시는 안 그럴게요.”“천천히 씻고 나와요. 나는 저녁 준비하러 갈 테니까.”형수는 이 말만 하고 밖으로 나가버렸다.그 순간 후회가 밀려왔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한 거야? 형수가 분명 나를 변태라고 생각할 텐데.’나는 내 얼굴을 세게 때렸다.“정수호! 너 어떻게 형수님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맞지 않은 것만 해도 감지덕지해.”심지어 넋이 나가 제대로 샤워할 수 없어 대충 씻고 나서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다.그 시각, 형수는 주방에서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나는 주방에 가서 형수를 보고 싶었지만 그럴 배짱이 없어 내 방으로 돌아갔다.“하!”깊은 한숨을 푹 내쉬며 나는 형수에게 사과라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형수가 나를 그렇게 도왔는데, 나는 형수를 상대로 그런 생각이나 하다니, 내가 생각해도 너무했다.’나는 속으로 구시렁대며 젖은 바지를 벗었다. 그러고는 깨끗한 바지로 갈아입으려 할 때 침대에 묻은 얼룩을 발견했다. 하지만 이미 말라 있었다.‘난 분명 침대에서 한 적 없는데, 이건 어디서 났지?’나는 이때까지 형수가 나 몰래 내 침대에서 부끄러운 짓을 했다는 걸 몰랐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그러고는 곧바로 깨끗한 바지로 갈아입은 뒤 주방으로 향했다.형수가 주방에서 식사 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마치 잘못을 저지른 어린애처럼 주방 입구에 서 있었다.“형수님, 죄송해요. 아까는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형수는 그 말에 나를 힐끗 보더니 다시
“그런데 만약 능력이 없다면 신의 자리에 앉혀도 제대로 해낼 수 없고. 그리고 아직 젊으니 더 배우라고 했어요. 그러니 한의원을 가든 말든 상관없어요.”나는 진심을 말한 것뿐인데 형수는 나를 대견하다는 듯 바라봤다.“역시 착하네요, 앞으로 크게 되겠어요.”형수는 이 말을 하면서 시선을 내 아래로 옮기더니 깜짝 놀란 듯 말했다.“방금 전에 찬물로 샤워했는데 왜 또 이렇게 됐어요?”그건 나도 답답했다.“저도 모르겠어요. 욕실에서 나온 지 얼마 안 지나서 이렇게 됐어요.”“하, 이건 수호 씨가 그동안 여자를 만나지 못해 욕구가 쌓여서 그래요. 괴로운 건 알겠지만 절대 나를 어떻게 할 생각은 하지 마요. 난 수호 씨 형수예요.”“오늘 밤 내가 알려준 대로 몰래 베란다 넘어가 봐요. 애교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면 어떻게 꼬셔야 할지도 감이 잡힐 거예요.”나는 애써 욕구를 억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면서 형수가 나를 더 이상 보지 않을까 봐 가지고 있던 마음을 포기했다.그 사이, 형수가 전화로 형이 오늘 야근 때문에 집에 늦게 들어온다는 걸 확인한 덕에 우리끼리 식사하게 되었다.식사를 마치자 날이 점점 어두워졌고, 형수는 나더러 얼른 베란다로 가라고 재촉했다.“네? 이렇게 빨리요? 이따가 가면 안 될까요?”‘아직 밖이 밝은데 너무 급한 거 아닌가?’‘아무리 그래도 애교 누나가 이 시간에 그런 짓을 할 리는 없잖아.’“수호 씨가 어떻게 알아요? 우선 넘어가서 쪼그리고 앉아 때를 기다려야죠.”형수의 끈질긴 설득 끝에 나는 결국 몰래 애교 누나네 집 베란다로 숨어들었다.역시나 침실에는 아직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거실에서 티브이 소리가 들려왔다.‘거실에서 티브이 보고 있나 보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니?’나는 무료한 나머지 베란다를 둘러봤다.그랬더니 베란다에 널려 있는 속옷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 속옷은 모두 애교 누나 거였다.‘그런데 바나나는 왜 걸려있지?’‘설마 그러려는 건 아니겠지?’이건 내 생각이 더럽다고 생각할 게 아니
임화영은 피식 웃었다.“상관하라고 해도 안 해요.”“그럼 좋아요. 그렇게 해요.”임화영과 주해진은 내가 그렇게 흔쾌히 승낙할 거라고 생각지 못했는지 구석에 숨어 다시 수군대기 시작했다.임화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저 사람이 자기랑 김진호더러 한의관 일에 끼어들지 모하게 한다며? 왜 단번에 동의하는 건데?”주해진도 멍한 얼굴이었다.“나도 몰라. 알 게 뭐야. 우선 당심부터 안에 파고들어. 경고하는데 저 자식 성깔 더러우니까 절대 부딪히지 마.”임화영은 정신이 딴 데 팔려 있었다. 그도 그럴 게, 그녀는 나에게 복수할 생각으로 계속 나를 노려보고 있었으니까. 심지어 주해진의 말을 들은 순간 자기 남편이 너무 겁이 많다고 생각했다.임화영은 어물쩍 넘어갔다.“알았어. 알았다고. 자기는 가서 일 봐.”주해진이 떠난 뒤 임화영은 나한테 그동안 정리한 장부를 요구했다.하지만 고수연이 오늘 휴가를 낸 탓에 나는 내일 그녀가 돌아오면 보여주겠다고 넘겼다.내 대답을 들었으면서 임화영은 떠나지 않고 계속 가게 안을 돌아다녔다.그래도 장사를 방해하지만 않으면 상관없었다.다행히 우리가 며칠 동안 계획을 실시한 덕에 가게 손님이 점점 많아지는 추세였다.현성은 나를 사무실로 불러들여 깔깔 웃으며 말했다.“수호야, 네 아이디어 진짜 짱이다. 주 사장네 그쪽 문제 터졌어. 오늘 가게에 손님들이 찾아와 소란 피웠대.”“다른 손님들도 그걸 보고 바로 도망갔고. 그래서 오늘 우리 가게에 손님이 많아졌나 봐.”이 모든 건 이미 예상했던 바다.가짜 약을 팔았으니 당연히 근본적으로 병을 고치지 못했을 거다. 비록 단기간에 수익을 냈겠지만 시간이 지나도 약효를 보지 못하면 고객의 불만은 당연히 커질 거다.게다가 내가 그동안 찾아가 신경을 긁은 것 때문에 워낙 예민했던 주광덕은 그 일을 제대로 처리할 정신도 아니었다.나는 현성을 바로 경고했다.“아직 긴장을 풀지 마. 요즘 계속 계획대로 해서 저쪽이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해야 해.”“알았어!”현성은 자기가 맡
“주해진, 너도 사업하는 사람인데 좀 멀리 내다봐. 안목이 그래서 쓰겠어?”나는 주해진 만큼 비겁하고 뻔뻔하지 않다.비록 요즘 고객이 적지만, 내가 사적으로 번 수입도 모두 가게 총수입에 더했다심지어 서광진한테서 번 것만 해도 4억 가까이 된다. 그건 한의관 반년 매출이나 마찬가지다. 다만 나는 그것까지 말하기 귀찮았다.주해진과 시시비비를 가른 뒤 나는 다시 차에 올랐다.“네 마누라더러 차 좀 빼라고 해.”그 여자는 여전히 바락바락 소리 질렀다.“자기야, 이렇게 저 사람 보낼 거야? 나 방금 맞았다고.”“우선 차 빼.”“안 돼. 나...”“차 빼!”주해진은 버럭 화를 냈다.그제야 여자는 고분고분 차를 뺐고 나는 그대로 두 사람을 지나쳤다.주해진은 차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화났어?”여자는 옆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주해진은 이내 싱글벙글 웃으며 여자의 어깨를 끌어안았다.“나도 어쩔 수 없었어. 지금 저 자식 덕에 돈 버는 입장이라 함부로 건드릴 수 없어.”임화영은 불만스러운 눈빛으로 주해진을 노려봤다.“그 한의관은 자기가 구매한 거 아니야? 돼 다른 사람한테 맡겨? 요즘 한의관 엄청 돈 번대. 술집보다 더. 특히 요즘 젊은 애들 사이에서 한약으로 건강 유지하는 게 유행이래.”주해진은 인내심 있게 설명했다.“이게 다 저 자식 인맥을 이용하려고 이러는 거잖아. 김진호 그 자식한테 희망 걸면 오픈하자마자 망해. 어쨌든 저 자식이 맡은 뒤로 천수당을 겨우 살려냈거든.”“그런데 저 자식이 나와 김진호를 너무 경계해서 방법을 대야 해. 안 그러면 이중장부를 만들지 누가 알아?”임화영은 뭔가 생각난 듯 주해진의 팔을 붙잡았다.“내가 예전에 회계를 전공했는데 가게 장부를 내가 맡는 건 어때?”“어려울 거야. 지금 장부를 맡는 건 저 자식이 찾아온 사람이거든.”주해진이 담배를 한 모금 들이켜며 말했다.그때 임화영이 버럭 소리쳤다.“가게 일도 저 사람이 관리하고 장부도 저 사람이 관리하면 우리는 어떻게 안심하라고?”
“누구더러 수다쟁이 아줌마라는 거야?”여자는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나를 향해 욕지거리를 퍼부었다.그때 나는 여자의 머리를 확 낚아채며 말했다.“당신 말하는 거잖아. 내려. 그 아가리부터 찢어줄 테니까.”사모님을 헐뜯다니, 나는 이 여자를 제대로 교육할 생각이었다.여자는 나에게 머리채를 잡힌 게 언짢았는지 화를 내며 차에서 내렸다. 다만 내리자마자 나를 향해 손톱을 세우며 달려들었지만 나한테 한 손에 제압당했다.나는 여자의 뺨을 인정사정없이 후려갈겼다. 다음 순간 여자의 입가에서 피가 흘러내렸다.“아, 내 입! 당신 나 때렸어? 피도 나잖아!”여자는 손에 묻은 피를 보더니 미친 여자처럼 고래고래 소리쳤다.“당신, 딱 기다려! 우리 남편더러 당신 죽여버리라고 할 테니까!”여자는 어디론가 전화했다.“여보세요? 자기야! 누가 지금 나 때려. 얼른 와줘... 지금 우리 단지 아파트 지하 주차장이야...”전화를 끊은 여자는 나한테 삿대질하며 버럭 소리쳤다.“당신 딱 기다려! 우리 남편이 와서 당신 죽여버릴 거니까!”“흥. 기다릴게.”내가 여자를 때렸다는 건, 여자의 남편이 이걸 문제 삼는 것도 두렵지 않다는 뜻이었다.‘그러게 누가 입 함부로 놀리래?’몇 분 뒤 익숙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나는 여자의 남편이 주해진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주해진도 자기 아내와 모순이 생긴 사람이 나일 거라고 생각지 못한 듯했다.여자는 나와 주해진의 사이를 몰랐기에 살을 붙이며 과장해서 말했다.“됐어. 알았어. 정수호, 이건 네 잘못이네. 어떻게 사람을 때릴 수 있지?”나도 물러서지 않았다.“네 마누라가 먼저 시비 걸었거든. 내가 무시했는데도 계속 입 놀려서 결국 참지 못하고 때린 거야.”“지금 말하는 상대가 임유미 맞지? 임유미랑 무슨 사이인데 그렇게 싸고 돌아?”나는 주해진을 노려봤다.“어디서 헛소리야? 천수당을 오픈할 때 정 사장님이 얼마나 많은 손님을 소개해 줬는데? 주해진, 은혜를 갚을 줄 알아야지.”“자기야, 저 사람 말 듣지 마
말을 마치자마자 나는 얼른 도망쳤다.떠나가는 내 뒷모습을 보는 사모님의 마음은 여전히 콩닥거렸다. 사모님은 자기 심장을 부여잡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왜 이러지? 여기가 왜 이렇게 빨리 뛰어? 왜... 첫사랑 할 때로 돌아간 기분이지?”“설마 내가 수호 씨를 좋아하나? 그럴 리 없어. 내가 호섭 씨랑 사이가 얼마나 좋은데. 그냥 결혼한 지 너무 오래돼서 감정이 무뎌진 거야. 난 그냥 수호 씨처럼 젊은 몸을 원했던 거야. 맞아. 그런 거야.”사모님은 사실 마음이 불편했다. 보수적인 여자로서 그녀는 평생 한 남자만 바라보고 싶었다. 그만큼 사장님을 사랑했고 사장님도 사모님을 사랑한다.두 사람은 다른 사람 눈에 늘 잉꼬부부였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모범 부부였다.하지만 사모님은 자기가 백연우처럼 젊은 남자의 몸에 환상을 품고 욕망을 품게 되는 날이 올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다.비록 한순간이었지만 사모님은 자기가 더럽고 불결하다고 느껴져 결국 괴로움에 눈물까지 보였다.사모님은 백연우처럼 되기 싫었고 사장님한테 미안한 일을 하기 싫었다. 결국 핸드폰에 들어 있는 영상을 모두 지워버리고는 속으로 허튼 생각하지 말고 다시는 그런 걸 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계속 그런 영상을 보면 자기가 정말 중독될 것 같아 두려웠다.나는 그런 상황을 알 리 없었다.사모님 집에서 나온 나는 곧장 주차장으로 향했다. 마음이 복잡해 정신이 온통 그곳에 쏠린 탓에 나는 실수로 맞은편 차와 동시에 주차장을 나오다가 부딪히고 말았다.“운전 똑바로 안 해요?”맞은편 여자는 창문을 내려 버럭 소리쳤다.이 모든 게 내 실수라 나는 연신 사과만 해댔다.그때 여자가 갑자기 나를 보며 소리쳤다.“나 그쪽 알아요. 계속 8단지 2동 15호실로 가던데, 그 집 주인이랑 무슨 사이예요?”여자가 말한 15호실은 사모님 집이었다.나는 사모님이 안 좋은 소문에 휘말릴까 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시동을 걸었다.하지만 여자가 내 앞을 끈질기게 막아서는 탓에 나는 앞으로 갈 수 없었다. 여자는
나는 잠시 고민 끝에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사모님은 눈이 휘둥그레서 나를 바라봤다.“수호 씨... 노래할 줄도 알아요? 그런데... 듣기는 좀 별로네요.”“어쩔 수 없어요. 제가 음치거든요. 이게 최선이니 듣기 싫어도 참아요.”나는 사실 사모님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일부러 음치인 척했던 거다.아니나 다를까 사모님은 그게 웃겼는지 피식 웃었다.나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얼른 약을 마저 발라주었다.“됐어요. 요즘 되도록 움직이지 말고 쉬세요. 그래야 빨리 나아요.”나는 사모님의 다리를 내려놓으며 귀띔했다.그러자 사모님은 바로 난색을 표했다.“그런데 안 움직이면 우리 남편 밥은 어떻게 준비해요? 남편 몸이 회복한 지 얼마 안 되는데, 이럴 때일수록 더 보양해야 하잖아요.”사모님은 사장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듯했다.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말했다.“제가 요즘 마침 이 동네에 와서 환자를 치료해야 하니까 음식을 해올게요. 장 볼 음식이 있으면 저한테 문자를 보내면 올 때 슈퍼에 들러 사 올게요.”이건 서로에게 좋은 방법이었다.하지만 사모님은 믿지 않았다.“지금 나 속이는 거죠? 어떻게 이렇게 공교로운 일이 있어요?”“제가 왜 거짓말하겠어요?”나는 서광진한테서 받은 카드를 꺼내 들었다.“이것 봐요. 치료비도 받았잖아요.”“그, 그러면 부탁드릴게요.”사모님은 말을 마치더니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혔다.그 모습을 보니 문득 왜 얼굴을 붉히는지 궁금해졌다. 그러다가 나는 곧바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사모님은 몇 번이나 입을 벙긋거리다가 겨우 용기를 내어 말했다.“수호 씨, 전에 말한 약재가 정말 지속 시간을 늘릴 수 있어요?”사모님은 이 질문을 하려고 그랬던 거였다.사모님은 사장님이 그 방면에서 강해지길 바랐다. 그래야 부부 관계가 더 좋아질 테니까.“사모님, 너무 조급해하면 안 돼요. 사장님 몸은 아무 문제없어요. 다만 이제 막 건강을 회복해서 인내심이 필요해요. 사장님은 분명 점점 강해질 거예요.”강해진다는 말 한마디
나는 서광진한테 말했다.“우선 서나연 씨한테 약을 처방하고 돌아가서 연구할게요. 제가 상세한 치료 방안을 짜면 다시 연락드리죠.”“알겠네. 그럼 정 선생의 좋은 소식을 기다리겠네.”나는 겨우 눈앞의 일을 해결하고 도망치듯 그 집을 나왔다.비록 가사 도우미의 말이 조금 과장되었지만 서씨 가문 사람과 지내는 건 확실히 스트레스를 받고 압박감이 느껴졌다.나는 왠지 이 모든 게 간단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처음부터 짜여진 판이었을지도 모른다.다만 나는 현재 그 판 안에 놓인 상태라 잘 보이지 않기에 한 걸음씩 가보면서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백조의 호수에서 나온 나는 곧바로 가게로 향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마침 유미 사모님과 마주쳤다.사모님은 마트를 다녀온 모양인지 커다란 봉투 두 개를 들고 있었다. 다만 발목을 삔 모양인지 고통스러워하며 일어섰다.나는 얼른 다가갔다.“사모님, 괜찮아요?”“수호 씨였군요. 방금 실수로 발을 삐었어요.”나는 몸을 쪼그리고 앉아 확인했다. 사모님의 발은 근육을 다친 듯 퉁퉁 부어 있었다.나는 얼른 사모님을 부축해 일어났다.“사모님, 발이 많이 다친 듯한데, 반드시 처리해야 해요. 제가 업어 드릴게요.”사모님의 얼굴은 순식간에 화끈 달아올랐고 목까지 빨개졌다.“어, 어떻게 그래요? 나 대신 짐이나 들어줘요. 혼자 걸을 수 있으니까.”나는 특별히 강조했다.“안 돼요. 근육을 다쳐서 더 걸으면 부상이 심해져요.”“괜찮아요. 힘 안 써요.”사모님은 여전히 보수적이라 과도한 스킨십을 원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나도 강요할 수는 없었다.나는 사모님 대신 짐을 들었고, 사모님은 이를 악문 채 절뚝거리며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얼른 얼음주머니를 만들어 사모님에게 얼음찜질을 해주었다. 다만 사모님은 여전히 부끄러워했다.“수호 씨, 이러지 마요. 내가 직접 할게요.”나는 단호하게 시모님을 자리에 앉혔다.“사모님, 앉아서 가만히 계세요. 발목이 더 심해진 거 못 느꼈어요?”사모님도
‘응? 이건 무슨 수법이지?’나는 앞에 있는 은행 카드를 보니 마음이 살짝 동요했다.만약 예전이었다면 4억은 나한테 천문학적인 숫자였을 거다.하지만 지금은 이게 내 목숨을 앗아가는 부적 같았다.“서 회장님, 돈은 필요 없습니다. 저 이미 서지예 씨한테 최선을 다한다고 말씀드렸어요.”나는 적어도 살길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이 카드를 받으면 마지막 살길도 막히는 셈이나 다름없다.서광진은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적나?”“아닙니다. 서지예 씨가 저한테 손님을 소개해 준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회장님 돈까지 받겠어요.”역시 사회적으로 지위가 있는 사람과 대화할 때는 분위기에 압도되어 한순간도 경계를 늦추지 말고 머리를 굴려야 한다.서광진은 ‘하’하고 짤막한 웃음을 내뱉았다.“카드도 받게. 지예랑 한 거래는 나랑 상관없으니 따져 묻지 않겠네. 내 요구는 단 하나, 최선을 다해 나연을 치료하는 거네. 내가 나연이를 왜 이렇게 신경 쓰는지 어나?”서광진은 갑자기 말머리를 돌리며 물었다.그걸 내가 알 턱이 있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서광진의 눈에서 순간 분노의 불꽃이 튀었다.“임천호 그 인간 때문이네. 나연이가 정상으로 돌아와야 임천호와 맞설 수 있으니까.임천호가 지금 자리에 오른 건 내 도움 없이는 안 됐을 거네. 그런데 그 자식이 은혜도 모르고 나연이와 나한테 미안한 짓을 했지.”“그런 자식이 아무렇지 않게 누비고 다니는 걸 내가 어떻게 보고만 있을 수 있겠나? 난 나연이 혼자 모든 걸 감당하게 하지 않을 거네.”‘또 왜 임천호와 엮였지?’‘나는 정말 임천호와 악연일까? 왜 벗어나지 못할까?’나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입을 꾹 다물었다.그때 서광진이 갑자기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조사해 보니 임천호랑 원한이 있던데. 지난번에 S시에서 4억을 사기당했다지?”나는 너무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는 서광진이 나를 조사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서광진은 갑자기 껄껄 웃었다.“걱정하지 말게. 자네한테 뭘 하려
“아직은 말하기 어려워요. 이따가 확인해 봐야 해요.”나는 솔직히 말했다.그러자 가사 도우미는 한숨을 푹 쉬었다.“가뜩이나 일하기 어려운데, 사직서라도 제출하고 싶어지네요.”“아주머니가 사직서를 내든 말든 저랑 무슨 상관인데요?”“나도 어디 말할 데 없어서 한탄하는 거잖아요. 있잖아요, 서 회장님 평소에 다정하고 친절해 보여도 화나면 호랑이보다 더 무서워요.”그 말에 내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이 아주머니가 이곳에서 한동안 일했으니 서씨 가문에 대해 잘 알겠지?’나는 서씨 가문에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간단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때문에 우선 식구들의 성격을 구체적으로 알아야 했다.“또 아는 거 있으면 말해줄 수 있어요?”나는 궁금한 듯 물었다.그러자 가사 도우미도 평소에 재벌가 일화에 관심이 많았는지 끊임없이 이야기를 꺼냈다.“서 회장님은 두 따님을 엄청 아끼는데 아내분한테는 잘해주지 않는 것 같아요... 내가 서씨 가문에서 1년 넘게 일했는데 사모님은 본 적이 없거든요. 소문에 의하면 감금당했다는 말도 있고 맞아 죽었다는 말도 있어요...”그 말을 들으니 순간 등골이 오싹했지만 나는 애써 부인하려고 했다.‘이에 설마,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설마 사람을 때려죽이겠어?’만약 그게 정말이라면 너무 무섭다.“지, 지금 험담하는 거 아니죠? 서 회장님 그런 사람 아닌 것 같던데요.”나는 확신이 서지 않았지만 서광진이 내 목을 잡던 모습을 떠올리니 덜컥 겁이 났다.“나도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는데, 어느 하루 밤중에 일어나 화장실에 가다가 여자 울음소리를 들었어요. 그것도 바닥에서 나는 소리였어요.”“그때 내가 너무 놀라 바로 방에 들어갔는데, 비명이 계속 들렸어요. 마치 누구한테 맞는 것 같았거든요.”“됐어요. 그만 말해요. 질금 일부러 저 겁주려는 거죠?”나는 다급히 가사 도우미의 말을 잘랐다.“내가 왜 겁을 줘요?”나는 어른 반문했다.“서씨 가문이 그렇게 무서우면 왜 진작 도망가지 않았어요?”“나도 도망치고
서광진이 기뻐하기도 잠시, 서나연은 힘 빠진 듯 쓰러졌다.“나연아, 나연아, 왜 그래?”서광진의 미소는 순간 사라지더니 딸에 대한 걱정과 관심만 남았다.나는 얼른 앞으로 다가가 확인했다.“별일 아닙니다. 서나연 씨는 감정 소모가 심해 혼절한 겁니다.”“하, 다 내 탓이네. 내가 너무 섣불리 좋아했어. 이미 예전으로 돌아온 줄 알았는데.”“서나연 씨는 예전에 화끈한 성격이었나요?”나는 서나연이 온화하고 내성적인 성격이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방금 그녀의 모습에 깜짝 놀랐던 거다.서광진은 딸을 눕히고 나서야 대답했다.“나연이는 예전에 엄청 활발하고 귀여웠네. 성격도 털털했고. 그런데 임천호를 만난 뒤로...”임천호를 언급하자마자 서광진은 저도 모르게 이를 갈았다.“임천호를 만난 뒤로 아예 다른 사람이 되었네. 처음에 임천호가 잘해줄 때는 매일 기뻐했는데, 임천호의 사업이 성공하면서 우리 서씨 가문이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지자 나연에 대한 태도가 순식간에 변하더군.”“그 뒤로 그렇게 활발하던 나연이가 매일 우울해하고 웃지도 않고 지금처럼 변했네.”딸이 사람을 잘못 만났던 일을 떠올리자 서광진의 눈에는 아픔이 번졌다.명문가의 귀한 딸로 태어난 서나연은 임천호를 만나지 않고, 모든 마음을 바쳐 임천호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거다.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아야 하는 공주가 지금은 한 맺힌 아줌마로 변해버렸다.그런 딸을 보며 슬퍼하지 않을 부모는 없다.“지예 말로는 자네가 나연이를 치료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던데. 정말 방법이 있나?”서광진은 갑자기 나를 보면서 진지하게 물었다.나는 한의사라 몸은 치료할 수 있다. 하지만 서나연의 문제는 몸이 아닌 마음이다.나는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다.“서 회장님, 서나연 씨 상태는 심리 치료예요. 약물은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없어요.”“그게 무슨 말인가? 자네도 우리 딸을 치료할 수 없다는 뜻인가?”서광진은 갑자기 내 멱살을 잡으며 흉흉한 눈빛으로 노려보며 따져 물었다.나는 흠칫 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