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말캉한 입술이 느껴지기는커녕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눈을 떠보니 형수는 어느새 욕실 문 앞에서 팔짱을 낀 채 나를 꿰뚫어 볼 것처럼 바라보고 있었다.“수호 씨, 방금 뭐한 거예요?”형수의 질문에 나는 가슴이 콕콕 찔렸다.나쁜 짓 좀 하려고 했더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덜미만 잡히다니.너무 쪽팔렸다.게다가 더욱 중요한 건 어렵게 용기를 냈는데 형수가 그걸 망쳐버렸다는 거였다.나는 말을 더듬으며 황급히 형수의 눈을 피했다.“형수님, 잘못했어요. 앞으로 다시는 안 그럴게요.”“천천히 씻고 나와요. 나는 저녁 준비하러 갈 테니까.”형수는 이 말만 하고 밖으로 나가버렸다.그 순간 후회가 밀려왔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한 거야? 형수가 분명 나를 변태라고 생각할 텐데.’나는 내 얼굴을 세게 때렸다.“정수호! 너 어떻게 형수님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맞지 않은 것만 해도 감지덕지해.”심지어 넋이 나가 제대로 샤워할 수 없어 대충 씻고 나서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다.그 시각, 형수는 주방에서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나는 주방에 가서 형수를 보고 싶었지만 그럴 배짱이 없어 내 방으로 돌아갔다.“하!”깊은 한숨을 푹 내쉬며 나는 형수에게 사과라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형수가 나를 그렇게 도왔는데, 나는 형수를 상대로 그런 생각이나 하다니, 내가 생각해도 너무했다.’나는 속으로 구시렁대며 젖은 바지를 벗었다. 그러고는 깨끗한 바지로 갈아입으려 할 때 침대에 묻은 얼룩을 발견했다. 하지만 이미 말라 있었다.‘난 분명 침대에서 한 적 없는데, 이건 어디서 났지?’나는 이때까지 형수가 나 몰래 내 침대에서 부끄러운 짓을 했다는 걸 몰랐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그러고는 곧바로 깨끗한 바지로 갈아입은 뒤 주방으로 향했다.형수가 주방에서 식사 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마치 잘못을 저지른 어린애처럼 주방 입구에 서 있었다.“형수님, 죄송해요. 아까는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형수는 그 말에 나를 힐끗 보더니 다시
“그런데 만약 능력이 없다면 신의 자리에 앉혀도 제대로 해낼 수 없고. 그리고 아직 젊으니 더 배우라고 했어요. 그러니 한의원을 가든 말든 상관없어요.”나는 진심을 말한 것뿐인데 형수는 나를 대견하다는 듯 바라봤다.“역시 착하네요, 앞으로 크게 되겠어요.”형수는 이 말을 하면서 시선을 내 아래로 옮기더니 깜짝 놀란 듯 말했다.“방금 전에 찬물로 샤워했는데 왜 또 이렇게 됐어요?”그건 나도 답답했다.“저도 모르겠어요. 욕실에서 나온 지 얼마 안 지나서 이렇게 됐어요.”“하, 이건 수호 씨가 그동안 여자를 만나지 못해 욕구가 쌓여서 그래요. 괴로운 건 알겠지만 절대 나를 어떻게 할 생각은 하지 마요. 난 수호 씨 형수예요.”“오늘 밤 내가 알려준 대로 몰래 베란다 넘어가 봐요. 애교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면 어떻게 꼬셔야 할지도 감이 잡힐 거예요.”나는 애써 욕구를 억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면서 형수가 나를 더 이상 보지 않을까 봐 가지고 있던 마음을 포기했다.그 사이, 형수가 전화로 형이 오늘 야근 때문에 집에 늦게 들어온다는 걸 확인한 덕에 우리끼리 식사하게 되었다.식사를 마치자 날이 점점 어두워졌고, 형수는 나더러 얼른 베란다로 가라고 재촉했다.“네? 이렇게 빨리요? 이따가 가면 안 될까요?”‘아직 밖이 밝은데 너무 급한 거 아닌가?’‘아무리 그래도 애교 누나가 이 시간에 그런 짓을 할 리는 없잖아.’“수호 씨가 어떻게 알아요? 우선 넘어가서 쪼그리고 앉아 때를 기다려야죠.”형수의 끈질긴 설득 끝에 나는 결국 몰래 애교 누나네 집 베란다로 숨어들었다.역시나 침실에는 아직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거실에서 티브이 소리가 들려왔다.‘거실에서 티브이 보고 있나 보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니?’나는 무료한 나머지 베란다를 둘러봤다.그랬더니 베란다에 널려 있는 속옷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 속옷은 모두 애교 누나 거였다.‘그런데 바나나는 왜 걸려있지?’‘설마 그러려는 건 아니겠지?’이건 내 생각이 더럽다고 생각할 게 아니
그때 내 호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이 갑자기 울리기 시작해 나는 얼른 핸드폰을 꺼내 무음으로 설정했다.그리고 확인했더니 형수한테서 문자가 와 있었다.형수가 보낸 말은 이러했다.[내가 애교한테 영상을 보냈는데 꼭 볼 거거든요. 그러니 재밌는 구경할 준비나 해요.]이 문자를 본 순간 나는 형수가 어떤 영상을 보냈을지 알 수 있었다.‘이런 영상은 대체 어디서 이렇게 많이 구한 거지?’물론 이런 의심이 들기는 했지만 깊이 생각할 틈이 없이 잔뜩 흥분하여 안을 들여다보았다.그랬더니 애교 누나가 핸드폰을 보며 한참 도안 얼굴을 붉히더니 뭔가 망설이는 것 같았다.한참 뒤, 애교 누나는 옷장에서 검은색 레이스 슬립을 꺼내 침실 안 화장실로 향했다.그리고 곧바로 안에서 물소리가 흘러나왔다.애교 누나는 정말로 샤워하러 간 거였다.‘형수 말은 정말 꼬박꼬박 듣네.’이건 너무나 놀라웠다.사실 애교 누나가 정색하며 형수를 말할 거라고 생각했었다.‘역시 애교 누나가 너무 오래 외롭게 지내 남자의 품이 그리웠다는 형수 말이 맞나 보네.’약 10분 정도 지나자 애교 누나가 화장실에서 나왔다.검은색 슬립 원피스를 입고 있는 애교 누나는 무척이나 섹시하고 매혹적이었다.심지어 새하얀 가슴까지 언뜻언뜻 보였다.애교 누나의 가슴은 형수처럼 풍만하지 않았지만 봉긋 솟아 있어 속옷을 입지 않아도 무척이나 예뻤다.애교 누나는 침대에 오라가 다시 핸드폰을 꺼내 들었지만 한참 동안 아무 동작도 없었다.마치 큰 전쟁을 준비하는 사람처럼.‘설마 샤워도 했으면서 후회하는 건가?’다행히 애교 누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다시 영상을 틀었다.게다가 혼자 집에 있다는 생각에 소리를 낮게 조절하지도 않았다.내가 창밖에 숨어 있다는 건 꿈에도 모를 테니까.형수가 애교 누나한테 준 영상은 역시나 야한 동영상이었다.심지어 전희도 없이 곧바로 주제로 넘어갔다.영상 속의 시음 소리에 나는 또 괴로웠고, 애교 누나 역시 마찬가지였다.그때 애교 누나가 이불로 제 몸을 덮더니 이불 한쪽 끝을
만약 방금 그대로 달려들어 애교 누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으면 그대로 망했을 거다.애교 누나의 성격에 신고했을 테니 말이다.그러면 나는 강간미수라는 누명을 쓴 채 평생 떳떳하지 못하게 살아야 한다.역시 색에 미치면 물불 안 가린다더니, 방금은 내가 너무 충동적이었다.형수는 나더러 애교 누나가 뭘 하는지 지켜보라고 했지 그런 짓을 하라고 한 게 아닌데 말이다.나는 너무 두려워 누구 전화인지 상관도 하지 않고 다급히 베란다를 넘어 형수네 집으로 돌아갔다.침실에 누워있던 형수는 내가 돌아온 걸 보자 다급히 일어났다.“어땠어요?”“애교 누나가 정말 자위했어요.”“거 봐요. 내 말이 맞죠? 오랫동안 남자의 사랑에 목말라 있던 여자는 외롭고 허전하기 마련이라니까요.”형수는 한창 말하다가 내 상태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다.“왜 그래요? 안색이 왜 그렇게 안 좋아요?”나는 방금 전 하마터면 범죄를 저지를 뻔했다는 것만 생각하면 겁이 났다.어를 때부터 늘 어른이 시키는 대로만 하는 착한 아이였기에 불법적인 일에는 더욱더 손댈 기회가 없었다.그런데 방금은 정말 이성을 잃을 뻔했다.나는 무척 후회하며 형수를 바라봤다.“형수님, 저는 사람도 아니에요.”“대체 왜 그래요?”형수가 다급히 물어봤다.그러자 나는 아까 있었던 일을 솔직히 털어놓았다.다시 회상하니 아직도 무서웠다.“형수님, 아까 만약 그 전화가 아니었다면 저 정말 쳐들어갔을지도 몰라요. 다시 생각하니 너무 무서워요. 사회 초년생인 제가 그런 짓을 하려고 했다는 게. 저는 정말 사람도 아니에요.”너무 괴로워하는 나를 보자 형수는 마음 아픈 듯 내 손을 잡았다.“내가 미안해요. 그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 수호 씨는 착한 사람이에요.”형수는 말하면서 복잡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형수도 내가 얼마나 참아왔고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알기에 충동적으로 행동하려한 나를 이해해 주었다.솔직히 태연이 지금껏 수호를 건드린 것도 수호가 괴로워하다가 참지 못하고 애교 누나를 덮치게 하려는 목적이었다
나는 답답한 마음에 고개를 저었다.“몰라요.”“일부러 애교 마음 뒤흔들려고 저러는 거예요. 매번 전화로 보고 싶다, 하고 싶다는 말만 하고 사랑은 한 번도 주지 않거든요.”그 말을 들으니 저도 모르게 욕설이 튀어나왔다.“인간도 아니네. 저는 밖에서 애인도 만들면서 애교 누나한테는 왜 그런대요?”형수도 따라 맞장구쳤다.“그러니까요. 왕정민은 사람도 아니에요. 배신하고 기만하는 것도 모자라 제 아내를 모함에 빠뜨리려고 머리까지 굴리다니. 이쯤 되면 인간쓰레기죠.”형수의 말을 한참 동안 들었더니 애교 누나가 너무 안쓰러웠다.남편이 밖에서 다른 애인을 만나는 것도 모르고 속고만 있다니.그런데 본인은 남편을 위해 본분을 지키겠다고, 반년 동안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남편한테 미안한 짓 안 하겠다고 그렇게 애쓰고 있으니.그때 형수가 나를 보며 또다시 물었다.“수호 씨도 궁금하죠? 내가 왜 친구인 애교한테 이 사실을 숨기는지?”궁금한 건 사실이다.형수도 내 마음을 알았는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나도 말해주기 싫어서 말 안 하는 게 아니라 말 못 한 거예요. 애교는 정말 어질고 착한 사람이거든요. 왕정민과 결혼한 뒤로 늘 남편 생각뿐이었어요. 오죽했으면 온통 남편과 행복하게 살 생각뿐이겠어요. 애교는 남편 엄청 사랑해요.”“아마 남편이 저를 배신할 거라는 건 꿈도 못 꿀 거예요. 이혼하고 싶어 저를 모함하려 한다는 건 더더욱 생각 못할 거고요. 그런데 만약 이 사실을 말하면 아마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거예요.”“진흙탕 싸움을 하면 왕정민과 그 내연녀를 절대 이기지 못할 거고, 그 내연녀의 뒷배가 엄청 대단하거든요. 그렇다고 싸움에 휘말리지 않자니 이미 사실을 알아버렸는데 마음이 편하겠어요?”형수의 말을 들을수록 애교 누나가 너무 안쓰러워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그때 형수가 한숨을 푹 내쉬며 말을 이었다.“이게 현실이에요. 그 현실에 대항할 능력이 없으면 받아들여야 하지 별수 없어요. 수호 씨 형이 나한테 이걸 말해줄 때 나도 무
“형수님, 오늘 많은 얘기해줘서 고마워요. 앞으로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진심으로 애교 누나의 마음을 얻어볼게요.”“그래요, 그렇다면 다행이네요.”형수는 말하면서 고개를 숙여 내 아래를 바라봤다.“애교 마음을 얻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거예요. 그런데 여기가 이런 것도 두고 볼 수는 없는 일이고.”나도 무척 난감했다.“혹시 저 도와줄 방법 같은 거 없어요? 오해하지 마요, 저는 아주 건전한 걸 말하는 거니까. 저 정말 너무 괴로워서 미치겠어요.”이런 쪽으로 아무런 경험도 없어 나는 형수한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다.그때 형수의 얼굴이 점점 붉어지며 눈빛도 점점 이상야릇해졌다.하지만 날씨가 더워서 그렇겠거니 생각하며 깊게 파고들지 않았다.“형수님, 형수님?”형수가 한참 동안 말을 하지 않자 나는 무의식적으로 형수를 불렀다.그러자 형수는 놀란 토끼처럼 번쩍 정신을 차렸다.“왜 그래요? 어디 불편해요?”나는 걱정스레 물었다. 형수의 상태는 정말 어딘가 불편한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하지만 형수는 연신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그냥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생각하고 있었어요.”“어떻게 도와줄 건데요?”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괴로움에 내가 다급히 묻자 형수는 고개를 저었다.“남자는 여자와 달라 도구의 힘을 빌릴 수 있는 게 아니에요.”“그럼 혼자 해결해도 돼요?”나는 얼굴을 붉히며 물었다.“말했잖아요, 적당히 하면 좋다고. 하지만 계속 이러면 언젠가는 몸이 망가질 거예요.”“그럼 어떻게 해요?”‘해결 방법도 없다. 그러고, 도와주지도 못한다 하고, 이건 나더러 죽으라는 거랑 뭐가 달라?’“아니면 지금 애교네 집에 갈래요?”“네? 지금요? 그건 좀 아니지 않나요? 애교 누나 아직도 저한테 화나 있는데 이렇게 늦게 찾아가면 제가 나쁜 마음 품었다고 생각할지도 몰라요.”“오늘 낮에 쇼핑할 때 애교 물건도 많이 샀던 거 기억 안 나요? 그 물건 아직 내 차 트렁크에 있잖아요. 그걸 들고 가서 물건 주러 왔다고 하면 되잖아요.”맞는
나는 형수님과 함께 내려가 애교 누나의 짐을 챙겼다. 그러고 형수님과 함께 애교 누나네 집 문을 두드렸다.한참이 뒤 애교 누나는 문을 열자 형수는 이내 생글생글 웃으며 말을 걸었다.“뭐했길래 문 여는 데 이렇게 오래 걸려? 혹시 무슨 부끄러운 짓 했어?”가뜩이나 발그레하던 애교 누나의 볼은 더 홍당무가 되어버렸다.형수는 일부러 애교 누나한테 그런 동영상을 보내고 이런 말장난을 쳤다.하지만 애교 누나는 딱 잡아떼며 인정하지 않았다.“무슨 소리 하는 거야? 나 방금 샤워했어.”“내가 보낸 것 때문에 샤워한 거야?”형수는 애교 누나를 놀리며 안으로 들어갔다.그러자 애교 누나가 찔리는 듯 설명했다.“나한테 뭘 보냈는데? 나 안 봤어.”‘엥? 이렇게 뻔한 거짓말을 한다고? 내가 방금 분명 봤는데. 심지어 느낌까지 왔다고.’하지만 나는 이 말을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그렇게 되면 내가 몰래 훔쳐봤다는 걸 들키게 될 테니.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형수님을 따라 연기했다.“형수님, 애교 누나한테 뭘 보냈어요?”그 말에 애교 누나가 다급히 끼어들었다.“뭐긴 뭐예요. 이모티콘이죠.”그때 형수가 보내는 눈빛을 읽은 나는 얼른 물건을 내려놓으며 말했다.“애교 누나, 낮에 있었던 일은 잘못했어요. 진심으로 사과할게요. 그러니까 화내지 마요.”형수도 옆에서 연기하기 시작했다.“뭔데 화를 내? 두 사람 무슨 일 있었어?”“수호 씨가 말 안 했어?”애교 누나가 불안한 듯 묻자 형수는 이내 연기 혼을 불태웠다.“그냥 오후에 간장 사러 갔다가 마트에서 마주쳐 인사했는데 화내더라고만 했는데. 그것 때문에 자기가 뭐 잘못했느냐면서 한참을 물어봤어.”“아마 그걸 해결하지 못하면 오늘 잠도 못 잘걸. 그래서 물건도 가져다줄 겸 같이 왔어. 두 사람 사이에 뭔 일이 있었는데? 내 앞에서 말해봐.”애교 누나는 입술을 깨물며 부끄러워했다.이쯤 되면 내가 나설 차례라 나는 얼른 끼어들었다.“형수님, 이건 저랑 애교 누나 일이니까 둘이 해결하고 싶어요.”“
솔직히 애교도 속으로는 찔렸다.그때 그 모습을 보고 소리 지르거나 바로 도망치지 않고 한참을 바라봤다는 걸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려 견딜 수 없었다.그러다가 수호가 또 그 일을 입 밖에 꺼낼까 봐 얼른 말을 잘랐다.“그럼 저 용서해 주는 거예요?”내가 조심스럽게 물어보자 애교 누나는 낮게 콧방귀를 뀌었다.“그 일은 모르고 그랬다. 하지만 마트에서는 왜 그랬는데요? 왜 나한테 그런 말을 했어요? 내가 그렇게 가벼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이것 때문에 화난 거였어?’이제 한번 본 사람한테 그런 말을 했으니 내가 본인을 가볍게 봤다고 생각한 모양이다.그리고 그 계기는 아침에 했던 그 마사지 때문이었다.아침에 내가 그렇게 서슴없이 만져 댔는데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았으니 내가 오해해서 그런 말을 했다고 생각했으니까.그래서 후회하고 괴로워했던 거였다.태연은 가벼운 유혹도 뿌리치지 못하는 자신이 못내 미웠다.젊은 총각이 마사지하면서 서슴없이 만져대는 걸 거절도 하지 않았으니 상대가 저를 가벼운 사람이라고 오해한 거라고 생각했다.유부녀이면서 본분도 지키지 않은 자신이 못내 원망스러워 애교는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한편 나는 애교 누나가 이런 반응을 보일 거라고 생각지도 못한 터라 당황해서 다급히 변명했다.“애교 누나, 저는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요. 누나처럼 착하고 다정하고 예쁘기까지 한 여자를 두고 제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겠어요? 누나는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여자예요.”그 말을 들은 애교는 커다란 눈으로 수호를 바라봤다.지난 몇 년 동안 애교를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여자’라고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심지어 5년이라는 결혼생활 동안 남편조차 애교에게 달콤한 말을 속삭이지 않았다.그런데 갑자기 이런 말을 들으니 이제 막 연애에 눈을 뜬 소녀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마치 정민과 연애하던 그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하지만 아쉽게도 눈앞의 남자는 남편이 아니었다.그런 애교 누나의 마음을 알 리 없는 나는 한참 동안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두 사람은 내 말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제야 분위기도 약간 풀어졌다.“그래. 그만 울자고. 다 큰 어른이 울기나 하고 쪽팔리지도 않나?”이 선생님이 먼저 웃음을 터뜨리며 정 사장님 눈물을 닦아주었다.이 선생님은 정 사장님을 마치 아들 대하듯 대했다.우리가 한창 얘기를 하고 있을 때 두 줄기의 그림자가 급히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두 사람은 화려한 옷차림에 약 50대 정도 돼 보였는데, 병실에 들어오자마자 정 사장님 침대 쪽으로 달려갔다.“호섭아, 어때? 많이 아파?”먼저 말을 꺼낸 여성분은 눈물을 떨구고 있었다.이윽고 뒤에서 유미 사모님이 헐레벌떡 달려 들어왔다.“아빠, 엄마...”유미 사모님은 참지 못하고 흐느꼈다.두 사람은 유미 사모님 부모님이었다. 동시에 정 사장님 장인 장모이자 양부모이기도 했다.두 분은 정 사장님을 친아들 대하듯 아꼈다.솔직히 정 사장님도 그렇게 사랑을 받을 자격이 충분했다.나는 이렇게 다정한 남자를 본 적이 없다. 가족을 대할 때도, 주변 사람을 대할 때도, 그리고 낯선 사람을 대할 때도.정 사장님은 따뜻한 햇살 같은 분이라 함께 있는 사람이 아무리 차가운 사람이라도 결국에는 사르르 녹아버린다.하지만 그렇게 좋은 사람이 하필 간암에 걸렸다니. 유미 사모님의 어머니는 펑펑 울었고, 아버지 역시 정 사장님이 걱정되는 듯 어디 아픈지 계속 물어봤다.정호섭은 처음으로 이렇게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는 것도 마음 아픈 일이라고 생각했다.병실 안 분위기는 점차 침울해졌다. 이러다가 모든 사람이 너무 울어 눈이 팅팅 부을지도 몰랐다.나도 그런 감정에 물 들어 점차 자신감이 사라졌다. 결국 나는 바람 쐬러 병실에서 나왔다.예전에는 죽음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다. 항상 내가 젊다고 자부했고 아직 살 날이 많다고 거만하게 생각했으니까.하지만 짧은 몇 시간 동안 나는 죽음이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특히 내 주변인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니 그 감각은 배가 되어 다가왔다.나는 가슴이 뭉클해 참을
나는 애써 참으려고 했다.어쨌든 여자 아이가 이 선생님을 따라온 걸 보면 선생님 딸일 수 있었으니까.나와 이 선생님은 사이가 좋은데, 내가 여자 아이를 꾸짖으면 여자 아이 체면도 깎일 뿐만 아니라 이 선생님도 난처해진다.하지만 여자아이는 점점 더 심해졌다. 심지어 게임을 놀면서 언성을 높였다.“가운데, 가운데라잖아... 젠장. 게임 할 줄도 몰라? 등신...”목소리만 크면 모를까, 욕설까지 섞여 있었다.그 순간 정 사장님 얼굴에 그늘이 졌다.정 사장님은 점잖고 신사적인 분이라 한 번도 욕을 입에 담은 적이 없다.그런데 지금 사장님 상황이 이 지경인데, 여자아이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예의 없이 구는 건 너무했다.내가 뭐라고 말하려고 할 때, 이 선생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이다연, 당장 나가! 호섭 오빠 아픈 거 안 보여? 이런 상황에서 게임을 하고 있다니, 양심이 있기는 해?”이다연은 동의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내가 몇 마디 위로한다고 병이 낫는 것도 아니잖아요? 쳇.”이 선생님은 화가 나서 손을 휘두르며 여자 아이에게 걸어갔다.그러자 선생님 아내분이 얼른 막아섰다.“여보, 여기 병원이야. 그러지 마. 다연아, 넌 그만 나가 봐.”이 선생님 아내분은 난감한 듯 말했다.그러자 이다연은 콧방귀를 뀌며 나가버렸다.그 모습에 화가 난 이 선생님은 눈시울이 붉어졌다.“나는 그래도 평생 정직하게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저런 걸 나았는지 모르겠다.”말하면 말할수록 이 선생님 눈은 점점 더 붉어졌다.그러자 이 선생님 아내분이 얼른 그를 위로했다.나 역시 이 선생님께 다가가 위로했다.“이 선생님, 화 푸세요. 사장님도 계시잖아요.”이 선생님은 사장님의 건강 상태를 고려해 황급히 미소를 쥐어 짜냈다.“호섭아, 미안하다. 애가 참 철이 없어. 그러니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정 사장님은 싱긋 미소 지었다.“괜찮아요. 게임 싫어하는 애가 몇이나 돼요? 스승님도 앞으로 다연이를 너무 나무라지 마요. 의학을 배우기 싫어하면 너
‘하!’“수호 씨.”한창 감개무량해하고 있을 때, 사장님이 갑자기 불러 나는 얼른 병상 앞으로 다가갔다.“수호 씨, 앉아 봐. 나 할 얘기 있어.”나는 얼른 의자를 끌어와 자리에 앉았다.“사장님, 할 말 있으면 하세요. 제가 꼭 최선을 다해 들어드릴게요.”사장님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그렇게 심각한 거 아니야. 그냥 수다나 좀 떨까 해서 그래. 이런 병에 걸리고 나서도 사실 항상 좋게 생각했었어. 내가 기쁜 마음을 유지하면 병마도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그런데 병들어 쓰러지면 모든 게 무너진다고, 정말 쓰러지니까 내가 이제 곧 죽겠구나 실감이 오더라.”“나 어릴 때부터 고아였어. 장인어른이 나를 입양해서 키워주다시피 했지. 나랑 우리 아내도 어릴 때부터 함께 자라서 사이가 늘 좋았어.”나는 조용히 사장님의 말을 귀담아들었다.“난 어릴 때부터 하느님이 나한테 참 후다고 생각했어. 장인어르신네 가족을 만나고 따뜻한 집을 얻었으니까. 내 아내도 어릴 때부터 나한테 잘해줬는데, 크고 나서 결국 부부의 연을 맺게 됐지.”“만약 내가 계속 이렇게 행복했다면 난 아마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남자였을 거야. 그런데 어릴 때 행운을 다 써버리는 바람에 지금 액운이 닥쳤는지 모르겠어. 하늘은 참 공평하더라고. 모든 걸 다 주지는 않아.”“그래서 난 한 번도 내가 왜 이런 병에 걸렸을까 원망한 적 없어. 곧 죽는다 해도 자연스러운 거라고 생각했어. 사람은 언젠가 죽게 되니까. 하지만 아까 의식을 잃고나서 많은 걸 생각했는데, 내가 떠나면 내 아내는 어쩌지 하는 걱정이 맨 처음 들더라고.”“수호 씨, 나 갑자기 죽기 싫어졌어. 살고 싶어. 아직 내 아내랑 아이를 낳지 못한 게 내 인생에서 가장 큰 한이야. 난 아내와 백년해로하고, 아이도 많이 낳고 싶어.”사장님은 말하다가 끝내 눈물을 흘렸다.그 모습을 보니 나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역시나 죽음을 태연하게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세상에 태어난 이상, 걱정되는 사람과 일이 없을 리 없다.
사모님은 앞으로 나가고 싶었지만 그럴 엄두를 내지 못했다.사모님이 지금 겁먹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나는 먼저 앞으로 걸어 나갔다.“의사 선생님, 환자분 상태는 어떤가요?”“다행히 병세는 진정된 상태입니다.”의사의 말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사모님은 너무 기쁜 나머지 입을 막고 엉엉 울었다.방금 전까지 잘 참고 있는 듯했는데, 긴장이 풀리니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애처롭고 가련하게 우는 사모님을 보니 왠지 안쓰러워났다.얼마 뒤, 정 사장님은 응급실 밖으로 밀려 나왔다.사모님은 단숨에 그 앞으로 달려갔다.“호섭 씨, 호섭 씨...”“사모님, 사장님은 아직 혼수상태태예요. 이따가 정심 차릴 테니까 우리 먼저 병실로 가요.”사장님과 사모님을 병원에 모시고 난 뒤, 나는 다른 직원들을 먼저 가게로 돌려보냈다. 그러고나서 사모님과 함께 사장님이 깨어나기를 기다렸다.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정 사장님은 겨우 눈꺼풀을 들었다.“호섭 씨, 겨우 깨어났네요. 정말 놀랐잖아요.”사모님은 정 사장님의 손을 꼭 잡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이에 정 사장님은 싱긋 웃었다.“이번에 이렇게 갑자기 발병할 줄 몰랐네. 그래도 여러분 덕에 저승사자 만나는 건 면했어.”사모님은 울면서 툴툴거렸다.“당신 하마터면 깨어나지 못할 뻔했어. 지금 농담이 나와?”사장님은 여전히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지만 얼굴색은 창백하기 그지 업었다.“웃지 않으면 어떡해? 울수록 기분만 나쁠 텐데. 기분 나쁘면 병은 악화할 거고.”나도 그 말에 동의했다.“사장님 말씀 맞아요. 사모님도 낙관적인 마음을 가져야 해요.”내가 물론 이렇게 위로했지만 사모님은 그러지 못했다.늙어 죽거나 병들어 죽거나, 죽음 앞에서 사람은 참 무기력해진다.그래서인지 사모님은 사장님처럼 좋은 마음가짐으로 덤덤하게 대하지 못했다.“됐어. 울보네. 수호 씨도 있는데 그만 울어. 화장 다 번지겠어.”사모님은 그제야 티슈를 뽑아 눈가를 닦았다.하지만 너무 울어
“그런데 놀 배짱도 없고, 즐길 줄 모른다면 분명 우리 무리에서 도태될 거야. 이 무리는 내 정치적 이익과 관련이 있어. 그런데 내가 어떻게 공을 세우는 동시에 깨끗하게 발을 뺄 수 있겠어?”나는 비록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 가운데 있는 관계망이 거미줄처럼 복잡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하나를 움직이면 나머지가 모두 영향받을만큼.남주 누나가 이러지 않으면 정치상의 업적이 없을 거고, 그렇게 되면 조만간 자리에서 밀려나게 될 거다.그런데 남주 누나는 얌전히 집에서 남편을 내조할 유형이 아니다.그렇게 생각하니 이건 참으로 악순환이 아닐 수 없었다.나는 머리가 너무 복잡해 고민에 잠겼다. 그때 남주 누나가 갑자기 옷을 벗기 시작했다.그 행동에 나는 깜짝 놀랐다.“남주 누나, 지금...”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주 누나는 내 입술을 덮쳤다.벌써 며칠 동안 참았던 탓에, 갑자기 따뜻한 입술이 덮쳐 오자 나는 저도 모르게 온몸이 달아올랐다.곧이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그저 우리 둘 다 냉정을 되찾았을 때, 벌어질 일은 이미 벌어지고 난 뒤였다.“하!”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상황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남주 누나는 옷을 챙겨 입고는 내 얼굴을 감싸 쥔 채 이마에 입을 맞췄다.“한숨 쉬지 마. 사람은 현재를 보고 살아가야 해. 지금 기쁘다면 다른 건 생각할 필요 없어. 만약 현재 기쁘지 않아 면 미래를 생각해서 뭐 해?”“그리고 정말 대단하네. 어떻게 한 손으로 그렇게 어려운 동작도 할 수 있어?”남주 누나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누나를 보내고 난 뒤 나는 머리가 터질 듯 복잡했다.‘어쩌다 이렇게 됐지? 성욕을 금하겠다며?’하지만 계속 참고 있는 것도 솔직히 힘들었다.방금 쌓여 있던 성욕을 풀고 나니 온몸의 맥이 뻥 뚫린 것처럼 몸이 가벼웠다.‘됐어. 그만 생각하자.’남주 누나 말대로 많이 생각해도 소용없다.‘될 대로 되라지.’나는 카운터로 돌아가 다시 약을 지었다.그런데 갑자기 정 사장님
“남주 누나, 저기...”남주 누나는 팔짱을 낀 채 나를 바라봤다.“내가 왜? 난 네 손님 아니야? 아니면 손님을 거절하겠다는 거야?”나는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저 지금 불편해요. 누나도 봤다시피 저 팔에 깁스하고 있잖아요.”“다른 손으로 할 수 없어?”남주 누나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나는 계속 거절하려 했지만, 남주 누나는 갑자기 다가와 내 멱살을 잡아당겼다.“핑계 댈 생각하지 마. 난 오늘 너를 지명할 테니까.”남주 누나는 협박을 하며 나를 마사지룸으로 끌고 갔다. 그러다가 룸에 도착하자 아예 문을 안에서 잠궈버렸다.그 순간 나는 당황스럽고 불안했다.“남주 누나, 뭐 하는 거예요?”남주 누나는 갑자기 나를 덮치더니 내 입술에 진하게 키스했다.나는 순간 어안이벙벙했다.‘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나는 얼른 남주 누나를 밀쳐냈다.“누나 미쳤어요? 지금 조사받는 중이라는 거 잊었어요?”남주 누나는 삐진 듯 투덜거렸다.“안 미쳤어! 그런데 내가 이러지 않으면 그 여편네들이 나를 비웃는단 말이야. 글쎄, 나더러 이제 늙어서 매력이 없대. 나처럼 나이든 여자는 집에서 내조만 해야 한대. 내가 왜 집에서 내조만 해야 하는데? 나 이제 고작 35이라고. 한창 잘 나갈 나이인데, 누구더러 늙었다는 건지. 늙은 건 그 여편네들이겠지!”남주 누나가 무슨 이유로 이렇게 원망이 가득한지는 모르겠으나, 지금 이 순간 나는 누나와 거리를 유지해야 했다.“누나, 우선 화부터 가라앉혀요.”남주 누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핸드폰을 꺼내더니 내 볼에 뽀뽀하는 사진을 냅다 찍어댔다.“누나,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왜 사진을 찍어요?”‘이건 또 뭐지?’“이 사진 단체방에 올려서 그 아줌마들한테 보여줄 거야. 내가 아직 얼마나 매력 있는지.”남주 누나의 말을 듣자마자 나는 얼른 핸드폰을 빼앗았다.“안 돼요. 그러면 안 돼요. 조사 받은지 얼마 지니지도 않았는데 또 고발당하면 그때는 정말 일자리 잃을 수도 있어요. 그리고 그날 집에 가보니까 누나
“참, 너 내일 시간 있어?”“별일 없는데. 아마 또 가게에서 잔심부름이나 할걸. 무슨 일인데? 말해.”“설아 때문에 그래. 내가 전에 설아를 데리고 병원에 가보겠다고 했잖아. 그런데 일 때문에 바빠서 아직도 못 갔거든. 네가 시간 있다면 대신 좀 데려가줄 수 있어? 점검이라도 받아보게.”이 일을... 나는 승낙할 수 없었다.물론 내가 민우와 친하다고는 하지만, 임설아는 민우의 여자 친구인데, 남의 여자 친구를 데리고 산부인과에 검사하러 간다는 건 말이 안 된다.때문에 나는 단번에 거절했다.그러자 민우가 내 팔을 잡아당겼다.“수호야. 나 좀 도와줘. 나 정말 일 때문에 시간 안 나서 그래. 하루 휴가 내면 몇 만 원을 손해보는데. 아까워서 그래.”“앞으로 시간도 많은데 급할 거 뭐 있어? 네 여자 친구는 네가 돌봐야지, 나더러 대신 돌봐달라는 건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나는 이번 일은 절대 승낙할 수 없다고 속으로 다짐했다.하지만 민우가 갑자기 내 팔을 잡아당기며 말했다.“네가 가면 설아 엄마도 따라 갈 거야. 그날 내가 임설아 집에 따라 갔다가 설아 엄마한테 병에 대해 물어봤거든. 그런데 설아 엄마가 이를 악물면서 꼭 너를 만나고 싶다더라.”“헐, 그런 건 왜 물어?”나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도 그럴 게, 나는 그날 나와 대화한 사람이 임설아 엄마가 아니라 임설아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미래 장모님이 될 분을 처음 만나는데, 잘 보여야 하지 않겠냐? 미래 사위가 얼마나 능력자인지 보여줘야지.”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이윽고 나는 머리를 마구 저었다.“그럼 더 갈 수 없어. 네 여자 친구 엄마가 나와 그렇게 사적인 얘기를 주고받았는데, 내가 갈 것 같냐? 만나면 우리 모두 쥐구멍에 들어가야 돼.”“아닐 거야. 내 미래 장모님은 말이 엄청 잘 통해.”“누구를 속여? 아까 이를 악물며 말했다면서?”민우는 제 말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래, 내가 말실수했네. 그래도 너를 꼭 보고싶다고 했어. 우리 여기에 직접 올
어느 한 별장 안.소여정은 등 뒤에 서 있는 정태곤을 바라봤다.“예뻐?”정태곤의 눈빛은 약간 부자연스러웠다.“소여정 씨, 저 일부러 본 거 아닙니다. 임 회장님이 저더러 감시하라고 한 겁니다.”“알아. 내가 예쁘냐고?”소여정은 정태곤을 향해 눈을 깜빡였다.그 순간 정태곤은 얼른 시선을 돌렸다.소여정은 키득키득 웃었다.“참, 지금 꼴이 어떤 줄 알아? 다른 사람 앞에서는 카리스마 있더니 왜 내 앞에서는 바보처럼 굴어?”소여정은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로 걸어 갔다.“내 가운 가져와. 나 샤워할 거야. 오후에 바로 강북으로 넘어갈 거거든.”소여정은 앞으로 걸어가다가 욕실 문 앞에서 우뚝 멈춰 섰다. 그러더니 고개를 돌려 정태곤을 향해 싱긋 웃으며 말했다.“설마 너도?”소여정 뒤에 있는 욕실을 본 순간, 무뚝뚝하기만 하던 정태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소여정 씨, 그런 농담하지 마세요. 소여정 씨는 임 회장님 여자인데, 제가 어떻게 같이 씻을 수 있겠어요?”“무슨 생각 하는 거야? 너도 강북 같이 갈 거냐고.”정태곤은 순간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다급히 해명했다.“당연하죠. 임 회장님 명령입니다.”“넌 가만 보면 실력은 꽤 쓸만한데 공감력과 지능이 좀 딸리더라.”소여정은 말하면서 정태곤 앞에서 옷을 훌훌 벗어버렸다. 일순 그녀의 가녀린 몸매가 여과 없이 드러나자 정태곤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소여정은 욕실로 들어가며 느긋하게 말했다.“임 회장님이 너더러 나를 보호하라고 한 게 핑계라는 거 알아. 진짜 목적은 감시겠지.”“하지만 그렇게 티를 내면 안 되지. 임 회장님 같은 사람과 일하려면 실력만으로는 안 돼. 머리가 있어야지. 머리를 좀 더 단련해. 안 그러면 언젠가 임 회장님한테 밉보일 거야.”정태곤은 놀라운 표정으로 소여정을 바라봤다.“소여정 씨, 설마 지금 저를 위해 말씀하시는 거예요?”소여정은 매혹적인 미소를 날렸다.“그러게? 뭘까? 얼른 가서 가운 안 가져오고 뭐 해?”정태곤은 헐레벌떡 침실로 달려가 가운을
오민혁은 내 공격 적인 말투에 나를 사납게 노려보더니, 그 뒤로는 아예 나와 말도 섞지 않았다.오전은 아주 빠르게 흘러갔다.점심 시간, 나는 혼자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예전에는 항상 모태진과 함께였는데 갑자기 혼자가 되니 너무 외로웠다. 하지만 한편으로 좋았다. 적어도 사람들의 오해를 사지 않을 테니까.식사하는 내내 나는 핸드폰을 보지 않았다. 고민거리를 생각하느라고.그러다 밥을 다 먹은 뒤에야 핸드폰을 꺼내 확인했다.읽지 않은 카톡 몇 개가 있어 일일이 확인했더니, 그 중에는 친구 신청 알람도 있었다. 비고에는 소여정이라고 적혀 있었다.전에 소여정 때문에 정태곤한테 죽을 뻔한 뒤로 나는 소여정의 연락처를 지워버렸다. 앞으로 그녀와 더 왕래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그때 소여정은 다시 나를 추가하지 않았는데, 며칠이 지난 지금 갑자기 친구 신청을 하는 게 대체 무슨 속셈인지 알 수 없었다.나는 한참 생각하다가 거절을 눌렀다.그러자 곧바로 소여정한테서 문자가 날아왔다.[한 번만 더 거절해 봐. 강북으로 찾아갈 테니까.]협박 섞인 문자에 나는 겁을 먹었다.‘또 강북으로 오겠다고? 임천호가 이번엔 나를 죽이려고 할 텐데.’나는 얼른 친구 신청을 수락하고 문자를 보냈다.[절대 오지 마요. 임천호의 경호원이 너무 무서워요. 내가 그쪽과 엮여 있다는 걸 알면 분명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나를 죽일 거라고요.][죽는 게 그렇게 두려워?][뭘 당연한 소리예요? 죽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난 두렵지 않아. 난 자유만 주어진다면 죽어도 좋아.][쳇, 그런 헛소리를 누가 믿어요? 그나저나 여기로 오겠다면 임천호가 동의해요?][당연하지.][무슨 방법으로 동의를 받아냈는데요?][아이를 낳아주겠다고 했어.]‘헐. 이게 뭔 요구람?’[그런데 내 몸 상태가 좀 특이해서 당분간은 임신할 수 없어. 그래서 강북에 가서 수호 씨한테 치료받으려는 거지.]그 말에 나는 얼른 답장했다.[다른 사람 알아봐요. 난 소여정 씨 병을 못 고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