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교 누나, 너무 속상해하지 마요. 사실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어요.”나는 애교 누나의 보수적인 생각을 바꾸려고 계속 설득했다.애교 누나가 스스로 생각을 바꿔야 나한테가 기회가 주어지니까.지금의 애교 누나는 너무 보수적이라 공략하기 어렵다.“혼자 있는 게 뭐가 좋아요? 외롭고 고독하고, 뭐든 혼자 해야 하고 대화할 사람도 없다고요. 게다가 분명 결혼했는데 이러는 건 과부와 뭐가 달라요?”나는 애교 누나가 지금의 생활에 불만을 품고 있다는 걸 보아낼 수 있었다.‘이러면 나야 좋지.’애교 누나가 생활에 불만을 가질수록 나한테 기회가 많아지니까.나는 슬그머니 애교 누나의 손을 잡았다.하지만 애교 누나는 눈치채지 못했는지 아니면 뭔지, 손을 빼지는 않았다.그러자 나는 더 대담하게 누나의 손을 꽉 잡으며 흥분해서 말했다.“그럼 제가 앞으로 누나 곁에 있을게요. 그러면 외롭지 않잖아요”“같이 있으면 있는 거지, 왜 손을 잡고 그래요? 이거 놔요.”애교 누나는 당황한 듯 얼른 내 손을 쳐냈다.물론 한순간이지만 그래도 애교 누나의 손을 잡았다는 것에 나는 기분이 좋았다.게다가 애교 누나가 예전처럼 나를 싫어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장족의 발전이었으니.나는 이내 젓가락을 휘저으며 그릇 하나를 비웠다.“더 줄까요? 더 담아줄게요.”“네. 이렇게 작은 그릇에 열 번도 더 먹을 수 있어요.”“잘 먹네요. 젊어서 그런가? 좋네요.”나는 형수가 늘 하던 식으로 일부러 장난쳤다.“어디 젊기만 해요? 튼실하기도 한데. 제 팔 봐요. 다 근육이에요.”그리고 말하면서 일부러 몸매를 자랑하는 듯 애교 누나에게 근육을 보여줬다.나도 내 몸매가 거의 완벽에 가깝다고 자부한다.젊고 튼튼하고 또 남성미가 넘친다고.그래서인지 애교 누나도 나를 보더니 얼굴을 붉혔다.“앞, 앞으로 다시는 이러지 마요.”이윽고 이 말을 하고는 그릇을 챙겨 뒤돌아섰다.한편, 애교는 너무 부끄러워 쥐구멍에 숨고 싶었다.‘뭐 하는 거야? 수호 씨 몸매가 아무리 좋아도 그렇지 만
“태연아, 수호 씨 어젯밤 나 도와주고 돌아가려 했는데 집에 들어가지 못해 내가 하룻밤 있으라고 했어. 그러니까 오해하지 마.”“난 오해하지 않았는데 왜 설명해?”형수가 웃으며 말하자 애교 누나는 찔린 듯 얼굴을 붉혔다.형수도 애교 누나를 너무 놀리면 안 된다는 걸 알기에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식사는 됐어. 수호 씨, 여기서 이미 먹기 시작했으니 마저 먹고 와요. 애교야, 이따 식사 다하고 우리 쇼핑 가자. 점심은 밖에서 먹고. 우리 남편이 오늘 점심 사주겠다고 뭐 먹고 싶은지 생각해 두래.”“아, 알았어.”애교 누나는 온 신경이 다른 데 팔린 듯 멍하니 대답했다.말을 마친 형수가 허리를 흔들며 떠나자 애교 누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도둑이 제 발 저린 것처럼 잔뜩 긴장한 애교 누나를 보니 왠지 웃음이 나고 귀여웠다.분명 아무 일도 없었는데 이렇게 부끄러워하다니.지금 이런 시대에 이렇게 단순한 여자가 아직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심지어 내가 살던 시골의 여자애들도 요즘에는 야릇한 방송을 하는데 말이다.나는 애교 누나와 다시 식탁 앞에 앉았다.“애교 누나,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요. 우선 밥부터 먹어요. 배가 불러야 쇼핑할 힘도 생기죠.”“그래요.”애교 누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식사가 끝나자 나는 자발적으로 설거지를 하겠다고 나섰다.“누나는 가서 화장해요. 여자들은 밖에 나가기 전 준비 오래 하잖아요.”심지어 다정하게 누나를 배려해 줬다.이건 내가 매너 있는 척 굴려는 게 아니라 현실을 아는 거다.나는 애교 누나가 예쁘게 치장하기를 바란다. 그러면 내 눈도 따라서 호강하니까.사람을 좋아하면 꽃을 가꾸는 것처럼 정성을 쏟아 부어야 한다.정성껏 가꿀수록 예쁘게 만개할 테니까.“수호 씨, 어떤 옷이 예쁜 것 같아요?”애교 누나는 선택 장애가 있는지 한참 동안 고르다가 끝내 나한테 의견을 물었다.내가 보기에 두 벌 다 비슷한데 말이다. 주요하게 애교 누나는 몸매가 예뻐 뭘 입든
“애교 누나, 너무 예뻐요. 뒷모습만 봐도 반할 것 같아요.”나는 애교 누나의 머리카락을 빼주며 참지 못하고 감탄했다.그랬더니 애교 누나는 화가 난 듯 투덜거렸다.“아무 짓 안 할 거라면서 뭐예요? 당장 나가요!”“애교 누나, 전 진심으로 칭찬한 건데. 절대 희롱하려는 거 아니에요.”나는 억울한 듯 설명했다.“여자들도 예쁜 꽃 보면 감탄하잖아요. 그거랑 같아요.”“정, 정말이에요? 나 속이는 거 아니죠?”“제가 왜 누나를 속여요? 제가 누나를 어떻게 할 생각이면 이렇게 조심스럽게 눈치 보겠어요? 당장 덮쳤지.”“흥, 속으로는 온갖 꿍꿍이를 다 품었으면서 그저 행동으로 옮길 담이 없는 건 아니고요?”물론 사실이지만 나는 절대 인정할 수 없었기에 오히려 당당하게 거짓말했다.“애교 누나, 누나 마음속에 제가 이렇게 저질이었어요?”“저질은 아니고, 그냥 남자들은 다 똑같잖아요.”“저는 다른 남자들이랑 다르다면요?”“어디가 다른데요?”“저는 누나를 좋아하지 어떻게 해볼 생각은 없어요.”애교 누나는 갑자기 뒤돌아 나를 봤다.“그럼 아침에 그건 뭐예요?”‘젠장, 설마 들킨 건 아니겠지?’나는 순간 당황해 조심스럽게 설명했다.“아침에 있은 일은 저를 탓하면 안 되죠. 그건 누나가 저를 만져서 반응이 온 거고, 그것 때문에 참을 수 없어서...”“그만해요.”애교 누나는 본능적으로 내 입을 막았다.누나의 나른하고 부드러운 손이 느껴지자 내 마음은 다시 두근댔다.하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고생스럽게 쌓은 이미지가 한순간에 무너질 테니까.애교 누나는 자기 행동이 너무 야릇하다고 생각됐는지 황급히 손을 움츠렸다.“아침에 있은 일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요. 수호 씨 형과 형수한테도. 알겠죠?”나는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애교 누나가 나를 한참 바라보다가 갑자기 ‘풉’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수호 씨는 얼굴도 잘생기고 몸매도 좋은데, 왜 이렇게 어리바리해요? 솔직히 말해 봐요, 대학교 다닐 때 정말 여자 친구 사
보아하니 어제의 일이 떠오른 것 같았다.“지퍼 다 잠갔어요? 얼른 잠가요.”애교 누나는 내 말에 대답하는 대신 이내 화제를 돌렸다.하지만 나는 쉽게 포기하지 않고 따져 물었다.“애교 누나, 왜 대답을 회피해요?”“왜 그런 질문을 해요? 너무 사적인 일이잖아요.”“누나도 방금 물어봤잖아요.”“그게 어떻게 같아요?”“뭐가 달라요?”‘다 사적인 질문 아닌가?’내 말에 애교 누나는 얼굴이 점점 더 빨개졌다.“아무튼 달라요. 더 이상 묻지 마요. 안 그러면 화낼 거예요.”“그래요. 안 물어볼게요. 나중에 친해지면 다시 물어볼게요.”나는 헤실거리며 대답했다.어젯밤 일과 아까의 대화로 나는 애교 누나와 많이 가까워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때문에 이렇게 시답지 않은 농담도 할 수 있고.“가까워져도 물어보지 마요.”“그래요. 안 물어볼게요. 하지만 저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 누나는 욕구가 있으면 어떻게 해결해요?”애교 누나는 그 말에 화가 난 듯 나에게 주먹을 휘둘렀다.물론 내가 원하는 걸 보지는 못했지만 애교 누나와 티격태격 장난을 치니 어느새 내 기분도 좋아졌다.곧이어 나는 다시 주방으로 돌아가 남은 설거지를 했고, 거의 다 끝날 때쯤, 애교 누나도 준비를 마치고 방에서 나왔다.“애교 누나, 저 돌아가서 옷 갈아입고 올게요.”나는 곧장 형수네 집으로 갔다.형수는 몸에 딱 붙는 옷을 입었는데, 완벽한 콜라병 몸매에 나는 하마터면 코피를 터뜨릴 뻔했다.마침 화장하고 있던 형수는 내가 집에 돌아오자 웃으며 물었다.“어젯밤 어땠어요?”왜 그런지 모르겠으나 형수의 앞에 있으니 나는 채 익지 않은 풋사과가 된 기분이었다.“별거 없었어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지만 관계는 그래도 많이 가까워졌어요.”내가 사실대로 대답하자 형수는 나에게로 다가와 나를 소파에 앉혔다.형수의 부드러운 손과 눈에 들어오는 커다란 가슴에 나는 반응하고 말았다.무슨 상황이지?애교 누나 앞에서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왜 형수 앞에서는 이렇지?나는 형수
나는 얼른 소파에서 일어났다.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형한테 이상함을 들킬까 봐 나는 형의 눈을 마주 볼 용기도 나지 않았다.“수호야, 이거 집 열쇠야. 너도 하나 갖고 있어. 내가 생각이 짧았어. 우리 집에서 지내는 사람한테 열쇠도 안 줘서 집에 못 들어오게 했으니.”형의 말에 나는 죄책감이 더해졌다.형이 나한테 이렇게 잘해주고 나를 친동생처럼 대해주는데.나한테 이렇게 잘해주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아마 이 세상 수많은 친형제도 이 정도로 관계가 좋지는 않을 거다.그런데 나는 감히 형수를 상대로 그런 생각을 하다니.‘난 정말 죽어야 해!’“왜 그래? 안색이 안 좋은데?”형은 내 안색이 점점 어두워지자 걱정하는 듯 물었다.이에 나는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괜찮아. 어제 제대로 휴식을 못 해서 그래.”“애교 씨는 괜찮아? 네 형수 말 들어보니까 어제 갑자기 아팠다면서? 네가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던데.”형수는 형한테 사실대로 말하지 않은 모양이다.때문에 나도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별일 아니었어요. 이미 괜찮아졌고요.”“그렇다면 다행이고. 얼른 가서 준비해. 같이 나가서 쇼핑하고 식사하자.”말을 마친 형은 내 손에 열쇠를 쥐어 주며 뒤돌아 화장실로 들어갔다.본인의 옷을 정리하는 형을 보며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래도 아까 반응이 빨랐으니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으면 형한테 발각되고 말았을 거다.내가 안도하며 한숨을 내쉴 때 갑자기 나른한 몸이 터치했다.고개를 돌려 보니 형수가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내 뒤에 서 있었다.심지어 너무 가까이 서 있었다. 그리고 아까 일부러 몸으로 내 몸을 터치한 듯했다.나는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그렇다고 감히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이미 형수한테 절대 갖지 말아야 할 마음을 가지면 안 된다고, 형한테 미안한 일을 하면 안 된다고 나한테 경고했으니.때문에 나는 뒤로 물러 물러나며 형수와 거리를 유지했다.“형수님.”“왜요? 무서워요? 내가 도와주길 바란 거 아
“내가 수호 씨 선물로 산 거예요. 맞는지 입어 봐요.”형수는 팔짱을 낀 채 내 방문 앞에 기대 웃으며 말했다.딱 봐도 엄청 비싸 보이는 양복 같은데, 이런 걸 턱 사주다니.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이내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그러자 형수도 뒤돌아 내 방에서 나갔다.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옷을 양복으로 갈아입었다.이건 내 인생 첫 양복이다.거울에 비친 나를 보니 놀라울 정도였다. ‘나한테 양복이 이렇게 잘 어울릴 줄이야.’“옷 잘 어울리네요.”형수는 말하면서 나를 도와 넥타이를 매주었다.그 모습에 나는 형한테 들키기라도 할까 두려워 당황한 마음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어찌 됐든 나도 이미 성인 남성인데 형수가 옷도 정리해 주고 넥타이도 매주는 걸 형이 발견하면 너무 난처한 상황일 테니.“그만 봐요. 수호 씨 형은 침실에서 업무 처리하고 있어요.”형수는 내 걱정을 눈치챈 듯 낮은 소리로 말했다.“형수님, 앞으로 우리 거리를 지켜요. 형이 볼까 봐 두려워요.”나는 용기를 내어 내 생각을 말했다.그랬더니 형수가 싱긋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난 괜찮아요. 수호 씨가 그렇게 할 수 있을지 문제지만.”나는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형수의 말이 맞다.형수는 내 담력을 키워주려고 일부러 야릇한 행동을 한다지만, 나는 형수한테 제대로 홀렸으니.‘형수는 자제할 수 있다지만, 나는 정말 자제할 수 있을까?’의심이 들었지만 나는 뻔뻔하게 대답했다.“할 수 있어요. 그래도 제 의지가 강하다고 자부하거든요.”“그래요? 그럼 여긴 왜 커졌는데요?”형수는 시선을 내리깐 채 내 그곳을 바라봤다.그 순간 나는 너무 난감해 다급히 허리를 숙여 그곳을 막았다.“헉, 이게 왜 이렇지? 아까까지는 괜찮았는데.”“내가 아무것도 안 했는데 이렇게 된 걸 보면, 그동안 넘 참아서 그럴 거예요. 형수로서 마음이 아프네요. 얼른 힘내서 애교를 손에 넣어야 할 텐데. 그러면 여자의 맛도 느껴볼 수 있을 텐데.”형수의 말이 너무 노골적이라 그걸 듣는 것
“수호야, 소개할게. 이분은 왕 사장님이셔. 나와 네 형수의 친구이자 애교 씨 남편.”형은 웃으며 나에게 소개해 주더니 말을 이었다.“수호야, 정민 형은 처음이지? 얼른 술 따라 봐.”나는 불편했지만 분위기를 망칠 수 없었기에 술병을 들고 왕정민의 잔에 술을 부었다.“정민 형님, 한 잔 올리겠습니다.”왕정민은 내 술을 받으며 무뚝뚝하게 말했다.“형과 형수한테서 들었는데 한의학을 전공했던 수재였다면서? 강북 한의원에서 인턴으로 일할 생각 있나?”그건 당연한 거였다.강북 한의원은 강북에 있는 유일한 한의원이니.아마 한의학을 전공한 학생이라면 모두 그곳에 인턴으로 들어가는 게 꿈일 거다.내가 속으로 생각하고 있을 때 왕정민이 말했다.“내가 도와주지.”그 말에 형이 옆에서 다급히 말했다.“수호야, 얼른 정민 형한테 고맙다고 인사하지 않고 뭐해?”“고마워요, 정민 형.”왕정민은 웃으며 내가 따른 술을 마셨다.그때 애교 누나가 옆에서 물었다.“그런데 자기, 왜 여기 있는지 아직 대답하지 않았잖아.”“이 근처에 미팅하러 왔다가 동성한테 여기서 식사한다는 소리를 들었거든. 그래서 와 봤어. 그런데 이따가 가봐야 해. 여보, 미안해. 오늘도 같이 있어 줄 수 없어.”애교 누나의 얼굴에는 이내 실망감이 드리웠다.“뭐? 같이 식사할 시간도 없어?”“내가 싫어서 가려는 게 아니라 일이 너무 바빠. 당신도 알잖아. 우리 회사 요즘 상승 단계에 있는 거. 내가 직접 나서야 할 일이 너무 많아. 하지만 하나는 약속할게. 이번 일 끝내면 돌아가서 당신 곁에 있어 줄게.”왕정민이 여자를 달래는 데에는 참 도가 튼 것 같았다.말 몇 마디로 애교 누나를 기쁘게 하다니.그런 면에서 이 남자가 참 존경스러웠다.나는 이런 능력이 없는데 말이다.매번 여자들과 대화하는 것도 조심조심.‘하, 이렇게 비교하니 짜증 나네.’내가 속으로 감탄하고 있을 때 형수가 발로 나를 찼다.그게 무슨 뜻인지 몰라 형수를 봤더니 눈빛으로 나한테 뭔가 말하려는 것 같았지만
애교 누나는 금세 당황해했다.그도 그럴 게, 자기가 어젯밤 다른 남자를 집에 들였다는 걸 남편에게 들킬까 봐 무서웠으니까.“괜, 괜찮아, 자기야. 우리 얼른 주문하자.”애교 누나는 얼른 화제를 전환했다.그 때문에 순간 할 말이 없어진 나는 애원의 눈빛으로 형수를 바라봤다.그랬더니 형수는 나에게 계속하라는 응원의 눈빛을 보냈다.나는 더 이상 할 수 없어 고개를 저었다.그런데 갑자기 형수가 발을 들어 내 다리를 문질렀다.이윽고 문자 한 통이 또 도착했다.[직접적으로 하지 못하겠으면 나처럼 이렇게 건드려 봐요.]나는 형수의 희롱에 괴로워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애교 누나를 어떻게 유혹해야 할지 생각해야 했으니 너무 어려웠다.‘뭔 놈의 여자 꼬시기가 학교 다닐 때보다 더 어려워?’하지만 형수의 말 대로 왕정민이 나를 관찰하고 있으니 서둘러야 했다.결국 나는 할 수 없이 형수님을 따라 하기로 했다.내 발이 애교 누나의 다리를 문지르는 순간, 애교 누나의 몸음 뻣뻣하게 물었다.이윽고 눈빛으로 나한테 뭐 하는 짓이냐고 물었다.‘에잇 몰라, 죽으면 죽었지. 이젠 물러날 곳도 없어.’나는 겁을 먹고 움츠러들기는커녕 오히려 더 대담하게 행동했다.그때 애교 누나가 갑자기 다리를 닫으며 내 발을 다리 사이에 꼈다.그 바람에 너무 아파 나는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여보, 나 사이다 먹고 싶은데 종업원한테 대신 말해줄 수 있어?”다행히 왕정민이 제때 끼어든 덕에 내 발은 구조될 수 있었다.애교 누나는 남편의 말에 이내 웃으며 대답했다.“그래, 바로 갔다 올게.”애교 누나는 그 말을 남긴 채 이내 떠나갔다.그러자 룸 안에는 나, 왕정민, 형과 형수 네 명이 남았다.그때 형이 다급히 물었다.“정민아, 수호 괜찮았어?”왕정민은 나를 훑어보며 평가를 내렸다.“괜찮았어. 생긴 건 잘 생겼지만 겁이 좀 많네.”“그건 어쩔 수 없어. 어릴 때부터 착하게 커온 애라 여자 친구도 사귄 적 없거든. 그런 일은 더더욱 없고. 그
어쩐지, 방 2개에 거실 하나 딸리고 이렇게 깨끗한 집이 한달에 22만 원일 리가 있나?“젠장.”나는 화가 나서 욕설을 퍼붓고는 당장 집주인한테 전화했다. 하지만 집주인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주선영은 전전긍긍하며 나를 봤다.“선배, 나랑 같이 사는 게 싫으면 내가 나갈게요. 그런데 오늘 밤만 우선 여기 있으면 안 될까요?”주선영의 불쌍한 모습을 보니 도저히 쫓아낼 수 없었다.이건 집주인 잘못이지 주선영 잘못이 아니었으니.게다가 주선영은 애교 누나 사촌동생이고, 단순하고 여린 아이인데, 혼자 밖에서 지내다가 사기를 당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이런 게 바로 인연인가 보다.“됐어. 그냥 여기서 지내. 마침 방도 2개니까 하나씩 나눠 쓰면 되지. 넌 낮에 학교 가고 나는 출근해야 하니까 밤에만 지낼 거잖아.”말을 마친 나는 소파에 앉아 물 한 잔을 들이켰다.주선영은 약간 쭈뼛하게 서 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왜 그래? 또 무슨 일 있어?”주선영은 입을 오므리고 약간 겁먹은 듯 물었다.“선배, 우리 언니랑... 정말 결혼할 거예요?”“꼬맹이는 어른 일에 신경 꺼.”나는 마치 인생 대선배라도 되는 듯 나이를 내세워 위세를 부렸다.“그리고, 우리도 서로 아는 사이인데 내 앞에서 그렇게 눈치 볼 거 없어. 너도 돈 내고 이 집 구한 거니까,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주선영이 어색하게 구니 나도 덩달아 어색해졌다.마치 나 때문에 주선영이 긴장한 것 같아서.나는 자리에 앉아 있다가 결국 물 한잔을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내가 거실에 없으면 주선영이 그나마 편히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얼마 뒤, 밖에서 쨍그랑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뭐야? 남자를 무서워하기라도 하나?’나는 별 생가 없이 계속 자료를 훑었다.그렇게 한참 훑어 보다 보니 갑자기 애교 누나가 보고 싶어졌다.‘누나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한참 생각하던 나는 결국 애교 누나에게 문자를 보냈다.그런데 의외로 애교 누나는 바로 답장을 보내왔다.[수호 씨,
“어? 이 사람...”왕정민의 이름을 보자마자 나는 진절머리 난다는 표정을 지었다.그러자 윤미화가 눈웃음 치며 물었다.“왜? 아는 사람이야?”“그렇다고 할 수 있죠.”“마침 잘 됐네. 그럼 이번 일 잘해낼 수 있을 거야. 이건 수호 씨가 탐정 사무소에 들어와서 처음 맡는 임무니까 잘해 봐. 만약 결과가 좋으면 보너스도 두둑히 챙겨줄게.”“됐거든요. 저를 함정에 빠뜨리지만 않으면 땡큐예요.”나는 지난번 계약서에 사인하던 날을 아직도 똑똑히 기억한다. 이게 웬 횡재냐 하고 사인했더니 인신매매 계약서였다.그때 단번에 1000만 원을 주지 않고, 평소에 팁을 줄 때 관대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었다면 나는 진작 그만뒀을 거다.“이 자료들은 돌아가서 잘 연구해 봐. 사흘 내로 고객이 원하는 자료를 손에 넣으면 돼.”나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겠어요.”윤미화는 갑자기 테이블에 엎드려 가슴을 쭉 내밀었다.“한동안 나 못 봤는데, 보고 싶지 않았어?”“...”“사장님, 좀 진지해지면 안 돼요?”나는 너무 어이없었다.윤미화는 테이블 밑에서 하이힐로 나를 걷어찼다.“내가 언제는 뭐 안 진지했어? 누나도 아직 매력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그런 거잖아.”“네, 매력 있어요. 됐죠?”말을 마친 나는 얼른 자료를 챙겨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윤미화가 나를 놀리고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게 오히려 무서웠다. 정말 윤미화의 유혹에 넘어가 아랫도리가 반응하면 나만 고생 아닌가?나는 커피숍에서 나온 뒤 곧장 주차장으로 향했다.원래는 유미 사모님께 연락이라도 드리려고 했는데, 지금 바쁠 것 같아 문자를 남겼다. 내가 필요하면 언제든 전화하라고.그 문자를 보낸 뒤 나는 얼른 집으로 향했다.시간이 늦어 나는 집에서 대충 허기를 채우고 자료를 살펴봤다.솔직히 나는 왕정민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다. 그 인간이 얼마나 계략적이고 간사하고 악랄한지만 알뿐.자료에 나온 내용은 한정적이어서 철저히 조사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내가 자료를
정태곤은 그제야 우뚝 멈춰섰다.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오늘은 그냥 넘어갈게. 운 좋은 줄 알아. 하지만 다음번에 만나면 이렇게 운 좋지 않을 거야.”정태곤은 말을 마친 뒤 뒤돌아 다시 병실 문 앞을 지켰다.나는 그 틈에 얼른 병실 문 앞을 떠났다. 심지어는 아예 병원에서 나왔다.정태곤과 한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불편했으니까.병원을 나온 뒤에야 나는 비로소 긴 숨을 내쉬었다.하지만 문뜩 내가 너무 겁쟁이처럼 행동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이런 일만 있으면 도망치기나 하고. 양동준의 기세를 따라배우기는커녕 반대로만 하고 있었다.문제는 기세와 배짱은 하루아침에 단련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건 오랫동안 쌓아야 하고 실력이 받쳐줘야 한다.나는 아직 충분한 경험이 없고 능력도 부족하다. 그러니 기세가 있는 게 이상하지.“하!”한숨이 절로 나왔다. 어릴 때 왜 무술을 배워두지 않았는지 후회됐다.내가 만약 어릴 때부터 무술을 배웠다면 정태곤을 무서워할 리 없었을 텐데.내가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익숙한 차 한 대가 내 앞에 천천히 멈춰 섰다.이윽고 윤미화가 차에서 내렸다.윤미화는 윤미 사모님의 사촌 언니다. 때문에 사장님을 뵈러 온 것 같았다.“윤 사모님...”“사모님은 무슨. 사장님이라고 불러.”윤미화는 내 말을 잘라버렸다.그러고 보니 윤미화에게 속아 얼떨결에 탐정 사무소에 들어가 지금은 윤미화 부하가 됐다는 게 떠올랐다.나는 얼른 호칭을 바꿨다.“윤 사장님. 사장님도 정 사장님 보러 오셨어요?”“응.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달려왔어. 호섭 씨는 지금 어때?”“잠시는 안정됐지만 의사 선생님 말로는 재발할 가능성이 있대요.”“그래, 알았어. 나 잠깐 들어가 볼테니까 먼저 가지 마. 여기서 기다려. 할 말 있으니까.”윤미화는 말을 마친 뒤 급히 병원으로 들어갔다.그러다 약 10분 뒤, 윤미화는 다시 병원을 나왔다.“안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비집고 들어갈 수가 없네. 유미랑 두
윤지은은 두 어르신을 훈계하고는 바로 병실을 나섰다. 그러고는 벽에 기대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왜 그래요?”‘이까는 그렇게 위풍당당하더니 왜 갑자기 이러지?’윤지은은 숨을 크게 들이켰다.“유미가 걱정돼서. 만약 호섭 씨가 정말 없으면 유미는 어떡해?”윤지은은 항상 이렇다. 말은 사납게 하면서 마음은 누구보다 약하고, 겉으로는 차갑게 굴면서 모둔 누구보다 친구를 진심으로 걱정한다.나는 이런 윤지은을 뭐라 해야 할지 몰라 한참 동안 침묵을 지켰다.그때 윤지은이 갑자기 나를 바라봤다. 그 눈빛에 나는 온몸이 불편했다.“왜 그렇게 봐요? 내 얼굴에 뭐 있어요?”윤지은은 싸늘하게 나를 노려봤다.“경고하는데, 호섭 씨가 어떻게 되든 유미는 넘보지 마. 만약 유미마저 넘보면 내가 너 죽일 거야!”“헉, 대체 나를 뭐라고 생각한 거예요? 정호섭 씨는 내 사장님이에요. 나한테 평소 얼마나 잘해줬는데, 내가 어떻게 그분 아내를 넘보겠어요?”나는 윤지은이 나를 이렇 사람으로 생각했다는 게 화가 났다.‘이 여자 마음속에 나는 항상 이렇게 비열한 사람이었나?’윤지은은 여전히 냉랭한 표정이었다.“안 그렇다면 다행이고! 만약 정말로 그런다면, 내가 너 아주 처참하게 죽여줄 거야.”나는 화가 치밀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윤지은 눈에 나는 항상 짐승인가 보다. 잠시 뒤, 백연우도 도착했다.백연우와 윤지은은 계속 윤미 사모님 곁에 같이 있어줬다. 사모님도 두 친구의 위로 덕에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병실에 사람이 너무 많은 탓에 들어가도 있을 곳에 없어, 나는 아예 문 밖에 앉아 있었다.그러다가 오후 4, 5시쯤 되니 소여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뒤에 정태곤도 있었다.소여정은 나를 아는 체할 새도 없이 병실에 들어가 친구들을 찾았다.정태곤은 밖에서 말없이 지켰다.나 역시 밖에 있었다.우리는 시선이 서로 맞물렸다. 정태곤의 싸늘한 눈빛을 보니 머리털이 쭈뼛 곤두서는 것 같았다.이 사람과 한 공간에 있기만 하면 나는 온몸이 불편하다. 나는 결국 떠
두 사람은 내 말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제야 분위기도 약간 풀어졌다.“그래. 그만 울자고. 다 큰 어른이 울기나 하고 쪽팔리지도 않나?”이 선생님이 먼저 웃음을 터뜨리며 정 사장님 눈물을 닦아주었다.이 선생님은 정 사장님을 마치 아들 대하듯 대했다.우리가 한창 얘기를 하고 있을 때 두 줄기의 그림자가 급히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두 사람은 화려한 옷차림에 약 50대 정도 돼 보였는데, 병실에 들어오자마자 정 사장님 침대 쪽으로 달려갔다.“호섭아, 어때? 많이 아파?”먼저 말을 꺼낸 여성분은 눈물을 떨구고 있었다.이윽고 뒤에서 유미 사모님이 헐레벌떡 달려 들어왔다.“아빠, 엄마...”유미 사모님은 참지 못하고 흐느꼈다.두 사람은 유미 사모님 부모님이었다. 동시에 정 사장님 장인 장모이자 양부모이기도 했다.두 분은 정 사장님을 친아들 대하듯 아꼈다.솔직히 정 사장님도 그렇게 사랑을 받을 자격이 충분했다.나는 이렇게 다정한 남자를 본 적이 없다. 가족을 대할 때도, 주변 사람을 대할 때도, 그리고 낯선 사람을 대할 때도.정 사장님은 따뜻한 햇살 같은 분이라 함께 있는 사람이 아무리 차가운 사람이라도 결국에는 사르르 녹아버린다.하지만 그렇게 좋은 사람이 하필 간암에 걸렸다니. 유미 사모님의 어머니는 펑펑 울었고, 아버지 역시 정 사장님이 걱정되는 듯 어디 아픈지 계속 물어봤다.정호섭은 처음으로 이렇게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는 것도 마음 아픈 일이라고 생각했다.병실 안 분위기는 점차 침울해졌다. 이러다가 모든 사람이 너무 울어 눈이 팅팅 부을지도 몰랐다.나도 그런 감정에 물 들어 점차 자신감이 사라졌다. 결국 나는 바람 쐬러 병실에서 나왔다.예전에는 죽음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다. 항상 내가 젊다고 자부했고 아직 살 날이 많다고 거만하게 생각했으니까.하지만 짧은 몇 시간 동안 나는 죽음이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특히 내 주변인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니 그 감각은 배가 되어 다가왔다.나는 가슴이 뭉클해 참을
나는 애써 참으려고 했다.어쨌든 여자 아이가 이 선생님을 따라온 걸 보면 선생님 딸일 수 있었으니까.나와 이 선생님은 사이가 좋은데, 내가 여자 아이를 꾸짖으면 여자 아이 체면도 깎일 뿐만 아니라 이 선생님도 난처해진다.하지만 여자아이는 점점 더 심해졌다. 심지어 게임을 놀면서 언성을 높였다.“가운데, 가운데라잖아... 젠장. 게임 할 줄도 몰라? 등신...”목소리만 크면 모를까, 욕설까지 섞여 있었다.그 순간 정 사장님 얼굴에 그늘이 졌다.정 사장님은 점잖고 신사적인 분이라 한 번도 욕을 입에 담은 적이 없다.그런데 지금 사장님 상황이 이 지경인데, 여자아이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예의 없이 구는 건 너무했다.내가 뭐라고 말하려고 할 때, 이 선생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이다연, 당장 나가! 호섭 오빠 아픈 거 안 보여? 이런 상황에서 게임을 하고 있다니, 양심이 있기는 해?”이다연은 동의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내가 몇 마디 위로한다고 병이 낫는 것도 아니잖아요? 쳇.”이 선생님은 화가 나서 손을 휘두르며 여자 아이에게 걸어갔다.그러자 선생님 아내분이 얼른 막아섰다.“여보, 여기 병원이야. 그러지 마. 다연아, 넌 그만 나가 봐.”이 선생님 아내분은 난감한 듯 말했다.그러자 이다연은 콧방귀를 뀌며 나가버렸다.그 모습에 화가 난 이 선생님은 눈시울이 붉어졌다.“나는 그래도 평생 정직하게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저런 걸 나았는지 모르겠다.”말하면 말할수록 이 선생님 눈은 점점 더 붉어졌다.그러자 이 선생님 아내분이 얼른 그를 위로했다.나 역시 이 선생님께 다가가 위로했다.“이 선생님, 화 푸세요. 사장님도 계시잖아요.”이 선생님은 사장님의 건강 상태를 고려해 황급히 미소를 쥐어 짜냈다.“호섭아, 미안하다. 애가 참 철이 없어. 그러니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정 사장님은 싱긋 미소 지었다.“괜찮아요. 게임 싫어하는 애가 몇이나 돼요? 스승님도 앞으로 다연이를 너무 나무라지 마요. 의학을 배우기 싫어하면 너
‘하!’“수호 씨.”한창 감개무량해하고 있을 때, 사장님이 갑자기 불러 나는 얼른 병상 앞으로 다가갔다.“수호 씨, 앉아 봐. 나 할 얘기 있어.”나는 얼른 의자를 끌어와 자리에 앉았다.“사장님, 할 말 있으면 하세요. 제가 꼭 최선을 다해 들어드릴게요.”사장님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그렇게 심각한 거 아니야. 그냥 수다나 좀 떨까 해서 그래. 이런 병에 걸리고 나서도 사실 항상 좋게 생각했었어. 내가 기쁜 마음을 유지하면 병마도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그런데 병들어 쓰러지면 모든 게 무너진다고, 정말 쓰러지니까 내가 이제 곧 죽겠구나 실감이 오더라.”“나 어릴 때부터 고아였어. 장인어른이 나를 입양해서 키워주다시피 했지. 나랑 우리 아내도 어릴 때부터 함께 자라서 사이가 늘 좋았어.”나는 조용히 사장님의 말을 귀담아들었다.“난 어릴 때부터 하느님이 나한테 참 후다고 생각했어. 장인어르신네 가족을 만나고 따뜻한 집을 얻었으니까. 내 아내도 어릴 때부터 나한테 잘해줬는데, 크고 나서 결국 부부의 연을 맺게 됐지.”“만약 내가 계속 이렇게 행복했다면 난 아마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남자였을 거야. 그런데 어릴 때 행운을 다 써버리는 바람에 지금 액운이 닥쳤는지 모르겠어. 하늘은 참 공평하더라고. 모든 걸 다 주지는 않아.”“그래서 난 한 번도 내가 왜 이런 병에 걸렸을까 원망한 적 없어. 곧 죽는다 해도 자연스러운 거라고 생각했어. 사람은 언젠가 죽게 되니까. 하지만 아까 의식을 잃고나서 많은 걸 생각했는데, 내가 떠나면 내 아내는 어쩌지 하는 걱정이 맨 처음 들더라고.”“수호 씨, 나 갑자기 죽기 싫어졌어. 살고 싶어. 아직 내 아내랑 아이를 낳지 못한 게 내 인생에서 가장 큰 한이야. 난 아내와 백년해로하고, 아이도 많이 낳고 싶어.”사장님은 말하다가 끝내 눈물을 흘렸다.그 모습을 보니 나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역시나 죽음을 태연하게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세상에 태어난 이상, 걱정되는 사람과 일이 없을 리 없다.
사모님은 앞으로 나가고 싶었지만 그럴 엄두를 내지 못했다.사모님이 지금 겁먹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나는 먼저 앞으로 걸어 나갔다.“의사 선생님, 환자분 상태는 어떤가요?”“다행히 병세는 진정된 상태입니다.”의사의 말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사모님은 너무 기쁜 나머지 입을 막고 엉엉 울었다.방금 전까지 잘 참고 있는 듯했는데, 긴장이 풀리니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애처롭고 가련하게 우는 사모님을 보니 왠지 안쓰러워났다.얼마 뒤, 정 사장님은 응급실 밖으로 밀려 나왔다.사모님은 단숨에 그 앞으로 달려갔다.“호섭 씨, 호섭 씨...”“사모님, 사장님은 아직 혼수상태태예요. 이따가 정심 차릴 테니까 우리 먼저 병실로 가요.”사장님과 사모님을 병원에 모시고 난 뒤, 나는 다른 직원들을 먼저 가게로 돌려보냈다. 그러고나서 사모님과 함께 사장님이 깨어나기를 기다렸다.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정 사장님은 겨우 눈꺼풀을 들었다.“호섭 씨, 겨우 깨어났네요. 정말 놀랐잖아요.”사모님은 정 사장님의 손을 꼭 잡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이에 정 사장님은 싱긋 웃었다.“이번에 이렇게 갑자기 발병할 줄 몰랐네. 그래도 여러분 덕에 저승사자 만나는 건 면했어.”사모님은 울면서 툴툴거렸다.“당신 하마터면 깨어나지 못할 뻔했어. 지금 농담이 나와?”사장님은 여전히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지만 얼굴색은 창백하기 그지 업었다.“웃지 않으면 어떡해? 울수록 기분만 나쁠 텐데. 기분 나쁘면 병은 악화할 거고.”나도 그 말에 동의했다.“사장님 말씀 맞아요. 사모님도 낙관적인 마음을 가져야 해요.”내가 물론 이렇게 위로했지만 사모님은 그러지 못했다.늙어 죽거나 병들어 죽거나, 죽음 앞에서 사람은 참 무기력해진다.그래서인지 사모님은 사장님처럼 좋은 마음가짐으로 덤덤하게 대하지 못했다.“됐어. 울보네. 수호 씨도 있는데 그만 울어. 화장 다 번지겠어.”사모님은 그제야 티슈를 뽑아 눈가를 닦았다.하지만 너무 울어
“그런데 놀 배짱도 없고, 즐길 줄 모른다면 분명 우리 무리에서 도태될 거야. 이 무리는 내 정치적 이익과 관련이 있어. 그런데 내가 어떻게 공을 세우는 동시에 깨끗하게 발을 뺄 수 있겠어?”나는 비록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 가운데 있는 관계망이 거미줄처럼 복잡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하나를 움직이면 나머지가 모두 영향받을만큼.남주 누나가 이러지 않으면 정치상의 업적이 없을 거고, 그렇게 되면 조만간 자리에서 밀려나게 될 거다.그런데 남주 누나는 얌전히 집에서 남편을 내조할 유형이 아니다.그렇게 생각하니 이건 참으로 악순환이 아닐 수 없었다.나는 머리가 너무 복잡해 고민에 잠겼다. 그때 남주 누나가 갑자기 옷을 벗기 시작했다.그 행동에 나는 깜짝 놀랐다.“남주 누나, 지금...”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주 누나는 내 입술을 덮쳤다.벌써 며칠 동안 참았던 탓에, 갑자기 따뜻한 입술이 덮쳐 오자 나는 저도 모르게 온몸이 달아올랐다.곧이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그저 우리 둘 다 냉정을 되찾았을 때, 벌어질 일은 이미 벌어지고 난 뒤였다.“하!”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상황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남주 누나는 옷을 챙겨 입고는 내 얼굴을 감싸 쥔 채 이마에 입을 맞췄다.“한숨 쉬지 마. 사람은 현재를 보고 살아가야 해. 지금 기쁘다면 다른 건 생각할 필요 없어. 만약 현재 기쁘지 않아 면 미래를 생각해서 뭐 해?”“그리고 정말 대단하네. 어떻게 한 손으로 그렇게 어려운 동작도 할 수 있어?”남주 누나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누나를 보내고 난 뒤 나는 머리가 터질 듯 복잡했다.‘어쩌다 이렇게 됐지? 성욕을 금하겠다며?’하지만 계속 참고 있는 것도 솔직히 힘들었다.방금 쌓여 있던 성욕을 풀고 나니 온몸의 맥이 뻥 뚫린 것처럼 몸이 가벼웠다.‘됐어. 그만 생각하자.’남주 누나 말대로 많이 생각해도 소용없다.‘될 대로 되라지.’나는 카운터로 돌아가 다시 약을 지었다.그런데 갑자기 정 사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