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참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그게 뭐가 다르죠?”“많이 다르죠. 수호 씨가 나랑만 하고 싶다면 나를 사랑한다는 뜻이고 나랑 한 번만 해보고 싶다면 그냥 다른 여자와 하는 걸 경험해 보고 싶은 거잖아요.”나는 형수의 진지한 말에 조마조마해 다급히 손을 움츠렸다.“그게 무슨 뜻이에요?”내 물음에 형수는 나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갑자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바보, 뭘 그렇게 두려워해요? 내가 수호 씨를 잡아먹는 것도 아니고.”하지만 나는 잘못이라도 한 듯 가슴이 콕콕 찔렸다.“저도 형수가 저 잡아먹지 않는 거 알아요. 하지만 갑자기 그렇게 진지하게 말해서 놀랐어요.”“그럼 웃으면서 물어볼게요. 나랑만 하고 싶어요 아니면 나랑은 그냥 한 번만 경험해 보고 싶어요?”형수가 웃으며 질문했지만 이 질문에 꼭 답변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느껴졌다.이게 형수가 나를 어떻게 볼지와 관련될 지도 모르니까.결국 나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결국 답변했다.“처음에는 그냥 한 번만 해보고 싶었어요. 참는 게 너무 고통스러워 한 번이라도 풀어주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마음이 바뀌었어요.”“어떻게 바뀌었는데요?”형수가 흥미 있는 눈빛으로 물었다.“형수하고만 하고 싶다는 건 너무 거짓말인 것 같아요. 왕정민이 저더러 자기 아내를 꼬시라고 하고, 남주 누나가 매일 저를 꼬시고 있는데 두 사람 모두 예쁘고 몸매도 좋잖아요. 그런 여자에게 아무 마음도 품지 않는다는 건 당연히 거짓이겠죠.”“하지만 세 사람 중에 누구와 가장하고 싶냐고 묻는다면 그건 형수예요.”형수는 미소를 띠며 물었다.“왜요?”“형수와는 특별한 감정이 있으니까요. 안고 싶지만 그러지는 못하고, 하지만 또 매일 함께 살고 있어 그게 너무 괴로워요.”“몸은 점점 더 갈망하지만 머리로는 계속 참아야 한다고 매일 되뇌어요. 그 한 걸음을 내디디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으니까.”내 말을 들은 순간 형수의 얼굴에 드리웠던 미소는 점점 사라졌다.그러다 부드러운 눈빛으로 내 얼굴을 쓰다듬더니 갑자
“그건 나한테 물을 게 아니라 본인한테 물어야죠. 수호 씨는 나한테 어떻게 하고 싶어요?”형수는 손 하나를 내 가슴에 얹으며 나더러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라고 했다.하지만 현재 이런 상황에서 도저히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었다.형수의 매혹적인 몸과 사람을 혼미하게 만드는 냄새에 당장이라도 자빠뜨리고 싶었으니까.나는 무의식적으로 형수의 손을 잡으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형수, 제 마음은 저더러 짐승처럼 굴라고 하는데요?”“그래요? 어떻게 짐승처럼 굴라는데요?”“형수가 형의 아내인 걸 알지만 탐하려고 하는 게 짐승 아니면 뭐예요?”“하지만 수호 씨 형도 이애교가 왕정민의 아내인 줄 알면서 마구 만져댔잖아요. 남주도 그렇고. 남주는 이애교와 가장 친한 친구인데 수호 씨 형은 마구 만져댔잖아요. 그럼 그건 뭔데요?”그 일을 잊고 있다가 형수의 말에 다시 생각나면서 나는 화가 치밀었다.“형이 그런 사람인 줄은 정말 몰랐어요.”“이 세상은 원래 그래요. 수호 씨가 착하다고 믿는 사람은 뒤에서 문란하게 굴고, 수호 씨한테 잘해준다고 생각한 사람이 진심으로 잘해주는 게 아닐 수 있어요.”나는 형수의 말에 뭔가 숨은 뜻이 있다는 걸 느꼈다.하지만 그 암시를 끝내 알아내지 못해 물었다.“형수, 그게 대체 무슨 말이에요?”형수는 웃으며 내 볼을 꼬집었다.“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술이 깨서 잠이 안 오던 참에 대화나 할까 해서요.”대화만 하겠다고? 그건 내가 싫었다.나는 형수의 허리를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하지만 화장실에서 형수가 분명 돌아와서 계속하자고 했잖아요.”“내가요? 기억 안 나는데요?”형수는 말을 마치자마자 내 다리 위에서 내렸다.그 행동에 나는 어리둥절했다.집에 돌아와서 형수와 뭔가 할 수 있을까 하고 잔뜩 기대했는데, 형수는 오히려 뜬구름 잡는 얘기만 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이게 대체 뭐란 말인가?나는 아쉬워하며 형수의 손을 꼭 잡았다.“형수, 하지만 저는...”“짐승처럼 굴고 싶다고요? 뒤도 생각하지
여자가 아직 자지 않은 걸 발견한 나는 곧바로 답장했다.[잠시 못 가게 됐어요.][그래서 또 나 생각한 거예요? 나랑 몇 번 더 하고 싶어서?][나를 그렇게 짐승처럼 생각하지 말아 줄래요? 우리가 얘기할 게 그것 말고 없어요?][웃기네요. 우리 원래 원나잇 관계 아니었어요? 그런데 무슨 다른 얘기요?][나 지금 기분이 안 좋은데, 나랑 수다나 떨래요?][아니요. 나도 쉬어야 해요.]나는 어이없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똑같은 문자를 한 번 더 보냈다.하지만 여전히 답장은 돌아오지 않았다.결국 괴로워 잠을 잘 수 없는 처지에 이르자 나는 핸드폰으로 영화 한 편을 찾아 혼자 해결했다.그렇게 해결하고 나니 겨우 편해져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곤히 잠들었다.아침에 알람 소리 때문에 깼을 때 내 정신은 여전히 혼미했다.어제 너무 늦게까지 논 데다 술까지 많이 마셔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결국 세수하여 정신을 좀 차리려고 화장실로 들어갔는데, 형이 변기 위에 앉아 동영상을 보며 자위하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서로 눈이 마주친 순간 우리는 동시에 멍해졌다.형은 다급히 동영상을 껐고 나는 다급히 문을 닫고 나왔지만 마음 한구석은 불편했다.어젯밤 일은 내 추측일지 몰라도 방금 본 건 형수의 말이 사실이라는 걸 증명했으니.내가 어찌할 바를 몰라 답답해할 때, 형이 화장실에서 나와 내 어깨를 감싸 안고 베란다로 향했다.“수호야, 아까 일은 절대 형수한테 말하지 마.”“형, 지금 대체 뭐 하는 거야? 방금 분명 괜찮았으면서 형수하고는 왜 그래?”“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말할게. 나 네 형수랑 있을 때 아무 느낌도 없어. 왼손으로 오른손 만지는 느낌 알지? 네 형수랑 할 때 그런 느낌이야.”“그럴 리가요? 형수 몸매가 얼마나 좋은데.”“하하, 넌 아직 너무 젊어. 남자가 여자한테 관심을 갖는지는 그 여자의 몸매가 얼마나 좋은지가 아니라 자극을 가져다주는지에 달렸어. 나 네 형수랑 벌써 7년이야. 그런 자극은 이미 없어졌어. 시도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물론 형수에게 마음이 있다지만 형 앞에서 형의 여자와 자고 싶다고 하면 형이 기분 상할 게 뻔하다.게다가 내가 이렇게 말하자 경계하던 형의 눈빛은 금세 풀리며 말했다.“네가 나 안 도와주면 계속 가다가 나랑 네 형수 이혼할지도 몰라. 네 형수가 아이를 너무 좋아해서 내가 만약 네 형수 임신하게 하지 못하면 네 형수는 절대 나와 함께 지내려 하지 않을 거야.”“차라리 병원에서 검사해 봐요. 아무래도 심리상의 문제인 것 같은데, 심리상담 한번 받아봐요.”“싫어. 아무 문제도 없는데 왜 심리 상담을 받아?”형이 바로 거절하자 나는 인내심 있게 설명했다.“형이 이러는 것도 방법은 아니잖아. 설마 계속 형수와 이럴래?”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형, 난 형이 왕정민처럼 되길 바라지 않아. 돈과 권력도 중요하지만 행복한 가정도 중요하잖아. 형수 좋은 사람인데 절대 저버리지 마.”내 말에 형은 싱긋 웃으며 나를 보더니 갑자기 물었다.“수호야, 넌 형수가 예쁘다고 생각해?”그 물음에 나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아 조심스럽게 대답했다.“형, 갑자기 그건 왜 물어?”그랬더니 형이 웃으며 말했다.“괜찮아. 그냥 아무렇게나 대화해보자는 거니까. 너랑 내가 친형제도 아니니 네가 여기 있는 걸 네 형수가 싫어할까 봐.”“그 정도는 아니야. 형수가 나 여기서 지내는 거 별로 신경 안 써.”“그럼 형수가 평소에 잘해줘?”“그냥 그래. 너무 좋지도 않은데 그렇다고 나를 일부러 괴롭힌 적은 없으니까.”“네 형수 좋은 사람이야. 네가 내 동생이라고 하니까 본인도 동생처럼 대하겠다더라. 형수가 너 괴롭히지 않았으면 다행이고. 네 형수가 좋은 건 나도 알아. 걱정하지 마, 내가 절대 네 형수한테 미안한 짓 안 할 테니까.”그제야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방금 형이 왠지 나를 떠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으니까.아마도 내가 형수의 일에 너무 관심을 보여 의심이 생긴 모양이다.‘앞으로 더 조심해야겠네. 함부로 말하지 말자.’나는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대담한 생각이 떠올랐다.내가 직접 인사해도 상대가 나를 바로 저와 바람 피던 상대라는 걸 보아내지 못할 거라는 생각.나는 대담하게 여자에게로 걸어갔다.“안녕하세요.”여의사는 고개를 들어 나를 흘긋 보더니 차갑게 대답했다.“누구세요? 저 아세요?”역시나 여자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이에 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저는 한의과 인턴 정수호라고 해요. 그쪽은 이름이 뭐예요?”“그걸 알아서 뭐 하게요?”‘이 여자 낮에는 정말 쌀쌀맞네.’하지만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면 나도 무서울 거 없어 계속 수다를 떨었다.“친해지고 싶어서요.”“나한테 관심 있어요? 아니면 그냥 나랑 자고 싶나?”여자의 직설적인 말에 나는 진지하게 받아쳤다.“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난 정말 그쪽한테 관심 있는 것뿐인데.”그 말에 여의사는 싱긋 웃더니 갑자기 사람들을 향해 높게 소리쳤다.“다들 여기 봐요. 이 사람이 저 꼬시겠대요.”“전장!”‘이 여자도 남주 누나랑 같은 결이잖아?’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너도나도 우리 쪽을 바라보는 바람에 나는 당장에 죽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결국 다급히 얼굴을 가리고 도망치려 할 때 여자가 차갑게 웃으며 중얼거렸다.“고작 그까짓 배짱으로 나를 꼬시겠다고?”한의과로 돌아오는 내내 내 얼굴을 화끈거려 생각할수록 난감하고 민망했다.‘젠장, 그 여자 미친 거 아니야?’‘싫으면 싫은 거지,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나도 참 무덤을 스스로 파네. 왜 갑자기 저 여자는 건드려서. 이러고 어떻게 홍보 책자를 나누지?’“오늘은 왜 나가지 않아?”마동국이 사무실에 오자마자 묻는 바람에 나는 너무 머쓱했다.“오늘 나가기 싫어요.”“그래, 마음대로 해.”마동국은 별로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였다.결국 나는 의서 한 권을 들어 대충 보기 시작했다.생각할수록 억울하고 그 여자에게 당했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핸드폰을 꺼내 들고 다시 그 여자의 카톡을 추가했다.[나 하고 싶어요.]그러고는 아주 직설적
물론 그저 다리 사진이었지만 검은 스타킹을 신은 다리만으로도 충분히 유혹적이었다.검은 스타킹은 가늘고 긴 다리를 소유한 사람한테 어울리는데 여자의 다리가 마침 그런 스타일이었다.과장하지 않고 두 다리만으로도 사람을 흥분하게 할 정도였다.게다가 다리를 겹친 곳이 흰 천으로 가려져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의사 가운이었다.‘설마 이 여자가 출근 중에 찍은 건가? 너무 대담한 거 아니야?’병원 규칙상 의사들은 출근 시간에 검은색 스타킹을 신지 못한다.그렇다는 건 이 여자가 출근 시간을 이용해 몰래 사진을 찍었다는 건데.그 생각을 하니 나는 너무 궁금해 직설적으로 문자를 보냈다.[의사 같네요. 이거 출근할 때 찍은 거예요?][대단하네요. 이렇게 빨리 내 직업도 맞추고. 맞아요. 나 의사 맞아요. 그럼 내가 무슨 과인지도 맞춰볼래요?]이건 나도 예전에 주의하지 못했다.하지만 전에 5층에서 이 여자를 만난 기억이 나기에 나는 마동국에게 물었다.“마 교수님, 혹시 5층은 무슨 과예요?”“아, 남성 비뇨기과지.”“네?”나는 너무 놀라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설마 그 여자가 남성 비뇨기과? 에이 설마.’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얼른 문자를 작성했다.[병원이라면 보통 근무 중 의사가 검은 스타킹을 신는 걸 금할 텐데. 이런 사진을 출근 시간에 몰래 찍었다는 건 일부러 신었다는 걸 말하겠죠. 혹시 남성 비뇨기과라 검정 스타킹 신고 남자를 유혹하려고 한 거예요?][정말 신기 있는 거 아니에요? 이런 것도 다 알고. 설마 나 스토킹했어요?]‘헐, 진짜라고?’‘그렇다면 이 여자가 매일 남자의 그곳을 볼 수 있다는 거잖아?’사실 내가 학교 다닐 때 산부인과를 선택하는 남학생들이 있다는 건 들었지만 남성 비뇨기과를 선택하는 여자는 처음 들어본다.‘정말 세상에 이상한 사람이 많네.’[매일 남자 거기를 그렇게 많이 보는데도 관심이 생겨요?]이 질문은 순전히 여자의 심리가 궁금해서 물어본 거였다.[관심 없어요. 그래서 연애도 별로 안 해요.][
[내가 출근하는 거랑 사진 보내는 게 무슨 상관인데요? 이런다고 환자 진료하는데 방해되는 것도 아닌데. 오히려 그쪽이야말로 힘들지 않나? 그러니까 이 누나 앞에서 앞으로 얌전히 굴어. 나 희롱할 생각 하지 말고.]‘내가 본인을 희롱한다는 걸 알았구나.’나는 머쓱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원래는 복수하고 싶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내가 당한 꼴이라니.[나 괴롭게 만들었으니 어떡할래요? 얼른 와서 도와줘요.][꿈도 야무져. 혼자 해결해요.]그 뒤로 내가 아무리 문자를 보내도 여의사는 좀처럼 내 문자에 답장을 하지 않았다.결국 나는 혼자서 괴로워하다가 안 되겠다 싶어 혼자 해결하러 화장실로 향했다.지난번에 민규가 엿들었던 경험도 있기에 나는 특별히 인터넷에서 무선 이어폰을 구매했었다.때문에 이번에는 이어폰을 챙겨 낀 뒤에야 영상을 틀었다.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몇 분이 지나도 감각이 오지 않았다.이 영상은 분명 아주 자극적인 것인데도 말이다.아마 이미 여자를 맛본 터라 고작 이런 영상 따위로 만족이 안 되는지도 모른다.이렇게 해결하는 건 개운하지도 않으니 말이다.결국 나는 카톡으로 남주 누나한테 문자를 보냈다.[남주 누나, 나한테 보여주겠다던 건 언제 보여줄 건데요?]내가 애교 누나 대신 남주 누나한테 문자를 보낸 건 사실 두 사람이 같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애교 누나한테 문자를 보냈다가 남주 누나한테 발각되면 큰일이니까.하지만 남주 누나한테 보내고 애교 누나한테 보내면 남주 누나는 아마 애교 누나를 의심하지 못할 거다.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린 나는 남주 누나에게 문자를 보내기 바쁘게 바로 애교 누나에게 문자를 보냈다.[애교 누나, 보고 싶어요.]그 시각.애교는 남주와 함께 집에서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그때 남주의 핸드폰이 울리자 문자를 확인한 남주는 싱긋 웃으며 그 문자를 애교한테 보여줬다.“이 푸들이 내 거기를 보고 싶다네? 완전 변태 아니야?”그걸 본 애교는 순간 기분이 우울해졌다. 하지만 그때 핸드폰이 울려 확인
나는 애교 누나가 부끄러워하는 걸 알았지만 너무 보고 싶었기에 애원하듯 말했다.[애교 누나, 진짜로 하라는 것도 아니고 바나나로 한번 보여달라는데 한 번만 제 소원 들어줘요.][이건 너무 부끄러워 못 할 것 같아요. 아니면 남주 찾아가요. 수호 씨가 남주더러 그런 영상 찍으라고 하는 거 난 상관없으니까.][전 상관있어요. 전 누나 걸 보고 싶단 말이에요. 애교 누나, 제발요, 한 번만 소원 들어줘요.]애교 누나는 문자를 보자마자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버렸다.내 요구가 너무 수치스러웠을 테니까.애교 누나처럼 보수적이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그런 일을 하는 데다 영상으로 찍으라고 했으니 아마 죽는 것보다 무서웠을 거다.하지만 왠지 모르게 기대감이 조금씩 생겨났다.가뜩이나 그 영상을 나한테 보낸다는 생각에 마음이 흔들렸을 텐데, 나의 끈질긴 애원 끝에 결국 동의했다.[알았어요. 시도해 볼게요.]애교 누나의 답변에 나는 순간 흥분했다.그와 동시에 기대와 기쁨이 더해졌다. 내 말에 애교 누나가 동의할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얼마 지나지 않아 애교 누나는 나에게 영상 하나를 보내왔다.헐레벌떡 그 영상을 클릭해 보니 애교 누나가 카메라를 보며 바나나를 먹고 있는 모습이었다. 물론 아주 정상적이고 평범한 영상이었지만 야릇한 쪽으로 상상하기엔 충분했다.그 영상을 보니 나는 다시 흥분했다.한편 애교의 집.영상을 찍은 애교는 너무 부끄러워 얼굴이 새빨갛게 무르익었다.심지어 이 상태로 나가면 남주에게 분명 들킬 거라고 생각해 나갈 수도 없었다.애교는 거울 속에 비친 빨갛게 달아오른 자신을 바라보며 후회했다.“내가 왜 그런 요구를 덥석 받아들였지? 이제 어떡할 거야? 이렇게 빨개져서 어떻게 나갈 건데?”애교는 생각할수록 후회되었다.지난 30 몇 년간, 항상 우아하고 고귀하게 살아왔는데 이런 짓을 했으니, 본인이 너무 밝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부끄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흥분되었다.쾅쾅쾅... 쾅쾅쾅...애교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밖에서 문
“하도 우리가 제때 왔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다면 오늘 여기서 죽어도 아무도 몰라요.”나를 보는 모태진의 표정은 굳센 의지를 담고 있는 듯했다.“그래도 후회는 안 돼요. 그냥 안명훈 거시기를 자르지 못한 게 한이 될 따름이에요.”나는 손을 뻗어 모태진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복수는 급하게 할 필요 없어요. 때를 기다려야 해요. 우리한테 기회는 많아요. 어제 형수님이 가게에 찾아왔는데 엄청 걱정하는 눈치였어요. 이따 집에 바래다줄게요.”모태진은 마구 도리질했다.“안 갈래요. 난 집에 갈 수 없어요.”“왜요? 집에 안 가고 또 그 여자 귀찮게 하려고요?”민우가 퉁명스럽게 말했다.그러자 모태진이 이내 대답했다.“나 앞으로 한은솔과 다시는 엮이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집에 가기도 싫어요.”“왜죠? 이해가 안 되네요.”민우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가벼운 말투로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 이유를 대충 알 것만 같았다. 안명훈이 모태진을 협박해 한은솔과 그런 짓을 하게 했으니 아내한테 미안해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는 걸 거다.이 상황에 나도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막막했다.“그럼 우선 화인당에 가서 몸에 난 상처부터 치료해요. 형수가 오늘도 아마 가게에 올 것 같아요. 그러니까 시간 날 때 형수를 어떻게 마주할지 고민해 봐요.”모태진은 마음이 어수선한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 사이, 나는 차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20분 뒤 차는 천천히 화인당 문 앞에 섰다.화인당 직원들은 이미 제 일자리를 찾아 오픈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다가 우리가 상처투성이가 된 채 들어오자 걱정하는 듯 빙 둘러싸더니 무슨 일인지 물어댔다.특히 오민혁은 아예 내 팔짱을 끼고 물었다.“수호 형, 왜 이래요? 괜찮아요? 절대 죽지 마요. 형이 저한테 여대생 소개해주길 고대 기다리고 있단 말이에요.”나는 화가 나서 오민혁의 엉덩이를 발로 뻥 차버렸다.“소개는 무슨. 민혁 씨는 평생 희망 없어요. 저쪽으로 좀 비켜요.”“싫어요. 세 사람 시중도 들어야 하거
나는 손을 떼지 않았다. 내가 손을 놓는 순간 주해진이 번복할지도 모르니까.나는 사람들이 몰린 쪽을 쓱 훑다가 마침내 모태진을 찾았다.“태진 선배, 어때요? 복수했어요?”모태진은 몇 번 두들겨 맞아 고통을 참느라고 이를 악물었다.“거의 성공하 뻔했는데 상대가 도망쳤어요.”“젠장. 그럼 우리도 이만 돌아가고 복수는 나중에 하는 게 어때요?”내가 제안했다.모태진은 여전히 분노가 사그라들지 않는 모습이었지만 나와 민우를 생각해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모태진은 원래 안명훈을 거세해 버리고 자수하려고 했는데, 나와 민우까지 연루되자 결국은 우리를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나는 모태진을 불러와 칼을 주해진의 목에 겨누게 했다.“당신 부하들은 여기 남아 있으라고 해. 당신은 우리랑 같이 나가고.”나는 주해진을 인질로 삼아 이곳을 빠져나갈 생각이었다.주해진은 내가 제 거시기를 놓아주자 그제야 편한 표정을 지었다.“그래. 네 말대로 할게. 너희들은 여기 꼼짝 말고 있어. 한 놈도 따라 나오지 마.”“내가 같이 나가면 여기서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 거야. 내가 장담하지.”주해진은 이상하리만치 우리에게 협조했다. 하지만 상황이 급박해, 나는 더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우리가 주해진을 인질로 삼아 술집을 나가려고 할 때, 한은솔이 달려왔다.“모 선생님, 저 좀 데리고 나가 주세요.”모태진은 싸늘한 표정으로 상대를 쏘아봤다.“저리 비켜!”그 순간 한은솔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모 선생님, 저도 협박받아 어쩔 수 없었어요. 그때 제가 그러지 않았으면 안명훈이 저를 가만두지 않았을 거예요.”모태진의 눈빛은 점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꺼지라고 했을 텐데. 손쓰게 하지 마.”“차라리 절 때려요. 때려서 화가 풀린다면 얼마든지 맞을게요.”모태진은 으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주먹을 그러쥐었지만 결국은 끝내 손을 대지 못했다.그 대신 내가 다가가 짝, 하고 한은솔의 뺨을 후려갈기며 싸늘히 충고했다.“이건 태진 선배 대신 때리는 거야. 다
그때 민우가 불쑥 물었다.“어떡해? 가서 말릴까?”나는 이를 악물었다.“아니! 저 개자식이 태진 씨한테 한 짓을 생각하면, 나라도 저놈 거시기 잘라버렸을 거야.”우리가 대화하는 사이, 시커먼 그림자들이 안으로 우르르 몰려들었다.그 모리는 다름 아닌 주해진 패거리였다.주해진은 모태진을 보더니 표정을 일그러뜨렸다.“감히 내 구역에서 소란을 피워? 죽고 싶어 환장했나?”“가자!”나는 때를 봐서 얼른 미우와 함께 앞으로 돌진해 모태진 앞에 막아섰다.“해진 형님, 살려줘요...”안면훈은 주해진을 보자마자 큰 소리로 구원 요청을 해댔다.나는 두말없이 그 자식을 퍽, 걷어찼다.“닥쳐. 오늘 천지신명이 와도 널 구하지 못할 거야.”“지금 뭘 하려는지 알아요. 하고 싶은 대로 해요.”“수호야, 너 미쳤어? 이거 불법이야.”민우는 나를 보며 놀란 눈으로 말했다.이에 나는 이를 악물었다.“민우야, 입장 바꿔서 그런 일을 당한 게 너였다면, 나더러 그냥 참으라고 할 수 있어?”민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나는 모태진을 흘긋거리며 말했다.“태진 선배는 우리 화인당 식구야. 우리 식구를 괴롭히는 건 우리 화인당을 괴롭히는 거나 다름없어. 당하고 온 게 태진 선배든, 너든, 아니면 다른 사람이든, 난 똑같이 할 거야.”민우는 결국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그래. 나도 같이해. 무슨 일 생기면 나도 같이 책임질게.”모태진은 이미 안명훈의 바지를 벗겨 그놈 거시기를 꽉 잡고 있었다.안명훈은 너무 놀라 벌벌 떨었고, 주해진은 그 장면에 눈살을 찌푸렸다.“젠장. 감히 나를 무시해? 저 자식 족쳐!”주해진의 명령이 떨어지기 바쁘게 똘마니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나와 민우는 온 힘을 다해 그들을 막았다. 나는 심지어 거추장스러울까 봐 팔에 감고 있던 깁스까지 벗어던졌다.그러고는 민우가 하던 대로 요리조리 피하며 피하지 못할 것 같을 때는 상대를 습격했다.물론 몇 군데 맞았지만, 나도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내가 휘두른 방망이는 한 번도 비껴
안명훈은 가까스로 칼을 피했지만, 피하는 도중에 칼날이 그의 어깨를 베었다.순간 안명훈의 입에서 비명이 흘러나오더니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안명훈은 제 상처를 부여잡고 버럭 소리쳤다.“예들아. 당장 와서 저 자식 족쳐!”모태진은 단칼에 안명훈을 해결하려 했지만, 그가 피해버리자 순간 당황했다. 심지어 전투 경험도 없는지라 손에 들고 있던 칼도 어디 갔는지 없어졌다.그러다가 술집 안 사람들이 저를 향해 달려오자 그대로 도망쳤다.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한은솔은 마음이 타들어 갈 것 같아 얼른 울면서 나한테 전화했다.“모 선생님 지금 레드 오션에 있어. 방금 안명훈을 칼로 찌르려 하다가 실패해서 지금 도망 중이야. 안명훈이 모 선생님을 죽이려 하고 있어.”모태진의 위치를 들은 나는 곧장 한의관에서 뛰쳐나왔다.그때 마침 민우가 아침을 사 들고 돌아오는 게 눈에 띄어, 나는 얼른 그를 끌고 차로 올라탔다.“태진 선배가 레드 오션에서 그 자식을 찌르려 했대. 우리가 가서 도아야 해.”“헐. 이게 무슨 상황이래?”민우는 어리둥절해 벙찐 얼굴을 하고 있었다.내가 가면서 대충 상황을 설명해 주자, 민우는 그제야 놀란 듯 입을 쩍 벌렸다.“평소에 그렇게 점잖던 사람이 그런 일을 저지르다니, 놀랍네. 이따가 싸우려면 얼른 배불리 먹어야겠어.”민우는 말하면서 찐빵 하나를 입에 베어 물었다.그러더니 눈 깜짝할 새로 3개를 먹어 치웠다.한편 나는 모태진이 위험할까 봐 차 속을 높였다.다행히 화인당이 레드 오션과 그리 멀지 않아, 우리는 10몇 분 내로 도착할 수 있었다.그 시각 술집 안에 있던 사람들은 끊임없이 밖으로 빠져나오고 있었다. 그걸 봐서는 상황이 아직 종료되지 않은 모양이었다.민우는 밖에서 벽돌과 몽둥이를 찾아 쥐더니 나에게 몽둥이를 건넸다.“넌 경험이 부족하니까 이따 내 뒤에 붙어 있어. 누가 달려오면 그 몽둥이로 때려.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우선 때리고 봐.”민우는 싸움에 경험이 많다. 특히 이렇게 상대가 수적으로 많
[하하, 그래서 수호 씨한테 부탁한 거잖아요. 설마 거절할 건 아니죠?]“누가 대신 돌봐준대요? 난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이렇게 자기 가족 떠넘기면 나더러 앞으로 어떻게 결혼하라고요?”나는 감정이 북받쳐 전화에 대고 미친 듯이 소리쳤다.대화를 하다 보니 모태진이 대충 뭘 할지 짐작이 갔기에, 나는 절대 그가 무모한 짓을 하게 놔둘 수 없었다. 만약 이걸 막지 못하면 정말 모든 게 끝나니까.[하, 내가 지은 죗값은 내가 치러야죠. 나 때문에 화인당까지 안 좋은 일에 엮이면 난 진짜 죄인이 돼요. 됐어요. 이만 끊을게요. 나 이제 볼일 보러 가야해요.]“전화 끊지 마요. 끊지 마요...”전화 건너편에서 긴 침묵이 흐르더니 끝내 전화가 끊어졌다.나는 속이 타들어 가 다급히 전화를 해보았지만, 모태진은 어느새 핸드폰을 꺼두었다.‘어디 가서 찾지?’한참 고민하던 내 머릿속에 문득 한 사람이 떠올랐다.나는 얼른 주선영에게 전화해 한은솔 번호를 물어 그녀에게 전화했다.“한은솔, 안명훈 지금 어디 있어?”한은솔은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전화를 끊어버렸다. 심지어 내가 다시 여러 번 걸어도 끝까지 받지 않았다.결국 나는 화가 나서 문자를 보냈다.[태진 선배가 안명훈 찾아가서 복수할지도 몰라. 만약 태진 선배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넌 가해자가 되는 거야. 선배 아내분한테 문자 보낸 거 너지? 그렇다는 건 적어도 양심은 있다는 뜻이잖아? 너도 태진 선배한테 무슨 일 있길 바라는 건 아니지?]그 시각, 한 술집 안 구석에 앉아 있던 한은솔은 내 문자를 받자마자 눈시울이 촉촉이 젖어 들었다.오연화에게 문자를 보낸 사람은 한은솔이 맞다. 그녀는 모태진을 구하지는 못해도 그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 원하지는 않는다.사실 한은솔도 안명훈을 죽도록 미워하고 있다. 그리고 그만큼 무서워하기도 한다.안명훈한테 한은솔은 그저 마음껏 다룰 수 있는 노리개나 다름없다. 지금도 안명훈은 양옆에 아가씨를 끼고 앉아 시시덕거리며 즐기고 있는데, 한은솔은 그의 뒤치다꺼
[열나기 시작하더니 계속 고열이 내리지 않고 있어요. 의사 선생님 말로는 감염이래요. 상황이 꽤 심각해요. 그래서 B시 병원으로 옮기려고요.]나는 문자를 받자마자 벌떡 일어나 앉았다.‘그 정도로 심각하다고?’‘그날 병원에 다녀갔을 때 안색이 많이 좋아져서 괜찮은 줄 알았는데.’나는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갑자기 커다란 돌멩이가 내 가슴께를 내리누르는 것 같았다.이 상황에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 나는 결국 위로의 말을 남겼다.[사장님은 좋은 분이니 분명 별일 없을 거예요. 제가 대신 기도할게요.][고마워요.]우리는 더 이상 문자를 주고받지 않았다. 하지만 사모님한테서 받은 문자를 보면 볼수록 마음이 점점 무거웠다.정 사장님처럼 좋은 분이 간암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게다가 상황이 점점 악화하고 있다니?간암 말기가 되면 환자는 극심한 고통을 겪는다.예전에 시골에 있을 때, 마을 어르신 중에 간암을 앓고 있는 분이 계셨는데, 말기가 되니 매일 아파서 소리 질렀던 기억이 난다. 분명 우리 두 집 사이에 몇 집이 더 있었는데, 그 멀리에서도 소리가 들릴 지경이었다.난 사장님도 그런 고통을 겪는 게 싫었다.나는 얼른 위층으로 올라가 의서를 뒤졌다. 간암이 퍼지는 속도를 늦추거나 고통을 줄이는 방법이 적힌 고적이라도 있나 하고.그러다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젖어 들었다.나는 사장님한테 무슨 일이 생기는 걸 원하지 않는다. 나는 자는 것도 잊고 의서를 계속 뒤적였다. 그러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끝내 피곤을 참지 못하고 책상 위에 엎드린 채 잠이 들어버렸다.다음 날 아침, 나는 민우의 소리에 깨어났다.민우는 나를 깨우더니 왜 위층에 왔냐고 물었다.“어제 사모님한테서 들었는데 사장님 상태가 악화되어 B시 병원으로 옮긴대. 의서에 무슨 방법이라도 적혀 있나 해서 도움이라도 되려고 찾았어.”민우는 나를 이해한다는 듯 한숨을 푹 쉬었다.“이건 다 사장님이 모아둔 책들인데, 무슨 방법이라도 있으면 사장님이 진작 발견하
사실 처음에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심지어 한은솔이 나이 든 오연화보다 낫다고 여겼다.하지만 많은 일을 겪고 난 뒤에야 사람은 겉모습만 보면 안 된다는 걸 알았다.한은솔은 젊고 예쁘지만 목적이 너무 분명하고, 일이 터지면 자기밖에 모른다.그에 반해 모태진과 함께 고난을 겪은 조강지처는 바로 눈앞의 오연화다.게다가 모태진이 왜 한은솔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끝끝내 아내를 배신하는 일을 하지 않았는지 알 것 같았다.그러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문 닫을 시간이 되었지만 모태진은 여전히 아무 소식이 없었다.“형수님, 우선 돌아가세요. 집에 아이도 있잖아요. 태진 선배한테서 연락이 오면 바로 연락드릴게요.”오연화는 끝까지 돌아가지 않으려 했지만, 결국 방법이 없어 모태진의 연락을 받으면 꼭 연락 달라고 신신당부하고 떠나갔다.가게 직원들도 하나둘 떠나갔지만 나와 민우만은 가게에 남아 있었다.그때 민우가 물었다.“오늘 밤 안 돌아갈 생가이야?”“모르겠어. 우리가 떠난 뒤 그 자식들이 와서 소란 피울까 봐 걱정돼.”평소 담배를 별로 입에 대지 않던 나는 결국 스트레스를 참지 못하고 민우에게 담배 한 대를 요구했다.그러자 민우가 내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너무 스트레스받지 마.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길목마다 CCTV가 있는데, 그 자식들이 설마 함부로 하겠어? 얼른 돌아가 휴식해. 그 자식들이 할 짓이라고는 기껏해야 가게 이름에 먹칠하는 것뿐일 텐데, 뒤에서 허튼 짓 하지 못할 거야.”나는 서둘러 대답하지 않고 묵묵히 담배를 태웠다.그러다 담배 한 대를 거의 대 피웠을 때 천천히 입을 열었다.“됐어. 너 먼저 돌아가. 난 여기서 지키고 있을게.”물론 놈들이 지금 와서 소란 피울 가능성은 작았지만,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무엇보다 사장님 내외가 화인당을 나한테 부탁했는데, 무조건 잘 관리해야 한다.그때 민우가 말했다.“내가 돌아가긴 어딜 돌아가? 너도 안 돌아가는데, 내가 가서 뭐 해? 나도 같이 남을게. 위층에서 이부자리 가
민우는 모태진을 데리고 가게로 돌아가려 했지만, 모태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민우를 밀쳐내고는 도망쳤다.민우는 모태진을 쫓아가려 했으나 결국 따라잡지 못해 다시 터덜터덜 가게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나를 잡아끌더니 모태진이 겪은 일을 설명해 줬다.그걸 듣는 내내 나는 마음이 무겁고 화가 치밀었다.평소 그렇게 성실하던 사람인데, 그런 모욕을 당하고 자존심이 짓밟혔으니 분명 괴로울 거다.나는 얼른 모태진에게 전화했다. 하지만 상대는 계속 전화를 받지 않았다.그 순간 모태진한테 무슨 일이라도 났을 거라는 불안한 예감에 나는 마음이 더 착잡했다.“젠장.”나는 저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무엇보다 머리가 너무 복잡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내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 사장님이 나한테 화인당을 맡겼는데, 나는 반드시 정신을 곤두세우고 안민혁과 주해진이 또 소란 피우는 걸 막아야 했다.“지금부터 우리 둘이 가게를 계속 지키자. 만약 놈들이 또 와서 소란 피우면 그땐 나도 목숨 걸고 싸울 거야!”나는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나는 워낙 겁이 많은 사람이라, 무슨 일이 있으면 절대 일을 크게 만들려 하지 않는다.하지만 이번에 놈들이 모태진을 그렇게 모욕한 건 정 사장님을 모욕하고, 화인당을 모욕한 거나 다름없다.때문에 목숨을 걸고서라도 필사적으로 싸울 거다.그때 민우가 귀띔해 줬다.“아니면 먼저 소여정 씨한테 전화하는 건 어때? 소여정 씨가 나서 주면 더 가망 있잖아.사실 나도 그럴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소여정에게 직접적으로 연락하지 않았다. 만약 내가 무슨 일이든 소여정한테 부탁하면 정태곤이 나를 의심할 거다. 게다가 계속 남한테 의지하면 영원히 성장할 수 없다.때문에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아직은 아니야.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면 그때 얘기하자.”민우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럼 나도 너랑 같이 지키고 있을게. 누가 또 소란 피우러 찾아오면 그땐 얼굴을 박살 낼 거야.”우리는 오후 내내 가게에서 지키
곧이어 안명훈은 모태진에게 달려가 그의 바지를 벗기려 했다. 모태진은 그걸 박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버둥댔다.그때 안명훈이 부하 녀석들에게 소리쳤다.“다들 뭣 하고 있어? 얼른 와서 도와주지 않고!”똘마니들 몇 명이 그 말에 다급히 달려가 모태진을 바닥에 내리누르더니 사람들 앞에서 그의 바지를 벗겼다.그때 주해진이 냉소를 띤 채 한은솔에게 말했다.“가서 위에 앉아.”한은솔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전전긍긍했다.“해진 오빠, 사람도 많은데...”짝!주해진은 귀찮다는 듯 한은솔의 뺨을 내리쳤다.“가라면 가. 뭔 말이 그렇게 많아?”한은솔은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지만 찍소리도 못한 채 모태진에게 다가갔다.모태진은 놈들에게 강제로 벗겨진 채 아무런 존엄도 없이 잡혀버렸다. 그 순간 한은솔은 선량하기만 하던 그의 눈에 분노와 굴욕이 서려 있는 걸 발견했다.한은솔은 알고 있었다. 모태진이 이렇게 된 게 모두 자기 때문이란 걸. 때문에 너무 미안해 모태진의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뭘 꾸물거려? 서둘러.”안명훈은 옆에서 재촉하며 핸드폰을 꺼내 들고 녹화까지 했다.한은솔은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난 네 여자 친구잖아. 그런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네까짓 게 여자 친구? 굴려질 대로 굴려진 걸레 주제에, 누가 널 신경이나 쓸 줄 알아? 네가 나한테 매달렸잖아. 그러니 쓸모 있는 짓이라도 해야지. 안 그러면 내 앞에서 꺼지던가.”한은솔은 절망에 빠졌다.그때 모태진한테서 다시는 만나지 말자는 문자를 받은 한은솔은 홧김에 다시 안명훈을 찾아갔었다. 그런데 안명훈은 그녀를 사람 취급도 하지 않고 예전보다 더 모욕했다.이 순간이 되어서야 한은솔은 그때 그 선택을 후회했다. 하지만 후회가 소용 있나? 일이 이 지경이 된 건 그녀의 선택이고, 이미 되돌릴 수 없게 되었는걸.만약 지금 안명훈 말대로 하지 않으면 안명훈은 한은솔이 더 싫어하는 일을 시킬 게 뻔하다. 그때가 되면 한은솔의 자존심은 더 바닥으로 처박힐 거다.결국 한은솔은 마지못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