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출근하는 거랑 사진 보내는 게 무슨 상관인데요? 이런다고 환자 진료하는데 방해되는 것도 아닌데. 오히려 그쪽이야말로 힘들지 않나? 그러니까 이 누나 앞에서 앞으로 얌전히 굴어. 나 희롱할 생각 하지 말고.]‘내가 본인을 희롱한다는 걸 알았구나.’나는 머쓱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원래는 복수하고 싶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내가 당한 꼴이라니.[나 괴롭게 만들었으니 어떡할래요? 얼른 와서 도와줘요.][꿈도 야무져. 혼자 해결해요.]그 뒤로 내가 아무리 문자를 보내도 여의사는 좀처럼 내 문자에 답장을 하지 않았다.결국 나는 혼자서 괴로워하다가 안 되겠다 싶어 혼자 해결하러 화장실로 향했다.지난번에 민규가 엿들었던 경험도 있기에 나는 특별히 인터넷에서 무선 이어폰을 구매했었다.때문에 이번에는 이어폰을 챙겨 낀 뒤에야 영상을 틀었다.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몇 분이 지나도 감각이 오지 않았다.이 영상은 분명 아주 자극적인 것인데도 말이다.아마 이미 여자를 맛본 터라 고작 이런 영상 따위로 만족이 안 되는지도 모른다.이렇게 해결하는 건 개운하지도 않으니 말이다.결국 나는 카톡으로 남주 누나한테 문자를 보냈다.[남주 누나, 나한테 보여주겠다던 건 언제 보여줄 건데요?]내가 애교 누나 대신 남주 누나한테 문자를 보낸 건 사실 두 사람이 같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애교 누나한테 문자를 보냈다가 남주 누나한테 발각되면 큰일이니까.하지만 남주 누나한테 보내고 애교 누나한테 보내면 남주 누나는 아마 애교 누나를 의심하지 못할 거다.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린 나는 남주 누나에게 문자를 보내기 바쁘게 바로 애교 누나에게 문자를 보냈다.[애교 누나, 보고 싶어요.]그 시각.애교는 남주와 함께 집에서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그때 남주의 핸드폰이 울리자 문자를 확인한 남주는 싱긋 웃으며 그 문자를 애교한테 보여줬다.“이 푸들이 내 거기를 보고 싶다네? 완전 변태 아니야?”그걸 본 애교는 순간 기분이 우울해졌다. 하지만 그때 핸드폰이 울려 확인
나는 애교 누나가 부끄러워하는 걸 알았지만 너무 보고 싶었기에 애원하듯 말했다.[애교 누나, 진짜로 하라는 것도 아니고 바나나로 한번 보여달라는데 한 번만 제 소원 들어줘요.][이건 너무 부끄러워 못 할 것 같아요. 아니면 남주 찾아가요. 수호 씨가 남주더러 그런 영상 찍으라고 하는 거 난 상관없으니까.][전 상관있어요. 전 누나 걸 보고 싶단 말이에요. 애교 누나, 제발요, 한 번만 소원 들어줘요.]애교 누나는 문자를 보자마자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버렸다.내 요구가 너무 수치스러웠을 테니까.애교 누나처럼 보수적이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그런 일을 하는 데다 영상으로 찍으라고 했으니 아마 죽는 것보다 무서웠을 거다.하지만 왠지 모르게 기대감이 조금씩 생겨났다.가뜩이나 그 영상을 나한테 보낸다는 생각에 마음이 흔들렸을 텐데, 나의 끈질긴 애원 끝에 결국 동의했다.[알았어요. 시도해 볼게요.]애교 누나의 답변에 나는 순간 흥분했다.그와 동시에 기대와 기쁨이 더해졌다. 내 말에 애교 누나가 동의할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얼마 지나지 않아 애교 누나는 나에게 영상 하나를 보내왔다.헐레벌떡 그 영상을 클릭해 보니 애교 누나가 카메라를 보며 바나나를 먹고 있는 모습이었다. 물론 아주 정상적이고 평범한 영상이었지만 야릇한 쪽으로 상상하기엔 충분했다.그 영상을 보니 나는 다시 흥분했다.한편 애교의 집.영상을 찍은 애교는 너무 부끄러워 얼굴이 새빨갛게 무르익었다.심지어 이 상태로 나가면 남주에게 분명 들킬 거라고 생각해 나갈 수도 없었다.애교는 거울 속에 비친 빨갛게 달아오른 자신을 바라보며 후회했다.“내가 왜 그런 요구를 덥석 받아들였지? 이제 어떡할 거야? 이렇게 빨개져서 어떻게 나갈 건데?”애교는 생각할수록 후회되었다.지난 30 몇 년간, 항상 우아하고 고귀하게 살아왔는데 이런 짓을 했으니, 본인이 너무 밝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부끄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흥분되었다.쾅쾅쾅... 쾅쾅쾅...애교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밖에서 문
그러고는 세면대 위에 놓았던 바나나 반 개를 크게 베어 물고 바로 문을 열었다.“변비 때문에 바나나 좀 먹은 거야. 넌 허구한 날 이상한 생각만 하더라? 머릿속에 대체 뭐가 들었어?”애교의 반격에 남주가 오히려 할 말을 잃었다.하지만 남주도 그렇게 호락호락한 상대는 아니다. 남주는 애교를 꿰뚫어 볼 듯 한참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설마 내가 네 말을 믿게 하려고 일부러 바나나를 먹어버린 건 아니지? 그렇다면 정말 비위가 좋은데? 어떻게 자기 걸...”남주는 말하면서 애교의 치마를 바라봤다.그 뜻을 이해한 애교는 인정사정없이 남주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튕겼다.“너 무슨 생각하는 거야? 내가 그렇게 변태야?”남주 누나는 다급히 고개를 저으며 헤실 웃었다.“농담이야. 뭘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여? 네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모를까? 네가 나랑 같았으면 호르몬 이상이 생길 리도 없잖아. 게다가 네 얼굴과 몸매면 손가락 까딱하면 남자들이 미친 듯이 달려들 텐데, 그런데 너 정말 해결할 생각 없어?”“우선 남편이랑 얘기해 볼게. 어떻게 말하는지 보고.”“네 남편은 절대 솔직하게 말하지 않을걸? 아니면 내가 먼저 찔러봐?”남주의 제안에 애교도 왠지 괜찮겠다 싶어 얼른 남주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그럼 부탁할게. 네가 나 대신 우리 남편 좀 찔러 봐. 꼭 녹음 혹은 영상 증거 남겨야 해.”“너도 이미 다 알고 있나 보네. 입으로는 그렇게 부인하더니”남주는 한숨을 쉬며 애교의 손등을 토닥였다.애교는 사실 집안일을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지만 왕정민의 약점을 잡으려면 남주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게다가 이미 마음을 편히 먹었기에 남이 알든 말든 상관없었다. 어찌 됐든 왕정민과 이혼하는 건 기정사실이니 다른 사람이 아는 것도 시간문제일 뿐이니까.“지금 마침 한가하니까 이따가 정민 씨 회사에 들를게.”남주의 말에 애교가 걱정되는 듯 말했다.“무조건 조심해. 절대 발각되지 말고. 안 그러면 너한테 무슨 짓 할지 모르니까.”“왕정민이
“아니야, 요즘 매일 회사에서 야근하느라 집에 갈 시간이 어디 있다고.”왕정민이 다급히 설명했다. 사실 왕정민도 본인 마음대로 되지 않아 너무 답답했다.‘설마 내가 요즘 너무 무리했나?’그때 전소혜가 싸늘하게 말했다.“사실이어야 할 거야. 만약 나를 속이는 게 발각되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왕정민은 얼른 소혜를 품에 안았다.“내가 그럴 리가 없잖아. 자기는 내 가장 소중한 사람인데, 내가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와도 절대 자기 배신하는 일은 하지 않아.”왕정민은 소혜를 품에 안고 있었지만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소혜도 사실 예쁘장하다. 가슴도 크고, 골반도 있고, 얼굴도 예뻤으니까.물론 애교와 비하면 한창 멀었지만.왕정민이 소혜를 만나는 건 순전히 소혜가 저한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소혜의 아버지는 큰 건설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왕정민은 늘 소혜의 아버지와 협력하고 싶어 했다.그런데 계속 기회를 찾지 못하다가 우연히 전승빈의 딸 전소혜를 알게 되었고 그 뒤로 미친 듯이 구애하기 시작했다.그러다 끝내 소혜의 마음을 얻고 말았다.애초에 소혜와 만날 때 왕정민은 자극적인 관계에 취해 매번 관계도 오래 가졌지만 지금은 좀처럼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아예 서지 않거나, 몇 번 하지 못하고 죽어버리는 일이 허다했으니.그 때문에 소혜가 자꾸만 왕정민이 아내를 만나러 집에 들르는 건 아닌지 의심하곤 한다.소혜도 애교가 본인보다 훨씬 예쁘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그때 소혜가 화가 난 듯 투덜거렸다.“내가 대체 오빠 어디가 좋아서 만나는지 모르겠다니까. 유부남에, 잘생긴 것도 아니고, 이제 그것도 안 된다니. 나 아직 이렇게 젊은데 오빠랑 계속 이렇게 지내야 하는지 모르겠어.”그 말에 왕정민은 덜컥 겁을 먹고 다급히 말했다.“내가 잘 치료할게. 나도 계속 이런 건 아니잖아. 요즘 피곤해서 그래. 시간을 줘, 내가 꼭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게.”“그럼 치료 빨리 받아. 난 오빠 오래 기다릴 마음 없으니까.”소혜가 으름장을 놓자 왕정민은 헤실거리
왕정민은 얼른 손을 빼고 소혜를 밀어버렸다.“남주 씨가 여긴 어쩐 일로 왔어요?”남주는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내가 오면 안 돼요? 갑자기 쳐들어와야 밖에서 뭘 하는지 알 수 있을 거 아니에요. 왕정민 씨, 이제 나한테 약점이 잡혔네요? 역시나 밖에 여자가 있으니 반년 동안 들어가지도 않은 거였네.”그 말에 소혜가 언짢은 듯 끼어들었다.“저 여자 누구야? 어디서 감히 우리를 말해?”남주는 입가에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소개하지. 최남주, 애교의 베프거든. 저 자식 아내의 베스트 프렌드. 당신들 바람피우는 현장 잡으러 왔어.”왕정민은 하하 큰 소리로 웃어댔다.“바람피우는 현장을 잡는다고? 우리는 아무 짓도 안 했는데요?”“나 다 봤어요. 저 여자가 정민 씨 품에 안겨 있고, 정민 씨 손이 저 여자 옷 안에 들어가 있는걸. 그러면서 뭐? 아무 짓도 안 했다고? 왕정민 씨 사람 참 뻔뻔하네요.”왕정민은 여전히 아무렇지 않은 듯 허허 웃었다.“소혜가 가슴이 불편하다고 해서 그냥 눌러준 것뿐인데, 이건 그저 치료라고요.”“아하, 저 여자 치료를 도와줬다고? 그렇다면 그쪽 머리도 정상은 아닌 듯한데, 내가 치료해줄까요?”남주는 말하면서 왕정민에게 걸어가 테이블 위에 놓인 재떨이를 집어 들고 당장이라도 왕정민을 내리칠 것처럼 굴었다.그 동작에 돌란 왕정민은 연신 뒷걸음쳤다.“최남주 씨, 지금 뭐 하는 겁니까? 미쳤어요?”남주는 어두운 표정으로 차갑게 말했다.“치료해 주려는 건데, 왜 도망쳐요?”“그렇게 치료하는 게 어디 있어요?”“여자 옷 안에 손 넣고 가슴 주무르는 게 치료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건 왜 치료가 아니에요?”남주가 당연하다는 듯 말하자 왕정민은 버럭 소리쳤다.“미친년이! 경고하는데 당장 여기서 나가. 안 그러면 나도 안 봐줄 거니까.”남주는 왕정민의 말에 팔짱을 끼고 받아쳤다.“안 봐준다고? 누가 할 소리! 덤벼!”“사람이 왜 그래요?”그때 소혜가 언짢은 듯 달려 나와 남주한테 따져 물었다.그러자 남주는
왕정민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너무 난감했다.한쪽은 소혜를 구해야 한다는 마음이었지만 또 한편으로 증거를 포기할 수 없었다.왕정민이 어떻게 결정할지 생각지도 못했는데 남주는 왕정민이 망설이는 모습을 보더니 또 소혜의 뺨을 후려쳤다.“아, 너 가만 안 둬!”소혜는 아예 폭발하여 미친 듯 소리쳤다.“가만 안 둔다고? 더러운 년이 어디서, 남의 남편 꼬신 주제에. 너 같은 게 조선 시대에 태어났으면 돼지우리에 갇혔어! 쓰레기 같은 것들, 내가 오늘 내 친구 대신 너희 분리수거한다!”남주는 워낙 성깔 있기에 소혜의 머리채를 쥐고 아예 때려죽일 것처럼 굴었다.상황이 점점 심상치 않자 왕정민도 다른 걸 따질 겨를이 없이 다급히 남주에게 달려들었다.“최남주 씨, 미쳤어요? 당장 놔요!”아무리 그래도 왕정민은 남자이기에 힘이 세서 단번에 남주를 떼어냈다.그 힘에 못 이겨 남주는 비틀거리며 하마터면 발을 삘 뻔했다.“왕정민, 해보자 이거지? 감히 나한테 손을 대? 내가 오늘 너 매장하지 않으면 성 바꾼다.”남주는 핸드폰을 꺼내 아까 찍은 사진을 인터넷에 올렸다.그걸 본 왕정민은 다급히 달려들어 핸드폰을 빼앗았고, 순식간에 세 사람은 치고받고 싸우기 시작했다.소혜는 남주에게 뺨을 맞았다는 게 너무 분해 복수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달려들었지만 오히려 남주에게 또 머리채를 잡히고 말았다.남주는 왕정민의 손에 잡혀 아무것도 보지 못했지만 두 손을 허우적대며 계속 공격을 이어나갔다.한 손은 소혜의 머리채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마구잡이로 쥐어뜯어 왕정민과 소혜의 얼굴에 븕은 손톱자국이 남았다.왕정민이 경비원을 부리지 않았다면 이 싸움은 얼마나 지속될지 모르는 일이었다.“이거 놔. 더러운 손으로 어딜 만져?”남주는 경비원들에게 버럭 소리쳤다.그게 얼마나 카리스마 있었는지 경비원들마저 놀라 가까이하지 못했다.그러자 남주는 머리와 옷을 정리하고 입가에 냉소를 지었다.“왕정민, 오늘 일은 시작에 불과해. 어디 천천히 두고 보자고.”이윽고 말을 마친 뒤
“왕정민은 눈이 먼 게 틀림없어. 너 같은 미녀를 놔두고 어떻게 그런 여자를 찾아?”애교는 남주가 보내온 사진을 보고 있으면서도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했다.원래라면 화나고 분하고 억울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순간 자기가 불쌍하다는 생각 외에 큰 감정 기복은 없었다.“남주야, 고마워.”남주는 애교의 평온한 목소리에 무슨 일이 있는 줄 알고 걱정스레 물었다.“너 괜찮아? 목소리가 왜 그렇게 평온해?”애교는 덤덤하게 웃었다.“진작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서 그런 모양이야. 아니면 왕정민에 대한 사랑이 그렇게 깊지 않았던가. 아무튼 사진을 봐도 괜찮네.”“맞아, 이래야 해. 왕정민 같은 배불뚝이 아저씨에 인성 쓰레기는 너랑 어울리지 않아. 차라리 그 인간이 바람피운 게 잘된 일이야. 너도 헤어질 이유가 생기잖아. 안 그러면 평생 그런 남자와 있어야 하는데 네 인생이 아까워.”남주의 사고방식은 일반인과는 많이 다르다.애교는 걱정되는 듯 물었다.“그럼 넌 괜찮아? 왕정민이 너한테 무슨 짓 하지 않았지?”남주는 득의양양해서 말했다.“왕정민이 나를? 그러라고 해도 못 그럴 인간이야. 나 이따가 일 있어서 조금 있다 집에 돌아갈 테니 네 몸 잘 돌봐.”“응, 알았어.”남주는 애교와 통화를 끝낸 뒤 바로 태연에게 전화했다.하지만 태연의 목소리는 왠지 이상했다.“무슨 일이야?”“고태연, 너 설마 집에서 혼자 하는 건 아니지?”“넌 어쩜 그런 말밖에 할 줄 몰라? 할 말 없으면 끊는다.”태연은 화가 난 듯 투덜거렸다.“아니야, 나 할 말 있어. 왕정민 바람피워. 이미 애교한테 사실대로 말해줬어. 걔 혼자 있는 게 걱정돼서 그러는데 네가 가서 곁에 있어 줘.”태연은 남주의 말에 다급히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뭐? 왕정민이 바람피우는 걸 목격했다고?”“내가 왕정민 회사를 찾아갔는데 웬 여자를 끌어안고 그 짓을 하고 있는데 나한테 딱 들킨 거 있지. 내가 사진도 찍어뒀어.”남주는 태연에게 사진 한 장을 보냈다.그 사진을 보는 태연의 낯빛은
나는 순간 몇 초 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이 상황에 대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으니까. 게다가 앞으로 어떻게 헤야할지도 막막했다.왕정민이 바람피우는 건 나도 애교 누나도 진작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애교 누나가 상관하지 말라고, 본인 스스로 알아서 할 거라고 해서 나도 손 놓고 있었던 거고.하지만 남주 누나가 이렇게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바람에 우리의 계획은 완전히 흐트러졌다.내가 한참 동안 생각하고 있을 때 남주 누나가 갑자기 내 팔을 꼬집었다.“왕정민이 바람피우면 네가 땡잡은 거지.”“제가 왜 땡잡은 건데요?”남주 누나는 헤실 웃으며 말했다.“그럼 네가 당당하게 애교를 꼬실 수 있잖아.”“...”나는 애교 누나가 이런 말을 할 줄은 생각지도 못해 조심스럽게 말했다.“애교 누나 남편이 바람났으면 애교 누나 마음이 말이 아닐 텐데, 제가 지금 꼬신다고 허락해 주겠어요? 그냥 없는 일로 해요. 저 해치지 말고.”남주 누나는 내 엉덩이를 세게 때렸다.“나를 농락할 때는 아주 대담하더니 왜 이래?”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귀띔했다.“이러지 마요. 여기 병원이에요. 사람들이 오가는데 보기라도 하면 안 좋아요.”“무서울 거 뭐 있어? 우리가 무슨 사이인지 아는 사람도 없는데. 말 돌리지 말고 다시 물을게. 애교랑 자는 거 싫어?”나야 당연히 좋지. 문제는 우선 애교 누나와 얘기해 봐야 하고 형수한테도 말해봐야 한다.내가 망설이며 대답하지 않자 남주 누가가 갑자기 내 거기를 덥석 잡았다.“누나, 이거 놔요.”나는 너무 놀라 어쩔 줄 몰랐다. 특히 남이 볼까 봐 제일 겁이 났다.그러자 남주 누나가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그럼 먼저 동의해. 애교랑 자겠다고.”“남주 누나, 이렇게 급할 거 뭐 있어요? 저 생각할 시간 좀 주면 안 돼요?”“내가 왜 이렇게 급한지 알아? 네가 애교랑 자야 나도 얼른 너 자빠뜨릴 수 있으니까. 내가 너를 얼마나 기다렸는데.”남주 누나는 손으로 주물럭거리며 말했다.그 순간 나는 온몸의 피가
때문에 주해진은 자기 사촌 형의 말을 귓등으로 흘리고는 퉁명스럽게 말했다.“도와줄 수 있으면 계속 도와주고. 싫으면 관둬. 볼 일 있으면 가서 일 봐. 내 일에는 신경 쓰지 마.”상대는 친척이라서 주해진을 도운 거였는데, 주해진이 제 호의를 무시하고 은근히 비아냥거리자 기분이 언짢았다. 이에 그는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널 도와주는 건 친척 간의 정을 봐서야. 그런데 이런 태도로 말해? 나 기분 나빠지려고 해. 난 고작 팀장이야, 국장도 아닌데 어떻게 뭐든 내 말대로 되겠어?”“됐어. 알았어.”주해진은 짜증 나는 듯 상대의 말을 잘랐다.그러자 그 사람의 얼굴은 더욱 어두워지더니 씩씩거리며 사람들을 데리고 떠나갔다.주해진은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나를 빤히 바라봤다.“대단해네? 식약처 사람들을 돌려보내기까지 하고 말이야.”나는 피식 냉소를 흘렸다.“우리 한의관은 원래부터 문제없어. 식약처에서 다시 검사하러 와도 꼬투리 잡지 못할 거야. 우리는 잘못한 게 없어. 떳떳해. 오히려 꿍꿍이가 있는 놈들이 여기 와서 소란 피우면 안 되지.”주해진 역시 냉소를 지었다.“말도 잘하고 능력 있네. 네가 그렇게 대단하면 가게 잘 지켜. 미리 말해두지만, 난 이 가게 부술 거야.”주해진은 으름장을 놓으면 나에게 접근했다.하지만 나와 가까워지기 전에 양동준이 그를 대여섯 걸은 밀어냈다.“뭘 부순다는 거야? 여기? 어디 한번 해봐!”양동준이 부순다는 것과 주해진이 부순다는 것은 의미가 달랐다.특히 양동준이 위압감 넘치는 눈빛으로 쏘아보자 주해진은 살짝 움츠러들었다.주해진은 갑자기 겁을 먹고 말했다.“이건 우리 사이 일이니 당신은 끼어들지 마.”“내가 왜? 이건 내 제자 일이야. 내 제자를 건드리는 건 나를 건드리는 거나 마찬가지고.”양동준의 말을 들으니 나는 심장이 쿵쾅거리고 파가 들끓었다.“스승님!”나는 뻔뻔하게 양동준을 불렀다. 그러자 그가 나를 째려봤다.양동준은 핑계를 찾기 위해 이렇게 말한 거였지만 나는 그걸 철석같이 믿고 심지어 스승
솔직히 정미령도 언제 다시 강등될지 모른다.의약품안전국장은 아주 좋은 자리다. 하지만 유혹을 견디지 못한 이전 국장들은 바로 대체되었다.심지어 은연중에 의약품안전 국장 자리는 가시방석 같아 1년을 버티는 사람이 없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다.정미령도 사실 자기가 얼마나 버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게다가 아들 때문에 최남주와 완전히 틀어지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정미령의 아들은 공부를 잘하지만 집이 너무 멀리 있는 데다 실험 중학교에 진학하려면 인맥이 필요하다.때문에 최남주가 어떤 태도로 나오든 정미령은 너무 심한 말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계속 최남주한테 끌려 다니는 것도 달갑지 않았다.결국 정미령은 직접적인 약속은 회피했다.“이따가 전화해서 상황부터 물을게.”“이따가? 언제 말하는 거야? 1분 뒤? 10분 뒤? 아니면 내일? 내가 원하는 건 지금 당장 사람들 불러가라는 거야.”“최남주, 적당히 해. 나도 지금은 국장이야. 나도 일이 바빠.”정미령은 목소리를 높이며 강조했다.최남주는 더 이상 입씨름하기 싫다는 듯 말했다.“그래. 그럼 일 봐.”최남주가 전화를 끊으려 하자 정미령은 다급히 말했다.“뭐 하려고?”“너 바쁘다며? 그래서 방해 안 한다니까.”최남주의 말에 정미령은 미간을 찌푸렸다. 순간 머리마저 지끈거렸다.정미령은 최남주를 싫어한다. 하지만 그렇다할 방법이 없었다. 최남주가 직접 전화하지 않았다면 그나마 괜찮을 테지만, 직접 전화까지 했는데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분명 문제가 커진다.정미령은 너무 짜증이 나 미간을 문질렀다.“그 한의관이 너랑 상관있는 곳이야?”정미령은 최남주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끝까지 캐물었다. 하지만 최남주는 퉁명스럽게 말했다.“너랑 무슨 상관인데? 전화할 거야 말 거야? 안 하면 다른 사람 찾을 거야.”“너...”최남주는 정미령에게 말할 기회도 주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러자 정미령은 화가 나면서도 결국 전화를 했다.안 그러면 최남주가 어떤 미친 짓을 할지 몰랐으
남주 누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나한테 전화한 게 내 인맥을 빌려 식약처 사람들을 쫓아내려는 거였어?”“네. 그런데 누나가 그 국장과 사이가 그렇게 안 좋을 줄은 몰랐어요.”남주 누나는 웃으며 말했다.“내가 그 여자와 사이가 안 좋지만 그 여자 약점을 쥐고 있어.”“정말이에요? 뭔데요?”“뭐긴 뭐야 정계 쪽 일이지. 쓸데없는 질문은 하지 마. 내가 바로 그 여자한테 전화해서 부하들 불러가라고 할게.”“고마워요.”남주 누나의 말을 들으니 일이 해결될 기미가 보였다.그때 남주 누나가 전화 건너편에서 갑자기 간드러진 목소리로 말했다.“이 은혜는 어떻게 갚을 건데? 오늘 밤 우리 집 올래?”“됐어요. 요즘 화인당 일로 바빠서 자리 비울 수 없어요.”나는 핑계를 댄다는 오해를 받을까 봐 진지한 말투로 말했다.“무슨 말투야? 누가 봤으면 내가 너 잡아먹는 줄 알겠다.”“됐어. 볼일 봐. 시간 나면 연락할게.”남주 누나는 피식 냉소를 짓더니 전화를 끊고 의약품안전국장한테 전화했다.그 시각, 의약품안전국장 사무실.정미령은 단톡방에 올라온 잘생긴 남자 사진을 보고 있었다. 누군가 그녀에게 잘생긴 젊은 총각을 소개해 줘 오늘 밤 제대로 즐길 생각이었다.하지만 한창 보고 있을 때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다.정미령은 액정에 뜬 이름을 보자마자 눈살을 찌푸렸다.최남주!평소 저와 상극이던 사람이 갑자기 웬일로 전화했는지 불안한 예감이 들었지만. 정미령은 결국 수신 버튼을 눌렀다. 그러고는 이상야릇한 말투로 말했다.“해가 서쪽에서 떴나? 네가 나한테 무슨 일이야?”최남주도 저를 비아냥거리는 상대의 말투를 들었지만 시종일관 웃는 얼굴로 말했다.“해는 서쪽에서 뜰 수 없지만 난 너한테 전화할 수 있지.”“하, 무슨 일인데? 네가 나한테 무슨 볼일이 있겠어? 너 정부 사무실에 있잖아. 아무리 볼 일이 있어도 나를 찾지는 않을 텐데.”“그건 아니지. 이번에 정말 일이 있어. 게다가 반드시 너를 찾아야 해. 화인당이라는 한의관이 있는데 네 부하들이 조
양동준은 나를 바닥에 내팽개쳤다.곰곰이 생각해 보니 양동준이 아까는 나를 놀린 거였다는 걸 알 수 있었다.하지만 나는 양동준 앞에서 내 결심을 증명하려고 생각지도 않고 뛸 생각부터 했다.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어색하게 웃었다.“제가 안 뛰면 동준 형님이 제가 나약하다고 마음에 안 들어 할까 봐요.”“뛰면 내가 마음에 들어 할 것 같아요?”쏘아붙이는 듯 내뱉은 양동준의 한마디에 나는 너무 난처해서 얼굴이 붉어졌다.“그런 뜻이 아니에요. 동준 형님이 저를 안 좋게 보고 있다는 거 알아요. 하지만 저도 이러지 않으려고 해도 정태곤이 너무 강해요. 제가 동준 형님처럼 담력과 패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솔직히 말하면 저 정말 찌질해요. 그래서 변하고 싶어요.”양동준은 어느새 오토바이에 다시 올라탔다.“정말 변하고 싶으면 더 열심히 해요. 그런 비겁한 방법 쓰지 말고.”말을 마친 양동준은 이내 시동을 걸고 떠나버렸다.하지만 이게 대체 나를 응원하는 건지 아니면 못마땅하게 여기는 건지 라이송해졌다.내가 마침 핸드폰을 확인하려고 할 때 갑자기 진동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두 번 정도 울리고 바로 꺼져버렸다.내가 아까 강물에 빠졌을 때 핸드폰도 물에 잠기면서 고장 난 모양이었다.민우와 동료들이 나한테 전화한 것일까 봐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얼른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가게에 도착했더니 확실히 문제가 생겼다.이번에 소란을 피운 사람은 주해진이었다.아침에 내가 주해진의 똘마니들 앞에서 그의 거시기를 잡아 쪽팔리게 했으니, 가만있을 리가 없었다.하지만 주해진은 김진호처럼 저급한 수단은 사용하지 않았다.주해진은 워낙 이 바닥에서 알아주는 깡패라 이런 경험은 많기에 이미 능구렁이였다.의료 사고가 난 척 행패 부리는 건 가장 수준 낮은 방법이다.일을 크게 벌이지 못하면 상대는 별로 타격이 없고, 마약 크게 벌인다 해도 기껏해야 가게 이름에 손해가 될 뿐이다.하지만 주해진은 레벨이 달랐다. 그는 아예 식약처 사람을 데려왔다.식약처 직원들은
밧줄을 끄는 사람은 다름 아닌 양동준이었다. 강가에 서 있는 그의 모습은 너무 멋있었다.물론 양동준이 나를 강물로 차버리고 밧줄을 내 목에 걸고 잡아끌었지만, 나는 하나도 화가 나지 않았다.그도 그럴 게, 양동준이 너무 멋있었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정확히 나를 딱 맞춰 밧줄을 걸다니 역시 내 우상 다웠다.“동준 형님, 고마워요.”나는 강가에서 기어 나와 헤실거리며 웃었다.그러자 양동준은 싸늘한 눈빛을 쏘아 댔다.“고맙다고요? 수호 씨를 강으로 차버린 것도 난데, 그래도 살려줘서 고마워요?”“네. 아까 동준 형님이 저를 걷어차는 바람에 저와 형님의 실력차가 얼마나 큰지 알았어요. 그래서 동준 형님이 더 존경스러워요.”이건 내가 양동준한테 잘 보이려고 아부하는 게 아니라 진심이었다.내 말을 들은 양동준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내 제자가 되려고 정신 나간 말도 하네요.”“틀렸어요. 제가 이런 말을 한 건 진심이에요. 다른 목적이 없어요.”“귀신을 속여요.”양동준은 밧줄을 정리하고는 다시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나는 얼른 그 뒤를 쫓아갔다.“동준 형님, 저 좀 데려다줘요. 제 차가 저쪽애 있거든요.”“나한테 가르쳐 달라면서요? 고작 이 거리도 정복 못 하겠어요?”그 말에 나는 너무 감격스러웠다.“무슨 뜻이에요? 저 가르쳐 주는 거예요?”“흥.”양동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곧장 시동을 걸고 떠나버렸다.그 뒤에서 나는 몸이 축축한 것도 신경 쓸 겨를이 없이 서둘러 뛰기 시작했다.양동준의 속도는 빠르다면 빠르고 느리다면 느렸는데, 보아하니 나를 단련시키려고 일부러 나를 운동시키려는 것 같았다.하지만 나는 오히려 기뻤다.나를 운동시킨다는 건 나를 가르칠 마음이 있다는 뜻이었으니까.이건 내가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일이었다.나는 양동준의 속도에 맞추려고 힘을 냈다. 하지만 온몸이 젖은 데다 전에 다친 상처가 채 낫지 않아 속도가 나지 않았다.결국 나는 얼마 가지 못해 숨을 헐떡거렸다. 그렇다고 멈추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를 악물고
나는 양동준이 강물에 휩쓸려 갈까 봐 얼른 강가 옆으로 달려갔다.하지만 곧바로 내가 양동준을 너무 과소평가했다는 걸 알아챘다.양동준은 물살이 센 강물 속에서 고개를 내밀고 아예 수영을 하고 있었다.그 모습은 너무 충격이었다.대단한 사람은 능력이 일반 사람을 훨씬 뛰어넘어 하다 하다 대자연에 도전장을 내밀 정도다.나는 눈이 휘둥그레서 양동준이 수영하는 모습을 구경했다.나도 나중에 양동준 정도 능력을 키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막연하게 들었다.강가에서 약 20분 정도 구경했더니 양동준은 그제야 강가로 나왔다.그 사이, 양동준의 안색은 이미 정상으로 돌아왔다.하지만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는 양동준과 마주한 순간, 나는 심장이 철렁했다.“동, 동준 형님, 괜찮아요?”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면서 눈길은 자꾸만 양동준의 튼튼한 몸을 훑었다.양동준은 몸매가 아주 좋다. 여자라면 모두 좋아할 역삼각형 모양에 잘 잡힌 근육, 그리고 햇빛에 그을러 살짝 가무잡잡한 피부가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 남자인 내가 봐도 사랑에 빠질 정도였다.양동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 앞으로 다가오더니 내 엉덩이를 발로 뻥 찼다.그 순간 나는 무게 중심이 흔들리면서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하지만 양동준이 발 빠르게 다가와 나를 다시 잡았다.코 앞에 펼쳐진 급한 물살의 강을 보니 순간 심장이 목구멍을 튀어나올 뻔했다.“동준 형님, 얼른 저 잡아당겨 줘요.”나는 깜짝 놀라 고래고래 소리쳤다.하지만 양동준은 나를 끌어당기지 않고 차가운 말투로 물었다.“차에 약 탄 거 수호 씨예요?”그 말에 나는 너무 놀라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양동준이 사실을 알고 나한테 손찌검할까 봐 두려웠다.하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거짓말하면 인간도 아니었다. 때문에 나는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저, 저도 동준 형님과 서지예 씨를 도와주고 싶어서 그런 것뿐이에요. 다른 마음은 절대 없어요.”내 말을 들은 양동준은 내 옷을 잡고 있던 손을 천천히 풀었다. 그 순간 나는
“무슨 일이 그렇게 많아요? 나를 돕지 않으면 내 도움도 바라지 마요.”서지예는 화가 난 듯 말했다.이 타이밍에 나도 서지예의 화를 돋울 수 없어 마지못해 양보했다. “그래요. 알았어요. 하지만 이번 한 번뿐이에요. 기회 잘 잡아요. 이번 기회를 놓치면 나를 탓하지 마요.”“오케이.”서지예는 이내 기분 좋은 좋아진 듯했다, 이윽고 말을 마친 뒤 신이 나서 양동준을 찾아갔다.나는 어이없어 한숨을 푹 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사장님, 저를 탓하지 마세요. 저도 다 화인당을 위해서 이러는 거예요.”나는 차에 몰래 약초를 섞어 넣고 오민혁더러 차를 내가게 했다. 그렇게 하면 양동준이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할 테니까.양동준이 여기서 지켜주고 있으니 왠지 든든하고 안심이 됐다.다만 서지예와 양동준 쪽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이건 두 커플 사이의 일이니 나와 상관없다.다만 우리가 한창 바삐 보내고 있을 때 서지예가 갑자기 다급하게 뛰쳐나왔다. 심지어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수호 씨, 이리 와요!”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다가갔다.“왜 그래요?”서지예는 화가 난 듯 말했다.“나한테 대체 뭘 했어요? 솔직히 말해요.”“뭐 안 했는데요? 지예 씨 요구대로 했잖아요.”“그럼 왜 양동준은 마시고도 아무 문제 없는데 나만 이렇게 됐어요?”서지예는 눈을 부릅뜨고 물었다.“그럴 리 없어요. 내가 쓴 약초는 소한테 쓰는 거라 사람은 절대 참을 수 없어요.”“양동준은 정말 괜찮다니까요. 아까 내가 그 인간 몸에 기댔는데 나를 밀어 냈어요. 지금 나만 괴로워 죽겠는데 이거 어떡해요?”우리가 한창 얘기하고 있을 때 양동준이 어두운 얼굴로 내려왔다.그 순간 나는 너무 놀라 수명이 줄어든 느낌이었다.하지만 양동준은 우리를 무시한 채 곧장 화인당을 떠났다.내가 발견한 바로는 양동준은 괜찮은 게 아니라 참고 있는 거였다.양동준의 얼굴도 살짝 발그스름한 걸 봐서 그도 분명 느낌이 왔다는 걸 설명한다. 다만 양동준의 의지력이 너무 강해 그걸 억제한 거다.
“어,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내가 서지예 씨를 기분 나쁘게한 적 있나요? 좀 내가 잘되기를 바라주면 안 돼요?”나는 너무 어이없어 반박했다.그러자 서지예가 콧방귀를 뀌었다.“날 기분 나쁘게 한 적 없다고요? 지난번에 그딴 것도 아이디어랍시고 내는 바람에 내가 동준 씨랑 한동안 말도 못했잖아요.”나는 뻘쭘해서 양동준의 눈치를 살폈다. 양동준의 눈빛은 시종일관 차가웠는데 마치 왜 서지예한테 그런 방법을 가르쳐줬냐고 따져 묻는 것 같았다. 때문에 눈을 마주칠 엄두가 안 났다.“저기, 혹시 물 마실래요? 민혁 씨, 얼른 가서 물 따르지 않고 뭐 해요?”서지예는 손을 들어 내 말을 잘랐다.“물은 됐어요. 아가씨 부탁으로 도와주러 온 거예요.”‘윤지은?’보아하니 윤지은이 병원에서 사모님으로부터 화인당의 상황을 전해 듣고, 서지예와 양동준을 보내 우리를 도와주라고 한 모양이었다.순간 나는 윤지은한테 너무 감사했다.윤지은은 비록 자주 독설을 퍼붓지만 내가 정말 도움이 필요할 때 항상 도와준다. 때문에 나는 앞으로 절대 그녀에게 개기지 않겠다고 속으로 맹세했다.어쨌든 양동준이 여기 있읜 우리도 뱃심이 두둑해졌다. 심지어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두 분 안으로 들어오세요.”나는 너무 감격스러워 얼른 다른 직원더러 두 사람을 위해 차를 내오라고 부탁했다.양동준은 앞에서 걸어가고 서지예는 그 뒤를 따랐다. 그러다가 서지예는 갑자기 절음을 멈추고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봤다.“은밀한 방 하나 찾아줘요.”“왜요?”나는 무의식적으로 물었다.그러자 서지예가 나를 노려봤다.“뭐긴 뭐겠어요? 당연히 저 뻣뻣한 인간이랑 단둘이 있으려고 그러죠.”‘그건...’나는 서지예의 말대로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다.어쨌든 나는 양동준의 제자가 되는 게 목적인데 그의 심기를 거스르면 제자가 될 수 없을 게 뻔했다.하지만 양동준은 너무 차갑고 말이 적어 친하게 지내기가 힘들다. 그에 반해 서지예는 털털하고 친해지기 쉽다.서지예가 도와주면 일이 쉬워질 테지만
“하도 우리가 제때 왔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다면 오늘 여기서 죽어도 아무도 몰라요.”나를 보는 모태진의 표정은 굳센 의지를 담고 있는 듯했다.“그래도 후회는 안 돼요. 그냥 안명훈 거시기를 자르지 못한 게 한이 될 따름이에요.”나는 손을 뻗어 모태진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복수는 급하게 할 필요 없어요. 때를 기다려야 해요. 우리한테 기회는 많아요. 어제 형수님이 가게에 찾아왔는데 엄청 걱정하는 눈치였어요. 이따 집에 바래다줄게요.”모태진은 마구 도리질했다.“안 갈래요. 난 집에 갈 수 없어요.”“왜요? 집에 안 가고 또 그 여자 귀찮게 하려고요?”민우가 퉁명스럽게 말했다.그러자 모태진이 이내 대답했다.“나 앞으로 한은솔과 다시는 엮이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집에 가기도 싫어요.”“왜죠? 이해가 안 되네요.”민우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가벼운 말투로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 이유를 대충 알 것만 같았다. 안명훈이 모태진을 협박해 한은솔과 그런 짓을 하게 했으니 아내한테 미안해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는 걸 거다.이 상황에 나도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막막했다.“그럼 우선 화인당에 가서 몸에 난 상처부터 치료해요. 형수가 오늘도 아마 가게에 올 것 같아요. 그러니까 시간 날 때 형수를 어떻게 마주할지 고민해 봐요.”모태진은 마음이 어수선한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 사이, 나는 차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20분 뒤 차는 천천히 화인당 문 앞에 섰다.화인당 직원들은 이미 제 일자리를 찾아 오픈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다가 우리가 상처투성이가 된 채 들어오자 걱정하는 듯 빙 둘러싸더니 무슨 일인지 물어댔다.특히 오민혁은 아예 내 팔짱을 끼고 물었다.“수호 형, 왜 이래요? 괜찮아요? 절대 죽지 마요. 형이 저한테 여대생 소개해주길 고대 기다리고 있단 말이에요.”나는 화가 나서 오민혁의 엉덩이를 발로 뻥 차버렸다.“소개는 무슨. 민혁 씨는 평생 희망 없어요. 저쪽으로 좀 비켜요.”“싫어요. 세 사람 시중도 들어야 하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