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봐도 크게 시름 놓지 못해 옆에서 지켜보려고 남은 듯했다.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열심히 치료에 전념했다.예전에 할아버지께서 그러셨는데, 본인이 실력만 있으면 무서울 게 없다고 했으니까.난 그 실력이 있기에 나를 의심하고 믿지 못하는 사람들의 시선 따위 개의치 않았다.내 침술을 지켜보던 마동국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며 어르신께 말했다.“어르신, 걱정하지 마세요. 이분 의술이 엄청 뛰어나니까.”그 말에 어르신은 허허 웃음을 지었다.“저도 느꼈습니다. 제가 의사가 아니라 침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이 의사 선생님이 침을 놓는 순간 다리의 통증이 줄어든 것 같았거든요.”어르신의 신임을 얻을 수 있어 나는 내심 기뻤다.침과 뜸을 하는 시간은 꽤 오래 걸렸다.약 2시간에 걸쳐 나는 겨우 어르신을 위해 모든 절차를 완성했다.“어르신, 일주일 뒤 다시 오세요. 이따가 약처방 드릴 테니까 돌아가서 탕약 드시고, 발도 담그세요. 그러면 증상도 완화될 겁니다.”어르신은 어찌나 입담이 좋으신지 그사이 나와 친해졌다고 여자 친구를 소개해 주기까지 했다.“네, 정 선생님, 하라는 대로 할게요. 그리고 제가 방금 말씀드린 일은 어때요?”“무슨 일이요?”내가 미처 반응하지 못하고 되묻자 어르신은 다시 입을 열었다.“우리 손녀를 소개해 주겠다고 한 일이요. 제 손녀라서 그런 게 아니라, 정말 예뻐요. 정 선생님도 마음에 드실 겁니다.”그저 농담으로 한 말인 줄 알았는데 이토록 진심으로 소개해 주니 나는 다급히 말했다.“어르신, 저 이제 막 일 시작했고 아직 안정되지도 않아 연애할 마음이 없어요.”“그게 뭐가 어때서요? 일하면서 연애하면 되지, 일이 안정되고 연애도 할 만큼 했으면 결혼도 하는 거 아니겠어요?”그 말에 나는 어찌할 줄 몰랐다.어르신이 벌써 결혼까지 생각했을 줄은 생각지 못했으니까.결국 나는 난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어르신, 호의는 정말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 정말 연애할 마음 없어요.”사실 난 한 마디를 채 하지 않
“우선 보고 얘기해요. 왜 아직 보지도 않고 거절해요?”나는 어르신의 고집을 꺾지 못해 사진을 확인했다.그런데 어르신의 손녀는 의외로 아주 예쁘장했다.아주 밝고 귀여우며 젊음의 아름다움이 느껴졌다.솔직히 애교 누나를 만나지 않았다면 고민도 없이 이 여자를 만나봤을지도 모른다.나와 나이도 비슷하고, 얼굴도 예뻐 연애하기 적합했으니까.하지만 아쉽게도 젊은 유부녀의 매력을 느낀 나로서는 이토록 풋풋한 여자에게 별로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이런 여자애는 신경을 써서 속마음을 헤아려줘야 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맞혀야 하니까.하지만 애교 누나와는 그렇게 많은 걸 생각할 필요 없이 진심만 내보이면 그만이다.그렇게 비교하니 역시 젊은 유부녀 쪽이 내 취향에 가까워 나는 결국 어르신을 향해 고개를 저었다.“어르신, 정말 죄송해요.”“이런데도 마음에 안 들어요? 하, 두 사람 정말 인연이 없나 보네.”어르신은 내 마음이 흔들리지 않자 고개를 저으며 아쉬움을 표했다.나는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어르신을 배웅한 뒤 기지개를 켰다.연속 2시간 동안 침과 뜸을 하니 몸은 확실히 힘들었다.하지만 속으로는 성취감도 생기며 만족스러웠다.남은 시간 동안 나는 홍보 책자를 나눠주는 대신 의학 서적을 읽고 인터넷에서 맛집 정보를 알아봤다.그러다 우리가 사는 동네에 있는 맛집을 예약하고 애교 누나, 남주 누나 그리고 형수한테 5시 반에 그 레스토랑 앞에서 만나자고 문자를 보냈다.나는 퇴근하자마자 운전해 약속 장소로 바로 가면 되니까.애교 누나와 남주 누나는 곧바로 나한테 답장을 보냈다.하지만 마지막으로 받은 형수 문자를 본 순간 나는 가슴이 콕콕 찔렸다.[수호야, 네 형수한테만 밥 사주고, 나한테는 안 사?]이건 분명 형의 말투였다.형이 형수의 핸드폰으로 답장을 보낸 거였다.솔직히 형한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무서운 것보다는 형이 나와 형수의 대화 내용을 볼까 봐 그게 제일 무서웠다.‘그런데 그동안 형수랑 카톡으로 야릇한 말을 주고받은 적이
나는 다급히 영상을 클릭했지만 마음이 아팠다.형이 나한테 이런 영상을 보낸 게 무슨 뜻인지 생각하는 한편, 또 영상 속 형수가 형과 몸을 섞을 때 어떤 반응인지 궁금하기도 했다.하지만 영상을 다 본 나는 마치 찬물을 맞은 느낌이었다.형이 보낸 동영상은 야릇하고 수위 높은 동영상이 아니라 내가 하루빨리 성공하여 훌륭한 의사가 되라고 축복해 주는 축하 영상이었으니까.순간 내 마음은 매우 복잡해졌다. 약간의 실망감과 함께 기쁨 그리고 의심이 생겨났다.하지만 가장 많은 건 걱정이었다.내가 뭘 걱정할 게 있겠냐 하겠지만, 형이 다시 되면 형수가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 거고, 그러면 앞으로 형수와는 아무런 기회도 없을 터였다.형수의 육덕진 몸매를 생각하니 나는 매우 아쉬웠다.하지만 그래도 형수 아닌가? 우리 형 진동성의 아내인데, 내가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모순되는 심정과 함께 내 마음도 점점 가라앉았다.심지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형은 내가 한참 동안 답장하지 않으니 퇴근 시간이라 짐 정리를 한다고 생각했는지 이따 보자는 말과 함께 대화를 끝냈다.나는 가라앉은 기분으로 멍하니 의자에 앉아 부단히 나에게 암시했다.‘동성 형은 내 형이잖아, 형이 잘되면 좋아해 줘야지. 형수랑은 절대 불가능해, 차라리 이 기회에 두 사람이 원하던 생활 얻을 수 있기를 축복해 주자.’그렇게 위로하다 보니 내 마음도 점차 나아졌다.게다가 나는 앞으로 절대 형수와 그런 짓을 하면 안 된다고 스스로 최면했다.‘형수는 형수로 대해야 해.’나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해 나는 심지어 속으로 형수에게 불경한 마음을 품으면 개로 변할 거라고 맹세까지 했다.그러다 퇴근 시간이 되자 나는 짐을 챙겨 마동국과 작별 인사를 한 뒤 병원을 나섰다.그때까지 나는 민규가 몰래 나를 따라붙었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내가 형수의 차를 끌고 약속 장소로 향하는 동안 민규는 계속 나를 따라왔다.민규가 이렇게까지 하는 건 복수하기 위해서일 거다.전에 내가 남주 누나와 했던
민규는 볼수록 샘나고 부러웠다.전까지만 해도 본인 여자 친구가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내 옆에 앉은 여자들과 비교하면 천지 차이였으니.“정수호와 야릇한 농담을 했던 여자는 대체 누구야?”민규는 목을 빼 들고 두리번댔다.민규의 목적은 그날 나와 통화했던 여자였다. 그 정도로 밝히는 여자면 본인도 공략하기 쉬울 거라고 생각했으니.하지만 나의 일행과 안면도 없는 사이었기에, 민규는 쉽게 분별할 수 없어 자리를 잡아 묵묵히 관찰하는 수밖에 없었다.나는 온 신경이 형과 형수한테 쏠려 아직도 민규가 나를 미행했다는 걸 발견하지 못했다.오늘 형수는 예전과 많이 달랐다. 아주 기뻐하고 행복해하며 눈에 생기가 돌았다.보아하니 형이 다시 되는 게 틀림없었다.그동안 받지 못한 사랑을 듬뿍 받았으니 기분이 좋았을 테지.오기 전에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이 모습을 보니 나는 마음이 아팠다.형수와 남주 누나는 화기애애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심지어 남주 누나는 거리낌도 없이 직설적으로 말했다.“고태연, 너 오늘 달라 보이네, 어젯밤 남편 사랑 듬뿍 받았나 봐?”형수는 조금도 숨기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했다.“당연하지, 오늘 내 혈색이 좋아진 거 안 보여?”“당연히 보이지. 아주 행복해 보이네, 그런데 티 적당히 내. 우리처럼 굶주린 유부녀들은 너무 부러우니까.”애교 누나는 그 말에 부끄러운 듯 끼어들었다.“누가 굶주렸다는 거야? 난 아니거든.”“아니야? 반년 동안 남편 사랑 못 받았으며 굶주리지 않았다고? 너 불감증이야?”“쉿, 목소리 좀 낮춰. 공공장소에서 좀 자제할 수 없어?”애교 누나의 말에 형수가 피식 웃었다.“얘가 자제하는 것보다 돼지가 하늘을 나는 게 더 가능성 있겠어.”“얼씨구, 네가 나를 제일 잘 아네. 몰라봤어.”“흥, 그러니까 얌전히 굴어. 내 앞에서 수작 부렸다가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세 사람이 한마디씩 주고받으며 떠드는 사이, 동성 형은 내 기분을 눈치챘는지 먼저 물어봤다.“수호야, 왜 그래? 기분 안 좋아 보이는데, 무
그게 애교 누나 혹은 남주 누나의 손이라면 별거 아니겠지만, 하필이면 형수의 손이었다.형수는 남주 누나와 얘기하느라 여자들 쪽으로 넘어간 바람에 현재 내가 형과 형수 사이에 끼어 앉은 상황이었다.형은 오른쪽에서 내 어깨를 끌어안고 있고, 형수는 왼쪽에서 내 다리를 만지고 있는 상황이니, 나는 너무 불안했다.그도 그럴 게, 형한테 발각될까 봐 두려운 것도 있었고, 형수가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는 데서 오는 불안감도 있었다.‘형이 다시 회복했으니 두 사람도 아이 만들기 시작한 거 아닌가? 그런데 나한테 왜 또 이러는 거야?’나는 갈등 되는 한편 걱정되어 조심스럽게 형수의 손을 떼어냈다.하지만 형수는 다시 손을 내 허벅지 위에 올려놓으며 일부러 나를 보고 말했다.“수호 씨, 왜 자꾸 나를 밀어요?”형수의 그 말에 나는 너무 놀라 얼어붙고 말았다.분명 몰래 밀어냈는데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해 버리다니.게다가 내 옆에 바로 형이 앉아 있어 고개만 숙이면 그대로 발각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형수 너무 간이 큰 거 아닌가? 형한테 들키는 게 두렵지도 않나?’“형, 형수 미안해요.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나는 너무 긴장하여 더듬거리며 거짓말했다.동시에 형이 고개를 숙일까 봐 너무 무서웠다.그러자 형수가 갑자기 피식 웃더니 내 얼굴을 꼬집었다.“괜찮아요. 뭘 그렇게 긴장하고 그래요? 누가 보면 내가 잡아먹는 줄 알겠네.”‘젠장,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이렇게 형 앞에서 나한테 이런 짓을 하다니, 형 마음은 조금도 고려하지 않는 건가?’게다가 오늘 형수가 왠지 조금 이상해 보였다. 한편으로 기뻐하면서 일부러 나를 꼬시는 것 같은 느낌.하지만 그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이라 나는 너무 불안하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태연, 조심 좀 해. 수호 겁먹었잖아.”그때 남주 누나가 끼어들어 말하자 형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수호 씨는 내 동생 같은 사람이야, 내가 뭘 한다고 그래?”“그걸 누가 알아? 너처럼 성욕 넘치는 여자는 원래
민규는 모든 걸 끝마치고는 입가에 냉소를 띤 채 떠나갔다.그리고 제 차에 오른 뒤 여자 친구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다.“자기야, 깨끗하게 씻고 기다려, 내가 금방 갈 테니까.”우리가 식사를 마치고 나왔을 때, 시간은 벌써 저녁 9시를 가리켰다.남주 누나는 기분이 좋았는지 함께 2차로 노래방에 가자고 제안했지만 형수는 바로 거절했다.“됐어. 시간도 늦었는데 돌아가자.”“이제 고작 9시 조금 넘었어. 이게 뭐가 늦었다는 건데? 집에 돌아가서 애 만들려고 그래? 그럼 둘이 돌아가, 우리는 계속 놀 테니까.”“안 돼. 수호 씨 내일 또 출근해야 해.”남주 누나는 나를 바라봤다.“정수호, 네가 말해 봐. 갈 거야, 말 거야?”남주 누나와 형수는 동시에 나를 바라봤다.두 사람을 보니 나는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너무 난감했다.솔직히 나는 지금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형과 형수가 한창 좋을 때인데, 내가 따라가면 방해꾼만 될 테니.게다가 금실 좋은 형과 형수의 모습을 내 눈으로 보는 게 싫었다.“형수, 저 한 시간만 놀다가 갈게요.”남주 누나는 얼른 다가와 내 팔짱을 꼈다.“역시, 수호밖에 없다니까. 누나가 사랑해!”나는 형수가 실망했을까 봐 차마 형수의 눈을 보지 못했다.하지만 형수는 오히려 싱긋 웃었다.“그럼 다 같이 놀아. 11시까지 놀고 함께 돌아가지 뭐.”“쯧쯧쯧, 지금 내가 수호한테 뭔 짓 할까 봐 그래? 내가 뭐 잡아먹기라도 한대?”남주 누나가 웃으며 놀리자 형수는 남주 누나의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그래, 네가 제일 걱정이야. 요물 같은 게, 수호 씨 어떻게 괴롭힐지 뻔하잖아.”“괴롭히는 게 뭐 어때서? 난 괴롭힐 건데? 어디 그뿐이야? 아주 잡아먹을 거야.”남주 누나는 일부러 내 팔을 끌어안으며 말했다.그 말에 형수가 버럭 화를 냈다.“수호 씨 껴안지 마, 당장 풀어줘.”“흥, 싫어. 이렇게 안고 있을 거야. 기회가 되면 이렇게 안고 자는 거지 뭐.”남주 누나는 일부러 형수를 약 올렸다.나도 남주 누
“됐어, 너희 둘도 이제 그만하고 얼른 가자. 이러다 밤새우겠어.”결국 보다 못한 애교 누나가 나서서 분위기를 전환했다.남주 누나는 여전히 내 팔짱을 꼭 끼고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심지어 팔에는 남주 누나의 커다란 가슴이 선명히 느껴졌다.솔직히 말해 나는 이런 느낌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즐거웠다.남주 누나와 함께 있으면 복잡한 걸 생각할 필요도 없고 걱정할 필요도 없으니.애교 누나와 같이 있을 때처럼 누나의 생각과 기분을 생각해 줄 필요도 없고, 형수와 같이 있을 때처럼 이것저것 걱정하며 형한테 들킬까 봐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때문에 나는 남주 누나와 있는 게 좋다.물론 너무 요망해서 자꾸만 나를 놀리고 장난치지만 몸매가 끝내주는 것도 부정할 수는 없으니.방금 기회를 틈타 살짝 주물러 봤는데 촉감이 기가 막혔다.게다가 남주 누나는 분명 느꼈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형수도 고집이 센 사람이라 남주 누나가 내 팔짱을 놓지 않는 걸 보자 반대편에 와 내 다른 팔을 끌어안았다.“수호 씨를 뺏아가려고? 꿈 깨!”양 옆에 여자를 끼고 있으니 나는 왠지 형언할 수 없는 느낌이 들었다.생리적으로는 너무 즐거웠지만 마음은 너무 불안했다.다행히 형도 애교 누나도 별로 의심하는 눈치는 아니었다.주차장에 도착해보니, 내 차 옆에 세워진 차 바퀴를 누군가 송곳으로 찔러 차주가 길길이 날뛰고 있었지만 나는 별생각 없이 노래방으로 향했다.2차는 자기가 쏘겠다며 자처한 형은 우리를 위해 커다란 룸을 예약해 주었다.함께 노래하며 즐기다가 중도에 남주 누나가 너무 심심하다며 진실 게임과 왕게임 섞어 놀기로 제안했다.“놀자면 누가 못 할 줄 알고? 같이 놀아.”형수도 기분이 좋았는지 형을 잡아끌었다.남주 누나도 당연히 애교 누나를 놓아줄 리 없었다.결국 우리 다섯 명은 모두 게임에 참여하게 되었다.우리는 게임 룰을 간단하게 변경했다. 다섯 명이 함께 가위바위보를 하여 마지막 남은 두 명이 경쟁하는데, 진 사람이 이긴 사람의 질문에 답하거나 이긴
“동성 씨가 남자니까 날 안으라는 거죠. 여자면 내가 왜 안겠어요? 고태연, 대체할 거야 말 거야?”형수는 얼른 형 앞으로 다가가더니 형을 남주 누나 앞으로 끌어당겼다.“안아. 내가 동의했어.”그 말에 형의 얼굴은 더 빨개졌다.“태연아, 그만하자...”“안돼. 안아. 안 그러면 내가 쫄았다고 하잖아. 그만 꾸물대고 얼른 가.”형수는 아예 형을 남주 누나에게 밀어버렸다.형의 커다란 몸은 갑작스러운 힘에 못 이겨 비틀거리며 남주 누나 쪽으로 기울며 누나를 와락 안아버렸다.그 순간, 느껴지는 말캉한 느낌에 동성은 가슴이 두근거렸다.더 놀라운 건 그곳마저 발기해 버렸다.이에 놀란 형은 놀라고 부끄러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그도 그럴 게, 이 상태를 형수한테 들키면 난감한 상황이었으니.두 사람이 매일 그렇게 노력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는데, 남주 누나와 한번 부딪힌 거로 바로 반응해 버렸다는 게 말도 안 됐다.하지만 남주 누나는 그 기회에 형의 팔을 감싸안았다.“동성 씨, 제가 예뻐요? 아니면 태연이 예뻐요?”형은 더 당황해서 말까지 더듬었다.“다, 다 예뻐요. 다 절세 미녀들이에요. 남주 씨, 제발 그만 놔줘요.”형은 남주 누나의 손을 뿌리치고 도망치듯 물러났다.형의 그런 반응에 남주 누나는 재밌다고 깔깔 웃어댔다.“자, 계속하자고. 게임이 노래하는 것보다 더 재밌네.”남주 누나의 말에 우리는 2라운드를 진행했다.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번 역시 형수와 남주 누나가 마지막까지 남게 되었다.게다가 또 형수가 져버렸다.“왜 또 나야? 오늘 운수가 왜 이래?”형수가 시무룩해서 말하자 남주 누나는 싱긋 웃었다.“1라운드에는 네가 졌지만 벌칙 받은 건 네 남편이잖아. 이번에는 네가 받아야지.”“빙빙 돌리지 말고 빨리 말하기나 해. 뭘 할까?”남주 누나는 얼른 나를 가리켰다.“수호한테 뽀뽀해.”그 말에 형수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너 미쳤어? 수호 씨는 우리 남편 동생이야.”“이건 게임일 뿐이야. 졌으면 벌받아야지. 안 그러면 네
내가 노랑머리한테 준 것도 적은 돈이 아니었다. 족히 10만 원 가까이는 됐으니까. 백수들한테는 이것도 큰돈이나 다름없다.노랑머리 역시 같은 생각이었는지 결국 입을 다물었다.아직 대답을 못한 사람들은 얼른 다른 질문을 하라고 나를 재촉했다.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두 번째 질문을 했다.“그럼 혹시 이연화 혹은 조금희가 요즘 낯선 사람과 만난 걸 본 사람이 있어요?”그 물음에 모든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 그 순간 나는 실망했다.“세 번째 질문, 혹시 누가 나 대신 이연화를 감시할래요?”모든 사람이 동시에 손을 들었다.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좋아요. 그럼 다 같이 해요.”“그럼 돈은 어떻게 계산하는 거예요?”노랑머리가 물었다.나는 가방에서 또 돈 두 뭉치를 꺼냈다.“세 명이 감시해요. 한 사람당 200씩 줄게요.”세 사람의 눈은 커다래지더니 급기야 반짝반짝 빛이 났다.나는 세 사람에게 귀띔했다.“이 돈은 수고비예요. 누가 만약 유용한 단서를 제공하면 이 외에도 큰 보상을 받게 될 거예요.”‘역시 돈이 있으니 뭐든 쉽게 되네.’이 사람들이 나를 위해 성실하게 일하게 하려면 이 사람들 마음을 매수하는 게 우선이다.몇백만 원은 지금의 나한테 큰돈이 아니다. 무엇보다 사장님과 사모님을 도울 수 있다면 나는 뭐든 할 수 있다.모든 일을 마친 뒤 나는 다시 호텔로 돌아갔다.윤지은의 말을 들어보니 사모님은 이미 잠든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사모님 정서가 여전히 불안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기분이 다운된 사람은 쉽게 졸리고 무기력해지고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나는 방금 전 일을 윤지은에게 말했다.“이번 일 조사하기 엄청 어려울 거예요. 언제 진실이 밝혀질지도 모르겠고. 장기전을 할 준비는 됐어요?나는 윤지은을 보며 말했다.그러자 윤지은이 나를 째려봤다.“그걸 말이라고 해? 유미는 내 베스트 프렌드야. 유미한테 이런 일이 생겼는데 내가 같이 있어 주지 않으면 누가 같이 있어 줘? 그러는 너야말로,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는데? 설마
나와 윤지은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우리는 사모님 마음이 편치 않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사모님, 비록 어렵지만 아무 희망도 없는 건 아니에요. 우리가 끝까지 견지하면 분명 수확이 있을 거예요. 게다가 사장님이 하늘에서 우리를 지켜줄 거예요.”사장님을 언급하자 사모님의 정서는 드디어 조금 안정되었다. 사모님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호섭 씨, 정말 우리를 지켜줄 거야?”“당연하지.”윤지은도 사모님을 위로했다.그때 내가 분석했다.“제가 볼 때 이연화가 거짓말하는 것 같아요. 그 여자가 한 말 진짜 아니에요.”“너도 그래?”보아하니 윤지은도 똑같은 느낌을 받은 모양이었다.“넌 어떻게 보아냈는데?”“느낌이 그래요. 이연화가 그렇게 드센데 남편 일을 물어보지 않았다는 게 말이 안 돼요. 게다가 조금희 카드에 입금된 2억이 이연화랑도 연관된 것 같아요.”이건 내 직감이다.나는 왠지 이연화 같은 신분과 배경에 성깔 있는 여자라면 통제욕이 엄청날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여자가 자신을 배신했던 남자를 나 몰라라 방치할 수 있을 리가 있을까?그건 그 여자 성격에 부합되지 않는다. 윤지은의 관점 역시 나와 어느 정도 비슷했다. 윤지은은 내 말에 일리가 있다며 맞장구치면서 보충했다.“그리고 또 이연화가 2억을 얘기할 때 자꾸 눈빛을 피했어. 그건 거짓말한다는 표현이야.”“문제는 그 여자가 진실을 말하지 않으려 한다는 거예요.”이건 가장 골치 아픈 부분이다.그때 윤지은이 말했다.“그건 간단해. 내가 사람을 시켜 그 여자를 감시하라고 할 거야. 그러면 분명 허점을 보일 거야.”이런 건 역시 돈이 많아야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이다.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진짜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 있다.나는 얼른 맞장구쳤다.“만약 그곳 주민을 감시자로 붙여두면 더 좋을 거예요. 그 사람들이 이연화 행적을 더 잘 알고 있을 테니까요.”윤지은은 팔짱을 끼고 나를 바라봤다.“그건
사모님의 기세에 눌린 이연화는 오만하고 안하무인이던 태도가 싹 사라지고 다급히 대답했다.“말할게, 말한다고. 이거 먼저 놔.”사모님은 그제야 이연화 머리채를 놔주었다.이연화는 머리를 마구 문질러댔다. 심지어 얼굴까지 시뻘게진 걸 봐서는 사모님의 공격에 적지 않게 다쳤음을 알 수 있었다.이연화는 한참 동안 머리를 쓰다듬은 뒤 그제야 입을 열었다.“그 2억은 나도 어떻게 된 건지 몰라요. 그 인간이 우리 모자한테 주는 보상이라면서 줬어요.”“당신은 그 사람 아내인데 모른다는 게 말이 돼?”우리는 여자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러자 이연화가 조급히 말했다.“내 말 다 사실이에요. 난 정말 어떻게 된 건지 몰라요. 우리가 부부인 건 맞지만 명의상 부부나 다름없었어요. 그 인간이 나 몰래 불여우를 만나다가 잡힌 적도 있어요.”“그때 그 인간이 이혼만 하지 말자고 싹싹 빌지 않았으면 진작 헤어졌을 거예요.”여자의 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어 나는 차가운 표정으로 물었다.“그 2억이 어디서 났는지 몰랐다면, 조금희 씨가 불치병이라는 건 알았겠죠?”이연화는 고개를 끄덕였다.“그건 알아요. 그 인간이 오래전에 내 앞으로 보험을 들어 놓을 걸 줬었거든요. 자기가 가면 보험사에서 돈이 나올 거라면서.”이건 모두 일가 조사했던 내용이었다. 다만 이연화가 말한 사실이 모두 진짜인가 하는 게 문제였다.나는 이연화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봤다.“그날 장례식장에서 화장을 미뤄달라고 했는데 왜 안 들었어요?”“나 할 일 많아요. 당신들과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 인간이 당한 사고가 단순 사고든 인위적인 사고든 난 관심 없어요. 그 인간이 내 앞으로 돈을 남겼으니 난 그 돈을 얼른 받아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었어요.”이연화는 조금희와 더 이상 감정이 남아 있지 않아 조금희 일에 일말의 관심조차 없어 보였다.하지만 2억의 존재를 모른다는 게 진짜일지 의문이었다.만약 진짜라면 사건의 실마리는 또 끊기게 된다.나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질
그렇다면 우리의 추측이 거의 맞는 거로 증명이 된 셈이다. 게다가 이연화는 분명 뭔가를 알고 있을 거다.“이러면 이연화 모자만 찾으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칠 수 있겠네요.”우리는 일이 이렇게 순조로울 줄 몰랐다.심지어 사모님은 마음이 급해 벌떡 일어섰다.“더는 못 기다리겠어. 나 지금 당장 이연화 만나러 갈래.”“유미야. 아직 조급해하지 마. 지금 이연화 모자가 어디 있는지 모르잖아. 이렇게 해, 내가 한나한테 조사해 보라고 할게.”윤지은은 강한나에게 전화해 이연화 모자가 사는 곳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직무상 편의를 이용해 강한나는 곧바로 이연화 모자의 거주지를 찾아냈다.[미리 말하는데, 이연화 모자 좋은 사람 아니야. 이연화 아버지는 판자촌 터줏대감이라 되도록 갈등을 만들지 마.]“알았어.”이연화가 만만치 않다는 걸 알지만 우리는 무조건 가봐야 했다. 그건 사모님한테는 더더욱 간절했다.아무리 그곳에 불바다라도 사모님은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것만 같았다.이연화 집 주소를 알아낸 우리는 곧장 그곳으로 향했다.판자촌은 낡은 건물 지역이라 외지고 낡은 곳에 있는 데다 교통도 불편했다. 다만 이연화의 집은 그 판자촌에서 가장 큰 집이었다.우리가 이연화의 집을 찾았을 때 이연화는 집에서 화투를 치고 있었다.남편이 죽은지 얼마 되지 않는 여자가 이곳에서 한가하게 화투나 치고 있다니 침 한심했다.“이연화 씨, 할 얘기가 있어서 찾아왔어요.”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그러자 이연화는 나를 흘긋 보더니 말했다.“나 지급 바빠서 시간 없어요.”“이건 당신 남편 조금희 씨와 관련된 일이라 이연희 씨가 저희랑 반드시 가주셔야 해요.”기분이 살짝 언짢아진 나는 당연히 다정한 목소리가 나가지 않았다.하지만 이연화는 자기 구역에 있어 무서울 게 없어 심지어는 나에게 소리까지 질렀다.“반드시? 내가 왜? 당신들이 누군데? 경찰이야? 내가 왜 당신들 말을 들어야 해? 당장 꺼져. 화투 치는 거 방해하지 말고.”여자는 말하면서 다시 화투 치는 데
“보아하니 두 사람 모두 조금희 씨 몸에 종양이 퍼지고 있어 곧 죽는다는 걸 알고 있었네요.”“혹시 조금희 씨가 뒤에서 꼼수 부린 거 아닐까요?”나는 문득 뭔가 떠올라 의문점을 제기했다.현재 상황으로 분석해볼 때 조금희의 혐의가 가장 높았다.그때 윤지은이 말했다.“자세한 건 조사해 봐야 하지만 나도 조금희 씨가 이상한 것 같아.”사모님은 참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혔다.“다음에 조사할 때 나도 끼워줘. 나도 같이 조사하고 싶어. 두 사람 말 맞아. 호섭 씨가 억울한 죽임을 당했는데, 나라도 진실을 밝혀 억울함을 풀어줘야 해. 이게 내가 살아갈 유일한 동력이야.”사모님은 말하면서 또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슬픔 속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와 윤지은은 항상 사모님 곁을 지킬 거다.그날, 우리는 곧장 종양 전문 병원에 가 조금희의 병력을 조사했다.조금희 몸에서 종양이 발견된 건 1년 전인데, 처음에 양성이었다가 악성으로 번지기까지 적지 않은 돈을 들였던 거로 확인되었다.게다가 조금희는 불치병에 걸리기 전에 아내와 갈등을 겪었다.“자세한 건 저도 모르는데, 조금희 씨가 우리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젊은 여자가 항상 와서 돌봐줬어요. 그러다가 부인이 병원에 찾아와 그 아가씨를 때렸고요. 그 일은 병원 사람들 다 알아요.”‘그렇다는 건 조금희가 바람을 피웠다는 거네?’조금희가 이런 사람일 주은 생각지도 못했다.윤지은은 여간호사에게 돈다발을 건넸다. 그러자 간호사는 아주 기뻐하며 떠나갔다.조사를 마친 뒤 우리는 밖에서 식당을 찾았다.식당에 도착한 윤지은은 분석을 시작했다.“조금희 씨가 불치병에 걸렸고, 예전에 아내와 아들한테 잘못을 저질렀다면 혹시 자기가 얼마 못 살 걸 알고 호섭 씨를 배신해 돈을 챙겼던 건 아닐까?”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그럴 가능성이 커요. 만약 조금희 씨 계좌에 큰돈이 입금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아쉽지만 이곳은 강북이 아닌 Y시다. 안 그랬다면 윤지은의 인맥
나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배고픔을 느낀다는 건 좋은 일이다.윤지은이 아침을 사 오자 사모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음식을 먹었다.그걸 본 윤지은은 나를 향해 엄지를 추켜들었다. 그건 내 실력을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이번 치료 방법이 확실히 효과적이었으니까.나는 사모님을 한참 동안 관찰했다.비록 컨디션이 많이 안 좋은데도 사모님은 음식 드실 때 여전히 우아하고 단아했다. 살짝 슬픔을 띄고 있어 살짝 비극의 여주인공 같기도 했다.내가 한창 사모님을 바라보고 있을 때, 윤지은의 날카로운 눈빛이 갑자기 나를 쏘아봤다. “짐승!”윤지은은 욕지거리를 퍼부었다.그 욕에 나는 억울함을 호소했다.“제가 뭘 했다고 짐승이라는 거예요?”“아무튼 짐승 맞아. 이런 상황에서 훔쳐보기나 하고.”윤지은은 나를 째려봤다.난 그저 사모님을 몇 번 본 것뿐인데 나를 짐승 취급하다니, 너무 어이없었다.하지만 이러다 또 싸움 나겠다 싶어 나는 얼른 아침을 들고 다른 곳에 가서 배를 채웠다.식사를 마친 뒤 사모님은 자발적으로 나와 윤지은을 찾아왔다.“알고 있는 거 사실대로 다 알려줘요. 난 호섭 씨 사고에 대한 모든 사실이 알고 싶어요.”사모님은 너무 평온해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 때문에 나는 사모님 상태가 여전히 걱정스러웠다.“사모님, 우선 맥 좀 짚어봐도 될까요?”“그럴 필요 없어요. 내가 뭘 해야 하는지 나도 알아야. 걱정할 거 없어요. 어젯밤 많이 생각해 봤고, 호섭 씨가 떠난 사실을 받아들였어요.”“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건 호섭 씨처럼 착한 사람이 남한테 죽임을 당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억울함을 풀어줄 거예요.”“난 강해져야 하고 호섭 씨처럼 용감해져야 해요. 그래야 호섭 씨가 마음 놓고 갈 수 있어요.”사모님은 애써 슬픔을 참으려 했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또 흐느꼈다.그 말을 들으니 나도 코끝이 시큰거리고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이제 우리에게는 같은 목표가 생겼다. 바로 진실을 밝히는 것.나는 얼른 마음의
나는 사모님 팔을 힘껏 잡으면서 사모님과 눈을 마주쳤다.“사모님! 현실을 받아들이세요. 더 이상 자신을 속이지 마세요. 사장님이 이런 사모님 보고 편히 가지 못하길 원하시는 건 아니잖아요.”내 말이 사모님의 마음에 큰 상처를 줬는지, 사모님은 순간 울음을 터뜨렸다.윤지은은 내가 강제로 사모님을 자극했다며 나를 탓했다.“유미 지금 안 그래도 나약한 상태인데, 왜 그런 말을 직접 해?”나는 너무 난감했다.“누구는 뭐 이러고 싶은 줄 알아요? 하지만 사모님이 계속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환상 속에 살고 있는데, 계속 이러면 상태가 점점 악화해요.”윤지은은 내 말에 일리가 있다고 인정했지만 그와 동시에 사모님이 또 상처받을까 봐 걱정했다.나도 사모님이 현실을 받아들이게 하려면 그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고 있다. 하지만 사모님을 절망 속에서 끄집어내려면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나는 윤지은에게 말했다.“정말 사모님을 돕고 싶다면 모질어야 해요. 이럴 때 마음 약해지면 오히려 해치는 거예요.”윤지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내 말에 동의하는지, 내가 치료할 수 있도록 묵묵히 자리를 비켜줬다. 나는 나른하게 힘이 쭉 빠진 사모님을 잡고 진지하게 말했다.“죽은 사람이 다시 돌아올 수 없어요. 사모님이 속사한 건 알겠어요 하지만 지금 속상해할 때가 아니에요. 우리 할 일이 있어요.”“사장님 사고 단순 사고가 아니에요. 누군가 인위적으로 사고 낸 거예요. 사모님, 정신 차리고 우리와 함께 진실을 조사해요.”사모님은 텅 빈 눈으로 나를 보며 중얼거렸다.“그게 무슨 말이에요?”사모님을 깊은 슬픔에서 꺼내는 건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무엇보다 중요한 건, 서두르지 않고 그녀가 진실을 받아들일 수 있게 천천히 다가가는 것이다.나는 말투를 부드럽게 하며 방금 한 말을 또다시 반복했다.“사장님 교통사고에 수상한 점이 발견됐어요. 사모님도 사장님이 억울하게 돌아가시는 거 원하지 않죠? 우리 함께 진실을 알아내 사장님이 억울하게 죽임당하
나는 그 말을 들은 순간 식은땀이 송골송골 솟아올랐다.사모님 상태는 살짝 이상해 보였다. 아마도 의식이 혼미해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를지도 몰랐다.나는 사모님이 바보 같은 짓을 할까 봐 서둘러 사모님 팔을 꼭 잡았다. 그러면서 계속 따라오지 않으면 강제로라도 데려올 생각이었다.“수호 씨, 이거 놔요. 난 남아서 호섭 씨랑 같이 있을래요...”사모님은 마구 버둥대며 소리쳤다.이러다가 사고가 날 것 같아 나는 아예 사모님을 어깨에 두러 업었다. 그러자 사모님은 곧바로 버둥거리며 소리쳤다.벼랑 끝에 서 있는지라 조금만 실수하면 함께 아래로 떨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나는 결국 사모님을 손날로 기절시켰다.내가 가드레일 안쪽으로 다시 넘어왔을 때 윤지은의 차가 마침 도착했다.“왜 그래?”윤지은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나는 사모님을 차에 앉히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사모님 지그 정신이 이상해서 현실과 환각을 구분하지 못해요. 방금 사장님이 춥다고 한다면서 옷 주러 내려가겠다고 했어요. 제가 제때 나타나지 않았으면 뛰어내렸을지도 몰라요.”윤지은은 내 말을 듣더니 미간을 찌푸렸다.“계속 이럴 순 없어. 우리가 잠깐은 지켜볼 수 있지만 평생 지켜볼 순 없잖아.”그때 내 머릿속에 문득 방법이 떠올랐다.“사모님께 사장님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알려드리는 건 어때요?”“미쳤어? 이번 일로도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닐 텐데, 또 자극하자고?”윤지은은 내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이에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제 할아버지가 남긴 의학 서적에 비슷한 사례가 있는데, 옛날에는 환자가 가족을 잃고 감정을 통제하지 못할 때 치료가 안 된다면 환자한테 희망을 줘야 한대요. 그 희망이 의학에서 말하는 기예요.”“그 기를 가진 환자가 음식 치료와 약물 치료를 함께 진행하면 서서히 회복할 수 있대요.”“사장님의 죽음에 수상한 점이 있잖아요. 그래서 사모님과 함께 그 사건을 수사하는 거예요. 아마 사모님도 사장님이 죽은 진실을 알고 싶을 거예요.”
장례식장 안을 모두 뒤져 봤지만 사모님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리 조급하지 않던 내 마음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불안해졌다.사모님은 현재 몸 상태도 안 좋고 정서도 매우 불안하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가족한테 어떻게 말해야 할지 걱정됐다.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내 마음은 점점 불안해졌다.그러다 결국 방법이 없어 나는 문득 사모님 번호를 떠올려 그쪽으로 전화를 걸었다.전화는 계속 긴 연결음만 들릴 뿐 아무도 받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포기하려고 할 때 연결음이 꺼졌다. 액정을 확인하니 전화가 연결되었다.“사모님?”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수호 씨, 나 괜찮으니까 좀 내버려둬요.]사모님 목소리는 매우 우울해 보였고 기운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나한테는 너무 듣기 좋았다. 나는 다급히 물었다.“사모님, 어디 있어요? 너무 걱정돼요.”[혼자 있고 싶어요.]“알아요, 아는데 어디 있는지만 알려줘요. 사모님이 안전하다는 거 확인해야 해요.”전화 건너편에서 한참 침묵이 흘렀다.그때 갑자기 차 경적음이 들려왔다.그렇다는 건 사모님이 장례식장에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었다.나는 문득 사모님이 있을 수 있는 곳이 떠올랐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물었다.“사모님, 알려주시면 안 돼요?”사모님은 아예 전화를 끊어버렸다.하지만 이미 대충 답을 얻은 나는 장례식장을 뛰쳐나가 택시를 잡고 사장님이 사고를 당한 곳으로 향했다.가는 길에 사모님을 찾았냐는 윤지은의 전화를 받은 나는 내 추측을 말했다.“아니요. 사모님 아마도 사장님 사고 난 곳에 있는 것 같아요.”[거긴 왜?]윤지은은 이해가 되지 않아 무의식적으로 물었다.“사장님 죽음이 수상해 직접 조사하고 싶었을 수도 있고, 단순히 사장님이 그리웠을 수도 있고... 아무튼 저 지금 가는 중이에요.”[그럼 먼저 건너가. 나 이따 바로 갈게.]나는 윤지은과 상의한 뒤 먼저 사장님이 사고 난 곳으로 향했다.사고가 난 곳은 절벽인데, 사모님은 마침 절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