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긴, 이렇게 좁은 공간에서 우리가 이러고 있으면 오해를 불러오기 십상이다.“수, 수호 씨, 아직도 안 됐어요?”형수가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사실 진작 끝났지만 나는 떨어지기 아쉬워 일부러 거짓말했다.“아직 안 끝났어요.”그러자 형수가 갑자기 내 손을 덥석 잡았다.“그럼 그만해요. 저녁에 집에 가서 천천히 해요.”“그래요.”‘돌아가서 옷 벗고 하면 더 좋은 거 아닌가?’나는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이봐, 다 됐어?”그때 남주 누나의 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그러자 형수가 짜증 나는 듯 바깥쪽을 째려보며 소리쳤다.“아직 안 됐어.”“지퍼 하나 올리는 게 뭐 이리 오래 걸려? 20분도 다 돼가. 느려 터져서는. 둘이 천천히 와, 나랑 애교는 다른데 먼저 구경할게.”“그래, 가 봐.”안 그래도 애교 누나와 남주 누나가 빨리 가기를 원하던 형수는 밖에서 재촉하는 사람이 사라지자 안심한 듯 말했다.“수호 씨, 지퍼 좀 내려줄래요? 다른 옷도 입어보고 싶어요.”“네.”나는 지퍼를 내려주고 곧바로 탈의실을 나가려 했지만 형수가 갑자기 말했다.“나갈 필요 없어요. 여기서 기다려요.”“네?”형수가 입은 옷 두 벌은 모두 몸에 딱 붙는 원피스기에 갈아입으려면 속옷과 팬티차림으로 갈아입어야 했다.“형수, 제가 여기 있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요.”“안 될 거 뭐 있어요? 수호 씨는 내 동생이나 다름없는데 우리 순결한 사이잖아요.”그 말에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순결한 사이죠.”곧이어 나는 직접 형수의 원피스를 벗겨 주었다.그 과정에 스킨십은 피할 수 없었다.하지만 형수는 날 동생으로 생각한다면서 어색해하지 말라고 설득했다.형수의 원피스를 벗겨주고 다른 옷을 입혀주면서 나는 참지 못하고 감탄했다.“형수 몸매는 정말 볼수록 완벽한 것 같아요. 그래서 무슨 옷을 입든 예쁜 것 같아요.”나는 말하면서 형수의 가슴을 움켜잡았다.그러자 형수는 고개를 숙이며 물었다.“뭐 하는 거예요?”나는 얼굴도 붉히지 않고 대
탈의실에서 나온 뒤, 형수는 입어 봤던 옷 두 벌을 모두 구매했다.그러고는 나한테도 새 옷 두 벌을 사주어 순식간에 몇십만 원을 써버렸다.하지만 형수는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한테 옷을 사준 게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우리는 한참 동안 더 쇼핑하다 시간이 늦어지자 집으로 돌아갔다.나와 형수가 같은 차에 타고 남주 누나와 애교 누나가 같은 차를 탔는데, 형수는 조수석에서 갑자기 나에게 물었다.“식사할 때 애교랑 같이 주차장에 갔던 거 차에서 하려고 그런 거죠?”“네? 아니에요. 그냥 애교 누나 대신 약 찾아주려고 간 거예요.”나는 너무나도 찔려 다급히 거짓말로 둘러댔다.하지만 그보다 더 당황스러운 건 형수가 갑자기 내 손을 잡았다.‘대체 뭐 하는 거지?’내가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을 때 형수가 나를 보며 말했다.“그렇다면 다행이고. 이건 내 차라 절대 다른 여자와 여기서 그런 짓 하면 안 돼요.”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너무 놀라 식은땀이 흘러내렸고, 애교 누나와 차에서 하지 않은 것에 안도했다. 그도 그럴 게, 형수의 이런 태도를 보니 만약 정말 그랬다 발각되기라도 한다면 난 정말 끝장날 거다.하지만 형수의 말이 조금 이해되지 않았다.나와 애교 누나를 이어주겠다고 그렇게 노력하면서 차에서 그 짓을 하는 건 또 반대하니, 본심이 대체 뭔지 알 수 없었다.“알았어요.”“그래요.”얼마 지나지 않아 형수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건 다름 아닌 동성 형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는데 오늘도 또 늦게 들어온다는 연락이었다.그 말에 형수는 참지 못하고 화를 냈다.“어제도, 그저께도 계속 야근이라더니 오늘은 또 무슨 이유야?”형은 난감한 듯 설명했다.“요즘 회사 일이 좀 바빠. 집에 갔다 왔다 하기가 좀 번거로워서 직원들과 회사에서 자려고. 믿지 못하겠으면 봐, 다른 직원들도 있어.”형수는 귀찮다는 듯 대충 흘겨보고는 퉁명스럽게 말했다.“돌아오기 싫으면 오지 마.”형수는 아주 화난 듯했다.그도 그럴 게, 형수는 아이를
“일단 진정하고 나중에 형과 얘기 잘해봐요. 만약 형도 그걸 원한다면 저도 무조건 도와줄게요.”형수는 아무 말도 없이 차에 앉아 묵묵히 눈물만 흘렸다.형수가 이토록 슬퍼하는 걸 본 적 없기에 나는 마음이 미어질 것만 같았다.이에 나는 조수석으로 걸어가 문을 열고는 형수에게 거칠게 키스했다.어떻게 위로해 줘야 할지 몰라 이 방법밖에 생각나지 않았으니까.내 위로에 형수는 점차 평온을 되찾았다.“수호 씨, 고마워요, 하마터면 실수할 뻔했네요.”나는 너무 마음이 아파 형수의 눈물을 닦아주며 싱긋 웃어 보였다.“형수가 후회하는 일 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요.”형수는 내 말에 마치 억울한 일을 당한 어린 소녀처럼 입을 삐죽거렸다.“바보. 수호 씨는 사람이 왜 그렇게 착해요? 수호 씨가 우리 남편과 아무 사이도 아니었으면 나 아마 수호 씨를 선택했을 거예요.”그 말에 나는 행복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 슬펐다.형수 마음속에 내가 있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영원히 동성 형이라는 벽을 넘지 못하는 사실이 슬펐다.나는 마음 아파 형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우리가 같이 있을 수는 없지만 제가 항상 형수를 지켜줄게요.”“그럼 수호 씨가 너무 힘들잖아요. 매번 전희만 하고, 실질적인 관계는 맺지 못하면.”나는 피식 웃었다.“그걸로도 만족해요.”형수는 싱긋 웃으며 내가 마치 어린애라도 된 듯 내 코를 꼬집었다.그러고는 손으로 내 가슴을 쓸어내리더니 허리춤에서 멈췄다.형수의 행동에 나도 덩달아 긴장했다.“형수, 뭐 하는 거예요?”“바보. 지금 힘들잖아요, 내가 도와줄게요.”‘헐, 형수가 설마...’순간 온몸의 피가 한곳으로 쏠려 몸이 뻣뻣하게 굳었지만 난 끝내 참았다.“됐어요, 싫어요.”“정말요?”“네.”“바보. 앞으로 힘들면 언제든 찾아와요.”형수가 얼마나 많이 타협했는지 알기에 나는 흥분을 못 이겨 형수의 머리를 잡고 힘껏 입 맞췄다.“태연 형수님, 사랑해요.”“태연이면 태연이지, 뭐가 또 태연 형수님이에요?”형수는 얼굴을 붉히며 나
“파스 붙이는 거야? 아니면 남사스러운 짓거리 하고 있었던 거야?”남주 누나는 어떻게 매번 이렇게 귀신 같은지 이번에도 또 맞춰버렸다.하지만 형수는 애교 누나와 다르게 이 정도로 쉽게 겁먹지 않았다.“남사스러운 짓이라니? 수호 씨 우리 남편 동생이야. 너 설마 형수와 도련님 사이에 뭐 이상한 일이라도 벌어졌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그걸 누가 알아? 헝수와 도련님이라니, 얼마나 짜릿해.”“짜릿하긴! 내가 너처럼 욕구 불만인 줄 알아?”“흥. 그럼 수호 쪽으로 카메라 돌려 봐. 내 눈으로 봐야겠어.”“누가 변태 아니랄까 봐. 너 대체 뭐 하자는 거야?”“당연히 검사하는 거지. 수호가 거기 섰는지 안 섰는지 봐야겠어.”남주 누나의 말에 형수는 카메라 렌즈를 나에게 돌렸다.“눈 크게 뜨고 봐. 섰는지 안 섰는지.”“어? 정말 안 섰잖아? 수호 씨가 너한테 그런 마음 품은 건 아닌가 보네.”남주 누나는 그제야 안심했다.하지만 이게 다 내가 억지로 참은 거라는 건 아마 모를 거다.“그럼 둘이 뭐 했는데? 왜 아직도 안 돌아와?”남주 누나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물었다.“내가 기분이 꿀꿀해서 드라이브 중이었어. 왜 안돼?”“하하하, 너도 기분 안 좋을 때 있었어? 혹시 남편이 요즘 힘 못 써?”남주 누나는 양심도 없는지 이게 뭐가 좋다고 깔깔 웃어댔다.그 말에 형수는 화가 난 듯 버럭 소리쳤다.“요즘 집에 들어오지도 않는데, 힘쓸 수나 있겠어?”“풉, 하하하! 그럼 너도 애교랑 마찬가지로 요즘 독수공방 중이겠네? 외로운 유부녀 다 됐겠어.”“죽고 싶어? 기분 안 좋아 죽겠는데 넌 웃음이 나와?”형수는 핸드폰에 대고 버럭 화냈다.그러자 남주 누나가 양심 없는 말을 내뱉었다.“이 상황에 안 웃고 설마 울겠냐? 독수공방은 네가 하지 내가 하는 것도 아닌데. 아니면 나랑 같이 놀자. 내가 쌔끈한 오빠들 만나러 데려가 줄게, 너처럼 외로운 유부녀들이 아주 껌뻑 죽을 거야.”“그래. 어디로 데려갈 건데?”일부러 내지른 형수의 말에
그 말에 남주 누나가 투덜거렸다.“그럼 너도 비켜. 태연이랑 마실 거니까.”남주 누나와 형수는 술이 어찌나 센지 서로 한 잔씩 주고받으며 쉴 새 없이 마셔댔다.그때 애교 누나도 자기가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한다고 생각했는지 두 사람에게 합류하여 함께 술을 마시더니 세 사람은 거침없는 대화를 시작했다.나는 그 가운데서 한 명 한 명 케어하느라 바삐 보냈다.그렇게 약 11시가 되었을 때, 세 사람은 모두 고주망태가 되어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나는 우선 형수를 집에 안아 가고 남주 누나를 객실에 옮겨준 뒤 마지막으로 애교 누나를 옮겼다.나머지 두 사람이 모두 취한 상태라 겨우 애교 누나에게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상황이라, 나는 애교 누나를 침실로 안고 가서는 얼굴을 톡톡 쳤다.“애교 누나, 정신 차려 봐요...”하지만 애교 누나는 좀처럼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그렇다고 이런 상태에서 하자니 아무런 무드가 없을 게 뻔해 나는 한참 동안 고민하다가 결국 포기했다.그래도 나는 애교 누나가 정신을 차렸을 때 하고 싶었다. 그래야 서로 만족할 수 있으니.오늘 세 사람 중 형수가 가장 많이 취했다.가뜩이나 형수는 기분이 안 좋아했기에 나는 걱정이 앞섰다.때문에 애교 누나와 남주 누나를 침대에 눕힌 뒤 다시 형수 집으로 돌아왔다.술에 취한 형수는 소리도 치지 않고 조용히 침대에 누워 자고 있었다.하지만 여전히 형수가 걱정되어 나는 그 옆에 누웠다.이렇게 하면 저녁에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잘 대처할 수 있으니.그렇게 온종일 바쁘게 움직이고 나니 나는 늦은 시간 되어서야 핸드폰을 확인할 수 있었다.그렇게 핸드폰을 켰을 때 카톡에 친구 추가 요청 하나가 떠 있었다.상대는 다름 아닌 어제 만났던 그 여자였다.게다가 문자 하나가 와 있었다.[오늘밤 한 번 더 할래요?]‘젠장. 어제 그 여자가 취한 거 아니었나? 설마 우리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해 낸 건가?’‘그렇다면 내일 한의원에 출근하면 날 알아
‘뭐야? 여자 셜록 홈즈라도 돼? 통찰력과 추리 능력이 너무 뛰어나잖아.’게다가 말투가 대담한 걸 보니 정말 한 집씩 찾아다니면 나를 찾는 건 시간문제였다.그 가능성에 나는 다급히 답장했다.[대체 뭘 원해요?][뭐 딱히 원한다는 것보다 기분이 꿀꿀해서 술친구가 필요해요. 원한다면 해줄 수도 있고. 아무튼 난 그놈을 두고 바람피우고 싶으니까.]나는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 문자를 보냈다.[가는 건 문제없어요. 하지만 불 켜지 마요.][알았어요. 본인 정체 들키고 싶지 않은 거죠? 그 요구 들어줄게요.]나는 결국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기로 결심했다.그렇지 않으면 마음이 놓이지 않으니까.결국 나는 옷장에서 옷을 뒤지다가 형이 오래전에 입었던 작업복을 찾아 입었다.이렇게 가리면 아마 형수도 나를 알아보지 못할 거다.모든 준비를 마치고 나는 15층을 향했다.물론 여자가 약속을 어기고 불을 켜거나 내 모자와 마스크를 벗기면 어떡하나 여전히 걱정되었지만 다른 길이 없었기에 여자가 약속을 지키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1505호 문을 두드리자 검은색 란제리 속옷을 입은 여자가 내 눈앞에 나타났다. 심지어 지독한 술 냄새를 풍겼다.여자는 약속대로 불을 켜지 않아 나는 어느 정도 안심이 됐다.그때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던 여자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얼굴 알아보고 매달릴까 봐 이렇게 꽁꽁 싸맨 거예요? 쳇! 난 그쪽처럼 이기적이고 잘난 체하는 남자들한테 관심 없어요. 그놈한테 복수할 생각이 아니었다면 찾는 일도 없었을 거고.”여자는 말하면서 당장이라도 넘어질 것처럼 비틀거려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 여자를 붙잡았다.“많이 마셨어요. 부축할 테니 안으로 들어가요.”나는 여자를 안으로 부축해 들어가고는 문을 닫았다.집안에는 스탠드 등 하나면 켜져 있었는데 희미하고 어두워 안심할 수 있었다.나는 여자를 부축해 소파에 앉혔다.테이블 위에 쌓인 술병만 봐도 여자가 얼마나 많이 마셨는지 알 수 있었다.“너무 많이 마셨
“어젯밤 기분 어땠어요? 좋았어요?”나는 여자의 허리를 감싸안으며 말했다.“보통 이런 건 남자가 여자한테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이게 뭐 남자 여자 가를 게 있어요? 남자가 하는 일 여자라고 왜 못해요? 봐요, 나도 그놈 두고 바람피우잖아요. 다시 물어볼게요, 어제 기분 좋았어요?”나는 고개를 끄덕였다.“아주 좋았어요.”“그럼 됐어요. 오늘 더 기분 좋게 해줄게요.”나는 문득 궁금했다.“이 말, 혹시 남자 친구가 다른 여자한테 했어요?”내 물음에 여자는 고개를 들어 물었다.“그걸 어떻게 알아요?”“말투에서 느꼈어요. 그쪽이 할 때 기분 안 좋았다는 걸 알았거든요. 그냥 그 남자한테 복수하려고 한 거지.”여자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맞아요. 복수하려고 이러는 거예요. 그 자식도 바람피우는이데, 나라고 못 피우겠나 하는 오기 때문에 이러는 거예요. 그 자식도 나처럼 기분 엿 같아라고. 다른 건 뭐가 됐든 상관없어요.”나는 여자의 허리를 안아 소파에 부드럽게 내려놓고 다정하게 말했다.“아무리 복수하고 싶어도 본인이 즐겨야죠. 게다가 이런 건 서로 즐기자고 하는 건데, 복수하려고 몸 함부로 굴리면 어떡해요?”“뭔 말이 그렇게 많아요? 할 거예요, 말 거예요?”“할 거예요.”내가 그렇게 많이 말한 건, 여자가 다른 마음가짐을 가졌으면 해서다. 그러면 우리 둘 모두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으니까.사실 이런 일은 한 사람만 기분 좋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 두 사람이 함께 즐겨야 진짜 좋은 거다.내가 생각하고 있는 틈에 여자가 갑자기 나에게 입 맞추며 숨을 헐떡였다.“베란다로 가요. 그날 남친과 그 여자가 바로 베란다에서 했거든요. 나도 똑같이 갚아주고 싶어요.”“그래요.”나는 두 손으로 여자의 허벅지를 들어 올려 베란다 쪽으로 걸어가 세면대장 위에 올려놓고는 애무를 시작했다.여자는 처음에는 복수하려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내 말을 들어서인지 조금씩 달라졌다.그도 그럴 게, 남자 친구라는 놈은 제 감정도 무시한 채 즐길 거
새벽 2시가 지나자 여자는 겨우 깊은 잠에 빠졌고 나는 그제야 도망칠 기회를 얻었다.집에 돌아온 나는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잠들어 버렸다.그도 그럴 게, 너무 피곤했으니까.하지만 내가 겨우 잠이 들었을 때, 누군가 내 침대 위에 기어 올라왔다.여기는 형수의 집이고 형이 없으니 상대가 형수인 건 뻔했다.‘설마 술에 취해서 방을 잘못 찾았나?’나는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랬더니 상대는 아니나 다를까 형수였다.형수는 흐리멍덩한 눈을 한 채 입으로 계속 형의 이름을 중얼거렸다.“여보, 나 하고 싶어.”형수는 내 이불 속으로 들어와 나를 끌어안으며 입을 맞췄다.이에 나는 다급히 형수를 밀어냈다.“형수, 정신 차려요. 저 형이 아니에요, 정수호라고요.”하지만 형수는 여전히 아무런 의식이 없는지 나를 안고 입을 맞춰 댔다.그나마 다행인 건 내 욕구가 강한 게 아니라 참을 수 있다는 거였다.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내 품에 안긴 사람은 형수다.형수가 말짱한 상태였다면 우리는 절대 선을 넘을 일이 없다.그런데 술에 취해 이렇게 강제로 욕한다면 내 탓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그때 형수가 입을 맞추다 말고 내 옷을 벗겼다.형수의 기술은 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 낯선 여자보다 몇 배 더 좋은지 모를 지경이었다.물론 오늘밤 욕구를 여러 번 풀었지만 형수의 유혹 때문에 나는 그곳이 또 불편하기 시작했다. 이제야 인터넷에서 하룻밤 7, 8 번 한다는 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됐다.이제껏 거짓인 줄 알았는데 모두 진짜였단.‘젊으니까 좋긴 좋네.’나는 급하게 결정을 내리지 않고 눈을 감으며 한편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하며 형수의 복무를 즐겼다.‘이래서 사람들이 젊은 유부녀를 좋아하는 거구나.’“여보, 왜 키스 안 해줘?”형수는 내 얼굴을 잡고 반쯤 풀린 눈으로 말했다.형수의 유혹적인 모습에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입술을 갖다 댔다.형수와 키스하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
민우는 우리 셋 중에서 인내심이 가장 부족했다. 그도 그럴 게, 민우는 가장 돈에 쪼들렸기에 가게가 망하는 걸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들어가.”나는 민우를 강제로 밀며 약재 정리를 시켰다.건너편 약방은 여전히 가격 전쟁을 하고 있었으며 고객 유입도 점점 많아졌다.나도 정 사장님처럼 여유로운 자세를 유지하고 싶었지만, 사실 나도 더 이상 이대로 두고 볼 수는 없었다.서윤기는 나를 괴롭히는 게 목적일 테니, 이렇게 쉽게 맞은편 가게의 가격 전쟁을 끝내지 않을 거다.만약 이대로 간다면 우리 가게는 버티지 못한다.때문에 무조건 이 사태를 해결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가게로 돌아온 나는 현성을 내 사무실로 끌어들였다.“잠깐 와 봐. 너랑 할 얘기 있어.”“뭔데 이렇게 비밀스럽게 얘기해? 민우는 왜 안 부르고?”“민우는 성격이 불같아서 말하면 못 참을 것 같아. 그리고 이 일이 조금 위험한 거라 우리 셋이 한꺼번에 무슨 일을 당하면 안 돼. 한 명은 가게에 남아야지.”현성은 내가 큰일을 벌일 거라는 걸 눈치채고 곧장 물었다.“무슨 계획 있어?”“맞은편 가게 뒤에 누군가가 있어. 우리 가게를 일부러 우리를 겨냥하는 거야. 우리도 이대로 있을 수 없어.”“혹시 상대가 가짜 약 쓴다는 거 까발리려고?”현성이 잔뜩 흥분해서 물었다.이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그건 너무 번거로워. 나는 간단하지만 거친 방법을 사용할 생각이야.”현성은 더 흥분했다.“무슨 방법인데? 얼른 말해 봐.”나는 현성의 귓가에 대고 내 계획을 말했다. 그러자 현성은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정말 이렇게 일 크게 벌이려고?”“일 크게 벌이지 않고 그 사람들 어떻게 혼내?”사람이 독하지 않으면 제대로 설 수 없다.이 바닥에서 지내려면 그만큼 수단도 있어야 하는 법이다.현성은 조금 걱정하는 듯 말했다.“그러다가 잡히면 형벌 받아.”“무서워?”나는 현성을 보며 물었다.현성은 머리를 긁적였다. 솔직히 현성은 조금 무
고수연이 나간 뒤 나는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하려고 했다.그때 갑자기 핸드폰이 울리더니 서윤기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다.나는 전화를 받지 않고 그대로 꺼버렸다. 하지만 서윤기는 끈질기게 전화를 걸었다.결국 참다못한 나는 서윤기의 연락처를 차단했다.그러자 서윤기는 이번에 내 카톡으로 문자를 보냈다.[정수호, 아주 대단하던데. 언제 또 필사본을 만들었더라. 내 손에 있는 책은 필요 없어 보이니 망가뜨릴게.]그 아래에 영상 하나도 도착했다.서윤기는 할아버지가 나에게 남겨준 의서를 화로에 넣었고, 불길은 순식간에 의서를 집어삼키며 활활 타올랐다.비록 내 손에 필사본이 있다지만 할아버지의 심혈이 이대로 망가지니 마음이 안 좋았다.나는 그 아래에 바로 답장했다.[그런다고 당신한테 뭐가 도움이 돼?]서윤기의 답장이 곧바로 도착했다.[아무 도움도 안 돼. 하지만 네 기분 불쾌하게 만들 수 있잖아.]‘진짜 미친놈이네.’나는 결국 서윤기의 카톡까지 지워버렸다.그날 오후, 나는 화인당에 들러 정 사장님한테 서윤기와 있었던 일을 말했다.정 사장님도 내 말을 듣더니 미간을 찌푸렸다.“서윤기가 지금 이규진과 전광진과 손을 잡고 가짜 약재를 강북 시장에 유통하고 있어.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약방에 가짜 약재가 흘러들었는지 몰라.”“경찰에 신고하면 되지 않아요?”이게 바로 내가 떠올린 생각이었다.하지만 정 사장님은 고개를 저었다.“서윤기의 구매 루트가 기밀이라 증거가 없거든. 경찰들도 사건 접수 안 해줄 거야.”“그럼 어떡해요? 그냥 이렇게 내버려둬요? 아니면 가짜 약재를 얻어다가 검사 맡겨 볼까요?”나는 다시 건의했다.그러자 정 사장님이 고개를 저었다.“그 약재들이 진짜 가짜 약재인 건 아니야. 그저 날짜가 지난 약재를 특수처리하거나 약효가 그리 뛰어나지 않는 약재들이야.”“아무리 특수 기관에 의뢰해도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할 거야. 그래서 가짜 약재를 만드는 사람들이 교활하다고 하는 거고.”나는 순간 무기력해졌다. 분명 상대가 가짜 약을 만
나는 내 대답에 매우 흡족했다. 두 사람의 장점과 특징을 각자 잘 얘기했다고 생각했으니까.하지만 이태웅과 윤해철은 탐탁지 않은 모양이었다.“수호 군, 한 명을 선택하라고 했지, 다항선택을 하라고 한 건 아닌데.”이태웅도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한 명을 선택하라고 하면 한 명을 선택해야지.”“선택을 왜 해요? 전 안 해요. 두 사람 모두 좋아요.”‘성인이면 왜 선택을 하지? 둘 다 좋은데, 난 다 갖고 싶어.’물론 이 말까지 내뱉을 순 없었기에 나는 속으로 삼켰다.말을 마친 나는 곧바로 도망쳤다. 이런 위험한 곳에 나는 1초도 더 있고 싶지 않았다.다는 두 사람이 또 나를 부를까 봐 단숨에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윤지은의 부모님도 왔으니 내가 계속 이곳에 남아 있을 필요는 없었기에 그대로 병원을 떠났다.그 길로 나는 천수당으로 향했다.민우는 나를 보자 아침에 왜 안 왔냐며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봤다. 하지만 두 사람을 걱정하게 하기 싫어 나는 경찰서에 잡혔던 일은 함구했다.이제 막 물 한 모금 마셨을 때 고수연이 찾아왔다.“사장님, 연재혁 변호사님 말로는 모레가 재판일이래요. 그런데 너무 걱정되는데 어떡하죠?”“마음 편하게 먹어요. 연재혁 변호사님 대단한 분이에요. 그분을 믿어야 해요.”이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겨우 위로밖에 없었다.그때 고수연이 갑자기 내 옆에 털썩 앉았다.“만약 재판에서 지면 어떡하죠? 다른 건 다 빼앗겨도 상관없는데, 아이들은 절대 안 돼요. 아이들은 내 정신적 지주예요.”“지금 일자리도 있잖아요. 법원에서 아이를 그놈한테 두 아이를 주지 않을 거예요.”“그런데 난 한 명도 주고 싶지 않아요. 진용진은 책임감 없는 쓰레기예요. 아이들이 그런 인간을 따라가면 인생 망쳐요.”사실 나는 고수연의 생각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혼자 지내는 것도 여유롭지 못한데, 아이들의 양육권을 모두 자기가 가져오겠다고 하다니. 굳이 그렇게 자신을 혹사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예전에 우리 마을에 있던 한 여자가
이건 꼭 무슨 성공한 여자의 발언 같았다.애교 누나는 항상 연약하고 다정한 이웃집 누나 같은 사람이었는데, 이렇게 바뀌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나는 누나의 이런 변화에 매우 기뻤다.“누나 주변에 빛이 한 층 생긴 것 같아요. 더 멋있고 매력 있어졌어요.”나는 애교 누나의 또 하나의 빛나는 점을 발견했다.누나는 내 말이 재밌었는지 피식 웃었다.“말은 참 잘한다니까요. 또 나 기쁘라고 하는 말이죠?”“아니요. 진심이에요.”나는 복도 쪽을 흘겨봤다. 그곳에서 이태웅은 아직도 윤해철과 말다툼하고 있었다.그 모습에 나는 의아해서 물었다.“그런데 아버님은 어떻게 된 거예요? 그동안 저 마음에 안 들어 하셨잖아요. 그런데 왜 윤 회장님한테 와서 저를 빼앗아요?”“그게 어디 수호 씨를 빼앗는 거예요? 우리 아빠 원래 아저씨랑 말싸움하는 거 좋아해요.”‘어쩐지.’난 또 애교 누나뿐만 아니라 이태웅도 변한 줄 알았는데, 그건 너무 기상천외한 생각이었다.하지만 성공한 두 어르신이 말다툼하는 걸 보는 게 꽤 재밌었다.욕설은 한마디도 하지 않는데, 상대를 할 말 없게 만들고 있었으니까.역시 배운 사람들은 말다툼에도 일가견이 있는 모양이다.“애교 누나, 누나는 언제 집에 돌아가요?”두 사람이 언제까지 싸울지 몰라 나는 조심히 애교 누나 손을 잡았다.그러자 애교 누나는 얼굴을 붉히며 내 귓가에 속삭였다.“내가 요즘 부모님 설득 중이라 아마 얼마 안 걸릴 거예요. 왜 내가 집에 빨리 돌아갔으면 좋겠어요? 무슨 나쁜 짓을 하려고?”나는 애교 누나의 다른 손을 꼭 잡았다.“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누나가 보고 싶고 안고 싶어서 그래요.”“그럼 지금 안아요. 안 갈게요.”“정말요? 그럼 진짜 안아요?”나는 정말 단지 누나를 꼭 안아주고 싶었다.그때 나에게 장난치려던 애교 누나는 내가 정말 저를 안으려 하자 깜짝 놀라며 뒤로 피했다.“안 돼요. 아빠한테 들키면 끝장나요.”“누나가 지금 안아도 된다고 했잖아요.”“장난친 건데 수호 씨 진짜 대담하
“지은이가 그동안 나 얼마나 많이 도와줬는데, 나도 도움이 돼야지. 지은이한테 돈은 부족하지 않은 거 알아. 수호 씨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이건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거야.”하정현은 요즘 막 취직하여 이곳에 남아 윤지은을 돌봐 줄 수 없기에, 미력하나마 자기 최선을 다할 생각인 듯했다.나도 더 이상 하정현과 실랑이를 벌이기 싫어 결국 카드를 받았다. 나중에 그걸 쓸지 말지는 나중에 결정할 일이다.“지은이한테 절대 말하지 마.”하정현은 또다시 당부했다. 그러다 내가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안심하고 안으로 들어갔다.그로부터 얼마 뒤, 윤해철과 하정현도 병원에 도착했다.병실 안은 이미 사람으로 가득 찼다. 내가 병실에서 나온 건 정확한 결정이었다.하지만 사람들은 한 명도 남지 않고 결국 하나둘씩 떠나갔다.윤해철도 나에게 당부했다.“수호 군. 수호 군이 그래도 우리 지은이 마음 쓰는 게 보여. 이번 기회에 서로 좀 잘해 봐. 난 두 사람 응원해.”이영미도 따라서 맞장구쳤다.“나도 두 사람 응원해. 내가 볼 때 두 사람 아주 천생연분이야.”“두 사람이 천생연분이면, 내 딸은 뭐지?”이게 무슨 상황인지, 애교 누나가 아버지인 이태웅과 함께 나타났다.순식간에 분위기가 어색해졌다.윤해철은 여전히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자네 딸과 수호 군의 결혼 반대한 거 아니었어? 자네는 수호 군을 싫어하겠지만, 난 좋아해.”이태웅은 냉담한 얼굴로 걸어왔다. 그 강력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나는 순식간에 찬 숨을 들이켰다.하지만 이건 가장 무서운 게 아니었다. 이보다 더 무서운 건, 내가 애교 누나를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거였다.나는 내가 윤지은한테 마음이 흔들린 게 애교 누나한테 미안했다.그때 애교 누나가 나에게 먼저 다가왔다.“수호 씨, 우리 저쪽에서 얘기 좀 할래요?”나와 애교 누나는 사람이 없는 구석으로 자리를 옮겼다.“애교 누나, 제 말 좀 들어봐요...”나는 애교 누나에게 설명하고 싶었다.하지만 애교 누나는 웃으
나는 머리를 문질렀다.“백 쌤, 너무 세게 때렸잖아요. 머리통 날아갈 뻔했어요.”“흥. 그러게 누가 지은이 노리래? 감히 지은이까지 넘봐?”젠장.좋은 분위기가 그대로 망해버렸다. 만약 다음번에 또 물어보려면 이런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윤지은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웃는 얼굴로 백연우와 임유미를 바라봤다.“연우야, 유미야, 왔어?”유미 사모님은 창가에 앉아 다정하게 윤지은의 손을 잡았다.“어쩌다 이렇게 됐어?”“실수로 데였는데 큰 문제 없어.”“내가 들은 건 아예 달랐는데? 네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됐다던데.”백연우는 히죽거리며 물었다.그 말에 윤지은은 마음이 찔려 시선을 피했다.“누구한테서 들었는데?”“강한나지. 네 그 교통경찰 하는 친구. 오는 길에 마침 만났는데 말해주더라고.”“걔가 헛소리하는 거야. 그런 거 아니야.”윤지은이 해명했다.하지만 백연우는 마치 신대륙을 만난 사람처럼 신기해했다.“오호라. 이거 봐. 네 말투가 이미 너를 배신했어.”화들짝 놀라는 백연우의 모습에 윤지은이 오히려 멍한 얼굴을 했다.“내 말투가 어때서?”백연우는 마치 윤미화에게 빙의 된 것처럼 탐정놀이를 시작했다.“너 평소 얼음장처럼 싸늘하고 남이 말하면 몇 배 욕해주잖아. 그런데 네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됐다고 내가 놀려댔는데 나를 욕하지도 않았잖아. 이거 이상해.”‘헐.’백연우의 관찰력은 확실히 대단했다.사실 방금 윤지은이 말할 때 나도 그 점을 눈치채 백연우와 유미 사모님한테 들킬까 봐 걱정했다.그런데 정말 이런 식으로 들킬 거라고는 생각 못 했다.무엇보다 백연우는 사실 나와 윤지은의 사이를 진작 알고 있었는데 지금까지 모른 척하고 있다는 거다.아마 연기했으면 오스카상 감이다.나는 더 이상 이곳에 있었다가 나한테까지 불똥이 튈까 봐 슬금슬금 도망칠 각을 쟀다.물론 서둘러 떠나지는 않았다.백연우와 유미 사모님은 윤지은의 병문안을 온 거라 이따가 떠날 텐데, 침대도 내리지 못하는 윤지은을 돌봐 줄 사람은 필요하다.윤
윤지은은 부족함 없지 자랐다. 부잣집 외동딸인 데다, 아버지는 강북에서 유명한 대기업 회장이라 주변에 구애자가 끊이지 않았다. 그중에는 부잣집 도련님도 있고, 실력 좋은 보디가드들도 있었다.그렇게 우수한 남자들을 많이 봐왔기에 윤지은은 나한테 이성적인 감정을 느끼지 않는 게 맞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나한테만은 자꾸 다른 감정이 느껴졌다.윤지은은 마음이 복잡해 갑자기 짜증이 솟구쳤다.“정수호, 내려줘.”얌전히 안겨 있던 윤지은이 갑자기 또 이러자 나는 순간 어리둥절했다.“왜요? 아프게 했어요?”“그런 거 아니야!”윤지은은 또 쌀쌀맞은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더니 차갑게 쏘아붙였다.“네 돌봄 따위 필요 없어. 나가.”“왜요?”“이유 없어. 그냥 나가.”“요즘 지은 씨 무척 이상한 거 알아요?”나는 해답을 찾으려고 일부러 떠나지 않았다.하지만 윤지은은 내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이에 나는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윤지은이 그동안 보인 이상 행동을 열거했다.“갑자기 연락처를 삭제했다가, 아예 차단해 버리고. 이제는 또 뜬금없이 쫓아내기까지. 설마 나 좋아해요?”나는 이 기회에 윤미화의 말이 진짜인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 말을 내뱉은 순간 내 마음도 무척 두근거렸다.이런 일은 진지한 태도로 얘기할 수 없기에 나는 결국 농담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그리고 마침 분위기가 무르익어 무심코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그 말을 들은 순간 윤지은은 심장이 벌렁거려 극구 부인했다.“무슨 헛소리야? 내가 왜 너를 좋아하겠어?”“그럼 왜 뜬금없이 나한테만 화내요? 합당한 설명을 해줘요.”나는 포기하지 않고 캐물었다.결국 윤지은은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말머리를 돌렸다.“내가 왜 설명해야 하는데? 네가 뭔데?”“전 아무것도 아니에요. 하지만 지은 씨가 자기 목숨도 돌보지 않고 나를 몇 번이나 구해줬잖아요.”“저한테 아무 마음도 없으면 계속 도와줄 리 없잖아요. 본인이 다친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도와주는 건 더더욱 불가능하고요. 나를 좋아한다고
얼마 뒤 윤미화도 떠나는 바람에 병실에는 나와 윤지은 둘뿐이었다.윤지은은 눈을 감고 있었는데 자는 것 같기도 하고 뭔가를 생각하는 것 같기도 했다.그런 윤지은의 마음을 읽을 수도 꿰뚫어 볼 수도 없어, 나는 결국 사과를 깎아 건넸다.“사과 좀 먹어요.”“안 먹어.”“그럼 귤은요?”“안 먹어.”“포도는요?”“좀 조용히 할 수 없어?”나는 윤지은이 말하는 틈에 포도 한 알을 그녀의 입에 넣고는 씩 웃으며 말했다.“아플 때 많이 먹어야 빨리 나아요.”“미친놈.”윤지은은 나를 욕하면서도 순순히 포도를 씹어 먹었다.심지어 하나를 다 먹고 난 뒤 또 하나를 요구했고. 그걸 먹고 나니 또 요구했다.윤지은은 늘 이렇듯 말은 누구보다 날카롭게 하면서 마음은 항상 여리다.이번에 윤지은의 도움이 컸기에 나는 윤지은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곁에서 세심하게 돌봐 주었다.사람을 돌보는 건 나한테 어려울 게 없었다. 딱 한 가지만 빼면 말이다. 그건 바로 화장실 문제였다.윤지은도 부끄러워 화장실을 가고 싶으면서 계속 참았다. 하지만 몇 시간이 지나니 한계에 다다랐다.“나, 나 좀 화장실로 부축해 줘.”윤지은은 끝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하지만 방광이 터질 것 같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나는 서둘러 윤지은을 부축한 채 화장실로 향했다.윤지은이 입원한 병실은 1인실이었기에 안에 화장실도 딸려 있었다.화장실 문 앞까지 부축한 나는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자 윤지은은 벽을 짚으며 조심스럽게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하지만 한 발에만 힘을 줘야 했기에 변기에 앉는 것도 어려웠다. 어렵사리 변기에 앉으니 또 바지를 벗는 게 문제였다.나도 윤지은이 불편할 걸 알았기에 밖에서 조심스럽게 물었다.“도움 필요해요?”“필요 없어. 훔쳐보지 마.”‘그럴 필요 있나? 우리 사이에 안 본 곳이 어디 있다고.’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밖에서 기다렸다. 그때 갑자기 안에서 ‘아’하는 비명이 나더니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보아하니 윤지은이 넘어진 모양이었
나는 윤지은이 그동안 나를 미워하고 싫어한다고만 생각했다. 가끔 외로울 때 나를 찾아 외로움을 달래는 것 외에는 아무 감정이 없다고 여겼다.때문에 윤지은이 나를 좋아하고 나를 위해 이렇게까지 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그래서인지 이 순간 나는 모든 게 현실이 아닌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 모든 건 실제로 벌어지고 있었다.현실적인 느낌과 비현실적인 느낌이 한데 섞여 나는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그때 윤미화가 팔꿈치로 나를 쿡쿡 찌르며 말했다.“거 봐. 내 말 맞지? 지은 씨가 수호 씨를 좋아한다니까.”“윤 사장님도, 지은 씨가 저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나는 여전히 확신이 서지 않아 되물었다.그러자 윤미화는 화가 난 듯 나를 째려봤다.“더 사람이 하는 대화 못 들었어? 또 어떻게 해야 믿을 건데?”“아니, 그게 아니라 너무 믿기지 않아서요. 제가 전에 지은 씨한테 고백했는데 아주 대차게 차였거든요.”“우리 평소에 만나면 항상 다투기만 해요. 누구도 서로 양보하지 않아요. 게다가 연인끼리 하는 달콤한 말은 한 번도 한 적 없고, 서로 좋아한다는 고백을 한 적도 없어요.”“너무 사랑하면 미워지고 너무 미워하면 사랑한다는 거 몰라?”윤미화는 아주 철학적인 말을 했다.나는 그 말을 한참 곱씹었다.“확실히 일리가 있네요.”만약 정말 그렇다면 나는 너무 기쁘다. 그러면 윤지은의 마음속에 내가 있다는 뜻이니까.하지만 한편으로 골치 아팠다. 나한테 이미 애교 누나가 있기에 나는 윤지은을 책임질 수 없고 사랑을 받아줄 수도 없다.윤미화는 마치 내 뱃속에 들어왔다 나온 것처럼 농담조로 말했다.“평생 결혼하지 마. 그러면 부담 없잖아.”“어떻게 그래요?”“안 될 거 뭐 있어? 결혼은 종잇장으로 한 약속에 불과해. 누구한테 잘해주고 싶으면 그런 게 없이도 잘해줄 수 있잖아. 요즘 연애만 하고 결혼하지 않는 사람 많아. 난 그것도 괜찮다고 봐.”‘대체 뭐라는 거지?’나는 그 정도로 개방적이진 않다.나는 우선 마음을 가다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