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긴, 이렇게 좁은 공간에서 우리가 이러고 있으면 오해를 불러오기 십상이다.“수, 수호 씨, 아직도 안 됐어요?”형수가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사실 진작 끝났지만 나는 떨어지기 아쉬워 일부러 거짓말했다.“아직 안 끝났어요.”그러자 형수가 갑자기 내 손을 덥석 잡았다.“그럼 그만해요. 저녁에 집에 가서 천천히 해요.”“그래요.”‘돌아가서 옷 벗고 하면 더 좋은 거 아닌가?’나는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이봐, 다 됐어?”그때 남주 누나의 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그러자 형수가 짜증 나는 듯 바깥쪽을 째려보며 소리쳤다.“아직 안 됐어.”“지퍼 하나 올리는 게 뭐 이리 오래 걸려? 20분도 다 돼가. 느려 터져서는. 둘이 천천히 와, 나랑 애교는 다른데 먼저 구경할게.”“그래, 가 봐.”안 그래도 애교 누나와 남주 누나가 빨리 가기를 원하던 형수는 밖에서 재촉하는 사람이 사라지자 안심한 듯 말했다.“수호 씨, 지퍼 좀 내려줄래요? 다른 옷도 입어보고 싶어요.”“네.”나는 지퍼를 내려주고 곧바로 탈의실을 나가려 했지만 형수가 갑자기 말했다.“나갈 필요 없어요. 여기서 기다려요.”“네?”형수가 입은 옷 두 벌은 모두 몸에 딱 붙는 원피스기에 갈아입으려면 속옷과 팬티차림으로 갈아입어야 했다.“형수, 제가 여기 있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요.”“안 될 거 뭐 있어요? 수호 씨는 내 동생이나 다름없는데 우리 순결한 사이잖아요.”그 말에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순결한 사이죠.”곧이어 나는 직접 형수의 원피스를 벗겨 주었다.그 과정에 스킨십은 피할 수 없었다.하지만 형수는 날 동생으로 생각한다면서 어색해하지 말라고 설득했다.형수의 원피스를 벗겨주고 다른 옷을 입혀주면서 나는 참지 못하고 감탄했다.“형수 몸매는 정말 볼수록 완벽한 것 같아요. 그래서 무슨 옷을 입든 예쁜 것 같아요.”나는 말하면서 형수의 가슴을 움켜잡았다.그러자 형수는 고개를 숙이며 물었다.“뭐 하는 거예요?”나는 얼굴도 붉히지 않고 대
탈의실에서 나온 뒤, 형수는 입어 봤던 옷 두 벌을 모두 구매했다.그러고는 나한테도 새 옷 두 벌을 사주어 순식간에 몇십만 원을 써버렸다.하지만 형수는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한테 옷을 사준 게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우리는 한참 동안 더 쇼핑하다 시간이 늦어지자 집으로 돌아갔다.나와 형수가 같은 차에 타고 남주 누나와 애교 누나가 같은 차를 탔는데, 형수는 조수석에서 갑자기 나에게 물었다.“식사할 때 애교랑 같이 주차장에 갔던 거 차에서 하려고 그런 거죠?”“네? 아니에요. 그냥 애교 누나 대신 약 찾아주려고 간 거예요.”나는 너무나도 찔려 다급히 거짓말로 둘러댔다.하지만 그보다 더 당황스러운 건 형수가 갑자기 내 손을 잡았다.‘대체 뭐 하는 거지?’내가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을 때 형수가 나를 보며 말했다.“그렇다면 다행이고. 이건 내 차라 절대 다른 여자와 여기서 그런 짓 하면 안 돼요.”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너무 놀라 식은땀이 흘러내렸고, 애교 누나와 차에서 하지 않은 것에 안도했다. 그도 그럴 게, 형수의 이런 태도를 보니 만약 정말 그랬다 발각되기라도 한다면 난 정말 끝장날 거다.하지만 형수의 말이 조금 이해되지 않았다.나와 애교 누나를 이어주겠다고 그렇게 노력하면서 차에서 그 짓을 하는 건 또 반대하니, 본심이 대체 뭔지 알 수 없었다.“알았어요.”“그래요.”얼마 지나지 않아 형수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건 다름 아닌 동성 형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는데 오늘도 또 늦게 들어온다는 연락이었다.그 말에 형수는 참지 못하고 화를 냈다.“어제도, 그저께도 계속 야근이라더니 오늘은 또 무슨 이유야?”형은 난감한 듯 설명했다.“요즘 회사 일이 좀 바빠. 집에 갔다 왔다 하기가 좀 번거로워서 직원들과 회사에서 자려고. 믿지 못하겠으면 봐, 다른 직원들도 있어.”형수는 귀찮다는 듯 대충 흘겨보고는 퉁명스럽게 말했다.“돌아오기 싫으면 오지 마.”형수는 아주 화난 듯했다.그도 그럴 게, 형수는 아이를
“일단 진정하고 나중에 형과 얘기 잘해봐요. 만약 형도 그걸 원한다면 저도 무조건 도와줄게요.”형수는 아무 말도 없이 차에 앉아 묵묵히 눈물만 흘렸다.형수가 이토록 슬퍼하는 걸 본 적 없기에 나는 마음이 미어질 것만 같았다.이에 나는 조수석으로 걸어가 문을 열고는 형수에게 거칠게 키스했다.어떻게 위로해 줘야 할지 몰라 이 방법밖에 생각나지 않았으니까.내 위로에 형수는 점차 평온을 되찾았다.“수호 씨, 고마워요, 하마터면 실수할 뻔했네요.”나는 너무 마음이 아파 형수의 눈물을 닦아주며 싱긋 웃어 보였다.“형수가 후회하는 일 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요.”형수는 내 말에 마치 억울한 일을 당한 어린 소녀처럼 입을 삐죽거렸다.“바보. 수호 씨는 사람이 왜 그렇게 착해요? 수호 씨가 우리 남편과 아무 사이도 아니었으면 나 아마 수호 씨를 선택했을 거예요.”그 말에 나는 행복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 슬펐다.형수 마음속에 내가 있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영원히 동성 형이라는 벽을 넘지 못하는 사실이 슬펐다.나는 마음 아파 형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우리가 같이 있을 수는 없지만 제가 항상 형수를 지켜줄게요.”“그럼 수호 씨가 너무 힘들잖아요. 매번 전희만 하고, 실질적인 관계는 맺지 못하면.”나는 피식 웃었다.“그걸로도 만족해요.”형수는 싱긋 웃으며 내가 마치 어린애라도 된 듯 내 코를 꼬집었다.그러고는 손으로 내 가슴을 쓸어내리더니 허리춤에서 멈췄다.형수의 행동에 나도 덩달아 긴장했다.“형수, 뭐 하는 거예요?”“바보. 지금 힘들잖아요, 내가 도와줄게요.”‘헐, 형수가 설마...’순간 온몸의 피가 한곳으로 쏠려 몸이 뻣뻣하게 굳었지만 난 끝내 참았다.“됐어요, 싫어요.”“정말요?”“네.”“바보. 앞으로 힘들면 언제든 찾아와요.”형수가 얼마나 많이 타협했는지 알기에 나는 흥분을 못 이겨 형수의 머리를 잡고 힘껏 입 맞췄다.“태연 형수님, 사랑해요.”“태연이면 태연이지, 뭐가 또 태연 형수님이에요?”형수는 얼굴을 붉히며 나
“파스 붙이는 거야? 아니면 남사스러운 짓거리 하고 있었던 거야?”남주 누나는 어떻게 매번 이렇게 귀신 같은지 이번에도 또 맞춰버렸다.하지만 형수는 애교 누나와 다르게 이 정도로 쉽게 겁먹지 않았다.“남사스러운 짓이라니? 수호 씨 우리 남편 동생이야. 너 설마 형수와 도련님 사이에 뭐 이상한 일이라도 벌어졌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그걸 누가 알아? 헝수와 도련님이라니, 얼마나 짜릿해.”“짜릿하긴! 내가 너처럼 욕구 불만인 줄 알아?”“흥. 그럼 수호 쪽으로 카메라 돌려 봐. 내 눈으로 봐야겠어.”“누가 변태 아니랄까 봐. 너 대체 뭐 하자는 거야?”“당연히 검사하는 거지. 수호가 거기 섰는지 안 섰는지 봐야겠어.”남주 누나의 말에 형수는 카메라 렌즈를 나에게 돌렸다.“눈 크게 뜨고 봐. 섰는지 안 섰는지.”“어? 정말 안 섰잖아? 수호 씨가 너한테 그런 마음 품은 건 아닌가 보네.”남주 누나는 그제야 안심했다.하지만 이게 다 내가 억지로 참은 거라는 건 아마 모를 거다.“그럼 둘이 뭐 했는데? 왜 아직도 안 돌아와?”남주 누나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물었다.“내가 기분이 꿀꿀해서 드라이브 중이었어. 왜 안돼?”“하하하, 너도 기분 안 좋을 때 있었어? 혹시 남편이 요즘 힘 못 써?”남주 누나는 양심도 없는지 이게 뭐가 좋다고 깔깔 웃어댔다.그 말에 형수는 화가 난 듯 버럭 소리쳤다.“요즘 집에 들어오지도 않는데, 힘쓸 수나 있겠어?”“풉, 하하하! 그럼 너도 애교랑 마찬가지로 요즘 독수공방 중이겠네? 외로운 유부녀 다 됐겠어.”“죽고 싶어? 기분 안 좋아 죽겠는데 넌 웃음이 나와?”형수는 핸드폰에 대고 버럭 화냈다.그러자 남주 누나가 양심 없는 말을 내뱉었다.“이 상황에 안 웃고 설마 울겠냐? 독수공방은 네가 하지 내가 하는 것도 아닌데. 아니면 나랑 같이 놀자. 내가 쌔끈한 오빠들 만나러 데려가 줄게, 너처럼 외로운 유부녀들이 아주 껌뻑 죽을 거야.”“그래. 어디로 데려갈 건데?”일부러 내지른 형수의 말에
그 말에 남주 누나가 투덜거렸다.“그럼 너도 비켜. 태연이랑 마실 거니까.”남주 누나와 형수는 술이 어찌나 센지 서로 한 잔씩 주고받으며 쉴 새 없이 마셔댔다.그때 애교 누나도 자기가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한다고 생각했는지 두 사람에게 합류하여 함께 술을 마시더니 세 사람은 거침없는 대화를 시작했다.나는 그 가운데서 한 명 한 명 케어하느라 바삐 보냈다.그렇게 약 11시가 되었을 때, 세 사람은 모두 고주망태가 되어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나는 우선 형수를 집에 안아 가고 남주 누나를 객실에 옮겨준 뒤 마지막으로 애교 누나를 옮겼다.나머지 두 사람이 모두 취한 상태라 겨우 애교 누나에게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상황이라, 나는 애교 누나를 침실로 안고 가서는 얼굴을 톡톡 쳤다.“애교 누나, 정신 차려 봐요...”하지만 애교 누나는 좀처럼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그렇다고 이런 상태에서 하자니 아무런 무드가 없을 게 뻔해 나는 한참 동안 고민하다가 결국 포기했다.그래도 나는 애교 누나가 정신을 차렸을 때 하고 싶었다. 그래야 서로 만족할 수 있으니.오늘 세 사람 중 형수가 가장 많이 취했다.가뜩이나 형수는 기분이 안 좋아했기에 나는 걱정이 앞섰다.때문에 애교 누나와 남주 누나를 침대에 눕힌 뒤 다시 형수 집으로 돌아왔다.술에 취한 형수는 소리도 치지 않고 조용히 침대에 누워 자고 있었다.하지만 여전히 형수가 걱정되어 나는 그 옆에 누웠다.이렇게 하면 저녁에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잘 대처할 수 있으니.그렇게 온종일 바쁘게 움직이고 나니 나는 늦은 시간 되어서야 핸드폰을 확인할 수 있었다.그렇게 핸드폰을 켰을 때 카톡에 친구 추가 요청 하나가 떠 있었다.상대는 다름 아닌 어제 만났던 그 여자였다.게다가 문자 하나가 와 있었다.[오늘밤 한 번 더 할래요?]‘젠장. 어제 그 여자가 취한 거 아니었나? 설마 우리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해 낸 건가?’‘그렇다면 내일 한의원에 출근하면 날 알아
‘뭐야? 여자 셜록 홈즈라도 돼? 통찰력과 추리 능력이 너무 뛰어나잖아.’게다가 말투가 대담한 걸 보니 정말 한 집씩 찾아다니면 나를 찾는 건 시간문제였다.그 가능성에 나는 다급히 답장했다.[대체 뭘 원해요?][뭐 딱히 원한다는 것보다 기분이 꿀꿀해서 술친구가 필요해요. 원한다면 해줄 수도 있고. 아무튼 난 그놈을 두고 바람피우고 싶으니까.]나는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 문자를 보냈다.[가는 건 문제없어요. 하지만 불 켜지 마요.][알았어요. 본인 정체 들키고 싶지 않은 거죠? 그 요구 들어줄게요.]나는 결국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기로 결심했다.그렇지 않으면 마음이 놓이지 않으니까.결국 나는 옷장에서 옷을 뒤지다가 형이 오래전에 입었던 작업복을 찾아 입었다.이렇게 가리면 아마 형수도 나를 알아보지 못할 거다.모든 준비를 마치고 나는 15층을 향했다.물론 여자가 약속을 어기고 불을 켜거나 내 모자와 마스크를 벗기면 어떡하나 여전히 걱정되었지만 다른 길이 없었기에 여자가 약속을 지키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1505호 문을 두드리자 검은색 란제리 속옷을 입은 여자가 내 눈앞에 나타났다. 심지어 지독한 술 냄새를 풍겼다.여자는 약속대로 불을 켜지 않아 나는 어느 정도 안심이 됐다.그때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던 여자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얼굴 알아보고 매달릴까 봐 이렇게 꽁꽁 싸맨 거예요? 쳇! 난 그쪽처럼 이기적이고 잘난 체하는 남자들한테 관심 없어요. 그놈한테 복수할 생각이 아니었다면 찾는 일도 없었을 거고.”여자는 말하면서 당장이라도 넘어질 것처럼 비틀거려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 여자를 붙잡았다.“많이 마셨어요. 부축할 테니 안으로 들어가요.”나는 여자를 안으로 부축해 들어가고는 문을 닫았다.집안에는 스탠드 등 하나면 켜져 있었는데 희미하고 어두워 안심할 수 있었다.나는 여자를 부축해 소파에 앉혔다.테이블 위에 쌓인 술병만 봐도 여자가 얼마나 많이 마셨는지 알 수 있었다.“너무 많이 마셨
“어젯밤 기분 어땠어요? 좋았어요?”나는 여자의 허리를 감싸안으며 말했다.“보통 이런 건 남자가 여자한테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이게 뭐 남자 여자 가를 게 있어요? 남자가 하는 일 여자라고 왜 못해요? 봐요, 나도 그놈 두고 바람피우잖아요. 다시 물어볼게요, 어제 기분 좋았어요?”나는 고개를 끄덕였다.“아주 좋았어요.”“그럼 됐어요. 오늘 더 기분 좋게 해줄게요.”나는 문득 궁금했다.“이 말, 혹시 남자 친구가 다른 여자한테 했어요?”내 물음에 여자는 고개를 들어 물었다.“그걸 어떻게 알아요?”“말투에서 느꼈어요. 그쪽이 할 때 기분 안 좋았다는 걸 알았거든요. 그냥 그 남자한테 복수하려고 한 거지.”여자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맞아요. 복수하려고 이러는 거예요. 그 자식도 바람피우는이데, 나라고 못 피우겠나 하는 오기 때문에 이러는 거예요. 그 자식도 나처럼 기분 엿 같아라고. 다른 건 뭐가 됐든 상관없어요.”나는 여자의 허리를 안아 소파에 부드럽게 내려놓고 다정하게 말했다.“아무리 복수하고 싶어도 본인이 즐겨야죠. 게다가 이런 건 서로 즐기자고 하는 건데, 복수하려고 몸 함부로 굴리면 어떡해요?”“뭔 말이 그렇게 많아요? 할 거예요, 말 거예요?”“할 거예요.”내가 그렇게 많이 말한 건, 여자가 다른 마음가짐을 가졌으면 해서다. 그러면 우리 둘 모두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으니까.사실 이런 일은 한 사람만 기분 좋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 두 사람이 함께 즐겨야 진짜 좋은 거다.내가 생각하고 있는 틈에 여자가 갑자기 나에게 입 맞추며 숨을 헐떡였다.“베란다로 가요. 그날 남친과 그 여자가 바로 베란다에서 했거든요. 나도 똑같이 갚아주고 싶어요.”“그래요.”나는 두 손으로 여자의 허벅지를 들어 올려 베란다 쪽으로 걸어가 세면대장 위에 올려놓고는 애무를 시작했다.여자는 처음에는 복수하려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내 말을 들어서인지 조금씩 달라졌다.그도 그럴 게, 남자 친구라는 놈은 제 감정도 무시한 채 즐길 거
새벽 2시가 지나자 여자는 겨우 깊은 잠에 빠졌고 나는 그제야 도망칠 기회를 얻었다.집에 돌아온 나는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잠들어 버렸다.그도 그럴 게, 너무 피곤했으니까.하지만 내가 겨우 잠이 들었을 때, 누군가 내 침대 위에 기어 올라왔다.여기는 형수의 집이고 형이 없으니 상대가 형수인 건 뻔했다.‘설마 술에 취해서 방을 잘못 찾았나?’나는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랬더니 상대는 아니나 다를까 형수였다.형수는 흐리멍덩한 눈을 한 채 입으로 계속 형의 이름을 중얼거렸다.“여보, 나 하고 싶어.”형수는 내 이불 속으로 들어와 나를 끌어안으며 입을 맞췄다.이에 나는 다급히 형수를 밀어냈다.“형수, 정신 차려요. 저 형이 아니에요, 정수호라고요.”하지만 형수는 여전히 아무런 의식이 없는지 나를 안고 입을 맞춰 댔다.그나마 다행인 건 내 욕구가 강한 게 아니라 참을 수 있다는 거였다.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내 품에 안긴 사람은 형수다.형수가 말짱한 상태였다면 우리는 절대 선을 넘을 일이 없다.그런데 술에 취해 이렇게 강제로 욕한다면 내 탓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그때 형수가 입을 맞추다 말고 내 옷을 벗겼다.형수의 기술은 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 낯선 여자보다 몇 배 더 좋은지 모를 지경이었다.물론 오늘밤 욕구를 여러 번 풀었지만 형수의 유혹 때문에 나는 그곳이 또 불편하기 시작했다. 이제야 인터넷에서 하룻밤 7, 8 번 한다는 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됐다.이제껏 거짓인 줄 알았는데 모두 진짜였단.‘젊으니까 좋긴 좋네.’나는 급하게 결정을 내리지 않고 눈을 감으며 한편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하며 형수의 복무를 즐겼다.‘이래서 사람들이 젊은 유부녀를 좋아하는 거구나.’“여보, 왜 키스 안 해줘?”형수는 내 얼굴을 잡고 반쯤 풀린 눈으로 말했다.형수의 유혹적인 모습에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입술을 갖다 댔다.형수와 키스하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
내가 노랑머리한테 준 것도 적은 돈이 아니었다. 족히 10만 원 가까이는 됐으니까. 백수들한테는 이것도 큰돈이나 다름없다.노랑머리 역시 같은 생각이었는지 결국 입을 다물었다.아직 대답을 못한 사람들은 얼른 다른 질문을 하라고 나를 재촉했다.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두 번째 질문을 했다.“그럼 혹시 이연화 혹은 조금희가 요즘 낯선 사람과 만난 걸 본 사람이 있어요?”그 물음에 모든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 그 순간 나는 실망했다.“세 번째 질문, 혹시 누가 나 대신 이연화를 감시할래요?”모든 사람이 동시에 손을 들었다.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좋아요. 그럼 다 같이 해요.”“그럼 돈은 어떻게 계산하는 거예요?”노랑머리가 물었다.나는 가방에서 또 돈 두 뭉치를 꺼냈다.“세 명이 감시해요. 한 사람당 200씩 줄게요.”세 사람의 눈은 커다래지더니 급기야 반짝반짝 빛이 났다.나는 세 사람에게 귀띔했다.“이 돈은 수고비예요. 누가 만약 유용한 단서를 제공하면 이 외에도 큰 보상을 받게 될 거예요.”‘역시 돈이 있으니 뭐든 쉽게 되네.’이 사람들이 나를 위해 성실하게 일하게 하려면 이 사람들 마음을 매수하는 게 우선이다.몇백만 원은 지금의 나한테 큰돈이 아니다. 무엇보다 사장님과 사모님을 도울 수 있다면 나는 뭐든 할 수 있다.모든 일을 마친 뒤 나는 다시 호텔로 돌아갔다.윤지은의 말을 들어보니 사모님은 이미 잠든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사모님 정서가 여전히 불안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기분이 다운된 사람은 쉽게 졸리고 무기력해지고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나는 방금 전 일을 윤지은에게 말했다.“이번 일 조사하기 엄청 어려울 거예요. 언제 진실이 밝혀질지도 모르겠고. 장기전을 할 준비는 됐어요?나는 윤지은을 보며 말했다.그러자 윤지은이 나를 째려봤다.“그걸 말이라고 해? 유미는 내 베스트 프렌드야. 유미한테 이런 일이 생겼는데 내가 같이 있어 주지 않으면 누가 같이 있어 줘? 그러는 너야말로,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는데? 설마
나와 윤지은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우리는 사모님 마음이 편치 않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사모님, 비록 어렵지만 아무 희망도 없는 건 아니에요. 우리가 끝까지 견지하면 분명 수확이 있을 거예요. 게다가 사장님이 하늘에서 우리를 지켜줄 거예요.”사장님을 언급하자 사모님의 정서는 드디어 조금 안정되었다. 사모님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호섭 씨, 정말 우리를 지켜줄 거야?”“당연하지.”윤지은도 사모님을 위로했다.그때 내가 분석했다.“제가 볼 때 이연화가 거짓말하는 것 같아요. 그 여자가 한 말 진짜 아니에요.”“너도 그래?”보아하니 윤지은도 똑같은 느낌을 받은 모양이었다.“넌 어떻게 보아냈는데?”“느낌이 그래요. 이연화가 그렇게 드센데 남편 일을 물어보지 않았다는 게 말이 안 돼요. 게다가 조금희 카드에 입금된 2억이 이연화랑도 연관된 것 같아요.”이건 내 직감이다.나는 왠지 이연화 같은 신분과 배경에 성깔 있는 여자라면 통제욕이 엄청날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여자가 자신을 배신했던 남자를 나 몰라라 방치할 수 있을 리가 있을까?그건 그 여자 성격에 부합되지 않는다. 윤지은의 관점 역시 나와 어느 정도 비슷했다. 윤지은은 내 말에 일리가 있다며 맞장구치면서 보충했다.“그리고 또 이연화가 2억을 얘기할 때 자꾸 눈빛을 피했어. 그건 거짓말한다는 표현이야.”“문제는 그 여자가 진실을 말하지 않으려 한다는 거예요.”이건 가장 골치 아픈 부분이다.그때 윤지은이 말했다.“그건 간단해. 내가 사람을 시켜 그 여자를 감시하라고 할 거야. 그러면 분명 허점을 보일 거야.”이런 건 역시 돈이 많아야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이다.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진짜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 있다.나는 얼른 맞장구쳤다.“만약 그곳 주민을 감시자로 붙여두면 더 좋을 거예요. 그 사람들이 이연화 행적을 더 잘 알고 있을 테니까요.”윤지은은 팔짱을 끼고 나를 바라봤다.“그건
사모님의 기세에 눌린 이연화는 오만하고 안하무인이던 태도가 싹 사라지고 다급히 대답했다.“말할게, 말한다고. 이거 먼저 놔.”사모님은 그제야 이연화 머리채를 놔주었다.이연화는 머리를 마구 문질러댔다. 심지어 얼굴까지 시뻘게진 걸 봐서는 사모님의 공격에 적지 않게 다쳤음을 알 수 있었다.이연화는 한참 동안 머리를 쓰다듬은 뒤 그제야 입을 열었다.“그 2억은 나도 어떻게 된 건지 몰라요. 그 인간이 우리 모자한테 주는 보상이라면서 줬어요.”“당신은 그 사람 아내인데 모른다는 게 말이 돼?”우리는 여자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러자 이연화가 조급히 말했다.“내 말 다 사실이에요. 난 정말 어떻게 된 건지 몰라요. 우리가 부부인 건 맞지만 명의상 부부나 다름없었어요. 그 인간이 나 몰래 불여우를 만나다가 잡힌 적도 있어요.”“그때 그 인간이 이혼만 하지 말자고 싹싹 빌지 않았으면 진작 헤어졌을 거예요.”여자의 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어 나는 차가운 표정으로 물었다.“그 2억이 어디서 났는지 몰랐다면, 조금희 씨가 불치병이라는 건 알았겠죠?”이연화는 고개를 끄덕였다.“그건 알아요. 그 인간이 오래전에 내 앞으로 보험을 들어 놓을 걸 줬었거든요. 자기가 가면 보험사에서 돈이 나올 거라면서.”이건 모두 일가 조사했던 내용이었다. 다만 이연화가 말한 사실이 모두 진짜인가 하는 게 문제였다.나는 이연화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봤다.“그날 장례식장에서 화장을 미뤄달라고 했는데 왜 안 들었어요?”“나 할 일 많아요. 당신들과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 인간이 당한 사고가 단순 사고든 인위적인 사고든 난 관심 없어요. 그 인간이 내 앞으로 돈을 남겼으니 난 그 돈을 얼른 받아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었어요.”이연화는 조금희와 더 이상 감정이 남아 있지 않아 조금희 일에 일말의 관심조차 없어 보였다.하지만 2억의 존재를 모른다는 게 진짜일지 의문이었다.만약 진짜라면 사건의 실마리는 또 끊기게 된다.나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질
그렇다면 우리의 추측이 거의 맞는 거로 증명이 된 셈이다. 게다가 이연화는 분명 뭔가를 알고 있을 거다.“이러면 이연화 모자만 찾으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칠 수 있겠네요.”우리는 일이 이렇게 순조로울 줄 몰랐다.심지어 사모님은 마음이 급해 벌떡 일어섰다.“더는 못 기다리겠어. 나 지금 당장 이연화 만나러 갈래.”“유미야. 아직 조급해하지 마. 지금 이연화 모자가 어디 있는지 모르잖아. 이렇게 해, 내가 한나한테 조사해 보라고 할게.”윤지은은 강한나에게 전화해 이연화 모자가 사는 곳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직무상 편의를 이용해 강한나는 곧바로 이연화 모자의 거주지를 찾아냈다.[미리 말하는데, 이연화 모자 좋은 사람 아니야. 이연화 아버지는 판자촌 터줏대감이라 되도록 갈등을 만들지 마.]“알았어.”이연화가 만만치 않다는 걸 알지만 우리는 무조건 가봐야 했다. 그건 사모님한테는 더더욱 간절했다.아무리 그곳에 불바다라도 사모님은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것만 같았다.이연화 집 주소를 알아낸 우리는 곧장 그곳으로 향했다.판자촌은 낡은 건물 지역이라 외지고 낡은 곳에 있는 데다 교통도 불편했다. 다만 이연화의 집은 그 판자촌에서 가장 큰 집이었다.우리가 이연화의 집을 찾았을 때 이연화는 집에서 화투를 치고 있었다.남편이 죽은지 얼마 되지 않는 여자가 이곳에서 한가하게 화투나 치고 있다니 침 한심했다.“이연화 씨, 할 얘기가 있어서 찾아왔어요.”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그러자 이연화는 나를 흘긋 보더니 말했다.“나 지급 바빠서 시간 없어요.”“이건 당신 남편 조금희 씨와 관련된 일이라 이연희 씨가 저희랑 반드시 가주셔야 해요.”기분이 살짝 언짢아진 나는 당연히 다정한 목소리가 나가지 않았다.하지만 이연화는 자기 구역에 있어 무서울 게 없어 심지어는 나에게 소리까지 질렀다.“반드시? 내가 왜? 당신들이 누군데? 경찰이야? 내가 왜 당신들 말을 들어야 해? 당장 꺼져. 화투 치는 거 방해하지 말고.”여자는 말하면서 다시 화투 치는 데
“보아하니 두 사람 모두 조금희 씨 몸에 종양이 퍼지고 있어 곧 죽는다는 걸 알고 있었네요.”“혹시 조금희 씨가 뒤에서 꼼수 부린 거 아닐까요?”나는 문득 뭔가 떠올라 의문점을 제기했다.현재 상황으로 분석해볼 때 조금희의 혐의가 가장 높았다.그때 윤지은이 말했다.“자세한 건 조사해 봐야 하지만 나도 조금희 씨가 이상한 것 같아.”사모님은 참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혔다.“다음에 조사할 때 나도 끼워줘. 나도 같이 조사하고 싶어. 두 사람 말 맞아. 호섭 씨가 억울한 죽임을 당했는데, 나라도 진실을 밝혀 억울함을 풀어줘야 해. 이게 내가 살아갈 유일한 동력이야.”사모님은 말하면서 또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슬픔 속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와 윤지은은 항상 사모님 곁을 지킬 거다.그날, 우리는 곧장 종양 전문 병원에 가 조금희의 병력을 조사했다.조금희 몸에서 종양이 발견된 건 1년 전인데, 처음에 양성이었다가 악성으로 번지기까지 적지 않은 돈을 들였던 거로 확인되었다.게다가 조금희는 불치병에 걸리기 전에 아내와 갈등을 겪었다.“자세한 건 저도 모르는데, 조금희 씨가 우리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젊은 여자가 항상 와서 돌봐줬어요. 그러다가 부인이 병원에 찾아와 그 아가씨를 때렸고요. 그 일은 병원 사람들 다 알아요.”‘그렇다는 건 조금희가 바람을 피웠다는 거네?’조금희가 이런 사람일 주은 생각지도 못했다.윤지은은 여간호사에게 돈다발을 건넸다. 그러자 간호사는 아주 기뻐하며 떠나갔다.조사를 마친 뒤 우리는 밖에서 식당을 찾았다.식당에 도착한 윤지은은 분석을 시작했다.“조금희 씨가 불치병에 걸렸고, 예전에 아내와 아들한테 잘못을 저질렀다면 혹시 자기가 얼마 못 살 걸 알고 호섭 씨를 배신해 돈을 챙겼던 건 아닐까?”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그럴 가능성이 커요. 만약 조금희 씨 계좌에 큰돈이 입금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아쉽지만 이곳은 강북이 아닌 Y시다. 안 그랬다면 윤지은의 인맥
나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배고픔을 느낀다는 건 좋은 일이다.윤지은이 아침을 사 오자 사모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음식을 먹었다.그걸 본 윤지은은 나를 향해 엄지를 추켜들었다. 그건 내 실력을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이번 치료 방법이 확실히 효과적이었으니까.나는 사모님을 한참 동안 관찰했다.비록 컨디션이 많이 안 좋은데도 사모님은 음식 드실 때 여전히 우아하고 단아했다. 살짝 슬픔을 띄고 있어 살짝 비극의 여주인공 같기도 했다.내가 한창 사모님을 바라보고 있을 때, 윤지은의 날카로운 눈빛이 갑자기 나를 쏘아봤다. “짐승!”윤지은은 욕지거리를 퍼부었다.그 욕에 나는 억울함을 호소했다.“제가 뭘 했다고 짐승이라는 거예요?”“아무튼 짐승 맞아. 이런 상황에서 훔쳐보기나 하고.”윤지은은 나를 째려봤다.난 그저 사모님을 몇 번 본 것뿐인데 나를 짐승 취급하다니, 너무 어이없었다.하지만 이러다 또 싸움 나겠다 싶어 나는 얼른 아침을 들고 다른 곳에 가서 배를 채웠다.식사를 마친 뒤 사모님은 자발적으로 나와 윤지은을 찾아왔다.“알고 있는 거 사실대로 다 알려줘요. 난 호섭 씨 사고에 대한 모든 사실이 알고 싶어요.”사모님은 너무 평온해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 때문에 나는 사모님 상태가 여전히 걱정스러웠다.“사모님, 우선 맥 좀 짚어봐도 될까요?”“그럴 필요 없어요. 내가 뭘 해야 하는지 나도 알아야. 걱정할 거 없어요. 어젯밤 많이 생각해 봤고, 호섭 씨가 떠난 사실을 받아들였어요.”“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건 호섭 씨처럼 착한 사람이 남한테 죽임을 당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억울함을 풀어줄 거예요.”“난 강해져야 하고 호섭 씨처럼 용감해져야 해요. 그래야 호섭 씨가 마음 놓고 갈 수 있어요.”사모님은 애써 슬픔을 참으려 했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또 흐느꼈다.그 말을 들으니 나도 코끝이 시큰거리고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이제 우리에게는 같은 목표가 생겼다. 바로 진실을 밝히는 것.나는 얼른 마음의
나는 사모님 팔을 힘껏 잡으면서 사모님과 눈을 마주쳤다.“사모님! 현실을 받아들이세요. 더 이상 자신을 속이지 마세요. 사장님이 이런 사모님 보고 편히 가지 못하길 원하시는 건 아니잖아요.”내 말이 사모님의 마음에 큰 상처를 줬는지, 사모님은 순간 울음을 터뜨렸다.윤지은은 내가 강제로 사모님을 자극했다며 나를 탓했다.“유미 지금 안 그래도 나약한 상태인데, 왜 그런 말을 직접 해?”나는 너무 난감했다.“누구는 뭐 이러고 싶은 줄 알아요? 하지만 사모님이 계속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환상 속에 살고 있는데, 계속 이러면 상태가 점점 악화해요.”윤지은은 내 말에 일리가 있다고 인정했지만 그와 동시에 사모님이 또 상처받을까 봐 걱정했다.나도 사모님이 현실을 받아들이게 하려면 그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고 있다. 하지만 사모님을 절망 속에서 끄집어내려면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나는 윤지은에게 말했다.“정말 사모님을 돕고 싶다면 모질어야 해요. 이럴 때 마음 약해지면 오히려 해치는 거예요.”윤지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내 말에 동의하는지, 내가 치료할 수 있도록 묵묵히 자리를 비켜줬다. 나는 나른하게 힘이 쭉 빠진 사모님을 잡고 진지하게 말했다.“죽은 사람이 다시 돌아올 수 없어요. 사모님이 속사한 건 알겠어요 하지만 지금 속상해할 때가 아니에요. 우리 할 일이 있어요.”“사장님 사고 단순 사고가 아니에요. 누군가 인위적으로 사고 낸 거예요. 사모님, 정신 차리고 우리와 함께 진실을 조사해요.”사모님은 텅 빈 눈으로 나를 보며 중얼거렸다.“그게 무슨 말이에요?”사모님을 깊은 슬픔에서 꺼내는 건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무엇보다 중요한 건, 서두르지 않고 그녀가 진실을 받아들일 수 있게 천천히 다가가는 것이다.나는 말투를 부드럽게 하며 방금 한 말을 또다시 반복했다.“사장님 교통사고에 수상한 점이 발견됐어요. 사모님도 사장님이 억울하게 돌아가시는 거 원하지 않죠? 우리 함께 진실을 알아내 사장님이 억울하게 죽임당하
나는 그 말을 들은 순간 식은땀이 송골송골 솟아올랐다.사모님 상태는 살짝 이상해 보였다. 아마도 의식이 혼미해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를지도 몰랐다.나는 사모님이 바보 같은 짓을 할까 봐 서둘러 사모님 팔을 꼭 잡았다. 그러면서 계속 따라오지 않으면 강제로라도 데려올 생각이었다.“수호 씨, 이거 놔요. 난 남아서 호섭 씨랑 같이 있을래요...”사모님은 마구 버둥대며 소리쳤다.이러다가 사고가 날 것 같아 나는 아예 사모님을 어깨에 두러 업었다. 그러자 사모님은 곧바로 버둥거리며 소리쳤다.벼랑 끝에 서 있는지라 조금만 실수하면 함께 아래로 떨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나는 결국 사모님을 손날로 기절시켰다.내가 가드레일 안쪽으로 다시 넘어왔을 때 윤지은의 차가 마침 도착했다.“왜 그래?”윤지은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나는 사모님을 차에 앉히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사모님 지그 정신이 이상해서 현실과 환각을 구분하지 못해요. 방금 사장님이 춥다고 한다면서 옷 주러 내려가겠다고 했어요. 제가 제때 나타나지 않았으면 뛰어내렸을지도 몰라요.”윤지은은 내 말을 듣더니 미간을 찌푸렸다.“계속 이럴 순 없어. 우리가 잠깐은 지켜볼 수 있지만 평생 지켜볼 순 없잖아.”그때 내 머릿속에 문득 방법이 떠올랐다.“사모님께 사장님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알려드리는 건 어때요?”“미쳤어? 이번 일로도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닐 텐데, 또 자극하자고?”윤지은은 내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이에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제 할아버지가 남긴 의학 서적에 비슷한 사례가 있는데, 옛날에는 환자가 가족을 잃고 감정을 통제하지 못할 때 치료가 안 된다면 환자한테 희망을 줘야 한대요. 그 희망이 의학에서 말하는 기예요.”“그 기를 가진 환자가 음식 치료와 약물 치료를 함께 진행하면 서서히 회복할 수 있대요.”“사장님의 죽음에 수상한 점이 있잖아요. 그래서 사모님과 함께 그 사건을 수사하는 거예요. 아마 사모님도 사장님이 죽은 진실을 알고 싶을 거예요.”
장례식장 안을 모두 뒤져 봤지만 사모님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리 조급하지 않던 내 마음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불안해졌다.사모님은 현재 몸 상태도 안 좋고 정서도 매우 불안하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가족한테 어떻게 말해야 할지 걱정됐다.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내 마음은 점점 불안해졌다.그러다 결국 방법이 없어 나는 문득 사모님 번호를 떠올려 그쪽으로 전화를 걸었다.전화는 계속 긴 연결음만 들릴 뿐 아무도 받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포기하려고 할 때 연결음이 꺼졌다. 액정을 확인하니 전화가 연결되었다.“사모님?”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수호 씨, 나 괜찮으니까 좀 내버려둬요.]사모님 목소리는 매우 우울해 보였고 기운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나한테는 너무 듣기 좋았다. 나는 다급히 물었다.“사모님, 어디 있어요? 너무 걱정돼요.”[혼자 있고 싶어요.]“알아요, 아는데 어디 있는지만 알려줘요. 사모님이 안전하다는 거 확인해야 해요.”전화 건너편에서 한참 침묵이 흘렀다.그때 갑자기 차 경적음이 들려왔다.그렇다는 건 사모님이 장례식장에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었다.나는 문득 사모님이 있을 수 있는 곳이 떠올랐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물었다.“사모님, 알려주시면 안 돼요?”사모님은 아예 전화를 끊어버렸다.하지만 이미 대충 답을 얻은 나는 장례식장을 뛰쳐나가 택시를 잡고 사장님이 사고를 당한 곳으로 향했다.가는 길에 사모님을 찾았냐는 윤지은의 전화를 받은 나는 내 추측을 말했다.“아니요. 사모님 아마도 사장님 사고 난 곳에 있는 것 같아요.”[거긴 왜?]윤지은은 이해가 되지 않아 무의식적으로 물었다.“사장님 죽음이 수상해 직접 조사하고 싶었을 수도 있고, 단순히 사장님이 그리웠을 수도 있고... 아무튼 저 지금 가는 중이에요.”[그럼 먼저 건너가. 나 이따 바로 갈게.]나는 윤지은과 상의한 뒤 먼저 사장님이 사고 난 곳으로 향했다.사고가 난 곳은 절벽인데, 사모님은 마침 절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