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비가 황귀비로?현비는 은근 열이 받아서 가서 경단을 안았는데, 세상에나 경단을 품에 안자 또 똑같이 울어서 안되겠다.현비가 견딜 수 없는 지경이 되어서 막내 찰떡이를 안아보려고 갔는데 찰떡이는 처음엔 안 울더니 현비가 안은 뒤에 젖을 토했는데 현비가 허둥지둥 닦자 찰떡이가 울기 시작했다.찰떡이는 원래 작아서 울음 소리는 크지 않지만 울기 시작하면 잘 토해서 현비가 안은지 얼마 되지도 않아 찰떡이 얼굴이 괴로워서 자주빛이 되었다. 태후가 화가 나서, “됐다, 넌 앉아라, 안을 필요 없어.”태후는 희상궁을 불러 찰떡이를 데리고 와서 자신에게 안겨 달라고 했다.현비는 수치와 모욕감으로 자리에 앉는데 눈물이 고였다.태후가 아이를 데리고 있는데 찰떡이를 깨끗이 닦은 뒤 무릎에 놓고 살살 흔들어주다가 포대기를 톡톡 두드려주며, “착하지, 우리 착한 아가야, 괜찮아 괜찮아, 왕할미가 안고 있어, 예뻐 하고 있어.”세 아가는 모두 울지 않았다.현비는 사람들에게 세게 따귀를 몇 대 맞은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리고 다들 자신을 멸시하고 비웃는 눈으로 쳐다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얘들은 현비의 친손자인데 다른 사람이 안으면 멀쩡한데 오직 현비만 안을 수가 없다.하필 귀비가 이때 웃으며: “그나저나 이상하네요. 다 안아도 상관없는데 유독 친할머니인 현비 마마가 안으면 안되는 게, 마마 손에 가시가 났나요 아님 왜 그러죠?”다들 현비의 얼굴을 응시하자 현비는 부끄럽고 화가 나서, “오늘은 좋은 날인데, 귀비 마마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게 부적절하다는 생각은 안 드시나요?”현비는 전에 귀비가 이렇게 짜증난 적이 없었는데 오늘 왜 사사건건 현비를 걸고 넘어지지?현비는 냉정하게 생각하고 조금 있다가 삼일 목욕이 끝난 뒤에도 귀비가 여전히 득의양양한지 봤다.현비는 태후전에 갔다가 황제가 오늘 조서를 가지고 왔다는 것을 알았는데, 분명 삼일 목욕 후 천하에 다섯째를 태자로 책봉하는 것을 선포할 것이 틀림없다.태자의 친모는 지위가 낮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예전
황태자 책봉귀비가 와서 자세히 보고 손으로 긁어도 보는데 발바닥을 긁어서 빨갛게 되었는데도 색이 없어지지 않자 태후가 불쾌해 하며, “어떻게 그릴 수가 있느냐? 어서 안아라, 아직 날이 춥구나.”희상궁이 유모에게 분부하며, “안고 준비하자, 시간이 거의 다 되었구나. 씻으셔야지.”씻는다는 얘기를 듣고 태후가 비로소: “어째서 사돈댁에서는 아직 오지 않았는가?”희상궁이 웃으며: “태후 마마, 왔습니다. 노마님과 정후부부 모두 와 있습니다. 정후는 밖에서 선포를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까?”“오, 그럼 어서 들어와서 아이를 보셔야지, 너희들은 가서 준비하거라.” 태후가 말했다.정후는 오늘 참으로 어깨를 쫙 폈다.출산을 마치고 도련님이란 것을 알고 바로 사람을 시켜 대례를 준비시키고 삼일 목욕 이 날이 오기를 기다렸다.지금 태후와 황제가 안에서 아이를 보고 정후는 문 앞에서 황제의 접견을 기다리는데 노마님과 황씨, 원경병이 원경릉을 보러 갔다.정후는 들어가서 착실하게 예를 취해 아주 예의가 바른 모습으로 보였다.태후가 정후를 추켜세우는 말을 아끼지 않으니 정후는 기뻐서 얼굴에 꽃이 활짝 피었으나 감히 표현하지 못한 것이 황제가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하지만 황제는 정후의 눈에 진노가 없고 이미 아미타불인 것을 봤다.삼일 목욕이 막 안에서 진행되고 있는데 실내엔 구리 대야 세 개에 절반정도 물이 담겨 있고, 구리 대야에 비친 물이 금빛으로 찬란한데 물 안에는 배꼽 집게가 놓여 있고, 대야 주변에 수건, 항아리 화로, 좁쌀, 작은 금괴와 은 등 길하고 복을 비는 물건들이 놓여있었다.삼일 목욕을 주관한 사람은 아가들을 받아 주신 산파이기도 한 강녕후 부인, 주패(朱佩) 고모님이다.하지만 셋이기 때문에 최대인이 소개한 산파와 희상궁이 같이 목욕을 시켰다.실내는 따듯하고 온화한 빛이 비치는 것이 여름 같아 옷을 벗긴 후 살짝 구리 대야에 내려놓는데, 원래 마르고 약한 세 아가가 지금은 옷을 벗고 서로 똑 닮은 강아지처럼 물에 들어가 손발을 꼼지락 거리
현비가 황귀비로?현비는 가슴이 쿵쾅거려서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입을 틀어 막고 태후의 발 앞에 꿇어앉아 있는데 목이 메어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소씨 집안에서 마침내 인물이 나왔고, 현비가 황후는 아니라도 언젠가는 태후가 될 것이다.현비도 잠시 꿇어 있다가 일어나 목여태감이 책봉조서를 꺼내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없었다. 황제는 그저 우문호를 바라 본 뒤 가볍게 어깨를 두드리더니: “폐하께서 궁으로 돌아가신다. 가마를 대령해라!” 오늘은 그저 절차만 밟을 뿐 군신이나 부자간의 대화는 다음에 다시 해야 할 것이다.현비는 명원제가 정말 가는 것을 보고 참지 못하고 불러서, “폐하, 잠시만!”명원제가 고개를 돌려 현비를 보고, 음산한 눈빛으로, “또 무슨 일이냐?”현비가 명원제의 이 눈빛을 보니 그날 따귀를 맞았던 생각이 나서 가슴이 철렁하며 목구멍까지 차 올랐던 얘기를 꿀꺽 삼키고 눈을 내리깔고: “신첩 태자비와 잠시 함께 있고 싶사오니 조금 늦게 궁으로 돌아가겠습니다.”명원제는 밝지 않은 얼굴로: “허락한다!”우문호와 다른 친왕은 태후, 황후 및 다른 마마들을 나가시는 것을 공손히 배웅하고, 손왕, 회왕, 제왕이 우문호를 둘러싸고 축하했다.안왕이 홰나무 아래 서 있는데 마침 홰나무 그늘에 가려서 입꼬리를 올리고 미소를 지으며, “다섯째야, 축하한다!”우문호가 안왕을 보고 얼음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넷째 형 고맙습니다.”안왕이 고요하게: “이런 아무래도 자신의 능력으로 얻은 것이라고 할 수 없으니 앞으로 더 노력해야겠어, 안 그러면 황태자의 자리를 뺏길 지도 모를 일 아니냐.”이런 도발적인 말에도 우문호는 조금도 맞받아치려 하지 않고 그저 담담하게: “넷째 형 말이 맞습니다.”안왕이 눈을 내리깔았지만 곁눈질하더니 홀연히 스쳐 지나갔다.안왕은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게 분부해 안왕비를 오라고 하더니 안왕부로 돌아가겠다며 작별했다.안왕을 보내고 현비는 바로 우문호를 작은 서재방으로 끌어갔다.현비의 표정은 최고로 엄숙하고 준엄해서, “오
엄마가 하는 짓이라니현비는 목소리가 이상하게 꺾이며, “너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어?”우문호가 현비를 보고, “어마마마, 원 선생이 해산하던 그날, 어마마마께서 뭘 하셨는지 아십니까?”현비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려서, “어미가 한 모든 행동은 다 널 위해서 였다. 원경릉은 널 놀며 즐기게 망가뜨릴 뿐이야, 네가 무능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일생을 보내게 만들 뿐이라고.”“제 왕비를 죽이려고 시도한 것이 저를 위해서란 말입니까?” 우문호가 말을 해놓고도 마음이 섬뜩해서, “별 일없이 일생을 보내는 것이 뭐가 나쁩니까? 부모 된 도리란 자식이 일생을 평안하고 즐겁게 보내기를 바라는 것이 당연하지 않나요? 제가 제왕의 집안에 태어나 만약 별 일없이 일생을 보낼 수 있다면 이 또한 큰 다행이 아니고 무엇입니까?”현비는 얼이 빠져서 우문호를 보는데 오직 분노가 가슴속에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실망스럽고 가슴 아파서,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소씨 집안은 이미 몰락했지만 네 외할아버지와 네 외삼촌이 너를 지원하는데 조금도 아끼지 않았던 것은 언젠가 네가 황위에 오를 수……”우문호가 냉소를 지으며, “언젠가 제가 황위에 오르면 소씨 집안이 제후와 공작 벼슬에 봉해 질 것이다 아닌가요? 그러면 그들이 한 행동은 전부 저를 위한 겁니까? 그들 자신을 위한 겁니까? 또 소씨 집안이 몰락한 것이 저와 무슨 상관입니까? 만약 제가 황제가 돼서 소씨 집안의 위엄을 다시금 진작시킬 수 있다면, 지금 황조모는 폐하의 어머니고, 소씨 집안 사람인데 아바마마께서 줄곧 소씨 집안을 살펴 주셨 건만 어째서 소씨 집안이 다시 부흥하는 모습을 못 볼까요? 문제는 처음부터 누가 황제가 되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소씨 집안에 기용할 만한 인재가 없다는 데 있습니다!”현비는 크게 충격을 받고, “너…… 네가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 소씨 집안에 어째서 인재가 없어? 네 외조부, 네 외삼촌 전부 조정에서 직책을 맡으셨는데 그분들이 왜 쓸모가 없어?”“직책을 맡으셨지
원경릉의 생각은 잘못됐다. 노부인이 급히 떠나려고 하는 이유는 휴식시간을 황씨에게 방해받고 싶지 않고, 또 괜한 말을 하기도 싫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가 떠난 이유는 무엇보다도 화가 나는 것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원경병은 원경릉 옆에 남아 조모가 화가 나서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모친께서는 이번에 할머니께 크게 혼나시겠습니다.” 원경병이 말했다.원경릉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근심 어린 표정으로 원경병을 보았다.“가만…… 넌 표정이 왜 그래? 어디 불편해?”원경병은 그녀를 보며 입을 삐죽거리더니 이내 눈시울을 붉혔다.“방금 만아가 저한테 누이가 배를 갈라서 아이를 낳았다고 했습니다.”그 말을 들은 원경릉은 원경병이 자기도 아이를 낳을 때 배를 가르게 될까 무서워하는 줄 알았다.“너는 나하고 달라. 난 이번에 세 아이를 임신했고, 몸도 약했잖아 그래서 배를 가를 수밖에 없었어 하지만 넌 아니야. 걱정 마. 네가 임신하면 내가 네 옆에 꼭 붙어있을 테니까.”원경병은 코를 훌쩍이며 그녀를 보았다. “제 걱정을 하는 게 아니라, 누이가 어떻게 될까 걱정돼서 우는 겁니다!”그 말을 들은 원경릉은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원경병은 입만 사납지 마음은 누구보다 여리구나.’원경릉은 동생의 손을 잡고 조용히 말했다.“난 괜찮아. 나는 말이야, 다른 사람을 아끼는 만큼 나 자신도 아껴주거든.”원경릉은 마음속에 아끼는 사람이 있기에 자신의 생명을 더 아끼게 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자신이 잘못되면 자신을 아끼는 사람이 슬퍼할 것이기 때문이다. 원경릉은 내가 존재해야 비로소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다. 원경병은 원경릉이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갸우뚱했다. *며칠 후, 제왕절개한 곳의 상처는 많이 나았지만 아직 산달이어서 밖에 나갈 수 없었다. 원경릉이 할 수 있는 것은 왕부 내에서 몇 발짝 걸어 다니는 것뿐이었다. 강녕후 부인은 원경릉이 괜찮은 것을 확인한 후 마장(馬場)으로 돌아갔다. 원경릉은 떠나는 강녕
“저 때문에 내려오신 겁니까?” 원경릉이 감동받은 표정으로 정화군주를 보았다. 정화군주는 산에서 내려오기까지 큰 결심이 필요했을 것이다. “자식을 낳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큰 행사잖아요.직접 축하해드리고 싶었습니다.”정화군주가 말했다.만아가 차를 내왔고, 정화군주는 미소를 지으며 만아에게 고맙다는 표시를 했다.만아는 그녀의 따듯한 미소에 부끄러운 듯 “뜨거우니 조심히 드십시오……”라고 말했다.원경릉은 정화군주가 사람을 대하는 데에 있어서 신분의 귀천을 나누지 않는, 황실에서는 보기 드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몸은 좀 어떱니까?” 원경릉이 정화군주에게 물었다.“괜찮습니다.”“잠은 잘 잡니까?”정화군주는 말을 잠시 멈추더니 차를 한 모금 마셨다.“요즘 꿈을 자주 꿉니다. 과거에 있었던 일들이…… 꿈에 나옵니다.”“시간이 약입니다. 나중엔 아무렇지 않을 겁니다.” 원경릉이 그녀를 위로했다.“예, 그렇겠죠.” 그녀의 눈빛에서 결의가 느껴졌다. 그녀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듣자 하니 초왕비께 무우산이 있다고 하던데 저한테 좀 줄 수 있나요?”라고 물었다. “무우산? 그거로 뭐 하시게요?” 원경릉이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배를 응시했다. 정화군주는 펑퍼짐한 옷을 입고 있어서 배가 잘 보이지 않았다. “오해 마세요. 제가 쓰려는 게 아니니까요.” 정화군주가 웃었다. 원경릉은 정화군주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녀가 있는 명월암에는 비구니들 밖에 없는데, 무우산을 쓸 일이 뭐가 있겠는가?”“고지가 아이를 낳을 것 같습니다.” 정화군주가 말했다.“고지?” 원경릉은 그녀의 말을 듣고 뒤로 넘어갈 뻔했다.“예, 아마 아기가 생각보다 일찍 나올 것 같습니다.” 정화군주가 말했다.“그럼 군주께서 고지랑 계속 같이 있었다고요? 지금 고지는 어디에 있습니까? 고지는 위험인물이라고요!”정화군주는 원경릉을 보고 낮은 목소리로 “괜찮습니다. 그녀는 나를 다치게 할 수 없거든요.”라고 말했다.“왜 그렇게 확신하십니까?”“그게…… 고지는 두 눈이 멀었
“당시엔 힘도 나지 않고 절망적이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그렇게 절망스러워할 필요가 없더군요.”정화군주의 창백한 얼굴엔 무미건조한 웃음이 걸려있었다.“그래요. 다 지나갈 겁니다.” 원경릉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난처한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 “내 발자국 소리를 듣고 고지가 자신을 구해달라고 했어요. 그때 내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초왕비가 알까요?”“무슨 생각이 드셨습니까?”“고지는 내 발자국 소리만 듣고 어떻게 나라는 것을 알았을까? 정말 웃기더군요. 그때 고지의 표정이 얼마나 가련했던지…… 구해주기로 약속하고 그녀를 끌고 산꼭대기까지 올라갔어요. 살려달라니까 살려서 꼭대기로 데리고 간 것 아닙니까? 내가 한 번 구해준 목숨이니 그다음엔 내 마음대로 해도 되니까요.”“데리고 올라간 이유는……”“혼자 죽기는 싫었거든요.”“고지는 군주의 의도를 몰랐죠? 고지는 자신이 쫓기고 있으니 도와달라고 한 거 아닙니까?”“처음엔 저도 고지가 모르는 줄 알았어요. 근데 산꼭대기에 이르렀을 때, 고지가 무릎을 꿇고 전에 자신의 목숨을 구해줘서 고맙다면, 지금 죽으려고 한다면 자신도 따르겠다고 하더라고요.”“그게 진심일까요?”“진심일 리가 있겠어요? 고지의 말에 대꾸도 안 하고 산꼭대기에 둘이 앉아있었습니다. 그녀에게서는 사향냄새가 짙게 풍겼어요. 그래서 제가 이 냄새는 어디에 쓰이는 것이냐고 물으니 아이를 지울 때 사향냄새를 맡으면 애가 떨어진다고 하더라고요. 명월암 약방에서 훔쳤다며……”“아이를 지우는 게 그녀의 목숨을 더 위험하게 할 텐데…… 고지는 무슨 생각일까요?”원경릉이 의아해했다.태후가 아무리 고지를 싫어한다고 해도, 그녀의 뱃속에 황실에 아이가 있기에 아이만 있다면 목숨은 부지할 수 있을 것이다.“저도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왜 아이를 지우려고 하냐고 물었죠. 그랬더니 안왕이 자객을 보내서 그녀를 죽이려고 한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남강으로 피신해야 하는데, 뱃속에 아이가 있으니 도망갈 수 없으니 아이를 떼고 가려고 한
정후가 아무리 멍청하다고 해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지 않나? 다 늙어서 발정이 났다고 해도 위왕의 노여움을 살 게 뻔한 일을 저지르다니? 그리고 고지는 정후가 좋아할 스타일이 전혀 아닌데……원경릉은 고지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고, 왜 그런 거짓말을 하는지 고지의 속셈을 밝혀내야 했다.“아무튼 고지가 그렇게 말했으니, 나중에 한 번 물어보세요.”원경릉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다섯째가 태자로 책봉되었고, 원경릉은 태자비가 됐다. 태자비의 부친이 위왕의 애첩과 불미스러운 관계를 맺다니!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안왕이 가만있지 않았을 것이다. ‘설마 안왕의 큰 그림?’원경릉은 이게 사실이라면 안왕이 너무 무섭다고 생각했다.“고지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원경릉이 물었다.“명월암 곁채에 있어요. 지금 제가 살고 있는 곳입니다.”“정화군주, 제가 고지를 만나 정말로 제 부친과 관계를 맺었는지, 그 아이가 부친의 아이가 맞는지 묻고 싶습니다.”정화군주는 원경릉을 보며 “사실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고지가 말하는 건 열에 한 마디만 믿으면 되니까요. 그리고 이 사실을 누가 알겠습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라고 말하며 눈썹을 치켜세웠다.“군주, 이게 사실이라면 정말 큰일 납니다!”정화군주는 가만히 생각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그건 그렇네요. 그럼 초왕비께서 고지를 보고 싶다면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보내세요. 절대로 고지를 안왕의 손에 넘겨주면 안 되니까요. 지금 안왕을 포함한 그 누구도 제가 고지와 함께 지내고 있다는 걸 모릅니다.”“지금도 안왕이 그녀를 계속 추적하고 있다는 말이죠? 안왕은 고지가 안왕이 꾸민 계략 때문에 고의로 위왕부에 접근했다는 사실이 알려질까 그런 겁니다. 혹시 모르니 보험으로 고지를 정후와 엮은 것이고요. 안왕이 고지를 죽이라고 사람을 보냈다면…… 그 뜻은 제 부친은 이미 안왕의 손아귀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겠죠.”“태자비도 몸 조심하셔야겠습니다.”원경릉은 사식이와 서일을 불러들여 정화군주를 바래다주라고 하며 조
연회는 계속 진행되었고, 냉정언은 술잔을 들고 계속 탕양에게 술을 권했다. 잔을 몇 번이나 주고 받자, 탕양은 머리가 머리가 어지러워져 말조차 똑바로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연회가 끝난 후, 냉정언이 일곱째 아가씨에게 말했다."술을 꽤 마셨다 보니, 탕양이 좀 취한 것 같네. 정원에 나가 산책을 조금 하면서 술기운을 가시는 것이 어떻소?"일곱째 아가씨도 약간 취한 상태였기에, 바람을 쐬며 땀을 내면 술이 깰 것 같다며 동의했다."예. 그럼 다들 돌아가서 쉬시지요. 제가 호명과 함께 탕 대인을 돌보겠습니다.""좋소. 수고하시게나!"냉정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흔들었다."자, 어서 돌아가시게!"그렇게 사람들은 모두 새가 흩어지는 것 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일곱째 아가씨는 호명과도 함께 산책할 생각이었는데, 빠르게 사라지는 그들의 모습이 어이가 없는듯 웃음을 터뜨렸다.그러고는 탕양의 붉게 상기된 얼굴을 보고 물었다."괜찮습니까? 걸을 수 있겠습니까?"그러자 탕양이 자리에서 힘겹게 일어났는데, 술에 많이 취한듯 몸을 심하게 휘청거렸다."어찌 못 걷겠습니까? 취하지 않았습니다!""예. 그럼, 몇 걸음 더 걸어보시지요. 정말 못 걸으시겠으면 방으로 돌아가 쉬시고요. 취기를 덜어줄 탕을 준비하라고 하겠습니다."그러자 탕양은 허리에 손을 얹고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걸어나갔다. 곧게 뻗은 직선을 그리며 터벅터벅 걷고는 뒤돌아 일곱째 아가씨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보시지요. 얼마나 똑바로 걷는지! 안 취했습니다. 이제 믿을 수 있습니까?"일곱째 아가씨는 그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하하하. 예, 안 취하셨네요. 그럼 이만 나가서 함께 산책하시지요."그녀는 그가 오래 걷지 못할거라고 생각해, 방으로 데려가 쉬게 하기로 했다.역시나 문을 나서자마자 탕양은 난간을 붙잡고 비틀비틀 걷기 시작했다. 하도 휘청거리는 탓에 몇 번이나 넘어질 뻔했기에, 일곱째 아가씨는 결국 어쩔 수 없이 그를 부축했다.그러자
"탕 대인이 저를 예쁘다고 말해 주셔서 정말 기쁩니다. 그러니 일곱째 아가씨께도 예쁘다고 말해 보십시오. 분명히 기뻐하실 것입니다!"하지만 탕 대인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다를 겁니다. 일곱째 아가씨는 이제 그런거에 좋아할 나이를 지났습니다. 지금 그녀에게 예쁘다고 말하면, 그저 무미건조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어찌 그럴 리 있습니까? 누구나 칭찬받는 것을 좋아하는 법입니다. 탕 대인, 대인께서 정말 재능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십니까?"탕 대인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예? 하하하. 그렇습니까?""예! 모두가 그렇게 말했습니다!"탕 대인은 자기도 모르게 어깨를 으쓱거리며 미소를 지었다."과찬입니다.""기분 좋으십니까?"택란이 묻자 탕 대인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다, 이내 뜻을 알아차리고 멈칫하며 말했다."이 녀석!"택란은 그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탕 아저씨도 누군가에게 꼭 사랑받으시길 바랍니다."탕 대인은 이 말에 크게 감동해서 택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말했다."예. 고맙습니다."저녁엔 계약이 성공한 기념으로 연회가 열렸다.소박한 술자리긴 했지만, 커다란 술통들이 준비되어 있어 모두 마음껏 마시며 즐길수 있었다.택란은 술을 마시지 않기에, 주 아가씨가 매실청을 대신 준비해 주었다. 새콤달콤한 맛이 택란의 마음에 쏙 들었다.술잔을 주고받으며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르자, 모두 패기 있게 약도성을 북당에서 제일가는 도성으로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했다.일곱째 아가씨는 벌써 독산을 어떻게 개발할지부터 고민하고 있었는데, 독산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막막했기에 사람들에게 의견을 구하기 시작했다.각자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지만 대부분이 경치를 개발하자는 내용이었다.반면, 택란은 새로운 생각을 제안했다. 독산에 온천이 있으니 오두막을 지어 온천을 끌어들여 돈을 받고 여러 개의 탕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어떻겠냐며, 온천수가 몸에 좋다는 점을 대대적으로 홍보하자고 제의하였다.택란의 생각은 이 시절
탕양은 자신이 여자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고 자부했었다. 특히 일곱째 아가씨처럼 강인한 성격을 가진 사람은 혼자 지내는 데 익숙하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삶을 더 선호하기에 굳이 자신과 인연을 맺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는 그의 큰 착각이었다.여인의 마음은 늘 갈대처럼 변덕스럽고, 아무리 강인한 사람이라도 다정함이 필요한 순간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일곱째 아가씨는 오랫동안 혼자 외롭게 지내왔는데, 중년에 접어들며 그 외로움이 더욱 깊어진 것이다.누군가 곁에 있다면, 삶의 방식도 달라질 수 있지만, 물론 잘못된 연으로 나빠질 가능성도 있었다.원가의 가훈은 항상 군주에게 충실하며, 엄청난 용기도 있었다. 심지어는 원가에서 키운 닭조차 남의 집의 닭보다 더욱 용감할 정도였다.하지만 한 번의 좌절로 인해 사랑을 믿지 않겠다는 것이 과연 용기있는 행동 일까?물론 그녀가 반드시 탕양을 선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어울리는 사람을 만나 다시 한번 용기를 내볼 수도 있었다.하지만 탕양이 먼저 용기를 내어 말한다면, 그녀 역시 그에게 기회를 줄 것이다.여태껏 그녀의 마음에 들어온 사람은 오직 탕양뿐이었다.그리고 어쩌면 시도해 봐야만 서로 맞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탕양과 잘 맞는다고 느끼는 건 그녀가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아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착각일지도 모르니 말이다.경성으로 돌아간 후에도 탕양이 말을 꺼내지 않는다면, 그녀는 공개적으로 구혼에 나설 생각이었다. 한편, 택란이 주 아가씨와 함께 밖으로 나가며 물었다."탕 대인이 왜 나쁜 사람인 것이오?""여인을 훔쳐봤습니다.""탕 대인이 아가씨를 좋아하지 않소? 어찌 못 보는 것이오?"주 아가씨는 택란이 이런 부분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공주에게 가르쳐야겠다고 마음먹으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사내가 여인을 사모하면 상대의 시선을 바라보지, 다른 곳을 쳐다보지 않습니다. 그러니 탕 대인은 일곱째 아가씨를 사모하는 것이 아닙니다.""그
그녀는 탕양을 힐긋 바라보는데, 예전의 담담하고 온화한 모습 없이 뜨겁게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그녀는 그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기에, 절대 먼저 말을 꺼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평생 그렇게 죽을 때까지 버틴다 해도, 제자리에 머물러 기다리지 않을 것이었다."탕 대인, 지금 어디를 보는 것이오?"그때, 냉정언이 물었다."예? 무슨 말이십니까?"탕양은 서둘러 정신을 차리고 냉정언을 바라보자, 냉정언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탕 대인께서 계속 일곱째 아가씨의 가슴팍을 보고 있었소.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것이오?"이 말이 끝나자마자, 모두가 술렁이며 이상한 시선으로 탕양을 바라보았다.그러자 주 아가씨가 급히 택란의 귀를 막으며 말했다."보지도, 듣지도 마십시오!"탕양은 크게 당황하며 두 손을 마구흔들었다."아닙니다! 전 그러지 않았습니다! 냉 대인께서 잘못 보신 겁니다.""아니오. 분명 아가씨의 옷깃과 가슴을 보고 있었소!"말을 마치자마자 냉 대인은 숭이를 안고 단호하게 밖으로 나갔고, 탕양은 얼굴을 붉히며 변명이라도 하기 위해 일곱째 아가씨를 쳐다봤다. 그러자 일곱째 아가씨는 기침을 하며 옷깃을 정리한 뒤 소리쳤다. "흥. 변태!"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도 돌아서 나가버렸다.탕양은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당황한 얼굴로 주 아가씨와 홍엽을 보며 말했다."다들 보지 않았습니까? 제가 그런 게 아니라는..."홍엽이 소매를 휘두르며 말했다."눈이 자네 얼굴에 달려 있는데, 자네가 누굴 보고 어디를 보는지 우리가 어찌 알겠는가?"주 아가씨는 택란의 손을 잡고 나가며 말했다."마마, 이제 탕 대인 같은 사람하고 어울리지 마십시오. 인품이 좋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탕양은 여전히 몹시 당황한 상태였다. 냉정언의 한마디에 그의 처지가 아주 난감해져 버렸다.그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말이다. "명여야..."냉명여 또한 귀를 막고 밖으로 달려 나가며 외쳤다."탕 대인께서는 정말 나쁜 사람이십니다!"탕양은 그만 머리를 감싼
이처럼 독산은 마치 진실한 사람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처럼 가장 진솔한 생각을 감출 수 없게 만들었다.일곱째 아가씨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탕양을 바라보며 말했다."저를 배신한 것을 아직 기억하고 계십니까?"탕양은 그동안 일곱째 아가씨와 이 일을 얘기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항상 담담한 태도로 과거 이야기를 피하며 언급하지 않았었다. 그런 그녀가 갑자기 이 말을 꺼내니, 탕양은 잠시 멍해졌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연히 기억하고 있지요..."일곱째 아가씨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기억하고 있다면, 제가 독산을 얻을 수 있게 잘 도우십시오. 독산을 개발할 수 있다면 앞으로 15년간의 수익은 전부 제 것이 될 겁니다. 그리고 15년 뒤에는 이익을 반으로 나누겠습니다. 절대 3할만 받을 수는 없습니다."탕양은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하지만 폐하께 이미 3할이라고 말씀드렸는 걸요.""그건 대인의 일이지요. 폐하를 오랫동안 모셔 왔으니, 대인의 공로를 인정하고 배려해 주실 것입니다. 이건 대인께서 누구의 이익을 우선시할지에 달린 것 아닙니까?"그러자 탕양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아가씨, 3할이라도 충분히 좋은 제안이지 않습니까? 그저 길만 새로 만들면 되고, 심지어는 조정에서 나서서 도와줄 것이니, 초반 투자 비용도 그렇게 많이 들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장사를 시작하면, 놀러 오는 자들에게 먹거리와 즐길 거리로 돈을 적잖이 벌 수 있습니다.""반으로 나누는 것까지만 양보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익을 중시하는 상인인 것을 잘 알지 않습니까."탕양은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예. 폐하께 돌아가 말씀은 드리겠지만… 무조건 그 조건을 따내겠다고 장담할 순 없습니다.""못 따내도 그만입니다."일곱째 아가씨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앞으로 제가 독산에 몇 번이나 올 수 있겠습니까? 어차피 조정에서 독산을 얻는다고 해도, 굳이 그렇게 많은 돈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탕양이 웃으며 답했다."이곳에서 지내면서 머물어도 되지 않습니까? 늘
일곱째 아가씨는 산 입구에서 지옥의 불꽃을 보자마자 순간 홀린 듯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꿈속에서 본 그 꽃이 눈앞에 펼쳐지니,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할 수 없는 것 같았다.탕양이 손을 뻗어 꽃을 따려 하자, 일곱째 아가씨가 급히 소리쳤다."지금 뭐 하는 것입니까? 당장 멈추십시오!"하지만 탕양은 이미 지옥의 불꽃을 손에 쥔 채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이것이 바로 해독제입니다."그는 손바닥에서 꽃을 비벼 즙을 내고는 일곱째 아가씨의 손을 잡아 즙을 그녀의 손등에 묻혔다. 즙은 선혈처럼 선명한 붉은빛을 띠고 있어, 일곱째 아가씨의 손등에 피가 묻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자 그녀가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며 물었다."정말입니까? 이렇게 신기하단 말입니까…?"그제야 그녀는 과거 산속에서 넘어졌을 때, 얼굴이 지옥의 불꽃에 닿아 꽃 즙이 묻고 나니, 정신이 돌아왔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녀는 그때 자신의 강한 의지로 깨어난 것인줄 알고 있었다."이걸 어떻게 알게 되신 겁니까?"일곱째 아가씨가 호기심 어린 눈길로 묻자, 탕양은 숨기지 않고 답했다."안풍친왕이 말해준 것입니다. 예전에 독산에 와서 방 장군의 유해를 찾을 때 산을 드나든 적이 있었는데, 이 비밀을 알고 있었기에 독산을 드나드는 것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 합니다. 지금 손등에 지옥의 불꽃 즙을 바른 이상, 산에 들어가도 환각에 휘말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독산의 절경을 마음껏 감상하실 수 있다는 말입니다!""그렇습니까? 독산의 비밀을 푸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고 여겼는데, 이렇게 쉽게 지옥의 불꽃으로 독성을 없앨 수 있었다니요…!"일곱째 아가씨가 중얼거리며 탄식하자, 탕양이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예. 겉보기엔 어려운 일도, 걷기 힘든 길도, 내리기 힘든 결정도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의외로 쉽게 해결할 수 있답니다.""어찌 말 속에 다른 뜻이 있는 것 같습니다?"일곱째 아가씨가 담담한 눈빛으로 그를 힐끗 바라봤다.그러자 탕양이 당황한듯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독산은 약도성에서 ‘귀역’이라고도 불린다.약도성 백성들은 거의 독산에 들어가지 않는다. 해마다 보물을 찾아 벼락부자가 되길 꿈꾸며 산으로 들어서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무사히 나오는 사람은 극소수였기 때문이다.심지어 살아서 나온 사람 중에서도 정신이 나가거나 미쳐버린 자들이 적지 않다.그래서 조정 신하가 독산에 들어가겠다는 소식은 백성들의 큰 주목을 받았고, 심지어 일부는 관저로 직접 찾아와 독산이 위험하다고 경고하며 요괴와 귀신이 들끓으니 절대 들어가지 말라며 충고까지 했다.그러자 탕양은 그들에게 독산에 요괴나 귀신이 있는 곳이 아닌, 신령과 신선들이 지내는 신성한 곳이라 말했다. 그동안 산에 들어갔던 백성들이 그만 욕심에 사로잡혀 신령을 거슬렀기에 독산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고, 경외심을 품고 신앙심을 가지고 들어가면 무사히 나올 수 있다며 설명까지 덧붙였다. 그리고 이 말은 당대 국사가 직접 언급한 것이라며, 이를 검증하기 위해 자신이 파견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탕양 또한 이 말을 하면서도 내심 불안했다. 사실은 이 이야기 모두 황제가 부유한 이들과 이웃 나라의 신도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근거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이다.하지만 독산의 풍경은 북당에서의 유일무이한 절경이었기에 탕양은 결국 독산의 모습을 드러내고 개방하자는 제안에 동의했던 것이다. 탕양의 말을 믿는 사람은 그저 소수에 불과했고, 믿지 않는 사람, 의심하거나 반신반의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저 상황을 지켜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산에 들어가기 전, 탕양이 일곱째 아가씨에게 물었다.“정말 나와 함께 들어갈 셈입니까?”일곱째 아가씨는 젊은 시절 한 번 독산에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멀리 가기도 전, 산속에서 만난 지옥의 불꽃에 매료되었다. 그렇게 꽃밭에서 넘어진 후, 정신을 차리자마자 황급히 산을 빠져나왔던 것이다.하지만 산을 떠난 후에도 그 붉은 색의 꽃은 그녀의 마음속에 잊히지 않았고, 마치 주문에 걸린 듯 계속 머릿속에 떠올랐다.다시 독산에 오자, 과거의
“그렇다면 아버지 말씀을 잘 듣거라. 네 양아버지께서는 아바마마처럼 늘 칭찬하고 좋은 말만 해주시지 않느냐? 집안에서 누군가는 엄격하고 누군가는 따뜻한 법이다. 애정 어린 따스함을 즐겨도 되지만, 엄격한 가르침 또한 잘 따라야 한다.”하지만 냉명여는 아직 어려 이해하지 못한 듯 고개를 대충 끄덕이며 말했다.“열심히 무술을 연마하여, 나중에 꼭 누나를 도와드리러 오겠습니다.”택란이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좋다. 그럼, 너를 기다리마!”냉명여는 뜨거워진 자신의 얼굴이 부끄러워져 고개를 돌리고 싶었지만, 그녀가 머리를 쓰다듬는 것이 못내 편안하게 느껴졌다.다른 한편, 탕 대인과 일곱째 아가씨도 약도성에 도착해, 약도성의 관저는 순식간에 북적이기 시작했다.호명은 이제 조정의 명을 받고 약도성의 관리로 임명되었는데, 조정에서 약도성을 시찰하러 온 사람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약도성에서 장사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기에 의부인 탕양과 일곱째 아가씨를 극진히 모셨다.일곱째 아가씨는 재력이 뛰어나니, 그녀가 약도성에서 장사를 시작한다면, 도성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독산이요?”이때, 그녀가 갑자기 독산에 관심을 보이자, 호명이 멈칫했다.“독산은 굉장히 위험한 곳입니다. 이곳 백성들조차 들어가기를 꺼리지요. 안에 미혼진이 있어, 들어가면 나올 수 없다고 합니다.”탕 대인이 말했다.“그건 네가 걱정할 일이 아니다. 이틀 후, 우리는 독산에 따로 갈 계획이다. 그러니 그 전에 일곱째 아가씨를 잘 모시고, 도성 곳곳과 약도성을 보여주도록 하거라. 아가씨가 독산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50만 냥을 투자할 것이고, 그중 30만 냥은 약도성의 길을 만들고 발전을 위해 쓰이게 할 것이다.”그러자 호명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30만 냥이라니요! 정말 단비 같은 소식입니다! 지진으로 인해 많은 길이 끊기고, 집들이 무너졌습니다. 인근 주부에서 도움을 주고, 조정에서도 예산을 지원해 주었지만, 아직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만약
택란은 금나라 어린 황제의 의도를 들은 후 화들짝 놀랐다. 그는 택란이 금나라에서 죽었다고 생각해 시신을 찾을 수 없으니, 그녀의 가족에게 묘를 만들게 시켜 혼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전하러 왔던 것이었다.또한, 택란은 어린 황제가 정말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꽤 의외였다. 게다가 충직하게 그녀의 가족을 찾아다니며 길을 잃은 원혼이 되지 않도록 도와주려 했으니 말이다.“그가 실망하겠소. 이 도성에 다섯째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어도, 딸 이름이 택란인 자는 없을 테니.”그러자 주 아가씨가 웃으며 말했다.“하지만 정말 찾았지 뭡니까? 서자림 근처 마을에 다섯째라 불리는 자가 있었습니다. 마침 집안에 란이라는 딸아이가 6개월 전부터 종적을 감추었지요. 게다가 다섯째라는 사람은 지진으로 두 다리를 잃은 상태였고, 집안에 란이의 언니도 있어서 금나라 어린 황제가 사람을 보내 그들을 데려갔다고 합니다.”“정말 그런 우연이 있단 말이오?”택란이 놀라며 말했다.“예. 그 다섯째 사람도 딸이 죽은 줄 알고 슬피 울면서 상을 치렀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후에 딸과 함께 황제의 사람들을 따라갔습니다.”택란이 피식 웃었다. 정말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었다. 다만 그의 딸의 이름은 란이인데, 그녀는 금나라 어린 황제에게 자신의 이름이 택란이라고 했다.한 글자 차이로 생긴 오해였다. 어쨌든 금나라 어린 황제가 은혜를 갚기 위해 한 일이니,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었지만, 어린 황제가 이런 일까지 신경을 쓸 겨를이 있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설마 금나라에 무슨 변화가 생기기라도 한 걸까?해가 바뀌며 어린 황제도 이제 14살이 되었기에, 만약 조정 대신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권력을 되찾을 가능성도 있었다.그와의 짧은 인연을 생각하며, 택란은 그가 권력을 되찾기를 바랐다. 물론, 그가 권력을 잡으면 약도성에도 좋은 일일 것이기에, 만약 실현이 된다면, 택란은 금나라에 가서 두 나라 간 자원 채굴을 논의할 계획이었다.한편, 서일이 떠난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