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를 둘러싼 궁중 여인들삼일 목욕은 정오 즈음에 있는데 이 때가 태양이 중천에 떠서 하루 중 제일 기온이 높아 목욕 할 때 아가가 동상에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정오가 다가오자 태후, 명원제, 주황후, 현비, 귀비, 덕비, 호비가 모두 도착했다.태상황은 오지 않고 상선을 보냈는데 오늘 초왕부에 사람이 많으니 흥을 깨지 않으려고 오지 않았다.마치 궁중에서처럼 성대하니 솔직히 부럽고 질투가 날 지경이었다.초왕부에 들어서자마자 태후는 아가들이 보고싶어 한시도 지체하고 싶지 않았다.희상궁이 유모를 시켜 세 쌍둥이를 안고 와서 태후 앞에 두니 태후는 거의 모습이 똑같은 세 아가를 보고 기쁨으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정말 이보다 더 사랑할 수 없을 만큼 총애가 지극했다.태후가 안자 아가가 심지어 입을 벌리고 웃는데, 그 웃는 얼굴에 태후의 심장이 녹아 내렸다. 천지신명에 빌고 빌어 마침내 꿈에 그리던 증손자를 안았으니, 태후는 아가를 안고 조상의 영전 앞에 꿇어 앉아 조상님의 보우하심에 감사드리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어서 오너라, 와서 다들 좀 안아 봐!” 주황후는 별로 안고 싶지 않았다. 사실 속으로 기분이 나쁜 것이, 현비가 득의양양한 꼴이 보기 싫기 때문이다.그날 현비가 성지를 잘못 전한 일이 궁에 온통 알려졌지만 태후와 황제는 현비를 벌하지 않았는데 그래서 주황후 심기가 더욱 불편했다.하지만 막상 아가를 안으니 아가가 주황후를 보고 웃는데 마음에 가득하던 고뇌가 전부 사라지는 듯하며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와서, “어마마마, 이제 태어난 지 사흘밖에 안된 아가인데 어쩜 웃을 줄 알아요. 신기하죠 그죠?”“신기하다, 신기하고 말고, 부처님 오신 날 태어난 아이니 당연히 특별하고 말고.” 태후는 모든 행운과 복이 모두 세 아가들에게 가득 머물길 간절히 바랄 뿐더러 아이들에게 믿을 만한 뒷배경을 찾아주려고 끊임없이 애를 쓰며, “부처님 오신 날 태어난 아이들이니 보살들이 살펴 주실 게야.”귀비와 덕비도 안아보더니 귀비가 웃으며: “오랫동안 이렇
현비가 황귀비로?현비는 은근 열이 받아서 가서 경단을 안았는데, 세상에나 경단을 품에 안자 또 똑같이 울어서 안되겠다.현비가 견딜 수 없는 지경이 되어서 막내 찰떡이를 안아보려고 갔는데 찰떡이는 처음엔 안 울더니 현비가 안은 뒤에 젖을 토했는데 현비가 허둥지둥 닦자 찰떡이가 울기 시작했다.찰떡이는 원래 작아서 울음 소리는 크지 않지만 울기 시작하면 잘 토해서 현비가 안은지 얼마 되지도 않아 찰떡이 얼굴이 괴로워서 자주빛이 되었다. 태후가 화가 나서, “됐다, 넌 앉아라, 안을 필요 없어.”태후는 희상궁을 불러 찰떡이를 데리고 와서 자신에게 안겨 달라고 했다.현비는 수치와 모욕감으로 자리에 앉는데 눈물이 고였다.태후가 아이를 데리고 있는데 찰떡이를 깨끗이 닦은 뒤 무릎에 놓고 살살 흔들어주다가 포대기를 톡톡 두드려주며, “착하지, 우리 착한 아가야, 괜찮아 괜찮아, 왕할미가 안고 있어, 예뻐 하고 있어.”세 아가는 모두 울지 않았다.현비는 사람들에게 세게 따귀를 몇 대 맞은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리고 다들 자신을 멸시하고 비웃는 눈으로 쳐다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얘들은 현비의 친손자인데 다른 사람이 안으면 멀쩡한데 오직 현비만 안을 수가 없다.하필 귀비가 이때 웃으며: “그나저나 이상하네요. 다 안아도 상관없는데 유독 친할머니인 현비 마마가 안으면 안되는 게, 마마 손에 가시가 났나요 아님 왜 그러죠?”다들 현비의 얼굴을 응시하자 현비는 부끄럽고 화가 나서, “오늘은 좋은 날인데, 귀비 마마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게 부적절하다는 생각은 안 드시나요?”현비는 전에 귀비가 이렇게 짜증난 적이 없었는데 오늘 왜 사사건건 현비를 걸고 넘어지지?현비는 냉정하게 생각하고 조금 있다가 삼일 목욕이 끝난 뒤에도 귀비가 여전히 득의양양한지 봤다.현비는 태후전에 갔다가 황제가 오늘 조서를 가지고 왔다는 것을 알았는데, 분명 삼일 목욕 후 천하에 다섯째를 태자로 책봉하는 것을 선포할 것이 틀림없다.태자의 친모는 지위가 낮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예전
황태자 책봉귀비가 와서 자세히 보고 손으로 긁어도 보는데 발바닥을 긁어서 빨갛게 되었는데도 색이 없어지지 않자 태후가 불쾌해 하며, “어떻게 그릴 수가 있느냐? 어서 안아라, 아직 날이 춥구나.”희상궁이 유모에게 분부하며, “안고 준비하자, 시간이 거의 다 되었구나. 씻으셔야지.”씻는다는 얘기를 듣고 태후가 비로소: “어째서 사돈댁에서는 아직 오지 않았는가?”희상궁이 웃으며: “태후 마마, 왔습니다. 노마님과 정후부부 모두 와 있습니다. 정후는 밖에서 선포를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까?”“오, 그럼 어서 들어와서 아이를 보셔야지, 너희들은 가서 준비하거라.” 태후가 말했다.정후는 오늘 참으로 어깨를 쫙 폈다.출산을 마치고 도련님이란 것을 알고 바로 사람을 시켜 대례를 준비시키고 삼일 목욕 이 날이 오기를 기다렸다.지금 태후와 황제가 안에서 아이를 보고 정후는 문 앞에서 황제의 접견을 기다리는데 노마님과 황씨, 원경병이 원경릉을 보러 갔다.정후는 들어가서 착실하게 예를 취해 아주 예의가 바른 모습으로 보였다.태후가 정후를 추켜세우는 말을 아끼지 않으니 정후는 기뻐서 얼굴에 꽃이 활짝 피었으나 감히 표현하지 못한 것이 황제가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하지만 황제는 정후의 눈에 진노가 없고 이미 아미타불인 것을 봤다.삼일 목욕이 막 안에서 진행되고 있는데 실내엔 구리 대야 세 개에 절반정도 물이 담겨 있고, 구리 대야에 비친 물이 금빛으로 찬란한데 물 안에는 배꼽 집게가 놓여 있고, 대야 주변에 수건, 항아리 화로, 좁쌀, 작은 금괴와 은 등 길하고 복을 비는 물건들이 놓여있었다.삼일 목욕을 주관한 사람은 아가들을 받아 주신 산파이기도 한 강녕후 부인, 주패(朱佩) 고모님이다.하지만 셋이기 때문에 최대인이 소개한 산파와 희상궁이 같이 목욕을 시켰다.실내는 따듯하고 온화한 빛이 비치는 것이 여름 같아 옷을 벗긴 후 살짝 구리 대야에 내려놓는데, 원래 마르고 약한 세 아가가 지금은 옷을 벗고 서로 똑 닮은 강아지처럼 물에 들어가 손발을 꼼지락 거리
현비가 황귀비로?현비는 가슴이 쿵쾅거려서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입을 틀어 막고 태후의 발 앞에 꿇어앉아 있는데 목이 메어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소씨 집안에서 마침내 인물이 나왔고, 현비가 황후는 아니라도 언젠가는 태후가 될 것이다.현비도 잠시 꿇어 있다가 일어나 목여태감이 책봉조서를 꺼내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없었다. 황제는 그저 우문호를 바라 본 뒤 가볍게 어깨를 두드리더니: “폐하께서 궁으로 돌아가신다. 가마를 대령해라!” 오늘은 그저 절차만 밟을 뿐 군신이나 부자간의 대화는 다음에 다시 해야 할 것이다.현비는 명원제가 정말 가는 것을 보고 참지 못하고 불러서, “폐하, 잠시만!”명원제가 고개를 돌려 현비를 보고, 음산한 눈빛으로, “또 무슨 일이냐?”현비가 명원제의 이 눈빛을 보니 그날 따귀를 맞았던 생각이 나서 가슴이 철렁하며 목구멍까지 차 올랐던 얘기를 꿀꺽 삼키고 눈을 내리깔고: “신첩 태자비와 잠시 함께 있고 싶사오니 조금 늦게 궁으로 돌아가겠습니다.”명원제는 밝지 않은 얼굴로: “허락한다!”우문호와 다른 친왕은 태후, 황후 및 다른 마마들을 나가시는 것을 공손히 배웅하고, 손왕, 회왕, 제왕이 우문호를 둘러싸고 축하했다.안왕이 홰나무 아래 서 있는데 마침 홰나무 그늘에 가려서 입꼬리를 올리고 미소를 지으며, “다섯째야, 축하한다!”우문호가 안왕을 보고 얼음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넷째 형 고맙습니다.”안왕이 고요하게: “이런 아무래도 자신의 능력으로 얻은 것이라고 할 수 없으니 앞으로 더 노력해야겠어, 안 그러면 황태자의 자리를 뺏길 지도 모를 일 아니냐.”이런 도발적인 말에도 우문호는 조금도 맞받아치려 하지 않고 그저 담담하게: “넷째 형 말이 맞습니다.”안왕이 눈을 내리깔았지만 곁눈질하더니 홀연히 스쳐 지나갔다.안왕은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게 분부해 안왕비를 오라고 하더니 안왕부로 돌아가겠다며 작별했다.안왕을 보내고 현비는 바로 우문호를 작은 서재방으로 끌어갔다.현비의 표정은 최고로 엄숙하고 준엄해서, “오
엄마가 하는 짓이라니현비는 목소리가 이상하게 꺾이며, “너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어?”우문호가 현비를 보고, “어마마마, 원 선생이 해산하던 그날, 어마마마께서 뭘 하셨는지 아십니까?”현비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려서, “어미가 한 모든 행동은 다 널 위해서 였다. 원경릉은 널 놀며 즐기게 망가뜨릴 뿐이야, 네가 무능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일생을 보내게 만들 뿐이라고.”“제 왕비를 죽이려고 시도한 것이 저를 위해서란 말입니까?” 우문호가 말을 해놓고도 마음이 섬뜩해서, “별 일없이 일생을 보내는 것이 뭐가 나쁩니까? 부모 된 도리란 자식이 일생을 평안하고 즐겁게 보내기를 바라는 것이 당연하지 않나요? 제가 제왕의 집안에 태어나 만약 별 일없이 일생을 보낼 수 있다면 이 또한 큰 다행이 아니고 무엇입니까?”현비는 얼이 빠져서 우문호를 보는데 오직 분노가 가슴속에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실망스럽고 가슴 아파서,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소씨 집안은 이미 몰락했지만 네 외할아버지와 네 외삼촌이 너를 지원하는데 조금도 아끼지 않았던 것은 언젠가 네가 황위에 오를 수……”우문호가 냉소를 지으며, “언젠가 제가 황위에 오르면 소씨 집안이 제후와 공작 벼슬에 봉해 질 것이다 아닌가요? 그러면 그들이 한 행동은 전부 저를 위한 겁니까? 그들 자신을 위한 겁니까? 또 소씨 집안이 몰락한 것이 저와 무슨 상관입니까? 만약 제가 황제가 돼서 소씨 집안의 위엄을 다시금 진작시킬 수 있다면, 지금 황조모는 폐하의 어머니고, 소씨 집안 사람인데 아바마마께서 줄곧 소씨 집안을 살펴 주셨 건만 어째서 소씨 집안이 다시 부흥하는 모습을 못 볼까요? 문제는 처음부터 누가 황제가 되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소씨 집안에 기용할 만한 인재가 없다는 데 있습니다!”현비는 크게 충격을 받고, “너…… 네가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 소씨 집안에 어째서 인재가 없어? 네 외조부, 네 외삼촌 전부 조정에서 직책을 맡으셨는데 그분들이 왜 쓸모가 없어?”“직책을 맡으셨지
원경릉의 생각은 잘못됐다. 노부인이 급히 떠나려고 하는 이유는 휴식시간을 황씨에게 방해받고 싶지 않고, 또 괜한 말을 하기도 싫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가 떠난 이유는 무엇보다도 화가 나는 것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원경병은 원경릉 옆에 남아 조모가 화가 나서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모친께서는 이번에 할머니께 크게 혼나시겠습니다.” 원경병이 말했다.원경릉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근심 어린 표정으로 원경병을 보았다.“가만…… 넌 표정이 왜 그래? 어디 불편해?”원경병은 그녀를 보며 입을 삐죽거리더니 이내 눈시울을 붉혔다.“방금 만아가 저한테 누이가 배를 갈라서 아이를 낳았다고 했습니다.”그 말을 들은 원경릉은 원경병이 자기도 아이를 낳을 때 배를 가르게 될까 무서워하는 줄 알았다.“너는 나하고 달라. 난 이번에 세 아이를 임신했고, 몸도 약했잖아 그래서 배를 가를 수밖에 없었어 하지만 넌 아니야. 걱정 마. 네가 임신하면 내가 네 옆에 꼭 붙어있을 테니까.”원경병은 코를 훌쩍이며 그녀를 보았다. “제 걱정을 하는 게 아니라, 누이가 어떻게 될까 걱정돼서 우는 겁니다!”그 말을 들은 원경릉은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원경병은 입만 사납지 마음은 누구보다 여리구나.’원경릉은 동생의 손을 잡고 조용히 말했다.“난 괜찮아. 나는 말이야, 다른 사람을 아끼는 만큼 나 자신도 아껴주거든.”원경릉은 마음속에 아끼는 사람이 있기에 자신의 생명을 더 아끼게 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자신이 잘못되면 자신을 아끼는 사람이 슬퍼할 것이기 때문이다. 원경릉은 내가 존재해야 비로소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다. 원경병은 원경릉이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갸우뚱했다. *며칠 후, 제왕절개한 곳의 상처는 많이 나았지만 아직 산달이어서 밖에 나갈 수 없었다. 원경릉이 할 수 있는 것은 왕부 내에서 몇 발짝 걸어 다니는 것뿐이었다. 강녕후 부인은 원경릉이 괜찮은 것을 확인한 후 마장(馬場)으로 돌아갔다. 원경릉은 떠나는 강녕
“저 때문에 내려오신 겁니까?” 원경릉이 감동받은 표정으로 정화군주를 보았다. 정화군주는 산에서 내려오기까지 큰 결심이 필요했을 것이다. “자식을 낳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큰 행사잖아요.직접 축하해드리고 싶었습니다.”정화군주가 말했다.만아가 차를 내왔고, 정화군주는 미소를 지으며 만아에게 고맙다는 표시를 했다.만아는 그녀의 따듯한 미소에 부끄러운 듯 “뜨거우니 조심히 드십시오……”라고 말했다.원경릉은 정화군주가 사람을 대하는 데에 있어서 신분의 귀천을 나누지 않는, 황실에서는 보기 드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몸은 좀 어떱니까?” 원경릉이 정화군주에게 물었다.“괜찮습니다.”“잠은 잘 잡니까?”정화군주는 말을 잠시 멈추더니 차를 한 모금 마셨다.“요즘 꿈을 자주 꿉니다. 과거에 있었던 일들이…… 꿈에 나옵니다.”“시간이 약입니다. 나중엔 아무렇지 않을 겁니다.” 원경릉이 그녀를 위로했다.“예, 그렇겠죠.” 그녀의 눈빛에서 결의가 느껴졌다. 그녀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듣자 하니 초왕비께 무우산이 있다고 하던데 저한테 좀 줄 수 있나요?”라고 물었다. “무우산? 그거로 뭐 하시게요?” 원경릉이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배를 응시했다. 정화군주는 펑퍼짐한 옷을 입고 있어서 배가 잘 보이지 않았다. “오해 마세요. 제가 쓰려는 게 아니니까요.” 정화군주가 웃었다. 원경릉은 정화군주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녀가 있는 명월암에는 비구니들 밖에 없는데, 무우산을 쓸 일이 뭐가 있겠는가?”“고지가 아이를 낳을 것 같습니다.” 정화군주가 말했다.“고지?” 원경릉은 그녀의 말을 듣고 뒤로 넘어갈 뻔했다.“예, 아마 아기가 생각보다 일찍 나올 것 같습니다.” 정화군주가 말했다.“그럼 군주께서 고지랑 계속 같이 있었다고요? 지금 고지는 어디에 있습니까? 고지는 위험인물이라고요!”정화군주는 원경릉을 보고 낮은 목소리로 “괜찮습니다. 그녀는 나를 다치게 할 수 없거든요.”라고 말했다.“왜 그렇게 확신하십니까?”“그게…… 고지는 두 눈이 멀었
“당시엔 힘도 나지 않고 절망적이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그렇게 절망스러워할 필요가 없더군요.”정화군주의 창백한 얼굴엔 무미건조한 웃음이 걸려있었다.“그래요. 다 지나갈 겁니다.” 원경릉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난처한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 “내 발자국 소리를 듣고 고지가 자신을 구해달라고 했어요. 그때 내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초왕비가 알까요?”“무슨 생각이 드셨습니까?”“고지는 내 발자국 소리만 듣고 어떻게 나라는 것을 알았을까? 정말 웃기더군요. 그때 고지의 표정이 얼마나 가련했던지…… 구해주기로 약속하고 그녀를 끌고 산꼭대기까지 올라갔어요. 살려달라니까 살려서 꼭대기로 데리고 간 것 아닙니까? 내가 한 번 구해준 목숨이니 그다음엔 내 마음대로 해도 되니까요.”“데리고 올라간 이유는……”“혼자 죽기는 싫었거든요.”“고지는 군주의 의도를 몰랐죠? 고지는 자신이 쫓기고 있으니 도와달라고 한 거 아닙니까?”“처음엔 저도 고지가 모르는 줄 알았어요. 근데 산꼭대기에 이르렀을 때, 고지가 무릎을 꿇고 전에 자신의 목숨을 구해줘서 고맙다면, 지금 죽으려고 한다면 자신도 따르겠다고 하더라고요.”“그게 진심일까요?”“진심일 리가 있겠어요? 고지의 말에 대꾸도 안 하고 산꼭대기에 둘이 앉아있었습니다. 그녀에게서는 사향냄새가 짙게 풍겼어요. 그래서 제가 이 냄새는 어디에 쓰이는 것이냐고 물으니 아이를 지울 때 사향냄새를 맡으면 애가 떨어진다고 하더라고요. 명월암 약방에서 훔쳤다며……”“아이를 지우는 게 그녀의 목숨을 더 위험하게 할 텐데…… 고지는 무슨 생각일까요?”원경릉이 의아해했다.태후가 아무리 고지를 싫어한다고 해도, 그녀의 뱃속에 황실에 아이가 있기에 아이만 있다면 목숨은 부지할 수 있을 것이다.“저도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왜 아이를 지우려고 하냐고 물었죠. 그랬더니 안왕이 자객을 보내서 그녀를 죽이려고 한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남강으로 피신해야 하는데, 뱃속에 아이가 있으니 도망갈 수 없으니 아이를 떼고 가려고 한
목장에서는 전보다 훨씬 뛰어난 전투마들을 사육했기에, 우문호는 마치 보물을 자랑하고 싶은 어린아이처럼 당장이라도 정정과 함께 보러 가고 싶어 했다.그러자 근영군주가 웃으며 말했다.“폐하께서 아직도 소년 같은 순수함을 지니시고 있다니, 참 보기 드물고 귀한 일이군요.”하지만 원경릉의 귀에는 이 말이 남편이 어린아이 같다는 말로만 들렸다.그녀는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하하하. 사내들이 가끔 저렇게 유치할 때가 있잖습니까.”근영군주도 깊이 공감하며 말했다.“예. 평소엔 유치하다가도, 필요할 때는 놀라운 배짱과 결단력을 보여주지요. 집안을 지탱하기도 하고, 나라를 떠받치기도 하고. 안 그렇습니까?”원경릉도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맞습니다.”남자들이 말을 타러 나가자, 원경릉과 근영군주는 궁전 안에서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대두가 몹시 심심해하자 원경릉은 친왕비들에게 아이를 궁으로 데려와 아이들끼리 놀게 했다.대주의 손님을 정성껏 대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기에 친왕비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궁에 들어왔다.사실 대두와 비슷한 나이의 아이는 많지 않았다. 미색의 두 아이와, 원용의의 아이 모두 대두보다 어렸지만, 놀 벗이 없는 상황에 나이가 어린 것은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대두는 외동아들로 자라 성격이 다소 거칠었다. 하지만 미색의 딸인 란이 역시 성격이 강하고 고집스러웠다. 어머니인 미색을 닮아 태생이 강한 성격을 타고난 것이었다.게다가 그녀에게 무술을 배워 한창 센 척을 할 시기라 대두와 몇 마디 말다툼 끝에 결국 몸싸움으로 번져 버렸다.란이가 대두를 때리자, 대두는 얼굴이 퉁퉁 부어오를 정도로 맞으면서도 전혀 반격하지 않고 그저 참고만 있었다. 끝까지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란이는 평소 늑대파에서 무술 대련을 했기에 상대가 반격하지 않고 그저 제자리에서 맞고만 있는 멍청한 모습을 경험한 적이 없었기에, 부어오른 대두의 뺨을 발견하곤 깜짝 놀라며 물었다.“어찌... 반격하지 않는 것입니까?”대두는 화난 표정으로 대답했다.“어찌
생각해 보면 이렇게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의 혼사를 정하는 것이 얼마나 황당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이가 남녀인지도 모르면서 성급한 부모들이 충동적으로 혼사를 결정해 버리다니 말이다. “대두가 아직 이리도 어린데, 벌써 혼사를 이야기하다니요, 우리 만두는 아직 애 입니다.”우문호는 괜히 기분이 답답해졌다.현대로 다녀온 뒤, 사람들이 늦은 결혼과 출산을 선호하는 것을 본 그는 생각이 바뀌었다. 열몇 살에 혼사를 하는 것은 성장의 억압이나 다름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혼사 이야기를 한다고 당장 하는 건 아니오. 그저 약속만 하고, 몇 년 후에 하겠다는 거네.”“어찌 이리도 태연한 것이오?”우문호가 원경릉의 여유로운 표정을 보며 그녀가 그들이 빚을 받으러 온 걸 모르는 건가 싶었다.“난 걱정 없소. 딸을 보내고 싶지 않으면 당신처럼 쓸데없는 부담감 없이 그냥 바로 거절할 것이오. 형제간의 정이 거절로 인해 상할까 봐 고민한다니, 억지로 혼사를 성사하는 것이 더 정을 상하게 할 것이오.”그러자 우문호가 말했다.“이론적으로는 맞는 말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 마음이 편치가 않소.”후궁에서의 우문호는 조정에서의 단호하고 강력한 모습과는 완전히 딴 사람이었다. 조정에 나서기만 하면 단호하고 과감하며, 마치 번개 같은 결단력을 보여주는 반면, 후궁에서의 그는 망설임도 많고 잔소리도 많은 사람이었다. 원경릉이 다른 왕비들과 대화할 때, 그들도 가끔씩 이 얘기를 꺼내곤 했었다. 다들 다섯째의 평소 잔소리가 예전보다 훨씬 많아졌다며 놀라했다. 하지만 다른 친왕들의 의견은 달랐다. 그들은 그가 예전보다 훨씬 결단력이 있어졌다고 말했다.이런 얘기가 나올 때마다 이리 나리는 한숨을 쉬며, 결국 결단력 넘치는 황제도 결국 자식들 문제에서는 고민에 빠지는구나 싶었다.8월 14일, 정정 대장군 가족이 북당의 수도에 도착하자마자 초왕부에 머물렀다.그들은 초왕부에 머문 직후 탕양의 안내로 우문호를 만나기 위해 궁으로 들어갔다.아무리 큰 걱정도 오래된 벗 앞에서
예전에 원가에서 온 가문이 강북부로 이주한 적이 있었다.북쪽은 바람과 모래가 거셌지만 원가의 사람들에게는 전혀 낯설지 않았고, 오히려 고향과 비슷한 정감을 느끼게 했다.이리 나리는 원가의 사업을 줄이도록 도우며, 관리하기 쉬운 몇몇 가게만 남겼다.탕양은 일곱째 아가씨에게 장사를 내려놓아도 괜찮은지 물은 적 있었는데, 그때 일곱째 아가씨가 말했었다.“그런 말 마시오. 내 능력을 충분히 증명했으니 이제 만족스럽소. 열심히 해서 큰 성과를 얻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오. 평생 바삐 지낼 수도 없잖소. 그렇게 돈을 많이 벌어서 뭐 하겠소? 다 잘 살기 위해 번 것이오. 가업을 나눠 받은 돈만 해도 평생 다 못 쓸 만큼 많소. 그리고 가게들도 계속 돈을 벌 텐데 뭐가 아쉽겠소?”탕양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손에 익은 일이라, 혹시라도 아쉬워할까봐 걱정했소. 사실 나도 당신이 이렇게 고생하는 것이 싫었소. 당신만 괜찮다면 다행이오.”일곱째 아가씨는 미소를 지었고, 그의 말에 모두가 기뻐했다.“한가해지는 것도 괜찮소. 1년에 두세 달은 약도성에 가서 지내면 얼마나 여유롭겠소.”하지만 탕양이 눈살을 찌푸렸다. 1년에 두세 달이면, 왕복하는 시간까지 더해 최소 반년은 걸릴 것이고, 그 말은 반년 동안이나 그의 곁에 없다는 뜻이었다.게다가 그도 경성을 몇 달씩 떠나는 건 불가능했다. 지금은 황제 곁을 하루라도 떠나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하지만 그는 그녀가 행복하면 그걸로 충분했다. 물론 그는 늘 함께하고 싶었지만, 오래된 부부였기에 항상 붙어있을 필요는 없었다.북당은 점점 부유해지고 있었다. 원가가 일부 사업을 매각하면서 그 변화를 실감할 수 있었다.가게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싸웠고, 좋은 위치에 있는 가게들은 더더욱 귀한 존재가 되었다.원래 원가는 모든 가게를 이리 나리에게 넘기려 했지만, 이리 나리는 거절했다.그리고 안풍친왕이 먼저 나서서 이리 나리가 이미 너무 많은 가게를 보유하고 있고, 특히 경성에서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아 독점 우
원경릉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일곱째요? 일곱째는 분명 원용의에게 말할 것이고, 원용의는 또 사식이에게 얘기할 것이고, 사식이도 분명 서일에게 전할 것일 텐데요. 만약 서일이 알게 되면, 이제 북당 전체가 다 알게 될 것이오.”우문호는 순간 당황해하며 말했다.“그건 내가 생각지도 못했네.”원경릉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아마 지금쯤 황실 친왕들 사이에서 이미 탕양의 이야기가 뒷말로 오가고 있을 것이었다. 겨우 부인을 얻었는데, 밤에 함께 자지 못한다니 참 안타까운 일이라 생각할 것이다.우문호는 탕 대인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다들 뒤에서 탕양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여인들이 수군거리니, 남자들은 그를 도우려 했다.물론 부부 사이의 일에 직접적으로 간섭할 수는 없었기에, 대신 탕양을 술자리로 초대해 술로 고민을 푸는 방법을 제안했다.그렇게 며칠째 술을 마시던 탕양은 자신의 비밀이 모두에게 알려졌다는 사실을 깨달아 한숨을 쉬며 말했다.“제 탓입니다. 폐하가 비밀을 지키지 못한다는 걸 깜빡했습니다.”제왕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너무 신경 쓰지 말거라. 이런 일은 억지로 되는 게 아니다. 여인은 때로 달래줄 필요가 있는 법이다.”그러자 탕양이 어찌할 바를 몰라하며 말했다.“제가 폐하께 이 이야기를 했을 땐, 혼례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습니다.”“알고 있다. 서두르지는 말거라.”모두가 이해한다는 눈빛으로 탕양을 바라보았지만, 탕양은 더 이상 해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그들은 이미 혼인했지만, 오랜 부부 생활을 한 터라, 남녀 간의 정이 때로는 하루아침에 급격히 발전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탕 대인은 돌아가자마자 일곱째 아가씨에게 이 일을 전했다.그러자 일곱째 아가씨가 웃으며 한숨을 내쉬었다.“정말이지, 어찌 허구한 날 남의 부부 일에만 관심을 가지니, 할 일이 없나 보오.”“신경 쓰지 마시오. 우리가 잘 살면 그만이니.”탕양은 일곱째 아가씨를 안으며 자신감에 찬 표정을 지었다.
원경릉은 궁으로 돌아와 이 일을 다섯째에게 이야기했다. 그러자 다섯째가 말했다.“사실 한 번 돌아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소? 그저 경성만 한 바퀴 둘러보면 되지 않소.”“아이들을 데려다줄 때 휘종제 어르신께서 슬퍼하셨소. 이번 생에 고향으로 못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돌멩이 하나를 건네주니, 그걸 안고 울었소.”“정말 안타깝소!”다섯째는 증조할아버지 생각에 마음 아파했지만, 이내 말을 이어 나갔다.“하지만 큰할아버지께서 그를 데려오지 않는 이유도 있을 것이오. 휘종제 어르신을 잘 아는 것도 아니지 않소? 몇 번 만나보니, 활달하고 산만한 성격에 무슨 사고를 일곱째인지 모를 것 같은 느낌이 들었소.”“맞소.”원경릉도 깊이 공감했다. 특히 그가 전화로 끈질기게 설득할 때는 정말 무서울 정도였다.“다른 일은 없었소? 부모님 건강은 어땠소? 처남은 여자 친구가 생겼소? 만두는 공부를 잘하고 있소?”다섯째가 끊임없이 질문했다. “괜찮소. 부모님 건강도 괜찮긴 하지만, 아버지께서 고혈압이 생겨서 약을 오래 드셔야 하오. 오빠는 여자 친구가 없네. 주진과 아직도 서로 솔직히 이야기하지 않은 상황이오. 만두는 걱정 안 해도 되네. 내년에 돌아올 것이니.”“다행이오!”다섯째가 기뻐해 하며 말했다. 그는 늘 만두의 능력을 눈여겨보았기에, 그가 돌아오면 나라의 일들을 조금이라도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비록 많은 부담을 짊어지진 못하지만 그래도 괜히 기대가 되었다.“추 할머니 병은 어떠하신가?”다섯째가 또 물었다.“아직은 괜찮소. 아주 좋아졌네. 약에 내성이 생기지만 않으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오.”원경릉이 말하자 다섯째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분들이 늘 건강해지시길 바랄 뿐이오.”평범한 사람들조차도 적성루 사람들에게 감동하기 쉬운데, 하물며 북당의 황제인 자신은 오죽하겠는가.“계란은 소식 왔소?”원경릉이 물었다.“왔네. 보시오!”다섯째는 소매 안에서 구겨진 편지를 꺼냈는데, 비둘기를 통해 받은 그 편지에는 몇 줄의 짧은
“별다른 뜻은 없소. 오늘 밤에 유난히 감성적이라 그저 한마디 해본 거네. 사실 너무 감동해서 그러네. 비록 항상 탕 대인에게 빨리 혼인하라고 재촉하긴 했지만, 그가 일곱째 아가씨와 혼인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소.”“괜찮소!”원경릉은 그의 품에 안겨 그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말했다.“어쨌든 탕양은 우리와 함께 걸어온 사람이오. 그러니 그가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하게 된 건 우리 모두에게 기쁜 일이오.”우문호는 벌써 술에 취한듯 머리가 약간 어지러웠다. 술에 취하면 항상 눈앞의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곤 했는데, 익숙한 천장, 익숙한 사람, 익숙한 탁자와 의자. 취기가 돌며 모든 것들이 꿈처럼 느껴졌다.그는 마치 다시 초왕 우문호로 돌아간 듯했고, 갓 원경릉과 마음이 통했던 때로 돌아간 기분이었다.그 당시 외부 정세는 불안정했고, 태자 자리를 둘러싼 다툼이 막 시작되었던 때였다. 형제끼리 반목하며, 치열하게 싸웠던 시절을 돌아보면 잃지 않고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되었다.우문호가 원경릉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원 선생, 몇 년간 아주 긴 꿈을 꾼 것 같지만, 되돌아보니 정말 다행이라고 느껴지네. 사실 모든 행운과 행복은 원 선생의 잘못된 연구에서 비롯된 것이오. 원 선생이 오지 않았다면 내 인생이 어땠었을까 싶네.”그러자 원경릉이 말했다.“누군가가 이 세상에 몇 시간과 공간이 존재한다고 했소.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 다른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 수도 있네. 아마도 어떤 공간에서는 내가 없는 대신 다른 사람이 당신과 함께 있을 수도 있소.”우문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그 세상 속의 나는 정말 불쌍할 것이오.”“그건 모르오. 어쨌든 그곳의 당신은 나를 모르고, 우리가 지금 얼마나 행복한지도 모를 것이오. 각자가 행복을 정의하는 방식은 다르오. 어떤 사람들은 매 끼니 고기가 있는 게 최대의 행복일 수도 있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봉급이 오르길 바랄 것이오. 또 가족이 화목하고 건강하기를 바라기도 하고
우문호는 혼인을 하사하는 조서를 내렸다. 이는 탕양의 혼사에 화룡점정을 더하는 일이었다.온 경성 사람들이 탕양이 황제를 모시는 신하인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의 혼사에 주목했다.탕양은 왕부에서부터 황제를 지지해 온 충신이었으며, 군신 간의 정은 형제의 관계에 못지않았다.거기에 황제가 직접 혼인을 하사했으니, 이는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었다. 그래서 다들 두터운 예물을 준비해 축하하러 왔다.혼례는 초왕부에서 열렸다. 비록 초왕부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이번 경사에 많은 지원이 몰렸다. 여러 왕부에서 사람을 보내왔고, 미색은 돈에 힘까지 보태며 혼사 지출의 3할이나 부담했다.희상궁도 돌아와 모든 일을 총괄했다. 희상궁은 비록 나이가 많았지만, 여전히 일 처리 능력이 뛰어났다. 그녀는 여러 왕부에서 온 사람들을 지휘하며 완벽하게 일을 조율했다.혼례 당일, 황제와 황후도 참석했다.신부가 도착하여, 혼례를 올릴 때 우문호와 원경릉은 상석에 앉아 신랑 신부의 절을 받고는, 그 다음으로 기상궁도 절을 받았다.우문호가 원경릉의 손을 잡으며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탕 대인이 드디어 철이 들었고, 가정을 이루었으니 정말 기쁘네.”원경릉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제 마음이 풀립니까? 그러니 앞으로는 더 이상 잔소리하지 마시지요.”“잔소리는 계속할 것이다. 이젠 아이를 낳으라고 해야지.”우문호는 걱정이 끝이 없다는 듯 말하자, 원경릉이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아이 낳는 일은 하늘에 맡겨야 하네.”“그래도 몇 가지 비법을 전수해 줄 수는 있소.”우문호가 자부심 넘치는 표정으로 말했다.“좀 더 크게 말해보시오. 다른 사람들이 못 들을까 봐 걱정이오?”원경릉이 그를 흘겨보았다.주변 사람들이 모두 그들을 바라보며 부러움 섞인 표정을 지었다. 많은 사람이 첩을 두고도 황제만큼 자식을 많이 두지는 못했지만, 황제는 복도 많고 자식도 많은 사람이었다. 저녁 연회에서 우문호는 과음했지만 원경릉은 그를 막지 않았다. 이런 노부의 감격은 술로 달래야 한
탕양이 뜨거운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거짓말이라면 제 목숨을 앗아가도 됩니다.”일곱째 아가씨가 그의 시선을 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돌고 돌아 결국 대인과 함께하게 되었네요. 하지만 미리 말하자면 혼사가 너무 급작스럽게 성사되어 저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시집간 후에도 그저 명목상 부부로만 살 뿐, 당분간은 벗으로 지낼 것입니다. 이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혼사를 승낙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없던 걸로 하시지요.”그러자 탕양이 거의 생각할 겨를도 없이 대답했다.“받아들이겠습니다. 무엇이든 다 좋습니다. 혼사만 승낙한다면 그저 명분이라도 상관없습니다!”이로써 드디어 그의 수년간의 바람이 이루어졌다.일곱째 아가씨가 담담히 말했다.“그렇다면 어디서 지낼지 생각해 보시지요. 하지만 대인 방에는 다른 사람이 살고 있으니, 그곳에 지낼 수는 없습니다.”탕양이 다급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십시오. 황후 마마와 상의를 해보았습니다. 지금 초왕부에 아무도 살지 않으니, 우선 그곳에서 지내시지요. 전에 그 방은 저도 쓰지 않고, 바로 서일에게 줬습니다.”그러자 일곱째 아가씨가 물었다.“저택을 따로 살 생각은 안 해보셨습니까?”“전에 혼자였을 땐 그런 생각까지 하지 못 했습니다. 초왕부도 누군가 관리해야 하는 터라... 하지만 아가씨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돈을 모아 작은 집이라도 살 수 있습니다.”일곱째 아가씨는 초왕부를 둘러보았는데, 그리 호화롭지는 않았지만, 분위기가 몹시 편안했다. 하지만 황제의 옛 저택이라, 평생 이곳에서 지낼 수는 없을 것이다.“우선은 이곳에서 지내고, 나중에 땅을 사서 직접 집을 지으십시다.”땅을 사고 집을 짓는다는 것은 돈 많은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탕양은 순간 자기가 보잘 것 없게 느껴졌다.그가 쭈뼛거리며 말했다.“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일은… 꼭 마음속에 깊이 새겨 두겠습니다.”일곱째 아가씨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땅도 제가 사고, 집도 제가 지을 것입니다. 나중에 대인이 잘못이라
노태군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안 된다. 혼인 전에는 신랑 신부가 만날 수 없어. 이건 풍습이고 규칙이니, 어길 수 없다.”그러자 일곱째 아가씨가 웃음을 터뜨렸다.“하하하. 이 혼사에 정해진 규칙이 있긴 합니까? 어머니께서는 제가 그를 만나 오히려 싸움이 나서 혼사가 그릇될까 봐 걱정되시는 것 아닙니까? 어머니께 약속했으니, 반드시 혼사를 올릴 것입니다. 이제 마음이 놓이십니까?”노태군은 이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좋다. 너도 장사하는 사람이니 신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것이다. 약속했으니, 절대 번복할 수 없어. 목을 매겠다는 이 어미의 결심은 너가 반대하면 언제든 효력을 발휘할 것이다.”일곱째 아가씨가 이를 갈며 투덜댔다.“이렇게 얄미운 늙은이는 정말 처음입니다!”“나도 너처럼 고집 센 딸은 처음 본다.”노태군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웃음소리가 들려오자, 원가 사람들은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일곱째 아가씨가 시집가는 것이 정말 꿈만 같게 느껴졌다.일곱째 아가씨의 혼사는 원가 사람들에게 마음의 짐과도 같았다.탕양은 일곱째 아가씨가 무사히 경성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을 내쉬고 나니,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은 감정이 북받쳤다. 그녀에게 아무 일도 없다는 생각에 그는 코끝이 다 시큰 거렸다.그날 밤, 일곱째 아가씨가 초왕부로 탕양을 찾아가자, 탕양은 그녀를 안으로 들인 후, 단둘이 방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탕양은 그녀를 바라보았는데, 붉은색 옷차림에 머리를 단정히 올려 깔끔하고 우아한 모습이 여전히 돋보였다. 세월의 흔적이 얼굴에 남아 있었지만, 오히려 그녀의 매력을 더해 주었다.그녀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는 패기 넘치던 청춘 시절이었는데, 눈 깜짝할 새에 이렇게나 많이 늙어 버렸다.탕양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수많은 감정이 얽혀 있었지만, 한마디 말도 제대로 꺼낼 수가 없었다.특히 약도성에서의 일을 겪고 난 뒤라, 첫마디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