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강루에서원경릉은 이 화제를 얼른 마무리 지었는데, 더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나가는데 단속을 받았다. 단속하는 자는 궁에서 파견되어 온 사람으로 태후 쪽인데 여러 금군을 대동해 왔다.원경릉이 문밖출입을 하는 대부분의 용도는 먹고 마시는 식기인데, 전부 가져왔다. 이는 태후의 엄명이었다.“참아, 참아.” 우문호가 위로하며 마차의 가리개를 내리고, “낳고 나면 총애를 잃었다는 실감이 날 거야.”원경릉이 고개를 흔들며, “아니, 그냥 이 사람들이 나 대신 세 쌍둥이를 둘러싸고 어쩌면 엄마인 내가 한 번 만져보지도 못하게 할 거 같아.”우문호가 낙천적으로, “그건 더 좋지, 애들 없이 우리 끼리 신나게 놀자.”원경릉이 웃으며 이 놈의 자식은 진짜……만나기로 한 곳은 망강루다.이 이름은 무협소설에 나올 확률이 높다.원경릉이 상상한 건 높다랗게 우뚝 솟은 주루 한 채가 강변에 위치해서 위로 올라가면 강가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바람이 선선하게 부는 가운데 한쪽에선 시를 읊고 한 쪽에선 검객이 무술을 논하는가 하면 한쪽에서 서생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하지만 어느 작은 집 문 앞에 다다라서 마차가 멈췄다.우문호의 부축을 받으며 내려와서 사방을 둘러보는데 낮은 건축물 뿐으로 초가집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높다란 건물은 전혀 아니었다.“다왔어?” 원경릉이 물었다.우문호가 원경릉의 오른쪽 어느 집을 가리키며: “다왔어, 여기야.”원경릉이 쓱 보니 흰 담장이 둘러쳐진 집으로 두 짝으로 된 나무 대문은 닫혀 있고, 문에는 대련이 붙어 있는데 필적은 이미 빗물에 씻겨 나간지 오래고 붉은 종이도 허옇게 변했다.벽에 간판으로 쓰는 편액이 걸려 있는데 “망강루’ 세 글자가 신들린 듯한 초서로 적혀 있어 종잡을 수 없지만 매우 아름답다.이건 원경릉이 생각한 것과 거리가 너무 먼 거 아닌가.우문호는 원경릉의 손을 잡아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문을 들어서자 오래된 우물 맞은 편에 당나귀 한 마리가 매어져 있는데 당나귀가 사람을 보고 발을 구르며 멋대
망강루에서 만난 우문호의 친구들하지만 곧 그 미소는 입가에서 굳어져갔다. 그들이 원경릉을 봤기 때문이다.원경릉은 그들의 표정에서 원래 몸주인인 원경릉이 도대체 얼마나 밉살맞은 존재였는지 느낌이 왔다.그리고 오늘 원경릉은 상당한 진용을 뒤에 달고 나왔다.우문호는 원경릉의 손을 잡고 걸어 들어가자 세 남자와 한 여자가 원경릉에게 예를 표하며, “초왕비를 뵙습니다.”“됐습니다!” 원경릉은 눈치가 없는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우문호는 굉장히 기쁘게 맞으면서 원경릉을 보더니 기분 나빠 하는게 누구한테 말을 붙여야 할지, 아니 가야 할지 아니면 남아야 할지도 모르겠다.우문호는 그녀를 앉히더니 인사를 받으며 우선 그 여자에 대해: “이 분은 소홍천(笑紅塵)으로, 부드럽고 약하게 봤다간 큰 코 다쳐, 진짜 손을 쓰면 서일 둘이 나서도 그녀의 적수가 못되지. 홍매문(紅梅門)의 문주야.”원경릉은 능력 있는 사람을 존경해서 얼른 예를 취하며, “소문주님 안녕하세요!”소홍천은 원경릉에게 억지 미소를 겨우 지으며, “무슨 말씀을.”그리고 차례대로 소개하는데 왼쪽 푸른색 옷을 입고 방금 우문호에게 말을 건 능력자에 대해, “이 분은 소룡(蘇龍), 내 사촌 형인데, 만난 적 있을 거야.”원경릉은 만난 적 없지만 미소를 지으며: “사촌 아주버님, 오랜만에 뵙습니다.”소룡도 헛웃음을 지으며, “예, 오랜만에 뵙습니다.”중간에 그 흰 비단옷에 약하고 얼굴색이 약간 창백한 사람이 스스로 자기 소개를 하며, “저는 왕강이라고 합니다. 왕비마마를 뵙습니다.”원경릉이 하하 웃으며, “왕강 선생님 안녕하십니까.”원경릉은 어색해서 하마터면 우리 둘이 같은 성이란 걸 놓칠 뻔 했다.사식이가 숭배하는 눈빛으로 왕강을 보고 더듬더듬 앞으로 나가더니: “왕선생님, 전 사식이라고 해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오늘 선생님을 뵙게 되다니 제가 삼생에 덕을 쌓았나 봅니다.”왕강이 미소를 머금고 사식이를 보는데, 미소가 원경릉을 대할 때보다 훨씬 진정성이 있다. “아가씨가 너무 치켜세우
소룡에 얽힌 과거의 기억원경릉이 네 사람의 눈을 보니, 그들의 눈빛에 원경릉은 역력하게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었다.다시 우문호를 보니 열띤 얼굴에 사람들이 원경릉을 환영하지 않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원경릉이 다시 앉은 건 전부 우문호의 열띤 눈빛 때문이다.네 사람은 다시 딱딱한 미소를 짓는데 원경릉 눈에 쓴웃음으로 비친다.사촌형 소룡이: “만약 왕비마마께서 저희 대화가 무료하고 무미건조해서 싫은 게 아니시면 저희와 차나 한잔 같이 하시지요.”원경릉이 차를 마시고 싶으면 여기 차를 마실 수 없다. 적어도 태후가 파견한 사람이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시중을 드는데 찬합을 꺼내니 탁자에 음식이 가득 한데 당연히 원경릉 것만 따로 놓여있다.다들 어이가 없어서 곤란하다는 듯 우문호를 쳐다봤다.우문호는 아이를 어르듯 원경릉을 어르며, “먹어, 먼저 좀 먹어, 저녁을 그렇게 빨리 먹는 것도 아냐, 배고프면 안돼. 어의가 당신은 하루 5끼씩 먹으라고 했잖아.”원경릉이 제비집 죽을 떠먹는 동안 전진장군이 우문호를 한쪽으로 끌고 갔는데 꽤 큰 목소리라 원경릉이 안 들리는 척 하기도 어렵다.“왕야,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왜 왕비를 데리고 오셨어요? 왕비를 제일 싫어하지 않으셨습니까?”“전에는 그랬죠. 그녀는 지금 달라요.”“개가 똥을 끊지.” 전진이 씩씩거렸다.원경릉은 제비집 한 모금을 뿜고야 말았다.원경릉 맞은편 소 아주버님은 무표정하게 얼굴에 튄 제비집 죽을 닦는데 싫은 내색 하나 없다.“죄송해요!” 원경릉이 얼른 일어나 손수건을 들어 아주버님에게 전해주려고 했는데 아차차, 소 아주버님은 원경릉이 직접 닦아 주려는 건 줄 알고 차갑게: “멈춰요, 날 건드리지 마세요. 감당 못합니다.”원경릉의 손이 허공에서 멈칫, 난감하기 그지없다.소홍천도 비꼬며: “맞아요, 괜히 건드렸다가 가서 왕야에게 뭐라고 읍소하며 우리 사이를 이간질할지 알 수가 없죠.”원경릉의 머리속에 순간 일련의 장면이 떠올랐다.원래 몸의 주인이 시집간 뒤 사실 우
태양의 흑점원수로다!저쪽에선 우문호가 전진장군을 다독거려 자리로 돌아와 앉았는데, 분위기가 다소 경직되어 있자 우문호도 사람들이 원경릉을 싫어하는 걸 알고 오히려 원경릉의 손을 잡아 끌며: “여러분들이 원 선생에게 오해가 있는 거 나도 압니다, 하지만 그녀는 확실히 이전의 원경릉이 아니고, 여러분도 같이 있다 보면 알게 될 겁니다.”다들 멀뚱멀뚱 서로 얼굴만 바라보는데 초왕은 이미 완전 넘어간 표정이다.아무도 이 말에 맞장구 치지 않고 소홍천이 왕강 선생에게, “맞아요, 왕 선생, 선생이 쓴 삼족오기(三足烏記) 돌려봐도 돼요?” 왕 선생이 웃으며 손을 내젓더니, “안돼요, 지금 관찰 한 건 초보적인 수준이라 쓸 수 없어요. 아직 관찰을 계속 해야 해요.”“무슨 오기?” 우문호는 상당히 오랫동안 그들과 얘기하지 않아서 그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몰랐다.소홍천이: “왕 선생 말이, 누런 해에 검은 기운이 동전만한 크기로 움직이는데 마치 삼족오 같다고 하더군요.”“오, 천문 관측이구나.” 우문호가 매우 흥미가 생겨서, “설마 벌건 태양에 진짜 삼족오가 있는 건 아니죠?”왕 선생이 손을 저으며, “아니, 그건 금오현상이라고 하는 건데, 왜 생기는지에 대해선 저도 몰라요, 전에 글을 쓰겠다는 건 터무니없는 소리였어요, 시건방 떨었죠 뭐.”왕 선생은 상당히 부끄럽다는 듯 말했다.원경릉도 방금 몰래 부끄러워 하는 왕강의 눈을 봤다. 그가 태양의 흑점을 연구하기 시작했을 줄이야.금오현상으로 말할 것 같으면 고대 문헌이 남아 있어, 태양의 흑점을 연구한 사람은 일찍부터 세상에 출현했음을 알 수 있다.이 왕강은 틀림없이 천문학자다.“왕선생은 해낼 겁니다. 며칠만 더 관찰하면 틀림없이 책으로 써 낼 수 있겠지요.” 우문호가 격려하며 말했다.왕강이 웃으며, “인생 백 년 중에 학술에 쓸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아서 저도 초조합니다. 그게 도대체 무엇인지, 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고 싶어요.”“알아서 하라고 합시다. 우리한테 영향만 안주면 돼요.”
우문호는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천천히 훑어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의견이 맞지 않을 때 급하게 갈 필요도, 서로 공격할 필요도 없습니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본왕이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우문호의 말을 듣고 소로(蘇老)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공격이 아니라 왕비께 물어보는 겁니다. 왕비께서는 천문에도 일가견이 있잖아요?” 왕강이 말했다.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천문에 대해 연구라기보다는 흥미가 있을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원경릉에게 의학이라면 모를까 천문학은 그저 흥미가 있어 책 몇 권 본 게 다였다. “그럼 왕비께서 말한 태양의 흑점이 바로 태양 속에 사는 까마귀(踆烏)라는 말이죠?” 왕강이 물었다. “아마 그럴 겁니다.”“그럼 그게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아십니까?” 왕강의 두 눈이 학구열로 이글거렸다. 원경릉은 대답을 망설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그건…… 제 생각엔 자기장 때문에 열전도가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 때문에 온도가 비교적 낮은 구역이 생기게 되는데 그게 육안으로 보면 검게 보이거든요.”“왕비 그게 무슨 뜻인지……”“어떤 것이든 불을 태우면 활불이 있는 곳과 그렇지 않고 검게 그을린 곳이 있지 않습니까? 그 원리인 것 같습니다.”원경릉의 말을 들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왕강은 말을 듣고 한참을 생각하더니 그녀를 바라보았다.“왕비는 저 형태가 지구의 자기장에 영향을 주어 기후를 바꿀 수 있다고 했는데, 그건 정말입니까? 증거가 있습니까?”원경릉은 학구열에 불타는 왕강을 바라보며 이 토론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 직감했다.“저도 모릅니다. 아마 호국사의 주지스님이라면 알지도 모르겠네요.” 원경릉은 대화를 끝내기 위해 얼버무렸다. 모든 사람들이 그럼 그렇지 왕비가 어려운 원리를 알고 있을 리가 없다는 듯 이 모든 게 주지스님의 말이었구나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왕강은 그녀의 말을 듣고 호국사의 주지스님을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맑은 눈의 광인으로 변한 왕강이 원경릉에게
원경릉은 그들을 보며 하눔을 내쉬었다. ‘먹고 마시고 무슨 워크숍 왔나? 이럴 시간이 없을 텐데……’ 그들을 한심하게 보고 있던 원경릉에게 왕강이 다가왔다. “그럼 왕비님은 다른 별들도 잘 아시겠네요? 달도 연구해 보셨습니까?”소홍천은 웃으며 “왕비께서는 달에 토끼와 계수나무가 있다는 걸 알고 계시겠지. 그렇죠?”라고 말했다. 그의 말투에는 약간의 조롱이 담겨있었다.우문호는 소홍천의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그는 남편으로서 원경릉의 기를 살려주고 싶었다. “경릉아, 금성이 얼마나 멀리 있는지 말해줘.”“왕비께서는 금성도 아십니까?” 왕강의 두 눈이 반짝였다. 원경릉은 그들 앞에서 박식한 아내의 면모를 보여달라는 우문호의 눈빛을 읽었다. 예전에 원주 원경릉 때문에 그들은 원경릉에 대한 생각이 그리 좋지 않았다. 안 좋았던 첫인상을 바꾸기 위해 원경릉은 왕강이 귀찮게 질문을 해도 정성스럽게 대답하려고 노력했다. “아니, 조금 아는 것뿐입니다.” 원경릉이 왕강에게 대답했다.“오! 그럼 아시는 건 다 말씀해 주세요!” 왕강이 말했다. 원경릉은 왕강에게 금성과 지구와의 거리, 표면온도 등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을 모두 알려주었다. 왕강에게 설명하는 그녀의 모습을 본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졌다.‘왕비가 원래 저렇게 박식했었나? 전보다 훨씬 밝고 사회성도 좋은 것 같네?’술자리는 점점 무르익었고 원경릉이 화장실을 간 사이에 소홍천이 우문호에게 말했다.“왕비님이 전하고 많이 달라진 것 같네요. 하지만 본성이 어디 가겠습니까?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왕야께서 너무 왕비를 믿지는 않았으면 좋겠네요. 만약 왕비가 전처럼 부중에서 사건을 일으킨다면 공든 탑이 무너질 수도 있어요.”밖에서 자신의 얘기를 들은 원경릉은 발걸음을 멈추고 우문호가 그에게 어떻게 대답하는지 들었다. “그래, 자네가 말하는 건 본왕도 잘 알지. 하지만 본왕이 왕비를 여기까지 데리고 왔으니 내가 정말 큰일을 당한다면 그녀도 책임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야.
기왕은 큰 손해를 보았지만 오히려 분수를 지킬 수 있었다. 며칠 후 기왕비가 왔을 때, 기왕부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자 옆에서 듣던 사식이가 기왕이 큰일을 꾸미고 있는게 아니냐며 의심했고, 기왕비는 원경릉에게 그는 자기 코가 석자라 지금 당장 큰일 꾸밀 수 없다며 안심시켰다. 저주인형으로 모함을 받은 것은 기왕비가 은화 1만 냥을 주어 넘어갔고, 사건이 일단락 된 틈을 타서 기왕비는 은밀하게 추후의 일을 설계했다. 그녀는 그 계획에 필요한 사람들에게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그러는 도중 기왕의 온 정신이 주명양에게 쏠려있었다. 그는 주명양을 통해 주씨 집안의 힘을 얻어 태자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주명양? 주씨 가문은 절대로 주명양의 말을 듣지 않을 겁니다.”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겠죠. 그가 주씨 가문의 힘을 얻고 싶다면 그러라고 하세요. 조정에 공을 세웠어야 힘을 싣기라고 하지, 공보다 실이 많으니 주씨 가문이 미쳤다고 기왕같이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겠습니까? 초왕이야 세운 공이 많으니 문제없을 겁니다. 부황께서 다섯째를 오해하고 있는 부분도 언젠가는 잘 해결될 거고요.”원경릉은 그녀의 말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맞다, 호비(扈妃)가 입궁했다면서요?” 기왕비가 물었다.“예, 드디어 그녀의 소원이 이루어졌네요.”“가만 보면 호비는 참 머리가 좋습니다. 친왕과 혼인을 했으면 태자 자리를 두고 싸우기 밖에 더 했겠습니까? 태세 파악이 빠른거죠. 지금 황제를 모시는 여인들을 보세요. 하나같이 다 나이가 들었잖아요. 어리고 예쁜 호비가 들어갔으니 황제가 얼마나 총애하겠습니까?”“예, 맞습니다.” 원경릉은 기왕비의 말에 일부분 동의했다. 친왕과 결혼해서 매일 마음 졸이며 사느니 황제의 후궁이 되어 편하게 사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우문호가 경조부로 복직한 이후, 밀린 업무를 처리하다 보니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원경릉도 어느덧 임신을 한 지 6개월이 되었고, 전보다 몸이 많이 무거워져서 조금만
안으로 들어온 우문호는 원경릉의 다리를 주물렀고 만아와 희상궁은 그녀를 부축했다. 원경릉은 물에 젖은 술빵 같은 얼굴로 엉엉 울었고, 우문호는 영문도 모른 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괜찮아. 울지 마. 내가 있잖아.” 우문호가 그녀를 다독였다.원경릉은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축복해 주니, 임신은 좋은 일이라고 여기며 불안한 마음이 들 때마다 엄마가 되는 과정이 쉬울 리가 없지 않냐며 자신을 다독였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걱정과 불안이 터지자 눈물이 줄줄 흘렀고 이런 마음이 들 때마다 내가 엄마가 될 자격이 되는 게 맞을까? 내 인생은 이제 끝인 건가? 누군가의 엄마로 살기에는 아직 난 젊은데 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뱃속의 아이들에게 죄책감이 들었다. “우문호, 내 생에 임신은 다신 없어. 내 목에 칼이 들어와도 다시는 없을 일이야!”“알겠어. 앞으로 절대 그럴 일 없게 할게.”우문호가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얼마나 울었는지 원경릉의 두 눈이 눈물에 절어 퉁퉁 부었다. “쳐다보지 마, 나 지금 추한 거 나도 안다고!”“아냐, 넌 언제나 예뻐.”원경릉은 우문호의 입발린 말에 고개를 휙 돌렸다. “너 혼자 입궁해. 난 안 갈래.”우문호는 그녀를 끌어안았다. “너 안 가면 나도 안 가. 그냥 단둘이 왕부에서 새해를 맞이하자.”“그건 안돼. 부황께서 분명히 뭐라고 하실 거야.”“그래서 뭐? 지금 나에게 중요한 건 너야.”우문호는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잠시 후, 진정이 된 원경릉이 조용히 우문호에게 말했다.“아까는 감정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던 것 같아…… 빨리 준비해서 입궁하자.”“갈 수 있겠어? 아무도 강요하지 않아. 가고 싶지 않으면 안 가도 돼. 궁 안에 사람도 많을 거고 불편할 수도 있으니까.” 우문호는 원경릉이 스트레스를 받을까 봐 걱정이 됐다.“그래도 가자. 며칠 전에 상선께서 말씀하시길, 태상황님께서 건강이 좋지 않다고 하셨어. 내가 입궁해서 한 번 봐야겠어.”“너는 지금
현대로 돌아가 가족과 한자리에 모이니 모두 즐거워 보였다. 원경릉은 집안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 뒤, 아이들을 데리고 휘종제와 건종 태자를 알현하러 갔다.휘종제와 건종 태자도 매우 기뻐했는데, 특히 아이들이 유학하러 와서 앞으로 여기서 산다는 얘기에, 휘종제는 너무 좋아서 펄쩍펄쩍 뛰며 앞으로 아이들에게 드는 모든 비용은 전부 자기들이 대고 방학에 북당으로 보내고, 개학 때 맞이하는 것도 자기들이 하겠다고 큰소리쳤다. 외갓집엔 모두 출근하는 분들 뿐이라 불편할 거라는 것이었다.원경릉은 일단 감사드리고 북당에서 가져온 술과 검, 궁에서 가져온 흙 한 줌과 돌 하나를 꺼내놓았다. 이건 우문호가 준비한 것으로 고향을 오래 떠나 있는 사람은 고향의 흙과 돌이 그리운 법이라고 했다.휘종제와 건종 태자가 흙과 돌을 보더니 손에 들곤 통곡하기 시작했다.원경릉이 두 사람을 위로한 뒤, 그들은 슬퍼하며 ‘언제 한 번 가볼까, 딱 한 번 보더라도, 아무도 만날 수 없어도 좋을 텐데.’라고 한탄했다.“긴 세월 고향 강산을 꿈에도 잊지 못했으나 돌아갈 수는 없었네..”원경릉은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가슴이 시큰해졌다. 휘종제와 건종 태자의 슬픔을 원경릉은 아주 잘 아는 것이 자신도 전에 이방인이었기 때문이었다.단지 그들이 돌아갈 수 있을지 없을지 원경릉도 뭐라고 단정내리기 어려웠다. 어쨌든 이건 안풍 친왕이 진행한 일로 정말 돌아가고 싶으면 아마도 안풍 친왕이 준비해 줄 수 있었다. 북당으로 돌아가면 안풍 친왕에게 상황을 봐서 물어봐야겠다고 결심했다.입학 준비를 마친 뒤, 원경릉은 돌아갈 준비를 하는데 아이들과 떨어지기 싫었지만, 아이들은 새로운 생활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가 충만했기에 그녀와 헤어지는 걸 전혀 아쉬워하지 않았다. 원경릉은 그 점이 씁쓸했다.아이들이 크면 놔줘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얘들은 아직 다 안 컸잖아.돌아가기 전에 원경릉은 양여혜에게 만나자고 했는데 양여혜가 기화를 데리고 올 줄 몰랐다.원경릉은 기화를 보자 머리가 아픈 게, 기화는 또
‘이제 어머니가 계시니 술 먹으면 몸 상한다고 말해? 예전에는 왜 말 안 했어?’다행히 누군가 같이 마셔주는 사람이 있었다. 회왕은 벼슬에 오른 뒤로 술을 조금 하기 시작했는데, 많이는 안 마시고 한두 잔만 마실뿐, 석 잔째면 아내를 보러 집에 갔다.즐겁게 박원과 소홍천을 보낸 우문호와 원경릉은 만두와 아이들을 유학 보낼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비록 환타와 칠성이는 아직 어려서 2년 정도 더 남아있었지만, 유치원 다니고 싶다고 소리를 지르며,형들이랑 꼭 같이 가겠다고 하도 고집을 부려 원경릉과 우문호는 골치가 아파졌다.그나마 우문호에게 약간 위로가 된 건 딸만큼은 곁에 있다는 사실로, 칠성이와 환타가 하도 졸라대자,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가가가, 다 가.”아이들은 기뻐했으나 눈 늑대와 호랑이도 여전히 성깔을 부리며 따라가겠다며 소란을 피웠다.현대에서 어떻게 호랑이와 눈 늑대를 키울 수가 없으니 미칠 노릇이였다. 게다가 이 동물들은 아주 영민해서 사람 일을 이해해, 꼬마 주인들이 이번에 가면 열흘 보름이 아니라 몇 년 있다가 온다는 걸 알고 아무리 혼을 내도 말을 안 들을 게 분명했다. 그래도 만두가 이리저리 구슬려서, 동물들에게 자기들에겐 여름방학, 겨울 방학이 있고 학기 중에도 쉬는 날이 있어서 1년에 합치면 적어도 4개월은 이쪽으로 돌아올 수 있으니 적어도 1년에 절반 가까이는 같이 있는 거라고 위로하자 겨우 잠잠해졌다. 비록 시공간은 떨어져 있어도 같이 자라기를 원할 것이다. 유학을 가는 일이기 때문에 원경릉이 직접 따라가서 진학 문제를 처리해야 했다.이 일은 전에 현대에서 언급한 적이 있어, 로양이 아이들에게 호적을 만들어주기로 했다. 물론 아이들을 호적에 올리려면 원경릉 부부도 호적에 올려야 하는 것이, 아이들을 오빠 이름 아래 입적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었다.이 일은 로양이 원만하게 처리해 원경릉 가족 모두 호적을 가지게 되었다.게다가 원래 집을 사뒀기 때문에, 부근 학군에 진학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원경릉은 다섯
대오가 경성으로 돌아올 때 홍엽도 원숭이와 같이 돌아왔는데, 그도 풍도성에서 힘을 보탰다. 사실 홍엽이 안 가도 안풍 친왕이 모든 걸 다 준비해 둬서, 안풍 친왕 능력이면 안지여 정도 상대하기는 식은 죽 먹기였다.이리 나리 일행은 경성에 도착해, 우선 집으로 돌아가 공주와 천행이를 보고 가족이 함께 밥을 먹은 뒤 입궁해서 경과를 보고했다.사적인 원한은 한두 마디로, 벌을 받아 마땅한 사람은 지금 받아야 할 벌을 받고 있으며 아직 죽이지 않았다고 했다남은 건 정사를 논하는 것이었다.“어머니와 같이 풍도성에서 보름 정도 지내며 기본적인 민심을 파악했는데, 천문 세가는 백성들 사이에서 아직 명망이 높아 보입니다. 풍도성 백성들은 사실 세금이 너무 많고 경제가 번영한 성과가 전부 안지여 수중에 떨어지는 구조로 되어 있어 안지여의 통치에 불만이 있었다고 합니다. 조정에서 풍도성을 접수한 것에 백성들 대부분은 찬성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천하태평이냐 하면 그럴 순 없는 것이, 일부는 성주가 자기들의 황제라 여기고, 조정이 풍도성을 접수한 것이 풍도성이 침략당했다고 여겨 나중에 약간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부를 임명하실 때 신중하셔야 할 것입니다.”우문호가 말했다. “흠, 큰할아버지께서 천거한 사람이 있는데, 바로 박원이라네. 자네 생각은 어떤가?”그러자 이리 나리의 눈빛이 빛났다. “제 아버지가 추천한 사람이니 전 찬성입니다!”“아버지?” 우문호가 의아해하며 이리 나리를 쳐다봤다. ‘안풍 친왕비가 사부님이면 안풍 친왕은 사부의 남편 아닌가? 어떻게 아버지가 되지? 사부님의 배우자니 사모님이라고 부르는 게 더 맞지 않나?’“흠, 안풍 친왕은 제 아버지십니다!” 이리 나리는 더 설명할 생각이 없는지 어쨌든 그렇다고 주장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한 번도 그를 아버지라 부른 적 없지만, 마음속에서만큼은 진정한 아버지였다.“하하하!” 우문호도 그저 웃으며 더는 묻지 않았다.이리 나리가 퇴청할 때 우문호가 이리 나리를 부르자 고개를 돌렸다. “무
“우선 박원이랑 소홍천 의사부터 물어보자. 억지로 하게 하고 싶지 않아. 그동안 그들이 날 많이 도와줬으니 전부 원하는 대로 하자고.” 우문호가 말했다.“그러자!” 원경릉이 일어서며 말했다. “오늘 저녁 애들 데리고 어머님께 가서 수라를 들려면 빨리움직여야 해. 꾸물대면 늦을거야.”그러자 우문호도 계란이를 안고 일어섰다. “그래, 우리 황조모한테 가서 맘마 먹자.”우문호가 나가서 부르자 아이들이 달려와, 같이 왁자지껄하게 수라를 들러 황태후 전으로 갔다.황태후는 원래 우문호에게 할 말이 있었지만, 식사 자리에 아이들이 있어서 기다렸다가 저녁을 다 먹은 뒤 우문호와 아이들이 나가서 놀고, 원경릉이 황태후와 얘기를 나눌 때 말을 꺼냈다.“천행이가 태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부마를 풍도성으로 보낼 수가 있지.. 공주가 얼마나 괴로웠을까.”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공주는 사정을 훤히 알고 있어서, 이리 나리께서 풍도성에 가는 걸 지지하셨는걸요.”“말은 그렇게 해도, 출산 후에 여자 곁엔 남편이 있어야 하는 법이야. 하지만 이것도 단지 우리 가족끼리 하는 얘기일 뿐이고, 조정 일을 내가 함부로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없는 노릇이지.”황태후는 이리 나리가 풍도성으로 간 진정한 목적을 전혀 몰랐으며, 단순히 어지러운 형국을 정리하러 갔다고만 알았기 때문에 순수하게 공주를 아끼는 마음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어마마마, 걱정하지 마세요. 이리 나리는 이미 돌아오는 중이래요.” 원경릉이 위로하자 황태후가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거 잘됐네!”온 가족이 별빛을 받으며 천천히 소월궁을 거닐었다.계란이는 아빠 품에서 잠이 들었고, 아이들은 놀다 지쳐서 아빠 엄마를 따라 천천히 걷고 있었으며, 목여 태감이 궁인 둘을 데리고 뒤에서 조용히 따라오는 가운데, 궁 안은 인적이 드물어 밤이 되자 상당히 고요했다.“어마마마께서 공주를 아끼셔서, 이리 나리가 하필 이때 풍도성에 보냈냐고 하셨어.” 원경릉이 말했다.“날 원망하셨어?” 우문호는 품에 있는 아이가 깰
늑대파 사람이 안지여와 소여쌍을 질질 끌고 나가는데, 소여쌍은 여전히 미친사람처럼 웃어대기만 했다.이리봉청은 그들이 끌려 나가는 것을 보자, 눈앞에 안지여가 자신을 데리고 소여쌍의 침대 앞으로 가서 소여쌍의 그 악랄한 말을 듣던 순간이 떠올랐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여리여리하고 아름답던 그녀가 이렇게 변해 버린 게 꿈처럼 느껴졌다.풍도성을 접수한 뒤 안풍 친왕은 관리들을 새롭게 임명했고, 더 이상 성주 같은 것을 두지 않고 조정과 이부에 적합한 인사를 선발해 풍도성 지부로 앉힐 것을 요청했다. 풍도성은 더 이상 이전의 독립 자치 지역이 아닌, 다른 주나 현과 마찬가지로 조정에 귀속되어 통일서 있게 다스리게 되었다.더불어 안풍 친왕은 별도로 서신을 써서 황제인 우문호에게 보냈는데, 풍도성을 추천하지만, 이건어디까지나 건의와 추천이니 황제가 생각하는 마땅한 사람이 있으면 안풍 친왕의 추천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동시에 안지여의 잔당들이 계속 나타났다.안풍 친왕이 이번에 이렇게 많은 사람을 데려오고, 호랑이와 눈 늑대, 회색 늑대까지 출동시킨 건 바로 모든 세력을 강화하고, 신속하게 진압해 풍도성을 조정에 복귀시키고 보름 만에 비적을 토벌하며 기본적인 숙청을 마무리하기 위해서였다.박원은 잔당의 남은 불씨가 다시 타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서 안풍 친왕의 영패를 가지고 부근에 5천 명의 군사를 파견시켜 풍도성을 지켰다. 이리 나리는 자금을 지원해 천문 세가의 묘를 이장하였는데, 이전 무덤은 안지여가 고른 곳으로 폐허에 가까워, 그는 천문 세가 사람들이 그런 곳에서 안식을 취하기를 원하지 않았다.풍도성에 온지 거의 한 달가량 될 때쯤, 대군은 경성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돌아가기 전에 미색이 안지여와 소여쌍을 보러 갔다가, 돼지우리에서 죽느니만 못한 삶을 사는 것을 보고 그제야 비로소 맺혀 있던 한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미색은 이리 나리와 어머님에게 알리지 않은 것이, 두 사람은 이미 안지여가 누군지 잊은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리봉청에게 있어 모든 건 지나가지 않았고, 36년 전 일은 여전히 어제 일 같이 느껴졌다.“어머니, 그를 어떻게 처분하시겠어요?” 이리 나리는 이리봉청의 마음을 넘겨짚을 수 없어 함께 걷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생각은 어떠니?” 이리봉청이 다시 되묻자 이리 나리가 원한에 사무친 눈빛으로 말했다. “제게 처분하라고 하면 전 그를 죽여 버릴 겁니다.”이리봉청은 알았다며 대답만 했다가, 다시 30분쯤 걷다가 정자에 앉아 을 때 말을 덧붙였다. “난 안 죽일 거야.”이리 나리가 약간 놀라서 물었다. “어머니, 또 마음이 약해지신 겁니까?”이리봉청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 반대야. 그 인간을 죽이는 게 마음이 약해진 거지. 사실 며칠 동안 이전의 원한을 내려놓을 수 있을지 생각해 봤는데,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 인간을 백번이라도 죽이겠지만, 난 그럴 수 없더구나. 아들아, 게다가 오늘 천문 세가 대문을 들어서는 그 순간, 더욱 마음을 굳혔단다.”이리봉청이 일어나 집안을 둘러봤다. 이곳은 그녀의 가족들이 살아 원래 온통 사람 소리로 가득한 곳이였다. 그들의 웃던 광경이 눈앞에 비치는가 하더니, 눈 깜박할 사이에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그들은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천문 세가는 큰 잘못을 저지른 것도 없는데 멸문지화를 당했고, 가엾게도 그 중엔 아이들이 많아서 제일 어린아이는 이제 태어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었다.이리봉청의 얼굴에 눈물이 타고 흐르며 가슴이 미어졌다. “그자와 소여쌍을 밖에 내버리고 사람을 시켜 지켜보도록 해. 죽게 두지 말고 계속 살려둬. 36년은 더 살면서 이 세상의 고생을 모두 겪어야, 내 마음에 맺힌 한이 풀리고 억울한 망자들도 안식에 들지!”이리 나리는 온몸으로 그 마음이 느껴져, 어머니가 눈물 흘리는 것을 더는 볼 수 없었다. “네, 전부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대로 할게요.”안지여와 소여쌍은 버려졌다. 짧은 며칠 사이에 안지여는 의기양양하던 성주에서 시궁창 쥐로 변해, 사람들이
안지여는 풍도성 지하감옥에 갇혔다. 빛 한 줄기 없는 지하감옥에서 사방에 끝없는 어둠과 절망만이 안지여를 삼키고 있었다.훼천의 형벌은 12 시진 후면 사라져서, 앞으로 안지여는 그저 한 명의 폐인일 뿐이었다.안지여의 결사대가 성으로 공격해 들어오기 전에, 이리봉청은 오 선생을 찾아내 안지여가 저지른 모든 죄를 고백하게 하고 안풍 친왕이 친필로 받아 적었다. 안지여가 당시 천문 세가를 해친 경위를 소상히 써 내려간 뒤, 오 선생과 안풍 친왕의 직인을 찍고 인쇄해서 대중에게 공개했다.안지여의 죄악은 하늘을 찔러 백성들 모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안지여의 결사대의 옛 부하들이 본래 성을 공격해 들어가 안지여를 구출할 계획을 세워놓았으나, 안지여의 죄상이 공포된 뒤로 많은 사람들이 해산하였다. 유일하게 무대장군만이 수천 명을 데리고 성으로 쳐들어왔지만, 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가 이미 대비해둔 덕분에, 경성에서 굴러온 돌이 무대장군의 박힌 돌을 빼내는 전투를 벌였다.풍도성에 온 지 7일째, 안풍 친왕은 풍도성을 접수하고 성에 살던 사람을 쫓아내며 서민으로 강등시켰다.안지여와 소여쌍에 대한 처분은 이리봉청에게 넘겼다.안지여는 캄캄한 지하감옥에서 6일을 지내는 동안, 처음엔 침착한 척 가장했으나 사흘째가 되자 울부짖으며 악독한 저주의 말을 내뱉더니, 나흘째가 되자 용서해달라고 애원하며 참회했다.손발의 힘줄이 끊어진 안지여는 일어나 걸을 수도 없고 심지어 스스로 몫숨을 끊을 힘도 없었다.그 와중에 매일 누군가가 먹고 마시도록 해주고, 상처도 치료해 주어 살 수 있다는 부질없는 희망을 품게 했다.훼천의 말에 따르면, 진정한 절망은 살아도 죽느니만 못하고,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것으로, 온 마음으로 죽기를 바라지만 살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가, 안간힘을 쓴 뒤 다시 절망에 빠지는 것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으로, 사람을 한없이 죽였다 살렸다 괴롭힌다고 했다.결국 안지여를 죽일지 말지 여부는 이리봉청에게 달렸는데, 그녀는 안지여를 단번에 죽여 천문 세가
안지여의 이마에 파란 힘줄이 불끈불끈했으나 냉정을 가장했다. “내가 두려워할 줄 알았나 보지? 죽음도 두렵지 않은데 뭘 더 두려워하겠어?”“넌 두려울 것이야!” 이리봉청이 고개를 돌려 이리 나리를 보고 살짝 그의 팔을 잡았다. “내가 오는 길에 늑대파 사람이 그러던데, 천하에서 제일 잔혹한 형벌을 아는 사람이 늑대파에 있다고. 그게 사실인 것이냐?”이리 나리가 가볍게 답했다. “물론 사실이죠. 훼천이라고 합니다. 늑대골 출신이에요.”“안지여가 버틸 수 있는지 어디 한 번 보고 싶구나.” 이리봉청이 말했다.이리 나리가 엄숙한 태도로 명을 내렸다. “훼천!”그러자 훼천이 급히 나왔다. “이리 나리, 분부하시지요!”이리 나리는 그가 짐짓 냉정한 척하고 있으나 눈빛이 조금씩 허물어져 가고, 몸까지 부들부들 떠는 것이 아주 만족스러워 훼천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시작해!”안지여가 갑자기 큰 소리로 욕했다. “난 네 아버지거늘, 감히 나에게 손을 대다니, 천벌을 받아 마땅한 놈 같으니라고!”이리봉청이 이 말을 듣고 잠시 주저하는 눈빛으로 이리 나리를 바라봤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제 아버지는 오직 저를 키워주신 안풍 친왕뿐이십니다.”이리봉청이 살짝 안도했다. “저 인간이 단지 나만 해쳤으면 네 체면을 봐서 놔줬겠지만 천문 세가의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갔으니 난 용서할 수 없구나.”“이리봉청, 너 언제 이렇게 악랄하게 변했어? 죽이려거든 그냥 죽여. 난 천문 세가 사람을 죽이긴 했어도 그들을 괴롭히진 않았어. 네가 날 죽이려거든 깨끗하게 단번에 죽여!”안지여가 크게 노해 몇 번 몸부림을 치다가 상처가 벌어지는 바람에 배에서 선혈이 흘러나오고, 훼천이 가까이 다가가자, 눈에 두려움이 깊어졌는데, 늑대골 출신 훼천은 온몸에서 피비린내가 뿜어져 나와 안지여를 덜덜 떨게 했다.“이리율!” 안풍 친왕비는 시ㅈ가하기 전에 이리 나리를 불렀다. “내가 여기서 네 엄마와 같이 있을 테니 넌 먼저 나가 있거라!”이리 나리가 안풍 친왕비에게
안지여에게 구원 병력이 없는 상황에서, 이리 나리 일행이 성을 제압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대오가 경성에서 출발하기 전에, 안풍 친왕비가 미리 사람을 풍도성으로 보내 각처, 특히 성 수비군과 군대에 잠입시켜, 음식에 효과가 천천히 나타나는 독을 풀어, 오늘 중독 증상이 나타나도록 독의 분량을 조절했다.적어도 내일까지는 안지여를 도우러 올 사람은 없었다. 독성은 적어도 이틀이 지나야 깨끗해지기 때문에 이틀 동안 그들은 설사와 전신 무기력으로 성에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알아도 와서 도울 수 없었다.그리고 그들이 기력을 회복할 때쯤이면, 안지여는 벌써 죽었을 것이다.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는 성을 통제하고, 안지여 부부를 제압해 두 사람을 줄로 묶고 지혈시켜 주었다.안지여는 요 몇 년 동안 자신이 상당히 대단하다고 여겼다. 이는 풍도성이 부유하기 때문으로, 돈으로 많은 사람을 살 수 있었으며, 여러 곳에서 추켜세워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처절하게 패배한 적이 없었던 이유는 진정한 적이 없기 때문으로, 주변의 떠돌이 비적은 작은 마을 규모로 너무 작아서 소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코 그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적이 너무 약해서였다.조정 사람과 비교했을 때, 그는 제대로 훈련받은 적 없는 비적었기에 일격도 감당할 깜냥이 못됐다.이리 나리는 둘을 중정에 묶어 두었다. 온 바닥에 남은 음식과 깨진 기와가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본 안지여는 마음속 깊이 분노가 일었다. 자신의 생일날, 그를 다치게 한 것이 바로 그의 친자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더욱이 오늘 이렇게 많은 고수가 현장에 있었는데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이런 결말을 맞다니 너무 불쾌했다. 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을 부축하고 안지여 부부 앞으로 가서, 그녀가 안지여 부부를 내려다보자, 그들은 낭패에 달가워하지 않는 기색으로, 이리봉청은 분노하는 마음과 함께 서글픈 마음도 들었다. 그들을 죽이면 커다란 복수는 이뤄 천문 세가 망자의 원혼은 달랠 수 있었다.하지만 저들을 이렇게 쉽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