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강루에서원경릉은 이 화제를 얼른 마무리 지었는데, 더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나가는데 단속을 받았다. 단속하는 자는 궁에서 파견되어 온 사람으로 태후 쪽인데 여러 금군을 대동해 왔다.원경릉이 문밖출입을 하는 대부분의 용도는 먹고 마시는 식기인데, 전부 가져왔다. 이는 태후의 엄명이었다.“참아, 참아.” 우문호가 위로하며 마차의 가리개를 내리고, “낳고 나면 총애를 잃었다는 실감이 날 거야.”원경릉이 고개를 흔들며, “아니, 그냥 이 사람들이 나 대신 세 쌍둥이를 둘러싸고 어쩌면 엄마인 내가 한 번 만져보지도 못하게 할 거 같아.”우문호가 낙천적으로, “그건 더 좋지, 애들 없이 우리 끼리 신나게 놀자.”원경릉이 웃으며 이 놈의 자식은 진짜……만나기로 한 곳은 망강루다.이 이름은 무협소설에 나올 확률이 높다.원경릉이 상상한 건 높다랗게 우뚝 솟은 주루 한 채가 강변에 위치해서 위로 올라가면 강가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바람이 선선하게 부는 가운데 한쪽에선 시를 읊고 한 쪽에선 검객이 무술을 논하는가 하면 한쪽에서 서생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하지만 어느 작은 집 문 앞에 다다라서 마차가 멈췄다.우문호의 부축을 받으며 내려와서 사방을 둘러보는데 낮은 건축물 뿐으로 초가집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높다란 건물은 전혀 아니었다.“다왔어?” 원경릉이 물었다.우문호가 원경릉의 오른쪽 어느 집을 가리키며: “다왔어, 여기야.”원경릉이 쓱 보니 흰 담장이 둘러쳐진 집으로 두 짝으로 된 나무 대문은 닫혀 있고, 문에는 대련이 붙어 있는데 필적은 이미 빗물에 씻겨 나간지 오래고 붉은 종이도 허옇게 변했다.벽에 간판으로 쓰는 편액이 걸려 있는데 “망강루’ 세 글자가 신들린 듯한 초서로 적혀 있어 종잡을 수 없지만 매우 아름답다.이건 원경릉이 생각한 것과 거리가 너무 먼 거 아닌가.우문호는 원경릉의 손을 잡아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문을 들어서자 오래된 우물 맞은 편에 당나귀 한 마리가 매어져 있는데 당나귀가 사람을 보고 발을 구르며 멋대
망강루에서 만난 우문호의 친구들하지만 곧 그 미소는 입가에서 굳어져갔다. 그들이 원경릉을 봤기 때문이다.원경릉은 그들의 표정에서 원래 몸주인인 원경릉이 도대체 얼마나 밉살맞은 존재였는지 느낌이 왔다.그리고 오늘 원경릉은 상당한 진용을 뒤에 달고 나왔다.우문호는 원경릉의 손을 잡고 걸어 들어가자 세 남자와 한 여자가 원경릉에게 예를 표하며, “초왕비를 뵙습니다.”“됐습니다!” 원경릉은 눈치가 없는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우문호는 굉장히 기쁘게 맞으면서 원경릉을 보더니 기분 나빠 하는게 누구한테 말을 붙여야 할지, 아니 가야 할지 아니면 남아야 할지도 모르겠다.우문호는 그녀를 앉히더니 인사를 받으며 우선 그 여자에 대해: “이 분은 소홍천(笑紅塵)으로, 부드럽고 약하게 봤다간 큰 코 다쳐, 진짜 손을 쓰면 서일 둘이 나서도 그녀의 적수가 못되지. 홍매문(紅梅門)의 문주야.”원경릉은 능력 있는 사람을 존경해서 얼른 예를 취하며, “소문주님 안녕하세요!”소홍천은 원경릉에게 억지 미소를 겨우 지으며, “무슨 말씀을.”그리고 차례대로 소개하는데 왼쪽 푸른색 옷을 입고 방금 우문호에게 말을 건 능력자에 대해, “이 분은 소룡(蘇龍), 내 사촌 형인데, 만난 적 있을 거야.”원경릉은 만난 적 없지만 미소를 지으며: “사촌 아주버님, 오랜만에 뵙습니다.”소룡도 헛웃음을 지으며, “예, 오랜만에 뵙습니다.”중간에 그 흰 비단옷에 약하고 얼굴색이 약간 창백한 사람이 스스로 자기 소개를 하며, “저는 왕강이라고 합니다. 왕비마마를 뵙습니다.”원경릉이 하하 웃으며, “왕강 선생님 안녕하십니까.”원경릉은 어색해서 하마터면 우리 둘이 같은 성이란 걸 놓칠 뻔 했다.사식이가 숭배하는 눈빛으로 왕강을 보고 더듬더듬 앞으로 나가더니: “왕선생님, 전 사식이라고 해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오늘 선생님을 뵙게 되다니 제가 삼생에 덕을 쌓았나 봅니다.”왕강이 미소를 머금고 사식이를 보는데, 미소가 원경릉을 대할 때보다 훨씬 진정성이 있다. “아가씨가 너무 치켜세우
소룡에 얽힌 과거의 기억원경릉이 네 사람의 눈을 보니, 그들의 눈빛에 원경릉은 역력하게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었다.다시 우문호를 보니 열띤 얼굴에 사람들이 원경릉을 환영하지 않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원경릉이 다시 앉은 건 전부 우문호의 열띤 눈빛 때문이다.네 사람은 다시 딱딱한 미소를 짓는데 원경릉 눈에 쓴웃음으로 비친다.사촌형 소룡이: “만약 왕비마마께서 저희 대화가 무료하고 무미건조해서 싫은 게 아니시면 저희와 차나 한잔 같이 하시지요.”원경릉이 차를 마시고 싶으면 여기 차를 마실 수 없다. 적어도 태후가 파견한 사람이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시중을 드는데 찬합을 꺼내니 탁자에 음식이 가득 한데 당연히 원경릉 것만 따로 놓여있다.다들 어이가 없어서 곤란하다는 듯 우문호를 쳐다봤다.우문호는 아이를 어르듯 원경릉을 어르며, “먹어, 먼저 좀 먹어, 저녁을 그렇게 빨리 먹는 것도 아냐, 배고프면 안돼. 어의가 당신은 하루 5끼씩 먹으라고 했잖아.”원경릉이 제비집 죽을 떠먹는 동안 전진장군이 우문호를 한쪽으로 끌고 갔는데 꽤 큰 목소리라 원경릉이 안 들리는 척 하기도 어렵다.“왕야,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왜 왕비를 데리고 오셨어요? 왕비를 제일 싫어하지 않으셨습니까?”“전에는 그랬죠. 그녀는 지금 달라요.”“개가 똥을 끊지.” 전진이 씩씩거렸다.원경릉은 제비집 한 모금을 뿜고야 말았다.원경릉 맞은편 소 아주버님은 무표정하게 얼굴에 튄 제비집 죽을 닦는데 싫은 내색 하나 없다.“죄송해요!” 원경릉이 얼른 일어나 손수건을 들어 아주버님에게 전해주려고 했는데 아차차, 소 아주버님은 원경릉이 직접 닦아 주려는 건 줄 알고 차갑게: “멈춰요, 날 건드리지 마세요. 감당 못합니다.”원경릉의 손이 허공에서 멈칫, 난감하기 그지없다.소홍천도 비꼬며: “맞아요, 괜히 건드렸다가 가서 왕야에게 뭐라고 읍소하며 우리 사이를 이간질할지 알 수가 없죠.”원경릉의 머리속에 순간 일련의 장면이 떠올랐다.원래 몸의 주인이 시집간 뒤 사실 우
태양의 흑점원수로다!저쪽에선 우문호가 전진장군을 다독거려 자리로 돌아와 앉았는데, 분위기가 다소 경직되어 있자 우문호도 사람들이 원경릉을 싫어하는 걸 알고 오히려 원경릉의 손을 잡아 끌며: “여러분들이 원 선생에게 오해가 있는 거 나도 압니다, 하지만 그녀는 확실히 이전의 원경릉이 아니고, 여러분도 같이 있다 보면 알게 될 겁니다.”다들 멀뚱멀뚱 서로 얼굴만 바라보는데 초왕은 이미 완전 넘어간 표정이다.아무도 이 말에 맞장구 치지 않고 소홍천이 왕강 선생에게, “맞아요, 왕 선생, 선생이 쓴 삼족오기(三足烏記) 돌려봐도 돼요?” 왕 선생이 웃으며 손을 내젓더니, “안돼요, 지금 관찰 한 건 초보적인 수준이라 쓸 수 없어요. 아직 관찰을 계속 해야 해요.”“무슨 오기?” 우문호는 상당히 오랫동안 그들과 얘기하지 않아서 그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몰랐다.소홍천이: “왕 선생 말이, 누런 해에 검은 기운이 동전만한 크기로 움직이는데 마치 삼족오 같다고 하더군요.”“오, 천문 관측이구나.” 우문호가 매우 흥미가 생겨서, “설마 벌건 태양에 진짜 삼족오가 있는 건 아니죠?”왕 선생이 손을 저으며, “아니, 그건 금오현상이라고 하는 건데, 왜 생기는지에 대해선 저도 몰라요, 전에 글을 쓰겠다는 건 터무니없는 소리였어요, 시건방 떨었죠 뭐.”왕 선생은 상당히 부끄럽다는 듯 말했다.원경릉도 방금 몰래 부끄러워 하는 왕강의 눈을 봤다. 그가 태양의 흑점을 연구하기 시작했을 줄이야.금오현상으로 말할 것 같으면 고대 문헌이 남아 있어, 태양의 흑점을 연구한 사람은 일찍부터 세상에 출현했음을 알 수 있다.이 왕강은 틀림없이 천문학자다.“왕선생은 해낼 겁니다. 며칠만 더 관찰하면 틀림없이 책으로 써 낼 수 있겠지요.” 우문호가 격려하며 말했다.왕강이 웃으며, “인생 백 년 중에 학술에 쓸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아서 저도 초조합니다. 그게 도대체 무엇인지, 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고 싶어요.”“알아서 하라고 합시다. 우리한테 영향만 안주면 돼요.”
우문호는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천천히 훑어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의견이 맞지 않을 때 급하게 갈 필요도, 서로 공격할 필요도 없습니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본왕이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우문호의 말을 듣고 소로(蘇老)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공격이 아니라 왕비께 물어보는 겁니다. 왕비께서는 천문에도 일가견이 있잖아요?” 왕강이 말했다.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천문에 대해 연구라기보다는 흥미가 있을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원경릉에게 의학이라면 모를까 천문학은 그저 흥미가 있어 책 몇 권 본 게 다였다. “그럼 왕비께서 말한 태양의 흑점이 바로 태양 속에 사는 까마귀(踆烏)라는 말이죠?” 왕강이 물었다. “아마 그럴 겁니다.”“그럼 그게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아십니까?” 왕강의 두 눈이 학구열로 이글거렸다. 원경릉은 대답을 망설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그건…… 제 생각엔 자기장 때문에 열전도가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 때문에 온도가 비교적 낮은 구역이 생기게 되는데 그게 육안으로 보면 검게 보이거든요.”“왕비 그게 무슨 뜻인지……”“어떤 것이든 불을 태우면 활불이 있는 곳과 그렇지 않고 검게 그을린 곳이 있지 않습니까? 그 원리인 것 같습니다.”원경릉의 말을 들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왕강은 말을 듣고 한참을 생각하더니 그녀를 바라보았다.“왕비는 저 형태가 지구의 자기장에 영향을 주어 기후를 바꿀 수 있다고 했는데, 그건 정말입니까? 증거가 있습니까?”원경릉은 학구열에 불타는 왕강을 바라보며 이 토론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 직감했다.“저도 모릅니다. 아마 호국사의 주지스님이라면 알지도 모르겠네요.” 원경릉은 대화를 끝내기 위해 얼버무렸다. 모든 사람들이 그럼 그렇지 왕비가 어려운 원리를 알고 있을 리가 없다는 듯 이 모든 게 주지스님의 말이었구나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왕강은 그녀의 말을 듣고 호국사의 주지스님을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맑은 눈의 광인으로 변한 왕강이 원경릉에게
원경릉은 그들을 보며 하눔을 내쉬었다. ‘먹고 마시고 무슨 워크숍 왔나? 이럴 시간이 없을 텐데……’ 그들을 한심하게 보고 있던 원경릉에게 왕강이 다가왔다. “그럼 왕비님은 다른 별들도 잘 아시겠네요? 달도 연구해 보셨습니까?”소홍천은 웃으며 “왕비께서는 달에 토끼와 계수나무가 있다는 걸 알고 계시겠지. 그렇죠?”라고 말했다. 그의 말투에는 약간의 조롱이 담겨있었다.우문호는 소홍천의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그는 남편으로서 원경릉의 기를 살려주고 싶었다. “경릉아, 금성이 얼마나 멀리 있는지 말해줘.”“왕비께서는 금성도 아십니까?” 왕강의 두 눈이 반짝였다. 원경릉은 그들 앞에서 박식한 아내의 면모를 보여달라는 우문호의 눈빛을 읽었다. 예전에 원주 원경릉 때문에 그들은 원경릉에 대한 생각이 그리 좋지 않았다. 안 좋았던 첫인상을 바꾸기 위해 원경릉은 왕강이 귀찮게 질문을 해도 정성스럽게 대답하려고 노력했다. “아니, 조금 아는 것뿐입니다.” 원경릉이 왕강에게 대답했다.“오! 그럼 아시는 건 다 말씀해 주세요!” 왕강이 말했다. 원경릉은 왕강에게 금성과 지구와의 거리, 표면온도 등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을 모두 알려주었다. 왕강에게 설명하는 그녀의 모습을 본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졌다.‘왕비가 원래 저렇게 박식했었나? 전보다 훨씬 밝고 사회성도 좋은 것 같네?’술자리는 점점 무르익었고 원경릉이 화장실을 간 사이에 소홍천이 우문호에게 말했다.“왕비님이 전하고 많이 달라진 것 같네요. 하지만 본성이 어디 가겠습니까?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왕야께서 너무 왕비를 믿지는 않았으면 좋겠네요. 만약 왕비가 전처럼 부중에서 사건을 일으킨다면 공든 탑이 무너질 수도 있어요.”밖에서 자신의 얘기를 들은 원경릉은 발걸음을 멈추고 우문호가 그에게 어떻게 대답하는지 들었다. “그래, 자네가 말하는 건 본왕도 잘 알지. 하지만 본왕이 왕비를 여기까지 데리고 왔으니 내가 정말 큰일을 당한다면 그녀도 책임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야.
기왕은 큰 손해를 보았지만 오히려 분수를 지킬 수 있었다. 며칠 후 기왕비가 왔을 때, 기왕부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자 옆에서 듣던 사식이가 기왕이 큰일을 꾸미고 있는게 아니냐며 의심했고, 기왕비는 원경릉에게 그는 자기 코가 석자라 지금 당장 큰일 꾸밀 수 없다며 안심시켰다. 저주인형으로 모함을 받은 것은 기왕비가 은화 1만 냥을 주어 넘어갔고, 사건이 일단락 된 틈을 타서 기왕비는 은밀하게 추후의 일을 설계했다. 그녀는 그 계획에 필요한 사람들에게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그러는 도중 기왕의 온 정신이 주명양에게 쏠려있었다. 그는 주명양을 통해 주씨 집안의 힘을 얻어 태자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주명양? 주씨 가문은 절대로 주명양의 말을 듣지 않을 겁니다.”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겠죠. 그가 주씨 가문의 힘을 얻고 싶다면 그러라고 하세요. 조정에 공을 세웠어야 힘을 싣기라고 하지, 공보다 실이 많으니 주씨 가문이 미쳤다고 기왕같이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겠습니까? 초왕이야 세운 공이 많으니 문제없을 겁니다. 부황께서 다섯째를 오해하고 있는 부분도 언젠가는 잘 해결될 거고요.”원경릉은 그녀의 말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맞다, 호비(扈妃)가 입궁했다면서요?” 기왕비가 물었다.“예, 드디어 그녀의 소원이 이루어졌네요.”“가만 보면 호비는 참 머리가 좋습니다. 친왕과 혼인을 했으면 태자 자리를 두고 싸우기 밖에 더 했겠습니까? 태세 파악이 빠른거죠. 지금 황제를 모시는 여인들을 보세요. 하나같이 다 나이가 들었잖아요. 어리고 예쁜 호비가 들어갔으니 황제가 얼마나 총애하겠습니까?”“예, 맞습니다.” 원경릉은 기왕비의 말에 일부분 동의했다. 친왕과 결혼해서 매일 마음 졸이며 사느니 황제의 후궁이 되어 편하게 사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우문호가 경조부로 복직한 이후, 밀린 업무를 처리하다 보니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원경릉도 어느덧 임신을 한 지 6개월이 되었고, 전보다 몸이 많이 무거워져서 조금만
안으로 들어온 우문호는 원경릉의 다리를 주물렀고 만아와 희상궁은 그녀를 부축했다. 원경릉은 물에 젖은 술빵 같은 얼굴로 엉엉 울었고, 우문호는 영문도 모른 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괜찮아. 울지 마. 내가 있잖아.” 우문호가 그녀를 다독였다.원경릉은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축복해 주니, 임신은 좋은 일이라고 여기며 불안한 마음이 들 때마다 엄마가 되는 과정이 쉬울 리가 없지 않냐며 자신을 다독였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걱정과 불안이 터지자 눈물이 줄줄 흘렀고 이런 마음이 들 때마다 내가 엄마가 될 자격이 되는 게 맞을까? 내 인생은 이제 끝인 건가? 누군가의 엄마로 살기에는 아직 난 젊은데 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뱃속의 아이들에게 죄책감이 들었다. “우문호, 내 생에 임신은 다신 없어. 내 목에 칼이 들어와도 다시는 없을 일이야!”“알겠어. 앞으로 절대 그럴 일 없게 할게.”우문호가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얼마나 울었는지 원경릉의 두 눈이 눈물에 절어 퉁퉁 부었다. “쳐다보지 마, 나 지금 추한 거 나도 안다고!”“아냐, 넌 언제나 예뻐.”원경릉은 우문호의 입발린 말에 고개를 휙 돌렸다. “너 혼자 입궁해. 난 안 갈래.”우문호는 그녀를 끌어안았다. “너 안 가면 나도 안 가. 그냥 단둘이 왕부에서 새해를 맞이하자.”“그건 안돼. 부황께서 분명히 뭐라고 하실 거야.”“그래서 뭐? 지금 나에게 중요한 건 너야.”우문호는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잠시 후, 진정이 된 원경릉이 조용히 우문호에게 말했다.“아까는 감정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던 것 같아…… 빨리 준비해서 입궁하자.”“갈 수 있겠어? 아무도 강요하지 않아. 가고 싶지 않으면 안 가도 돼. 궁 안에 사람도 많을 거고 불편할 수도 있으니까.” 우문호는 원경릉이 스트레스를 받을까 봐 걱정이 됐다.“그래도 가자. 며칠 전에 상선께서 말씀하시길, 태상황님께서 건강이 좋지 않다고 하셨어. 내가 입궁해서 한 번 봐야겠어.”“너는 지금
위왕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혹시 복수하려는 것이냐?”“복수가 아니라, 그저 사실을 말할 뿐입니다.”안왕은 그에게 책임을 떠넘겨 혼자 감당하게 한 위왕을 보며 만족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위왕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어찌 다섯째에게 설명할지 생각해 보거라. 보책은 아직 네 손안에 있잖냐.”안왕은 여전히 두꺼운 보책을 손에 쥐고 있었다. 잃어버릴 수 없는 귀한 것이지만, 가만히 들고 있기도 거슬렸다.이렇게 골치 아픈 상황이 생길 줄 알았다면 차라리 꾀병을 부리고 위왕 혼자 오게 한 것이 더 나았을 텐데 말이다. 그렇게 각자 방으로 돌아가 목욕을 한 후, 막 침대에 누웠을 때 택란이 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두 사람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방문을 열고, 바로 택란을 만나러 나갔다.안왕은 보책을 가지려 했으나, 택란에게 넘겨받으면 곧 금나라 황후임을 인정하는 셈이 되므로, 절대 넘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적어도 어린 황제는 아직 그들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택란은 두 분 큰아버지에게 인사를 드린 후 자리에 앉아 말했다.“큰아버지, 오늘 일은 아바마마께 절대 말하지 마십시오.”안왕도 원하던 바였기에 다급히 답했다.“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먼저 네 아버지한테 숨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체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른다.”“예. 저도 그것이 걱정입니다.”택란의 가장 큰 걱정은 바로 아버지였다.“어린 황제도 참, 어린 시절의 약속마저 진지하게 받아들이다니… 설령 너와 혼사를 약속했다 해도, 네가 승낙하지 않을 것 아니더냐.”안왕이 말하자 택란은 잠시 머뭇거리며 말했다.“그때 이미 동의했었습니다.”다만 그때는 그저 그를 달래, 그의 상처가 심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 뿐이었다.“승낙했다니?”안왕과 위왕은 서로 놀란 표정으로 시선을 마주했다. 그러면 이 일은 전적으로 어린 황제의 탓도 아니다.“하지만 넌 그때 겨우 여덟, 아홉 살이었다. 그저 아이들의 장난일 뿐일 테니, 동의했다고 해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도 된다.”위왕이 재빨
“폐하, 공주께서 폐하가 드리신 선물을 받지 않으신 것입니까?”언제 올라온 건지, 진이는 어느새 그의 곁에 서 있었다.“응.”경천은 뒤돌아 상자와 두 개의 옥패를 바라보았다. 그가 오랜 시간 동안 배우며 수많은 옥을 망친 끝에 겨우 지금과 같은 모습을 조각해 낸 것이었다.하지만 그녀는 받지 않았다.“속상해하지 마십시오. 공주께서 아직 어리셔서 폐하의 노고를 다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깐요.”진이가 위로하자 경천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니, 그녀는 아주 잘 알고 있어서 받지 않는 것이다.”진이가 잠시 멈칫했다.“너무 잘 안다니요? 그런 것 같진 않아 보였는데요.”경천은 이미 실망한 기분을 떨쳐버렸고, 대신 굳건한 의지를 다졌다.“진아, 나는 그녀의 뜻을 완전히 이해했다. 그녀는 먼저 좋은 황제가 되어주기를 바란단다. 이곳을 떠나기 전, 나에게 한 나라의 군주라 하지 않았냐? 황제로서 역할을 다하기를 바라는 것이다.”“아... 그런 것입니까!”진이는 비록 이해하지 못했지만, 황제가 속상해하지 않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택란 일행은 궁을 나섰다. 냉명여가 그녀에게 물었다.“누나, 어찌 황제가 주신 옥패를 받지 않으시나요? 그를 싫어하시는 것입니까?”택란은 웃으며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나는 절대 그를 싫어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강단 있는 황제이고, 뛰어난 통치로 금나라가 정권 이양 위기를 넘길 수 있도록 했다. 게다가 그는 두 나라의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두 나라에 평화를 가져왔다.”“그럼, 어찌 그의 선물을 받지 않으셨습니까?”냉명여는 다른 사람의 선의를 함부로 거절하면 안 된다고 배웠기에, 그녀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택란이 답했다.“그 옥패가 약속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명여야, ‘약속’이라는 말은 무거운 의미를 지니고 있다. 만약 네가 그것을 이행할 능력이 없다면, 함부로 약속하지 말아야 하는 법이다.”“하지만 그도 누나와 혼사를 올리겠다고 한 말에 대한 약속을 지키려는 것 아닙니까?”“그래. 하지만 나
경천은 그녀의 말을 반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네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다."택란이 말했다."어쩌면 5년 후에는 오늘 한 모든 일이 어리석고 충동적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좋아하는 여인을 만나게 될 때, 그 감정이 단순한 사모인지 은혜 때문인지 알게 되실 것이고, 오늘의 행동을 후회하게 될지도 모릅니다."경천은 단 한 마디만 응한 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태도가 이렇게나 분명하니, 절대 그런 말로 그녀를 얽매여 부담을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오늘 한 모든 일은 그의 결정이며 그의 태도였다. 그녀는 몰라도 되고,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긴 하지만, 그는 언제나 그녀를 기다릴 것이었다.그리고 그녀의 인정을 얻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택란은 한숨 놓은 듯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해한다니 다행입니다.""알고 있다."경천의 얼굴은 약간 창백했지만, 애써 미소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삼 태감이 책자를 가져왔다. 경천은 그것을 택란에게 건넸고, 택란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았다. 그가 제시한 조건은 매우 공정했으며, 심지어 약도성에 이익을 양보한 정도였다.책자를 접은 후, 그녀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우리 약도성을 생각해 줘서 고맙습니다. 두 나라의 원한을 풀기 위해 애써줘서, 그리고 약도성의 백성과 조정이 화해할 수 있도록 도와줘서 고맙습니다.""알고 있었던 것이냐?"경천이 다소 놀라며 묻자, 택란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예. 알아봤습니다.""오해하지 마라. 그저 너를 위하여 한 일이 아니니, 부담 갖지 않아도 된다."그는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해명했다.택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오해하지 마시지요. 저는 정말 부담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를 위해 이렇게 많은 일을 해줘서 고마울 뿐입니다. 오늘도 사실 많이 감동했습니다. 다만, 저는 아직 혼사에 대해 논할 나이가 아니고, 사적인 감정보다는 다른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직 어리고, 앞으로 혼사를 하더라도 반드시 아바마마
손에 쥐니, 차가운 촉감이 느껴졌다. 그 옥의 차가운 느낌이 서서히 스며들자, 그녀는 기분이 좋았다.그는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놀라운 표정을 지었을 때, 그는 미세하게 안도하며, 그녀가 좋아할 것이라 믿었다."직접 만든 것입니까?"택란은 마음에 든 듯 손에 꼭 쥐고 있었다. 그녀의 밝은 눈동자에는 존경이 가득했다."응!"그는 힘주어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마음에 드냐?""예. 정말 마음에 듭니다!"택란도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더욱 빛나는 미소를 지었다.그러자 그가 약간 흥분된 표정으로 물었다."그럼, 이걸 직접 나에게 선물해 줄 수 있느냐?""예?"택란이 잠시 멈칫하며, 놀라 물었다."저에게 준 선물이 아닙니까?"그가 미세하게 떨리는 손끝으로 소매 주머니에서 또 다른 옥 조각을 꺼내 손바닥에 올려놓으며, 진지하게 말했다."이건 내가 네게 직접 주고 싶은 것이다."택란은 그가 손에 든 것을 바라보았다. 옥질도 동일하게 맑고 투명했고, 손바닥의 선도 보일 정도였는데, 그 조각에는 경천의 모양이 새겨져 있었다.옥에는 미소를 짓고 있는 준수한 그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고,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 입고 있던 옷이 새겨져 있었다. 비록 색은 알 수 없었지만, 자수가 명확하게 새겨져 있었다.그녀는 기억력이 매우 좋았기에, 그때의 기억이 선명히 떠올랐다.그녀는 두 개의 옥을 손바닥에 놓았다. 그제야 그녀는 옥에 3년 전 그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가 시간을 되돌려 3년 전 만남을 담은 것이었다!경천은 택란을 바라보며, 애써 차분함을 유지하려 했다. 하지만 심장은 거의 목구멍까지 올라올 듯했다.택란이 두 개의 옥을 서둘러 상자에 다시 넣으며 말했다."두 개 모두 오라버니께서 먼저 가지고 있으세요."경천은 눈시울을 붉히며 다시 건네받은 상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눈을 내리깔며, 애써 실망이 드리운 눈빛을 숨겼다.삼 태감이 정교한 음식을 올려놓았고, 모두 택란이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그녀는 가볍게 숨을 내쉬며, 알 수 없는 작은 흥분을 억누르고, 표정을 고쳐서 천천히 돌아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북당 백성인 란이 언니와의 혼사는 다 거짓인 겁니까?"경천의 동공이 흔들렸다."혹시... 화가 난 것이냐?""아닙니다."택란이 고개를 젓자, 밝은 빛이 그녀의 깨끗한 얼굴에 비쳤고, 고르게 정리된 이마 밑의 눈동자는 다시 차분해졌다."그런데 어찌 사람을 시켜 저를 찾고 있다고 직접 저게 소식을 전하지 않으셨습니까? 만약 편지를 보냈다면, 저도 오라버니를 만나러 왔을 것입니다. 심지어 혼사에 하객까지 청하며 일을 이렇게나 크게 벌였는데, 대체 어떻게 수습하려고 하십니까?"그는 갑자기 결단을 내린 듯, 천천히 그녀 앞에 섰다. 그러고는 그녀의 까만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위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수습할 필요 없다. 나는 이미 천하에 나의 황후가 우문택란이라고 선언했다. 나는 그녀가 어서 크기만을 기다리고 있다."택란은 순간 놀라하며, 굳어진 얼굴로 물었다.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경천은 그녀가 화가 난 것 같아, 마음이 내려앉았다. 그의 눈동자엔 어두운 그림자가 깔렸고, 이내 조심스레 물었다."응할 수... 있겠느냐?"택란은 잠시 망설였다. 기억 속의 그 소년이 지금 별빛을 받으며 그녀 곁으로 돌아왔다. 이전의 그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10년 후 그가 죽지 않으면 돌아와서 그녀를 부인으로 맞겠다고 열정적으로 말했었다. 그 열정이 가득한 목소리는 지금도 그녀의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그런 과거와 현재가 얽혀 버리자, 대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저는..."경천은 그녀가 망설이는 모습을 보며,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는 그녀의 반응이 너무 당황스러워서, 얼굴을 조금 숙이며 말했다."지금 바로 대답할 필요 없다. 몇 년 후라도, 10년, 아니 20년 후라도 괜찮다.""하지만...""아니, 말하지 말거라."그는 방금까지만해도 가득찼던 자신감을 더 이상 보여줄 수 없
냉명유는 팔짱을 낀 채 검을 가슴 앞으로 옮기며, 차갑게 말했다."누님께서 어디로 가든, 저도 무조건 함께 갈 것입니다."“하… 하지만."삼 태감이 무척 난감해했다."그래. 함께 가자. 이 거월통천각이 정말 달을 딸 수 있는지 어디 가서 보자꾸나!"그러자 택란이 웃으며 말했다.주 아가씨는 조금 의심스러웠다. 정말 공주가 만나고 싶다면, 어찌 공주한테 이렇게 높은 계단을 오르게 할 수 있는가?그러고는 계단 위에 새겨진 난초꽃을 힐끗 보고는 순간 멈칫했다. 시선을 위로 올려보니, 계단의 각 층마다 난초꽃이 새겨져 있었다.황제가 자신의 그리움을 돌계단에 새긴 것이었다!택란도 계단을 오르며, 이 사실을 눈치챘다.게다가 각 난초의 형태와 크기는 매우 똑같았다. 처음에는 선이 조금 거칠게 느껴지긴 했지만, 후에는 점점 더 섬세하고 부드러워 보였다.이건 분명 같은 사람이 새긴 것 같았다. 그가 직접 조각한 것일까? 금나라가 이곳으로 수도를 옮긴지 아직 1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잠시 후, 그들은 거월통천각의 가장 높은 층에 도착했다. 다행히 냉명여는 문 앞에서 멈추고 안까지 들어가지 않았다.택란은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는데, 안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네개의 용 모양 기둥이 세워져 있었고, 네 모서리에는 각각 올라가 쉴 수 있는 정자가 있었다. 정자에는 난간이 둘러져 있었으며, 가운데에는 탁자와 두 개의 의자가 놓여 있었다. 떠힌. 네 면에 걸려져 있는 대나무 커튼이 걷혀 있어, 사방에서 밖을 볼 수 있었다.그 사이에서 청색 비단옷 차림의 남자가 통천각 옆 난간에 기대어 택란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는 매우 긴장한 듯 손과 발을 살짝 떨고 있었다. 별빛처럼 맑은 눈동자에 약간 숨이 가쁜 듯 보였다. 그는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그녀를 보자마자 이내 눈시울을 붉혔다.재회를 위해 최선을 다하며 가장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에, 그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이 만남을 특별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반짝이는 별들도 그중 하나였다.하지만
손님들이 하나둘씩 떠나자, 경천 황제는 서둘러 궁으로 돌아가 푸른 비단옷으로 갈아입었다.옅은 청색 옷자락에, 소매 끝에는 난초꽃이 수놓아져 있었고, 나머지 부분은 어두운 구름 문양으로 수놓아져 있었다. 이 옷감은 북당에서 온 것이었다."폐하, 꼬마 은인께서 궁문에 도착하셨다고 합니다."삼 태감이 와서 보고했다."좋소."그는 거울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깊은숨을 내쉬었다."택수운천으로 가겠네."택수운천은 그가 즉위한 후, 궁궐 안에 지은 새 궁전으로, 세 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궁전 옆에는 거월통천각이 있었는데, 이는 량주성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거월통천각 안에 있으면 마치 손바닥에 달을 담을 수 있을정도로 웅장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거월통천각에서 멀게는 약도성과 량주가 인접한 산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녀가 생각날 때면, 늘 거월통천각의 가장 높은 층으로 올라가 풍경을 멀리 바라보곤 했다."진이야, 너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해 본 적이 있느냐?"그가 준수한 옷차림으로 난간에 기대어 먼 곳을 바라보며 물었다. 바람이 서서히 불며 청색 옷자락이 휘날리자, 옷자락의 네 끝에 박힌 고급스러운 야명주가 그의 선명하고 잘생긴 얼굴을 비추었다.그때, 저 멀리서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궁 시위를 따라, 아치과 복도를 지나 거월통천각으로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그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젊은 금군 통령 진이가 그의 모습을 보고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그런 적 없습니다.""사모의 마음을 품어보거라. 떨리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느낌만큼 좋은 것이 없다."그는 그녀를 멍하니 보며 말했다. 천천히 다가오는 탓에 그녀의 얼굴이 자세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13세 전까지의 그의 인생에는 나라와 백성들 뿐이었지만, 13세 이후 그의 인새은 온통 그녀뿐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지금 그녀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진이는 황제의 시선을 따라, 천천히 다가오는 세 명을 보며
안왕은 보책을 받아 든 순간, 갑자기 무엇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정확히 어떤 점이 이상한지 말로 설명할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일이 다 이상하게 느껴졌다.보책을 펼쳐 안에 적힌 이름을 본 순간 그는 드디어 이상한 점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게 되었다.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굳어진 표정으로 경천 황제를 바라보았다.경천 황제는 얼굴에 미소를 띠며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조사를 통해 드디어 그녀의 이름을 알게 되었소. 그녀의 이름은 우문택란이오. 금나라 황후의 이름은 우문택란이네. 난 반드시 그녀를 찾아낼 것이오. 만약 그녀가 황후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황후의 자리는 그녀를 위해 계속 비워둘 것이네.”위왕은 온몸에 식은땀을 흐르는 탓에 두 손을 급히 움켜잡았다. 방금 황제가 보책을 그의 손에 올리지 않아, 그가 받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정말 다섯째에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다!안왕은 어두워진 안색으로 자리에서 물러나 이를 악물고 낮은 소리로 위왕에게 말했다.“방금까지도 어린 황제에게 어리석다고 했건만. 이렇게 계책에 능하고 이따위 교묘한 계책으로 우리 형제를 그와 같은 편에 서게 만들다니...!”위왕은 또 한 걸음 물러서며 아무런 표정 없이 말했다.“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구나. 방금 술을 두 잔 마셔 조금 취한 터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구나. 아니, 지금 들고 있는 그건 무엇이냐?”안왕은 단단한 그의 팔을 비틀어 버리고 싶을 정도로 분노했다.하지만 이 상황 속에서 연회는 계속되었고, 사람들의 감정은 점점 고조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북당 황제의 작은 공주도 우문택란이라는 말을 꺼냈다.그 말에 다들 그 당시 금나라 황제를 구한 사람이 북당의 작은 공주가 맞는지 추측하기 시작했다.정말 북당 공주가 맞는다면, 금나라 황제도 참 배짱이 큰 것이다. 사실상 북당 황실이 금나라 황제를 구했다고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만약
경천은 위왕의 말을 듣자, 마치 마음속 큰 돌덩이가 내려간 듯 후련해 보였다. 그는 그러고는 궁인에게 술을 올리게 해 술잔을 여러 차례 돌린 후, 아래를 둘러보며 말했다.“오늘 여러분께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리겠소. 이 이야기를 듣고 나면 오늘 정혼연이 어찌 열리게 되었는지 알게 될 것이오.”그러자 모두가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말에 당황을 금치 못하며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정혼연이든 혼례든, 이런 자리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이때, 위왕이 안왕의 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다섯째에게 서신을 보내야겠다. 금나라에서 실권을 쥐고 있는 자가 황제가 아닐 수도 있다. 진국왕이 아직 살아 있고, 이 황제가 꼭두각시일지도 모른다.”“맞소. 확실히 조금 병신같아 보이네.”안왕도 동의했다.참고로 ‘병신같다’는 표현은 안왕이 조카에게서 배운 단어였다.“이 이야기는 3년 전쯤에 있었던 일이오.”이내 경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의 목소리에는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이 담겨져 있었다.“당시 금나라는 진국왕이 집권하고 있었는데, 그는 나를 대신해 금나라의 군주가 되려 했소. 이 사실은 여러분도 알고 있을 것이오. 그때 난 진국왕과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었소. 진국왕이 왕위를 빼앗으려 나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민다고 하기에, 나도 어쩔 수 없이 반격에 나섰는데, 그 과정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소. 그때 나를 구해준 이가 바로 란이라는 소녀이오. 만약 그녀가 없었다면 난 이미 죽은 목숨이었을 것이오. 그 당시 나는 란이의 정체도 몰랐고, 그저 약도성 사람이라는 것만 알았을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소. 상처를 치료하며 그녀와 며칠을 함께 보냈고, 황권을 되찾으면 그녀를 부인으로 맞이하겠다고 약속했네. 하지만 그녀가 나를 구했다는 사실이 진국왕에게 알려졌고, 진국왕이 사람을 보내 그녀의 집에 불을 질렀소. 그리고 그곳에서 시신이 발견되었소.”모두가 진국왕이 불을 질렀다는 말에 멈칫했다.금나라 황제가 이렇게 비극적인 황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