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경릉은 그들을 보며 하눔을 내쉬었다. ‘먹고 마시고 무슨 워크숍 왔나? 이럴 시간이 없을 텐데……’ 그들을 한심하게 보고 있던 원경릉에게 왕강이 다가왔다. “그럼 왕비님은 다른 별들도 잘 아시겠네요? 달도 연구해 보셨습니까?”소홍천은 웃으며 “왕비께서는 달에 토끼와 계수나무가 있다는 걸 알고 계시겠지. 그렇죠?”라고 말했다. 그의 말투에는 약간의 조롱이 담겨있었다.우문호는 소홍천의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그는 남편으로서 원경릉의 기를 살려주고 싶었다. “경릉아, 금성이 얼마나 멀리 있는지 말해줘.”“왕비께서는 금성도 아십니까?” 왕강의 두 눈이 반짝였다. 원경릉은 그들 앞에서 박식한 아내의 면모를 보여달라는 우문호의 눈빛을 읽었다. 예전에 원주 원경릉 때문에 그들은 원경릉에 대한 생각이 그리 좋지 않았다. 안 좋았던 첫인상을 바꾸기 위해 원경릉은 왕강이 귀찮게 질문을 해도 정성스럽게 대답하려고 노력했다. “아니, 조금 아는 것뿐입니다.” 원경릉이 왕강에게 대답했다.“오! 그럼 아시는 건 다 말씀해 주세요!” 왕강이 말했다. 원경릉은 왕강에게 금성과 지구와의 거리, 표면온도 등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을 모두 알려주었다. 왕강에게 설명하는 그녀의 모습을 본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졌다.‘왕비가 원래 저렇게 박식했었나? 전보다 훨씬 밝고 사회성도 좋은 것 같네?’술자리는 점점 무르익었고 원경릉이 화장실을 간 사이에 소홍천이 우문호에게 말했다.“왕비님이 전하고 많이 달라진 것 같네요. 하지만 본성이 어디 가겠습니까?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왕야께서 너무 왕비를 믿지는 않았으면 좋겠네요. 만약 왕비가 전처럼 부중에서 사건을 일으킨다면 공든 탑이 무너질 수도 있어요.”밖에서 자신의 얘기를 들은 원경릉은 발걸음을 멈추고 우문호가 그에게 어떻게 대답하는지 들었다. “그래, 자네가 말하는 건 본왕도 잘 알지. 하지만 본왕이 왕비를 여기까지 데리고 왔으니 내가 정말 큰일을 당한다면 그녀도 책임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야.
기왕은 큰 손해를 보았지만 오히려 분수를 지킬 수 있었다. 며칠 후 기왕비가 왔을 때, 기왕부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자 옆에서 듣던 사식이가 기왕이 큰일을 꾸미고 있는게 아니냐며 의심했고, 기왕비는 원경릉에게 그는 자기 코가 석자라 지금 당장 큰일 꾸밀 수 없다며 안심시켰다. 저주인형으로 모함을 받은 것은 기왕비가 은화 1만 냥을 주어 넘어갔고, 사건이 일단락 된 틈을 타서 기왕비는 은밀하게 추후의 일을 설계했다. 그녀는 그 계획에 필요한 사람들에게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그러는 도중 기왕의 온 정신이 주명양에게 쏠려있었다. 그는 주명양을 통해 주씨 집안의 힘을 얻어 태자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주명양? 주씨 가문은 절대로 주명양의 말을 듣지 않을 겁니다.”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겠죠. 그가 주씨 가문의 힘을 얻고 싶다면 그러라고 하세요. 조정에 공을 세웠어야 힘을 싣기라고 하지, 공보다 실이 많으니 주씨 가문이 미쳤다고 기왕같이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겠습니까? 초왕이야 세운 공이 많으니 문제없을 겁니다. 부황께서 다섯째를 오해하고 있는 부분도 언젠가는 잘 해결될 거고요.”원경릉은 그녀의 말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맞다, 호비(扈妃)가 입궁했다면서요?” 기왕비가 물었다.“예, 드디어 그녀의 소원이 이루어졌네요.”“가만 보면 호비는 참 머리가 좋습니다. 친왕과 혼인을 했으면 태자 자리를 두고 싸우기 밖에 더 했겠습니까? 태세 파악이 빠른거죠. 지금 황제를 모시는 여인들을 보세요. 하나같이 다 나이가 들었잖아요. 어리고 예쁜 호비가 들어갔으니 황제가 얼마나 총애하겠습니까?”“예, 맞습니다.” 원경릉은 기왕비의 말에 일부분 동의했다. 친왕과 결혼해서 매일 마음 졸이며 사느니 황제의 후궁이 되어 편하게 사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우문호가 경조부로 복직한 이후, 밀린 업무를 처리하다 보니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원경릉도 어느덧 임신을 한 지 6개월이 되었고, 전보다 몸이 많이 무거워져서 조금만
안으로 들어온 우문호는 원경릉의 다리를 주물렀고 만아와 희상궁은 그녀를 부축했다. 원경릉은 물에 젖은 술빵 같은 얼굴로 엉엉 울었고, 우문호는 영문도 모른 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괜찮아. 울지 마. 내가 있잖아.” 우문호가 그녀를 다독였다.원경릉은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축복해 주니, 임신은 좋은 일이라고 여기며 불안한 마음이 들 때마다 엄마가 되는 과정이 쉬울 리가 없지 않냐며 자신을 다독였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걱정과 불안이 터지자 눈물이 줄줄 흘렀고 이런 마음이 들 때마다 내가 엄마가 될 자격이 되는 게 맞을까? 내 인생은 이제 끝인 건가? 누군가의 엄마로 살기에는 아직 난 젊은데 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뱃속의 아이들에게 죄책감이 들었다. “우문호, 내 생에 임신은 다신 없어. 내 목에 칼이 들어와도 다시는 없을 일이야!”“알겠어. 앞으로 절대 그럴 일 없게 할게.”우문호가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얼마나 울었는지 원경릉의 두 눈이 눈물에 절어 퉁퉁 부었다. “쳐다보지 마, 나 지금 추한 거 나도 안다고!”“아냐, 넌 언제나 예뻐.”원경릉은 우문호의 입발린 말에 고개를 휙 돌렸다. “너 혼자 입궁해. 난 안 갈래.”우문호는 그녀를 끌어안았다. “너 안 가면 나도 안 가. 그냥 단둘이 왕부에서 새해를 맞이하자.”“그건 안돼. 부황께서 분명히 뭐라고 하실 거야.”“그래서 뭐? 지금 나에게 중요한 건 너야.”우문호는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잠시 후, 진정이 된 원경릉이 조용히 우문호에게 말했다.“아까는 감정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던 것 같아…… 빨리 준비해서 입궁하자.”“갈 수 있겠어? 아무도 강요하지 않아. 가고 싶지 않으면 안 가도 돼. 궁 안에 사람도 많을 거고 불편할 수도 있으니까.” 우문호는 원경릉이 스트레스를 받을까 봐 걱정이 됐다.“그래도 가자. 며칠 전에 상선께서 말씀하시길, 태상황님께서 건강이 좋지 않다고 하셨어. 내가 입궁해서 한 번 봐야겠어.”“너는 지금
우문호는 원경릉을 위해 기존의 마차보다 더 안정감 있게 특수 제작하였다. 마차 내부에도 푹신한 방석과 이불을 준비해 두 사람은 누워서 궁으로 갈 수 있었다.우문호의 품에 안겨있던 원경릉이 감은 눈을 번쩍 뜨더니 “앞으로 이 세 녀석들이 말썽을 피우면 내가 가만두지 않을 거야!”라고 말했다. “넌 나설 필요 없어. 아빠인 내 선에서 싹 정리할 테니까.”우문호가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아이고 무서워라!”“어리다고 봐주지 않을 거야.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빠인 내가 먼저 알려줘야지.”원경릉은 그를 빤히 보더니 한숨을 쉬며 그의 품에 기대었다. “왜 그러느냐, 어디 불편한 곳이 있느냐?”우문호가 물었다.“우문호…… 난 네가 황제가 되는 게 싫어.”“왜 갑자기 그런 말을 하는 것이냐?”우문호가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보다가 씩 웃었다.“설마 내가 삼천궁녀를 들일까 무서운 것이냐? 그게 걱정이라면 안심하거라. 내가 황제가 되더라도 그럴 일은 없을 것이야.”“네가 후궁을 들이든 말든 상관없어. 난 네 선택에 따를 거야. 내가 걱정하는 건 우리 애들이 지금의 친왕들처럼 될까 봐 그게 걱정이야. 지금 친왕들끼리 죽기 살기로 태가 책봉이 되기 위해 싸우고 있잖아. 만약 우리 애들도 서로 미워하고 죽이려고 들면 어떡해?”우문호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질문에 놀라서 멍해졌다. “글쎄…… 혹시 세 쌍둥이가 딸 둘, 아들 하나면 되지 않나?”“내 마음대로 그게 되냐고! 만약에 아들만 셋이면 어떡해?”우문호가 설마 하는 표정으로 원경릉을 보았다. 그는 내심 딸 둘, 아들 하나가 태어나길 바랐다. 원경릉을 닮은 토끼 같은 딸이 둘이라면 우문호는 매일이 행복할 것 같았다.“딸 하나에 아들이 둘이어도 문제네……” 원경릉이 말했다.우문호는 그녀의 배를 만지며 “어쩌지?”라고 물었다.“몰라. 내가 어떻게 알아!”“그럼 내가 황제 안 하면 되겠네.”“그게 말이 돼? 황제가 되겠다고 사람들까지 꾸려놓고는!”“그건 내 직위를 굳건하게 하기 위함이지
“하루가 다르게 몸이 무거워지시지 않습니까? 소인이 부축해 드리겠습니다.” 상선이 원경릉을 태상황 앞까지 부축했다. “다섯째, 네가 초왕비 대신에 절을 하고 무릎을 꿇고 앉거라.”태상황이 말했다.태상황은 원경릉의 작은 몸집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우문호는 원경릉을 대신해 태상황과 명원제에게 절을 했다. “초왕비는 몸이 무거울 테니, 움직이지 말고 저녁 식사 때까지 여기서 가만히 있거라.”태후가 말했다. “예!” 원경릉이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다가 다시 앉았다.“요즘 몸은 좀 어떤가?” 명원제가 물었다.“별로 좋지 않습니다. 피곤한데도 잠을 잘 못 자고 식욕도 없습니다.”“모든 여자들이 하는 임신에 넌 참 유별나구나. 어미가 됐으면 마음가짐도 달라져야지 언제까지 그렇게 어리광 부릴 거야? 임신도 마음먹기 나름이니 마음을 굳게 먹어라.” 명원제가 말했다. 임신과 동시에 여자는 호르몬의 노예가 된다. 임신하고 출산하면 여자 몸만 망가지지 남자들이 열 달 동안 달라질 게 뭐가 있는가? 전과 같이 일하고 밥 먹고 놀고 술 마시고 남자들은 부인이 애 낳는데 기분만 내지, 뭘 안다고 훈수질인가?원경릉이 명원제의 말을 듣고 조용히 고개를 숙인 채 한숨을 내쉬자 그걸 본 우문호가 명원제에게 말했다.“부황께서는 꼭 임신을 해본 것처럼 말씀하십니다. 임신을 해보지 않은 저희 남자들이 어떻게 임신과 출산의 고통을 알겠습니까?”우문호의 말에 명원제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그럼 너는? 너도 남자 아니냐? 임신과 출산의 고통을 네가 아느냐?” 명원제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소자, 매일 밤 자리가 불편해도 배 때문에 뒤척이지 못하고 한 자세로만 자야 하는 초왕비를 보니 마음이 아픕니다. 퉁퉁 부은 다리로 소자의 신발도 맞지 않는 그녀의 발을 보고 있으면 소자가 아이를 낳을 수만 있다면 대신 낳아주고 싶은 심정입니다. 전에는 몰랐는데, 이 세상에 모든 어머니는 위대하다는 것을 초왕비를 보고 깨달았습니다.”“위대하다고? 여자로 태어나 아이를 낳는
태상황은 명원제를 보는 원경릉의 눈빛을 보고 기분이 언짢았다. “눈빛이 왜 그러느냐?”“예? 아무것도 아닙니다.” 원경릉이 급히 눈을 내리깔았다. 태상황은 헛기침을 하더니 원경릉을 보았다. “몸이 무거울 텐데, 짐의 건강상태를 봐줄 수 있겠느냐?”“예! 당연하죠!”태상황은 심근경색에 고혈압이 있는 편이라 건강상태가 좋다고 할 수 없었지만, 원경릉은 늙은이에게 건강상태가 좋지 않다고 말해봤자 자극만 될 뿐이라고 생각해 말을 아꼈다.그녀는 태상황의 상태를 보고 약을 처방했다.“시간이 있으며 정화군주에게 가서 말동무를 해주거라. 그 상태로 혼자 있으면 위험할 것 같아.”원경릉은 태상황이 정화군주에 대해 말을 꺼낼 줄은 몰랐다는 듯 깜짝 놀랐다. 원경릉은 태상황에게 시간을 내서 가보겠다고 하며, 만약 시간이 없다면 사람을 시켜서라도 정화군주의 안위를 확인하겠다고 약속했다.원경릉이 건곤전에서 나오는 데 중년의 남자가 원경릉에게 인사를 했다. “왕비를 뵈옵니다.”원경릉은 미간을 찌푸리고 한참 동안 그의 얼굴을 보았지만 누구인지 생각나지 않았다.“저…… 누구시죠?”*섣달 그믐날 성대한 만찬이 펼쳐진 광명전(光明殿)에 원경릉이 조금 늦게 참석하는 바람에 사람들과 인사를 할 기회를 놓쳤다. 그녀가 자리에 앉자 저 멀리 혼자 참석한 제왕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모습은 다소 쓸쓸해 보였다. 고개를 돌리자 주명양이 기왕의 옆에 앉아있는 모습이 보였다. 주명양은 원경릉을 노려보며 기싸움을 하려고 들었지만 원경릉은 그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주명양과 상반되게 기왕비는 평온한 표정으로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초연하게 앉아있었다. 구황자(九皇子)와 열여덟 공주도 있었는데, 구황자의 모습은 활력이 넘쳐 보였지만 눈빛에는 뭔지 모를 불안함이 보였다. 열여덟 공주는 덕비(德妃) 옆에 앉아 그녀의 귀여움을 받고 있었다. 공주에게서 나오는 맑은 기운이 마치 해바라기 꽃 같았다. 황후는 인자한 미소를 띠며 광명전에 온 사람들 하나하나를 보았고, 태후는 손자와 손
사람들은 원용의가 말에 치이든 밟히든 신경 쓰지 않았다. 아마 그 말의 주인도 제왕부의 후궁을 다치게 했다는 것을 보고도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원경릉은 제왕에게 내일 원용의를 보러 왕부에 가겠다고 말했다. 왕부로 돌아온 원경릉은 피곤한 나머지 간단히 씻고 침대에 누웠다. “맞다! 부황께서 어서방으로 불러서 뭐라고 하셨어?”원경릉이 우문호에게 물었다.“별일 아니었어. 빨리 자.”우문호가 손을 뻗어 그녀의 눈꺼풀을 쓸었다.원경릉은 너무 피곤해서 더 이상 묻지 않고 바로 잠에 들었다.출궁 한 제왕도 마차에 올라 왕부로 돌아갔다. 그는 연회 내내 원용의 걱정 때문에 음식도 몇 점 먹지 못했고, 술도 많이 마시지 못했다. 그는 우문호를 부축해 초왕부 마차에 태운 후 자신도 마차에 몸을 실었다. 제왕은 오늘따라 원용의의 부재가 크게 느껴졌다. 게다가 추운 날씨 때문에 마음도 싱숭생숭했다. 주명취 때문에 제왕부가 불타버리자 그는 한동안 손왕부에 살다가 나중에는 별당으로 이사를 했다. 별당은 담장이 높지 않았으면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넘어 들어갈 수 있었다.사실 제왕의 기분이 좋지 않은 이유는 연회에 오기 전에 원용의와 말다툼을 했기 때문이다. 원용의는 다친 다리를 치료하겠다며 원씨 집안의 소개로 용한 어의를 모셨다. 원용의는 날이면 날마다 모실 수 있는 어의가 아니라며 이왕 이렇게 된 거 제왕에게도 진료를 보라고 했다. 만약 어의가 제왕을 진맥 했다면, 제왕이 병에 걸렸다고 거짓말을 했다는 게 발각될 것이다. 그는 그게 두려워 백방으로 거절했다. 원용의는 그런 그를 보며 화를 냈고, 제왕도 화가 나서 원용의에게 ‘진맥은 너나 해! 네가 죽든 말든 나와는 상관없다!’라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그 말을 들은 원용의는 충격을 받은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제왕은 말을 내뱉으면서 아차 싶었지만, 자존심 때문에 그녀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제왕이 예전에 주명취와 지낼 때는 자신의 잘못이 아니어도 주명취의 기분이 상할까 봐 바로바로 용서를 빌었었다
한밤중 경조부에서 온 비상 호출에 우문호가 원경릉이 깨지 않게 조용히 옷을 걸치고 나왔다. 그는 제왕이 암살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성문을 봉쇄하고 범인 수색에 착수했다. 그리고 서일, 탕양, 조어의를 데리고 제왕이 있는 별채로 향했다.숨이 붙어있는 게 용할 정도로 제왕의 모습은 참담했다. 원용의는 하인을 시켜 팔황자의 자금단을 구해오라고 한 후, 침상에 누워있는 제왕을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듯 눈물을 닦고 따듯한 물에 수건을 적셔와 제왕의 몸을 닦았다.수건으로 피를 닦는 게 무색할 정도로 수건이 붉게 물들었고 제왕의 맥박은 점점 희미해져 갔다. “왕야. 칼에 찔린 곳은 총 여덟 군데입니다. 손과 발, 그리고 복부, 심장 부근에 분포되어 있습니다. 지금 상태로 보면 제왕께서 숨을 쉬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입니다. 지금 상황으로는…… 초왕비를 모시고 이리로 올까요?” 조어의가 물었다.우문호는 심장이 철렁했다. 그는 서일과 탕양을 불러 원경릉과 금군을 별채로 데리고 오라고 했다. 또 사람을 궁으로 보내 황상에게도 이 사실을 알렸다. 우문호는 제왕을 이렇게 만든 자들이 누구인지 밝혀야만 했다. 그는 밖으로 나와 순찰병을 불렀다.“자객은 잡았느냐? 몇 명이야? 어떤 무기를 썼어?”“소인이 이곳에 도착했을 때, 자객들은 이미 도망가고 없었습니다. 들고 달아나는 모습에서 특이점을 발견했는데, 그들이 들고 있는 칼이 전부 칼등이 휘어진 칼이었습니다. 그리고 말이 화살에 맞은 걸 보니 화살을 쏘는 데 능한 것 같습니다.”“휘어진 칼?”“예, 맞습니다. 그리고 제왕이 큰 부상을 입은 것은…… 제왕을 지키는 호위들이 전원 사망했기 때문입니다. 이로 미루어 보아 자객들은 뛰어난 무공을 지녔습니다.”순찰병의 말을 들은 우문호는 분노에 찬 얼굴로 기왕부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기왕부에서 그를 포위했던 자들이 모두 등이 굽은 칼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자객은 대략 예닐곱 명이었을 겁니다.”“현장에서 칼을 발견했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