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으로 들어온 우문호는 원경릉의 다리를 주물렀고 만아와 희상궁은 그녀를 부축했다. 원경릉은 물에 젖은 술빵 같은 얼굴로 엉엉 울었고, 우문호는 영문도 모른 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괜찮아. 울지 마. 내가 있잖아.” 우문호가 그녀를 다독였다.원경릉은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축복해 주니, 임신은 좋은 일이라고 여기며 불안한 마음이 들 때마다 엄마가 되는 과정이 쉬울 리가 없지 않냐며 자신을 다독였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걱정과 불안이 터지자 눈물이 줄줄 흘렀고 이런 마음이 들 때마다 내가 엄마가 될 자격이 되는 게 맞을까? 내 인생은 이제 끝인 건가? 누군가의 엄마로 살기에는 아직 난 젊은데 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뱃속의 아이들에게 죄책감이 들었다. “우문호, 내 생에 임신은 다신 없어. 내 목에 칼이 들어와도 다시는 없을 일이야!”“알겠어. 앞으로 절대 그럴 일 없게 할게.”우문호가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얼마나 울었는지 원경릉의 두 눈이 눈물에 절어 퉁퉁 부었다. “쳐다보지 마, 나 지금 추한 거 나도 안다고!”“아냐, 넌 언제나 예뻐.”원경릉은 우문호의 입발린 말에 고개를 휙 돌렸다. “너 혼자 입궁해. 난 안 갈래.”우문호는 그녀를 끌어안았다. “너 안 가면 나도 안 가. 그냥 단둘이 왕부에서 새해를 맞이하자.”“그건 안돼. 부황께서 분명히 뭐라고 하실 거야.”“그래서 뭐? 지금 나에게 중요한 건 너야.”우문호는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잠시 후, 진정이 된 원경릉이 조용히 우문호에게 말했다.“아까는 감정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던 것 같아…… 빨리 준비해서 입궁하자.”“갈 수 있겠어? 아무도 강요하지 않아. 가고 싶지 않으면 안 가도 돼. 궁 안에 사람도 많을 거고 불편할 수도 있으니까.” 우문호는 원경릉이 스트레스를 받을까 봐 걱정이 됐다.“그래도 가자. 며칠 전에 상선께서 말씀하시길, 태상황님께서 건강이 좋지 않다고 하셨어. 내가 입궁해서 한 번 봐야겠어.”“너는 지금
우문호는 원경릉을 위해 기존의 마차보다 더 안정감 있게 특수 제작하였다. 마차 내부에도 푹신한 방석과 이불을 준비해 두 사람은 누워서 궁으로 갈 수 있었다.우문호의 품에 안겨있던 원경릉이 감은 눈을 번쩍 뜨더니 “앞으로 이 세 녀석들이 말썽을 피우면 내가 가만두지 않을 거야!”라고 말했다. “넌 나설 필요 없어. 아빠인 내 선에서 싹 정리할 테니까.”우문호가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아이고 무서워라!”“어리다고 봐주지 않을 거야.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빠인 내가 먼저 알려줘야지.”원경릉은 그를 빤히 보더니 한숨을 쉬며 그의 품에 기대었다. “왜 그러느냐, 어디 불편한 곳이 있느냐?”우문호가 물었다.“우문호…… 난 네가 황제가 되는 게 싫어.”“왜 갑자기 그런 말을 하는 것이냐?”우문호가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보다가 씩 웃었다.“설마 내가 삼천궁녀를 들일까 무서운 것이냐? 그게 걱정이라면 안심하거라. 내가 황제가 되더라도 그럴 일은 없을 것이야.”“네가 후궁을 들이든 말든 상관없어. 난 네 선택에 따를 거야. 내가 걱정하는 건 우리 애들이 지금의 친왕들처럼 될까 봐 그게 걱정이야. 지금 친왕들끼리 죽기 살기로 태가 책봉이 되기 위해 싸우고 있잖아. 만약 우리 애들도 서로 미워하고 죽이려고 들면 어떡해?”우문호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질문에 놀라서 멍해졌다. “글쎄…… 혹시 세 쌍둥이가 딸 둘, 아들 하나면 되지 않나?”“내 마음대로 그게 되냐고! 만약에 아들만 셋이면 어떡해?”우문호가 설마 하는 표정으로 원경릉을 보았다. 그는 내심 딸 둘, 아들 하나가 태어나길 바랐다. 원경릉을 닮은 토끼 같은 딸이 둘이라면 우문호는 매일이 행복할 것 같았다.“딸 하나에 아들이 둘이어도 문제네……” 원경릉이 말했다.우문호는 그녀의 배를 만지며 “어쩌지?”라고 물었다.“몰라. 내가 어떻게 알아!”“그럼 내가 황제 안 하면 되겠네.”“그게 말이 돼? 황제가 되겠다고 사람들까지 꾸려놓고는!”“그건 내 직위를 굳건하게 하기 위함이지
“하루가 다르게 몸이 무거워지시지 않습니까? 소인이 부축해 드리겠습니다.” 상선이 원경릉을 태상황 앞까지 부축했다. “다섯째, 네가 초왕비 대신에 절을 하고 무릎을 꿇고 앉거라.”태상황이 말했다.태상황은 원경릉의 작은 몸집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우문호는 원경릉을 대신해 태상황과 명원제에게 절을 했다. “초왕비는 몸이 무거울 테니, 움직이지 말고 저녁 식사 때까지 여기서 가만히 있거라.”태후가 말했다. “예!” 원경릉이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다가 다시 앉았다.“요즘 몸은 좀 어떤가?” 명원제가 물었다.“별로 좋지 않습니다. 피곤한데도 잠을 잘 못 자고 식욕도 없습니다.”“모든 여자들이 하는 임신에 넌 참 유별나구나. 어미가 됐으면 마음가짐도 달라져야지 언제까지 그렇게 어리광 부릴 거야? 임신도 마음먹기 나름이니 마음을 굳게 먹어라.” 명원제가 말했다. 임신과 동시에 여자는 호르몬의 노예가 된다. 임신하고 출산하면 여자 몸만 망가지지 남자들이 열 달 동안 달라질 게 뭐가 있는가? 전과 같이 일하고 밥 먹고 놀고 술 마시고 남자들은 부인이 애 낳는데 기분만 내지, 뭘 안다고 훈수질인가?원경릉이 명원제의 말을 듣고 조용히 고개를 숙인 채 한숨을 내쉬자 그걸 본 우문호가 명원제에게 말했다.“부황께서는 꼭 임신을 해본 것처럼 말씀하십니다. 임신을 해보지 않은 저희 남자들이 어떻게 임신과 출산의 고통을 알겠습니까?”우문호의 말에 명원제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그럼 너는? 너도 남자 아니냐? 임신과 출산의 고통을 네가 아느냐?” 명원제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소자, 매일 밤 자리가 불편해도 배 때문에 뒤척이지 못하고 한 자세로만 자야 하는 초왕비를 보니 마음이 아픕니다. 퉁퉁 부은 다리로 소자의 신발도 맞지 않는 그녀의 발을 보고 있으면 소자가 아이를 낳을 수만 있다면 대신 낳아주고 싶은 심정입니다. 전에는 몰랐는데, 이 세상에 모든 어머니는 위대하다는 것을 초왕비를 보고 깨달았습니다.”“위대하다고? 여자로 태어나 아이를 낳는
태상황은 명원제를 보는 원경릉의 눈빛을 보고 기분이 언짢았다. “눈빛이 왜 그러느냐?”“예? 아무것도 아닙니다.” 원경릉이 급히 눈을 내리깔았다. 태상황은 헛기침을 하더니 원경릉을 보았다. “몸이 무거울 텐데, 짐의 건강상태를 봐줄 수 있겠느냐?”“예! 당연하죠!”태상황은 심근경색에 고혈압이 있는 편이라 건강상태가 좋다고 할 수 없었지만, 원경릉은 늙은이에게 건강상태가 좋지 않다고 말해봤자 자극만 될 뿐이라고 생각해 말을 아꼈다.그녀는 태상황의 상태를 보고 약을 처방했다.“시간이 있으며 정화군주에게 가서 말동무를 해주거라. 그 상태로 혼자 있으면 위험할 것 같아.”원경릉은 태상황이 정화군주에 대해 말을 꺼낼 줄은 몰랐다는 듯 깜짝 놀랐다. 원경릉은 태상황에게 시간을 내서 가보겠다고 하며, 만약 시간이 없다면 사람을 시켜서라도 정화군주의 안위를 확인하겠다고 약속했다.원경릉이 건곤전에서 나오는 데 중년의 남자가 원경릉에게 인사를 했다. “왕비를 뵈옵니다.”원경릉은 미간을 찌푸리고 한참 동안 그의 얼굴을 보았지만 누구인지 생각나지 않았다.“저…… 누구시죠?”*섣달 그믐날 성대한 만찬이 펼쳐진 광명전(光明殿)에 원경릉이 조금 늦게 참석하는 바람에 사람들과 인사를 할 기회를 놓쳤다. 그녀가 자리에 앉자 저 멀리 혼자 참석한 제왕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모습은 다소 쓸쓸해 보였다. 고개를 돌리자 주명양이 기왕의 옆에 앉아있는 모습이 보였다. 주명양은 원경릉을 노려보며 기싸움을 하려고 들었지만 원경릉은 그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주명양과 상반되게 기왕비는 평온한 표정으로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초연하게 앉아있었다. 구황자(九皇子)와 열여덟 공주도 있었는데, 구황자의 모습은 활력이 넘쳐 보였지만 눈빛에는 뭔지 모를 불안함이 보였다. 열여덟 공주는 덕비(德妃) 옆에 앉아 그녀의 귀여움을 받고 있었다. 공주에게서 나오는 맑은 기운이 마치 해바라기 꽃 같았다. 황후는 인자한 미소를 띠며 광명전에 온 사람들 하나하나를 보았고, 태후는 손자와 손
사람들은 원용의가 말에 치이든 밟히든 신경 쓰지 않았다. 아마 그 말의 주인도 제왕부의 후궁을 다치게 했다는 것을 보고도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원경릉은 제왕에게 내일 원용의를 보러 왕부에 가겠다고 말했다. 왕부로 돌아온 원경릉은 피곤한 나머지 간단히 씻고 침대에 누웠다. “맞다! 부황께서 어서방으로 불러서 뭐라고 하셨어?”원경릉이 우문호에게 물었다.“별일 아니었어. 빨리 자.”우문호가 손을 뻗어 그녀의 눈꺼풀을 쓸었다.원경릉은 너무 피곤해서 더 이상 묻지 않고 바로 잠에 들었다.출궁 한 제왕도 마차에 올라 왕부로 돌아갔다. 그는 연회 내내 원용의 걱정 때문에 음식도 몇 점 먹지 못했고, 술도 많이 마시지 못했다. 그는 우문호를 부축해 초왕부 마차에 태운 후 자신도 마차에 몸을 실었다. 제왕은 오늘따라 원용의의 부재가 크게 느껴졌다. 게다가 추운 날씨 때문에 마음도 싱숭생숭했다. 주명취 때문에 제왕부가 불타버리자 그는 한동안 손왕부에 살다가 나중에는 별당으로 이사를 했다. 별당은 담장이 높지 않았으면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넘어 들어갈 수 있었다.사실 제왕의 기분이 좋지 않은 이유는 연회에 오기 전에 원용의와 말다툼을 했기 때문이다. 원용의는 다친 다리를 치료하겠다며 원씨 집안의 소개로 용한 어의를 모셨다. 원용의는 날이면 날마다 모실 수 있는 어의가 아니라며 이왕 이렇게 된 거 제왕에게도 진료를 보라고 했다. 만약 어의가 제왕을 진맥 했다면, 제왕이 병에 걸렸다고 거짓말을 했다는 게 발각될 것이다. 그는 그게 두려워 백방으로 거절했다. 원용의는 그런 그를 보며 화를 냈고, 제왕도 화가 나서 원용의에게 ‘진맥은 너나 해! 네가 죽든 말든 나와는 상관없다!’라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그 말을 들은 원용의는 충격을 받은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제왕은 말을 내뱉으면서 아차 싶었지만, 자존심 때문에 그녀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제왕이 예전에 주명취와 지낼 때는 자신의 잘못이 아니어도 주명취의 기분이 상할까 봐 바로바로 용서를 빌었었다
한밤중 경조부에서 온 비상 호출에 우문호가 원경릉이 깨지 않게 조용히 옷을 걸치고 나왔다. 그는 제왕이 암살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성문을 봉쇄하고 범인 수색에 착수했다. 그리고 서일, 탕양, 조어의를 데리고 제왕이 있는 별채로 향했다.숨이 붙어있는 게 용할 정도로 제왕의 모습은 참담했다. 원용의는 하인을 시켜 팔황자의 자금단을 구해오라고 한 후, 침상에 누워있는 제왕을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듯 눈물을 닦고 따듯한 물에 수건을 적셔와 제왕의 몸을 닦았다.수건으로 피를 닦는 게 무색할 정도로 수건이 붉게 물들었고 제왕의 맥박은 점점 희미해져 갔다. “왕야. 칼에 찔린 곳은 총 여덟 군데입니다. 손과 발, 그리고 복부, 심장 부근에 분포되어 있습니다. 지금 상태로 보면 제왕께서 숨을 쉬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입니다. 지금 상황으로는…… 초왕비를 모시고 이리로 올까요?” 조어의가 물었다.우문호는 심장이 철렁했다. 그는 서일과 탕양을 불러 원경릉과 금군을 별채로 데리고 오라고 했다. 또 사람을 궁으로 보내 황상에게도 이 사실을 알렸다. 우문호는 제왕을 이렇게 만든 자들이 누구인지 밝혀야만 했다. 그는 밖으로 나와 순찰병을 불렀다.“자객은 잡았느냐? 몇 명이야? 어떤 무기를 썼어?”“소인이 이곳에 도착했을 때, 자객들은 이미 도망가고 없었습니다. 들고 달아나는 모습에서 특이점을 발견했는데, 그들이 들고 있는 칼이 전부 칼등이 휘어진 칼이었습니다. 그리고 말이 화살에 맞은 걸 보니 화살을 쏘는 데 능한 것 같습니다.”“휘어진 칼?”“예, 맞습니다. 그리고 제왕이 큰 부상을 입은 것은…… 제왕을 지키는 호위들이 전원 사망했기 때문입니다. 이로 미루어 보아 자객들은 뛰어난 무공을 지녔습니다.”순찰병의 말을 들은 우문호는 분노에 찬 얼굴로 기왕부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기왕부에서 그를 포위했던 자들이 모두 등이 굽은 칼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자객은 대략 예닐곱 명이었을 겁니다.”“현장에서 칼을 발견했느
“부황께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지금 경조부에서 경중을 샅샅이 뒤지고 있습니다.”우문호가 말했다.“넌 여기서 무얼 하느냐? 가서 자객을 잡아오든지, 증거를 찾든지 해야 할 것 아니냐!”우문호는 원경릉이 별채로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부황의 불호령에 군말 없이 탕양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서일이 초왕부에 도착하자 만아가 원경릉을 깨우러 들어갔다. 곯아떨어진 원경릉은 제왕의 암살 소식을 듣고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그제야 그녀는 우문호가 이미 나갔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둔한 몸으로 일어나 손에 잡히는 대로 옷을 꺼내 입고 약상자를 열어 약품과 기구들을 살폈다. 원경릉은 약상자를 만아에게 건네고 마차에 올라탔다. 새벽 공기는 차가웠고 해가 뜨지 않은 거리는 푸르스름했다. 심상치 않음을 느낀 건지 다바오는 왕부의 대문 앞까지 나와서 마차를 향해 짖었다. 원경릉은 그런 다바오가 신경이 쓰여 다바오를 데리고 제왕의 별채로 향했다.마차의 앞에는 서일이 뒤에는 만아가 마차 안에는 희상궁이 다바오를 잡고 있었다. 금군과 부병들도 원경릉의 안위를 위해 마차 양 옆에 바짝 붙어 그녀를 호위했다. 마음이 조급해진 원경릉은 장막을 걷고 서일에게 물었다.“제왕이 얼마나 다쳤느냐.”“여덟 번이나 찔렸다고 합니다. 조어의가 말하길 상처가 매우 깊고 출혈이 심하다고 해요. 제가 별채에서 출발할 때는 제왕의 호흡과 맥박이 희미해지고 있었습니다.”서일의 말에 원경릉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제발 심장과 대동맥은 다치지 않았길……’원경릉이 약상자를 열자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지혈제, 마취약, 구급약, 산소마스크, 수술용 칼이 보였다. 그녀는 약상자가 수술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균실도 아니고, 수술을 어떻게 하지?’원경릉은 약상자가 자신에게 경고를 하고 있다고 느꼈다. 원경릉은 제왕의 상태도 걱정이 됐지만, 더 걱정스러운 것은 자신의 체력이 뒷받침해줄 수 있을지였다. 수술조건이 갖춰진다고 하더라도 며칠 내내 휴식을 취하지 못한 그녀
‘어쩜 이 곳은 한시도 방심할 수 없는 걸까.’원경릉은 약상자 안에 무기가 될만한 것이 있나 뒤적였다. 상자 저 구석에 후추스프레이가 보이자 원경릉은 그것을 꺼내 손에 꽉 쥐었다. 바깥 상황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몰래 장막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마차에 달린 풍등 불빛에 금군들이 화살과 검을 방어하는 모습이 보였다. 장막이 걷힌 것을 본 검은 옷을 입은 자객들이 휘어진 칼을 들고 공중을 가르며 날아왔다. “왕비를 보호하라!” 금군이 소리를 질렀다.이 소리를 듣고 만아와 금군들이 우르르 달려와 마차를 에워쌌다. 자객들은 칼을 휘둘렀고 사방에는 피가 튀었다. 주변이 어두워서 누가 다쳤는지 판단도 되지 않았다. 그 순간 자객 하나가 마차 앞으로 다가와 만아를 찌르려고 했다. 만아는 날아오는 칼을 피하더니 주머니에서 가루를 꺼내 한 줌 뿌렸다. 놀란 자객은 주춤하며 뒤로 물러나 얼굴에 묻은 가루를 털었다.그 모습을 보고 있던 다른 자객이 합세해 만아에게 달려들었다. 원경릉을 호위하던 두 명의 금군은 원경릉을 보호해야 하기에 만아에게 달려갈 수 없었다. 자객의 수는 점점 많아졌고, 그에 따라 날아오는 화살의 개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날카로운 화살 하나가 장막을 뚫고 날아들어와 마차를 관통했다. 놀란 희상궁은 원경릉을 보호하기 위해 그녀를 꼭 껴안고 눈을 질끈 감았다.원경릉은 배가 눌리는 느낌을 받고 희상궁을 밀어냈지만, 희상궁의 힘이 어찌나 센지 그녀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입으로 아미타불만 되뇌었다. 만아는 격렬한 몸싸움 끝에 부상을 입고 마차에서 굴러 떨어졌다.자객이 장막을 열어젖히고 들어서자 다바오가 달려들어 자객의 목덜미를 물고는 놓지 않았다. 자객은 끝내 피를 흘리며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왕비, 빨리 달아나십시오!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금군이 소리쳤다. 희상궁이 서둘러 원경릉을 부축했고 약상자를 든 원경릉은 뒤뚱거리며 도망쳤다. 빗발치는 화살을 가까스로 피하며 도망치던 원경릉의 머리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