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경릉은 숨을 헐떡이며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희상궁을 보았다.“희상궁, 저 배가 너무 아픕니다.”“왕비, 갑자기 배가 아프다니요?”“하…… 저는 더 못 걷겠습니다. 희상궁 먼저 가세요.” 원경릉이 벽에 기대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그 순간에도 칼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쩌렁쩌렁하게 들리고 사방에는 피 비린내가 진동했다. 희상궁은 원경릉을 업으려고 허리를 굽혔다가, 그녀가 임신을 했다는 것을 깨닫고 이도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만아가 다친 몸을 이끌고 두 사람에게 달려왔다. 만아는 이를 악물고 희상궁과 힘을 합쳐 원경릉을 부축했다. 그 순간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다바오는 아군인지 적군인지 몰라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고, 만아도 칼을 꺼내 원경릉을 지켰다. 십여 명의 횃불을 든 기병이 그들 앞에 멈추었다. 앞에 나와있는 우두머리 세 사람은 망토를 걸치고 있었으며 얼굴에는 살이 하나도 없었다. 그들은 두 손으로 고삐를 잡고 말을 진정시켰다.원경릉은 배를 부여잡고 위를 올려다보았다.‘기왕비……?’맨 앞에 있는 사람은 기왕비였다. 그녀의 뒤에는 십여 명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다들 장검을 메고 눈이 이글거렸다.기왕비는 말에서 내리더니 원경릉의 팔을 잡아 자신의 어깨 위에 올렸다.“먼저 가마에 타세요.”희상궁이 기왕비의 뒤를 보니 하인들이 가마를 메고 오는 것이 보였다.원경릉은 자초지종을 묻지도 않고 급히 가마에 탔다. 기왕비는 그녀를 데리고 제왕이 있는 별채로 향했다.*명원제는 원경릉이 자객들에게 습격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노하여 즉시 금군을 소집하고 온 성을 포위했다. 별채에 들어온 원경릉은 유산 방지 주사를 맞고 뱃속의 통증이 사라지기만 기다렸다. 잠시 후 그녀가 눈을 뜨자 눈앞에 명원제가 보였다.“제왕은 어떱니까?” 원경릉이 기진맥진한 목소리로 물었다.“상황이 좋지 않아. 아픈 걸 참을 수 있다면, 지금 가서 제왕을 살펴보거라.” 명원제가 말했다.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지만 머리가 핑글핑
제왕의 배에서는 아직도 피가 흐르고 있었다. 원경릉은 자금단의 효과가 아직 남아있을 때 그에게 수혈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체력은 이미 바닥이 난 상태여서 손 하나 까딱하기 힘들었다. 제왕의 복부에 있는 상처는 처치하기가 어려운 부위였고, 원경릉은 내장의 손상 여부를 일일이 확인하고 봉합하기 시작했다. 바늘로 봉합을 시작하려고 하자 그녀의 눈앞이 새까매졌다. 원경릉은 감기는 눈을 억지로 뜨며 명원제를 보았다.“부황, 지금 당장 호국사의 주지스님을 불러주세요.”“그 사람을 믿어도 되느냐? 그도 너처럼 의술을 아느냐?” 명원제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원경릉을 보았다.“적어도 상처를 봉합하는 건 할 수 있을 겁니다.”그녀의 몸 상태로는 이미 쓰러져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녀는 제왕을 살려야 한다는 정신력으로 지금까지 버티고 있었다. 명원제는 한참 원경릉을 지켜보더니 조심스럽게 원경릉을 보며 입을 뗐다.“제왕이…… 죽을 수도 있느냐?”“그럴 수도 있습니다.” 원경릉이 대답했다.그녀의 단호한 대답에 황후가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다. 명원제는 한숨을 내쉬며 원경릉을 보았다.“가서 좀 쉬거라.”원경릉이 의자에 앉아 눈을 붙이자 만아가 와서 제왕의 상처 부근을 닦았다.희상궁은 안팎을 오가며 원경릉의 시중을 들었고 기왕비도 곁에서 원경릉을 돌봤다.“근데 기왕비님은 제가 위험한 지 어떻게 아셨습니까?” 원경릉이 고개를 들어 기왕비를 보았다.용감하게 말을 타고 오던 기왕비는 어디 갔는지, 그녀는 입을 우물쭈물하며 원경릉의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실은 제가 항상 사람을 시켜 초왕비를 보호했습니다.”“보호?”원경릉의 미간이 찌푸려졌다.“그게…… 초왕비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안 되니까……”“기왕비님, 설마 저를 감시한 겁니까?” 원경릉이 물었다.기왕비는 난처한 표정으로 원경릉을 보았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전에 주명취 일도 겪었고! 초왕비가 나를 치료해줘야 하는데 나를 이렇게 두고 가버리면 안 되잖아요! 그리고 궁보다 기왕부가 더 초왕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어렵게 받아낸 자백이다. 자백을 바탕으로 두 사람이 잠시 묵었던 여인숙을 뒤진 결과. 그 안에서는 서신 한 통과 일만 냥의 어음이 발견되었다. 서신의 필적은 대학사의 감정을 통해 기왕의 친필로 밝혀졌다.금군은 조사한 내용 모두 명원제에게 보고했고, 명원제는 기왕의 자필 편지를 보고 억장이 무너졌다. 분노한 그는 구사에게 명령을 내려 기왕을 잡아 옥에 가두고 처벌을 기다리게 했다.우문호도 원경릉이 자객의 습격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원경릉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러나 명원제가 그를 돌려보내 혹시 잠복해 있을지도 모르는 다른 자객들의 행방을 추적하라고 했다.우문호는 알겠다고 하더니 순찰을 돌기 전 목이 마르다는 핑계를 대고 원경릉을 보러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그녀를 보더니 한달음에 달려와 그녀를 끌어안고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이만하니 다행이다.”우문호는 애써 담담한 척했지만, 그의 목소리는 분노로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난 괜찮으니까 빨리 가 봐.” 원경릉이 조용히 말했다.우문호는 밖으로 나가면서 그녀를 한번 더 돌아보더니 자리를 떴다.그는 밤새 금군들과 부병을 데리고 다리가 부서져라 뛰어다녔다. 그에 반해 기왕은 구사가 어명을 받고 방에 쳐들어갔을 때에도 술에 진탕 취해 주명양을 품에 안고 곤히 자고 있었다.그는 잠에서 깨 구사를 보고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듯 그에게 성질을 부렸다. “기왕. 자 여기, 제왕과 초왕비가 자객의 습격을 받았다는 성지입니다.” 구사의 말을 듣고 기왕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기왕이 끌려나가자 주명양은 어쩔 줄 몰라하며 발만 동동 굴렀다. 황제의 성지를 어찌 그녀가 거역할 수 있겠는가? 그녀는 잡히는대로 겉옷을 챙겨 입고 조부를 찾아갔다. 주씨 집안에서도 제왕이 피살될 뻔 한 사실을 알게 됐다. 제왕은 재상의 외손주이기에 그도 깜짝 놀라 바로 제왕에게 달려갔다. 그래서 주명양이 친정에 왔을 때 재상은 부중에 없었다. *수도의 백성들은 새해맞이 폭죽을 몇 개 터뜨리지도
원경릉은 편채에 있었고, 손왕비와 기왕비가 그녀를 곁을 지키고 있었다. 안왕 내외가 들어가니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인사를 했다. “초왕비께서도 자객에게 습격을 받으셨다는데 괜찮으십니까?”안왕이 물었다.원경릉은 안왕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습니다. 걱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새해부터 이게 무슨 일입니까.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어요! 세상에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이 자객을 보내 황실 사람을 죽이려고 합니까? 그것도 친왕과 임신한 친왕비를 말입니다!”손왕비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안왕을 보았다. “안왕, 소식 못 들었습니까? 조사 결과 이 모든 게 기왕의 소행이라고 밝혀졌잖아요. 그래서 황상께서 기왕을 옥에 넣으라고 명을 내리셨고요.” “뭐라고요? 범인이 큰 형님이라고요? 어떻게 큰 형님께서 그럴 수 있죠?” 안왕은 입이 떡 벌어졌다. 그는 설명이 필요한 눈빛으로 기왕비를 바라보았다. 기왕비도 그를 바라보며 면목이 없다는 듯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바닥만 보았다.“저도 기왕이 한 게 아니었음 하네요. 황실 가족끼리 이게 말이 됩니까?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입니다.”손왕비가 말했다.“형님일 리가 없어요. 그렇게 끔찍한 짓을 큰 형님께서 했을 리 없습니다!”원경릉은 안왕의 떨리는 목소리를 듣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형제끼리 이런 끔찍한 짓을 하다니 믿기 힘들겠지.’원경릉은 시선을 옮겨 안왕비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조용히 앉아 기왕비처럼 바닥만 보고 있었다. 안왕은 기왕이 저지른 게 아닐 거라며 머리를 쥐어뜯으며 밖으로 나갔고 안왕비는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원경릉은 기왕비가 의미심장한 눈으로 안왕의 뒷모습을 보고 있는 걸 보고 멍해졌다. 그녀는 그 둘의 관계를 애써 짐작하지 않으려고 했다.“액땜을 너무 크게 하는 것 같습니다. 새해 초부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손왕비가 한숨을 내쉬었다.“손왕비님, 이제 우리도 그만 갑시다. 초왕비도 쉬어야죠.” 기왕비가 말했다.기왕비의 말에 별채에
화장실에서 안왕을“초왕비마마 조심하세요!” 안왕도 놀란 듯하나 얼른 손을 뻗어 원경릉을 부축하며 사과하길: “죄송해요, 화장실을 가려고 했는데 잠깐 딴생각을 하다가 누가 안에 있는 줄 모르고,”원경릉은 안왕의 얼굴이 창백하고 여전히 슬픔에 찬 눈을 보고, 제왕이 다쳤기 때문이란 생각에 바로: “괜찮아요, 가세요.” 원경릉은 안왕이 여전히 자신의 팔꿈치를 잡고 있는 것을 보고 일부러 물러서는데, 안왕은 원경릉이 넘어지는 건 줄 알고 얼른 끌어안으며, “초왕비마마 조심하세요.”원경릉의 전신이 안왕 품에 안겼는데 그의 몸에 침향 냄새가 코를 찌른다. 얼른 안왕을 밀쳐내며 날카로운 목소리로: “넷째 아주버님, 뭐하시는 거예요?”안왕이 한걸음 물러나서 난감한 얼굴로, “미안해요, 전 마마께서 넘어질 까봐, 아이고, 오늘 내가 왜 이러지? 정신이 나갔나 봐요. 초왕비마마 어서 가세요.”원경릉은 찝찝한 기분이 들었지만 안왕의 이 이상한 행동이 더 그녀의 주의를 끌었다.안왕이 아무리 정신이 나갔어도, 원경릉이 방금 넘어질 뻔한 상황이 아닌 걸 딱 보면 알겠고, 넘어질 뻔 했어도 한손으로 잡으면 되는데 왜 안았지?그리고 안왕이 잽싸게 손을 뻗어 안는데 원경릉을 안왕의 가슴팍에 일부러 확 누르는 것에 원경릉은 심한 반감을 느꼈다.원경릉이 눈을 내리깔고 :”넷째 아주버님, 저 먼저 가요.”말을 마치고 바로 떠났다.“초왕비마마!” 안왕이 갑자기 뒤에서 불렀다.원경릉이 고개를 돌려보니 안왕이 여의방(如意房)문 앞에 서 있는데 손에 손수건을 쥐고 살짝 흔들며 건방진 눈초리로 원경릉에게, “마마 건가요?”입꼬리가 살짝 들리고 복숭아꽃 무늬 주름이 지게 눈웃음을 치며 손수건을 들어올리는데, 손수건은 그의 코 끝과 입술 사이를 쓸고 지나갔다.“제 거 아니에요!” 원경릉은 돌아서서 바로 가다가 거의 기둥에 부딪힐 뻔 했다.뒤에 안왕의 웃음소리가 들렸는데 그 웃음소리는 더럽고, 악의에 가득 차 있었다.원경릉이 비틀비틀 방으로 돌아와 대야에 미친듯이 토했다.그녀는
주지스님과 원경릉제왕쪽은 원용의와 황후가 여전히 지키고 있으며 사식이도 있다.주지스님은 이미 차를 마시자고 초대받아 가서 어의 몇 명이 곁에서 시중을 들고 있었다.“원 언니, 전하 깨어날 수 있어요?” 원용의는 울어서 눈이 퉁퉁 부은 채로 원경릉을 손을 잡아 끌고 물었다.황후가 이 말을 듣고 귀를 쫑긋하고 한없이 원경릉을 쳐다본다.원경릉은 억지로 웃으며 위로하길, “착한 사람은 하늘이 돕는다고 하잖아요. 괜찮을 거예요.” 이 말은 가장 가망 없어 보이는 위로의 말이지만 원경릉이 하니 원용의는 왠지 모르지만 안심이 되는 것이다.“어마마마, 우선 가서 좀 쉬세요.” 원경릉은 황후가 앉아서도 무너질 듯 후들거리는 게, 당장 혼절한다고 해도 이상할 것 없는 모습이라 그렇게 얘기했다.연속으로 두 번 아들이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것 치고는 황후는 그래도 의연한 편이다.황위도 좋지만 목숨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야?그래서 황후는 원경릉에게 일종의 새로운 태도가 생겨났다. 적어도 여덟째와 이번 일에 원경릉은 앞뒤 가리지 않고 나서서 심지어 암살까지 겪었다.황후는 원경릉에게: “어의가 여기서 지키고 있으니 초왕비는 가서 좀 쉬게나, 몸도 불편한데.”원경릉도 지금 지키고 앉았어도 소용없는 것이, 전신마취를 했기 때문에 제왕이 그렇게 빨리 깨어나지 못할 것이다.원경릉은 돌아가도 잠이 올 것 같지 않고, 우문호도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을 뿐더러 돌아가서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면 구역질 나는 장면이 떠오를 게 뻔하니 차라리, 후배인 주지스님을 찾아가 얘기하는 게 낫겠다.주지는 여전히 정신이 생생하다. 주지 모습은 마치 선풍도골 노인이 불교의 자비까지 갖추고 태극권을 창시한 장삼풍(張三豐) 느낌이다.“선배님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 군요.” 주지가 일어나 두 손을 합장하고 원경릉에게 예를 표하는데, 사식이가 어리둥절해 하자 사식이에게 웃음을 보이며: “아가씨, 가시지요, 아마도 왕비마마께서 소승에게 볼 일이 있나 봅니다.”사식이가 ‘어’하더니 이상하다는 듯
뇌과학 어디까지?주지가: “그건 100% 무균상태를 보장할 수 없어요.”원경릉이: “그렇게 세세한 것까지 따질 수가 없어, 그저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하는 거지.”주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런 중요한 일을 선배가 소승에게 까지 부탁한 이상 소승이 당연히 도와야 지요.”“이 일은 보안을 철저히 유지할 거라 수술실에 들어가는 사람은 전부 내 심복이야. 밖으로 새나가 주지의 명성에 영향을 줄까 걱정할 필요 없어.”주지는 호국사의 주지스님으로 국사와 마찬가지로 만약 사람들에게 주지스님이 일개 여인을 위해 아이를 받으러 갔다는 소문이 퍼지면 확실히 명성에 해가 된다.주지가 웃으며, “그게 뭐라고, 아이를 받는 건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니 부처님도 인정하실 겁니다.”원경릉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안심이 되었다.“하지만 이 일은 비밀에 부쳐야 해. 반드시 출산 전후에 날 지켜보는 사람이 적지 않을 거니까. 넌 내 최후의 비밀무기로 너와 날 제외하고 제삼자에게 절대 말하지 않을 거야, 설사 왕야 쪽에도 당분간은 함구할 거야.”왕야한테서 말이 새나갈까 걱정이 아니라 우문호의 사고방식이 완고하고 보수적이라 만약 늙은 남자를 산파로 부른다는 걸 알면 분명 반대할 것이기 때문이다.가장 중요한 건 제왕절개는 여기서 성행하지 않는 것으로 우문호는 대략 상당히 위험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어 동의할 리가 없다.하지만 닥쳐서 긴급한 상황이면 우문호도 동의고 자시고 없다.중요한 얘기를 다 마치고 원경릉은 주지와 농담 따먹기를 했다.주지가 문득: “선배, 선배는 자신한테 무슨 능력이 있다고 생각해요?”원경릉이 주지에게, “능력? 빨래 요리 같은 거?”주지가 웃으며 온화한 눈빛으로 원경릉에게, “예를 들면, 공간을 초월해 물건을 가져온다 든지.”원경릉이 헛웃음을 흘리며, “내가 무슨 신선도 아니고.”곧바로 농담으로 받으며, “설마 넌 할 수 있어?”주지가 느릿느릿 손을 뻗자 원경릉은 자기 탁자 위에 잔이 갑자기 둥둥 떠서 다시 평행이동 하더니 조용히 주지
뇌과학의 신비가 세 쌍둥이에게주지가: “선배, 이 신체에서 대뇌는 이미 선배의 의식이 전부 잠식했는데 선배는 여전히 약 상자를 제어할 수 있는 거 왜 인지 알아요?”원경릉은 전에 호국사에서 일을 떠올렸다. 그와 이 문제를 감히 토론할 수 없는 것이 저번에 그는 신학과 자신의 연구를 뒤섞어 얘기해서 원경릉을 놀라게 했다.“왜 그런데?” 원경릉이 물었다.잔이 서서히 원경릉의 뒤에 떨어져 원경릉은 다른 한 손으로 잡아서 탁자에 놓고 주지를 봤다.주지가: “왜냐면, 전에 선배가 살던 곳에 어떤 사람 어쩌면 선배의 의식이 있어서 서로의 의식이 통하고 있는 거예요. 선배 자신이 아직 모를 뿐이지.”원경릉이 생각해보더니, “네 말은 내 연구가 성공했다는 거지? 내가 연구개발한 약은 결국 상용화됐어?”“선배의 연구계획은 보류되면서 아무도 같은 연구를 진행하지 않았어요, 적어도 공개적으로는. 왜냐면 인류는 이미 충분히 똑똑해 졌거든요.” 주지가 말했다.“그래서, 너는 개인적으로 연구한 거야?” 원경릉이 물었다.주지의 눈은 여전히 과학 연구에 대한 열정으로 빛나며, “맞아요, 23살때부터 선배의 과제를 연구하기 시작해 선배에 관한 모든 자료를 찾았죠, 선배의 학술논문, 편지, 메모할 것없이 전부요.”원경릉은 마음이 ‘쿵’하고 내려앉으며 다급하게, “그럼 알겠네, 내가 죽은 뒤에 부모님이랑 가족은?”주지가: “부모님은 선배가 죽은 후에 수양딸을 들였어요, 선배 모습과 70~80% 닮았어요.”원경릉이 경악하며, “그거 우연이야?”“더욱 공교로운 건 그녀도 의학박사고 선배의 과제를 연구한 적이 있다는 거예요, 단지 그녀는 당신이 죽은 뒤 10년, 아무런 이유 없이 사라졌어요. 행적을 알 수 없었죠.”원경릉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마지막으로 원경릉은 천천히 이 일을 되새기며: “내 일에 대해서 얼마나 더 알고 있어?”주지가: “선배는 어느 쪽을 말하는 걸까요? 상당히 많이 제가 알고 있거든요.”주지는 더이상 소승이 어쩌고 하는 말투를 쓰지 않았
아이들이 없는 황궁은 무서울 정도로 고요해졌다. 계란이마저 울적해 보이는 게, 전에는 매일 오빠들이 와서 서로 안아주려고 난리였는데, 이제 아침부터 밤까지 그들이 보이지 않으니 종일 시무룩해져 있었다.아빠가 안아주는 게 좋긴 했지만 그는 종일 조정 일로 바쁜탓에 자기 전에 겨우 와서 안고 놀아주는 거라 이전과 비교가 됐다. 계란이 뿐 아니라 눈 늑대와 호랑이도 심심해서 꼬마 주인들 방 복도에 엎드려 이리 뒹굴 저리 뒹굴하며 나가 놀지도 않는 게, 계속 이런 식이면 다들 기분이 축 처져 안 되겠다 싶었다.원경릉은 친목 이벤트를 기획해 각 집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궁으로 놀러 오라고 하자, 친왕들이 알았다며 아이들을 데리고 입궐해 궁중은 다시 시끌벅적해졌으나 우문호는 오히려 전부 다른 사람 아이란 생각에 거의 울 뻔했다.하지만 계란이는 이렇게 많은 아이를 보자 기분이 좋아졌고, 늙은 아빠 우문호도 따라서 즐거워했다. 우문호는 계란이가 종일 시무룩하게 있을까 봐 걱정이 들었다.딸이 좋으면 우문호도 뭐든 다 좋았다.천행이의 백일이 되자 보상의 의미로 성대한 잔치를 베풀었다. 천행이는 이제 할머니도 있는 몸이니 할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는 게 도리다.잔치는 굉장히 성대했다. 이리 나리는 은자를 조금도 아끼지 않았다. 천금으로 아내와 엄마를 즐겁게 할 수 있다면야.백일 잔치에 모두가 아주 기쁜 마음으로 참석했다. 마지막에 손님들이 식사를 마치고 간 뒤 같이 둘러앉아 술을 홀짝일 때 약간의 에피소드가 터지며 다들 웃기며 슬픈 상황에 부닥치고 말았다. 숙왕부 어르신이 그릇을 가져와서 음식을 싸서 온 것이었다. 사실 지금 숙왕부는 전혀 궁색해 보이지 않았지만, 수십 년간 몸에 밴 습관이 무서운 게 음식 낭비를 두고 보지 못하는 것이었다.전에 원경릉은 이리 나리 일이 해결된 뒤 안풍 친왕 부부가 떠날 줄 알았는데, 백일 잔치까지 가지 않고 있길래 개인적으로 안풍 친왕비에게 물었다. 그러자, “전엔 돌아가고 싶었지, 꿈에라도 간절히 돌아가고 싶었어. 하지만 돌아간
게다가 엄마, 아빠, 휘종제 일행이 모두 여기 있어 안심하지 못할 것도 없지만, 제일 큰 문제는 바로 떼어놓지 못하는 아쉬움이었다.특히 우문호는 계란이를 손바닥 위에 보석처럼 대해서 하루도 떨어져 있지를 못하는데 몇 년씩이나 떨어져야 있으면, 가끔 올 수 있다고 해도 곁에 두는 것과는 비교할 수가 없으니, 원경릉이 돌아가서 얘기하면 우문호가 울부짖을 게 불 보듯 훤했다.원경릉은 마침내 모든 준비를 마치고 북당으로 돌아오는 여정을 밟았다.서일은 경호에서 며칠을 기다리다가 황후가 물건을 가져오는 것을 보고 감동받았다.원경릉이 트렁크를 서일에게 주고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필요하다고 한 건 다 사 왔으니까. 가져가서 처자식이나 기쁘게 해 줘.”“황후 마마는 역시 세상에서 제일 좋은 분이세요!” 서일은 사람을 칭찬하는 어휘가 한정적이지만 최대한의 감사와 감격을 담아 표현했다.“사식이랑 아이를 이렇게 끔찍하게 챙기다니 의왼데.” 원경릉이 엷은 미소를 띠고 농담했다. 이 멍청이는 정말이지 사람 마음을 잘 아는 좋은 남자다.궁으로 돌아오니 이미 밤이 되었다. 우문호는 아마 오늘쯤 원경릉이 돌아올 거라고 예상해서 서둘러 일을 끝내고 소월궁으로 돌아와서 그녀를 기다렸다. 저녁 수라를 들고 나자, 짧은 이별은 신혼보다 짜릿해서 격렬한 사랑을 나눈 건 두말할 것도 없었다.우문호가 뒤에서 원경릉을 끌어안고 침대에서 아이들의 상황에 대해서 자세히 물어보자, 원경릉이 뭔가 감추면서 아이들이 엄마와 헤어지며 아주 아쉬워했고 특히 아빠랑 헤어지기 아쉬워해서 방학하면 바로 아빠 보러 돌아온다 말했다고만 전해주었다. 선의의 거짓말을 해 우문호를 기쁘게 해주는 것으로 마무리 했다. “역시 아낀 보람이 있네!”“애들이…. 철 들었어.” 원경릉이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머릿속으로는 아이들이 엄마 아빠의 간섭에서 벗어나 맘대로 난장판을 치는 영상이 떠올라 머리가 지끈거렸다. 양심이라고는 없는 녀석들.우문호가 말했다. “눈앞에 닥친 일을 마치면… 얼추 며칠은 갈
현대로 돌아가 가족과 한자리에 모이니 모두 즐거워 보였다. 원경릉은 집안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 뒤, 아이들을 데리고 휘종제와 건종 태자를 알현하러 갔다.휘종제와 건종 태자도 매우 기뻐했는데, 특히 아이들이 유학하러 와서 앞으로 여기서 산다는 얘기에, 휘종제는 너무 좋아서 펄쩍펄쩍 뛰며 앞으로 아이들에게 드는 모든 비용은 전부 자기들이 대고 방학에 북당으로 보내고, 개학 때 맞이하는 것도 자기들이 하겠다고 큰소리쳤다. 외갓집엔 모두 출근하는 분들 뿐이라 불편할 거라는 것이었다.원경릉은 일단 감사드리고 북당에서 가져온 술과 검, 궁에서 가져온 흙 한 줌과 돌 하나를 꺼내놓았다. 이건 우문호가 준비한 것으로 고향을 오래 떠나 있는 사람은 고향의 흙과 돌이 그리운 법이라고 했다.휘종제와 건종 태자가 흙과 돌을 보더니 손에 들곤 통곡하기 시작했다.원경릉이 두 사람을 위로한 뒤, 그들은 슬퍼하며 ‘언제 한 번 가볼까, 딱 한 번 보더라도, 아무도 만날 수 없어도 좋을 텐데.’라고 한탄했다.“긴 세월 고향 강산을 꿈에도 잊지 못했으나 돌아갈 수는 없었네..”원경릉은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가슴이 시큰해졌다. 휘종제와 건종 태자의 슬픔을 원경릉은 아주 잘 아는 것이 자신도 전에 이방인이었기 때문이었다.단지 그들이 돌아갈 수 있을지 없을지 원경릉도 뭐라고 단정내리기 어려웠다. 어쨌든 이건 안풍 친왕이 진행한 일로 정말 돌아가고 싶으면 아마도 안풍 친왕이 준비해 줄 수 있었다. 북당으로 돌아가면 안풍 친왕에게 상황을 봐서 물어봐야겠다고 결심했다.입학 준비를 마친 뒤, 원경릉은 돌아갈 준비를 하는데 아이들과 떨어지기 싫었지만, 아이들은 새로운 생활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가 충만했기에 그녀와 헤어지는 걸 전혀 아쉬워하지 않았다. 원경릉은 그 점이 씁쓸했다.아이들이 크면 놔줘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얘들은 아직 다 안 컸잖아.돌아가기 전에 원경릉은 양여혜에게 만나자고 했는데 양여혜가 기화를 데리고 올 줄 몰랐다.원경릉은 기화를 보자 머리가 아픈 게, 기화는 또
‘이제 어머니가 계시니 술 먹으면 몸 상한다고 말해? 예전에는 왜 말 안 했어?’다행히 누군가 같이 마셔주는 사람이 있었다. 회왕은 벼슬에 오른 뒤로 술을 조금 하기 시작했는데, 많이는 안 마시고 한두 잔만 마실뿐, 석 잔째면 아내를 보러 집에 갔다.즐겁게 박원과 소홍천을 보낸 우문호와 원경릉은 만두와 아이들을 유학 보낼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비록 환타와 칠성이는 아직 어려서 2년 정도 더 남아있었지만, 유치원 다니고 싶다고 소리를 지르며,형들이랑 꼭 같이 가겠다고 하도 고집을 부려 원경릉과 우문호는 골치가 아파졌다.그나마 우문호에게 약간 위로가 된 건 딸만큼은 곁에 있다는 사실로, 칠성이와 환타가 하도 졸라대자,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가가가, 다 가.”아이들은 기뻐했으나 눈 늑대와 호랑이도 여전히 성깔을 부리며 따라가겠다며 소란을 피웠다.현대에서 어떻게 호랑이와 눈 늑대를 키울 수가 없으니 미칠 노릇이였다. 게다가 이 동물들은 아주 영민해서 사람 일을 이해해, 꼬마 주인들이 이번에 가면 열흘 보름이 아니라 몇 년 있다가 온다는 걸 알고 아무리 혼을 내도 말을 안 들을 게 분명했다. 그래도 만두가 이리저리 구슬려서, 동물들에게 자기들에겐 여름방학, 겨울 방학이 있고 학기 중에도 쉬는 날이 있어서 1년에 합치면 적어도 4개월은 이쪽으로 돌아올 수 있으니 적어도 1년에 절반 가까이는 같이 있는 거라고 위로하자 겨우 잠잠해졌다. 비록 시공간은 떨어져 있어도 같이 자라기를 원할 것이다. 유학을 가는 일이기 때문에 원경릉이 직접 따라가서 진학 문제를 처리해야 했다.이 일은 전에 현대에서 언급한 적이 있어, 로양이 아이들에게 호적을 만들어주기로 했다. 물론 아이들을 호적에 올리려면 원경릉 부부도 호적에 올려야 하는 것이, 아이들을 오빠 이름 아래 입적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었다.이 일은 로양이 원만하게 처리해 원경릉 가족 모두 호적을 가지게 되었다.게다가 원래 집을 사뒀기 때문에, 부근 학군에 진학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원경릉은 다섯
대오가 경성으로 돌아올 때 홍엽도 원숭이와 같이 돌아왔는데, 그도 풍도성에서 힘을 보탰다. 사실 홍엽이 안 가도 안풍 친왕이 모든 걸 다 준비해 둬서, 안풍 친왕 능력이면 안지여 정도 상대하기는 식은 죽 먹기였다.이리 나리 일행은 경성에 도착해, 우선 집으로 돌아가 공주와 천행이를 보고 가족이 함께 밥을 먹은 뒤 입궁해서 경과를 보고했다.사적인 원한은 한두 마디로, 벌을 받아 마땅한 사람은 지금 받아야 할 벌을 받고 있으며 아직 죽이지 않았다고 했다남은 건 정사를 논하는 것이었다.“어머니와 같이 풍도성에서 보름 정도 지내며 기본적인 민심을 파악했는데, 천문 세가는 백성들 사이에서 아직 명망이 높아 보입니다. 풍도성 백성들은 사실 세금이 너무 많고 경제가 번영한 성과가 전부 안지여 수중에 떨어지는 구조로 되어 있어 안지여의 통치에 불만이 있었다고 합니다. 조정에서 풍도성을 접수한 것에 백성들 대부분은 찬성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천하태평이냐 하면 그럴 순 없는 것이, 일부는 성주가 자기들의 황제라 여기고, 조정이 풍도성을 접수한 것이 풍도성이 침략당했다고 여겨 나중에 약간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부를 임명하실 때 신중하셔야 할 것입니다.”우문호가 말했다. “흠, 큰할아버지께서 천거한 사람이 있는데, 바로 박원이라네. 자네 생각은 어떤가?”그러자 이리 나리의 눈빛이 빛났다. “제 아버지가 추천한 사람이니 전 찬성입니다!”“아버지?” 우문호가 의아해하며 이리 나리를 쳐다봤다. ‘안풍 친왕비가 사부님이면 안풍 친왕은 사부의 남편 아닌가? 어떻게 아버지가 되지? 사부님의 배우자니 사모님이라고 부르는 게 더 맞지 않나?’“흠, 안풍 친왕은 제 아버지십니다!” 이리 나리는 더 설명할 생각이 없는지 어쨌든 그렇다고 주장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한 번도 그를 아버지라 부른 적 없지만, 마음속에서만큼은 진정한 아버지였다.“하하하!” 우문호도 그저 웃으며 더는 묻지 않았다.이리 나리가 퇴청할 때 우문호가 이리 나리를 부르자 고개를 돌렸다. “무
“우선 박원이랑 소홍천 의사부터 물어보자. 억지로 하게 하고 싶지 않아. 그동안 그들이 날 많이 도와줬으니 전부 원하는 대로 하자고.” 우문호가 말했다.“그러자!” 원경릉이 일어서며 말했다. “오늘 저녁 애들 데리고 어머님께 가서 수라를 들려면 빨리움직여야 해. 꾸물대면 늦을거야.”그러자 우문호도 계란이를 안고 일어섰다. “그래, 우리 황조모한테 가서 맘마 먹자.”우문호가 나가서 부르자 아이들이 달려와, 같이 왁자지껄하게 수라를 들러 황태후 전으로 갔다.황태후는 원래 우문호에게 할 말이 있었지만, 식사 자리에 아이들이 있어서 기다렸다가 저녁을 다 먹은 뒤 우문호와 아이들이 나가서 놀고, 원경릉이 황태후와 얘기를 나눌 때 말을 꺼냈다.“천행이가 태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부마를 풍도성으로 보낼 수가 있지.. 공주가 얼마나 괴로웠을까.”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공주는 사정을 훤히 알고 있어서, 이리 나리께서 풍도성에 가는 걸 지지하셨는걸요.”“말은 그렇게 해도, 출산 후에 여자 곁엔 남편이 있어야 하는 법이야. 하지만 이것도 단지 우리 가족끼리 하는 얘기일 뿐이고, 조정 일을 내가 함부로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없는 노릇이지.”황태후는 이리 나리가 풍도성으로 간 진정한 목적을 전혀 몰랐으며, 단순히 어지러운 형국을 정리하러 갔다고만 알았기 때문에 순수하게 공주를 아끼는 마음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어마마마, 걱정하지 마세요. 이리 나리는 이미 돌아오는 중이래요.” 원경릉이 위로하자 황태후가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거 잘됐네!”온 가족이 별빛을 받으며 천천히 소월궁을 거닐었다.계란이는 아빠 품에서 잠이 들었고, 아이들은 놀다 지쳐서 아빠 엄마를 따라 천천히 걷고 있었으며, 목여 태감이 궁인 둘을 데리고 뒤에서 조용히 따라오는 가운데, 궁 안은 인적이 드물어 밤이 되자 상당히 고요했다.“어마마마께서 공주를 아끼셔서, 이리 나리가 하필 이때 풍도성에 보냈냐고 하셨어.” 원경릉이 말했다.“날 원망하셨어?” 우문호는 품에 있는 아이가 깰
늑대파 사람이 안지여와 소여쌍을 질질 끌고 나가는데, 소여쌍은 여전히 미친사람처럼 웃어대기만 했다.이리봉청은 그들이 끌려 나가는 것을 보자, 눈앞에 안지여가 자신을 데리고 소여쌍의 침대 앞으로 가서 소여쌍의 그 악랄한 말을 듣던 순간이 떠올랐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여리여리하고 아름답던 그녀가 이렇게 변해 버린 게 꿈처럼 느껴졌다.풍도성을 접수한 뒤 안풍 친왕은 관리들을 새롭게 임명했고, 더 이상 성주 같은 것을 두지 않고 조정과 이부에 적합한 인사를 선발해 풍도성 지부로 앉힐 것을 요청했다. 풍도성은 더 이상 이전의 독립 자치 지역이 아닌, 다른 주나 현과 마찬가지로 조정에 귀속되어 통일서 있게 다스리게 되었다.더불어 안풍 친왕은 별도로 서신을 써서 황제인 우문호에게 보냈는데, 풍도성을 추천하지만, 이건어디까지나 건의와 추천이니 황제가 생각하는 마땅한 사람이 있으면 안풍 친왕의 추천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동시에 안지여의 잔당들이 계속 나타났다.안풍 친왕이 이번에 이렇게 많은 사람을 데려오고, 호랑이와 눈 늑대, 회색 늑대까지 출동시킨 건 바로 모든 세력을 강화하고, 신속하게 진압해 풍도성을 조정에 복귀시키고 보름 만에 비적을 토벌하며 기본적인 숙청을 마무리하기 위해서였다.박원은 잔당의 남은 불씨가 다시 타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서 안풍 친왕의 영패를 가지고 부근에 5천 명의 군사를 파견시켜 풍도성을 지켰다. 이리 나리는 자금을 지원해 천문 세가의 묘를 이장하였는데, 이전 무덤은 안지여가 고른 곳으로 폐허에 가까워, 그는 천문 세가 사람들이 그런 곳에서 안식을 취하기를 원하지 않았다.풍도성에 온지 거의 한 달가량 될 때쯤, 대군은 경성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돌아가기 전에 미색이 안지여와 소여쌍을 보러 갔다가, 돼지우리에서 죽느니만 못한 삶을 사는 것을 보고 그제야 비로소 맺혀 있던 한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미색은 이리 나리와 어머님에게 알리지 않은 것이, 두 사람은 이미 안지여가 누군지 잊은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리봉청에게 있어 모든 건 지나가지 않았고, 36년 전 일은 여전히 어제 일 같이 느껴졌다.“어머니, 그를 어떻게 처분하시겠어요?” 이리 나리는 이리봉청의 마음을 넘겨짚을 수 없어 함께 걷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생각은 어떠니?” 이리봉청이 다시 되묻자 이리 나리가 원한에 사무친 눈빛으로 말했다. “제게 처분하라고 하면 전 그를 죽여 버릴 겁니다.”이리봉청은 알았다며 대답만 했다가, 다시 30분쯤 걷다가 정자에 앉아 을 때 말을 덧붙였다. “난 안 죽일 거야.”이리 나리가 약간 놀라서 물었다. “어머니, 또 마음이 약해지신 겁니까?”이리봉청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 반대야. 그 인간을 죽이는 게 마음이 약해진 거지. 사실 며칠 동안 이전의 원한을 내려놓을 수 있을지 생각해 봤는데,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 인간을 백번이라도 죽이겠지만, 난 그럴 수 없더구나. 아들아, 게다가 오늘 천문 세가 대문을 들어서는 그 순간, 더욱 마음을 굳혔단다.”이리봉청이 일어나 집안을 둘러봤다. 이곳은 그녀의 가족들이 살아 원래 온통 사람 소리로 가득한 곳이였다. 그들의 웃던 광경이 눈앞에 비치는가 하더니, 눈 깜박할 사이에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그들은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천문 세가는 큰 잘못을 저지른 것도 없는데 멸문지화를 당했고, 가엾게도 그 중엔 아이들이 많아서 제일 어린아이는 이제 태어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었다.이리봉청의 얼굴에 눈물이 타고 흐르며 가슴이 미어졌다. “그자와 소여쌍을 밖에 내버리고 사람을 시켜 지켜보도록 해. 죽게 두지 말고 계속 살려둬. 36년은 더 살면서 이 세상의 고생을 모두 겪어야, 내 마음에 맺힌 한이 풀리고 억울한 망자들도 안식에 들지!”이리 나리는 온몸으로 그 마음이 느껴져, 어머니가 눈물 흘리는 것을 더는 볼 수 없었다. “네, 전부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대로 할게요.”안지여와 소여쌍은 버려졌다. 짧은 며칠 사이에 안지여는 의기양양하던 성주에서 시궁창 쥐로 변해, 사람들이
안지여는 풍도성 지하감옥에 갇혔다. 빛 한 줄기 없는 지하감옥에서 사방에 끝없는 어둠과 절망만이 안지여를 삼키고 있었다.훼천의 형벌은 12 시진 후면 사라져서, 앞으로 안지여는 그저 한 명의 폐인일 뿐이었다.안지여의 결사대가 성으로 공격해 들어오기 전에, 이리봉청은 오 선생을 찾아내 안지여가 저지른 모든 죄를 고백하게 하고 안풍 친왕이 친필로 받아 적었다. 안지여가 당시 천문 세가를 해친 경위를 소상히 써 내려간 뒤, 오 선생과 안풍 친왕의 직인을 찍고 인쇄해서 대중에게 공개했다.안지여의 죄악은 하늘을 찔러 백성들 모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안지여의 결사대의 옛 부하들이 본래 성을 공격해 들어가 안지여를 구출할 계획을 세워놓았으나, 안지여의 죄상이 공포된 뒤로 많은 사람들이 해산하였다. 유일하게 무대장군만이 수천 명을 데리고 성으로 쳐들어왔지만, 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가 이미 대비해둔 덕분에, 경성에서 굴러온 돌이 무대장군의 박힌 돌을 빼내는 전투를 벌였다.풍도성에 온 지 7일째, 안풍 친왕은 풍도성을 접수하고 성에 살던 사람을 쫓아내며 서민으로 강등시켰다.안지여와 소여쌍에 대한 처분은 이리봉청에게 넘겼다.안지여는 캄캄한 지하감옥에서 6일을 지내는 동안, 처음엔 침착한 척 가장했으나 사흘째가 되자 울부짖으며 악독한 저주의 말을 내뱉더니, 나흘째가 되자 용서해달라고 애원하며 참회했다.손발의 힘줄이 끊어진 안지여는 일어나 걸을 수도 없고 심지어 스스로 몫숨을 끊을 힘도 없었다.그 와중에 매일 누군가가 먹고 마시도록 해주고, 상처도 치료해 주어 살 수 있다는 부질없는 희망을 품게 했다.훼천의 말에 따르면, 진정한 절망은 살아도 죽느니만 못하고,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것으로, 온 마음으로 죽기를 바라지만 살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가, 안간힘을 쓴 뒤 다시 절망에 빠지는 것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으로, 사람을 한없이 죽였다 살렸다 괴롭힌다고 했다.결국 안지여를 죽일지 말지 여부는 이리봉청에게 달렸는데, 그녀는 안지여를 단번에 죽여 천문 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