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에서 안왕을“초왕비마마 조심하세요!” 안왕도 놀란 듯하나 얼른 손을 뻗어 원경릉을 부축하며 사과하길: “죄송해요, 화장실을 가려고 했는데 잠깐 딴생각을 하다가 누가 안에 있는 줄 모르고,”원경릉은 안왕의 얼굴이 창백하고 여전히 슬픔에 찬 눈을 보고, 제왕이 다쳤기 때문이란 생각에 바로: “괜찮아요, 가세요.” 원경릉은 안왕이 여전히 자신의 팔꿈치를 잡고 있는 것을 보고 일부러 물러서는데, 안왕은 원경릉이 넘어지는 건 줄 알고 얼른 끌어안으며, “초왕비마마 조심하세요.”원경릉의 전신이 안왕 품에 안겼는데 그의 몸에 침향 냄새가 코를 찌른다. 얼른 안왕을 밀쳐내며 날카로운 목소리로: “넷째 아주버님, 뭐하시는 거예요?”안왕이 한걸음 물러나서 난감한 얼굴로, “미안해요, 전 마마께서 넘어질 까봐, 아이고, 오늘 내가 왜 이러지? 정신이 나갔나 봐요. 초왕비마마 어서 가세요.”원경릉은 찝찝한 기분이 들었지만 안왕의 이 이상한 행동이 더 그녀의 주의를 끌었다.안왕이 아무리 정신이 나갔어도, 원경릉이 방금 넘어질 뻔한 상황이 아닌 걸 딱 보면 알겠고, 넘어질 뻔 했어도 한손으로 잡으면 되는데 왜 안았지?그리고 안왕이 잽싸게 손을 뻗어 안는데 원경릉을 안왕의 가슴팍에 일부러 확 누르는 것에 원경릉은 심한 반감을 느꼈다.원경릉이 눈을 내리깔고 :”넷째 아주버님, 저 먼저 가요.”말을 마치고 바로 떠났다.“초왕비마마!” 안왕이 갑자기 뒤에서 불렀다.원경릉이 고개를 돌려보니 안왕이 여의방(如意房)문 앞에 서 있는데 손에 손수건을 쥐고 살짝 흔들며 건방진 눈초리로 원경릉에게, “마마 건가요?”입꼬리가 살짝 들리고 복숭아꽃 무늬 주름이 지게 눈웃음을 치며 손수건을 들어올리는데, 손수건은 그의 코 끝과 입술 사이를 쓸고 지나갔다.“제 거 아니에요!” 원경릉은 돌아서서 바로 가다가 거의 기둥에 부딪힐 뻔 했다.뒤에 안왕의 웃음소리가 들렸는데 그 웃음소리는 더럽고, 악의에 가득 차 있었다.원경릉이 비틀비틀 방으로 돌아와 대야에 미친듯이 토했다.그녀는
주지스님과 원경릉제왕쪽은 원용의와 황후가 여전히 지키고 있으며 사식이도 있다.주지스님은 이미 차를 마시자고 초대받아 가서 어의 몇 명이 곁에서 시중을 들고 있었다.“원 언니, 전하 깨어날 수 있어요?” 원용의는 울어서 눈이 퉁퉁 부은 채로 원경릉을 손을 잡아 끌고 물었다.황후가 이 말을 듣고 귀를 쫑긋하고 한없이 원경릉을 쳐다본다.원경릉은 억지로 웃으며 위로하길, “착한 사람은 하늘이 돕는다고 하잖아요. 괜찮을 거예요.” 이 말은 가장 가망 없어 보이는 위로의 말이지만 원경릉이 하니 원용의는 왠지 모르지만 안심이 되는 것이다.“어마마마, 우선 가서 좀 쉬세요.” 원경릉은 황후가 앉아서도 무너질 듯 후들거리는 게, 당장 혼절한다고 해도 이상할 것 없는 모습이라 그렇게 얘기했다.연속으로 두 번 아들이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것 치고는 황후는 그래도 의연한 편이다.황위도 좋지만 목숨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야?그래서 황후는 원경릉에게 일종의 새로운 태도가 생겨났다. 적어도 여덟째와 이번 일에 원경릉은 앞뒤 가리지 않고 나서서 심지어 암살까지 겪었다.황후는 원경릉에게: “어의가 여기서 지키고 있으니 초왕비는 가서 좀 쉬게나, 몸도 불편한데.”원경릉도 지금 지키고 앉았어도 소용없는 것이, 전신마취를 했기 때문에 제왕이 그렇게 빨리 깨어나지 못할 것이다.원경릉은 돌아가도 잠이 올 것 같지 않고, 우문호도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을 뿐더러 돌아가서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면 구역질 나는 장면이 떠오를 게 뻔하니 차라리, 후배인 주지스님을 찾아가 얘기하는 게 낫겠다.주지는 여전히 정신이 생생하다. 주지 모습은 마치 선풍도골 노인이 불교의 자비까지 갖추고 태극권을 창시한 장삼풍(張三豐) 느낌이다.“선배님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 군요.” 주지가 일어나 두 손을 합장하고 원경릉에게 예를 표하는데, 사식이가 어리둥절해 하자 사식이에게 웃음을 보이며: “아가씨, 가시지요, 아마도 왕비마마께서 소승에게 볼 일이 있나 봅니다.”사식이가 ‘어’하더니 이상하다는 듯
뇌과학 어디까지?주지가: “그건 100% 무균상태를 보장할 수 없어요.”원경릉이: “그렇게 세세한 것까지 따질 수가 없어, 그저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하는 거지.”주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런 중요한 일을 선배가 소승에게 까지 부탁한 이상 소승이 당연히 도와야 지요.”“이 일은 보안을 철저히 유지할 거라 수술실에 들어가는 사람은 전부 내 심복이야. 밖으로 새나가 주지의 명성에 영향을 줄까 걱정할 필요 없어.”주지는 호국사의 주지스님으로 국사와 마찬가지로 만약 사람들에게 주지스님이 일개 여인을 위해 아이를 받으러 갔다는 소문이 퍼지면 확실히 명성에 해가 된다.주지가 웃으며, “그게 뭐라고, 아이를 받는 건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니 부처님도 인정하실 겁니다.”원경릉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안심이 되었다.“하지만 이 일은 비밀에 부쳐야 해. 반드시 출산 전후에 날 지켜보는 사람이 적지 않을 거니까. 넌 내 최후의 비밀무기로 너와 날 제외하고 제삼자에게 절대 말하지 않을 거야, 설사 왕야 쪽에도 당분간은 함구할 거야.”왕야한테서 말이 새나갈까 걱정이 아니라 우문호의 사고방식이 완고하고 보수적이라 만약 늙은 남자를 산파로 부른다는 걸 알면 분명 반대할 것이기 때문이다.가장 중요한 건 제왕절개는 여기서 성행하지 않는 것으로 우문호는 대략 상당히 위험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어 동의할 리가 없다.하지만 닥쳐서 긴급한 상황이면 우문호도 동의고 자시고 없다.중요한 얘기를 다 마치고 원경릉은 주지와 농담 따먹기를 했다.주지가 문득: “선배, 선배는 자신한테 무슨 능력이 있다고 생각해요?”원경릉이 주지에게, “능력? 빨래 요리 같은 거?”주지가 웃으며 온화한 눈빛으로 원경릉에게, “예를 들면, 공간을 초월해 물건을 가져온다 든지.”원경릉이 헛웃음을 흘리며, “내가 무슨 신선도 아니고.”곧바로 농담으로 받으며, “설마 넌 할 수 있어?”주지가 느릿느릿 손을 뻗자 원경릉은 자기 탁자 위에 잔이 갑자기 둥둥 떠서 다시 평행이동 하더니 조용히 주지
뇌과학의 신비가 세 쌍둥이에게주지가: “선배, 이 신체에서 대뇌는 이미 선배의 의식이 전부 잠식했는데 선배는 여전히 약 상자를 제어할 수 있는 거 왜 인지 알아요?”원경릉은 전에 호국사에서 일을 떠올렸다. 그와 이 문제를 감히 토론할 수 없는 것이 저번에 그는 신학과 자신의 연구를 뒤섞어 얘기해서 원경릉을 놀라게 했다.“왜 그런데?” 원경릉이 물었다.잔이 서서히 원경릉의 뒤에 떨어져 원경릉은 다른 한 손으로 잡아서 탁자에 놓고 주지를 봤다.주지가: “왜냐면, 전에 선배가 살던 곳에 어떤 사람 어쩌면 선배의 의식이 있어서 서로의 의식이 통하고 있는 거예요. 선배 자신이 아직 모를 뿐이지.”원경릉이 생각해보더니, “네 말은 내 연구가 성공했다는 거지? 내가 연구개발한 약은 결국 상용화됐어?”“선배의 연구계획은 보류되면서 아무도 같은 연구를 진행하지 않았어요, 적어도 공개적으로는. 왜냐면 인류는 이미 충분히 똑똑해 졌거든요.” 주지가 말했다.“그래서, 너는 개인적으로 연구한 거야?” 원경릉이 물었다.주지의 눈은 여전히 과학 연구에 대한 열정으로 빛나며, “맞아요, 23살때부터 선배의 과제를 연구하기 시작해 선배에 관한 모든 자료를 찾았죠, 선배의 학술논문, 편지, 메모할 것없이 전부요.”원경릉은 마음이 ‘쿵’하고 내려앉으며 다급하게, “그럼 알겠네, 내가 죽은 뒤에 부모님이랑 가족은?”주지가: “부모님은 선배가 죽은 후에 수양딸을 들였어요, 선배 모습과 70~80% 닮았어요.”원경릉이 경악하며, “그거 우연이야?”“더욱 공교로운 건 그녀도 의학박사고 선배의 과제를 연구한 적이 있다는 거예요, 단지 그녀는 당신이 죽은 뒤 10년, 아무런 이유 없이 사라졌어요. 행적을 알 수 없었죠.”원경릉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마지막으로 원경릉은 천천히 이 일을 되새기며: “내 일에 대해서 얼마나 더 알고 있어?”주지가: “선배는 어느 쪽을 말하는 걸까요? 상당히 많이 제가 알고 있거든요.”주지는 더이상 소승이 어쩌고 하는 말투를 쓰지 않았
고군분투하는 원경릉과 우문호사람이 태어날 때 사용할 수 있는 뇌세포수가 정해져서 18살이 된 뒤 뇌세포는 매년 감소하다가 사망에 이르게 된다.원경릉 자신의 연구 시작은 뉴런 발생을 진행하는 연구로 기존 연구에 근거해 신경세포는 신경줄기세포를 자극함으로써 분화 재생할 수 있다는 데서 출발했다.하지만 이런 신경 발생은 측뇌실(Lateral ventricle) 하부와 해마의 치하이랑(Dentate gyrus)에 국한되어 있다.만약 뇌세포가 분열 재생할 수 있다면 이미 그녀의 연구 범주를 넘어서는 것이다.그래서 주지의 말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하지만 그녀와 주지가 나눈 얘기는 비록 놀랍기 그지 없지만 이게 바로 그녀가 가장 익숙한 영역이란 걸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적통을 다투고, 알력을 행사하고 궁중 암투를 벌이는 게 아니라 말이다.학술계의 쟁론은 설사 서로 칼끝을 겨눌만큼 예리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지치게 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흥미진진하게 몰입하게 만든다.의대를 열겠다는 생각이 더욱 굳어졌다.제왕의 상황은 여전히 낙관적이지 않아서 비록 날이 어두워졌지만 원경릉도 떠나기가 그랬다.오늘밤은 계속 여기서 지키는 편이 낫겠다.우문호는 돌아오지 않았고 여전히 바깥을 뛰어다니는지 서일이 가는 길에 들러 원경릉을 보더니 왕야께서 마마를 그리워하신다고 전했다.원경릉은 오직 한가지 일만 관심을 가지고, “식사는 하셨어?”서일이 탄식하며, “식사요? 물 한모금도 안 드셨어요.”원경릉이 얼른 간식을 집어서 기름종이에 싸더니 서일의 주머니에 찔러 넣고, “왕야를 보거든 전해 드려.”서일 자신도 몇개 집어서 한번에 입어 우적우적 넣고 씹으며: “아아써으”말을 마치고 잠시도 쉬지 않고 바로 갔다.새벽녘에 제왕이 열이 나기 시작했다.감염된 게 아닐까 원경릉은 걱정이 돼서 죽을 지경이다.정맥 주사, 근육 주사, 투약, 물리적 체온 강하, 네 가지를 다 했다.날이 밝을 때까지 열이 오르락내리락하다가 체온이 서서히 떨어졌다.원경릉은 피곤해서 두 눈을
안왕의 음흉한 속셈우문호가 명을 받고 나가려는 때 속으로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만약 범인이 넷째라면 이번 거사는 상당한 시간을 들여 치밀하게 기획했다는 사실이다.우문호가 다시 경조부로 복직해서 일을 처리하는 시점에 거사를 일으키면 일석삼조다.일곱째를 죽이고, 큰형에게 죄를 덮어 씌운 뒤, 마지막으로 우문호라는 경조부 부윤은 임무를 게을리 했다는 이유로 다시 면직시키는 것이다.좋은 계획이야.우문호는 사실 이미 몰래 안왕을 대비하고 있었으나 선수를 쳐서 제압할 방법은 없었다.우문호는 지금 많은 인맥을 쌓았지만 원 선생의 상태가 너무 주목을 끌어서 우문호가 뭘 해도 이목을 집중시키고 만다. 일을 조금만 허술히 해도, 초왕부에 무슨 이상한 낌새라도 생겨도, 아바마마는 바로 우문호에게 들어오라고 한다.아바마마, 아시죠, 아바마마의 관심은 사실 저에 대한 억압이죠? 제가 지금 그저 매나 맞는 형국일 수밖에 없도록 압제하는 거 말이죠.우문호가 피폐한 채로 말에 올라, 원 선생이 습격을 당한 이래 지금까지 그녀에게 한마디도 하지 못했음을 떠올렸다.원 선생은 간이 콩알만한데 이번에 놀라서 어떻게 된 건 아니겠지?우문호가 결국 눈가가 붉어졌는데 이렇게 억울했던 적이 없었다.안왕부.서재 안은 향을 태우는데, 투조로 되어 있는 귀한 향로에서 흰 연기가 서서히 뿜어져 나온다.침향의 향기가 서재 구석구석을 가득 메웠다.아라는 침향 분말을 미세하게 갈아 놓았는데 그녀의 손가락은 파뿌리처럼 하얗고, 윤이 나고 매끄러울 뿐 아니라 움직임까지 우아하다.아라가 탁자 위의 손수건에 무심코 눈이 가자, 안왕은 눈을 감고 공기 중에 퍼진 침향의 향을 맡으며 깊이 취한 얼굴이다.“이 손수건은……” 아라가 다 갈은 향 분말을 향로에 넣으며 작은 목소리로, “초왕비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데요.”“내가 훔친 거야.” 안왕이 냉소를 지었다.“어디에 쓰시게요?” 아라가 그의 곁으로 한바퀴 돌아 와서 안왕의 태양혈을 지그시 눌러 주었다.안왕이 아라의 손을 잡아 끌며, “
마차로 납치하는 안왕제왕부 별채.오후가 되자 제왕이 점점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심박수, 혈압이 비록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지만 전에 비해서 확실히 좋아졌다.원경릉이 초왕부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싶어하니, 희상궁이 마차를 준비시켰다.마차가 준비되자 희상궁이 원경릉을 모시고 마차에 오르게 한 뒤 다시 가서 만아를 부축해 왔다.그런데 이를 어째, 원경릉이 마차에 막 오르자 마자, 바퀴가 훌렁 날아가 버렸다.마차가 순식간에 한쪽으로 꺼지더니 기울면서 호위들이 질겁을 했다.다행히 원경릉은 넘어지지 않았고, 가로로 된 버팀목에 머리를 부딪혔으나 그렇게 아프진 않았다.희상궁이 원경릉을 부축해 마차에서 내리며 고래고래: “제왕부의 아랫것들은 일을 이따위로 하느냐? 마차가 고장이 나도 고치질 않다니.”“됐어요, 사용할 수 있는 다른 마차가 있는지 좀 봐요.” 원경릉이 연속적으로 일이 터지자 마음이 불안해서 얼른 초왕부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 뿐이다.호위가 들어가서 물어보더니 제왕부에는 마차가 두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이미 밖에 나가 있다는 것이다.원경릉이 하는 수 없이: “그럼 우선 기다리죠.”돌아가려는 찰나 안왕부의 마차가 입구로 서서히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안왕이 마차에서 내려 바퀴가 날아간 것을 보더니 놀라서 원경릉에게: “초왕비마마 초왕부로 돌아가십니까?”안왕의 역겨운 모습을 본 적이 있는 원경릉은 이렇게 우아하고 질박한 모습의 안왕을 보니 위화감이 느껴졌다.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있어서 다른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하게: “예.”안왕이 미소를 지으며: “이 마차는 못 움직이겠어요. 이렇게 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제 마차를 빌려드리지요.”희상궁은 마차를 찾아낼 생각에 근심하던 차에 안왕의 얘기를 듣고 얼른 감사하는데 원경릉이 막으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안왕이: “이틀간 너무 많은 일이 있었지요, 이렇게 합시다. 제가 왕비마마께서 초왕부로 돌아가시는 걸 호송해 드리겠습니다.”“필요 없습니다, 전 다섯째가 돌아오는 걸 기다리겠어요.” 원경
원경릉을 마차에서 협박하는 안왕원경릉은 두 손을 소매 속에 찔러 넣고 어장을 꽉 쥐었다. 마차가 일단 움직이자 원경릉이 안에서 날카롭게 소리쳐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소리지르는 건 무기가 아니다.“왕야는 절 협박하시는 겁니까?” 원경릉이 차가운 얼굴로 물었다.안왕이 하하 웃더니, “뭘 그렇게 경계하고 그래? 내가 당신을 잡아 먹는 것도 아니고, 그냥 초왕부까지 데려다 준다는데.”잡아 먹지 않는다는 말이 손수건의 냄새를 맡던 천박한 모습을 떠오르게 해, 원경릉은 전신에 닭살이 쫙 돋아 올라왔다.원경릉이 가장자리로 비켜서 안왕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지만 마차가 넓지 않고 안왕이 덩치가 좋아서 어디로 숨든 안왕의 몸이 주는 압박감으로 원경릉은 숨 쉬기도 힘들다.원경릉은 구역질이 나는 걸 참으며, “그럼 제가 어찌 안왕 전하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안왕이 원경릉 곁으로 옮기자 침향 냄새가 짙게 원경릉에게 밀려오는데, 침향은 원래 매우 좋은 냄새지만 원경릉은 지금 토하고 싶다는 생각만 들고 평생 다시는 이 냄새를 맡고 싶지 않았다.“듣자 하니,” 안왕이 천천히 원경릉을 똑바로 바라보며 멋대로에 사악한 눈빛으로, “셋을 임신하다니, 왜 그렇게 복이 넘치는 거지?”안왕이 손을 뻗어 원경릉의 배를 만졌다.원경릉이 한 손을 꺼내 어장을 안왕의 가슴에 겨누고 노해서: “다가오지 마.”안왕이 고개를 숙이고 어장을 보더니 입꼬리를 올리고 비웃으며, “이게 태상황께서 하사한 어장인가? 위로는 못된 임금을 때리고 아래로는 탐욕스런 신하를 때린다 던데, 게다가 이 어장으로 셋째를 때렸다면서 그것도 아주 통쾌하게?”안왕이 한손으로 어장을 빼앗아 들고 진지하게 보더니, “황조부 솜씨가 과연 대단하네, 조각이 전부 정교하기 그지없군, 황조부가 진짜 널 총애하나 봐. 아나 몰라, 너 때문에 다섯째라는 쥐구멍에 볕이 들었다는 거.”안왕이 히히 웃으며 원경릉을 보고, “넌 이 어장으로 날 때리고 싶나?”그의 몸이 다가오면서 가슴이 거의 원경릉의 배를 누른다. 안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냉정언이 물었다. "그렇다면 어찌 의원을 부르지 않은 것이냐?" 역 일꾼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돈이 없다고 하셔서 해열에 좋은 약초를 조금 달여주었지만,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방에 다른 사람이 들어오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의원을 부르고 진료하고 약을 짓는 데에는 모두 돈이 필요했지만, 역에서는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예산이 따로 없었다. "오계부의 부승이 상경하여 직무를 보고하러 왔는데, 돈도 지니지 않았다는 것이냐?" 냉정언이 놀라서 물었다. "나리께서 돈이 든 보따리를 도둑맞았다고 하셨습니다." "혼자 온 것이냐?" 냉정언이 물었다. "예. 관속이나 아전도 없이 혼자입니다." 경성과 꽤 멀리 떨어진 오계부의 부승이 그 먼 길을 수행 인원도 없이 홀로 와, 직무를 보고하는 것은 꽤 이상한 일이었다. 원경릉이 말했다. "내가 확인하겠소." "부인께서 의원이십니까?" "그렇다. 길을 안내하거라." 원경릉이 답했다. 역 일꾼은 별다른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북당에서는 여인이 의술을 익히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황후가 의학원을 세운 이후, 해마다 여인들이 입학하여 의술을 배우고 있었다. 우문호가 미색을 돌아보자, 미색이 바로 입을 열었다.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원경릉은 약상자를 챙겨 들고, 역 일꾼의 안내를 받아 한 객실로 향했는데, 문이 세게 잠겨져 있었다. 일꾼이 문을 두드렸다. "제 대인, 제 대인. 의원께서 오셨습니다. 문 좀 열어주십시오." 하지만 방은 일꾼의 부름에도 여전히 잠잠했다. 이내 기침 소리가 들려왔고, 한참 기침을 하다, 쇳소리 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마." 말이 끝나자, 침대에서 일어나 휘청거리며 걸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곧 문이 열렸고, 솜으로 만든 마스크로 코와 입을 가린 채, 핏발이 선 눈만 드러낸 관리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피곤하고 지친 모습으로 문턱을 잡고 서 있었다. 그는 숨을 고른 뒤
이번 순행에 서일이 동참하면서 사식이도 함께 가게 되었다. 그러나 고된 여정에 아이를 데리고 다니기엔 무리가 있었다. 다행히 원가에서 사식이가 서일과 함께 순행에 나선다는 소식을 듣고, 원가는 서일 부부가 3년이든 5년이든 돌아오지 않더라도 아이를 잘 돌보겠다고 약속해주었다. 그 역시 아이들과 떠들썩하게 지내고 싶어 했던 터라 기뻤다.탕양도 순행에 참여했으나, 그의 부인은 맡은 직책이 있어 동행하지 않기로 했다. 미색 또한 당연히 회왕을 따라갈 예정이었으나, 오랜만의 외출인 만큼 아이를 데리고 간다면 재미가 없을 테니, 아이를 데리고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러자 그녀의 시어머니인 태비도 흔쾌히 아이를 돌보겠다고 나섰다. 이제 아이도 다 컸으니 힘들게 돌볼 필요가 없어졌으니 말이다. 그렇게 모두가 신나게 순행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원경릉은 순행을 기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숙왕부의 노인들이 걱정되었다. 비록 삼대 거두는 여행을 떠난 상황이긴 하지만, 숙왕부에는 아직 흑영 어르신들이 계셨다. 그리고 안정을 찾은 추 할머니마저 지속해서 약을 복용해야만 했다. 온갖 걱정에 흽싸인 원경릉 때문에 오히려 원 할머니가 그 모습을 보고 성가시다고 느꼈는지, 진지하게 말했다. "그냥 편히 놀러 가면 되지, 뭘 그렇게 걱정하냐? 내가 있지 않느냐?"그 말에 원경릉은 할머니를 껴안으며 웃었다."맞아요. 제가 몸이 열 개라도 할머니는 못 이길 테니까요!"이 말은 틀리지 않았다. 원경릉이 비록 황후라고 해도, 숙방부에서의 위세가 그리 대단하지는 않았다. 그런 그녀가 유일하게 권력을 행사할 수 있을 때는 바로 주사기를 꺼낼 때 뿐이지만, 원 할머니는 달랐다. 그녀는 그냥 서 있기만 해도, 눈빛 하나만으로 모든 사람을 제압할 수 있었다. 게다가 최근 몇 년 사이, 그녀의 성격이 점점 난폭해져서, 틈만 나면 사람을 끌고 가서 주사를 놓았다. 원 할머니가 손수 만든 약이 한가득 담긴, 원경릉의 약상자에는 없는 귀한 약들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 약들은 수토불복, 고
조사가 끝난 후, 목을 쳐야 할 자는 목을 치고, 옥에 보내야 할 자는 옥에 보냈다. 그리고 오씨가 챙긴 돈은 전부 피해자 가족들에게 배상되었다.우문호는 신하들 앞에서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 못했다. 그는 탐관오리를 금지하고 청렴을 장려하는 법을 내렸으며, 부정부패 전담 조사 관아를 설립해 전국을 조사하라 명했다. 부정부패를 근절해야 백성들이 잘 살 수 있다고 강조했다.동시에 그는 신하들의 봉급 인상을 제안했다. "예전엔 나라가 가난해 관리들의 봉급이 적었지만, 이제는 나라도 번영하고 산업이 활성화되었으니 함께 잘 살아야 할 때다." 봉급을 높이면 부정부패 예방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 덧붙였다.조회가 끝난 후 우문호는 수보와 친왕들을 불러 오래 전부터 품어온 생각을 털어놓았다."과인은 순행하고자 하오!"나라가 태평하지만 황제의 관심이 미치지 못하는 곳도 있다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초왕과 태자 시절에는 백성들의 고통을 잘 알았지만, 지금은 점점 백성과 멀어지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직접 돌아다니며 백성들의 삶을 보고 싶었고, 공무를 핑계로 원 선생과 북당 전역을 둘러보고 싶었다.냉정언이 적극 찬성하며 말했다."상소문만으로는 진실을 알 수 없습니다. 은폐된 사실, 억울한 사건, 고통받는 백성들을 직접 확인해야 합니다.""옳은 말이네." 우문호는 최근 냉정언의 말이 마음에 들었다.그러나 냉정언이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하지만 아직 각지에 위험한 도적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폐하의 안전을 위해 소신이 대신 가는 것이..."그러자 우문호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수보의 말도 일리 있지만, 참 뻔뻔하구먼!" 그러고는 어명이 적힌 서찰을 건네며 덧붙였다."함께 순행할 명단이니 반포하시게!"냉정언은 자기가 제외될 줄 알았으나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있는 것을 보고 기쁜 목소리로 물었다."소신도 갈 수 있습니까?""가시게. 국정에 큰일이 없으니 내각에서 처리할 수 있네. 새로 양성한 인재들의 능력을 시험해볼 기회이기도 하고.""상산명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