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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28화

작가: 유애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0-29 19:42:56
죄를 시인한 고지

고지는 울며 몸부림을 치고 힘껏 몸을 뒤로 빼며, “초왕비마마, 절 놔주세요. 마마께서 잡아당긴 손목이 너무 아파요, 아야, 너무 아파.”

고지가 하도 구슬프게 울어서 밖에 있는 사람이 모르고 들으면 원경릉이 고지를 때린 줄 알겠다.

몸종들이 안달이 나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원경릉을 말리려 하자 사식이와 만아가 원경릉 앞에 서서 소리쳤다. “누구든 감히 왕비마마의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면 그년의 손모가지를 분질러 놓을 테다.”

고지가 울며 말했다. “초왕비마마, 귀하신 신분으로 어찌 신첩과 다투십니까? 신첩이 잘못했습니다. 마마께서 신첩이 위왕비마마를 밀었다고 하니 신첩이 그런 것이겠지요. 신첩은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기왕비가 얼굴색도 변하지 않고 앉아 있고, 반대로 손왕비는 나와서 한 대 칠 기세다. 이 거짓말쟁이 년.

원경릉이 고지를 노려보며 울어서 콧물이 나올 지경이 되자 비로소 천천히 고지를 놓아주더니 만아에게: “청동거울을 가져오너라.”

만아는 원경릉의 의도를 모르지만 하여간 가서 큰 청동거울을 가져왔다. 원경릉이 물러나 느긋하게 옷 매무새를 고치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녀에게 자기 모습을 보여줘라.”

만아가 큰 청동거울을 고지 얼굴 앞으로 밀자, 고지는 순간 울음을 멈추고 난감하다는 듯 뒤로 물러났지만 청동거울이 상당히 커서 고지가 뒤로 갔어도 거울에 비친 눈가가 벌겋고 콧물이 흐르고 머리를 산발한 여인을 볼 수 있었다.

고지는 숨고 싶지만 숨을 데가 없고 분노의 눈빛으로 원경릉을 쏘아보며, “초왕비마마는 제가 자신의 용모가 사람 같지 않다는 것을 알기를 바라셨습니까? 그저 외모만 보다니 정말 천박하네요.”

원경릉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거울에서 본 모습은 네 외모가 아니라 오히려 네 마음이야. 추하지? 네 스스로도 보기 싫지? 고지야, 네가 한 짓을 가지고, 널 짐승이라고 욕하면 짐승한테 모욕이야.”

고지가 주먹을 꼭 쥐고 눈 밑이 바르르 떨리는데 억울해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왜 절 괴롭히세요? 위왕비에게 불공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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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왕비 사건, 손왕비가 나서라고지는 가볍게 한숨을 쉬더니 배를 만지고 고개를 들어 어멈을 보더니 붉어진 눈으로, “어멈, 사실대로 말해봐, 내가 왕비한테 미안한 거 맞지?”어멈은 고지가 지금 총애를 받는 줄 알고 비위를 맞추는 것만 생각해서: “부인, 미안하고 아니고 하는 게 어디 있겠어요? 왕야 같은 멋진 남자를 어느 여자가 보고 안 반하겠습니까? 게다가 왕야도 정말 부인을 좋아하시고요.”어멈은 고지가 말이 없는 것을 보고 계속해서 말했다. “그리고, 왕비 자신도 잘 모르나 본데 사실 왕비는 정비니 부인이 아들을 낳는다고 해도 왕비를 어머니라고 부르게 되지요. 명분상 같은 위왕 전하의 아들이나, 왕비 자신이 임신하고 유산한 아이보다 살아있는 부인 아기가 훨씬 낫지요.”고지는 이 말을 듣고 몸서리를 치며: “내가 낳은 아들을 어떻게 다른 사람을 엄마로 알게 할 수가 있어?”어멈이 당황해서, “부인, 이것도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고지는 잠자코 있는데 속이 쓰렸다.그래, 고지가 또 총애를 입는다 해도 경국 명분이 없잖아.앞으로 아이가 태어나면 왕비를 어머니라고 불러야 한다.고지는 잠시 수심에 잠겼다가 다시 원경릉의 말을 떠올리고 더욱 마음이 힘들어졌다.원경릉과 왕비들이 나가자 손왕비가물었다 “내일 진짜 입궁해서 태후마마께 이 일을 보고할거야?”원경릉이 웃으며 답했다 “제가 입궁하는 건 아니고, 둘째 형님 당신이요.”“내가?” 손왕비 놀랐다.“맞아요, 전 지금 입궁할 수 없으니 내일 궁에 가셔서 태후마마께 말씀해 주세요. 위왕이 강제로 일반 백성의 딸을 위왕부에 남게 했는데 그 여자는 원래 원하지 않았다고 말이예요. 태후마마께서 어찌 하시는 지 보세요.”손왕비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년이 안 원하긴요? 내가 보긴 아주 여기 있고 싶어 안달이던데.”“고지 마음 속에 희망 여부는 신경 쓰지 말자구요. 오늘 자기 입으로 원하지 않았다고 했잖아요. 이 말은 우리 셋과 사식이가 안에서 같이 직접 들었으니 고지도 발뺌하기 힘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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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왕비와 기왕비의 말다툼손왕비는 그제서야 ’응’하더니 조금 있다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셋째가 오늘밤 돌아와서 위왕비를 괴롭힐 수도 있잖아요.”원경릉이: “안심하셔도 돼요, 위왕비마마는 그렇게 쉽게 당할 사람 아니에요.”“쉽게 당하지 않는다고? 몇 번이나 죽을 기회를 넘겼다고.” 손왕비가 씩씩거리며 말했다.원경릉이 웃기만 할 뿐 말이 없다.위왕비가 있는 곳에 돌아가자마자 손왕비는 한시도 지체할 여유가 없는 듯 얼른 온고각의 일을 얘기하며 고지가 얼마나 가련한 척을 해댔는지, 얼마나 뻔뻔한 지 알렸다.위왕비가 다 듣고 나서 미소를 띠고, “뭘 신경 쓰고 그래요?”“그 여자한테는 전혀 신경 안 써요, 남자를 뺏길 거 같아서 그러지요.” 손왕비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며 발을 굴렀다.“제 것이면 못 가져갈 거고, 제 것이 아니어도 소중하지 않습니다.” 위왕비가 담담하게 말했다.손왕비는 사실 위왕비에게 뭐라고 말해줘야 할지 몰라 걱정스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오늘밤 셋째가 돌아오면 뭔가 위왕비를 힘들게 할 수도 있어요, 모든 걸 다 저한테 떠넘기세요, 제가 둘째 형수니 함부로 못할 겁니다.”위왕비가 가볍게 입술을 깨물었다가 놓으니 입술에서 한줄기 붉은 피가 스며 나와 옅은 미소를 띠고, “걱정 마세요, 제가 잘 상대할 수 있어요.”위왕비는 원경릉을 보고 감사를 가득 담아, “모든 재주를 가진 분께 신세를 지니, 위급할 때 달려와 도우신 은혜 잊지 않으리, 초왕비 고마워요.”원경릉이 보니 위왕비의 눈 밑이 맑고 예전만큼 우울증이 심하지 않아 마음속으로 안도하며 답했다. “감사하실 것까지 없어요, 저희도 마마가 쉬시는 걸 방해한 걸요. 진통제 몇 알 더 드릴 게요. 많이 아프시면 드세요, 그리고 지난 번에 드린 건 여전히 잠이 안 올 때 한 알 드시면 됩니다.”위왕비가 이번엔 진심을 담아 말했다. “기억할 게요, 고마워요.”원경릉이 약 상자를 열자 손왕비가 다가와 의혹의 눈빛으로 말했다. “이 상자는 어의 거랑 다르네요, 안에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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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헛탕친 우문호원경릉이 말했다. “고지가 아이를 가졌으니 태후마마께서는 절대 그녀를 경성에서 떠나도록 하실 리 없습니다. 하지만 태후마마께서 위왕 전하를 각별히 사랑하시니, 자연히 위왕 전하의 명성을 더럽히지 않도록 고지에게 따로 장소를 마련해 주고 지켜 보실 겁니다. 아이를 낳은 후에 다시 생각하시겠지요.”“위왕은 분명 싫어할 텐데요.” 기왕비가 말했다.“싫으면 난동을 부리라고 하죠.”기왕비가 코웃음을 치며, “이기적이기도 하지, 제가 눈치 못 챌 거 같습니까? 위왕이 난동을 피우면 초왕은 아바마마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심산이죠? 초왕비도 위왕비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였네요.”원경릉이 어깨를 으쓱하며, “우리가 위왕비를 위해 뭘 해줄 필요가 없어요. 본인이 이미 생각이 있던 걸요.”“그걸 어떻게 알아요?” 기왕비가 화들짝 놀랐다. 음모나 계략은 기왕비가 훤히 꿰뚫어 보지만 위왕비의 생각은 기왕비도 알 수가 없었다.전에 기왕비와 위왕비는 마주친 적이 많지 않아서 받은 인상은 그저 유약하고 부드러운 사람이라는 것 정도다.“짐작한 거죠.” 원경릉은 기왕비와 오래 말을 주고받고 싶지 않았다. 기왕비는 추측하는데 달인으로 그녀와 말을 섞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완전 피곤.기왕비가 말했다. “저는 위왕비가 아무 생각이 없어 보이던데, 그게 아니면 손목을 그을 필요도 없잖아요, 이번에 다락에서 떨어진 건 누가 밀어서라고 해도, 손목을 그은 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위왕비 자신인 걸요. 본인 마음이 약한 걸 다른 사람 탓할 순 없죠.”“위왕비는 병이 있어요.” 원경릉이 참지 못하고 그만 한마디 하고 말았다.“무슨 병이요?” 원경릉은 기왕비의 호기심이 왕성한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고 고개를 젓고 어이없이 웃다가: “마음의 병이겠죠.”기왕비가 구시렁거리며, “마음에 병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황실의 며느리가 되면 행복은 없는 거라고요.”기왕비가 얘기하다가 원경릉을 흘끔흘끔 보며, “초왕비는 뭐 예외 지만요.”원경릉은 웃으며 기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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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고만장한 진북후의 속내야심이란 정말 끝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해가 되지 않는 게, “진북후는 고작 비적을 토벌하고 백성을 평안케 했을 뿐인데 그게 뭐가 그리 대단한 거야?”적을 물리쳐서 나라를 지킨 것이라면 왕야에 봉해달라는 말이 설득력이 있을 수 있다.우문호가 설명하길: “진북 일대는 줄곧 조정의 골칫거리로, 진북의 인구는 조만간 80만에 달하며 이들은 장난 아니게 사나워. 이유는 지난 조정에서 가제(嘉帝)가 어명을 내려 전국의 비적을 토벌하게 했는데, 워낙 세가 크다 보니 비적과 산적들이 전부 진북 일대로 도망을 쳤어. 진북 쪽은 북막(北漠)과 접경지역이라 조정에서 공격하기 어렵거든. 조정의 대군이 진북으로 간다고 생각해봐, 북막의 경계심을 불러일으키고 말아. 그래서 가제는 어쩔 수 없이 비적과 산적들이 진북에 정착해서 뿌리를 내리게 했지. 화근을 남긴 셈이지. 진북의 비적들은 매년 북당 각처로 돌며 약탈과 살인을 일삼다가 볼일을 마치면 다시 진북으로 돌아가길 반복했지. 몇 년 전에 아바마마께서 호대장군을 진북으로 파견해 비적을 토벌하게 한 것은, 그저 적당히 위협하거나 약간 압박을 가하길 바란 건데 진북후가 비적을 깨끗하게 토벌해 버린 거야. 그 뿐 아니라 남은 자들을 전부 투항하게 해서 자신의 진북군에 편입시켰어, 바꿔 말해 지금 진북후 수중의 병마는 시들시들한 걸 빼고도 적어도 2~30만은 될 걸. 이것도 보수적으로 잡은 거야.”원경릉이 그제서야: “그러니까 진북후는 업적도 있고 병력도 있다. 이런 뜻이지?”“바로 그거야. 진북후는 진북의 황제라고 할 수 있어서 아무도 반대하지 못하고 병력을 가졌으니 위세가 대단한 데다 전공도 황제보다 크다고 생각하니 방자하게 날뛰고 있지. 일단 야심이 큰 게 조정의 큰 우환이야.”원경릉이 이제서야 명원제의 난감한 상황이 이해되었다.원경릉 생각에 명원제는 자신에게 인자한 편이었다.북당이 이런 국면에 처해 있어 명원제가 세운 모든 계획을, 다른 여자가 내 남편을 빼앗아 가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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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욕하는 원경릉과 우문호원경릉은 배가 점점 나와서 목욕하기 편하지 않은 데다 희상궁과 만아가 옆에서 목욕 시중을 드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혼자서 가끔 낭패를 볼 때가 있었다.목욕탕이 따듯한 게 일찍부터 난로를 피워 놓았는데 정후부는 초왕부처럼 지렁이가 있어서 가는 곳마다 전부 숯화로를 피워야 했다.우문호는 목욕탕이 충분히 따듯한 것을 보고 난로를 밖으로 가져갔는데 조금 있다가 옷을 입을 때 다시 가지고 들어올 것이다.원경릉이 지금 임신을 해서 탕 목욕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만아가 정성 들여 목욕 전용 의자를 만들어 원경릉을 목욕통 옆에 앉히고 안에 긴 바가지를 띄워 놓은 뒤 뜨거운 물을 몸에 끼얹어 주었다.우문호가 원경릉의 옷을 벗겨주는데 황실 출신이지만 군에서 지낸 세월이 많아 세심한 구석이 좀 서툰 면이 있다. 그래도 조심조심 하는 법을 배워서 여자 옷을 어떻게 벗기는지 잘 알게 되었다.원경릉의 하얀 죽순 같은 속살을 보고 우문호는 마음 속으로 끝없이 감탄하며 배 속에 이 꼬맹이 녀석아, 꼭 지금 왔어야 했어?우문호가 원경릉을 의자에 앉히고 옷을 벗기니 배가 한층 더 커 보이는 게 원경릉의 배를 만지며: “넌 몇 번째 녀석이냐,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지만 아빠가 너네 목욕시켜 줄게.”원경릉이 어이없다는 듯, “여기 온도가 사실 그렇게 따듯한 게 아닌 거 알아?”우문호가 얼른 바가지를 집어 원경릉의 몸에 물을 뿌리는데 물온도가 딱 좋아서 하얀 수증기가 피어난다.“온도 괜찮아?” 우문호가 물을 뿌려주며 묻는데 다른 손으론 원경릉의 몸을 닦는 것이 상당히 정성스럽다.원경릉 답했다.: “좋아.”원경릉이 자신의 발가락을 보며 아직 자기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우문호가 한동안 물을 끼얹더니 잠시 멈췄다가 원경릉의 몸에 세정제를 바르는 폼이 영락없는 프로다.원경릉이 웃음이 터지는 걸 참지 못하고, 우문호의 고집불통의 모습을 보며, 재촉하듯: “왕야, 잠자리 시중을 드는 여자 필요한 거 아냐?”우문호는 고개도 들지 않고: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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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문호의 질문과 위왕의 갑작스런 방문원경릉이 우문호를 보고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끼며 꺾이는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뜻이야?”우문호의 손가락이 천천히 원경릉의 심장을 가리키며, “이 안에 사람이 바뀌었어.”“어?” 눈초리가 사나워지며 웃었다.우문호가 담담하게 말했다. “억지로 침착한 척 하지 마, 속으로 허둥대는 거 다 알아.”원경릉이 ‘응’하고 고개를 숙이고 옷을 정리했다. “어디 얘기 좀 해봐 내가 뭘 허둥댄다고 그래.”우문호가 원경릉의 얼굴을 떠받치더니 그녀의 눈동자를 뚫어지게 바라보는데 원경릉 마음속의 솜털 하나까지 다 들여다 보는 것 같다.“뭘 봐? 할 말 있으면 해.”우문호의 눈이 천천히 부드러워지며, “싫어, 열심히 변명하고 거짓말하는 거 보고 싶지 않아, 네가 한 말 너도 수긍 못하잖아.”원경릉은 엄청 난처해서, “뭘!”우문호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어떻게 의술을 배워서 알게 됐는지 왜 약 상자가 갑자기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지, 그 약이 어디서 오는지 모르겠다던 그때 네 표정은 진실했지만 찬찬히 따져보니 하나도 말이 되는 게 없더라.”원경릉이 뾰로통하게: “그땐 믿었잖아.”“순진해서 너란 사악한 여인을 믿었지. 순진한 게 내 전문이거든.” 우문호가 원경릉을 안았다. 이 목욕탕은 잘못 만들어져서 물이 천천히 빠져서 바닥이 미끄러웠다.원경릉이 우문호의 가슴에 파묻혀 웃었다. 우문호가 바보스럽긴 좀 바보스러운 구석이 있지만 점점 세심하게 변하고 있다.적어도 마음 속의 의문을 참고 원경릉을 곤란하게 하지 않을 만큼은 됐다.아니다, 이 말은 할 필요 없다. 우문호의 마음속엔 생각이 다 있다.목욕을 마치고 부부 두사람은 잠시 얘기를 나누고 우문호가 떠났다.원경릉은 막 자려고 준비하는데 만아가 황급히 걸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긴장한 만아가 말했다. 왕비마마, 위왕 전하께서 붉으락푸르락하며 오셨습니다. 왕비마마를 뵙겠다고 하는데요.”원경릉이 ‘에’하더니, “이렇게 빨리? 난 또 내일 올 줄 알았는데.”“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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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로 돌아가 가족과 한자리에 모이니 모두 즐거워 보였다. 원경릉은 집안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 뒤, 아이들을 데리고 휘종제와 건종 태자를 알현하러 갔다.휘종제와 건종 태자도 매우 기뻐했는데, 특히 아이들이 유학하러 와서 앞으로 여기서 산다는 얘기에, 휘종제는 너무 좋아서 펄쩍펄쩍 뛰며 앞으로 아이들에게 드는 모든 비용은 전부 자기들이 대고 방학에 북당으로 보내고, 개학 때 맞이하는 것도 자기들이 하겠다고 큰소리쳤다. 외갓집엔 모두 출근하는 분들 뿐이라 불편할 거라는 것이었다.원경릉은 일단 감사드리고 북당에서 가져온 술과 검, 궁에서 가져온 흙 한 줌과 돌 하나를 꺼내놓았다. 이건 우문호가 준비한 것으로 고향을 오래 떠나 있는 사람은 고향의 흙과 돌이 그리운 법이라고 했다.휘종제와 건종 태자가 흙과 돌을 보더니 손에 들곤 통곡하기 시작했다.원경릉이 두 사람을 위로한 뒤, 그들은 슬퍼하며 ‘언제 한 번 가볼까, 딱 한 번 보더라도, 아무도 만날 수 없어도 좋을 텐데.’라고 한탄했다.“긴 세월 고향 강산을 꿈에도 잊지 못했으나 돌아갈 수는 없었네..”원경릉은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가슴이 시큰해졌다. 휘종제와 건종 태자의 슬픔을 원경릉은 아주 잘 아는 것이 자신도 전에 이방인이었기 때문이었다.단지 그들이 돌아갈 수 있을지 없을지 원경릉도 뭐라고 단정내리기 어려웠다. 어쨌든 이건 안풍 친왕이 진행한 일로 정말 돌아가고 싶으면 아마도 안풍 친왕이 준비해 줄 수 있었다. 북당으로 돌아가면 안풍 친왕에게 상황을 봐서 물어봐야겠다고 결심했다.입학 준비를 마친 뒤, 원경릉은 돌아갈 준비를 하는데 아이들과 떨어지기 싫었지만, 아이들은 새로운 생활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가 충만했기에 그녀와 헤어지는 걸 전혀 아쉬워하지 않았다. 원경릉은 그 점이 씁쓸했다.아이들이 크면 놔줘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얘들은 아직 다 안 컸잖아.돌아가기 전에 원경릉은 양여혜에게 만나자고 했는데 양여혜가 기화를 데리고 올 줄 몰랐다.원경릉은 기화를 보자 머리가 아픈 게, 기화는 또

  • 명의 왕비   제 3040화

    ‘이제 어머니가 계시니 술 먹으면 몸 상한다고 말해? 예전에는 왜 말 안 했어?’다행히 누군가 같이 마셔주는 사람이 있었다. 회왕은 벼슬에 오른 뒤로 술을 조금 하기 시작했는데, 많이는 안 마시고 한두 잔만 마실뿐, 석 잔째면 아내를 보러 집에 갔다.즐겁게 박원과 소홍천을 보낸 우문호와 원경릉은 만두와 아이들을 유학 보낼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비록 환타와 칠성이는 아직 어려서 2년 정도 더 남아있었지만, 유치원 다니고 싶다고 소리를 지르며,형들이랑 꼭 같이 가겠다고 하도 고집을 부려 원경릉과 우문호는 골치가 아파졌다.그나마 우문호에게 약간 위로가 된 건 딸만큼은 곁에 있다는 사실로, 칠성이와 환타가 하도 졸라대자,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가가가, 다 가.”아이들은 기뻐했으나 눈 늑대와 호랑이도 여전히 성깔을 부리며 따라가겠다며 소란을 피웠다.현대에서 어떻게 호랑이와 눈 늑대를 키울 수가 없으니 미칠 노릇이였다. 게다가 이 동물들은 아주 영민해서 사람 일을 이해해, 꼬마 주인들이 이번에 가면 열흘 보름이 아니라 몇 년 있다가 온다는 걸 알고 아무리 혼을 내도 말을 안 들을 게 분명했다. 그래도 만두가 이리저리 구슬려서, 동물들에게 자기들에겐 여름방학, 겨울 방학이 있고 학기 중에도 쉬는 날이 있어서 1년에 합치면 적어도 4개월은 이쪽으로 돌아올 수 있으니 적어도 1년에 절반 가까이는 같이 있는 거라고 위로하자 겨우 잠잠해졌다. 비록 시공간은 떨어져 있어도 같이 자라기를 원할 것이다. 유학을 가는 일이기 때문에 원경릉이 직접 따라가서 진학 문제를 처리해야 했다.이 일은 전에 현대에서 언급한 적이 있어, 로양이 아이들에게 호적을 만들어주기로 했다. 물론 아이들을 호적에 올리려면 원경릉 부부도 호적에 올려야 하는 것이, 아이들을 오빠 이름 아래 입적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었다.이 일은 로양이 원만하게 처리해 원경릉 가족 모두 호적을 가지게 되었다.게다가 원래 집을 사뒀기 때문에, 부근 학군에 진학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원경릉은 다섯

  • 명의 왕비   제 3039화

    대오가 경성으로 돌아올 때 홍엽도 원숭이와 같이 돌아왔는데, 그도 풍도성에서 힘을 보탰다. 사실 홍엽이 안 가도 안풍 친왕이 모든 걸 다 준비해 둬서, 안풍 친왕 능력이면 안지여 정도 상대하기는 식은 죽 먹기였다.이리 나리 일행은 경성에 도착해, 우선 집으로 돌아가 공주와 천행이를 보고 가족이 함께 밥을 먹은 뒤 입궁해서 경과를 보고했다.사적인 원한은 한두 마디로, 벌을 받아 마땅한 사람은 지금 받아야 할 벌을 받고 있으며 아직 죽이지 않았다고 했다남은 건 정사를 논하는 것이었다.“어머니와 같이 풍도성에서 보름 정도 지내며 기본적인 민심을 파악했는데, 천문 세가는 백성들 사이에서 아직 명망이 높아 보입니다. 풍도성 백성들은 사실 세금이 너무 많고 경제가 번영한 성과가 전부 안지여 수중에 떨어지는 구조로 되어 있어 안지여의 통치에 불만이 있었다고 합니다. 조정에서 풍도성을 접수한 것에 백성들 대부분은 찬성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천하태평이냐 하면 그럴 순 없는 것이, 일부는 성주가 자기들의 황제라 여기고, 조정이 풍도성을 접수한 것이 풍도성이 침략당했다고 여겨 나중에 약간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부를 임명하실 때 신중하셔야 할 것입니다.”우문호가 말했다. “흠, 큰할아버지께서 천거한 사람이 있는데, 바로 박원이라네. 자네 생각은 어떤가?”그러자 이리 나리의 눈빛이 빛났다. “제 아버지가 추천한 사람이니 전 찬성입니다!”“아버지?” 우문호가 의아해하며 이리 나리를 쳐다봤다. ‘안풍 친왕비가 사부님이면 안풍 친왕은 사부의 남편 아닌가? 어떻게 아버지가 되지? 사부님의 배우자니 사모님이라고 부르는 게 더 맞지 않나?’“흠, 안풍 친왕은 제 아버지십니다!” 이리 나리는 더 설명할 생각이 없는지 어쨌든 그렇다고 주장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한 번도 그를 아버지라 부른 적 없지만, 마음속에서만큼은 진정한 아버지였다.“하하하!” 우문호도 그저 웃으며 더는 묻지 않았다.이리 나리가 퇴청할 때 우문호가 이리 나리를 부르자 고개를 돌렸다. “무

  • 명의 왕비   제 3038화

    “우선 박원이랑 소홍천 의사부터 물어보자. 억지로 하게 하고 싶지 않아. 그동안 그들이 날 많이 도와줬으니 전부 원하는 대로 하자고.” 우문호가 말했다.“그러자!” 원경릉이 일어서며 말했다. “오늘 저녁 애들 데리고 어머님께 가서 수라를 들려면 빨리움직여야 해. 꾸물대면 늦을거야.”그러자 우문호도 계란이를 안고 일어섰다. “그래, 우리 황조모한테 가서 맘마 먹자.”우문호가 나가서 부르자 아이들이 달려와, 같이 왁자지껄하게 수라를 들러 황태후 전으로 갔다.황태후는 원래 우문호에게 할 말이 있었지만, 식사 자리에 아이들이 있어서 기다렸다가 저녁을 다 먹은 뒤 우문호와 아이들이 나가서 놀고, 원경릉이 황태후와 얘기를 나눌 때 말을 꺼냈다.“천행이가 태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부마를 풍도성으로 보낼 수가 있지.. 공주가 얼마나 괴로웠을까.”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공주는 사정을 훤히 알고 있어서, 이리 나리께서 풍도성에 가는 걸 지지하셨는걸요.”“말은 그렇게 해도, 출산 후에 여자 곁엔 남편이 있어야 하는 법이야. 하지만 이것도 단지 우리 가족끼리 하는 얘기일 뿐이고, 조정 일을 내가 함부로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없는 노릇이지.”황태후는 이리 나리가 풍도성으로 간 진정한 목적을 전혀 몰랐으며, 단순히 어지러운 형국을 정리하러 갔다고만 알았기 때문에 순수하게 공주를 아끼는 마음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어마마마, 걱정하지 마세요. 이리 나리는 이미 돌아오는 중이래요.” 원경릉이 위로하자 황태후가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거 잘됐네!”온 가족이 별빛을 받으며 천천히 소월궁을 거닐었다.계란이는 아빠 품에서 잠이 들었고, 아이들은 놀다 지쳐서 아빠 엄마를 따라 천천히 걷고 있었으며, 목여 태감이 궁인 둘을 데리고 뒤에서 조용히 따라오는 가운데, 궁 안은 인적이 드물어 밤이 되자 상당히 고요했다.“어마마마께서 공주를 아끼셔서, 이리 나리가 하필 이때 풍도성에 보냈냐고 하셨어.” 원경릉이 말했다.“날 원망하셨어?” 우문호는 품에 있는 아이가 깰

  • 명의 왕비   제 3037화

    늑대파 사람이 안지여와 소여쌍을 질질 끌고 나가는데, 소여쌍은 여전히 미친사람처럼 웃어대기만 했다.이리봉청은 그들이 끌려 나가는 것을 보자, 눈앞에 안지여가 자신을 데리고 소여쌍의 침대 앞으로 가서 소여쌍의 그 악랄한 말을 듣던 순간이 떠올랐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여리여리하고 아름답던 그녀가 이렇게 변해 버린 게 꿈처럼 느껴졌다.풍도성을 접수한 뒤 안풍 친왕은 관리들을 새롭게 임명했고, 더 이상 성주 같은 것을 두지 않고 조정과 이부에 적합한 인사를 선발해 풍도성 지부로 앉힐 것을 요청했다. 풍도성은 더 이상 이전의 독립 자치 지역이 아닌, 다른 주나 현과 마찬가지로 조정에 귀속되어 통일서 있게 다스리게 되었다.더불어 안풍 친왕은 별도로 서신을 써서 황제인 우문호에게 보냈는데, 풍도성을 추천하지만, 이건어디까지나 건의와 추천이니 황제가 생각하는 마땅한 사람이 있으면 안풍 친왕의 추천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동시에 안지여의 잔당들이 계속 나타났다.안풍 친왕이 이번에 이렇게 많은 사람을 데려오고, 호랑이와 눈 늑대, 회색 늑대까지 출동시킨 건 바로 모든 세력을 강화하고, 신속하게 진압해 풍도성을 조정에 복귀시키고 보름 만에 비적을 토벌하며 기본적인 숙청을 마무리하기 위해서였다.박원은 잔당의 남은 불씨가 다시 타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서 안풍 친왕의 영패를 가지고 부근에 5천 명의 군사를 파견시켜 풍도성을 지켰다. 이리 나리는 자금을 지원해 천문 세가의 묘를 이장하였는데, 이전 무덤은 안지여가 고른 곳으로 폐허에 가까워, 그는 천문 세가 사람들이 그런 곳에서 안식을 취하기를 원하지 않았다.풍도성에 온지 거의 한 달가량 될 때쯤, 대군은 경성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돌아가기 전에 미색이 안지여와 소여쌍을 보러 갔다가, 돼지우리에서 죽느니만 못한 삶을 사는 것을 보고 그제야 비로소 맺혀 있던 한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미색은 이리 나리와 어머님에게 알리지 않은 것이, 두 사람은 이미 안지여가 누군지 잊은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 명의 왕비   제 3036화

    이리봉청에게 있어 모든 건 지나가지 않았고, 36년 전 일은 여전히 어제 일 같이 느껴졌다.“어머니, 그를 어떻게 처분하시겠어요?” 이리 나리는 이리봉청의 마음을 넘겨짚을 수 없어 함께 걷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생각은 어떠니?” 이리봉청이 다시 되묻자 이리 나리가 원한에 사무친 눈빛으로 말했다. “제게 처분하라고 하면 전 그를 죽여 버릴 겁니다.”이리봉청은 알았다며 대답만 했다가, 다시 30분쯤 걷다가 정자에 앉아 을 때 말을 덧붙였다. “난 안 죽일 거야.”이리 나리가 약간 놀라서 물었다. “어머니, 또 마음이 약해지신 겁니까?”이리봉청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 반대야. 그 인간을 죽이는 게 마음이 약해진 거지. 사실 며칠 동안 이전의 원한을 내려놓을 수 있을지 생각해 봤는데,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 인간을 백번이라도 죽이겠지만, 난 그럴 수 없더구나. 아들아, 게다가 오늘 천문 세가 대문을 들어서는 그 순간, 더욱 마음을 굳혔단다.”이리봉청이 일어나 집안을 둘러봤다. 이곳은 그녀의 가족들이 살아 원래 온통 사람 소리로 가득한 곳이였다. 그들의 웃던 광경이 눈앞에 비치는가 하더니, 눈 깜박할 사이에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그들은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천문 세가는 큰 잘못을 저지른 것도 없는데 멸문지화를 당했고, 가엾게도 그 중엔 아이들이 많아서 제일 어린아이는 이제 태어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었다.이리봉청의 얼굴에 눈물이 타고 흐르며 가슴이 미어졌다. “그자와 소여쌍을 밖에 내버리고 사람을 시켜 지켜보도록 해. 죽게 두지 말고 계속 살려둬. 36년은 더 살면서 이 세상의 고생을 모두 겪어야, 내 마음에 맺힌 한이 풀리고 억울한 망자들도 안식에 들지!”이리 나리는 온몸으로 그 마음이 느껴져, 어머니가 눈물 흘리는 것을 더는 볼 수 없었다. “네, 전부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대로 할게요.”안지여와 소여쌍은 버려졌다. 짧은 며칠 사이에 안지여는 의기양양하던 성주에서 시궁창 쥐로 변해, 사람들이

  • 명의 왕비   제 3035화

    안지여는 풍도성 지하감옥에 갇혔다. 빛 한 줄기 없는 지하감옥에서 사방에 끝없는 어둠과 절망만이 안지여를 삼키고 있었다.훼천의 형벌은 12 시진 후면 사라져서, 앞으로 안지여는 그저 한 명의 폐인일 뿐이었다.안지여의 결사대가 성으로 공격해 들어오기 전에, 이리봉청은 오 선생을 찾아내 안지여가 저지른 모든 죄를 고백하게 하고 안풍 친왕이 친필로 받아 적었다. 안지여가 당시 천문 세가를 해친 경위를 소상히 써 내려간 뒤, 오 선생과 안풍 친왕의 직인을 찍고 인쇄해서 대중에게 공개했다.안지여의 죄악은 하늘을 찔러 백성들 모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안지여의 결사대의 옛 부하들이 본래 성을 공격해 들어가 안지여를 구출할 계획을 세워놓았으나, 안지여의 죄상이 공포된 뒤로 많은 사람들이 해산하였다. 유일하게 무대장군만이 수천 명을 데리고 성으로 쳐들어왔지만, 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가 이미 대비해둔 덕분에, 경성에서 굴러온 돌이 무대장군의 박힌 돌을 빼내는 전투를 벌였다.풍도성에 온 지 7일째, 안풍 친왕은 풍도성을 접수하고 성에 살던 사람을 쫓아내며 서민으로 강등시켰다.안지여와 소여쌍에 대한 처분은 이리봉청에게 넘겼다.안지여는 캄캄한 지하감옥에서 6일을 지내는 동안, 처음엔 침착한 척 가장했으나 사흘째가 되자 울부짖으며 악독한 저주의 말을 내뱉더니, 나흘째가 되자 용서해달라고 애원하며 참회했다.손발의 힘줄이 끊어진 안지여는 일어나 걸을 수도 없고 심지어 스스로 몫숨을 끊을 힘도 없었다.그 와중에 매일 누군가가 먹고 마시도록 해주고, 상처도 치료해 주어 살 수 있다는 부질없는 희망을 품게 했다.훼천의 말에 따르면, 진정한 절망은 살아도 죽느니만 못하고,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것으로, 온 마음으로 죽기를 바라지만 살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가, 안간힘을 쓴 뒤 다시 절망에 빠지는 것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으로, 사람을 한없이 죽였다 살렸다 괴롭힌다고 했다.결국 안지여를 죽일지 말지 여부는 이리봉청에게 달렸는데, 그녀는 안지여를 단번에 죽여 천문 세가

  • 명의 왕비   제 3034화

    안지여의 이마에 파란 힘줄이 불끈불끈했으나 냉정을 가장했다. “내가 두려워할 줄 알았나 보지? 죽음도 두렵지 않은데 뭘 더 두려워하겠어?”“넌 두려울 것이야!” 이리봉청이 고개를 돌려 이리 나리를 보고 살짝 그의 팔을 잡았다. “내가 오는 길에 늑대파 사람이 그러던데, 천하에서 제일 잔혹한 형벌을 아는 사람이 늑대파에 있다고. 그게 사실인 것이냐?”이리 나리가 가볍게 답했다. “물론 사실이죠. 훼천이라고 합니다. 늑대골 출신이에요.”“안지여가 버틸 수 있는지 어디 한 번 보고 싶구나.” 이리봉청이 말했다.이리 나리가 엄숙한 태도로 명을 내렸다. “훼천!”그러자 훼천이 급히 나왔다. “이리 나리, 분부하시지요!”이리 나리는 그가 짐짓 냉정한 척하고 있으나 눈빛이 조금씩 허물어져 가고, 몸까지 부들부들 떠는 것이 아주 만족스러워 훼천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시작해!”안지여가 갑자기 큰 소리로 욕했다. “난 네 아버지거늘, 감히 나에게 손을 대다니, 천벌을 받아 마땅한 놈 같으니라고!”이리봉청이 이 말을 듣고 잠시 주저하는 눈빛으로 이리 나리를 바라봤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제 아버지는 오직 저를 키워주신 안풍 친왕뿐이십니다.”이리봉청이 살짝 안도했다. “저 인간이 단지 나만 해쳤으면 네 체면을 봐서 놔줬겠지만 천문 세가의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갔으니 난 용서할 수 없구나.”“이리봉청, 너 언제 이렇게 악랄하게 변했어? 죽이려거든 그냥 죽여. 난 천문 세가 사람을 죽이긴 했어도 그들을 괴롭히진 않았어. 네가 날 죽이려거든 깨끗하게 단번에 죽여!”안지여가 크게 노해 몇 번 몸부림을 치다가 상처가 벌어지는 바람에 배에서 선혈이 흘러나오고, 훼천이 가까이 다가가자, 눈에 두려움이 깊어졌는데, 늑대골 출신 훼천은 온몸에서 피비린내가 뿜어져 나와 안지여를 덜덜 떨게 했다.“이리율!” 안풍 친왕비는 시ㅈ가하기 전에 이리 나리를 불렀다. “내가 여기서 네 엄마와 같이 있을 테니 넌 먼저 나가 있거라!”이리 나리가 안풍 친왕비에게

  • 명의 왕비   제 3033화

    안지여에게 구원 병력이 없는 상황에서, 이리 나리 일행이 성을 제압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대오가 경성에서 출발하기 전에, 안풍 친왕비가 미리 사람을 풍도성으로 보내 각처, 특히 성 수비군과 군대에 잠입시켜, 음식에 효과가 천천히 나타나는 독을 풀어, 오늘 중독 증상이 나타나도록 독의 분량을 조절했다.적어도 내일까지는 안지여를 도우러 올 사람은 없었다. 독성은 적어도 이틀이 지나야 깨끗해지기 때문에 이틀 동안 그들은 설사와 전신 무기력으로 성에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알아도 와서 도울 수 없었다.그리고 그들이 기력을 회복할 때쯤이면, 안지여는 벌써 죽었을 것이다.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는 성을 통제하고, 안지여 부부를 제압해 두 사람을 줄로 묶고 지혈시켜 주었다.안지여는 요 몇 년 동안 자신이 상당히 대단하다고 여겼다. 이는 풍도성이 부유하기 때문으로, 돈으로 많은 사람을 살 수 있었으며, 여러 곳에서 추켜세워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처절하게 패배한 적이 없었던 이유는 진정한 적이 없기 때문으로, 주변의 떠돌이 비적은 작은 마을 규모로 너무 작아서 소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코 그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적이 너무 약해서였다.조정 사람과 비교했을 때, 그는 제대로 훈련받은 적 없는 비적었기에 일격도 감당할 깜냥이 못됐다.이리 나리는 둘을 중정에 묶어 두었다. 온 바닥에 남은 음식과 깨진 기와가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본 안지여는 마음속 깊이 분노가 일었다. 자신의 생일날, 그를 다치게 한 것이 바로 그의 친자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더욱이 오늘 이렇게 많은 고수가 현장에 있었는데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이런 결말을 맞다니 너무 불쾌했다. 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을 부축하고 안지여 부부 앞으로 가서, 그녀가 안지여 부부를 내려다보자, 그들은 낭패에 달가워하지 않는 기색으로, 이리봉청은 분노하는 마음과 함께 서글픈 마음도 들었다. 그들을 죽이면 커다란 복수는 이뤄 천문 세가 망자의 원혼은 달랠 수 있었다.하지만 저들을 이렇게 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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