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왕비와 기왕비의 말다툼손왕비는 그제서야 ’응’하더니 조금 있다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셋째가 오늘밤 돌아와서 위왕비를 괴롭힐 수도 있잖아요.”원경릉이: “안심하셔도 돼요, 위왕비마마는 그렇게 쉽게 당할 사람 아니에요.”“쉽게 당하지 않는다고? 몇 번이나 죽을 기회를 넘겼다고.” 손왕비가 씩씩거리며 말했다.원경릉이 웃기만 할 뿐 말이 없다.위왕비가 있는 곳에 돌아가자마자 손왕비는 한시도 지체할 여유가 없는 듯 얼른 온고각의 일을 얘기하며 고지가 얼마나 가련한 척을 해댔는지, 얼마나 뻔뻔한 지 알렸다.위왕비가 다 듣고 나서 미소를 띠고, “뭘 신경 쓰고 그래요?”“그 여자한테는 전혀 신경 안 써요, 남자를 뺏길 거 같아서 그러지요.” 손왕비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며 발을 굴렀다.“제 것이면 못 가져갈 거고, 제 것이 아니어도 소중하지 않습니다.” 위왕비가 담담하게 말했다.손왕비는 사실 위왕비에게 뭐라고 말해줘야 할지 몰라 걱정스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오늘밤 셋째가 돌아오면 뭔가 위왕비를 힘들게 할 수도 있어요, 모든 걸 다 저한테 떠넘기세요, 제가 둘째 형수니 함부로 못할 겁니다.”위왕비가 가볍게 입술을 깨물었다가 놓으니 입술에서 한줄기 붉은 피가 스며 나와 옅은 미소를 띠고, “걱정 마세요, 제가 잘 상대할 수 있어요.”위왕비는 원경릉을 보고 감사를 가득 담아, “모든 재주를 가진 분께 신세를 지니, 위급할 때 달려와 도우신 은혜 잊지 않으리, 초왕비 고마워요.”원경릉이 보니 위왕비의 눈 밑이 맑고 예전만큼 우울증이 심하지 않아 마음속으로 안도하며 답했다. “감사하실 것까지 없어요, 저희도 마마가 쉬시는 걸 방해한 걸요. 진통제 몇 알 더 드릴 게요. 많이 아프시면 드세요, 그리고 지난 번에 드린 건 여전히 잠이 안 올 때 한 알 드시면 됩니다.”위왕비가 이번엔 진심을 담아 말했다. “기억할 게요, 고마워요.”원경릉이 약 상자를 열자 손왕비가 다가와 의혹의 눈빛으로 말했다. “이 상자는 어의 거랑 다르네요, 안에 들
헛탕친 우문호원경릉이 말했다. “고지가 아이를 가졌으니 태후마마께서는 절대 그녀를 경성에서 떠나도록 하실 리 없습니다. 하지만 태후마마께서 위왕 전하를 각별히 사랑하시니, 자연히 위왕 전하의 명성을 더럽히지 않도록 고지에게 따로 장소를 마련해 주고 지켜 보실 겁니다. 아이를 낳은 후에 다시 생각하시겠지요.”“위왕은 분명 싫어할 텐데요.” 기왕비가 말했다.“싫으면 난동을 부리라고 하죠.”기왕비가 코웃음을 치며, “이기적이기도 하지, 제가 눈치 못 챌 거 같습니까? 위왕이 난동을 피우면 초왕은 아바마마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심산이죠? 초왕비도 위왕비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였네요.”원경릉이 어깨를 으쓱하며, “우리가 위왕비를 위해 뭘 해줄 필요가 없어요. 본인이 이미 생각이 있던 걸요.”“그걸 어떻게 알아요?” 기왕비가 화들짝 놀랐다. 음모나 계략은 기왕비가 훤히 꿰뚫어 보지만 위왕비의 생각은 기왕비도 알 수가 없었다.전에 기왕비와 위왕비는 마주친 적이 많지 않아서 받은 인상은 그저 유약하고 부드러운 사람이라는 것 정도다.“짐작한 거죠.” 원경릉은 기왕비와 오래 말을 주고받고 싶지 않았다. 기왕비는 추측하는데 달인으로 그녀와 말을 섞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완전 피곤.기왕비가 말했다. “저는 위왕비가 아무 생각이 없어 보이던데, 그게 아니면 손목을 그을 필요도 없잖아요, 이번에 다락에서 떨어진 건 누가 밀어서라고 해도, 손목을 그은 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위왕비 자신인 걸요. 본인 마음이 약한 걸 다른 사람 탓할 순 없죠.”“위왕비는 병이 있어요.” 원경릉이 참지 못하고 그만 한마디 하고 말았다.“무슨 병이요?” 원경릉은 기왕비의 호기심이 왕성한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고 고개를 젓고 어이없이 웃다가: “마음의 병이겠죠.”기왕비가 구시렁거리며, “마음에 병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황실의 며느리가 되면 행복은 없는 거라고요.”기왕비가 얘기하다가 원경릉을 흘끔흘끔 보며, “초왕비는 뭐 예외 지만요.”원경릉은 웃으며 기왕비
기고만장한 진북후의 속내야심이란 정말 끝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해가 되지 않는 게, “진북후는 고작 비적을 토벌하고 백성을 평안케 했을 뿐인데 그게 뭐가 그리 대단한 거야?”적을 물리쳐서 나라를 지킨 것이라면 왕야에 봉해달라는 말이 설득력이 있을 수 있다.우문호가 설명하길: “진북 일대는 줄곧 조정의 골칫거리로, 진북의 인구는 조만간 80만에 달하며 이들은 장난 아니게 사나워. 이유는 지난 조정에서 가제(嘉帝)가 어명을 내려 전국의 비적을 토벌하게 했는데, 워낙 세가 크다 보니 비적과 산적들이 전부 진북 일대로 도망을 쳤어. 진북 쪽은 북막(北漠)과 접경지역이라 조정에서 공격하기 어렵거든. 조정의 대군이 진북으로 간다고 생각해봐, 북막의 경계심을 불러일으키고 말아. 그래서 가제는 어쩔 수 없이 비적과 산적들이 진북에 정착해서 뿌리를 내리게 했지. 화근을 남긴 셈이지. 진북의 비적들은 매년 북당 각처로 돌며 약탈과 살인을 일삼다가 볼일을 마치면 다시 진북으로 돌아가길 반복했지. 몇 년 전에 아바마마께서 호대장군을 진북으로 파견해 비적을 토벌하게 한 것은, 그저 적당히 위협하거나 약간 압박을 가하길 바란 건데 진북후가 비적을 깨끗하게 토벌해 버린 거야. 그 뿐 아니라 남은 자들을 전부 투항하게 해서 자신의 진북군에 편입시켰어, 바꿔 말해 지금 진북후 수중의 병마는 시들시들한 걸 빼고도 적어도 2~30만은 될 걸. 이것도 보수적으로 잡은 거야.”원경릉이 그제서야: “그러니까 진북후는 업적도 있고 병력도 있다. 이런 뜻이지?”“바로 그거야. 진북후는 진북의 황제라고 할 수 있어서 아무도 반대하지 못하고 병력을 가졌으니 위세가 대단한 데다 전공도 황제보다 크다고 생각하니 방자하게 날뛰고 있지. 일단 야심이 큰 게 조정의 큰 우환이야.”원경릉이 이제서야 명원제의 난감한 상황이 이해되었다.원경릉 생각에 명원제는 자신에게 인자한 편이었다.북당이 이런 국면에 처해 있어 명원제가 세운 모든 계획을, 다른 여자가 내 남편을 빼앗아 가는 걸
목욕하는 원경릉과 우문호원경릉은 배가 점점 나와서 목욕하기 편하지 않은 데다 희상궁과 만아가 옆에서 목욕 시중을 드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혼자서 가끔 낭패를 볼 때가 있었다.목욕탕이 따듯한 게 일찍부터 난로를 피워 놓았는데 정후부는 초왕부처럼 지렁이가 있어서 가는 곳마다 전부 숯화로를 피워야 했다.우문호는 목욕탕이 충분히 따듯한 것을 보고 난로를 밖으로 가져갔는데 조금 있다가 옷을 입을 때 다시 가지고 들어올 것이다.원경릉이 지금 임신을 해서 탕 목욕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만아가 정성 들여 목욕 전용 의자를 만들어 원경릉을 목욕통 옆에 앉히고 안에 긴 바가지를 띄워 놓은 뒤 뜨거운 물을 몸에 끼얹어 주었다.우문호가 원경릉의 옷을 벗겨주는데 황실 출신이지만 군에서 지낸 세월이 많아 세심한 구석이 좀 서툰 면이 있다. 그래도 조심조심 하는 법을 배워서 여자 옷을 어떻게 벗기는지 잘 알게 되었다.원경릉의 하얀 죽순 같은 속살을 보고 우문호는 마음 속으로 끝없이 감탄하며 배 속에 이 꼬맹이 녀석아, 꼭 지금 왔어야 했어?우문호가 원경릉을 의자에 앉히고 옷을 벗기니 배가 한층 더 커 보이는 게 원경릉의 배를 만지며: “넌 몇 번째 녀석이냐,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지만 아빠가 너네 목욕시켜 줄게.”원경릉이 어이없다는 듯, “여기 온도가 사실 그렇게 따듯한 게 아닌 거 알아?”우문호가 얼른 바가지를 집어 원경릉의 몸에 물을 뿌리는데 물온도가 딱 좋아서 하얀 수증기가 피어난다.“온도 괜찮아?” 우문호가 물을 뿌려주며 묻는데 다른 손으론 원경릉의 몸을 닦는 것이 상당히 정성스럽다.원경릉 답했다.: “좋아.”원경릉이 자신의 발가락을 보며 아직 자기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우문호가 한동안 물을 끼얹더니 잠시 멈췄다가 원경릉의 몸에 세정제를 바르는 폼이 영락없는 프로다.원경릉이 웃음이 터지는 걸 참지 못하고, 우문호의 고집불통의 모습을 보며, 재촉하듯: “왕야, 잠자리 시중을 드는 여자 필요한 거 아냐?”우문호는 고개도 들지 않고: “좋아,
우문호의 질문과 위왕의 갑작스런 방문원경릉이 우문호를 보고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끼며 꺾이는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뜻이야?”우문호의 손가락이 천천히 원경릉의 심장을 가리키며, “이 안에 사람이 바뀌었어.”“어?” 눈초리가 사나워지며 웃었다.우문호가 담담하게 말했다. “억지로 침착한 척 하지 마, 속으로 허둥대는 거 다 알아.”원경릉이 ‘응’하고 고개를 숙이고 옷을 정리했다. “어디 얘기 좀 해봐 내가 뭘 허둥댄다고 그래.”우문호가 원경릉의 얼굴을 떠받치더니 그녀의 눈동자를 뚫어지게 바라보는데 원경릉 마음속의 솜털 하나까지 다 들여다 보는 것 같다.“뭘 봐? 할 말 있으면 해.”우문호의 눈이 천천히 부드러워지며, “싫어, 열심히 변명하고 거짓말하는 거 보고 싶지 않아, 네가 한 말 너도 수긍 못하잖아.”원경릉은 엄청 난처해서, “뭘!”우문호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어떻게 의술을 배워서 알게 됐는지 왜 약 상자가 갑자기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지, 그 약이 어디서 오는지 모르겠다던 그때 네 표정은 진실했지만 찬찬히 따져보니 하나도 말이 되는 게 없더라.”원경릉이 뾰로통하게: “그땐 믿었잖아.”“순진해서 너란 사악한 여인을 믿었지. 순진한 게 내 전문이거든.” 우문호가 원경릉을 안았다. 이 목욕탕은 잘못 만들어져서 물이 천천히 빠져서 바닥이 미끄러웠다.원경릉이 우문호의 가슴에 파묻혀 웃었다. 우문호가 바보스럽긴 좀 바보스러운 구석이 있지만 점점 세심하게 변하고 있다.적어도 마음 속의 의문을 참고 원경릉을 곤란하게 하지 않을 만큼은 됐다.아니다, 이 말은 할 필요 없다. 우문호의 마음속엔 생각이 다 있다.목욕을 마치고 부부 두사람은 잠시 얘기를 나누고 우문호가 떠났다.원경릉은 막 자려고 준비하는데 만아가 황급히 걸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긴장한 만아가 말했다. 왕비마마, 위왕 전하께서 붉으락푸르락하며 오셨습니다. 왕비마마를 뵙겠다고 하는데요.”원경릉이 ‘에’하더니, “이렇게 빨리? 난 또 내일 올 줄 알았는데.”“오셨습니다
원경릉을 찾아온 분노한 위왕단지 얼굴이 분노로 가득해서 이글이글 타오르는 것이, 우문 집안 특유의 얼굴형을 약간 흉악하게 만들었다.위왕은 원경릉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눈에서 불꽃이 튀며 원경릉을 노려보는데 확실히 만아 얘기처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다.반대로 원경릉은 붉고 윤기나는 얼굴에 입가엔 미소가 감돌며 사뿐히 들어와 예를 취하고, “셋째 아주버님이 오실 줄 모르고 멀리 나가지 못해 송구합니다.”말을 마치고 위왕의 말을 기다리지 않고 가서 앉았다.위왕의 눈을 부릅뜨고 손을 들어 탁자를 무겁게 내리쳤다.‘팡’하는 소리가 났는데, 위왕의 손보다 빨리 탁자에 떨어진 게 있었다. 놀라서 보니, 원경릉 손에 뭔가 막대기 같은 걸 쥐고 그것으로 탁자를 내리친 것이다.위왕은 눈이 먼 게 아니니 태상황이 원경릉에게 하사한 어장이란 것을 알아봤다.분노의 불꽃이 순식간에 어장으로 인해 진압되었다.위왕이 차갑게 말했다. “듣자 하니 오늘 위왕부에 갔다면서요.”원경릉이 물었다. “예, 셋째 아주버님, 셋째 형님은 좀 나아지셨는지요? 아직도 아프신 가요? 제가 드린 약은 드셨나요?”위왕이 냉랭하게 답했다. “모릅니다. 내가 온 건 그 때문이 아닙니다.”원경릉이 의아하다는 눈초리로, “이 일 때문이 아니라고요? 그럼 셋째 아주버님은 왜 오셨죠?”위왕은 터져 나오는 분노를 삭힐 수 없어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고지를 괴롭히지 않았습니까?”원경릉의 눈빛이 서서히 차가워지며, “괴롭혔다? 뭘 괴롭혔죠?”“당신도 알고 있잖아!” 위왕이 위협적으로 원경릉을 노려봤다.원경릉이 냉소를 지으며, “알고 있죠, 당연히 알고 있죠, 셋째 아주버님은 친왕답지 못하게 백성의 딸을 위왕부에 강제로 살게 하고 그녀를 겁탈해 아이를 가지게 했다는 걸요. 만약 오늘 저와 기왕비, 손왕비 마마가 같이 가서, 고지가 울면서 자기가 겁탈당했다고 하는 소리를 두 귀로 듣지 않았으면 저는 셋째 아주버님이 그런 사람이라고 못 믿었을 겁니다.”“헛소리 하지마요. 고지는 절대 그렇게
위왕은 분노로 이글거리는 원경릉의 눈빛에 멈칫해 들어 올린 손을 내리칠 수 없었지만, 애써 체면을 지키기 위해 부들거리며 검지 손가락을 뻗어 그녀의 이마를 툭 밀쳤다.“또다시 그따위 말을 한다면 본왕이 널 가만두지 않을 것이야. 알겠어?”원경릉은 움찔하지도 않고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그를 노려보았다.“겉과 속이 다른 걸 보니 연기도 참 잘하시는 것 같군요. 어디다가 대고 씨알도 안 먹히는 경고를 하는 겁니까? 내가 겁이라도 낼 줄 알아요? 그 여자는 속이 음흉해서 한낱 환술(幻術)로 위왕비 자리를 얻으려고 하는 겁니다.”“……”“위왕은 어찌 그리 쉽게도 그녀의 유혹에 넘어가 위왕비에게 소홀하신 겁니까? 위왕을 생각하는 사람이야 말로 위왕에게 쓴소리를 할 수 있는 겁니다! 정신머리가 그렇게 나약해서야……”원경릉은 빳빳하게 고개를 들고 위왕을 몰아갔다.원경릉의 말을 들은 위왕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숨을 헐떡였다. “감히 본왕에게 나약하다는 말을 하다니! 내가 입궁해서 너를 황상께 고발할 것이야!”“고발? 저는 그저 정의를 위해 나선 것뿐입니다. 위왕을 도우려고 하는 제 마음을 어찌 이리 모르십니까? 내일 손왕비께서 입궁해 태후께 오늘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다 보고할 것입니다. 그녀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하겠지만 우리는 분명히 들었습니다. 위왕은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만약 내가 당신이라면 이럴 시간에 당신이 그렇게 사랑하는 여인이 당신을 왜 수렁에 빠뜨리려고 하는지 물어볼 것 같은데요?”위왕은 부들거리며 원경릉에게 손가락질을 했다.“네가 뭘 안다고 짓 거려? 본왕이 그녀를 배신한 것이 아니다! 그 여자가…… 옛정을 다 버리고 음흉하게 딴 남자랑 놀아나다가 임신을 했으니! 그녀가 임신을 한 것은 본왕의 자식이 아니라 그 남자의 자식이었다고!”원경릉은 그를 보며 “증거! 증거가 없잖아요!”라고 말했다.“본왕이 증거를 가지고 있었다면 둘 다 내 손에 죽었을 것이야!”그가 원경릉을 보는 눈에는 원한이 가득했다. “너는 지금 본왕을 개만도
희상궁의 말에 사식이가 위왕부로 향했다. “왕비 생각엔 위왕이 위왕비님을 다치게 할 것 같습니까?”희상궁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원경릉을 보았다.“제가 위왕의 속을 긁어놨으니 어딘가에 분풀이를 하겠죠.”원경릉이 한숨을 내쉬었다. “왕비, 방금 고지가 환술을 쓴다고 하셨잖아요. 그럼 위왕은 고지(故知)의 환술에 홀린 겁니까?” 만아가 물었다. “만아야 오늘 네가 그녀의 손을 잡았을 때, 너와 같은 환술을 부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느냐?”“예. 소인이 그녀에 팔찌에서 흰독말풀꽃 향이 났습니다.”“흰독말풀꽃? 그것을 이용한 환술의 효과가 얼마나 가는지 아느냐?”“최면에 들게 하는 것은 삼십 분에서 한 시간 정도 갑니다. 만약 흰독말풀꽃을 사용했다면……”만아는 얼굴이 붉어졌다. “이 향은 남자를 조종하는데 탁월합니다. 이 향과 최면을 같이 사용하면 2년에서 3년도 환술에 걸리는 사례가 있다고 합니다.”“그때 네가 다섯째에게 최면을 걸었을 때 무엇을 썼지?”만아는 하얗게 질려서는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왕비님, 그때는 제가 미쳤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원경릉은 한숨을 내쉬며 “그냥 물어보는 것뿐이니 사실대로 말해줘라.”라고 말했다.“그렇다면…… 당시 둘째 아가씨의 부탁으로 흰독말풀꽃를 사용했는데, 왕야께는 이 향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최면에 걸린 것도 잠시일 뿐 금방 정신을 차리시고 둘째 아가씨를 밀쳐냈습니다. 일반적인 사내라면 흰독말풀꽃 향에 취해 정신을 차릴 수 없었을 겁니다.”“그렇다면 위왕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겠구나.”“예 그런 것 같습니다. 소인이 맡은 흰독말풀꽃 향은 진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위왕이 깨어나려는 의지만 있다면 문제가 없을 겁니다.”“하지만 그는 분노로 얼룩져 진실을 보지 못하고 있어. 지금 어떤 방법을 써도 위왕은 위왕비를 믿지 않을 것이야.”원경릉의 예상은 적중했다. 위왕은 위왕부에 도착하자마자 위왕비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그는 문을 발로 차고 빠르게 위왕비가 누워있는 곳으로 달려가
홍엽이 조용하고도 냉정한 말투로 물었다. “공무를 보러 가는 것이냐?”“저는 원래 공사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공무를 보러 가는 것도 여행이라 할 수 있죠.”냉정언이 온화한 눈빛으로 냉명여를 바라보았다. “손자도 이제 다 컸으니, 함께 데리고 나가 바깥세상을 경험해 볼 때가 되었지.”냉명여가 고개를 들었다. 냉정한의 눈빛은 다시 싸늘하게 변했다.이 집안에서 냉정한은 엄격했으며, 홍엽은 편애를 받았다. 그렇기에 둘은 서로 보완이 되었다.“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짐부터 싸야겠네요. 얼마나 가 있는 겁니까?”홍엽이 기쁜 목소리로 물었다.“돌아오고 싶을 때 돌아오면 되니 일수는 생각할 필요 없다. 어쨌든 우문호는 항상 나에게 짐을 지우고 있었으니, 우리도 즐길 때가 되었지.”냉정언이 복수하듯 말했다.홍엽이 웃었다. “정말 그럴 만도 합니다.”그의 수양딸을 만나러 가는 길이니, 무척이나 기뻤다.홍엽이 우문호에게 품고 있는 가장 큰 불만은 자신과 수양딸 사이를 막고 있는 것이었다. 분명 자신의 수양딸임에도 우문호가 독점하고 있으니, 너무나도 과한 처사였다.황제가 된 사람들의 성격은 대체로 좋지 않았다.세 명의 사람과 한 마리의 원숭이가 조용히 성을 빠져나갔다. 흠차라고는 하지만 어떠한 허례허식도 없었다.그들이 떠난 뒤, 탕양도 약도성을 위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탕양은 최근 몇 년 동안 바쁘게 일하며 많이 늙었고, 머리카락은 흰머리가 수북했다.그는 이전에 우문호의 최측근 신하였으며 지금은 우문호의 전반적인 심부름꾼이었다. 관직이 내려져 고용된 것이 아닌, 그저 유용한 사람으로써 투입된 것이었다. 그는 우문호에게 직접 보고를 올렸으며, 어떤 관청에서도 그를 관리할 수 없었다.근래 몇 년 동안 그는 병부에서 군사를 정리하고 호부에서 전국의 땅과 세금을 다루며 새로운 정책을 세우는 데 도움을 주었다. 또한 이부에서 심사에 참여하고 형부에서 중대 사건을 옆에서 다루었다.황후는 탕대인이 벽돌과도 같아 필요한 곳 어디에서든 쓰일 수
“좋은 생각이십니다. 가능한 빠를 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조정의 은혜를 이어 갈 수도 있습니다.”냉정언은 그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 들였다.그리고 잠시 멈칫하고는 우문호를 바라 보았다.“그리고 공주님을 보살 피라는 말씀이시지요?”“역시 지혜로운 수보구나. 짐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꿰뚫어 보고 있어.”우문호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폐하께서 공주님을 아끼시는 건 궁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인이 궁에 들어오기 전에 폐하께서 갔다 오실 줄 알았습니다.”“짐이 생각 해보았지. 지금 때에 약도성에 들리면 이득이야. 조정을 향한 백성의 믿음도 생기고, 결코 짐이 백성을 버리지 않았다는 뜻이 될 테니 말이야. 하지만 내가 조정을 떠나면 나에게 반심을 가진 자들이 모여서 내란을 일으킬 수 있어. 자네를 수보의 신분으로 보내는 게 제일 안전한 방법이네.”냉정언이 고개를 끄덕였다.“옳으신 말씀입니다. 사실 소인은 폐하께서 직접 가실 것 같아 설득을 해볼 생각이었습니다.”우문호는 애매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짐이 자식들 때문에 나랏일을 뒤로 미루는 사람으로 보이는가.”“공주님이라면 그럴지도 모르지요.”냉정언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소인이 폐하를 너무 얕보았나 봅니다.”“짐도 구분은 할 줄 아네. 쉽게 위험 속에 몸을 던지는 사람이 아니야.”게다가 그는 집에서 제일 약한 사람이 아닌가. 냉정언이 답했다.“네, 알겠습니다. 홍엽 공자에게 일러 두겠습니다. 내일 출발 할 수 있게 말입니다.”“홍엽 공자도 가는 것인가?”우문호가 눈을 크게 떴다.“소인이 오랜만에 나가는 외출 입니다. 제 아들도 바깥 세상 한번 구경 시켜줘야 하지 않겠습니까.”우문호가 의미심장한 태도로 답했다.“그래, 명여도 데려가게. 사내 아이는 많이 둘러 보는 게 좋지.”“명어 그 아이는 홍엽 공자를 잘 따릅니다.”냉정언이 말했다.“그래, 네가 누굴 데려가든 상관없다.네가 가면 되는 것이니 말이다.”우문호는 허공에 손을 흔들었다.말을 끝나
하지만 새해의 기쁨도 초 닷새 날까지뿐이었다.초 엿샛날이 되자 각 부서들이 하나둘씩 출근하기 시작했다.우문호의 표정이 좋지 않다.출근 때문이 아니라 택란이 약도성에 다녀오겠다는 말 때문이다.약도성은 큰 화재 때문에 재건설을 했다.그녀는 직접 두 눈으로 봐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게다가 형제들도 곧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원경릉은 우문호를 하룻 밤 내내 설득하기 바빴다.곧이어 우문호는 위왕과 안왕에게 임무를 주었다. 강북부에 도착하면 즉시 그에게 보고를 하라는 내용이었다.위왕과 안왕은 억울하기 그지없었다.왕의 위치에 오르니 사람도 변한다는 사실이 와닿았다.우문호는 한 사람씩 배웅을 해주었다.하지만 아이들은 반겨 하지 않았다.그들의 삼촌을 지켜줘야 할 뿐만 아니라 속도가 현저히 느려지기 때문이다.하지만 우문호는 자신의 결정을 굽히지 않았다.옆에 있던 서일도 같이 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그 이유는 출장 비용을 황후가 흔쾌히 내어 주기 때문이다.아이들이 또다시 다른 지역으로 떠난다.역란은 자신이 벌써 열 살이라며 강조했다.나이가 어떻게 되든 10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것은 사실이다.“역란아, 아바마마가 마음이 아프다.궁에 남아 나와 더 놀아주지 않겠어?”마차가 지나가고, 경단이 역란에게 물었다.“이만하면 됐습니다. 조금만 더 지내면 싫어하실 거예요.”역란이 혀를 내밀고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아이고, 이 녀석아.”경단은 역란의 말에 무언가를 깨달은 듯했다.‘적당한 거리가 아련함을 만든다.’마차가 천천히 성 밖을 나갔다.한편, 어서방 안.30분 전, 우문호가 냉정언에게 바둑을 두자고 불렀다.몇 판을 졌지만 우문호는 화도 내지 않고, 바둑판을 엎지도 않았다.다음 판이 또 시작되자 냉정언이 그를 말렸다.“폐하, 무슨 일이 있으시면 말씀을 하세요. 계속하셔도 저한테 질 뿐입니다.”“지지 않을 걸세!”우문호가 그를 노려 보았다.냉정언이 차를 한 입 들이켰다.“그래서 무슨 일 이십니까?”우문호의 인내심
“매화장에서 새해를 보내고 정월 초이틀에 돌아오마. 세뱃돈은 한 사람당 하나씩이니, 욕심은 부리면 안 되느니라!”원경릉이 종이에 적힌 글을 소리내어 읽었다.“매화장에 가셨다고? 혼자서 보낸다고 하시지 않았나?”우문호는 이상하다고 생각이 들었다.‘매화장에 무슨 볼거리라도 생긴 걸까? 우린 초대도 못 받았는데.’“어쩔 수 없지요, 그만 갑시다.”원경릉이 말했다.그들이 자신들의 세뱃돈을 꺼냈다.돌아가려던 찰나, 다른 부부들과 마주쳤다.미색부부, 손왕 부부와 공주 부부도 온 것이다.그들의 손엔 선물을 들고 있었다.우문호는 반대로 아무것도 들고 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얼굴을 붉혔다.“다들 어디가신 겁니까?”미색이 성큼 들어와 그들에게 물었다.“매화장에 가셨어.”원경릉이 종이를 내보였다.곧이어 상자를 가리키며 말했다.“새뱃돈은 한 사람당 하나씩.”“너무 대충 준비 하셨네.”회왕은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매년 새해에는 시끌벅적하게 보냈기 때문이었다.그는 어젯 밤,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다.하지만 어딘가 부족한 마음이 들어 아침 일찍 찾아온 것이다.새해에 숙왕이 없으니 무언가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모두 실망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그저 멀뚱멀뚱하게 서로를 바라볼 뿐이다.‘새해에 집에 있으면 새해의 느낌이 없지 않은가.’이때, 우문호가 의견을 내놓았다.“매화장에 가보는 게 어떻겠습니까?”“좋아, 지금 출발 하자구나.”손왕이 서둘러 답했다.한편, 매화장 안.전 명원제는 답답하기 그지 없었다.그는 그저 혼자 조용히 새해를 맞이하고 싶었다.어제까지만 해도 모두 각자 새해를 보낸 다는 소식에 그는 기뻐했다.광대짓을 안 해도 된다는 생각에 해방감을 느낀 것이다.하지만 기쁨도 잠시 순식간에 사람들이 몰려와 매화장을 꽉 채웠다.무상황이 나타나 노인들끼리 같이 새해를 보내자고 제안을 한 것이다.그는 공간이 넓고, 옆으로 산이 있다는 이유로 매화장을 택했다. 전 명원제는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그도 노인이기 때문이다.그리하여
원경릉은 그의 말에 마음이 아팠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각도 하기 싫은 문제였다.형제들과 다르게 그는 노화세포를 전혀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이 사실을 그에게 말한 적은 없지만 우문호는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 있었다.그도 자식들의 회복 능력을 보면서 알 수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원경릉에게 직접 말한 적은 없다.우문호는 그녀를 바라 보았다.부부라서 마음이 통한 것일까.그는 그녀의 마음을 대략 읽고 있었다.원경릉은 수술을 하고 나서 전혀 늙지 않았다.일부로 어두운 색깔의 옷을 입어도 여전히 젊어 보였다.반대로 우문호는 하얀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나기 시작했다.어쩌면 국가의 일을 처리하느라 노화가 빠른 것일지도 모른다.하지만 그는 그의 나이에 맞는 모습으로 점차 변해갔다.아직 눈가에 주름도 없고, 늙어 보이지 않지만 그는 곧 자신에게 닥칠 일이라고 생각했다.원경릉에게 주사를 맞겠다고 한 것도 그저 한순간의 충동일 뿐이다.사실 그는 그녀가 늙지 않고, 죽지 않는 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았다.하지만 몇십 년 뒤에 그녀의 인생에 자신이 사라진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생각하면 할수록 조급해질 수 밖에 없었다.그는 서둘러 생각을 접었다.'지금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같이 있는 시간을 즐겨야 한다.'요즘들어 우문호는 운명을 믿기 시작했다.원경릉이 자신에게 온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그 다음 날, 온 가족이 숙왕부에 도착했다.그들이 일찍 깨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대문이 닫혀 있었다.만두가 문을 두드렸다.아무런 대답이 없자 우문호가 바짝 긴장했다.“무슨 일 일어난 건 아니겠지?”“제가 들어가 보겠습니다!”곧이어 만두가 재빠르게 안으로 들어갔다.아들의 의외의 행동에 우문호가 깜짝 놀랐다.“만두가 언제 무술을 배운 거야?”원경릉은 무술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어제의 일이 떠올랐다.그리고 혹시 몰라 다르게 답했다.“저도 만두가 무술을 배웠을 줄은 몰랐습니다.”곧이어 만두가 안에서 문을 열었
“그래, 그래. 잘 된 일이야.”우문호가 기뻐했다.곧이어 손을 뻗어 딸의 이마를 어루만졌다.“내 딸이 그래도 제일 착하구나.”“아바마마, 편애하면 아니 되옵니다.”칠성은 우문호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편애라니?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그러고는 그의 그릇에 닭다리 하나를 올려 주었다.“자, 이건 칠성이거다.”“저희도 먹고 싶습니다!”옆에 있던 4명의 아들들이 우문호에게 그릇을 내밀었다.“닭다리는 딱 2개밖에 없구나. 칠성이에게 하나를 주었으니, 남은 하나는...”“아바마마! 저 주십시오.”택란이 그릇을 내밀었다.“어..”곧이어 원경릉도 그릇을 내밀었다.“저도 주십시오!”우문호는 한 손으로 닭다리를 잡은 채 자신의 앞에 놓인 그릇 6개를 바라보았다.잠시 고민하고는 원경릉의 그릇에 닭다리를 올렸다.“내 아내가 고생이 많지!”그리고 서둘러 닭 고기를 집어 다른 그릇에 올려 두었다. 그는 이마 위로 손을 올렸다.“내일 닭을 더 많이 잡으라고 해야겠구나, 한 사람에 닭다리 하나씩 먹을 수 있게 말이야.”그의 말이 끝나고 자리에는 웃음꽃이 피었다.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면서 웃어 보였다.좋은 아버지가 되기는 쉽지 않구나,라고 생각했다.만두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아바마마, 저희가 장난 좀 친 것뿐입니다.마음에 두지 마십시오.게다가 여자라고는 어마마마와 여동생뿐입니다.저희 남자형제들이 양보하는 게 맞지요.”나머지 형제들이 고개를 끄덕였다.“맞습니다.”큰 형의 말에 어떻게 동생들이 토를 달 수 있겠는 가.그리고 동생들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아바마마도 지켜 주셔야 합니다.아바마마가 저희 집안에서 제일 약한..”칠성은 닭다리를 뜯으면서 애매한 말을 내던졌다.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른 형제들이 반찬을 집어 그녀의 그릇에 두었다.만두가 입을 열었다.“그만 이야기하고 밥 먹어. 닭다리로도 부족한 거야?”칠성은 그의 말에 풀이 죽었다.그리고 고개를 숙이고 다시 닭다리를 뜯었다.우문호는 원경릉을 바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안 된다. 술은 19세부터 마실 수 있는 법이다.”만두는 약간 실망한 듯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예. 말을 따르겠습니다.”기분이 좋아진 우문호는 팔꿈치로 원경릉을 살짝 찌르며 말했다.“한 모금만 주오. 아직 어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리다고 하기도 훨씬 지난 나이네. 집에서 한 모금 정도는 괜찮소. 밖에서는 안 마시면 되지.”경단과 찰떡도 원경릉을 바라보며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기만을 기다렸다.원경릉은 아이들이 모두 아빠와 함께 술을 마시고 싶어 하는 걸 보며, 오늘처럼 즐거운 날은 한 번쯤 허락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는 직접 아이들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작은 잔에 술향이 은은하게 퍼졌고, 아이들은 금세 웃음을 터뜨렸다.세 아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우문호를 향해 잔을 높이며 말했다.“아바마마, 아바마마께 한 잔 올리겠습니다!”우문호는 아이들의 풋풋함을 간직한 똑같은 얼굴을 바라보았다. 성인이 되려고 애쓰는 그들을 보며 그는 뿌듯함과 감동이 교차했다. 그는 아이들과 잔을 부딪치며 말했다.“그래, 부자끼리 한잔하자!”참으로 묘한 느낌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품에 안겨 있던 작은 아이들이 지금은 그와 함께 잔을 부딪치고 있었다.현대에서 지내는 동안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줄어들다 보니, 아이들이 어느 순간 훌쩍 커버린 듯한 착각이 들었다.은은한 촛불이 아이들의 기뻐하는 얼굴을 비췄다. 탁자 아래, 우문호는 원경릉의 손을 잡고 서로 미소를 주고받았다.아이들은 부모님에게 열심히 음식을 챙겨주었다. 환타가 원경릉의 손을 잡아당기며 말했다.“어마마마, 드시지요. 아바마마도 손잡지 마시고 어서 드십시오.”원경릉은 웃으며 말했다.“그래. 먹자, 다 같이 밥 먹자!”그녀는 그릇에 담긴 음식을 우문호의 그릇으로 조금 옮기며 말했다.“다 못 먹으니, 조금 먹어주시오.”우문호가 답했다.“그럼, 좋아하는 것만 먹고, 싫어하는 건 나한테 주시오.”그는 그릇을 내려놓고 새우를 까서 마늘장에 찍어
다섯째는 평소 아이들의 자잘한 일들에 항상 주목했다. 아이들을 자랑스러워하다가 금세 우울해지곤 했는데, 원경릉은 그의 모습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그게 그의 즐거움이었고, 그가 행복하다면 그걸로 충분했다.계란이의 길쭉한 팔다리가 앞으로 절대 키가 작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다만 아직 클 나이에 이르지 않았다.원경릉은 예전에 아이들이 빨리 자라길 바랐지만, 이제는 천천히 자라길 바랐다. 그래야 아이들이 곁에 머무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더 길어질 것이다.섣달그믐날 그들은 연회를 올렸다. 관례대로라면 숙왕부에서 무상황과 함께 보내야 했지만, 올해는 무상황이 미리 사람을 보내 섣달그믐날 숙왕부는 아무런 손님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명을 전했다. 어르신들끼리 다채롭게 보낼 준비가 되어 있으니, 아이들이 와서 방해하지 못하게 하라고 뜻을 전했다.다섯째는 오히려 이 소식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동안 어르신들 앞에서 태상황으로서 위엄을 세우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대우는커녕 오히려 재롱까지 부려야 했기에, 그는 항상 처지가 곤란했었다.무상황이 사람을 보내 궁에 있는 우문호에게 각자 알아서 새해를 보내고, 올해는 함께 모이지 않기로 소식을 전했다.황태후도 어린 공주를 데리고 친정으로 돌아갔다. 그동안 친정 식구들과 명절을 함께 보내본 적이 없다며 어린 공주를 데리고 친정으로 돌아갔다.우문호 역시 만족스러웠다. 항상 북적이는 설날을 보내다 보면, 기진맥진하게 되니 차라리 가족끼리 조용히 보내는 게 훨씬 편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게다가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여덟 식구끼리 쉴 수도 있었다.이 소식을 들은 후, 우문호는 아이와 원경릉이 좋아하는 음식을 해놓으라 미리 전했다. 원경릉은 원 할머니를 초대하려 했지만, 원 할머니는 한참 망설이다가 단호히 거절했다. 자주 그녀와 만나서 이야기도 나누고 밥도 먹지만 숙왕부의 어르신들과는 그런 기회가 적으니, 이번에는 그들과 함께 명절을 보내겠다고 했다.원경릉은 이 말을 듣고 의아했다. 어르신들과
추 할머니의 건강 상태는 약을 먹은 후 많이 안정되었다. 이전에 폐종양이 신경을 압박해 유발했던 통증이 크게 완화되었고, 이제는 진통제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통증이 사라졌으니, 삶의 질도 개선되었다. 추 할머니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나자, 모두가 기뻐했다.숙왕부의 노인들은 갑자기 건강 관리에 눈을 뜬 것처럼 건강한 음식을 먹고, 매일 규칙적으로 운동하며, 햇빛을 쬐기 시작했다.운동은 늘 해왔던 일이지만, 과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적당한 운동을 하게 되었다.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그들의 전담 의원 역할을 하고 있었다. 정기적인 건강검진 외에도 식단을 짜고, 그에 따라 식사하도록 했다.다들 갑자기 이렇게 말을 잘 들으니,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의아해했다. 나중에야 그들이 회의를 열었고, 새로운 목표를 세운 것을 알게 되었다.그 목표는 바로 20년 후의 북당을 보는 것이었다. 안풍친왕과 무상황이 말하길, 20년 후의 북당은 지금과는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북당은 그들 심혈을 기울여 온 나라니, 더 나은 북당을 보기 위해 기꺼이 노력하고자 했다.원경릉과 우문호는 마음이 놓였다. 집안에 노인이 있으면 보물이 있는 것과 같고, 나라에 이런 노인들이 있다면 나라의 기반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우문호는 걱정 없이 북당을 힘차게 이끌 수 있었다.그렇게 북당의 경제 발전이 최우선 순위에 놓였다.이리 나리는 나라의 발전을 지휘하는 사람으로서 이전의 여유로운 삶을 지낼 수 없었다. 그는 바쁜 나날을 보내며 산업마다 노조를 설립하였고, 각 노조는 나라의 법에 따라 방향을 잡고 나아가고 있었다.그들은 주변 나라와 장사를 하며 자원을 구매했다.지금 우문호와 이리 나리는 약도성의 철광에 목표를 맞추고 있었다. 북당의 철광 자원은 충분하지 않아 그동안 계속 구매해 왔었다. 하지만 금속은 수출량이 제한적이었기에, 이를 극복하려면 자원을 개발해야 했다.약도성의 철광은 매우 풍부했다. 조사 결과, 금나라와 접경한 산맥 외에도 다른 광산 자원이 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