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상궁의 말에 사식이가 위왕부로 향했다. “왕비 생각엔 위왕이 위왕비님을 다치게 할 것 같습니까?”희상궁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원경릉을 보았다.“제가 위왕의 속을 긁어놨으니 어딘가에 분풀이를 하겠죠.”원경릉이 한숨을 내쉬었다. “왕비, 방금 고지가 환술을 쓴다고 하셨잖아요. 그럼 위왕은 고지(故知)의 환술에 홀린 겁니까?” 만아가 물었다. “만아야 오늘 네가 그녀의 손을 잡았을 때, 너와 같은 환술을 부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느냐?”“예. 소인이 그녀에 팔찌에서 흰독말풀꽃 향이 났습니다.”“흰독말풀꽃? 그것을 이용한 환술의 효과가 얼마나 가는지 아느냐?”“최면에 들게 하는 것은 삼십 분에서 한 시간 정도 갑니다. 만약 흰독말풀꽃을 사용했다면……”만아는 얼굴이 붉어졌다. “이 향은 남자를 조종하는데 탁월합니다. 이 향과 최면을 같이 사용하면 2년에서 3년도 환술에 걸리는 사례가 있다고 합니다.”“그때 네가 다섯째에게 최면을 걸었을 때 무엇을 썼지?”만아는 하얗게 질려서는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왕비님, 그때는 제가 미쳤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원경릉은 한숨을 내쉬며 “그냥 물어보는 것뿐이니 사실대로 말해줘라.”라고 말했다.“그렇다면…… 당시 둘째 아가씨의 부탁으로 흰독말풀꽃를 사용했는데, 왕야께는 이 향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최면에 걸린 것도 잠시일 뿐 금방 정신을 차리시고 둘째 아가씨를 밀쳐냈습니다. 일반적인 사내라면 흰독말풀꽃 향에 취해 정신을 차릴 수 없었을 겁니다.”“그렇다면 위왕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겠구나.”“예 그런 것 같습니다. 소인이 맡은 흰독말풀꽃 향은 진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위왕이 깨어나려는 의지만 있다면 문제가 없을 겁니다.”“하지만 그는 분노로 얼룩져 진실을 보지 못하고 있어. 지금 어떤 방법을 써도 위왕은 위왕비를 믿지 않을 것이야.”원경릉의 예상은 적중했다. 위왕은 위왕부에 도착하자마자 위왕비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그는 문을 발로 차고 빠르게 위왕비가 누워있는 곳으로 달려가
위왕비는 침착한 얼굴로 그의 말을 들었다. 위왕비의 입에서 고지의 이름이 나오는 순간에 그녀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지만, 그녀는 익숙하다는 듯 고개를 떨구었다.그녀는 두 손으로 침상 위의 비단이불을 등 뒤에 대고 자리에 앉아 그를 바라보았다. “마침 잘 왔어요. 내가 당신에게 할 말이 있었거든요. 거기 앉으세요.”위왕은 평온한 위왕비의 얼굴을 보고 더욱 화가 났다. 그는 그녀의 멱살을 놓으며 천천히 침상 옆에 섰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데? 서서 듣겠다.”위왕비는 자세를 가다듬고 자리에 앉아 그를 쳐다보았다. “오늘 일로 불쾌했다는 건 일이 일어난 이후에 알았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사과를 드립니다. 왕야께서 번거로우시겠지만 제 사과를 고지에게도 전해주세요.”“마음에도 없는 소리…… 가소롭구나. 너는 고지가 죽기만을 바라잖아? 어디서 착한 척이냐!”“예. 왕야의 말이 맞아요. 전 그녀가 죽도록 밉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그 여자를 미워할 필요가 없겠더라고요. 그녀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뭔짓을 하든 무슨 상관입니까? 저 또한 그녀를 비난할 자격이 없죠. 이제 그녀를 미워하고 말 것도 없습니다.”“초왕비가 나설 것이라는 걸 모르지는 않았잖아? 고의로 고지를 모욕하려고 한 게 아니라는 거짓말은 하지 마라. 뻔뻔하기가 하늘을 찌르는구나! 나중에 알았다고? 네가 말하고도 웃기지 않느냐?”“그들이 고지를 찾으러 간다길래, 그들이 고지를 괴롭힐 걸 알았습니다.”“근데도 왜 막지 않았어? 넌 어쩌면 그렇게 독한 것이야? 고지가 임신한 몸으로 초왕비 무리에게 모욕을 당하게 내버려 두다니!”위왕의 눈이 이글이글 타올랐다.위왕비는 코웃음을 치며 위왕을 노려보았다.“제가 왜 막아야 하죠? 내가 왜 그 여자를 보호해야 합니까? 나에겐 그럴 의무가 없어요.”“초왕비가 왜 고지를 모욕하겠어? 다 너를 위해서 아니냐?”위왕비는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 “네, 맞죠. 그래서 저는 그들에게 고맙습니다.”“그게 무슨 억지논리야
위왕의 폭탄발언에 위왕비의 평온하던 얼굴이 일그러지고 온 몸이 덜덜 떨렸다. 그녀의 눈에는 충격과 공포가 가득했다. 그녀는 두 손으로 그의 손목을 잡아채더니 악을 썼다. “다시 한번 말해봐!”위왕비는 자신의 아이가 유산된 이유가 위왕 때문이라는 말에 머리가 터질 것 같이 아프고 귓속에 삐-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그녀는 그의 입에서 나올 대답을 기다렸다. 그는 그런 그녀가 우습다는 듯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그녀에게 말했다. “똑똑히 들어. 딱 한 번만 다시 얘기해 줄 테니까. 너와 청양군 사이에서 생긴 그 아이는 본왕이 직접 죽인 것이야.”그녀는 마음 저 구석에 있던 마지막 희망이 산산조각 나는 느낌이 들었다. 그의 입에서 나온 저 말이 칼이 되어 그녀의 심장을 찔렀고, 그녀는 살아있는 것이 부질없다고 느껴졌다. 그녀는 천천히 그의 손목을 놓고 부들거리는 몸을 진정하며 그를 노려보았다.그녀는 충격으로 몸을 휘청거리더니 그대로 옆으로 쓰러졌고, 순식간에 얼굴이 잿빛으로 변했다.쓰러진 위왕비를 보며 위왕은 통쾌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그의 마음 속에 긴 시간 동안 억눌려있었던 한과 억울함이 눈 녹듯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본왕이 부황께 보고를 하겠노라. 너를 폐비시킬 것이니 너는 친정으로 갈 채비를 하거라. 본왕은 다시는 너를 보지 않을 것이야. 그 자리는 고지가 앉게 될 것이야.”말을 마친 그는 위왕비의 상태는 확인도 하지 않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시녀와 하인들이 서둘러 위왕비에게 다가와 그녀를 일으켜 맥박을 확인했다. “아이고, 왕야께서 어쩜 저렇게 현명하지 못하실까!”“왕비님 괜찮으십니까?” 시녀와 하인들이 울먹거렸다.쓰러진 위왕비의 눈밑이 파르르 떨렸다. “왕비님! 왜 그러십니까? 오씨 어멈이 여기 있습니다!”파자가 울며 그녀를 안았다.위왕비는 천천히 파자를 보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어멈…… 저…… 여기는 너무 춥습니다……” 위왕비가 가는 목소리로 부르르 떨며 말했다.파자는 황급히 하인들에게 “빨리 온도를 높일 수
사식이는 위왕부 옥상에서 귀를 기울여 내부상황을 파악했다. 사식이는 위왕이 나간 뒤 돌아오지 않자 원경릉이 있는 곳으로 돌아와 사실대로 말했다.“위왕이 위왕비를 때렸습니다. 제가 내려가서 상황을 제지해봤자 소용이 없을 것 같아서 관여하지 않았습니다.”이 말을 들은 원경릉은 한숨을 내쉬었다.“위왕비를 다치게 한 것은 폭력보다 어쩌면 그의 말 때문이 아닌가 싶구나.”“위왕비가 다른 남자와 바람을 펴서 아이를 낳다니요…… 말도 안 되는 얘기입니다.” 사식이가 말했다.“아무래도 위왕이 오해를 하고 있는 모양이야. 어찌 되었든 지금 둘 사이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아무리 오해라고 해도 그들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겠지. 위왕은 어쩌면 자신의 자식일지도 모르는 뱃속의 아이를 죽였어.”원경릉은 같은 엄마의 마음으로 뱃속의 자식을 잃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녀는 지금 이 순간 위왕비가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을지 걱정이 됐다. 위왕비는 위왕이 자신을 폐비시키겠다고 말을 했을 때보다 오늘이 더 충격적이었을 것이다.원경릉은 위왕비가 걱정되어 밤새도록 뒤척였다. 그녀는 사건이 벌어진 위왕부에 위왕비를 혼자 두는 것이 신경이 쓰였다. 위왕비는 지금까지 한 번도 왕부내에서 말썽을 일으킨 적이 없는 착하고 얌전한 사람이다. 하지만 고지는 다르다. 위왕비가 자신을 그렇게 만든 고지와 함께 위왕부에서 지낸다는 것을 말도 안 된다. 그래서 원경릉은 만아를 손왕부에 보내 손왕비에게 이 사실을 태후께 전하라고 했다. *손왕비가 궁에 들어가 태후에게 문안인사를 하고는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었다.“황조모께서 셋째 며느리를 도와주셔야 합니다!”태후는 원래부터 셋째 며느리인 최씨를 가엾게 여기었으며 게다가 작년에 아이도 유산했으니 태후도 최씨가 이만저만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였다. 게다가 손왕비까지 입궁해 최씨의 억울함을 호소하니 태후는 얼빠진 셋째 위왕이 야속했다. 태후는 위왕이 부중에 다른 여인을 데리고 들어왔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손왕비의 말을 들은 태후는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지금 당장 사람을 시켜 고지를 명월암으로 보내거라! 명월암에서 아이를 낳을 때까지 데리고 있다가 아이를 낳자마자 아이를 받고, 고지는 자유롭게 해 주거라! 그리고 위왕을 당장 입궁하라고 해라!”태후의 명령을 들은 손왕비는 위왕과 마주치기 싫어서 재빠르게 태후에게 인사를 하고 궁을 빠져나왔다. 그녀는 바로 정후부로 가서 태후의 결정을 원경릉에게 알렸다. 원경릉은 그 말을 듣고도 안도하지 못했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시종일관 불길함 예감이 사라지지 않았다.그녀는 애써 마음을 다잡으며 고지가 집을 나가면 자연스레 위왕도 그녀의 뒤를 따라 나갈 테니 그 두 사람이 또다시 위왕비를 자극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 다행으로 여겼다.엄마가 되고 나서야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고, 원경릉은 자신의 배를 쓰다듬으며 당시 위왕비가 슬펐을 것을 생각하니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아 눈물이 주륵주륵 흘렀다. 원경릉은 엄마가 되고 나서야 알았다. 일평생 세상에서 제 목숨보다 소중한 것이 내 뱃속의 아이라는 것을……위왕비는 이성적인 사람이지만 아무리 이성적인 사람이라도 아이를 잃은 엄마라면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슬픔에 죽을 만큼 아팠을 것이다. 게다가 그런 아이를 자신이 사랑하는 남편이 죽인 것이라니……지금 위왕비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원경릉은 손왕비를 보았다.“손왕비님, 지금 가서 위왕비를 만나보고 위로의 말을 전하는 게 어떻습니까?” “좋아요. 안 그래도 한 번은 가봐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위왕도 입궁해서 위왕부에 없을 테니 지금 가면 딱 좋을 겁니다.”그들이 정후부를 나서려고 하자 우문호가 도착했다. 진북후는 아직 경도로 돌아오지 않았으며 아마 며칠은 더 걸릴 것 같았다. 손왕비와 원경릉이 위왕부로 간다고 하자 우문호도 그들과 동행했다. 방에 들어가자 침상에 돌아누운 위왕비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들이 들어가 헛기침 소리를 내자 위왕비가 고개를 돌리고
원경릉은 위왕비의 손을 잡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우리에게 얘기해도 됩니다. 손왕비님과 둘이 얘기하고 싶다면 제가 자리를 비켜드리겠습니다.”원경릉의 말을 듣고 위왕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초왕비, 전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해요.”“제가 한 게 뭐 있다고 그러십니까. 아닙니다.” 원경릉이 말했다. “아뇨.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따듯하게 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위왕비가 한숨을 내쉬며 원경릉의 손을 꼭 잡고는 “이제부터 제 걱정은 하지 마세요. 제 인생에 바닥을 쳤으니 이제 남은 것은 올라오는 것 뿐입니다. 전 괜찮을 겁니다.”라고 말했다.그녀의 말을 듣고 원경릉은 안심은커녕 걱정이 더 됐다. 하지만 위왕비의 얼굴을 보니 휴식이 더 필요한 것 같아서 손왕비와 함께 위왕부에서 나와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정후부로 돌아온 원경릉이 계속해서 한숨을 내쉬자 우문호는 그녀에게 “내가 나중에 둘째 형님과 셋째 형님을 불러다가 얘기를 좀 해봐야겠어. 셋째 형님이 뭐 때문에 위왕비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는지 알아볼게.”라고 말했다.“오해를 하면 뭐 하고 해명을 하면 뭐 해? 이미 막장까지 갔는데 무슨 소용이 있겠어? 솔직히 말해서 아무리 자기가 기분 나쁘다고 해도 뱃속에 아이를 유산시킨 것은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야.”우문호는 처음보는 원경릉의 진지한 표정에 깜짝 놀랐다.“나는 셋째랑 달라 아무리 화가 난다고 해도 절대 너와 아이를 다치게 하지는 않을 거야.”“그 말을 듣고 평소 같았으면 너의 볼에 뽀뽀라도 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기운이 없네. 지금 위왕비가 걱정돼서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아.”“너무 걱정하지 마. 태후께서 셋째 형님을 부르셨으니, 태후께서 알아서 하시겠지. 위왕도 궁에서 나올 때는 새 사람이 되어있을 거야. 셋째는 어릴 적부터 정모비의 말을 잘 들었으니까 말이야.”“내가 지금 걱정하는 것은 위왕이 그녀를 어떻게 할까 봐 걱정이 되는 게 아니야. 난 그냥 위왕비가 아무렇지 않은
“고지랑 초왕비가 어떻게 같은 급이라는 말이야?” 태후는 화가 나서 손바닥으로 위왕의 뺨을 때리고 위왕을 죽일 듯 노려보며“그 계집의 몸에 들어있는 아이와 초왕비의 아이가 어찌 같은 급이라는 것이야! 신원 확인이 된 초왕비와 정체불명의 어디서 굴러먹던 여자가 어찌 같을 수 있겠어?”라고 말했다.“결론은 황조모께서 고지의 출신이 마음에 안 드신다는 거죠?”“출신?”태후가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위왕을 보며 “전에 정비 최씨가 그 계집의 목숨을 구해준 적이 있지? 그 은혜를 이 따위로 갚는 것이야?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그 계집이 아이를 낳는 순간 내쫓아 버릴 것이니 그렇게 알거라! 왕부에 들일 꿈도 꾸지 마!”라고 말했다.위왕은 태후의 말에 주먹을 불끈 쥐고 이를 부득부득 갈았지만, 한 입으로 두 말하는 황조모가 아니기에 내심 두려웠다. 하지만 황조모가 손주를 바라왔기에, 아이만 태어나면 황조모도 고지를 아이의 어미로 받아줄 것이라는 생각 했다. 그는 최씨가 바람을 핀 사실을 황조모에게 말하고 싶은 충동을 참았다. 지금 그가 최씨에 대해 뭐라고 말해도 황조모가 믿을 것 같지 않았다. 출궁 한 후, 그는 위왕부에 공급되는 은사탄(銀絲炭)을 끊고, 음식도 입에 풀칠할 정도만 제공했다. 그는 왜 사람들이 위왕비를 감싸고도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위왕비를 싸고돌 때마다 그의 마음속에는 반감이 들었다. 위왕은 위왕부에 가서 오씨 어멈에게 차갑게 말했다. “이 정도면 먹고 살만 하잖아. 추우면 이불 더 꺼내서 덮으면 되고, 명이 길다면 죽지는 않겠지.”오씨 어멈은 냉혈한 위왕의 태도에 화가 나서 눈시울이 붉어졌다.“왕야 어떻게 이러실 수 있습니까? 정말 너무하십니다!”“난 이제 저 사람과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이다.” 위왕이 말했다.*다음날 손왕비가 위왕부로 왔다. “태후께서 며칠 후에 고지를 명월암으로 보내라고 명을 내렸답니다!”손왕비의 말에 위왕비가 멍하니 그녀를 보며 “왜 명월암으로 가라고 하셨을까요?”라고 물었다.
위왕부에 다녀온 이후 원경릉은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아서 며칠 내내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진북후가 드디어 경도에 왔다는 소식이 들리자 이번에도 황제는 친왕과 백관들로 하여금 성문으로 진북후를 마중하라고 명령했다. 진북후의 방문으로 친왕들이 분주하자 위왕은 고지를 명월암으로 데려다줄 수 없었다. 고지가 명월암으로 가는 것이 하루 늦춰지자 위왕은 은근히 기뻤다. 원경릉도 친왕과 백관들이 성문으로 가서 진북후를 마중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속에 진북후는 마치 유니콘 같은 존재였다. 소문으로만 듣던 이름을 현실세계에서 보게 되다니, 원경릉은 긴장이 된 나머지 한동안 위왕비의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 시각 위왕부.잠에서 일찍 깬 고지는 위왕이 나간 후 몸을 일으켜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눈이 떠지지 않았다. 한참동안이나 물 먹은 솜처럼 축 늘어진 채 잠과의 사투를 벌였다. 고지는 속으로는 일어나야지 하면서도 자꾸만 정신이 몽롱해져 잠에서 깨어날 수 없었다. 잠깐 정신이 든 그녀는 귓가에 들리는 소음 때문에 자신이 마차 안에 누워있는 것은 아닌가? 자신이 꿈을 꾸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감기는 눈꺼풀 때문에 점점 깊은 잠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고지는 피부로 느껴지는 한기에 몸을 부르르 떨며 잠에서 깼다.찬바람에 뼈가 시렸고 귓가에는 윙윙 바람 소리가 들렸다. “고지, 정신이 드는 게냐?”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고지는 눈을 번쩍 뜨고 주위를 살폈다. “위왕비……?”고지는 깜짝 놀라 목소리가 떨렸다.순간 그녀는 자신이 공중에 매달려 있다는 것을 느끼고 바닥을 내려다보며 놀라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녀는 성벽에 묶여 있었고 발아래에는 군중들의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으며 멀리 서는 진북후를 영접하는 무리가 성안으로 줄지어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상황을 파악한 고지는 비명을 질렀다. “고지, 무서워할 필요 없어. 내가 왕야에게 이 소식을 전했으니 그가 금방 너를 구하러 올 것이야.”위왕비의 손에는 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