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수보는 그의 모습을 보고 탄식했다. 그는 몹시 화가 나서 눈길도 주지 않고 그를 질책했다.“버러지 같은 놈, 이런 곳에 나장군(羅將軍)과 본관보고 앉으라는 말이냐?”간수장이 주수보가 이곳에 올 줄 어떻게 알았겠는가? 그는 울상으로 문 앞 작은 방을 청소했다. 탁자와 의자에 먼지를 모두 쓸고 닦고 나서야 고개를 숙여 들어갔다. 주수보는 나장군을 보며 “들어와 앉으시지요.”라고 말했다.나장군은 어두운 눈동자로 머뭇거리다가 말없이 들어왔다. 방으로 들어간 그는 앉지도 않고 조용히 주수보를 보았다. “볼 낯이 없네요. 재상께서 오지 않으셔도 됐습니다.”이 말을 들은 주수보는 옆에 있던 사람에게 문을 닫고 나가라고 명했다.“초왕이 나를 이리로 오게했습니다.”“초왕?”나장군은 고개를 쳐들고 고개를 갸우뚱했다.주수보는 손으로 아래를 가리키며 “앉으세요. 중요한 일이니 천천히 말씀을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다.나장군은 그가 자신을 모욕하러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자리에 앉았다.“죄를 지은 것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사죄를 드립니다. 감히 독살을 하려고 하다니……”주수보는 그의 말을 끊고 “귀빈(貴嬪)이 억울하겠죠.”라고 말했다.나장군은 주수보의 말에 충격을 받은 듯 보였다. “천천히 말을 할 테니 잘 들으세요. 초왕이 조사한 바로는 당초에 황후 곁을 지키던 상궁 하나가 죽었고, 그 일은 사고로 귀빈과는 관련이 없다고 합니다.”주수보는 두개의 사발에 술을 따라서 나장군 앞에 밀었다.“사고라고요? 어떻게 사고죠? 독살이라면서요.” 나장군이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독 때문에 죽은 건 맞지요. 이거 보십시오. 호국사의 스님께서 쓰신 겁니다. 이 안에는 상궁이 왜 중독됐는지 설명이 나옵니다.” 주수보는 주머니 속에서 작은 편지를 꺼내 나장군에게 건넸다.“정말요? 정말 그렇다고요? 그렇기만 하다면 나씨 집안이 억울한 누명을 쓰지 않아도 되겠네요!” 나장군은 그것을 받아 들더니 눈빛을 반짝였다.주수보는 나장군의 손을 누르며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원경릉은 그런 원용의가 신경이 쓰여 “무슨 일 있어?”라고 물었다.원용의는 원경릉의 물음에 대답을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다가 “왕비 언니……”라고 입을 열었다.원경릉은 그녀의 말을 끊고는 “왕비 언니라고 부르는 것은 좋지 않으니 차라리 원누이라고 부르거라.”라고 말했다. 원경릉은 왕비에게 언니라는 호칭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예 원누이, 우리 두 사람은 거의 같은 본관의 성(姓)을 가질 뻔했습니다.”원용의의 얼굴이 붉어졌다. “무슨 일이 있지? 왜 그래?” 원경릉이 웃었다.“예, 맞습니다.” 원용의의 붉어진 얼굴이 정상으로 돌아오더니 “제왕이 갑자기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진 후에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제가 그러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으니 제왕은 자신이 이상한 병에 걸렸다고 자기 목숨이 일 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왕비…… 아니 원누이, 혹시 이 증상을 듣고 병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일 년의 시한부라고? 다섯째에게 그런 말을 못 들었는데……” 원경릉이 놀랐다.“아마 왕야께서는 모르실 겁니다. 제왕이 말하길 자신이 적자(嫡子)이기에 외부로 알려지면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 안 된다고, 황상과 황후께서만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원용의의 말에 원경릉은 고개를 끄덕였다.“그것도 맞는 말이지. 제왕과 여덟째만 황상의 적자이니 만약 명이 짧다는 말이 조정에 퍼진다면 큰 영향을 주겠네. 하지만 이 때문에 제왕이 병을 숨기는 것은 이상해. 병에 걸렸는데도 제때 치료하지 않다니……. 황실에는 명의들이 많아. 제왕이 죽을 날을 받아놓고 기다리다니 말도 안 된다고.”“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황상께서 그렇게 하라고 결정을 내렸다고 합니다. 제가 이리저리 생각을 해봤지만 뾰족한 수가 없어서 이렇게 원누이에게 자문을 구하는 겁니다.”옆에서 듣고 있던 사식이가 “원누이께서 제왕의 병이 무엇인지도 모르는데 치료가 되는 병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압니까? 아니시면 다음에 한 번 진료를 보시겠습
원경릉은 원용의의 말을 듣고 그녀가 참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유유자적 여행을 떠날 결심을 하다니, 정말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인데 참 대단하구나.”“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사실 조모께서는 절대 안 된다고 하셨지만, 제가 원하는 일이고, 원누이께서도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확신이 생기네요!”“그래 하루라도 젊을 때 나가서 견문을 넓히는 것은 좋은 일이지.” 원경릉은 원용의의 결정을 응원했다.원용의는 그녀의 말에 용기를 얻었고 자신의 뜻대로 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원경릉은 방금 자신이 내뱉은 말 한마디가 제왕의 미움을 살 것임을 당시에는 몰랐다. *마차는 명월암 쪽으로 가고 있었다.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거리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고 바람이 불어 온통 나뭇잎들이 회오리치듯 날렸다. 원경릉은 마차의 장막을 걷어 밖을 보았다. 밖에는 몇몇 표국(鏢局)의 사람들이 화물을 싣고 지나갔다. 추운 겨울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니 무협 영화의 한 장면같이 보였다.명월암은 성 밖에 있으니 성문을 지나가야 했다. 시국이 좋아서 그런지 성문을 나가는 데도 별다른 검열이 없었다. 사식이도 머리를 내밀어 밖을 보았다. 추운 날씨에 탕양의 눈썹에 하얀 얼음이 맺힌 것을 본 사식이는 웃음이 터졌다. 탕양은 그런 사식이를 보고 웃으며 “겨울에 마차를 끌면 10년이나 늙는다니까!”라고 말했다. 그의 해맑은 표정에 마차 안에 있던 사람들 모두 함박웃음을 지었다.*명월암. 이곳은 십리정(十里亭) 근처에 위치해 있다.마차를 세운 후 산길을 굽이굽이 올라가야 하지만 그리 멀지 않아 금방 도착 할 수 있었다. 원경릉은 배가 많이 나와서 두 손으로 허리를 지지해야 오르막 길을 오를 수 있었다.다행히도 만아와 사식이가 그녀를 부축해주어 힘들지 않게 명월암에 도착했다.명월암의 암자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안쪽에서 비명소리가 들리며 난장판이 되어있었다. 비명소리를 들은 사식이와 만아는 즉시 원경릉의 앞을 막아 그녀를 보호했고 서일과 탕양이 뒤따라 들어
원경릉은 무릎을 꿇고 노부인의 상태를 확인했다. 호흡과 맥박이 멎은 것을 확인하자 고개를 돌려 만아와 사식이에게 “베개를 가지고 와서 빨리 노부인의 어깨를 받쳐!”라고 말했다.사식이는 “왕비, 이미…… 숨을 안 쉬는데……그럴 필요가……”라고 말했다.그런 사식이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원경릉은 “빨리!”라고 말했다.사식이는 옆에서 베개를 하나 가져와 노부인의 어깨를 받쳐주고는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쪼그리고 앉았다.“목을 잘 받친 상태로 머리를 들어.”원경릉이 사식이에게 명령했다.사식이는 그녀의 분부에 따라 손으로 노부인의 목을 받쳐 기도가 열릴 수 있도록 머리를 들었다. 원경릉은 노부인에게 심폐소생술을 하기 시작했고 인공호흡도 했다. “감히 노부인의 옥체에 손을 대다니 무엄하구나!” 옆에서 누군가가 큰 소리로 원경릉을 호통쳤고, 많은 사람들은 노부인의 죽음을 믿기 힘들다는 듯 눈물만 뚝뚝 흘렸다. 비구니는 도둑을 잡으려고 밖으로 나왔지만 도둑은 이미 종적을 감춘 지 오래였다.탕양은 아수라장이 된 암사를 보고 화가 나서 “모두 입을 다무시오! 노부인의 목숨을 구하려고 하니 조용히 하시라고요! 어의가 알아서 잘할 테니, 다들 방해 마십시오!”라고 말했다.원경릉은 힘에 부치는 듯 탕양에게 손짓을 했다.“탕어른, 이쪽으로 오셔서 흉부를 압박하세요. 너무 빨라도 안되고 너무 느려도 안 됩니다.”탕양은 줄곧 원경릉의 동작을 지켜보고 있었기에 그녀의 말이 바로 이해가 갔다.원경릉은 탕양에게 심폐소생술을 맡기고 약상자를 열어 아드레날린을 꺼낸 후 만아에게 노부인의 기도가 열리게 인공호흡을 하라고 했다. 노부인이 쇼크를 일으켜 뇌손상 가능성이 있기에 사람을 시켜 밖에서 눈을 퍼다가 노부인의 머리를 덮게 했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원경릉의 지시가 어리둥절하고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그녀가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에 다들 영문도 모르고 그녀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홀몸도 아닌 원경릉은 긴 시간 마차를 타고 이곳으로 오면서 체력이 이미 바닥이 난
비구니가 급히 들것을 준비하라고 사람들에게 말했고, 한숨을 돌린 원경릉은 일어나서 향을 피웠다. 그러자 회색 옷을 입은 나이가 지긋한 비구니가 원경릉 앞으로 나와 두 손을 모으고 합장을 했다.“아미타불. 당신은 부처님께서 보내신 보살입니다. 어서 안으로 들어와 쉬십시오.”원경릉은 정말로 피곤해서 두 눈이 감길 것 같았다. 노부인을 모시던 상궁은 놀란 표정으로 사식이에게 “저분께서 당신 집안의 부인이십니까?”라고 물었다.사식이는 웃으며 “예, 그렇습니다. 어서 가셔서 노부인을 잘 보살펴 주십시오.”라고 말했다.상궁은 탄식하며 “은혜를 베풀고도 보답을 바라지 않으시니 댁네 부인께서는 보살의 마음을 가졌군요.”라고 말했다.*원경릉은 몸도 녹일 겸 휴식을 취하기 위해 늙은 비구니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갔다.“저는 명월암의 주지입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혹시 댁의 성씨가 어떻게 되십니까?”“부군은 다섯째로 스님께서는 저를 그냥 다섯째 부인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원경릉은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았다.탕양과 서일은 남자이기에 대전 밖으로 걸어 다닐 수 있었지만 뒤편 사랑방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이니 스님께서 노부인을 들것에 싣고 사랑방에 옮기도록 이번만 허락했다.서일과 탕양이 노부인을 내려놓고 떠나려고 할 때, 노부인이 손을 뻗어 서일의 손목을 잡았다. “나를 대신해서 댁네 부인께 감사의 말씀을 꼭 전해주세요. 괜찮다면 댁이 어디신지 알려주시지요…… 제가 감사를 표하고 싶어서요……”서일이 어쩔 줄 몰라 탕양을 바라보자 탕양이 웃으며 “노부인, 그럴 필요 없습니다. 인연이라면 나중에 만나게 되겠지요.”라고 말했다.노부인의 옆에 있던 상궁이 탕양에게 “방금 아까 누가 댁네 부인을 왕비라고 불렀던 것 같은데, 어떤 왕비이신지……”라고 말했다.탕양은 손을 저으며 “상궁께서 잘 못 들으셨습니다. 왕비가 아닙니다. 흠, 사내인 저희가 사랑방에 이렇게 오래 머무를 수 없으니 가보겠습니다. 노부인께서는 몸조리 잘하시
탕양과 서일은 명월암 밖으로 나와 도둑의 흔적을 찾기 위해 애를 썼다. 서일은 바닥에 찍힌 발자국부터 시작해서 도망갔을 경로까지 자세하게 둘러보았다.“도둑놈 말입니다. 암자까지 와서 소란을 피우다니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모양입니다. 제가 반드시 그놈을 잡아서 경조부로 끌고 가겠습니다.”서일이 말했다.“일단 찾고 나서 그 후의 일은 나중에 얘기하자.” 탕양이 말했다.“탕어른, 그런데 저 노부인께서는 도대체 어떤 사람입니까? 탕어른께서도 깍듯하게 대하시는 걸 보니 궁금해졌습니다.”“어른을 공경하는 건 기본 아니야?”탕양이 웃으며 말했다.“아 그렇긴 합니다만……”서일은 잠시 침묵하다가 탕양을 보고 말했다.“탕어른 저는 도대체 명월암에서 뭘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왕비께서 불교를 믿기 시작하신 겁니까?”“다 생각이 있으시겠지.” 탕양도 처음에는 서일처럼 왕비가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암자에 와서 노부인의 목숨을 구하는 것을 보고 탕양은 금세 상황을 파악했다.아마 도둑은 태상황의 명을 받고 배치된 것이고 왕비가 도착하기 직전에 사건을 벌임으로 개연성을 더했다. 탕양은 빙그레 웃으며 왕비가 이 일을 알면 태상황을 꼬리가 아홉 개나 달린 늙은 여우라고 할까 봐 두려웠다.하지만 그는 자신도 모르게 안심이 되었다.태상황이 노부인이 암자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가 이 일을 줄곧 주시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며, 사람을 시켜 호씨 집안의 일거수일투족을 꿰뚫고 있다는 것이다. 탕양은 원경릉이 휴식을 취하는 동안 모든 사실을 간파했다.‘태상황이 바로 초왕비에게 노부인을 구하게끔 판을 짠 것이다.’*원경릉은 방금 만난 노부인이 진북후(鎮北侯)와 관련이 있거나, 어쩌면 진북후의 모친일지도 모른다고 추측했다. 그녀가 정신을 차리고 희상궁에게 묻자 희상궁이 고개를 저으며 “진북후의 모친을 만나뵐 기회가 없어 저분인지 확실하지는 않습니다.”“노부인의 성씨가 심씨라고 했는데……” 사식이는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조모께서 말씀하
희상궁은 원경릉의 명령을 받고 약을 보내러 갔다.잠시 쉬고 나서 기분이 좋아진 노부인이 희상궁이 온 것을 보고 상궁을 시켜 마중을 하라고 했다.희상궁은 웃으며 “노부인 계십시오. 지금 몸이 어떠십니까? 저희 부인께서 약을 보내드리라고 해서 왔습니다. 이 약을 입에 넣고 녹여드시고, 증상이 있을 때마다 드십시오. 그러시면 발작하는 일이 없으실 겁니다.”라고 말했다.노부인은 희상궁을 보고 상궁이지만 기품이 흐르는 것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상궁, 노인이 감히 묻겠습니다만, 댁네 부인께서 혹시 초왕비입니까?”희상궁은 놀라서 “그……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었다.“밖에 노신들이 말하건대 댁네 부인을 왕비라고 부르는 것을 들었다고 합니다. 제가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의술이 뛰어나고 임신을 한 왕비는 초왕비뿐이라서요.”그 말을 듣고 희상궁이 씩 웃으며 “노부인 저희 집안의 부인이 누구든 상관하지 마세요. 이렇게 만나는 것도 인연이니 그냥 스쳐가는 인연이라고 생각하시고 편히 쉬십시오.”라고 말했다.*명월암에서 원경릉은 잠시 쉬다가 부처님께 인사를 드리고 이름도 남기지 않고 공양만 하고 밖으로 나왔다. 사식이와 원용의는 왕비가 왜 명월암에 온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정말 왕비가 부처님을 섬기러 온 건가?’그 둘이 고개를 갸우뚱하자 원경릉은 그 둘을 보며 웃었다.“목적은 이미 달성했다. 내 목적은 바로 노부인의 목숨을 구하는 것이었어.”“예? 노부인의 목숨을 구하는 것이요? 설마…… 태상황님? 태상황님이 신도 아니고 노부인에게 병이 생길 줄 어떻게 알고요?” 사식이가 놀랐다.원용의는 원경릉의 말을 듣고 노부인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아마 노부인께서는 진북후의 모친일 것이야.” 원경릉이 말했다.“듣자하니 진북후가 소문난 효자라고 하더라고요. 만약 노부인이 이 일의 은혜를 갚겠다고 나선다면 왕비를 도와줄 수 있겠네요!”원용의가 말했다. “태상황님은 정말 잔머리가 좋으시네요!” 사식이가 기뻐했다.“잔머리라니
“왜인지 모르게 요즘 걸핏하면 졸리고 피곤해. 오늘은 마차에서 꾸벅꾸벅 졸았다니까?” 원경릉은 기력이 하나도 없었다.“그럼 이제부터 밖에 나가지 말고 집에서 쉬어.” 우문호가 미간을 찌푸리며 걱정했다.“이제 별일 아니면 밖에 안 나가려고. 만사가 다 귀찮다.”원경릉이 아랫배를 만지며 웃었다.“움직였다! 만져봐!”원경릉이 우문호의 손을 자신의 배 위에 올렸다.“배가 금방 커진 것 같네.” 우문호가 그녀의 배를 보았다.“응. 요즘 잘 먹어서 살이 쪘나 봐. 이제 돼지가 되는 건 시간문제야.” 원경릉이 말했다.“돼지 중에서도 가장 예쁜 꽃돼지가 되겠네.” 우문호가 웃으며 말했다.원경릉이 웃으며 그의 발을 밟자 그는 발등을 움켜쥐고 그녀를 응시했다.“근데 경릉아 어찌 얼굴이 전보다 훨씬 좋아졌구나. 나랑 떨어져 있는데 얼굴이 폈네?” 우문호가 말했다.“치!”원경릉이 그를 노려보았다.우문호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그녀의 옆에 앉았다. “정말 신기해. 전에는 내가 널 밀어내기 바빴는데, 지금은 없으면 허전하고 보고 싶고 너랑 떨어져 있는 시간이 너무 힘들어.” 우문호가 말했다.“전에 알던 원경릉이 아닌가 보지.” 원경릉은 그런 그를 보며 웃으며 눈동자를 반짝였다.우문호는 그녀의 배에 귀를 대고 아이가 움직이는 소리를 들었다.“같은 사람이 아닌 것 같아. 예전의 원경릉은 의술도 몰랐고, 동정심도 없고,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여자였거든.”원경릉은 우문호의 말에 깜짝 놀라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조용히 눈을 감고 그녀의 배에서 나는 소리를 들었다.“경릉아 뱃속에 사람이 하나가 들어있는 게 맞지? 근데 왜 이렇게 소란스럽지?”“설마…… 쌍둥이는 아니겠지?” 원경릉의 얼굴이 창백해졌다.“심장 박동을 들을 수 있는 거 있잖아. 그거로 들었을 때 두 개의 심장 박동이 들렸어?” 우문호가 물었다.“나는 태동 수만 측정했지, 박동 측정은 하지 않았어.”원경릉은 손가락으로 임신 개월 수를 세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쌍둥이라면 지금 청진기로
홍엽이 조용하고도 냉정한 말투로 물었다. “공무를 보러 가는 것이냐?”“저는 원래 공사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공무를 보러 가는 것도 여행이라 할 수 있죠.”냉정언이 온화한 눈빛으로 냉명여를 바라보았다. “손자도 이제 다 컸으니, 함께 데리고 나가 바깥세상을 경험해 볼 때가 되었지.”냉명여가 고개를 들었다. 냉정한의 눈빛은 다시 싸늘하게 변했다.이 집안에서 냉정한은 엄격했으며, 홍엽은 편애를 받았다. 그렇기에 둘은 서로 보완이 되었다.“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짐부터 싸야겠네요. 얼마나 가 있는 겁니까?”홍엽이 기쁜 목소리로 물었다.“돌아오고 싶을 때 돌아오면 되니 일수는 생각할 필요 없다. 어쨌든 우문호는 항상 나에게 짐을 지우고 있었으니, 우리도 즐길 때가 되었지.”냉정언이 복수하듯 말했다.홍엽이 웃었다. “정말 그럴 만도 합니다.”그의 수양딸을 만나러 가는 길이니, 무척이나 기뻤다.홍엽이 우문호에게 품고 있는 가장 큰 불만은 자신과 수양딸 사이를 막고 있는 것이었다. 분명 자신의 수양딸임에도 우문호가 독점하고 있으니, 너무나도 과한 처사였다.황제가 된 사람들의 성격은 대체로 좋지 않았다.세 명의 사람과 한 마리의 원숭이가 조용히 성을 빠져나갔다. 흠차라고는 하지만 어떠한 허례허식도 없었다.그들이 떠난 뒤, 탕양도 약도성을 위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탕양은 최근 몇 년 동안 바쁘게 일하며 많이 늙었고, 머리카락은 흰머리가 수북했다.그는 이전에 우문호의 최측근 신하였으며 지금은 우문호의 전반적인 심부름꾼이었다. 관직이 내려져 고용된 것이 아닌, 그저 유용한 사람으로써 투입된 것이었다. 그는 우문호에게 직접 보고를 올렸으며, 어떤 관청에서도 그를 관리할 수 없었다.근래 몇 년 동안 그는 병부에서 군사를 정리하고 호부에서 전국의 땅과 세금을 다루며 새로운 정책을 세우는 데 도움을 주었다. 또한 이부에서 심사에 참여하고 형부에서 중대 사건을 옆에서 다루었다.황후는 탕대인이 벽돌과도 같아 필요한 곳 어디에서든 쓰일 수
“좋은 생각이십니다. 가능한 빠를 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조정의 은혜를 이어 갈 수도 있습니다.”냉정언은 그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 들였다.그리고 잠시 멈칫하고는 우문호를 바라 보았다.“그리고 공주님을 보살 피라는 말씀이시지요?”“역시 지혜로운 수보구나. 짐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꿰뚫어 보고 있어.”우문호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폐하께서 공주님을 아끼시는 건 궁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인이 궁에 들어오기 전에 폐하께서 갔다 오실 줄 알았습니다.”“짐이 생각 해보았지. 지금 때에 약도성에 들리면 이득이야. 조정을 향한 백성의 믿음도 생기고, 결코 짐이 백성을 버리지 않았다는 뜻이 될 테니 말이야. 하지만 내가 조정을 떠나면 나에게 반심을 가진 자들이 모여서 내란을 일으킬 수 있어. 자네를 수보의 신분으로 보내는 게 제일 안전한 방법이네.”냉정언이 고개를 끄덕였다.“옳으신 말씀입니다. 사실 소인은 폐하께서 직접 가실 것 같아 설득을 해볼 생각이었습니다.”우문호는 애매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짐이 자식들 때문에 나랏일을 뒤로 미루는 사람으로 보이는가.”“공주님이라면 그럴지도 모르지요.”냉정언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소인이 폐하를 너무 얕보았나 봅니다.”“짐도 구분은 할 줄 아네. 쉽게 위험 속에 몸을 던지는 사람이 아니야.”게다가 그는 집에서 제일 약한 사람이 아닌가. 냉정언이 답했다.“네, 알겠습니다. 홍엽 공자에게 일러 두겠습니다. 내일 출발 할 수 있게 말입니다.”“홍엽 공자도 가는 것인가?”우문호가 눈을 크게 떴다.“소인이 오랜만에 나가는 외출 입니다. 제 아들도 바깥 세상 한번 구경 시켜줘야 하지 않겠습니까.”우문호가 의미심장한 태도로 답했다.“그래, 명여도 데려가게. 사내 아이는 많이 둘러 보는 게 좋지.”“명어 그 아이는 홍엽 공자를 잘 따릅니다.”냉정언이 말했다.“그래, 네가 누굴 데려가든 상관없다.네가 가면 되는 것이니 말이다.”우문호는 허공에 손을 흔들었다.말을 끝나
하지만 새해의 기쁨도 초 닷새 날까지뿐이었다.초 엿샛날이 되자 각 부서들이 하나둘씩 출근하기 시작했다.우문호의 표정이 좋지 않다.출근 때문이 아니라 택란이 약도성에 다녀오겠다는 말 때문이다.약도성은 큰 화재 때문에 재건설을 했다.그녀는 직접 두 눈으로 봐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게다가 형제들도 곧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원경릉은 우문호를 하룻 밤 내내 설득하기 바빴다.곧이어 우문호는 위왕과 안왕에게 임무를 주었다. 강북부에 도착하면 즉시 그에게 보고를 하라는 내용이었다.위왕과 안왕은 억울하기 그지없었다.왕의 위치에 오르니 사람도 변한다는 사실이 와닿았다.우문호는 한 사람씩 배웅을 해주었다.하지만 아이들은 반겨 하지 않았다.그들의 삼촌을 지켜줘야 할 뿐만 아니라 속도가 현저히 느려지기 때문이다.하지만 우문호는 자신의 결정을 굽히지 않았다.옆에 있던 서일도 같이 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그 이유는 출장 비용을 황후가 흔쾌히 내어 주기 때문이다.아이들이 또다시 다른 지역으로 떠난다.역란은 자신이 벌써 열 살이라며 강조했다.나이가 어떻게 되든 10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것은 사실이다.“역란아, 아바마마가 마음이 아프다.궁에 남아 나와 더 놀아주지 않겠어?”마차가 지나가고, 경단이 역란에게 물었다.“이만하면 됐습니다. 조금만 더 지내면 싫어하실 거예요.”역란이 혀를 내밀고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아이고, 이 녀석아.”경단은 역란의 말에 무언가를 깨달은 듯했다.‘적당한 거리가 아련함을 만든다.’마차가 천천히 성 밖을 나갔다.한편, 어서방 안.30분 전, 우문호가 냉정언에게 바둑을 두자고 불렀다.몇 판을 졌지만 우문호는 화도 내지 않고, 바둑판을 엎지도 않았다.다음 판이 또 시작되자 냉정언이 그를 말렸다.“폐하, 무슨 일이 있으시면 말씀을 하세요. 계속하셔도 저한테 질 뿐입니다.”“지지 않을 걸세!”우문호가 그를 노려 보았다.냉정언이 차를 한 입 들이켰다.“그래서 무슨 일 이십니까?”우문호의 인내심
“매화장에서 새해를 보내고 정월 초이틀에 돌아오마. 세뱃돈은 한 사람당 하나씩이니, 욕심은 부리면 안 되느니라!”원경릉이 종이에 적힌 글을 소리내어 읽었다.“매화장에 가셨다고? 혼자서 보낸다고 하시지 않았나?”우문호는 이상하다고 생각이 들었다.‘매화장에 무슨 볼거리라도 생긴 걸까? 우린 초대도 못 받았는데.’“어쩔 수 없지요, 그만 갑시다.”원경릉이 말했다.그들이 자신들의 세뱃돈을 꺼냈다.돌아가려던 찰나, 다른 부부들과 마주쳤다.미색부부, 손왕 부부와 공주 부부도 온 것이다.그들의 손엔 선물을 들고 있었다.우문호는 반대로 아무것도 들고 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얼굴을 붉혔다.“다들 어디가신 겁니까?”미색이 성큼 들어와 그들에게 물었다.“매화장에 가셨어.”원경릉이 종이를 내보였다.곧이어 상자를 가리키며 말했다.“새뱃돈은 한 사람당 하나씩.”“너무 대충 준비 하셨네.”회왕은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매년 새해에는 시끌벅적하게 보냈기 때문이었다.그는 어젯 밤,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다.하지만 어딘가 부족한 마음이 들어 아침 일찍 찾아온 것이다.새해에 숙왕이 없으니 무언가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모두 실망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그저 멀뚱멀뚱하게 서로를 바라볼 뿐이다.‘새해에 집에 있으면 새해의 느낌이 없지 않은가.’이때, 우문호가 의견을 내놓았다.“매화장에 가보는 게 어떻겠습니까?”“좋아, 지금 출발 하자구나.”손왕이 서둘러 답했다.한편, 매화장 안.전 명원제는 답답하기 그지 없었다.그는 그저 혼자 조용히 새해를 맞이하고 싶었다.어제까지만 해도 모두 각자 새해를 보낸 다는 소식에 그는 기뻐했다.광대짓을 안 해도 된다는 생각에 해방감을 느낀 것이다.하지만 기쁨도 잠시 순식간에 사람들이 몰려와 매화장을 꽉 채웠다.무상황이 나타나 노인들끼리 같이 새해를 보내자고 제안을 한 것이다.그는 공간이 넓고, 옆으로 산이 있다는 이유로 매화장을 택했다. 전 명원제는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그도 노인이기 때문이다.그리하여
원경릉은 그의 말에 마음이 아팠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각도 하기 싫은 문제였다.형제들과 다르게 그는 노화세포를 전혀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이 사실을 그에게 말한 적은 없지만 우문호는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 있었다.그도 자식들의 회복 능력을 보면서 알 수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원경릉에게 직접 말한 적은 없다.우문호는 그녀를 바라 보았다.부부라서 마음이 통한 것일까.그는 그녀의 마음을 대략 읽고 있었다.원경릉은 수술을 하고 나서 전혀 늙지 않았다.일부로 어두운 색깔의 옷을 입어도 여전히 젊어 보였다.반대로 우문호는 하얀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나기 시작했다.어쩌면 국가의 일을 처리하느라 노화가 빠른 것일지도 모른다.하지만 그는 그의 나이에 맞는 모습으로 점차 변해갔다.아직 눈가에 주름도 없고, 늙어 보이지 않지만 그는 곧 자신에게 닥칠 일이라고 생각했다.원경릉에게 주사를 맞겠다고 한 것도 그저 한순간의 충동일 뿐이다.사실 그는 그녀가 늙지 않고, 죽지 않는 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았다.하지만 몇십 년 뒤에 그녀의 인생에 자신이 사라진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생각하면 할수록 조급해질 수 밖에 없었다.그는 서둘러 생각을 접었다.'지금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같이 있는 시간을 즐겨야 한다.'요즘들어 우문호는 운명을 믿기 시작했다.원경릉이 자신에게 온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그 다음 날, 온 가족이 숙왕부에 도착했다.그들이 일찍 깨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대문이 닫혀 있었다.만두가 문을 두드렸다.아무런 대답이 없자 우문호가 바짝 긴장했다.“무슨 일 일어난 건 아니겠지?”“제가 들어가 보겠습니다!”곧이어 만두가 재빠르게 안으로 들어갔다.아들의 의외의 행동에 우문호가 깜짝 놀랐다.“만두가 언제 무술을 배운 거야?”원경릉은 무술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어제의 일이 떠올랐다.그리고 혹시 몰라 다르게 답했다.“저도 만두가 무술을 배웠을 줄은 몰랐습니다.”곧이어 만두가 안에서 문을 열었
“그래, 그래. 잘 된 일이야.”우문호가 기뻐했다.곧이어 손을 뻗어 딸의 이마를 어루만졌다.“내 딸이 그래도 제일 착하구나.”“아바마마, 편애하면 아니 되옵니다.”칠성은 우문호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편애라니?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그러고는 그의 그릇에 닭다리 하나를 올려 주었다.“자, 이건 칠성이거다.”“저희도 먹고 싶습니다!”옆에 있던 4명의 아들들이 우문호에게 그릇을 내밀었다.“닭다리는 딱 2개밖에 없구나. 칠성이에게 하나를 주었으니, 남은 하나는...”“아바마마! 저 주십시오.”택란이 그릇을 내밀었다.“어..”곧이어 원경릉도 그릇을 내밀었다.“저도 주십시오!”우문호는 한 손으로 닭다리를 잡은 채 자신의 앞에 놓인 그릇 6개를 바라보았다.잠시 고민하고는 원경릉의 그릇에 닭다리를 올렸다.“내 아내가 고생이 많지!”그리고 서둘러 닭 고기를 집어 다른 그릇에 올려 두었다. 그는 이마 위로 손을 올렸다.“내일 닭을 더 많이 잡으라고 해야겠구나, 한 사람에 닭다리 하나씩 먹을 수 있게 말이야.”그의 말이 끝나고 자리에는 웃음꽃이 피었다.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면서 웃어 보였다.좋은 아버지가 되기는 쉽지 않구나,라고 생각했다.만두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아바마마, 저희가 장난 좀 친 것뿐입니다.마음에 두지 마십시오.게다가 여자라고는 어마마마와 여동생뿐입니다.저희 남자형제들이 양보하는 게 맞지요.”나머지 형제들이 고개를 끄덕였다.“맞습니다.”큰 형의 말에 어떻게 동생들이 토를 달 수 있겠는 가.그리고 동생들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아바마마도 지켜 주셔야 합니다.아바마마가 저희 집안에서 제일 약한..”칠성은 닭다리를 뜯으면서 애매한 말을 내던졌다.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른 형제들이 반찬을 집어 그녀의 그릇에 두었다.만두가 입을 열었다.“그만 이야기하고 밥 먹어. 닭다리로도 부족한 거야?”칠성은 그의 말에 풀이 죽었다.그리고 고개를 숙이고 다시 닭다리를 뜯었다.우문호는 원경릉을 바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안 된다. 술은 19세부터 마실 수 있는 법이다.”만두는 약간 실망한 듯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예. 말을 따르겠습니다.”기분이 좋아진 우문호는 팔꿈치로 원경릉을 살짝 찌르며 말했다.“한 모금만 주오. 아직 어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리다고 하기도 훨씬 지난 나이네. 집에서 한 모금 정도는 괜찮소. 밖에서는 안 마시면 되지.”경단과 찰떡도 원경릉을 바라보며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기만을 기다렸다.원경릉은 아이들이 모두 아빠와 함께 술을 마시고 싶어 하는 걸 보며, 오늘처럼 즐거운 날은 한 번쯤 허락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는 직접 아이들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작은 잔에 술향이 은은하게 퍼졌고, 아이들은 금세 웃음을 터뜨렸다.세 아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우문호를 향해 잔을 높이며 말했다.“아바마마, 아바마마께 한 잔 올리겠습니다!”우문호는 아이들의 풋풋함을 간직한 똑같은 얼굴을 바라보았다. 성인이 되려고 애쓰는 그들을 보며 그는 뿌듯함과 감동이 교차했다. 그는 아이들과 잔을 부딪치며 말했다.“그래, 부자끼리 한잔하자!”참으로 묘한 느낌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품에 안겨 있던 작은 아이들이 지금은 그와 함께 잔을 부딪치고 있었다.현대에서 지내는 동안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줄어들다 보니, 아이들이 어느 순간 훌쩍 커버린 듯한 착각이 들었다.은은한 촛불이 아이들의 기뻐하는 얼굴을 비췄다. 탁자 아래, 우문호는 원경릉의 손을 잡고 서로 미소를 주고받았다.아이들은 부모님에게 열심히 음식을 챙겨주었다. 환타가 원경릉의 손을 잡아당기며 말했다.“어마마마, 드시지요. 아바마마도 손잡지 마시고 어서 드십시오.”원경릉은 웃으며 말했다.“그래. 먹자, 다 같이 밥 먹자!”그녀는 그릇에 담긴 음식을 우문호의 그릇으로 조금 옮기며 말했다.“다 못 먹으니, 조금 먹어주시오.”우문호가 답했다.“그럼, 좋아하는 것만 먹고, 싫어하는 건 나한테 주시오.”그는 그릇을 내려놓고 새우를 까서 마늘장에 찍어
다섯째는 평소 아이들의 자잘한 일들에 항상 주목했다. 아이들을 자랑스러워하다가 금세 우울해지곤 했는데, 원경릉은 그의 모습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그게 그의 즐거움이었고, 그가 행복하다면 그걸로 충분했다.계란이의 길쭉한 팔다리가 앞으로 절대 키가 작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다만 아직 클 나이에 이르지 않았다.원경릉은 예전에 아이들이 빨리 자라길 바랐지만, 이제는 천천히 자라길 바랐다. 그래야 아이들이 곁에 머무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더 길어질 것이다.섣달그믐날 그들은 연회를 올렸다. 관례대로라면 숙왕부에서 무상황과 함께 보내야 했지만, 올해는 무상황이 미리 사람을 보내 섣달그믐날 숙왕부는 아무런 손님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명을 전했다. 어르신들끼리 다채롭게 보낼 준비가 되어 있으니, 아이들이 와서 방해하지 못하게 하라고 뜻을 전했다.다섯째는 오히려 이 소식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동안 어르신들 앞에서 태상황으로서 위엄을 세우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대우는커녕 오히려 재롱까지 부려야 했기에, 그는 항상 처지가 곤란했었다.무상황이 사람을 보내 궁에 있는 우문호에게 각자 알아서 새해를 보내고, 올해는 함께 모이지 않기로 소식을 전했다.황태후도 어린 공주를 데리고 친정으로 돌아갔다. 그동안 친정 식구들과 명절을 함께 보내본 적이 없다며 어린 공주를 데리고 친정으로 돌아갔다.우문호 역시 만족스러웠다. 항상 북적이는 설날을 보내다 보면, 기진맥진하게 되니 차라리 가족끼리 조용히 보내는 게 훨씬 편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게다가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여덟 식구끼리 쉴 수도 있었다.이 소식을 들은 후, 우문호는 아이와 원경릉이 좋아하는 음식을 해놓으라 미리 전했다. 원경릉은 원 할머니를 초대하려 했지만, 원 할머니는 한참 망설이다가 단호히 거절했다. 자주 그녀와 만나서 이야기도 나누고 밥도 먹지만 숙왕부의 어르신들과는 그런 기회가 적으니, 이번에는 그들과 함께 명절을 보내겠다고 했다.원경릉은 이 말을 듣고 의아했다. 어르신들과
추 할머니의 건강 상태는 약을 먹은 후 많이 안정되었다. 이전에 폐종양이 신경을 압박해 유발했던 통증이 크게 완화되었고, 이제는 진통제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통증이 사라졌으니, 삶의 질도 개선되었다. 추 할머니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나자, 모두가 기뻐했다.숙왕부의 노인들은 갑자기 건강 관리에 눈을 뜬 것처럼 건강한 음식을 먹고, 매일 규칙적으로 운동하며, 햇빛을 쬐기 시작했다.운동은 늘 해왔던 일이지만, 과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적당한 운동을 하게 되었다.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그들의 전담 의원 역할을 하고 있었다. 정기적인 건강검진 외에도 식단을 짜고, 그에 따라 식사하도록 했다.다들 갑자기 이렇게 말을 잘 들으니,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의아해했다. 나중에야 그들이 회의를 열었고, 새로운 목표를 세운 것을 알게 되었다.그 목표는 바로 20년 후의 북당을 보는 것이었다. 안풍친왕과 무상황이 말하길, 20년 후의 북당은 지금과는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북당은 그들 심혈을 기울여 온 나라니, 더 나은 북당을 보기 위해 기꺼이 노력하고자 했다.원경릉과 우문호는 마음이 놓였다. 집안에 노인이 있으면 보물이 있는 것과 같고, 나라에 이런 노인들이 있다면 나라의 기반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우문호는 걱정 없이 북당을 힘차게 이끌 수 있었다.그렇게 북당의 경제 발전이 최우선 순위에 놓였다.이리 나리는 나라의 발전을 지휘하는 사람으로서 이전의 여유로운 삶을 지낼 수 없었다. 그는 바쁜 나날을 보내며 산업마다 노조를 설립하였고, 각 노조는 나라의 법에 따라 방향을 잡고 나아가고 있었다.그들은 주변 나라와 장사를 하며 자원을 구매했다.지금 우문호와 이리 나리는 약도성의 철광에 목표를 맞추고 있었다. 북당의 철광 자원은 충분하지 않아 그동안 계속 구매해 왔었다. 하지만 금속은 수출량이 제한적이었기에, 이를 극복하려면 자원을 개발해야 했다.약도성의 철광은 매우 풍부했다. 조사 결과, 금나라와 접경한 산맥 외에도 다른 광산 자원이 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