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경릉은 그런 원용의가 신경이 쓰여 “무슨 일 있어?”라고 물었다.원용의는 원경릉의 물음에 대답을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다가 “왕비 언니……”라고 입을 열었다.원경릉은 그녀의 말을 끊고는 “왕비 언니라고 부르는 것은 좋지 않으니 차라리 원누이라고 부르거라.”라고 말했다. 원경릉은 왕비에게 언니라는 호칭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예 원누이, 우리 두 사람은 거의 같은 본관의 성(姓)을 가질 뻔했습니다.”원용의의 얼굴이 붉어졌다. “무슨 일이 있지? 왜 그래?” 원경릉이 웃었다.“예, 맞습니다.” 원용의의 붉어진 얼굴이 정상으로 돌아오더니 “제왕이 갑자기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진 후에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제가 그러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으니 제왕은 자신이 이상한 병에 걸렸다고 자기 목숨이 일 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왕비…… 아니 원누이, 혹시 이 증상을 듣고 병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일 년의 시한부라고? 다섯째에게 그런 말을 못 들었는데……” 원경릉이 놀랐다.“아마 왕야께서는 모르실 겁니다. 제왕이 말하길 자신이 적자(嫡子)이기에 외부로 알려지면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 안 된다고, 황상과 황후께서만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원용의의 말에 원경릉은 고개를 끄덕였다.“그것도 맞는 말이지. 제왕과 여덟째만 황상의 적자이니 만약 명이 짧다는 말이 조정에 퍼진다면 큰 영향을 주겠네. 하지만 이 때문에 제왕이 병을 숨기는 것은 이상해. 병에 걸렸는데도 제때 치료하지 않다니……. 황실에는 명의들이 많아. 제왕이 죽을 날을 받아놓고 기다리다니 말도 안 된다고.”“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황상께서 그렇게 하라고 결정을 내렸다고 합니다. 제가 이리저리 생각을 해봤지만 뾰족한 수가 없어서 이렇게 원누이에게 자문을 구하는 겁니다.”옆에서 듣고 있던 사식이가 “원누이께서 제왕의 병이 무엇인지도 모르는데 치료가 되는 병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압니까? 아니시면 다음에 한 번 진료를 보시겠습
원경릉은 원용의의 말을 듣고 그녀가 참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유유자적 여행을 떠날 결심을 하다니, 정말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인데 참 대단하구나.”“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사실 조모께서는 절대 안 된다고 하셨지만, 제가 원하는 일이고, 원누이께서도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확신이 생기네요!”“그래 하루라도 젊을 때 나가서 견문을 넓히는 것은 좋은 일이지.” 원경릉은 원용의의 결정을 응원했다.원용의는 그녀의 말에 용기를 얻었고 자신의 뜻대로 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원경릉은 방금 자신이 내뱉은 말 한마디가 제왕의 미움을 살 것임을 당시에는 몰랐다. *마차는 명월암 쪽으로 가고 있었다.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거리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고 바람이 불어 온통 나뭇잎들이 회오리치듯 날렸다. 원경릉은 마차의 장막을 걷어 밖을 보았다. 밖에는 몇몇 표국(鏢局)의 사람들이 화물을 싣고 지나갔다. 추운 겨울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니 무협 영화의 한 장면같이 보였다.명월암은 성 밖에 있으니 성문을 지나가야 했다. 시국이 좋아서 그런지 성문을 나가는 데도 별다른 검열이 없었다. 사식이도 머리를 내밀어 밖을 보았다. 추운 날씨에 탕양의 눈썹에 하얀 얼음이 맺힌 것을 본 사식이는 웃음이 터졌다. 탕양은 그런 사식이를 보고 웃으며 “겨울에 마차를 끌면 10년이나 늙는다니까!”라고 말했다. 그의 해맑은 표정에 마차 안에 있던 사람들 모두 함박웃음을 지었다.*명월암. 이곳은 십리정(十里亭) 근처에 위치해 있다.마차를 세운 후 산길을 굽이굽이 올라가야 하지만 그리 멀지 않아 금방 도착 할 수 있었다. 원경릉은 배가 많이 나와서 두 손으로 허리를 지지해야 오르막 길을 오를 수 있었다.다행히도 만아와 사식이가 그녀를 부축해주어 힘들지 않게 명월암에 도착했다.명월암의 암자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안쪽에서 비명소리가 들리며 난장판이 되어있었다. 비명소리를 들은 사식이와 만아는 즉시 원경릉의 앞을 막아 그녀를 보호했고 서일과 탕양이 뒤따라 들어
원경릉은 무릎을 꿇고 노부인의 상태를 확인했다. 호흡과 맥박이 멎은 것을 확인하자 고개를 돌려 만아와 사식이에게 “베개를 가지고 와서 빨리 노부인의 어깨를 받쳐!”라고 말했다.사식이는 “왕비, 이미…… 숨을 안 쉬는데……그럴 필요가……”라고 말했다.그런 사식이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원경릉은 “빨리!”라고 말했다.사식이는 옆에서 베개를 하나 가져와 노부인의 어깨를 받쳐주고는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쪼그리고 앉았다.“목을 잘 받친 상태로 머리를 들어.”원경릉이 사식이에게 명령했다.사식이는 그녀의 분부에 따라 손으로 노부인의 목을 받쳐 기도가 열릴 수 있도록 머리를 들었다. 원경릉은 노부인에게 심폐소생술을 하기 시작했고 인공호흡도 했다. “감히 노부인의 옥체에 손을 대다니 무엄하구나!” 옆에서 누군가가 큰 소리로 원경릉을 호통쳤고, 많은 사람들은 노부인의 죽음을 믿기 힘들다는 듯 눈물만 뚝뚝 흘렸다. 비구니는 도둑을 잡으려고 밖으로 나왔지만 도둑은 이미 종적을 감춘 지 오래였다.탕양은 아수라장이 된 암사를 보고 화가 나서 “모두 입을 다무시오! 노부인의 목숨을 구하려고 하니 조용히 하시라고요! 어의가 알아서 잘할 테니, 다들 방해 마십시오!”라고 말했다.원경릉은 힘에 부치는 듯 탕양에게 손짓을 했다.“탕어른, 이쪽으로 오셔서 흉부를 압박하세요. 너무 빨라도 안되고 너무 느려도 안 됩니다.”탕양은 줄곧 원경릉의 동작을 지켜보고 있었기에 그녀의 말이 바로 이해가 갔다.원경릉은 탕양에게 심폐소생술을 맡기고 약상자를 열어 아드레날린을 꺼낸 후 만아에게 노부인의 기도가 열리게 인공호흡을 하라고 했다. 노부인이 쇼크를 일으켜 뇌손상 가능성이 있기에 사람을 시켜 밖에서 눈을 퍼다가 노부인의 머리를 덮게 했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원경릉의 지시가 어리둥절하고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그녀가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에 다들 영문도 모르고 그녀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홀몸도 아닌 원경릉은 긴 시간 마차를 타고 이곳으로 오면서 체력이 이미 바닥이 난
비구니가 급히 들것을 준비하라고 사람들에게 말했고, 한숨을 돌린 원경릉은 일어나서 향을 피웠다. 그러자 회색 옷을 입은 나이가 지긋한 비구니가 원경릉 앞으로 나와 두 손을 모으고 합장을 했다.“아미타불. 당신은 부처님께서 보내신 보살입니다. 어서 안으로 들어와 쉬십시오.”원경릉은 정말로 피곤해서 두 눈이 감길 것 같았다. 노부인을 모시던 상궁은 놀란 표정으로 사식이에게 “저분께서 당신 집안의 부인이십니까?”라고 물었다.사식이는 웃으며 “예, 그렇습니다. 어서 가셔서 노부인을 잘 보살펴 주십시오.”라고 말했다.상궁은 탄식하며 “은혜를 베풀고도 보답을 바라지 않으시니 댁네 부인께서는 보살의 마음을 가졌군요.”라고 말했다.*원경릉은 몸도 녹일 겸 휴식을 취하기 위해 늙은 비구니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갔다.“저는 명월암의 주지입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혹시 댁의 성씨가 어떻게 되십니까?”“부군은 다섯째로 스님께서는 저를 그냥 다섯째 부인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원경릉은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았다.탕양과 서일은 남자이기에 대전 밖으로 걸어 다닐 수 있었지만 뒤편 사랑방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이니 스님께서 노부인을 들것에 싣고 사랑방에 옮기도록 이번만 허락했다.서일과 탕양이 노부인을 내려놓고 떠나려고 할 때, 노부인이 손을 뻗어 서일의 손목을 잡았다. “나를 대신해서 댁네 부인께 감사의 말씀을 꼭 전해주세요. 괜찮다면 댁이 어디신지 알려주시지요…… 제가 감사를 표하고 싶어서요……”서일이 어쩔 줄 몰라 탕양을 바라보자 탕양이 웃으며 “노부인, 그럴 필요 없습니다. 인연이라면 나중에 만나게 되겠지요.”라고 말했다.노부인의 옆에 있던 상궁이 탕양에게 “방금 아까 누가 댁네 부인을 왕비라고 불렀던 것 같은데, 어떤 왕비이신지……”라고 말했다.탕양은 손을 저으며 “상궁께서 잘 못 들으셨습니다. 왕비가 아닙니다. 흠, 사내인 저희가 사랑방에 이렇게 오래 머무를 수 없으니 가보겠습니다. 노부인께서는 몸조리 잘하시
탕양과 서일은 명월암 밖으로 나와 도둑의 흔적을 찾기 위해 애를 썼다. 서일은 바닥에 찍힌 발자국부터 시작해서 도망갔을 경로까지 자세하게 둘러보았다.“도둑놈 말입니다. 암자까지 와서 소란을 피우다니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모양입니다. 제가 반드시 그놈을 잡아서 경조부로 끌고 가겠습니다.”서일이 말했다.“일단 찾고 나서 그 후의 일은 나중에 얘기하자.” 탕양이 말했다.“탕어른, 그런데 저 노부인께서는 도대체 어떤 사람입니까? 탕어른께서도 깍듯하게 대하시는 걸 보니 궁금해졌습니다.”“어른을 공경하는 건 기본 아니야?”탕양이 웃으며 말했다.“아 그렇긴 합니다만……”서일은 잠시 침묵하다가 탕양을 보고 말했다.“탕어른 저는 도대체 명월암에서 뭘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왕비께서 불교를 믿기 시작하신 겁니까?”“다 생각이 있으시겠지.” 탕양도 처음에는 서일처럼 왕비가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암자에 와서 노부인의 목숨을 구하는 것을 보고 탕양은 금세 상황을 파악했다.아마 도둑은 태상황의 명을 받고 배치된 것이고 왕비가 도착하기 직전에 사건을 벌임으로 개연성을 더했다. 탕양은 빙그레 웃으며 왕비가 이 일을 알면 태상황을 꼬리가 아홉 개나 달린 늙은 여우라고 할까 봐 두려웠다.하지만 그는 자신도 모르게 안심이 되었다.태상황이 노부인이 암자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가 이 일을 줄곧 주시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며, 사람을 시켜 호씨 집안의 일거수일투족을 꿰뚫고 있다는 것이다. 탕양은 원경릉이 휴식을 취하는 동안 모든 사실을 간파했다.‘태상황이 바로 초왕비에게 노부인을 구하게끔 판을 짠 것이다.’*원경릉은 방금 만난 노부인이 진북후(鎮北侯)와 관련이 있거나, 어쩌면 진북후의 모친일지도 모른다고 추측했다. 그녀가 정신을 차리고 희상궁에게 묻자 희상궁이 고개를 저으며 “진북후의 모친을 만나뵐 기회가 없어 저분인지 확실하지는 않습니다.”“노부인의 성씨가 심씨라고 했는데……” 사식이는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조모께서 말씀하
희상궁은 원경릉의 명령을 받고 약을 보내러 갔다.잠시 쉬고 나서 기분이 좋아진 노부인이 희상궁이 온 것을 보고 상궁을 시켜 마중을 하라고 했다.희상궁은 웃으며 “노부인 계십시오. 지금 몸이 어떠십니까? 저희 부인께서 약을 보내드리라고 해서 왔습니다. 이 약을 입에 넣고 녹여드시고, 증상이 있을 때마다 드십시오. 그러시면 발작하는 일이 없으실 겁니다.”라고 말했다.노부인은 희상궁을 보고 상궁이지만 기품이 흐르는 것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상궁, 노인이 감히 묻겠습니다만, 댁네 부인께서 혹시 초왕비입니까?”희상궁은 놀라서 “그……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었다.“밖에 노신들이 말하건대 댁네 부인을 왕비라고 부르는 것을 들었다고 합니다. 제가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의술이 뛰어나고 임신을 한 왕비는 초왕비뿐이라서요.”그 말을 듣고 희상궁이 씩 웃으며 “노부인 저희 집안의 부인이 누구든 상관하지 마세요. 이렇게 만나는 것도 인연이니 그냥 스쳐가는 인연이라고 생각하시고 편히 쉬십시오.”라고 말했다.*명월암에서 원경릉은 잠시 쉬다가 부처님께 인사를 드리고 이름도 남기지 않고 공양만 하고 밖으로 나왔다. 사식이와 원용의는 왕비가 왜 명월암에 온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정말 왕비가 부처님을 섬기러 온 건가?’그 둘이 고개를 갸우뚱하자 원경릉은 그 둘을 보며 웃었다.“목적은 이미 달성했다. 내 목적은 바로 노부인의 목숨을 구하는 것이었어.”“예? 노부인의 목숨을 구하는 것이요? 설마…… 태상황님? 태상황님이 신도 아니고 노부인에게 병이 생길 줄 어떻게 알고요?” 사식이가 놀랐다.원용의는 원경릉의 말을 듣고 노부인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아마 노부인께서는 진북후의 모친일 것이야.” 원경릉이 말했다.“듣자하니 진북후가 소문난 효자라고 하더라고요. 만약 노부인이 이 일의 은혜를 갚겠다고 나선다면 왕비를 도와줄 수 있겠네요!”원용의가 말했다. “태상황님은 정말 잔머리가 좋으시네요!” 사식이가 기뻐했다.“잔머리라니
“왜인지 모르게 요즘 걸핏하면 졸리고 피곤해. 오늘은 마차에서 꾸벅꾸벅 졸았다니까?” 원경릉은 기력이 하나도 없었다.“그럼 이제부터 밖에 나가지 말고 집에서 쉬어.” 우문호가 미간을 찌푸리며 걱정했다.“이제 별일 아니면 밖에 안 나가려고. 만사가 다 귀찮다.”원경릉이 아랫배를 만지며 웃었다.“움직였다! 만져봐!”원경릉이 우문호의 손을 자신의 배 위에 올렸다.“배가 금방 커진 것 같네.” 우문호가 그녀의 배를 보았다.“응. 요즘 잘 먹어서 살이 쪘나 봐. 이제 돼지가 되는 건 시간문제야.” 원경릉이 말했다.“돼지 중에서도 가장 예쁜 꽃돼지가 되겠네.” 우문호가 웃으며 말했다.원경릉이 웃으며 그의 발을 밟자 그는 발등을 움켜쥐고 그녀를 응시했다.“근데 경릉아 어찌 얼굴이 전보다 훨씬 좋아졌구나. 나랑 떨어져 있는데 얼굴이 폈네?” 우문호가 말했다.“치!”원경릉이 그를 노려보았다.우문호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그녀의 옆에 앉았다. “정말 신기해. 전에는 내가 널 밀어내기 바빴는데, 지금은 없으면 허전하고 보고 싶고 너랑 떨어져 있는 시간이 너무 힘들어.” 우문호가 말했다.“전에 알던 원경릉이 아닌가 보지.” 원경릉은 그런 그를 보며 웃으며 눈동자를 반짝였다.우문호는 그녀의 배에 귀를 대고 아이가 움직이는 소리를 들었다.“같은 사람이 아닌 것 같아. 예전의 원경릉은 의술도 몰랐고, 동정심도 없고,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여자였거든.”원경릉은 우문호의 말에 깜짝 놀라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조용히 눈을 감고 그녀의 배에서 나는 소리를 들었다.“경릉아 뱃속에 사람이 하나가 들어있는 게 맞지? 근데 왜 이렇게 소란스럽지?”“설마…… 쌍둥이는 아니겠지?” 원경릉의 얼굴이 창백해졌다.“심장 박동을 들을 수 있는 거 있잖아. 그거로 들었을 때 두 개의 심장 박동이 들렸어?” 우문호가 물었다.“나는 태동 수만 측정했지, 박동 측정은 하지 않았어.”원경릉은 손가락으로 임신 개월 수를 세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쌍둥이라면 지금 청진기로
“왕야께서 헛소리를 하시는 거야. 그걸 믿니?” 원경릉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하나도 키우기 힘든데, 둘이라니…… 원경릉은 쌍둥이 생각만 해도 눈이 질끈 감겼다.엄마가 된다는 것도 적응하는데 한참이 걸렸는데 한 번에 두 아이의 엄마가 된다니 원경릉은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원용의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배를 바라보며 “원누이, 제가 한 번 만져봐도 되겠습니까?”라고 물었다.“저도 만져보고 싶습니다!” 사식이도 벌떡 일어났다.아궁이에서 불을 지피다가 얼굴이 숯검댕이가 된 서일이 들어오며 사식이의 말을 듣고 “무슨 좋은 게 있길래 만져본다고 그럽니까?”라고 말했다.그 말을 들은 우문호는 분노에 가득 찬 눈빛으로 서일을 노려보았다.원경릉은 쓴웃음을 지었다. 임신을 하고 나니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의 배로 향했고, 만져보고 싶다는 둥 마치 자신을 사람이 아니라 전시품처럼 대하는 것 같았다.원경릉은 원용의와 사식이를 보고 “그래, 이리 와서 만져 봐.”라고 말했다.둘은 그녀의 옆으로 다가와 조심스럽게 배에 손을 올렸다. 마치 귀한 보물을 만지듯이 깨질까 두려운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배를 쓰다듬었다. “세자, 이모가 한 번 만져보겠습니다.” 사식이가 경건한 목소리로 큰 숨을 내쉬더니 그녀의 배 위에 손을 얹었다.“언니! 안에 사람이 있어요! 너무 신기합니다! 사람 몸 안에 또 사람이 있다니!”사식이는 원용의를 보며 눈을 크게 떴다.원용의는 사식이의 말을 듣고 웃었다. “너는 임신한 것을 처음 본 것도 아니고 게다가 원누이와 오랫동안 같이 지냈는데 뭘 그렇게 놀라느냐?”“전에는 만져본 적이 없으니까 그렇죠! 아이가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만져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꾸물꾸물 움직이는 것을 느끼니 너무 신기합니다!” 사식이가 감격한 표정으로 말했다.사식이의 모습을 본 우문호도 처음으로 원경릉의 배를 만졌을 때의 감정이 살아나는 것 같았다. “제가 세자의 이모가 될 수 있을까요?” 사식이는 눈물을 글썽였다. “당연하지!” 원경릉이
대오가 경성으로 돌아올 때 홍엽도 원숭이와 같이 돌아왔는데, 그도 풍도성에서 힘을 보탰다. 사실 홍엽이 안 가도 안풍 친왕이 모든 걸 다 준비해 둬서, 안풍 친왕 능력이면 안지여 정도 상대하기는 식은 죽 먹기였다.이리 나리 일행은 경성에 도착해, 우선 집으로 돌아가 공주와 천행이를 보고 가족이 함께 밥을 먹은 뒤 입궁해서 경과를 보고했다.사적인 원한은 한두 마디로, 벌을 받아 마땅한 사람은 지금 받아야 할 벌을 받고 있으며 아직 죽이지 않았다고 했다남은 건 정사를 논하는 것이었다.“어머니와 같이 풍도성에서 보름 정도 지내며 기본적인 민심을 파악했는데, 천문 세가는 백성들 사이에서 아직 명망이 높아 보입니다. 풍도성 백성들은 사실 세금이 너무 많고 경제가 번영한 성과가 전부 안지여 수중에 떨어지는 구조로 되어 있어 안지여의 통치에 불만이 있었다고 합니다. 조정에서 풍도성을 접수한 것에 백성들 대부분은 찬성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천하태평이냐 하면 그럴 순 없는 것이, 일부는 성주가 자기들의 황제라 여기고, 조정이 풍도성을 접수한 것이 풍도성이 침략당했다고 여겨 나중에 약간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부를 임명하실 때 신중하셔야 할 것입니다.”우문호가 말했다. “흠, 큰할아버지께서 천거한 사람이 있는데, 바로 박원이라네. 자네 생각은 어떤가?”그러자 이리 나리의 눈빛이 빛났다. “제 아버지가 추천한 사람이니 전 찬성입니다!”“아버지?” 우문호가 의아해하며 이리 나리를 쳐다봤다. ‘안풍 친왕비가 사부님이면 안풍 친왕은 사부의 남편 아닌가? 어떻게 아버지가 되지? 사부님의 배우자니 사모님이라고 부르는 게 더 맞지 않나?’“흠, 안풍 친왕은 제 아버지십니다!” 이리 나리는 더 설명할 생각이 없는지 어쨌든 그렇다고 주장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한 번도 그를 아버지라 부른 적 없지만, 마음속에서만큼은 진정한 아버지였다.“하하하!” 우문호도 그저 웃으며 더는 묻지 않았다.이리 나리가 퇴청할 때 우문호가 이리 나리를 부르자 고개를 돌렸다. “무
“우선 박원이랑 소홍천 의사부터 물어보자. 억지로 하게 하고 싶지 않아. 그동안 그들이 날 많이 도와줬으니 전부 원하는 대로 하자고.” 우문호가 말했다.“그러자!” 원경릉이 일어서며 말했다. “오늘 저녁 애들 데리고 어머님께 가서 수라를 들려면 빨리움직여야 해. 꾸물대면 늦을거야.”그러자 우문호도 계란이를 안고 일어섰다. “그래, 우리 황조모한테 가서 맘마 먹자.”우문호가 나가서 부르자 아이들이 달려와, 같이 왁자지껄하게 수라를 들러 황태후 전으로 갔다.황태후는 원래 우문호에게 할 말이 있었지만, 식사 자리에 아이들이 있어서 기다렸다가 저녁을 다 먹은 뒤 우문호와 아이들이 나가서 놀고, 원경릉이 황태후와 얘기를 나눌 때 말을 꺼냈다.“천행이가 태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부마를 풍도성으로 보낼 수가 있지.. 공주가 얼마나 괴로웠을까.”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공주는 사정을 훤히 알고 있어서, 이리 나리께서 풍도성에 가는 걸 지지하셨는걸요.”“말은 그렇게 해도, 출산 후에 여자 곁엔 남편이 있어야 하는 법이야. 하지만 이것도 단지 우리 가족끼리 하는 얘기일 뿐이고, 조정 일을 내가 함부로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없는 노릇이지.”황태후는 이리 나리가 풍도성으로 간 진정한 목적을 전혀 몰랐으며, 단순히 어지러운 형국을 정리하러 갔다고만 알았기 때문에 순수하게 공주를 아끼는 마음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어마마마, 걱정하지 마세요. 이리 나리는 이미 돌아오는 중이래요.” 원경릉이 위로하자 황태후가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거 잘됐네!”온 가족이 별빛을 받으며 천천히 소월궁을 거닐었다.계란이는 아빠 품에서 잠이 들었고, 아이들은 놀다 지쳐서 아빠 엄마를 따라 천천히 걷고 있었으며, 목여 태감이 궁인 둘을 데리고 뒤에서 조용히 따라오는 가운데, 궁 안은 인적이 드물어 밤이 되자 상당히 고요했다.“어마마마께서 공주를 아끼셔서, 이리 나리가 하필 이때 풍도성에 보냈냐고 하셨어.” 원경릉이 말했다.“날 원망하셨어?” 우문호는 품에 있는 아이가 깰
늑대파 사람이 안지여와 소여쌍을 질질 끌고 나가는데, 소여쌍은 여전히 미친사람처럼 웃어대기만 했다.이리봉청은 그들이 끌려 나가는 것을 보자, 눈앞에 안지여가 자신을 데리고 소여쌍의 침대 앞으로 가서 소여쌍의 그 악랄한 말을 듣던 순간이 떠올랐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여리여리하고 아름답던 그녀가 이렇게 변해 버린 게 꿈처럼 느껴졌다.풍도성을 접수한 뒤 안풍 친왕은 관리들을 새롭게 임명했고, 더 이상 성주 같은 것을 두지 않고 조정과 이부에 적합한 인사를 선발해 풍도성 지부로 앉힐 것을 요청했다. 풍도성은 더 이상 이전의 독립 자치 지역이 아닌, 다른 주나 현과 마찬가지로 조정에 귀속되어 통일서 있게 다스리게 되었다.더불어 안풍 친왕은 별도로 서신을 써서 황제인 우문호에게 보냈는데, 풍도성을 추천하지만, 이건어디까지나 건의와 추천이니 황제가 생각하는 마땅한 사람이 있으면 안풍 친왕의 추천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동시에 안지여의 잔당들이 계속 나타났다.안풍 친왕이 이번에 이렇게 많은 사람을 데려오고, 호랑이와 눈 늑대, 회색 늑대까지 출동시킨 건 바로 모든 세력을 강화하고, 신속하게 진압해 풍도성을 조정에 복귀시키고 보름 만에 비적을 토벌하며 기본적인 숙청을 마무리하기 위해서였다.박원은 잔당의 남은 불씨가 다시 타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서 안풍 친왕의 영패를 가지고 부근에 5천 명의 군사를 파견시켜 풍도성을 지켰다. 이리 나리는 자금을 지원해 천문 세가의 묘를 이장하였는데, 이전 무덤은 안지여가 고른 곳으로 폐허에 가까워, 그는 천문 세가 사람들이 그런 곳에서 안식을 취하기를 원하지 않았다.풍도성에 온지 거의 한 달가량 될 때쯤, 대군은 경성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돌아가기 전에 미색이 안지여와 소여쌍을 보러 갔다가, 돼지우리에서 죽느니만 못한 삶을 사는 것을 보고 그제야 비로소 맺혀 있던 한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미색은 이리 나리와 어머님에게 알리지 않은 것이, 두 사람은 이미 안지여가 누군지 잊은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리봉청에게 있어 모든 건 지나가지 않았고, 36년 전 일은 여전히 어제 일 같이 느껴졌다.“어머니, 그를 어떻게 처분하시겠어요?” 이리 나리는 이리봉청의 마음을 넘겨짚을 수 없어 함께 걷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생각은 어떠니?” 이리봉청이 다시 되묻자 이리 나리가 원한에 사무친 눈빛으로 말했다. “제게 처분하라고 하면 전 그를 죽여 버릴 겁니다.”이리봉청은 알았다며 대답만 했다가, 다시 30분쯤 걷다가 정자에 앉아 을 때 말을 덧붙였다. “난 안 죽일 거야.”이리 나리가 약간 놀라서 물었다. “어머니, 또 마음이 약해지신 겁니까?”이리봉청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 반대야. 그 인간을 죽이는 게 마음이 약해진 거지. 사실 며칠 동안 이전의 원한을 내려놓을 수 있을지 생각해 봤는데,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 인간을 백번이라도 죽이겠지만, 난 그럴 수 없더구나. 아들아, 게다가 오늘 천문 세가 대문을 들어서는 그 순간, 더욱 마음을 굳혔단다.”이리봉청이 일어나 집안을 둘러봤다. 이곳은 그녀의 가족들이 살아 원래 온통 사람 소리로 가득한 곳이였다. 그들의 웃던 광경이 눈앞에 비치는가 하더니, 눈 깜박할 사이에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그들은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천문 세가는 큰 잘못을 저지른 것도 없는데 멸문지화를 당했고, 가엾게도 그 중엔 아이들이 많아서 제일 어린아이는 이제 태어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었다.이리봉청의 얼굴에 눈물이 타고 흐르며 가슴이 미어졌다. “그자와 소여쌍을 밖에 내버리고 사람을 시켜 지켜보도록 해. 죽게 두지 말고 계속 살려둬. 36년은 더 살면서 이 세상의 고생을 모두 겪어야, 내 마음에 맺힌 한이 풀리고 억울한 망자들도 안식에 들지!”이리 나리는 온몸으로 그 마음이 느껴져, 어머니가 눈물 흘리는 것을 더는 볼 수 없었다. “네, 전부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대로 할게요.”안지여와 소여쌍은 버려졌다. 짧은 며칠 사이에 안지여는 의기양양하던 성주에서 시궁창 쥐로 변해, 사람들이
안지여는 풍도성 지하감옥에 갇혔다. 빛 한 줄기 없는 지하감옥에서 사방에 끝없는 어둠과 절망만이 안지여를 삼키고 있었다.훼천의 형벌은 12 시진 후면 사라져서, 앞으로 안지여는 그저 한 명의 폐인일 뿐이었다.안지여의 결사대가 성으로 공격해 들어오기 전에, 이리봉청은 오 선생을 찾아내 안지여가 저지른 모든 죄를 고백하게 하고 안풍 친왕이 친필로 받아 적었다. 안지여가 당시 천문 세가를 해친 경위를 소상히 써 내려간 뒤, 오 선생과 안풍 친왕의 직인을 찍고 인쇄해서 대중에게 공개했다.안지여의 죄악은 하늘을 찔러 백성들 모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안지여의 결사대의 옛 부하들이 본래 성을 공격해 들어가 안지여를 구출할 계획을 세워놓았으나, 안지여의 죄상이 공포된 뒤로 많은 사람들이 해산하였다. 유일하게 무대장군만이 수천 명을 데리고 성으로 쳐들어왔지만, 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가 이미 대비해둔 덕분에, 경성에서 굴러온 돌이 무대장군의 박힌 돌을 빼내는 전투를 벌였다.풍도성에 온 지 7일째, 안풍 친왕은 풍도성을 접수하고 성에 살던 사람을 쫓아내며 서민으로 강등시켰다.안지여와 소여쌍에 대한 처분은 이리봉청에게 넘겼다.안지여는 캄캄한 지하감옥에서 6일을 지내는 동안, 처음엔 침착한 척 가장했으나 사흘째가 되자 울부짖으며 악독한 저주의 말을 내뱉더니, 나흘째가 되자 용서해달라고 애원하며 참회했다.손발의 힘줄이 끊어진 안지여는 일어나 걸을 수도 없고 심지어 스스로 몫숨을 끊을 힘도 없었다.그 와중에 매일 누군가가 먹고 마시도록 해주고, 상처도 치료해 주어 살 수 있다는 부질없는 희망을 품게 했다.훼천의 말에 따르면, 진정한 절망은 살아도 죽느니만 못하고,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것으로, 온 마음으로 죽기를 바라지만 살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가, 안간힘을 쓴 뒤 다시 절망에 빠지는 것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으로, 사람을 한없이 죽였다 살렸다 괴롭힌다고 했다.결국 안지여를 죽일지 말지 여부는 이리봉청에게 달렸는데, 그녀는 안지여를 단번에 죽여 천문 세가
안지여의 이마에 파란 힘줄이 불끈불끈했으나 냉정을 가장했다. “내가 두려워할 줄 알았나 보지? 죽음도 두렵지 않은데 뭘 더 두려워하겠어?”“넌 두려울 것이야!” 이리봉청이 고개를 돌려 이리 나리를 보고 살짝 그의 팔을 잡았다. “내가 오는 길에 늑대파 사람이 그러던데, 천하에서 제일 잔혹한 형벌을 아는 사람이 늑대파에 있다고. 그게 사실인 것이냐?”이리 나리가 가볍게 답했다. “물론 사실이죠. 훼천이라고 합니다. 늑대골 출신이에요.”“안지여가 버틸 수 있는지 어디 한 번 보고 싶구나.” 이리봉청이 말했다.이리 나리가 엄숙한 태도로 명을 내렸다. “훼천!”그러자 훼천이 급히 나왔다. “이리 나리, 분부하시지요!”이리 나리는 그가 짐짓 냉정한 척하고 있으나 눈빛이 조금씩 허물어져 가고, 몸까지 부들부들 떠는 것이 아주 만족스러워 훼천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시작해!”안지여가 갑자기 큰 소리로 욕했다. “난 네 아버지거늘, 감히 나에게 손을 대다니, 천벌을 받아 마땅한 놈 같으니라고!”이리봉청이 이 말을 듣고 잠시 주저하는 눈빛으로 이리 나리를 바라봤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제 아버지는 오직 저를 키워주신 안풍 친왕뿐이십니다.”이리봉청이 살짝 안도했다. “저 인간이 단지 나만 해쳤으면 네 체면을 봐서 놔줬겠지만 천문 세가의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갔으니 난 용서할 수 없구나.”“이리봉청, 너 언제 이렇게 악랄하게 변했어? 죽이려거든 그냥 죽여. 난 천문 세가 사람을 죽이긴 했어도 그들을 괴롭히진 않았어. 네가 날 죽이려거든 깨끗하게 단번에 죽여!”안지여가 크게 노해 몇 번 몸부림을 치다가 상처가 벌어지는 바람에 배에서 선혈이 흘러나오고, 훼천이 가까이 다가가자, 눈에 두려움이 깊어졌는데, 늑대골 출신 훼천은 온몸에서 피비린내가 뿜어져 나와 안지여를 덜덜 떨게 했다.“이리율!” 안풍 친왕비는 시ㅈ가하기 전에 이리 나리를 불렀다. “내가 여기서 네 엄마와 같이 있을 테니 넌 먼저 나가 있거라!”이리 나리가 안풍 친왕비에게
안지여에게 구원 병력이 없는 상황에서, 이리 나리 일행이 성을 제압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대오가 경성에서 출발하기 전에, 안풍 친왕비가 미리 사람을 풍도성으로 보내 각처, 특히 성 수비군과 군대에 잠입시켜, 음식에 효과가 천천히 나타나는 독을 풀어, 오늘 중독 증상이 나타나도록 독의 분량을 조절했다.적어도 내일까지는 안지여를 도우러 올 사람은 없었다. 독성은 적어도 이틀이 지나야 깨끗해지기 때문에 이틀 동안 그들은 설사와 전신 무기력으로 성에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알아도 와서 도울 수 없었다.그리고 그들이 기력을 회복할 때쯤이면, 안지여는 벌써 죽었을 것이다.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는 성을 통제하고, 안지여 부부를 제압해 두 사람을 줄로 묶고 지혈시켜 주었다.안지여는 요 몇 년 동안 자신이 상당히 대단하다고 여겼다. 이는 풍도성이 부유하기 때문으로, 돈으로 많은 사람을 살 수 있었으며, 여러 곳에서 추켜세워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처절하게 패배한 적이 없었던 이유는 진정한 적이 없기 때문으로, 주변의 떠돌이 비적은 작은 마을 규모로 너무 작아서 소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코 그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적이 너무 약해서였다.조정 사람과 비교했을 때, 그는 제대로 훈련받은 적 없는 비적었기에 일격도 감당할 깜냥이 못됐다.이리 나리는 둘을 중정에 묶어 두었다. 온 바닥에 남은 음식과 깨진 기와가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본 안지여는 마음속 깊이 분노가 일었다. 자신의 생일날, 그를 다치게 한 것이 바로 그의 친자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더욱이 오늘 이렇게 많은 고수가 현장에 있었는데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이런 결말을 맞다니 너무 불쾌했다. 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을 부축하고 안지여 부부 앞으로 가서, 그녀가 안지여 부부를 내려다보자, 그들은 낭패에 달가워하지 않는 기색으로, 이리봉청은 분노하는 마음과 함께 서글픈 마음도 들었다. 그들을 죽이면 커다란 복수는 이뤄 천문 세가 망자의 원혼은 달랠 수 있었다.하지만 저들을 이렇게 쉽게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이리 나리가 검을 휘두르며 안지여를 겨누자, 안지여가 공중으로 뛰어올라 후퇴했다.공자들은 돕고 싶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에게 바로 제압당했다. 안지여는 이리율 것으로 그들은 주변 사람을 제압하기만 할 뿐 옆에 서서 전투를 관전하고 있었다.이리율의 무공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를 가르친 안풍 친왕 부부를 제외하고, 사실 많은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이리율의 검법은 신속하고 맹렬해서 안지여는 상대하느라 쩔쩔매고 구석으로 몰리고 있었다. 성안의 호위들은 늑대 무리와 늑대파, 홍매문 사람들에게 막히는 바람에 안지여는 홀로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그래도 아직은 버틸 수 있었다.하지만 30분을 못 가서 안지여는 질게 틀림없었다.놀란 나머지 계속 실성해 있던 소여쌍이 갑자기 이리봉청을 향해 바싹 마른 손을 뻗어, 그녀의 목을 조르며 광적인 집착과 분노에 사로잡혀 성질을 부렸다. “멈춰, 다들 멈추라고. 안 그러면 내가 이년을 죽여버릴 것이니까!”소여쌍은 무공을 할 줄 알았지만 잘하지 못한 것이 어릴 때부터 계속 중병을 앓아 무공 연습에 소홀했고 성주 부인이 된 뒤로는 더욱 병기에 가까이할 일이 없었지만, 공력만큼은 아직 약간 있었다.소여쌍은 증오의 힘으로 이리봉청의 목을 졸랐는데, 소여쌍이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이리봉청의 목을 부러뜨릴 것만 같았다.안풍 친왕이 차가운 눈빛으로 나서려 하자, 안풍 친왕비가 말리며 고개를 살짝 흔들었는데, 그럴 필요 없다는 뜻으로 뒤에 있던 사람들에게도 참으라는 눈짓을 하자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모두가 이리봉청이 제압당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손가락으로 뭔가를 쥐고 있어 소여쌍의 어깨 위를 휘감고 팔을 눌러 소여쌍이 머리를 돌리게 했다. 이리봉청 손에 쥔 것은 바늘로, 그대로 소여쌍의 오른쪽 눈을 찌르고 들어갔다.소여쌍이 절규하며 이리봉청을 놔주고 선혈이 흐르는 눈을 움켜쥔 채 비틀거리다 바닥에 쓰러져 데굴데굴 구르며 새된 소리를 지르는데, 원망과 저주의 말을 끊임없이 쏟아
풍도성 중정에는 안지여의 아들들과 사위가 그의 곁에 남았는데,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 점점 공포에 질려가고 있었다.‘이 사람들, 아주 대단하구나!’안지여는 이리봉청을 보고 비록 조금 냉정해 보였지만, 여전히 놀라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갑자기 소여쌍이 큰 소리로 웃으며, 몸을 앞뒤로 흔들며 눈물을 찔끔거리더니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이리봉청을 가리키며 원망했다. “뜻밖에 네가 안 죽었단 말이지? 게다가 아들까지 있고. 참으로 황당하구나. 정말 너무 황당해. 원래 죽어야 했을 인간은 죽지 않고, 잘 살아야 할 사람은 36년간 괴로움을 당했어. 이리봉청 네가 날 비참하게 만들었으니 넌 이제 지옥에 떨어져야 해.”이리봉청은 소여쌍의 말을 들은 체 만 체했는데, 그녀 눈에는 지금 안지여만 들어왔다.안지여는 36년을 살아왔지만, 이리봉청에게 있어 36년은 마치 사라진 시간처럼 멸문지화의 원한이 어제 일 같았다.안지여도 이리봉청의 눈에서 분노와 악랄함을 보고, 처음으로 마음속에 두려움을 느꼈다.안지여는 억지로 감정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네 사람을 데리고 가. 지난 일을 묻지 않을 테니. 그렇지 않으면 풍도성에서 곧바로 10만 대군이 올 것으로, 살아서 도망갈 생각은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아.”이리봉청의 목소리가 낮게 잠겼다. “우리는 이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바로 네 성으로 쳐들어갈 수 있어. 넌 이미 졌어.”안지여가 웃었다. “졌다고? 그래?”안지여는 수하의 대장군이 믿음직해서, 그들을 당하게 놔줄 수도 있다고 여겼다. 대장군의 부대는 분명 치밀하게 준비되어 있을 것으로, 아마 지금쯤이면 궁수들이 이미 배치를 마치고 그들을 전부 쏴 죽이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고 말했다. “어머니, 저자와 말 섞으실 필요 없어요. 앉아서 지켜보시기만 하면 됩니다!”말을 마치고 의자를 올리더니 이리봉청을 부축해서 앉혔다.안지여가 이리 나리를 보는데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