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야 제가 검사해 드리겠습니다.” 원경릉은 급히 회왕에게 다가갔다.회왕은 손을 뻗어 그녀를 막았다.“아니, 아니! 다섯째 형수님께서 임신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본왕에게 다가오지 마세요!”“괜찮아요. 왕야의 병은 이미 전염성이 사라졌습니다.”원경릉의 완강한 태도에 회왕도 어쩔 방법이 없었다.“좋아요. 그럼 병풍 뒤로 오세요.”회왕이 말했다.회왕부 정실에는 병풍이 있어 공간 분리가 가능했다. 원경릉이 들어가 검사를 해보니 폐부의 잡음이 전보다 뚜렷하게 들렸다. 그의 병이 이전보다 심각해졌다. 원경릉은 회왕과 함께 병풍 뒤에서 걸어 나오며 “왕야께서는 매일 규칙적인 시간에 정해진 양의 약을 드시지 않습니까?” 라고 물었다.“먹는 약이 있습니다. 매일 먹고 있고요.”“하루 세 번이요? 한 번에 8알씩?”그러자 노비가 빠르게 말을 가로채며 “하루에 한 번씩 먹습니다. 약을 많이 먹는 것은 몸에 좋지 않아요. 지금 회왕은 전보다 많이 좋아졌습니다.”라고 말했다.이 말을 듣고 원경릉은 화가 났으나 노비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어른이기에 한숨을 내쉬었다. “약을 줄인지 얼마나 됐습니까? 그리고 줄인 약은 무엇입니까?”이 상황을 보고 있던 대장공주가 입을 열었다.“기왕비한테 팔았고만”이 말을 들은 회왕이 경악하며 노비를 바라보았다.“모비 어떻게 다섯째 형수님이 준 약을 팔 수가 있습니까? 그리고 저에게는 다섯째 형수님이 약을 줄여도 된다고 해서 줄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노비는 웃으며 “지금 회왕이 얼마나 좋아졌는지 보세요! 전에 어의가 와서 말하길 지금 상태가 많이 호전됐다고 했잖아요! 전보다 훨씬 좋아졌으니 약을 좀 줄여도 문제없습니다. 그리고 그 약을 기왕비한테 팔면 그녀의 병세가 좋아질 수 있잖아요.”라고 말했다.원경릉은 기뻐하는 노비를 보며 웃을 수도 없었다. “노모비 제가 개인적으로 몇 마디 해도 되겠습니까?” 원경릉의 말에 노비가 대장공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대장공주는 손을 저으며 “두 사람 들어가서 얘기 나눠요.”라고 말
노비가 언짢은 표정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이게 이렇게 화를 낼 일입니까? 초왕비는 예전에 기왕비가 사람을 시켜 당신을 암살하려고 했던 거 잊었나요? 기왕비가 불쌍합니까? 기왕비는 초왕비를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나있어요! 초왕비는 보살입니까?”노비의 말에 원경릉은 화가 났다.“누가 기왕비가 불쌍하다고 합니까? 저는 회왕을 걱정해서 그런 거예요. 제가 약을 끊으면 안 된다고 누누이 말했잖습니까? 지금처럼 들쭉날쭉 약을 먹으면 안 됩니다. 노비께서 회왕을 죽이는 겁니다!”죽음이라는 원경릉의 말에 노비가 멍해졌다.“전보다 훨씬 좋아졌다면서요? 이제는 유지만 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회왕은 전염성만 사라졌을 뿐 완벽히 낫지 않았습니다! 회왕은 약을 끊으면 안 됩니다! 솔직히 말해주세요. 약을 며칠 줄였습니까?”“며칠 안됐습니다. 사오일 정도 된 것 같습니다. 아예 안 먹은 것은 아니고 양만 줄였습니다. 그 정도는 괜찮지 않습니까?”“노비께서는 회왕이 지금 기침하는 거 안 보이십니까? 열도 나는데요?”“추워서 그런 거 아닙니까?” 노비가 담담하게 말했다.원경릉은 노비의 무지함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노모비 당신께서 계속 약을 줄이면 그의 병은 절대 낫지 않을 겁니다. 기억하세요. 기왕비의 죽음은 그녀의 업보고 하늘의 뜻입니다. 노비께서는 이를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우선 지금은 회왕의 목숨을 지키는 게 중요합니다. 회왕부터 살리고 그 후에 기왕비를 처리해도 늦지 않습니다.”노비는 그녀의 진지한 표정에 한순간 두려움이 몰려왔다.“그럼…… 내 아들이 죽을 수 있다는 겁니까?”“제가 앞으로 열흘 동안은 매일 와서 약을 드시는 걸 지켜보겠습니다. 그리고 필요하면 주사도 놓겠습니다. 회왕의 상태가 너무 나빠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본궁이 이번에 큰 실책을 했습니다. 어의가 많이 좋아졌다고 하기에 기왕비에게 약을 팔았습니다.”노비는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 원경릉은 그녀에게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일이 이렇게 된 거 지금부터라도 회
우문호는 더는 반박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시종일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그녀가 매일 갑옷을 입고 회왕부에 간다고 하더라도 그의 마음은 놓이지 않을 것 같았다.그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원경릉을 보았다.“아니면 내가 궁으로 들어가 태상황님께 귀영위(鬼影卫)를 빌려달라고 할까?”“그렇게까지 할 일이야?”“당연하지!”우문호가 진실의 미간을 보여줬다.“마음대로 해라” 원경릉이 어깨를 으쓱였다.우문호는 문득 원경릉이 사식이를 신뢰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서일도 있는데 사식이를 언급하다니?’우문호는 사식이와 서일 둘 다 신임할 수 없었다. 사식이와 서일은 성격이 서글서글해서 좋지만 단점은 부주의하고 경계심이 낮아 사람을 쉽게 믿는 것이다. 그러나 태상황의 귀영위는 다르다.우문호가 큰 손바닥으로 그녀의 아랫배를 쓰다듬으면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아기는 안에서 뭘 하고 있대?”“잠이나 자!” 원경릉이 그의 의도를 파악했다.“얘기 좀 더 하다가 자자. 졸려?” 우문호가 퉁명스럽게 말했다.원경릉은 몸을 기울여 그의 얼굴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글쎄, 아기는 안에서 자고 있겠지.”우문호는 오! 하고 소리를 내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그럼 아기는 너무 심심하겠다! 안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아니야.”“아기는 심심하지 않을 거야.” 원경릉은 경고하는 듯한 눈빛으로 그를 보았다. 원경릉은 그의 눈빛에서 그의 생각이 읽혔다.“그럼 언제쯤 들어가서 아기가 뭐하나 볼 수 있을까?”우문호가 중얼거렸다.원경릉은 가슴에 올라온 그의 손을 떼어냈다.“아기가 태어난 이후에 볼 수 있지! 그리고 너의 그곳에…… 눈도 없잖아 들어와도 아기를 볼 수 없어!”그는 옥처럼 부드러운 그녀의 몸을 끌어안았다.“참기 너무 힘들다.”“죽는소리 하기는 일러!”우문호의 입술이 그녀의 하얀 뺨을 스치더니 귓가에 닿았다.“너 대신에 아기를 품을 수 있다면 내가 품어서 너의 고생을 덜어주고 싶다. 하…… 아직도 몇 달이나 남았다니.”“그래도 넌 내가 임
“너는? 아들이었으면 싶으냐 딸이었으면 싶으냐?”우문호가 물었다.원경릉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질문에 당황했다.“음…… 아들이길 바라지.”“어? 넌 딸을 더 좋아했잖아?”“아들이고 딸이고 다 좋지. 부모로서 성별로 차별한다는 것은 말이 안 돼.”“그런데 왜 아들이길 바라?” 우문호는 원경릉이 자신과 같은 이유로 아들을 원하는 게 아닐까 추측하며 한숨을 내쉬었다.“왜냐면 이 시대는 여성에게 우호적이지 않아. 여성의 삶이 남자에 의해 쥐락펴락 되는 이 세상에 내 딸이 그런 고통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어.”우문호는 순간 그녀의 얼굴에서 슬픔을 보았다.“여자의 행복이 혼인에 의해 결정되고 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시댁의 권세를 보고 혼인을 해야 하며, 혼인 후에도 시어머니 눈치를 봐야 하고 또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첩도 들여야 하고 아이를 낳아도 여자아이를 낳으면 안 되고…… 첩의 아이까지 내가 보듬어 키워야 하며 어휴…… 내가 비록 여자아이를 좋아하지만, 여자아이를 낳으면 복잡한 일이 너무 많아.”마지막 말을 하기 전에 그녀가 부드럽게 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그리고 나처럼 운이 좋아서 너처럼 좋은 남자를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잖아.”현실적인 그녀의 말에 우문호가 깜짝 놀랐다. 그는 남자로 태어나 한 번도 여자들의 고충을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그녀가 말한 모든 것들은 여성의 미덕이라고 치부하며 여자가 이를 해내지 못한다면 자격이 없는 여자라는 둥 좋은 며느리가 아니라는 둥 험담을 했다.“만약에 내가 너를 만나지 않았다면, 내가 받은 교육, 내 생각, 그리고 내 성격상 이곳에서 지내는 매일이 비참했을 거야.”“너는 무슨 교육을 받았는데?” 우문호가 어리둥절해서 물었다.원경릉은 미소를 지으며 “나는 천문학도 알고 지리도 네 생각보다 많이 알고 있어.”라고 말했다.우문호는 실소를 지으며 “네가 천문과 지리를 안다고? 그럼 그날 가장 빛났던 별을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라고 물었다.“금성이지.
이튿날 우문호는 태상황에게 문안을 드릴 준비를 했다.남에게 무언가를 부탁할 때는 빈손으로 갈 수 없는 법. 그는 거리를 돌다가 좋은 담뱃잎 몇 개를 사서 궁으로 들어갔다. 우문호가 입궁하자 태상황은 그가 들고 온 담뱃잎을 곁눈질했다. 태상황은 상선에게 소요공이 보내온 담배를 꺼내더니 비교했다. 우문호는 태상황의 모습을 보며 뻔뻔한 표정으로 “잎담배는 색깔과 냄새만으로 비교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럼 어떻게 비교해야 하느냐?”태상황이 물었다.“비교라니요. 제 마음이라고 생각하고 받아주십시오. 그렇다고 너무 많이 피시지는 마시고요. 그래야 건강하게 오래 사시지요.” 우문호가 허리를 굽히고 태상황의 어깨를 주물렀다.“왜 이렇게 아첨하는 거냐? 무슨 일이야 말해봐.”우문호는 히죽히죽 웃으며 “혹시…… 한두 명만 빌려주시겠습니까?”라고 말했다.“누구를?”“귀영위 말입니다. 초왕비가 매일 회왕부에 가는데 태상황님의 귀영위가 보호해 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왜?”태상황이 놀랐다.우문호는 노비가 기왕비에게 약을 팔았다고 태상황에게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눈치가 빠른 태상황은 노비의 잘못으로 여섯째의 상태가 나빠졌다고 짐작했다.“날씨가 추워지면서 병이 더 나빠질까 봐 가는 겁니다.”낌새를 챈 우문호가 변명했다.태상황 손을 들어 상선을 불러 담배에 불을 붙였다. 노인은 살짝 눈을 감고 담배를 깊게 빨아들였다. 내뱉는 담배 연기에 우문호는 기침이 뿜어져 나왔다. 자욱한 연기 속에서 늙은이가 담담하게 말했다.“부탁할 필요 없다. 저번에 사고 났을 때, 과인이 이미 초왕비를 보호하도록 귀영위를 보냈다.”태상황의 말을 듣고 우문호가 깜짝 놀랐다.“그걸 손자는 왜 몰랐죠……?”늙은이는 콧방귀를 뀌었다.“네가 그걸 알았다면 귀영위를 보내달라고 부탁하러 왔겠느냐?”우문호는 멋쩍은 표정으로 “아…… 예.”라고 말했다. “됐다! 이제 그만 가보거라!” 태상황이 귀찮다는 듯 손을 저었다.우문호는 공손하게 절을 하고는 “손자가 황조부께 감사의 말씀
기왕비의 제안원경릉은 이렇게 질질 끄는 것도 답이 아니란 생각에: “들어오세요, 할 말이 있으면 분명히 하죠.”원경릉은 방으로 돌아온 뒤 엽산제를 먹고 마스크를 쓰고 나서야 밖으로 나가 기왕비를 만났다.“사람들은 나가 있으라고 하세요, 단 둘이 얘기하고 싶으니까요.” 기왕비가 안에 있던 사식이와 희상궁을 보고 조용히 말했다.“안됩니다. 저흰 안 나갑니다.” 사식이가 말했다.기왕비가 원경릉을 보고 담담하게 웃으며, “설마 내가 지금 당신을 해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난 걸음도 몇 걸음 못 걷는 상태예요.”“희상궁, 사식아 문밖에서 기다려줘.” 원경릉이 말했다.“왕비마마!” 희상궁은 조심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괜찮아, 가줘요.” 원경릉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다바오를 들여보내 주세요.”다바오를 들이란 말에 희상궁은 비로소 안심했다.신성한 개 다바오가 안으로 들어오고 원경릉 발치에 엎드려서 기왕비를 호시탐탐 쳐다본다.기왕비가 웃으며: “이렇게 삼엄하게 경계하다니 이거 인정받는 기분인데요.”“반드시 인정해 드려야 지요. 기왕비의 수완은 제가 겪었거든요. 우리 오늘은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하죠.” 외부인이 없으니 원경릉도 인사치레 하기 귀찮다.기왕비는 등을 곧추세우고 원경릉에게, “오늘 온 건 당신과 조건을 상의하기 위해서예요. 나한테 약을 주면 우문호가 태자의 지위에 오르도록 돕도록 하죠.”원경릉은 상당히 의외였다. 기왕비 입장에서 태자의 지위는 기왕이 반드시 획득해야만 하는 게 아닌가?“못 믿겠어요?” 기왕비가 담담하게 웃더니 표정이 점점 고통스러워지며, “목숨도 지킬 수 없는 영광이 무슨 소용인가요?”“이 조건은 동의할 수 없어요.” 원경릉이 말했다.기왕비는 원경릉을 보고 확고한 표정으로, “동의할 거예요. 태자비가 되지 싶지 않을 리 없잖아요? 태자비 다음은 황후로, 천하에서 가장 존귀한 여인이 되는 거예요, 되고 싶지 않다고 감히 말할 수 있나요? 허세 부리지 말자고 했으니 우리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죠.
기왕비의 제안에 대한 우문호의 생각우문호는 원경릉이 계속 기왕비를 상대할까 걱정이 돼서 잔소리하며: “기왕비가 다시 오면, 네가 직접 만나지 마. 어쨌든 기왕부 사람을 우린 상대도 안할거고 만나지도 않을 테니까.”우문호의 생각은 분명했다. 아바마마께서 지금 어떤 태도를 취하든, 큰형에게 어떤 희망을 품고 계시든 우문호는 상관하지 않는다.지금 중요한 일은 원경릉과 아이뿐이다, 모든 건 아이가 태어나고 다시 얘기하자.“알았어, 맞아, 사건은 어떻게 처리 했어?” 원경릉이 물었다.우문호는 요즘 일찍 나가서 늦게 들어온다. 장강부 사건의 실마리를 잡았는데 이 사건은 우문호가 궁에서 상처를 치료하는 동안 경조부 관아 사람들이 전부 실수없이 처리했다. 특히 탕양은 최근 거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것이 분명 이 일때문에 바쁘기 때문일 것이다.우문호가: “막문의 죄목은 확고부동하지만 목숨을 보존하느냐 마느냐는 막문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 대해 부는지 두고 봐야지.”“그 막문이란 사람, 기왕비의 사촌동생이지?” 원경릉이 물었다.“그래, 이미 조사했어, 막문은 적지 않은 뇌물을 기왕부로 보냈더군.”원경릉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좀 생각해 보더니: “기왕부로 보냈다고? 기왕의 수중에 보낸 게 아니라? 그럼 기왕은 피해갈 수 있잖아.”우문호가: “맞아, 큰형 방식대로 라면 분명히 기왕비를 밀어 넣겠지.”원경릉이 이해하고: “어쩐지 기왕비가 나한테 와서 왕야를 태자의 보위에 오르게 돕겠다고 하더라. 모르긴 몰라도 기왕과 기왕비가 이미 패를 주고 받은 게 분명해.”“기왕비가 온 게, 단지 그녀 자신의 뜻이었다고 만은 할 수 없어, 분명 동안(佟安)의 뜻이었겠지.”“동안?”우문호가: “동안은 기왕비의 큰오빠로 전에 호부상서(戶部尚書)였으나 지금은 내각으로 자리를 옮겼어. 이 사람은 사교 폭은 넓은데 나이가 많지 않아 세력이 강력해.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큰형을 위해 분주히 움직여서, 큰형을 위해 수많은 사람과 연을 맺었지. 만약 그가 큰형을 배신하면 큰형의 태자
원경릉을 다시 찾아온 기왕비원경릉은 피하며 만나지 않고 희상궁에게 말을 전하게 했다.희상궁이 나가서 기왕비에게: “기왕비 마마, 초왕비 마마께서 오늘 좀 피곤하셔서 나와서 뵙지 못해 쇤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 전해드리라고 하셨습니다. 마음은 굴뚝같으나 도울 힘이 없으니 잘 쉬시고 다시 오지 마십시요.”기왕비는 눈빛이 점점 스러지며 처량하게 웃고는, “불 난 집에 부채질 한다더니 이럴 줄 몰랐군. 초왕비도 예외가 아니네. 초왕비에게 전하게, 친구 아니면 적이라고. 곧 죽을 사람이 두려울 게 뭐가 있겠어, 앞으로 조심하라고 말이야.”말을 마치고 기왕비는 병색이 짙은 몸을 끌고 사라졌다.희상궁은 이 말을 원경릉에게 전하며 걱정돼서: “왕비마마, 기왕비는 마음이 독하고 수법이 악랄합니다. 만약 자기가 궁지에 몰려 끝이라고 생각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마마께 맞설 것이 틀림없습니다.”원경릉이 화가 나서: “기왕비는 미친개야!”다바오가 불만이라는 듯 짖었다.원경릉이 얼른 달래며, “네 얘기 아냐, 시끄러워.”다바오는 그제서야 ‘컹’하더니 엎드렸다.원경릉이 씩씩거리며 약 상자를 꺼내 탁자 위에 놓고, “내가 그녀를 구하기 싫어서 그런 줄 알아? 정말 약이 없다고, 난 의사인데 약만 있으면 기왕비가 대역죄인이라도 내가……”원경릉이 깜짝 놀라 약 상자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오늘 아침에 원경릉이 엽산을 꺼낼 때 이런 약은 없었다.원경릉은 완전 뚜껑이 열렸다. 기왕비가 그저께 왔을 때는 약 상자에 아무 반응이 없다가, 오늘 와서 위협을 하니 바로 약이 한 뭉치 준비되다니 강자한테 약하고 약자한테 강한 약 상자다.“왜 그러세요?” 원경릉이 갑자기 멍하니 서있는 것을 보고 희상궁이 다가와 물었다.원경릉이 천천히 앉아 호흡이 약간 곤란하다고 느껴 희상궁에게 손짓했다. 원경릉이 첫째공주에게 얘기한 것처럼 약이 없어 기왕비를 치료할 수 없었던 것이다.그런데 지금 갑자기 약이 생겼다. 전에는 고의로 못살게 군 게 분명하다.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