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 우문호는 태상황에게 문안을 드릴 준비를 했다.남에게 무언가를 부탁할 때는 빈손으로 갈 수 없는 법. 그는 거리를 돌다가 좋은 담뱃잎 몇 개를 사서 궁으로 들어갔다. 우문호가 입궁하자 태상황은 그가 들고 온 담뱃잎을 곁눈질했다. 태상황은 상선에게 소요공이 보내온 담배를 꺼내더니 비교했다. 우문호는 태상황의 모습을 보며 뻔뻔한 표정으로 “잎담배는 색깔과 냄새만으로 비교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럼 어떻게 비교해야 하느냐?”태상황이 물었다.“비교라니요. 제 마음이라고 생각하고 받아주십시오. 그렇다고 너무 많이 피시지는 마시고요. 그래야 건강하게 오래 사시지요.” 우문호가 허리를 굽히고 태상황의 어깨를 주물렀다.“왜 이렇게 아첨하는 거냐? 무슨 일이야 말해봐.”우문호는 히죽히죽 웃으며 “혹시…… 한두 명만 빌려주시겠습니까?”라고 말했다.“누구를?”“귀영위 말입니다. 초왕비가 매일 회왕부에 가는데 태상황님의 귀영위가 보호해 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왜?”태상황이 놀랐다.우문호는 노비가 기왕비에게 약을 팔았다고 태상황에게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눈치가 빠른 태상황은 노비의 잘못으로 여섯째의 상태가 나빠졌다고 짐작했다.“날씨가 추워지면서 병이 더 나빠질까 봐 가는 겁니다.”낌새를 챈 우문호가 변명했다.태상황 손을 들어 상선을 불러 담배에 불을 붙였다. 노인은 살짝 눈을 감고 담배를 깊게 빨아들였다. 내뱉는 담배 연기에 우문호는 기침이 뿜어져 나왔다. 자욱한 연기 속에서 늙은이가 담담하게 말했다.“부탁할 필요 없다. 저번에 사고 났을 때, 과인이 이미 초왕비를 보호하도록 귀영위를 보냈다.”태상황의 말을 듣고 우문호가 깜짝 놀랐다.“그걸 손자는 왜 몰랐죠……?”늙은이는 콧방귀를 뀌었다.“네가 그걸 알았다면 귀영위를 보내달라고 부탁하러 왔겠느냐?”우문호는 멋쩍은 표정으로 “아…… 예.”라고 말했다. “됐다! 이제 그만 가보거라!” 태상황이 귀찮다는 듯 손을 저었다.우문호는 공손하게 절을 하고는 “손자가 황조부께 감사의 말씀
기왕비의 제안원경릉은 이렇게 질질 끄는 것도 답이 아니란 생각에: “들어오세요, 할 말이 있으면 분명히 하죠.”원경릉은 방으로 돌아온 뒤 엽산제를 먹고 마스크를 쓰고 나서야 밖으로 나가 기왕비를 만났다.“사람들은 나가 있으라고 하세요, 단 둘이 얘기하고 싶으니까요.” 기왕비가 안에 있던 사식이와 희상궁을 보고 조용히 말했다.“안됩니다. 저흰 안 나갑니다.” 사식이가 말했다.기왕비가 원경릉을 보고 담담하게 웃으며, “설마 내가 지금 당신을 해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난 걸음도 몇 걸음 못 걷는 상태예요.”“희상궁, 사식아 문밖에서 기다려줘.” 원경릉이 말했다.“왕비마마!” 희상궁은 조심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괜찮아, 가줘요.” 원경릉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다바오를 들여보내 주세요.”다바오를 들이란 말에 희상궁은 비로소 안심했다.신성한 개 다바오가 안으로 들어오고 원경릉 발치에 엎드려서 기왕비를 호시탐탐 쳐다본다.기왕비가 웃으며: “이렇게 삼엄하게 경계하다니 이거 인정받는 기분인데요.”“반드시 인정해 드려야 지요. 기왕비의 수완은 제가 겪었거든요. 우리 오늘은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하죠.” 외부인이 없으니 원경릉도 인사치레 하기 귀찮다.기왕비는 등을 곧추세우고 원경릉에게, “오늘 온 건 당신과 조건을 상의하기 위해서예요. 나한테 약을 주면 우문호가 태자의 지위에 오르도록 돕도록 하죠.”원경릉은 상당히 의외였다. 기왕비 입장에서 태자의 지위는 기왕이 반드시 획득해야만 하는 게 아닌가?“못 믿겠어요?” 기왕비가 담담하게 웃더니 표정이 점점 고통스러워지며, “목숨도 지킬 수 없는 영광이 무슨 소용인가요?”“이 조건은 동의할 수 없어요.” 원경릉이 말했다.기왕비는 원경릉을 보고 확고한 표정으로, “동의할 거예요. 태자비가 되지 싶지 않을 리 없잖아요? 태자비 다음은 황후로, 천하에서 가장 존귀한 여인이 되는 거예요, 되고 싶지 않다고 감히 말할 수 있나요? 허세 부리지 말자고 했으니 우리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죠.
기왕비의 제안에 대한 우문호의 생각우문호는 원경릉이 계속 기왕비를 상대할까 걱정이 돼서 잔소리하며: “기왕비가 다시 오면, 네가 직접 만나지 마. 어쨌든 기왕부 사람을 우린 상대도 안할거고 만나지도 않을 테니까.”우문호의 생각은 분명했다. 아바마마께서 지금 어떤 태도를 취하든, 큰형에게 어떤 희망을 품고 계시든 우문호는 상관하지 않는다.지금 중요한 일은 원경릉과 아이뿐이다, 모든 건 아이가 태어나고 다시 얘기하자.“알았어, 맞아, 사건은 어떻게 처리 했어?” 원경릉이 물었다.우문호는 요즘 일찍 나가서 늦게 들어온다. 장강부 사건의 실마리를 잡았는데 이 사건은 우문호가 궁에서 상처를 치료하는 동안 경조부 관아 사람들이 전부 실수없이 처리했다. 특히 탕양은 최근 거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것이 분명 이 일때문에 바쁘기 때문일 것이다.우문호가: “막문의 죄목은 확고부동하지만 목숨을 보존하느냐 마느냐는 막문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 대해 부는지 두고 봐야지.”“그 막문이란 사람, 기왕비의 사촌동생이지?” 원경릉이 물었다.“그래, 이미 조사했어, 막문은 적지 않은 뇌물을 기왕부로 보냈더군.”원경릉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좀 생각해 보더니: “기왕부로 보냈다고? 기왕의 수중에 보낸 게 아니라? 그럼 기왕은 피해갈 수 있잖아.”우문호가: “맞아, 큰형 방식대로 라면 분명히 기왕비를 밀어 넣겠지.”원경릉이 이해하고: “어쩐지 기왕비가 나한테 와서 왕야를 태자의 보위에 오르게 돕겠다고 하더라. 모르긴 몰라도 기왕과 기왕비가 이미 패를 주고 받은 게 분명해.”“기왕비가 온 게, 단지 그녀 자신의 뜻이었다고 만은 할 수 없어, 분명 동안(佟安)의 뜻이었겠지.”“동안?”우문호가: “동안은 기왕비의 큰오빠로 전에 호부상서(戶部尚書)였으나 지금은 내각으로 자리를 옮겼어. 이 사람은 사교 폭은 넓은데 나이가 많지 않아 세력이 강력해.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큰형을 위해 분주히 움직여서, 큰형을 위해 수많은 사람과 연을 맺었지. 만약 그가 큰형을 배신하면 큰형의 태자
원경릉을 다시 찾아온 기왕비원경릉은 피하며 만나지 않고 희상궁에게 말을 전하게 했다.희상궁이 나가서 기왕비에게: “기왕비 마마, 초왕비 마마께서 오늘 좀 피곤하셔서 나와서 뵙지 못해 쇤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 전해드리라고 하셨습니다. 마음은 굴뚝같으나 도울 힘이 없으니 잘 쉬시고 다시 오지 마십시요.”기왕비는 눈빛이 점점 스러지며 처량하게 웃고는, “불 난 집에 부채질 한다더니 이럴 줄 몰랐군. 초왕비도 예외가 아니네. 초왕비에게 전하게, 친구 아니면 적이라고. 곧 죽을 사람이 두려울 게 뭐가 있겠어, 앞으로 조심하라고 말이야.”말을 마치고 기왕비는 병색이 짙은 몸을 끌고 사라졌다.희상궁은 이 말을 원경릉에게 전하며 걱정돼서: “왕비마마, 기왕비는 마음이 독하고 수법이 악랄합니다. 만약 자기가 궁지에 몰려 끝이라고 생각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마마께 맞설 것이 틀림없습니다.”원경릉이 화가 나서: “기왕비는 미친개야!”다바오가 불만이라는 듯 짖었다.원경릉이 얼른 달래며, “네 얘기 아냐, 시끄러워.”다바오는 그제서야 ‘컹’하더니 엎드렸다.원경릉이 씩씩거리며 약 상자를 꺼내 탁자 위에 놓고, “내가 그녀를 구하기 싫어서 그런 줄 알아? 정말 약이 없다고, 난 의사인데 약만 있으면 기왕비가 대역죄인이라도 내가……”원경릉이 깜짝 놀라 약 상자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오늘 아침에 원경릉이 엽산을 꺼낼 때 이런 약은 없었다.원경릉은 완전 뚜껑이 열렸다. 기왕비가 그저께 왔을 때는 약 상자에 아무 반응이 없다가, 오늘 와서 위협을 하니 바로 약이 한 뭉치 준비되다니 강자한테 약하고 약자한테 강한 약 상자다.“왜 그러세요?” 원경릉이 갑자기 멍하니 서있는 것을 보고 희상궁이 다가와 물었다.원경릉이 천천히 앉아 호흡이 약간 곤란하다고 느껴 희상궁에게 손짓했다. 원경릉이 첫째공주에게 얘기한 것처럼 약이 없어 기왕비를 치료할 수 없었던 것이다.그런데 지금 갑자기 약이 생겼다. 전에는 고의로 못살게 군 게 분명하다.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기
놀라운 약 상자희상궁에 묻고 우문호는 돌아와 원경릉의 손을 끌고 마당을 걸었다.원경릉의 기분이 눈에 띄게 안 좋아서 우문호가 그녀의 손을 잡아 당겨도 몇 걸음 움직이지 않았다.“피곤해?” 우문호가 원경릉을 부축해 정자에 앉혔다. 바람이 거세서 바람막이를 벗어 걸쳐주며, “돌아갈까?” 원경릉이 고개를 젓고 우문호를 자리에 앉히고는 소매속에서 약 상자를 꺼냈다. 약 상자가 커지며 그녀가 열어서 우문호 앞으로 밀었다. “봐.”우문호는 다가가서 보고, “멀 봐?”이 물건은 우문호도 모르는 것으로 심지어 상자 위에 써 있는 글자도 읽을 수 있는 게 별로 없고, 소 곱창 같은 글자가 많다. 원경릉은 약을 하나하나 꺼내는데 꺼내면 꺼낼 수록 많아져 몇 종류로 분류해 놓고, 마지막엔 안경상자에 눈이 가서 안경상자를 들어내니 아래에 아직도 물건이 한층 더 있는데 이 층의 물건엔 자물쇠가 잠겨 있다.우문호는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말문이 막혔다.“너……너 상자가 크지도 않은데 왜 이렇게 많은 걸 담고 있을 수 있었지?”원경릉은 우문호가 얘기하니 그제서야 비로소 탁자 위에 가득한 약을 보고 경악했다. 이 상자안에 약으로 탁자 하나를 꽉 채운 것이다.그리고 그녀가 상자를 다시 보니 약을 아직 반도 꺼내지 않았다.원경릉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웅얼거렸다: “미쳤어, 진짜 미쳤어.”우문호는 원경릉이 꺼내는 걸 돕는데 꺼내면 꺼낼 수록 많아졌다. 상자 바닥 쪽엔 물건이 한층 더 깔려 있는데, “뭐야, 웬 칼이야? 이건 뭐지? 겸자? 집게?”원경릉이 다가와 보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얼굴이다. 하다하다 이젠 수술도구까지 다 있다.그리고 그 아래 아직 물건이 있는데 뭔 지 알 수 없고 하얀 막으로 쌓여 있는데 원경릉도 하얀 막을 뜯어서 내용물을 볼 용기가 없다.우문호가 기겁해서 원경릉에게, “원선생, 진짜 진지하게 묻는데, 이 상자 도대체 어디서 난 거야?”원경릉 가엽게: “나도 모르는 걸.”우문호가 눈살을 찌푸리며 원경릉에게, “무슨 신선을 만났다는
기왕비를 치료하지 못하도록 단속하는 우문호원경릉의 머리속에 한 사람이 튀어나왔다, 그녀 자신?하지만 곧바로 화들짝 놀랐다. 이건 불가능하다, 만약 그녀라면 절대로 기왕비를 구하고 싶지 않을 테니까, 잠재의식이 절대로 이렇게 많은 약을 준비할 리 없다.그리고 전에 팔황자를 구할 때 원경릉이 쓰고 싶던 약이 약 상자에 나타나지 않았었지.그래서 원경릉은 약 상자를 제어하는 건 그녀 자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원경릉은 지금 꿈속에서 실험실로 돌아가, 약 상자가 왜 이렇게 변할 수 있는지 연구하고 싶다.하지만 원경릉은 최근 너무 잘 잔다, 꿈꿀 틈도 없이 말이다.다음날 이른 아침, 원경릉 부부는 우선 회왕부에 갔다가 마차를 타고 호국사로 갔다.“어젯밤 내가 꺼내서 왕야한테 보여준 약 중에 하나는 회왕을 치료하는데 쓰이는 약이야.” 원경릉이 한참을 생각하더니 참지 못하고 말했다.“응.” 우문호는 고개를 끄덕이고, “이렇게 많으니 회왕이 쓸 건 충분하겠지?”원경릉이 모호하게: “그래, 기왕비한테까지도 충분해.”우문호가 의아해하며, “뭐라고?”원경릉이 쭈뼛쭈뼛하며, “맹세해, 기왕비를 치료하고 싶은 생각 없어. 나도 모르겠어, 약 상자에 왜 갑자기 약이 이렇게 많아졌는지.”“약이 얼마나 많든 기왕비를 치료할 수 없으니까, 사적인 원한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유 에서야, 그리고 기왕비 자신이 독사라 몸이 낫는 날엔 반드시 널 물어 죽일 거라고.” 우문호가 진지하게 말했다.원경릉이 고개를 끄덕이며, “기왕비가 그런 사람이라는 거 알아, 만약 병을 치료해주면 내가 위험해 지겠지.”원경릉은 사실 자신을 걸고 모험을 할 생각은 없다. 기왕부는 늑대 소굴이 아닌가, 쳐들어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우문호가: “지금 약이 많이 나온 걸 다른 사람한테 알리지 마. 여섯째한테 줄 양만 딱 주고 나머지는 전부 숨겨 놔.”“알았어.” 원경릉이 작게 대답했다.원경릉은 마음 속으로 사실 약간 뒷맛이 썼다.약이 없을 때는 마음이 안정적이었다.하지만 지금 약이 생기고
우문호의 단호한 결정원경릉이 우문호의 어깨에 기대자 몸이 마차의 요동침에 따라 올라갔다 내려갔다 한다, “좋아!”“이 사건으로 바쁜 일만 끝나면 바로 너 데리고 수도를 떠나 놀러갈 꺼야. 나도 경조부 일 안 해. 너보다 중요한 건 없으니까.” 우문호가 말했다.“그건 안돼!” 원경릉이 맹렬하게 고개를 저으며, “나와 왕야의 일은 서로 부딪히지 않아, 왕야는 계속 출근해, 난 집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을께. 전부 예전이랑 똑같이.”“아니, 우리 수도를 떠나자, 아이가 태어나면 다시 돌아오는 거야.” 혹은 기왕비가 죽으면 다시 돌아 오는 거다.우문호는 모험을 할 수 없다. 전에 원경릉은 칼에 맞아 하마터면 죽을 뻔 했다. 우문호는 그 공포를 생각하면 아직까지도 심장이 벌렁거리고 손발이 덜덜 떨린다. 그런 두려움은 용기와 신념을 삼켜버리곤 한다.그날 모든 게 평온했다. 바람은 고요했고, 햇살은 따스했다. 하지만 그렇게 평온한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개벽이 일어나곤 한다.그리고 지금 사방에 거대한 파도가 넘실거리니 일단 일이 터지면 만회할 여지가 어디 있기나 하겠는가?우문호는 절대 모험하지 않는다. 90%의 확신이 있다고 해도 피하고 모험하지 않을 것이다.“그럴 것까진 없는 거지?” 원경릉은 비록 나가서 돌아다니고 싶지만 우문호한테 일도 쉬라는 건 과장이 지나치다. 그 정도는 아니고, 원경릉은 자신의 처지에 만족하며 집에 있으면 된다.우문호가 원경릉의 눈썹 꼬리를 매만지며: “어젯밤 오래 생각했는데 이 결정이 좀 서두른 감이 있지만 분명 가장 온당하고 안전한 방법이야. 경성을 떠나자, 시비거리에서 떠나고, 싸움에서 떠나자. 경조부 부윤 직은 안 할거야. 재주 있는 사람이 가득 있으니 그들이 하면 되고, 경조부 일은 나 아니어도 되지만, 너는 나 아니면 안되니까……” 우문호는 원경릉이 입술이 달싹이는 것을 보고 얼굴을 찡그리며, “반박은 반사.”원경릉은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지만 우문호의 방식에 여전히 동의하지 않았다.“기왕비가 어떤 사람인지 너랑
원경릉을 의심하는 우문호단지 정후부의 교육방식에 원경릉이 이런 꿈을 꿨다는 게 참으로 신기할 따름이다.“그래, 그래서 이 꿈을 이루는 건 계속 미뤄졌지만 지금은 괜찮아, 왕야가 있으니까.”우문호는 갈 수록 원경릉을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정말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뀐 것 같다.“그럼, 이 세상에 정말 귀신이 있다고 생각해?” 우문호가 물었다.원경릉이 고개를 들어 우문호를 보며, “왜 갑자기 그런 걸 물어?”“왠지 느낌에 너의 외모는 바뀐 게 없는데 마음이나 머릿속, 안에 들어 있는 모든 게 다 변했어.” 우문호가 원경릉을 바라보는 눈빛에 의혹이 가득하다.원경릉이 웃으며: “난 귀신이 있다고 안 믿어, 이 세상에 귀신이 어딨어? 적어도 왕야도 나도 만나본 적이 없고, 눈으로 확인을 해야지 막연하게 추측만 할 순 없잖아.”우문호가 원경릉에게, “네가 웃는 게 왜 어딘가 캥기는 것처럼 느껴지지?”원경릉이 우문호를 슬쩍 밀치며, “고만 와, 내가 이러는 것도 캥기는 게 있어서야? 귀신 얘기에 캥길게 뭐가 있어?”“내 생각에 너 여전히 나를 속이는 게 있어.” 우문호가 이제 거의 90%는 확신한 듯, 가슴이 두근두근 뛰며 설마 내가 추측한 게 맞는 건 아니겠지?그녀의 외모는 원경릉인데 속이 바뀌었다?“왕야를 속이는 일 없어, 하늘을 떠받치고 땅 위에 우뚝 솟은 영웅이 의심이 웬 말이야.” 원경릉이 구시렁거리며 말했다.우문호는 만약 정말 영혼이란 게 있다면 때가 되면 낱낱이 물어보겠다고 생각했다: “그래, 널 믿어.”원경릉이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하지만 잠시 후 우문호는 다시: “그…… 나한테 30대 맞은 그 사람이 너지?” “나야, 나!” 원경릉이 험상궂게 우문호를 바라보며, “날 30대나 때렸겠다, 내가 마음 속으로 욕을 아주 오지게 퍼부었지.” 우문호가 원경릉을 흘끔 보고 목소리를 조금 낮춰, “그…… 입궁해서 내가 너랑 동침 안 했다고 해서 내가 약 먹고 그…… 그 사람이 너지?”원경릉이 우문호에게 눈을 흘
늑대파 사람이 안지여와 소여쌍을 질질 끌고 나가는데, 소여쌍은 여전히 미친사람처럼 웃어대기만 했다.이리봉청은 그들이 끌려 나가는 것을 보자, 눈앞에 안지여가 자신을 데리고 소여쌍의 침대 앞으로 가서 소여쌍의 그 악랄한 말을 듣던 순간이 떠올랐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여리여리하고 아름답던 그녀가 이렇게 변해 버린 게 꿈처럼 느껴졌다.풍도성을 접수한 뒤 안풍 친왕은 관리들을 새롭게 임명했고, 더 이상 성주 같은 것을 두지 않고 조정과 이부에 적합한 인사를 선발해 풍도성 지부로 앉힐 것을 요청했다. 풍도성은 더 이상 이전의 독립 자치 지역이 아닌, 다른 주나 현과 마찬가지로 조정에 귀속되어 통일서 있게 다스리게 되었다.더불어 안풍 친왕은 별도로 서신을 써서 황제인 우문호에게 보냈는데, 풍도성을 추천하지만, 이건어디까지나 건의와 추천이니 황제가 생각하는 마땅한 사람이 있으면 안풍 친왕의 추천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동시에 안지여의 잔당들이 계속 나타났다.안풍 친왕이 이번에 이렇게 많은 사람을 데려오고, 호랑이와 눈 늑대, 회색 늑대까지 출동시킨 건 바로 모든 세력을 강화하고, 신속하게 진압해 풍도성을 조정에 복귀시키고 보름 만에 비적을 토벌하며 기본적인 숙청을 마무리하기 위해서였다.박원은 잔당의 남은 불씨가 다시 타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서 안풍 친왕의 영패를 가지고 부근에 5천 명의 군사를 파견시켜 풍도성을 지켰다. 이리 나리는 자금을 지원해 천문 세가의 묘를 이장하였는데, 이전 무덤은 안지여가 고른 곳으로 폐허에 가까워, 그는 천문 세가 사람들이 그런 곳에서 안식을 취하기를 원하지 않았다.풍도성에 온지 거의 한 달가량 될 때쯤, 대군은 경성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돌아가기 전에 미색이 안지여와 소여쌍을 보러 갔다가, 돼지우리에서 죽느니만 못한 삶을 사는 것을 보고 그제야 비로소 맺혀 있던 한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미색은 이리 나리와 어머님에게 알리지 않은 것이, 두 사람은 이미 안지여가 누군지 잊은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리봉청에게 있어 모든 건 지나가지 않았고, 36년 전 일은 여전히 어제 일 같이 느껴졌다.“어머니, 그를 어떻게 처분하시겠어요?” 이리 나리는 이리봉청의 마음을 넘겨짚을 수 없어 함께 걷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생각은 어떠니?” 이리봉청이 다시 되묻자 이리 나리가 원한에 사무친 눈빛으로 말했다. “제게 처분하라고 하면 전 그를 죽여 버릴 겁니다.”이리봉청은 알았다며 대답만 했다가, 다시 30분쯤 걷다가 정자에 앉아 을 때 말을 덧붙였다. “난 안 죽일 거야.”이리 나리가 약간 놀라서 물었다. “어머니, 또 마음이 약해지신 겁니까?”이리봉청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 반대야. 그 인간을 죽이는 게 마음이 약해진 거지. 사실 며칠 동안 이전의 원한을 내려놓을 수 있을지 생각해 봤는데,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 인간을 백번이라도 죽이겠지만, 난 그럴 수 없더구나. 아들아, 게다가 오늘 천문 세가 대문을 들어서는 그 순간, 더욱 마음을 굳혔단다.”이리봉청이 일어나 집안을 둘러봤다. 이곳은 그녀의 가족들이 살아 원래 온통 사람 소리로 가득한 곳이였다. 그들의 웃던 광경이 눈앞에 비치는가 하더니, 눈 깜박할 사이에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그들은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천문 세가는 큰 잘못을 저지른 것도 없는데 멸문지화를 당했고, 가엾게도 그 중엔 아이들이 많아서 제일 어린아이는 이제 태어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었다.이리봉청의 얼굴에 눈물이 타고 흐르며 가슴이 미어졌다. “그자와 소여쌍을 밖에 내버리고 사람을 시켜 지켜보도록 해. 죽게 두지 말고 계속 살려둬. 36년은 더 살면서 이 세상의 고생을 모두 겪어야, 내 마음에 맺힌 한이 풀리고 억울한 망자들도 안식에 들지!”이리 나리는 온몸으로 그 마음이 느껴져, 어머니가 눈물 흘리는 것을 더는 볼 수 없었다. “네, 전부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대로 할게요.”안지여와 소여쌍은 버려졌다. 짧은 며칠 사이에 안지여는 의기양양하던 성주에서 시궁창 쥐로 변해, 사람들이
안지여는 풍도성 지하감옥에 갇혔다. 빛 한 줄기 없는 지하감옥에서 사방에 끝없는 어둠과 절망만이 안지여를 삼키고 있었다.훼천의 형벌은 12 시진 후면 사라져서, 앞으로 안지여는 그저 한 명의 폐인일 뿐이었다.안지여의 결사대가 성으로 공격해 들어오기 전에, 이리봉청은 오 선생을 찾아내 안지여가 저지른 모든 죄를 고백하게 하고 안풍 친왕이 친필로 받아 적었다. 안지여가 당시 천문 세가를 해친 경위를 소상히 써 내려간 뒤, 오 선생과 안풍 친왕의 직인을 찍고 인쇄해서 대중에게 공개했다.안지여의 죄악은 하늘을 찔러 백성들 모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안지여의 결사대의 옛 부하들이 본래 성을 공격해 들어가 안지여를 구출할 계획을 세워놓았으나, 안지여의 죄상이 공포된 뒤로 많은 사람들이 해산하였다. 유일하게 무대장군만이 수천 명을 데리고 성으로 쳐들어왔지만, 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가 이미 대비해둔 덕분에, 경성에서 굴러온 돌이 무대장군의 박힌 돌을 빼내는 전투를 벌였다.풍도성에 온 지 7일째, 안풍 친왕은 풍도성을 접수하고 성에 살던 사람을 쫓아내며 서민으로 강등시켰다.안지여와 소여쌍에 대한 처분은 이리봉청에게 넘겼다.안지여는 캄캄한 지하감옥에서 6일을 지내는 동안, 처음엔 침착한 척 가장했으나 사흘째가 되자 울부짖으며 악독한 저주의 말을 내뱉더니, 나흘째가 되자 용서해달라고 애원하며 참회했다.손발의 힘줄이 끊어진 안지여는 일어나 걸을 수도 없고 심지어 스스로 몫숨을 끊을 힘도 없었다.그 와중에 매일 누군가가 먹고 마시도록 해주고, 상처도 치료해 주어 살 수 있다는 부질없는 희망을 품게 했다.훼천의 말에 따르면, 진정한 절망은 살아도 죽느니만 못하고,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것으로, 온 마음으로 죽기를 바라지만 살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가, 안간힘을 쓴 뒤 다시 절망에 빠지는 것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으로, 사람을 한없이 죽였다 살렸다 괴롭힌다고 했다.결국 안지여를 죽일지 말지 여부는 이리봉청에게 달렸는데, 그녀는 안지여를 단번에 죽여 천문 세가
안지여의 이마에 파란 힘줄이 불끈불끈했으나 냉정을 가장했다. “내가 두려워할 줄 알았나 보지? 죽음도 두렵지 않은데 뭘 더 두려워하겠어?”“넌 두려울 것이야!” 이리봉청이 고개를 돌려 이리 나리를 보고 살짝 그의 팔을 잡았다. “내가 오는 길에 늑대파 사람이 그러던데, 천하에서 제일 잔혹한 형벌을 아는 사람이 늑대파에 있다고. 그게 사실인 것이냐?”이리 나리가 가볍게 답했다. “물론 사실이죠. 훼천이라고 합니다. 늑대골 출신이에요.”“안지여가 버틸 수 있는지 어디 한 번 보고 싶구나.” 이리봉청이 말했다.이리 나리가 엄숙한 태도로 명을 내렸다. “훼천!”그러자 훼천이 급히 나왔다. “이리 나리, 분부하시지요!”이리 나리는 그가 짐짓 냉정한 척하고 있으나 눈빛이 조금씩 허물어져 가고, 몸까지 부들부들 떠는 것이 아주 만족스러워 훼천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시작해!”안지여가 갑자기 큰 소리로 욕했다. “난 네 아버지거늘, 감히 나에게 손을 대다니, 천벌을 받아 마땅한 놈 같으니라고!”이리봉청이 이 말을 듣고 잠시 주저하는 눈빛으로 이리 나리를 바라봤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제 아버지는 오직 저를 키워주신 안풍 친왕뿐이십니다.”이리봉청이 살짝 안도했다. “저 인간이 단지 나만 해쳤으면 네 체면을 봐서 놔줬겠지만 천문 세가의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갔으니 난 용서할 수 없구나.”“이리봉청, 너 언제 이렇게 악랄하게 변했어? 죽이려거든 그냥 죽여. 난 천문 세가 사람을 죽이긴 했어도 그들을 괴롭히진 않았어. 네가 날 죽이려거든 깨끗하게 단번에 죽여!”안지여가 크게 노해 몇 번 몸부림을 치다가 상처가 벌어지는 바람에 배에서 선혈이 흘러나오고, 훼천이 가까이 다가가자, 눈에 두려움이 깊어졌는데, 늑대골 출신 훼천은 온몸에서 피비린내가 뿜어져 나와 안지여를 덜덜 떨게 했다.“이리율!” 안풍 친왕비는 시ㅈ가하기 전에 이리 나리를 불렀다. “내가 여기서 네 엄마와 같이 있을 테니 넌 먼저 나가 있거라!”이리 나리가 안풍 친왕비에게
안지여에게 구원 병력이 없는 상황에서, 이리 나리 일행이 성을 제압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대오가 경성에서 출발하기 전에, 안풍 친왕비가 미리 사람을 풍도성으로 보내 각처, 특히 성 수비군과 군대에 잠입시켜, 음식에 효과가 천천히 나타나는 독을 풀어, 오늘 중독 증상이 나타나도록 독의 분량을 조절했다.적어도 내일까지는 안지여를 도우러 올 사람은 없었다. 독성은 적어도 이틀이 지나야 깨끗해지기 때문에 이틀 동안 그들은 설사와 전신 무기력으로 성에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알아도 와서 도울 수 없었다.그리고 그들이 기력을 회복할 때쯤이면, 안지여는 벌써 죽었을 것이다.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는 성을 통제하고, 안지여 부부를 제압해 두 사람을 줄로 묶고 지혈시켜 주었다.안지여는 요 몇 년 동안 자신이 상당히 대단하다고 여겼다. 이는 풍도성이 부유하기 때문으로, 돈으로 많은 사람을 살 수 있었으며, 여러 곳에서 추켜세워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처절하게 패배한 적이 없었던 이유는 진정한 적이 없기 때문으로, 주변의 떠돌이 비적은 작은 마을 규모로 너무 작아서 소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코 그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적이 너무 약해서였다.조정 사람과 비교했을 때, 그는 제대로 훈련받은 적 없는 비적었기에 일격도 감당할 깜냥이 못됐다.이리 나리는 둘을 중정에 묶어 두었다. 온 바닥에 남은 음식과 깨진 기와가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본 안지여는 마음속 깊이 분노가 일었다. 자신의 생일날, 그를 다치게 한 것이 바로 그의 친자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더욱이 오늘 이렇게 많은 고수가 현장에 있었는데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이런 결말을 맞다니 너무 불쾌했다. 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을 부축하고 안지여 부부 앞으로 가서, 그녀가 안지여 부부를 내려다보자, 그들은 낭패에 달가워하지 않는 기색으로, 이리봉청은 분노하는 마음과 함께 서글픈 마음도 들었다. 그들을 죽이면 커다란 복수는 이뤄 천문 세가 망자의 원혼은 달랠 수 있었다.하지만 저들을 이렇게 쉽게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이리 나리가 검을 휘두르며 안지여를 겨누자, 안지여가 공중으로 뛰어올라 후퇴했다.공자들은 돕고 싶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에게 바로 제압당했다. 안지여는 이리율 것으로 그들은 주변 사람을 제압하기만 할 뿐 옆에 서서 전투를 관전하고 있었다.이리율의 무공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를 가르친 안풍 친왕 부부를 제외하고, 사실 많은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이리율의 검법은 신속하고 맹렬해서 안지여는 상대하느라 쩔쩔매고 구석으로 몰리고 있었다. 성안의 호위들은 늑대 무리와 늑대파, 홍매문 사람들에게 막히는 바람에 안지여는 홀로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그래도 아직은 버틸 수 있었다.하지만 30분을 못 가서 안지여는 질게 틀림없었다.놀란 나머지 계속 실성해 있던 소여쌍이 갑자기 이리봉청을 향해 바싹 마른 손을 뻗어, 그녀의 목을 조르며 광적인 집착과 분노에 사로잡혀 성질을 부렸다. “멈춰, 다들 멈추라고. 안 그러면 내가 이년을 죽여버릴 것이니까!”소여쌍은 무공을 할 줄 알았지만 잘하지 못한 것이 어릴 때부터 계속 중병을 앓아 무공 연습에 소홀했고 성주 부인이 된 뒤로는 더욱 병기에 가까이할 일이 없었지만, 공력만큼은 아직 약간 있었다.소여쌍은 증오의 힘으로 이리봉청의 목을 졸랐는데, 소여쌍이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이리봉청의 목을 부러뜨릴 것만 같았다.안풍 친왕이 차가운 눈빛으로 나서려 하자, 안풍 친왕비가 말리며 고개를 살짝 흔들었는데, 그럴 필요 없다는 뜻으로 뒤에 있던 사람들에게도 참으라는 눈짓을 하자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모두가 이리봉청이 제압당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손가락으로 뭔가를 쥐고 있어 소여쌍의 어깨 위를 휘감고 팔을 눌러 소여쌍이 머리를 돌리게 했다. 이리봉청 손에 쥔 것은 바늘로, 그대로 소여쌍의 오른쪽 눈을 찌르고 들어갔다.소여쌍이 절규하며 이리봉청을 놔주고 선혈이 흐르는 눈을 움켜쥔 채 비틀거리다 바닥에 쓰러져 데굴데굴 구르며 새된 소리를 지르는데, 원망과 저주의 말을 끊임없이 쏟아
풍도성 중정에는 안지여의 아들들과 사위가 그의 곁에 남았는데,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 점점 공포에 질려가고 있었다.‘이 사람들, 아주 대단하구나!’안지여는 이리봉청을 보고 비록 조금 냉정해 보였지만, 여전히 놀라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갑자기 소여쌍이 큰 소리로 웃으며, 몸을 앞뒤로 흔들며 눈물을 찔끔거리더니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이리봉청을 가리키며 원망했다. “뜻밖에 네가 안 죽었단 말이지? 게다가 아들까지 있고. 참으로 황당하구나. 정말 너무 황당해. 원래 죽어야 했을 인간은 죽지 않고, 잘 살아야 할 사람은 36년간 괴로움을 당했어. 이리봉청 네가 날 비참하게 만들었으니 넌 이제 지옥에 떨어져야 해.”이리봉청은 소여쌍의 말을 들은 체 만 체했는데, 그녀 눈에는 지금 안지여만 들어왔다.안지여는 36년을 살아왔지만, 이리봉청에게 있어 36년은 마치 사라진 시간처럼 멸문지화의 원한이 어제 일 같았다.안지여도 이리봉청의 눈에서 분노와 악랄함을 보고, 처음으로 마음속에 두려움을 느꼈다.안지여는 억지로 감정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네 사람을 데리고 가. 지난 일을 묻지 않을 테니. 그렇지 않으면 풍도성에서 곧바로 10만 대군이 올 것으로, 살아서 도망갈 생각은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아.”이리봉청의 목소리가 낮게 잠겼다. “우리는 이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바로 네 성으로 쳐들어갈 수 있어. 넌 이미 졌어.”안지여가 웃었다. “졌다고? 그래?”안지여는 수하의 대장군이 믿음직해서, 그들을 당하게 놔줄 수도 있다고 여겼다. 대장군의 부대는 분명 치밀하게 준비되어 있을 것으로, 아마 지금쯤이면 궁수들이 이미 배치를 마치고 그들을 전부 쏴 죽이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고 말했다. “어머니, 저자와 말 섞으실 필요 없어요. 앉아서 지켜보시기만 하면 됩니다!”말을 마치고 의자를 올리더니 이리봉청을 부축해서 앉혔다.안지여가 이리 나리를 보는데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안지여가 퍼뜩 눈을 돌려 이리 나리를 보았다.‘이리봉청이 저자를 아들이라고 불렀다는 건러니까?이리 나리는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찬찬히 훑어보더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안 성주와 좀 오래된 원한을 따져야 하는데, 관련되기 싫으신 분은 자리를 피해 주시지요!”그때 한 사람이 검을 짚고 일어나 호통을 쳤다. “넌 도대체 어떤 놈이냐? 무슨 자격으로 자리를 피해라 마라야? 안 성주를 귀찮게 할 생각이면 일단 나부터 통과해 보시지!”그는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장검을 뽑아 파죽지세로 이리 나리를 향해 휘둘렀다.이리 나리는 손을 살짝 움직여 손바닥으로 칼자루를 밀자, 검이 날아가며 그 사람의 귀를 베어 한 줄기 피가 공중에 뿌려지더니, 방금까지 기고만장하던 자가 비명을 지르고 귀는 바닥에 떨어졌다.검이 다시 이리 나리 수중으로 정확히 돌아왔다.이 모든 게 3초 안에 벌어진 일이었다.“회선검?” 검법을 아는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외쳤다.현장은, 숨소리마저도 들리지 않았다.회선검은 검마의 검법으로, 그렇다는 건 저 사람이 검마의 계승자?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무리에서 검마를 찾았다. 과연 두 손으로 검을 안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도 차가운 안광이 느껴졌다.과연 진짜 검마구나, 사람들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검마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이리 나리를 흘끔 보더니 속으로 의아해했다. ‘이 자식, 언제 내 비장의 검법을 배운 거야?’이리 나리의 검 끝에선 아직 선혈이 떨어지는데, 여전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말했다. “이 아수라장에 끼고 싶은 거라면, 제가 무례하다고 원망할 생각 마세요.”“무엄하도다!” 안지여가 몹시 놀랐다가 천천히 정신을 차리고 눈을 치켜뜨며 이리 나리를 노려봤다. “너는 내가 누구인 줄 아느냐? 내가 네 아버지다!”이리 나리가 코웃음을 쳤다!안지여의 몇몇 아들이 달려 나와 소리쳤다. “아버지, 저희가 지켜드리겠습니다.”안풍 친왕이 젓가락을 던지고 일어나 차갑게 명을 내렸다
오늘은 성주의 생일이기에 경사라 섣불리 피를 볼 수는 없으므로 칼은 빼 들었지만 먼저 나서서 늑대를 죽이는 사람은 없었다.안지여는 어두운 눈빛으로 ‘늑대 무리라고? 척후병의 보고로는 안풍 친왕이 늑대 무리를 끌고 온다고 했는데, 저들이 의외로 성으로 직접 쳐들어 왔다 이거지?’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안지여는 잔을 들고 꿈적도 하지 않은 채, 무너지기 직전까지 미동도 없는 태산처럼 냉정하고 침착했다. 늑대 무리는 안으로 들어온 뒤로 두 패로 나뉘어 서서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호시탐탐 엿보며 으르렁거렸다.“성주님, 성주님, 저들이 기어코 쳐들어오겠다고….” 문지기가 외치는 소리는 들렸으나 사람은 보이지 않더니, 그보다 조정에서 보낸 사람들이 먼저 들이닥쳤다.앞에 걸어들어오는 두 사람을 안지여는 본 적이 있었는데, 바로 안풍 친왕 부부로 예전에 그들이 천문 세가 사람들을 조사하러 왔을 때 그에게 속은 적이 있었다. 비록 당시 일면식 뿐이었으나 천문 세가 일을 캐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 탓에 그들의 얼굴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어째서 별로 변한 게 없는 거지?’안풍 친왕 부부 뒤에 따라오는 10여 명의 검은 옷을 입은 노인은 그들의 호위 무사일 것으로, 주인인 안풍 친왕 부부는 별 표정이 없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들어와 고개를 들자 괴팍하고 악랄한 얼굴이 안지여 마음에 들지 않았다.안지여는 여전히 일어나지 않았고, 미소는 띠고 있었지만 매서운 눈빛으로 저들이 돌계단을 오르면 그때 일어나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게 그의 태도였다.하지만 안풍 친왕 부부는 돌계단을 오르지 않았고, 손님 중 건배를 권하느라 자리를 비운 사람들 의자에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이 차지하고 앉아, 그들을 대놓고 밀치더니 품에서 자기 젓가락을 꺼내 옆 사람 상관하지 않고 먹기 시작해 사람들이 다 경악했다.그들이 자리를 잡고 앉자 뒤따라 들어오는 사람들이 보였다.두 사람이 사람들에 둘러싸여 천천히 걸어들어오고 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