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영향이 없을 수는 없겠죠. 스스로 조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원경릉은 일어나 뒷문을 꼭꼭 걸어 잠갔다. 지금부터 나누는 대화는 밖으로 세어 나가면 안 된다.대장공주는 한숨을 내쉬며 “스스로 잘 돌보세요. 여섯째는 나을 테니.”라고 말했다.“노비께서 저한테 약이 있다고 했습니까?” 원경릉이 살짝 떠보았다.“그날 자연스럽게 여섯째의 병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노비가 초왕비가 준 약을 복용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늙은이가 기왕비 생각이 났습니다. 자초지종이야 어떻든 기왕비도 회왕에게 옮은 병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약을 좀 달라고 하니 노비가 한 번 주는데 천 냥 은화를 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기왕비가 두 차례 약을 사서 먹었다고 합니다. 그 후로 금액이 부담이 돼서 혹시나 처방전이라도 얻을 수 있을까 초왕부로 온 겁니다.”대장공주의 말을 듣고 원경릉은 어안이 벙벙했다.“노비께서 약이 어디서 나서 줬답니까? 제가 준 약은 회왕이 먹을 만큼 밖에 없는데.”대장공주는 고개를 저으며“그건 모르겠습니다만 늙은이가 가서 보니 여섯째가 먹는 약과 노비가 기왕비에게 파는 약이 똑같더라고요.”라고 말했다.“불가능합니다! 혹시 여섯째의 약을 빼돌리는 것은 아니겠죠?”“세상에! 설마 그렇게 하겠습니까? 생명이 위태로울 수도 있는데……” 대장공주가 깜짝 놀랐다.‘약을 복용한지 얼마나 됐다고 감히 제멋대로 약을 줄여? 이렇게 되면 정말 큰일 날 수도 있는데……’“한번 가서 확인해 볼까요?” 대장공주가 물었다.“꼭 가봐야 합니다.” 원경릉이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럼 이 늙은이가 같이 가주겠습니다.”원경릉은 급히 사람을 시켜 회왕부로 갈 준비를 하라고 했다. 그녀는 옷을 갈아입고 약 상자를 꺼내어 사식이에게 들고 있으라고 했다.대장공주와 원경릉 무리가 회왕부에 도착하자 노비가 허겁지겁 나와 둘을 맞이했다.원경릉은 안절부절하며 “저는 먼저 회왕의 상태를 살피겠습니다.”라고 말했다.노비는 웃으면서 “나오라고 해서 보시면 되죠. 왜 왕부로 들어가시
“왕야 제가 검사해 드리겠습니다.” 원경릉은 급히 회왕에게 다가갔다.회왕은 손을 뻗어 그녀를 막았다.“아니, 아니! 다섯째 형수님께서 임신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본왕에게 다가오지 마세요!”“괜찮아요. 왕야의 병은 이미 전염성이 사라졌습니다.”원경릉의 완강한 태도에 회왕도 어쩔 방법이 없었다.“좋아요. 그럼 병풍 뒤로 오세요.”회왕이 말했다.회왕부 정실에는 병풍이 있어 공간 분리가 가능했다. 원경릉이 들어가 검사를 해보니 폐부의 잡음이 전보다 뚜렷하게 들렸다. 그의 병이 이전보다 심각해졌다. 원경릉은 회왕과 함께 병풍 뒤에서 걸어 나오며 “왕야께서는 매일 규칙적인 시간에 정해진 양의 약을 드시지 않습니까?” 라고 물었다.“먹는 약이 있습니다. 매일 먹고 있고요.”“하루 세 번이요? 한 번에 8알씩?”그러자 노비가 빠르게 말을 가로채며 “하루에 한 번씩 먹습니다. 약을 많이 먹는 것은 몸에 좋지 않아요. 지금 회왕은 전보다 많이 좋아졌습니다.”라고 말했다.이 말을 듣고 원경릉은 화가 났으나 노비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어른이기에 한숨을 내쉬었다. “약을 줄인지 얼마나 됐습니까? 그리고 줄인 약은 무엇입니까?”이 상황을 보고 있던 대장공주가 입을 열었다.“기왕비한테 팔았고만”이 말을 들은 회왕이 경악하며 노비를 바라보았다.“모비 어떻게 다섯째 형수님이 준 약을 팔 수가 있습니까? 그리고 저에게는 다섯째 형수님이 약을 줄여도 된다고 해서 줄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노비는 웃으며 “지금 회왕이 얼마나 좋아졌는지 보세요! 전에 어의가 와서 말하길 지금 상태가 많이 호전됐다고 했잖아요! 전보다 훨씬 좋아졌으니 약을 좀 줄여도 문제없습니다. 그리고 그 약을 기왕비한테 팔면 그녀의 병세가 좋아질 수 있잖아요.”라고 말했다.원경릉은 기뻐하는 노비를 보며 웃을 수도 없었다. “노모비 제가 개인적으로 몇 마디 해도 되겠습니까?” 원경릉의 말에 노비가 대장공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대장공주는 손을 저으며 “두 사람 들어가서 얘기 나눠요.”라고 말
노비가 언짢은 표정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이게 이렇게 화를 낼 일입니까? 초왕비는 예전에 기왕비가 사람을 시켜 당신을 암살하려고 했던 거 잊었나요? 기왕비가 불쌍합니까? 기왕비는 초왕비를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나있어요! 초왕비는 보살입니까?”노비의 말에 원경릉은 화가 났다.“누가 기왕비가 불쌍하다고 합니까? 저는 회왕을 걱정해서 그런 거예요. 제가 약을 끊으면 안 된다고 누누이 말했잖습니까? 지금처럼 들쭉날쭉 약을 먹으면 안 됩니다. 노비께서 회왕을 죽이는 겁니다!”죽음이라는 원경릉의 말에 노비가 멍해졌다.“전보다 훨씬 좋아졌다면서요? 이제는 유지만 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회왕은 전염성만 사라졌을 뿐 완벽히 낫지 않았습니다! 회왕은 약을 끊으면 안 됩니다! 솔직히 말해주세요. 약을 며칠 줄였습니까?”“며칠 안됐습니다. 사오일 정도 된 것 같습니다. 아예 안 먹은 것은 아니고 양만 줄였습니다. 그 정도는 괜찮지 않습니까?”“노비께서는 회왕이 지금 기침하는 거 안 보이십니까? 열도 나는데요?”“추워서 그런 거 아닙니까?” 노비가 담담하게 말했다.원경릉은 노비의 무지함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노모비 당신께서 계속 약을 줄이면 그의 병은 절대 낫지 않을 겁니다. 기억하세요. 기왕비의 죽음은 그녀의 업보고 하늘의 뜻입니다. 노비께서는 이를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우선 지금은 회왕의 목숨을 지키는 게 중요합니다. 회왕부터 살리고 그 후에 기왕비를 처리해도 늦지 않습니다.”노비는 그녀의 진지한 표정에 한순간 두려움이 몰려왔다.“그럼…… 내 아들이 죽을 수 있다는 겁니까?”“제가 앞으로 열흘 동안은 매일 와서 약을 드시는 걸 지켜보겠습니다. 그리고 필요하면 주사도 놓겠습니다. 회왕의 상태가 너무 나빠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본궁이 이번에 큰 실책을 했습니다. 어의가 많이 좋아졌다고 하기에 기왕비에게 약을 팔았습니다.”노비는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 원경릉은 그녀에게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일이 이렇게 된 거 지금부터라도 회
우문호는 더는 반박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시종일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그녀가 매일 갑옷을 입고 회왕부에 간다고 하더라도 그의 마음은 놓이지 않을 것 같았다.그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원경릉을 보았다.“아니면 내가 궁으로 들어가 태상황님께 귀영위(鬼影卫)를 빌려달라고 할까?”“그렇게까지 할 일이야?”“당연하지!”우문호가 진실의 미간을 보여줬다.“마음대로 해라” 원경릉이 어깨를 으쓱였다.우문호는 문득 원경릉이 사식이를 신뢰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서일도 있는데 사식이를 언급하다니?’우문호는 사식이와 서일 둘 다 신임할 수 없었다. 사식이와 서일은 성격이 서글서글해서 좋지만 단점은 부주의하고 경계심이 낮아 사람을 쉽게 믿는 것이다. 그러나 태상황의 귀영위는 다르다.우문호가 큰 손바닥으로 그녀의 아랫배를 쓰다듬으면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아기는 안에서 뭘 하고 있대?”“잠이나 자!” 원경릉이 그의 의도를 파악했다.“얘기 좀 더 하다가 자자. 졸려?” 우문호가 퉁명스럽게 말했다.원경릉은 몸을 기울여 그의 얼굴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글쎄, 아기는 안에서 자고 있겠지.”우문호는 오! 하고 소리를 내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그럼 아기는 너무 심심하겠다! 안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아니야.”“아기는 심심하지 않을 거야.” 원경릉은 경고하는 듯한 눈빛으로 그를 보았다. 원경릉은 그의 눈빛에서 그의 생각이 읽혔다.“그럼 언제쯤 들어가서 아기가 뭐하나 볼 수 있을까?”우문호가 중얼거렸다.원경릉은 가슴에 올라온 그의 손을 떼어냈다.“아기가 태어난 이후에 볼 수 있지! 그리고 너의 그곳에…… 눈도 없잖아 들어와도 아기를 볼 수 없어!”그는 옥처럼 부드러운 그녀의 몸을 끌어안았다.“참기 너무 힘들다.”“죽는소리 하기는 일러!”우문호의 입술이 그녀의 하얀 뺨을 스치더니 귓가에 닿았다.“너 대신에 아기를 품을 수 있다면 내가 품어서 너의 고생을 덜어주고 싶다. 하…… 아직도 몇 달이나 남았다니.”“그래도 넌 내가 임
“너는? 아들이었으면 싶으냐 딸이었으면 싶으냐?”우문호가 물었다.원경릉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질문에 당황했다.“음…… 아들이길 바라지.”“어? 넌 딸을 더 좋아했잖아?”“아들이고 딸이고 다 좋지. 부모로서 성별로 차별한다는 것은 말이 안 돼.”“그런데 왜 아들이길 바라?” 우문호는 원경릉이 자신과 같은 이유로 아들을 원하는 게 아닐까 추측하며 한숨을 내쉬었다.“왜냐면 이 시대는 여성에게 우호적이지 않아. 여성의 삶이 남자에 의해 쥐락펴락 되는 이 세상에 내 딸이 그런 고통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어.”우문호는 순간 그녀의 얼굴에서 슬픔을 보았다.“여자의 행복이 혼인에 의해 결정되고 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시댁의 권세를 보고 혼인을 해야 하며, 혼인 후에도 시어머니 눈치를 봐야 하고 또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첩도 들여야 하고 아이를 낳아도 여자아이를 낳으면 안 되고…… 첩의 아이까지 내가 보듬어 키워야 하며 어휴…… 내가 비록 여자아이를 좋아하지만, 여자아이를 낳으면 복잡한 일이 너무 많아.”마지막 말을 하기 전에 그녀가 부드럽게 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그리고 나처럼 운이 좋아서 너처럼 좋은 남자를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잖아.”현실적인 그녀의 말에 우문호가 깜짝 놀랐다. 그는 남자로 태어나 한 번도 여자들의 고충을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그녀가 말한 모든 것들은 여성의 미덕이라고 치부하며 여자가 이를 해내지 못한다면 자격이 없는 여자라는 둥 좋은 며느리가 아니라는 둥 험담을 했다.“만약에 내가 너를 만나지 않았다면, 내가 받은 교육, 내 생각, 그리고 내 성격상 이곳에서 지내는 매일이 비참했을 거야.”“너는 무슨 교육을 받았는데?” 우문호가 어리둥절해서 물었다.원경릉은 미소를 지으며 “나는 천문학도 알고 지리도 네 생각보다 많이 알고 있어.”라고 말했다.우문호는 실소를 지으며 “네가 천문과 지리를 안다고? 그럼 그날 가장 빛났던 별을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라고 물었다.“금성이지.
이튿날 우문호는 태상황에게 문안을 드릴 준비를 했다.남에게 무언가를 부탁할 때는 빈손으로 갈 수 없는 법. 그는 거리를 돌다가 좋은 담뱃잎 몇 개를 사서 궁으로 들어갔다. 우문호가 입궁하자 태상황은 그가 들고 온 담뱃잎을 곁눈질했다. 태상황은 상선에게 소요공이 보내온 담배를 꺼내더니 비교했다. 우문호는 태상황의 모습을 보며 뻔뻔한 표정으로 “잎담배는 색깔과 냄새만으로 비교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럼 어떻게 비교해야 하느냐?”태상황이 물었다.“비교라니요. 제 마음이라고 생각하고 받아주십시오. 그렇다고 너무 많이 피시지는 마시고요. 그래야 건강하게 오래 사시지요.” 우문호가 허리를 굽히고 태상황의 어깨를 주물렀다.“왜 이렇게 아첨하는 거냐? 무슨 일이야 말해봐.”우문호는 히죽히죽 웃으며 “혹시…… 한두 명만 빌려주시겠습니까?”라고 말했다.“누구를?”“귀영위 말입니다. 초왕비가 매일 회왕부에 가는데 태상황님의 귀영위가 보호해 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왜?”태상황이 놀랐다.우문호는 노비가 기왕비에게 약을 팔았다고 태상황에게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눈치가 빠른 태상황은 노비의 잘못으로 여섯째의 상태가 나빠졌다고 짐작했다.“날씨가 추워지면서 병이 더 나빠질까 봐 가는 겁니다.”낌새를 챈 우문호가 변명했다.태상황 손을 들어 상선을 불러 담배에 불을 붙였다. 노인은 살짝 눈을 감고 담배를 깊게 빨아들였다. 내뱉는 담배 연기에 우문호는 기침이 뿜어져 나왔다. 자욱한 연기 속에서 늙은이가 담담하게 말했다.“부탁할 필요 없다. 저번에 사고 났을 때, 과인이 이미 초왕비를 보호하도록 귀영위를 보냈다.”태상황의 말을 듣고 우문호가 깜짝 놀랐다.“그걸 손자는 왜 몰랐죠……?”늙은이는 콧방귀를 뀌었다.“네가 그걸 알았다면 귀영위를 보내달라고 부탁하러 왔겠느냐?”우문호는 멋쩍은 표정으로 “아…… 예.”라고 말했다. “됐다! 이제 그만 가보거라!” 태상황이 귀찮다는 듯 손을 저었다.우문호는 공손하게 절을 하고는 “손자가 황조부께 감사의 말씀
기왕비의 제안원경릉은 이렇게 질질 끄는 것도 답이 아니란 생각에: “들어오세요, 할 말이 있으면 분명히 하죠.”원경릉은 방으로 돌아온 뒤 엽산제를 먹고 마스크를 쓰고 나서야 밖으로 나가 기왕비를 만났다.“사람들은 나가 있으라고 하세요, 단 둘이 얘기하고 싶으니까요.” 기왕비가 안에 있던 사식이와 희상궁을 보고 조용히 말했다.“안됩니다. 저흰 안 나갑니다.” 사식이가 말했다.기왕비가 원경릉을 보고 담담하게 웃으며, “설마 내가 지금 당신을 해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난 걸음도 몇 걸음 못 걷는 상태예요.”“희상궁, 사식아 문밖에서 기다려줘.” 원경릉이 말했다.“왕비마마!” 희상궁은 조심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괜찮아, 가줘요.” 원경릉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다바오를 들여보내 주세요.”다바오를 들이란 말에 희상궁은 비로소 안심했다.신성한 개 다바오가 안으로 들어오고 원경릉 발치에 엎드려서 기왕비를 호시탐탐 쳐다본다.기왕비가 웃으며: “이렇게 삼엄하게 경계하다니 이거 인정받는 기분인데요.”“반드시 인정해 드려야 지요. 기왕비의 수완은 제가 겪었거든요. 우리 오늘은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하죠.” 외부인이 없으니 원경릉도 인사치레 하기 귀찮다.기왕비는 등을 곧추세우고 원경릉에게, “오늘 온 건 당신과 조건을 상의하기 위해서예요. 나한테 약을 주면 우문호가 태자의 지위에 오르도록 돕도록 하죠.”원경릉은 상당히 의외였다. 기왕비 입장에서 태자의 지위는 기왕이 반드시 획득해야만 하는 게 아닌가?“못 믿겠어요?” 기왕비가 담담하게 웃더니 표정이 점점 고통스러워지며, “목숨도 지킬 수 없는 영광이 무슨 소용인가요?”“이 조건은 동의할 수 없어요.” 원경릉이 말했다.기왕비는 원경릉을 보고 확고한 표정으로, “동의할 거예요. 태자비가 되지 싶지 않을 리 없잖아요? 태자비 다음은 황후로, 천하에서 가장 존귀한 여인이 되는 거예요, 되고 싶지 않다고 감히 말할 수 있나요? 허세 부리지 말자고 했으니 우리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죠.
기왕비의 제안에 대한 우문호의 생각우문호는 원경릉이 계속 기왕비를 상대할까 걱정이 돼서 잔소리하며: “기왕비가 다시 오면, 네가 직접 만나지 마. 어쨌든 기왕부 사람을 우린 상대도 안할거고 만나지도 않을 테니까.”우문호의 생각은 분명했다. 아바마마께서 지금 어떤 태도를 취하든, 큰형에게 어떤 희망을 품고 계시든 우문호는 상관하지 않는다.지금 중요한 일은 원경릉과 아이뿐이다, 모든 건 아이가 태어나고 다시 얘기하자.“알았어, 맞아, 사건은 어떻게 처리 했어?” 원경릉이 물었다.우문호는 요즘 일찍 나가서 늦게 들어온다. 장강부 사건의 실마리를 잡았는데 이 사건은 우문호가 궁에서 상처를 치료하는 동안 경조부 관아 사람들이 전부 실수없이 처리했다. 특히 탕양은 최근 거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것이 분명 이 일때문에 바쁘기 때문일 것이다.우문호가: “막문의 죄목은 확고부동하지만 목숨을 보존하느냐 마느냐는 막문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 대해 부는지 두고 봐야지.”“그 막문이란 사람, 기왕비의 사촌동생이지?” 원경릉이 물었다.“그래, 이미 조사했어, 막문은 적지 않은 뇌물을 기왕부로 보냈더군.”원경릉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좀 생각해 보더니: “기왕부로 보냈다고? 기왕의 수중에 보낸 게 아니라? 그럼 기왕은 피해갈 수 있잖아.”우문호가: “맞아, 큰형 방식대로 라면 분명히 기왕비를 밀어 넣겠지.”원경릉이 이해하고: “어쩐지 기왕비가 나한테 와서 왕야를 태자의 보위에 오르게 돕겠다고 하더라. 모르긴 몰라도 기왕과 기왕비가 이미 패를 주고 받은 게 분명해.”“기왕비가 온 게, 단지 그녀 자신의 뜻이었다고 만은 할 수 없어, 분명 동안(佟安)의 뜻이었겠지.”“동안?”우문호가: “동안은 기왕비의 큰오빠로 전에 호부상서(戶部尚書)였으나 지금은 내각으로 자리를 옮겼어. 이 사람은 사교 폭은 넓은데 나이가 많지 않아 세력이 강력해.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큰형을 위해 분주히 움직여서, 큰형을 위해 수많은 사람과 연을 맺었지. 만약 그가 큰형을 배신하면 큰형의 태자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