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빈에게 독주를 내린 황제원경릉은 비록 소빈을 두둔하는 입장도 아니고 소빈의 생사는 전혀 관심이 없지만, 이 임무를 하고 싶지 않다. 자기 눈앞에서 숨이 끊어지는 것을 지켜 보기 싫은 게, 원경릉은 임산부로 이런 잔혹한 일을 보고 싶지 않은 것이다.“사건을 아직 명확하게 조사하지 않았는데 황제 폐하께서는 왜 소빈에게 사약을 내리시려 하십니까?” 원경릉이 물었다.목여태감이 작은 목소리로: “소빈에게 사약을 내리는 것은 태상황 폐하의 뜻입니다.”원경릉이 경악해서 목여태감에게, “태상황 폐하의 뜻이라고요?”원경릉은 단번에 알아차렸다. 왕비를 충동해서 왕비를 찌르고 어쩌고 하는 성지는, 이런 변명을 통해 소빈을 죽여 명화전에서의 모든 것을 덮을 심산이다.원경릉이: “가서 태상황 폐하를 뵙고 와서 어명을 받들겠네.”목여태감이: “좋습니다, 소인은 여기서 왕비마마를 기다리겠습니다.”원경릉은 빠른 걸음으로 갔다. 기왕 어르신 뜻이라면 다른 사람을 보내 형 집행을 감독하도록 한 황제 폐하의 결정을 바꿔 달라고 부탁드리러 가는 거다. 어르신이 원경릉을 예뻐 하니, 그녀가 잔혹한 일을 하도록 두지 않으실 게 틀림없다.어르신은 안에서 상선과 바둑을 두고 있었다.원경릉이 들어가 무릎을 꿇고 앉아서: “태상황 폐하, 도와 주세요.”어르신은 눈을 들어, “뭘 도와 달라는 거냐?”“소빈에게 사약을 내리는 것이 태상황 폐하의 뜻인가요? 그럼 황제 폐하께서 누구에게 가서 형 집행을 감독하라고 하셨는지 아십니까?” 원경릉이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어르신이: “누굴 보냈는데?”원경릉이 거의 눈물이 터질 듯이, “저요, 아바마마께서 저더러 소빈이 독주를 마시는 것을 지켜보라고 하셨어요. 전 지금 복중에 아이를 가져서 이렇게 잔혹한 일을 볼 수 없어요.”어르신이 눈살을 찌푸리며, “결국 그 일이냐?”원경릉이 무릎걸음으로 한 발 나가서: “예, 목여태감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어서 저를 도와서 한 마디 해주세요.”어르신이 불만스럽게: “독주를 먹여? 내 뜻은 목을
소빈에게 내린 벌“그래도 죽을 죄는 아니잖아요.” 원경릉은 현대의 법률을 가지고 대화를 시도했다.태상황은 낮은 목소리로: “명화전에서 무슨 일이 있었든, 결론은 같겠지만 소빈은 그때 외간 남자와 같이 있었어. 일단 외간 남자와 정을 통했고, 다음으로 친왕이 자신을 능욕하고 모멸했다고 모함 했으니, 하나하나 드러나는 수 없는 음모와 계략은 별개로 쳐도 죽어 마땅한 죄다. 궁에 떠도는 귀신이 어디 한둘인 줄 아느냐, 사안이 작으면 못 본 척 넘어가도 이렇게 중차대한 일은 일벌백계로 다스리는 것이 마땅해.”원경릉이 침묵했다.소빈은 황제의 비빈으로 외간 남자와 사통하는 순간 이미 죽어 마땅하다. 어쩔 수 없다. 이 시대의 법률이 그렇다.여자에게 불공평하다.만약 현대라면 남편을 배신하고 바람을 피우다 들키면 고작해야 매를 맞거나 이혼하는 정도이고 극소수의 극단적인 케이스나 연예뉴스 헤드라인과 검색순위 1위에 오르는 정도다. 일례로 모 사업가와 연예인이 그렇다.원경릉은 물러나왔다.목여태감이 밖에서 기다리다가 원경릉을 보고 미소를 지으며: “왕비마마, 가셔도 되겠습니까?”원경릉이 목여태감 얼굴의 웃음을 보고 참을 수 없어: “태감, 우리는 지금 사람을 죽이러 가는 길이예요. 이게 웃을 일인가요?” 목여태감이 원경릉에게 의미심장하게: “왕비마마, 만약 황제 폐하께서 왕야를 믿지 않으셨으면 지금 죽는 사람은 누가 될까요?”원경릉이 순간 부르르 떨렸다.비록 황제가 우문호를 죽일 리 없지만 만약 황제가 다섯째를 믿지 않았다면, 비빈을 겁탈하고 궁중의 법도를 어지럽혔으니 다섯째는 차라리 죽는 것만 못하지 않을까?이런 상황에 원경릉은 무슨 자비가 어쩌고 하며 어리광이란 말인가?소빈은 덕상궁에 있다. 덕비는 아직 이 사실을 모른다.목여태감이 흰 비단을 받쳐든 궁녀를 데리고 가자 덕비의 안색이 번했다.그녀가 원경릉을 보자 원경릉이 작은 목소리로: “황제 폐하께서 저더러 형집행을 지켜보라 하셨습니다.”덕비가 원경릉의 손을 끌어 당기고 작게 탄식하며: “내
소빈의 최후원경릉이 이 말을 듣고, 먼저 덕비를 봤다.내로라하는 어진 후궁의 몸으로 덕비가 받은 가정교육은 이런 충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확실히 덕비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것처럼 머리속이 새하얘졌다가 천천히 정신을 차리자, 손발이 마비될 정도로 화가 나서 소빈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얼굴을 부들부들 떨고 겨우 뱉은 말이, “부끄러운 줄 모르고 지껄이는 구나!”소빈의 얼굴에 비현실적인 미소가 떠오르는데 마치 안개 속의 꽃 같아서 처량한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소빈은 덕비에게 계속: “덕비마마, 내가 부끄러움을 모른다고? 당신은 부끄러움을 아는 모양이지? 하지만 당신은 죽을 때 아무것도 남은 게 없을 걸, 은총은 허무한데 외모가 늙은 뒤엔 후회해도 소용없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뜨겁게 사랑했던 적이 있기나 했을까?”“그 입 다물지 못할까!” 덕비가 소빈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얼굴이 새파래지도록 화가 나서, “어서 죽음을 받아들이거라.” 소빈이 느릿느릿 흰 비단으로 걸어가 손을 뻗어 만졌다.원경릉은 이 사람이 비록 나쁜 자지만 그녀의 선택이 만약 오숙화와의 사랑이었고 자신의 삶에 충실했던 것이었다면, 죽을 지 언정 아마 비장한 심정일 것이다.사는 법이 달랐다. 그 뿐이다.덕비의 안색이 얼음처럼 차가워지며 소빈에게 일말의 자비나 긍휼의 마음도 없어졌다. 그저 냉정하게 그녀가 흰 비단을 쥐는 동작을 보고 있다.원경릉도 그녀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목을 매고 자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어이없게도 소빈은 흰 비단을 안고 땅에 꿇어앉아 실성한듯 통곡하며, “덕비마마, 황제폐하께 소첩이 망령된 행동을 했으나 다시는 그러지 않을 테니 용서해 달라고 말씀드려 주세요. 저를 출궁시키시든 옥에 가두셔도 되니 제발 제 목숨만은 살려주세요.”원경릉은 이런 갑작스런 돌변을 감당하지 못하겠다.소빈은 방금까지 조금도 후회의 기색 없이 득의양양 하게 자신의 인생관을 떠벌리더니 갑자기 태도가 돌변했다. 소빈의 말에는 전혀 동조할 수 없지만 열정과 냉정을 오가는
팔황자를 죽이려 한 것은 누구인가?덕비의 강철같던 마음도 아주 매몰차진 못해서, 떨리는 목소리로: “진작에 이럴 줄 몰랐 더냐? 성지가 이미 내렸으니 누가 명을 어길 수 있겠느냐? 네 목숨은 살릴 수 없다. 하지만 네 가족은 너로 인해 연루되지 않을 테니 가거라!”소빈이 얼굴을 감싸 쥐고, “싫어, 싫어!”원경릉은 더이상 지켜볼 수 없다고 생각했다.원경릉 생각에 소빈은 정말 죽을 죄는 아니다.죽어 마땅한 건 오숙화다. 태감을 죽였으며 팔황자를 해친 건 전부 오숙화지 소빈과는 무관하다.원경릉이: “오숙화가 태감을 죽이고 팔황자를 해치려 할 때 너는 말렸느냐?’”소빈은 이미 울어서 정신이 나간 상태로, 원경릉의 질문을 듣고 눈을 굴리더니, “그래요, 말렸어요, 하지만 말려지지 않았어요, 오숙화가 죽인 거 예요. 악독한 건 그 사람이예요, 이건 전부 저랑은 상관없어요.”하지만 소빈이 눈을 굴리는 순간 원경릉은 실마리를 찾아냈다.원경릉이 소빈을 노려보며, “초왕이 오숙화에게 물었다. 태감과 팔황자를 죽이자고 한 건 소빈 생각이었다고 하더군.” “거짓말이예요.” 소빈이 화를 내며, “그 사람은 배은망덕하고 인면수심이예요, 그 사람이 죽였어요, 전 아니라고요, 전 그 사람이 그렇게 못하게 했어요.”“그러니까, 오숙화가 초왕에게 거짓말을 했다?” 원경릉이 차갑게 말했다.“그 사람이 거짓말 한 거예요, 그 사람이 거짓말 한 거예요……” 소빈은 초점 잃은 눈으로 말했다.원경릉이 자리에 앉아: “거짓말을 하는 건 너다. 소빈, 내가 비록 심리학을 전공하진 않았지만 네 거짓말 정도는 알아낼 수 있어, 너와 오숙화의 관계에서 네가 주도적인 자리를 점하고 있었어. 그래서 오숙화는 네 명령을 듣고 일을 저지른 거니 네가 태감을 죽인 거다.”소빈은 숨을 헐떡이며 창백한 얼굴로, “전….전 궁지에 몰려서 어쩔 수 없었어요, 이태감의 계획은 절 죽이는 거였어요, 팔황자는 저만 보고 오숙화는 보지 못하게 했어요. 전 죽을 운명이었다고요. 죽이지 못하게는 할 수 없지
소빈의 죽음과 황후의 생각목여태감이 사람을 데리고 들어와 소빈을 달아 올리자 소빈이 절규하며 몸부림을 치지만 어찌 건장한 금군의 시위를 당할 수 있을까?소빈은 목이 매달려 목소리가 목구멍에 막혀 끽끽거리며 두 발을 버둥거렸다.원경릉은 고개를 들지 않고 한 쌍의 하얀 비단 자수 꽃신이 얼굴 앞에서 격렬하게 움직이는 것을 봤을 뿐이다.마치 일 평생처럼 길게 느껴졌으나 1분 남짓한 시간에 두 발은 몸부림치기를 멈추고 늘어졌다.원경릉은 허리를 굽혀 ‘우웩’하고 토했다.원경릉은 힘들었다. 소빈이 죽어 마땅하든 아니든 한 생명이 눈 앞에서 사라지는데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이다.희상궁이 들어와 원경릉을 부축해 밖으로 나가 돌계단에 앉아 크게 숨을 들이 쉬게 했다. 하지만 여전히 심장이 큰 손에 쥐여 짜이는 듯 원경릉은 숨이 쉬어 지질 않았다. 희상궁의 손이 원경릉의 등을 쓸어주며, “왕비마마 소빈때문에 슬퍼하실 필요 없습니다. 백 번 죽어 마땅해요.”원경릉은 자기 손가락도 떨리고 있음을 발견하고, “소빈때문에 슬프지 않아, 난 그냥…… 애초에 잘못 한 일을, 모든 사람이 다 돌아가서 다시 할 수 있는 건 아니란 생각이 들어서.”“가요, 덕비마마와 같이 보고 드리러 가야지요.” 희상궁이 원경릉의 생각을 알지만 목여태감이 벌써 밖에서 기다린지 오래되어 같이 보고 드리러 갔다.원경릉이 일어나 걷는데 걸음이 비척거린다.밖에 가마가 준비되어 있어 원경릉과 덕비는 가마를 타고 청화전까지 갔다.명원제는 청화전에서 원경릉과 덕비, 그리고 목여태감을 맞았다.냉정언도 있다.냉정언은 이미 건곤전에 우문호를 찾아갔다 왔고, 사건은 우문호가 이미 7~80%는 해결했다. 그래서 그는 단지 금군에게 가서 다시 확인하고 몇 명에게 물어서 사건을 명확하게 할 수 있었는데 원경릉이 와서 소빈 일을 보고하기 전에 냉정언이 이미 사건을 황제에게 보고했다.덕비가 소빈의 임종직전의 말을 보고하자 목여태감과 원경릉이 덕비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증언했다.소빈에 관한 증
냉정언과 우문호의 대화원경릉은 팔황자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명원제는 예친왕을 불러 들여 냉정언과 셋이서 어서방에 가 한동안 얘기를 나눴다.깊은 밤, 성지가 기왕부에 도착했는데, 태후의 생신이 가까웠으니 기왕은 호국사(護國寺)에서 태후를 위해 한달간 복을 빌며 재계하고 경을 읊으라고 것이다.이런 식의 성지는 황제의 뜻이 무엇인지 추측하기 어렵다.과거에도 태후의 생신 전에 복을 빈 적이 있으나 대부분 친왕비나 비빈이 가서 2,3일 있었던 것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기왕이 직접 가고 무려 한 달간이다. 참으로 의미심장하다.냉정언은 출궁하기 전에 건곤전에 우문호를 보러 갔다.냉정언은 당면한 일에 대해 황제가 어떻게 처리했는지 얘기하자 우문호는 예상대로라 생각했으나 기왕에게 호국사에 복을 빌러 가라고 했다는 얘기엔 다소 의아해 했다.“아바마마께서 무슨 뜻으로 그러셨지? 이 일이 기왕한테까지 알려졌나?” 우문호가 물었다.“거기까진 몰라, 드러난 건 이태감이고 기왕이 뒤를 봐주고 있었다 증거는 어디도 없어. 게다가 이태감은 자진했지.” 냉정언이 말했다.우문호가: “그게 이상하단 거야. 만약 기왕까지 연루된 게 아니면 아바마마의 이번 조치는 벌 주신 거 아닌가?”“벌 주신 게 아니다?” 냉정언이 웃으며 원래 냉담한 얼굴에 약간 비꼬는 듯한 기색이 떠돌며, “호국사는 황실의 절이라 주지인 혜덕대사(慧德大師)는 노오왕(老吳王)으로 태상황 폐하의 친 동생이자 소요공과는 막역한 친구 사이가 아닌가. 따라서 소요공은 기왕을 만나려고 애쓸 필요 없지. 모두가 알듯이 황제가 기왕을 호국사로 보낸 건 벌이 아닐 거야. 설마 기왕에게 정말 불심이 가득해지길 바라거나, 마음을 가다듬고 수련하길 기대하신 건 아닐 걸?”우문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네 말이 맞아, 하지만 나가려면 명분이 있어야지. 이 일은 표면적으로 기왕과 아무 상관이 없지만, 아바마마는 기왕의 어떤 점에 화가 나신 걸까?”“증거가 없다는 게 황제폐하께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뜻은 아니지. 이태감이 어전(御
황제의 아들에 대한 평가명원제는 예친왕, 냉정언과 얘기를 나눈 후 기왕부에 성지를 내리고 어서방으로 돌아왔다.목여태감은 명원제에게 쉬길 권했지만 명원제는 고개를 젓고, “들어오너라, 짐 곁에서 얘기 좀 하자.”목여태감이 들어와 우선 차를 끓여서 올린 후 손을 모으고 한쪽 곁에 시립해 있다.명원제는 나한상에 반쯤 기대 앉아 미간을 주무르는데 이마의 주름이 더욱 깊어진 것 같다.“큰애가 올해 서른이지?” 명원제가 천천히 입을 열었는데 피로해서 목이 잠겼다.“예 폐하, 그렇습니다. 기왕 전하는 올해 서른이십니다.” 목여태감이 답했다.명원제가 ‘흠’하더니, “시간이 정말 빨라, 짐이 어제 걔들을 봤을 때 아직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거 같았는데 눈깜짝할 사이에 형제를 해치는 법을 알고 말이야.”목여태감이 깜짝 놀라 얼른 무릎을 꿇으며 당황해서: “황제 폐하!”명원제가 냉소를 지으며, “짐이 통 얘기를 안 했어 그렇지 않은가? 짐이 말하지 않으면 아는지 모르는지 눈치채지 못하겠나?”목여태감은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짐의 아들 중에 짐은 큰 아이에게 기대가 컸어, 어릴 때부터 탁월했고 총명하고 침착했지. 그런데 요 근래 갈수록 경솔하게 자만하고, 위세가 날로 커지는 것이 큰 애의 속셈을 짐이 모를 줄 아는가? 짐은 큰 애한테 실망했네.”“폐하, 기왕 전하는 고치실 것입니다.” 목여태감은 황제의 의중을 알지 못해 함부로 추측할 수 없고 그저 작은 소리로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명원제가 엄한 목소리로: “고쳐? 성격이야 고칠 수 있지만 야심은 어떻게 고친다는 말이냐? 지금 아직 태자인데도 형제를 해치는데, 득세한 뒤 짐이 더 늙기라도 하면 형제들이 전부 큰 애 손에 죽지 않겠느냐?”목여태감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 “폐하 고정하시옵소서!”“둘째는 평범하고, 셋째는 유능하지만 성질이 급하고, 넷째는 그래도 재주가 좀 있는가 싶은데 아쉽게도 속이 좁아서 사람을 포용하질 못하고, 여섯째는 차분한데 병을 앓고 나은 후라 땅을 떼어주어 분봉왕으로 유유자
깨어난 팔황자의 증언혈액이 섞이면 신분이 크게 떨어지거나 하늘의 보우하심이 줄어든다고 생각했다.원경릉은 황후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실지로 원경릉은 이미 완전히 지쳐서 뻗기 일보 직전이었다.황후는 그녀가 반응을 보이지 않자, 더욱 분통을 터트렸으나 황제가 신임하니 달리 도리가 없었다.궁에서 보낸 지 5일째, 원경릉이 뼈만 앙상하게 남은 걸 보시고 하늘도 불쌍하게 여기셨는지 마침내 팔황자 상태가 크게 호전되었다.팔황자는 깨어나서 눈을 뜨고 계속 원경릉을 바라봤다.원경릉이 웃으며 물러났다.황후가 달려와서 팔황자를 끌어안고 엉엉 통곡했다.궁녀가 와서 황후를 부축하고 어의도 와서 기쁜 목소리로 명원제에게: “안정되셨습니다. 안정되셨어요.”명원제가 주변 사람들을 모두 물리고, 원경릉만 남게 했다.황후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으나 어명을 따를 수 밖에 없어 물러나 밖에서 기다렸다.원경릉도 가슴이 쿵쾅거렸다.원경릉은 황제가 최후의 진상 조사를 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이 진상 조사는 아마도 황제가 아직 다섯째를 믿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그리고 어쩌면 황제는 다섯째의 결백을 철저하게 밝혀 주기 위해서 일지도 모른다.어떤 쪽이든 물을 건 묻겠지.그녀가 걱정하는 것은 팔황자가 막 깨어났는데 그 기억이 여전히 남아 있을까? 그리고 기억에 착란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점이다.명원제의 손이 팔황자의 얼굴을 매만지며 사랑이 넘쳐 가슴이 아릴 정도로, “귀요미야, 아직도 아파?”“아파!” 팔황자가 말했다. 목소리가 작고 하나도 힘이 없다.“착하지, 조금만 참자, 그러면 금방 안 아플 거야.” 명원제가 다독거렸다.“아파!” 팔황자가 여전히 말했다.명원제가 고개를 돌려 원경릉에게, “진통제가 있나?”“드렸어요.” 원경릉이 말했다.명원제는 팔황자의 손을 잡고, “들었지? 진통제가 들어 갔으니까 곧 안 아플 거야.”팔황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을 돌려 원경릉을 봤다.원경릉이 약간 앞으로 기대며, 팔황자에게 힘내란 눈빛을 보냈다.명원제가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