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왕의 황룡포와 원경릉의 첫 외출큰 고비는 넘긴 셈이다.하지만 원경릉과 우문호 둘 다 때가 되면 다시 이 문제에 맞닥뜨릴 것을 알고 있으며, 다음엔 또 어떤 방법으로 피해야 할 지 알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관점을 바꿔 생각하면 원경릉은 사실 아주 기쁘다.왜냐면, 원경릉 혼자 관계를 애써 끌고 가는 게 아니라 우문호가 함께 있기 때문이다.이번 같은 일을 겪고 나면 두 사람 사이가 더욱 깊어진다.고생고생 한달을 보내고,입동이 되었다.날씨가 추워 원경릉은 움직이기가 싫었다.이제 먹고 마시는 것도 거의 정상으로 돌아와 가끔 토하긴 하지만 전에 비하면 양반이다.배 속에 아이는 점차 자리를 잡아가서 어의가 매번 진맥을 하고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진전이 빠르 군요. 진전이 빨라요.”제왕은 이 날 후궁을 맞았는데 마침 첫 눈이 내렸다.친왕이 후궁을 맞아들이는 일은 큰 일이라 제왕부는 주연을 성대하게 준비하고 형과 형수인 우문호와 원경릉은 축하인사를 해야 했다.기왕이 공을 세우고 수도 경성에 돌아온 날도 공교롭게도 마침 이 날이다.황제 폐하는 크게 상을 내리고 기왕이 고작 한달 보름이란 짧은 시간 안에 정강부의 비적 떼를 전멸한 것을 치하했다.명원제는 기왕에게 황룡포를 내렸다.물론 밝은 황색은 아니지만 황제가 황룡포를 하사했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겠는가?만조 백관의 마음 속에 추측이 난무했다.역대 황제는 황룡포를 오직 태자에게만 하사했다. 현 황제의 이와 같은 행동은 기왕이 태자라는 암묵적 의미가 아닐까?그렇다, 기왕은 원래 공적이 남달랐고 이젠 비적 떼를 토벌해서 황룡포까지 받았다. 기왕은 황제의 장자로 황제가 그를 황태자로 세우고자 하면 말 그대로 순리대로다.불쌍한 건 초왕으로 왕비가 회임을 한 덕에 태자의 자리에 안정적으로 오를 것이라고 아직도 생각하는 모양이니 말이다. 배속의 아이가 아들인지 딸인지 아직 결정된 것도 없지만 아들이라고 쳐도 그 아이한테까지 차례가 돌아온다는 보장이 없다. 장자와 적자가 모두 있는데 후사
제왕이 후궁을 맞는 연회안에는 문영공주, 진평공주, 안평공주가 자리를 잡고 있고, 친왕비는 기왕비를 제외하고 모두 자리를 잡고 있다.손왕비, 위왕비(魏王妃), 안왕비(安王妃) 모두 곱게 화장을 하고 신분에 걸맞는 화려함과 귀티가 흘렀다.제왕비 주명취는 중심에 앉아 있는데 크고 붉은 모란이 수놓아진 옷을 입고 머리엔 자옥 비녀를 꽂고 아름답게 화장한 모습이 고상하고 품위가 있다.원경릉은 주명취의 얼굴에서 싫은 기색을 발견할 수 없고, 미세한 표정 하나하나도 상황에 딱 들어맞았다.그렇다. 제왕이 후궁을 맞는 것을 주명취는 자기 손으로 준비했다.원경릉이 손왕비의 말을 듣기론 제왕이 후궁을 얻는 것을 원하지 않았는데 주명취가 나서서 황후에게 주선해달라고 했다는 것이다.주명취는 원경릉에게 들어오라며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초왕비 오셨어요? 어서 앉으세요.”“제왕비 고마워요!” 원경릉이 말했다.임신하고 처음 외출한 원경릉은 국보 팬더 같은 대우를 받고 있는데, 공주와 친왕비들이 전부 세심하게 배려해서 원경릉을 자리에 앉히더니 차와 간식을 종류별로 잘 살피고 나서 원경릉이 먹도록 했다.원경릉이 음모라도 빠지는 날엔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은 무사할 수 없을 게 분명하다.원경릉은 자기가 여기 있으면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는 것을 느끼고: “다들 천천히 앉아 계세요. 저는 나가서 좀 걸을 게요.”손왕비가 웃으며 일어나, “나도 나가서 좀 걷죠. 맞아요, 초왕비는 아직 제왕비에게 축하 인사 안 했죠?”원경릉은 당황스러웠다. 축하? 손왕비가 비꼬는 건가? 축하란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원경릉이 손왕비를 보니 손왕비 얼굴에 농담하는 기색이 전혀 없다.원경릉은 최근 계속 사람들의 덫에 걸려들어서 조심조심 눈치를 보며, “잠시 후 제왕을 뵙는데 제왕전하에게 축하 드려야 맞죠.”주명취가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이 왔으면 체면은 서지요. 축하야 입에 발린 말이니, 신경 쓰지 않아요.”원경릉은 정말 상당히 당황했다. 정비 입장에서 오늘은 그녀에게 가장 불쾌한
사랑하는데 어떻게 후궁을?제왕은 주명취를 사랑하는데 왜 후궁과의 결혼을 반대하지 않을까?원경릉은 줄곧 주명취에 대한 제왕의 사랑이 수도 경성에서 최고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이런 사랑도 결국 제삼자를 받아들여야만 하다니.원경릉은 여기 더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손왕비에게: “저 좀 불편해서, 돌아가게요.”“이렇게 일찍 돌아간다고?” 손왕비가 어리둥절해서 원경릉의 마음을 헤아리며, “제왕비가 안타까워서 그러는 거지? 그럴 필요 없어. 제왕비는 시켜서 하는 거지만 오늘 기분이 좋아, 믿을 수 있겠어?”원경릉이 손왕비에게, “어째서 기쁠 수가 있죠?”손왕비가 냉랭하게 웃으며, “원 대장군은 계속 중립의 위치로 어떤 친왕에게도 아부하지 않았는데 이제 제왕이 원 대장군의 손녀와 결혼했으니 원 대장군은 제왕 쪽에 서지 않을 수 없게 됐지. 제왕비가 안 기쁠 수 있겠어? 제왕비는 자신에 대한 제왕의 마음이 변하지 않을 걸 잘 알아. 후궁은 장식품에 불과한 거지, 후궁을 맞은 덕에 자신을 태자비로 등극시킬 유력한 조력자를 얻은 셈이 되는 거야. 그러니 제왕비 생각에 마음 아파하지 말고 차라리 원용의를 불쌍히 여겨줘.”원경릉은 후궁을 맞는 것이 태자의 지위와 결부되어 있을 줄 생각치 못했다. 캘 수록 뒤가 구려지는 곳이니 여기 더욱 더 머무르고 싶지 않다.“전 누굴 생각해 아파하는 게 아니라, 그저 여긴 너무 암담해서 돌아가고 싶은 거예요.” 원경릉이 녹주를 불러, “서일에게 마차를 준비시켜라, 나는 먼저 초왕부로 돌아가야겠다.”녹주가 긴장해서: “왕비마마 어디가 불편하십니까?”“아니……”라는 말이 입밖으로 나오는 걸 가까스로 참고 이마를 짚으며: “약간 불편하긴 하지만 왕야께 말씀 드릴 정도는 아니야, 서일을 시켜 날 먼저 데려다 주면 돼.”왕비가 불편하시다는데 왕야께 말씀 드리지 않을 수 없다.우문호는 원경릉이 불편하다는 얘기를 듣고 거의 탁자를 날려버릴 기세로 자리에 있던 다른 사람의 이목은 신경 쓰지 않고 바람같이 달려나갔다.잠시 후 초왕이
원용의의 첫날밤제왕부의 연회가 끝나고 제왕은 신방으로 갔다.제왕은 붉은 덮개를 젖히고 신방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물린 후 원용의의 동그란 얼굴을 향해: “너랑 할 말이 좀 있다.”원용의는 눈을 깜박이며 목을 돌리며 풀더니, “왕야, 말씀하세요.”제왕이: “오늘밤, 난 여기 남아 밤을 보내지 않을 것이다.”원용의는 가슴에 손을 얹고 크게 안도의 숨을 내쉬며, 혀를 내밀고: “진짜 너무 잘됐어요.”제왕이 어리둥절해서, “너…… 슬프지 않아?”원용의가 일어나서 머리에 쓴 쪽두리를 벗어 던지고 탁자로 가서 앉더니 냠냠 맛있게 먹으며, “배고파 죽을 뻔 했어요. 오늘 아침 일찍 단장할 때 수제비 조금 먹은 거 빼고, 하루 종일 지금까지 아무것도 못 먹어서 배가 등가죽에 찰싹 붙었거든요.”제왕이 그녀를 보니 정말 조금도 슬퍼하거나 괴로워하는 기색이 없는 것을 보고 비로소 안심하며, “그럼 너는 먹어, 난 먼저 갈게.”“기다려요.” 원용의가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제왕은 덜컥 마음이 내려 앉았다. 그렇게 쉽게 보내줄 리가 없지. 얼굴이 점차 침울해 졌다.원용의가 제왕에게 비위를 맞추는 표정으로, “초왕비와 친해요?”제왕이 눈살을 찌푸리며, “뭐 그렇지, 왜?”“그럼 초왕부 가실 때 저 데리고 가실 수 있어요?” 원용의가 애원하듯 쳐다본다.“초왕부에 가서 뭐하게?” 제왕의 의심스럽다는 듯 물었다.“초왕비랑 얘기 하게요.”제왕은 그녀를 보며 마음속으로 ‘이 여자 진짜 교활하군, 뒷걸음치는 척하며 앞으로 나가다니. 원용의와 단독으로 외출하면 자연스럽게 같이 있을 시간이 많을 수밖에 없잖아.”이거 만만치 않은 상대다.제왕은 평소처럼: “다음에 갈 때 너에게 말해주마.”“내일 가요?”“안가!”원용의가 고민하며, “그럼 모레?”제왕이: “모레는 처가에 인사하러 가는 날이 아니냐?”“글피는?” 원용의가 또 캐묻는다.제왕이 쌀쌀맞게 홱 소매를 뿌리치고 나가며, “떽떽거리지 마라, 먹는 모습이 흉하구나.”원용의는 당황스럽다. 먹는 모습이
태후전 앞에서 만난 네 사람희상궁, 녹주, 서일이 같이 입궁했다.오늘 친왕비가 입궁해서 문안을 드리는 것 외에도 봉호를 받은 여인들도 부름을 받아 입궁했다.원경릉은 궁중의 사정을 잘 몰라서 궁에서 뭔가 큰 계획을 준비하고 있는 것은 모르지만 순수하고 파릇파릇한 아가씨를 보자 가슴이 두근거렸다.태후의 침전밖에서 기다리는 데 주명취가 원용의와 주명양을 데리고 오는 것이 보였다.주명취는 붉은색 비단의상을 입었는데 다소 고루하지만 법도를 정확히 따른 것으로 원경릉이 자세히 뜯어 보니 친왕비의 조례 관복이다.주명양은 여의무늬 흰 주름치마에 목에 진홍색의 산호 목걸이를 걸었는데 알알이 불꽃처럼 빛나서 이목을 끌었다.마치 주명양의 얼굴 같고, 복숭아나 자두처럼 요염하게 아름답다.이와 달리 원용의는 다소 통통 튀게 황색과 녹색을 섞어 입고, 머리는 하나로 틀어 올려 방울 소리가 나는 비녀를 꽂았는데 이런 복장은 결혼한 여지 같기보다는 과년하도록 시집가지 않은 소녀 같다.원용의는 원경릉을 보더니 눈빛을 반짝이며 폴짝 뛰어왔다. 고지식하면서도 열렬하게 원경릉을 바라보며, “초왕비 언니, 언니도 계시네요.”원경릉이 미소를 띠고 동글동글한 얼굴을 봤다. 샤오란 사건 직후라 원경릉은 귀여운 동그란 얼굴에 약간 거부감이 들어서 조금 냉담하게, “그래요, 원후궁 안녕하세요.”하지만 원용의는 조금도 화를 내지 않고 배실 배실 웃으며: “초왕비 언니 안녕하세요.”언니, 언니 하는 건 뭔가 부탁할 일이 있어서 일 가능성이 높다. 원경릉은 여전히 일정한 거리를 유지 하고 있다.주명양은 차갑게: “아는 얼굴이라고 쌀쌀맞게 구는데 들러 붙는 꼴이라니, 부끄러움을 모르네. 초왕비 눈에 들기나 하겠어요? 초왕비께선 지금 황실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있어서 눈이 이마에 가서 붙었을 텐데.”원경릉은 대꾸하지 않았다. 주명양의 말발이 날카로워서 적수가 아니라고 판단했으므로 대답하지 않는 게 최선이다. 원용의는 받은 적 없는 모욕을 겪었지만 원경릉이 나서서 간섭할 수는 없다. 원
태후와 현비의 관심, 원용의의 어머니두사람이 목여 태감 앞에서 한바탕 연극을 한 그 날 이후로 한동안 후궁을 맞아들이라는 어명이 없었다.원경릉은 다행히 이 일은 끝났구나 싶었는데, 눈 앞에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들춰질 줄 몰랐다. 황제 폐하께서 어명을 내릴 생각이 없어도, 주명양의 말이 입밖으로 나온 이상 만약 결혼이 이뤄지지 않으면 주씨 집안의 체면이 땅에 떨어진다.주씨 집안이 체면을 구기려 들까?원용의가 회한의 얼굴로 주명양을 쳐다봤다. 원래 초왕도 후궁을 들인다고? 미리 알아봤으면 초왕에게 시집갈 걸, 그럼 초왕비 언니 동생이 되는 건데.희상궁은 숨죽이고 원경릉을 부축하며, 행여 주명양의 말로 원경릉이 실태를 범할까 걱정했다.주명양은 음험하게 원경릉을 보며 답을 기다렸다.원경릉은 침착하게: “나랑 그대는 절대 자매가 될 수 없습니다.”주명양도 이 말의 의미를 눈치 챘고, 주명양이 알아 들었다는 걸 원경릉도 알았다.말 나온 이상, 너에게 주재상이 있으면 나에겐 태상황이 있으니 우리 한번 끝까지 가보자.주명양이 냉소를 지으며, “인연이란 것이 참으로 사람 맘대로 되지 않더군요.”“인연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원용의가 나섰다. 초왕비 언니는 주명양을 데려올 생각이 없으니 의리 있게, “네가 초왕 후궁이 되려면 정말 누군가의 결정이 필요한데, 초왕비 언니가 허락하지 않는 다니 넌 갈 수 없어. 네가 홀딱 벗고 가서 초왕을 꼬셔도 안돼. 초왕은 너 같은 걸레 안 좋아하거든.”주명양이 쌀쌀맞게 몸을 돌리며 원용의와 얘기할 가치가 없다는 뜻을 표시했다.주명취는 전혀 도울 수 없었는데, 어쩌면 도울 생각이 없었을 수도 있다. 그저 냉정하게 수수방관할 뿐이다.원용의가 원경릉에게 고민스런 표정으로: “초왕비 언니, 제 말이 너무 막 나간 거예요?”원경릉이 원용의에게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하지만……내 속마음도 그래.”동그란 얼굴이 순간 찬란하게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나 화사하게 빛났다.같이 들어가 태후 마마께 인사를 드리는데
태상황을 만나러원경릉은 문득 어떤 부인이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부인은 양부인 예친왕비와 일행으로 부인은 손을 다쳐서 원경릉이 지혈해 줬다.“네 엄마가 손을 다치셨던 분이야?” 원경릉이 물었다.“맞아요. 맞아요!” 원용의는 원경릉이 생각해 낸 것에 더욱 감동해서 하염없이 그녀를 바라보며, “왕비 언니, 우리 엄마 좀 만나주실 수 있어요?”원경릉이 미소를 지으며: “좋아, 그럼 내일 네가 부인을 모시고 오렴, 난 초왕부에서 기다리도록 할게.”“잘됐다. 너무 잘됐다!” 원용의가 감동해서 말을 잇지 못한다.원경릉은 다시 한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만약 말한다면 원용의는 정말 그렇게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 복잡한 사람임이 분명하다.이 시국에는 모두 가면을 쓰고 있으니, 원경릉도 조심하는 게 상책이고, 이 원부인을 한 번 오시라고 하는 게 앞으로 적당하게 거리를 두고 지내기 편하다.원용의는 펄쩍펄쩍 뛰며 좋아라 가고 마침 제왕도 입궁해 태상황 폐하께 문안하러 가는 길에 원용의와 얼굴이 마주쳤다. 원용의는 폴짝폴짝 뛰어올라 바로 제왕을 끌어 안고 ‘쪽쪽’하고 뽀뽀하더니 발그레한 얼굴이 아름답고 요염한 한 떨기 꽃처럼, 허리를 굽히고 예를 취하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왕야께서 초왕비 언니에게 저에 대해 잘 말씀해 주신 게 틀림없어요.”말을 마치고 또 폴짝폴짝 뛰어 간다.제왕은 전기 충격을 받은 사람 같다.그 자리에 멍하니 한참을 서서 한 걸음도 꼼짝할 수 없었다.“무엄하다!” 한참 있다가 제왕은 겨우 반응이 터져서 고개를 돌려 분개하며 소리쳤으나, 원용의는 애진작에 즐거운 새처럼 훨훨 날아가고 없다.원경릉과 희상궁, 녹주도 이 상황을 목격했다.녹주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제왕 전하 얼굴이 엄청 빨간 데요.”원경릉은 화가 난 건지 아니면 부끄러운 건지 알 수 없는 빨간 얼굴의 제왕을 보니, 빨게도 진짜 농익어서 곧 터질 것 같은 토마토같이 빨갛다.제왕이 입으론 꿍얼꿍얼 욕을 하면서도 눈빛은 당황스러움과 미혹되었음을 감
그러나 원경릉은 궁금했다. 태상황은 이런 괴상한 물건들을 왜 이렇게 많이 가지고 있는 걸까?이런 영사초(靈蛇草)는 그녀는 듣도 보도 못했다.그녀는 뒤뜰에 영사초 이외에도 괴상한 식물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천천히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있는 정원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꽃을 만지려고 했다. “만지면 안 됩니다!” 희상궁이 다급히 소리쳤다.원경릉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 희상궁을 보았다.“왜 그러십니까?”“그건 식인화입니다.” 희상궁이 창백한 얼굴로 대답했다.원경릉은 식인화의 진면목을 본 적은 없지만 책이나 텔레비전에서 식인화를 본 적이 있는데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이 꽃은 보기에는 장미꽃으로 보이지만 장미처럼 복잡한 꽃잎이 없고 여섯 개의 꽃잎으로 나뉘여져 하나의 소용돌이를 이루고 있으며 그 속에는 여러 노란색 꽃술이 나있었다.희상궁은 원경릉이 믿지 않는 듯한 표정을 하자, 땅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식인화에 갖다 대었다. 나뭇가지가 닿자마자 “찍”하는 소리와 함께 가지가 갈라지고, 꽃잎이 빠르게 닫혔다 열렸다. “이런 걸 어디서 났습니까?” 원경릉이 놀라서 물었다.“소요공이 보냈습니다.” 희상궁이 답했다.소요공이라는 말을 이곳에 와서 열 번도 넘게 들었다. 그녀는 매번 소요공이라는 이름을 들으며 꼭 한번 그를 만나고 싶었다.건곤전을 떠날 때 공교롭게도 주명취와 주명양 자매를 만났다. 원용의는 그들과 같이 있지 않았다. 주씨 자매는 태후 궁에서 나오는 듯 했다. 원경릉은 그들을 본 척도 하지 않고 그냥 지나가려고 작심했다. “초왕비 잠깐만요” 주명취가 원경릉을 불렀다. 원경릉은 고개를 돌리며 “제왕비 무슨 일이죠?”라고 물었다. 주명취는 걸어와 사과를 하려는 듯 “둘째 동생이 원래 입이 방정이지만, 전혀 악의는 없습니다. 초왕비께서 그녀를 좀 이해해 주십시오.”라고 말했다.“예. 그렇게 하죠” 주명양이 악의가 없다고? 말도 안 된다.주명취는 원경릉의 대답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럼 잘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