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후와 현비의 관심, 원용의의 어머니두사람이 목여 태감 앞에서 한바탕 연극을 한 그 날 이후로 한동안 후궁을 맞아들이라는 어명이 없었다.원경릉은 다행히 이 일은 끝났구나 싶었는데, 눈 앞에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들춰질 줄 몰랐다. 황제 폐하께서 어명을 내릴 생각이 없어도, 주명양의 말이 입밖으로 나온 이상 만약 결혼이 이뤄지지 않으면 주씨 집안의 체면이 땅에 떨어진다.주씨 집안이 체면을 구기려 들까?원용의가 회한의 얼굴로 주명양을 쳐다봤다. 원래 초왕도 후궁을 들인다고? 미리 알아봤으면 초왕에게 시집갈 걸, 그럼 초왕비 언니 동생이 되는 건데.희상궁은 숨죽이고 원경릉을 부축하며, 행여 주명양의 말로 원경릉이 실태를 범할까 걱정했다.주명양은 음험하게 원경릉을 보며 답을 기다렸다.원경릉은 침착하게: “나랑 그대는 절대 자매가 될 수 없습니다.”주명양도 이 말의 의미를 눈치 챘고, 주명양이 알아 들었다는 걸 원경릉도 알았다.말 나온 이상, 너에게 주재상이 있으면 나에겐 태상황이 있으니 우리 한번 끝까지 가보자.주명양이 냉소를 지으며, “인연이란 것이 참으로 사람 맘대로 되지 않더군요.”“인연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원용의가 나섰다. 초왕비 언니는 주명양을 데려올 생각이 없으니 의리 있게, “네가 초왕 후궁이 되려면 정말 누군가의 결정이 필요한데, 초왕비 언니가 허락하지 않는 다니 넌 갈 수 없어. 네가 홀딱 벗고 가서 초왕을 꼬셔도 안돼. 초왕은 너 같은 걸레 안 좋아하거든.”주명양이 쌀쌀맞게 몸을 돌리며 원용의와 얘기할 가치가 없다는 뜻을 표시했다.주명취는 전혀 도울 수 없었는데, 어쩌면 도울 생각이 없었을 수도 있다. 그저 냉정하게 수수방관할 뿐이다.원용의가 원경릉에게 고민스런 표정으로: “초왕비 언니, 제 말이 너무 막 나간 거예요?”원경릉이 원용의에게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하지만……내 속마음도 그래.”동그란 얼굴이 순간 찬란하게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나 화사하게 빛났다.같이 들어가 태후 마마께 인사를 드리는데
태상황을 만나러원경릉은 문득 어떤 부인이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부인은 양부인 예친왕비와 일행으로 부인은 손을 다쳐서 원경릉이 지혈해 줬다.“네 엄마가 손을 다치셨던 분이야?” 원경릉이 물었다.“맞아요. 맞아요!” 원용의는 원경릉이 생각해 낸 것에 더욱 감동해서 하염없이 그녀를 바라보며, “왕비 언니, 우리 엄마 좀 만나주실 수 있어요?”원경릉이 미소를 지으며: “좋아, 그럼 내일 네가 부인을 모시고 오렴, 난 초왕부에서 기다리도록 할게.”“잘됐다. 너무 잘됐다!” 원용의가 감동해서 말을 잇지 못한다.원경릉은 다시 한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만약 말한다면 원용의는 정말 그렇게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 복잡한 사람임이 분명하다.이 시국에는 모두 가면을 쓰고 있으니, 원경릉도 조심하는 게 상책이고, 이 원부인을 한 번 오시라고 하는 게 앞으로 적당하게 거리를 두고 지내기 편하다.원용의는 펄쩍펄쩍 뛰며 좋아라 가고 마침 제왕도 입궁해 태상황 폐하께 문안하러 가는 길에 원용의와 얼굴이 마주쳤다. 원용의는 폴짝폴짝 뛰어올라 바로 제왕을 끌어 안고 ‘쪽쪽’하고 뽀뽀하더니 발그레한 얼굴이 아름답고 요염한 한 떨기 꽃처럼, 허리를 굽히고 예를 취하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왕야께서 초왕비 언니에게 저에 대해 잘 말씀해 주신 게 틀림없어요.”말을 마치고 또 폴짝폴짝 뛰어 간다.제왕은 전기 충격을 받은 사람 같다.그 자리에 멍하니 한참을 서서 한 걸음도 꼼짝할 수 없었다.“무엄하다!” 한참 있다가 제왕은 겨우 반응이 터져서 고개를 돌려 분개하며 소리쳤으나, 원용의는 애진작에 즐거운 새처럼 훨훨 날아가고 없다.원경릉과 희상궁, 녹주도 이 상황을 목격했다.녹주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제왕 전하 얼굴이 엄청 빨간 데요.”원경릉은 화가 난 건지 아니면 부끄러운 건지 알 수 없는 빨간 얼굴의 제왕을 보니, 빨게도 진짜 농익어서 곧 터질 것 같은 토마토같이 빨갛다.제왕이 입으론 꿍얼꿍얼 욕을 하면서도 눈빛은 당황스러움과 미혹되었음을 감
그러나 원경릉은 궁금했다. 태상황은 이런 괴상한 물건들을 왜 이렇게 많이 가지고 있는 걸까?이런 영사초(靈蛇草)는 그녀는 듣도 보도 못했다.그녀는 뒤뜰에 영사초 이외에도 괴상한 식물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천천히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있는 정원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꽃을 만지려고 했다. “만지면 안 됩니다!” 희상궁이 다급히 소리쳤다.원경릉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 희상궁을 보았다.“왜 그러십니까?”“그건 식인화입니다.” 희상궁이 창백한 얼굴로 대답했다.원경릉은 식인화의 진면목을 본 적은 없지만 책이나 텔레비전에서 식인화를 본 적이 있는데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이 꽃은 보기에는 장미꽃으로 보이지만 장미처럼 복잡한 꽃잎이 없고 여섯 개의 꽃잎으로 나뉘여져 하나의 소용돌이를 이루고 있으며 그 속에는 여러 노란색 꽃술이 나있었다.희상궁은 원경릉이 믿지 않는 듯한 표정을 하자, 땅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식인화에 갖다 대었다. 나뭇가지가 닿자마자 “찍”하는 소리와 함께 가지가 갈라지고, 꽃잎이 빠르게 닫혔다 열렸다. “이런 걸 어디서 났습니까?” 원경릉이 놀라서 물었다.“소요공이 보냈습니다.” 희상궁이 답했다.소요공이라는 말을 이곳에 와서 열 번도 넘게 들었다. 그녀는 매번 소요공이라는 이름을 들으며 꼭 한번 그를 만나고 싶었다.건곤전을 떠날 때 공교롭게도 주명취와 주명양 자매를 만났다. 원용의는 그들과 같이 있지 않았다. 주씨 자매는 태후 궁에서 나오는 듯 했다. 원경릉은 그들을 본 척도 하지 않고 그냥 지나가려고 작심했다. “초왕비 잠깐만요” 주명취가 원경릉을 불렀다. 원경릉은 고개를 돌리며 “제왕비 무슨 일이죠?”라고 물었다. 주명취는 걸어와 사과를 하려는 듯 “둘째 동생이 원래 입이 방정이지만, 전혀 악의는 없습니다. 초왕비께서 그녀를 좀 이해해 주십시오.”라고 말했다.“예. 그렇게 하죠” 주명양이 악의가 없다고? 말도 안 된다.주명취는 원경릉의 대답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럼 잘
원경릉은 주명양이 일부러 자신을 자극하는 말을 해서 그녀의 몸을 상하게 하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의학 박사인 원경릉이 초등학교도 다니지 않은 이런 소녀와 말다툼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러나 그녀는 치미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그녀는 희상궁의 손을 잡고, 자신이 화를 내다가 쓰려져도 그녀가 자신을 붙잡을 수 있게 가까이 섰다. “초왕부와 혼인을 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그저 내 화를 돋우려는 건지 모르겠지만 목적이 무엇이든 나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단언컨대 어떤 여인이든 초왕부로 들어오거나 우문호에게 접근하려면 내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게 맞죠? 저는 결코 한 발짝도 다가오지 못하게 할 겁니다.”원경릉이 말을 마치고 배에서 살짝 복통을 느꼈다. 그녀가 몸을 돌리자 주명양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한 발짝도 다가오지 못하게 한답니다! 그 허락을 하는 사람이 죽게 되면 그런 권리도 사라지죠!”이 말을 들은 원경릉은 분노가 치밀어 올라서 가던 길을 멈추고 휙 돌아서더니 그대로 그녀의 뺨을 때리려고 했다. 그러자 희상궁이 그녀를 막아서며 뒤를 돌아 주명양을 보았다.“둘째 아가씨, 그런 악랄한 말을 삼가세요. 바람에도 혀가 날아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조심하세요.”주명양은 구시렁거렸고, 주명취는 희상궁에게 “상궁, 초왕비를 잘 모시고 가십시오. 오늘 일에 대해서는 제가 꼭 찾아뵙고 사과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다.“필요 없습니다!” 희상궁이 차갑게 말했다.원경릉의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이렇게 추운 날 그녀가 땀을 흘리자 상궁은 마음속으로 왕비를 걱정하며 동시에 주명양의 입을 찢어버리고 싶었다.문 앞에 서있던 서일이 상궁이 왕비를 부축하는 것을 보고 놀라서 “무슨 일입니까?” 라고 물었다. “묻지 말고 왕비를 마차에 올리시게.”희상궁이 답했다.마차에 오르자 얼굴이 창백해진 원경릉이 숨을 헐떡였다. “긴장하지 마시고, 숨을 깊게 쉬세요. 괜찮아요. 금방 도착합니다.” 희상궁이 그녀를 위로했다.원경릉은 자기에게 큰 문제
주명양은 담담한 어조로 “저를 위해서요? 그렇다면 노비한테 그럴 필요 없습니다.”라고 말했다.주명취는 그녀의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아 더 이상 그녀와 말을 이어나가지 않았다. 두 자매는 궁을 나와 친정으로 향했다.주부(周府)에 도착했을 때 주명양은 주명취를 챙기지 않고 혼자 집안으로 휙 들어가 버렸다.주명취는 조모를 뵈러 갔다. 수보부인은 지난번 사고로 목소리를 잃었고 지금까지도 회복되지 않았다. 수보부인은 이 저택에서 자신에게 약을 썼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재상의 부인으로서 분수를 잘 지켰고, 부부의 일생이 막바지에 다다른 이 시점에 그녀는 그가 얼마나 모진 사람인지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아끼는 것을 위해서 자신의 육친도 배신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수보부인은 주명취가 오늘 궁에서 초왕비와 희상궁을 만났다는 소리를 듣고 한바탕 치를 떨며 주명취를 향해 고개를 저으며 그 여자를 가까이하지 말라고 손짓했다. 주명취는 “손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명양이 주의하지 않아 걱정입니다.”라고 말했다.수보부인은 천천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저녁. 주수보가 주부로 돌아와 혼자 식사를 하려고 젓가락과 수저를 가져다 놓으라고 분부했다. 그러자 밖에서 사람이 들어와 “나리, 희상궁이라는 사람이 나리를 찾습니다!”라고 말했다.주수보는 고개를 들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희상궁?”“예 맞습니다.” 하인이 말했다.주수보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싶더니 “들어오라고 하게.”라고 말했다.“예!” 하인이 명을 받고 밖으로 나갔다.주수보는 곁에서 시중을 드는 노관사를 보았다. “자네 생각엔 왜 희상궁이 날 찾아왔다고 생각하나?”노관사는 “소인이 감히 추측을 하겠습니까.”라고 말했다.주수보는 담담하게 “아마 초왕비 때문인 것 같네.”라고 말했다.그 말을 들은 노관사가 깜짝 놀랐다.하인이 희상궁을 데리고 들어와서는 몸을 굽혀 인사를 하고 물러갔다.주수보는 일어나서 상궁이 천천히 문턱을 넘어 들어오는
노관사가 몸을 굽히고 밖으로 나가니 방 안에는 주수보와 희상궁만 남았다.주수보는 앉아 그녀를 보며 “앉아서 얘기하게.”라고 말했다.희상궁은 고개를 저으며 마음의 생각을 정리한 듯 그를 보았다.“저번에 당신이 태상황에게 약을 넣으라고 하였고 당신 말대로 내가 행했으니, 우리 사이에 더 이상의 빚진 것은 없습니다.”주수보는 그것은 주명취의 뜻이지 자신의 뜻이 아니라고 해명하지도 사실 주수보도 사건이 벌어진 후에 이 일을 알게 됐다. “나한테 빚진 건 없지.”주수보가 말해다.희상궁은 슬픈 표정을 지으며 “모르겠네요.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어쨌든 다 끝났습니다.”라고 말했다.“그 말 하려고 여기까지 온 것이냐?” 주수보가 물었다.희상궁은 고개를 저으며 “왜 주명양을 초왕부로 시집을 보내려는 것입니까?” 라고 물었다.“그 일은 내 생각이 맞아. 내가 그렇게 하는 데는 뜻이 다 있다.” 주수보가 말했다.“초왕비의 의지에 반하는 행동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초왕은 주명양을 후궁으로 맞이하려 하지 않고, 초왕비도 동의하지 않을 텐데 당신은 왜 남에게 어려운 일을 강요하려 합니까? 오늘 궁전에서 주명양이 왕비에게 불손한 말을 하여 왕비가 태기까지 일으켰습니다. 주부에서 몇 년 동안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 무슨 짓을 했는지 저는 다 압니다. 만약 이 일로 초왕비가 아이를 잃었다고 해도 주씨 집안은 아무 별다른 타격을 입지 않겠죠. 하지만 명심하십시오. 항상 좋은 일만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꼭 있죠.”만약 이 말을 희상궁이 아닌 다른 사람이 했다면 주수보는 크게 노했을 것이다. 하지만 희상궁의 진심 어린 표정에 이 말이 간곡한 충고라는 것을 느낀 주수보는 생각에 잠겼다.“최근 몇 년 동안 나는 방자했다는 것을 알아. 하지만 나는 나이가 점점 들수록 나는 점점 더 내성적이고 침착하게 행동했어. 이제 나는 세상에 모든 곳에 눈이 있다고 생각하네.” 주수보가 항변하듯 말했다.“하지만 당신의 자식들은 아닙니다. 그들은 당신을 등
주명양은 조부가 자신을 불렀다는 소리를 듣고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고, 그녀는 조용히 하인을 불러 세워 물었다.“방금 왕비가 조부를 보고 갔습니까?”하인은 고개를 저으며 “아닙니다. 둘째 아가씨.”라고 말했다.주명양은 인간관계를 꿰뚫고 있어서 조부 곁에 시중을 드는 여러 사람에게 일찍부터 뇌물을 주고 관계를 다졌다. 만약 큰 언니가 조부를 찾아가지 않았다면 조부가 그녀를 불렀을 리가 없다. ‘혹시, 초왕과의 혼사 때문인가?’주명양은 편안한 마음으로 정원으로 나섰다.그녀가 정원 대문을 막 나서려는데 노관사가 다급하게 달려왔다.“둘째 아가씨, 나리께서 밖에서 무릎을 꿇고 있으라고 하셨습니다!”주명양은 놀라서 “무릎을 꿇고 있으라고? 왜?”라고 물었다.“나리께서 지금 화가 많이 나셨습니다. 둘째 아가씨께서는 아무 말 말고 무릎을 꿇고 계세요!”주명양은 조부가 화가 나면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고 있었기에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자신이 왜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관사, 나한테만 말해줘.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러고 있어야 해?”관사는 한숨을 내쉬며 “희상궁이 왔다 갔습니다. 둘째 아가씨께서는 왜 초왕비를 괴롭히신 겁니까”라고 말했다.주명양을 그 말을 듣고 즉시 바닥에서 일어났다. “조부를 뵙고 직접 말씀을 올려야겠다.”관사는 난처한 표정으로 “둘째 아가씨 그냥 무릎 꿇고 계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조부를 만나야겠어. 내가 해명할 수 있어.”‘고작 노비 주제에 조부에게 가서 말을 전하고 내 잘못이라고 단정을 해?’그러자 갑자기 찻잔 하나가 밖으로 날아와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그 파편운 온통 주명양의 몸에 튀었다.주명양을 놀라 급히 뒤로 물러서더니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노관사는 탄식하며 “둘째 아가씨 그냥 무릎을 꿇고 나리가 만나주실 때까지 기다리십시오.”주명양은 무릎을 꿇고 있지만 속으로는 불복하였다. 주명양의 부친과 모친이 이 소식을 듣고 조부를 만나 한참을 얘기하다가
주명취가 주명양의 어깨를 내리누르며 목소리를 낮추고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조부를 화나게 하지 마. 경고하는데 조모께서 실언한 것은 말 한마디 잘못했기 때문이야. 부부의 연도 단칼에 내치시는 분이다. 너라고 다를 것은 없어. 조부께서 화가 나시면 너를 아무 데나 팔아넘겨버릴 수도 있으니 넌 그냥 지금 이것도 감사하다 생각하고 혼인에 만족해라.”주명양은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주명취를 보았다.“나는 믿지 않아…… 믿을 수 없어!”“그때 내가 주부로 돌아왔을 때, 네가 초왕의 첩으로 갈 거라고 했던 거 기억나? 그때 네가 내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인다고 했었지. 하지만 나는 조부의 마음을 알 수 없었어. 제왕은 조부의 외손이기에 조부는 분명 그를 태자로 책봉되게 도울 것이야. 하지만 지금 제왕이 쓸모 없어졌지, 조부도 제왕을 도울 방법이 없어. 그럼 조부가 누구를 선택할 것 같아?”“누구?” 주명양이 물었다.“기왕!” 주명취는 웃으며 “정말 웃기지. 내가 사람을 잘 못 골랐어. 적자니까 조부가 조금만 밀어주면 태자가 될 줄 알았는데…… 지금 기왕이 공을 세우고 조정으로 돌아왔으니 황상께서는 친히 황색 두루마리까지 하사할 모양이야. 기왕이 장자이기도 하고, 기왕비도 병상에 있으니 넌 적어도 정비 자리는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되겠네.”라고 말했다.주명양은 서서히 정신이 들었다.“그럼 초왕은? 조부께서는 초왕을 눈여겨 보시는 게 아니었어?”“초왕의 모비인 현비와 태부는 모두 소씨 가문인데? 조부는 평생 소씨 가문과 모순이 있었어. 조부가 초왕을 태자로 세워 소씨 가문을 도와줄 것 같아?” 주명취가 말했다.이 말을 듣고 주명양은 주명취를 노려보았다.“그래서 언니는 애당초 이걸 알고 정후가 원경릉을 도와 공주부에서 그런 일을 벌일 수 있게 설계한 거야?”“적어도 내 생각에 잘못은 없지. 내가 초왕이랑 결혼한다면 태자비 자리는 멀어질 가능성이 있으니까.”“잠깐만 나 이해가 잘 안되는데, 조부께서는 왜 노력하지 않으셨지? 왜
이리봉청에게 있어 모든 건 지나가지 않았고, 36년 전 일은 여전히 어제 일 같이 느껴졌다.“어머니, 그를 어떻게 처분하시겠어요?” 이리 나리는 이리봉청의 마음을 넘겨짚을 수 없어 함께 걷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생각은 어떠니?” 이리봉청이 다시 되묻자 이리 나리가 원한에 사무친 눈빛으로 말했다. “제게 처분하라고 하면 전 그를 죽여 버릴 겁니다.”이리봉청은 알았다며 대답만 했다가, 다시 30분쯤 걷다가 정자에 앉아 을 때 말을 덧붙였다. “난 안 죽일 거야.”이리 나리가 약간 놀라서 물었다. “어머니, 또 마음이 약해지신 겁니까?”이리봉청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 반대야. 그 인간을 죽이는 게 마음이 약해진 거지. 사실 며칠 동안 이전의 원한을 내려놓을 수 있을지 생각해 봤는데,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 인간을 백번이라도 죽이겠지만, 난 그럴 수 없더구나. 아들아, 게다가 오늘 천문 세가 대문을 들어서는 그 순간, 더욱 마음을 굳혔단다.”이리봉청이 일어나 집안을 둘러봤다. 이곳은 그녀의 가족들이 살아 원래 온통 사람 소리로 가득한 곳이였다. 그들의 웃던 광경이 눈앞에 비치는가 하더니, 눈 깜박할 사이에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그들은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천문 세가는 큰 잘못을 저지른 것도 없는데 멸문지화를 당했고, 가엾게도 그 중엔 아이들이 많아서 제일 어린아이는 이제 태어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었다.이리봉청의 얼굴에 눈물이 타고 흐르며 가슴이 미어졌다. “그자와 소여쌍을 밖에 내버리고 사람을 시켜 지켜보도록 해. 죽게 두지 말고 계속 살려둬. 36년은 더 살면서 이 세상의 고생을 모두 겪어야, 내 마음에 맺힌 한이 풀리고 억울한 망자들도 안식에 들지!”이리 나리는 온몸으로 그 마음이 느껴져, 어머니가 눈물 흘리는 것을 더는 볼 수 없었다. “네, 전부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대로 할게요.”안지여와 소여쌍은 버려졌다. 짧은 며칠 사이에 안지여는 의기양양하던 성주에서 시궁창 쥐로 변해, 사람들이
안지여는 풍도성 지하감옥에 갇혔다. 빛 한 줄기 없는 지하감옥에서 사방에 끝없는 어둠과 절망만이 안지여를 삼키고 있었다.훼천의 형벌은 12 시진 후면 사라져서, 앞으로 안지여는 그저 한 명의 폐인일 뿐이었다.안지여의 결사대가 성으로 공격해 들어오기 전에, 이리봉청은 오 선생을 찾아내 안지여가 저지른 모든 죄를 고백하게 하고 안풍 친왕이 친필로 받아 적었다. 안지여가 당시 천문 세가를 해친 경위를 소상히 써 내려간 뒤, 오 선생과 안풍 친왕의 직인을 찍고 인쇄해서 대중에게 공개했다.안지여의 죄악은 하늘을 찔러 백성들 모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안지여의 결사대의 옛 부하들이 본래 성을 공격해 들어가 안지여를 구출할 계획을 세워놓았으나, 안지여의 죄상이 공포된 뒤로 많은 사람들이 해산하였다. 유일하게 무대장군만이 수천 명을 데리고 성으로 쳐들어왔지만, 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가 이미 대비해둔 덕분에, 경성에서 굴러온 돌이 무대장군의 박힌 돌을 빼내는 전투를 벌였다.풍도성에 온 지 7일째, 안풍 친왕은 풍도성을 접수하고 성에 살던 사람을 쫓아내며 서민으로 강등시켰다.안지여와 소여쌍에 대한 처분은 이리봉청에게 넘겼다.안지여는 캄캄한 지하감옥에서 6일을 지내는 동안, 처음엔 침착한 척 가장했으나 사흘째가 되자 울부짖으며 악독한 저주의 말을 내뱉더니, 나흘째가 되자 용서해달라고 애원하며 참회했다.손발의 힘줄이 끊어진 안지여는 일어나 걸을 수도 없고 심지어 스스로 몫숨을 끊을 힘도 없었다.그 와중에 매일 누군가가 먹고 마시도록 해주고, 상처도 치료해 주어 살 수 있다는 부질없는 희망을 품게 했다.훼천의 말에 따르면, 진정한 절망은 살아도 죽느니만 못하고,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것으로, 온 마음으로 죽기를 바라지만 살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가, 안간힘을 쓴 뒤 다시 절망에 빠지는 것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으로, 사람을 한없이 죽였다 살렸다 괴롭힌다고 했다.결국 안지여를 죽일지 말지 여부는 이리봉청에게 달렸는데, 그녀는 안지여를 단번에 죽여 천문 세가
안지여의 이마에 파란 힘줄이 불끈불끈했으나 냉정을 가장했다. “내가 두려워할 줄 알았나 보지? 죽음도 두렵지 않은데 뭘 더 두려워하겠어?”“넌 두려울 것이야!” 이리봉청이 고개를 돌려 이리 나리를 보고 살짝 그의 팔을 잡았다. “내가 오는 길에 늑대파 사람이 그러던데, 천하에서 제일 잔혹한 형벌을 아는 사람이 늑대파에 있다고. 그게 사실인 것이냐?”이리 나리가 가볍게 답했다. “물론 사실이죠. 훼천이라고 합니다. 늑대골 출신이에요.”“안지여가 버틸 수 있는지 어디 한 번 보고 싶구나.” 이리봉청이 말했다.이리 나리가 엄숙한 태도로 명을 내렸다. “훼천!”그러자 훼천이 급히 나왔다. “이리 나리, 분부하시지요!”이리 나리는 그가 짐짓 냉정한 척하고 있으나 눈빛이 조금씩 허물어져 가고, 몸까지 부들부들 떠는 것이 아주 만족스러워 훼천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시작해!”안지여가 갑자기 큰 소리로 욕했다. “난 네 아버지거늘, 감히 나에게 손을 대다니, 천벌을 받아 마땅한 놈 같으니라고!”이리봉청이 이 말을 듣고 잠시 주저하는 눈빛으로 이리 나리를 바라봤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제 아버지는 오직 저를 키워주신 안풍 친왕뿐이십니다.”이리봉청이 살짝 안도했다. “저 인간이 단지 나만 해쳤으면 네 체면을 봐서 놔줬겠지만 천문 세가의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갔으니 난 용서할 수 없구나.”“이리봉청, 너 언제 이렇게 악랄하게 변했어? 죽이려거든 그냥 죽여. 난 천문 세가 사람을 죽이긴 했어도 그들을 괴롭히진 않았어. 네가 날 죽이려거든 깨끗하게 단번에 죽여!”안지여가 크게 노해 몇 번 몸부림을 치다가 상처가 벌어지는 바람에 배에서 선혈이 흘러나오고, 훼천이 가까이 다가가자, 눈에 두려움이 깊어졌는데, 늑대골 출신 훼천은 온몸에서 피비린내가 뿜어져 나와 안지여를 덜덜 떨게 했다.“이리율!” 안풍 친왕비는 시ㅈ가하기 전에 이리 나리를 불렀다. “내가 여기서 네 엄마와 같이 있을 테니 넌 먼저 나가 있거라!”이리 나리가 안풍 친왕비에게
안지여에게 구원 병력이 없는 상황에서, 이리 나리 일행이 성을 제압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대오가 경성에서 출발하기 전에, 안풍 친왕비가 미리 사람을 풍도성으로 보내 각처, 특히 성 수비군과 군대에 잠입시켜, 음식에 효과가 천천히 나타나는 독을 풀어, 오늘 중독 증상이 나타나도록 독의 분량을 조절했다.적어도 내일까지는 안지여를 도우러 올 사람은 없었다. 독성은 적어도 이틀이 지나야 깨끗해지기 때문에 이틀 동안 그들은 설사와 전신 무기력으로 성에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알아도 와서 도울 수 없었다.그리고 그들이 기력을 회복할 때쯤이면, 안지여는 벌써 죽었을 것이다.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는 성을 통제하고, 안지여 부부를 제압해 두 사람을 줄로 묶고 지혈시켜 주었다.안지여는 요 몇 년 동안 자신이 상당히 대단하다고 여겼다. 이는 풍도성이 부유하기 때문으로, 돈으로 많은 사람을 살 수 있었으며, 여러 곳에서 추켜세워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처절하게 패배한 적이 없었던 이유는 진정한 적이 없기 때문으로, 주변의 떠돌이 비적은 작은 마을 규모로 너무 작아서 소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코 그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적이 너무 약해서였다.조정 사람과 비교했을 때, 그는 제대로 훈련받은 적 없는 비적었기에 일격도 감당할 깜냥이 못됐다.이리 나리는 둘을 중정에 묶어 두었다. 온 바닥에 남은 음식과 깨진 기와가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본 안지여는 마음속 깊이 분노가 일었다. 자신의 생일날, 그를 다치게 한 것이 바로 그의 친자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더욱이 오늘 이렇게 많은 고수가 현장에 있었는데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이런 결말을 맞다니 너무 불쾌했다. 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을 부축하고 안지여 부부 앞으로 가서, 그녀가 안지여 부부를 내려다보자, 그들은 낭패에 달가워하지 않는 기색으로, 이리봉청은 분노하는 마음과 함께 서글픈 마음도 들었다. 그들을 죽이면 커다란 복수는 이뤄 천문 세가 망자의 원혼은 달랠 수 있었다.하지만 저들을 이렇게 쉽게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이리 나리가 검을 휘두르며 안지여를 겨누자, 안지여가 공중으로 뛰어올라 후퇴했다.공자들은 돕고 싶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에게 바로 제압당했다. 안지여는 이리율 것으로 그들은 주변 사람을 제압하기만 할 뿐 옆에 서서 전투를 관전하고 있었다.이리율의 무공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를 가르친 안풍 친왕 부부를 제외하고, 사실 많은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이리율의 검법은 신속하고 맹렬해서 안지여는 상대하느라 쩔쩔매고 구석으로 몰리고 있었다. 성안의 호위들은 늑대 무리와 늑대파, 홍매문 사람들에게 막히는 바람에 안지여는 홀로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그래도 아직은 버틸 수 있었다.하지만 30분을 못 가서 안지여는 질게 틀림없었다.놀란 나머지 계속 실성해 있던 소여쌍이 갑자기 이리봉청을 향해 바싹 마른 손을 뻗어, 그녀의 목을 조르며 광적인 집착과 분노에 사로잡혀 성질을 부렸다. “멈춰, 다들 멈추라고. 안 그러면 내가 이년을 죽여버릴 것이니까!”소여쌍은 무공을 할 줄 알았지만 잘하지 못한 것이 어릴 때부터 계속 중병을 앓아 무공 연습에 소홀했고 성주 부인이 된 뒤로는 더욱 병기에 가까이할 일이 없었지만, 공력만큼은 아직 약간 있었다.소여쌍은 증오의 힘으로 이리봉청의 목을 졸랐는데, 소여쌍이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이리봉청의 목을 부러뜨릴 것만 같았다.안풍 친왕이 차가운 눈빛으로 나서려 하자, 안풍 친왕비가 말리며 고개를 살짝 흔들었는데, 그럴 필요 없다는 뜻으로 뒤에 있던 사람들에게도 참으라는 눈짓을 하자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모두가 이리봉청이 제압당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손가락으로 뭔가를 쥐고 있어 소여쌍의 어깨 위를 휘감고 팔을 눌러 소여쌍이 머리를 돌리게 했다. 이리봉청 손에 쥔 것은 바늘로, 그대로 소여쌍의 오른쪽 눈을 찌르고 들어갔다.소여쌍이 절규하며 이리봉청을 놔주고 선혈이 흐르는 눈을 움켜쥔 채 비틀거리다 바닥에 쓰러져 데굴데굴 구르며 새된 소리를 지르는데, 원망과 저주의 말을 끊임없이 쏟아
풍도성 중정에는 안지여의 아들들과 사위가 그의 곁에 남았는데,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 점점 공포에 질려가고 있었다.‘이 사람들, 아주 대단하구나!’안지여는 이리봉청을 보고 비록 조금 냉정해 보였지만, 여전히 놀라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갑자기 소여쌍이 큰 소리로 웃으며, 몸을 앞뒤로 흔들며 눈물을 찔끔거리더니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이리봉청을 가리키며 원망했다. “뜻밖에 네가 안 죽었단 말이지? 게다가 아들까지 있고. 참으로 황당하구나. 정말 너무 황당해. 원래 죽어야 했을 인간은 죽지 않고, 잘 살아야 할 사람은 36년간 괴로움을 당했어. 이리봉청 네가 날 비참하게 만들었으니 넌 이제 지옥에 떨어져야 해.”이리봉청은 소여쌍의 말을 들은 체 만 체했는데, 그녀 눈에는 지금 안지여만 들어왔다.안지여는 36년을 살아왔지만, 이리봉청에게 있어 36년은 마치 사라진 시간처럼 멸문지화의 원한이 어제 일 같았다.안지여도 이리봉청의 눈에서 분노와 악랄함을 보고, 처음으로 마음속에 두려움을 느꼈다.안지여는 억지로 감정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네 사람을 데리고 가. 지난 일을 묻지 않을 테니. 그렇지 않으면 풍도성에서 곧바로 10만 대군이 올 것으로, 살아서 도망갈 생각은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아.”이리봉청의 목소리가 낮게 잠겼다. “우리는 이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바로 네 성으로 쳐들어갈 수 있어. 넌 이미 졌어.”안지여가 웃었다. “졌다고? 그래?”안지여는 수하의 대장군이 믿음직해서, 그들을 당하게 놔줄 수도 있다고 여겼다. 대장군의 부대는 분명 치밀하게 준비되어 있을 것으로, 아마 지금쯤이면 궁수들이 이미 배치를 마치고 그들을 전부 쏴 죽이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고 말했다. “어머니, 저자와 말 섞으실 필요 없어요. 앉아서 지켜보시기만 하면 됩니다!”말을 마치고 의자를 올리더니 이리봉청을 부축해서 앉혔다.안지여가 이리 나리를 보는데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안지여가 퍼뜩 눈을 돌려 이리 나리를 보았다.‘이리봉청이 저자를 아들이라고 불렀다는 건러니까?이리 나리는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찬찬히 훑어보더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안 성주와 좀 오래된 원한을 따져야 하는데, 관련되기 싫으신 분은 자리를 피해 주시지요!”그때 한 사람이 검을 짚고 일어나 호통을 쳤다. “넌 도대체 어떤 놈이냐? 무슨 자격으로 자리를 피해라 마라야? 안 성주를 귀찮게 할 생각이면 일단 나부터 통과해 보시지!”그는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장검을 뽑아 파죽지세로 이리 나리를 향해 휘둘렀다.이리 나리는 손을 살짝 움직여 손바닥으로 칼자루를 밀자, 검이 날아가며 그 사람의 귀를 베어 한 줄기 피가 공중에 뿌려지더니, 방금까지 기고만장하던 자가 비명을 지르고 귀는 바닥에 떨어졌다.검이 다시 이리 나리 수중으로 정확히 돌아왔다.이 모든 게 3초 안에 벌어진 일이었다.“회선검?” 검법을 아는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외쳤다.현장은, 숨소리마저도 들리지 않았다.회선검은 검마의 검법으로, 그렇다는 건 저 사람이 검마의 계승자?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무리에서 검마를 찾았다. 과연 두 손으로 검을 안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도 차가운 안광이 느껴졌다.과연 진짜 검마구나, 사람들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검마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이리 나리를 흘끔 보더니 속으로 의아해했다. ‘이 자식, 언제 내 비장의 검법을 배운 거야?’이리 나리의 검 끝에선 아직 선혈이 떨어지는데, 여전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말했다. “이 아수라장에 끼고 싶은 거라면, 제가 무례하다고 원망할 생각 마세요.”“무엄하도다!” 안지여가 몹시 놀랐다가 천천히 정신을 차리고 눈을 치켜뜨며 이리 나리를 노려봤다. “너는 내가 누구인 줄 아느냐? 내가 네 아버지다!”이리 나리가 코웃음을 쳤다!안지여의 몇몇 아들이 달려 나와 소리쳤다. “아버지, 저희가 지켜드리겠습니다.”안풍 친왕이 젓가락을 던지고 일어나 차갑게 명을 내렸다
오늘은 성주의 생일이기에 경사라 섣불리 피를 볼 수는 없으므로 칼은 빼 들었지만 먼저 나서서 늑대를 죽이는 사람은 없었다.안지여는 어두운 눈빛으로 ‘늑대 무리라고? 척후병의 보고로는 안풍 친왕이 늑대 무리를 끌고 온다고 했는데, 저들이 의외로 성으로 직접 쳐들어 왔다 이거지?’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안지여는 잔을 들고 꿈적도 하지 않은 채, 무너지기 직전까지 미동도 없는 태산처럼 냉정하고 침착했다. 늑대 무리는 안으로 들어온 뒤로 두 패로 나뉘어 서서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호시탐탐 엿보며 으르렁거렸다.“성주님, 성주님, 저들이 기어코 쳐들어오겠다고….” 문지기가 외치는 소리는 들렸으나 사람은 보이지 않더니, 그보다 조정에서 보낸 사람들이 먼저 들이닥쳤다.앞에 걸어들어오는 두 사람을 안지여는 본 적이 있었는데, 바로 안풍 친왕 부부로 예전에 그들이 천문 세가 사람들을 조사하러 왔을 때 그에게 속은 적이 있었다. 비록 당시 일면식 뿐이었으나 천문 세가 일을 캐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 탓에 그들의 얼굴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어째서 별로 변한 게 없는 거지?’안풍 친왕 부부 뒤에 따라오는 10여 명의 검은 옷을 입은 노인은 그들의 호위 무사일 것으로, 주인인 안풍 친왕 부부는 별 표정이 없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들어와 고개를 들자 괴팍하고 악랄한 얼굴이 안지여 마음에 들지 않았다.안지여는 여전히 일어나지 않았고, 미소는 띠고 있었지만 매서운 눈빛으로 저들이 돌계단을 오르면 그때 일어나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게 그의 태도였다.하지만 안풍 친왕 부부는 돌계단을 오르지 않았고, 손님 중 건배를 권하느라 자리를 비운 사람들 의자에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이 차지하고 앉아, 그들을 대놓고 밀치더니 품에서 자기 젓가락을 꺼내 옆 사람 상관하지 않고 먹기 시작해 사람들이 다 경악했다.그들이 자리를 잡고 앉자 뒤따라 들어오는 사람들이 보였다.두 사람이 사람들에 둘러싸여 천천히 걸어들어오고 있었
풍도성 안은 술잔을 주고받고 건배하며 흥겨운 잔치가 한창 무르익고 있었다.안지여는 오늘 황금색 예복을 입었는데 예복에 거대한 이무기를 수놓았으며, 황실의 밝은 황색과는 약간 구별되었지만,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진짜 곤룡포로 착각할 만큼 거대한 이무기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형상이 구름을 뚫고 솟아오르는 용과 매우 흡사했다.안지여는 자신의 야심을 이미 조금도 감추지 않았다.당연히 안지여는 오늘도 야심을 감출 생각 없이 손님들에게 보란 듯이 자세를 잡았다. 심지어 인근 지역 조정 관리들이 손님으로 왔어도 안지여는 전부터 맺어온 관계였기에, 그들과 개인적인 친분이 매우 두터워 산 넘고 물 건너 저 멀리 있는 황제가 그들을 시시콜콜 관리할 수 없었다.그 자리 있던 사람들은 모두 오늘 황실에서 파견한 일행이 온다는 것을 알고, 연회석에서 큰 소리로 물었다. “성주님, 듣자하니 안풍 친왕 전하와 이리 부마께서 오늘 오신다던데 어째서 안 보입니까?”안지여가 잔을 들고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진심으로 생일을 축하한다면 결국 오겠지요.”“여정을 듣기론 오늘 분명 풍도성에 도착한다고 했는데, 어째서 밤이 되도록 아직 안 보입니까? 설마 성주님이 직접 나가서 맞이하셔야 하는 건 아니겠지요?”“성주님이 가서 맞이하셔야 한다고? 아주 허세가 대단한데? 퉤!”“누가 아니랍니까? 진심으로 생신을 축하하는 거였으면 며칠 전에 풍도성에 도착해 성의를 보여야지, 오늘까지 늑장을 부리다가 늦게서야 와서, 아직도 잔치에 오지 않은 건 분명 성주님의 체면을 안중에도 두지 않은 행태입니다. 제가 보기에 못 들어오게 막고 돌려보내시지요, 마음만 받은 셈 치고요. ”“맞습니다. 그동안 조정에서는 풍도성에서 받은 공물이 적지 않았으니, 만족한 줄도 알아야죠.”“풍도성은 더 이상 조공을 바칠 필요 없어요. 뭐 때문에 그럽니까? 수백 년 전에 풍도성은 원래 북당의 영토가 아니었어요. 선을 긋고 나와 독립해야 합니다.”모두 안지여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서, 몇 잔 들어가자, 비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