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방 앞에 무릎 끓은 우문호우문호가 벌떡 일어나서 원경릉의 입을 막으며,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도 마. 아직 다 생기지도 못한 아이는 마음이 여려서 세세하게 다 마음속에 기억했다가 앞으로 너랑 싸운 단 말이야.”우문호의 긴장한 모습에 원경릉은 그의 손을 치우고 진지하게: “하지만 우리 태아는 안정적이지 않아서……만약……내 말은 그러니까 만약에 유산되면 어떡하지? 실망하고 슬퍼할 거야 그지?”“실망하지 않을 거야.” 우문호는 원경릉의 손을 가져다 입맞추고, 가볍게 그녀의 앞머리를 쓸어주며 아련하고도 부드러운 눈빛으로, “단지 너 때문에 가슴이 아플 거야. 네가 나보다 훨씬 더 슬퍼할 테니까.”원경릉이 눈을 깜박이자 결국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게, 더 말했다 가는 정말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아서 이다.우문호의 가슴을 배게 삼아 그의 심장 고동을 들으며 원경릉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우문호가 사람들 앞에서 술에 취해 도박을 하고 싸운 일은 아침 일찍부터 어사가 황제 폐하께 상소를 올렸고 연루된 사람에 구사도 있었다.두 사람은 어서방 앞으로 끌려갔고, 명원제는 두 사람이 반성하는 의미로 밖에 꿇어 앉아 있으라고 명했다.어서방을 드나드는 대신들 중에 두 사람을 본 사람들은 다 고개를 흔들었다. 초왕은 침착한 성정 인줄 알았는데 이런 짓을 저지를 줄 몰랐다는 얼굴이다.기왕도 어서방에 와서 우문호가 밖에 꿇어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약을 올리며: “다섯째야, 네가 뭘 잘못했지? 기세 등등하게 경조사 관아를 주관하는 부윤이 어쩌자고 술 마시고 도박하고 사람들 앞에서 싸움박질을 해서 이 꼴이 되었냐? 이번엔 큰형도 널 구명해 주질 못하겠으니 착실하게 꿇어 앉아 있으렴.”우문호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상대하지 않았다.얼마전에 후궁이 죽은 사람은 부정한 사람이니까.기왕이 들어간 뒤 구사가: “분명 기왕 전하가 어사한테 알린 게 틀림없어, 그 어사가 기왕 전하의 식객이거든.”우문호는 자신의 잘못을 심각하게 반성하고 있다.
우문호, 지방 파견?우문호와 구사는 황급히 일어났다.목여태감은 구사를 힐끔 보고, “구대인은 계속 끓어 앉아 반성하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구대인도 들어오라는 말씀은 없으셨습니다.”구사는 순간 벙 쪘다. 아니 황제 폐하는 자기 아들만 편애하고 남의 아들 고생하는 건 마음이 안 아프다는 말이지.구사는 어젯밤의 경솔한 행동에 대한 속죄의 의미로 계속 꿇어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우문호가 들어가자 기왕과 내각 대신 손정방(孫庭方)이 안에 있다.손정방은 어서방을 왕래하는 대신이라 어서방을 자주 출입하고 명원제가 그를 각별하게 아낀다.우문호가 앞으로 나와 인사하며, “소신 아바마마를 뵙습니다!”명원제는 쌀쌀맞게 우문호를 흘겨보더니, 눈가를 잔뜩 찌푸리고 아주 기분이 언짢다는 듯, “못난 놈. 친왕이 되어서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좀 봐라.”우문호는 입을 떼며 거의 바보 같은 미소를 띠더니, “아바마마, 죄는 나중에 물으시고 소신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명원제는 차갑게: “네가 저지른 짓에 대해서는 나중에 얘기해라. 짐이 너를 들게 한 것은 너를 파견할 일이 있어 서다.”“파견이요?” 우문호가, “무슨 파견입니까?”명원제가 상소문을 우문호에게 던져주며, “네가 직접 봐.”우문호가 상소문을 보니, 정강부(亭江府) 지부가 올린 것으로 정강부에 최근 비적 떼가 출몰하여 정강(亭江) 부근 마을에 불을 질러 살인과 약탈을 일삼고 있으며, 이미 비적 떼의 손에 12명이 죽었으므로 조정에서 군대를 파견하여 비적 떼를 토벌해 줄 것을 청하는 내용이다.우문호가 어리둥절해 하며: “아바마마, 군사를 파견해 비적을 토벌한다 치더라도 정강 근처 대안영(大安營)에서 병마를 파견하면 될 일이 아닌지요?” 이번 파견은 우문호가 가야할 이유가 전혀 없다.기왕이: “다섯째가 모르는 모양인데, 대안영의 병마는 이미 전부 수사영(水師營)으로 복귀했네. 대군이 이미 출발했지.” “언제 일 입니까?” 우문호가 어이가 없었다. 이 일을 어째서 전혀 모를 수 있다는 말인가?대안
황궁에 원경릉의 임신 소식을 알리다“예,” 기왕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한숨을 쉬며, “사랑이 크다 보니 잠시 슬플 뿐입니다. 아바마마 안 심 하소서. 소신이 얼른 좋아져서 조정과 아바마마의 근심을 덜어드리겠습니다.”명원제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우문호에게, “그럼 이번 파견은 네가……”우문호가 한쪽 무릎을 꿇고, “아바마마 아룁니다.”명원제는 우문호가 가기 싫은 줄 알고 무거운 표정으로, “말해봐라!”우문호가: “이번에 정강에 가서 비적을 토벌하는 일은 가깝고 멀고를 떠나 토벌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확실치 않고, 소신이 상소문을 보건데 정강부도 도적떼의 소굴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따라서 이번 비적 소탕은 한달이 걸릴지 세 달이 걸릴지 알 수 없습니다. 소신이 지금 경조부 부윤 직을 맡고 있어 너무 멀리 나가기는 어려운……”기왕은 초왕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만약 관아 일이 걱정이라면 다섯째는 그럴 필요 없네, 보좌관이 잠시 네 직무를 대신할 수 있으니.”우문호의 마음은 차갑게 식었다.: 그래, 이렇게 3개월, 5개월 가면 경조부 부윤 직이 다른 사람으로 바뀔 까봐 걱정인 거라고.우문호도 돌려서 말하지 않고 직접: “아바마마, 소신이 비적을 토벌하러 가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왕비가 막 임신을 했고, 어의 말이 태아가 아직 불안해 유산 기운이 있다고 합니다. 소신 정강부로 가자니 마음이 좀처럼 놓이지 않습니다.”명원제는 세차게 고개를 들고 우문호에게, “뭐하고 했느냐? 초왕비가 회임을?”“아바마마께 아룁니다. 그렇습니다!” 우문호는 아버지가 된다는 자신감에서 우러나오는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소신 경하 드립니다. 왕야!” 내각대신 손정방이 웃으며 예를 취했다.“손대인 고맙소!” 우문호가 웃으며 말했다.명원제가 일어나 조금 초조한 목소리로, “어의에게 진맥은 청했느냐?”우문호가: “아바마마께 아룁니다. 어젯밤 이미 어의를 초왕부로 청해 진맥한 결과 확실히 회임이라고 합니다. 단지 왕비가 전에 자상을 입은 적이 있어 원기를
원경릉의 회임에 대한 현비와 태후의 반응현비쪽도 원경릉이 회임했다는 소식을 듣고 상당히 기뻐했다.비록 현비는 원경릉을 좋아하지 않지만 좋아하던 말던 원경릉은 이미 초왕비고 이 점은 어쨌든 변함이 없으니 말이다.다시 말해 초왕비는 처가의 힘은 미약하기 그지없지만 만약 적자를 낳는 날엔 상황이 달라진다.이 태아가 아들이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지금 친왕 중에 아직 아들을 낳은 사람이 없다.“이 기간동안 너는 죽을 힘을 다해 원경릉의 복중의 아이를 지키거라. 조정에 무슨 바람이 불고 있는지 너도 아마 대충은 알고 있겠지. 만약 원경릉 복중의 아이가 아들이……” 현비는 목소리를 낮춰 우문호의 귀에 대고: “네가 태자의 자리에 오를 가능성이 가장 높아지는 거야.”현비는 원래 다섯째가 태자의 자리에 오를 자질이 없다고 생각했으나 원경릉이 회임이 현비에게 강심제 역할을 해서 현비의 온몸엔 뜨거운 피가 끓어오르며 투지가 불타올랐다.조정의 정세는 변화무쌍해서 전에 과연 누가 황제 폐하가 후사 여부로 태자를 결정할 줄 생각이나 했을까?우문호가 웃으며, “어마마마, 그런 희망은 품지 마세요. 조정에 부는 바람이 아바마마의 진정한 의중이라고 할 수 없으니까요.”“네가 뭘 안다고 그러는 게야?” 현비는 우문호를 노려보며, “예전이라면 이럴 필요도 없었지만 너도 생각을 해봐. 아바마마가 마음이 급하지 않으시겠어? 아바마마 슬하에 황자가 이렇게 많은데 남자 황손을 데려오는 아들이 하나도 없으니, 백성들이 너도나도 비난할까 두렵구나.”그리고 현비가 하지 않은 말이 한 마디 더 있다.그건 바로 황제 폐하의 마음이 어디에 있던지 중요한 건 조정에 부는 바람이란 말이다.문무대신들이 이 말을 전부 믿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다섯째를 추대할 것이 틀림없다.곧 태자의 지위를 다투는 때 충분히 좋은 패가 될 것이다.현비는 우문호가 어떤 반응을 보이던 계속: “이 태아는 반드시 아들이어야 해. 내가 널 위해 처방을 찾아보마. 민간에 아들을 낳는데 특히 효험이 있다는 비방이 있다는
원경릉의 입덧태후가 눈살을 찌푸리며, “초왕비가 질투심이 많고 속이 좁은 걸 잊었구나. 됐다. 복중의 아이의 얼굴을 봐서 너는 절대로 왕비에게 화내지 말아라. 기껏 참아봤 자 1년반 정도가 아니냐. 아이가 태어나면 할미가 나서서 너에게 후궁을 넉넉히 정해주도록 하마.”우문호는 어서 출궁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얘기했다 가는 후궁 수가 늘면 늘었지 줄어들 것 같지 않다.우문호가 초왕부로 돌아오니 원경릉이 막 탕을 마시고 한바탕 토한 참이다.황제폐하께서 보낸 내의원 원판에게도 보였는데 태아가 확실이 안정적이지 않으니 처방대로 매일 달여서 매일 먹어야 한다고 우문호에게 신신당부했다. 먹을 수 없을 때까지, 임신성 구토는 어쩔 수 없지만 먹을 수 있는 만큼 먹여야 한다고 말이다.우문호는 원경릉의 얼굴이 토하느라 새파랗게 질린 것을 보니 마음이 너무 아파 끌어 안고 관아에 출근하고 싶지 않았다.원경릉은 전신이 힘이 없고, 머리를 우문호의 다리에 댄 채 엉클어진 머리카락이 얼굴을 덮고 맥없이: “저도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 어요. 임신을 했어도 어제 오늘이 아닐 텐데 전에는 토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이렇게 심하게 토하게 됐는지.”우문호는 원경릉의 머리카락을 넘겨주며 가슴 아프게: “약 상자에 약이 있는지 봤어? 토하는 거 멈출 수는 없어?”“먹을 수 있는 건 다 먹었어요.” 원경릉이 한숨을 쉬었다.“정말 내가 너 대신 아플 수 있었으면 좋겠어.” 우문호는 가슴이 갈가리 찢기는 것 같다.원경릉이 쓴웃음을 지으며, “이건 아마 별거 아닐 거예요, 낳을 때가 진짜 고통스럽죠.”현재의 의학수준을 보건데 아이를 낳는다는 건 한 발을 관속에 넣는 거나 마찬가지다.일단 태아의 위치가 바르지 못할 때, 역아나 가로 태위 등으로 큰 출혈이 발생할 경우 구할 방법조차 없다.원경릉은 진심으로 자기가 목숨이 절반밖에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우문호도 마음이 괴롭긴 마찬가지다. 회임은 원래 기쁜 일이지만 궁 안의 압박과 외부 세력의 압박, 임신으로 인
원경릉의 회임의 위험원경릉이 침대로 돌아왔을 땐 이미 절반쯤 죽어가는 상태였다.침대에서 일어나면 하늘과 땅이 뱅뱅 돌고 미친듯이 토한다.어의가 들어오자 원경릉은 창백한 얼굴로 힘없이: “왜 전 이렇게 심하게 입덧을 하나요?”조어의가: “왕비마마, 몸이 많이 상하셨고, 그제 밤에 화가 올라와서 간에 울혈로 혈액 순환이 원활하지 않으니 이렇게 힘이 드신 겁니다. 서서히 몸조리를 하시면 점차 좋아지실 겁니다.”“빨리 몸조리 해주세요. 무슨 약이든지 괜찮으니까 어지럼증이랑 구토 좀 멈추게……” 원경릉은 눈을 뜰 힘조차 없었다.우문호는 마음이 급해서 한손으로 어의를 끌고 나오며, “좀 더 잘 듣는 처방은 없나? 태후께서 하사하신 약이 잔뜩 있는데 그걸 써 보는 건 어때?”조어의는 오히려 우문호를 끌고 더 멀리 가서 한숨을 쉬며, ”왕야, 사실대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오늘 내의원 원판과도 상의했는데 왕비마마께서 이번에 회임하신 시기가 좋지 않습니다. 마마의 몸이 아직 낫지 않으셨고, 그때 자금탕을 드시고 틀림없이 날짜를 사이에 두고 해독약을 드셨을 겁니다. 그 해독약은 자금탕의 차가운 성질을 강제로 억제했던 것으로, 지금 한꺼번에 폭발하니 왕비마마께서 백배로 고통스러우신 게 당연합니다. 게다가 그 때 기혈이 상하셨습니다. 합당하지 않은 말이나 소신이 감히 말씀 올립니다. 왕비마마의 오장육부는 낡은 솜 같은 상태로 가볍게 누르기만해도 아무것도 남지 않고 지탱할 힘 이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우문호가 이 말을 듣자 이가 다 뿌드득 갈렸다. 그때의 자신은 어쩌면 그렇게 망할 자식이었을까?어의가 계속: “왕비마마의 몸 상태가 이러 신데 회임을 하실 수 있었다니, 틀림없이 지금단의 위력일 겁니다. 자금단이 기혈의 순환을 도왔으나 어쨌든 임시방편이라 약효가 떨어지면 그저 왕비마마 본인의 신체의 조화에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우문호가 잠시 생각하더니 낮은 목소리로 어의에게: “만약 이 아이가 필요 없다면?”어의가 대경실색해서, “그건 천부당 만부당한 말씀입니다.
원경릉의 임신에 대한 정후의 생각정후는 둘째 노마님과 아내 황씨의 얼굴을 보고 이게 무슨 일인가 어이가 없어서, “왜 이렇게 빨리 와? 남아서 밥 먹고 가라고 안 해?”황씨는 입이 댓 발 나와서: “남긴 뭘 남아요? 들어와서 물건 여기에 두고 가라는데, 초왕비가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아무도 안 만난데요.”“아직도 유세를 떨어? 이 몹쓸 것 같으니!” 정후가 펄펄 뛴다.황씨가 변명하며: “뭐 그렇게 유세부린 건 아니고요, 다른 왕비랑 공주도 만나 주지 않고 그냥 보내더라고요. 듣자 하니 태아가 불안해 어의가 절대 안정을 취하도록 지키고 있고, 초왕도 누구든 병문안 오는 것을 엄금했다고 해요.”“태아가 안정적이질 못해?” 정후는 흠칫 놀라 안색이 돌변해, “어째서 태아가 불안한 거야? 물어봤어?”“누구한테 물어봐요? 모르쇠로 일관하는데.” 황씨가 기분이 상해서, “아니 초왕도 그렇지, 내가 좋으나 싫으나 장모 아니야, 그런데 이따위로 냉대를 해? 앞으로 나도 안 가고 말지.”정후가 꾸짖으며, “닥쳐, 초왕이 널 냉대한 게 뭐? 아직도 분을 못 참아? 초왕은 어엿한 친왕이고, 당신을 장모님이라고 부르더라도 당신은 군신의 예를 차려야 하는 법이거늘.”황씨는 꾸지람을 듣고 감히 말대꾸도 못했다.둘째 노마님이 당황하지 않고 느긋하게: “팔룡아, 숙모가 그러지 않았니, 네가 서둘러도 쓸데없다고. 초왕이 만나고 싶지 않다는데 네가 직접 가도 만날 수 없다는 뜻이지. 우선 좀 기다려 보는 게 낫겠구나.”정후가 손으로 탁자를 지그시 누르며, 눈썹을 치켜 올리고: “못 기다립니다. 관리의 인사고과가 연말엔 시작될 텐데 반드시 경릉을 만나 초왕에게 아부하라고 시켜야 된다고요. 그러면 초왕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고 일을 처리할 거란 말입니다. 지금 경릉이 임신했으니 초왕은 무조건 그녀의 말을 따를 거예요.”황씨가 가만 들어보니 정후의 관직과 연관이 있는지라 긴장해서, “이 못된 기지배, 처음부터 에미랑 가깝게 지낼 것이지 아니, 에미가 가게 만들어? 초왕이 설마
할머니와 원경릉정후는 큰 마님이 자신의 말을 분명 듣지 못하고 손씨 아주머니에게 준비를 분부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큰 마님이 분명 자신의 앞날을 생각해 주실 거라 믿고, 괜히 신신당부할 필요 없다고 여기고 인사를 하고 나갔다.정후의 생각이 딱 들어 맞았다.우문호는 정후부 사람이 원경릉을 만나지 못하게 했으나, 원경릉이 할머니에겐만은 신경 쓰는 것을 알고 있고, 원경릉의 할머니인 큰 마님이 아프신 와중에 직접 오셨 다니 만나지 않게 할 방도가 없다.초왕이 친히 나가서 모시고 와서 공손하게 예를 올리고 할머님이란 존칭을 사용했다.큰 마님은 현주 출신으로 예의 범절을 잘 알고 있어 우문호의 손을 잡아 말리며: “왕야, 어서 일어나세요. 할머니라니요.”초왕의 할머니는 사실 현재의 태후마마로, 만약 좀더 친근한 사이였으면 이런 것에 얽매이지 않아도 될 텐데 예의로는 이렇게 하는 게 합당하니 잘못됐다고 할 수도 없다.사양의 말이 나오기 전에 우문호가 먼저 인사를 올려서 큰 마님도 뭐라 다시 말하기 어려운 게 자칫하면 눈치 없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우문호가 웃으며 들어오시라고 하고 원경릉은 할머니가 오셨다는 말을 듣고 일어나려고 했다.우문호가 서둘러 가서 막으며, “일어나지 마. 누워있어도 돼, 할머니가 어려운 분도 아니고.”원경릉이 투덜거리며, “누워있느라 허리가 끊어질 거 같아.”“있다가 허리 주물러 줄게. 우선 큰 마님이랑 애기 나눠, 난 관아에 좀 다녀올 게.”정후부 인물 중에 우문호가 싫어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큰 마님이다.그래서 큰 마님이 오셨으니 안심하고 할머니와 손녀가 얘기 나누게 하려는 배려다. 만약 자신이 초왕부에 있으면서 두 사람과 같이 있지 않으면 모양세가 좋지 못하니, 이 참에 관아에 다녀올 생각인 것이다.원경릉은 우문호가 자리를 비키길 간절히 바랬다. 꼬박 이틀을 삼엄하게 주시하는 우문호의 눈빛을 받으며 누워 있었더니 미쳐버릴 지경이기 때문이다.우문호가 가고 큰 마님은 침대 곁에 앉아 심지어 만족한 표정으로: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냉정언이 물었다. "그렇다면 어찌 의원을 부르지 않은 것이냐?" 역 일꾼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돈이 없다고 하셔서 해열에 좋은 약초를 조금 달여주었지만,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방에 다른 사람이 들어오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의원을 부르고 진료하고 약을 짓는 데에는 모두 돈이 필요했지만, 역에서는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예산이 따로 없었다. "오계부의 부승이 상경하여 직무를 보고하러 왔는데, 돈도 지니지 않았다는 것이냐?" 냉정언이 놀라서 물었다. "나리께서 돈이 든 보따리를 도둑맞았다고 하셨습니다." "혼자 온 것이냐?" 냉정언이 물었다. "예. 관속이나 아전도 없이 혼자입니다." 경성과 꽤 멀리 떨어진 오계부의 부승이 그 먼 길을 수행 인원도 없이 홀로 와, 직무를 보고하는 것은 꽤 이상한 일이었다. 원경릉이 말했다. "내가 확인하겠소." "부인께서 의원이십니까?" "그렇다. 길을 안내하거라." 원경릉이 답했다. 역 일꾼은 별다른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북당에서는 여인이 의술을 익히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황후가 의학원을 세운 이후, 해마다 여인들이 입학하여 의술을 배우고 있었다. 우문호가 미색을 돌아보자, 미색이 바로 입을 열었다.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원경릉은 약상자를 챙겨 들고, 역 일꾼의 안내를 받아 한 객실로 향했는데, 문이 세게 잠겨져 있었다. 일꾼이 문을 두드렸다. "제 대인, 제 대인. 의원께서 오셨습니다. 문 좀 열어주십시오." 하지만 방은 일꾼의 부름에도 여전히 잠잠했다. 이내 기침 소리가 들려왔고, 한참 기침을 하다, 쇳소리 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마." 말이 끝나자, 침대에서 일어나 휘청거리며 걸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곧 문이 열렸고, 솜으로 만든 마스크로 코와 입을 가린 채, 핏발이 선 눈만 드러낸 관리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피곤하고 지친 모습으로 문턱을 잡고 서 있었다. 그는 숨을 고른 뒤
이번 순행에 서일이 동참하면서 사식이도 함께 가게 되었다. 그러나 고된 여정에 아이를 데리고 다니기엔 무리가 있었다. 다행히 원가에서 사식이가 서일과 함께 순행에 나선다는 소식을 듣고, 원가는 서일 부부가 3년이든 5년이든 돌아오지 않더라도 아이를 잘 돌보겠다고 약속해주었다. 그 역시 아이들과 떠들썩하게 지내고 싶어 했던 터라 기뻤다.탕양도 순행에 참여했으나, 그의 부인은 맡은 직책이 있어 동행하지 않기로 했다. 미색 또한 당연히 회왕을 따라갈 예정이었으나, 오랜만의 외출인 만큼 아이를 데리고 간다면 재미가 없을 테니, 아이를 데리고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러자 그녀의 시어머니인 태비도 흔쾌히 아이를 돌보겠다고 나섰다. 이제 아이도 다 컸으니 힘들게 돌볼 필요가 없어졌으니 말이다. 그렇게 모두가 신나게 순행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원경릉은 순행을 기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숙왕부의 노인들이 걱정되었다. 비록 삼대 거두는 여행을 떠난 상황이긴 하지만, 숙왕부에는 아직 흑영 어르신들이 계셨다. 그리고 안정을 찾은 추 할머니마저 지속해서 약을 복용해야만 했다. 온갖 걱정에 흽싸인 원경릉 때문에 오히려 원 할머니가 그 모습을 보고 성가시다고 느꼈는지, 진지하게 말했다. "그냥 편히 놀러 가면 되지, 뭘 그렇게 걱정하냐? 내가 있지 않느냐?"그 말에 원경릉은 할머니를 껴안으며 웃었다."맞아요. 제가 몸이 열 개라도 할머니는 못 이길 테니까요!"이 말은 틀리지 않았다. 원경릉이 비록 황후라고 해도, 숙방부에서의 위세가 그리 대단하지는 않았다. 그런 그녀가 유일하게 권력을 행사할 수 있을 때는 바로 주사기를 꺼낼 때 뿐이지만, 원 할머니는 달랐다. 그녀는 그냥 서 있기만 해도, 눈빛 하나만으로 모든 사람을 제압할 수 있었다. 게다가 최근 몇 년 사이, 그녀의 성격이 점점 난폭해져서, 틈만 나면 사람을 끌고 가서 주사를 놓았다. 원 할머니가 손수 만든 약이 한가득 담긴, 원경릉의 약상자에는 없는 귀한 약들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 약들은 수토불복, 고
조사가 끝난 후, 목을 쳐야 할 자는 목을 치고, 옥에 보내야 할 자는 옥에 보냈다. 그리고 오씨가 챙긴 돈은 전부 피해자 가족들에게 배상되었다.우문호는 신하들 앞에서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 못했다. 그는 탐관오리를 금지하고 청렴을 장려하는 법을 내렸으며, 부정부패 전담 조사 관아를 설립해 전국을 조사하라 명했다. 부정부패를 근절해야 백성들이 잘 살 수 있다고 강조했다.동시에 그는 신하들의 봉급 인상을 제안했다. "예전엔 나라가 가난해 관리들의 봉급이 적었지만, 이제는 나라도 번영하고 산업이 활성화되었으니 함께 잘 살아야 할 때다." 봉급을 높이면 부정부패 예방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 덧붙였다.조회가 끝난 후 우문호는 수보와 친왕들을 불러 오래 전부터 품어온 생각을 털어놓았다."과인은 순행하고자 하오!"나라가 태평하지만 황제의 관심이 미치지 못하는 곳도 있다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초왕과 태자 시절에는 백성들의 고통을 잘 알았지만, 지금은 점점 백성과 멀어지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직접 돌아다니며 백성들의 삶을 보고 싶었고, 공무를 핑계로 원 선생과 북당 전역을 둘러보고 싶었다.냉정언이 적극 찬성하며 말했다."상소문만으로는 진실을 알 수 없습니다. 은폐된 사실, 억울한 사건, 고통받는 백성들을 직접 확인해야 합니다.""옳은 말이네." 우문호는 최근 냉정언의 말이 마음에 들었다.그러나 냉정언이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하지만 아직 각지에 위험한 도적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폐하의 안전을 위해 소신이 대신 가는 것이..."그러자 우문호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수보의 말도 일리 있지만, 참 뻔뻔하구먼!" 그러고는 어명이 적힌 서찰을 건네며 덧붙였다."함께 순행할 명단이니 반포하시게!"냉정언은 자기가 제외될 줄 알았으나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있는 것을 보고 기쁜 목소리로 물었다."소신도 갈 수 있습니까?""가시게. 국정에 큰일이 없으니 내각에서 처리할 수 있네. 새로 양성한 인재들의 능력을 시험해볼 기회이기도 하고.""상산명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