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명취를 사정 청취하는 우문호제왕은 목을 움츠리고 얼굴이 흙빛이 돼서, “형은 왜 그렇게 살벌하게 말해?”우문호는 인내심이 바닥나서, 호통치며: “갈 거야 말 거야?”“우선 냉정하게, 명취 놀라게 하지 말고!” 제왕이 작은 목소리로 말하면서도 천천히 앞으로 길을 안내했다.우문호는 심호흡을 하고 비로소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였다.제왕이 다시: “전에 성문 밖에 사건때, 다섯째 형수가 명취를 호수에 민 적이 없고 오히려 명취가 형수를 밀어서 죽이려 했다고 누명을 씌웠어. 형, 돌아가서 형수한테 얘기 좀 해줘. 형수의 입장을 생각해서 그 일은 추궁하지 않는 거라고.”우문호는 큰 걸음으로 앞으로 가서 하인을 하나 불러 세워, “가서 제왕비에게 편청으로 오시라고 해라. 내가 제왕비에게 묻을 말이 있다고.”하인이 어쩔 줄 몰라 하며 제왕을 바라보자 제왕은 하는 수없이: “가거라!”하인은 명을 받들고 갔다.우문호는 제왕을 상관하지 않고 서일과 편청으로 가서 기다렸다.제왕이 따라 오면서 잊지 않고 하소연하며, “형, 이 일은 형이 잘 좀 처리해줘. 내가 명취를 감싸는데 형이 안 봐주면서, 형이 형수를 감싸는 건 사리에 안 맞지. 안 그래?”서일은 우문호의 얼굴이 완전 시커멓게 변한 것을 보고 참지 못하고: “왕야 말씀을 좀 삼가시지요. 우선 이 일을 처리하신 후 다시 말씀하시는 것은 어떠실 까요?”제왕은 서일을 힐끔 보니 서일이 제왕에게 경고하는 눈빛을 던지며 슬쩍 손가락으로 우문호를 가르쳤다.제왕은 그래도 역시 우문호를 경외하기에, 불만이지만 감히 다시 입을 놀리지는 않았다.편청에서 좀 기다리자 주명취가 시녀를 데리고 왔다.턱에 난 상처를 싸매고 비단 치마는 폭이 넓은데 허리는 꽉 조여서 여리여리 하고 여성스럽다.시녀가 부축해서 들어오는데 초췌한 표정에 눈가가 붉다.우문호를 보고 말을 잇지 못하고 눈가가 다시 붉어지더니 흐느끼며: “호오빠 왔어요?”우문호는 주명취를 보고, “상처는 좀 좋아졌어?”주명취는 조용히: “별일 아닌 걸요.”“또
명취를 대하는 우문호의 태도와 제왕의 긁어 부스럼우문호는 이해할 수 없어서, “기왕 죽 배급 날짜를 정했으면서 왜 좀더 일찍 호빵에 대해 계획을 세우지 않았지? 일시적인 결정이라 해도, 점포 몇 개만 찾아도 호빵 몇 백 개 정도는 점심까지 걸릴 필요 없는데다, 내가 현장을 보니 고작 호빵 찜기가 10개로 호빵은 다해서 150개인데 그 정도면 만드는데 한 시진도 걸리지 않아.”주명취가 당황해서, 눈물이 맺힌 눈동자로 조금 놀랐다는 듯이 우문호는 바라봤다.그녀의 마음 속이 슬픔과 분노로 뒤덮였다.우문호가 온 게 사정청취 때문일까? 아니면 그저 폐하의 명을 받고 몇 마디 물어보려는 것뿐일까?후자라면 애초에 이렇게 자세히 물을 필요가 없다.만약 전자라면…… 우문호는 정말 변했다.주명취는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눈물을 뚝뚝 떨굴 듯이, “머리가 아파요, 이런 일은 아랫사람들이 하게 해서 호오빠, 그 사람들에게 물어 보세요, 저는 오늘 사실…… 마음이 아프고 괴로워요.”제왕이 얼른 말했다: “다섯째 형, 호빵은 일시적으로 떠오른 생각이라고 했고 일찍 결정한 것도 아니니 150개가 적당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아무도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예상치 못 했어. 명취는 좋은 뜻에서 한 일이야.”우문호는 못난 제왕의 꼬라지를 보고 물어도 마땅한 답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아: “그럼 알겠어, 구체적인 정황은 나도 이미 이해했으니 잘 쉬어라 나는 갈게.”주명취는 눈을 내리깔고 담담한 얼굴로 작게: “초왕 전하 살펴가세요.”이 초왕이란 말은 무정하고 냉담한 의미로 이전의 친절하던 호오빠가 전혀 아니란 소리다.우문호는 얼굴에 아무런 표정 없이 일어났고,제왕이 따라 나갔다.“형, 방금 말은 분명히 하는 게 좋겠어.”우문호는 긁어 부스럼을 만든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제왕의 얼굴을 보고, “좋아, 네가 말하겠다고 하니 분명히 하자, 넌 어떻게 얘기하고 싶은데?”제왕이 불쾌한 얼굴로: “당초에 나한테 됐다고 했지만 형수는 전혀 반성하는 기미가 없어서 이 일은 그냥 넘
제왕에게 화가 난 원경릉서일이 보니 우문호는 관아 방향을 향하고 있어 묻지 않을 수 없는데, “왕야, 초왕부로 돌아가지 않으십니까?”우문호가: “초왕부에 가서 뭐하게? 부인이 포악 떠는 걸 지켜보라고? 아냐, 난 왕비의 아름답고 우아한 면만 보고 싶구나.”여인이 사나워지면 흉포하다.서일이 의심스러워 하며, “왕비께서 정말 제왕 전하를 때리실 수 있겠습니까?”제왕은 다름아닌 황후의 아들로 왕비는 현비마마께도 감히 함부로 하지 못하거늘 어찌 황후마마께 밉보일 수 있을까?우문호는 원경릉이 절대 그러고도 남을 것이라고 믿었다.원경릉은 일곱째에게 분노가 끓어오르는 걸, 오랫동안 참고 참아 지금까지 버텨왔다.성밖에 사고 현장에서 원경릉이 일곱째를 매섭게 꾸짖는 것을 듣고, 만약 사람이 많고 환자 처치가 급하지 않았으면 원경릉은 더 잘했을 것이 틀림없다. 만약 오늘밤 일곱째가 초왕부에서 원경릉에게 호수 사건을 꺼내면…… ‘너 잘 걸렸다. 피맺힌 원한 맛 좀 봐라.’원경릉이 이 순간을 잘 참고 넘긴다면 우문호가 졌다고 해도 좋다.원경릉은 화를 잘 내는 성격은 아니지만 원칙성이 강해서 자신이 잘못했으면 반드시 진심으로 사과한다. 하지만 만약 자신이 잘못한 게 아닌데 상대방이 계속 강요하면 참지 못하고 성격 나온다.그때를 생각해보면 원경릉은 죽을 힘을 다해 우문호를 피가 날때까지 깨물었다.오늘 원경릉은 상당히 까칠한 상태이며, 이 사건으로 다친 사람이 너무 많고 분명 피할 수 있었던 사고기 때문이다.개다가 억지로 초왕부로 돌아가 쉬도록 했으니 기분이 상했는데 일곱째가 가서 건드리면 분명 좋을 게 없다. 우문호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말을 달려 우다다다 관아로 향했다. 야근 당첨이다!원경릉은 오늘 정말 화가 났다.당시엔 부상자가 많고 사람을 구하느라 정신 없어 이 문제를 생각할 겨를이 전혀 없었다.하지만 초왕부로 돌아와 희상궁과 녹주가 지켜보는 가운데 자려고 누워 있으니 주명취가 이번 사건을 저질렀단 생각이 떠올라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백성
원경릉을 찾아온 제왕“배웠지!”“누구한테 배웠어?” 원경병은 언니가 의술을 배운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었고 게다가 그 의술도 이상야릇한 의술이다. 원경릉이 웃으며, 아무 말도 없다.“비밀스럽기도 하지!” 원경병은 물어도 답이 없을 걸 알기에 묻기도 귀찮다.다바오는 뛰어놀다가 원경릉 발 아래로 돌아와 엎드려 헥헥 거렸다.원경병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있다가, “오늘 제왕 전하가 하는 말을 들으니 주명취가 임신했다며.”원경릉이 ‘응’하고, “임신했으면 임신한 거지.”“언니는 걱정 안돼?” 원경병이 고개를 옆으로 돌려 언니를 봤다.원경릉이 실소하며, “뭘 걱정해? 내가 애 아빠도 아닌데.”“제왕 전하는 황제의 적자잖아. 만약 주명취가 회임하면 제왕 전하가 거진 태자로 옹립되는 거나 다름 없지. 형부가 곧 황제 폐하의 눈에 띌 것 같았는데 아쉽다.” 원경병이 한숨을 쉬었다.“지금 태자가 되는 게 꼭 좋은 일만은 아닐지도 몰라. 표적이 될 테니까!”“누가 감히 제왕 전하를 건드리겠어? 제왕의 뒤엔 주씨 집안이 있는데.” 원경병이 비록 조정의 일은 잘 모르지만 주씨 집안의 위력에 대해선 알만큼 안다.원경릉이 고개를 끄덕이며, “하늘에 오르려면 우선 산 정상부터 오르려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지.”“언니, 언니는 태자비가 되고 싶지 않아? 태자비가 되면 앞으로 황후가 될 수 있다고.” 원경병이 말했다.‘황후란 말이지’, 원씨 집안 8대에 걸쳐 감히 이런 생각을 해본 사람이 없었다.정후는 고작 큰 딸을 초왕에게 시집 보내는데, 아버지가 가진 모든 인맥을 총동원할 정도다.막 목적을 달성했던 그 순간엔 아버지가 매일 콧노래를 부르며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했다.만약 큰 딸이 태자비가 된다면, 아버지는 너무 기쁜 나머지 미칠 지로 모른다.녹주가 빠른 걸음으로 와서, “왕비마마, 제왕 전하께서 오셨습니다.”원경릉은 눈도 깜짝하지 않고, “왕야께서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으니 내일 다시 오시라고 말씀드려라.”“제왕 전하께서 왕비마마를 찾아오셨다고 합니
제왕을 꾸짖는 원경릉올 때는 마음에 할 말이 있는 데다가, 와서 보니 원경릉이 오늘 사고현장의 포악한 모습이 아니라 한층 더 떳떳하게 말 할 수 있겠다.제왕은 원경릉의 죄상을 낱낱이 파헤치며 당당하게 말하고자 하는데 원경릉은 도리어 아무렇지도 않게: “일이 있으면 말씀하세요. 하지만 만약 호수에 빠뜨린 일이라면 입을 다물 걸 권해드립니다.”제왕은 원경릉의 죄상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데 당황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왜 말 할 수 없는 겁니까? 이 일은 아직 지나가질 않았고 형수는 반드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명취에게 사과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일을 아바마마 앞으로 들고 가 옳고 그름을 가려 달라 할 테니.”원경릉은 싸늘하게 웃으며, 제왕을 위 아래로 훑어 보더니, “이렇게 다 커 가지고 아직도 젖을 못 끊었나요? 무슨 일만 있으면 아바마마를 찾고, 어마마마를 찾고 왕비를 찾고, 전하는 머리가 없습니까?”제왕은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런 인신공격은 정말 도가 지나쳤고 원경릉이 자신에게 머리가 없다고 말한 게 한두번이 아니다.“난 엄연한 친왕으로 수차례의 모욕을 용납할 수 없소.” 제왕이 분노했다.원경릉이 앉으며 침착한 얼굴로, “저도 엄연한 친왕비이자 전하의 형수로, 여기서 무례하고 방자하게 구는 것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제왕이 발을 구르며, “이걸 따지자고 온 게 아니라 호수에 빠뜨린 일을 오늘 반드시 답을 듣고 말 것이오, 그렇지 않으면……”원경릉이 싸늘하게 제왕의 말을 자르며, “그렇지 않으면 아바마마께 가서 고하겠다?”제왕은 다소 난감하면서도 화가 나서: “말꼬리를 잡고 나를 괴롭히지 마시오. 내가 전에는 다섯째 형 얼굴을 봐서 따지지 않았지만 오늘 성밖에서 명취를 물어뜯고 모함해 명취가 초왕비를 호수에 밀었다고 하는데, 명취는 마음이 착해서 개미 한 마리도 죽이지 못하거늘 어떻게 명취를 그 따위로 말 할 수 있지? 양심이 있는 것인가? 정말이지 말이 통하지 않는 인간이구나.”원경릉은 그저 웃고 말았다. “마음
제왕을 세차게 꾸짖는 원경릉원경릉이 일어나 소매 속을 뒤지더니, 싸늘하게 웃으며, “좋아요, 호수에 빠진 일에 대해 얘기하죠.”어장을 수중에서 펼쳐 몰래 단추를 누르자 마디마디가 곧게 펴진다.제왕이 지켜보고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무슨 짓이오? 감히 날 때리면, 바로 알리……”원경릉이 제왕의 머리와 얼굴을 정면으로 한대 후려 갈기니 분노가 극에 달해, “알려, 알리라고, 내가 그렇게 주의를 줬 건만 여전히 호수에 빠진 일을 들먹여요? 호수 사건의 진상은 바로 주명취가 나를 빠뜨리고 자기도 따라서 뛰어내린 거예요. 상식적으로 생각해봐요. 나는 수영을 못하는데 주명취 죽이겠다고 내 목숨을 버리겠어요? 제왕은 바보일지 몰라도 난 아녜요. 제왕은 뇌가 없지만 난 있거든요. 오늘 내가 아주 이 멍청한 녀석을 때려 죽여야 겠네, 주명취가 뭔데? 주명취는 주씨 집안이 나서서 뒤를 봐주니 상관없지만, 나는 죽고 싶어서 회왕부까지 가서 주명취를 죽이겠어요? 나랑 주명취가 무슨 철천지 원수라고? 나는 당신 보는 데서 주명취한테 맹세하라고 했는데 못 하더군요. 왜 못할까요? 주명취는 뒤가 켕기겠지만 난 당당해요. 만약 그날 내가 주명취를 해칠 마음이 눈곱 만큼이라도 있어서 그녀를 호수에 밀었으면 이 원경릉이 제 명에 못 죽고 죽어서 땅에 묻히지 못할 겁니다!”이 말은 방금 제왕을 질책하던 말 보다 더 흥분해서 이 짧은 말에 대 여섯 대는 때렸다.“죽여 버릴……” 제왕은 화가 나서 전신이 불타올랐지만 원경릉의 손에 어장이 있어 감히 다가가지 못하고, 그녀를 노려보며 이글거리는 눈으로 죽여버리겠다고 중얼거리고 있었다.제왕은 사실 원경릉이 감히 자기를 때릴 줄은 몰랐다.너무 해! 너무 야만적이야!원경릉이 어장을 들고 다가오자 제왕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경계하는 눈빛으로, “다가오지 마, 뭐 하려고? 저리가, 어서 저리가!”“탕대인!” 원경릉이 문을 향해 외치는데, 밖에서 몇명이 안이 소란스러운 걸 지켜보고 있었다.탕양이 아무것도 모르고 들어와, “왕비마마 부
제왕의 고민제왕은 원경릉의 뒷모습을 보며 여전히 분노인지 모욕감인지 모를 감정을 느꼈다.제왕은 가지 않고 다섯째 형이 돌아오길 기다리기로 했다. 형에게 일러 바쳐야 직성이 풀릴 것 같다.탕양이 사람을 시켜 차를 가져왔다가 제왕이 여전히 분통을 터트리며 있는 모습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제왕 전하, 왕바마마께서 방금 하신 말씀은 참으로 금과옥조와 같으니 조금이라도 들어주세요, 왕비께서는 전하를 위해서 하신 말씀입니다.”“나를 위해서? 말도 안돼는 소리 마라!” 제왕이 ‘흥’코웃음을 치며, “형은 아직 안 돌아왔나?”탕양이 고개를 젓고 나갔다.제왕이 맑은 차를 한 모금 마셨으나 머릿속이 복잡해 차 맛을 전혀 모르겠다.이상한 느낌이 스멀스멀 퍼졌다.제왕은 원경릉의 말을 믿지 않는다. 한 마디도 믿을 수 없다.그런데 왜 명취는 맹세하지 않은 거지?원경릉과 다툴 필요조차 못 느꼈음에 틀림없다. 저런 포악하고 야만적인 여자와는 따지지 않는게 맞다.하지만 어딘가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드는 건 왜 일까?명취가 제왕을 정말 단순히 이용만 하거나 속이는 걸까?그러나 명취는 제왕에게 잘한다. 부드럽고 현명하고 왕비가 갖추어야 할 모습 그 자체다.제왕은 결혼하고 1년간을 차례로 떠올려보았다. 제왕에 대한 주명취의 태도는 어느 하나 가릴 것 없이 완벽했다.아내가 할 일도 모두 해낼 뿐 아니라 조금의 부족함도 없었다.제왕은 그래도 불만이 있나?불만은 없다. 단지 주명취에게 조금만 더 열정이 있다면, 부드러운 눈빛 말고 각종 정서가 담긴 눈빛 예를 들면 화났을 땐 분노, 즐거울 땐 희열의 눈빛, 질투할 땐……질투? 주명취는 거의 질투하지 않았는데 어마마마가 후궁을 들이겠다는 얘기를 했을 때도 온화하고 현숙하게 듣고 있을 뿐이었다.제왕의 마음이 일순간에 혼란스러워졌다.우문호가 돌아와서 탕양으로부터 제왕이 기다리고 있고 왕비에게 맞았다는 얘기를 들었다.우문호는 이 말을 듣고 동정을 표시했지만 마음 속으론 ‘쌤통’이라고 생각했다.일곱째 이 녀석은 사실
주명취에 대한 진실을 말하는 우문호우문호가 잠시 어리둥절했다. 머리에 똥만 들었는 줄 알았는데, 한 대 맞더니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나?우문호는 잠시 생각하더니, “결국 난 주명취와 결혼하지 않았을 거야, 핵심은 내가 아니라 주명취한테 있어.”“왜?” 제왕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주명취는 나한테 시집오지 않을 테니까.” 우문호가 담담하게 말했다.“왜?” 제왕은 여전히 이해되지 않았다. 둘은 처음부터 죽마고우였다.우문호가 웃으며 담담하게: “무슨 왜가 이렇게 많아?”제왕의 가슴이 철렁 내려 앉으며, “명취가 형한테 시집가고 싶지 않다니, 형이 나보다 태자로 책봉될 가능성이 낮기 때문인 거야?”우문호의 눈빛이 순간 예리 해지며, “그걸 왜 물어?”“못된 형수가 그렇게 말했어.” 제왕이 조금 상심한듯, 아니 실은 꽤 상심해서 말했다.“넌 그 말 믿어?” 우문호가 반문했다.제왕은 잠시 침묵하더니, “말도 안돼!”“말도 안되는 일을 넌 왜 고민하고 있어?”제왕은 침울한 모습으로, 자기도 모르겠다.나쁜 형수의 말은 당연히 믿을 게 못된다.형수의 말은 다 거짓말이다.“호수에 빠진 일에 대해 형은 나쁜 형수 말을 믿어?” 제왕이 다시 물었다.우문호는 조금 참을 수 없는 마음이 들었다. 단번에 이렇게 첨예하고 심각한 인격 문제를 한꺼번에 들이밀면 정말이지 어떻게 답해야 좋을지 모르겠다“형, 동생은 형이 진실을 말해 주길 원해.” 제왕이 심호흡을 하고, “어떤 충격이든 지금은 다 받아들일 수 있어.”우문호가 제왕에게,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믿어.”“왜?” 제왕의 마음이 뭔가로 갈가리 찢기는 듯 쓰리고 아팠다.우문호는 가볍게 한숨을 쉬고 제왕에게, “그날 일 아직 기억하니?”제왕이 고개를 끄덕이며, “기억해, 그때 우리가 달려갔을 때 명취는 의식을 잃고 나쁜 형수의 비녀에 찔려 있었지. 형수가 진짜 사람을 해치려고 마음 먹었다는 걸 딱 봐도 알 수 있었어.”“왜 사람을 해치려 했다고 생각해? 주명취를 이미 호수에 밀어 넣었는데, 설
안지여는 풍도성 지하감옥에 갇혔다. 빛 한 줄기 없는 지하감옥에서 사방에 끝없는 어둠과 절망만이 안지여를 삼키고 있었다.훼천의 형벌은 12 시진 후면 사라져서, 앞으로 안지여는 그저 한 명의 폐인일 뿐이었다.안지여의 결사대가 성으로 공격해 들어오기 전에, 이리봉청은 오 선생을 찾아내 안지여가 저지른 모든 죄를 고백하게 하고 안풍 친왕이 친필로 받아 적었다. 안지여가 당시 천문 세가를 해친 경위를 소상히 써 내려간 뒤, 오 선생과 안풍 친왕의 직인을 찍고 인쇄해서 대중에게 공개했다.안지여의 죄악은 하늘을 찔러 백성들 모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안지여의 결사대의 옛 부하들이 본래 성을 공격해 들어가 안지여를 구출할 계획을 세워놓았으나, 안지여의 죄상이 공포된 뒤로 많은 사람들이 해산하였다. 유일하게 무대장군만이 수천 명을 데리고 성으로 쳐들어왔지만, 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가 이미 대비해둔 덕분에, 경성에서 굴러온 돌이 무대장군의 박힌 돌을 빼내는 전투를 벌였다.풍도성에 온 지 7일째, 안풍 친왕은 풍도성을 접수하고 성에 살던 사람을 쫓아내며 서민으로 강등시켰다.안지여와 소여쌍에 대한 처분은 이리봉청에게 넘겼다.안지여는 캄캄한 지하감옥에서 6일을 지내는 동안, 처음엔 침착한 척 가장했으나 사흘째가 되자 울부짖으며 악독한 저주의 말을 내뱉더니, 나흘째가 되자 용서해달라고 애원하며 참회했다.손발의 힘줄이 끊어진 안지여는 일어나 걸을 수도 없고 심지어 스스로 몫숨을 끊을 힘도 없었다.그 와중에 매일 누군가가 먹고 마시도록 해주고, 상처도 치료해 주어 살 수 있다는 부질없는 희망을 품게 했다.훼천의 말에 따르면, 진정한 절망은 살아도 죽느니만 못하고,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것으로, 온 마음으로 죽기를 바라지만 살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가, 안간힘을 쓴 뒤 다시 절망에 빠지는 것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으로, 사람을 한없이 죽였다 살렸다 괴롭힌다고 했다.결국 안지여를 죽일지 말지 여부는 이리봉청에게 달렸는데, 그녀는 안지여를 단번에 죽여 천문 세가
안지여의 이마에 파란 힘줄이 불끈불끈했으나 냉정을 가장했다. “내가 두려워할 줄 알았나 보지? 죽음도 두렵지 않은데 뭘 더 두려워하겠어?”“넌 두려울 것이야!” 이리봉청이 고개를 돌려 이리 나리를 보고 살짝 그의 팔을 잡았다. “내가 오는 길에 늑대파 사람이 그러던데, 천하에서 제일 잔혹한 형벌을 아는 사람이 늑대파에 있다고. 그게 사실인 것이냐?”이리 나리가 가볍게 답했다. “물론 사실이죠. 훼천이라고 합니다. 늑대골 출신이에요.”“안지여가 버틸 수 있는지 어디 한 번 보고 싶구나.” 이리봉청이 말했다.이리 나리가 엄숙한 태도로 명을 내렸다. “훼천!”그러자 훼천이 급히 나왔다. “이리 나리, 분부하시지요!”이리 나리는 그가 짐짓 냉정한 척하고 있으나 눈빛이 조금씩 허물어져 가고, 몸까지 부들부들 떠는 것이 아주 만족스러워 훼천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시작해!”안지여가 갑자기 큰 소리로 욕했다. “난 네 아버지거늘, 감히 나에게 손을 대다니, 천벌을 받아 마땅한 놈 같으니라고!”이리봉청이 이 말을 듣고 잠시 주저하는 눈빛으로 이리 나리를 바라봤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제 아버지는 오직 저를 키워주신 안풍 친왕뿐이십니다.”이리봉청이 살짝 안도했다. “저 인간이 단지 나만 해쳤으면 네 체면을 봐서 놔줬겠지만 천문 세가의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갔으니 난 용서할 수 없구나.”“이리봉청, 너 언제 이렇게 악랄하게 변했어? 죽이려거든 그냥 죽여. 난 천문 세가 사람을 죽이긴 했어도 그들을 괴롭히진 않았어. 네가 날 죽이려거든 깨끗하게 단번에 죽여!”안지여가 크게 노해 몇 번 몸부림을 치다가 상처가 벌어지는 바람에 배에서 선혈이 흘러나오고, 훼천이 가까이 다가가자, 눈에 두려움이 깊어졌는데, 늑대골 출신 훼천은 온몸에서 피비린내가 뿜어져 나와 안지여를 덜덜 떨게 했다.“이리율!” 안풍 친왕비는 시ㅈ가하기 전에 이리 나리를 불렀다. “내가 여기서 네 엄마와 같이 있을 테니 넌 먼저 나가 있거라!”이리 나리가 안풍 친왕비에게
안지여에게 구원 병력이 없는 상황에서, 이리 나리 일행이 성을 제압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대오가 경성에서 출발하기 전에, 안풍 친왕비가 미리 사람을 풍도성으로 보내 각처, 특히 성 수비군과 군대에 잠입시켜, 음식에 효과가 천천히 나타나는 독을 풀어, 오늘 중독 증상이 나타나도록 독의 분량을 조절했다.적어도 내일까지는 안지여를 도우러 올 사람은 없었다. 독성은 적어도 이틀이 지나야 깨끗해지기 때문에 이틀 동안 그들은 설사와 전신 무기력으로 성에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알아도 와서 도울 수 없었다.그리고 그들이 기력을 회복할 때쯤이면, 안지여는 벌써 죽었을 것이다.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는 성을 통제하고, 안지여 부부를 제압해 두 사람을 줄로 묶고 지혈시켜 주었다.안지여는 요 몇 년 동안 자신이 상당히 대단하다고 여겼다. 이는 풍도성이 부유하기 때문으로, 돈으로 많은 사람을 살 수 있었으며, 여러 곳에서 추켜세워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처절하게 패배한 적이 없었던 이유는 진정한 적이 없기 때문으로, 주변의 떠돌이 비적은 작은 마을 규모로 너무 작아서 소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코 그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적이 너무 약해서였다.조정 사람과 비교했을 때, 그는 제대로 훈련받은 적 없는 비적었기에 일격도 감당할 깜냥이 못됐다.이리 나리는 둘을 중정에 묶어 두었다. 온 바닥에 남은 음식과 깨진 기와가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본 안지여는 마음속 깊이 분노가 일었다. 자신의 생일날, 그를 다치게 한 것이 바로 그의 친자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더욱이 오늘 이렇게 많은 고수가 현장에 있었는데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이런 결말을 맞다니 너무 불쾌했다. 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을 부축하고 안지여 부부 앞으로 가서, 그녀가 안지여 부부를 내려다보자, 그들은 낭패에 달가워하지 않는 기색으로, 이리봉청은 분노하는 마음과 함께 서글픈 마음도 들었다. 그들을 죽이면 커다란 복수는 이뤄 천문 세가 망자의 원혼은 달랠 수 있었다.하지만 저들을 이렇게 쉽게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이리 나리가 검을 휘두르며 안지여를 겨누자, 안지여가 공중으로 뛰어올라 후퇴했다.공자들은 돕고 싶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에게 바로 제압당했다. 안지여는 이리율 것으로 그들은 주변 사람을 제압하기만 할 뿐 옆에 서서 전투를 관전하고 있었다.이리율의 무공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를 가르친 안풍 친왕 부부를 제외하고, 사실 많은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이리율의 검법은 신속하고 맹렬해서 안지여는 상대하느라 쩔쩔매고 구석으로 몰리고 있었다. 성안의 호위들은 늑대 무리와 늑대파, 홍매문 사람들에게 막히는 바람에 안지여는 홀로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그래도 아직은 버틸 수 있었다.하지만 30분을 못 가서 안지여는 질게 틀림없었다.놀란 나머지 계속 실성해 있던 소여쌍이 갑자기 이리봉청을 향해 바싹 마른 손을 뻗어, 그녀의 목을 조르며 광적인 집착과 분노에 사로잡혀 성질을 부렸다. “멈춰, 다들 멈추라고. 안 그러면 내가 이년을 죽여버릴 것이니까!”소여쌍은 무공을 할 줄 알았지만 잘하지 못한 것이 어릴 때부터 계속 중병을 앓아 무공 연습에 소홀했고 성주 부인이 된 뒤로는 더욱 병기에 가까이할 일이 없었지만, 공력만큼은 아직 약간 있었다.소여쌍은 증오의 힘으로 이리봉청의 목을 졸랐는데, 소여쌍이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이리봉청의 목을 부러뜨릴 것만 같았다.안풍 친왕이 차가운 눈빛으로 나서려 하자, 안풍 친왕비가 말리며 고개를 살짝 흔들었는데, 그럴 필요 없다는 뜻으로 뒤에 있던 사람들에게도 참으라는 눈짓을 하자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모두가 이리봉청이 제압당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손가락으로 뭔가를 쥐고 있어 소여쌍의 어깨 위를 휘감고 팔을 눌러 소여쌍이 머리를 돌리게 했다. 이리봉청 손에 쥔 것은 바늘로, 그대로 소여쌍의 오른쪽 눈을 찌르고 들어갔다.소여쌍이 절규하며 이리봉청을 놔주고 선혈이 흐르는 눈을 움켜쥔 채 비틀거리다 바닥에 쓰러져 데굴데굴 구르며 새된 소리를 지르는데, 원망과 저주의 말을 끊임없이 쏟아
풍도성 중정에는 안지여의 아들들과 사위가 그의 곁에 남았는데,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 점점 공포에 질려가고 있었다.‘이 사람들, 아주 대단하구나!’안지여는 이리봉청을 보고 비록 조금 냉정해 보였지만, 여전히 놀라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갑자기 소여쌍이 큰 소리로 웃으며, 몸을 앞뒤로 흔들며 눈물을 찔끔거리더니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이리봉청을 가리키며 원망했다. “뜻밖에 네가 안 죽었단 말이지? 게다가 아들까지 있고. 참으로 황당하구나. 정말 너무 황당해. 원래 죽어야 했을 인간은 죽지 않고, 잘 살아야 할 사람은 36년간 괴로움을 당했어. 이리봉청 네가 날 비참하게 만들었으니 넌 이제 지옥에 떨어져야 해.”이리봉청은 소여쌍의 말을 들은 체 만 체했는데, 그녀 눈에는 지금 안지여만 들어왔다.안지여는 36년을 살아왔지만, 이리봉청에게 있어 36년은 마치 사라진 시간처럼 멸문지화의 원한이 어제 일 같았다.안지여도 이리봉청의 눈에서 분노와 악랄함을 보고, 처음으로 마음속에 두려움을 느꼈다.안지여는 억지로 감정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네 사람을 데리고 가. 지난 일을 묻지 않을 테니. 그렇지 않으면 풍도성에서 곧바로 10만 대군이 올 것으로, 살아서 도망갈 생각은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아.”이리봉청의 목소리가 낮게 잠겼다. “우리는 이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바로 네 성으로 쳐들어갈 수 있어. 넌 이미 졌어.”안지여가 웃었다. “졌다고? 그래?”안지여는 수하의 대장군이 믿음직해서, 그들을 당하게 놔줄 수도 있다고 여겼다. 대장군의 부대는 분명 치밀하게 준비되어 있을 것으로, 아마 지금쯤이면 궁수들이 이미 배치를 마치고 그들을 전부 쏴 죽이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고 말했다. “어머니, 저자와 말 섞으실 필요 없어요. 앉아서 지켜보시기만 하면 됩니다!”말을 마치고 의자를 올리더니 이리봉청을 부축해서 앉혔다.안지여가 이리 나리를 보는데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안지여가 퍼뜩 눈을 돌려 이리 나리를 보았다.‘이리봉청이 저자를 아들이라고 불렀다는 건러니까?이리 나리는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찬찬히 훑어보더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안 성주와 좀 오래된 원한을 따져야 하는데, 관련되기 싫으신 분은 자리를 피해 주시지요!”그때 한 사람이 검을 짚고 일어나 호통을 쳤다. “넌 도대체 어떤 놈이냐? 무슨 자격으로 자리를 피해라 마라야? 안 성주를 귀찮게 할 생각이면 일단 나부터 통과해 보시지!”그는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장검을 뽑아 파죽지세로 이리 나리를 향해 휘둘렀다.이리 나리는 손을 살짝 움직여 손바닥으로 칼자루를 밀자, 검이 날아가며 그 사람의 귀를 베어 한 줄기 피가 공중에 뿌려지더니, 방금까지 기고만장하던 자가 비명을 지르고 귀는 바닥에 떨어졌다.검이 다시 이리 나리 수중으로 정확히 돌아왔다.이 모든 게 3초 안에 벌어진 일이었다.“회선검?” 검법을 아는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외쳤다.현장은, 숨소리마저도 들리지 않았다.회선검은 검마의 검법으로, 그렇다는 건 저 사람이 검마의 계승자?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무리에서 검마를 찾았다. 과연 두 손으로 검을 안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도 차가운 안광이 느껴졌다.과연 진짜 검마구나, 사람들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검마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이리 나리를 흘끔 보더니 속으로 의아해했다. ‘이 자식, 언제 내 비장의 검법을 배운 거야?’이리 나리의 검 끝에선 아직 선혈이 떨어지는데, 여전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말했다. “이 아수라장에 끼고 싶은 거라면, 제가 무례하다고 원망할 생각 마세요.”“무엄하도다!” 안지여가 몹시 놀랐다가 천천히 정신을 차리고 눈을 치켜뜨며 이리 나리를 노려봤다. “너는 내가 누구인 줄 아느냐? 내가 네 아버지다!”이리 나리가 코웃음을 쳤다!안지여의 몇몇 아들이 달려 나와 소리쳤다. “아버지, 저희가 지켜드리겠습니다.”안풍 친왕이 젓가락을 던지고 일어나 차갑게 명을 내렸다
오늘은 성주의 생일이기에 경사라 섣불리 피를 볼 수는 없으므로 칼은 빼 들었지만 먼저 나서서 늑대를 죽이는 사람은 없었다.안지여는 어두운 눈빛으로 ‘늑대 무리라고? 척후병의 보고로는 안풍 친왕이 늑대 무리를 끌고 온다고 했는데, 저들이 의외로 성으로 직접 쳐들어 왔다 이거지?’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안지여는 잔을 들고 꿈적도 하지 않은 채, 무너지기 직전까지 미동도 없는 태산처럼 냉정하고 침착했다. 늑대 무리는 안으로 들어온 뒤로 두 패로 나뉘어 서서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호시탐탐 엿보며 으르렁거렸다.“성주님, 성주님, 저들이 기어코 쳐들어오겠다고….” 문지기가 외치는 소리는 들렸으나 사람은 보이지 않더니, 그보다 조정에서 보낸 사람들이 먼저 들이닥쳤다.앞에 걸어들어오는 두 사람을 안지여는 본 적이 있었는데, 바로 안풍 친왕 부부로 예전에 그들이 천문 세가 사람들을 조사하러 왔을 때 그에게 속은 적이 있었다. 비록 당시 일면식 뿐이었으나 천문 세가 일을 캐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 탓에 그들의 얼굴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어째서 별로 변한 게 없는 거지?’안풍 친왕 부부 뒤에 따라오는 10여 명의 검은 옷을 입은 노인은 그들의 호위 무사일 것으로, 주인인 안풍 친왕 부부는 별 표정이 없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들어와 고개를 들자 괴팍하고 악랄한 얼굴이 안지여 마음에 들지 않았다.안지여는 여전히 일어나지 않았고, 미소는 띠고 있었지만 매서운 눈빛으로 저들이 돌계단을 오르면 그때 일어나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게 그의 태도였다.하지만 안풍 친왕 부부는 돌계단을 오르지 않았고, 손님 중 건배를 권하느라 자리를 비운 사람들 의자에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이 차지하고 앉아, 그들을 대놓고 밀치더니 품에서 자기 젓가락을 꺼내 옆 사람 상관하지 않고 먹기 시작해 사람들이 다 경악했다.그들이 자리를 잡고 앉자 뒤따라 들어오는 사람들이 보였다.두 사람이 사람들에 둘러싸여 천천히 걸어들어오고 있었
풍도성 안은 술잔을 주고받고 건배하며 흥겨운 잔치가 한창 무르익고 있었다.안지여는 오늘 황금색 예복을 입었는데 예복에 거대한 이무기를 수놓았으며, 황실의 밝은 황색과는 약간 구별되었지만,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진짜 곤룡포로 착각할 만큼 거대한 이무기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형상이 구름을 뚫고 솟아오르는 용과 매우 흡사했다.안지여는 자신의 야심을 이미 조금도 감추지 않았다.당연히 안지여는 오늘도 야심을 감출 생각 없이 손님들에게 보란 듯이 자세를 잡았다. 심지어 인근 지역 조정 관리들이 손님으로 왔어도 안지여는 전부터 맺어온 관계였기에, 그들과 개인적인 친분이 매우 두터워 산 넘고 물 건너 저 멀리 있는 황제가 그들을 시시콜콜 관리할 수 없었다.그 자리 있던 사람들은 모두 오늘 황실에서 파견한 일행이 온다는 것을 알고, 연회석에서 큰 소리로 물었다. “성주님, 듣자하니 안풍 친왕 전하와 이리 부마께서 오늘 오신다던데 어째서 안 보입니까?”안지여가 잔을 들고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진심으로 생일을 축하한다면 결국 오겠지요.”“여정을 듣기론 오늘 분명 풍도성에 도착한다고 했는데, 어째서 밤이 되도록 아직 안 보입니까? 설마 성주님이 직접 나가서 맞이하셔야 하는 건 아니겠지요?”“성주님이 가서 맞이하셔야 한다고? 아주 허세가 대단한데? 퉤!”“누가 아니랍니까? 진심으로 생신을 축하하는 거였으면 며칠 전에 풍도성에 도착해 성의를 보여야지, 오늘까지 늑장을 부리다가 늦게서야 와서, 아직도 잔치에 오지 않은 건 분명 성주님의 체면을 안중에도 두지 않은 행태입니다. 제가 보기에 못 들어오게 막고 돌려보내시지요, 마음만 받은 셈 치고요. ”“맞습니다. 그동안 조정에서는 풍도성에서 받은 공물이 적지 않았으니, 만족한 줄도 알아야죠.”“풍도성은 더 이상 조공을 바칠 필요 없어요. 뭐 때문에 그럽니까? 수백 년 전에 풍도성은 원래 북당의 영토가 아니었어요. 선을 긋고 나와 독립해야 합니다.”모두 안지여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서, 몇 잔 들어가자, 비위를
소여쌍의 욕은 거의 반 시진 동안 계속되었다. 이것도 별로 드문 일이 아니라 무쌍거 사람들은 다 익숙해져 있었다. 성주가 오지 않거나 소여쌍이 아프기 시작해도 이렇게 욕을 해댔다.욕하다 지치기를 기다렸다가 늙은 몸종이 가서 달랬다. “부인 그러실 게 뭐가 있으십니까? 몸이 가장 중하십니다.”소여쌍이 의자에 기대 늘어졌다. 극도로 피곤해 풀린 눈으로 천정을 보며 비참함이 가슴 깊은 곳을 타고 내렸다. “오늘이 초엿새지?”“네!” 늙은 몸종이 대답했다.소여쌍이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곧 15일이구나. 또 내 명을 재촉하는 고통이 오겠지. 죽으면 죽었지 다시는 그 고통을 느끼고 싶지 않다.”그러자 늙은 몸종도 매우 괴로워했다. “부인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고통도 며칠이면 그럭저럭 지나가서, 그동안도 그렇게 지내셨잖아요?”“며칠이면 뭐 그럭저럭 지나가나?” 소여쌍이 잔인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건 네가 이 고통을 안 당해봐서 그래. 이게 다 이리봉청 그년 짓이야. 오빠가 그년을 쫓아가서 죽이게 한 걸 정말 후회해. 그년을 잡아 와서 가두고 내가 한 번씩 아플 때마다 그년을 갈기갈기 찢어발겨 나보다 수천 수백 배 고통스럽게 해야 했어.”늙은 몸종이 소여쌍의 손을 쥐었다. “부인 그런 생각 마세요. 벌써 죽은 사람을 이제 와서 생각해 봤자 아무 도움도 안 됩니다. 성주님과 자꾸 다투지 마세요. 자꾸 다투시다 보면 감정이 사라집니다.”소여쌍이 처연한 웃음을 지었다. “오빠는 진작부터 나한테 아무 감정 없어.”“성주님은 이리봉청에게 아무 감정 없으세요. 감정이 있을 리도 없고요. 안 그러면 당시 부인을 위해 이리봉청을 죽이고 천문 세가 사람을 다 죽이셨을 리가 없죠.”소여쌍이 고개를 돌리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전에는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요 몇 년간, 성에 들어온 여자들 생긴 걸 보라고. 전부 이리봉청을 쏙 빼닮았잖아? 오빠는 역시 후회하고 있는 거야. 날 위해 이리봉청을 죽인 걸.”소여쌍은 늙은 몸종의 손을 잡는데 고여서 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