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을 꾸짖는 원경릉올 때는 마음에 할 말이 있는 데다가, 와서 보니 원경릉이 오늘 사고현장의 포악한 모습이 아니라 한층 더 떳떳하게 말 할 수 있겠다.제왕은 원경릉의 죄상을 낱낱이 파헤치며 당당하게 말하고자 하는데 원경릉은 도리어 아무렇지도 않게: “일이 있으면 말씀하세요. 하지만 만약 호수에 빠뜨린 일이라면 입을 다물 걸 권해드립니다.”제왕은 원경릉의 죄상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데 당황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왜 말 할 수 없는 겁니까? 이 일은 아직 지나가질 않았고 형수는 반드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명취에게 사과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일을 아바마마 앞으로 들고 가 옳고 그름을 가려 달라 할 테니.”원경릉은 싸늘하게 웃으며, 제왕을 위 아래로 훑어 보더니, “이렇게 다 커 가지고 아직도 젖을 못 끊었나요? 무슨 일만 있으면 아바마마를 찾고, 어마마마를 찾고 왕비를 찾고, 전하는 머리가 없습니까?”제왕은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런 인신공격은 정말 도가 지나쳤고 원경릉이 자신에게 머리가 없다고 말한 게 한두번이 아니다.“난 엄연한 친왕으로 수차례의 모욕을 용납할 수 없소.” 제왕이 분노했다.원경릉이 앉으며 침착한 얼굴로, “저도 엄연한 친왕비이자 전하의 형수로, 여기서 무례하고 방자하게 구는 것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제왕이 발을 구르며, “이걸 따지자고 온 게 아니라 호수에 빠뜨린 일을 오늘 반드시 답을 듣고 말 것이오, 그렇지 않으면……”원경릉이 싸늘하게 제왕의 말을 자르며, “그렇지 않으면 아바마마께 가서 고하겠다?”제왕은 다소 난감하면서도 화가 나서: “말꼬리를 잡고 나를 괴롭히지 마시오. 내가 전에는 다섯째 형 얼굴을 봐서 따지지 않았지만 오늘 성밖에서 명취를 물어뜯고 모함해 명취가 초왕비를 호수에 밀었다고 하는데, 명취는 마음이 착해서 개미 한 마리도 죽이지 못하거늘 어떻게 명취를 그 따위로 말 할 수 있지? 양심이 있는 것인가? 정말이지 말이 통하지 않는 인간이구나.”원경릉은 그저 웃고 말았다. “마음
제왕을 세차게 꾸짖는 원경릉원경릉이 일어나 소매 속을 뒤지더니, 싸늘하게 웃으며, “좋아요, 호수에 빠진 일에 대해 얘기하죠.”어장을 수중에서 펼쳐 몰래 단추를 누르자 마디마디가 곧게 펴진다.제왕이 지켜보고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무슨 짓이오? 감히 날 때리면, 바로 알리……”원경릉이 제왕의 머리와 얼굴을 정면으로 한대 후려 갈기니 분노가 극에 달해, “알려, 알리라고, 내가 그렇게 주의를 줬 건만 여전히 호수에 빠진 일을 들먹여요? 호수 사건의 진상은 바로 주명취가 나를 빠뜨리고 자기도 따라서 뛰어내린 거예요. 상식적으로 생각해봐요. 나는 수영을 못하는데 주명취 죽이겠다고 내 목숨을 버리겠어요? 제왕은 바보일지 몰라도 난 아녜요. 제왕은 뇌가 없지만 난 있거든요. 오늘 내가 아주 이 멍청한 녀석을 때려 죽여야 겠네, 주명취가 뭔데? 주명취는 주씨 집안이 나서서 뒤를 봐주니 상관없지만, 나는 죽고 싶어서 회왕부까지 가서 주명취를 죽이겠어요? 나랑 주명취가 무슨 철천지 원수라고? 나는 당신 보는 데서 주명취한테 맹세하라고 했는데 못 하더군요. 왜 못할까요? 주명취는 뒤가 켕기겠지만 난 당당해요. 만약 그날 내가 주명취를 해칠 마음이 눈곱 만큼이라도 있어서 그녀를 호수에 밀었으면 이 원경릉이 제 명에 못 죽고 죽어서 땅에 묻히지 못할 겁니다!”이 말은 방금 제왕을 질책하던 말 보다 더 흥분해서 이 짧은 말에 대 여섯 대는 때렸다.“죽여 버릴……” 제왕은 화가 나서 전신이 불타올랐지만 원경릉의 손에 어장이 있어 감히 다가가지 못하고, 그녀를 노려보며 이글거리는 눈으로 죽여버리겠다고 중얼거리고 있었다.제왕은 사실 원경릉이 감히 자기를 때릴 줄은 몰랐다.너무 해! 너무 야만적이야!원경릉이 어장을 들고 다가오자 제왕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경계하는 눈빛으로, “다가오지 마, 뭐 하려고? 저리가, 어서 저리가!”“탕대인!” 원경릉이 문을 향해 외치는데, 밖에서 몇명이 안이 소란스러운 걸 지켜보고 있었다.탕양이 아무것도 모르고 들어와, “왕비마마 부
제왕의 고민제왕은 원경릉의 뒷모습을 보며 여전히 분노인지 모욕감인지 모를 감정을 느꼈다.제왕은 가지 않고 다섯째 형이 돌아오길 기다리기로 했다. 형에게 일러 바쳐야 직성이 풀릴 것 같다.탕양이 사람을 시켜 차를 가져왔다가 제왕이 여전히 분통을 터트리며 있는 모습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제왕 전하, 왕바마마께서 방금 하신 말씀은 참으로 금과옥조와 같으니 조금이라도 들어주세요, 왕비께서는 전하를 위해서 하신 말씀입니다.”“나를 위해서? 말도 안돼는 소리 마라!” 제왕이 ‘흥’코웃음을 치며, “형은 아직 안 돌아왔나?”탕양이 고개를 젓고 나갔다.제왕이 맑은 차를 한 모금 마셨으나 머릿속이 복잡해 차 맛을 전혀 모르겠다.이상한 느낌이 스멀스멀 퍼졌다.제왕은 원경릉의 말을 믿지 않는다. 한 마디도 믿을 수 없다.그런데 왜 명취는 맹세하지 않은 거지?원경릉과 다툴 필요조차 못 느꼈음에 틀림없다. 저런 포악하고 야만적인 여자와는 따지지 않는게 맞다.하지만 어딘가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드는 건 왜 일까?명취가 제왕을 정말 단순히 이용만 하거나 속이는 걸까?그러나 명취는 제왕에게 잘한다. 부드럽고 현명하고 왕비가 갖추어야 할 모습 그 자체다.제왕은 결혼하고 1년간을 차례로 떠올려보았다. 제왕에 대한 주명취의 태도는 어느 하나 가릴 것 없이 완벽했다.아내가 할 일도 모두 해낼 뿐 아니라 조금의 부족함도 없었다.제왕은 그래도 불만이 있나?불만은 없다. 단지 주명취에게 조금만 더 열정이 있다면, 부드러운 눈빛 말고 각종 정서가 담긴 눈빛 예를 들면 화났을 땐 분노, 즐거울 땐 희열의 눈빛, 질투할 땐……질투? 주명취는 거의 질투하지 않았는데 어마마마가 후궁을 들이겠다는 얘기를 했을 때도 온화하고 현숙하게 듣고 있을 뿐이었다.제왕의 마음이 일순간에 혼란스러워졌다.우문호가 돌아와서 탕양으로부터 제왕이 기다리고 있고 왕비에게 맞았다는 얘기를 들었다.우문호는 이 말을 듣고 동정을 표시했지만 마음 속으론 ‘쌤통’이라고 생각했다.일곱째 이 녀석은 사실
주명취에 대한 진실을 말하는 우문호우문호가 잠시 어리둥절했다. 머리에 똥만 들었는 줄 알았는데, 한 대 맞더니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나?우문호는 잠시 생각하더니, “결국 난 주명취와 결혼하지 않았을 거야, 핵심은 내가 아니라 주명취한테 있어.”“왜?” 제왕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주명취는 나한테 시집오지 않을 테니까.” 우문호가 담담하게 말했다.“왜?” 제왕은 여전히 이해되지 않았다. 둘은 처음부터 죽마고우였다.우문호가 웃으며 담담하게: “무슨 왜가 이렇게 많아?”제왕의 가슴이 철렁 내려 앉으며, “명취가 형한테 시집가고 싶지 않다니, 형이 나보다 태자로 책봉될 가능성이 낮기 때문인 거야?”우문호의 눈빛이 순간 예리 해지며, “그걸 왜 물어?”“못된 형수가 그렇게 말했어.” 제왕이 조금 상심한듯, 아니 실은 꽤 상심해서 말했다.“넌 그 말 믿어?” 우문호가 반문했다.제왕은 잠시 침묵하더니, “말도 안돼!”“말도 안되는 일을 넌 왜 고민하고 있어?”제왕은 침울한 모습으로, 자기도 모르겠다.나쁜 형수의 말은 당연히 믿을 게 못된다.형수의 말은 다 거짓말이다.“호수에 빠진 일에 대해 형은 나쁜 형수 말을 믿어?” 제왕이 다시 물었다.우문호는 조금 참을 수 없는 마음이 들었다. 단번에 이렇게 첨예하고 심각한 인격 문제를 한꺼번에 들이밀면 정말이지 어떻게 답해야 좋을지 모르겠다“형, 동생은 형이 진실을 말해 주길 원해.” 제왕이 심호흡을 하고, “어떤 충격이든 지금은 다 받아들일 수 있어.”우문호가 제왕에게,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믿어.”“왜?” 제왕의 마음이 뭔가로 갈가리 찢기는 듯 쓰리고 아팠다.우문호는 가볍게 한숨을 쉬고 제왕에게, “그날 일 아직 기억하니?”제왕이 고개를 끄덕이며, “기억해, 그때 우리가 달려갔을 때 명취는 의식을 잃고 나쁜 형수의 비녀에 찔려 있었지. 형수가 진짜 사람을 해치려고 마음 먹었다는 걸 딱 봐도 알 수 있었어.”“왜 사람을 해치려 했다고 생각해? 주명취를 이미 호수에 밀어 넣었는데, 설
우문호가 콧노래를 부르며 소월각(嘯月閣)으로 돌아왔다. 등불 아래에서 책을 보던 원경릉은 우문호의 콧노래 소리를 듣고는 고개를 들었다.“동생은 갔어?”원경릉이 물었다.“갔어!”우문호는 그녀의 손에 들린 책을 보고 “칠국지(七國志)? 이런 건 봐서 뭐해?”라고 물었다.원경릉은 책을 한쪽으로 밀며 “북당 이외에 어떤 나라가 있는지 알고 싶어.”라고 말했다.그녀는 몸을 일으켜 우문호가 외투를 벗는 것을 도왔다.“동생…… 괜찮아?”“많이 다친건 아닌 것 같은데, 적지 않게 충격받은 것 같아.”외투를 벗은 우문호가 원경릉을 끌어당겼다.“내가 참지 못하고 손이 먼저 나가버렸어.”원경릉이 말했다.“잘 때렸어. 맞아도 싸지. 괜히 신경 쓰지 마.” 우문호가 그녀를 위로했다. “신경 쓰는 거 아니야. 내가 한 행동에는 일말에 후회도 없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행동을 한 거지? 뇌가 없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도저히 이해가 안가.”말을 마친 그녀가 갑자기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우문호는 소름이 돋았다.“왜 그래?”우문호가 물었다.“내가 잊을 뻔했네. 실은 너랑 제왕이랑 별 차이 없잖아.”원경릉이 퉁명스럽게 말했다.“내가 걔랑 어떻게 같아?” 우문호가 열변을 토했다.“뭐가 달라? 너도 그 계집애한테 푹 빠졌었잖아!”원경릉은 속에서 천 불이 끓었다.우문호는 치솟은 그녀의 눈썹을 매만지며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내가 그 여자한테 속아서 그랬다고 밖에 할 말이 없어. 정신을 차리고 보니 참 바보 같았다. 어릴 적 누구나 한 번쯤 저지르는 멍청한 일 하나쯤은 있잖아?”“언제 정신을 차린 건데?”원경릉이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그를 보며“혹시 회왕부에서 내가 물에 빠졌을 때야?”라고 물었다.우문호는 고개를 저으며 “아니 그보다 훨씬 전이야.”라고 말했다.“그럼 어떤 사건을 계기로 정신을 차린 거야?”“사건 때문이 아니야, 그저 느낌이 그랬다. 그녀가 일곱째와 혼인을 한다고 했을 때, 그녀는 가식이 아닌 진
우문호는 원경릉의 옷을 입혀주고는 문쪽을 보며 화를 버럭 냈다.“안 꺼져?”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더니 그 앞에는 손으로 눈을 가린 서일이 서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손가락 사이를 벌려 원경릉과 우문호가 모두 옷을 입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서일은 화난 우문호의 모습을 보고 흠칫 놀라 몸이 굳었다.“무슨 일이야?” 우문호가 노발대발하며 그를 노려보았다.“왕야, 제왕님께 문제가 생겼습니다.” 서일은 정중하게 보고했다.원경릉은 놀라서 “제왕 금방 가지 않았어?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거야?”라고 물었다.“암살시도가 있었다고 합니다.” 서일이 말했다.“암살?” 우문호의 눈동자가 흔들리며 “그는 지금 어떠한가?”라고 물었다.“많이 다치지는 않아서, 이미 제왕부로 돌아갔다고 합니다.”서일이 말했다.“자객은 잡았어?”우문호는 외투를 입으며 “말을 준비해라!”라고 외쳤다.“나랑 같이 가.”원경릉이 말했다.“아니야, 너무 늦었어. 넌 나오지 마. 제왕이 많이 다치지는 않았다고 하니, 내가 빨리 갔다가 올게.”우문호가 원경릉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말했다. 제왕은 왕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암살을 당할 뻔했다.자객은 한 명뿐이었다. 당시 제왕의 옆엔 호위 무사 한 명과 마부 한 명이 있었다. 다행히 호위가 무술 실력이 좋아 자객을 물리쳤지만, 제왕은 부상을 입고 마차도 파손되었다. 제왕부의 마부가 초왕부로 들어와 마차를 빌려달라고 하자, 탕양과 서일이 제왕이 암살을 당할 뻔한 사실을 알고 급히 가서 상황을 살폈다. 탕양은 제왕의 상처 부위를 지혈한 뒤, 왕부로 데려다주었고, 서일은 이 사실을 우문호에게 보고했다.우문호는 말을 재촉해 제왕부로 갔다.그는 제왕이 많이 다치지 않은 것은 알았지만, 초왕부 근처에서 암살을 시도한 것을 미루어보아 자객이 초왕부를 모함하려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3개월 내에 연속으로 친왕 세명과 왕비 하나가 암살을 당할 뻔했다. 당초 그가 암살 위협을 당했을 때, 부황은 그가 스스로 자해를
제왕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무슨 일이 있거든, 내 앞에서 말하거라. 내가 죽는다고 해도 나를 속이려고 하지 마라.”라고 말했다.주명취는 눈살을 찌푸리며 “무슨 헛소리십니까? 어의도 가벼운 상처라고 한 마당에……. 헛소리 그만하시고 어의 말 잘 듣고 치료 잘 받고 계세요. 제가 초왕님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제왕은 한순간에 바뀌는 주명취의 표정을 보고 문득 원경릉이 했던 말이 떠올라 만감이 교차해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주명취는 고작 저런 가벼운 찰과상으로 징징거리는 제왕을 보며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내가 이런 한심한 인간에게 시집을 오다니.’주명취는 우문호에게“왕야, 이리로.”라고 하며 자리를 옮겼다.우문호는 주명취를 따라 가며 뒤를 돌아 제왕을 보고 “금방 갔다가 올게.”라고 말했다.제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습니다.”라고 말했다.주명취와 우문호는 접객실로 들어갔다. 그녀는 안에 있던 모든 이들을 밖으로 내보내고 문을 닫으려고 했다.“문은 닫을 필요 없어.”우문호가 말했다. 주명취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한번 슥 보더니 가시 돋친 목소리로 “왜? 내가 너를 덮치기라도 할까 봐? 예전에 원경릉이 공주부에서 너한테 했던 것처럼?”라고 말했다.우문호는 호포를 펄럭이며 자리에 앉았다.“생각도 참, 나는 그저 너도 나도 이미 혼인을 했으니 이런 불필요한 행동으로 오해를 만들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래.”우문호가 말했다.“오해?” 주명취가 차가운 표정으로 “언제부터 너랑 나의 사이가 오해가 된 거야? 원경릉을 사랑하다니, 너의 변한 마음 때문에 내가 얼마나 아픈 줄 알아?”라고 말했다.우문호는 눈살을 찌푸리며 “본왕에게 그렇게 말을 하는 저의가 뭐야? 이런 말이라면 본왕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라고 말했다.“원경릉의 어떤 점이 네 마음을 움직인 거야? 너 그 여자가 얼마나 비겁하고 비열한지 알아?” 주명취는 밖에서 누가 자신의 말을 듣든 말든 제왕부의 모든 사람이 자신의 손아귀에 있었기 때문에 걱
우문호는 주명취와 대화를 마치고 싶었다. 그는 안색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담담한 눈빛으로 주명취를 보았다. “너는 본왕을 여기로 데리고 와서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거야?”주명취는 그를 노려보더니 눈물을 흘렸다.“더 이상 할 말 없어. 그저 제왕이 초왕부 근처에서 암살을 당할 뻔했으니, 네가 이 사건에 연루될까 걱정돼서 그랬을 뿐인데……. 네가 날 그렇게 생각할지는 몰랐어. 넌 나를 슬프게 해. 가 봐. 이제 더 이상 제왕부에 오지 말아 줘.”우문호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아니, 제왕부에는 와야지. 일곱째가 여기 있잖아.”라고 말했다.말을 마친 우문호는 뒷짐을 지고 밖으로 나갔다. 그의 우람한 뒷모습을 보니 적어도 150Kg은 되는 것 같았다. 주명취는 화가 나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눈물을 닦았다. 눈물은 닦으면 닦을수록 더 많이 흘렀다. 그녀는 심장이 바늘에 찔린 듯 아팠다. 그녀는 우문호가 자신에게 저런 말을 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주명취는 줄곧 우문호가 자신을 제외하고 다른 여자를 마음에 담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왜 원경릉인 것이냐? 왜 그렇게 몰상식하고 혐오스럽기 짝이 없는 그런 여자를 택한 것일까? 그녀를 안지 얼마나 됐다고? 바보같이 그 여자를 믿다니!’“왕야! 방금 제왕비가 한 말이 너무 소름 끼칩니다.” 밖에서 그 둘의 대화를 들은 서일은 혀를 찼다.“닥쳐라!”우문호는 차갑게 소리쳤다.“예!” 서일이 다급히 입을 다물었다.우문호는 제왕을 찾아갔을 때, 그는 이미 상처를 다 치료한 상태였다. 탕양은 제왕의 옆을 지키다가 우문호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소인이 물어봤습니다. 보아하니 상황이 어렵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제왕은 방금 전에 자신을 공격하던 자객의 모습이 떠올라 화가 치밀었다.“다섯째 형님, 자객을 반드시 찾아주셔야 합니다.”우문호는 자리에 앉아 그를 바라보았다. “안심해. 내가 조사해 볼 테니, 근데 지금은 좀 어때?”제왕은 괴로운 듯 “아픕니다!”라고 말했다.“고작 그 정도도 못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