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취를 대하는 우문호의 태도와 제왕의 긁어 부스럼우문호는 이해할 수 없어서, “기왕 죽 배급 날짜를 정했으면서 왜 좀더 일찍 호빵에 대해 계획을 세우지 않았지? 일시적인 결정이라 해도, 점포 몇 개만 찾아도 호빵 몇 백 개 정도는 점심까지 걸릴 필요 없는데다, 내가 현장을 보니 고작 호빵 찜기가 10개로 호빵은 다해서 150개인데 그 정도면 만드는데 한 시진도 걸리지 않아.”주명취가 당황해서, 눈물이 맺힌 눈동자로 조금 놀랐다는 듯이 우문호는 바라봤다.그녀의 마음 속이 슬픔과 분노로 뒤덮였다.우문호가 온 게 사정청취 때문일까? 아니면 그저 폐하의 명을 받고 몇 마디 물어보려는 것뿐일까?후자라면 애초에 이렇게 자세히 물을 필요가 없다.만약 전자라면…… 우문호는 정말 변했다.주명취는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눈물을 뚝뚝 떨굴 듯이, “머리가 아파요, 이런 일은 아랫사람들이 하게 해서 호오빠, 그 사람들에게 물어 보세요, 저는 오늘 사실…… 마음이 아프고 괴로워요.”제왕이 얼른 말했다: “다섯째 형, 호빵은 일시적으로 떠오른 생각이라고 했고 일찍 결정한 것도 아니니 150개가 적당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아무도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예상치 못 했어. 명취는 좋은 뜻에서 한 일이야.”우문호는 못난 제왕의 꼬라지를 보고 물어도 마땅한 답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아: “그럼 알겠어, 구체적인 정황은 나도 이미 이해했으니 잘 쉬어라 나는 갈게.”주명취는 눈을 내리깔고 담담한 얼굴로 작게: “초왕 전하 살펴가세요.”이 초왕이란 말은 무정하고 냉담한 의미로 이전의 친절하던 호오빠가 전혀 아니란 소리다.우문호는 얼굴에 아무런 표정 없이 일어났고,제왕이 따라 나갔다.“형, 방금 말은 분명히 하는 게 좋겠어.”우문호는 긁어 부스럼을 만든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제왕의 얼굴을 보고, “좋아, 네가 말하겠다고 하니 분명히 하자, 넌 어떻게 얘기하고 싶은데?”제왕이 불쾌한 얼굴로: “당초에 나한테 됐다고 했지만 형수는 전혀 반성하는 기미가 없어서 이 일은 그냥 넘
제왕에게 화가 난 원경릉서일이 보니 우문호는 관아 방향을 향하고 있어 묻지 않을 수 없는데, “왕야, 초왕부로 돌아가지 않으십니까?”우문호가: “초왕부에 가서 뭐하게? 부인이 포악 떠는 걸 지켜보라고? 아냐, 난 왕비의 아름답고 우아한 면만 보고 싶구나.”여인이 사나워지면 흉포하다.서일이 의심스러워 하며, “왕비께서 정말 제왕 전하를 때리실 수 있겠습니까?”제왕은 다름아닌 황후의 아들로 왕비는 현비마마께도 감히 함부로 하지 못하거늘 어찌 황후마마께 밉보일 수 있을까?우문호는 원경릉이 절대 그러고도 남을 것이라고 믿었다.원경릉은 일곱째에게 분노가 끓어오르는 걸, 오랫동안 참고 참아 지금까지 버텨왔다.성밖에 사고 현장에서 원경릉이 일곱째를 매섭게 꾸짖는 것을 듣고, 만약 사람이 많고 환자 처치가 급하지 않았으면 원경릉은 더 잘했을 것이 틀림없다. 만약 오늘밤 일곱째가 초왕부에서 원경릉에게 호수 사건을 꺼내면…… ‘너 잘 걸렸다. 피맺힌 원한 맛 좀 봐라.’원경릉이 이 순간을 잘 참고 넘긴다면 우문호가 졌다고 해도 좋다.원경릉은 화를 잘 내는 성격은 아니지만 원칙성이 강해서 자신이 잘못했으면 반드시 진심으로 사과한다. 하지만 만약 자신이 잘못한 게 아닌데 상대방이 계속 강요하면 참지 못하고 성격 나온다.그때를 생각해보면 원경릉은 죽을 힘을 다해 우문호를 피가 날때까지 깨물었다.오늘 원경릉은 상당히 까칠한 상태이며, 이 사건으로 다친 사람이 너무 많고 분명 피할 수 있었던 사고기 때문이다.개다가 억지로 초왕부로 돌아가 쉬도록 했으니 기분이 상했는데 일곱째가 가서 건드리면 분명 좋을 게 없다. 우문호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말을 달려 우다다다 관아로 향했다. 야근 당첨이다!원경릉은 오늘 정말 화가 났다.당시엔 부상자가 많고 사람을 구하느라 정신 없어 이 문제를 생각할 겨를이 전혀 없었다.하지만 초왕부로 돌아와 희상궁과 녹주가 지켜보는 가운데 자려고 누워 있으니 주명취가 이번 사건을 저질렀단 생각이 떠올라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백성
원경릉을 찾아온 제왕“배웠지!”“누구한테 배웠어?” 원경병은 언니가 의술을 배운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었고 게다가 그 의술도 이상야릇한 의술이다. 원경릉이 웃으며, 아무 말도 없다.“비밀스럽기도 하지!” 원경병은 물어도 답이 없을 걸 알기에 묻기도 귀찮다.다바오는 뛰어놀다가 원경릉 발 아래로 돌아와 엎드려 헥헥 거렸다.원경병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있다가, “오늘 제왕 전하가 하는 말을 들으니 주명취가 임신했다며.”원경릉이 ‘응’하고, “임신했으면 임신한 거지.”“언니는 걱정 안돼?” 원경병이 고개를 옆으로 돌려 언니를 봤다.원경릉이 실소하며, “뭘 걱정해? 내가 애 아빠도 아닌데.”“제왕 전하는 황제의 적자잖아. 만약 주명취가 회임하면 제왕 전하가 거진 태자로 옹립되는 거나 다름 없지. 형부가 곧 황제 폐하의 눈에 띌 것 같았는데 아쉽다.” 원경병이 한숨을 쉬었다.“지금 태자가 되는 게 꼭 좋은 일만은 아닐지도 몰라. 표적이 될 테니까!”“누가 감히 제왕 전하를 건드리겠어? 제왕의 뒤엔 주씨 집안이 있는데.” 원경병이 비록 조정의 일은 잘 모르지만 주씨 집안의 위력에 대해선 알만큼 안다.원경릉이 고개를 끄덕이며, “하늘에 오르려면 우선 산 정상부터 오르려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지.”“언니, 언니는 태자비가 되고 싶지 않아? 태자비가 되면 앞으로 황후가 될 수 있다고.” 원경병이 말했다.‘황후란 말이지’, 원씨 집안 8대에 걸쳐 감히 이런 생각을 해본 사람이 없었다.정후는 고작 큰 딸을 초왕에게 시집 보내는데, 아버지가 가진 모든 인맥을 총동원할 정도다.막 목적을 달성했던 그 순간엔 아버지가 매일 콧노래를 부르며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했다.만약 큰 딸이 태자비가 된다면, 아버지는 너무 기쁜 나머지 미칠 지로 모른다.녹주가 빠른 걸음으로 와서, “왕비마마, 제왕 전하께서 오셨습니다.”원경릉은 눈도 깜짝하지 않고, “왕야께서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으니 내일 다시 오시라고 말씀드려라.”“제왕 전하께서 왕비마마를 찾아오셨다고 합니
제왕을 꾸짖는 원경릉올 때는 마음에 할 말이 있는 데다가, 와서 보니 원경릉이 오늘 사고현장의 포악한 모습이 아니라 한층 더 떳떳하게 말 할 수 있겠다.제왕은 원경릉의 죄상을 낱낱이 파헤치며 당당하게 말하고자 하는데 원경릉은 도리어 아무렇지도 않게: “일이 있으면 말씀하세요. 하지만 만약 호수에 빠뜨린 일이라면 입을 다물 걸 권해드립니다.”제왕은 원경릉의 죄상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데 당황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왜 말 할 수 없는 겁니까? 이 일은 아직 지나가질 않았고 형수는 반드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명취에게 사과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일을 아바마마 앞으로 들고 가 옳고 그름을 가려 달라 할 테니.”원경릉은 싸늘하게 웃으며, 제왕을 위 아래로 훑어 보더니, “이렇게 다 커 가지고 아직도 젖을 못 끊었나요? 무슨 일만 있으면 아바마마를 찾고, 어마마마를 찾고 왕비를 찾고, 전하는 머리가 없습니까?”제왕은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런 인신공격은 정말 도가 지나쳤고 원경릉이 자신에게 머리가 없다고 말한 게 한두번이 아니다.“난 엄연한 친왕으로 수차례의 모욕을 용납할 수 없소.” 제왕이 분노했다.원경릉이 앉으며 침착한 얼굴로, “저도 엄연한 친왕비이자 전하의 형수로, 여기서 무례하고 방자하게 구는 것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제왕이 발을 구르며, “이걸 따지자고 온 게 아니라 호수에 빠뜨린 일을 오늘 반드시 답을 듣고 말 것이오, 그렇지 않으면……”원경릉이 싸늘하게 제왕의 말을 자르며, “그렇지 않으면 아바마마께 가서 고하겠다?”제왕은 다소 난감하면서도 화가 나서: “말꼬리를 잡고 나를 괴롭히지 마시오. 내가 전에는 다섯째 형 얼굴을 봐서 따지지 않았지만 오늘 성밖에서 명취를 물어뜯고 모함해 명취가 초왕비를 호수에 밀었다고 하는데, 명취는 마음이 착해서 개미 한 마리도 죽이지 못하거늘 어떻게 명취를 그 따위로 말 할 수 있지? 양심이 있는 것인가? 정말이지 말이 통하지 않는 인간이구나.”원경릉은 그저 웃고 말았다. “마음
제왕을 세차게 꾸짖는 원경릉원경릉이 일어나 소매 속을 뒤지더니, 싸늘하게 웃으며, “좋아요, 호수에 빠진 일에 대해 얘기하죠.”어장을 수중에서 펼쳐 몰래 단추를 누르자 마디마디가 곧게 펴진다.제왕이 지켜보고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무슨 짓이오? 감히 날 때리면, 바로 알리……”원경릉이 제왕의 머리와 얼굴을 정면으로 한대 후려 갈기니 분노가 극에 달해, “알려, 알리라고, 내가 그렇게 주의를 줬 건만 여전히 호수에 빠진 일을 들먹여요? 호수 사건의 진상은 바로 주명취가 나를 빠뜨리고 자기도 따라서 뛰어내린 거예요. 상식적으로 생각해봐요. 나는 수영을 못하는데 주명취 죽이겠다고 내 목숨을 버리겠어요? 제왕은 바보일지 몰라도 난 아녜요. 제왕은 뇌가 없지만 난 있거든요. 오늘 내가 아주 이 멍청한 녀석을 때려 죽여야 겠네, 주명취가 뭔데? 주명취는 주씨 집안이 나서서 뒤를 봐주니 상관없지만, 나는 죽고 싶어서 회왕부까지 가서 주명취를 죽이겠어요? 나랑 주명취가 무슨 철천지 원수라고? 나는 당신 보는 데서 주명취한테 맹세하라고 했는데 못 하더군요. 왜 못할까요? 주명취는 뒤가 켕기겠지만 난 당당해요. 만약 그날 내가 주명취를 해칠 마음이 눈곱 만큼이라도 있어서 그녀를 호수에 밀었으면 이 원경릉이 제 명에 못 죽고 죽어서 땅에 묻히지 못할 겁니다!”이 말은 방금 제왕을 질책하던 말 보다 더 흥분해서 이 짧은 말에 대 여섯 대는 때렸다.“죽여 버릴……” 제왕은 화가 나서 전신이 불타올랐지만 원경릉의 손에 어장이 있어 감히 다가가지 못하고, 그녀를 노려보며 이글거리는 눈으로 죽여버리겠다고 중얼거리고 있었다.제왕은 사실 원경릉이 감히 자기를 때릴 줄은 몰랐다.너무 해! 너무 야만적이야!원경릉이 어장을 들고 다가오자 제왕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경계하는 눈빛으로, “다가오지 마, 뭐 하려고? 저리가, 어서 저리가!”“탕대인!” 원경릉이 문을 향해 외치는데, 밖에서 몇명이 안이 소란스러운 걸 지켜보고 있었다.탕양이 아무것도 모르고 들어와, “왕비마마 부
제왕의 고민제왕은 원경릉의 뒷모습을 보며 여전히 분노인지 모욕감인지 모를 감정을 느꼈다.제왕은 가지 않고 다섯째 형이 돌아오길 기다리기로 했다. 형에게 일러 바쳐야 직성이 풀릴 것 같다.탕양이 사람을 시켜 차를 가져왔다가 제왕이 여전히 분통을 터트리며 있는 모습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제왕 전하, 왕바마마께서 방금 하신 말씀은 참으로 금과옥조와 같으니 조금이라도 들어주세요, 왕비께서는 전하를 위해서 하신 말씀입니다.”“나를 위해서? 말도 안돼는 소리 마라!” 제왕이 ‘흥’코웃음을 치며, “형은 아직 안 돌아왔나?”탕양이 고개를 젓고 나갔다.제왕이 맑은 차를 한 모금 마셨으나 머릿속이 복잡해 차 맛을 전혀 모르겠다.이상한 느낌이 스멀스멀 퍼졌다.제왕은 원경릉의 말을 믿지 않는다. 한 마디도 믿을 수 없다.그런데 왜 명취는 맹세하지 않은 거지?원경릉과 다툴 필요조차 못 느꼈음에 틀림없다. 저런 포악하고 야만적인 여자와는 따지지 않는게 맞다.하지만 어딘가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드는 건 왜 일까?명취가 제왕을 정말 단순히 이용만 하거나 속이는 걸까?그러나 명취는 제왕에게 잘한다. 부드럽고 현명하고 왕비가 갖추어야 할 모습 그 자체다.제왕은 결혼하고 1년간을 차례로 떠올려보았다. 제왕에 대한 주명취의 태도는 어느 하나 가릴 것 없이 완벽했다.아내가 할 일도 모두 해낼 뿐 아니라 조금의 부족함도 없었다.제왕은 그래도 불만이 있나?불만은 없다. 단지 주명취에게 조금만 더 열정이 있다면, 부드러운 눈빛 말고 각종 정서가 담긴 눈빛 예를 들면 화났을 땐 분노, 즐거울 땐 희열의 눈빛, 질투할 땐……질투? 주명취는 거의 질투하지 않았는데 어마마마가 후궁을 들이겠다는 얘기를 했을 때도 온화하고 현숙하게 듣고 있을 뿐이었다.제왕의 마음이 일순간에 혼란스러워졌다.우문호가 돌아와서 탕양으로부터 제왕이 기다리고 있고 왕비에게 맞았다는 얘기를 들었다.우문호는 이 말을 듣고 동정을 표시했지만 마음 속으론 ‘쌤통’이라고 생각했다.일곱째 이 녀석은 사실
주명취에 대한 진실을 말하는 우문호우문호가 잠시 어리둥절했다. 머리에 똥만 들었는 줄 알았는데, 한 대 맞더니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나?우문호는 잠시 생각하더니, “결국 난 주명취와 결혼하지 않았을 거야, 핵심은 내가 아니라 주명취한테 있어.”“왜?” 제왕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주명취는 나한테 시집오지 않을 테니까.” 우문호가 담담하게 말했다.“왜?” 제왕은 여전히 이해되지 않았다. 둘은 처음부터 죽마고우였다.우문호가 웃으며 담담하게: “무슨 왜가 이렇게 많아?”제왕의 가슴이 철렁 내려 앉으며, “명취가 형한테 시집가고 싶지 않다니, 형이 나보다 태자로 책봉될 가능성이 낮기 때문인 거야?”우문호의 눈빛이 순간 예리 해지며, “그걸 왜 물어?”“못된 형수가 그렇게 말했어.” 제왕이 조금 상심한듯, 아니 실은 꽤 상심해서 말했다.“넌 그 말 믿어?” 우문호가 반문했다.제왕은 잠시 침묵하더니, “말도 안돼!”“말도 안되는 일을 넌 왜 고민하고 있어?”제왕은 침울한 모습으로, 자기도 모르겠다.나쁜 형수의 말은 당연히 믿을 게 못된다.형수의 말은 다 거짓말이다.“호수에 빠진 일에 대해 형은 나쁜 형수 말을 믿어?” 제왕이 다시 물었다.우문호는 조금 참을 수 없는 마음이 들었다. 단번에 이렇게 첨예하고 심각한 인격 문제를 한꺼번에 들이밀면 정말이지 어떻게 답해야 좋을지 모르겠다“형, 동생은 형이 진실을 말해 주길 원해.” 제왕이 심호흡을 하고, “어떤 충격이든 지금은 다 받아들일 수 있어.”우문호가 제왕에게,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믿어.”“왜?” 제왕의 마음이 뭔가로 갈가리 찢기는 듯 쓰리고 아팠다.우문호는 가볍게 한숨을 쉬고 제왕에게, “그날 일 아직 기억하니?”제왕이 고개를 끄덕이며, “기억해, 그때 우리가 달려갔을 때 명취는 의식을 잃고 나쁜 형수의 비녀에 찔려 있었지. 형수가 진짜 사람을 해치려고 마음 먹었다는 걸 딱 봐도 알 수 있었어.”“왜 사람을 해치려 했다고 생각해? 주명취를 이미 호수에 밀어 넣었는데, 설
우문호가 콧노래를 부르며 소월각(嘯月閣)으로 돌아왔다. 등불 아래에서 책을 보던 원경릉은 우문호의 콧노래 소리를 듣고는 고개를 들었다.“동생은 갔어?”원경릉이 물었다.“갔어!”우문호는 그녀의 손에 들린 책을 보고 “칠국지(七國志)? 이런 건 봐서 뭐해?”라고 물었다.원경릉은 책을 한쪽으로 밀며 “북당 이외에 어떤 나라가 있는지 알고 싶어.”라고 말했다.그녀는 몸을 일으켜 우문호가 외투를 벗는 것을 도왔다.“동생…… 괜찮아?”“많이 다친건 아닌 것 같은데, 적지 않게 충격받은 것 같아.”외투를 벗은 우문호가 원경릉을 끌어당겼다.“내가 참지 못하고 손이 먼저 나가버렸어.”원경릉이 말했다.“잘 때렸어. 맞아도 싸지. 괜히 신경 쓰지 마.” 우문호가 그녀를 위로했다. “신경 쓰는 거 아니야. 내가 한 행동에는 일말에 후회도 없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행동을 한 거지? 뇌가 없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도저히 이해가 안가.”말을 마친 그녀가 갑자기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우문호는 소름이 돋았다.“왜 그래?”우문호가 물었다.“내가 잊을 뻔했네. 실은 너랑 제왕이랑 별 차이 없잖아.”원경릉이 퉁명스럽게 말했다.“내가 걔랑 어떻게 같아?” 우문호가 열변을 토했다.“뭐가 달라? 너도 그 계집애한테 푹 빠졌었잖아!”원경릉은 속에서 천 불이 끓었다.우문호는 치솟은 그녀의 눈썹을 매만지며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내가 그 여자한테 속아서 그랬다고 밖에 할 말이 없어. 정신을 차리고 보니 참 바보 같았다. 어릴 적 누구나 한 번쯤 저지르는 멍청한 일 하나쯤은 있잖아?”“언제 정신을 차린 건데?”원경릉이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그를 보며“혹시 회왕부에서 내가 물에 빠졌을 때야?”라고 물었다.우문호는 고개를 저으며 “아니 그보다 훨씬 전이야.”라고 말했다.“그럼 어떤 사건을 계기로 정신을 차린 거야?”“사건 때문이 아니야, 그저 느낌이 그랬다. 그녀가 일곱째와 혼인을 한다고 했을 때, 그녀는 가식이 아닌 진
경천은 그녀의 말을 반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네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다."택란이 말했다."어쩌면 5년 후에는 오늘 한 모든 일이 어리석고 충동적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좋아하는 여인을 만나게 될 때, 그 감정이 단순한 사모인지 은혜 때문인지 알게 되실 것이고, 오늘의 행동을 후회하게 될지도 모릅니다."경천은 단 한 마디만 응한 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태도가 이렇게나 분명하니, 절대 그런 말로 그녀를 얽매여 부담을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오늘 한 모든 일은 그의 결정이며 그의 태도였다. 그녀는 몰라도 되고,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긴 하지만, 그는 언제나 그녀를 기다릴 것이었다.그리고 그녀의 인정을 얻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택란은 한숨 놓은 듯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해한다니 다행입니다.""알고 있다."경천의 얼굴은 약간 창백했지만, 애써 미소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삼 태감이 책자를 가져왔다. 경천은 그것을 택란에게 건넸고, 택란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았다. 그가 제시한 조건은 매우 공정했으며, 심지어 약도성에 이익을 양보한 정도였다.책자를 접은 후, 그녀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우리 약도성을 생각해 줘서 고맙습니다. 두 나라의 원한을 풀기 위해 애써줘서, 그리고 약도성의 백성과 조정이 화해할 수 있도록 도와줘서 고맙습니다.""알고 있었던 것이냐?"경천이 다소 놀라며 묻자, 택란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예. 알아봤습니다.""오해하지 마라. 그저 너를 위하여 한 일이 아니니, 부담 갖지 않아도 된다."그는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해명했다.택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오해하지 마시지요. 저는 정말 부담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를 위해 이렇게 많은 일을 해줘서 고마울 뿐입니다. 오늘도 사실 많이 감동했습니다. 다만, 저는 아직 혼사에 대해 논할 나이가 아니고, 사적인 감정보다는 다른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직 어리고, 앞으로 혼사를 하더라도 반드시 아바마마
손에 쥐니, 차가운 촉감이 느껴졌다. 그 옥의 차가운 느낌이 서서히 스며들자, 그녀는 기분이 좋았다.그는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놀라운 표정을 지었을 때, 그는 미세하게 안도하며, 그녀가 좋아할 것이라 믿었다."직접 만든 것입니까?"택란은 마음에 든 듯 손에 꼭 쥐고 있었다. 그녀의 밝은 눈동자에는 존경이 가득했다."응!"그는 힘주어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마음에 드냐?""예. 정말 마음에 듭니다!"택란도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더욱 빛나는 미소를 지었다.그러자 그가 약간 흥분된 표정으로 물었다."그럼, 이걸 직접 나에게 선물해 줄 수 있느냐?""예?"택란이 잠시 멈칫하며, 놀라 물었다."저에게 준 선물이 아닙니까?"그가 미세하게 떨리는 손끝으로 소매 주머니에서 또 다른 옥 조각을 꺼내 손바닥에 올려놓으며, 진지하게 말했다."이건 내가 네게 직접 주고 싶은 것이다."택란은 그가 손에 든 것을 바라보았다. 옥질도 동일하게 맑고 투명했고, 손바닥의 선도 보일 정도였는데, 그 조각에는 경천의 모양이 새겨져 있었다.옥에는 미소를 짓고 있는 준수한 그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고,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 입고 있던 옷이 새겨져 있었다. 비록 색은 알 수 없었지만, 자수가 명확하게 새겨져 있었다.그녀는 기억력이 매우 좋았기에, 그때의 기억이 선명히 떠올랐다.그녀는 두 개의 옥을 손바닥에 놓았다. 그제야 그녀는 옥에 3년 전 그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가 시간을 되돌려 3년 전 만남을 담은 것이었다!경천은 택란을 바라보며, 애써 차분함을 유지하려 했다. 하지만 심장은 거의 목구멍까지 올라올 듯했다.택란이 두 개의 옥을 서둘러 상자에 다시 넣으며 말했다."두 개 모두 오라버니께서 먼저 가지고 있으세요."경천은 눈시울을 붉히며 다시 건네받은 상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눈을 내리깔며, 애써 실망이 드리운 눈빛을 숨겼다.삼 태감이 정교한 음식을 올려놓았고, 모두 택란이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그녀는 가볍게 숨을 내쉬며, 알 수 없는 작은 흥분을 억누르고, 표정을 고쳐서 천천히 돌아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북당 백성인 란이 언니와의 혼사는 다 거짓인 겁니까?"경천의 동공이 흔들렸다."혹시... 화가 난 것이냐?""아닙니다."택란이 고개를 젓자, 밝은 빛이 그녀의 깨끗한 얼굴에 비쳤고, 고르게 정리된 이마 밑의 눈동자는 다시 차분해졌다."그런데 어찌 사람을 시켜 저를 찾고 있다고 직접 저게 소식을 전하지 않으셨습니까? 만약 편지를 보냈다면, 저도 오라버니를 만나러 왔을 것입니다. 심지어 혼사에 하객까지 청하며 일을 이렇게나 크게 벌였는데, 대체 어떻게 수습하려고 하십니까?"그는 갑자기 결단을 내린 듯, 천천히 그녀 앞에 섰다. 그러고는 그녀의 까만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위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수습할 필요 없다. 나는 이미 천하에 나의 황후가 우문택란이라고 선언했다. 나는 그녀가 어서 크기만을 기다리고 있다."택란은 순간 놀라하며, 굳어진 얼굴로 물었다.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경천은 그녀가 화가 난 것 같아, 마음이 내려앉았다. 그의 눈동자엔 어두운 그림자가 깔렸고, 이내 조심스레 물었다."응할 수... 있겠느냐?"택란은 잠시 망설였다. 기억 속의 그 소년이 지금 별빛을 받으며 그녀 곁으로 돌아왔다. 이전의 그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10년 후 그가 죽지 않으면 돌아와서 그녀를 부인으로 맞겠다고 열정적으로 말했었다. 그 열정이 가득한 목소리는 지금도 그녀의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그런 과거와 현재가 얽혀 버리자, 대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저는..."경천은 그녀가 망설이는 모습을 보며,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는 그녀의 반응이 너무 당황스러워서, 얼굴을 조금 숙이며 말했다."지금 바로 대답할 필요 없다. 몇 년 후라도, 10년, 아니 20년 후라도 괜찮다.""하지만...""아니, 말하지 말거라."그는 방금까지만해도 가득찼던 자신감을 더 이상 보여줄 수 없
냉명유는 팔짱을 낀 채 검을 가슴 앞으로 옮기며, 차갑게 말했다."누님께서 어디로 가든, 저도 무조건 함께 갈 것입니다."“하… 하지만."삼 태감이 무척 난감해했다."그래. 함께 가자. 이 거월통천각이 정말 달을 딸 수 있는지 어디 가서 보자꾸나!"그러자 택란이 웃으며 말했다.주 아가씨는 조금 의심스러웠다. 정말 공주가 만나고 싶다면, 어찌 공주한테 이렇게 높은 계단을 오르게 할 수 있는가?그러고는 계단 위에 새겨진 난초꽃을 힐끗 보고는 순간 멈칫했다. 시선을 위로 올려보니, 계단의 각 층마다 난초꽃이 새겨져 있었다.황제가 자신의 그리움을 돌계단에 새긴 것이었다!택란도 계단을 오르며, 이 사실을 눈치챘다.게다가 각 난초의 형태와 크기는 매우 똑같았다. 처음에는 선이 조금 거칠게 느껴지긴 했지만, 후에는 점점 더 섬세하고 부드러워 보였다.이건 분명 같은 사람이 새긴 것 같았다. 그가 직접 조각한 것일까? 금나라가 이곳으로 수도를 옮긴지 아직 1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잠시 후, 그들은 거월통천각의 가장 높은 층에 도착했다. 다행히 냉명여는 문 앞에서 멈추고 안까지 들어가지 않았다.택란은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는데, 안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네개의 용 모양 기둥이 세워져 있었고, 네 모서리에는 각각 올라가 쉴 수 있는 정자가 있었다. 정자에는 난간이 둘러져 있었으며, 가운데에는 탁자와 두 개의 의자가 놓여 있었다. 떠힌. 네 면에 걸려져 있는 대나무 커튼이 걷혀 있어, 사방에서 밖을 볼 수 있었다.그 사이에서 청색 비단옷 차림의 남자가 통천각 옆 난간에 기대어 택란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는 매우 긴장한 듯 손과 발을 살짝 떨고 있었다. 별빛처럼 맑은 눈동자에 약간 숨이 가쁜 듯 보였다. 그는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그녀를 보자마자 이내 눈시울을 붉혔다.재회를 위해 최선을 다하며 가장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에, 그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이 만남을 특별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반짝이는 별들도 그중 하나였다.하지만
손님들이 하나둘씩 떠나자, 경천 황제는 서둘러 궁으로 돌아가 푸른 비단옷으로 갈아입었다.옅은 청색 옷자락에, 소매 끝에는 난초꽃이 수놓아져 있었고, 나머지 부분은 어두운 구름 문양으로 수놓아져 있었다. 이 옷감은 북당에서 온 것이었다."폐하, 꼬마 은인께서 궁문에 도착하셨다고 합니다."삼 태감이 와서 보고했다."좋소."그는 거울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깊은숨을 내쉬었다."택수운천으로 가겠네."택수운천은 그가 즉위한 후, 궁궐 안에 지은 새 궁전으로, 세 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궁전 옆에는 거월통천각이 있었는데, 이는 량주성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거월통천각 안에 있으면 마치 손바닥에 달을 담을 수 있을정도로 웅장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거월통천각에서 멀게는 약도성과 량주가 인접한 산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녀가 생각날 때면, 늘 거월통천각의 가장 높은 층으로 올라가 풍경을 멀리 바라보곤 했다."진이야, 너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해 본 적이 있느냐?"그가 준수한 옷차림으로 난간에 기대어 먼 곳을 바라보며 물었다. 바람이 서서히 불며 청색 옷자락이 휘날리자, 옷자락의 네 끝에 박힌 고급스러운 야명주가 그의 선명하고 잘생긴 얼굴을 비추었다.그때, 저 멀리서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궁 시위를 따라, 아치과 복도를 지나 거월통천각으로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그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젊은 금군 통령 진이가 그의 모습을 보고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그런 적 없습니다.""사모의 마음을 품어보거라. 떨리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느낌만큼 좋은 것이 없다."그는 그녀를 멍하니 보며 말했다. 천천히 다가오는 탓에 그녀의 얼굴이 자세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13세 전까지의 그의 인생에는 나라와 백성들 뿐이었지만, 13세 이후 그의 인새은 온통 그녀뿐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지금 그녀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진이는 황제의 시선을 따라, 천천히 다가오는 세 명을 보며
안왕은 보책을 받아 든 순간, 갑자기 무엇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정확히 어떤 점이 이상한지 말로 설명할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일이 다 이상하게 느껴졌다.보책을 펼쳐 안에 적힌 이름을 본 순간 그는 드디어 이상한 점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게 되었다.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굳어진 표정으로 경천 황제를 바라보았다.경천 황제는 얼굴에 미소를 띠며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조사를 통해 드디어 그녀의 이름을 알게 되었소. 그녀의 이름은 우문택란이오. 금나라 황후의 이름은 우문택란이네. 난 반드시 그녀를 찾아낼 것이오. 만약 그녀가 황후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황후의 자리는 그녀를 위해 계속 비워둘 것이네.”위왕은 온몸에 식은땀을 흐르는 탓에 두 손을 급히 움켜잡았다. 방금 황제가 보책을 그의 손에 올리지 않아, 그가 받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정말 다섯째에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다!안왕은 어두워진 안색으로 자리에서 물러나 이를 악물고 낮은 소리로 위왕에게 말했다.“방금까지도 어린 황제에게 어리석다고 했건만. 이렇게 계책에 능하고 이따위 교묘한 계책으로 우리 형제를 그와 같은 편에 서게 만들다니...!”위왕은 또 한 걸음 물러서며 아무런 표정 없이 말했다.“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구나. 방금 술을 두 잔 마셔 조금 취한 터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구나. 아니, 지금 들고 있는 그건 무엇이냐?”안왕은 단단한 그의 팔을 비틀어 버리고 싶을 정도로 분노했다.하지만 이 상황 속에서 연회는 계속되었고, 사람들의 감정은 점점 고조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북당 황제의 작은 공주도 우문택란이라는 말을 꺼냈다.그 말에 다들 그 당시 금나라 황제를 구한 사람이 북당의 작은 공주가 맞는지 추측하기 시작했다.정말 북당 공주가 맞는다면, 금나라 황제도 참 배짱이 큰 것이다. 사실상 북당 황실이 금나라 황제를 구했다고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만약
경천은 위왕의 말을 듣자, 마치 마음속 큰 돌덩이가 내려간 듯 후련해 보였다. 그는 그러고는 궁인에게 술을 올리게 해 술잔을 여러 차례 돌린 후, 아래를 둘러보며 말했다.“오늘 여러분께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리겠소. 이 이야기를 듣고 나면 오늘 정혼연이 어찌 열리게 되었는지 알게 될 것이오.”그러자 모두가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말에 당황을 금치 못하며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정혼연이든 혼례든, 이런 자리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이때, 위왕이 안왕의 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다섯째에게 서신을 보내야겠다. 금나라에서 실권을 쥐고 있는 자가 황제가 아닐 수도 있다. 진국왕이 아직 살아 있고, 이 황제가 꼭두각시일지도 모른다.”“맞소. 확실히 조금 병신같아 보이네.”안왕도 동의했다.참고로 ‘병신같다’는 표현은 안왕이 조카에게서 배운 단어였다.“이 이야기는 3년 전쯤에 있었던 일이오.”이내 경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의 목소리에는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이 담겨져 있었다.“당시 금나라는 진국왕이 집권하고 있었는데, 그는 나를 대신해 금나라의 군주가 되려 했소. 이 사실은 여러분도 알고 있을 것이오. 그때 난 진국왕과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었소. 진국왕이 왕위를 빼앗으려 나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민다고 하기에, 나도 어쩔 수 없이 반격에 나섰는데, 그 과정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소. 그때 나를 구해준 이가 바로 란이라는 소녀이오. 만약 그녀가 없었다면 난 이미 죽은 목숨이었을 것이오. 그 당시 나는 란이의 정체도 몰랐고, 그저 약도성 사람이라는 것만 알았을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소. 상처를 치료하며 그녀와 며칠을 함께 보냈고, 황권을 되찾으면 그녀를 부인으로 맞이하겠다고 약속했네. 하지만 그녀가 나를 구했다는 사실이 진국왕에게 알려졌고, 진국왕이 사람을 보내 그녀의 집에 불을 질렀소. 그리고 그곳에서 시신이 발견되었소.”모두가 진국왕이 불을 질렀다는 말에 멈칫했다.금나라 황제가 이렇게 비극적인 황권
한편, 안왕과 위왕은 이미 명월전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부하들과 함께 말을 타고 달려왔기에 피곤하지는 않았지만, 몸 전체가 먼지투성이였다.하지만 오자마자, 쉬지도 못하고 바로 궁에 들어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정혼 연회가 예정보다 앞당겨 열리게 되었다고 했다.그들은 의아해하며 금나라가 막무가내라고 투덜거렸다. 처음에는 혼례라더니, 이제는 정혼식이라 하고, 심지어 약속했던 날도 지키지 않고 앞당겼으니 말이다.혼사라는 중대사가 이렇게 어린아이 장난처럼 진행될 수 있단 말인가?하지만 신부가 북당 사람이니, 그들은 신부의 친정과도 마찬가지였기에 금나라의 일정을 따르며, 금나라의 계획을 지지하는 것이 맞았다. 다른 나라 사절들이 함께 있었기에, 그들은 무관의 신분으로도 가능한 한 많은 사람과 친구를 사귀고 주변 무역 문제를 논의했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오래전에 다섯째가 특별히 당부한 적이 있었다. 그는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다른 나라의 사신을 만나면 국사를 논하지 않더라도, 상업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라고 말했었다. 장사는 대화로 시작되는 일이니, 이야기를 많이 나누다 보면 결국 성사될 것이라고 말이다. 그들은 비록 처음에 다섯째의 이런 태도가 약간 뻔뻔하다고 느꼈었지만, 지난 10여년간 나라 경제가 눈에 띄게 번영했다는 사실을 차마 부인할 수는 없었다.다섯째의 말처럼 경제를 앞서게 만들어 백성들의 생활 수준을 향상한 덕분에, 돈이 끊임없이 북당으로 흘러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렇게 그들이 다른 나라 신하와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황제가 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안왕과 위왕은 금나라의 황제에 대해 호기심이 가득했다. 이 젊은 황제는 올해 열여덟도 되지 않는 어린 나이라 들었다. 어린 나이에 유명한 진국왕을 몰락시켰으니, 얼마나 대단한 결단력과 꾀를 가졌을까?내시의 우렁찬 소리와 함께, 밝은 황금빛 용포를 입은 젊은 황제가 시위에게 둘러싸여 등장했다.혼례복이 아닌 용포를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역시나 혼례를 올리는 것은 아닌 듯했다
세 사람은 화려하게 차려입었다. 그 중, 택란은 베일을 쓴 채 궁에서 준비한 마차에 올랐다.때마침 불이 하나둘씩 밝혀질 시간이라, 거리는 무척 떠들썩했다. 금나라 수도의 번화함은 약도성이 비교할 수 없는 정도였다. 수도임에도 불구하고 통행금지가 없어, 백성들이 밤늦게까지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택란은 마차의 가림막을 살짝 들어 올려 거리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거리에는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 장사에 열중하는 상인들, 주루나 주막으로 손님을 맞이하는 상인들로 북적이고 있었다.이런 활기 넘치는 모습은 그녀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그러고는 순간 어린 황제를 본 지 오래되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3년이나 지났으니, 지금은 얼마나 어떻게 달라졌을지 궁금해졌다. 그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3년 사이에 자신도 많은 변화를 겪었으니 말이다. 키도 훤칠해졌고 이제 얼굴도 아이 같은 모습이 아닌 한층 성숙하고 침착해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약도성이 지난 몇 년간 겪어온 일들이 많았기에 당연히 성숙해질 수밖에 없었다.한편, 금나라 황궁에서는 이미 정혼 연회의 준비를 마쳤으나, 중요한 두 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두 사람은 바로 안왕과 위왕이었다.북당의 두 친왕이 도착해야만 연회를 시작할 수 있었다.한편, 경천 황제는 내내 택란을 만나고 싶어 했다.지난 3년 동안, 그는 그녀와 재회할 순간만을 간절히 기다렸다.3년간 간절히 바랐던 그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에 그는 들떴지만, 첫 만남은 너무도 중요했다.그는 서두르지 않고 차분히 준비된 상태에서 그녀를 만나고 싶었다.그리고 지금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조차 모르는 상태였다. 그것이 사랑인지 아닌지도 정의할 수 없었다. 그저 그녀가 자신의 눈앞에 생생히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싶을 뿐이었다.그는 사실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 조정을 되찾아 그녀와 혼사를 올리겠다고 다짐했던 적이 있었다.물론 지금 그녀는 아직 어리기에, 혼담을 논하기엔 이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