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 2927화

사고를 치면 숨었다가 잠잠해지자 돌아와서는 국구가 되려 하다니, 정후의 이런 기회주의 성격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황 씨는 그런 정후 곁에 있으면서 정후를 대신해 온갖 풍상을 다 대신 맞았는지 정후보다 훨씬 늙어 보였다.

원경릉은 두 사람을 맞아들였는데, 보통은 몇 마디 더 인사를 나누지만 사람을 시켜 정후부로 바로 데리고 가라고 했다. 하지만 정후는 계속 자기가 그동안 얼마나 고생했는지 토로하기 바빴다. 여러 지방을 전전하면서도 자리를 잡지 못하고 조정에서 자신을 찾아 괴롭힐까 봐 농촌을 골라 찾아다니고 제대로 못 먹고 못 입고 집도 너무 누추해서 정말 거지만도 못한 삶이었다고 했다.

정후는 말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멀쩡한 성인 남자가 본관에서 울기 시작하다니 말이 아니였다.

정후가 울자, 황 씨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따라서 우는데, 눈물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올 정도로 세상이 곧 무너질 듯이 울었다.

원경릉은 그들의 한심한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래도 명목상 부모이니 돌아서지 못하고 옆에서 위로하는 수밖에 없었다. 정후가 한 말은 모두 원경릉에게 다짐한 것이었는데 원경릉은 이 또한 따지지 않았다.

하지만 정후는 갈수록 심하게 울었고, 황 씨도 한바탕 울더니 눈물을 닦고 수심 어린 표정으로 옆에 앉아 천천히 다시 정신을 차렸다.

모두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정후가 울고 난 뒤 원경릉의 머릿속에는 두 사람이 몇 년간 지내온 장면들이 상당히 현실감 있게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정후 부부는 이전에 고지의 아이는 다른 사람에게 키우게 하고, 정후는 인정하는 것도 아니고 안 하는 것도 아닌 애매한 상태로 황씨와 농촌에 숨어서 지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고 이제는 위험이 느껴지지 않자, 전후는 다시 나쁜 버릇이 도져서 농촌의 과부와 가까이 지내고 마을 아낙과 빈번하게 왕래했던 것이다. 얼핏보면 숨어 다니는 것 같지만 갈 때 은자를 한 무더기 가지고 가서 사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았고, 심지어는 정후가 생긴 건 멀쩡해서 도화살이 늘 따라다녔다. 그
잠긴 챕터
앱에서 이 책을 계속 읽으세요.

관련 챕터

최신 챕터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