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인을 알게 된 우문호와 원경릉꾸짖으려던 우문호는 원경릉의 이 말에 말문이 막혔다. 검시관과 검률도 같이 있었는데 원경릉의 말을 듣고 검시관이 바로 나와: “왕비마마, 저들은 절대로 중독사 일수 없습니다. 소인이 여러차례 검시하였으나, 중독 증상이 없었습니다.”원경릉이: “이리 와서 좀 봐주세요, 모든 사체의 심장에 전부 독침이 있고, 이 두 개의 독침은 망자의 심장에서 꺼낸 거로 막 꺼내서 독성이 아직 심장에 봉인되어 있을 겁니다. 침에도 독성이 남아 있을 거구요, 확인하셔도 좋습니다.”검시관이 나와서 자세히 살피는 중 우문호는 원경릉을 끌어내, “당장 관아 후원에 자러 가시오.” 원경릉은 고분고분하게 떼부리지 않고, “잘못했습니다. 그저 돕고 싶었을 뿐이니 화내지 마세요.”“가시오.” 우문호는 원경릉을 끌어 내고, “분명 나를 도왔으나, 이걸 발견한 것으로 이미 충분하오. 남은 일은 저들이 할 테니 당신은 후원으로 가서 나를 기다리도록 하시오, 사람을 시켜 목욕물을 길어오게 하리다.”“목격자가 있다면서요. 그 증인을 만나볼 수 있을까요?” 원경릉이 나가는 김에 물어봤다.우문호가 어르고 달래며, “그래요, 내일 다시 물어봅시다. 그리고 개도 한 마리 증인인데 내일 같이 심문하기로 하지요.”“좋아요!” 원경릉이 웃으며 답했다.우문호는 원경릉을 어쩌질 못하겠다. 하지만 마음은 뛸 듯 기쁜 게 적어도 며칠동안 생긴 첫 발견으로 이 발견은 철저하게 그들의 사고의 틀을 바꾸어 놓기 충분했다.만약 범인이 독이나 암기를 사용하는 고수라면 그들의 원래 가설은 틀렸다.당초에 추측한 살인자는 그들과 원한관계에 있는 백성이었다.그러나 고수가 살인 하는 데는 보수가 있어야 하고, 일반 백성은 그들에게 살인의 대가를 지불할 능력이 없다.“진짜로 나 강아지가 너무 좋은데 내일 나한테 그 강아지 데려다 줄 수 있어요?” 원경릉이 애원했다.어쨌든 우문호에게 그녀가 개와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고 말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우문호는 눈을 흘기며, “내일 얘기합
온천에 몸을 담근 원경릉과 우문호초왕부에 온천이 하나 있다.이 온천은 희한하게도 여름에는 온천수가 뿜어져 나오지 않고 봄, 가을과 겨울에만 나온다.전에는 물이 모이지 않더니 탕양이 이틀전에 와서 온천수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고 온천에 물이 모이기 시작했다고 보고했다.원경릉이 다친 상태기도 했고, 우문호도 사건이 급박해서 그녀를 데려올 여유가 없었다.오늘 어깨에 큰 짐이 사라진 데다 두 사람이 모두 전신에 악취가 심각하니 흐르는 온천수에 몸을 씻어 내기 안성맞춤이다.온천은 소월각 뒤쪽에 있는데 온천이 솟아나는 구멍은 전부 두 개인데 둘 사이 거리가 가까우나 온천탕이 큰 방 절반 정도는 돼서 작다고는 볼 수 없다.원경릉이 한 눈에 온천에 이름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상한 온천”원경릉이 웃으며, “왜 이상한 온천이라고 불러? 분위기 하나도 없는 이름이네.” 원경릉은 이 온천에 대한 인상이 전혀 남아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짐작할 수 있었다.역시 그랬어. 몸의 원주인이 시집온지 그렇게 오래 됐는 데도 소월각에 와 본 적이 없으니 여기도 알 리가 없다.“그건 이 온천이 요상하기 그지없기 때문이야. 여름에 비가 와서 물이 많을 땐 온천수가 나오지 않다가, 가을 겨울 가물 때 비로소 콸콸 온천이 터지니 요상하다고 할 수밖에 없지 않아?” 우문호가 웃으며 말했다.우문호는 시녀가 들고 있던 옷을 받아 든 김에, 문을 닫고 녹주와 기라는 밖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온천 옆에는 옷장과 병풍이 하나씩 있어 우문호는 깨끗한 옷을 병풍에 걸쳐 두었다. 벽 위에는 밝은 구슬이 박혀 있어 촛불이나 등롱 없이도 충분히 밝았다.단지 빛이 충분하지 못하고 온천수에서 김이 무럭무럭 올라와 빛이 물안개에 휩싸여 한층 몽환적이면서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낭만적이고 편안한 곳이다.원경릉은 무심코: “여기 진짜 좋다, 여자를 몇 명이나 데리고 왔겠네?”우문호는 그녀의 어깨에 옷을 벗기며, “꽤 돼지, 하나씩 셀 테니까 들어 볼래?”원경릉의 어깨의 상처를 보니 이미 상당
우문호의 첫 상대원경릉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게 웬만큼 좋지 않고 서는 안 나오는 표정이다.더욱이 우문호가 원경릉의 머리를 감겨 주다니 이건 정말 의외다.분명 우문호는 그녀의 인생에 등장한 첫날부터 권력을 가진 잔인하고 냉정한 사람이었다.그런 그가 풋풋한 황족 훈남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그 여자들이 누군지 얘기해봐!” 원경릉이 눈을 감고 말했다.“없어, 장단 맞춰준 거야!” 우문호가 웃으며 말했다.원경릉이: “거짓말, 처음 하는 솜씨가 아닌데.”우문호는 얼굴이 빨개졌지만 다행이 원경릉 뒤에 있어 보이지 않았다.“누가 처음이 아니래?” 우문호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변명했다.원경릉이 몸을 돌려 우문호에게, “내가 그랬어 왜. 단순히 호기심에서 하는 말인데, 질투 아니거든. 말해봐. 처음은 어땠어?”우문호는 원경릉의 눈빛을 피하며, “뭘 그런 걸 물어? 그게 뭐 좋은 거라고.”“호기심이라니까, 듣고 싶어, 얘기해 줘.” 원경릉의 두 손이 우문호의 목을 감싸 쥐고 애교 섞인 말투로 말했다.“말 안 해!” 우문호는 원경릉의 몸을 돌려 세우고 계속 머리를 감겨 준다.원경릉이 가볍게 한숨을 쉬며, “부부사이엔 매사에 솔직한 건 줄 알았는데, 넌 나한테 감추는 게 있네.”원경릉은 한 걸음 앞으로 가서 우문호와 거리를 두고, “내가 씻을 게, 신경 안 써도 돼.”우문호는 원경릉을 끌어 안고, 그녀의 얼굴색을 살피며, “화났어?”“아니, 그냥 우리 사이가 별로 솔직한 것 같지 않아서. 난 뭐든 다 얘기했는데 약 상자일까지 전부. 그런데 왕야는 이런 일조차 나한테 얘기하고 싶지 않아 하니까.” 원경릉이 상처받은 목소리로 말했다.“그게 어떻게 같아?”원경릉이: “화 안 낸다고 약속 했는데도?”“그럼 맹세해.” 우문호는 원경릉을 돌려 세우고, “나한테 화내지 않고, 질투도 안 하겠다고 맹세해.”“맹세해!” 원경릉이 한 손을 들고 맹세했다.우문호는 팔을 당겨 그녀를 자신 앞에 껴안고, “그럼 애기할 게. 사실 딱히 할 말도 없
화가 난 원경릉과 혼자 남겨진 우문호우문호는 손을 뻗어 원경릉을 물 위로 끌어 올리고 긴장한 얼굴빛으로, “너 화났지? 화 안 낸다더니, 거짓말쟁이.”원경릉이 부드럽게 우문호에게, “정말 화 안 났어. 내가 화 안 났다면 안 난 거야. 어서 씻어. 방에서 기다릴 게.”원경릉은 말을 마치고 일어나 올라가 버렸다.“너 다 씻었어?” 우문호가 당황해서 원경릉의 얼굴을 보니 빙그레 웃는 모습이 정말 화난 얼굴은 아니다.“다 씻었어. 왕야도 빨리 씻어, 아직 머리도 안 감았잖아. 먼저 방에 가서 기다리고 있을게.” 원경릉이 가운을 입고 뽀뽀하는 입모양을 지으니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예쁘다.우문호는 하마터면 실망할 뻔 했다.하지만 방에 가서 해도 좋지.“그럼 먼저 가서 기다려, 나도 금방 갈게.” 우문호는 잠수하더니 두 손으로 머리를 박박 감고, 원경릉은 손에 잡히는 대로 깨끗한 옷과 더러운 옷을 같이 들고 총총히 사라졌다.이상한 온천 밖으로 나와 기라와 녹주에게: “왕야께서는 오늘밤 봉의각에서 묵지 않으신다고 하셨다. 너희 둘은 봉의각에 가서 내 시중을 들어 주렴. 며칠 묵지 않아서 침대보도 정리하고.”“예, 왕비마마!” 기라와 녹주는 우문호가 했다는 말을 의심하지 않고 원경릉을 따라 갔다.원경릉은 이를 악물었다.화를 내면 안된다는 걸 안다. 전부 과거의 일이다. 우문호는 예전에 주명취를 좋아한 적도 있잖아. 원경릉은 그것에 전혀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었다.사실 이번 얘기도 신경 쓸 필요 없지.하지만 열 받는다. 열 받아서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다.우문호의 말이 너무 또렷하게 그려진다.분노가 활활활활 타오른다고!봉의각으로 돌아와 원경릉은 바로 녹주와 기라에게 분부해, “봉의각의 문을 전부 닫고, 왕야께서 오시거든 밖에서 막고 내가 몸이 안 좋다고 말씀드려. 오늘은 손님 안 받아!”녹주와 기라는 서로 멀뚱히 바라보며, 잘못 들었나? 손님을 받는다고?왕비마마께 무슨 일이 있는 거지? 화나서 미친 모습인데.왕야, 도대체 무슨 일을
왕야의 추태와 탕양의 조언과연 바람같이 한 사람이 복도에 나타나 날쌔게 숨는 게 흡사 미행하는 것 같다.서일과 탕양은 눈을 부릅떴다가 자신의 눈을 비비고 다시 봤다.이게 왕야라고?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우문호는 전신에 실 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작은 차 마시는 탁자로 거기를 가리고 잽싸게 뛰어 왔다. 곧 눈을 부라리며 두 사람에게, “오늘밤 일이 밖에 새나갔다간 둘의 혓바닥이 남아 나지 않을 줄 알아라!”“왕야, 문턱이!” 너무 늦었다. 급한 나머지 차 마시는 탁자가 시선을 가려 우문호는 발이 걸려 꽈당 넘어지고 말았다.“아이고머니나, 서일. 어서 가서 왕야 부축해드리고, 아, 아니다, 넌 가서 옷을 가져오너라, 우선 덮어드려야지. 아이고, 상궁이 오는 구만…… 희상궁 일단 거기 멈춰요. 오면 안돼. 일 났어…….”희상궁은 왕비마마께서 왜 화가 나셨는지 물어보러 왔다가 뭔가 일이 터진 소리가 나서 황급히 달려온 것이다.소월각은 잠시 아수라장이 되었다.우문호는 이불을 감싸고 발로 서일에게 약주를 닦게 시키고 등을 꼿꼿하게 세우는 이 동작을 오랫동안 유지했다.화가 난 건지 부끄러운 건지 아니면 다른 기분인지 모르겠으나 하여튼 우문호의 심경은 지금 상당히 복잡했다.복잡한 나머지 서일, 탕양은 물론 희상궁까지 잘게 다져서 개 먹이로 주고 싶을 정도다.희상궁이 비록 흘깃 봤으나 바로 봉의각으로 돌아갔다.우문호는 역시 한 둘을 죽여서 마음 속의 감정을 해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서일과 탕양은 슬쩍 마주보며 ‘어째 왕야의 몸에서 살기가 느껴지지?’ 하는 눈빛을 교환한다.“왕비는?” 우문호는 천천히 냉정을 되찾고 물었다.“왕비마마는 왕야와 함께 목욕하신 게 아니셨습니까?” 서일이 물었다.우문호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래, 그런데 도중에 갔지. 소월각엔 돌아온 적이 없지?”“없습니다. 마마께서 왜 중간에 가셨나요?” 서일이 궁금해서 물었다.우문호는 서일의 배를 한 대 걷어차며 분풀이를 하더니, “꺼져.”서
원경릉을 찾아 봉의각으로 간 우문호우문호가 화를 내며: “어째서 오늘밤 이렇게 낭패를 본 건 난데, 결국 잘못한 것도 내가 되는 건데??”“왕야께선 잘못 하신 게 없으시지요.” 탕양이 내숭의 최고 경지를 시전하며, “하지만 왕비마마도 틀리지 않으셨습니다. 잘못된 건 이 일 자체지요. 이 일 자체가 거론돼서는 안되는 일인 겁니다. 예를 들자면 왕비마마께선 왕야께서 이전에 어떤 여인이 있었는지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고 하실 때 왕야는 마음속으로 기쁘셨습니까?”우문호는 잠시 생각하더니, “별로 안 기뻤지, 하지만 적어도 오늘밤처럼 이렇게 처참한 기분은 아니었어.”“처참한 기분은 잠깐입니다. 이로써 알 수 있는 건 왕비마마께서 왕야를 진심으로 중시하신 다는 것입니다. 마음 속에 왕야가 계시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소인 생각에는 왕야께서 고분고분 왕비께 가서 잘못을 인정하시는 게 나을 것으로 사료됩니다.”우문호가 눈을 부라리며, “잘못을 인정해? 방금 내가 잘못한 거 아니라며.”“이건 잘잘못과 상관없습니다. 부부사이에 잘잘못과 시시비비가 어디 있나요? 맞춰주고 사랑해 줄 뿐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거지요.”탕양이 계속 권했다. 두 주인이 사이가 틀어져서는 곤란하지. 초왕부가 겨우 요 며칠 평안하게 지내지 않았는가 말이다.우문호는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아, 탕양이 말한 대로 생각해 보고, “네 말도 맞네. 왕비도 내가 신경 쓰이니까 이렇게 하는 게 틀림없어. 만약 왕비가 듣고 아무 반응이 없으면 내가 오히려 걱정했겠지.”“바로 그렇다니까요?” 탕양이 권하며, “왕야 어서 봉의각에 가셔서 달래 주세요, 여자는 좀 맞춰주면 좋아집니다.”우문호가 일어나, “넌 여기 남아, 나 혼자 가면 되니까.” 탕양에게 자신이 여자에게 고개를 숙이는 꼴을 보여줄 순 없다. 이건 체면 문제다.탕양이 미소를 지으며: “예, 소인이 사람을 시켜 탕을 올리라 하지요, 왕비마마와 왕야 두 분이 같이 마시세요.”우문호가 성큼성큼 나가는 것을 보고 탕양은 복도에 서서 웃음을 띤 채,
기왕비의 병하지만 문제가 바로 우문호가 앞으로 원경릉에게만 전심을 다 할 수 있느냐 여부다. 우문호는 그 일에 대해 한마디로 말했다. 황자는 전부 이래.이 시대에 지위가 좀 있다고 하는 남자는 전부 처첩을 몇 씩이나 두고 있다. 우문호도 예외일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 원경릉에 대한 감정도 사랑인지 확실하지 않고, 사랑이라 해도 감정은 지나가는 거라 일평생 첫 마음을 유지할 수 없다.현대의 이혼율이 높아지면 높아졌지 떨어지지 않는 걸 보면 알 수 있다.하지만 현대는 적어도 이혼이라도 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남편이 변심해서 첩을 들여도 정실 부인은 묵묵히 참아내야 한다. 심지어 현모양처가 되려면 남편을 위해 첩도 들여줘야 한다. 이 생은 특히나 비굴하고 억울하게 보내야 할 것 같다.“왕비마마, 주무셔야 할 시간입니다.” 희상궁이 왔다.원경릉이 앉아서 상궁을 불러, “상궁, 뭐 좀 물어볼 게. 북당 황실 친척 중에 첩을 들이지 않으신 분이 계셔?”“그건…… 지금 첩을 들이진 않으셨지만 앞으론 첩을 들이셔야 해서. 자손을 번창하게 하셔야 하니. 왕비마마 이 일은 괘념치 마세요.”“손왕도 첩을 들이지 않았어.” 원경릉은 둘째 아주버님이 생각났다.“손왕 전하도 첩을 들이셔야 합니다. 손왕비께서 이미 손왕 전하께 첩을 천거하셨어요.” 희상궁이 미소를 띠며 말했다.원경릉이 탄식하며, “일생을 한 여자에게 수절한 사람은 없어?”“있죠, 첩을 들일 돈이 없는 평민들이요.” 희상궁이 웃으며, “하지만, 누가 가난한 사람과 결혼하고 싶겠어요? 평범한 여자라도 조금이라도 더 나은 처지가 돼서 일평생 먹고 사는 근심 없기를 바라지요.”그렇지, 의식주가 제일 중요하지, 그거에 비하면 남편이 첩을 들이는 것쯤 용인할 수 있다.“부군이 첩을 들이지 못하게 한 여자도 있어?”희상궁이: “있지요, 하지만 투기하는 여자라고 해서 아무도 그녀와 왕래하지 않고 명예가 땅에 떨어질 겁니다.”그렇다. 투기하는 여자라고 낙인 찍히고 아무도 그녀와 상대하지 않는다. 먹과 가까
페병에 걸린 기왕비와 기왕의 야심기왕비는 진짜 결핵에 걸렸다.어의가 확진을 내리자 기왕은 상당한 돈을 쥐어 주고 어의의 입을 막았다.하지만 전에 의원이 맥을 짚은 적이 있는지라 소문을 아주 막을 수는 없었다.기왕비가 회왕부에서 원경릉에게 속마음이 까발려진 다음 날 결핵이 시작되었다.그저 감기인줄 알고 의원을 불러 약을 짓게 했는데 약을 먹을수록 기침이 심해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결핵은 갑자기 발작해서 증세가 심각하다.발병한지 다섯째 날에는 고열이 시작되고 기침이 멈추지 않아 오밤중에 어의를 청했다.결핵에 걸렸다는 건 머리에 죽음이란 두 글자를 이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하지만 기왕비가 절망하지 않은 것은 원경릉이 회왕을 낫게 할 수 있다면 의원도 자신을 반드시 낫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결코 원경릉의 의술이 천하제일이라고 인정할 수 없었다.기왕비가 몰랐던 건 원경릉의 의술이 좋아서가 아니라 원경릉은 단지 치료할 약을 가지고 있을 뿐이란 사실이지만. 몇 년간 오래 끄는 결핵도 있지만 급하게 발병할 경우 결핵은 굉장히 급속도록 악화된다.기왕비는 급속도로 악화되는 부류였다.어의가 처방한 약은 일시적으로 억제해도 낫게 할 수는 없다.기왕은 왕비의 병으로 고민했지만 마음은 그런대로 괜찮았다.오늘은 이미 여섯째 날이다.사건을 해결하는 기한까지 이틀 남았다.기왕비가 병으로 앓아 누워있으나 어진 왕비의 진면목을 발휘하고 있으니 기왕에게는 좋은 기회다.홍수(紅袖)가 기왕비를 부축해서 일어나는데 기왕이 다가와 기왕비의 손을 잡으며, “그냥 누워있으시게.”“괜찮습니다!” 눈두덩이가 푹 꺼진 기왕비는 시녀를 시켜 두꺼운 면으로 만든 마스크를 얼굴에 하고 있어서 기왕은 할 필요가 없었다.좌우의 사람들을 물리고, 기왕비는 기왕에게: “사건이 마지막 기한에 이르러 초왕이 문책을 당해 직위에서 해제되면 왕야께서 자진해서 나서세요. 삼일내에 이 사건을 해결시면 아바마마께서 왕야를 높이 평가하실 게 틀림 없습니다. 살인청부업자 쪽에는 가족과 처첩을 거느
그녀는 가볍게 숨을 내쉬며, 알 수 없는 작은 흥분을 억누르고, 표정을 고쳐서 천천히 돌아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북당 백성인 란이 언니와의 혼사는 다 거짓인 겁니까?"경천의 동공이 흔들렸다."혹시... 화가 난 것이냐?""아닙니다."택란이 고개를 젓자, 밝은 빛이 그녀의 깨끗한 얼굴에 비쳤고, 고르게 정리된 이마 밑의 눈동자는 다시 차분해졌다."그런데 어찌 사람을 시켜 저를 찾고 있다고 직접 저게 소식을 전하지 않으셨습니까? 만약 편지를 보냈다면, 저도 오라버니를 만나러 왔을 것입니다. 심지어 혼사에 하객까지 청하며 일을 이렇게나 크게 벌였는데, 대체 어떻게 수습하려고 하십니까?"그는 갑자기 결단을 내린 듯, 천천히 그녀 앞에 섰다. 그러고는 그녀의 까만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위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수습할 필요 없다. 나는 이미 천하에 나의 황후가 우문택란이라고 선언했다. 나는 그녀가 어서 크기만을 기다리고 있다."택란은 순간 놀라하며, 굳어진 얼굴로 물었다.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경천은 그녀가 화가 난 것 같아, 마음이 내려앉았다. 그의 눈동자엔 어두운 그림자가 깔렸고, 이내 조심스레 물었다."응할 수... 있겠느냐?"택란은 잠시 망설였다. 기억 속의 그 소년이 지금 별빛을 받으며 그녀 곁으로 돌아왔다. 이전의 그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10년 후 그가 죽지 않으면 돌아와서 그녀를 부인으로 맞겠다고 열정적으로 말했었다. 그 열정이 가득한 목소리는 지금도 그녀의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그런 과거와 현재가 얽혀 버리자, 대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저는..."경천은 그녀가 망설이는 모습을 보며,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는 그녀의 반응이 너무 당황스러워서, 얼굴을 조금 숙이며 말했다."지금 바로 대답할 필요 없다. 몇 년 후라도, 10년, 아니 20년 후라도 괜찮다.""하지만...""아니, 말하지 말거라."그는 방금까지만해도 가득찼던 자신감을 더 이상 보여줄 수 없
냉명유는 팔짱을 낀 채 검을 가슴 앞으로 옮기며, 차갑게 말했다."누님께서 어디로 가든, 저도 무조건 함께 갈 것입니다."“하… 하지만."삼 태감이 무척 난감해했다."그래. 함께 가자. 이 거월통천각이 정말 달을 딸 수 있는지 어디 가서 보자꾸나!"그러자 택란이 웃으며 말했다.주 아가씨는 조금 의심스러웠다. 정말 공주가 만나고 싶다면, 어찌 공주한테 이렇게 높은 계단을 오르게 할 수 있는가?그러고는 계단 위에 새겨진 난초꽃을 힐끗 보고는 순간 멈칫했다. 시선을 위로 올려보니, 계단의 각 층마다 난초꽃이 새겨져 있었다.황제가 자신의 그리움을 돌계단에 새긴 것이었다!택란도 계단을 오르며, 이 사실을 눈치챘다.게다가 각 난초의 형태와 크기는 매우 똑같았다. 처음에는 선이 조금 거칠게 느껴지긴 했지만, 후에는 점점 더 섬세하고 부드러워 보였다.이건 분명 같은 사람이 새긴 것 같았다. 그가 직접 조각한 것일까? 금나라가 이곳으로 수도를 옮긴지 아직 1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잠시 후, 그들은 거월통천각의 가장 높은 층에 도착했다. 다행히 냉명여는 문 앞에서 멈추고 안까지 들어가지 않았다.택란은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는데, 안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네개의 용 모양 기둥이 세워져 있었고, 네 모서리에는 각각 올라가 쉴 수 있는 정자가 있었다. 정자에는 난간이 둘러져 있었으며, 가운데에는 탁자와 두 개의 의자가 놓여 있었다. 떠힌. 네 면에 걸려져 있는 대나무 커튼이 걷혀 있어, 사방에서 밖을 볼 수 있었다.그 사이에서 청색 비단옷 차림의 남자가 통천각 옆 난간에 기대어 택란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는 매우 긴장한 듯 손과 발을 살짝 떨고 있었다. 별빛처럼 맑은 눈동자에 약간 숨이 가쁜 듯 보였다. 그는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그녀를 보자마자 이내 눈시울을 붉혔다.재회를 위해 최선을 다하며 가장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에, 그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이 만남을 특별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반짝이는 별들도 그중 하나였다.하지만
손님들이 하나둘씩 떠나자, 경천 황제는 서둘러 궁으로 돌아가 푸른 비단옷으로 갈아입었다.옅은 청색 옷자락에, 소매 끝에는 난초꽃이 수놓아져 있었고, 나머지 부분은 어두운 구름 문양으로 수놓아져 있었다. 이 옷감은 북당에서 온 것이었다."폐하, 꼬마 은인께서 궁문에 도착하셨다고 합니다."삼 태감이 와서 보고했다."좋소."그는 거울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깊은숨을 내쉬었다."택수운천으로 가겠네."택수운천은 그가 즉위한 후, 궁궐 안에 지은 새 궁전으로, 세 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궁전 옆에는 거월통천각이 있었는데, 이는 량주성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거월통천각 안에 있으면 마치 손바닥에 달을 담을 수 있을정도로 웅장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거월통천각에서 멀게는 약도성과 량주가 인접한 산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녀가 생각날 때면, 늘 거월통천각의 가장 높은 층으로 올라가 풍경을 멀리 바라보곤 했다."진이야, 너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해 본 적이 있느냐?"그가 준수한 옷차림으로 난간에 기대어 먼 곳을 바라보며 물었다. 바람이 서서히 불며 청색 옷자락이 휘날리자, 옷자락의 네 끝에 박힌 고급스러운 야명주가 그의 선명하고 잘생긴 얼굴을 비추었다.그때, 저 멀리서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궁 시위를 따라, 아치과 복도를 지나 거월통천각으로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그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젊은 금군 통령 진이가 그의 모습을 보고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그런 적 없습니다.""사모의 마음을 품어보거라. 떨리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느낌만큼 좋은 것이 없다."그는 그녀를 멍하니 보며 말했다. 천천히 다가오는 탓에 그녀의 얼굴이 자세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13세 전까지의 그의 인생에는 나라와 백성들 뿐이었지만, 13세 이후 그의 인새은 온통 그녀뿐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지금 그녀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진이는 황제의 시선을 따라, 천천히 다가오는 세 명을 보며
안왕은 보책을 받아 든 순간, 갑자기 무엇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정확히 어떤 점이 이상한지 말로 설명할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일이 다 이상하게 느껴졌다.보책을 펼쳐 안에 적힌 이름을 본 순간 그는 드디어 이상한 점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게 되었다.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굳어진 표정으로 경천 황제를 바라보았다.경천 황제는 얼굴에 미소를 띠며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조사를 통해 드디어 그녀의 이름을 알게 되었소. 그녀의 이름은 우문택란이오. 금나라 황후의 이름은 우문택란이네. 난 반드시 그녀를 찾아낼 것이오. 만약 그녀가 황후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황후의 자리는 그녀를 위해 계속 비워둘 것이네.”위왕은 온몸에 식은땀을 흐르는 탓에 두 손을 급히 움켜잡았다. 방금 황제가 보책을 그의 손에 올리지 않아, 그가 받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정말 다섯째에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다!안왕은 어두워진 안색으로 자리에서 물러나 이를 악물고 낮은 소리로 위왕에게 말했다.“방금까지도 어린 황제에게 어리석다고 했건만. 이렇게 계책에 능하고 이따위 교묘한 계책으로 우리 형제를 그와 같은 편에 서게 만들다니...!”위왕은 또 한 걸음 물러서며 아무런 표정 없이 말했다.“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구나. 방금 술을 두 잔 마셔 조금 취한 터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구나. 아니, 지금 들고 있는 그건 무엇이냐?”안왕은 단단한 그의 팔을 비틀어 버리고 싶을 정도로 분노했다.하지만 이 상황 속에서 연회는 계속되었고, 사람들의 감정은 점점 고조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북당 황제의 작은 공주도 우문택란이라는 말을 꺼냈다.그 말에 다들 그 당시 금나라 황제를 구한 사람이 북당의 작은 공주가 맞는지 추측하기 시작했다.정말 북당 공주가 맞는다면, 금나라 황제도 참 배짱이 큰 것이다. 사실상 북당 황실이 금나라 황제를 구했다고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만약
경천은 위왕의 말을 듣자, 마치 마음속 큰 돌덩이가 내려간 듯 후련해 보였다. 그는 그러고는 궁인에게 술을 올리게 해 술잔을 여러 차례 돌린 후, 아래를 둘러보며 말했다.“오늘 여러분께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리겠소. 이 이야기를 듣고 나면 오늘 정혼연이 어찌 열리게 되었는지 알게 될 것이오.”그러자 모두가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말에 당황을 금치 못하며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정혼연이든 혼례든, 이런 자리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이때, 위왕이 안왕의 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다섯째에게 서신을 보내야겠다. 금나라에서 실권을 쥐고 있는 자가 황제가 아닐 수도 있다. 진국왕이 아직 살아 있고, 이 황제가 꼭두각시일지도 모른다.”“맞소. 확실히 조금 병신같아 보이네.”안왕도 동의했다.참고로 ‘병신같다’는 표현은 안왕이 조카에게서 배운 단어였다.“이 이야기는 3년 전쯤에 있었던 일이오.”이내 경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의 목소리에는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이 담겨져 있었다.“당시 금나라는 진국왕이 집권하고 있었는데, 그는 나를 대신해 금나라의 군주가 되려 했소. 이 사실은 여러분도 알고 있을 것이오. 그때 난 진국왕과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었소. 진국왕이 왕위를 빼앗으려 나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민다고 하기에, 나도 어쩔 수 없이 반격에 나섰는데, 그 과정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소. 그때 나를 구해준 이가 바로 란이라는 소녀이오. 만약 그녀가 없었다면 난 이미 죽은 목숨이었을 것이오. 그 당시 나는 란이의 정체도 몰랐고, 그저 약도성 사람이라는 것만 알았을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소. 상처를 치료하며 그녀와 며칠을 함께 보냈고, 황권을 되찾으면 그녀를 부인으로 맞이하겠다고 약속했네. 하지만 그녀가 나를 구했다는 사실이 진국왕에게 알려졌고, 진국왕이 사람을 보내 그녀의 집에 불을 질렀소. 그리고 그곳에서 시신이 발견되었소.”모두가 진국왕이 불을 질렀다는 말에 멈칫했다.금나라 황제가 이렇게 비극적인 황권
한편, 안왕과 위왕은 이미 명월전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부하들과 함께 말을 타고 달려왔기에 피곤하지는 않았지만, 몸 전체가 먼지투성이였다.하지만 오자마자, 쉬지도 못하고 바로 궁에 들어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정혼 연회가 예정보다 앞당겨 열리게 되었다고 했다.그들은 의아해하며 금나라가 막무가내라고 투덜거렸다. 처음에는 혼례라더니, 이제는 정혼식이라 하고, 심지어 약속했던 날도 지키지 않고 앞당겼으니 말이다.혼사라는 중대사가 이렇게 어린아이 장난처럼 진행될 수 있단 말인가?하지만 신부가 북당 사람이니, 그들은 신부의 친정과도 마찬가지였기에 금나라의 일정을 따르며, 금나라의 계획을 지지하는 것이 맞았다. 다른 나라 사절들이 함께 있었기에, 그들은 무관의 신분으로도 가능한 한 많은 사람과 친구를 사귀고 주변 무역 문제를 논의했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오래전에 다섯째가 특별히 당부한 적이 있었다. 그는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다른 나라의 사신을 만나면 국사를 논하지 않더라도, 상업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라고 말했었다. 장사는 대화로 시작되는 일이니, 이야기를 많이 나누다 보면 결국 성사될 것이라고 말이다. 그들은 비록 처음에 다섯째의 이런 태도가 약간 뻔뻔하다고 느꼈었지만, 지난 10여년간 나라 경제가 눈에 띄게 번영했다는 사실을 차마 부인할 수는 없었다.다섯째의 말처럼 경제를 앞서게 만들어 백성들의 생활 수준을 향상한 덕분에, 돈이 끊임없이 북당으로 흘러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렇게 그들이 다른 나라 신하와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황제가 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안왕과 위왕은 금나라의 황제에 대해 호기심이 가득했다. 이 젊은 황제는 올해 열여덟도 되지 않는 어린 나이라 들었다. 어린 나이에 유명한 진국왕을 몰락시켰으니, 얼마나 대단한 결단력과 꾀를 가졌을까?내시의 우렁찬 소리와 함께, 밝은 황금빛 용포를 입은 젊은 황제가 시위에게 둘러싸여 등장했다.혼례복이 아닌 용포를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역시나 혼례를 올리는 것은 아닌 듯했다
세 사람은 화려하게 차려입었다. 그 중, 택란은 베일을 쓴 채 궁에서 준비한 마차에 올랐다.때마침 불이 하나둘씩 밝혀질 시간이라, 거리는 무척 떠들썩했다. 금나라 수도의 번화함은 약도성이 비교할 수 없는 정도였다. 수도임에도 불구하고 통행금지가 없어, 백성들이 밤늦게까지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택란은 마차의 가림막을 살짝 들어 올려 거리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거리에는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 장사에 열중하는 상인들, 주루나 주막으로 손님을 맞이하는 상인들로 북적이고 있었다.이런 활기 넘치는 모습은 그녀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그러고는 순간 어린 황제를 본 지 오래되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3년이나 지났으니, 지금은 얼마나 어떻게 달라졌을지 궁금해졌다. 그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3년 사이에 자신도 많은 변화를 겪었으니 말이다. 키도 훤칠해졌고 이제 얼굴도 아이 같은 모습이 아닌 한층 성숙하고 침착해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약도성이 지난 몇 년간 겪어온 일들이 많았기에 당연히 성숙해질 수밖에 없었다.한편, 금나라 황궁에서는 이미 정혼 연회의 준비를 마쳤으나, 중요한 두 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두 사람은 바로 안왕과 위왕이었다.북당의 두 친왕이 도착해야만 연회를 시작할 수 있었다.한편, 경천 황제는 내내 택란을 만나고 싶어 했다.지난 3년 동안, 그는 그녀와 재회할 순간만을 간절히 기다렸다.3년간 간절히 바랐던 그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에 그는 들떴지만, 첫 만남은 너무도 중요했다.그는 서두르지 않고 차분히 준비된 상태에서 그녀를 만나고 싶었다.그리고 지금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조차 모르는 상태였다. 그것이 사랑인지 아닌지도 정의할 수 없었다. 그저 그녀가 자신의 눈앞에 생생히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싶을 뿐이었다.그는 사실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 조정을 되찾아 그녀와 혼사를 올리겠다고 다짐했던 적이 있었다.물론 지금 그녀는 아직 어리기에, 혼담을 논하기엔 이르지만
어머니는 아버지처럼 아쉬워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생각이 훨씬 개방적이었고, 두 사람이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장 큰 행복이라 여겼기에 의식 자체를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그래도 아버지의 아쉬움을 덜어주기 위해 현대에서 한 번, 즉위 후에 또 한 번 의식을 치렀다.주 아가씨는 객사로 돌아오자마자, 객사 일꾼에게 소식을 물었다.그러자 일꾼은 황제가 곧 혼례를 올린다는 말을 듣고는 잠시 멈칫했다.“혼례요? 정혼 아니었습니까?”“정혼? 정혼이라니? 그럼 이미 혼사를 올릴 나이가 되었는데, 어찌 바로 혼례를 하지 않다는 것이냐?”“그건 모르겠습니다. 저희는 정혼한다는 소문만 들었습니다.”“미래의 황후가 북당 사람이 맞느냐?”일꾼이 말했다.“예. 북당 출신의 아가씨라고 합니다. 게다가 황제의 생명의 은인이라고 들었습니다.“택란은 이 말을 듣고 고개를 저으며 경천이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그가 정말 은인의 언니라는 말을 믿다니 말이다.설사 그렇다고 해도 굳이 그녀와 혼례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혼사를 어찌 장난처럼 다룰 수 있단 말인가?택란은 경천 황제에게 크게 실망했다. 그저 정치적인 판단에서만큼은 어리석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택란은 원래 이틀 정도만 량주를 둘러본 뒤 바로 궁으로 들어가 알현할 생각이었지만, 아직 혼례 날짜가 다가오지 않았으니 며칠 더 머물며 시간을 보냈다. 궁으로 들어가 정체를 드러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그리고 그녀가 생명의 은인인 것을 알아차리면, 정혼식을 진행할지 말지 애매해질 것이기에, 택란은 며칠 동안 객사에 머물며 량주의 풍습과 문화를 살펴보는 한편, 참고할 만한 것이 있는지 살펴보기로 했다.그렇게 살펴보던 중, 주 아가씨가 정보를 알아보러 나갔다가 안왕과 위왕이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며칠 동안 다른 나라 사절들은 계속 장관에 묵고 있었는데, 택란은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는 삼촌들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저녁 무렵 장관으로 갔다.그런데 도착하고 나서야 그들이 이미 황
량주는 금나라의 수도가 된 이후 지난 2년간 크게 발전했다. 또한,금나라와 북당이 우호적인 교류를 시작하면서, 북당 변방 도성의 백성들도 장사를 위해 많이 찾아왔다.이전에 택란도 자신의 목숨을 바치기 위해 금나라에 왔었다. 하지만 그때의 량주는 지금처럼 북당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다. 그래서 택란은 객사에 머문 뒤 주 아가씨와 냉명여를 데리고 거리로 나가 량주의 풍습과 문화를 살폈다.여기도 어쨌든 금나라의 수도 아닌가!진국왕은 물러나기 전까지 나라를 잘 다스렸고, 특히 발전에 많은 힘을 기울였다. 하지만 야망이 지나친 탓에 늘 약도성을 되찾겠다고 욕심을 부렸다.그리고 동시에 북막을 두려워하기도 했다.경천이 즉위한 후, 광산 자원 개발 외에도, 그는 농경지와 산지를 개간하려고 노력했다. 금나라의 서북부에는 농사에 적합한 땅이 있었지만, 사람이 드물었다. 그래서 그는 북당의 다른 도성을 본받아 사람들을 개간지로 보내고 그들에게 이익을 나누어주었다.나라가 상승세일 때, 그 분위기는 눈에 띄기 마련이다. 백성의 긍정적인 에너지는 숨길 수 없는 법이었다.택란은 경천이 황제로서 매우 적합하다고 느꼈기에, 그가 이끄는 금나라는 분명 빠르게 발전할 것이라 생각했다. 발전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기에,그가 광산을 함께 개발하자는 제안에 동의할 가능성이 높았다.택란은 이내 자신감을 얻었다. 궁에 들어가 알현하는 것을 서두르지 않고, 량주 백성들이 북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로 했다. 과거, 약도성과 량주의 관계는 다소 안 좋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금나라가 약도성에 사람을 침투시켜 많은 폭동을 일으켰기에, 약도성 백성들도 그들을 매우 싫어했다.그렇기에 지난 2년간의 교류를 통해, 택란은 그들의 원한이 천천히 사라지기만을 바란 것이었다.이제 북당 쪽은 문제가 없으니, 량주 백성들의 생각을 확인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기에, 택란은 물건을 사면서 점포 주인과 상인들에게 북당 약도성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곤 했다.그 중,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