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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702화

작가: 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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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단지 후궁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명원제가 참견하기도 그렇고 추측만 가지고 진비를 추궁할 수도 없었다.

진비가 울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황귀비가 바보예요. 전 원래.... 해치고 싶지 않았다고요. 황귀비가 폐하를 노하게 했으니 폐하 이름으로 탕을 보내면 당연히 마실 리 없다고 생각했죠. 그러니까 안 마셨으면 그럼 저도.... 마음이 편하잖아요. 제가 손은 썼지만 피할 팔자였네 하고요. 안 그래요? 전 자신을 억누를 수 없었어요. 저 혼자만 이렇게 비참하게 살 수는 없잖아요. 폐하께서 전에 저를 보러 오셨을 때, 저와 조금만 더 계셨으면 저도 황귀비에게 손을 쓰지 않았을 거예요. 전 희망이 없었어요. 폐하께서 절 바라보는 눈빛을 보고 제게는 아무런 희망도 남아 있지 않음을 알았죠......”

진비는 흉하게 울었다. 눈물 콧물이 뒤범벅 되어 흐르고 부숭부숭 부어오른 얼굴에 화장도 하지 않아 기미와 반점이 점점이 드러났다. 눈밑은 퍼렇게 부어올라서 눈과 코엔 붉은 흙빛이 맴돌았다. 백발이 상당히 섞인 머리채가 풀어져 딱 봐도 만년의 늙은 부인 그 자체다. 명원제는 진비를 보고 분노도 일었지만 비통했다. 이 여인은 자신을 30년 이상 따르며 자신을 위해 장자를 낳아주었다. 그런데 지금 어째서 이런 꼴로 된걸까?

명원제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진비와 우문군 모자가 제멋대로 굴도록 눈감아 준 것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때마다 매번 비극을 키웠고 무고한 자를 해쳤다. 우문군 한 사람에서 진비와 외척 전부가 잔인하고 악랄해졌다.

그리고 그제서서야 명원제는 황제된 자가 한 명의 황자를 지나치게 편애해서 멋대로 하게 내버려 두면 어떻게 화근이 되는지 아주 온 몸으로 절절하게 깨달았다. 명원제는 무의식 중에 태상황과 안풍친왕의 방식은 사실 별거 아닌 걸 가지고 너무 유난스럽게 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와서야 명원제는 진정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게 옳았다.

이번 일은 원래라면 피할 수 있던 일이었다.

호비의 뱃속에서 죽은 태아, 그리고 황귀비와 뱃속의 아이도 지금 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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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원제는 상처받고 지친 마음으로 우문호와 다시 장문전으로 돌아갔다. 모든 사건을 조사하는데 그다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진비의 수법은 조금도 뛰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데도 진비가 이미 목적을 달성했다는 게 명원제는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럽고 한스러웠다.명원제는 잘 알고 있었다. 자신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진비를 무시해 왔다는 것을 말이다.그렇게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방 안에서는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고, 안에서도 쥐죽은 듯 아무런 기척이 일어나지 않았다. 모든 것이 그대로 멈춰 있는 것만 같았다.하지만 명원제와 우문호는 안에서 생사의 사투가 벌어지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구사는 아직 조사 중으로 비록 진비가 이미 자백했다고는 하나 이 일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연루되었는지 진비가 누구를 매수했는지 분명하게 조사해야 했다.황후와 적귀비가 사람을 보내 상태를 물어보는데 장문전이 평소엔 쓸쓸하기 그지 없는 곳이지만 오늘밤은 오히려 불빛이 환했다.원경릉은 황귀비에게 반신마취를 해서 정신은 깨어있고 통각만 느끼지 못할 뿐이었다. 황귀비가 긴장해서 계속 고개를 들어 내려다 보려고 하는 것을 호비와 노비가 머리를 눌러서 황귀비를 지키고 있었다.수술은 비교적 순탄하게 진행됐고 신생아를 꺼내니 여자 아이로 힘은 있어 보였다. 얼굴과 몸이 다 파랗게 질린 것이 조금만 늦었어도 산소 결핍을 일으켰을 것이다. “황귀비 마마, 공주님이십니다. 이제 다 괜찮습니다!” 원경릉이 아이를 안고 황귀비에게 보여주는데 황귀비가 한없이 아이를 바라보더니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크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 자리에 있던 호비와 노비 및 산파도 모두 안도했다. “다행이다. 살았어.”원경릉은 바로 신생아에게 산소를 흡입하게 했다. 호비가 신생아를 깨끗하게 닦아 속싸개로 싸서 포대기로 감쌌다.봉합하는데 원경릉도 체력이 받쳐주지 못하는 것을 느꼈다. 본인도 아이를 가지고 있어 배가 남산만한 상태로 움직이기 힘들었다. 게다가 땀을 비오듯 흘려 몸이 끈적거리는 게 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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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의 왕비   제 2704화

    명원제가 들어가겠다는 말에 황귀비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명원제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침대 앞에 서자, 아무도 말을 못했고 공기는 온통 침묵으로 가득찼다.명원제는 황귀비와 곁에 뉜 작은 여자 아이를 보고 또 봤다. 신생아의 얼굴에 씌어진 것을 보고 순간 마음이 쿵하고 내려앉아 원경릉에게 이게 대체 무엇인지 눈으로 물어봤다.원경릉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조산으로 산소 결핍 상황이라, 긴급한 산소 흡입이 필요합니다.”명원제는 알아들을 수 없지만 조산이란 두 글자는 알아 들었고 공주가 아직 위험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노비가 말했다. “폐하 우선 돌아가서 쉬시지요. 신첩과 호비가 곁에서 황귀비 마마를 지키겠습니다.”명원제가 원경릉에게 물었다. “황귀비의 상태는 어떤가?”“아직 마취가 깨지 않으셨습니다. 시간이 지나 마취가 깨면 의식이 들 겁니다!” 원경릉이 말했다. 실은 황귀비는 지금 깨어있지만 눈을 감고 있다는 것은, 이 상황에 황제를 보고 싶지 않다는 말로 원경릉은 황귀비와 말을 맞추는 수밖에 없었다.“짐은 여기서 황귀비를 지키겠네!” 명원제가 말했다.“아바마마 아무래도 일단 돌아가시지요. 황귀비 마마께서는 그렇게 빨리 깨지 못하십니다.” 원경릉이 말했다.명원제가 가지 않자 침전은 다시 침묵에 빠져들었다. 황귀비는 그저 눈을 감고 명원제를 피하려 했던 것인데 눈을 감으니 진짜 탈진 상태가 되었다. 밤새 진통을 겪고 비록 지금 아프지 않아도 이미 힘이 하나도 없어서 눈을 감자 다시 눈꺼풀을 들 힘이 없었다.원경릉은 잠시 숨을 돌린 뒤 황귀비에게 진통제 펌프를 달 준비를 했다.서둘러 진통제를 달아주고 나자 원경릉도 거의 탈진했다. 우문호도 밖에서 원경릉을 기다리며 궁을 떠나지 않았고, 건곤전에서 하룻밤 묵기로 하고 어의에게 돌아가며 당직을 서게 했다.사실 날이 곧 밝으려는 참이었다. 우문호는 이렇게 밤을 샐 수 있지만 원경릉은 그러면 안된다. 원경릉은 너무 지친 나머지 꼼짝도 할 수 없어서 우문호는 원경릉을 안고 건곤전으로 갔다.태상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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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의 왕비   제 2705화

    원경릉도 잠이 오지 않아서 장문전에 가 아가 공주님과 황귀비를 지켰다. 황귀비는 마취가 이미 풀려 진통제가 담긴 수액을 맞고 쓰고 있었지만 여전히 고통스러워 보였다.원경릉은 황귀비의 수액에 소염제를 넣었다. 아기는 산소호흡기를 하고 있어 아직 혼자 젖을 빨 수가 없으므로 솜에 적셔 한 방울씩 입에 넣어주었다. 아기는 살기 위해 말 그대로 젖 먹는 힘을 다 하고 있었다. 조산 가능성이 컸지만 아기의 생명력이 아주 강해서 산소 흡입 후 상태가 많이 좋아져 한두 번 울기까지 했다.호비와 경귀비, 노비 모두 장문전 내전을, 명원제는 외전을 지키고 있었다. 명원제가 안에 들어간 적도 있지만 황귀비의 고통을 차마 보기기 힘들고, 황귀비도 불편해 해서 명원제는 아예 밖에 나와 지키고 있기로 했다.황후와 적귀비도 와서 황제와 황후, 비빈 모두가 황귀비를 지키고 있으니, 본인도 심지를 굳게 다져 고통을 이겨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 제일 중요한 건 아이가 젖 먹는 힘을 다하고 있는데 엄마 되는 자기가 젖 먹던 힘을 다하지 않을 수 없었다.호비는 황귀비가 점점 덜 아파하는 것을 보고 조금 마음이 놓여 조용히 내전을 나가 명원제와 함께 앉았다.한참 명원제를 바라보던 호비는 그의 손을 잡고 쉰 목소리로 말했다. “자책하지 마세요 폐하, 후궁 일은 그리 복잡하지 않습니다. 자매들 간에 우정은 여전해요.”“짐이 제대로 한 게 없다!” 명원제는 호비의 손을 바라봤다. 호비가 배 속의 아이를 잃고 난 뒤로 처음 스스로 명원제의 손을 잡은 것이다.“모든 걸 다 잘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하지만 신첩은 압니다. 폐하께서 줄곧 얼마나 애를 쓰셨는지요.” 호비의 눈가에 눈물이 살짝 번졌다.명원제는 아무 말 없이 호비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진비에 대해서는......” 호비의 눈에 한 줄기 찬기가 스쳐 지나갔다. “죽이세요!”명원제가 호비를 보고는 알겠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3~4일이 지나자 황귀비와 아기 공주님의 상태가 나아졌다. 황귀비는 바닥에 내려 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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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의 왕비   제 2706화

    명원제가 의심한채 원경릉에게 물었다. “정말… 진심으로 하는 말이더냐?”“진심입니다.” 원경릉이 앞으로 한 걸음 다가와 예를 취하며 말했다. “지난날은 전부 제 마음에 새겨져 있습니다. 아바마마께서 제게 베풀어 주신 관용과 아끼고 불쌍히 여겨 주신 것을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거시적으로 누구에게 불공평하다느니 한 적도 없습니다. 그저 제가 아바마마께 받은 것만으로도 성은이 망극할 뿐입니다. 아바마마는 좋으세요. 정말 좋으세요!”명원제의 얼굴에 끼어 있던 근심이 확 풀어졌다. “그렇게 말해주니 짐이 참 기쁘구나.”원경릉은 진심이었다. 지난 일을 떠올려 봐도 아바마마께서 큰 잘못을 한 적이 없었다. 태상황 폐하한테는 대들긴 했지만, 별로 잘못한 것도 아닌데 그냥 결과가 커졌을 뿐이였다.그리고 한 나라 황제의 잘잘못을 원경릉이 이러쿵저러쿵 평가할 수 있는 것도 아니였지만, 아바마마는 위대한 성군은 아닐지 몰라도 절대 무능한 왕은 아니다.원경릉은 궁을 나서고 병원에 들러 태상황에게 기쁜 소식을 알렸다.하지만 황귀비가 딸을 낳은 다음 날, 명원제가 소식을 알려서 태상황은 이미 알고 있었다.“구사의 조사 결과 진비 마마가 한 일로, 달갑지 않은 나머지 심리상태가 왜곡 되셨나 봅니다.” 원경릉은 최대한 가볍게 얘기했다. 그 일에 대해 더 들춰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아바마마께서도 크게 떠들지 않고 냉궁에 가둬두었다가 경사가 끝난 뒤 처결하시려는 것이다.태상황이 말했다. “후궁에 추악한 사건 하나 없는 왕조가 어디 있겠나? 과인이 사람을 보내 달래야겠어. 너무 이 일에 연연하지 말라고. 처결하면 그뿐이야. 옛정에 얽매일 필요 없는 게 그것이 사람 목숨 빼앗을 때 옛정 따위 없었잖아. 어떨 땐 마음을 모질게 먹어야 하는 법이지. 안 그러면 또 화근이 되고 말아. 아이고, 과인도 잘 알지, 황제가 힘들다는 걸. 과인이 황제를 옭아매고 너무 큰 압박을 줬거든. 사실 상당 부분 과인의 책임이지. 그래서 지금 과인이 상관하지 않는 거고, 알려줘야 할 건 알려 줬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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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의 왕비   제 2707화

    할머니는 한참 있다가 갑자기 미심쩍다는 듯 원경릉에게 물었다. “태상황 폐하께서 좀 이상해, 날 주둥이 동생이라고 부른다니까!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이지? 주둥이가 북당에서 무슨 의미가 있나?”원경릉이 난감해져서 답했다. “태상황 폐하께서 정말 주둥이 동생이라고 부르신다고요?”할머니가 말했다. “신분을 따지지 않고 나이만 놓고 따지면 동생이란 말은 맞다고 생각하는데, 주둥이가 대체 뭐더냐?”원경릉이 쭈뼛거리며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그러자 할머니는 어이가 없어졌다. “어쩐지 그런 거였군. 그래도 진짜 너무 곤혹스럽네, 주둥이라니 듣기 너무 거북하다.”“하하. 영어 이름이 하나 늘었다고 생각하세요. 주디(Juddy)요!”할머니가 웃으며 원경릉의 어깨를 찰싹 때리더니 말했다. “ 요 녀석 간 큰 것 좀 봐. 감히 할머니 이름을 가지고 장난을 쳐?”원경릉이 익살스럽게 웃으며 답했다. “하하하. 잘못했어요.”할머니와 손녀가 알콩달콩 웃고 떠들었다. 할머니가 원경릉의 배에 쓸어주었다. “이제 이 아이도 태어나겠구나. 공주님이어서 태자의 소원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네!”배 속에 아이는 알았다는 듯 움찔움찔 하는 게 마치 할머니의 손바닥에 하이 파이브 하는 것 같았다.할머니가 신기해했다. “진짜 공주님일지도 모르겠네!”우문호가 딸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매일 집에 돌아오면 먼저 사탕이부터 보고 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매일 유모는 사탕이를 안고 작은 방에 있다가 우문호가 오면 안아 보도록 해야 했다.우문호는 늘 서일이 무슨 복을 받아서 노력도 안 하고 저렇게 쉽게 딸을 얻을 수가 있냐며 부러워 죽으려고 했다.원경릉은 복잡한 심경으로 말했다. “어떻게 이렇게 아들 귀한 줄을 몰라? 다 자기가 낳은 자식인데 똑같아야 맞는 거잖아.”우문호가 한숨을 쉬었다. “큰 소리로 얘기하지 마, 애들이 다 듣겠어.”“자기가 그랬잖아. 앞으로 편애하지 않겠다고.” 원경릉이 우문호에게 좋은 말로 경고하자 그녀가 원경릉을 끌어안았다. “편애하지 않는다고 했으니 분명 편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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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의 왕비   제 27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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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다리고 기다리던 택란이 드디어 경성으로 돌아왔다. 우문호는 소월궁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옆에서 목여 태감이 계속해서 설득했다. 그는 공주가 아직 어리니, 노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 하며, 그저 택란이 다른 어린아이들이 저지를 수 있는 잘못을 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목여 태감은 혹시라도 황제가 공주를 꾸짖을까 봐 걱정되어 공주를 감쌌다. 그의 약한 마음은 그런 걸 감당하지 못했다.마침내 택란과 원경릉이 도착했다.우문호는 작은딸이 원경릉의 뒤에 숨어 겁먹은 얼굴로 머리를 살짝 내밀고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았다.원경릉이 딸의 손을 꽉 잡고 말했다.“가봐라, 아버지께서 기다리신다.”택란은 고개를 숙이고 아버지 앞으로 다가갔다. 우문호 앞에 서서 조심스럽게 자기 손을 그의 손 위에 올려놓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아바마마, 저 돌아왔습니다.”그러자 우문호는 딸의 손을 잡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뿌리치지도 않았다. 앞에 서 있는 그녀를 보는 눈빛엔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약도성에 얼마나 있었느냐?”택란은 거짓말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솔직히 대답했다.“지난번 여름방학 때 집에 돌아온 후 바로 약도성으로 갔어요.”우문호는 큰 충격을 받았다.“모두가 알고 있었으면서, 나만 속였단 말이냐?”택란은 미안한 마음에 아버지를 껴안으며 말했다.“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안 그러겠습니다!”우문호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원경릉이 다가가 말했다.“아이가 자네 선물을 많이 샀소. 한번 보시게.”“필요 없소!”우문호가 단호하게 말했다. 딸을 뿌리칠 마음은 없지만, 그는 여전히 속았다는 사실에 너무 힘들었다.원경릉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 텐데, 자신에게 말하지 않았다. 서로 비밀이 없기로 약속했건만, 그 약속이 깨진 것 같아 화가 났다.원경릉은 그의 표정을 보고 더 걱정해야 할 사람이 자기라는 것을 깨달았다.오는 길 내내 택란만 걱정하며 우문호에게 딸을 변호해 주려 했지만, 정작 자신이 그를 속인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

  • 명의 왕비   제3126화

    아이들은 저마다 자신이 한 일을 이야기하며 원경릉을 기쁘게 했다.다섯째는 이전에 다섯 개의 성을 위해 적어도 30년이나 50년의 계획이 필요하다고 했었는데, 지금 상황을 보니, 20년이 채 되지 않아 조정에 대한 충성심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더 나아가 국경 방어뿐만 아니라 조정에 세금을 납부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보였다. 아이들이 현대의 경험을 참고하며 지내는 것이 다섯째의 큰 걱정을 해결해 준 것이었다. 약도성은 이번 지진으로 국고의 돈과 주변 주현의 자원을 사용했다. 북당과 약도성의 백성들의 마음이 끈끈히 묶여 있어 불행 중 다행이었다.중증 환자들이 회복된 후, 원경릉은 택란과 함께 경성으로 돌아갔다.출발하기 전에 비둘기를 통해 다섯째에게 소식을 전하며 심리적 준비를 하도록 시간을 주었다. 이렇게 하면 다섯째가 택란을 보았을 때 마음을 가라앉혀 덜 화를 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택란은 아버지가 화를 내거나 슬퍼할까 봐 사실 마음속으로 몹시 두려웠다. 아버지가 자신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그녀또한 잘 알고 있었다.돌아가던 중 택란은 아버지에게 줄 선물을 사자고 제안했다. 원경릉은 딸의 강한 생존 본능에 웃음을 터뜨렸다. 딸이 아버지를 소중히 여기고 있었으니, 다섯째가 딸을 그렇게 아끼는 것이 헛된 일이 아님을 느꼈다.“너희 아버지께서는 특별한 취미가 없으시고, 그저 술 한잔하는 걸 좋아하시니까 좋은 술 몇 병 사 가는건 어떠냐?”그러자 원경릉이 먼저 제안했다.“좋습니다! 사요! 많이 사서 마차에 싣고 가겠습니다!”택란이 급히 대답하자 원경릉이 웃음을 참지 못했다. 다섯째가 아이들에게 그렇게 자상한데도 아이들이 그를 무서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물론 이는 두려움이 아니라 존경이고 사랑이지만 말이다.경성에서 우문호는 원경릉의 서신을 받자마자 열어보았다. 편지를 읽는 순간 그는 멍해졌다.“계란이가 약도성에 갔다니? 그게 어떻게 가능한 것이냐? 그렇게 얌전하던 딸아이가 몰래 약도성에 갔을 리가 없어.”더구나, 셋째와 넷째는

  • 명의 왕비   제3125화

    약도성의 건물 대부분이 무너져 백성들은 임시로 지은 오두막과 초가집에 머물게 되었는데, 폐허로 변한 도성은 눈에 보이는 곳마다 온통 엉망진창이었다. 원경릉은 마음속 깊이 안타까움을 느꼈다.택란의 뜻으로 중증 환자들은 모두 저택으로 옮겨졌다. 원경릉은 계란이의 결정이 매우 옳다고 생각했다. 중증 환자들은 그녀와 몇몇 의원이 책임지고 돌보았고, 나머지 의원은 경증 치료를 맡았다.택란은 엄마 곁에 머물며 환자를 돌보는 것을 도왔는데, 기본적인 의술을 알고 있어서 소독과 붕대 감는 일을 도왔다. 부상자들은 대부분 통증이 심해 참기 어려웠고, 진통제를 먹이거나 진통 주사를 놓았다. 택란도 주사를 놓을 수 있었는데, 어린 나이에 쉬지 않고 바쁜 모습을 보였다. 그런 그녀를 본 환자들은 눈물을 참지 못했다.그들은 궁에서 자신들의 생사를 진정으로 걱정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 황후마저 직접 왔으니, 예전의 대립과 적대감은 유치한 웃음거리로 느껴졌다.저녁 무렵, 아이들이 엄마를 찾아왔지만, 이야기를 나눌 여유도 없이 서로 포옹한 뒤 다시 각자 사람들을 구하러 나섰다.백성 중 자발적으로 음식을 만들고 약을 끓이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저택 내 물자는 부족했으나 주변의 도움이 끊이질 않았다. 호명은 사람들을 조직해 식량과 의복을 나누어 주었다. 지금의 약도성엔 인간의 이기심이 한순간에 사라진 듯했다.황후가 직접 약도성에 온 덕분에 서북 지역의 신하들도 직접 의원과 물자를 이끌고 약도성에 와서 돕기 시작했다.약도성은 전례 없는 관심을 받았고, 이는 약도성 백성들이 다섯 도시 중 가장 빠르게 조정을 인정하게 된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사람들을 구하고 재난 이전의 상태로 빠르게 회복하는 데만 집중했다.재난이 발생한 지 반달이 지나면서 발견된 것은 모두 희생자뿐이었다. 인원을 파악한 후 한곳에 모아 장례를 치렀다.이번 지진으로 약도성은 5만여 명의 백성이 목숨을 잃었다. 이 숫자는 매우 끔찍했지만, 택란의 사전

  • 명의 왕비   제3124화

    북당의 황후가 의원을 이끌고 직접 약도성으로 향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이들이 믿지 않았다. 약도성의 백성들조차 믿을 수 없었고, 감히 믿을 엄두도 없었다.우문택란이 이미 약도성에 왔지만, 고작 여덟 살짜리 아이에 불과했다. 다들 그저 그녀가 약도성에 놀러 왔고 수천 명의 병사를 거느리고 왔다고 생각했다. 이후 어린아이답지 않은 그녀의 비범한 능력이 증명되었다. 그녀는 약도성의 성주로서 약도성에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그러나 이번 지진으로 약도성은 초토화되었고, 재건하려면 조정이 막대한 인력과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 북당의 조정이 약도성을 방치하고 자연적으로 멸망하도록 내버려두어도 어쩔 수 없었다. 약도성 백성들은 줄곧 조정을 적대시하였기 때문에, 조정이 이들을 구할 이유가 없었다.그런데 황후가 직접 약도성으로 향한다는 것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약도성은 조정이 이렇게까지 신경 쓸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지 않았다.지진 발생 열흘째 되던 날, 원경릉 황후가 이끄는 의원들이 약도성에 도착했다. 그들은 밤낮없이 말을 갈아타며 전력으로 달려왔다. 약도성의 백성들은 이 소식을 듣고 흥분하며 황후께서 약도성에 오신다고 얘기를 전했다.사람들의 생각은 한순간에 뒤바뀌었다. 지진 이전까지만 해도 조정을 적대시하고 북당을 적국으로 여겼던 약도성 백성들이, 이제는 원경릉을 환영하며 열광적으로 맞이했다. 이는 택란이 지진을 미리 알아차린 것과 구조 활동 덕분이었다.원경릉은 백성들의 뜨거운 환영을 예상하지 못했다. 말을 타고 앞을 바라보니 사람들이 계속 모여들고 있었고, 그녀의 눈시울이 촉촉해졌다.“어머니!”군중 속에서 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원경릉은 단번에 딸을 찾아내고 말에서 내려 달려갔다. 택란은 엄마 품에 안기자마자 눈물을 참지 못하고 터뜨렸다."어머니,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너무 많아요!"택란이 흐느끼며 말했다.원경릉은 딸이 이렇게 슬프게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녀의 가슴이 미어지듯 아팠다. 원경릉은 딸을 품에 꼭 안

  • 명의 왕비   제3123화

    택란은 어릴 적부터 화염을 다루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기에, 감정을 표정에 드러내지 않았다. 겉으로는 담담해 보였지만, 그녀는 내면의 감정을 철저히 억눌러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화염을 제어하지 못할 위험이 있었다. 스승님을 따른 후, 스승이 계속해서 그녀에게 약점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감정의 틈새가 생기면 많은 것을 통제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녀는 항상 냉정한 태도를 유지하며, 모든 일을 담담히 대하려고 노력했다. 자신의 진심 어린 감정을 흔들지 않으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많은 이들의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서 그녀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었다.꼬마 봉황이 날개를 펼쳐 그녀를 품에 안고 위로해 주었다.그들은 수년간 서로를 지지하며 함께 성장해 왔고, 서로를 위로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잠시 후, 택란은 다시 구조 현장으로 나갔고, 여전히 평온하고 흔들림 없는 얼굴로 사람들 앞에 섰다.위왕과 안왕은 어린 조카의 침착함에 깜짝 놀랐다. 겨우 여덟 살짜리 아이가 어떻게 이런 모습을 보일 수 있단 말인가? 아이의 천성은 어디로 간 것인가?그들은 택란이 애초에 아이로서의 천성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태어난 후, 조금이라도 세상을 이해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녀는 빠르게 세상을 이해하며, 지혜롭고 노련한 어른처럼 모든 것을 맞서야 했다.사실 그녀는 아버지와 함께 있는 시간을 가장 좋아했다. 아버지는 지금까지도 그녀를 한두 살짜리 어린아이처럼 사랑하고 아껴주었다. 그에게는 아무런 기대나 요구가 없었으며, 능력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어머니처럼 그녀의 모든 행동을 걱정하고 감시하지 않았다.아버지 앞에서 그녀는 가면을 쓸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약도성의 일이 안정된 후, 그녀는 아버지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돌아갈 계획이었다. 이번 약도성 방문은 그녀에게 있어 단순한 놀이가 아닌 실습이었다. 이곳은 그녀의 의지와 감정을 단련할 수 있는 장소였고, 실제로 그녀는 이곳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했다.구조 작업은 계속되었고, 지진이 발

  • 명의 왕비   제3122화

    한 마을 주민이 눈물을 닦으며 원망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지원 같은 건 절대 없을 것이오. 조정은 우리를 모조리 죽이길 바라오. 우리가 죽어야 조정은, 이 약도성을 완전히 삼킬 수 있소. 아무도 우리를 구하러 오지 않소.”택란은 화가 나서 말했다.“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인가? 내가 여기에 왔잖냐! 빨리 계속 파시게!”주민이 그녀를 힐끔 보며 물었다.“웬 꼬마가, 넌 누구냐?”택란을 본 사람은 많지 않았다. 게다가 어둠 속이라 그녀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어린아이가 여기 있는 걸 보고 다들 의아해했다.“약도성의 성주, 우문택란이다!”그녀는 단호하게 말한 뒤, 산사태가 난 지역을 향해 다시 걸어갔다. 작은 몸집이 시선에서 멀어질수록 더욱 작아 보였다.황실의 공주라는 말에 사람들은 모두 놀라 얼어붙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공주가 이런 곳에 직접 올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공주는 저택 안에서 잘 보호받고 있어야 할 존재다.그녀는 알 수 없는 힘을 사용해 접근한 곳의 흙을 한 겹씩 옮겨내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울부짖는 소리와 구조 요청이 들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그녀를 따라가 급히 구조 작업에 참여했다.약도성의 지진은 강북부에서도 뚜렷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낡은 집도 무너졌지만, 심각한 피해는 없었다. 약도성에 지진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위왕과 안왕은 신속히 구조 병사를 파견했다. 그들은 택란이 약도성에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그들 여태껏 택란이 스승과 함께 떠났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녀의 네 오빠들은 바로 병사를 데리고 약도성으로 향했다. 지진 발생 12 시진 후 약도성에는 8천 명 이상의 병사가 합류했다.약도성의 백성은 조정이 지원군을 보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들은 조정이 약도성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든 관심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과거에도 가뭄, 메뚜기 떼, 산사태 등의 재난이 일어났지만, 북막조정은 몇 포대의 쌀만 보내며 형식적인 구조를 했을 뿐이다.약도성

  • 명의 왕비   제3121화

    지진이 발생하기 전, 호명과 주 아가씨는 약도성 중심부에서 백성들을 대피시키고 있었다.새벽녘은 사람들이 가장 피곤할 시간이다. 억지로 잠에서 깨어난 백성들은 분노했다. 그중 한 집안은 도축업을 하는 홀아비가 어린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새벽 무렵에야 돼지를 잡고 고기를 나눠주고 돌아와 잠자리에 든 참이었다. 그런데 또다시 잠에서 깨어난 데다 아이까지 깨우니, 그는 화를 참지 못하고 욕설을 퍼부었다.옆집 사람은 칼을 들고 나가 저들을 쫓아내면 다시 잘 수 있다고 부추겼다. 남자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던 상황이라 아들을 방으로 데려다 놓고, 즉시 칼을 들고 나가 주 아가씨와 맞섰다.그가 칼을 휘두르며 집안 식구들과 함께 밖으로 나온 그 순간, 지진이 발생했다. 그들은 자기 집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것을 똑똑히 목격했다. 먼지가 자욱했고, 곁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들렸다. 옆집 역시 무너졌고, 그 안에 갇힌 사람들이 집 처마 아래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깔려 있었다.“아들! 아들아!”홀아비는 그제야 안으로 데려다 놓았던 아들을 떠올라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집은 이미 완전히 무너졌다. 겨우 세 살밖에 안 되는 아들은, 살아있을 가능성이 희박했다.그는 미친 듯이 벽돌과 흙더미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주 아가씨와 호명도 서둘러 도왔다.지진은 단 몇 초 만에 일어났다. 이미 수많은 사람이 집으로 돌아갔고, 그 결과 무너진 집에 깔린 백성들이 매우 많았다. 약도성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사방에서 울부짖음과 비명이 들려왔다. 평소 조정과 맞서던 이들은 너무나 나약하고 무력해 보였다. 그들의 처절한 울음소리는 듣는 이의 마음을 찢어지게 했다.홀아비의 아들을 구하기 위해 다들 함께 벽돌을 치우고 흙을 파내기 시작했다. 도구가 없어서 맨손으로 작업해야 했다. 주 아가씨의 손은 금세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고 계속 흙벽을 밀어내고 벽돌을 옮겼다.반 시진 후, 주 아가씨가 마침내 아이를 안고 왔다. 아이는 다리를 크게 다쳐 엉엉 울고 있었다. 홀아

  • 명의 왕비   제3120화

    “그럼... 호명, 가십시다!”주 아가씨는 왠지 모르게 택란의 말을 믿었다.호명도 주 아가씨의 말을 듣고 동의했다. 그의 생각은 단순했다. 지진이 생기지 않으면 백성들을 귀찮게 한 정도로 끝날 테지만, 정말 지진이 발생한다면 목숨을 구할 수 있다.게다가 약도성의 백성들은 조정을 극도로 싫어하기에, 더 미움을 사도 중요하지 않다.일행은 즉시 돌아가 병사들을 소집해 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백성에게 넓은 곳으로 대피하라고 알렸다.한밤중에 잠에서 깨어난 백성은 역시나 원치 않았다. 욕설을 퍼붓고 심지어 병사들과 몸싸움을 벌이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성주가 단호하게 명령한 일이었기에, 백성들은 마지못해 끌려 나갔다.그러나 문제는 강제로 밖으로 끌어낸 사람들을 계속 감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병사들이 떠난 후 많은 백성이 다시 집으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게다가 일부 폭도들은 이를 계기로 병사들과 정면으로 맞서며 심각한 충돌을 일으켰다.부분 병사가 백성들이 소란을 피우는 마을로 향했다. 이곳에 있는 마을은 거의 조정을 적대시하는 곳이었다. 너무 외진 곳이고 여인도 적은 곳이라, 이곳 남자들은 혼사도 치르지 못하고 가난하게 지내고 있었다. 하루 세 끼를 유지하기조차 힘들었고, 금나라의 선동이 더해져 이 지역의 상황은 더욱 악화하였다. 이 몇몇 마을에서 15세 이하의 아이들은 열 명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병사들이 징과 북을 울리며 백성을 깨우자, 폭도들이 화를 내며 병사들에게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몸싸움이 벌어졌고, 20여 명의 병사들이 이들에게 압도당해 심하게 얻어맞았다.결국 병사들은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약도성에서 대피한 사람은 많지 않았고, 약 만 명 정도였다. 대부분 병사가 떠난 후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고는 조정이 백성을 괴롭힌다고 욕하며 약도성에는 지진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이에 주 아가씨가 분노를 참지 못해 말했다.“성주께 말씀드려서 집을 전부 불태워버리자고 해야겠습니다! 정말 너무합니다.”호명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명의 왕비   제3119화

    저녁 무렵, 그들 일행은 출발했다.약도성의 밤은 전혀 활기가 없었다. 해가 지고 나면 거리에서 사람들을 거의 볼 수 없었다. 수년간 치안이 매우 나빴다. 비록 저녁에 병사들이 순찰하고 있지만, 백성들은 이미 해가 지면 밖에 나가지 않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덕분에 이번 외출은 별다른 문제 없이 진행되었다.약도성이 가난하다 보니, 부유한 이들의 저택만 튼튼할 뿐, 대부분의 집은 돌집이나 흙집, 나무 건물로 이루어져 있었다. 기초가 거의 다져지지 않은 상태여서 지진이 발생한다면, 대부분의 건물이 버틸 수 없을 것이다.택란은 이 점이 걱정되었지만, 아직 지진이라 단언할 수 없었다.그러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불길한 예감이 계속해서 밀려왔다. 그녀는 꼬마 봉황에게 물어보았고, 꼬마 봉황이 하늘로 날아올라 몇 바퀴를 돌며 주변을 살폈다. 새들이 어지럽게 날아다니는 것을 본 꼬마 봉황은 택란에게 알렸다. 그녀의 불안감이 점점 더 커졌다.택란은 호명과 주 아가씨에게 자신의 걱정을 털어놓으며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하지만 호명과 주 아가씨는 믿지 않았다. 약도성은 지금까지 단 한 번만 지진이 발생하였다.주 아가씨가 말했다.“오늘 밤하늘을 보니 지진운 같은 건 보이지 않습니다. 너무 걱정하신 것 같습니다.”“지진운은 믿을 수 없소. 강가로 한번 가보시게.”이곳에는 바다가 없고, 산을 따라 흐르는 큰 강만 있었다.다들 풍등을 들고 강가로 향했다.강물의 흐름은 빠르지 않았고, 눈에 띄게 가뭄의 흔적이 드러나 있었다. 물 높이는 겨울이나 봄에 비해 많이 낮아졌고, 어떤 곳은 강바닥이 드러나 있었다.택란은 풍등을 들고 아래로 내려갔다. 강물은 별문제가 없어 보였다. 아마도 수심이 얕기 때문일지도 모른다.“이곳에 샘물이 있소?”택란이 주 아가씨에게 물었다.“있습니다. 여기서 2리 정도 떨어진 곳에 큰 샘물이 하나 있는데, 근처 주민들이 그곳에서 물을 떠다 마십니다.”“좋소. 가보겠소!”택란이 말했다.일행은 다시 큰 샘물로 향했다. 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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