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문호는 초왕부에서 거의 2시간 동안 만두가 깨어나기를 기다렸다.질서를 파괴할 수 없고, 시간이 같은 속도로 계속 흘러가기 때문에 여기서 두 시간이 흘렀다는 것은 만두가 그쪽으로 가서 두 시간을 보냈다는 것과 같았다.만두가 깨어났을 때는 이미 날이 어둑어둑해져 있었다.“어때? 물어 봤어?” 우문호가 만두를 일으키며 물었다.만두가 바로 침대에서 기어나와 문방사우를 찾았따. “기억했어요! 아빠가 다 기억하지 못하실 수도 있으니 제가 적어드릴게요.”“알았어, 서일, 서일아!” 우문호가 바로 뛰어나가 서일에게 문방사우를 가져오게 했다.서일이 얼른 달려가 문방사우를 가져오더니 열심히 먹을 갈았다. 만두는 종이 한 장을 펼치고 바로 종이 위에 써 나갔다. “복수초, 천년 인삼, 삼칠, 태운 지네, 적사단, 소목, 적작, 섬수, 벌집, 아교, 혈갈, 합일환화, 우슬, 투골초, 신근초, 홍화, 독활, 병편……”약방문에 총 18가지의 약재가 더해지고 마지막으로 약인(약효를 올리기 위해 중요한 보조 약재) 하나가 남았다.“이게 자금단에 필요한 약재라고?” 우문호가 들여다보고 묻는데, 귀한 것이기는 하나 그렇게 구하기 어려운 것들은 아니였다.만두는 우선 서일을 내보내고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아버지, 자금단의 처방은 이것보다 훨씬 복잡하지만 약인 딱 하나만 추가하면 효과는 자금단과 거의 비슷할 것입니다.”우문호는 만두가 서일을 내보낸 것을 보고 의아한 마음에 물었다. “약인이 뭐길래 서일 삼촌에게는 알리지 못하는 것이냐?”만두가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신선한 눈늑대의 피로, 서일 삼촌은 재물을 탐하니 만약 눈늑대의 피가 무엇보다 진귀하다는 것을 알면 눈늑대를 팔아버릴 수도 있으니까요.”그러고 보니 그랬다.하지만 우문호는 눈늑대의 피를 사용한다는 말에 다시 눈살을 찌푸렸다. “눈 늑대의 피가 필요하다고? 그럼 눈 늑대 한 마리를 다치게 해야 하는 거잖아? 피가 얼마나 필요하지? 한 그릇이면 충분한가?”우문호가 그 말을 하며 검을 뽑았다.만두가 기겁하
한달음에 말을 달려 입궐하니 해는 이미 뉘엿뉘엿 기울어 비단 같은 채색 구름만 수놓고 있었다. 바람이 심해 거리에는 바람소리만 들려왔다. 부자는 말 한 필을 같이 탔고 눈 늑대는 그 뒤를 따르는데 만두가 앞에 앉아 뒤에 채찍을 들고 있는 아빠에게 물었다. “스승님은 왜 다치셨어요? 누가 해치려고 한 건가요? 제가 주재상의 원수를 갚아야 하는데 말이예요.”“ㄱ그냥 실수로 부딪혀서 다치신 거야.” 우문호가 아들의 말에 답했다.만두가 ‘아’ 하더니, “나이가 많은 것도 영 골치네요. 걷는 게 마음 같지 않으니까요. 상선도 잘 못 걷던데 나중에 제가 경호에서 돌아오는 날엔 상선에게 바퀴 의자를 사줘야겠어요. 밀고 다닐 수 있게.” 라고 말했다. “바퀴 의자? 상선한테는 이미 하나가 있지 않느냐?”“그건 불편해요. 누가 밀어줘야 하잖아요. 제가 사려는 건 자기가 밀어서 갈 수 있는 거예요. 상선은 다른 사람에게 시중을 받는 거 싫어해요. 나이 든 사람의 마음과 건강 상태에 관심을 좀 가시세요, 아버지. 되는 대로 대충대충 주지 마시고. 주는 건 쉽지만 받는 사람의 몸도 편하고 마음도 편해야 되는 거라고요. 아니면 사는 게 얼마나 재미없겠어요.”우문호는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채로 공허한 말투로 말했다. “스스로 밀고 다니는 바퀴 의자가 편하다는 걸 아빠가 어떻게 알아? 타 본 적도 없는데.”“그럼 아버지가 상선이라고 상상해보세요. 바퀴 의자에 앉아서 화장실을 가고 싶은데 누군가 불러 밀어달라고 해야 하면 얼마나 불편하겠어요? 아버지는 너무 꼼꼼하지 못하다는 어머니의 말씀이 다 맞으니까 고치셔야 돼요.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면 아버지가 하시는 일을 다른 사람이 편안하게 느낄 거예요.”아들의 가르침을 받고 보니 이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느껴지는 바가 없지는 않았다. “그래, 너 잘 났다. 어쩐지 상선이 널 예뻐 해서 맨날 군것질을 챙겨 뒀구나.” 자신의 떡들과 쌍둥이의 성격이 크게 삐뚤어질 리 없다고 믿는 중요
태상황이 바로 창고에서 고구려에서 보내온 인삼을 가져오라는 명을 내리자, 상자에 담긴 귀한 인삼이 줄줄이 들어왔다. 인삼을 건곤전에 가져올 때 할머니가 한 뿌리 씩 살펴보는데 제일 큰 게 대략 반 근(250g)정도로 심지어 어떤 것은 아기 모양인 것도 있어 향이 상당했다. 원판이 그 인삼을 들고 할머니한테 물었다. “이게 보기엔 비슷하죠?”할머니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이건 크게 자랐지만 햇수가 천년에 못 미쳐요. 백년삼 정도네요.”“그럼 어떻게 구별합니까?” 소요공이 묻자 할머니가 답했다. “제가 전에 천년 인삼 한 뿌리를 본 적이 있는데, 열자마자 인삼 향이 확 퍼지면서 향이 진하기가 이를 데 없고 사람 모양처럼 생겼습니다. 색은 거의 어두운 금색인데 무늬가 조밀하고 인삼 잔뿌리가 딱딱하며 매우 휘귀합니다. 하지만 보다시피 이 인삼의 잔뿌리는 다소 가늘고 부드러운 것으로 보아 백 년 남짓 된 것 같습니다.”원판은 식견이 풍부해서, 인삼의 좋고 나쁨을 감정하는 건 그도 가능했다. 하지만 몇 년 된 인삼인지 특히 정말 천년이 된 것인지 구별해내기란 쉽지 않았다.그래서 내의원을 이어받아 지금까지 좋은 삼을 적지 않게 봐 왔고 천년 인삼이라는 것도 많았지만 정말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꼭 천년 인삼이 아니면 안되는 겁니까?” 소요공이 물었다.“설사 천년이 아니더라도 적어도 훨씬 더 오래된 인삼이어야 이 처방에…….” 할머니가 다시 자세히 보더니 다소 주저하며 말을 이었다. “이 처방의 일부 약은 상처에 혈액 순환을 돕고 어혈을 제거하는 것이고 일부는 심맥을 강하게 하는 것, 또다른 일부는 독을 해독하는 것이나 모든 약의 3할은 독임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인삼은 양기를 북돋아줘서 햇수가 오래된 인삼을 쓸수록 약의 부작용을 최대한 낮춰 주지요. 그래서 우리가 원하는 치료효과를 거둘 수 있게 되는 겁니다.”태상황이 할머니의 말을 듣고 다급한 마음에 원판에게 물었다. “다른 건 더 없나?”원판이 잠시 생각해보더니 말을 이었다. “태상황 폐하께 아룁
호비는 자금단때문에 열째에게 계속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 열째를 꾸짖었을 때 뛰쳐나가 고자질을 하는 게 지금 명원제가 곁에 있는 김에 몇 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열째는 서당에 보내 스승님께 지도를 받도록 했다.명원제도 열째를 제대로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에 동의했다. 호비는 건곤전에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 모르고 있었지만, 곁에 있는 명원제가 자꾸 걱정스런 표정을 짓는 것이 주재상의 용태가 정말 좋지 않구나 생각하며 두려워 했다.자금단은 원래 주재상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으나 호비 손에서 없어지고 말았다. 자신이 잘못했다는 심리적 압박감을 느꼈기에 약을 먹은 뒤에도 복통이 심해진 것이다.그때 목여태감이 와서 태상황의 뜻을 전달했다.명원제는 호비의 복통을 걱정해서 목여태감의 보고를 듣다가 어쩌면 주재상에게 효과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리에 얼른 나섰다. “그럼 뭘 기다리느냐. 어서 가서……”명원제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호비가 명원제의 손등을 지그시 누르며 말했다. “그래. 뭘 기다리고 있어. 창고에 가서 인삼을 가져다 목여태감에게 주거라. 더 좋은 약재가 있으면 쓰시도록 같이 보내고.”목여태감은 한쪽 무릎을 꿇고 한동안 답하지 못했다. 목여태감은 명원제의 시중을 든 지 오래되었기에 명원제 얼굴의 미세한 표정 변화도 모두 읽어낼 수 있었지만 황제는 목여태감에게 황귀비 쪽에서 가져가라고 하고 있었다.명원제는 얼른 자세를 바꿔 말했다. “그럼 채명전에서 우선 가져가게.”목여태감이 속으로 안도하하며 답했다. “예!”목여태감이 물러나 채명전 궁인과 같이 창고에 인삼을 가지러 나갔다.명원제는 호비 안색이 복잡한 것을 보고 말했다. “몸이 이렇게나 안 좋은데 그 인삼은 만약을 위해 남겨두는 편이 낫지 않을까?”호비는 지금 총애를 받는 기쁨은 없고 오히려 복잡한 감정만 생긴 상태였다. “폐하 그럼 황귀비 마마는요? 황귀비 마마는 저보다 나이가 많은 데다 첫아이로 출산할 때 인삼이 더욱 필요할 겁니다.”“그래, 황귀비도 필요하지!” 명원제는 잠시 무엇인가
호비가 슬그머니 명원제의 손을 놓았다. 마음 속에 한줄기 실망이 싹 튼 것이다. 자신은 그녀를 수년동안 사랑해 왔고 심지어 생사를 함께 하겠다고 결정했다. 하지만 몇 년간 궁에 있으면서 황귀비가 자신을 세심하게 돌봐주는 것이 마치 엄마처럼 느껴졌다. 이런 비유가 맞지 않겠지만 호비는 일찍 어머니를 여의였기에고 황귀비를 자신의 어머니라고 생각해 왔다. 그래서 황귀비와의 감정에 각별히 신경을 썼으며 단순히 신경을 쓰는 정도가 아닌 황제의 사랑에 못지 않았다. 호비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일단 떠오르는 사람이 황제가 아닌 바로 황귀비일 정도였다.황귀비는 호비에게 안정감을 주는 측면에서는 황제보다 한참 위에 있었다. 호비의 사랑은 처음부터 비천해서 입궁할 때 황제 주변에 다른 여인들이 있을 것을 알았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지만 지금의 편애는 호비 마음에 자괴감을 들게 했다. 호비의 사랑은 후궁의 수많은 마마들의 고독과 바꿔 이룬 것이기 때문이었다.특히 거기엔 황귀비가 있었다.호비가 입궁하기 전에 황제는 황귀비를 좋아했었다. 황귀비는 오래 자식이 없었지만 계속 총애가 식지 않았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하지만 지금 황제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황귀비의 이익을 희생할 것을 택했다. 자신이 한때 사랑했던 사람인데 말이다.호비는 원래 기뻐야만 했지만 마음이 스산했다.인삼을 보내자 할머니가 보고 비로소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인삼은 가능할 게 틀림없습니다. 시도해보지요.”내의원 약방에서는 이미 할머니를 도와 필요한 약을 다 준비해두고 눈늑대봉의 복수초를 기다리고 있었다.원경릉이 계속 주재상에게 약을 쓰는데 약 상자 안에 옥시토신때문에 마음이 여전히 불안했다. 누군가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해서 자신에게 문제가 생기는 건가 두렵기도 했다.약 상자가 자신의 제어 하에 있지만 본인도 알지 못하는 잠재의식이 주변의 위기를 감지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이런 감각은 한 가지 일에 집중하면 다른 건 소홀하기 쉬운 원경릉 성격에 약 상자가 원경릉
원경릉은 희상궁을 좀 재우고 싶었으나, 희상궁은 기어코 주재상 곁에서 떠나지 않고 그의 손을 꼭 쥐며 말했다. “아뇨, 전 여기서 이 분을 지킬 겁니다.”불길한 말은 꺼내고 싶지 않았다. 그저 이렇게 곁을 지키는 수밖에 없었다. 아직 숨을 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잠깐이라도 그게 어딘지 싶었다. 희상궁은 과거에 함부로 자신을 낮추고 하찮게 취급했던 일을 이 순간 진정으로 후회했다. 자신은 노비 신분이니 주재상에게 격이 맞지 않다고 우기다가 결국 일생을 잘못 살고 말았다.원경릉은 외전으로 나가 눕더니 눈을 감고 잠시 휴식을 취해도 머리는 여전히 쉬지 않고 돌았다.주재상이 이번 고비를 넘길 수 있을까, 태상황과 소요공, 그리고 희상궁은 어떻게 할까? 원경릉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기에 뒷일을 생각하니 가슴이 칼로 찔러지는 것만 같았다.그동안 수많은 비바람을 다 견뎌온 주재상이, 나라 안팎이 안정되어 일신의 무거운 짐을 벗을 찰나에 고작 도시 몇 개 때문에 이런 일을 당하다니! 원경릉은 그날 받지 말았어야 했다. 사양 했어야 했다.죄책감, 걱정, 그리고 초조함에 괴로움이 겹쳐 불에 바짝 졸여지는 기분이 들었다. 뱃속에 열기는 그다지 심하지 않았지만 무거운 분위기를 아이도 느꼈을 지도 모른다. 아내를 아는데 남편만한 사람 없다고 원경릉이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을 줄 알고 우문호가 오래전부터 와서 함께 있어 주었다.원경릉이 눈을 뜨자 눈물이 조용히 흘러내렸지만 모두가 보고 있어서 원경릉이 어떤 반응을 보이더라도 알아챌 것이기 때문에 감히 소리내 울지도 못했다.우문호가 손가락을 뻗어 원경릉의 눈물을 닦아주고 이마에 뽀뽀하고는 이마와 이마를 맞대고 목소리를 낮추어 부드럽게 말했다. “그러지 마, 금방 좋아질 거야.”원경릉은 목이 메어 우문호의 귓가에 울먹이며 말했다. “절대 돌아가시게 하면 안돼. 나라를 위해서도 우리집을 위해서도 안돼... 우리 떡들을 임신하고 정말 죽고 싶었을 때 주재상께서 약을 보내주셔서 고난의 입덧을 넘길 수 있었어.
우문호는 매우 심란했다. 경호 길은 아직 조정이 끝나지 않은 상태로, 경호에 뛰어내리면 어떤 국면을 맞이하게 될지 둘 다 짐작할 수 없었다.하지만 원경릉 말 대로 주재상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황조부는 살아가지 못할 게 틀림없다.태산이 무너지는데 아바마마라고 버티실 수 있을까? 심지어 자기 때문에 생긴 일인데 말이다. 이런 생각들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아 더는 깊이 생각을 진전시킬 수 없었다.원경릉이 우문호의 손을 잡고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만약 시공간 속에서 길을 잃게 된다면 자기는 용태후께 가서 우리를 구해주시라고 해줘. 우리 만두는 우리가 집에 도착하지 못한 걸 알 거야. 지금 용태후를 찾아가 우리를 저쪽으로 데려다 달라고 할 시간이 없으니까 말이야. 이번 약을 드신 후에도 효과가 없다면 바로 우리를 경호로 데려가줘. 시간이 없어.”우문호는 원경릉을 위험에 노출시키고 싶지 않았다. 우문호의 결정에 따라 어쩌면 원경릉과 뱃속의 자신의 아이까지 잃을 수도 있다.“자기야, 내 말을 듣고 망설일 필요 없어. 옳은 일을 한다는 걸 우리는 잘 알잖아. 주재상에게 무슨 일이 생겨서는 절대 안돼. 주재상의 목숨은 다른 세사람의 목숨과 묶여 있어. 최악의 경우라 해도 우리는 다른 시공간에서 살아있어. 우리는 죽지 않을 거야. 그리고 자기는 우리를 찾을 기회가 있잖아. 이렇게 해야 한줄기 희망을 품고 건곤전의 저들이 계속 기다릴 수 있어.” 원경릉이 우문호의 손을 꽉 잡고 다시 한번 간절히 애원했다.우문호는 원경릉을 보니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주재상이 다른 세 사람의 목숨과 엮여 있듯이 당신 모녀도 우리 부자 몇 명의 목숨이랑 엮여 있다는 걸 모르겠는가?“일단 이 얘기는 하지 말자. 아직 약을 드신 것도 아니니까. 약을 드시고도 효과가 없으면 그때 다시 얘기하기로 하자.” 우문호는 더는 얘기를 이어갈 수 없었다. 원경릉이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만으로 앞으로 나날이 전부 암흑처럼 깜깜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원경릉이 두 손으로 우문호의 목을
이 말을 듣고 마음이 편안해졌는지 주재상은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주재상은 그렇게 해 질 무렵 또 한번 깨서 태상황을 불렀다. 희상궁이 역시 전처럼 대답하자 주재상이 눈을 뜨려고 안간힘을 쓰며 태상황을 찾으려 했으나 제대로 볼 수 없는 상태였다. 이를 본 태상황이 버둥거리자 우문호가 태상황을 일으켜 주재상의 침대 앞으로 데려갔다. 태상황이 주재상의 손을 잡고 가슴이 타는 목소리로 말했다. “과인 여기 있네.”그러자 주재상의 두 눈은 몽롱한듯 다시 감겼는데 입꼬리가 부드러워진 듯 했다. 태상황이 고개를 천천히 위로 들어 올리는데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비록 희상궁이 처음에 태상황은 괜찮다고 말했지만 주재상은 완전히 믿지 못한 표정으로 있다가 태상황 본인의 목소리를 직접 듣자 비로소 믿는 듯 했다. 우문호와 원경릉이 곁에 서 있었는데 콧잔등이 시큰해진 것 같았다. 도대체 서로 함께 어떤 시간을 보냈길래 지금 이토록 손을 놓지 않는 서로를 꽉 붙드는 건지 놀랍기도 했다.우문호는 원경릉의 말을 확신했다. 주재상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태상황은 정말 정말 살 수 없으니까 말이다. 그들 셋은 예전부터 한 목숨이었다.주재상의 상황이 비교적 안정적이게 되자 태상황은 우문호에게 그만 일 하러 가라고 쫓아냈다.하지만 원경릉은 쉽게 떠나지 못하고 할머니와 같이 건곤전을 지켰다.태상황의 기분은 아직도 안 좋았는데, 주재상에 대한 걱정 보다 명원제에 대한 실망이 컸다.할머니가 태상황을 부축해 마당으로 나가 좀 걸으며 긴장을 풀어주었다. 그가 오랜 시간 심리적 억압 하에 놓여 있었기에 이렇게 얘기라도 나누지 않으면 특히 태상황의 나이엔 상당히 위험했다.…..채명전.호비는 약을 마신 뒤 장의자에서 휴식을 취하려고 했지만 자금단 생각을 도무지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렇게 진귀한 약을 이렇게 허망하게 잃어버렸다 생각하니 속상했다.그래서 궁인들에게 분부해 밖에 떨어져 있는 건 아닌지 다시 찾아보도록 명했다. 열째가 채명전 안에서 만 논게 아닌 밖으로 나갈 수도
대오가 경성으로 돌아올 때 홍엽도 원숭이와 같이 돌아왔는데, 그도 풍도성에서 힘을 보탰다. 사실 홍엽이 안 가도 안풍 친왕이 모든 걸 다 준비해 둬서, 안풍 친왕 능력이면 안지여 정도 상대하기는 식은 죽 먹기였다.이리 나리 일행은 경성에 도착해, 우선 집으로 돌아가 공주와 천행이를 보고 가족이 함께 밥을 먹은 뒤 입궁해서 경과를 보고했다.사적인 원한은 한두 마디로, 벌을 받아 마땅한 사람은 지금 받아야 할 벌을 받고 있으며 아직 죽이지 않았다고 했다남은 건 정사를 논하는 것이었다.“어머니와 같이 풍도성에서 보름 정도 지내며 기본적인 민심을 파악했는데, 천문 세가는 백성들 사이에서 아직 명망이 높아 보입니다. 풍도성 백성들은 사실 세금이 너무 많고 경제가 번영한 성과가 전부 안지여 수중에 떨어지는 구조로 되어 있어 안지여의 통치에 불만이 있었다고 합니다. 조정에서 풍도성을 접수한 것에 백성들 대부분은 찬성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천하태평이냐 하면 그럴 순 없는 것이, 일부는 성주가 자기들의 황제라 여기고, 조정이 풍도성을 접수한 것이 풍도성이 침략당했다고 여겨 나중에 약간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부를 임명하실 때 신중하셔야 할 것입니다.”우문호가 말했다. “흠, 큰할아버지께서 천거한 사람이 있는데, 바로 박원이라네. 자네 생각은 어떤가?”그러자 이리 나리의 눈빛이 빛났다. “제 아버지가 추천한 사람이니 전 찬성입니다!”“아버지?” 우문호가 의아해하며 이리 나리를 쳐다봤다. ‘안풍 친왕비가 사부님이면 안풍 친왕은 사부의 남편 아닌가? 어떻게 아버지가 되지? 사부님의 배우자니 사모님이라고 부르는 게 더 맞지 않나?’“흠, 안풍 친왕은 제 아버지십니다!” 이리 나리는 더 설명할 생각이 없는지 어쨌든 그렇다고 주장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한 번도 그를 아버지라 부른 적 없지만, 마음속에서만큼은 진정한 아버지였다.“하하하!” 우문호도 그저 웃으며 더는 묻지 않았다.이리 나리가 퇴청할 때 우문호가 이리 나리를 부르자 고개를 돌렸다. “무
“우선 박원이랑 소홍천 의사부터 물어보자. 억지로 하게 하고 싶지 않아. 그동안 그들이 날 많이 도와줬으니 전부 원하는 대로 하자고.” 우문호가 말했다.“그러자!” 원경릉이 일어서며 말했다. “오늘 저녁 애들 데리고 어머님께 가서 수라를 들려면 빨리움직여야 해. 꾸물대면 늦을거야.”그러자 우문호도 계란이를 안고 일어섰다. “그래, 우리 황조모한테 가서 맘마 먹자.”우문호가 나가서 부르자 아이들이 달려와, 같이 왁자지껄하게 수라를 들러 황태후 전으로 갔다.황태후는 원래 우문호에게 할 말이 있었지만, 식사 자리에 아이들이 있어서 기다렸다가 저녁을 다 먹은 뒤 우문호와 아이들이 나가서 놀고, 원경릉이 황태후와 얘기를 나눌 때 말을 꺼냈다.“천행이가 태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부마를 풍도성으로 보낼 수가 있지.. 공주가 얼마나 괴로웠을까.”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공주는 사정을 훤히 알고 있어서, 이리 나리께서 풍도성에 가는 걸 지지하셨는걸요.”“말은 그렇게 해도, 출산 후에 여자 곁엔 남편이 있어야 하는 법이야. 하지만 이것도 단지 우리 가족끼리 하는 얘기일 뿐이고, 조정 일을 내가 함부로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없는 노릇이지.”황태후는 이리 나리가 풍도성으로 간 진정한 목적을 전혀 몰랐으며, 단순히 어지러운 형국을 정리하러 갔다고만 알았기 때문에 순수하게 공주를 아끼는 마음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어마마마, 걱정하지 마세요. 이리 나리는 이미 돌아오는 중이래요.” 원경릉이 위로하자 황태후가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거 잘됐네!”온 가족이 별빛을 받으며 천천히 소월궁을 거닐었다.계란이는 아빠 품에서 잠이 들었고, 아이들은 놀다 지쳐서 아빠 엄마를 따라 천천히 걷고 있었으며, 목여 태감이 궁인 둘을 데리고 뒤에서 조용히 따라오는 가운데, 궁 안은 인적이 드물어 밤이 되자 상당히 고요했다.“어마마마께서 공주를 아끼셔서, 이리 나리가 하필 이때 풍도성에 보냈냐고 하셨어.” 원경릉이 말했다.“날 원망하셨어?” 우문호는 품에 있는 아이가 깰
늑대파 사람이 안지여와 소여쌍을 질질 끌고 나가는데, 소여쌍은 여전히 미친사람처럼 웃어대기만 했다.이리봉청은 그들이 끌려 나가는 것을 보자, 눈앞에 안지여가 자신을 데리고 소여쌍의 침대 앞으로 가서 소여쌍의 그 악랄한 말을 듣던 순간이 떠올랐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여리여리하고 아름답던 그녀가 이렇게 변해 버린 게 꿈처럼 느껴졌다.풍도성을 접수한 뒤 안풍 친왕은 관리들을 새롭게 임명했고, 더 이상 성주 같은 것을 두지 않고 조정과 이부에 적합한 인사를 선발해 풍도성 지부로 앉힐 것을 요청했다. 풍도성은 더 이상 이전의 독립 자치 지역이 아닌, 다른 주나 현과 마찬가지로 조정에 귀속되어 통일서 있게 다스리게 되었다.더불어 안풍 친왕은 별도로 서신을 써서 황제인 우문호에게 보냈는데, 풍도성을 추천하지만, 이건어디까지나 건의와 추천이니 황제가 생각하는 마땅한 사람이 있으면 안풍 친왕의 추천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동시에 안지여의 잔당들이 계속 나타났다.안풍 친왕이 이번에 이렇게 많은 사람을 데려오고, 호랑이와 눈 늑대, 회색 늑대까지 출동시킨 건 바로 모든 세력을 강화하고, 신속하게 진압해 풍도성을 조정에 복귀시키고 보름 만에 비적을 토벌하며 기본적인 숙청을 마무리하기 위해서였다.박원은 잔당의 남은 불씨가 다시 타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서 안풍 친왕의 영패를 가지고 부근에 5천 명의 군사를 파견시켜 풍도성을 지켰다. 이리 나리는 자금을 지원해 천문 세가의 묘를 이장하였는데, 이전 무덤은 안지여가 고른 곳으로 폐허에 가까워, 그는 천문 세가 사람들이 그런 곳에서 안식을 취하기를 원하지 않았다.풍도성에 온지 거의 한 달가량 될 때쯤, 대군은 경성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돌아가기 전에 미색이 안지여와 소여쌍을 보러 갔다가, 돼지우리에서 죽느니만 못한 삶을 사는 것을 보고 그제야 비로소 맺혀 있던 한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미색은 이리 나리와 어머님에게 알리지 않은 것이, 두 사람은 이미 안지여가 누군지 잊은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리봉청에게 있어 모든 건 지나가지 않았고, 36년 전 일은 여전히 어제 일 같이 느껴졌다.“어머니, 그를 어떻게 처분하시겠어요?” 이리 나리는 이리봉청의 마음을 넘겨짚을 수 없어 함께 걷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생각은 어떠니?” 이리봉청이 다시 되묻자 이리 나리가 원한에 사무친 눈빛으로 말했다. “제게 처분하라고 하면 전 그를 죽여 버릴 겁니다.”이리봉청은 알았다며 대답만 했다가, 다시 30분쯤 걷다가 정자에 앉아 을 때 말을 덧붙였다. “난 안 죽일 거야.”이리 나리가 약간 놀라서 물었다. “어머니, 또 마음이 약해지신 겁니까?”이리봉청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 반대야. 그 인간을 죽이는 게 마음이 약해진 거지. 사실 며칠 동안 이전의 원한을 내려놓을 수 있을지 생각해 봤는데,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 인간을 백번이라도 죽이겠지만, 난 그럴 수 없더구나. 아들아, 게다가 오늘 천문 세가 대문을 들어서는 그 순간, 더욱 마음을 굳혔단다.”이리봉청이 일어나 집안을 둘러봤다. 이곳은 그녀의 가족들이 살아 원래 온통 사람 소리로 가득한 곳이였다. 그들의 웃던 광경이 눈앞에 비치는가 하더니, 눈 깜박할 사이에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그들은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천문 세가는 큰 잘못을 저지른 것도 없는데 멸문지화를 당했고, 가엾게도 그 중엔 아이들이 많아서 제일 어린아이는 이제 태어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었다.이리봉청의 얼굴에 눈물이 타고 흐르며 가슴이 미어졌다. “그자와 소여쌍을 밖에 내버리고 사람을 시켜 지켜보도록 해. 죽게 두지 말고 계속 살려둬. 36년은 더 살면서 이 세상의 고생을 모두 겪어야, 내 마음에 맺힌 한이 풀리고 억울한 망자들도 안식에 들지!”이리 나리는 온몸으로 그 마음이 느껴져, 어머니가 눈물 흘리는 것을 더는 볼 수 없었다. “네, 전부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대로 할게요.”안지여와 소여쌍은 버려졌다. 짧은 며칠 사이에 안지여는 의기양양하던 성주에서 시궁창 쥐로 변해, 사람들이
안지여는 풍도성 지하감옥에 갇혔다. 빛 한 줄기 없는 지하감옥에서 사방에 끝없는 어둠과 절망만이 안지여를 삼키고 있었다.훼천의 형벌은 12 시진 후면 사라져서, 앞으로 안지여는 그저 한 명의 폐인일 뿐이었다.안지여의 결사대가 성으로 공격해 들어오기 전에, 이리봉청은 오 선생을 찾아내 안지여가 저지른 모든 죄를 고백하게 하고 안풍 친왕이 친필로 받아 적었다. 안지여가 당시 천문 세가를 해친 경위를 소상히 써 내려간 뒤, 오 선생과 안풍 친왕의 직인을 찍고 인쇄해서 대중에게 공개했다.안지여의 죄악은 하늘을 찔러 백성들 모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안지여의 결사대의 옛 부하들이 본래 성을 공격해 들어가 안지여를 구출할 계획을 세워놓았으나, 안지여의 죄상이 공포된 뒤로 많은 사람들이 해산하였다. 유일하게 무대장군만이 수천 명을 데리고 성으로 쳐들어왔지만, 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가 이미 대비해둔 덕분에, 경성에서 굴러온 돌이 무대장군의 박힌 돌을 빼내는 전투를 벌였다.풍도성에 온 지 7일째, 안풍 친왕은 풍도성을 접수하고 성에 살던 사람을 쫓아내며 서민으로 강등시켰다.안지여와 소여쌍에 대한 처분은 이리봉청에게 넘겼다.안지여는 캄캄한 지하감옥에서 6일을 지내는 동안, 처음엔 침착한 척 가장했으나 사흘째가 되자 울부짖으며 악독한 저주의 말을 내뱉더니, 나흘째가 되자 용서해달라고 애원하며 참회했다.손발의 힘줄이 끊어진 안지여는 일어나 걸을 수도 없고 심지어 스스로 몫숨을 끊을 힘도 없었다.그 와중에 매일 누군가가 먹고 마시도록 해주고, 상처도 치료해 주어 살 수 있다는 부질없는 희망을 품게 했다.훼천의 말에 따르면, 진정한 절망은 살아도 죽느니만 못하고,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것으로, 온 마음으로 죽기를 바라지만 살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가, 안간힘을 쓴 뒤 다시 절망에 빠지는 것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으로, 사람을 한없이 죽였다 살렸다 괴롭힌다고 했다.결국 안지여를 죽일지 말지 여부는 이리봉청에게 달렸는데, 그녀는 안지여를 단번에 죽여 천문 세가
안지여의 이마에 파란 힘줄이 불끈불끈했으나 냉정을 가장했다. “내가 두려워할 줄 알았나 보지? 죽음도 두렵지 않은데 뭘 더 두려워하겠어?”“넌 두려울 것이야!” 이리봉청이 고개를 돌려 이리 나리를 보고 살짝 그의 팔을 잡았다. “내가 오는 길에 늑대파 사람이 그러던데, 천하에서 제일 잔혹한 형벌을 아는 사람이 늑대파에 있다고. 그게 사실인 것이냐?”이리 나리가 가볍게 답했다. “물론 사실이죠. 훼천이라고 합니다. 늑대골 출신이에요.”“안지여가 버틸 수 있는지 어디 한 번 보고 싶구나.” 이리봉청이 말했다.이리 나리가 엄숙한 태도로 명을 내렸다. “훼천!”그러자 훼천이 급히 나왔다. “이리 나리, 분부하시지요!”이리 나리는 그가 짐짓 냉정한 척하고 있으나 눈빛이 조금씩 허물어져 가고, 몸까지 부들부들 떠는 것이 아주 만족스러워 훼천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시작해!”안지여가 갑자기 큰 소리로 욕했다. “난 네 아버지거늘, 감히 나에게 손을 대다니, 천벌을 받아 마땅한 놈 같으니라고!”이리봉청이 이 말을 듣고 잠시 주저하는 눈빛으로 이리 나리를 바라봤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제 아버지는 오직 저를 키워주신 안풍 친왕뿐이십니다.”이리봉청이 살짝 안도했다. “저 인간이 단지 나만 해쳤으면 네 체면을 봐서 놔줬겠지만 천문 세가의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갔으니 난 용서할 수 없구나.”“이리봉청, 너 언제 이렇게 악랄하게 변했어? 죽이려거든 그냥 죽여. 난 천문 세가 사람을 죽이긴 했어도 그들을 괴롭히진 않았어. 네가 날 죽이려거든 깨끗하게 단번에 죽여!”안지여가 크게 노해 몇 번 몸부림을 치다가 상처가 벌어지는 바람에 배에서 선혈이 흘러나오고, 훼천이 가까이 다가가자, 눈에 두려움이 깊어졌는데, 늑대골 출신 훼천은 온몸에서 피비린내가 뿜어져 나와 안지여를 덜덜 떨게 했다.“이리율!” 안풍 친왕비는 시ㅈ가하기 전에 이리 나리를 불렀다. “내가 여기서 네 엄마와 같이 있을 테니 넌 먼저 나가 있거라!”이리 나리가 안풍 친왕비에게
안지여에게 구원 병력이 없는 상황에서, 이리 나리 일행이 성을 제압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대오가 경성에서 출발하기 전에, 안풍 친왕비가 미리 사람을 풍도성으로 보내 각처, 특히 성 수비군과 군대에 잠입시켜, 음식에 효과가 천천히 나타나는 독을 풀어, 오늘 중독 증상이 나타나도록 독의 분량을 조절했다.적어도 내일까지는 안지여를 도우러 올 사람은 없었다. 독성은 적어도 이틀이 지나야 깨끗해지기 때문에 이틀 동안 그들은 설사와 전신 무기력으로 성에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알아도 와서 도울 수 없었다.그리고 그들이 기력을 회복할 때쯤이면, 안지여는 벌써 죽었을 것이다.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는 성을 통제하고, 안지여 부부를 제압해 두 사람을 줄로 묶고 지혈시켜 주었다.안지여는 요 몇 년 동안 자신이 상당히 대단하다고 여겼다. 이는 풍도성이 부유하기 때문으로, 돈으로 많은 사람을 살 수 있었으며, 여러 곳에서 추켜세워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처절하게 패배한 적이 없었던 이유는 진정한 적이 없기 때문으로, 주변의 떠돌이 비적은 작은 마을 규모로 너무 작아서 소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코 그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적이 너무 약해서였다.조정 사람과 비교했을 때, 그는 제대로 훈련받은 적 없는 비적었기에 일격도 감당할 깜냥이 못됐다.이리 나리는 둘을 중정에 묶어 두었다. 온 바닥에 남은 음식과 깨진 기와가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본 안지여는 마음속 깊이 분노가 일었다. 자신의 생일날, 그를 다치게 한 것이 바로 그의 친자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더욱이 오늘 이렇게 많은 고수가 현장에 있었는데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이런 결말을 맞다니 너무 불쾌했다. 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을 부축하고 안지여 부부 앞으로 가서, 그녀가 안지여 부부를 내려다보자, 그들은 낭패에 달가워하지 않는 기색으로, 이리봉청은 분노하는 마음과 함께 서글픈 마음도 들었다. 그들을 죽이면 커다란 복수는 이뤄 천문 세가 망자의 원혼은 달랠 수 있었다.하지만 저들을 이렇게 쉽게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이리 나리가 검을 휘두르며 안지여를 겨누자, 안지여가 공중으로 뛰어올라 후퇴했다.공자들은 돕고 싶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에게 바로 제압당했다. 안지여는 이리율 것으로 그들은 주변 사람을 제압하기만 할 뿐 옆에 서서 전투를 관전하고 있었다.이리율의 무공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를 가르친 안풍 친왕 부부를 제외하고, 사실 많은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이리율의 검법은 신속하고 맹렬해서 안지여는 상대하느라 쩔쩔매고 구석으로 몰리고 있었다. 성안의 호위들은 늑대 무리와 늑대파, 홍매문 사람들에게 막히는 바람에 안지여는 홀로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그래도 아직은 버틸 수 있었다.하지만 30분을 못 가서 안지여는 질게 틀림없었다.놀란 나머지 계속 실성해 있던 소여쌍이 갑자기 이리봉청을 향해 바싹 마른 손을 뻗어, 그녀의 목을 조르며 광적인 집착과 분노에 사로잡혀 성질을 부렸다. “멈춰, 다들 멈추라고. 안 그러면 내가 이년을 죽여버릴 것이니까!”소여쌍은 무공을 할 줄 알았지만 잘하지 못한 것이 어릴 때부터 계속 중병을 앓아 무공 연습에 소홀했고 성주 부인이 된 뒤로는 더욱 병기에 가까이할 일이 없었지만, 공력만큼은 아직 약간 있었다.소여쌍은 증오의 힘으로 이리봉청의 목을 졸랐는데, 소여쌍이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이리봉청의 목을 부러뜨릴 것만 같았다.안풍 친왕이 차가운 눈빛으로 나서려 하자, 안풍 친왕비가 말리며 고개를 살짝 흔들었는데, 그럴 필요 없다는 뜻으로 뒤에 있던 사람들에게도 참으라는 눈짓을 하자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모두가 이리봉청이 제압당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손가락으로 뭔가를 쥐고 있어 소여쌍의 어깨 위를 휘감고 팔을 눌러 소여쌍이 머리를 돌리게 했다. 이리봉청 손에 쥔 것은 바늘로, 그대로 소여쌍의 오른쪽 눈을 찌르고 들어갔다.소여쌍이 절규하며 이리봉청을 놔주고 선혈이 흐르는 눈을 움켜쥔 채 비틀거리다 바닥에 쓰러져 데굴데굴 구르며 새된 소리를 지르는데, 원망과 저주의 말을 끊임없이 쏟아
풍도성 중정에는 안지여의 아들들과 사위가 그의 곁에 남았는데,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 점점 공포에 질려가고 있었다.‘이 사람들, 아주 대단하구나!’안지여는 이리봉청을 보고 비록 조금 냉정해 보였지만, 여전히 놀라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갑자기 소여쌍이 큰 소리로 웃으며, 몸을 앞뒤로 흔들며 눈물을 찔끔거리더니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이리봉청을 가리키며 원망했다. “뜻밖에 네가 안 죽었단 말이지? 게다가 아들까지 있고. 참으로 황당하구나. 정말 너무 황당해. 원래 죽어야 했을 인간은 죽지 않고, 잘 살아야 할 사람은 36년간 괴로움을 당했어. 이리봉청 네가 날 비참하게 만들었으니 넌 이제 지옥에 떨어져야 해.”이리봉청은 소여쌍의 말을 들은 체 만 체했는데, 그녀 눈에는 지금 안지여만 들어왔다.안지여는 36년을 살아왔지만, 이리봉청에게 있어 36년은 마치 사라진 시간처럼 멸문지화의 원한이 어제 일 같았다.안지여도 이리봉청의 눈에서 분노와 악랄함을 보고, 처음으로 마음속에 두려움을 느꼈다.안지여는 억지로 감정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네 사람을 데리고 가. 지난 일을 묻지 않을 테니. 그렇지 않으면 풍도성에서 곧바로 10만 대군이 올 것으로, 살아서 도망갈 생각은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아.”이리봉청의 목소리가 낮게 잠겼다. “우리는 이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바로 네 성으로 쳐들어갈 수 있어. 넌 이미 졌어.”안지여가 웃었다. “졌다고? 그래?”안지여는 수하의 대장군이 믿음직해서, 그들을 당하게 놔줄 수도 있다고 여겼다. 대장군의 부대는 분명 치밀하게 준비되어 있을 것으로, 아마 지금쯤이면 궁수들이 이미 배치를 마치고 그들을 전부 쏴 죽이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고 말했다. “어머니, 저자와 말 섞으실 필요 없어요. 앉아서 지켜보시기만 하면 됩니다!”말을 마치고 의자를 올리더니 이리봉청을 부축해서 앉혔다.안지여가 이리 나리를 보는데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