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왕과 마스크 사건원경릉이 정색하며 말했다: “회왕의 병세는 전염성이 있어 들어가는 사람은 모두 입을 가려야 합니다. 제가 회왕 전하께 설명 드려 이로 인해 회왕께서 심리적인 부담을 가지지 않으시도록 하겠습니다.”“입 다물어!” 노비는 화가 나서 무슨 말을 하는지도 깨닫지 못하고 본디 원경릉을 감시하러 출궁했거늘, 원경릉은 아직 치료도 하기 전에 이런 계책을 벌이다니. 기왕비는 미소를 지으며: “괜찮아요, 좀 주의하면 될 것을, 제가 며칠 들어갔지만 그 뭐죠?....마스크? 안 했어요. 여섯째가 병이 중해서 생각이 많은데 여섯째가 괴롭지 않도록 우리가 최대한 신경을 써야 하지 않을까요.”기왕비는 마스크를 다시 원경릉에게 주고 안으로 들어갔다.이로써 자기는 조금도 포기하지 않았음을 드러냈다.원경릉이 낮은 목소리로: “거기 서요!”기왕이 차갑게: “어디서 위세를 부립니까?”원경릉이 군중을 둘러보며, “아바마마께서 저를 회왕께 보내 치료하라 하신 것은 병세에 관한 일체에 대해 모두 제 말을 들으라 하신 것으로, 폐병은 전염성이 강해서 침으로도 감염이 됩니다. 마스크를 하는 것은 기본적인 조치로 마스크를 하지 않으면 이 방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원경릉은 고개를 돌려 구사에게 단호하게 명령하길, “구대인, 문을 지켜주십시오, 누가 들어오려 거든 반드시 마스크를 하게 하시고, 하지 않으면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들여보내면 안됩니다. 노비마마를 포함해서요.”“예!” 구사가 명을 받들었다. 황제 폐하께서 확실히 모든 것을 초왕비가 시키는 대로 하라고 하셨으니 할 수 없다.하지만 구사 생각에 초왕비가 오늘 상당히 대담해 보여 걱정스럽게 초왕을 보니 초왕의 얼굴은 의외로 평온하다. 늘 그래 왔다는 듯 나서서 초왕비를 위해 변명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노비는 크게 화가 나서, “네가 감히 나까지 막아? 구사, 당장 비키지 못할까!”노비는 곧바로 기왕비의 손을 끌고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원경릉이 소매 속의 어장을 꺼내 한 칸 한 칸 길이를 늘이더니 기왕비
회왕을 진료하는 원경릉원경릉은 어의의 치료 일지를 봤다.병세는 이미 위중한 상태로 각혈도 한달간 계속 돼 약을 먹고 이삼일 안정되었다가 다시 악화되기를 반복해 이젠 밤새 기침이 멎지 않고 있다.원경릉은 초보적인 검사를 실시하고 문진을 한 뒤 약상자를 가져와 스트랩토 마이신을 주사했다.노비와 기왕비가 마스크를 하고 들어와 원경릉이 회왕에게 주사 놓는 것을 봤다.노비가 달려와, “너 뭐하는 거야? 회왕에게 뭘 찌른 거야?”우문호가 말리며, “어마마마 고정하십시오.”노비는 경악하는 눈빛으로 우문호를 보고, “이게 무슨 치료 방식이냐? 네 아바마마께서 알고 계시냐?”“아십니다!” 우문호가 말했다.원경릉이 약을 꺼내 시동에게 물을 가져오라 하고 회왕에게 말하길: “이 알약을 드세요.”회왕은 잘 따라주었다. 병을 얻은 이삼 년간 회왕은 더할 나위없이 치료를 따라주었다. 어마마마가 찾아온 각종 민간요법이니 신의라고 하는 것도, 심지어 무당이 굿을 하고 부적 끓인 물을 가져와도 아무것도 묻지 않고 마셨다.그래서 원경릉의 이 약이 무슨 약인지 묻지 조차 않고 바로 먹고 얼굴을 이마를 찌푸렸다.원경릉이 놀라서, “이건 씹어 먹는 게 아니라 물로 삼키는 거예요.” “씹어 먹으면 효과가 더 좋아!” 우문호가 한 마디 보충해 회왕이 난처하지 않게 배려했다.원경릉이 시동을 시켜 물을 가져다 드리자 회왕은 단숨에 큰 잔을 하나 다 마셨는데도 입안의 쓴 맛이 가시지 않고 목구멍에서 계속 쓴맛이 올라왔다.“약 먹고 졸리면 그냥 주무세요, 약을 세게 썼거든요. 처음 며칠은 걸핏하면 잠이 오고 피곤하고 식욕이 없을 거예요, 이건 전부 정상적인 부작용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원경릉이 가볍게 말했다.회왕은 원경릉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띤 후 노비를 보고, “어마마마, 다섯째 형수 잘 대해주세요.” 노비는 아들의 말뜻을 알아듣고, 마음은 괴롭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 피곤하지 좀 쉬거라.”노비가 성격이 우악스럽긴 해도 그 뒤에 속마음은 억세지 않은
회왕을 앞에 두고 기왕비와 대립하는 원경릉우문호가 앞으로 나와 회왕을 부축하자 기왕비가 서둘러: “다섯째 서방님, 전염이 두려우시면 시동에게 하라고 하세요.”주제넘는 말이었다.원경릉은 참을 수 없어, 청진기를 귀에 걸고 몸을 돌려 기왕비에게 싸늘하게 한마디 했다: “기왕비 마마, 여기서 충동질하고 떠들어대는 것 말고 별로 도움이 되는 게 없는데 나가셔서 차나 드시면서 시시비비를 가리시는 게 낫겠습니다. 잘 하시는 일을 하시죠 안 그런 가요?”기왕비는 원경릉이 이런 식으로 말할거라 생각도 못하고 순간 얼떨떨했다가 곧바로 부끄러움을 당했다는 듯 노비를 보며, “어마마마, 정말 죄송해요. 제가 확실히 도움이 되지 못하네요.”노비는 원경릉의 예리한 모습이 싫어서 냉랭하게: “너는 무슨 근거로 기왕비를 나가라는 것이냐? 요며칠 기왕비가 회왕부에서 민심을 안정시키지 않았으면 회왕부는 벌써 어지러워졌을 것이야. 네가 능력이 얼마나 출중하길래 감히 윗사람을 함부로 대하느냐?”원경릉은 진짜 기가 막혀서, “노비마마, 침대에 누워 생사를 오가는 사람은 마마의 아드님이고, 제가 어명을 받들어 온 것은 아드님을 구하기 위함 이지 해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마스크를 쓰는 건 이미 설명 드린 바와 같이 회왕 전하의 병이 전염될 수 있으니 전염을 예방하기 위한 것으로 만약 회왕을 포기한 것처럼 느껴 지시면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하지만 기왕비와 함께 제가 치료하는 데 영향을 주시는 건 사양합니다. 기왕비가 무슨 속셈이 있는지 저는 모르지만 확실한 건 마마께서 자신의 아이를 아끼는 만큼은 아닐 겁니다. 그리고 저는 여기 의사로 환자와 환자의 가족과 같이 일선에 서 있기에, 마마께서 사리에 밝으시다면 제 말을 들으셔야 합니다. 최종적으로 회왕을 치료하는 이 일에 대해서는 아바마마조차 제 말을 들으십니다.”“초왕비, 나는 도저히 모르겠군요. 당신은 왜 내가 속셈이 있다고 하는지, 내가 무슨 속셈이 있을 수가 있나요? 이 일은 그냥 넘어갈 수 없군요.” 기왕비는 노비가 말하기도 전에
회와 진찰 후, 제왕과 초왕의 대화“어의말이 나는 10일 버티기 힘들다고 했습니다. 지금 날짜를 계산하면 3일밖에 안 남았습니다.” 회왕이 조용이 말했다.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어의의 말을 일축했다. “전하의 심폐 기능은 완전히 손상된 상태가 아니라 각혈 상황은 일주일……7일 정도면 어느정도 잡힐 것이고, 심지어 밤에도 기침을 하는데 오늘밤부터 상당히 좋아질 겁니다. 결핵은 완치까지 여정이 긴 싸움입니다. 왕야께서 포기하지 않으시면 저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습니다.”우문호가 옆에서 이 말을 듣고 마음이 따듯해 져서 뚫어지게 원경릉을 쳐다봤다. 최근 이 여자 좀 빛나는데.회왕이 작은 목소리로: “고마워요 형수님.”“주무세요.” 원경릉이 몸을 돌려 노비를 보며, “노비마마 모두 나가지요, 왕야께서 쉬실 수 있도록.”노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목을 빼고 아들을 한 번 더 보고 겨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며 나갔다.노비는 마음에 작은 희망이 싹텄는데 이것은 어의가 심어준 것이 아니라 원경릉이 심어준 것으로 노비의 마음이 편치 않다.원경릉도 나가고 우문호가 방에 남아 동생과 함께 있으려고 하는데 원경릉이 끌고 나가며, “식구님, 나가요. 환자가 쉬는 거 방해하지 마시고.”“잡아 끌다니 이 무슨 체통 없는 행동인가?” 우문호가 억지로 원경릉에게 끌려 나가며 겉으로 말은 안 했지만 원경릉이 어장을 하사 받고 아주 기고만장하다 싶다.밖에 많은 사람들이 서있는데 방금까지 없었던 제왕과 주명취도 있다.제왕이 우문호를 보더니 앞으로 나와 그를 한쪽으로 끌고 갔다.우문호는 아무 말도 못하고 끌려가며, 요즘 소매 잡아 끄는 게 유행인가?제왕 부부는 온지 제법 되어서 안에서 원경릉이 치료하는 소리를 듣고 사람들과 기다리고 있던 참이다. 하지만 이것이 제왕이 호수사건을 잊었다는 뜻은 아니다.제왕은 우문호를 한쪽으로 끌고 가: “형, 일이 터진 지 벌써 며칠이 지났어, 물에 빠진 사건에 대해 명취에게 어떻게 하는 게 맞을 것 같아?”우문호는 제왕을 보고 진심
제왕과 제왕비, 문영 공주와 창평 공주이런 생각이 들고 보니 제왕은 오히려 위로가 되어, “다섯째 형, 됐어. 괜히 형수랑 실랑이 할 필요 없어, 여자들은 논리를 따지질 않지. 모든 여인들이 다 명취처럼 이렇게 사리분별을 잘 하는 건 아니니까.”우문호는: “그래. 명취는 사리분별을 잘하니, 네가 제수씨에게 일이 이렇게 됐다고, 정말 원경릉을 건드려서 화나게 하면 몽둥이 들고 나설 수도 있는게 물에 빠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또 맞으면 되겠어? 아서라, 이런 여인한테 정색하고 화낼 가치도 없어!”우문호가 이 말을 하는데 자기도 모르게 눈을 못 마주친다.제왕이 당황해서, “다섯째형, 왠지 형 즐기고 있는 거 같은데?”우문호는 정색하고, 제왕을 째려보며, “그럼 울면서 말해?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내가 아내한테 맞았다는 걸 알릴 수가 있겠냐고.”그렇네!“그럼 이 일은 이걸로 끝?”“어장을 생각해서 참자, 참어!” 우문호는 말을 마치고 바로 원경릉을 찾아갔다.최근 들어 이 여자한테서 시선을 뗄 수가 없는 게, 걸핏하면 사람들한테 화풀이를 당한다.갈수록 대중이 없다.원경릉 어디 갔지?우문호는 쭉 둘러봐도 그녀가 보이지 않는다. 잠깐 자리를 비웠을 뿐인데 그새 잃어버린 건가?원경릉은 창평공주 우문령과 문영공주에게 끌려 갔다.자매는 회왕의 병에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어서 제왕이 우문호를 떼 놓았을 때 얼른 원경릉을 바깥 마당으로 데리고 가서 회왕의 병세에 대해 물었다.원경릉이 대략적으로 얘기하자 문영공주가 탄식하며, “이 고비를 넘기기를 바랄 수밖에, 전 벌써 며칠째 잠을 못 잤어요.”원경릉은 문영공주의 눈두덩이가 검고 피부가 건조한 것이 확실히 수면부족이라 몇 마디 위로의 말을 건넸다.공주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멀리서 얼핏 주명취가 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우문령이 싫은 내색을 하며: “또 왔네? 지난번에 왜 안 빠져 죽었데? 매일 계략이나 부리고.”원경릉은 우문령이 꽤 착실한 아가씨란 생각이 드는게, 말도 이쁘게 하고 예의도 있는게
주명취의 진짜 모습을 안 우문령“저 여자 속마음이 아주 악독한데, 안타깝게도 다섯째 오빠랑 어마마마는 제왕비한테 속고 있지.” 원경릉은 특히 어떤 점에서 주명취의 인품에 문제가 있다고 간파했는지 우문령에게 설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우문령이: “새언니 여섯째 오빠 병때문에 바쁘시죠? 그럼 우리가 시간 뺐지 않을 게요.”원경릉은 한 손으로 우문령의 손목을 잡고, “안 바빠요, 우리 주명취의 인품에 대해서 좀 얘기해보죠.”시누와 올케 두 사람이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갔고, 원경릉은 우문호와 주명취의 사이가 틀어지게 된 전과정을 알아야했다.그 일은 2년전에 발생했다.당시 모두는 우문호가 주명취와 결혼할 거라고 생각하고 우문령도 이 미래의 새언니를 좋아했다. 주명취가 입궁해서 고모인 황후를 찾아 뵐 때마다 반드시 현비 처소에 와서 인사를 드리고 그 김에 우문령에게 재미난 걸 가져와 환심을 샀다. 그래서 우문령은 우문호와 현비 앞에서 항상 주명취에 대한 칭찬만 했다.한번은 주명취가 백옥으로 된 나비 비녀를 가지고 입궁했는데 우문령이 이걸 보고 좋아서 주명취에게 잠깐 해보게 빌려 달라고 했는데 주명취는 대담하게 비녀를 우문령에게 주었다.우문령은 너무 기뻐서 서둘러 방으로 가서 해보고 의상을 맞춰 입은 후 자매들을 찾아가 보여줬다.그 때 어화원에서 주명취와 그녀의 시녀가 말하는 것을 들었는데,그 시녀가 왜 귀한 백옥 비녀를 공주에게 드렸냐고 물어보니, 주명취가 싫다는 표정으로, 창평공주는 욕심이 끝이 없는 사람이라 그거나 먹고 떨어지라고 줬다는 것이다.우문령은 당시에 성숙하지 못한지라 곧바로 주명취에게 가서 따져 묻고 이 일로 소란을 피워 현비와 우문호도 모두 알게 되었다. 주명취는 울먹이며 우문령이 자신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운다며 본인이 그런 말을 한 적도 없고 주명취의 시녀도 공주가 거짓말을 한다고 증언했다.우문령은 이 일로 현비에게 벌을 받고 우문호에게 말도 못하게 심한 욕을 들어야 했다.2년이 지났는데도 우문령은 말을 하다 보니
원경릉과 우문호의 첫 키스원경릉은 손을 내리고 조금 내키지 않은 듯: “그럼 어떻게 하길 바래? 내가 잘못 했다. 그럼 됐냐?”“잘못한 주제에 뭐가 그리 당당해? 아직도 이렇게 거만하단 말이지? 잘못했다면서 잘못했다는 태도가 그래? 그게 사과야? 제대로 사과 했냐고?”연달아 쏘아 대는 걸 보니 정말 오래 참았다.원경릉도 성질을 내며, “나도 한마디만 하면 안될까? 어쩌다 그런 거고 고의도 아닌데 막돼먹은 여자처럼 여기서 머리끄덩이 잡고 싸워야 해? 넌 내가 알던 모르던 날 좋게 말하지 않을 게 분명해, 나는 좋은 싫든 네가 내 은……”원경릉은 들뜬 얼굴에 앵두 빛 입술이 살짝 벌어져 있고 깊은 눈동자에 흩날리는 머리카락, 몸은 약간 기우뚱한 상태다. 켕기는 듯한 느낌과 함께 약간의 죄책감이 있지만 은인이란 한 마디가 입에서 떨어지지 않아 우문호의 눈빛을 피하고 마는 것이다.우문호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감히 은혜를 가지고 위협을 해? 눈에 뵈는 게 없는 모양이야?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 것이, 고개를 숙여 원경릉의 벌어진 붉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때릴 수 없기 때문에 본래는 벌칙으로 그런 건데, 붉은 입술에 닿는 순간 부드러운 감촉이 심장을 꿰뚫어 온몸이 굳어버리고 머리속이 순간 하얗게 번했다.원경릉의 머리도 순간 하얘졌다.무슨 상황이지?두 사람의 호흡이 가빠지며 서로의 두 손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상대를 안았는데, 이건 완전 자의식이라 곤 전혀 없는 무의식이 낳은 행동이었다.우문호가 자신의 입술을 포개자 심장이 세차게 뛰고, 온 세상이 마치 잠시 멈춘 것만 같다.잠시 후 우문호는 입술을 원경릉의 귓불로 가져가며 온몸에 힘이 빠진 그녀를 안고 쇄골 위에 흐트러진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손으로 만졌다.원경릉은 기운이 하나도 없는 게 머리와 몸이 모두 산소결핍 상태 같다.그저 온몸으로 부드럽게 우문호의 가슴에 파묻혀 북소리 같은 심장의 고동소리를 듣고 있었다.이성이 천천히 돌아와서 냉정을 되찾았다.서로 떨어져 난감해서 어쩔 줄 모른
우문호와 원경릉을 키스를 훔쳐본 주명취눈을 돌려보니 반대편 작은 나무 숲에 여인이 하나 서있다.그녀의 얼굴빛은 창백하고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는 표정으로 눈가엔 눈물이 맺히고 두 주먹을 꽉 쥐고 서있는 모습이 상당히 뻣뻣해 보인다.주명취다.거리를 두고 눈빛이 마주쳤다.증오와 질투가 미친듯이 뒤엉켜 있다.주명취는 증오로 원경릉은 민망함으로. 이 일은 다른 사람의 눈에 띄어서는 안되는 거였다.게다가 이 사람은 주명취다.주명취가 결국 천천히 걸어왔다.그녀의 눈물이 모두 삼켜버렸는지 얼굴에 있던 질투와 증오의 빛이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주명취는 원경릉 앞에서 서서, 친절한 미소를 띠고, “실수로 보게 된 거예요, 신경 쓰지 마세요.”적이 가시를 세우지만 강철 칼 인들 겁날까, 원경릉은 당연하다고 느꼈다.하지만 지금 이 미소는 확실히 사람의 마음을 얼어붙게 만든다.원경릉이: “저는 신경 안 쓰는데, 신경 쓰이세요?”주명취의 미소는 한층 사람을 미혹 시키며, “제가 왜 신경을 쓰겠어요? 전 기뻐요. 호 오빠가 드디어 행복을 찾았네요.”이렇게까지 위장을 해도 원경릉은 조금도 믿지 않았다.하지만 여전히 공손하게 , “고맙습니다!주명취와 어떤 충돌도 일으켜서는 안된다. 치료기간 동안 주명취가 앙심을 품거나 음모를 꾸미고 방해하게 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주명취는 깊은 원망의 눈빛으로, “사실 마음으론 상당부분 받아들일 수 없는 것도 있어요, 하지만 현실은 전 이미 제왕과 결혼했으니, 이전 일은 잊는게 맞아요. 전부 잊어야 하죠.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살아가겠어요, 전에 했던 말이 맞아요. 자기가 선택한 길은 아무리 어려워도 이를 악물고 걸어가야 해요.”말을 마치고 주명취는 원경릉에게 절하며, “물에 빠진 일은 미안해요, 제가 잘못했어요.”예를 갖춰 사과하더니 원경릉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돌아서서 가버렸다.원경릉은 어안이 벙벙했다. 갑자기 이렇게 온화하게 변하다니 받아들일 수가 없다고.하지만, 됐다. 주명취가 원경릉을 건드리지만 않으면
안지여의 이마에 파란 힘줄이 불끈불끈했으나 냉정을 가장했다. “내가 두려워할 줄 알았나 보지? 죽음도 두렵지 않은데 뭘 더 두려워하겠어?”“넌 두려울 것이야!” 이리봉청이 고개를 돌려 이리 나리를 보고 살짝 그의 팔을 잡았다. “내가 오는 길에 늑대파 사람이 그러던데, 천하에서 제일 잔혹한 형벌을 아는 사람이 늑대파에 있다고. 그게 사실인 것이냐?”이리 나리가 가볍게 답했다. “물론 사실이죠. 훼천이라고 합니다. 늑대골 출신이에요.”“안지여가 버틸 수 있는지 어디 한 번 보고 싶구나.” 이리봉청이 말했다.이리 나리가 엄숙한 태도로 명을 내렸다. “훼천!”그러자 훼천이 급히 나왔다. “이리 나리, 분부하시지요!”이리 나리는 그가 짐짓 냉정한 척하고 있으나 눈빛이 조금씩 허물어져 가고, 몸까지 부들부들 떠는 것이 아주 만족스러워 훼천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시작해!”안지여가 갑자기 큰 소리로 욕했다. “난 네 아버지거늘, 감히 나에게 손을 대다니, 천벌을 받아 마땅한 놈 같으니라고!”이리봉청이 이 말을 듣고 잠시 주저하는 눈빛으로 이리 나리를 바라봤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제 아버지는 오직 저를 키워주신 안풍 친왕뿐이십니다.”이리봉청이 살짝 안도했다. “저 인간이 단지 나만 해쳤으면 네 체면을 봐서 놔줬겠지만 천문 세가의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갔으니 난 용서할 수 없구나.”“이리봉청, 너 언제 이렇게 악랄하게 변했어? 죽이려거든 그냥 죽여. 난 천문 세가 사람을 죽이긴 했어도 그들을 괴롭히진 않았어. 네가 날 죽이려거든 깨끗하게 단번에 죽여!”안지여가 크게 노해 몇 번 몸부림을 치다가 상처가 벌어지는 바람에 배에서 선혈이 흘러나오고, 훼천이 가까이 다가가자, 눈에 두려움이 깊어졌는데, 늑대골 출신 훼천은 온몸에서 피비린내가 뿜어져 나와 안지여를 덜덜 떨게 했다.“이리율!” 안풍 친왕비는 시ㅈ가하기 전에 이리 나리를 불렀다. “내가 여기서 네 엄마와 같이 있을 테니 넌 먼저 나가 있거라!”이리 나리가 안풍 친왕비에게
안지여에게 구원 병력이 없는 상황에서, 이리 나리 일행이 성을 제압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대오가 경성에서 출발하기 전에, 안풍 친왕비가 미리 사람을 풍도성으로 보내 각처, 특히 성 수비군과 군대에 잠입시켜, 음식에 효과가 천천히 나타나는 독을 풀어, 오늘 중독 증상이 나타나도록 독의 분량을 조절했다.적어도 내일까지는 안지여를 도우러 올 사람은 없었다. 독성은 적어도 이틀이 지나야 깨끗해지기 때문에 이틀 동안 그들은 설사와 전신 무기력으로 성에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알아도 와서 도울 수 없었다.그리고 그들이 기력을 회복할 때쯤이면, 안지여는 벌써 죽었을 것이다.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는 성을 통제하고, 안지여 부부를 제압해 두 사람을 줄로 묶고 지혈시켜 주었다.안지여는 요 몇 년 동안 자신이 상당히 대단하다고 여겼다. 이는 풍도성이 부유하기 때문으로, 돈으로 많은 사람을 살 수 있었으며, 여러 곳에서 추켜세워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처절하게 패배한 적이 없었던 이유는 진정한 적이 없기 때문으로, 주변의 떠돌이 비적은 작은 마을 규모로 너무 작아서 소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코 그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적이 너무 약해서였다.조정 사람과 비교했을 때, 그는 제대로 훈련받은 적 없는 비적었기에 일격도 감당할 깜냥이 못됐다.이리 나리는 둘을 중정에 묶어 두었다. 온 바닥에 남은 음식과 깨진 기와가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본 안지여는 마음속 깊이 분노가 일었다. 자신의 생일날, 그를 다치게 한 것이 바로 그의 친자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더욱이 오늘 이렇게 많은 고수가 현장에 있었는데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이런 결말을 맞다니 너무 불쾌했다. 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을 부축하고 안지여 부부 앞으로 가서, 그녀가 안지여 부부를 내려다보자, 그들은 낭패에 달가워하지 않는 기색으로, 이리봉청은 분노하는 마음과 함께 서글픈 마음도 들었다. 그들을 죽이면 커다란 복수는 이뤄 천문 세가 망자의 원혼은 달랠 수 있었다.하지만 저들을 이렇게 쉽게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이리 나리가 검을 휘두르며 안지여를 겨누자, 안지여가 공중으로 뛰어올라 후퇴했다.공자들은 돕고 싶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에게 바로 제압당했다. 안지여는 이리율 것으로 그들은 주변 사람을 제압하기만 할 뿐 옆에 서서 전투를 관전하고 있었다.이리율의 무공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를 가르친 안풍 친왕 부부를 제외하고, 사실 많은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이리율의 검법은 신속하고 맹렬해서 안지여는 상대하느라 쩔쩔매고 구석으로 몰리고 있었다. 성안의 호위들은 늑대 무리와 늑대파, 홍매문 사람들에게 막히는 바람에 안지여는 홀로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그래도 아직은 버틸 수 있었다.하지만 30분을 못 가서 안지여는 질게 틀림없었다.놀란 나머지 계속 실성해 있던 소여쌍이 갑자기 이리봉청을 향해 바싹 마른 손을 뻗어, 그녀의 목을 조르며 광적인 집착과 분노에 사로잡혀 성질을 부렸다. “멈춰, 다들 멈추라고. 안 그러면 내가 이년을 죽여버릴 것이니까!”소여쌍은 무공을 할 줄 알았지만 잘하지 못한 것이 어릴 때부터 계속 중병을 앓아 무공 연습에 소홀했고 성주 부인이 된 뒤로는 더욱 병기에 가까이할 일이 없었지만, 공력만큼은 아직 약간 있었다.소여쌍은 증오의 힘으로 이리봉청의 목을 졸랐는데, 소여쌍이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이리봉청의 목을 부러뜨릴 것만 같았다.안풍 친왕이 차가운 눈빛으로 나서려 하자, 안풍 친왕비가 말리며 고개를 살짝 흔들었는데, 그럴 필요 없다는 뜻으로 뒤에 있던 사람들에게도 참으라는 눈짓을 하자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모두가 이리봉청이 제압당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손가락으로 뭔가를 쥐고 있어 소여쌍의 어깨 위를 휘감고 팔을 눌러 소여쌍이 머리를 돌리게 했다. 이리봉청 손에 쥔 것은 바늘로, 그대로 소여쌍의 오른쪽 눈을 찌르고 들어갔다.소여쌍이 절규하며 이리봉청을 놔주고 선혈이 흐르는 눈을 움켜쥔 채 비틀거리다 바닥에 쓰러져 데굴데굴 구르며 새된 소리를 지르는데, 원망과 저주의 말을 끊임없이 쏟아
풍도성 중정에는 안지여의 아들들과 사위가 그의 곁에 남았는데,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 점점 공포에 질려가고 있었다.‘이 사람들, 아주 대단하구나!’안지여는 이리봉청을 보고 비록 조금 냉정해 보였지만, 여전히 놀라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갑자기 소여쌍이 큰 소리로 웃으며, 몸을 앞뒤로 흔들며 눈물을 찔끔거리더니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이리봉청을 가리키며 원망했다. “뜻밖에 네가 안 죽었단 말이지? 게다가 아들까지 있고. 참으로 황당하구나. 정말 너무 황당해. 원래 죽어야 했을 인간은 죽지 않고, 잘 살아야 할 사람은 36년간 괴로움을 당했어. 이리봉청 네가 날 비참하게 만들었으니 넌 이제 지옥에 떨어져야 해.”이리봉청은 소여쌍의 말을 들은 체 만 체했는데, 그녀 눈에는 지금 안지여만 들어왔다.안지여는 36년을 살아왔지만, 이리봉청에게 있어 36년은 마치 사라진 시간처럼 멸문지화의 원한이 어제 일 같았다.안지여도 이리봉청의 눈에서 분노와 악랄함을 보고, 처음으로 마음속에 두려움을 느꼈다.안지여는 억지로 감정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네 사람을 데리고 가. 지난 일을 묻지 않을 테니. 그렇지 않으면 풍도성에서 곧바로 10만 대군이 올 것으로, 살아서 도망갈 생각은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아.”이리봉청의 목소리가 낮게 잠겼다. “우리는 이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바로 네 성으로 쳐들어갈 수 있어. 넌 이미 졌어.”안지여가 웃었다. “졌다고? 그래?”안지여는 수하의 대장군이 믿음직해서, 그들을 당하게 놔줄 수도 있다고 여겼다. 대장군의 부대는 분명 치밀하게 준비되어 있을 것으로, 아마 지금쯤이면 궁수들이 이미 배치를 마치고 그들을 전부 쏴 죽이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고 말했다. “어머니, 저자와 말 섞으실 필요 없어요. 앉아서 지켜보시기만 하면 됩니다!”말을 마치고 의자를 올리더니 이리봉청을 부축해서 앉혔다.안지여가 이리 나리를 보는데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안지여가 퍼뜩 눈을 돌려 이리 나리를 보았다.‘이리봉청이 저자를 아들이라고 불렀다는 건러니까?이리 나리는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찬찬히 훑어보더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안 성주와 좀 오래된 원한을 따져야 하는데, 관련되기 싫으신 분은 자리를 피해 주시지요!”그때 한 사람이 검을 짚고 일어나 호통을 쳤다. “넌 도대체 어떤 놈이냐? 무슨 자격으로 자리를 피해라 마라야? 안 성주를 귀찮게 할 생각이면 일단 나부터 통과해 보시지!”그는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장검을 뽑아 파죽지세로 이리 나리를 향해 휘둘렀다.이리 나리는 손을 살짝 움직여 손바닥으로 칼자루를 밀자, 검이 날아가며 그 사람의 귀를 베어 한 줄기 피가 공중에 뿌려지더니, 방금까지 기고만장하던 자가 비명을 지르고 귀는 바닥에 떨어졌다.검이 다시 이리 나리 수중으로 정확히 돌아왔다.이 모든 게 3초 안에 벌어진 일이었다.“회선검?” 검법을 아는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외쳤다.현장은, 숨소리마저도 들리지 않았다.회선검은 검마의 검법으로, 그렇다는 건 저 사람이 검마의 계승자?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무리에서 검마를 찾았다. 과연 두 손으로 검을 안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도 차가운 안광이 느껴졌다.과연 진짜 검마구나, 사람들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검마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이리 나리를 흘끔 보더니 속으로 의아해했다. ‘이 자식, 언제 내 비장의 검법을 배운 거야?’이리 나리의 검 끝에선 아직 선혈이 떨어지는데, 여전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말했다. “이 아수라장에 끼고 싶은 거라면, 제가 무례하다고 원망할 생각 마세요.”“무엄하도다!” 안지여가 몹시 놀랐다가 천천히 정신을 차리고 눈을 치켜뜨며 이리 나리를 노려봤다. “너는 내가 누구인 줄 아느냐? 내가 네 아버지다!”이리 나리가 코웃음을 쳤다!안지여의 몇몇 아들이 달려 나와 소리쳤다. “아버지, 저희가 지켜드리겠습니다.”안풍 친왕이 젓가락을 던지고 일어나 차갑게 명을 내렸다
오늘은 성주의 생일이기에 경사라 섣불리 피를 볼 수는 없으므로 칼은 빼 들었지만 먼저 나서서 늑대를 죽이는 사람은 없었다.안지여는 어두운 눈빛으로 ‘늑대 무리라고? 척후병의 보고로는 안풍 친왕이 늑대 무리를 끌고 온다고 했는데, 저들이 의외로 성으로 직접 쳐들어 왔다 이거지?’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안지여는 잔을 들고 꿈적도 하지 않은 채, 무너지기 직전까지 미동도 없는 태산처럼 냉정하고 침착했다. 늑대 무리는 안으로 들어온 뒤로 두 패로 나뉘어 서서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호시탐탐 엿보며 으르렁거렸다.“성주님, 성주님, 저들이 기어코 쳐들어오겠다고….” 문지기가 외치는 소리는 들렸으나 사람은 보이지 않더니, 그보다 조정에서 보낸 사람들이 먼저 들이닥쳤다.앞에 걸어들어오는 두 사람을 안지여는 본 적이 있었는데, 바로 안풍 친왕 부부로 예전에 그들이 천문 세가 사람들을 조사하러 왔을 때 그에게 속은 적이 있었다. 비록 당시 일면식 뿐이었으나 천문 세가 일을 캐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 탓에 그들의 얼굴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어째서 별로 변한 게 없는 거지?’안풍 친왕 부부 뒤에 따라오는 10여 명의 검은 옷을 입은 노인은 그들의 호위 무사일 것으로, 주인인 안풍 친왕 부부는 별 표정이 없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들어와 고개를 들자 괴팍하고 악랄한 얼굴이 안지여 마음에 들지 않았다.안지여는 여전히 일어나지 않았고, 미소는 띠고 있었지만 매서운 눈빛으로 저들이 돌계단을 오르면 그때 일어나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게 그의 태도였다.하지만 안풍 친왕 부부는 돌계단을 오르지 않았고, 손님 중 건배를 권하느라 자리를 비운 사람들 의자에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이 차지하고 앉아, 그들을 대놓고 밀치더니 품에서 자기 젓가락을 꺼내 옆 사람 상관하지 않고 먹기 시작해 사람들이 다 경악했다.그들이 자리를 잡고 앉자 뒤따라 들어오는 사람들이 보였다.두 사람이 사람들에 둘러싸여 천천히 걸어들어오고 있었
풍도성 안은 술잔을 주고받고 건배하며 흥겨운 잔치가 한창 무르익고 있었다.안지여는 오늘 황금색 예복을 입었는데 예복에 거대한 이무기를 수놓았으며, 황실의 밝은 황색과는 약간 구별되었지만,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진짜 곤룡포로 착각할 만큼 거대한 이무기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형상이 구름을 뚫고 솟아오르는 용과 매우 흡사했다.안지여는 자신의 야심을 이미 조금도 감추지 않았다.당연히 안지여는 오늘도 야심을 감출 생각 없이 손님들에게 보란 듯이 자세를 잡았다. 심지어 인근 지역 조정 관리들이 손님으로 왔어도 안지여는 전부터 맺어온 관계였기에, 그들과 개인적인 친분이 매우 두터워 산 넘고 물 건너 저 멀리 있는 황제가 그들을 시시콜콜 관리할 수 없었다.그 자리 있던 사람들은 모두 오늘 황실에서 파견한 일행이 온다는 것을 알고, 연회석에서 큰 소리로 물었다. “성주님, 듣자하니 안풍 친왕 전하와 이리 부마께서 오늘 오신다던데 어째서 안 보입니까?”안지여가 잔을 들고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진심으로 생일을 축하한다면 결국 오겠지요.”“여정을 듣기론 오늘 분명 풍도성에 도착한다고 했는데, 어째서 밤이 되도록 아직 안 보입니까? 설마 성주님이 직접 나가서 맞이하셔야 하는 건 아니겠지요?”“성주님이 가서 맞이하셔야 한다고? 아주 허세가 대단한데? 퉤!”“누가 아니랍니까? 진심으로 생신을 축하하는 거였으면 며칠 전에 풍도성에 도착해 성의를 보여야지, 오늘까지 늑장을 부리다가 늦게서야 와서, 아직도 잔치에 오지 않은 건 분명 성주님의 체면을 안중에도 두지 않은 행태입니다. 제가 보기에 못 들어오게 막고 돌려보내시지요, 마음만 받은 셈 치고요. ”“맞습니다. 그동안 조정에서는 풍도성에서 받은 공물이 적지 않았으니, 만족한 줄도 알아야죠.”“풍도성은 더 이상 조공을 바칠 필요 없어요. 뭐 때문에 그럽니까? 수백 년 전에 풍도성은 원래 북당의 영토가 아니었어요. 선을 긋고 나와 독립해야 합니다.”모두 안지여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서, 몇 잔 들어가자, 비위를
소여쌍의 욕은 거의 반 시진 동안 계속되었다. 이것도 별로 드문 일이 아니라 무쌍거 사람들은 다 익숙해져 있었다. 성주가 오지 않거나 소여쌍이 아프기 시작해도 이렇게 욕을 해댔다.욕하다 지치기를 기다렸다가 늙은 몸종이 가서 달랬다. “부인 그러실 게 뭐가 있으십니까? 몸이 가장 중하십니다.”소여쌍이 의자에 기대 늘어졌다. 극도로 피곤해 풀린 눈으로 천정을 보며 비참함이 가슴 깊은 곳을 타고 내렸다. “오늘이 초엿새지?”“네!” 늙은 몸종이 대답했다.소여쌍이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곧 15일이구나. 또 내 명을 재촉하는 고통이 오겠지. 죽으면 죽었지 다시는 그 고통을 느끼고 싶지 않다.”그러자 늙은 몸종도 매우 괴로워했다. “부인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고통도 며칠이면 그럭저럭 지나가서, 그동안도 그렇게 지내셨잖아요?”“며칠이면 뭐 그럭저럭 지나가나?” 소여쌍이 잔인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건 네가 이 고통을 안 당해봐서 그래. 이게 다 이리봉청 그년 짓이야. 오빠가 그년을 쫓아가서 죽이게 한 걸 정말 후회해. 그년을 잡아 와서 가두고 내가 한 번씩 아플 때마다 그년을 갈기갈기 찢어발겨 나보다 수천 수백 배 고통스럽게 해야 했어.”늙은 몸종이 소여쌍의 손을 쥐었다. “부인 그런 생각 마세요. 벌써 죽은 사람을 이제 와서 생각해 봤자 아무 도움도 안 됩니다. 성주님과 자꾸 다투지 마세요. 자꾸 다투시다 보면 감정이 사라집니다.”소여쌍이 처연한 웃음을 지었다. “오빠는 진작부터 나한테 아무 감정 없어.”“성주님은 이리봉청에게 아무 감정 없으세요. 감정이 있을 리도 없고요. 안 그러면 당시 부인을 위해 이리봉청을 죽이고 천문 세가 사람을 다 죽이셨을 리가 없죠.”소여쌍이 고개를 돌리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전에는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요 몇 년간, 성에 들어온 여자들 생긴 걸 보라고. 전부 이리봉청을 쏙 빼닮았잖아? 오빠는 역시 후회하고 있는 거야. 날 위해 이리봉청을 죽인 걸.”소여쌍은 늙은 몸종의 손을 잡는데 고여서 썩
안지여는 소야쌍을 놓고 천천히 안으로 걸어갔다. “이틀 뒤가 내 생일인데, 당신 몸 상태는 어때?”그러자 소여쌍은 시녀의 손을 뿌리치고 얼른 안으로 따라 들어가려 했는데, 몇 걸음 만에 휘청거리더니 하마터면 안지여 뒤로 넘어질 뻔했다.안지여는 소여쌍을 잡아줄 수 있었지만, 손을 뻗지 않고 그녀를 등지며 보이지 않는 척했다.시녀는 이미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얼른 소여쌍을 부축해 바닥에 넘어지는 것까지 막았다.소여쌍이 숨을 돌리고 살짝 웃었다. “몸이 많이 좋아져서 오빠 곁에 있을 수 있어요. 오빠 생일에 당연히 제가 곁에 있어야죠.”안지여는 그제야 소여쌍을 돌아봤다. “생일엔 손님이 많이 올 거야, 올해는 다른 어떤 해보다 성대하게 하니까 당신도 잘 차려입어. 내가 내일 사람을 시켜 장신구를 보내도록 하지.”“네, 알았어요!” 소여쌍이 기쁜 듯이 말하며 안지여를 한없이 바라봤다.하지만 안지여는 소여쌍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사정 설명했고 체면도 차렸으니 됐다 싶어 말했다. “난 아직 일이 있어서. 당신 쉬는 걸 방해하지 않을 테니 잘 쉬고 있어.”안지여는 말을 마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려고 했다.이때 소여쌍이 갑자기 닭발 같은 손을 뻗어 안지여의 팔을 붙잡으며 서둘렀다. “오빠, 어렵사리 왔는데 저랑 얘기 좀 더 해요.”안지여가 고개를 숙이고 소여쌍의 마르고 늙은 손을 바라봤다. 손등에 주름이 자글거리는 것이 구겨진 비단 뭉치처럼 너무 흉해서 혐오감이 든 나머지 쓱 손을 뺐다. “말했잖아, 일이 바쁘다고.”소여쌍의 눈빛이 갑자기 매서워지며, 늙고 쉰 목소리로 소리쳤다. “일이 바쁜 거예요, 아니면 그 여우 년을 찾아가는 거예요? 제가 모를 줄 아세요?! 여자를 성에 얼마나 숨겨놨는지.”안지여가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헛소리야?”소여쌍이 두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고 축 처진 눈에서 원한이 쏟아져 나왔다. “제가 늙었다고 싫어하는 거잖아요, 아녜요? 잊지 마세요. 오빠의 동안도 결국 늙는다고요. 이리봉청이 아직 살아있어도 지금 저보다